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언어와 분석철학의 전통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일상언어와 분석철학의 전통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내가 철학을 처음 배우던 시절에는 한국 사회의 80년 대 분위기 때문에 주로 헤겔 마르크스의 철학이 주도했다. 처음에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이 들어왔고, 다음에는 시대와 현실을 담은 헤겔 철학이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변혁 철학의 심장과 브레인 역할을 하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철학이 한 시대를 휘어 잡았다. 이런 시대 분위기에서 영미권의 분석 철학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반 시대적이어서 특별히 관심 있는 학생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외면 당했다. 비판적 합리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K. 포퍼의 철학 조차도 완전히 무시당했다. 하지만 대학원에 들어가서 내가 배운 철학은 프레게와 러셀과 논리실증주의자 그리고 전후기 비트겐슈타인 등이었다. 이들 철학은 일단 분석적이고 명쾌해서 접근하기가 쉬웠다. 덕분에 나도 석사 3학기 때 까지는 비트겐슈타인 후기 철학을 가지고 논문을 쓸까 고민을 했었다.

분석 철학은 영미 철학의 전통에서 성장한 철학이다. 영국의 경험론은 대체로 반 형이상학적이고 반목적론적이었다. 대륙의 합리론자들이 실체가 무엇이고, 그것이 하나인지 둘인지 아니면 라이프니츠 처럼 수도 없이 많다고 하는 지를 가지고 논쟁을 했다. 로크는 적어도 우리 정신 밖의 실체인 X를 인정했지만, 그것이 무엇인 지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의 입장을 취했다. 버클리는 그것을 지각적 표상으로 환원했다. 그의 유명한 “존재는 지각이다”는 명제가 그것을 말해준다. 데이비드 흄에 오면 이런 실체는 단순히 인상들의 다발로 간주된다. 불멸의 영혼이라는 실체는 감각의 다발이고, 뉴턴의 기계론적 인과법칙도 반복적 습관에서 이루어지는 연상의 법칙으로 주관화된다. 이런 면에서 데이비드 흄은 근대 경험론이 갈 수 있는 막다른 골목까지 간 셈이다. 20 세기의 ‘논리 실증주의’는 흄의 20세기 버젼이나 다름 없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역할을 언어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애매하고 모호한 말들로 인해 철학의 문제들이 생긴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추방한다면 철학의 전통적인 문제들도 해결될 것으로 보았다. 그의 정신을 추종한 비엔나 써클은 세상에는 단 두 가지의 명제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의미있는 명제’와 ‘의미없는 명제’가 그렇다. 수학과 논리학의 명제들, 그리고 경험적 검증이 가능한 명제들이 전자에 속하고, 가치 명제나 형이상학적 명제는 논리적인 명제도 아니고 경험적으로 검증이 되는 명제도 아니기 때문에 후자에 속한다. 비엔나 써클의 철학자들은 검증이론(verification theory)의 이러한 분석을 통해 철학의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러한 도발적인 주장들이 철학적 문제들을 다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이 끼친 공로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엔나 써클의 일원인 루돌프 카르납은 그 당시 대단히 떠 받들어졌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모호하고 애매한 명제들을 하나 하나 까 뒤집으면서 분석 비판을 시도한 적이 있다. 철학을 형이상학의 모호한 구름 위에서 지상의 밝은 빛 한 가운데로 끌고 내려오려 한 것이다. 물론 형이상학의 전 체계를 낱낱의 명제들로 해체해서 명제 단위로 비판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하지만 카르납의 작업은 적어도 비판적 언어 철학이 가야 할 길을 보여준 셈이다. 이런 전통이 미국으로 건너가 분석 철학의 초석을 만들었다.

<트락타투스>(Logico-Tractatus)에 나타난 청년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론’은 언어와 세계의 대응을 통해 명제의 의미를 단순화 시켰다. 반면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에서 일상 언어의 문맥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의 쓰임을 통해 언어의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저항이 없으면 더 빨리 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진공 상태를 가정했는데, 오히려 더 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들은 대륙의 철학자들처럼 사변의 전체로 얽혀 있지 않고, 일상 속에 살아 있는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만큼 이해하기 쉽고 철학적 작업이 무엇인 지를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삶과 현실에서 유리된 추상 개념들을 현란하게 구사해야지만 철학을 하는 거라는 전통 철학의 모호한 환상을 확실하게 깨버린 것이다.

내가 헤겔 마르크스의 철학을 할 때는 이데올로기 비판의 차원에서 영미권의 분석 철학을 무조건 백안시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일상 언어에 기초한 에세이 철학을 하면서 분석 철학의 정신, 그들이 사용하는 일상 언어, 삶에 기초한 철학 등과 같은 분석 철학의 정신이 에세이 철학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철학의 정신을 살려서 삶과 시대의 문제를 해석하고자 한다면 굳이 대륙권 인가 영미권 인가의 구분도 무색해질 수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미권의 철학에서 헤겔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헤겔 철학에 대한 논문과 연구서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다. 분석 철학의 한계를 대륙 철학의 정신을 받아들여 돌파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가 있다. 독일 철학 역시 하버마스 이래로 어중쩡한 포지션 때문에 새로운 철학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영미권의 철학에 대해 적극 관심을 보이는 철학자들도 적지 않다.

우리가 고정된 하나의 길만 고집하려는 것은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한 한계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른다. 형이상학자들이 믿는 전통적인 명제 하나가 있다. 화엄의 인드라 망처럼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는 하나이지만, 그것에 이르는 길은 여럿이다.”라는 명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본다면 진리는 그것을 어떤 길로 어떻게 접근하느 냐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한계를 인정한다면 동과 서, 그리고 고금의 벽을 얼마든지 벗어 던지고 철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자와 장자가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부활하고, 화엄과 주역의 존재론이 양자역학과 대화하고, 분석적 정신과 종합적 정신이 동양의 음양의 관계처럼 대대 관계를 이루어 하나의 방법론을 구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의 딱정벌레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의 딱정벌레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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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른바 선사들이 토굴 속에서 수년 동안 참선을 하면서 마침내 무언가 깨달았다고 할 때 그것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오랜 수행 끝에 그들이 우주 만물의 통일적 원리인지 혹은 삶의 궁극의 원리인지를 발견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들이 치열한 수행 끝에 강렬한 확신이나 체험을 얻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의 생각일 뿐 그것 자체가 보편화되고 객관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사적 체험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깨달음을 판정해 주는 구루(Guru)가 있다고 해도, 그 구루가 깨달은 자(Buddha)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구루가 깨달은 자라는 것을 다른 구루가 판정해 준다고 하자. 하지만 이런 물음을 제기하다 보면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나타나는 ‘제3자 논변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근거 지우는 것을 새롭게 근거 짓는 것의 무한 퇴행 문제이다. 결국 유한자들에서 무한자이자 궁극적 해결사인 신에 이를 때는 일종의 근거 지움이 아니라 점핑(jumping)이 일어난다.

비트겐슈타인의 ‘딱정벌레’도 비슷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자기 만이 상자 속의 딱정벌레를 보았다고 하지만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딱정벌레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 각각이 보았다는 말을 최종적으로 근거지울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사실 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은 빼어난 저서들이나 과학적 발견들을 통해 자신들의 궁극의 연구 결과를 보여줄 수 있고, 예술가들도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그리고 기술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생산한 기술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깨침을 상징하는 상자 속의 딱정벌레는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백분 양보를 해서 그런 깨달음의 존재에 대해 인정도 하지 않고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그런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치열한 수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만은 엄연한 ‘팩트’로 인정을 한다. 그런데 이런 팩트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똑같이 한다. 이를테면 최고의 경지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운동선수들도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노력을 하는 것이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예술가도 그렇고, 문자를 통해 최고의 작품을 쓰고자 하는 학자의 경우들도 마찬가지다.

깨친 자의 깨달음에 심오한 형이상학적 원리에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한 자들이 갖는 신비감이고 그릇된 신앙일 뿐이다. 때문에 깨달음을 가장한 자들이 몽매한 대중들을 데리고 사기 치는 경우는 역사에서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이런 오류나 그릇된 믿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 혹은 궁극의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깨달음이 진정 무엇인가?”라는 절박한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이를테면 “도道가 무엇인가?” “부처가 무엇인가?”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등 특정한 문제를 가지고 싸울 수도 있고, 만공 스님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처럼 오직 하나(一)를 잡을 수도 있고, 아예 그도 저도 아닌 ‘이 모꼬?’와 같이 무자화두(無字話頭)를 가지고도 수행 정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물음들이 도달하는 것이 무엇일까? 무나 도가 실체가 없듯, 깨달음의 실체도 없고 내용도 따로 없다. 칸트가 현상을 초월한 물자체(Ding an sich)의 세계를 말했지만, 도대체 현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본질이 어디에 있고, 본질을 담지 않은 현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장막 뒤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고 들추어 보지만 그저 어둠뿐이 없는 것이다. 현상과 본질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깨달음과 일상도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불교의 언어로 말하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는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 /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240000,37&pageNo=1_1_1_0

