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인권 조례를 학생 손으로 – 학생 인권 문제 [썩은 뿌리 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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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뿌리 자르기]

학생 인권 조례를 학생 손으로

– 학생 인권 문제-?

글: 김영삼 (성동글로벌경영고등학교 교사)

2009년 사회적 논란 속에서 시작되었던 경기도 교육청의 학생 인권 조례 제정 작업이 2010년 2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자문위원회 결과 보고서’ 제출로 마무리 되었다. 학생인권선언이 아닌 조례 제정이라는 원대한 목표는 조례가 통과되지 않아 최종적인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학생 인권 문제와 관련된 제반 사항들 하나하나를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해결 방향을 제안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연극의 1막에 불과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자문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곽노현 교수가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출마하였고 덜컥 당선이 된 것이다. 이제 학생 인권 조례는 경기도라는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진보 교육감이 진출한 6개 시도에서 공통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특별한 한 교육감의 튀는 제안이 아닌 우리사회 학생 인권의 사회적 통념과 상식의 기준을 새로 만드는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체벌금지로 수면위로 올라온 학생인권 문제

최근 서울 한 초등학교의 일명 ‘오장풍’ 교사 폭력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자 이를 계기 삼아 서울시 교육청이 2학기부터 모든 학교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 했다. 그러자 진보 교육감과 대립각을 세우려 준비하고 있었던 조중동이 중심이 되고 일부 교원?학부모 단체까지 합세한 소위 보수(?) 세력이 일제히 서울시 교육청의 조치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들은 체벌 금지 조치를 서울시 교육청발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수위를 가늠해 볼 사안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조처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흘러간 옛 노래 같은 체벌 논쟁이 다시 벌어지는 상황이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격차를 어떻게 좁혀 나갈 것이냐는 집권 세력(?)으로서의 고민도 함께 갖게 된다.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전과 한참 동떨어진 학교 현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논쟁은 이미 한 차례 지나갔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청이 추진하는 학생인권조례 내용 역시 경기도의 고민으로부터 출발할 것이기에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체벌과 두발규제를 금지하고, 복장의 자유를 허용하고 방과 후 학습에서 학생의 선택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했다. 학생들이 수업시간 외에 평화적 집회를 열고, 학칙 제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도 부여했다. 인권 침해 문제를 다룰 학생인권옹호관과 학생인권심의위원회, 학생참여위원회도 두기로 했다. 논란이 되었던 조항들만 몇 가지 나열했는데 이를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87년 이후 20여 년 동안 진행되어온 우리 사회 여러 분야의 민주적 발전은 우리 사회의 통념과 상식의 기준을 바꿔왔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도 이런 상식을 벗어난, 이미 지나간 일로 생각했던 구시대적 행태들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 아닐까.

2010년의 사회적 기준과 상식으로 학생인권을 보장하겠다고 논의하고 있는 내용들을 살펴보자. 체벌, 두발, 복장 규제 등 이미 오래전에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내용들이 논의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90년대에 태어난 학생들만 재학하고 있는 현재의 학교가 80년대 이전 상황에 머물러있다는 기막힌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 도무지 우리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체벌은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전교조조차도 체벌 금지를 조직적 자기 입장으로 발표하지 못했던 것이 우리 교육운동의 현실이다. 물론 조직적 입장 정리는 되어있지 않지만 많은 교사가 체벌없는 교육활동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 또 실천하고 있어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명 ‘오장풍’ 교사 사건과 같은 체벌이 아닌 폭력에 해당하는 무지막지한 상황이 주기적 혹은 반복적으로 보도되는 것은 우리 교육 현장이 체벌과 관련해 구조적으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체벌 문제를 교사 개인의 교육관, 철학으로 간주한다면 교사들에게 생각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교사 집단이 자성을 통해 의식을 바꾸는 것으로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체벌 문제는 개인의 의식까지 지배하는 구조적 문제이기에 그 해결책 역시 사회적 논의와 제도 개선을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이 과정의 가치를 상실하고 결과(입시 성공)의 성패에 모든 가치를 두고 있는 현실, 그래서 학생들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학교와 교사의 능력으로 인정받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니 관리의 가장 효율적 수단으로 체벌이 사용되는 것은 당연시될 수 밖에 없다.

