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56-극시의 구성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Spread the love

헤겔미학산책56-극시의 구성

 

1) 극시의 구성과 전개과정

극시에서 행위와 사건은 극적 행위와 관련되는 것에 한정되므로 극시는 압축적으로 전개된다. 서사시는 우연적 연관을 따라서 다양하게 행위와 사건이 전개되니,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진행은 느리다. 서정시의 경우는 비약과 압축을 통해 전개되지만, 그것이 다루는 내용은 표면적으로 서로 무관한 것이니 자칫하면 산만하게 된다. 그 때문에 서정시는 특정한 감정에 집중하는데 헤겔은 이를 ‘서정적 집중’이라 한다.

하지만 극시의 전개는 극적 행위와 관련되고 인물의 내면에 있는 객관적 파토스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제거되니, 내용적으로 서사시보다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전체 과정에서 갈등과 대립은 일어날 수밖에 없고 해결 역시 제거할 수 없으니, 서사시보다는 짧지만 서정시보다는 길어진다. 그럼에도 전개되는 사건은 필연적인 것이니 마치 어떤 강박에 의해 전개되면서 전체는 한 순간 전개된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1].

극시는 행위가 필연적으로 일으키는 대립을 다루므로, 여기서 극시는 일정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행위가 일어나 대립으로 치닫는 국면과 마침내 그 대립이 해소되는 국면으로 분화된다. 대체로 이 과정은 3개의 단계로 구분되는데, 그게 극시의 막의 구분에 해당한다. [2]

이런 전개과정에 관해서 헤겔은 대체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을 따른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이 강조하는 것은 시작과 결과가 필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3] 시작이 필연적이라는 것은 즉 이미 주어진 상황 속에서 갈등의 씨앗이 내재하고 있으니, 이 상황은 “미발이더라도 이후의 과정에서 갈등이 전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장차 갈등을 낳을 행위가 출연한다는 것이다. 이 행위는 대립된 행위를 낳고 양자는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는데, 이 과정은 모두 행위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최종 끝이 역시 필연적이어야 하는데, 여기서 필연적이라는 것은 역시 이미 극중에 전개된 대립이 남김없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갈등과 대립이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라면 거꾸로 대립의 해소 역시 이미 상황 속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니, 해결되지 않는 갈등은 아예 일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4].

 

2) 통일의 원리

극시의 고유한 특징 때문에 작품을 구성하는 몇 가지 원칙이 전개된다. 헤겔은 그 가운데 첫 번째로 극의 통일성을 들고 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제시한 원칙인데 흔히 시간과 장소, 행위의 통일성이라 한다.

헤겔은 그 가운데 시간과 장소의 경우 통일성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5]. 반면 극의 경우 행위의 통일성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의 통일성은 극의 압축적이고 필연적인 전개를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헤겔은 행동의 통일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한다. 행동의 통일은 우선 행위자의 목적이 행동을 일관적으로 관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헤겔은 행위가 구체적 현실에 관여하면서 그 목적이 지리멸렬하게 분산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충돌하는 서로 대립하는 목적은 전체적으로 총체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대립은 필연적이지 않다. 다른 중간의 가지를 통해 행위가 서로 빗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포클레스 안티고네에서 두 대립된 원리인 가족의 원리와 국가의 원리는 그리스 민족국가를 이루고 있는 민족과 국가라는 두 원리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서 그 행위를 이끄는 파토스는 개인적인 자연적인 성질이면서 동시에 객관적 사회적 원리이어야 한다. 양자는 상호 연관성을 지녀야 하는데, 헤겔은 이럴 경우 생동적인 성격이 출현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안티고네에서 여성이 국가의 원리를 대변하고 가족의 원리는 남성이 대변한다면, 자연적 성질인 남성과 가족의 원리, 여성과 국가의 원리 속에 어떤 연관성을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

마지막은 극시가 더 발전하면서 기본적 갈등과 부차적 갈등이 등장하게 될 때, 양자는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적 갈등이 해결되면 부차적 갈등도 해결되어야 한다. 헤겔은 로미와와 줄리엣에서, 가문의 불화로부터 연인의 시련이 생겨나는데, 연인의 시련만 해결하고 가문의 불화를 그대로 둔다면, 전체적으로 완결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결말에서 가문의 불화가 해결되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3) 문학적 요소와 운율적 요소

대체로 극은 대화를 통해 전개된다. 그러나 그 외에도 독백과 합창이 있으니 헤겔은 이 세 가지가 극의 전개에서 각기 고유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본다.