부처가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은 것이 무얼까? 나는 아주 단순하다고 본다. 부처는 생(生) 속에 담긴 고(苦)를 본 것이고,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해탈)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통찰과 깨달음은 너무나 단순한 것이다. 이 단순한 통찰과 단순한 해법을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때문에 부처는 입적을 할 때 자신이 평생 설법한 8만 법문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예수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가 산상수훈에서 던졌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일까?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단순하다. 예수의 메시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그저 ‘사랑’이란 말이다. 구약이 ‘정의’를 세우고자 했다면 예수로부터 시작하는 신약은 ‘사랑’이 알파요 오메가이다. 사랑만이 우리가 삶을 지속할 이유이고,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이 사랑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양의 공자의 정신도 그리 복잡할 것 없다. 공자가 말한 인(仁)은 부처가 말한 자비와 예수의 사랑과 표현 언어는 달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베풂과 보살핌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고, 우주 만물에까지 확장을 한다고 하면 생육의 도와 다르지가 않다. 남송의 주자는 리(理) 가 우주 만물의 원리라고 하는 태극도설(太極圖說)을 끌고 들어와 공자의 말씀을 형이상학의 차원으로 체계화해서 성리학을 세웠다. 조선의 선비들은 오로지 그것만이 공자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했지만 그들은 공자의 말을 너무 번쇄하게 만들고 너무 추상화시켰을 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공자의 사상은 너무나 단순 명확한 인(仁)에 다 들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남을 내 몸처럼 생각하고, 나를 남들 속에서 보려고 하는 태도이다. 이것은 교양인이라면 누구든지 알 수 있고, 선한 마음을 갖는 자라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지극히 단순한 말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 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과 같다. 세분 성인의 말씀이 이처럼 단순 명확한 것은 그들 모두가 삶에서 진실을 끌어 올렸었고, 삶에 깊숙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석가나 예수, 그리고 공자와 같은 성인들이 말씀한 이 단순한 원리가 후대로 갈수록 복잡한 교리로 체계화되고 형이상학적 원리로 추상화되고, 신비한 언설로 간주돼 삶과 유리되고 만 것이다. 그런 필연적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참으로 본질을 볼 수 있어야지 똥폼이나 잡고 허접데기 껍데기만 붙잡고 있으면 되겠는가?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30121203900063sv

눈치(Noonchi)의 해석학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눈치(Noonchi)의 해석학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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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Noonchi)는 사태를 이해하는 한국인들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눈치가 없다’ 거나 ‘눈치가 빠르다’라는 말들은 거의 일상적으로 한국인들의 이해 방식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런 눈치가 과거에는 자기 검열의 방식이거나 처세술의 의미로서 부정적으로만 이해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상황 전체에 대한 빠른 인식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적극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이 ‘눈치’의 개념을 생각하다 보면 다양한 해석의 소지가 있다. 이 눈치를 한국적 해석학의 차원에서 해석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눈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고 나쁨이 아니라 ‘속도’이다. ‘눈치가 빠르다’라는 말이 그렇다.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서도 고기 맛을 본다’라는 말이 있다. 절(寺)은 채식을 하기 때문에 고기와는 거리가 먼 곳인데, 그런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 이 눈치다. 그런데 여기서 ‘빠르다’라고 할 때의 ‘속도’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눈치가 빠르면 그만큼 상황을 빨리 인식하고 그에 따른 후속적 대처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말하는 ‘빨리빨리’는 이제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말이 되었지만, 한국인들은 이 특유의 ‘빨리빨리’의 정신에 의해 식민지와 전쟁 폐허의 상황을 겪고서도 이렇게 빨리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한국인들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차이가 크다. ‘빨리빨리’의 문화를 반성하자는 말도 많지만, 이것은 디지털 시대에 더 잘 어울리는 정신이다.

뉴턴의 제2 운동 법칙인 f=ma에서 보듯, 가속도가 힘을 결정하는 주요 원인이다. 속도가 빠르면 일 처리도 빠르고 영향력도 클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그곳에서 인터넷 라인이 문제가 생겼거나 잘 달리던 차가 고장이 나서 A/S를 한 번 받으려면 얼마나 긴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한지 말이다. 한국의 배달 서비스는 분초를 다툰다. 물론 이것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의미다. 과거 칭기즈칸의 군대가 빠른 시간에 전 세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빠른 기동력에 있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을 오가는 그의 파발마는 하루 352km라는 상상 불가의 속도로 전달했고, 그의 군대의 이동 속도는 하루에 130km를 이동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현대의 군대들도 따라 잡지 못할 속도이다. 몽골의 기마병의 이동 속도는 너무나 빨라서 유럽의 기사들이 미처 대비책도 세우기 전에 순식간에 몰아쳐 헝가리 평원에서 유럽의 연합 기사단들을 전멸시켰다. 이로 인해 몽골 군대에 대해 유럽인들이 가졌던 공포나 트라우마는 대단했다. 그런데 내가 몽골에서 지내보며 알게 되었지만 이런 빠른 유전자들은 더는 몽골인들에게서가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빨리빨리’의 정신은 무엇보다 빠른 상황 판단, 즉 눈치가 빠를 때 가능하다. 그 점에서 눈치에서 속도가 갖는 긍정성의 의미가 더 크다.

이런 빠른 눈치가 때로는 자기검열과 차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눈치가 보인다’거나 ‘눈치를 준다’라는 의미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일종의 단절감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상대의 행동을 제어하는 차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이런 눈치를 남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심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눈치는 간주관적(intersubjective) 인식 방식의 하나인데, 눈치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눈치에서 ‘속도’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상호 간 혹은 다자 간의 관계에서 아주 미묘한 차이와 기미, 이를테면 눈빛 혹은 얼굴 표정, 미세한 손동작이나 발동작 혹은 헛기침같이 모든 행동거지들이 하나의 해석을 위한 메시지로 작동할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남들이 알아채기 힘든 것들 속에서 의미 있는 해석의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는 해석학자이고 기호학자이다. 반대로 그런 메시지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사람들 역시 상당한 고수라고 할 수 있다. SNS의 단추를 보면 그냥 ‘좋아요’라는 버튼 말고도 ‘웃겨요’ ‘멋져요’ 슬퍼요’ ‘화나요’ 같은 감정 신호를 보여주는 버튼이 있고, 최근에는 ‘힘내요’라는 버튼까지 추가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감정 신호를 담은 버튼을 많이 누르는데 어떤 이들은 절대 그것을 보여주지 않고 무조건 ‘좋아요’만 누르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싫어도 싫다고 하지 않는다. 일종의 포커페이스 같은 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상당한 고수라는 생각도 든다. 아예 잠행조차 하는 그런 보이지 않는 고수들이 SNS에는 의외로 많다.

그런데 마음을 감추고 눈치를 주지 않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모든 이를 무심코 평정하게 대하려면 무엇보다 내 마음이 평정해야 할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초연'(Gelassenheit)이란 개념이 이런 경지를 말할 수도 있다. 사물이나 인간들 간의 관계에서 특별히 어떤 마음을 내지 않고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개념은 ‘들어가기(Sicheinlassen)’와 ‘나가기(Sichlosslassen)’의 양면성을 띠고 있다. 전자를 ‘몰입’이라 하고, 후자를 ‘거리 두기’라고도 한다. 이 두 개념을 염두에 두면서 생각을 더 해 보자. 사물이건 인간이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해와 관심이 요구된다. 이러한 이해와 관심은 사랑과 증오, 거래와 배려 등 모든 관계에서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런 관심이 지나치다 보면 중독처럼 빠질 수도 있고, 집착처럼 상대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도하게 들어가는 것 혹은 몰입은 양자의 정상적 관계를 해칠 수도 있다. 스토커는 이런 거리 두기를 조절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장애라 할 수 있다.

나가기나 거리 두기는 이로부터 역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거리를 두다 보면 상대를 더 정확하게 볼 수도 있고 더 잘 이해를 할 수도 있다. 바둑에서도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 보는 경우가 그렇다. 예를 들어 자식의 미래를 걱정한 엄마가 아이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종종 부모 자식 간의 관계 혹은 무촌이라고 할 부부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지나치게 상대에 몰입할 때 나타난다. 이럴 때 상대와 반성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거리는 심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공간적 거리도 포함될 수 있다. 아무래도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면 덜 집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SNS가 발달해서 이런 공간적 거리 유지가 잘 안되는 데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들어가기와 나가기는 인간관계의 밸런스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개념이고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느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언급한 ’실천적 지혜‘(phronesis)에 해당한다. 

금강경에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곳 없는 곳에서 마음을 내다. 내 마음이 어떤 것에 머물다 보면 온갖 희로애락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런 마음이 가라앉는 곳, 무심의 경지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런 마음이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거나 놀이에 빠지거나 음악을 듣거나 할 때 내가 빠져 있는 그런 상태가 내 마음이 머물지 않은 곳이고 무심의 경지이다. 이런 마음에 희로애락이나 재물욕이나 권세욕이 개입되니까 집착도 생기고 고통도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마음을 키울 수 있을까? 한국인들의 눈치가 결코 간단한 개념이 아니다. 눈치가 빨라야 알 수 있다.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20602123804205zd

문제는 악의 평범성이 아니다!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문제는 악의 평범성이 아니다!

 

이종철(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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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성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학살자인 아이히만의 법정을 참관하고 내놓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본인이 유태인으로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아렌트 입장에서는 도대체 나치 전범들은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들이기에 그런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는가가 궁금했다. 아렌트는 이 법정을 참관하기 위해 한 학기 강의를 반납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법정 진술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나서 내놓은 진단은 너무나 평범했다. 아렌트는 유태인 학살과 같은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아이히만이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냥 이웃집에서 평범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 좋은 아저씨 같다고 했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대단히 가정적이고, 딸아이들 한 테는 좋은 아빠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여기서 아렌트가 내놓은 진단이 저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들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행동하다 보니 저런 범죄에 휩쓸리고,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은 것이다. 사고의 부재가 저런 엄청난 범죄를 야기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전혀 사고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렌트는 여기서 제대로 사고하지 않았다고, 말하자면 반성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를 하지 않다 보니 저런 행동을 했다고 덧붙인다. 아렌트가 여기서 도출한 ‘악의 평범성’은 나치의 행태에 대한 거의 고전적인 해석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젊은 시절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밑에서 철학을 공부한 명민한 학생이 보기에 나치에 부역한 그녀의 스승 하이데거가 별생각 없이 행동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철학자의 나라 독일, 유럽에서도 가장 지성적이라고 자부했던 독일의 국민이 과연 아무런 생각 없이, 비판적이거나 반성적인 사고를 하지 않아서 나치에 열광하고, 유태인 학살과 같은 인종 청소에 동조를 했단 말인가? 나는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진단이 틀렸다고 본다.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 없이 행동해서 저런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을 할 때도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파스칼의 말이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생각과 이성적 사고는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하는 종적인 차이(종차)이기도 하다. 그런 인간이 생각이 없이 행동했다는 말은 그 말의 의미를 백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적확한 진단이 아니다. 인간은 생각이 없이 행동하다가 범죄를 저지르고 악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기적 욕망에 휩쓸리고 도덕적인 판단과 행동을 이끌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도덕은 오래전 플라톤이 이야기했듯 인간을 구성하는 이성이나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사(military man) 들의 용기의 원천인 의지(will)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은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이성에 의해 자동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본능적인 감성과 욕구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전쟁터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싸움에 임하는 전사들의 용기와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길래 플라톤은 이성의 덕이 지혜이고, 절제가 욕구의 덕이라고 한 반면 의지의 덕은 전사들에게 요구되는 용기라고 말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 초판(1963) / 출처: 위키피디아