‘아니 학교가 아직도 저래’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입시라는 오래된 과제에 발목 잡혀있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생각해 보시라. 바뀌지 않은 교육적 상황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익숙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져오는 대처 방안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입시와 체벌은 오래된 앙상블이다. 다음으로는 교사 무한책임 시스템을 살펴봐야 한다. 현재 학교에서는 학급 운영, 수업, 생활 지도 등 모든 부분에 대한 교육적 책임이 개별 교사의 몫으로 귀결되고 있다. 무한책임의 시스템 속에서 교사는 자신의 교육활동 중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 상황에서 즉각적인 해결사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그래서 교사는 고독하고 외롭다. 그 상황을 개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무능한 교사로 취급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기본적으로 여러 명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해야 하는 교육 노동의 특성상, 문제 상황에서 역할 분담을 통해 그 책임을 나눌 수 있는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다른 학생들의 수업권을 방해하는 몇몇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조치를 분담해줄 수 있는 별도의 지원체계를 갖추어야 교사가 즉각적이고 충격적인 개입(대체로 체벌)을 통해 그 상황을 정리하고 모두의 수업권을 지켜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의 부재 역시 명백한 구조적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학교 생활규정(좁혀 말하면 학생 생활규정) 문제이다. 등교 시간 학교 교문에서 시작되는 교사와 학생의 실랑이는 학교 생활 규정의 용의복장 관련 조항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두발, 복장 규정은 학생들의 기대를 벗어나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자기 표현의 욕구를 규제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불만과 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학교와 교사들의 요구 사이에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충돌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교육부의 일관된 입장은 학교 구성원들(교사, 학생, 학부모)이 합의를 통해 두발, 복장에 대한 규정을 결정하라는 것이다. 10년째 반복되고 있는 이 처방은 현장 갈등 상황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2005년 대만에서는 모든 중고등학교에서의 전면적인 두발 자유화 조치를 시행하였다. 개별 학교 구성원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여 갈등 발생 원인을 제거한 것이다.

여전히 수직적 권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 우리나라 교육부의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대처가 학교 구성원들간의 긴장을 유발시키는 구조적 원인인 것이다.

구조와 문화를 바꾸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

이상 몇 가지 요인들이 현실적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구조적 장애물들이다. 그래서 체벌 금지를 교육청이 나서서 해결하려 하고 학생 인권 조례를 만들어 학교 생활규정을 둘러싼 오래된 갈등 구조를 해소하려 하는 것이다. 개별학교 개별교사에게 무책임하게 맡겨 놓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분명 의미있는 사회적 논의 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선언과 지침을 통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제도 개선과 학교(교육) 문화 바꾸기라는 긴 호흡과 강한 걸음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된다. 학생 인권조례가 되었든 체벌 금지가 되었든 우리에게 익숙한 기준을 새로운 사회적 기준으로 만들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으론 사회적 변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어설픈 선언과 준비되지 않은 실행은 쉽지 않은 역풍을 맞아 지지부진한 상황만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차분하고 의미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앞에서 체벌과 관련해서 구조적 문제로 제기한 사항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교사 교육활동을 직접 도울 수 있는 학교 교육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둘째 학생 개개인에 대한 차별화된 지원과 접근이 가능한 교육체계 구축을 위해 싸구려 교육을 탈피하기 위한 적극적 투자가 필요하다.
셋째. 학습, 연수, 교육을 통한 지속적인 자기 변화의 과정을 학교 구성원 모두가 가져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긴 호흡과 강한 걸음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학생의 자치와 참여로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현재 어른들이 말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체벌 금지 등의 논의가 직접 당사자인 학생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에 여러 가지 움직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에 묶여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생인권, 체벌 금지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있을지 모르나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사회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출발은 소위 진보교육감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은 바로 직접 당사자인 학생 청소년들의 더욱 적극적인 진출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학교 밖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광장을 마련해 주는 것과 함께 개별 학교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주인되어 자치와 참여의 학교 교육을 통해 주체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모아갈 수 있는 학교 교육의 변화, 이것이 미래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학생인권조례의 진정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학생이 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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