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와 지식인의 역할 [시대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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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와 지식인의 역할 [시대와 철학]

이성백(시립대 교수)

 

6.2 지방선거의 정치적 의미

 

지방선거가 며칠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다른 때보다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선거가 갖는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MB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데에 있다. 지난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MB정부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일’을 벌여왔다. MB정부가 보여온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정치적 행태들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들 스스로 충분히 겪어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한 가지 언급하자면, 지난 2년간의 MB정부와 한나라당의 모습은 한국의 보수지배세력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확인시켜주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형식적인 수준에서나마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져 오는 동안 보수지배세력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이들은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성숙하지 못했고, 군사독재 시절부터 몸에 밴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하비투스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한국의 보수세력은 지배계급이 갖추어야 할 인격적, 사회적, 문화적 지도력을 하나도 갖추지 않았다. “큰집에서 조인트 깠다”는 K씨의 물의를 빚은 발언은 바로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서구의 부르주아가 기득권을 지키려는 반민주적 보수세력인 귀족계급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주도했다면, 한국의 부르주아는 보수반동적인 반민주적 세력이 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의 MB정부의 정치적 행태들은 단지 MB와 그에 의해 동원된 특정 정치집단들에 의해 빚어진 보수세력 일부의 파행이 아니라, 한국 부르주아의 보수적 반민주성이 전면에 드러난 것이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겁한 정치보복, 국민을 국민으로 여기지 않는 용산참사에서의 공권력의 폭력성, KBS와 MBC를 위시한 언론 장악과정의 치졸함,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검찰의 부도덕함, 이런 것들을 보면서 어떻게 한국 지배세력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지방선거에 국민의 관심이 늘어나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무상급식이 몰고 온 사회적 파장이다. 교육감 선거도 같이 실시되는 이번 지방선거는 친환경 무상급식이 최대의 정책적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국민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무상급식을 좌파의 정책이라고 비난하던 한나라당마저 선거공약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될 정도로 무상급식이 이번 선거에 몰고 온 사회적 파장은 대단하다.

특히 무상급식은 시장으로부터 복지로 방향을 트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시장과 성장이란 보수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렇다 할 정책적 대안이 없어 고민해왔던 한국의 진보진영에게 앞으로 추구해야 할 이념적이고 정책적인 방향의 첫 물꼬를 터주었다. 무상급식을 시작으로 하여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를 넘어 21세기의 새로운 물질적 조건에 부합되는 보편적 분배와 복지 체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진보대연합과 좌파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

이번 지방선거를 포함하여 최근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정세는 한국의 좌파가 유효한 정치세력의 하나로 발돋움하는 호기가 될 수 있다. MB정부의 정치적 무능과 실정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땅에 떨어졌고,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이 민주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참여 정부 시절 정치적으로 분열된 중도파는 조직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아직 새로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으로부터의 추락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파와 중도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정치적 흐름 속에서 생겨난 빈 공간은 좌파 진보세력이 정치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될 수 있다.

물론 좌파는 이런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나 여건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좌파로서의 정치적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한 채 민주당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다 합해도 지지율이 아직 한자리수를 넘지 못하는 소수정파에 불과한 좌파는 조직적으로도 사분오열되어 있다.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진보신당이 떨어져 나왔으며, 그 외 정치 및 운동 조직들은 조직들대로 따로 움직이고 있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좌파가 약진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좌파의 내부적인 재구성이 필요하다. 그 첫 번째가 흩어지고 분열되어 있는 진보세력의 연대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진보세력의 연대, 즉 진보대연합은 좌파의 정언명령이다.
이런 필요성이 좌파 내부에서 감지되면서 작년부터 진보대연합을 촉구하는 논의가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 『진보평론』이 녹?보?적 연대를 40호 특집으로 다루면서 좌파의 연대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어서 한국사회포럼과 학술단체협의회가 좌파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연대 문제를 학술대회의 중심 주제로 삼아 연대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시켰다. 연대에 대한 논의가 구체성을 띠면서 좌파 진영의 연대를 구성하기 위해 우선 연구자들부터라도 연대모임을 만들자는 데로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고,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진보교연)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진보교연은 이번 지방선거를 위해 만들어진 한시적인 모임이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계속하여 좌파 진영의 연대를 위해 필요한 활동과 사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 한다. 진보교연은 앞으로 정치 조직이나 현장 운동 조직들과 같은 실천적 조직들과 나란히 하는 연구자들의 이론적인 모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20세기 서구의 좌파운동이 거대한 대중적 물결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회적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데 실패한 것도 정치적 분열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기의 공산주의와 사민주의의 대립이 그러한 것이었고, 후반기 68혁명 시기의 구좌파와 신좌파의 분열이 그러한 것이었다. 80년대 이후 한국의 좌파운동에는 분파주의 의식이 서구보다 더 강하게 작동하였다. 생각과 입장이 다르면 이는 곧 결별로 이어지는 분열 의식이 강하였고, 입장이 다르더라도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서 같이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연대 의식이 취약했다. 좌파의 힘의 원천이 강력한 대중적 연대의 구축에 있다는 것이 좌파 정치의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좌파는 연대가 아니라 분열에 골몰하였고, 그 결과로 사분오열의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앞으로 좌파 연구자들이 한국 좌파운동을 위해 해야 할 이론적이고 정책적인 과제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좌파운동의 자기파괴적인 심리적 기제로 작동해 온 분열주의 의식에 대한 비판적인 반성과 연대 의식을 강화하는 담론의 활성화가 가장 기본적인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진보대연합론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문제가 민주대연합과의 관계이다. 여러 사람들이 MB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이 현 상황에서 중요하고 따라서 민주대연합이 우선인데, 왜 진보대연합을 주장하는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좌파 진영 내에서도 아직도 민주대연합이 우선이고, 이를 위해 진보대연합은 뒤로 미루어도 된다는 민주대연합 우선론이 상당히 힘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민주대연합과 진보대연합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대연합을 하자고 해서 민주대연합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민주대연합에 손상을 입히는 것도 아니다.