도덕적 행동을 의지에서 찾는 플라톤의 전통은 근대의 도덕 철학을 종합하고자 한 칸트에게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칸트는 ” 이 세계 안에서, 아니 그 밖에서조차 우리가 무제한적으로 선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선의지(Good will)뿐이다.”(도덕형이상학 원론)라고 말했다. 고대인들이 덕(virtue)이라고 간주했던 우수한 두뇌, 강인한 체력, 뛰어난 판단력 같은 것들도 그 밑에 선 의지가 깔려 있지 않다면 오히려 가장 큰 악덕이 될 수 있다. 빼어난 재능을 가진 자들이 가장 나쁜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예를 우리는 수도 없이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인들이 중시한 덕이 아니라 선한 의지만이 덕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그런데 이런 선 의지는 저절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보자. 밤에 산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부상을 당해 신음을 하고 있는 광경을 보자. 산길을 갈 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산짐승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다. 그런데 밤중에 산길에서 부상당한 사람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대부분은 머리끝이 솟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자기도 똑같이 저런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설 것이다. 이 경우 감성적 판단은 끊임없이 두려움을 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는 이성적인 판단에 따르더라도 이성은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합리적 행동이라고 자위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도덕적인 양심이 있는 사람은 두렵기도 하고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을 내가 구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선한 마음이 앞서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덕적 행동은 감정적 두려움과 이성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부상당한 사람을 돕는 것이다.

도덕이란 이처럼 전사들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의무감에 따라 행동하듯, 감정과 이성을 넘어서 마땅히 선의지(양심)가 명령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적 욕망을 나치가 대변하고 있고, 그들이 반대할 경우 닥칠 수 있는 불이익이 두려워서 나치에 동조하거나 적극적으로 부역 행위를 하는 데 있다. 그것은 결코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욕구와 합리적인 이유에 따른 행동인 것이다. 이런 행동에 대해 아렌트처럼 생각 없이 행동한 것이라고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단순화시킨다면 그것은 본질을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많은 학자들이 앵무새처럼 아렌트의 말을 반복하고 있을까? 정작 생각이 없다는 말,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은 학자들의 그런 태도에 있지 않을까?

아렌트가 말한 것과 다르게 ‘생각 없는 행동’이나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악은 단순히 선의 부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훨씬 더 이기적이고 교활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선과 악을 결단하는 삶의 매 순간에서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려는 선의지 와 그것을 관철시키려는 전사의 용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의지와 전사의 용기야말로 플라톤과 칸트가 강조해 마지않았던 도덕의 본질이고 도덕적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20527103113033qc

신영복 선생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의 해석에 대한 비판 2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신영복 선생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의 해석에 대한 비판 2

 

이종철(한철연 회원)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이 종철의 에세이 철학]에 실린 글을 저자의 동의를 얻어 소개합니다.

학學은 배움이고 탐구라는 의미에서 개별적인 것과 관련됩니다. 논어의 맨 앞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라는 구절에서도 학은 무수히 개별적인 것들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런 배움은 주로 외부 세계에 대한 경험이나 다른 저자들의 책에 대한 공부를 통해 얻는 것입니다. <논어>를 일관해서 학學은 배움의 과정이지 체계화된 학문(Wissenschaft)의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개별적인 배움의 의미를 이해 못 한다면 지식이나 경험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이고, 그런 수동적 경험은 최초의 경험에 대한 인상(impression)이나 지속에 대한 기억(memory)으로만 주어지지요. 근대의 경험론자들이 지식의 습득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백지상태'(tabla lassa)에서 경험을 통해 하나하나 쌓아 나가는 정도로 지식을 생각했지요. 이런 경험은 아무리 많이 쌓아도 그것이 보편적인 것에 대한 확실성을 부여하지는 못합니다.

반면 합리론자들은 경험 이전에 선험적으로(a priori)으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틀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이런 틀을 형이상학적인 것이라 배격할 수도 있겠지만, 인식 과정에서 우리는 일정한 개념적 틀이 없을 경우 이해와 인식을 하지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가 말하는 사思는 합리론자들이 말하는 인식의 틀이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칸트가 나중에 <순수이성비판>을 쓰면서 경험론자와 합리론자의 사유를 비판적으로 종합할 때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즉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고, 직관이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여기서 개념은 지성의 활동이고, 직관은 감성의 활동입니다.

이런 직관이 인식의 재료인데, 공자식으로 표현하면 외부 세계에 대한 배움이지요. 이런 배움이 없으면 아무리 30년 면벽을 해도 사유의 추상성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지요. 공자도 그와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전에 하루 종일 먹지 않고, 밤새 자지도 않고 생각해 보지만 이득이 없었고 역시 배우는 것만 못했다.” (논어, 위령공 30). 주자도 그런 의미에서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해석할 때 격을 사물(대상)에 다가가 그 이치를 탐구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가 성즉리(性卽理)라 했을 때의 리는 세계의 객관적 질서를 함축하지요. 이러한 태도는 실재론 혹은 객관주의로 볼 수 있지요. 반면 왕양명은 격자를 마음 심자를 바로잡는 것으로 이해해서 심즉리(心卽理)라고 했는데, 이는 심학 혹은 관념론이나 주관주의로 발전했지요. 아무튼 사는 이러한 리를 깨우치는 생각의 활동입니다.

다시 칸트와 공자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지요. 칸트에 따르면, 경험적 자료에 일정한 형식을 부여할 수 없으면 그것을 이해하기가 힘들고, 이러한 형식이나 개념도 인식의 개별적 소재들이나 배움이 없다면 그저 공허한 형식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가 말한 학과 사의 대비가 칸트에게서는 직관과 개념의 대비로 유추될 수 있지요. 그런데 신영복 선생은 이런 대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뜬금없이 실천 이야기를 끌어들이면서 반대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이론을 실천의 입장에서 일관되게 해석하려는 선생의 태도는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맥락과 상황을 무시한 채 무조건 실천의 잣대를 들이 대미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선생은 여기서 자신의 이런 실천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끌어온 내용을 인용합니다.

“자기의 경험적 사실을 곧 보편적 진리로 믿는 완강한 고집에서 나는 오히려 그 정수의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신의와 주체성의 일면을 발견합니다… 경험이 비록 일면적이고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갖는 것이긴 하나, 아직도 가치중립이라는 ‘인텔리의 안경’을 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경험을 인식의 기초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공고한 신념이 부러우며, 경험이라는 대지에 튼튼히 발 딛고 있는 그 생각의 ‘확실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경험 고집은 주체적 실천의 가장 믿음직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소 겪었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확실함과 애착은 어떠한 경우에도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저마다의 ‘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여기서 경험주의적 실천의 신의와 주체성을 인텔리들의 가치 중립보다 위에 놓고 이런 경험 고집을 주체적 실천의 가장 믿음직한 동력으로 생각하고 나아가서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진실’로까지 신뢰합니다. 이러한 선생의 생각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경험주의의 완고한 고집은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비판했듯 경험 추수주의에 빠질 수 있고, 공자식으로 말하면 ‘학이불사즉망’이고, 칸트식으로 말하면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blind)에 빠지”는 격이지요. 이들의 입장은 이론이나 생각이 없고 개념이 없을 경우에 빠지는 주관주의적 편견과 맹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점에서 공통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선생은 오히려 정 반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선생이 이렇게까지 잘못 생각한 데는 사思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를 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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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부를 할 때 혹은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컨셉이나 사유의 틀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참을 공부하거나 책을 읽어도 그 의미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선생은 어렸을 때 할아버지한테 제대로 배웠으면서도 감옥의 경험 속에서 오히려 정 반대로 곡해를 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책을 덮고 아무리 생각하거나 사유를 해도 남는 것이 없는 까닭은 아이에게 보편화시키는 개념적 틀이나 사유의 컨셉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지, 그냥 생각만 해서는 남는 것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지요. 선생의 이런 오류는 감옥에서 생각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 없는 한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선생의 이런 곡해는 일관되게 학이 경험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해주고, 사물이나 현상 상호 간에 맺고 있는 관계성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학을 특정한 문맥을 벗어나 사용할 때는 그런 의미를 띨 수가 있을지 몰라도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라는 말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지요.

거듭 지적하지만, 선생은 여기서 학을 학문의 체계, 체계적인 인식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학은 학이불사태망에서 처럼 공부를 해도 그것을 이해하게 해주는 개념적 사유의 틀이 없으면 어둡다(망)는 의미일 뿐입니다. 선생이 말하듯 관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은 단순히 공부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성과 사색을 통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사유의 형식이나 틀이 만들어져야만 가능한 것이지요. 사思는 개별적인 것에 대한 배움이 아니라 전체성과 통일성 혹은 맥락과 관계성에 대한 반성적이고 개념적인 이해이지요. 그런데 정 반대로 생각을 하다 보니 선생은 이론을 관념적으로만 생각하고 실천은 무조건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포이어바흐의 추상적 유물론에 대해 그것이 대상, 현실, 감성을 단순히 객체로만 파악한 것을 비판합니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그것을 주체적이고 실천적으로 파악한 것은 관념론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이론이나 사思 혹은 개념이 없는 경험 추수주의는 독단, 선생이 말하는 완고한 고집에 빠지는 오류를 보일 수 있는 것이지요.

