헤겔 형이상학 산책69-자본의 탄생과 본질의 탄생[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69-자본의 탄생과 본질의 탄생
1)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전개한 상품, 화폐, 자본에 이르는 과정은 그 치밀함과 대담함 때문에 감탄을 자아낸다. 마르크스가 이런 전개 과정을 어떻게 발상했을까 늘 궁금했다. 아마도 헤겔의 논리학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헤겔 논리학 어느 부분일까?
헤겔 논리학 어디에서도 똑같은 것은 발견할 수 없으니, 이는 분명 마르크스의 독창적인 발견이고 마르크스의 유물 변증법 논리를 대변하는 혁명적 시도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적어도 헤겔의 변증법이 마르크스에게 일정한 정도 영감을 준 것은 아닐까 하는데, 그 영감을 받은 부분을 알고 싶었다.
필자는 헤겔이 존재론 마지막 부분에 전개한 척도 관계, 기체 그리고 본질에 이르는 과정을 읽어나가는 중 아마도 이 부분이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전개한 상품, 화폐, 자본의 과정과 가장 닮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마르크스가 전개한 이런 전환 과정은 그저 경제학적인 사실로만 이해되었고 그 논리적 전개 과정은 대체로 주목받지 못했다. 헤겔의 논리학과 연결되는 접점을 찾는다면, 마르크스의 상품, 화폐, 자본의 개념이 좀 더 개념적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한다.
거꾸로 헤겔의 척도 관계, 기체, 본질의 전개 과정은 너무 사변적이어서 이해하기 난감했다. 필자가 현대에 발전한 유기화학과 단백질 합성을 이용해 헤겔의 전개 과정을 설명하려 했지만, 헤겔이 그런 과학적 사실을 알 리는 없었으니, 이런 식의 이해는 너무 억지로 가져다 붙인 것에 가깝다.
그런데 헤겔이 사망했지만, 여전히 헤겔의 숨결이 살아 숨 쉬던 시대 1840년대 학습했던 마르크스를 통해서 본다면, 더 설득력 있게 헤겔의 논리가 이해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여기서 필자는 헤겔의 논리와 마르크스의 논리의 유사성을 최대한 밝혀 보려 한다. 이는 필자가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언젠가 해야 하겠다고 한 부분인데, 이제야 비로소 전개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는 부분이다.
2)
간단하게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상품, 화폐, 자본이 전개되는 과정을 그려보자. 마르크스는 먼저 상품을 교환 가치와 사용 가치라는 두 척도의 결합물 즉 척도 관계로 이해한다. 교환 가치의 개념이나 사용 가치의 개념은 여기서 굳이 전개하지 않겠다.
이제 두 상품의 교환은 두 척도 관계 사이에 일어나는 이행에 비교할 수 있다. 이런 교환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용 가치 때문이다. 내가 생산한 상품이 다른 사람에게 사용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 관계는 상호적이다. 상대방의 상품 역시 내가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교환이 일어나는 비율은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량을 의미하는 교환 가치에 따른다. 두 상품은 그것의 교환 가치에 비례하여 교환된다.
이런 교환은 헤겔이 척도 관계의 계열을 설명하는 방식과 같다. 예를 들어 산소 화합물의 계열을 보자. H2O, SO2, NO2 등 계열에서 각 화합물은 O의 일정 비율을 지닌다. 즉 O를 중심으로 놓는다면, 각기 1, 2, 2의 비율을 지닌다.
이런 비율은 H2O가 SO2로 전환할 때 두 화합물이 지니는 비율과 동일하다. 즉 H2O가 SO2나 NO2로 전환하려면 어느 경우나 2단위의 H2O가 필요하다. 여기서 O를 중심으로 이루는 물질의 구성 비율이 마치 상품의 교환 가치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화합물은 고유한 질적인 성격을 지니는데, 화학적 구성이 변화함으로써 질적인 성격 자체도 변화하게 된다. 이는 곧 상품의 사용 가치의 전환을 의미하게 된다. H2O가 SO2로 전환할 때, 여기서 H2O에서 H와 O가 분리되어 O가 S와 결합하며 H는 상호 결합하면서(기체 분자가 되어 날아간다) 이런 전환이 일어나는데, 이는 마치 상품의 교환을 일으키는 사용 가치의 측면과 비교된다.
