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씻긴 것, 태안인가 삼성인가 3-④ [4人4色 책읽기]

Spread the love

이정미 (동녘 편집자)

벌써 다 잊었나 ― 아직 끝나지 않은 일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오전에 서둘러 안면도로 대하를 먹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차가 막혀 저녁에 저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킬 수 없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랬구나. 그래, 가을엔 대하지.”
아무 뜻 없이 그런 말이 나왔고, 친구하고는 약속을 미루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그동안 회사에서 준비해온 지난 2007년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에 관한 기록들을 사고 3주기가 되는 12월 7일 안으로 책으로 완성해야 하는 일정이 짜여졌습니다. 그때 문득 며칠 전에 통화를 한 그 친구가 떠오르더군요.

지금 다시 봐도 불편한 ‘그때’의 장면들을 펼쳐놓고 책상 앞에 앉아 있자니 ‘내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 건가’ 싶었습니다. 사건 일지와 사진 자료, 보도된 기사들을 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탄식뿐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사고의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시점에서 이 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더군요. 그저 눈으로 하는 일만 하고 있었습니다. 사고 발생 시점으로 돌아가 사고가 발생한 17시간이 집약된 일지부터 읽는 일이었습니다.

3년 전 2007년 12월 7일 새벽, 태안 청정해역으로 1만 500톤의 검은 기름이 쏟아졌습니다.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기름 유출 사고 유출량을 합한 것보다 많은 양의 기름이었다고 합니다. 태안의 바다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밀려드는 파도에도 양식장에도 갯벌과 모래사장에도 어느 곳을 가도 기름 범벅이었고, 기름 냄새로 호흡이 곤란할 지경인 그 모습들이 생생히 기록돼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양식업자, 어선어업인, 식당업자, 숙박업자, 맨손어업인들은 기름 유출 때문에 당장의 생활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득 대학 때 바닷가 고향에서 부모님이 보내주시던 용돈으로 생활을 하던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그 친구와 그 가족들은 지금 어쩌고 있을까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나 살아 있는 사람이나 그 마음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당시 집계로 6,000억 원 이상의 피해규모에도 불구하고 사고 가해자인 삼성중공업은 법원에 손해보상을 50억 원으로 제한해 달라고 신청한 상태였고, 공범자인 현대오일뱅크에는 무죄가 선고된 상태였습니다. 3년 뒤, 2010년 2월 26일에는 전피해민연합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성정대 씨가 자살을 했습니다. 성정대 씨는 양식업 실패에 대한 절망감에다 2년 동안 지급된 보상이 청구된 주민들의 피해 건수 7만 2,402건 중 0.9퍼센트인 653건에 불과해 피해의 1퍼센트도 보상을 받지 못한 지지부진한 성과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택한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2년 전 피해 어민 3명이 자살했던 고통스런 시절에서 무엇 하나 뚜렷하게 나아진 것이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사고 내용과 책이 될 원고들을 정리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만 남은 이 사건을 복기하는 일, 여기서부터 시작하자’고.

 

 
책이 나왔다 ― 우리가 씻긴 것은 삼성이었나?

사고 시점부터였으니 상당히 긴 준비기간이 있었습니다. 당시 구성된 재난관리 전문가 조직이 사고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연구하기 시작한 데서 출발해 2010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구자들이 애정을 가지고 태안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며 연구한 자료를 모은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자료들이 정리되었습니다. 책은 사회학자, 생태학자, 경제학자의 눈으로 분석하는 일, 행정학자들이 모여 초기 재난관리의 실패를 반성
하고, 소방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일, 그리고 사고 이후 주민들의 생활과 갈등과 건강 등을 충분히 기록했습니다. 사회적 재난이 번지면서 마을공동체를 위협하는 갈등 상황을 분석하는 일을 마치고 해결 방향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벌써 다 잊었나 봅니다. 제가 태안을 방문했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도 그때의 그 사건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너무 늦은 외침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도 못했고, 막상 책의 실물을 본 사람들의 소감도 ‘사고가 벌써 3년이나 지났어?’ 정도였습니다. ‘30만 자원봉사자들의 노력과 자연의 놀라운 생명력으로 씻긴 것이 과연 무엇이었나.

그것은 태안이 아닌 삼성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괘씸한 건 삼성의 태도였습니다. 마을 몇 곳을 찾아 마치 큰 혜택이나 주는 듯 자매결연을 하고 자신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시도를 했을 뿐 실질적인 보상은 나몰라라하고 있으니 말이죠. 푸른 바다는 다시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모든 주민들의 삶이 기름 재앙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지는 못했습니다. 진정한 생태계의 복원은 인간 공동체가 함께 복원되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태안의 파괴된 삶이 복원될 때 비로소 생태계의 치유와 다른 문제들이 함께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안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삼성은 법원 판결 뒤로 숨어 우리의 망각을 비웃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들의 소리 죽인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사고 이후 지금 태안은 예전의 아름다움과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지만, 주민생활의 완전한 복구는 미진하기만 합니다. 생활 터전을 잃어버리고 이웃을 잃은 상처와 서로간의 불신으로 공동체가 무너지는 등 상흔이 크게 남아 있습니다. 이 책이 살아남아 계속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고 반성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재앙을 극복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더 큰 관심과 응원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태안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덧붙이는 말 ― 만든 책, 만들어지는 책

뒷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만들면서 ‘책의 운명’과 ‘책의 외연’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아 이곳저곳에 작업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요청했었습니다. 원고에 참여한 재난관리 전문가들과 환경운동연합의 도움으로 많은 자료가 있었지만 좀 더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헌데 도움의 손길을 뻗치자마자 신기하게 손을 맞잡아 주는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당시 태안에 내려가 자원봉사를 하며 사진과 영상을 기록으로 남긴 대학생들, 지역신문을 만들며 태안살이를 하고 계신 분 등 많은 분들이 기꺼이 자료를 보내주셨습니다.

특히 지역신문 《태안시대》에서 보내준 현재 되살아난 태안 푸른 바다의 모습은 큰 위안을 주었습니다. 암담한 사고의 기록부터 사람들의 힘으로, 자연의 복원력으로 회복해가는 지금의 모습까지 담을 수 있어 책은 좀 더 풍부해질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책의 판매량을 두고 책의 운명을 운운하는데, 책의 운명이란 게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이번 작업은 제게 책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한 고마운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

*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4인4색의 책읽기’의 세번째 책은, 희망제작소에서 기획안 노진철 외 지음, <태안은 살아있다>(도서출판 동녘 펴냄)으로 김종옥(작가), 김한규(생태해설가), 정한(대학생), 이정미(동녘편집자)의 글을 실었습니다. 아울러 글 사이에 게재된 사진들은 출판사의 협조로 게재한 것임을 밝힙니다.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