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는 태안, 처절한 몸부림 3-③ [4人4色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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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 (하동해설사회 생태해설가)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 6분,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풍부한 어족자원을 터전으로 삶의 활력이 넘치던 태안반도는 순식간에 암흑 같은 절망으로 뒤덮였다. 기상악화가 예보된 상태에서 삼성중공업의 해상 크레인과 이를 예인하는 3척의 선박으로 이루어진 예인선단이 무리하게 운항하다 서해에 정박중이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한 것이다. 이 사고로 1만 5천톤의 기름이 태안 앞바다에 폭포처럼 쏟아져 밀려들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으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1995년 7월 23일, 여수 해역에서 좌초되어 5.035톤의 기름을 바다에 쏟아낸 시프린스호 사건의 악몽을 겪었다. 여수 앞바다의 일부 해저에서는 사막화가 우려된다는 보고가 나온 바 있다. 그러나 허베이 스피리트호에서 쏟아져 나온 기름은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선박 유류사고의 유출량을 합친 것 보다 많은 양이었다. 이처럼 크나큰 재앙으로 뒤덮였던 태안반도는 3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되살아나고 있을까.

사고 당시 구성된 재난관리 전문가들 열 한명이 3년 동안 조사하고 연구하여 자료로 묶은 보고서 <태안은 살아있다>가 ‘희망제작소’의 기획으로 나왔다. 생태학, 경제학, 사회학 등의 전공분야로 구성된 이들은, 사고와 기름유출의 배경, 환경오염과 변화, 주민공동체의 붕괴와 고통, 배상을 둘러싼 문제들을 조사하고 분석하였다. 이 보고서들에는 한결같이 바다의 기름유출사고가 자연과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 해결과 복원은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를 구체적인 지표로 보여주고 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는 크고 작은 선박의 기름 유출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1997년에서 2006년까지 10년간 선박의 기름 유출 사고를 보면 총 3,915건이 발생했고 1만 235.5킬로리터의 기름이 유출되어 바다를 오염시켰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가 난 서해 바다에도 1997에서 2006년까지 10년간 총 230건의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고 293.6킬로리터의 기름이 유출되었다. 한 해 평균 390건의 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며, 매년 1,203킬로리터의 기름이 바다로 유출되고 있는 실정이다.”(박진섭)라는 것이다.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다. 바다의 생태를 온전히 지키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근원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이기심과 욕망은 생명의 근원을 죽음의 터로 바꿔놓고 있다. 특히 가장 크게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이익이 걸려 있는 원유의 수송을 둘러싼 나라들의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인간에게 하루도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기름은, 필요한 물건의 용도를 넘어 매순간 재앙의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 끊임없는 재앙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일까. 우리나라 선박사고의 경우 운항과실이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러나 운항과실은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한 무리한 운항에서 비롯될 것이다. 태안을 악몽으로 뒤덮은 기름유출 사고도 삼성중공업 예인선단의 무리한 운항 때문에 빚어진 것이었다. 사고를 각오하고서라도 자본의 이해관계는 이익의 목적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다음에는 그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대기업의 속성이다.

태안 앞바다를 기름으로 뒤덮은 뒤에도 자본의 그런 속성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삼성중공업이 2008년 12월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손해배상 책임을 50억원으로 제한해달라는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유조선 쪽 잘못으로 피해가 커졌기 때문에 법정 한도 안에서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피해규모가 6,000억 원이 넘는데 가해자는 그 100분의 1도 안 되는 돈만 내놓겠다고 주장한 것이다.”(이재은) 결국 ‘2010년 2월 말까지 보상 청구된 주민들의 피해건수 7만2402건 중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의 사정이 완료돼 보상금이 지급된 것은 0.9퍼센트인 653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상비 책정이이나 배분을 둘러싸고 주민과 지역 사이에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책임져야 할 주체들은 뒤로 빠지고 무자비한 재앙의 고통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으로 돌려질 뿐이다.

<태안은 살아있다>는 인간의 삶에서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이 결코 경제적인 이익이나 가치로 규정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생명의 근원은 자연에 있는 만큼 자연을 이익의 대상으로 정복하고 이용하려 들 때에 결과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닥치고 있는 크고 작은 불행과 재앙의 원인이 결국 인간에게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3년이 지난 지금, 태안 주민들은 지금까지 갈등을 해소하고 삶의 터전을 회복하여 희망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필사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많은 것들이 여전히 주민들의 몫으로 남겨지는데 있다. 한 예로 사고 이후 15명의 암환자가 발생했지만 구체적인 역학조사나 대책이 별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 언론도 일본의 자원봉사 기적을 보도하며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을 유도했지만 피해의 책임규명이나 본질을 충분히 파고들지 않았다. 결국 주민들은 삶의 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생활에 대한 만족과 의미, 가치를 잃어버리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태안은 살아있다>에서도 태안 주민들의 피해를 제대로 보상하고 공동체와 삶을 온전히 복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답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피해자의 입장과 주민의 시각에서 구체적으로 작성된 보고서인 만큼, 충분히 기억을 되살리며 고통에 참여시키고 책임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이웃의 문제이며 내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에 매달려 있는 인간들은 망각에 익숙해져 있다. 개인은 물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는 만으로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지혜가 될 것이다.

<태안은 살아있다>는 구체적인 기억과 현재진형인 고통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되찾고자 한다. 그 희망을 피해 당사자들인 태안과 서해 주민들이 힘겹게 일궈가고 있다. 그 때 현장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우리는 어느새 그 참혹한 때를 잊어버린 것이 아닐까. <태안을 살아있다>에 실린 보고서를 읽는 동안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내 일상의 안일을 위해 빚진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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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4인4색의 책읽기’의 세번째 책은, 희망제작소에서 기획안 노진철 외 지음, <태안은 살아있다>(도서출판 동녘 펴냄)으로 김종옥(작가), 김한규(생태해설가), 정한(대학생), 이정미(동녘편집자)의 글을 실었습니다. 아울러 글 사이에 게재된 사진들은 출판사의 협조로 게재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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