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 프리단(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4. <여성성의 신화>, 베티 프리단(下)

“두려움을 떨치고, 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변화로 나서자 ”

 

김은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 프로이트와 마거릿 미드를 비판하다

 

“프로이트의 사상은 교육받은 현대 미국 여성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또 다른 초자아를 만들었다. 바로 여성들로 하여금 과거의 이미지에 사로잡히게 하고, 여성의 선택과 성장을 방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게 하는 새로운 ‘당위성’의 폭정이었다.”

 

그렇다면 이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베티 프리단은 미디어의 영향력을 짚으며, 대부분 남자로 이루어진 여성 잡지 편집자가 행복한 가정주부의 이미지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선전하고 전파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화 형성에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은 학계의 이론이었다. 프리단은 특히 대학교육의 교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 명의 사상가를 겨누어 비판한다. 그 두 사상가는 지크문트 프로이드와 마거릿 미드이다.

페미니즘 운동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중반까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고, 과학 교육 민주주의 정신에 의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편견의 이론적 근거를 프로이트주의로 삼기 시작한다. 프로이트 심리학은 여성 해방 운동 이데올로기의 한 부분이고, 해방된 여성의 관념에 기여했기에, 여성들은 오래된 굴레를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몬느 드 보부아르(1908. 01. 09 – 1986. 04. 14)도 지적하듯이, 프로이트의 이론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권위를 부여하여 여성의 본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베티 프리단은 『여성성의 신화』에서 프로이트 이론의 시공간적 한계를 지적하며, 그 이론을 상대화할 것을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여성성의 본질에 남근 선망(penis envy)이라는 이름붙인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빅토리아 시대의 빈이라는 지역에서 계급적으로는 중상층 여성 환자를 남성의 시선에서 관찰한 산물이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은 실제로 그가 왜 그런 식으로 그 시대의 여성을 진단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무비판적으로 프로이트가 설명한 여성성을 마치, 초시공간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프로이트가 보편적인 인간성의 특질로 묘사했던 것은 19세기말 어느 유럽 중산층 남자와 여자의 특성”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프로이트 이론의 주요한 전제가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안나 프로이트에 따르면, 프로이트가 자라난 가정 환경에서 그의 어머니는 아름다웠고 자기 나이보다 두 배나 많은 남자와 결혼하여 평생 복종하며 살았다.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유대 집안의 독재적 권위로 집안을 다스린다. 프로이트의 어머니는 이러한 환경에서 첫 아들 지크문트를 특별히 사랑한다. 프로이트 역시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를 질투했던 경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부른다. 프로이트 자신이 어머니의 태양이기에, 프로이트의 욕망에 따라 집안은 배치된다. 누이의 피아노 연습 소리가 연구 방해된다고 투덜거린 후, 피아노가 치워지고 음악가의 꿈을 소망한 누이의 기회는 사라진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상황을 여성의 입장으로 보지 않고, 남자의 지배를 받는 것을 여성의 본성으로 여긴다. 프로이트의 부인인 마르타 역시, 그의 소망대로 사랑스런 어린아이와 같이 자랐고, 그러기에 프로이트가 결혼한다. 그는 배우자의 미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젊고 귀여운 애인, 언제가지나 늙지 않고 한주 정도만 늙은 것 같아야 하며, 모든 신랄함의 흔적을 재빨리 지울 수 있는 여성”이어야 한다. 결국 프로이트의 이론은 소년의 눈으로 시작되어 결국엔 남자의 눈으로만 설명되는 것이다.

프리단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미국에서 프로이트 이론의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까닭에 관해, 현실에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쉬운 해결책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상 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로이트 심리학은 인간의 이상행동에 대한 분석의 틀 그리고 전쟁의 상흔이 빚어낸 고통에 대한 치유로 제시되고, 문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는 안전한 도피 통로이자, 미국의 새로운 종교가 된다. 이에 따라 여성성의 신화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판단이나 대중잡지를 통해 미국 여성의 생활”에 파고든다. 과학적 종교인 프로이트의 이론은 여성의 역할에 관한 이론의 근거로 자리 잡고 ‘여성성의 신화’를 공고히 하면서, 여성을 그 스스로는 미래를 개척할 수 없는 가부장제에게 보호받아야 할 유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단정한다.