내가 지금까지 다소 장황하게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에 대한 선생의 해석을 비판해 봤습니다. 물론 나의 이러한 비판으로 인해 <강의>라는 중국 고전에 대한 선생의 빼어난 책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선생이 살아계셨다고 한다면 이런 형태의 비판을 반기셨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 진리와 진실을 향해 가는 길동무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 길에서 서로 비판을 통해 배우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비판에 열린 사유, 끊임없이 타자에게 대화의 창을 열어 놓는 개방성 만이 진리와 진실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20802074316324ot

신영복 선생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의 해석에 대한 비판 1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신영복 선생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의 해석에 대한 비판 1

 

이종철(한철연 회원)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이 종철의 에세이 철학]에 실린 글을 저자의 동의를 얻어 소개합니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돌베개, 2004)를 eBook으로 읽고 있다가 나의 생각과 다른 점이 있어서 몇 자 적어 봅니다. 중국의 고전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선생의 글은 읽기가 좋아 틈나는 대로 보고 있습니다. 동양의 고전과 철학을 감옥에서 독학으로 공부하고 사색한 선생의 사유는 깊이도 있고 단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간혹 나의 시선으로 볼 때 적절하지 못한 대목이 눈에 거슬리기도 합니다. 그것이 단순한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명백한 오류일 경우에는 반드시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 책에서 선생은 서양의 존재론과 달리 동양은 철저히 관계론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생이 서양을 존재론으로, 그리고 동양은 관계론으로 해석한 것 자체가 담고 있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존재론은 문맥상 실체론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잘 알다시피 서양의 존재론은 그것을 그것이게끔 해주는 원인, 즉 아르케(arche)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스의 밀레토스 해안 지방에서 최초로 시작한 자연철학은 존재의 궁극적 원인을 물이나 공기나 불처럼 가시적인 것에서 찾거나 혹은 수(number)나 형상(form)과 같은 비가적인 것에서 찾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르케를 개별자와 보편자 같은 실체(Substance)로 볼 것인지 아니면 변화하고 운동하는 관계(Relation)로 볼 것인지에 따라 존재론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존재는 하나이고 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한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와 “만물은 변한다”(panth rhei)고 한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가 그 각각의 존재론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서양에서는 실체 존재론이 주류를 이루었고, 이런 현상은 근대의 합리론자들이나 경험론자들에 이르기까지 대세를 형성했습니다. 서양의 존재론이 운동이나 변화 그리고 관계를 인정하는 입장은 주로 사회와 역사를 철학의 대상으로 간주했던 비주류의 해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면 동양의 존재론은 <주역>에서 드러나듯 모든 것을 변화의 도이자 관계의 그물망으로 인식합니다. 주역은 유불도 삼교의 공통된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영복 선생의 취지를 정확히 반영한다면 서양은 존재를 실체로 이해한 전통이 강했고, 동양은 관계로 이해한 전통이 강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지적한 문제는 아마추어로서 독학한 선생의 연구 배경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오늘 <논어>에 나오는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에 대한 선생의 해석은 상당한 오류를 담고 있기 때문에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선생은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라는 제목을 달아 놓았습니다. 중국의 고전을 일관되게 관계론과 실천의 관점에서 해석한 선생의 입장에서 충분히 붙일 수 있는 제목입니다. 선생은 이 부분을 “학學하되 사思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思하되 학學하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 번역으로 그 의미를 드러내기 힘든 것은 학學과 사思의 대비 형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요.

“사思의 구성도 전田과 심心, 즉 밭의 마음이고, 밭은 노동의 현장, 실천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한자의 특성상 이런 글자 풀이가 의미는 있겠지만 그 글자가 들어 있는 문장의 맥락이나 선생이 늘 강조하는 다른 글자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상태에서 단순히 글자 자체를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선생이 경계하는 실체론적 사고에 갇힐 수가 있습니다.

선생은 자신의 이런 해석에 대해 전문 연구자(누군지 밝히지 않습니다)의 반론을 언급하면서 전田은 어린아이의 두개골에 있는 숨구멍이기 때문에 사思는 두뇌와 마음을 합한 것이라고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두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고가 가슴이 아닌 뇌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거의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해석이고 견강부회로 곡해될 위험도 없지 않지요.

그런데 정작 문제는 선생이 학學을 보편적 사고로 간주하고 사思는 관념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의 실천이나 그 기억 또는 주관적 관점으로 해석한 데 있습니다. 선생은 學而不思則罔에 대한 개인적 체험 이야기를 끌어들여 자신의 해석의 설득력을 높이려고 합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배운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할아버지는 책을 읽고 나서 반드시 30분 정도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나중에 감옥에서 곰곰이 생각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책을 읽고 생각을 해도 머리에 남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뒤에 가서 언급하겠지만 이 대목은 선생이 곡해한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선생에 따르면,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 모두가 실천과 유리된 관념의 소요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思를 경험과 실천의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선생은 드러 내놓고서 학이 보편적인 것(generalism)이고, 사는 특수한 것(specialism)이라고 규정합니다. 따라서 “‘학이불사즉망’의 의미는 현실적 조건이나 실천이 사상된 보편주의적 이론이 현실에 어둡고, ‘사이불즉태’는 특수한 경험적 지식을 보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주장합니다. 내가 보기에서 여기서 선생의 해석의 결정적인 오류가 나타납니다. 말하자면 선생은 학과 사를 정 반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 (다음회에 계속)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20801121307818an

예술가와 철학자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예술가와 철학자

 

이종철(한철연 회원)

 

공공 철학자 김태창 선생님이 페이스북에서 매일 새벽마다 올려주시는 시들이 있다. “새벽 눈뜨면서 생명감각에 공진파동으로 울려 오는 *** 시인의 시 한수”에 여러 시인들의 시를 담고, 그에 대해 선생님이 간단한 느낌을 적은 것이다. 90이 넘은 선생님이 이런 일을 매일같이 하는 마음은 무언가 베풀려는 보살심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시를 읽기 힘든 세상에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시나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나는 ‘시인이나 소설가의 작업과 철학자의 작업의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모두가 생각의 표현일 텐데 왜 예술가들은 이렇게 표현하고 왜 철학자들은 저렇게 표현할까, 서로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 간에 경계를 넘어서 소통하는 방법은 없을까? 등등이 꼬리를 문다. 과연 이들 간의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철학자의 입장에서 시인이나 소설가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많이 배우기도 한다.

시인들이나 소설가들은 남의 생각을 끌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애를 쓴다. 물론 다른 시인이나 소설가의 작품을 통해 영감을 얻고 상상력의 자극을 받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표현할 때는 오로지 자신의 생각 속에 완전히 용해된 상태로 표현한다. 이들은 이러한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언어에 절대적으로 의존을 하기 때문에, 모국어에 대한 이해와 사용이 대단하다. 특히 시인들은 즉물적이고 구체적인 한국어의 특성만으로도 좋은 시를 쓰기도 한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가 특히 그렇다. 무엇보다시나 소설 작품 속에는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와 세계, 그리고 일상이 잘 드러나 있다. 황석영이나 조정래, 박경리 등의 대하소설을 읽다 보면 과거 한국인들의 삶과 시대와 생각들은 직접 체험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쉽게 공감할 수가 있다.

반면 동서고금의 철학을 막론하고 한국의 철학자들 대부분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타자의 생각을 수입해서 해설하고 해석하는 일을 많이 한다. 게다가 이들의 언어 역시 타자로부터 빌려온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한결같이 이들은 언어의 국적, 모국어의 특별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 철학의 경우는 거의 번역 수준의 개념어들이 난무하고, 동양 철학의 경우는 한자와 한문을 모르고서는 읽기조차 힘든 글들도 많다. 오래전 불교 유식학에 관한 논문 발표에 참석했을 때 유식학의 오랜 전통에서 사용하던 알 수 없는 개념들이 너무 많아서 비판적인 지적을 한 적이 있다. ‘도대체 이렇게 글을 쓰면 다른 전공자들이 어떻게 유식학의 보편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더니 자신들은 그게 훨씬 익숙하며, 풀어서 쓰면 오히려 비판을 받는다고 말한다. 한국 불교는 중국 불교의 영향 아래에서 크다 보니 한자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아 왔다. 하지만 이런 한자어 개념이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의 원어와 같을 수가 없지 않은가? 또한, 시인이나 소설가와 달리 철학자들은 끊임없이 타자의 시대와 역사 그리고 생각에만 매이다 보니 자신들의 시대와 세계 그리고 역사 등이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철학은 사유 속에 포착된 시대”라는 헤겔의 표현을 입에 달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생각하는 시대와 세계 그리고 역사는 서양의 근대일 뿐이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 혁명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사는 시대와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상태이다.

지난주 “K-민주주의는 가능한가?”라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심포지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발표자 중의 한 사람이 “왜 한국의 철학자들은 자기 생각을 못 하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철학자들은 단군 이래 엄청난 논문을 쏟아 내면서도 끊임없이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느끼고 있다. 모두가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에서 예술가들과 철학의 차이가 이렇게 큰 까닭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철학자들은 ‘자기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자기가 사는 시대와 역사를 개념화하지 못하는 것들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철학이 여전히 ‘우리 철학’이나 ‘K-철학’을 이야기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을 보면 한국 철학은 아직 사춘기 단계인 듯하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인생의 발전에서 사춘기 시절에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의 철학자들이 좀 더 치열한 반성을 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고, 이런 물음을 통해 언젠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자신들의 철학을 할 때가 올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 나는 “K-민주주의는 가능한가?”라는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젊은 학자들에게서 그런 가능성을 보았다. 질문하고 풀어가는 방식이 달랐다.


 

상명통(喪明痛) [시대와 철학]

상명통(喪明痛)

※ 이 글은 <경인일보>에 연재하는 [전호근 칼럼]의 2024년 4월 15일자 기사를 저자와 언론사의 허락으로 본 웹진에 게재함을 알립니다.

