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망상과 분열에 대하여: 과학철학자가 보는 윤석열의 망상과 중독, 그리고 시급한 우리 문제 [윤석열 탄핵과 우리의 민주주의 – 시대와 철학] ②

윤석열의 망상과 분열에 대하여

과학철학자가 보는

윤석열의 망상과 중독,

그리고 시급한 우리 문제

최종덕(독립학자, philonatu.com)

원글 출처: https://philonatu.com/home/mainpage_view.php?id=361

 

윤석열의 기이한 행동 양식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손바닥에 왕王자를 새기고 정치 권력을 쥐면서 한국사회의 정치-경제-문화-군사 모든 분야에서 퇴락은 시작되었다.

그의 정치적 미숙함에서 비롯된 권력 망상은 일제부터 이어져 온 기득권 집단이 잠재적으로 조직해 온 기회주의적 기획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검찰에서 국회까지 그리고 보수언론에서 대재벌까지 연쇄된 그들의 권력 유지 전략은 상시적이고 포괄적이며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라서, 그들은 이명박에서부터 박근혜를 거쳐 윤석열이라는 욕망의 캐릭터를 조립하여 말초 권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국회, 행정부와 사법부 및 군부까지 골고루 퍼져있는 권력 욕망 중독자들은 그들의 집단 아바타를 만들기 위한 중독 증상을 발현시키고 있다. 그 증상은 바로 난폭성과 기만성이다. 난폭과 기만의 증상을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간단한 사례로 그들의 의도를 직파할 수 있다.

첫째, 난폭의 증상이다. 판사 출신 어느 인물은 윤석열의 계엄 행위가 “유혈사태”까지 간 것이 아니라서 내란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끔찍할 정도로 섬뜩한 그러한 괴성은 피의 폭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둘째, 기만의 증상이다. 무소불위 권력을 쥔 검찰과 안락함을 갖춘 대학교수에서부터 극우 유튜버에 이르는 사람들은 정적들을 비난하는 데 한결같이 ‘위선자’라는 기만적 프레임을 악용하고 있다. 자신들의 대죄를 묻어 놓은 채 상대방 일상생활의 소소한 흠결을 찾아내어 악성 공격에 몰두하는 그들의 모습은 자기-기만의 전형이다.

낭자한 선혈의 폭력이 아니라서 괜찮다는 난폭과 기만이라는 그들의 일상적 성정은 윤석열 개인의 심리를 이용하여 오늘의 끔찍한 내란을 유도하였다. 그렇게 결탁된 윤석열의 심리상태를 분석하는 일이 지금 상황에서 당면한 문제일 수 있다.

 

심리철학의 관점에서 윤석열의 심리상태는 다음의 다섯 가지 행동 양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1) 폭압적 행동 양식

(2) 악성 중독 증상

(3) 사회적 소통 장애

(4) 자기기만의 인지 부조화

(5) 주술 의존 망상장애라는 다섯 가지 행동 양식이다.

 

(1) 폭압적 행동 양식

폭력성과 타자 억압성은 윤석열 행동 전반에 깔린 심리기저이다. 심리적 폭력성 행동 양식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의 후유증이 거나 과도한 자기중심적 인물이 상당한 권력을 소유했을 때 나타나 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윤석열의 경우, PTSD 사례로 보기보다는 후 자 즉 과도한 자기 중심성 심리가 그의 폭압적 행동 양식의 밑에 있다고 파악된다.

이런 행동 양식의 특징으로서 자기통제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고 상대를 적반하장으로 공격하는 이중적 행태들이 있다. 동시에 자기 자신의 행동 양식에 대해 고치거나 변화하려는 태도를 일체 부정한다.

 

(2) 악성 중독 증상

윤석열의 술 중독증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술 중독은 다른 양상의 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술 중독은 언어폭력 중독과 자기제어 불능증을 배가시킨다.

술좌석에서 대장처럼 으쓱거리는 행동 양태들은 술좌석이 아닌 시간과 공간에서는 이성적 행위가 아닌 언어폭력 증상 그리고 술 마시는 자아와 술 못 마시는 자아가 분리되는 이인화 증상(離人症, Depersonalization)을 유도한다.

 

(3) 사회적 소통 장애

소통장애의 윤석열은 남들과 정서를 공유하는 데 결정적인 결핍상태에 있으며 나아가 공공성 있는 대외적 활동을 피하거나 심각하게 서툴다. 이미 대중매체에서 익숙히 봐왔듯이 윤석열은 대화상대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부하거나 혹은 2.5 개 이상의 짧은 문장을 논리적으로 이어나가지 못하는 커뮤니케이션 장애 social communication disorder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소통 장애는 상황 인지 불능을 수반한다. 상식적으로 독재자는 거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관련자들에게 작은 권력을 적절히 분산하는 포섭전략을 사용하는 데 반해 윤석열의 독재방식은 소통 장애로 인한 포섭력을 갖추지 못해서 결국 그 스스로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의 권력은 그 자신의 심리구조 때문에 오래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설명은 너무나 일반화된 것이라서, 이를 조금이라도 눈치채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윤석열 권력의 파멸을 쉽게 짐작하기도 했다.

 

(4) 자기기만의 인지부조화

인지편향의 특징 중 하나는 인지편향 난관에 닥쳤을 때 탈출하는 방법이 자기-기만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반대 증거가 아무리 많이 드러난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부딪혀도, 양심에 벗어난 부정불법이 가득해도 자기만이 만든 자기합리화 속에서 자신을 변명하고 타인을 부정한다.

윤석열의 심리구조에서 자기기만의 인지 부조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대외경제력의 손상과 국민의 피해를 가져온 공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손상과 폐해를 시급히 회복해야만 대한민국이 다시 살 수 있다.

 

(5) 주술 의존 망상장애

윤석열이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주변에 주술과

미신을 권력의 도구로 악용한 사람들이 많다는 데 있다. 대중을 위한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 대신에 자기 이익을 위한 가짜 정치를 선택한 정치인 일반은 필연적으로 미신을 쫓게 되어 있다.

가짜 정치인은 자신조차도 규정하지 못하는 불안감에 쫓기게 되기 때문이다. 내면의 불안감에 쫓겨 외면의 미신을 쫓게 된다는 것이 주술의존 망상장애의 현상이다.

정치인을 포함한 다수의 권력자들이 점집을 찾는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12.3 계엄을 공모한 이들 가운데 아예 무당이나 주술인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을 정도로 무당 정치의 괴이한 권력 구조가 실감 나게 연회되었다.

미신과 권력을 혼재시킨 개인적 망상들이 그들 사이에서 묵시적 합의로 변질되면서 거대한 집단적 주술 상징계로 정착된 것이 한국 권력사회의 특징이다. 이제는 그들 각각이 믿고 있는 미신을 실행할 수 있는 실질 권력을 누가 더 많이 가지느냐의 암투일 뿐이다.

왕王의 망상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주술적 집단 상징계로부터 보호받은 셈이다. 그리고 왕의 망상이 강할수록 뭇사람들의 상상은 갈가리 찢긴다.

주술 의존성은 망상과 자기 통제 불능의 일상을 대신하는 특징을 지닌다. 일상의 생활인이 재미 삼아 점집에 방문하는 것과 다르게 대통령의 주술 의존성은 국가의 정체를 무너트리고 공공성의 파멸을 가져온다.

 

자행된 폭압과 소통 장애, 미신과 중독 증상들을 그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거꾸로 자신의 불법과 폭력, 부정과 독단을 확대 재생산하려는 오도된 윤석열의 의지를 방치하는 것은 곧 국가의 시민으로서 시민 됨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윤석열 개인 차원의 심적 증상은 윤석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온 국민의 문제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윤석열의 행동 양식과 의지 양태가 발현되지 못하도록 대통령 행위를 시급히 단절시켜야 한다.

시간이 정말 급하다.

그런 다음 술중독이나 주술중독 치료 등 그에 대한 개인적 심리치료를 나중에 천천히 하도록 배려하면 더 좋다.


문구: 조배준, 편집: 정희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시국선언〉 영상|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탄핵과 우리의 민주주의 – 시대와 철학]

사단법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이하 한철연)는 12월 3일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을 독재자의 야만적 폭거이자 반란으로 규정하는 대다수 시민들과 뜻을 함께하여 2024년 12월 12일 시국선언문을 작성하였습니다.

시국선언문은 회원들의 동의를 얻어 웹진〈ⓔ시대와 철학〉에 게시(http://ephilosophy.kr/han/57059) 하였으며 이어 12월 14일(토) 숭실대학교에서 거행된 제66회 정기학술대회에 연효숙 회원(전 한철연 회장)의 주도로 참석한 회원들이 함께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고 탄핵구호를 외쳤습니다.