프리단은 마거릿 미드 역시 문화 인류학을 프로이트 이론의 틀에 끼워 맞추어 연구했다는 점에서 비판한다. 마거릿 미드는 “왜 우리는 기술이 발달했는데도 미국의 여성들은 석기 시대로 후퇴하는가”라는 의문을 품는 글을 신문에 실지만, 본인의 저작이 그러한 풍토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미드는 인류학 연구의 성과를 통해 프로이트 이론을 보편인류의 특성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일조하고, 남성성과 여성성의 기원을 성립시킨다. 생산성의 측면을 남성적인 것, 자궁을 수동적 수용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즉, 미드는 현대의 상태나 과거 상태를 당위적 상태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프리단은 미드의 이론을 비판하며, 아기를 갖는 것이 인간성의 성취의 절정이고, 생식이 인간 생활의 중요하고 유일한 것이라면, 왜 자궁 숭배가 없는지 되묻는다.

프로이트의 여성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마거릿 미드의 관점을 잘못 받아들인 결과, 50-60년대 미국 여성의 이미지는 한정적인 협소한 틀거리 안에 갇히고 말았다. 교육자들은 이러한 이미지가 ‘정상적인 여성상’이라고 말하며 여학생들 에게 천체를 관찰하거나 새로운 과학 기술을 개발하라고 격려하는 대신에 좋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도록 교육한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고 다양한 삶의 기회를 스스로 제한하는 결과를 맞는다.

 

  • 가정이라는 이름의 안락한 포로수용소

 

결국 이러한 신화는 미디어가 아름답게 포장하는 안락한 미국 중산층 가정이라는 이상적 이미지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프리단은 이 가정을 안락한 포로수용소라고 주장한다. 가정을 포로 수용소로 설명하는 이유는 실제로 포로수용소에 갇힌 사람들과 가정 주부가 유사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단은 “정신 분석자이자 교육심리학자인 브루노 베텔하임이 1939년 다하우 집단수용소와 부겐발트 집단 수용소에서 죄수로 수감되어 있을 때 했던 연구”를 언급한다.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수감자는 수용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죽음에도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포로 수용소는 수감자들을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도록 강요하고 개성을 포기하도록 하면서 특성이 없는 존재로만 살아가도록 강요한다. 수용소는 수감자에게 수용소 세계만을 유일한 현실로 만들고 원초적인 육체적 욕구만을 충족시키도록 한다. 이로 인해, 수감자들은 스스로 결정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잊어버린다. 이 조건은 미국 주부들에게 자아 정체성 상실시키는 조건과 비슷하다.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주부들도 새로운 상황에 대항하는 능력이 사라지면서, 수동적인 존재로만 머물면서 주체적 의식을 갖지 않는다. 이는 약한 자아만을 유지한 채 관계성에서 단절된 이기심에 곧장 빠질 뿐 아니라, 적극적인 목적이나 야망, 이익을 잊어버리고 추상적인 사고에 대한 무력하며, 바깥세상을 향한 활동에서 후퇴한다.

또한, 베티 프리단은 50-60년대 아이들의 정서장애가 증가하는 현상과 가정이란 포로수용소에 갇힌 주부들의 상관관계를 지적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어린이 가 여성성의 신화에 의해 무기력해진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상호파괴적인 공생으로 나아가고, 이는 다시 여성성의 신화를 통해 악순환으로 구축된다. 특히 소녀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소녀들은 학교와 현실에서 치루는 시험을 기피하고, 결혼하면 결국엔 진정한 목적과 만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에 순응하면서 이른 나이에 결혼하도록 선동하는 사회에 따른다. 소녀들은 어린애 수준에 멈춘 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이러한 어머니에게 자라난 아이 역시 개성을 갖춘 존재로 자라기 보다는 환상 속으로 머물 뿐 아니라, 그 딸 역시 또 다시 최악의 희생자가 된다. 프리단은 다음과 같은 예시를 제시한다. 남들 보기에 번듯하고 부유한 삶을 살며 남편이 대기업의 높은 직위에 있는 가정 주부는 딸을 자신에게 수동적으로 의존하게 하고 자기와 동일시하게 만든다. 남편은 바쁘다는 명목하에 사회적 지위와 자신의 직업적 성취에 몰두할 뿐이다. 그럴수록 가정주부는 아이들의 삶에 집착하고, 특히 이 주부에게 딸은 일종의 사물, 즉 또 다른 자아 의탁의 대상에 불과하다.

