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도봉도서관 청춘과 함께하는 인문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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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도봉도서관 청춘과 함께하는 인문학> 2

 

이재유(건국대)

 

1. 자본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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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회이다. 그러면 그 <이익>은 누구의 이익인가? 그 이익은 보통 일하는 사람들의 이익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라는 명칭이 보여 주듯이 자본(가)의 이익이다. 그러면 자본은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화폐나 자본은 얼핏 보아 일반적으로 돈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화폐와 자본은 특성이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화폐는 위에서 보았다시피 상품교환(유통)에서 신적인 역할을 하지만 단순한 유통수단일 뿐이다. 이 화폐로는 은행의 이자, 고리대금, 부통산 투기 이익, 주식배당, 재산의 재테크 등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개념이 바로 자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은 자기 증식(번식)하는 가치, 즉 잉여가치를 낳는 가치이다. 그러나 화폐는 자기 증식하지 못하는 가치이다. 예를 들어 은행에 돈을 10.000원 예금하여 100원의 이자를 낳았다고 하자. 100원의 이자가 어떻게 나왔을까? 10,000원이 은행 안에서 5,000원과 결혼하여 100원짜리 아이를 낳은 것일까? 유통수단으로서의 돈 그 자체인 화폐는 이렇게 자기 증식하지 못한다. 자기 증식하는 특성을 가진 자본은 인간의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이 유통과정에서 출현하여 이 상품이 생산과정에 투입되었을 때 생겨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노동자가 한 자본가와 다음과 같이 계약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고 해 보자. 즉 이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일해서 10원짜리 벽돌 20개를 만들면 하루 임금 100원을 받는다고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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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임금으로 받는 노동시간은 4시간인데, 이 4시간을 ‘필요노동시간’이라고 하고 임금으로 받지 못하는 4시간을 ‘잉여노동시간’이라고 하며, 이 4시간을 정치경제학적인 용어로 ‘착취’라고 한다. 이 잉여노동시간을 ‘잉여가치’라고 하고, 이 잉여가치가 바로 자본이 되는 것이다. 즉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 100원을 투자하여 10원짜리 벽돌20개인 200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즉 100원=200원이 되는 셈이다. 잉여가치의 100원 부분은 사회적으로 주식 배당, 은행이자, 고리대금, 주식투자, 부동산투기 이익, 지대 등으로 배분된다.

그런데 자본은 이러한 과정의 지속적 반복을 통해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서 잉여가치 부분을 더 많이 늘리고자 한다. 즉 8시간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10시간을 시키고, 4시간을 필요노동시간으로 6시간을 잉여노동시간으로 하여 최대한의 잉여가치를 뽑아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루는 24시간일 뿐이다. 무한정 일하는 시간을 늘릴 수는 없다. 또한 너무나 많은 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은 일하는 시간을 법률에 의거하여 일정 정도로, 즉 하루 10시간, 8시간으로 줄이도록 했다.

그러면 어떻게 잉여가치 부분을 늘려갈 수 있을까? 그것은 이제 필요노동시간 부분을 상대적으로 줄여 나가는 것이다. 즉 노동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8시간 동안 20개의 벽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30개의 벽돌을 만들어 내게 하거나, 3사람이 하던 일을 두 사람이 하도록 하거나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로 대체하거나 등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구조조정과 똑같은 모습이다. 이것을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 이 잉여가치의 생산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획기적으로 불러왔다. 그러니까 과학기술의 발전은 필요노동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잉여노동시간을 최대로 늘리려는 노력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잉여노동시간을 최대로 늘리려는 것은 바로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제한적인 생산만이 문제가 되는 상품의 가치의 경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2. 자본주의 경제의 양면성.

이러한 자본의 이익을 최대한 늘리면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은,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중적인 측면을 가지게 된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과학기술이 발전하게 됨에 따라 이전에는 인간의 노동을 통해 이루어졌던 일들이 기계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시기에는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가 거의 필요 없는 농장과 공장 및 사무실이 등장하게 될 것이며, 아주 정교화된 지식 분야에서만 소수의 엘리트 노동자만이 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죽어라 일하기를 강요당하는 산업사회의 노예노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됨에 따라서, 인간이 노동할 수 있는 노동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며, 이는 전반적으로 노동자의 일자리 수가 엄청나게 줄어듦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노동자가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임금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을지가 불분명해짐으로써 생계가 아주 불안정해지고, 이는 곧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이는 현재에도 필요할 때만 노동자를 쓰는“노동 유연화 정책”, “구조조정 정책”과 맞닿아 있다.