같은날 오후 4~5시 경 국회에서는 찬성 204명, 반대 85명, 기권 3명, 무효 8명으로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습니다.

한철연은 헌정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윤석열을 즉각 체포하여 구속할 것을 요구합니다. 또 잘못된 권력의 범죄에 복무한 김건희 및 그 부역자들을 철저하게 처벌할 것을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에 강력히 요구합니다.

유튜브 출처 https://youtu.be/ITJ3EVBCcSw?si=E3IVogLdVwNfJJyI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시국선언 전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시국선언문〉 [윤석열 탄핵과 우리의 민주주의 – 시대와 철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시국선언문〉

 

 

지난 12월 3일 밤 우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민주 공화국의 대통령직을 수행하던 자가 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하여 정치적 반대자들을 처단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이는 민주 공화국을 부정하는 독재자의 야만적 폭거이자 명백한 반란 행위다.

민주 공화국을 전복하려는 반란 수괴의 야수적 책동에 경악한 시민들은 황급히 국회로 달려가 맨몸으로 반란군의 진입을 막았다시민들의 용기 덕에 국회의원들은 반란의 시계를 잠시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야수의 밤은 끝나지 않았다반란 수괴와 하수인들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1212 군사 반란 이후 45년이 지난 오늘 반란 수괴 윤석열은 자신의 범죄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고도의 통치 행위이자 구국의 결단이라고 강변하며 지지자들의 결집을 호소했다자유와 민주가 살해당한 순간이었다.

이 자의 썩은 내 나는 발악에 대법원과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이 호응하고 나섰다반란군의 총칼은 막았지만반란 동조 세력의 반동적 음모는 사그라지지 않았다더구나 군 통수권은 아직도 윤석열에게 있다이 자가 외환을 구실로 내란 범죄를 덮으면서 영구 집권 시도를 하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방심은 이르다.

동은 아직 트지 않았다야수의 밤을 끝내고 민주의 아침을 맞이하려면 반란자들의 2차 책동과 암약을 막아야 한다우리는 민주 시민의 이름으로 다음을 명령한다.

하나탄핵 가결을 방해한 국민의힘은 국민에게 사죄하고 탄핵 가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물론반란 수괴 윤석열과 그 부역자들을 출당시켜라.

하나검찰은 내란 범죄 수사에서 당장 물러나라내란 범죄 수사권이 없는 검찰의 개입은 공소 기각을 노린 것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더구나 검찰은 이미 국민의 믿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하나경찰과 공수처는 반란 수괴 윤석열과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들을 긴급 체포하라.

하나헌법재판소는 시민들의 민주적 의지에 부응하여 탄핵 심판을 통해 윤석열을 파면하라.

하나보수 언론은 언론 중립을 구실로 반란 옹호론을 묵인하거나 교묘히 확산시키려는 시도를 포기하라.

이 모든 것은 특정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통해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반란 수괴와 하수인들의 처벌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민주화 이후 사상 초유의 헌정 유린을 경험한 우리는 87년 헌법의 취약성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현재의 헌정 체제는 내란을 획책한 대통령이 선출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은 물론이요그것을 지지하거나 묵과하려는 이들이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대한민국 국민은 오인된 자유주의가 입헌 민주주의 체제를 치명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을 목격했다우리 국민은 시민의 민주 역량을 폄하하고 직접 민주주의의 계기를 봉쇄하는 과두적 민주주의 체제가 어떻게 독재자의 준동을 용인하고 입헌 민주주의 질서를 위기에 몰아넣는지 절절하게 경험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입헌 민주주의 체제를 세워야 하는 헌법의 순간에 직면했다새로운 입헌 민주주의 체제는 오염된 자유를 평등과 연대의 정신으로 정화해야 한다시민들이 입법사법행정 엘리트들의 통치를수탈적 자본의 지배를 민주적으로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다양하게 마련하고헌법으로 보장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구제해야 한다.

야만의 밤국회 앞에서 야수들의 이빨을 맨몸으로 막으며 몰아낸 민주 시민들의 기백과 지혜를 보라반란군의 총이 두려워 국회를 버리고 도망간 의원들에게반란 수괴의 위세에 질려 반대할 엄두도 내지 못한 장관들에게이태원에서 죽어간 청춘들에 대한 애도조차 금지하는 지도자들에게 나라를 맡기는 체제가 과연 건강한 것인가더는 우리 국민의 용기와 지혜를 의심하지 말라우리 국민을 모욕하지 말라민주 시민의 용기와 지혜를 믿으면서 가장 민주적인 공화국을 세우도록 하자야수들이 날뛰는 야만의 밤을 몰아내고 누구도 지배하지 않고누구도 지배받지 않으며누구도 저버리지 않는 참다운 민주 국가의 아침을 맞이하자.

민주 시민 만세!

민주주의 만세!

민주공화국 만만세!

2024년 12월 12

사단법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일동

 



윤석열이 내팽개친 열 가지 가치, 함께 되찾아 가야 할 열 가지 가치 [윤석열 탄핵과 우리의 민주주의 – 시대와 철학] ①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이 내팽개친 열 가지 가치,

함께 되찾아 가야 할 열 가지 가치

 

조배준(숭실대)

 

공화국 : 비상계엄을 빙자해 사리사욕을 채우려 한 친위쿠데타의 어설픈 시도

국민 : 주권자들의 명령을 거부하고 국민의 생명, 안전, 자유를 담보로 내란을 획책한 엄중한 죄

민주주의 : 자유민주주의를 운운하며 민주 헌정을 유린한 군사테러

책임 : 국가 위상과 외교를 박살 내고, 세금과 국력을 낭비하고, 경제지표를 위기에 빠뜨린 대표자의 망국적 배임

정치공동체 : 민족분단과 민중의 피, 땀, 눈물 위에서 구축한 역사의 진보에 대한 신뢰를 깨버리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민중 자치의 상상력을 짓밟는 반역적 도발

평화 : 일상의 안녕과 시민성의 문화를 경악, 공포, 분노의 감정적 소모로 소진케 하는 심리적 만행의 무도함

치유 : 군부독재의 국가폭력으로 인한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고통을 모독하는 몰역사성

인권 : 시민의 기본권과 헌법적 자유를 말살하더라도 폭력으로 지배하면, 정권의 거짓과 멍청한 탐욕을 뒤덮을 수 있다고 믿었던 전 사이비 법률가의 피폐한 양심과 참담한 인격

정의 : 시민사회의 상식과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실체적 진실을 조롱하고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인식한 퇴행적 무지성

인간성 :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인륜적 판단과 인간에 대한 존중을 저버린 파렴치하고 몰염치한 공공의 적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비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87체제의 질곡에 갇힌 우리 시대에 대한 서늘한 얼굴의 자화상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이하 한철연) 여러 회원은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밤 기습적으로 자행된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 사태를 심판하여 현재 대통령직에 있는 윤석열과 그의 부역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윤석열 탄핵과 체포·구속운동에 민중과 시민의 이름으로 동참할 것입니다. 우리는 탄핵 정국과 그 이후까지 무너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실천으로 이 지면에 현 사태를 대하는 철학·정치적 견해를 연이어 기록합니다. 민주주의가 파괴된 날이 민주주의가 더 명확하고 새롭게 건설되는 시작임을 스스로 잊지 않도록 새기는 것입니다.

문구: 조배준, 편집: 정희수

재미 사학자 이혜옥 선생의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글을 읽다, 2021)를 읽고 [이종철 선생의 에세에 철학]

재미 사학자 이혜옥 선생의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글을 읽다, 2021)를 하루 만에 단숨에 읽었다. 2년 전인 2022년 4월경 나는 저자가 의왕시에 위치한 한 출판사에서 출판 기념회를 할 때 우연한 기회로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가정집을 개조해 출판사로 운영하는 곳에서 자그마한 몸집의 저자가 2시간 넘게 책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질의응답을 할 때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그때 저자가 사인한 책도 선사를 받았고, 내 차로 전철역까지 모셔 드리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그 사이 무슨 바쁜 일이 그렇게 많았는지 잊고 있다가 이제야 읽은 것을 보면 책도 아마 인연이 따르는 듯싶다.