“가장 나쁜 것은 제가 제 배로 낳은 아이들을 질투한다는 것입니다. 전 아이들을 미워합니다. 아이들에겐 앞으로 자기들의 삶이 있지만, 전 이미 끝나버렸기 때문입니다.”

프리단은 이렇게 수동적인 의존에 갇힌 주부와 아이들 사이에 통제할 수 없는 폭력이 증가하는 징조를 목격한다. 해결책은 어머니들에게 아이들을 더 사랑하라고 촉구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여성들로 하여금 가정과 아이들에게 완전히 헌신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여성성의 신화의 역설을 직시하게 해야 한다. 또 한 여성들이 더 여성적이 되도록 촉구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이는 아이들과의 관계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아이를 더 수동적으로 성장시키는 의존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여성이 자기 능력을 완전히 사용하도록 사회는 용인해야 하며, 여성이 완전한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이는 오로지 여성성의 신화를 일소함으로써만 가능하다. 프리단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성은 남성의 성적인 존재이자, 자식의 어머니로서만 존재할 수 없다. 남편이나 아들을 통해 삶의 목적을 이루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이 필요하다. 이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풍기는 병적 징후로부터 벗어나는 첫 걸음이 된다.

 

  • 주입된 여성성에서 벗어나, 2세대 페미니즘의 포문을 열다

 

프리단이 『여성성의 신화』에서 전달한 메시지는 여성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1966년 폴리 머레이, 케이틀린 클라렌바흐, 도로시 헤너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30명의 여성들이 전미여성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NOW)를 설립한다. 창립 멤버중 한 명인 프리단은 NOW의 창립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이 창립 선언문은 “모든 여성을 위한 진정한 평등”을 요청하고, “평등하고도 경제적인 성장”에 대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프리단은 미국 최대의 여성운동 단체인 전미여성기구(NOW)를 비롯, 전미낙태권행동리그(NARA), 전미여성정치회의(NWP)의 창립자가 되어, 낙태, 출산 휴가권, 승진과 보수에서의 남녀평등을 위한 운동을 펼친다. 『여성성의 신화』의 저 자에서 더 나아가 페미니즘 운동가로서 베티 프리단은 우뚝 서면서, 직장에서의 성차별 폐지와 임신중단권 운동,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 운동, 여성의 권리 향상 운동 등을 펼친다.

베티 프리단 덕분에 정치인들이 여성의 불만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1963년 여성의 상태를 검토하기 위하여 임명된 위원회는 불평등의 종식을 건의한다. 이에 대한 입법이 뒤따랐으며, 1963년에 디 이퀄 페이 액트 오브 1963(The Equal Pay Act of 1963, 1963년 임금 평등법)은 여성은 동일 노동에 대해서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는다고 명시한다. 프리단의 문제제기는 성평등적 교육 확대와 직장 내 법 ·제도 개선으로까지 이어져 여성의 사회진출을 늘이는 데 이바지한다.

NOW의 전 의장이기도 한 킴 간디는 프리단의 책에 관해, “삶의 실질적인 다른 무언가를 꿈꾸던 여성의 사고를 열어주었으며, 그런 생각들을 비밀스럽게 숨기고 살아온 여성들에게 자신 외의 다른 여성들도 더 나은 삶을 꿈꾼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평가한다.

제2물결 페미니즘의 파도의 제일 높은 마루에 있는 나우는 미국 여성운동의 역사와 함께 한다. 나우의 활동가인 테리 오닐은 미즈와의 인터뷰에서 “나우는 항상 다양한 중요한 이슈의 현장에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다”면서 “페미니즘이 미국의 규범(norm)이 되도록 돕는 역할”이라고 말한다. 나우는 미국에서 연방대법원이 헌법에 의해 낙태를 처음 인정했던 1973년 ‘로우 대 웨이드’와 ‘도우 대 볼튼’ 소송 현장뿐만 아니라, 1975년 신용기회균등법, 1978년의 강간피해자보호법과 임신차별금지법 등 중요한 양성평등 헌법수정안(ERA)의 법안 통과의 자리에 함께 한다. 1986년부터는 여성의 재생산권 확보를 위한 운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다른 여성단체들과 연합하여 매년 3월 미 전역에서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3월 여성 인권을 위한 행진’을 조직한다.

