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서울 시민청 강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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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2 :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강지은 (건국대 강사)

소비없는 세상은 상상불가능하다. 소비를 주도하는 유행의 본질에 대한 분석과 쇼핑을 통해 얻는 자유와 구속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해본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의 <편지13>, <편지16>, <편지17>, 참조

<참고>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편지13> 신용카드로 얻은 자유
<편지16> 유행에 관하여
<편지17> 쇼핑하라!

<차례>
1. 옷장에 옷은 가득한데 왜 항상 입을 옷이 없을까요?
2. 쇼핑하세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3.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아니고 ‘더 열심히 일해라’

1. 옷장에 옷은 가득한데 왜 항상 입을 옷이 없을까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입니다. 입을 옷이 없습니다. 진짜 옷이 옷장이나 서랍에 없는 게 아닌데 입을 옷이 없습니다. 도대체 이건 뭔가요.
아마도 그 이유는 유행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딱히 유행에 민감하지 않아도 저런 생각을 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통이 좁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데 나 혼자 나팔바지를 입고 지하철을 탔다고 생각해보세요.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죠. 아마 그 날 하루는 굉장히 마음이 불편할 겁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지만 돌아오는 지점이 정확하게 같지는 않습니다. 살짝 변형이 되어 돌아오죠. 예전에 유행했던 나팔바지가 다시 유행한다고 예전 바지를 꺼내 입고는 못돌아다닙니다. 색상이든 바지폭이든 무언가 변형되어 돌아왔기 때문이죠.
저는 진짜 유행이란 걸 쫒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철마다 돈써야죠, 신경써야죠. 가뜩이나 팍팍한 삶에 유행이란 건 도대체 무엇이길래 우리를 괴롭게 할까요.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행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하여 재미있게도 물리학에서 꿈꾸어왔지만 포기했던 기계장치인 ‘페르페투움 모빌레 Perpetuum mobile’를 비유해서 설명합니다. 페르페투움 모빌레란 스스로 유지되서 영원히 움직이는 기계장치인데요. 물리법칙에서는 불가능한 기계장치죠. 기계장치란 저항을 만나면 추가적으로 외부에서 동력을 제공해주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 기계장치의 원리가 사회학으로 넘어오면 실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영역이 바로 ‘유행’이라는 것입니다. 유행은 영원할 것이라는 거죠.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게오르그 짐멜은 인간의 너무도 강력한 인간의 두 가지 욕구나 열망들 때문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처럼 문제가 되는 두 가지 인간의 욕구나 열망들이란 바로 ‘보다 큰 전체의 부분이고자 하는 열망’과 동시에 ‘개성이나 독특성을 추구하려는 욕구’, 이 두 가지를 의미한다. 무언가에 소속되어 일체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꿈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꿈, 또한 사회적인 지원에 대한 욕망과 동시에 자율성에 대한 강한 욕망, 모방하려는 충동과 동시에 구분되려 애쓰는 충동말이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그 안전에 대한 욕구뿐 아니라 그 맞잡은 손을 다시 놓아 버리려는 자유에 대한 욕구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이다. …….따라서 짐멜이 말한 대로 “유행이란 사회적인 평준화를 추구하는 경향과 개인적인 톡특성을 추구하는 경향 사이에서 타협을 보장하는 독특한 삶의 형태이다.”….. 사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타협은 ‘안정된 상태’일 수 없다. …….그 타협은 절대 그대로 가만히 유지될 수 없기에 반드시 영구히 재협상되어야 한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편지16> 142쪽.
짐멜이 말하고자 하는 유행의 본질은 어찌보면 모순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너무나 핵심을 짚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을 입든 절대 남들보다 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늘 염색을 하지만 튀는 색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백화점에서 예쁜옷을 골라서 사입었지만 그 옷을 나만 샀을리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하철을 탔을 때 건너편에 앉은 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은 나를 발견하면 굉장히 기분이 안 좋습니다. 개성이 무너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유행이란 그 사이에 존재합니다.

“더는 그 무언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계율도 바로 “항상 새롭고 가장 최근에 인기를 끄는 그 무언가에 머물러야 한다!”라는 계율만큼이나 반드시 꼼꼼하게 살피고 열심히 지켜야만 한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편지16> 142쪽.