이혜옥 선생은 미국의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사서를 하다가 뒤늦게 본격적인 학위 과정 공부를 시작해서 박사 학위 논문으로 이 책을 완성했다. 저자는 1904년 <강철 군화>의 저자로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잭 런던(Jack London)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의 러-일 전쟁 종군 기자로 대한 제국에 5개월간 파견되어 쓴 신문기사와 여행기 그리고 많은 사진에 관해서 쓴 영문 논문 <History of Early-modern Korea Through the Eyes and Pen of Jack London, 1904>에 기반해 썼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 논문에서 일본의 속국이 되기 삼십여 년 전에 한국인들이 일본군의 일원으로 참여했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그 당시의 여러 신문기사와 한국, 미국, 러시아, 일본 정부의 국가 공문서에서 찾아낸 기록들에 발로 뛰어다니면서 찾아냈다. 아울러 한국인들은 러시아군에도 전투 병력 또는 정탐 군으로 참여했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이로 미루어본다면 한국인들은 6.25 전쟁에서 동족 상잔을 겪기 훨씬 전에 이미 러-일 전쟁에서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된 배경에는 조선의 몰락과 함께 만주와 러시아로 이주한 조선인들과 생존을 위해 일본의 앞잡이 노릇한 조선인들이 있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대표적으로 유대인을 상징하는 말이지만, 한인들 역시 유대인 다음으로 전 세계에 걸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매 장을 여러 버전의 아리랑으로 시작한다. 아리랑은 한인들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노래라 한인들이라면 어디에 있든 잊지 않고 부르는 노래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 번 가면 다시는 못 오는 고개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에는 어쩔 수 없이 처자를 데리고 고향 땅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가던 한인들의 애절한 한이 잘 드러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한인들의 디아스포라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19세기 중반 이후 초근 목피로 연명하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식솔들을 이끌고 만주나 그 밖의 땅으로 이주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조선이 무너지면서 정치적 이유로 조선을 떠난 것이다.

경제적 이유로 조선 땅을 떠난 최초의 기록에 따르면 임란 전에도 있었다. 그 당시에도 가난과 학정에 시달리던 한인들이 월경하다가 목숨을 잃은 기록들이 있다. 하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1860-70년대에 극동 러시아와 만주로 대거 이주했던 주원인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반-상 차별의 봉건적 신분관계와 억압적인 관료주의, 과도한 세제-백골징포-의 문제에 있었다. 조선이 후기로 내려올수록 민란이 잦았던 것도 삼정문란에 따른 과도한 세금 포탈 때문이었다. 죽어서 백골이 된 사람이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는 태중의 아기에까지 세금을 매겨서 수탈하니 가뜩이나 어려운 소작인들이 생존을 이어가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런 사정을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의 이야기에 잘 나와 있다.

 

“남편이 병들어 죽은 지 이미 3년이 되었는데도 대정을 하지 못하여 아직도 배골의 신포를 바치고 있는데 지난해 일곱 살 난 아이가 세초에 들어갔고 등에 있는 네 살 난 아이도 올해 세초에 들었습니다. 종리 기필코 보존하고 있으려 했던 것은 남편의 외로운 무덤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감당할 수 있는 형세가 없어졌습니다.”(71-72쪽)

 

사농공상에 기반한 조선은 그야말로 힘없는 백성들을 마른 걸레 짜듯 수탈하면서 유지되던 국가였다. 오늘날 북한 사회를 보면 조선의 옛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이처럼 극한 상황에 처한 백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야반도주해서 국경을 넘었다. 이들이 못나고 게을러서 가난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 한인들은 체격상 일본인보다 뛰어났고, 이들이 이주한 만주나 러시아에서 한인들은 근면한 노력과 현지인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농사기술’로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국에 있었을 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부유하고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조선이라는 국가에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그런 나라를 떠나왔지만, 한인 디아스포라들은 현지에 동화되지 않고 한인들의 언어와 풍습을 유지하면서 살았다.

대원군이 조선을 개혁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특히 그가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경복궁을 중창하는 일에 막대한 인력과 세금을 쏟아붓고, 국제 정세의 변화를 외면한 채 쇄국정책을 폄으로써 조선을 더욱 고립 정체시키고, 세도 정치를 막기 위해 간택한 왕비 윤 씨와 정치적 갈등을 빚으면서 조선은 마지막 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반면 일본은 1854년에 미국과 굴욕적인 통상 조약을 맺은 이래 1868년 메이지 유신의 개혁 정책에 따라 빠른 속도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근대화의 발길을 재촉했다. 일본은 1876년 조선과 강제적으로 강화도 조약을 맺고,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조선 땅에서 청일 전쟁에 승리를 한다. 이후 일본의 정한론자들은 노골적으로 조선의 왕실을 장악해서 서서히 조선의 군대를 해산하고 조선의 외교와 재정을 장악하면서 식민지화를 강행한다. 1905년의 을사조약과 1910년의 강제 합병은 예정된 수순에 불과했다.

한인들의 2차 디아스포라는 이렇게 조선이 정치적으로 무력해지면서 나타났다. 이때의 디아스포라는 1860-70년대의 경제적 이유로 이주한 것과 달리 양반 출신의 식자층과 조선의 독립운동을 모색한 개혁 측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이들은 독립운동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만주에 수많은 학교들을 세워 인재들을 양성했다. 이들은 만주와 러시아 그리고 몽골 등을 중심으로 활동 기반을 만들었다. 이들은 전 세대의 디아스포라가 현지의 토착화에 관심을 갖는 것과 달리 언제든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을 갖고 조선의 언어와 풍습 그리고 문화 등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는 조선의 독립을 위한 방편으로 사회주의를 끌어들인 이동휘, 단지회를 결성해서 조선의 무장 투쟁을 부추겨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그리고 애국심을 심어주는 교육에 주력한 북간도의 이상설과 신민회 등 여러 갈래들이 있었다.

이혜옥 선생은 1937년에 있었던 고려인의 강제 이주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스탈린이 다민족 디아스포라인들을 ‘반역자’로 의심했고, 외국인들은 거의 병적으로 불신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스탈린은 “비 러시아 민족을 대상으로 대숙청과 강제 이주를 시행했는데, 이런 방법으로 적의 세력을 소탕하고, 소비에트 사회를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전쟁에 대비하려는 심산이었다. 그 정책의 첫 번째가 엄청난 수의 고려인들을 극동 러시아로부터 남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랄해와 발카쉬 호수 지역으로 이주시킨 것”(300쪽)이다. 화장실도 숙식 시설도 없는 열차 여행길은 30일 내지 45일이 걸렸는데, 이 긴 여행 과정에서 고려인들은 질병과 부상으로 무려 16.3 퍼센트가 사망했다. 나머지 60퍼센트도 다음 해 봄에 또 다른 미지의 고향으로 실려갔다. 수십 년 전에 가난과 차별 대우를 못 이겨 국경을 넘어갔던 불쌍한 조선의 농민들이 또다시 알지도 못하는 멀고 먼 고장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대규모로 이루어진 다국적 한인 디아스포라는 그야말로 애환과 고통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그럼에도 한인 디아스포라는 중국계 역사가 매들린 슈가 말한 것처럼 ‘모국을 향해 지속하는 충성심으로 단합’해서, 어디에 살고 있던 언젠가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 환향을 믿고 그날을 위해 살고자 했다(313쪽). 이러한 전통은 끊이지 않고 미래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디아스포라가 조선이라는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발생한 것을 미루어본다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국가의 책임과 역할은 지대하다. 오늘날 전 세계를 강타하는 한류의 바람도 대한민국의 국력 신장과 한인들의 열정과 재능 그리고 애국심 등에 힘입은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 이혜옥 선생의 방대한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선생은 뒤늦게 시작한 학술 연구지만 이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 “당시의 신문 기사와 서양인들의 조선 여행기, 일본과 미국의 내쇼날 아카이브, 러시아와 한국의 일차 자료뿐만 아니라, 미국 내 도서관에 소장된 수많은 기록과 출판물을 추적하여 발췌한 역사적 사실들을 서술한 것”(8쪽)이다. 선생의 이러한 노고는 책 뒤편에 실린 방대한 참고문헌(Bibliography) 목록으로 확인된다. 이것들만으로도 이 책의 연구사적 가치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저 책상에 앉아서 문헌들만 뒤적거리면서 쓴 것이 아니라 발로 뛰어다니면서 문헌들을 찾고, 오랜 도서관 사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사료들을 정리하고 해석한 노고의 산물이다. 이런 연구는 민족 사학이니 식민 사학이니 하면서 추상적인 개념만을 둘러싸고 갑론을박하는 한국의 역사학계가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에세이 철학 서론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에세이 철학 서론

 