또한 나우는 1971년엔 성소수자(LGBT) 지원을 공식 발표하며 성소수자 인권 투쟁을 공식 선언한 첫 단체이기도 하다. 나우는 여성운동을 위한 전국 조직 결성을 최초로 시도한다. 중앙 조직이 지침을 결정하고 각 지역 지부들이 나우를 지원한다. 이러한 방식은 자연스럽게 전국으로 여성운동이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다. “지역의 활동(actions)이 운동(movements)을 만든다”고 설명할 수 있는 이 방식의 성과로, 오늘날 나우는 50개 주 전역에 500개 이상의 지역 및 대학 지부를 두고 있다.

 

  • 여성성의 신화의 성과와 그 이후

 

“역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앨빈 토플러

“이 책은 1963년 현대 여성운동에 봉화를 올림으로써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사 회조직을 영구히 바꿔버렸다” -뉴욕 타임즈, 베티 프리단 부고 기사 중-

사회가 여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여성들을 인간이기 이전에 ‘여성’으로 만들고 억압하는지 밝혀낸 『여성성의 신화』는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논픽션 책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여성 운동의 선구자였지만 프리단에게도 일정 한계가 존재한다. 프리단은 『미즈』(MS)를 창립한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끄나풀이며 미모를 무기로 여성운동을 독식하는 스타 페미니스트’라 공격할 뿐 아니라, 레즈비언 페미니즘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급진적인 여성 운동가 수잔 브라운 밀러는 그를 ‘가망 없는 부르주아’로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그의 이론과 행동은 가정과 직장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수퍼우먼’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적이다. 인종, 성적 지향성, 계급 등의 여성 내부의 차이를 무시하고 프리단 자신과 유사한 여성들의 문제에만 착목한다는 점에서 ‘중산층 백인여성 중심’의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는 1981년 저서인 『두 번째 단계』에서 『여성성의 신화』가 가정과 가족에 대해 너무 신랄한 분석을 했다는 비판을 수용하기도 한다. 그는 이 저서에서 “우리의 실패는 가정에 대한 우리의 간과에 있다”고 서술하여 자신의 첫 번째 저서의 주장을 뒤집기도 한다. 더 나이가 든 뒤에는 건강과 젊음에 몰두하면서 페미니즘을 등진 채 노인 문제를 다룬 책 『노년의 샘』(1993)을 쓰면서 죽음에 대한 혐오, 젊게 사는 비법을 전파하기도 하면서 논쟁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는 출간 이후 다양한 논의 를 끌어냈을 뿐 아니라, 그 영향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국어판 해제를 쓴 여성학연구자 정희진은 다음과 같이 쓴다.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5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성성의 신화』는 지구상 ‘모든’ 여성들이 교육, 법, 고용, 경제적 지위 등 공적 영역에서 평등을 획득하는 ‘그날’까지 유효하다. … 이 시대 여성들의 근본적 고민은 여전히 남성과의 불평등 때문이다. 단지 ‘선택’이 다양해졌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를 출발선에 다시 세운다.”

프리단의 이후 행적과 상관 없이 『여성성의 신화』는 이름 붙일 수 없던 여성들의 문제를 해명하고, 페미니즘 운동의 방향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변하지 않는다.

 

  • 2회에 걸쳐 연재된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는 여기까지 입니다.
  • 다음으로는 마사 누스바움의 책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0.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下)

 

이지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 프로이드의 오해와 진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권력 구조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와 착취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한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가진 억압이자 모든 억압의 근본 구조이다. 따라서 노동, 인종, 동성애자 등의 소수자 억압의 문제는 먼저 여성 억압의 문제가 해결될 때에만 참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파이어스톤은 그 장구한 시간 동안 여성이 남성에 지배를 받아온 장소인 ‘가족’을 먼저 탐색한다. 그는 치명적 오류에도 불하고 프로이드가 이전까지 누구도 보지 못했던 진실을 파악한 사상가임에는 틀림없다고 추켜세운다. 프로이드는 마침내 성sex 즉 섹슈얼리티가 인간 삶의 핵심적 문제임을 파악해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드가 아들과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쟁탈전을 다룬 ‘가족 극장’을 문명화의 본질 동력으로 보고 심리학의 측면에서 이를 다룬 것은 완전하게 헛다리짚은 것이다. 이는 문명의 본질 동력도 아니며 원본능의 심층 심리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권력’의 문제다. 가부장적 가족 및 사회 안에서 작동하며 행사되는 ‘권력’의 사회 맥락 문제다.프로이드는 이것을 보지 못했다.