바로 이것입니다. 작년에 사입은 옷을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새로 산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 쇼핑하세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많이 들어본 멘트이시지요?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저는 마음이 급해집니다. 주로 TV홈쇼핑에서 쇼호스트들이 하는 방송멘트인데 아주 높은 톤으로 외쳐댑니다. 화면의 방송마감 시계는 몇 분 안 남았습니다. 카드를 꺼내서 결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마치 제가 햄릿이 된 듯한 기분입니다. 삶의 고뇌가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때로는 몇 분 남았는데 완판! 글자가 화면 가득 뜹니다. 아차, 안타까운 순간입니다. 쇼호스트들은 시청자들에게 영원히 만날 기회가 없음을 섭섭해하며 다음 상품 방송으로 몇 분 일찍 넘깁니다. 몇 번 이런 경험을 한 TV홈쇼퍼들은 중독구매 혹은 강박구매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TV홈쇼핑 같은 경우 텔레비전을 보면서 물건을 구경하고 감정이입하고 상상하는 시간이 시청자로 하여금 굉장한 만족감을 줍니다. 사실 직접 물건을 만질 수도 없고 고를 수도 없는데 그보다 더한 선택의 기회를 받은 듯한 착각을 하게 되죠. 쇼핑의 만족감은 어디까지일까요. 결재를 하는 순간 끝입니다.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는 계속 홈쇼핑을 시청하고 계속 결재를 해야 하는 중독증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죠. 백화점의 명품 쇼핑이라고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여성들의 선망인 명품가방의 만족감은 얼마나갈까요. 구경하고 고르고 결재하고 집에 들고 가서 한 일주일 정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상품의 만족감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쇼핑을 하는 상품들이 과연 치약이나 비누 쌀처럼 사용가치가 있는 것들 뿐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우리는 명품가방, 예쁜 그릇처럼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기호가치를 충족시켜주는 것들을 더 많이 소비하면서 살아갑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입니다. 소비지상주의사회입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이 부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보낸 첫 메시지는 “다시 평상시처럼 쇼핑하는 일로 되돌아가라”였습니다. 좋게 생각하면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되돌아가라는 요청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좀 더 분석적으로 생각해보면

쇼핑이 모든 고통이나 불행을 치유하고 그 어떤 위협도 물리치고 밀쳐내며, 그 모든 기능 불량 상태도 수리하는 방법, 곧 아마도 유일무이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분명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아마도 쇼핑몰을 정기적으로 돌아다니는 일이야말로 이러한 모든 근심거리들에 대한 해결책일 것이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편지17> 150쪽.

현대인에게 쇼핑몰이든 시장이든 백화점이든 쇼핑하러 돌아다니는 일은 일상에서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면 TV나 스마트폰이 우리의 쇼핑을 도와줍니다. 게다가 요즘은 쇼핑할 때 내가 돈을 쓴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 세상이 왔습니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쇼핑할 땐 직원에게 신용카드를 건네주고 단말기에 카드를 긁는 모습이나마 보기라도 하지요. 스마트폰 결제시스템은 그저 등록해놓은 카드의 비밀번호만 누르면 일사천리로 결제가 이루어집니다. 복잡하게 일일이 카드 고유 넘버나 카드 뒷면의 세 자리 숫자 따위를 누를 필요조차 없습니다.
카드 결제를 마치는 순간 쌓여있던 근심걱정도 눈 녹듯 사라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날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뒤에 따라올 또다른 스트레스는 애써 외면합니다. 모두 무엇인지 아시죠? 바로 카드 결제일입니다.