이 땅에서 흔히 하는 철학 활동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남의 철학을 소개하고 해설하고 해석하는 것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양철학의 경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근대의 데카르트를 거쳐 영국의 경험론이나 독일의 관념론, 그리고 20세기 들어 후설이나 하이데거, 프랑스의 구조주의나 해체주의 계열들을 포함해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들을 학습하기도 쉽지 않은데 어찌 독자적으로 해석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이런 철학들을 연구하면서 자기 이야기나 철학을 이야기하기는 더 어렵다. 마찬가지로 동양철학의 경우도 공맹과 노장사상, 전국시대의 법가로부터 시작해서 송나라의 주희를 비롯한 신유학자들을 연구하는 것도 벅찬데 어떻게 자기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정은 한국의 사상과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경험하고 있다. 원효와 의상의 불교 철학으로부터 고려의 의천과 지눌, 그리고 조선의 뛰어난 유학자인 퇴계와 율곡의 철학, 또 다산과 같은 실학자의 사상들을 평생 연구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나의 철학과 사상을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철학이야말로 가장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학문인데 이렇게 허구한 날 고래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의 철학만 한다면 내가 하는 철학을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오늘날 이 땅에서 철학을 하는 연구자들이 부닥치는 공통된 딜레마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철학을 오로지 이론으로 학습을 하려 하고, 철학 공부를 특정한 철학자들을 연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문제의식을 갖고 스스로 세운 문제들을 탐구하면서 철학을 하지 않다 보니 그들 거의 대부분 다른 철학자들이나 사상에 의존해서만 철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찍이 임마누엘 칸트도 자기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면서 “요즘 학생들이 철학은 많이 알고 있지만 자기 스스로 철학을 하지는 못한다(nicht philosophieren)”고 지적한 말을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철학을 연구하고 해석하기만 할 뿐 자기 스스로 철학적 사유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G.W.F 헤겔은 “철학은 사유 속에 포착한 그 시대”라고 갈파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저기서 말하는 사유와 시대에 과연 나의 사유가 있고, 우리의 시대가 있을까? 영국의 경험론은 17-8세기의 영국의 시대를 포착한 것이고, 독일 관념론은 18-9세기의 독일의 현실을 반성하면서 나온 철학이다. 20세기 후반의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는 이차 세계 대전 후 공고해진 자본주의 질서와 냉전, 그리고 6.8 혁명에 대한 반성에서 싹튼 철학이다. 이에 반해 식민지와 전쟁, 유신 독재와 근대화 그리고 민주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기를 산 한국의 어떤 철학자들도 자신들의 시대와 현실을 제대로 반성한 적도 없고, 또 그것을 자신의 언어와 사유로 표현한 적도 없다. 그저 열심히 독일 철학과 프랑스 철학을 이야기하고, 영국 철학과 미국 철학을 이야기할 뿐이다. 서양철학을 예로 들었지만, 사정은 동양철학이나 한국 철학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시대와 우리 삶을 반성하지 못하고 개념적으로 포착하지도 못하다 보니 과연 한국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공허한 물음만 던질 뿐이다. 에세이 철학은 이런 딜레마적 상황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에세이 철학 이란 무엇인가? 나는 아주 단순화시켜 이 물음에 대해 답변해 보고자 한다. 내가 말하는 에세이 철학 은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우리의 삶과 현실을 우리의 생각과 언어로 기술한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런 답변에 대해 누가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철학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물어보자. 과연 한국의 철학자들이 하는 일상적인 철학 속에 지금 여기의 우리 시대와 삶이 들어있는가? 한국의 철학자들이 하는 철학은 엄밀히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언어를 걸러서 나온 것인가? 왜 한국의 철학자들은 자기가 하는 철학에서 끊임없이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가? 과연 지금 시대 이 땅에 한국 철학이라 할만한 것이 있는가? 이런 원론적인 물음은 이제는 너무나 흔해서 진부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철학 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서 에세이 철학의 정체성과 관련해 분명히 정리해 둘 부분이 있다. 하나는 수필도 에세이 철학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무엇보다 나의 에세이 철학 은 기존의 에세이 철학과 다르고 철학적 에세이와도 다르다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과거 60-70년 대 안병욱, 김형석, 김태길이 장안의 지가를 높인 에세이 책들이 있었다. 이들은 맛깔스러운 문장으로 신변잡기를 대상으로 에세이를 썼다. 이 세 사람 모두 대학의 현직 철학 교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의 에세이를 철학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철학교수가 썼다 하더라도 신변잡기에 관한 에세이를 철학에 포함 시킨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음으로 철학적 에세이를 표방하는 글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에세이 글은 대부분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고민들, 이를테면 갈등과 고통 슬픔과 기쁨 등을 대상으로 정서적인 공감이나 역지사지 등의 에세이를 쓴 글이다. 이런 에세이는 철학보다는 심리학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대현 선생과 나눈 이야기를 잠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일전에 정대현 선생님이 개인 카톡으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수필 철학’과 ‘ 에세이 철학 ‘의 두 용어는 일상 언어철학의 정체성의 문맥에서 대립이나 경쟁을 발생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 에세이 철학 ‘ 은 ‘논문 철학’과도 경쟁적일 필요가 없이, 그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호성과 개방성이 보다 일상 언어적이 아닐까요? ‘수필 철학’도 마찬가지로 ‘에세이 철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일상 언어의 글은 철학적이다]라는 지향을 보다 선명하게 함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적은 피천득 선생 같은 ‘반 철학론’입니다. 선생은 [수필은 난삽한 개념으로 무장할 필요가 없다]라는 단순한 명제로 해도 될 말을 구태여 ‘반 철학론’으로 깃발을 잘 못 드신 것입니다. 당신이 만난 철학자들을 어떻게 생각하셨을지를 묻게 하는 대목입니다. 시중의 많은 두 필 반들이 (저의 누이들을 통해 들은 바로는) <피천득 수필론>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이 상황이 대세가 되기 전에, 더 악화되기 전에, 올바른 길로 안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상 언어의 아름다움과 힘이 왜곡되지 않도록 선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1. 먼저 피천득 선생의 번 철학론을 비판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제시하는 “글은 철학이다”라는 명제의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선생님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글은 철학이다”라는 명제는 너무나 외연이 넓어 모호하다는 생각입니다. 주역의 계사 전도 글은 생각보다 정확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선생님 말씀처럼 “글은 반성적이고, 비판적이며, 대안적 해석을 제안한다”라고 해도 모든 글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이 글들에는 다양한 편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철학에도 그런 편차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철학의 외연을 확장해 놓으면 어떤 실익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모든 것을 ‘철학’의 테두리 안으로 포괄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폭력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존재들은 각기 그 기능과 역할 존재 방식에 따라 다르게 지칭되듯, 언어로 표현하는 다양한 활동들도 대상 영역에 따라 달리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수필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시와 소설, 시나리오 등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뭉텅 걸려서 ‘철학’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지요. 오히려 각기 고유한 존재 방식과 표현 방식에 따라 영역과 기능의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다르게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차이를 끌어들이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저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이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논리로 이용되는 것에는 문제가 있고, 또 모더니즘과의 차이를 절대화한다면 그것 자체가 모더니즘적 사고에 갇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뉴턴의 역학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요. 각자의 대상 영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모든 수필은 철학이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모든 철학은 수필이다.”라는 명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수필은 철학적”이고, 또 “어떤 철학은 수필이다”라는 할 수 있지만요.