아들은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경쟁하다 힘센 아버지가 사랑의 도구인 페니스를 거세하리라는 거세 공포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에로스적 사랑을 스스로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제 가족 안에서 아버지는 집안의 권력자이며 모두를 지배한다. 그는 가족들을 부양하는 대신 성을 포함하는 여성의 온갖 서비스, 자식들의 존경과 복종을 당연한 대가로 취한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을수록 더 무력해지며 남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은 더욱 심화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지배당하고 자주 학대당하는 어머니에 대한 깊은 애착을 거두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어머니의 감옥 같은 닫힌 세계를 벗어나 드넓고 자유로운 아버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를 외면한다. 아들은 어머니를 애처롭게 생각하지만 그녀를 벗어나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사람, 아버지의 분신이 되어야만 한다. 어머니 또한 아들을 딸보다 더 사랑한다. 아들에게 끌리는 에로스적 원본능 때문이 아니라 가족 밖 넓은 세계로의 진출을 애초에 사회 구조적으로 차단당한 딸은 자신의 답답한 운명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기 때문이다. 딸에겐 별다른 희망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들은 마침내 자유와 권력을 얻을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깊은 한숨과 오랜 고통에 대한 보상이자 대리 만족의 대상이다. 이것이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진실이다. 이와 같은 구조는 족외혼이 성립됨에 따라 강화된다. 종족의 여인이 아니라 다른 씨족의 여성을 사랑할 것. 여성은 교환되고 이성애는 공고화된다. 동성애가 병적인 것으로 진단받는 것은 프로이드의 진단처럼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족외혼의 이성애만을 정상으로 수용하고 강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부장적 가족은 여성 억압과 재생산의 핵심 도구이자 아동 및 성소수자 억압의 근원이다.

 

  • 아동 억압

 

가부장제 가족은 가족 밖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지배와 차별의 근원이다. Read more

슐라미스 파이어스톤(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9.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上)

 

이지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1960년대에 시작된 소위 ‘여성주의 제2 물결’을 대표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1945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유대인 부모의 여섯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몬태나주 캔자스시티에서 자라났다. 격동의 60년대에 워싱턴대학교를 졸업한 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Institute of Chicago)에서 회화를 공부하였다. 1960년대는 한국 전쟁 후 잠시 소강 상태를 보였던 동서 냉전이 다시 격렬해져 당시 소련과 미국 사이의 대립이 핵전쟁 불사의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던 시기였다. 특히 미국이 주도했던 베트남 전쟁은 60년대 내내 미국을 괴롭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냉전의 위협과 길고긴 전쟁에 회의감을 느낀 청년세대는 기성 세대의 권위주의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새로운 청년 문화를 형성했다. 68운동, 프라하의 봄, 반전 운동, 인권 운동, 흑인 해방 운동, 학생 운동에서 우드스톡 페스티벌로 대표되는 히피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양상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20대를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보내며 학생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던 경험은 파이어스톤으로 하여금 모든 사회 문제 중에서 ‘페미니즘의 문제를 여성들의 최우선적 과제로 볼 뿐 아니라 더 큰 혁명적 분석에 있어서도 가장 중심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으로 이끌었다.

이 시대 서구의 젊은 여성들은 여타 사회 운동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모든 사회 운동에서 여성 문제는 주변부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당하거나 더 나쁘게는 “여성”에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외면당했던 것이다. 예컨대 “자신의 억압을 중심으로 하는 풀뿌리 운동 조직, 피 흘리는 대중에 기반할 필요성, 지도력과 권력 놀음의 종식”을 내세웠던 흑인 운동조차도 이 중요 원칙을 여성들에겐 적용하지 않았다. 흑인 운동에서 흑인 여성은 단지 보조자였고, 발언권이 적거나 없었으며, 흑인 남성들은 흑인 여성 위에 군림하고 명령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억압받고 있었기 때문에 억압받는 이들의 처지에 누구보다도 크게 공감하고 이들의 해방 운동에 헌신할 수 있었으나 그 운동들은 정작 여성 자신의 해방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파이어스톤의 기념비적 저작 『성의 변증법』에 잘 녹아있으며 이 책의 근본 정신의 토대를 형성했다.