그 가운데 우선 합창은 민중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한다. 즉 그 시대 “일반적인 신념과 감정”이 합창을 통해 표현되는데, 때로는 사회적 총체적인 “실체성에 호소하여” 행위를 평가하며 때로는 인물의 행위에 공감하는 “서정적 격정에 호소”한다. 헤겔은 근대 극시에 이르러 이런 합창은 사라지는데, 고대 극시에서 합창이 했던 역할이 근대 극시에서는 “행위하는 인물 자신의 입으로 옮겨지기”[6]때문이라고 한다.

이어서 독백은 “특수한 상황 속에 있는 개인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독백은 “심정이 기존의 사건으로부터 벗어나서 단순히 자기 속으로 집약되는 순간이거나 천천히 다져지거나 갑작스럽게 내린 결단을 최종적으로 결심하는 순간”[7]에 등장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극적인 행위가 일어나기 직전의 순간이 될 것이다.

극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대화이다. 대화는 많은 것을 포함한다. 거기에 우선 행위자의 성격과 목적이 한편으로 “그 특수성에 따라서” 주관적 파토스가 다른 한편으로 “파토스의 실체성에 따라서” 객관적 파토스가 표현된다. 관객은 행위자의 언어적 표출을 통해서 행위가 일어난 원인이나 그런 행위에 반응하는 인물의 반응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행위자는 이런 대화를 통해서 자신을 정당화하며 상대자를 비판하니 이를 통해 관객은 장차 전개될 대립과 그리고 해소의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

극시는 시문학적 작품이고 기호로 전달되는 한에서 운율과 같은 요소를 지니게 된다. 헤겔은 셰익스피어만 해도 극시는 이런 운율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레싱은 프랑스 극시의 알렉산더격을 비판하면서 산문적 어법을 도입하려 했다고 한다. 이후 실러와 괴테가 레싱을 따르기도 했지만, 결국 레싱과 실러, 괴테도 다시 운율적 요소를 끌어들였다고 한다.[8]

헤겔은 그런 점에서 극시도 일정한 운율을 지니기를 원했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극시가 산문적 어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왜 레싱이 시작한 산문적 어법이 실패로 되었는지, 의문이다. 시어의 운율은 그 의미가 되는 관념과 충돌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관념은 운율과 “아주 먼, 혹은 전해내적이지 않은 관계를 가질 뿐”이고, 오페라의 레치타티보가 그것을 잘 보여주는데, 극시에서 대화를 운율에 맞추어 이야기한다면 이런 작위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헤겔이 운율을 옹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나 헤겔은 이런 비판을 반박하면서 예술가의 재능은 “그에게 가장 본래적이고 친숙한, 그를 저해하거나 짓누르지 않으면서 반대로 그를 상승시키고 지탱하는 요소 속에서 움직인다”[9]고 한다. 즉 기호적 운율이 오히려 예술가의 상상력을 강화시킨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헤겔을 따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극시가 전개되는 공간은 일상적 공간이 아닌 환상적 공간이니, 일상어의 산문적 문법은 극시의 환상을 깨트리지 않을까? 무대의 연기자가 일상적 행위가 아닌 무대적 행위를 하듯, 극시에서도 일상적 언어가 아니라 운율적 행위가 더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4) 작가와 관객

극시의 갈등과 전개, 해소는 사회적 총체성의 분열에 기초한다. 분열을 이루는 대린된 원리는 서로 대립된 인물의 행위 속에서 구현되면서 충돌을 이루고 또 해결된다. 작가는 이런 사회적 총체성에 관하여, 그리고 각각의 개성에 따라서 어떤 원리가 지배하고, 상황에 따라서 어떻게 행위가 나오게 되는지를 포괄적으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작가는 겉으로 보기에는 혼란스러운 착종이 일어나는 것에 불과하게 보이더라도 그 내부를 관철하고 있는 사회적 총체성을 파악해야 한다.

 

“어둠과 혼란이 지배하는 곳에서도 시인은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실제로 이행되고 있음이 계시되어야 한다.“[10]

 

극시에서 작가는 대중과 관계에서 다른 예술이나 시문학과 차별성을 지닌다. 조형 예술의 경우 작품은 공간 속에 자립적으로 존재하며, 작가는 미지의 무차별한 관객을 고려할 뿐이다. 조형예술의 질료는 대체로 직관적인 것에 의존하므로, 관객은 민족과 시대를 뛰어넘어 존재할 수 있다. 작가는 관객의 반응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으니, 작품의 수용은 수동적으로 된다.