2. 김형석 선생이나 김태길 선생 그리고 안병욱 선생 등의 수필 철학을 제가 말하는 ‘에세이 철학’과 구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에세이 철학’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에세이’와 ‘철학’을 붙여서 ‘에세이 철학’이라고 하고, 그것을 철학 에세이나 기존의 에세이 철학 혹은 수필 철학과 의도적으로 차별 짓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분들의 철학을 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유의 에세이 혹은 수필 철학의 역할이 지녔던 시대적 의의는 인정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과거 철학과 사무 조교를 할 때 김형석 선생의 에세이집을 읽고서 너무나 감동을 받아 철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하는 학생들을 여럿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그분들이 정서적으로 독자들에게 공감과 영향을 준 바가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부류의 철학의 역할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에세이나 수필의 일차적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의미화’라고 생각합니다. 널리 암송되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저 그렇게 존재하던 것, 나와 무관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던 것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 존재의 의미가 살아나는 경험이지요. 수필은 이런 ‘의미화’에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하고, 그 점에서 앞서 말한 세분들의 수필이 그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수필에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분들의 수필 철학은 그것을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론과 사상’의 차원에까지 끌어올리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보편성의 차원을 무시한다면 철학은 비트겐슈타인도 비판했던 ‘사적 언어’의 수준을 벗어나 기 힘들지 않을까요? 물론 선생님은 앞 서의 글에서 이론의 기반이 일상 언어이고 일상 언어가 이론을 규정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지만, 그것이 반드시 일방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양자의 관계는 프로이트 식으로 표현하면 중층적이고, 차이와 다양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사실 제가 그분들의 수필 철학과 차별하고자 하는 보다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철학의 고유한 역할과 기능을 ‘의미화'(signification)와 이론 외에도 ‘비판'(critic)에 있다고 봅니다. 선생님은 피천득 선생의 반철학론을 비판하시면서 수필을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다 보니 사회와 역사를 담지 못한 채 기껏해야 ‘솔직함’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앞서 말한 세분들의 수필 철학에서도 사회와 역사가 들어오지 못하고, 기존 이론이나 사상에 대한 냉정한 비판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기껏해야 포괄적 수준에서 이야기는 해도 이론적 형태로 정형화되기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양철학의 역사는 칼만 들지 않았지’ 언어로 이루어진 ‘살부(殺父)의 역사’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런 치열한 논쟁을 통해 자신들만의 고유한 철학사를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철학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쓰는 ‘「에세이 철학」’의 기본 정신은 “우리 사회와 우리 삶, 그리고 시대에 관한 우리 생각을 우리 언어로 표현하자!”는 데 있습니다. 저는 결코 배타적인 쇼비니스트도 아니고, 막무가내식 회의주의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의 기준에서 본다면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철학적 활동은 자기 언어, 자기 생각, 자기 시대가 없이 남의 생각과 남의 언어, 남의 시대에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철학들과 부단히 싸우고 있고, 우리 언어를 우리 삶 속에서 찾으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판’은 철학의 다른 어떤 속성보다 제가 중요하는 요소입니다.”

 

Ⅲ. 다음으로 「에세이 철학」의 뿌리 혹은 정신과 관련해 몇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비판’(critic)은 「에세이 철학」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이 ‘비판’의 의미를 칸트 이후의 독일 관념론에서 찾지 않고 8세기 당나라 선(禪)의 정신에서 찾고 있다. 물론 「에세이 철학」은 우리가 사는 현재의 일상을 중요시하고 불교는 마음 심(心) 자를 중요시한다거나, 「에세이철학」은 철저히 문자에 기반한 철학을 전개하는 반면 선은 불립문자나 교외별전처럼 이 문자를 넘어서려 하기 때문에 양자의 친화성에 대해 쉽게 수긍하기 어려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主 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낸다)는 금강경의 한 구절처럼 이 마음 심이 무심의 단계에 이르는 것은 일상이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일상에서 밥 짓고 물깆는 일 자체를 불법의 연장으로 간주한다. 그만큼 일상은 선에서도 중요하다. 선이나 「에세이 철학」이나 똑같이 이 일상 바깥의 초월적인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

당나라의 선불교는 잘 알다시피 스님들이 염불하는 법당이 아니라 모두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죽은 경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언어에서 불법을 찾는 중국 불교의 새로운 정신이다. 일자 무식인 6조 혜능은 홍인 선사의 금강경 강론을 듣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는다. 이러한 깨달음에는 번거로운 절차도 없고, 온갖 언어 수식도 필요 없다. 오로지 행주좌와 일심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 홀연히 얻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부닥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자 하는 창조적 정신만이 중요하다. 임제 선사가 말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살 불사조(殺佛殺祖)의 정신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가 칼을 든 사무라이의 정신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에세이 철학」’은 일상을 철학화하고 철학을 일상화할 때 그 어떤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 전통적인 철학의 주제들, 동과 서, 옛날과 지금의 수많은 철학자들에 올라타거나 그들의 사상을 빌려 오지 않는다. ‘「에세이 철학」’은 ‘지금 이 순간'(hic et nunc)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일상에서 부닥치는 모든 대상들과 경험들을 철학적 텍스트로 삼아 그것을 비판하고 성찰하면서 철학적 통찰의 깊이를 드러내준다. 때문에 ‘「에세이 철학」’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선의 정신처럼 모든 권위와 우상의 파괴를 시도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한 4대 우상, 즉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언어의 우상’ 외에도 ‘권력과 국가의 우상’ 등 일체의 권위와 우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에세이 철학」은 모든 가치를 부정한 니체의 ‘망치의 철학’을 구현하고자 할 뿐 실체화되고 화석화된 이론에 집착하지 않는다. ‘「에세이 철학」’은 저 너머의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추상개념들의 몰 주체성도 비판한다.

물론 문자에 기초한 「에세이 철학」과 참선과 문자 너머의 세계를 추구하는 선의 내용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선은 부처의 생전에 가섭의 염화시중의 미소가 시사하는 것처럼 참다운 진리는 언어를 넘어서 있고, 언어를 통해 전수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강하다. 불립문자(不立文字)나 교외별전(敎外別傳) 같은 말은 언어를 넘어서려는 선의 정신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때문에 한국불교에서는 화두(話頭)를 참구(參究) 하는 간화선(看話禪)이 일찍부터 전통을 이루고 있다. 동양의 학문은 순수 이론(theoria)만 추구하는 서양의 학문과 달리 실천적인 자각과 깨달음을 중시하고 그것을 위한 방편으로 수행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화두 참구를 깨달음의 중요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선도 동양의 일반적 전통과 궤를 같이 하는 셈이다. 알음알이로 얻는 이론은 원숭이가 흉내를 내는 것처럼 주변을 맴돌 뿐 그 핵심과 본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선의 주장이다. 지극한 깨달음은 이 언어와 이론을 넘어서 진정 마음 심(心)에서 전율을 느끼듯 대오각성한다는 의미다. 사실 서양철학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이처럼 강렬한 정신적 체험(體驗)을 쉽게 이해할 수 없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칸트가 말한 물자체(Ding an sich)의 세계나 청년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 논고』에서 말한 “나의 세계의 한계는 나의 언어의 한계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라는 의미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칸트나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언어를 초월한 세계는 무어라고 할 수 없는 X의 세계에 다름없다. 이 세계는 언어로 기술할 수 없는 세계이고, 칸트의 이율배반(Antinomie) 이론에서 보듯, 그것을 언어적으로 기술하려 할 경우 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인 모순율이 깨질 수밖에 없다. 비트겐슈타인의 세계는 말할 수 없는 침묵의 대상이지 그것이 적극적으로 무엇인지 기술할 수가 없다. 노자(老子)가 『도덕경』 첫머리에서 적었듯, 도를 도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이런 의미의 세계나 도는 긍정적 기술의 대상이 아니라 부정적 의미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화두를 참 구한다는 선은 언어가 끊어진 이 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깨달음이란 면에서 다른 철학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불립문자를 추구하는 선은 언어의 끝, 문자의 종언을 주장하는 데 반해, ‘「에세이 철학」’은 모든 것을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에세이 철학」’을 굳이 선으로 표현한다면 ‘문자 썬’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선불교의 정신을 21세기에 새롭게 각색하고 변형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문자는 어떤 경우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문자를 버린다면 문자가 부재하는 그 세계는 이 세계가 아니고 이 세계와 무관한 세계이다. 이 세계를 초월한 깨달음이 소수에게 가능할지 몰라도, 그것은 이 세계의 다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깨달음의 궁극 목적(상구보리)은 이 세상과 나누기 위함이고(하화중생),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함(마르크스)이다. 이러한 정신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깨달은 이, 모든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밖으로 나가 빛을 본 계몽된 인간은 동굴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의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동굴 속으로 귀환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 철학」’은 선의 문자화, 선의 일상화를 통해 지금 여기에서 깨달음을 구하고 진리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가장 현실적인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때의 현실은 헤겔이 말한 것처럼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의 의미에서 이성에 의해 걸러진 현실에 가깝다.

