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라는 정치적 질병[썩은 뿌리 자르기]

“한 마리의 죽음은 대수롭지 않았지만 100만 마리의 죽음은 비극”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우리는 너무도 많은 시간을 써버렸다. 300만이 넘는 생명을 빼앗은 지금에서야 인간이라는 어리석은 동물은 다시금 반성의 동물인 양 살처분이 구제역의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아니 최소한 매몰이라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인간의 얄팍한 속성 때문일까? 우리는 구제역에 걸린 소를 먹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말과 함께 흘러나오는 대량 살처분이 의심스러우면서도 그들이 흘린 피가 땅에서 솟아오르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무시무시한 구제역 이야기를 들으며 살처분이 정당화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도대체 “구제역이 어떤 질병이기에 그토록 많은 생명을 빼앗은 것일까?”라는 물음과 함께 “살처분은 어떻게 구제역을 통제하는 명약이 되어버렸을까?”라는 물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이 글은 부족하지만 본인이 찾아 본 그에 대한 간략한 답변이다.

구제역(Foot and Mouth Disease)

구제역 증상에 대한 기술은 1514년 이탈리아의 수도승 프라카스토리우스(H. Fracastorius)가 베로나(Verona)에서 유행한 소전염병에 대한 것이 최초다. 그 후 1897년에 독일의 뢰플러(F. L?ffler)와 프로시(P. Frosch)에 의하여 병인체가 최초로 증명되었다. 우리의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왕조실록의 우역(牛疫)에 관한 기록들과 허균의 『한정록』에서 그 증상을 찾을 수 있다. 또 다른 기록에는 일제강점기 1911년과 1934년 구제역에 관한 기록들이 있다. 사실 여기서 언급된 소전염병, 우역, 구제역은 모두 같은 질병은 아니다. 현대적인 분류에 따르면 우역(rinderpest)은 폐사율이 100%에 달하는 질병으로 구제역과 구분되지만 당시의 과학적 수준을 생각할 때 이러한 기록들 속에 구제역도 포함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제역은 과연 어떤 질병인가? 말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제역은 ‘발과 입에 걸리는 질병’이다. 정확하게 말해 소와 돼지, 양 등 발굽이 둘로 갈라진 우제류(偶蹄類)에게 발굽이나 혀에 수포 또는 괴사병변이 일어나는 질병이다. 폐사율은 성체의 경우 1~3%이고, 어린 동물의 경우 최대 55% 정도로 알려져 있다. 미생물 분류학적으로 구제역 바이러스(FMDV)는 피코르나바이러스과(Picornaviridae) 아프토바이러스속(Aphthovirus)에 속하는 아주 작은 RNA 바이러스이다. 또한 구제역 바이러스의 혈청형(血淸型)에는 A, O, C, SAT-1, SAT-2, SAT-3, Asia-1 등 7가지의 기본형과 53~80여 가지의 아형(亞型)이 있다. 사람에게도 실험적으로 감염된 예가 있지만 그다지 큰 증상과 병소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말해 구제역은 그렇게 심각한 질병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린 동물이 치사율이 높은 이유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구제역의 진원지는 중동이나 인도 정도로 추정을 하고 있지만 사실 구제역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질병이다. 전라도 사투리로 ‘아구창’이라고 불리는 이 질병은 치료만 잘하면 나을 수 있는 질병이다. 서양 사람들은 병이 돌기 시작하면 농장 입구에 죽은 양이나 소의 머리를 매달아 가축 상인이나 방문객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런 다음 나머지 소들에게 따듯한 쇠죽과 부드러운 건초를 먹이고 깔짚을 갈아주었다. 병든 짐승들이 쓰라린 상처를 핥지 않도록 발굽에 타르를 발라주고 타마린드, 칠리고추, 혹은 물에 불린 인도 머구슬나무 잎사귀로 수포를 치료했다. 허균의 『한정록』양우(養牛)편에는 “우역은 훈김[熏蒸]에 서로 전염되는 수가 많으니 다른 소가 있는 곳에 데려가지 말고 나쁜 기운을 제거하면서 약을 쓰면 살릴 수도 있다”고 썼다. 다시 말해 예전부터 잘 보살피면 나을 수 있는 병으로 취급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이 심각한 질병으로 취급을 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구제역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가 감염 동물이나 오염된 가축 또는 축산물, 해외여행자의 신발, 의복, 지참물을 통해서 감염이 이루어 질뿐만 아니라 공기로도 전염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사안은 치료약이 없다는데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자연치유가 가능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대량 확산과 치료약이 없다는 이유가 대량 살처분을 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여기서 잠시만 판단을 유보하고 살처분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살처분 정책(Stamping Out)

살처분의 역사는 조금 더 흥미롭다. ‘란치시 칙령(Lancisi’s Recommandation)’이라고도 불리는 살처분은 18세기 유럽 로마 부근에서 전염병으로 소들이 떼죽음을 당하자 교황 클레멘트 11세(Papa Clemente XI)가 주치의에게 해결책을 찾아보라고 지시한 것에서 유래한다. 당시 주치의였던 란치시(G. M. Lancisi)는 병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교역을 제한하고, 정기적으로 육류 검역을 실시하고, 병든 가축은 석회를 뿌려 매장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아울러 통제된 방식의 살처분을 통해 병이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이 통제된 방식의 살처분이란 병든 가축을 곤봉으로 때려죽이는 방법이었다. 또한 소상인이 이 규칙을 어기면 목을 매달고, 내장을 꺼낸 다음 사지를 찢어 죽였다. 신부나 승려가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노예선으로 보내버렸다.