3.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아니고 ‘더 열심히 일해라’

예전에 신용카드가 우리의 지갑을 채우기 이전을 기억하시지요? 물건을 구입하려면 현금을 꺼내서 대금을 지불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돈쓰는 재미가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돈 버는 재미도 있었지요. 월급을 봉투에 받던 시절을 지낸 분도 있으실겁 니다. 두툼한 월급봉투의 맛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를겁니다. 그 땐 무엇을 구입하든 쉽게 턱턱 구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갑을 열어서 현금을 꺼내야했기 때문이었죠. 또 지갑에 현금이 없으면 무엇을 구입할 수도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후반 신용카드가 등장한 이후 소비의 패턴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지갑에서 현금이 사라지고 당장 현금이 없어도 물건을 구입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공식적으로 전 국민이 빚지고 사는 세상이 된 것이죠. 카드광고가 텔레비전을 도배하다시피 했는데 그중에서 인상깊었던 광고멘트가 바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였습니다. 기억나시죠? 카드 광고들을 보면 사람들이 스포츠와 레저를 즐기고 멋진 식당에서 식사를 합니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여유있는 시간도 보내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깜짝 파티도 해주더군요. 그것이 모두 카드 덕분이라네요. 그렇다면 카드로 미리 선결제하고 나중에 지불했을 텐데요. 만약에 통장에 잔고가 없다면 다른 카드에서 돈을 빌려 갚는 돌려막기라도 해야 합니다. 수입은 한정되어 있는데 무리한 지출을 한 모양입니다. 이번 달은 대리운전이라도 해서 결제하지 못한 부분을 메꿔야하겠네요. 돌려막기할 카드가 없는 사람은 카드를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지갑엔 보통 서너 장 이상의 카드가 꽂혀 있지요. 열심히 일하고 또 열심히 카드로 즐긴 당신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사회생활이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비패턴이 언제부터 시작될까요. 신용카드를 처음 발급받은 때부터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아이들도 비슷한 전처를 밟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신용카드로 우리는 자유를 얻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만 결코 자유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신용카드가 없던 시절에는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모두가 빚지고 사는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던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시기에 단지 ‘살기 위해 대출 받는 사람들’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일까? 바로 사람들이 가장 취약한 시기, 다시 말해 유년기에서 성인으로 탈바꿈하는 시기야말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이다. …… 바로 이러한 시기야말로 대출회사가 이들의 약한 정곡을 노려 공략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이다. 아직은 성숙하지 않은 젊은이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던 이 세상의 지도에서 부모들이 차지하던 자리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다. 대부업자들은 바로 이러한 상황이야말로 부모 자리를 대신해서 슬며시 그 젊은이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다시없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다.
…….
게다가 이런 젊은이들이 대출회사의 공략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하는 다음과 같은 상황도 한 몫을 한다.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대출회사가 각 나라 정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 이에 따라 각 나라 정부들은 학생들이 그 어떤 학과나 학부를 선택하든지 간에 모든 단과대학이나 종합대학에서 ‘신용거래와 관련된 생활기술’을 이론과정 뿐 아니라 실습과정으로도 배울 수 있게끔 필수 교과과정으로 도입하고 있다는 점 말이다. 더구나 이제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하려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어느 정도는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지만 말이다. 그런 식의 학자금 대출은 받기 쉽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분명 잘못될 여지가 많으며 더구나 되갚기 쉬운 듯이 매력적으로 유혹하지만 결국에는 기만적인 속임수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보통 평균적인 학생이라면 여학생이든 남학생이든 간에 엄청난 빚을 떠안은 채 학업을 끝마치게 되며, 조만간 그 누구라도 다른 수많은 대학 졸업자들과 마찬가지로 빚이 쌓여 도저히 되갚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깨닫게 될 거시이다. 더구나 떠안게 된 그 빚이란 것도 실상 대출 받은 돈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더 많은 빚을 져야만 할 것이라는 사실만을 의미할 뿐이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편지13> 114~116쪽.

현대사회는 소비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존재할 수 없는 사회입니다. 오죽하면 일부 사회운동가들이 ‘Not Buy Day’운동을 외치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면 소비하지 않고 살기는 그저 공허한 외침일 뿐입니다.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궁리를 여기저기서 하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농사도 짓고 벌도 키우는 실험도 하더군요. 세상은 소비의 천국, 선택의 자유가 있는 자본주의 사회인 것은 맞지만 내손에 쥔 돈이 없을 때 이곳은 지옥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텅빈 지갑 때문에 힘겹습니다. 이제 다른 시스템을 궁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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