 

Ⅳ. 마지막으로 「에세이 철학」에는 진입 장벽이 없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에세이 철학」은 누구누구의 철학처럼 특화되거나 어떠어떠한 철학처럼 독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 철학」은 누구나 쓸 수가 있다. 한 마디로 「에세이 철학」을 쓰는 데는 특별한 조건이나 요건이 없다는 것이다. 「에세이 철학」은 기본적으로 삶과 시대에 대한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의 이론이나 철학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언어로 쉽게 표현하는 데 있다. 어떤 전문화된 철학을 하는 데는 그에 따른 형식이나 조건이 있다. 예를 들어 칸트 전공자는 칸트 철학의 문제들을 정리하고 그에 따른 원전을 분석적으로 이해를 하고, 관련 연구나 논문들을 숙지해야 하고, 자신이 쓰는 논문이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단순히 기존의 해석들을 정리만 할 경우 그것은 학술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전문 칸트 연구자로서의 기본적인 요건이 필요하다. 이런 요건들을 갖춘 후에 비로소 그는 칸트에 관한 논문을 쓸 수가 있다. 하지만 「에세이 철학」의 경우는 이런 형태의 진입장벽이 없다. 때문에 「에세이 철학」은 누구나 쓸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언어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면 된다. 하지만 누구든지라고 했을 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세이 철학」은 특정한 철학자의 사상이나 특정한 철학적 주제에 관한 전문적 지식은 요구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요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남의 사상을 올라타지 않으려면 자기 사상의 깊이와 통찰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 철학」은 글쓰기에서 요구되는 기본 요건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적어도 「에세이 철학」을 쓰는 데는 다음의 몇 가지가 필요할 수 있다. 첫째는 글이 중언부언하지 않는 명확성(Clearity)이고, 둘째는 글이 피상적이지 않아야 하는 깊이(Depth)이고, 세 번째는 글이 남의 생각이 아닌 자신의 생각과 언어라는 점에서 독창성(Originality)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은 시류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글쓴이의 독립성(Independence)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본적 요건들이 갖추어질 때 그 글을 다른 글과 분명하게 차별 지을 수 있으며, 읽는 이들의 생각을 일깨워 줄 수 있다. 이런 정도의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글을 누구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쓸 수 있으려면, 속된 말로 내공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결코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에세이 철학」은 누구든지 쓸 수 있지만, 또한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세이 철학」은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에세이 철학」의 지향점은 지금 여기(hic et nunc)이고, 나의 생각과 나의 언어이다. 그러므로 누구든 「에세이 철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세계를 반성하고, 자신의 생각을 일깨우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에세이 철학」의 이러한 정신은 누구든 공유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에세이 철학」은 철학 운동이 자 문화운동이고 글쓰기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언어와 분석철학의 전통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일상언어와 분석철학의 전통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내가 철학을 처음 배우던 시절에는 한국 사회의 80년 대 분위기 때문에 주로 헤겔 마르크스의 철학이 주도했다. 처음에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이 들어왔고, 다음에는 시대와 현실을 담은 헤겔 철학이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변혁 철학의 심장과 브레인 역할을 하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철학이 한 시대를 휘어 잡았다. 이런 시대 분위기에서 영미권의 분석 철학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반 시대적이어서 특별히 관심 있는 학생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외면 당했다. 비판적 합리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K. 포퍼의 철학 조차도 완전히 무시당했다. 하지만 대학원에 들어가서 내가 배운 철학은 프레게와 러셀과 논리실증주의자 그리고 전후기 비트겐슈타인 등이었다. 이들 철학은 일단 분석적이고 명쾌해서 접근하기가 쉬웠다. 덕분에 나도 석사 3학기 때 까지는 비트겐슈타인 후기 철학을 가지고 논문을 쓸까 고민을 했었다.

분석 철학은 영미 철학의 전통에서 성장한 철학이다. 영국의 경험론은 대체로 반 형이상학적이고 반목적론적이었다. 대륙의 합리론자들이 실체가 무엇이고, 그것이 하나인지 둘인지 아니면 라이프니츠 처럼 수도 없이 많다고 하는 지를 가지고 논쟁을 했다. 로크는 적어도 우리 정신 밖의 실체인 X를 인정했지만, 그것이 무엇인 지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의 입장을 취했다. 버클리는 그것을 지각적 표상으로 환원했다. 그의 유명한 “존재는 지각이다”는 명제가 그것을 말해준다. 데이비드 흄에 오면 이런 실체는 단순히 인상들의 다발로 간주된다. 불멸의 영혼이라는 실체는 감각의 다발이고, 뉴턴의 기계론적 인과법칙도 반복적 습관에서 이루어지는 연상의 법칙으로 주관화된다. 이런 면에서 데이비드 흄은 근대 경험론이 갈 수 있는 막다른 골목까지 간 셈이다. 20 세기의 ‘논리 실증주의’는 흄의 20세기 버젼이나 다름 없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역할을 언어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애매하고 모호한 말들로 인해 철학의 문제들이 생긴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추방한다면 철학의 전통적인 문제들도 해결될 것으로 보았다. 그의 정신을 추종한 비엔나 써클은 세상에는 단 두 가지의 명제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의미있는 명제’와 ‘의미없는 명제’가 그렇다. 수학과 논리학의 명제들, 그리고 경험적 검증이 가능한 명제들이 전자에 속하고, 가치 명제나 형이상학적 명제는 논리적인 명제도 아니고 경험적으로 검증이 되는 명제도 아니기 때문에 후자에 속한다. 비엔나 써클의 철학자들은 검증이론(verification theory)의 이러한 분석을 통해 철학의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러한 도발적인 주장들이 철학적 문제들을 다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이 끼친 공로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엔나 써클의 일원인 루돌프 카르납은 그 당시 대단히 떠 받들어졌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모호하고 애매한 명제들을 하나 하나 까 뒤집으면서 분석 비판을 시도한 적이 있다. 철학을 형이상학의 모호한 구름 위에서 지상의 밝은 빛 한 가운데로 끌고 내려오려 한 것이다. 물론 형이상학의 전 체계를 낱낱의 명제들로 해체해서 명제 단위로 비판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하지만 카르납의 작업은 적어도 비판적 언어 철학이 가야 할 길을 보여준 셈이다. 이런 전통이 미국으로 건너가 분석 철학의 초석을 만들었다.

<트락타투스>(Logico-Tractatus)에 나타난 청년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론’은 언어와 세계의 대응을 통해 명제의 의미를 단순화 시켰다. 반면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에서 일상 언어의 문맥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의 쓰임을 통해 언어의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저항이 없으면 더 빨리 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진공 상태를 가정했는데, 오히려 더 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들은 대륙의 철학자들처럼 사변의 전체로 얽혀 있지 않고, 일상 속에 살아 있는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만큼 이해하기 쉽고 철학적 작업이 무엇인 지를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삶과 현실에서 유리된 추상 개념들을 현란하게 구사해야지만 철학을 하는 거라는 전통 철학의 모호한 환상을 확실하게 깨버린 것이다.

내가 헤겔 마르크스의 철학을 할 때는 이데올로기 비판의 차원에서 영미권의 분석 철학을 무조건 백안시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일상 언어에 기초한 에세이 철학을 하면서 분석 철학의 정신, 그들이 사용하는 일상 언어, 삶에 기초한 철학 등과 같은 분석 철학의 정신이 에세이 철학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철학의 정신을 살려서 삶과 시대의 문제를 해석하고자 한다면 굳이 대륙권 인가 영미권 인가의 구분도 무색해질 수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미권의 철학에서 헤겔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헤겔 철학에 대한 논문과 연구서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다. 분석 철학의 한계를 대륙 철학의 정신을 받아들여 돌파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가 있다. 독일 철학 역시 하버마스 이래로 어중쩡한 포지션 때문에 새로운 철학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영미권의 철학에 대해 적극 관심을 보이는 철학자들도 적지 않다.

우리가 고정된 하나의 길만 고집하려는 것은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한 한계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른다. 형이상학자들이 믿는 전통적인 명제 하나가 있다. 화엄의 인드라 망처럼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는 하나이지만, 그것에 이르는 길은 여럿이다.”라는 명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본다면 진리는 그것을 어떤 길로 어떻게 접근하느 냐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한계를 인정한다면 동과 서, 그리고 고금의 벽을 얼마든지 벗어 던지고 철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자와 장자가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부활하고, 화엄과 주역의 존재론이 양자역학과 대화하고, 분석적 정신과 종합적 정신이 동양의 음양의 관계처럼 대대 관계를 이루어 하나의 방법론을 구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의 딱정벌레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의 딱정벌레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이 종철의 에세이 철학]에 실린 글을 저자의 동의를 얻어 소개합니다.

나는 이른바 선사들이 토굴 속에서 수년 동안 참선을 하면서 마침내 무언가 깨달았다고 할 때 그것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오랜 수행 끝에 그들이 우주 만물의 통일적 원리인지 혹은 삶의 궁극의 원리인지를 발견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들이 치열한 수행 끝에 강렬한 확신이나 체험을 얻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의 생각일 뿐 그것 자체가 보편화되고 객관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사적 체험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깨달음을 판정해 주는 구루(Guru)가 있다고 해도, 그 구루가 깨달은 자(Buddha)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구루가 깨달은 자라는 것을 다른 구루가 판정해 준다고 하자. 하지만 이런 물음을 제기하다 보면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나타나는 ‘제3자 논변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근거 지우는 것을 새롭게 근거 짓는 것의 무한 퇴행 문제이다. 결국 유한자들에서 무한자이자 궁극적 해결사인 신에 이를 때는 일종의 근거 지움이 아니라 점핑(jumping)이 일어난다.