 

전호근(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

 

에둘러 말하지 않겠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꼭 10년 전 이날 일어난 참사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하여 모두 304명의 귀중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사고 자체의 비극성뿐 아니라 참사 이후 이 나라에서 벌어진 온갖 비인간적인 일들은 유가족을 비롯한 온 국민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고 지금까지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내 기억 속 4.16도 그날 아침 다음의 보도를 접하면서 시작한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은 전원 구조되었고 사망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철렁했던 가슴이 진정되는가 싶었지만 얼마 안 가 오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사고 후 선장과 승무원들이 먼저 탈출했고, 구조가 시작되었지만, 정부의 무능과 안이한 대처로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따라 선실에 머물러 있던 학생들은 대부분 차가운 물 속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후 정부는 진상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하다가 급기야 애도와 추모를 방해하는가 하면 심지어 국가 기관을 동원하여 유가족을 사찰하는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기운 건 세월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막말과 패륜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사고 당일 현장에 가서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라면을 먹은 교육부 장관을 비롯하여 정부의 기본 입장은 교통사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막말, 구조헬기를 구조에 이용하지 않고 경찰 간부를 실어 나르느라 소중한 생명을 잃은 일, 발견된 유해를 유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은폐한 일, 국가배상금을 둘러싼 저급한 왈가왈부, 단식하는 유가족 앞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조롱하던 패륜의 무리,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고 사건의 진실이나 실체를 가리고 은폐하려고만 들던 정부까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넘쳐났다.

옛날에 세종 임금이 신하들에게 “부모 돌아가신 것과 자식 잃은 것 중 어떤 것이 더 섧은가” 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모든 신하가 부모님 돌아가신 것이 더 섧다고 대답했는데 황희 정승만은 말이 없었다. 임금이 다시 물었더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글쎄, 어느 것이 더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종남산(終南山, 서울 남산의 옛이름)이 보였는데 자식이 죽으니 종남산이 보이지 않습디다.” 했다고 한다.

이 글은 함석헌 선생이 1975년 4월 5일에 아이를 잃고 슬퍼하는 김태현에게 보낸 위로 편지의 한 대목이다. 선생 또한 일찍이 어린 딸을 잃고 슬픔을 겪은 적이 있었기에 자식 잃은 슬픔이 어떤 고통을 주는지 잘 알고 있었으리라.

자식 잃은 슬픔으로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아픔을 상명통(喪明痛,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고통)이라 한다. 이 말은 옛날 공자의 제자 자하가 자식을 잃고 슬퍼하다가 마침내 눈이 멀고 말았다는 데서 유래했지만, 어찌 자하뿐이랴. 모든 부모의 마음이 다르지 않을 것이니, 상실의 아픔이 마침내 보이는 것의 상실에까지 미쳐, 눈은 뜨고 있으되 바라보는 그것이 산인지 들인지, 초목에 푸른 잎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황희의 대답처럼 돌아가신 부모는 앞산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랠 수 있지만 먼저 간 자식에 대한 그리움은 그렇게 달랠 수 있는 것이 아닌 성싶다.

참사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4월이 되었다. 시퍼런 바다에 기울어 잠겨 들어가던 배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그날 그 시간의 기억은 박제되어 모두의 마음에 묻혔다. 봄이 오면 바다가 일렁이듯 우리 마음이 일렁인다.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지난 토요일, 한동안 서랍에 넣어두었던 노란 리본을 다시 꺼내 달고 세월호 기억문화제에 참여해 함께 울고 함께 노래하며 함께 웃었다.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잊은 적 없다”는 구호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날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유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덜어내거나 옅어지지 않는 아픔은 위로할 길이 없고 그리움은 옅어지지 않는다.

<경인일보 제공> – 출처: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40416010001725

헤겔 바깥의 헤겔 ―오늘의 우리 현실과 헤겔― ② [시대와 철학]

헤겔 바깥의 헤겔

―오늘의 우리 현실과 헤겔― ②

 

문성원(한철연 회원, 부산대 철학과)

 

이 글은 2023년 11월 18일 부산대에서 열린 한국헤겔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저자의 기고로 게재합니다. 앞에 이은 두 번째 글입니다.

 

 

 

1. 많은 분이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만, 청년 시절 제게 헤겔은 무엇보다 ‘자유’의 철학자였습니다. 세계사는 “자유의식의 진보의 역사”라는 말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지요. 진보의 순서를 문명권에 따라 공간적으로 배치한 것이나 물질적·경제적 동인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것 따위는 맑스 같은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해 극복되는 시대적 한계로 여겨졌죠. 이런 지연 효과를 고려하면, 자기의식의 원리에서 출발한 자유는 산업화로서의 외화와 그것의 자주적 전유를 그 전개 형태로 담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럴 경우, 자유는 산업화와 자주를 아우르는 근본 틀로 취급될 여지를 갖겠지요.

2. 그런데 이 ‘자유’는 최근에 우리가 여러 번 목도했다시피 내용 없는 공허한 울림으로 되뇌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자유가 운위되는 양태는 매우 자의적어서, 실제로는 자신의 좁게 겨냥된 과녁만을 노릴 뿐, 주변의 중요한 문제들을 수습하거나 해결하는 데는 무책임하며 그런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자유롭죠. 흔히 말하는 대로 아집과 무지와 무능의 소치라 하겠습니다. 다만, 저는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데에는 애당초 자유 개념과 결부되어 있는 자기 중심성 탓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에서 자유는 보편적 권리로서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합니다만, 알다시피 이때의 보편은 실상 시대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한정된 ‘보편’이죠. 게다가 우리가 익히 보다시피 그런 특정한 잣대마저도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덕택에 지금 우리는 권리와 법이 그야말로 ‘자유롭게’ 전횡되는 현실을 아프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지요.

3. 이런 모습이 자유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부정적 면모일 따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구태일 겁니다. 이념의 외화와 자기복귀라는 틀이 한 때 호소력이 있었던 건 그것이 자기 확인과 자기 확장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인 열망에 부응했기 때문이겠죠. 물론 아직도 그런 생각을 고집하고픈 집단이 있겠으나(아마 북한―적어도 현재의 주도적 지배층―의 경우는 여전히 이런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동안 드러난 숱한 문제들을 도외시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주체는 단일하지 않을뿐더러 궁극적으로 단일해질 수도 없다는 것, 각각의 주체는 재현의 실패를 지시하며1 그런 실패가 계속되는 한에서 요구된다는 것, 또 주체의 자유란 이 같은 실패가 일회적이지 않게 하는 선택의 기제이고 이것이 바로 자유의지―집단적 자유의지(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를 포함해서―의 실체라는 것, 등등이 그간의 사태에 대한 반성을 통해 도출된 일반적 결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4. 그렇다고 자유의 여지를 확대하고 공고히 하려는 활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확실성을 보장받으려는 과도한 목적론적 구도를 포기하고 자기중심적 외화가 초래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들을 충분히 경계한 채로 그러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볼 뿐입니다. 그리고 그러할 때, 시대에 뒤떨어진 목표에 얽매인 상태에서가 아니라면 과연 ‘자유’가 주도적 모토로 내세워질 수 있는지, 오히려 퇴행적 발상에 이용당할 소지가 많지 않은지 의심스러워 하는 것이죠. 더러 얘기되듯 누구의 자유인가, 어떤 자유인가를 구체적으로 문제 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유 자체의 본질에 대해서, 자유 개념의 특성에 대해서 따져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2

5. 외화로서의 산업화와 자기복귀로서의 자주를 주된 계기로 삼아 지나간 일들을 꿰어보려 했다고 해서 미래에 대해서도 같은 틀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죠. 오히려 그동안 불거진 예기치 못했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일이 긴요할 겁니다. 그 같은 과정을 통해 새로운 문제틀의 수립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테지요.

 

 

1. 여러 문제 가운데 제가 특히 흥미롭다고 여기는 우리 현실의 사안으로는 무엇보다 세대 문제를 들고 싶군요. 그중에서도 근래에 두드러진 세대 간의 불평등 논란이 관심을 끕니다. 세대의 문제는 시간적 추이와 관련된 문제고 그런 점에서 변화, 발전의 문제이기도 할 테지만, 변화의 속도가 느린 사회에서는 신세대와 구세대의 갈등이 일반적인 형태로 논의될 따름이었겠죠. 혁명적 격변의 시기에도 체험의 단절적 변화가 세대의 구분에 새겨지겠으나, 우리의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든 압축적인 산업화와 민주화의 경험을 한 탓에 세대 간의 특성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2. 이제 산업화 이전 세대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 하겠고, 70년대까지 젊은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확연히 노년층에 접어든 산업화 세대와 87년을 전후한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라 할 이른바 386(이 이름이 등장했던 1990년대초 당시에 386이었지 현재는 586을 거쳐 686에까지 이른) 세대, 그리고 민주화 이후 성장기를 보낸 X, Y, Z의 알파벳 세대 등 갈수록 구분도 촘촘해지는 세대들이 오늘을 함께 살아가고 있죠. 여기서 특히 세기의 전환기를 어려서 겪은 이들, 대체로 1980년대 중반쯤에 태어난 Y세대에 해당하는 이들을 M(밀레니엄) 세대라고 하고, 이들과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묶어서 MZ 세대라 부르는 것 같군요. 그런데 불평등과 관련한 논란의 초점은 현재 사회의 중심 세력이라 할 386세대와 2,30대 청년층을 이루는 MZ세대 사이에 있는 듯합니다.

3. 『불평등의 세대』라는 책을 쓴 사회학자 이철승 교수는 한국의 세대를 ‘자원 동원 네트워크’라고 이해합니다.3 단순히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 이상이라는 거죠. 특히 그는 386세대가 성공적으로 이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한국사회의 주도층이 되었으며, 그 다음 세대들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철승 교수가 드는 386세대의 성공 요인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어요. 첫째, 베이비 붐 세대라서 수가 많다는 점, 둘째,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균질성과 응집력을 획득했으며 학생-시민-노동조직의 연계를 이루어 내었다는 점, 셋째 이른바 세계화에 편승한 고도성장기에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는 점. 그런데 다른 한편, 이 세대는 세계화의 신자유주의 바람에 휘말리고 만 탓에―IMF 외환위기가 그 단적인 징표겠죠― 시장이 야기하는 불평등한 ‘신분의 위계화’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결국 ‘권력의 과두제화와 독점’에 안주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청년 세대가 불만을 가지고 반발하는 주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테죠.4

4. 이철승 교수는 386세대와 다른 세대의 소득격차가 커져가고 있고, 세대간 정치권력의 분포 비율 면에서도 이 세대 이후 젊은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여러 통계 도표를 통해 제시합니다.5 하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지요. 그 주된 논거는 세대간 불평등에 비해 모든 세대 내의 계급간·계층간 불평등이 더 심하며, 따라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 및 갈등의 주요 원인은 세대 격차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세대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이용하려는 세력이 문제라는 것이지요.6 저는 이 논란에서 어떤 편을 들 만큼 우리 사회의 실증적 사실에 밝지 못합니다. 양측이 내놓는 통계들은 나름으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요. 다만, 세대내의 불평등 역시 크다고 하더라도 386이라는 1960년대 출생 세대의 경제적·정치적 비중이 다른 세대가 같은 연배일 때에 비해 다소 큰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이런 차원과는 조금 다른 결의 사태에 주목해 보고 싶군요.

