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동문서답[천하무적 맹자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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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가 동문서답을?

맹자에 관한 가장 오래된 전기는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맹자열전]인데 겨우 137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중에 진시황제가 된 진왕 영정을 암살하려 했던 칼잡이 형가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데 무려 3,000자를 넘게 소비한 사마천이 어째서 맹자에게는 겨우 137자만 할당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137자의 기록만으로도 맹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에는 충분하다. 사마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맹자는 세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깨우친 뒤에 양나라와 제나라에 가서 유세했지만 그들은 모두 맹자의 주장이 현실과 맞지 않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모든 나라가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차지하는 데만 몰두했는데 맹자는 끝내 도덕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맹자는 당시 제후들이 요구에 따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서로 뜻이 맞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맹자는 당시 제후들의 질문에 엉뚱한 이야기를 했단 말인가.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여러 회원들과 함께 [맹자]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맹자]를 처음 읽는 후배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맹자는 늘 왕들이 물은 것에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얼결에 ‘맹자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대답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진지한 질문에 어리석은 대답을 했구나 싶었다. 아마 질문했던 사람은 내가 무성의한 대답을 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맹자가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맹자는 정말 고금에 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동문서답의 일인자다. 적어도 당시 군왕들과의 대화에서는.
어디 한 번 예를 들어 보자.

이익은 없다, 인의가 있을 뿐

맹자가 혜왕의 초빙을 받아 양나라에 갔다. 혜왕은 맹자를 반갑게 맞이하며 이렇게 물었다.

“선생께서 천릿길을 멀다 않고 우리나라에 오셨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 주시겠습니까?”

맹자 왈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이익을 묻는데 인의로 대답한 것이다. [맹자] 개권벽두에 나오는 대목으로 이 주장은 [맹자]가 끝날 때까지 한결 같은 어조로 이어진다. 이익을 버리고 인의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맹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첫 만남부터 한 대 세게 얻어맞은 혜왕은 이번에는 맹자를 자신의 화려한 별궁으로 초대했다. 아마도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혜왕의 별궁은 울창한 숲 속에 있었는데 높고 화려한 누대 아래에 깊은 연못이 펼쳐져 있었다. 맹자가 도착해 보니 못가에는 백조와 기러기가 느긋하게 날아오르고 고라니와 사슴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혜왕은 그런 자신의 수집품을 돌아보며 이렇게 물었다.

“당신 같은 현자도 이런 걸 즐깁니까?”

맹자 왈
“현자라야 이런 걸 즐길 수 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이런 걸 가지고 있어도 즐기지는 못하지요.”

“…”

이번에는 혜왕이 맹자에게 자신의 포부를 이야기했다. 포부라지만 그 당시 군왕들의 속셈은 뻔했다. 이웃나라를 침략하여 영토를 넓히고 결국에는 천하를 통일하는 것이다. 혜왕은 바로 그렇게 말하진 못하고 돌려 이야기했다.

“본디 우리나라가 천하에서 가장 강했던 나라임은 선생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과인의 시대에 이르러 이웃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영토가 깎이고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죽은 이들을 위해 한번 설욕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맹자 왈
“사방 백 리의 영토만으로도 왕 노릇 할 수 있습니다.”

“…”

그래도 혜왕은 맹자를 잘 대해주었다. 그래야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평가가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던 혜왕이 죽고 난 뒤 새로 왕이 된 양왕은 그런 사실을 잘 몰랐던 모양이다. 맹자를 박대했고 그 결과는 이렇게 처참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내가 양왕을 만났는데, 멀리서 바라보니 임금 같질 않고, 가까이 가보니 위엄이 없더군. 그런데 이자가 갑자기 ‘천하가 어떻게 될까요?’ 하고 묻질 않겠나? 아, 그래서 내가 하나로 통일될 것이라고 대답해줬지. 그랬더니 군침을 삼키며 ‘누가 통일할 수 있을까요?’ 묻지 않겠어? 그래서 내가 ‘최소한, 당신 같이 사람 막 죽이는 자는 통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해줬지.”