이런 방법을 통해 당시에 비교적 빠르게 전염병을 막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란치시의 칙령’은 잔인하고 살벌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가축 전염병을 통제하는데 근간이 되는 방법으로 인정받고 있고, 우리는 현재 그것을 살처분 정책(Stamping Out)이라고 부른다.

란치시의 칙령이 현대의 살처분 정책과는 다르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내용을 비교해 볼까 한다. 살처분 대상 가축을 곤봉으로 때려죽이는 일은 분명 현대에는 없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살처분 조치로 총으로 쏘거나 천자(Pithing-칼로 척수를 자르는 행위)를 시행했다. 우리의 경우 안락사 약제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생매장을 했다(생매장이 곤봉으로 때려죽이는 것보다 좋은 점이 있다면 누군가 나에게 설명해 주길 바란다). 살처분을 거부하는 농부에 대한 능지처참은 분명히 사라졌다.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형벌이 기다린다. “살처분 명령 위반농가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규정에 의거 3년 이하의 징역 및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으며, 살처분 보상금 삭감(최소 20%이상)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우리의 농가가 대부분 영세농이라고 가정하면 이러한 형벌은 사형에 가까운 처사이거나 강제로 명령을 이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또한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들은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 과로사까지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분명 자연 치유가 가능한 구제역이라는 질병을 살처분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헛소리(Foot in Mouth Disease)

구제역과 살처분이 환상의 짝꿍이 된 또 다른 이유에는 영국의 종축업자들이 있다. 의회 의원 겸 영국왕립농업학회 회원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던 종축업자들은 구제역에 특히 순혈종의 소들이 큰 피해를 입은 반면, 일반적으로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는 품종은 피해가 덜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국의 종축업자들은 구제역 때문에 사료 소비가 늘고 우유생산량이 줄어들고 유전적으로 균질적인 순혈종 가축의 성장 기간이 길어진다는 이유에서 영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했고, 영국 정부는 1871년 이 병을 신고의무 질병으로 지정했다. 이 후 영국은 스스로 만든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이용해 무역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구제역 청정국’지위란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해 ‘구제역 청정국’지위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육류 무역업자들을 위한 것이다. ‘구제역 청정국’은 간단한 절차에 의해 육류 무역을 할 수 있는 반면 오염국의 경우 절차가 까다롭다. 또한 오염이 되고 나면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 청정국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고, 오염국이 되고 나면 다른 오염국의 축산물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아니면 제소를 당할 수도 있다.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백신 사용을 꺼리는 이유도 이 청정국 지위와 관련된다. 살처분 매몰 방식은 마지막 구제역 발생 이후 3개월 동안 구제역 발병이 없으면 청정국의 지위가 회복되는 반면 백신접종은 고비용일 뿐만 아니라 100% 확실한 예방법도 아니고 또한 접종 중단 뒤 1년 후에 청정국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이유도 포함된다.

이러한 헛소리를 바탕으로 구제역과 살처분 정책은 지금도 병행이 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면 구제역이라는 정치적 질병이 가진 허구성이 들어난다. 먼저 구제역은 자연 치유가 가능한 질병이다. 소의 면역력만 충분하다면 구제역은 자연 치유된다. 둘째, ‘구제역 청정국’지위가 없어도 국내에서는 육류 판매가 가능하다. 먹어도 건강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그 이유다. 셋째, 돼지를 출하하는데 최소 1년, 소를 출하하는데 최소 3년이 걸린다고 일반적으로 가정하면 청정국의 지위를 상실하더라도 3개월에서 1년이면 회복할 수 있는 ‘구제역 청정국’지위는 그야 말로 헛소리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의 경우 육류 수출량이 아주 미비한 수준이다.

사실 구제역은 조류독감이나 기타 여러 가축 전염병과는 달리 식품 안전이나 인간의 건강을 전혀 위협하지 않는다. 또한 구제역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형태로 진화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비록 구제역 바이러스가 강력한 살생 능력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가축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고열이 나고 동물의 발톱과 입에 수많은 수포가 생긴다. 이 병에 걸린 가축은 발과 입이 몹시 아파 먹지도 못하고 발을 절뚝거린다. 새끼를 밴 짐승의 경우 유산을 하고 젖이 마른다. 원래 몸이 약하거나 나이 어린 짐승은 열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치사율은 약 1%정도이고 합병증이 있는 경우 최대 55%가 될 수 있다. 그 밖의 짐승들은 면역력이 약해진 탓에 수포가 박테리아에 감염되지 않는다면 보름 안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구제역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고기와 우유 생산량이 15~20% 정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생산성이 감소한다.

결국 문제는 산업 논리이자 정치 논리였던 것이다. 구제역을 정치적 질병(political disease) 또는 경제적 질병(economic disease)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픈 짐승을 잘 보살피는 데에는 그 만한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백신 값은 비싸고 효율성도 떨어진다. 백신을 투약해도 소는 대략 85%의 항체가 생기지만 돼지는 40%미만이다. 게다가 지속적이지도 못하다. 결국 값싼 원료와 값싼 고기만을 생산하려는 공장식 축산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방식인 것이다. 생산성은 줄어드는데 비용을 들일 수는 없다는 반복되는 자본의 논리 속에서는 더 이상 대안이 없다.

그러나 2010년 11월 구제역 발생 이후 기르던 가축을 매몰해야만 하는 농민 그 누구도 자신의 소와 돼지를 땅에 묻으며 슬퍼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매몰 작업에 내몰린 공무원들도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에 불과하다”는 스탈린의 말을 생각해 본다. 이제 우리에게 300만은 더 이상 통계가 아니다.

강경표(중앙대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