 

  • 페미니즘 제 1물결,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넘어 여성 억압의 본질적 구조로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 서두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성적 계급(class)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그것은 약간의 개혁이나 여성의 노동 세력으로의 완전한 통합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피상적 불평등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파이어스톤은 여성을 하나의 계급이라고 선언한다. 여성의 억압에서의 해방은 약간의 개혁 즉 파이어스톤 당대까지 지속되었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슬로건이라 할 수 있는 “남성과 동등한 법적 대우를, 여성에게 참정권, 취업권, 재산권을!”이라는 슬로건의 실현으로 쟁취될 수 없는 것이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대표적 실천 운동으로 손꼽을 수 있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남성과 동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법적 권리, 교육의 기회 등이 주어져야 하며 이에 따른 결과로 남성과 동등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의 문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세기 서구에서 시작된 이들의 희생적 실천 운동이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으나 이들은 남성을 인간의 이상적 기준으로 생각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참정권 등이 실현되자 여성 운동은 1960년대가 오기까지 오랜 침묵의 시간을 맞게 된다. 여성은 남성의 정치 운동의 부수적 역할을 맡아 남성 기득권 강화에 기여하거나, 여성의 직업으로 특화된 남성 보조적인 하위 직업에 종사하며 착취당하거나, 가정에서 어머니 모성의 가치 있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분투하면서 갈팡질팡했다. 앞서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예를 들어 살펴보았듯 여성이 참정권 등을 얻고 고등 교육을 받게 되었다고 해서 여성의 지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법적 지위의 문제와 무관하게 일상의 모든 곳에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는 여성 억압은 정치, 사회, 문화 전방위적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파이어스톤은 이와 같은 사정이 이전 여성주의 운동이 여성 억압의 문제에 피상적으로 접근한 까닭이라고 파악한다. 여성 억압은 단지 이상적 지향점을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한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맑스-엥겔스가 그러했듯 변증법적 유물론의 과학적 분석 방식을 통해 억압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것이다. 파이어스톤은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에서 여성 억압의 문제를 다룬 것이 불충분한 시도였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를 ‘생산 양식과 교환 양식의 변화, 사회의 계급 분화와 계급간의 투쟁’을 통해서 설명하면서 여성의 억압에는 이런 경제적 여과기라는 틀에 걸맞는 방식을 통해서만 접근했던 것이다. 지배 계급과 노동 계급, 이들 두 계급의 투쟁사라는 역사 분석은 불충분하다. 이 기저에 존재하는 것은 남성 계급과 여성 계급 사이에 존재하는 지배와 착취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억압의 역사다. 따라서 다만 여성이 노동의 전면에 나서고 온갖 법적 권리를 얻는다고 해서 여성의 진정한 해방이 올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 생물학적 조건, 생식능력과 육아

 

노동 계급에 대한 착취보다 오래되고 고질적인 것은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다. 이것은 남성 계급과 여성 계급의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한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생물학적 차이, 아이를 임신하기 위한 기관 발달이 무력을 약화시키고 임신과 육아의 긴 시간 더욱 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 자연적 사실이 인간 최초의 불평등 구조의 핵심이다. 이러한 기능의 차이는 여성의 생식 능력을 숭배하는 드믄 곳에서조차 남성의 여성 착취와 지배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 생물학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한 가족에는 이처럼 자연 본질적 불평등한 힘의 분배가 내재해 있다. 남성과 여성의 자연적 생식 차이는 모든 계급 제도의 전형이자 최초의 노동 분업의 형태이다. 또 맑스-엥겔스가 파악한 인간의 역사로서의 노동 계급과 지배 계급의 투쟁의 역사, 그 악의 근원인 사유 재산 제도의 자연적 근거이자 권력욕의 근원이다.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에서의 해방 없이 여성의 진정한 해방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평등, 해방은 불가능한 꿈인 것이다.

생물학적 힘의 불균형이 여성의 필연적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물리적 힘의 지배를 그대로 수용하는 동물이 아니란 점에서 지당한 것이다. 인간은 정의(justice), 도덕 관념과 자연 과학의 발전을 통해 동물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벗어나는 길을 걸어왔다. 만일 물리적 힘의 지배라는 자연의 질서를 그대로 옳음으로 수용하고 그것이 곧 정의였다면 인간은 여전히 노예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자연의 잔혹한 질서의 인간적 개편에 자연 과학의 발전이 엄청난 기여를 해왔다는 것은 맑스-엥겔스의 유물 사관의 하부-상부 구조의 변화 분석 또한 입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맑스-엥겔스가 그들의 불충분한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통해 인간의 해방을 위해 생산 수단의 노동 계급의 점유를 말했던 것처럼 여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생식 수단을 여성이 완전히 점유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