좌파는 ‘민주당 2중대’라는 냉소적인 표현에서 보듯이, 그동안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의 역사 속에서 민주대연합 우선론에 의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이루지 못했다. 이제 좌파는 더 이상 민주당에 끌려다닐 수 없다. 좌파는 진보대연합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구축해야 하며, 더 이상 끌려다니는 민주대연합이 아니라, 일정한 독자성을 확보하는 민주대연합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좌파대연합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선결과제이고, 그 다음으로 제대로 된 요건을 갖춘 민주대연합의 구성이 가능하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의 모색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역사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벌써 미래 저 앞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것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성숙과 단계가 바로 그것의 몰락이 시작하는 때이다”라는 헤겔의 말은 역사적인 것의 역사성이 가시적 사건으로 드러나는 순간에 그 빛을 발한다. 얼마 전까지 ‘역사의 종언’을 선언하며 절정을 과시하던 신자유주의가 지구적 경제공황을 통해 체제에 균열이 나는 것을 보면서 다시금 우리는 헤겔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한창 절정일 때, 감히 어느 누구도 미국이 망할 때가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하였다. 미국이 휘청이고 있는 현재에도 어떤 이는 “그래도 미국인데?”하면서 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렇지만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는 일시적인 교란이 아니라 그동안 내부적으로 팽창해오던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의 구조적 모순이 폭발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는 더 이상 그대로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였고, 이제 다른 새로운 축적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게 되었다. 물론 이 새로운 축적체제는 자본주의적 사회체제 내에서의 것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사회체제로의 이행의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좌파도 새로운 전환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의 수세적 상황을 넘어서 탈신자유주의의 시대를 열어나가는 데에 힘을 모아야 한다. 좌파의 현재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세력적으로 힘이 미약할 뿐만 아니라, 각 정치와 운동 조직들이 뿔뿔이 흩어져 그 미약한 힘마저 제대로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고, 좌파 내지 진보적 이론과 연구 부문의 상황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때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진보적 학술단체들은 연구의욕이 위축되어 있고, 이론적 회의주의에 젖어 있다. 진보적이라고 부를 만한 지식인들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 가장 심각한 것은 진보적 이론 생산을 계승할 후속세대가 거의 단절될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좌파는 매우 힘겨운 시기를 지내왔다. “당신은 나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 혼자만은 아니야.”라는 이메진의 가사처럼 나 혼자만이 아니라 그래도 내 옆에 나 말고도 한 사람이라도 더 있다는 생각으로 위로하며 힘겹게 버텨왔던 시기였다.

현실은 현실이다. 이런 열악한 현실을 인정하고,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연구해야 할 이론적인 과제들은 많은데 지식인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분산되어 있는 연구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을 만들어 연구역량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 담론의 생산이라는 전체적 전망 속에서 현재 필요한 이론적이고 정책적인 과제를 공동으로 수행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소통시키는 연구 공간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현실에의 실천적 참여 또한 지식인의 역할이기도 하나, 지식인의 일차적인 역할은 이론적 실천에 있다.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에게는 이제 시작되고 있는 역사적 이행기를 맞이하여 ‘이론적 실천’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야 하는 과제가 부과되고 있다. 무상급식의 예처럼 현실 속에서 대중적인 관심과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들의 생산에서부터 일반적인 정치경제학이나 사회이론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이론적 생산을 통하여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진보적 사회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그동안 외롭게 미래를 꿈꿔왔다. 이제부터는 미래를 그려 보자. 그리고 바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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