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복수극 판타지, 『건축학 개론 』/이지영 [보고 듣고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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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복수극 판타지 영화『건축학 개론 』
글: 이지영 (홍익대학교 강사)
친구와 ‘건축학 개론’을 보았다. 재미있었다. 깔깔거릴 수 있는 에피소드들, 재미난 캐릭터(남자 주인공의 재수생 친구), 대학 1학년 시절과 현재를 오가는 깔끔한 편집, 당시에 20대를 보냈던 나에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추억 속 여행을 하게 하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지루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두 시간 남짓을 아주 재미나게 보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여자주인공은 너무 눈이 커졌고, 남자 주인공은 머리가 너무 커졌구나! 눈이 저렇게 두 배로 커졌으니 남자주인공이 첫사랑을 못 알아볼 법도 하겠다는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 영화를 보는 동안 그 시절 그 공간으로 돌아간 듯 추억 속을 헤매이고 있었고, 그 추억 속 여행은 문득 문득 당시의 풋풋하고 어린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솔직히 그뿐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 많은 사람들의 감상평 ‘8월의 크리스마스와 번지점프를 하다를 잇는 오래도록 마음을 울릴 멜로 영화’도, ‘지나간 첫사랑을 떠올리며 술을 마시고 싶게 하는 가슴 찡한 감동의 영화’도 아니었다. ‘기억의 습작’을 듣는 건 좋았다. 원래 좋아하는 노래였으니까. 그런데 그뿐. 난 궁금했다. 왜 난 재미만 느낄 뿐 감동을 받지 못했을까?
함께 영화를 본 친구와 밥을 먹으며 이야기했다. 우리의 결론은 ‘첫사랑에 대한 남자들의 모든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기에 모자람 없는 영화다, 그러니 평소 멜로 안 보던 남자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그리 흥행했지’였다. 뭐 여성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영화나 드라마도 많으니, 남자들의 첫사랑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뭐가 나쁜가. (수많은 드라마에서 남편에게 구박받다가 이혼하고 나면, 출세를 하면서 연하의 꽃미남 재벌 2세 실장님들의 구애를 받는 여자 주인공들이 몇 년간 브라운관을 휩쓸지 않았던가. 그런 드라마 보면서 리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드라마니까 라고 접고 넘어가지 않는가.) 이렇게 가끔 판타지가 충족이라도 되면 즐거운 거지. 솔직히 나 역시 매일 매일 눈 부릅뜨고 직시해야 하는 현실이 버거워 영화를 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판타지를 충족하는 걸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하는 이야기는 이 영화가 꼭 나쁘고 후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영화가 함축하는 ‘팩트’를 지적하는 것뿐이다.
15년 만에 만난 남자 주인공 승민은 첫사랑 수연을 첫눈에 알아보지도 못한다. 뭐 가끔 떠올리며 살았겠지만, 첫사랑에 목매달고 살지 않고 나름 쿨하게 살았음을 보여주는 첫 장면이다. 나름 쿨하게 살아온 듯 보이는 그도 사실 과거엔 쿨하지 않았다. (솔직히 어디 그리 쿨한 인간이 많으랴. 희망사항일 뿐, 대부분의 인간들은 ‘쿨하지 못해 미안해’하며 살지 않나.) 건축학 개론 시간에 뛰어 들어온 수연에게 첫눈에 이미 호감을 느낀 승민은 같은 버스를 타고 통학하며, 숙제를 함께 하면서 수연과 가까워진다. 외모는 청순하나 성격은 나름 호탕하고 쿨한 수연은 승민과 친구와 애인의 경계선에서의 풋풋하고 파르스름한 시간들을 보낸다. 하지만 승민은 수연이 건축과 선배(돈 많고, 잘 생기고, 키 큰 바람둥이- 그 당시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대학생)를 좋아하고 있다고 굳게 믿게 되고, 혼자 가슴앓이를 하며 어찌 고백을 하나, 어떻게 하면 수연의 마음을 얻을까를 재수생 친구와 의논하기도 하고, 연습하기도 하며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문제의 종강 날이 왔다. 그는 수연의 자취방 앞에서 팩소주를 들이키며 수연이 나중에 살고 싶다고 그려줬던 2층집을 모형으로 만들어와 고백을 준비하고 있었고, 수연은 종강날 나타나지 않은 그에게 삐삐를 치며 기다리다가, 선배의 권유로 술을 마시게 되어 떡실신이 된 채 선배와 함께 자취방에 도착한다. 떡실신 직전의 수연에게 선배는 키스를 시도하지만 수연은 얼굴을 피했고,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수연을 선배는 자취방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 장면을 목격한 그는 분노에 떨며 수연을 “썅년”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한참 후 그를 찾아온 수연에게 “꺼져줄래”라는 엄청 센 말을 날리고는 표표히 사라진다.