상품의 경우 사용 가치는 상품 밖에 있는 인간이 개입하지만, 척도 관계에서는 그 구성 요소 사이의 분리와 결합 관계를 통해서 일어난다. 여기서 이런 분리와 결합의 관계 자체는 각 척도 관계를 이루는 요소들의 특성에 달려 있다는 차이점이 눈에 띈다.
3)
상품의 일대일 단순한 교환은 서로의 상품이 상대에게 사용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만남은 여러 현실적 제약을 지니고 있으므로 상품의 일대일 교환은 우연하고 개별적인 관계다. 상품의 교환 관계는 연속적인 계열을 이룰 수도 있다. 즉 A가 B로 교환되고, B가 C로 교환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연속적 계열은 일대일 단순 교환의 복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헤겔은 척도 관계의 이행을 과도한 것[Masslos]의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즉 A에서 B로 이행하는 것은 직접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것을 통해서 일어난다. 이 과도한 것이라는 개념인 곧 상품의 일대일 교환에서처럼 양자 사이에 내적인 연결 없이 외적인 조건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헤겔은 척도 관계의 이행 과정 역시 연속적인 계열을 이룬다고 한다. A는 B로, 다시 B에서 C로 .. 이런 식으로 연속적인 계열이 이루어지는데 이런 이행 계열은 마디 선을 이룬다. 헤겔은 이런 마디 선과 같은 이행 계열을 척도 관계의 무한 진행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행의 각 단계는 마찬가지로 과도한 것을 통해 일어나며 이는 외적이고 우연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런 무한 진행은 앞에서 말한 마르크스의 일대일 상품 교환의 연속적 계열과 닮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더 하나의 상품이 중심이 되어 A가 B와 교환되거나 A가 C로 교환되는 것이 일어난다. 이런 중심되는 상품이 생겨나면, 이 중심되는 상품은 화폐로 발전하게 된다.
화폐는 본래는 상품이며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를 모두 갖지만, 이제 화폐가 되면 그것이 지닌 사용 가치는 의미가 없어진다. 다만 그것은 교환 가치가 되며 다른 모든 상품과 교환되면서 일반적 교환을 담당하는 매체가 된다.
이처럼 화폐가 등장하면서 교환의 우연성이 사라진다. 이제 화폐는 모든 상품과 교환 가능하며 거꾸로 이 화폐는 모든 상품을 구매 가능하므로, 이를 통해 교환은 내적이며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헤겔에서 화합물 이행 관계에서 이런 화폐에 해당하는 것이 ‘차이 없는 존재[Indifferenz]’ 즉 ‘기체[Substrat]’다. 이 기체가 있으므로 두 화합물의 교환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화폐가 교환 작용을 매개하고 여기서 빠져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헤겔에서 기체 역시 화합물의 이행을 매개한 이후 이 반응에서 빠져나오며, 외적인 관계를 맺는다.
헤겔은 이런 기체는 그 자체로 갖는 고유한 질을 가지지만, 화학적 반응에서 이 질이 문제되지 않고 다만 그것이 지닌 양적 비율만이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이 기체를 차이 없는 존재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화폐가 고유한 질이 문제 되지 않는 일반적 교환 가치인 것과 마찬가지다.
5)
마르크스에서 화폐는 다시 자본으로 발전한다. 이때 단순한 화폐만 가지고 자본이 될 수는 없다. 화폐는 교환에서 역할을 담당할 뿐, 그 자신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폐가 자본이 되면 이 자본은 자기를 증식한다. 오직 이처럼 증식할 수 있는 것만이 자본이다.
화폐가 자본이 되기 위해서는 두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하나는 불변 자본 즉 생산 수단이나 원료이며 다른 하나는 가변 자본 즉 노동력이다. 자본은 이 두 가지 요소의 결합을 통해 자본이 된다.
불변 자본은 생산물에 가치를 이전할 뿐이며 가변 자본만이 새로운 가치를 추가로 생산한다. 그러므로 자본을 자본으로 만드는 핵심 즉 자본이 증식되는 힘 자체는 가변 자본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 가변 자본은 불변 자본에 의해 생산된 생산물 속에 담지될 수 있다. 만일 불변 자본이 없다면 가변 자본은 자기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
자본이 두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헤겔에서 ‘잠재적인 차이 없는 존재[an sich Indifferenz]’가 ‘대자적인 차이 없는 존재’fuer sich Indifferenz]’로 즉 ‘기체’가 ‘본질’로 발전하는 과정과 같다.