비트겐슈타인의 ‘딱정벌레’도 비슷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자기 만이 상자 속의 딱정벌레를 보았다고 하지만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딱정벌레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 각각이 보았다는 말을 최종적으로 근거지울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사실 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은 빼어난 저서들이나 과학적 발견들을 통해 자신들의 궁극의 연구 결과를 보여줄 수 있고, 예술가들도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그리고 기술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생산한 기술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깨침을 상징하는 상자 속의 딱정벌레는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백분 양보를 해서 그런 깨달음의 존재에 대해 인정도 하지 않고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그런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치열한 수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만은 엄연한 ‘팩트’로 인정을 한다. 그런데 이런 팩트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똑같이 한다. 이를테면 최고의 경지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운동선수들도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노력을 하는 것이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예술가도 그렇고, 문자를 통해 최고의 작품을 쓰고자 하는 학자의 경우들도 마찬가지다.

깨친 자의 깨달음에 심오한 형이상학적 원리에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한 자들이 갖는 신비감이고 그릇된 신앙일 뿐이다. 때문에 깨달음을 가장한 자들이 몽매한 대중들을 데리고 사기 치는 경우는 역사에서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이런 오류나 그릇된 믿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 혹은 궁극의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깨달음이 진정 무엇인가?”라는 절박한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이를테면 “도道가 무엇인가?” “부처가 무엇인가?”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등 특정한 문제를 가지고 싸울 수도 있고, 만공 스님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처럼 오직 하나(一)를 잡을 수도 있고, 아예 그도 저도 아닌 ‘이 모꼬?’와 같이 무자화두(無字話頭)를 가지고도 수행 정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물음들이 도달하는 것이 무엇일까? 무나 도가 실체가 없듯, 깨달음의 실체도 없고 내용도 따로 없다. 칸트가 현상을 초월한 물자체(Ding an sich)의 세계를 말했지만, 도대체 현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본질이 어디에 있고, 본질을 담지 않은 현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장막 뒤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고 들추어 보지만 그저 어둠뿐이 없는 것이다. 현상과 본질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깨달음과 일상도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불교의 언어로 말하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는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 /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240000,37&pageNo=1_1_1_0

부처가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은 것이 무얼까? 나는 아주 단순하다고 본다. 부처는 생(生) 속에 담긴 고(苦)를 본 것이고,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해탈)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통찰과 깨달음은 너무나 단순한 것이다. 이 단순한 통찰과 단순한 해법을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때문에 부처는 입적을 할 때 자신이 평생 설법한 8만 법문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예수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가 산상수훈에서 던졌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일까?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단순하다. 예수의 메시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그저 ‘사랑’이란 말이다. 구약이 ‘정의’를 세우고자 했다면 예수로부터 시작하는 신약은 ‘사랑’이 알파요 오메가이다. 사랑만이 우리가 삶을 지속할 이유이고,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이 사랑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양의 공자의 정신도 그리 복잡할 것 없다. 공자가 말한 인(仁)은 부처가 말한 자비와 예수의 사랑과 표현 언어는 달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베풂과 보살핌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고, 우주 만물에까지 확장을 한다고 하면 생육의 도와 다르지가 않다. 남송의 주자는 리(理) 가 우주 만물의 원리라고 하는 태극도설(太極圖說)을 끌고 들어와 공자의 말씀을 형이상학의 차원으로 체계화해서 성리학을 세웠다. 조선의 선비들은 오로지 그것만이 공자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했지만 그들은 공자의 말을 너무 번쇄하게 만들고 너무 추상화시켰을 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공자의 사상은 너무나 단순 명확한 인(仁)에 다 들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남을 내 몸처럼 생각하고, 나를 남들 속에서 보려고 하는 태도이다. 이것은 교양인이라면 누구든지 알 수 있고, 선한 마음을 갖는 자라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지극히 단순한 말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 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과 같다. 세분 성인의 말씀이 이처럼 단순 명확한 것은 그들 모두가 삶에서 진실을 끌어 올렸었고, 삶에 깊숙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석가나 예수, 그리고 공자와 같은 성인들이 말씀한 이 단순한 원리가 후대로 갈수록 복잡한 교리로 체계화되고 형이상학적 원리로 추상화되고, 신비한 언설로 간주돼 삶과 유리되고 만 것이다. 그런 필연적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참으로 본질을 볼 수 있어야지 똥폼이나 잡고 허접데기 껍데기만 붙잡고 있으면 되겠는가?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30121203900063sv

눈치(Noonchi)의 해석학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눈치(Noonchi)의 해석학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이 종철의 에세이 철학]에 실린 글을 저자의 동의를 얻어 소개합니다.

눈치(Noonchi)는 사태를 이해하는 한국인들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눈치가 없다’ 거나 ‘눈치가 빠르다’라는 말들은 거의 일상적으로 한국인들의 이해 방식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런 눈치가 과거에는 자기 검열의 방식이거나 처세술의 의미로서 부정적으로만 이해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상황 전체에 대한 빠른 인식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적극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이 ‘눈치’의 개념을 생각하다 보면 다양한 해석의 소지가 있다. 이 눈치를 한국적 해석학의 차원에서 해석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눈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고 나쁨이 아니라 ‘속도’이다. ‘눈치가 빠르다’라는 말이 그렇다.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서도 고기 맛을 본다’라는 말이 있다. 절(寺)은 채식을 하기 때문에 고기와는 거리가 먼 곳인데, 그런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 이 눈치다. 그런데 여기서 ‘빠르다’라고 할 때의 ‘속도’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눈치가 빠르면 그만큼 상황을 빨리 인식하고 그에 따른 후속적 대처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말하는 ‘빨리빨리’는 이제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말이 되었지만, 한국인들은 이 특유의 ‘빨리빨리’의 정신에 의해 식민지와 전쟁 폐허의 상황을 겪고서도 이렇게 빨리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한국인들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차이가 크다. ‘빨리빨리’의 문화를 반성하자는 말도 많지만, 이것은 디지털 시대에 더 잘 어울리는 정신이다.

뉴턴의 제2 운동 법칙인 f=ma에서 보듯, 가속도가 힘을 결정하는 주요 원인이다. 속도가 빠르면 일 처리도 빠르고 영향력도 클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그곳에서 인터넷 라인이 문제가 생겼거나 잘 달리던 차가 고장이 나서 A/S를 한 번 받으려면 얼마나 긴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한지 말이다. 한국의 배달 서비스는 분초를 다툰다. 물론 이것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의미다. 과거 칭기즈칸의 군대가 빠른 시간에 전 세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빠른 기동력에 있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을 오가는 그의 파발마는 하루 352km라는 상상 불가의 속도로 전달했고, 그의 군대의 이동 속도는 하루에 130km를 이동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현대의 군대들도 따라 잡지 못할 속도이다. 몽골의 기마병의 이동 속도는 너무나 빨라서 유럽의 기사들이 미처 대비책도 세우기 전에 순식간에 몰아쳐 헝가리 평원에서 유럽의 연합 기사단들을 전멸시켰다. 이로 인해 몽골 군대에 대해 유럽인들이 가졌던 공포나 트라우마는 대단했다. 그런데 내가 몽골에서 지내보며 알게 되었지만 이런 빠른 유전자들은 더는 몽골인들에게서가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빨리빨리’의 정신은 무엇보다 빠른 상황 판단, 즉 눈치가 빠를 때 가능하다. 그 점에서 눈치에서 속도가 갖는 긍정성의 의미가 더 크다.