맹자는 양왕을 거의 임금취급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패도는 아는 게 없어

이번에는 맹자가 제나라 선왕을 만났다. 선왕은 일찍이 패자였던 제나라의 환공에 대해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자신도 그렇게 패자가 되고 싶었을 게다. 그래서 맹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패업에 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맹자 왈
“공자의 문하에서는 패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수치로 여깁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게 없습니다. 그래도 그만두지 말고 뭔 말이라도 해보라 하시면 왕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흔히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갖다 붙이는 “좋은 질문입니다.” 따위의 수사가 맹자에겐 절대 없다. 도리어 대답하기 전에 안 좋은 질문이라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잽을 먼저 날린다. 물론 패도에 대해 물었는데 왕도로 대답했으니 질문에 대답도 안 해 준 셈이다.

선왕의 얼굴은 아마 벌게지지 않았을까? 민망해진 선왕은 할 수 없이 질문을 바꿔서 왕도에 관해 물어봐야 했다.

“저… 저 같이 덕이 부족한 사람도 왕도 정치를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제가 들으니 왕께서 소 한 마리 끌려가는 것을 불쌍히 여겨 소는 놓아주고 양으로 대신하라고 하셨다지요? 그 정도로 어진 마음이면 충분히 왕도정치를 베풀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왕이 소가 아까워서 그런 것이라고 비난하지만 저는 왕께서 정말 소가 불쌍해서 그리했다는 것을 압니다.”

“아, 그렇군요. 선생께서 제 마음을 알아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소는 그렇게 아끼면서 어째서 백성들은 아끼지 않습니까?”

“…”

이번에는 어째 잘 나간다 싶더니 결론은 또 선왕이 잘못했다는 말이다. 뭔 말을 못한다. 이래서야 왕의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사람같지 않은 자에게 보내는 맹자의 말씀

그래도 양나라 혜왕과 제나라 선왕은 맹자 덕분에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사실 이들은 당시의 군왕들 중에서 그리 뛰어난 이들은 아니었다. 맹자는 높이 평가하지 않았지만 제나라 환공이나 진나라 문공 같은 이들, 그리고 초나라 장왕, 진나라 목공 정도가 당시의 뛰어난 군왕이었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도 양나라 혜왕이나 제나라 선왕의 이름이 이들보다 더 널리 알려진 건 오로지 맹자와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성현과 대화 상대가 된 이름값을 생각하면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욕을 먹었거나 말거나 간에.

요즘도 어떻게 하면 맹자에 한 번 걸쳐서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해 볼까 하는 이들이 많다. 얼마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맹자]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서도 맹자는 단골로 인용되는데 내가 알기로 유시민, 정동영, 정몽준 같은 유명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구의원이나 시의원들도 맹자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태도를 정당화한 적이 있다. 효과는 그리 신통찮은 듯하다. 대부분 [맹자]를 엉뚱한 뜻으로 곡해하거나 한자를 잘못 쓰는 등 제대로 읽지 않은 티가 나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명박 대통령이 맹자에 나오는 말이라면서 “두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선, 인용한 구절은 맹자가 아니라 [주역]에 나오는 말일뿐더러 내용 또한 소통 부재의 이명박 대통령이 인용할 만한 구절이 아니다.

또 표절작가 전여옥씨는 [일본은 없다]가 표절로 판결나자 심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맹자를 인용하면서 “하늘은 장차 큰일을 할 사람에게 반드시 시련을 안겨준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스스로 표절이라는 죄악을 저지른 자가 그것이 하늘이 내린 시련이라고 둘러대니 진짜 동문서답하고 앉았다고 할 수밖에. 대체 자신의 표절을 억울한 시련으로 여기는 그런 자가 저지를 ‘큰일’이란 게 뭘까? 그에게 꼭 어울리는 말을 맹자가 이미 하긴 했다.

맹자 왈
“사람 같지 않은 짓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일 수 있겠는가?(不恥不若人 何若人有)”

전호근(민족의학연구원) / admin@ad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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