5. 저출산의 문제야말로 심각한 세대의 문제이고 또 세대간의 문제가 아닐까요? 노령층을 부양해야 할 젊은 세대의 부담이 늘어난다든가 한국 사회의 소멸이 우려될 지경이라든가 하는 얘기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예상되는 결과 이전에 자식 세대가 출산을 기피하게 만든 부모 세대의 책임을 먼저 문제 삼아야겠죠. 그리고 지금의 청년 세대가 처한 상황의 엄중함에 주목해야 할 줄 압니다. 저는 이것이 앞서 말한 공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산업화가 낳은 문제들이 집약되어 나타난 증상이 저출산이고, 여기에 대한 대책의 부재가 사회 발전 방향과 비전의 공백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윤석렬 정권의 탄생과 같은 현상을 낳았다는 것이지요.

6. 저는 몇 해 전에 저출산이 ‘생물학적 파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7 작년에는 영국의 BBC가 ‘한국은 출산 파업 중’이라는 표현으로 우리의 저출산 사태를 보도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8 사전의 협의도 주도하는 조직도 없는, 그런 점에서 무의식적이지만 집단적인 저항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오늘의 청년 세대를 낳은, 그리고 현 상황을 만든 세대를 향한 (아마 오늘의 발표자들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은데) 항의겠지요.

7. 산업화한 국가들 대부분이 저출산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 변명거리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지난 몇 세기에 걸친 급속한 인구 증가를 생각하면 장기적으로는 인구수가 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지 모르죠. 하지만 인류세의 위기를 개체수 조절로 극복하는 선구적 모습을 보인다고 자위하기에는 출산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들이 너무 팍팍하고 출산율의 저하가 너무 가파릅니다. 그 원인들에 대해서는 차고 넘칠 만큼 많은 논의가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이러한 사태가 급속한 압축 성장의 대가라는 점이죠. 극심한 경쟁과 수도권 중심의 과밀집 등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흔히 지목되는 그 결과지요. 여기에 덧붙여 저는 축약된 과정 탓에 욕망에 대한 반성과 조절의 기회가 없었거나 부족했다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서구의 68혁명에 해당하는 계기가 생략되어 버렸다고 할까요. 이런 면을 고려하지 않으면, 늘어난 소득에도 불구하고 더욱 돈에 모든 가치 평가의 기준이 집약되는 오늘의 분위기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386세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거예요. 비록 압축적 과정 때문에 오히려 지연된 민주화라는 과제에 치여 스스로는 어쩔 수 없었던 면이 있다고 해도 말이죠.

8.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이 ‘어떻게’는 오늘 우리의 주제인 헤겔 철학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아마 헤겔이라면 혹 압축적 산업화에 대립하는 계기로 탈성장을 내세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긴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탈성장 담론이 자리잡을 여지는 얼마나 될까요? 그것은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으로 여전히 고초를 겪고 있는 한반도 주민의 일부가 그 반대의 극을 추구하기 위해 영세중립국을 내세우는 일9보다는 더 현실적인 시도일까요?

9.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2018)에는 두 개의 원작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1983)가 직접적 원작이지만, 무라카미의 그 단편이 제목에서부터 윌리엄 포크너의 “Barn Burning”(1939)을 염두에 둔 것인 데다가, 이창동 감독 자신도 포크너의 그 작품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예 영화 한 장면에 그 소설이 실린 포크너의 책이 등장하기까지 합니다. 주인공인 종수(유아인 분)가 포크너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그 말을 들은 벤(스티브 연 분)이 그 책을 구해 카페에서 읽고 있는 것으로 나오죠. 그거야 어쨌든 이 세 작품은 다 같이 헛간(<버닝>의 경우 비닐하우스)을 태우는 걸 모티브로 하고 있어요. 하지만 세 작품의 배경이 다르듯, 태운다는 행위의 의미도 조금씩 다릅니다.

10. 포크너의 헛간 불태우기는 소작농의 저항을 표현하죠. 지주에게 헛간은 대단한 재산은 아니지만 쓸모없는 것도 아닙니다. 몰래 불 지르고 적당한 손해를 입히기에 적합한 장소지요. 그래서 그 일은 추적당하고 재판받는 자못 심각한 사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반면에 무라카미의 경우에는 헛간은 “태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묘사되죠.10 적어도 그것을 태우는 소설 속의 부유한 젊은이에게는 말입니다. 그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헛간, 그러니까 완전히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만 사라져도 별 지장이 없는 헛간을 골라두곤 마음 내킬 때 몰래 태웁니다. 아니, 그렇게 한다고 얘길 하죠. 소설에서 이 헛간은 그가 별 부담 없이 사귀는 젊은 여자와, 그러니까 있어도 없어도 좋을 그런 여자와 암시적으로 겹칩니다. 이창동의 영화 <버닝>에서도 비슷해요. 돈 많고 세련된 젊은이 벤(스티브 연 분)이 주기적으로 태운다는 비닐하우스와 그의 일시적 애인인 해미(전종서 분)가 겹치죠. 그런데 큰 차이는 <버닝>에서는 태우는 행위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11. <버닝>의 주인공 종수는 무라카미 소설의 화자(話者)와 마찬가지로 소설가(정확히는 소설가 지망생)이기는 하지만, 쿨한 분위기의 전자와 달리 농촌 출신의 투박함을 잃지 않은 청년이지요. 그래서 그는 태워짐에 분노하며 결국 태우는 자를 태웁니다. 쓸모없음을 처리하는 자를 처리하죠. 물론 영화 마지막의 이런 장면들은 종수가 쓰는 소설 속의 사태라고, 그러니까 종수의 희망이 영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 겁니다. 어떻든 <버닝>은 이렇게 저항을 재도입하죠. 포크너가 묘사한 소작농의 저항은 이제, 사회가 꼭 필요로 하지 않는 잉여적 존재로 전락할 위험에 놓인 청년 세대의 저항이 됩니다. 이 저항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우리 현실에서도 아직 그렇죠. 출산율 저하는 어쩌면 소극적 저항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의 미래를 태우는 극단의 저항으로 연결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1. “보통 사람도 자동차나 PC 같은 개인 소유 기계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대형 기계 시스템에 대한 통제권은 극소수 엘리트의 손에 쥐어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거기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진보된 기술 덕분에 엘리트는 대중에 대해 더 강화된 통제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노동이 불필요해진 탓에 대중은 불필요한 존재, 즉 체제에 떠넘겨진 쓸모없는 짐더미가 되어 버린다.”11 이것은 ‘유나바머’ 테어도르 카진스키의 선언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십수년간이나 미국 몬태나주 숲 속에 숨어 지내며 기술문명을 중단시키려는 목적으로 십여차례에 걸쳐 폭탄 테러를 저지르다 1996년 체포되었던 인물이죠(무기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에 금년 6월 숨을 거뒀지요). 카진스키에 견해에, 특히 그의 반기술주의 방법론에 찬성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의 문제의식에는 동조할 수 있는 부분이 꽤 있다 싶어요.

2. 사실, 청년 세대의 집단적 불안감에는 자신들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이전과는, 그러니까 소외되고 착취를 당하더라도 스스로의 활동에 분명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던 시절과는 크게 달라진 점이 아닌가 해요. 코인에 대한 열풍도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도 이처럼 가치의 기준이 불확실해진 데 따른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불안감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헤겔 철학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여기에 대해 제가 자신 있게 답을 내놓을 처지는 아닌 것 같군요.12 저로서는 이렇게 어설프고 산만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으로 그치고 다른 분들의 발표에 귀를 기울여야 할 듯합니다.

3. 끝으로 덧붙이자면, 저의 이 부족한 발표에 ‘헤겔 바깥의 헤겔’이라는 제목을 붙여본 데에는 오늘의 상황이 헤겔 철학의 태생적 배경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젝은 “헤겔을 넘어선 헤겔”13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던데, 아마 외적 조건보다는 내적 특징의 발전과 연속성에 더 무게를 둔 것이겠죠. 저는 오늘날의 철학은 외부에, 바깥의 변화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설명과 의미 부여의 틀을 짜나가야겠죠. 그것이 제가 주제넘게 떠올려 보는 오늘의 헤겔 모습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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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헤겔 레스토랑』, 앞의 책, 469쪽 참조.

  2. 외람되지만 저는 오래 전부터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졸저 『배제의 배제와 환대』, 동녘, 2000 참조.

  3.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문학과지성사, 2019, 33쪽 이하 참조.

  4. 이 책이 조금만 더 늦게 나왔더라면(출간일은 2019년 8월 9일인데요), 조국 사태를 이 불만 표출의 대표적 사례로 연결시켰을 법합니다.

  5.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문학과지성사, 2019, 125쪽 이하, 또 70쪽 이하 참조.

  6. 대표적으로 신진욱, 『그런 세대는 없다』, 개마고원, 2022 참조.

  7. 졸저, 『철학의 슬픔』, 그린비, 267쪽.

  8. https://m.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208262158001#c2b

  9. 「한반도 영세 중립화 선언」 참조.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Tw8byRcRmOEwZHZeg2TBgsPN7LBrsOaupmykENb-cgnZ74Q/viewform

  10. 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반딧불이』, 권남희 옮김, 문학동네, 2014, 68쪽.