이런 빠른 눈치가 때로는 자기검열과 차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눈치가 보인다’거나 ‘눈치를 준다’라는 의미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일종의 단절감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상대의 행동을 제어하는 차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이런 눈치를 남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심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눈치는 간주관적(intersubjective) 인식 방식의 하나인데, 눈치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눈치에서 ‘속도’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상호 간 혹은 다자 간의 관계에서 아주 미묘한 차이와 기미, 이를테면 눈빛 혹은 얼굴 표정, 미세한 손동작이나 발동작 혹은 헛기침같이 모든 행동거지들이 하나의 해석을 위한 메시지로 작동할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남들이 알아채기 힘든 것들 속에서 의미 있는 해석의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는 해석학자이고 기호학자이다. 반대로 그런 메시지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사람들 역시 상당한 고수라고 할 수 있다. SNS의 단추를 보면 그냥 ‘좋아요’라는 버튼 말고도 ‘웃겨요’ ‘멋져요’ 슬퍼요’ ‘화나요’ 같은 감정 신호를 보여주는 버튼이 있고, 최근에는 ‘힘내요’라는 버튼까지 추가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감정 신호를 담은 버튼을 많이 누르는데 어떤 이들은 절대 그것을 보여주지 않고 무조건 ‘좋아요’만 누르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싫어도 싫다고 하지 않는다. 일종의 포커페이스 같은 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상당한 고수라는 생각도 든다. 아예 잠행조차 하는 그런 보이지 않는 고수들이 SNS에는 의외로 많다.

그런데 마음을 감추고 눈치를 주지 않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모든 이를 무심코 평정하게 대하려면 무엇보다 내 마음이 평정해야 할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초연'(Gelassenheit)이란 개념이 이런 경지를 말할 수도 있다. 사물이나 인간들 간의 관계에서 특별히 어떤 마음을 내지 않고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개념은 ‘들어가기(Sicheinlassen)’와 ‘나가기(Sichlosslassen)’의 양면성을 띠고 있다. 전자를 ‘몰입’이라 하고, 후자를 ‘거리 두기’라고도 한다. 이 두 개념을 염두에 두면서 생각을 더 해 보자. 사물이건 인간이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해와 관심이 요구된다. 이러한 이해와 관심은 사랑과 증오, 거래와 배려 등 모든 관계에서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런 관심이 지나치다 보면 중독처럼 빠질 수도 있고, 집착처럼 상대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도하게 들어가는 것 혹은 몰입은 양자의 정상적 관계를 해칠 수도 있다. 스토커는 이런 거리 두기를 조절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장애라 할 수 있다.

나가기나 거리 두기는 이로부터 역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거리를 두다 보면 상대를 더 정확하게 볼 수도 있고 더 잘 이해를 할 수도 있다. 바둑에서도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 보는 경우가 그렇다. 예를 들어 자식의 미래를 걱정한 엄마가 아이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종종 부모 자식 간의 관계 혹은 무촌이라고 할 부부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지나치게 상대에 몰입할 때 나타난다. 이럴 때 상대와 반성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거리는 심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공간적 거리도 포함될 수 있다. 아무래도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면 덜 집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SNS가 발달해서 이런 공간적 거리 유지가 잘 안되는 데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들어가기와 나가기는 인간관계의 밸런스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개념이고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느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언급한 ’실천적 지혜‘(phronesis)에 해당한다. 

금강경에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곳 없는 곳에서 마음을 내다. 내 마음이 어떤 것에 머물다 보면 온갖 희로애락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런 마음이 가라앉는 곳, 무심의 경지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런 마음이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거나 놀이에 빠지거나 음악을 듣거나 할 때 내가 빠져 있는 그런 상태가 내 마음이 머물지 않은 곳이고 무심의 경지이다. 이런 마음에 희로애락이나 재물욕이나 권세욕이 개입되니까 집착도 생기고 고통도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마음을 키울 수 있을까? 한국인들의 눈치가 결코 간단한 개념이 아니다. 눈치가 빨라야 알 수 있다.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20602123804205zd

문제는 악의 평범성이 아니다!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문제는 악의 평범성이 아니다!

 

이종철(한철연 회원)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이 종철의 에세이 철학]에 실린 글을 저자의 동의를 얻어 소개합니다.

미국의 여성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학살자인 아이히만의 법정을 참관하고 내놓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본인이 유태인으로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아렌트 입장에서는 도대체 나치 전범들은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들이기에 그런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는가가 궁금했다. 아렌트는 이 법정을 참관하기 위해 한 학기 강의를 반납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법정 진술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나서 내놓은 진단은 너무나 평범했다. 아렌트는 유태인 학살과 같은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아이히만이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냥 이웃집에서 평범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 좋은 아저씨 같다고 했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대단히 가정적이고, 딸아이들 한 테는 좋은 아빠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여기서 아렌트가 내놓은 진단이 저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들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행동하다 보니 저런 범죄에 휩쓸리고,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은 것이다. 사고의 부재가 저런 엄청난 범죄를 야기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전혀 사고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렌트는 여기서 제대로 사고하지 않았다고, 말하자면 반성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를 하지 않다 보니 저런 행동을 했다고 덧붙인다. 아렌트가 여기서 도출한 ‘악의 평범성’은 나치의 행태에 대한 거의 고전적인 해석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젊은 시절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밑에서 철학을 공부한 명민한 학생이 보기에 나치에 부역한 그녀의 스승 하이데거가 별생각 없이 행동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철학자의 나라 독일, 유럽에서도 가장 지성적이라고 자부했던 독일의 국민이 과연 아무런 생각 없이, 비판적이거나 반성적인 사고를 하지 않아서 나치에 열광하고, 유태인 학살과 같은 인종 청소에 동조를 했단 말인가? 나는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진단이 틀렸다고 본다.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 없이 행동해서 저런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을 할 때도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파스칼의 말이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생각과 이성적 사고는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하는 종적인 차이(종차)이기도 하다. 그런 인간이 생각이 없이 행동했다는 말은 그 말의 의미를 백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적확한 진단이 아니다. 인간은 생각이 없이 행동하다가 범죄를 저지르고 악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기적 욕망에 휩쓸리고 도덕적인 판단과 행동을 이끌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도덕은 오래전 플라톤이 이야기했듯 인간을 구성하는 이성이나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사(military man) 들의 용기의 원천인 의지(will)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은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이성에 의해 자동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본능적인 감성과 욕구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전쟁터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싸움에 임하는 전사들의 용기와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길래 플라톤은 이성의 덕이 지혜이고, 절제가 욕구의 덕이라고 한 반면 의지의 덕은 전사들에게 요구되는 용기라고 말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 초판(1963) / 출처: 위키피디아

도덕적 행동을 의지에서 찾는 플라톤의 전통은 근대의 도덕 철학을 종합하고자 한 칸트에게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칸트는 ” 이 세계 안에서, 아니 그 밖에서조차 우리가 무제한적으로 선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선의지(Good will)뿐이다.”(도덕형이상학 원론)라고 말했다. 고대인들이 덕(virtue)이라고 간주했던 우수한 두뇌, 강인한 체력, 뛰어난 판단력 같은 것들도 그 밑에 선 의지가 깔려 있지 않다면 오히려 가장 큰 악덕이 될 수 있다. 빼어난 재능을 가진 자들이 가장 나쁜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예를 우리는 수도 없이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인들이 중시한 덕이 아니라 선한 의지만이 덕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그런데 이런 선 의지는 저절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보자. 밤에 산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부상을 당해 신음을 하고 있는 광경을 보자. 산길을 갈 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산짐승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다. 그런데 밤중에 산길에서 부상당한 사람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대부분은 머리끝이 솟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자기도 똑같이 저런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설 것이다. 이 경우 감성적 판단은 끊임없이 두려움을 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는 이성적인 판단에 따르더라도 이성은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합리적 행동이라고 자위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도덕적인 양심이 있는 사람은 두렵기도 하고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을 내가 구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선한 마음이 앞서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덕적 행동은 감정적 두려움과 이성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부상당한 사람을 돕는 것이다.

도덕이란 이처럼 전사들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의무감에 따라 행동하듯, 감정과 이성을 넘어서 마땅히 선의지(양심)가 명령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적 욕망을 나치가 대변하고 있고, 그들이 반대할 경우 닥칠 수 있는 불이익이 두려워서 나치에 동조하거나 적극적으로 부역 행위를 하는 데 있다. 그것은 결코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욕구와 합리적인 이유에 따른 행동인 것이다. 이런 행동에 대해 아렌트처럼 생각 없이 행동한 것이라고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단순화시킨다면 그것은 본질을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많은 학자들이 앵무새처럼 아렌트의 말을 반복하고 있을까? 정작 생각이 없다는 말,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은 학자들의 그런 태도에 있지 않을까?

아렌트가 말한 것과 다르게 ‘생각 없는 행동’이나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악은 단순히 선의 부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훨씬 더 이기적이고 교활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선과 악을 결단하는 삶의 매 순간에서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려는 선의지 와 그것을 관철시키려는 전사의 용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의지와 전사의 용기야말로 플라톤과 칸트가 강조해 마지않았던 도덕의 본질이고 도덕적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20527103113033q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