이런 본질은 자기를 재생산한다. 그 결과 생겨난 현존은 본질과 동일하며 본질은 이런 현존의 끊임없는 재생산 속에서 자기를 유지한다. 본질이 자기를 현존으로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외적으로 자연물이 재료로 주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본질의 현존은 본질과 외적 재로의 결합물이다.
자기 증식적 자본이 자기 증식하는 가변 자본과 가치의 담지자가 되는 불변 자본으로 이루어지듯, 생명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생명의 본질도 자기를 재생산하는 데 여기서 자연적 재료가 불변 자본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생명이 자기를 재생산하는 구조는 곧 가변 자본에 해당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자본은 자기를 재생산하는 것을 넘어서 증식하지만, 생명은 다만 자기를 재생산할 뿐이라는 데 있다.
6)
기체가 본질에 이르는 과정에서 헤겔은 두 단계를 설정했다. 하나는 역 비례 관계인데, 각 항이 두 질을 모두 포함하면서 그중 자기의 질은 증가하고 그만큼 상대방에서는 감소하며 이에 대립하는 항 역시 자기의 질이 증가함에 따라 상대가 가지고 있는 질은 감소하는 경우다.
그런데 이런 역 비례를 넘어서 제곱 비례에 이르게 되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여 타자가 되면서 동시에 자기 내로 복귀하여 자기 자신에 머무르는 이중적으로 형성되는 관계가 등장한다. 이 관계는 끊임없는 자기 재생산을 통해 일어나는 동적 상태이니 헤겔은 이를 생명 개념으로 규정했다.
전자가 유기 화합물에서 두 결합기 사이에 매개물이 증감하는 경우에 해당하고 후자는 두 결합기가 서로 상반적인 관계로 결합하면서 연쇄물을 형성하는(이중 나선의 펩타이드 결합체) 경우다.
이런 단계의 구분과 유사하게 자본의 경우도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일단 화폐가 상업 자본이 되었을 때, 이는 화폐가 교환을 매개하는 것과 유사하지만, 출발점과 목적이 다르다. 화폐 교환의 경우 상품이 화폐로 다시 상품으로 교환된다. 마르크스는 이를 구매를 위한 판매로 규정한다. 반면 상업 자본의 경우는 판매를 위한 구매다. 그 출발점에 화폐가 있으며 매개물이 상품이고 그 결과는 다시 화폐다.
이런 판매를 위한 구매는 이런 매매를 통해 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것인데, 이는 헤겔에서는 역 비례 관계와 같다. 역 비례 관계는 유기 화학물로 설명하자면, 매개물 또는 촉매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는 경우다. 이때 촉매는 화합물을 매개한 이후 빠져나가지 않고 화합물 내부에 머무른다.
이는 마치 상업 자본에서 양 측면에 화폐가 있는데 가운데 상품이 변화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상품 교환에서 매개체인 화폐는 빠져나가지만, 상업 자본에서는 화폐가 남고 상품이 빠져나간다.
두 번째 단계인 생산 자본의 경우는 노동력을 통해 만들어진 생산물의 가치가 증가하면서 자본이 증식하는 경우다. 자본은 자기를 재생산한다. 이 재생산은 자기를 분할하여 한편에는 불변 자본과 다른 한편에는 가변 자본으로 분할된다. 불변 자본은 기계나 원료로 이루어지며 이는 생산물 속에 자기를 연속한다.
이런 생산 자본은 헤겔의 개념에서는 본질에 해당한다. 여기서 본질은 자연 재료를 통해 자기를 재생산하니 이런 자기 재생산이 곧 노동을 통한 자본의 증식과 닮았다.
7)
이상에서 헤겔의 척도 관계-기체-본질의 이행 과정을 마르크스의 상품-화폐-자본의 이행과정과 비교해서 설명했다. 마르크스가 헤겔의 논리학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으나 두 과정의 유사성을 통해서 볼 때 그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양자의 유사성은 설혹 직접 연관성은 없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이해하는 준거점으로 삼을 여지를 마련해 준다. 마르크스를 헤겔을 통해 이해하고 헤겔을 마르크스를 통해 이해하는 것은 각자의 이해를 더욱 풍요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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