  11. 테어도르 카진스키, 『산업사회와 그 미래』, 조병준 옮김, 박영률출판사, 2006, 111쪽.

  12. ‘만듦의 문명’에 대비되는 ‘즐김의 문명’에 대한 전망과 기대는 제가 단편적으로나마 곳곳에서 계속 피력해 온 것이지만, 이 자리에서 거론하기는 어렵겠습니다.

  13. “Hegel beyond Hegel” ― 이것은 그의 책 『분명 여기에 뼈가 있다』(정혁현 옮김, 인간사랑, 2016. 원서는 Absolute Recoil, Verso, 2014)의 3부 제목입니다.

헤겔 바깥의 헤겔 ―오늘의 우리 현실과 헤겔― ① [시대와 철학]

헤겔 바깥의 헤겔

―오늘의 우리 현실과 헤겔― ①

 

이 글은 2023년 11월 18일 부산대에서 열린 한국헤겔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저자의 기고로 게재합니다.

 

문성원(부산대 철학과)

 

 

1. 지금부터 약 반세기 전 루치오 콜레티는 루이 알튀세르의 헤겔 해석을 가르켜 “헤겔을 읽은 지 매우 오래되어서 헤겔에 대한 기억이 대단히 희미해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주장”1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알튀세르가 헤겔에게서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을 그 사상의 핵심으로 간파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한 평이었지요. 제가 이 자리에서 이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은 우선, ‘헤겔을 읽은 지 오래되었다’는 말이 제게도 해당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저는 1980년대 초에 정신현상학을 비롯해서 몇몇 헤겔의 저작을 잠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헤겔에 대해 집중적 연구를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오늘처럼 여러 훌륭한 헤겔 전공자들 사이에서 감히 발표자로 나서는 건 정말 무모한 작태인 셈입니다.

2.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논의의 초점이 헤겔에 대한 문헌학적 이해나 해석에 있지는 않다는 점이겠습니다. 콜레티가 알튀세르를 몰아세웠던 요체가 바로 문헌학적 정확성 문제였지요. 헤겔에 ‘주체’가 없다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해석이라는 거죠. 아마 헤겔을 좀 공부한 사람이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저도 그랬지요. 우리 사회에 알튀세르가 뒤늦게, 또 압축적으로 수입될 당시에, 그러니까 1990년대 초에, 저는 헤겔에 대한 오해와 곡해 속에 받아들여지는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의 편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단순히 문헌학적 정확성에 있는 것이 아니었지요. 오히려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그와 같은 다소 무리한 주장이 부각되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데 있을 겁니다.2

3. 슬라보예 지젝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 볼 수 있겠지요. 지젝이 오늘날 헤겔을 재론하고 현재화하는 데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그의 헤겔 해석이 자의적이며 문헌학적 근거가 취약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역시 ‘주체’에 대한 해석이 초점이 되겠지요. 알튀세르처럼 주체가 없다고까지 주장하진 않는다 해도, 지젝이 내세우는 헤겔의 주체는 라캉 식의 빗금 쳐진 주체, 자기 부정의 주체이니 말입니다. 반면에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헤겔의 주체는 발전과 진보의 주체, 자기 확장과 자기 확증의 주체일 겁니다. 문제는 이런 주체로는 더 이상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갖추기 어렵게 되었다는 작금의 사태에 있는 것이겠죠.

4. 철학과 설명력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헤겔의 경우에는 사후(事後)의 설명이라도 가능해야 그 스스로가 ‘미네르바의 올빼미’라는 별칭에 부합할 수 있을 테지요. 저처럼 철학이 과학적 성과의 한계와 인간의 이지적 욕구 사이를 그럴 법한 가정과 논리를 통해 메우는 역할을 한다고 보는 처지에서는 더욱 이런 요구를 물리기 어렵습니다. 나름의 한계 내에서나마 미래를 예측하고 거기에 맞추어 목적을 세우는 일에 간접적으로라도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적 작업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목적론에 대한 비판은 우리의 이런 활동 방식을 무차별하게 다른 존재들에게 적용하는 데서 오는 무리함을 지적하고 경계하려는 것이지, 목적이 우리 삶에서 지니는 중요성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닐 겁니다. 그리고 적절한 목적 설정과 추구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잘 짜인 설명이 꼭 필요할 테지요.

5. 한국에는 사회 운영에 대한 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이 부재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중국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유튜버인 안유화라는 분의 지적이었는데,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사회 운영 프로그램과 비교하여 나온 말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으나, 뼈아픈 비판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장기적 전망과 청사진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변화무쌍한 현실에 대한 유연한 대응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그런 구도 자체가 민주적 사회 운영 방식과는 어긋나는 면이 있다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우왕좌왕해온 ―실제로는 ‘우왕우왕’이었다고 보는 분도 있겠지요― 금세기의 경험 가운데서 우리 사회가 과연 어떤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지 새삼 자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6. ‘큰 이야기’에 대한 불신을 설파하는 것은 한참 전에 시효가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혹 아직도 “공산 전체주의”를 운위하는 시대착오에 대한 비아냥거림으로 활용하는 경우라면 또 모르겠지만요. 우리는 거대 담론의 파국이 초래한 반작용의 음울하고 착잡한 늪에서 진작 벗어났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요? 저는 여기에 오늘날 헤겔을 다시 거론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여깁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알튀세르와 지젝이 원본의 헤겔을 변형하고 왜곡하면서까지 헤겔을 놓지 않은 이유와 통하는 것이지요. 변화와 발전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그런 의미에서의 변증법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오늘의 ‘로도스’에서 뛰는 헤겔의 사유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7. 그렇다고 제가 이 자리에서 헤겔 전문가들과 함께 뜀뛰기 경쟁을 할 자신은 없습니다. 저로서는 다만, 우리 현실에 대한 해명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들을 몇 가지 늘어놓아 보는 데 그칠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객석에 머물러 있어야 할 아마추어가 경기장에 끼어들어 물을 흐리는 꼴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1. 세상은 복잡하지만, 설명은 가능한 한 단순할수록 좋습니다. 헤겔 철학이 제아무리 어렵다고 한들,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니, 세상사보다는 쉽고 단순해야 할 테지요. 두 항의 대립과 모순을 통한 변화의 설명 방식은 그런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항이 본래 하나에서 비롯된 것인지, 두 항의 설정에는 논리적 연관 외에 다른 요소들이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자의적으로 끼어든 것인지에 대해서는 따지지 말기로 합시다. 저는 헤겔 논리학(또는 “논리의 학”)의 세부 내용은 잘 알지 못하지만,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집단적으로 개발해온 각종의 주요 개념들을 하나의 체계로 다시 엮어낸 그 솜씨가 매우 경탄스럽다고 여깁니다. 두 항의 운동이 하나로 지양되어 모이고 재차 다른 두 항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과정들이 이어지고 쌓여서 두툼할 뿐 아니라 방향성을 갖는 체계를 이루어내지요. 단순함으로 복잡함을 구현해내는 멋진 직조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물론 여기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어요. 헤겔의 논의를 쫓아갈 때, 우리는 대체로 현재 진행되는 과정만을, 말하자면 한 채널만을 염두에 두게 됩니다. 우리 의식의 집중 방식이 보통 그러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른 채널들로부터의 간섭을 고려하기 힘들죠. 이른바 중층결정(Überdetermination)의 효과들을 놓치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건 헤겔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닐 테지요. 헤겔식의 과정을 좇아 구성된 얼개를 통해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경험적 보충이 필요한 사안일 겁니다. 채널들의 자립성은 실험실에서 외부 요인들을 통제하듯 추상적 사유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일 따름이어서 상대적이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겠지요. 또 그런 과정들의 총괄이라 할 ‘전체’ 역시 잠정적일 테죠. 지젝이 헤겔에서 현재 또는 미래로부터의 소급을 통한 의미 발굴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것은 이런 면에서 당연해 보입니다.3

3. 그런데 이 같은 잠정성은 특정한 ‘전체’의 불완전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현실 또는 실재 자체의 잠재적 면모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죠.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이 불완전한 ‘전체’들 뿐이라면, 그 너머의 현실이란, 아니 현상을 통해 다가오는 현실 너머의 실재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서 저는 이제껏 철학 논의에서 어쩌면 블랙홀 같은 모습을 보여온 이 현기증 나는 영역으로 넘어갈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두 가지만 짧게 짚어 두도록 하죠. 우선, 현상 너머의 실재에 대한 생각도 현상에 속하니까 현상을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론은, 새로운 경험의 가능성을 봉쇄하지 않는 한 현상 너머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고 따라서 그 실재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4, 다른 한편으론,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만 주목하고 강조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응답(response)의 자세 면에서 무책임(irresponsible)하기 쉽다는 점.

4. 저는 특히 두 번째와 관련하여 헤겔적 사유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숱한 철학자들이 개방성의 근거나 양상 문제에 초점을 맞추곤, 블랙홀 근처에서처럼 우리의 시간이 가는 걸 잊어버린 듯한 인상이에요. 지젝이 내세우는 “무보다 못한 것(less than nothing)”이나 “덴(den)” 같은 데 홀린 채 말이지요. 보기에 따라선 바디우의 “사건(événement)”이나 데리다의 ‘대상 없는 기다림’ 따위도 유사한 작용을 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이런 모토들을 둘러싼 진지한 태도들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같은 막연함을 한껏 세공해 본들 거기에서 더 이상 기대할 만한 것이 있을지 궁금하군요. 그것보다는 차라리 체계화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두 대립되는 계기들로 변화의 과정을 논리화하고 설명하려는 방도를 세련화하는 것이 진정 헤겔을 계승하는 길이 아닐까요?

 

 

1. “근대화가 함축하는 서구적 산업화를 추구하는 계기와 식민지적 종속에 대항하는 자주의 계기가 근대 이후 우리의 역사를 이루는 변증법적 대립의 두 축이라고 할 만하다.”5 몇 년 전에 저는 이런 식의 문장으로 시작해서 우리 역사에 헤겔적 변증법을 적용해 보려는 어설픈 시도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고 별다른 반향도 없었던 그 내용을 여기서 되풀이할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연속적인 문제의식은 버리지 않았던 탓에, 최근 몇 년간의 답답한 사태들의 해명 요구에 유사한 방식을 참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재와 같은 검찰공화국의 성립이 어떻게 가능했으며, 민주주의의 후퇴와 남북관계의 경색, 대미 대일 종속의 심화 등등 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고, 이런 점들을 되짚어 보는 데 이전의 사유가 소환되기도 하니까요.

