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번역)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6 [내게는 이름이 없다]

5. 칼리가리(Caligari)

<칼리가리박사의 밀실 Das Cabinet des Dr. Caligari>을 지은 두 작가 중 한 명인 체코인 한스 야노비츠(Hans Janowitz)는 프라하-현실이 꿈과 뒤섞이고 꿈이 공포의 영상으로 변해버리는 바로 그 도시에서 자랐다. 1913년 10월의 어느 오후 이 젊은 시인은 자기를 매혹시킬만한 훌륭한 미모와 예절을 갖춘 소녀를 찾아다니며 함부르크의 어느 축제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축제마당의 텐트가 레퍼반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그 곳은 선원들에게 세계 최고의 쾌락을 선사하는 장소 중 하나로 이름난 곳이었다. 레더러(Lederer)의 거대한 비스마르크 동상이 홀스텐발 거리 근처에서 항구에 들어선 배들의 보초를 서고 있었다. 예의 그 소녀를 찾아다니는 와중에, 야노비츠는 희미한 웃음소리를 따라 홀스텐발 거리에 인접한 어두컴컴한 공원으로 들어갔다. 젊은 남자를 유혹하는 데에는 확실한 효과를 내던 이 웃음소리는 관목숲 어느 즈음에서 사라져버렸다. 이 젊은이가 자리를 뜨자, 조금 있다가 덤불 어딘가에 그때까지 숨어있던 또 다른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예의 그 웃음소리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스쳐가는 이 기이한 그림자를 야노비츠는 언뜻 보았다. 그는 보통의 부르주아처럼 보였다. 어둠이 그를 다시 삼켜버렸고, 더 이상은 보기 힘들었다. 다음날 지역 신문의 커다란 머리기사에 다음과 같이 났다. “호스텐발가의 무시무시한 성범죄! 소녀 게르트루드… 살해당해.” 게르트루드라는 소녀는 축제마당의 그녀였을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느낌에 사로잡힌 야노비츠는 이 희생자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느꼈다. 추도식에서 그는 갑자기 그때까지 체포되지 않은 그 살인자를 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의심하고 있던 사내 역시 그를 알아본 듯했다. 그 사내는 덤불 속의 그림자, 바로 그 부르주아였다.

<칼리가리>의 공동 저자 칼 마이어(Carl Mayer)는 오스트리아의 지방 도시 그라츠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과학적’ 도박꾼이 되고자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부유한 사업가가 되었을 것이다. 한창 때의 그는 틀림없는 ‘시스템’으로 무장한 채 자기 재산을 팔아치우고서는 몬테카를로로 떠났다. 몇 달 후 그는 파산한 채로 그라츠에 다시 나타났다. 이 편집광적인 아버지는 열여섯 살의 칼과 세 살 아래 동생 앞에 파산의 스트레스를 부여안고 나타났다가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소년에 불과했던 칼 마이어는 세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기압계를 팔고 합창단에서 노래도 부르다가 야외극장의 단역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점점 무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떠돌이 생활 동안 그가 찾아다니지 않은 무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온갖 경험으로 가득했던 이 시기는 훗날 영화 시인으로서의 그의 경력에서 큰 쓸모를 발휘하였다. 1차 대전이 시작되자, 청소년이었던 그는 뮌헨의 한 카페에서 힌덴부르크의 얼굴을 담은 엽서를 그리면서 생활을 꾸려갔다. 야노비츠의 기록에 따르면, 전쟁 이후 그는 자기의 정신 상태를 반복적으로 검사받아야만 했다고 한다. 마이어는 자기를 담당하던 군대 내 고위 정신과 의사에 대해 격심한 분노를 품고 있었던 듯하다.

전쟁이 끝났다. 갑작스러운 전쟁 발발로 인해 보병 연대의 장교로 근무하고 있던 야노비츠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당국에 대한 증오로 인해 투철한 평화주의자로 돌아왔다. 그는 절대적 권위는 그 자체만으로 나쁘다고 느꼈다. 베를린에 정착한 그는 칼 마이어를 만났고, 이제까지 글이라고는 한 줄이라도 써 본 적 없는 이 별난 젊은이가 자기와 혁명적 기질과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챘다. 이런 기질과 관점을 영화에 표현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베게너의 영화에 심취했던 야노비츠는 이 새로운 매체가 강력한 시적 계시를 빌려줄 수도 있을 거라고 믿었다. 청년의 의지로 이 두 친구들은 마이어가 정신과 의사와 벌인 정신적 투쟁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야노비츠가 홀스텐발가를 어슬렁거리며 경험한 모험에 대해 끝없이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이야기들은 서로의 기억과 이미지를 북돋워주거나 보완해주었다. 이 짝궁은 이런 토론을 하다가 휘황찬란하고 떠들썩한 칸트 거리의 축제 마당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느껴 밤거리를 거닐곤 했다. 그곳은 번쩍이는 정글이었고 천국이라기보다는 지옥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두려움을 결핍에 대한 공포로 바꿔버렸던 사람들에게는 천국이었다. 어느 날 저녁, 마이어는 야노비츠를 자기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소극에 끌고 갔다. ‘인간인가 기계인가’라는 제목의 소극은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기적같은 용력을 얻은 사내를 출연시켰다. 그는 마치 최면이 걸려있는 듯이 행동하였다. 가장 이상한 일은 그가 불길한 예감에 빠지도록 관객의 넋을 빼앗는 말을 해가며 묘기를 부린다는 사실이었다.

