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원의 어부사(漁父辭)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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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원의 어부사(漁父辭)

 

이병창(한철연 회원)

 

지극히 혼탁한 세상이다. 서로 진흙 속에 뒤엉켜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좌절감에 사로잡힌다. 코로나로 답답한데, 세상은 더욱 우울하다. 이럴 때는 차가운 물 한잔, 신선한 바람 한 줄기 기다려진다.

자다가 새벽에 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문득 떠오른다. 성함은 생각나지 않고 별명만 생각난다. 황금박쥐 선생님이다. 그 시절 황금박쥐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는데 선생님의 모습이 황금 박쥐의 모습과 닮았다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한문 선생님이셨는데(당시에는 한문이 정규 수업 과목이었다) 한문을 무조건 외우라면서 외우지 못하면 주어 팼다. 깡 마른 선생님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한 반 오십 명 되는 학생을 모조리 주어 팼다.

그 덕분에 지금도 한문을 싫어하여 내가 남들보다 한문 실력이 떨어진 이유가 됐다. 그래도 약간 한문을 아는 것은 선생님의 덕분이니, 주어 패는 교육도 완전히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닌가 보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것 가운데 두 개의 한문 시가 지금 기억난다. 소동파의 ‘적벽부’와 굴원의 ‘어부사’다. 전자는 한문으로 읽어도 리듬이 좋아서 지금도 기억한다. 후자는 그 가운데 특히 “물이 맑으면 갓 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라는 구절이 입에 맴돈다.

굴원이 이 시를 지은 다음 자살했다고 들었는데,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황금 박쥐 선생님은 어린 우리에게 이 시를 가르쳐 주면서 무척이나 비감했던 것 같다. 그 시절은 박정희가 3선에 나서면서 독재를 강화하고 국민교육 헌장을 강요하던 시절이었다.

늘 세상이 혼탁할 때는 이 시가 기억나는데, 나는 지금도 그 뜻을 모르겠다. 사람이 현실에 따라서 능소능대하라는 뜻 같은데 굴원이 이 시를 쓰고 왜 자살했는지가 이해되지 않는다. 어부와 다른 굴원의 삶은 시 가운데 암시되어 있다.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낼 지언정”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굴원은 산다는 것은 현실을 따라 능소능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굴원은 지식인으로서 세상 사람의 삶을 끝내 거부한 것이었을까? 일반적 해석은 이런 지식인으로서의 결기가 이 시에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차라리 일신이라도 일으켜 비수를 들고 적의 팔이라도 찔러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시를 써놓고 그저 자살한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굴원은 능소능대의 삶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이상에 대한 갈망은 그에게 하나의 병이 아니었을까? 이상에 대한 집착이란 허망한 병이지만 이상의 병을 앓으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헤겔의 말처럼 ‘모순과 더불어 살아가는 거’다. 굴원은 그렇게 버티다가 그 병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마침내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굴원의 어부처럼 삶이란 현실에 따라 능소능대하는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몸은 늘 이를 따르지 못한다. 물러날 때 앞으로 나서고 겸손해야 할 때 자만에 빠진다. 기회를 놓치고서 기뻐하고 이상을 말로 떠들면서도 지칠 줄을 모른다.

그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런 고통이야 여기서 회상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렇게 된 것도 생각해 보면 이상이란 것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비수를 들어 적을 찌르지도 못하고, 굴원처럼 자살을 하지도 못한다.

이상의 병을 벗어나는 다른 길은 없을까? 황금 박쥐 선생님과 같은 삶도 있지 않을까? 황금 박쥐 선생님은고등학생에 불과했던 우리 가운데 누군가 이 시의 뜻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지 않을까? 그런 조그마한 희망이 그가 우리를 그토록 주어 패면서 이 시를 가르쳤던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나로서는 황금 박쥐 선생님처럼 나를 기억할 제자를 만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의 경우에는 어떤 메시아적 기대감이 있는 것 같다. 세상을 구할 진인이 어디서 나올 것 같다. 혼탁한 세상이면 더욱 그런 진인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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