2. 최근 몇 년간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제가 보기에 남북관계인 것 같습니다. 벌써 옛날 일이다 싶지만, 평창 동계 올림픽 남북 단일팀과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 평양 능라도 경기장의 연설이 있었던 것이 2018년, 불과 5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의 분위기를 회상해 보면, 우리가 여전히 같은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질 지경이지요. 더 흥미로운 면은 이런 변화의 주요 원인이 우리 사회 내부에 있지 않다는 점을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 가시적 변곡점은 2019년 2월의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런 변화가 우연적이 아니며 그 뿌리가 결코 얕거나 만만하지 않다는 점이 이후의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죠.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는 최소한 오바마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것은 중국에 대한 견제를 노리는 이른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 트럼프냐 바이든이냐 하는 정권의 문제보다 더 깊고 단단한 수준의 것이죠.

3.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한반도에 배치하고 남한과 일본을 묶어 세우려는 미국의 의도는 현재 성공적으로 관철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앞서 언급한 ‘자주’의 계기는 후퇴하고 위축되었다고 해야 되겠지요. 이런 분위기 탓인지, 근대 이후 한반도의 운명에 압도적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미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외세와 지정학적 조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컨대, 한국전쟁의 실질적 주역이 미국과 중국이었다는 인식이 부각되고 있는 것도 오늘날 미중의 대립과 긴장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6 산업화 면에서도 외세의 영향이 강조됩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몰락하고 대신 한국과 대만이 반도체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게 된 것도 미국의 주도하에서 일어난 일이고, 따라서 현재의 우리 산업구도와 미래 전망도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에 따라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 것 같습니다.

4. 중국의 중요성도 만만치 않지요. 특히 금세기 들어와 중국이 WTO에 가입하고 세계의 공장으로 급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수출입의 주요 상대국으로서 한국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래에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좋은 불평등이라는 책의 저자는 한국에서 소득 불평등의 정도가 심해진 시기가 중국과의 무역에서 대기업이 호황을 누렸던 기간과 겹친다는 점을 여러 통계수치들을 통해 입증하려 했지요.7 저는 이런 주장의 사실에 입각한 설득력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은 ‘탈중국’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합니다만, 2023년 8월 현재 중국은 수출과 수입 모두에서 20%를 넘는 비중으로 우리의 교역상대국 가운데서 여전히 수위를 차지하고 있지요.8 현재 한국 경제의 불황이 중국 경제의 상대적 위축이나 투자 및 무역 여건의 악화와 관련이 있음도 분명해 보입니다.

5. 미국이 되었든 중국이 되었든 이들의 영향력을 떠나서는 우리 사회의 형편을 논하기 힘들 테지요. 이제 동남아나 남미 등 다른 지역과의 관계 다변화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합니다만, 그런다고 해서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와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대외의존적 산업구조가 바뀔 것 같지는 않군요.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와 같은 여건에서 산업화와 자주의 요구를 마주했을 때,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길을 택했을 경우 자주(自主)는 상당 부분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6. 우리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 ‘민주화’는 이런 산업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속적이고 연속적인 계기였다고 할까요. 물론 이때의 ‘민주’를 보편적인 것이라 여길 순 없을 겁니다. 다중(多衆)이 힘과 권리를 가지는 방식이 여럿일 수 있을 테니까요. 또 현재 실존하는 민주주의의 방식들이 과연 명실상부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면도 많죠. 하지만 한때 우리에게 익숙했던 구호로 말하자면, ‘민중민주’가 ‘민족해방’보다는 산업화와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예에서 보듯 산업화가 필연적으로 서구적 민주화를 수반한다고 속단하기는 어려우나, 우리의 경우는 국가자본주의 축적 단계를 넘어선 서구적 산업화와 민주(民主)의 요구가 적어도 한동안은 잘 호응한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7. 북한의 경우는 반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주의 요구에 산업화와 민주가 밀려난 꼴이라고 할까요. ‘민족해방’이 오래도록 실질적인 ‘민중민주’를 가로막았다고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과거 소련과 중국 도움을 받았지만,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고집이 핵개발에 이르게 했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지금도 명목상으로는 조중동맹 조약이 유지되고 있고 최근에는 러시아와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으나, 남한의 경우처럼 외국 군대가 계속 주둔을 한다든지 합동 군사훈련을 한다든지 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하지요. 지속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주를 ―그것이 비록 민중의 자주라기보다 소수 지배집단의 자주라고 할지라도― 뒤로 물릴 생각은 지금도 없는 듯합니다. 요컨대, 거칠게 말하면, 한반도에서 남쪽에는 산업화 내지 민중민주의 계기가, 북쪽에는 자주 내지 민족해방의 계기가 우위에 선 채 다른 계기와 대체로 길항적 관계에서 작용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 그런데 이런 조야한 개관이 헤겔의 철학과 어떤 관련이 있으며, 오늘의 현실을 해명하는 데 어떻게 연결이 된다는 걸까요? 일단, 산업화와 자주의 계기란 헤겔 식의 모순을 이루는 쌍도 아니고, 또 거기서부터 민주화나 핵무장 따위가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도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요. 앞서도 언급했듯이, 개념이나 계기의 연결을 통한 설명은 여러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단순화하여 재구성하는 방편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산업화’와 ‘자주’가 모순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립하거나 상충하는 계기로서 그 구체적 형태들을 달리하며 작용해 왔다고 파악하는 것이 오늘의 사태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9. 무엇보다도 저는 우리의 현황이 산업화 우위의 맥락에서 작용하던 내부적 동인이 목표를 잃고 취약해진 가운데 외적 요인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국면이라고 봅니다. 단적으로 말해, 많은 이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뜬금없는 윤석렬 정권의 등장은, 민주화 이후 자주의 요소가 개입된 시도들이 좌절되고 그간의 산업화 방식이 낳은 문제들이 극복되지 못한 데서 비롯한 방향 설정의 공백을, 고유한 내용 없는 형식적 수단에 불과한 검찰 중심의 관료적 집단이 주워 ‘먹은’ 데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강하게 도사리고 있던 미국의 요구가 그 비어 있는 자리에 손쉽게 파고든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사태일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우리는 한 나라의 정책 결정 심장부가 도청을 당하고도 항의할 생각조차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신뢰’의 일방적 투명함을 목도하게 된 것이죠.

10. 촛불혁명이라는 놀라운 형태의 민주화를 발판으로 성공적인 출발을 보였던 문재인 정권이 궁지로 몰리기 시작한 과정을 돌이켜 보면, 계기들의 양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후 ―그 다음에도 2019년 6월말의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같은 몇몇 에피소드적 사건은 있었으나 실질적 변화는 없었죠― 남북의 관계는 사실상의 관계 단절에 이르기까지 악화 일로를 걸었고,9 대중의 관심과 기대도 급속히 식어버렸습니다. 조국 사태가 터진 것이 2019년 9월이니까, 대외 여건 악화에 내부의 문제가 겹쳐진 양상이라고 해야겠죠. ‘적폐청산’의 도구로 썼던 칼날에 베인 꼴이라고들 합니다만, 더 큰 문제는 대북 정책의 좌절을 뚫고 나아갈 만한 ‘적폐청산’ 이상의 목표가 없었던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2020년 코로나에 대한 대응으로 국민적 역량이 결집되긴 했으나, 그해 여름부터 터진 아파트 가격의 앙등이 민심의 이반을 재촉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지요. 문재인 정권이 구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거푸 확인된 셈입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할 만한 동인이나 세력은 눈에 띄지 않았지요. 윤석렬의 검찰 정권은 앞선 정권과 맞서는 공허한 힘만을 과시한 채 아무런 비전도 없이 이 상황을 집어삼킨 격입니다. 그렇다 보니, 실제의 내용은 강력한 외세의 영향을 적극 수용하는 것 말고는 이전 정권에 대한 반대라는 퇴행적 방식으로밖에 채워질 수 없는 것이겠지요.

11.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의 목표는 이러한 퇴행과 종속성의 강화를 다시 되돌리는 데에 맞춰져야 할까요? 아마 대부분 그런 것 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새로운 변화의 기초를 제시하고 그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는 일, 여기에 헤겔을 끌어올 수 있을까요?


②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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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치오 콜레티와의 정치적·철학적 대담」, 이병천·박형준 편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Ⅰ』, 의암출판, 1992, 276쪽.

  2. 이 점에 대해서는 졸저, 『철학의 시추 ― 루이 알튀세르의 맑스주의 철학』, 백의, 1999 참조.

  3. 슬라보예 지젝, 『헤겔 레스토랑』,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13, 4장, 특히 401장 이하 참조.

  4. 여기에 대해서는 졸고, 「현상에서 윤리로」, 졸저, 『해체와 윤리』, 그린비, 2012 참조.

  5. 졸고, 「끝나지 않은 변증법의 모험」, 졸저, 『철학의 슬픔』, 그린비, 2019, 192쪽.

  6. 대표적으로 2020년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미중전쟁> 참조. 그 내용은 책 (『1950 미중전쟁』, 책과 함께, 2021)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7. 최병천, 『좋은 불평등』, 메디치, 2022. 특히 7장, 8장 참조.

  8. https://www.kotra.or.kr/bigdata/visualization/korea#search/ALL/ALL/2023/8/exp (KOTRA 통계) 2023년 연간으로도 수출, 수입 점유율은 각각 7%와 22.2%로 수위를 보이고 있지요.

  9. 이로부터 일년 뒤인 2020년 6월 북한은 남북통신연락 채널을 폐기하고 급기야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었죠. 2021년 7월 통신선은 복원했으나, 같은 해 남북간 왕래 인원은 0명이었고, 이런 상황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욱식,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서해문집, 2023, 122, 216쪽 등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