무릇 창조적인 일들은 모든 요소들을 전체적인 하나로 통합하는데 필요한 단 하나의 경험이 덧붙이는 순간에 이르게 만든다. 그러한 경험을 제공했던 것은 이 장사의 신비로운 풍모였다. 이 쇼를 본 날 밤에 두 친구는 <칼리가리>의 원안을 처음으로 마음속에 그려보게 되었다. 그들은 이후 6주 동안 시나리오를 썼다. 야노비츠는 각자 맡을 부분을 나누면서 자신은 “씨앗을 뿌린 아버지로, 마이어는 그것을 품어 키워낸 어머니”로 칭하였다. 막판에 작은 문제 하나가 발생하였다. 이 작가들은 마이어가 전쟁 동안 만났던 일생일대의 적수를 원형으로 삼아 만든 주인공의 이름을 무엇으로 정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스탕달의 알려지지 않은 편지』라는 희귀 도서가 해결책을 제공하였다. 야노비츠가 이 책을 훑어보는 동안 그는 스탕달이 전쟁터에서 복귀하자마자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에서 칼리가리라는 이름의 장교를 만났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 이름을 보자 두 작가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그들의 이야기는 네덜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부 독일의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도시의 이름은 의미심장하게도 홀스텐발이다. 어느 날 회전목마와 소극으로 이루어진 박람회가 이 마을로 찾아든다. 그 중에는 이 소극을 공연하는 안경 쓴 괴이한 남자 칼리가리박사와 그것을 광고하는 세자르가 있다. 칼리가리는 공연 허가를 위해 시청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박사는 거만한 관리에게 험한 대접을 받는다. 다음날 아침 이 관리는 자기 방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렇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박람회의 즐거움을 즐기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의사의 딸 제인과 사랑에 빠진 두 대학생 프란시스와 알란은 수많은 구경꾼들을 따라 칼리가리 박사의 천막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똑바로 세워진 관에서 걸어나오는 세자르를 구경한다. 칼리가리는 오싹해하는 관객들에게 이 몽유병자가 앞일에 대한 물음에 답할 것이라고 말한다. 흥분한 상태에서 알란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살 것 같은지 묻는다. 세자르는 입을 연다. 그는 무시무시한 최면력을 내뿜는 주인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답한다. “새벽까지.” 새벽녘에 프란시스는 자기 친구가 예의 관리와 똑같은 방법으로 칼에 찔려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칼리가리를 의심하던 이 대학생은 그의 수사를 도와주십사고 제인의 아버지를 설득한다. 수색영장을 지닌 두 사람은 칼리가리의 마차에 강제로 밀고 들어가 최면술을 그만두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들은 한 여인을 살해하여 체포된 범죄자에 대한 조사에 참석해 달라는 요구로 경찰서에 소환된다. 그는 연쇄 살인마의 혐의에 대해 미친 듯이 부인하는 중이다.

프란시스는 계속해서 칼리가리를 염탐하고, 해가 저물자 창문을 통해 마차 안을 몰래 들여다본다. 그러나 세자르가 관 속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있다고 그가 잘못 생각하는 동안, 세자르는 제인의 침실에 침입하여 잠든 그녀를 칼로 찌르려다가 가만히 그녀를 보고서는 단검을 내던진다. 비명을 질러대는 제인을 팔에 안고 그는 지붕을 넘어 길거리로 도주한다. 그녀의 아버지의 추격을 받은 그가 제인을 땅에 떨어뜨리자, 그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반면에 이 고독한 납치범은 기진맥진해있다. 프란시스는 자기가 본 것과 전혀 다른 사실을 주장하는 제인으로 인해 수수께끼를 풀고자 칼리가리를 두 번째로 찾아간다. 그와 동행한 두 경찰관이 관과 같이 생긴 상자를 압수하자 프란시스는 거기서 예의 몽유병자와 똑같이 생긴 인형을 끄집어낸다. 경찰이 방심한 틈을 타서 칼리가리는 도망치는 데에 그럭저럭 성공한다. 그는 정신병원으로 안전하게 피신하였다. 그를 뒤쫓던 프란시스는 도망자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며 병원장을 부르다가 겁에 질려 소스라치게 놀란다. 병원장이 칼리가리였던 것이다.

다음날 밤 병원장이 잠든 사이에 프란시스는 이 사건에 새로 입문한 병원의 세 직원들과 함께 병원장의 사무실을 수색하다가 정신질환을 다루는 이 시설의 과오를 완벽하게 입증하는 물증을 발견한다. 그들은 책 더미 속에서 칼리가리라는 이름의 흥행사에 관한 오래된 책을 발견한다. 그는 18세기 이탈리아 북부를 돌아다니며 최면에 걸린 세자르로 하여금 온갖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세자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는 밀랍 인형으로 그를 대신함으로써 경찰을 속였다. 가장 중요한 증거물은 원장의 의료 기록이다. 이 기록물들은 원장이 칼리가리의 최면 능력을 실증하는 데에 강박적으로 집착하였음을 입증하였다. 그는 몽유병자가 병원에 맡겨졌을 때 칼리가리가 했던 가공할 게임을 재연하고자하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칼리가리의 정체성을 제 것으로 삼았다. 원장이 범죄를 인정하도록 만들기 위해, 프란시스는 원장의 도구였던 몽유병자의 시체를 원장에게 들이댄다. 세자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 괴물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수행원들은 그런 그에게 능숙하게 구속복을 입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