반면 시문학에 들어오면 관객은 상당히 제한된다. 왜냐하면 언어적 이해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객은 대체로 민족적으로 한정되는데, 그럼에도 기호의 전달이 무차별하게 일어날 수 있으므로 무차별적인 측면을 가진다. 다만 여기서 독자는 같은 언어를 통해 반응을 표현할 수 있으므로,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상호적으로 되면서 이른바 시문학의 공동체가 생겨난다.

극시에 이르게 되면 작품은 항상 무대에서 재연되는 것을 통해서만 전달되니, 매우 제한된 관객에게만 전달된다. 관객은 객석에서 즉각적으로 작품에 대해 반응할 수 있으므로, 작가와 관객 사이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해 진다. 관객은 여기서 찬성과 비난의 원리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4)연기의 측면

극시와 연관하여 헤겔은 무대의 문제, 낭독의 문제, 배우의 연기 문제, 극장의 문제까지 상세하게 파악해 나간다. 이런 문제는 너무 전문적인 문제이니, 우리로서는 굳이 관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헤겔의 설명은 직접 읽어 볼 것을 권한다.


[1] 이 점과 연관하여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로써 드라마는 서정시와 비교할 때 다시 훨씬 넓은 범위로 펼쳐지고 다듬어진다. 이 관계를 일반적으로 규정하자면, 극시는 대략 고대 서사시의 외연성과 서정시의 집중성의 중간에 있다고 할 것이다.”(미학강의 3권, 496쪽)

[2] 이런 단계가 조금 더 복잡해지면 극의 진행을 돕거나 극의 진행을 방해하는 부차적인 갈등이 설정되면서 3막 극은 5막 극으로 발전할 것이다. 헤겔은 극이 전개하는 내용은 다양한 범위를 지닐 수 있다고 본다. 고전적 비극에서처럼 단순하고 본질적인 충돌로 집약될 수 있으며 근대 비극에 이를 수록 극의 내용이 포괄하는 범위는 확대된다. 여기서 주된 충돌 외에도 부차적인 충돌로, 극의 범위는 더욱 풍부해지는데, 이것은 근대적 사회가 고대 사회와 달리 더욱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본다.

[3]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아래와 같이 재구성한다. “시작은 자체가 필연적이며, 다른 것을 통해 있지 않지만, 다른 것은 그로부터 있고 또 출현한다. 끝은 이와 반대되는 것으로 필연적이든, 혹은 통례적이든 간에 다른 것을 통해 성립하되, 그 자체를 뒤따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중간은 다른 것을 통해 출현하는 것이자 그로부터 다른 것이 출현하는 것이다.”(미학강의 3권 497쪽)

[4] 고대 연극은 아이스킬로스의 삼부작이나 소포클레스의 삼부작처럼 주인공이 계속 이어져서 전개되니,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헤겔은 인물이 동일하더라도 갈등의 종류가 각 작품마다 다르며 즉 “자체적으로 독립된 하나의 전체이며”, 각 작품에서 제시된 갈등은 그 작품에서 해소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학강의 3권 495쪽, 498쪽 참조.

[5] 헤겔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을 하루로 제한했지만 장소의 일치는 언급하지 않았다. 프랑스인이 장소의 일치를 강조하면서 소위 3 통일의 원칙이 확립되었다. 헤겔은 행위가 필연적으로 전개되려면 집중성이 필요하니 장소의 통일도 필요하다 말한다.

[6] 미학강의 3권, 501쪽

[7] 미학강의 3권, 501쪽

[8] 미학강의 3권, 292쪽 참조. 헤겔은 극시에 적합한 운율로서 단장격을 소개한다. 그 이유는 “단장격의 전진적 리듬은 행위의 진행 과정을 위한 최적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면서 당시 스페인에서 유행하고 있는 장단격은 “행위를 촉진하기보다는 차라리 멈추게 하는 예리한 지적 분석을 위해 최적의 것으로 증명된다”고 말한다. 미학강의 3권, 503쪽 참조.

[9] 미학강의 3권, 293쪽

[10] 미학강의 3권, 489쪽


⇓ 다음 연재글 바로가기 ⇓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