 

3. 분배, 교환의 기준 1-리프킨(노동시간)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제레미 리프킨은 경제적 측면에서의 이러한 모순을 경제에만 맡겨 두어서는 더 많은 고통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측면에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하나는 실업에 따른 범죄 계층의 증가에 대응한 경찰력의 증가와 감옥의 증설이고, 다른 하나는 제3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이 두 가지 중에서 두 번째를 위하여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는 제3부문의 영역은 사회?문화적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공식적, 비공식적인 비영리적 활동을 포함하는 영역이며, 이 영역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적 유대와 사회적 질서를 창출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영역은 경제적 이익(자본의 이익)을 창출하는 시장의 영역과 대립되는 모든 비영리적 자치 활동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활동 영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 자산으로서 이 활동 또는 이 활동의 결과물, 그리고 정부의 재원이 이 이 영역에서 어떻게 분배, 교환되고 소통될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기준으로 분배, 교환되고 소통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들에는 시간은행(time bank), 타임 달러(time dollar) 등의 제도가 있다.

이 제도의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다. 어떤 특정인이 자진해서 자신의 전문적인 활동(노동)을 한 시간 제공하면, 한 시간 달러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이 보상은, 여러 전문적인 활동들이 서로 질적으로 아주 다를지라도, 한 시간 달러로서 동등하게 이루어진다. 즉 각 활동(노동) 시간은 기여한 바의 특징과 종류에 관계 없이 동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고 있는 이 제도 운영 방식은 사실상 본질적으로 시장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위의 자본의 생성(시장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과정에서 보았듯이, 질적으로 서로 다른 노동 생산물이 교환되는 기준 역시도 1시간, 2시간 등으로 표현되는 자연 시간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시장 영역과 대립되는 제3부문 영역 사이의 교환, 분배 소통 방식의 기본적인 구조는 동일하기 때문에 이 두 영역 사이의 차이점이 사라진다. 이는 곧 위에서 말한 부정적인 측면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깊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많아질 수 있음을 뜻하게 된다.

이 제도는 19C에? J.그레이, P.J.프루동, R.오언 등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주장되었던 노동화폐 제도와 유사하다. 노동화폐는 금을 화폐로 사용하지 않고 노동시간을 화폐단위로 하여 노동자 자신들의 노동과 노동생산물이 국립중앙은행을 매개로 교환되는 제도이다. 즉 몇 시간 노동을 했는가 하는 증명서로서의 노동화폐를 국립중앙은행이 발행하고, 이 노동화폐를 다시 중앙은행에 가서 자기가 필요한 물건으로 교환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오언에 의해 실행에 옮겨져 1832년 노동화폐로 노동생산물을 교환하는 국민평형노동교환소가 설립되었지만 3년을 못 넘기고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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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분배, 교환의 기준 2-맑스(각자의 필요)

이렇게 노동시간을 기초로 분배, 교환되는 방식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기본 구조이다. 그런데 이 구조에서는 내가 1시간을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1시간의 보상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노동시간은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은 과학기술의 발달 정도, 숙련 정도, 교육을 받은 정도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이 중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을 받은 정도인데, 왜냐하면 과학기술에 어느 정도 정통하고 있으며, 숙련되었는가를 객관적으로(수치상)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교육을 받은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교육을 비롯해 더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며, 이는 곧 사교육비의 엄청난 증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리프킨이 말하고 있는 시간은행 같은 경우는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시간은행에서의 시간 역시도 결국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으로 환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교수의 노동 1시간과 블루칼라 노동자의 노동 1시간이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어 노동자의 생계가 엄청 위협받음과 동시에 부익부빈익빈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이 존재한다. 이 다른 방식은 다름 아니라 맑스가 말하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즉 각자의 욕구에 따라 분배, 교환, 소통되는 방식이다. 이 방식 속에서는 그 누구도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방식을 대단히 현실과 동떨어진, 유토피아적이고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이미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의 방식에 움터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연인, 동아리 등등의 관계에서 말이다.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이익이나 손해 등을 따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각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이 방식은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 방식을 어떻게 의식적으로 사회 전체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실현가능함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 보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가면 서로가 서로에게 먹을 것과 담요, 음료수 등을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주고받는다. 서로에게 격려와 희망, 연대의 벅참을 주고받는다.

국외로 보면? 쿠바, 베네주엘라, 볼리비아 등이 민중무역협정(PTA)(미국을 축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해서 만든 협정)이라는 것을 체결하였다. 자유무역협정은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이것은 화폐의 양으로 나타난다)에 따라 분배, 교환,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민중무역협정은 각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자의 양에 따라 분배, 교환, 소통하는 방식이다. 쿠바는 베네주엘라로부터 석유를, 볼리비아로부터 천연가스와 콩을, 베네주엘레는 쿠바로부터 의사를 비롯한 선진 의료제도를, 볼리비아로부터는 천연가스와 콩, 밀을, 볼리비아는 쿠바로부터 의사를 비롯한 선진 의료제도를, 베네주엘라로부터는 석유 등을 필요한 만큼 서로 주고받는다.

우리가 노동하는 것은 각자가 필요한 것을 얻고 충족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것이 바로 노동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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