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윤석열의 1+1이 왜 마이너스…믿었던 국민들 분노폭발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 아래 글은 2022년 3월 5일 <내외 신문>(http://www.naewaynews.com/) [이종철 칼럼]에 게재된 원본 기사에 일부 사진을 첨부하여 <ⓔ 시대와 철학>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코너에 게재한 것임을 밝힙니다.

 

안철수+윤석열의 1+1이 왜 마이너스…믿었던 국민들 분노폭발

 

이종철(연세대)

 

• 믿었던 많은 국민들은 ‘내 표 돌리도’라고 분노하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정치적 야합이 벌어졌다고 비난

• 정치적 야합 행위는 우리가 처음 제기한 원 + 원이 빚을 수 있는 최악의 수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편의점이나 마트에 장을 보러 가다 보면 특판 상품이라고 해서 원 플러스 원 상품이 있다. 기왕의 상품을 하나 사면 하나 더 끼워 주는 것이다. 물건 한 개 값으로 2개를 구할 수 있으니까 소비자의 기쁨이 배가 되고, 판매자 입장에서도 재고를 빨리 소진할 수 있으니까 좋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 플러스 원 제도는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유발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이런 형태의 프로모션 제도는 마케팅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원 플러스 원이 똑같이 그런 형태로 나타나는가? 가령 1+1은 얼마일까라고 묻는다면 어린 애들도 금방 2라고 답을 한다. 그런데 반드시 그럴까? 1+1은 2라는 산술적 결과만 존재할까?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물방울 2개를 합치면 몇 개가 될까? 이 경우는 당연히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1=2라는 산술적 결과가 옳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또 다른 면에서 1+1은 2도 아니고 1도 아닌 경우가 있다. 앞서 든 원 플러스 원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산술적 결론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서 이런 결과를 볼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이런 대표적인 경우는 인간과 인간이 만날 때 나타날 수 있는 효과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하다. 인간은 상형문자인 인(人)에서 보듯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기도 하고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사회적 동물이고,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타자의 인정이 중요하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인간을 만난다. 가장 먼저 부모를 만나고, 그다음에는 형제자매를 만나고, 좀 더 크면 동네 친구들을 만나고, 그러다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입학하면 그곳에서도 친구들을 만난다.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이처럼 매 순간 매 단계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놀이하고 학습하고 함께 일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성장에서 누구를 만나는가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나는 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런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을 만나는 것은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있던 길도 막혀 버린다는 것이다. 새로운 길이 열리면 그 길로 인해 또 다른 새로운 길이 열리면서 그 이후의 효과나 가능성은 처음 생각하기 힘든 효과를 낳기도 한다. 그렇게 본다면 1+1은 결코 산술적 의미에서 2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가늠하기 힘든 잠재적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만일 이런 생각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면 어떨까? 대선을 며칠 앞둔 요즘 끊임없이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들 앞에서 완주를 하겠다고 하늘 같이 맹세를 했다가도 판세의 유불리나 정치적 효과에 대한 전망에 따라 하루아침에 식언하고 안면을 바꾸고 단일화를 하는 경우가 그렇다. 물론 그들 말마따나 단일화가 1+1=1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결코 축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화를 통해 훨씬 큰 시너지 효과를 낳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시너지 효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1+1=0 혹은 마이너스 게임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의도는 늘 결과와 불일치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최근에 이루어진 안철수와 윤석열 간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단일화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과연 그들이 원하는 것처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정권교체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죽도 밥도 안돼서 서로를 죽이는 게임이 될 것인가?

출처  http://www.naewa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2242

나는 안철수와 윤석열 간의 단일화를 보면서 그들의 인간적 결정을 가지고 시비를 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얼마나 정권교체에 대한 욕구가 강했으면 그간 자신들이 해왔던 수많은 말들을 식언하고, 국민들에게 했던 수많은 약속들을 하루아침에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칠 수 있었겠는가? 정치인들에게 국민에 대한 약속은 절대 깨서는 안 될 금과옥조나 다름없다. 신뢰를 먹고사는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그는 정치인으로서 더는 성장할 수 없다. 오래전 피타고라스가 이야기했듯, 정치인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명예를 추구하는 집단인데 그런 신뢰를 내팽개친 상태에서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윤석열은 말할 것도 없고 안철수는 정치인으로 도저히 하기 힘든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행동을 보면서 과연 철수답다는 생각이 든다. 안철수의 그런 행동을 통해 그의 본질을 단박에 알게 되었다. 왜 사람들이 그를 보고 끊임없이 초딩이라고 했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초딩 만큼이나 자기 행동에 대해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책임은 자유로운 성인만이 질 수 있는 것인데 초딩이 무슨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러니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단일화를 선언한 것이 아닐까? 요즘 영악한 초딩들은 범법 행위를 하고서도 촉법소년을 핑게로 빠져 나가기도 한다. 아마도 안철수 역시 그런 영악한 초딩처럼 행동하려고 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렇길래 성인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식언을 하고 대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그를 믿고 그에게 표를 던졌던 해외 동포들의 신뢰를 나몰라라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문제는 이런 초딩 정치인이 윤석열과 같은 모지리 정치인과 단일화를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가 더 궁금해지는 데 있다. 추측컨대 아마도 여기서는 변증법적 종합이 일어나기 보다는 기계적 결합이 일어나지 않을까? ‘모자른 초딩’ 혹은 ‘초딩스런 모지리’. 그리하여 따로따로 움직일 때보다 서로 합칠 때 마이너스 효과를 빚어서 서로의 표를 깍아 먹는 것이 아닐까?

당장 그들의 전격적인 단일화를 보고서 그들을 믿었던 많은 국민들은 ‘내 표 돌리도’라고 분노하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정치적 야합이 벌어졌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것은 원칙도 없고, 명분도 없고, 마침내 실리도 잃어버리는 그런 단일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런 정치적 야합 행위는 우리가 처음 제기한 원 + 원이 빚을 수 있는 최악의 수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모자른 초딩 혹은 초딩스런 모지리가 어느 날 갑자기 합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저 헛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애들아! 세상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란다.

필자: 이종철 철학박사

출처 : 내외신문(http://www.naewa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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