자… 이제 그의 첫사랑을 다시 되짚어 볼까? 사랑하는 여자가 떡실신 일보직전에 바람둥이 뺀질이 선배에게 겁탈을 당할지도 모르는(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 나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큰 순간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순간을 목도한 그는 선배를 욕하며 그 상황을 막는 대신 비겁하게 피하고 나서는, 그녀를 “썅년”으로 만들어 버렸다. 자신이 충분히 그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선배가 수연에게 키스를 시도했으나 몇 번이나 수연이 그것을 거부하는 장면을 보았다면, 당연히 수연이 그를 원하지 않는 것이고 특별한 관계가 아닌 그냥 친구라도 수연을 곤경에서 구해줘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못 한 건지 안한 건지 하여간, 승민은 자신의 비겁함은 온데간데없이 그녀를 “썅년”으로 취급해버린다. 그리고는 방학 내내 연락하고 기다려온 그녀에게 “꺼져줄래”라고 쿨한 척하며 한마디를 날리지만, 이건 쿨한게 아니라 자신의 비겁함에 눈감으며 저지르는 싸가지 없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왜? 최소한 애인이 아닌 친구 사이라 하더라도 갑작스런 결별에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그 예의조차 갖추지 못할 만큼 승민은 화가 났던 거다. 그런데 무엇에? 수연에게도 화가 났겠지만 자신의 찌질함에 대한 화가 상당 부분 차지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승민은 그 두 가지의 화를 잘 구분하지 못했고 자신의 찌질함은 잊고 모든 사태의 책임을 수연에게 돌렸다. 그러니 수연을 ‘썅년’이라고 삼십대 중반까지도 호명하지 않았을까? 그 나이까지도 그렇게 자신의 찌질함에 대한 반성 능력이 없는 건 사실 좀 심각해 보였다.
여하튼 아마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첫사랑이 떠나간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꺼져줄래”라는 말 대신 오히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며 떠나가는 첫사랑을 붙들고 징징거렸든, 아니면 혼자 징징거렸을 가능성이 더 크다. 마치 과거에 첫사랑에게 차였던 남자들의 대리 복수라도 해주듯 “꺼져줄래”라는 대사는 남자들의 판타지에 정확히 내다꽂혔을 것이다. 그리고 15년 만에 만난 첫사랑을 못 알아보는 것으로까지 복수는 제법 잘 이루어지고 있다. (만일 그들이 차이지 않았다면 그것은 첫사랑으로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이 간절히 원했으나 실패한 사랑의 기억이 첫사랑으로 남으니까.. 자신이 싫다고 거절한 여자는 그저 잠깐 만났다거나 뭐 별거 아닌 기억으로 남지,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일은 아마 별로 없을 것 같다.)
수연을 보며 나는 안타까웠고 불쌍했다. 하지만 영화는 수연을 잔혹하게 밀어붙였다. 수연의 첫사랑은 실제로는 주인공 승민이었으나, 승민은 수연이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연의 캐릭터는 돈 많은 의사 남편 만나 결혼했으나, 3년 만에 버티다가 이혼당하고 혼자 사는, 즉 순수한 그의 첫사랑을 짓밟은 죄 값을 톡톡히 치른, (어릴 때보다 눈은 커졌지만) 성취한 것도 없는 이혼녀일 뿐이다. 왜? 과거에 “썅년”이었으니까. 지금은 술 마시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 ‘쌍욕’을 하며 한탄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어때 복수가 이 정도면 충분한 걸까? 아니 아직이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첫사랑을 못 잊고,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고들 그런다. 뭐 나를 비롯하여 주변을 봐도 맞는 말 같다. 가끔 생각나는 일이 있긴 하지만, 전혀 첫사랑에 목을 매거나 그리워하거나 그러지들 않는다. 사실 냉정히 말하면, 기억도 잘 안 난다. 아마 그립다면, 그리움의 대상은 그 시절의 젊음과 나의 감정이지 과거의 누군가는 아닌 듯하다. 그런데 수연은 승민을 지난 15년간 마음에 품고 그가 버리고 간 집 모형을 아직도 간직하고, 수소문해서 그를 찾아오기 까지 했다.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기에 딱 좋은 설정이다. 게다가 수연은 나이를 먹었으나 눈에 확 띄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판타지의 절정은 아마 이 부분일 것이다. 솔직히 첫사랑을 다시 만났는데 푹 퍼진 아줌마가 되어 있을까봐 무서워서 찾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 않은가. 판타지에 금 갈까봐. 충분히 이해가는 상황이다. 현재의 수연은 남자들의 판타지 로망에 너무나도 적합한 상대가 되어 나타났다.
그런데 그녀가 아직까지 미혼이라면 곧 결혼을 해야 하는 그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설정일 것이다. 혹은 그녀가 유부녀라면 그녀를 만나는 것 자체가 법적, 도덕적 부담을 져야 하는 일이 된다. 하지만 그녀는 돌싱, 즉 이혼녀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잠깐 다시 만나 추억을 되새기며 원나잇 스탠드를 하기에 아무 부담 없는 상대로 나타나 주었다. 와. 기가 막힌 판타지 아닌가. 더구나 그녀의 집을 완성해준 그는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상황이다. 미국으로 가버리게 되면 그녀 쪽에서는 그를 찾을 수 없다. 이혼녀 첫사랑이 다시 만나자고 매달리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복잡하고 불편한 상황이 되겠는가. 게다가 첫사랑 못지않게 아름다우며,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능력자에, 부모님마저 부유한 약혼녀와 외모와 추억 이외에는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첫사랑 사이에서 갈등을 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승민은 지난 15년간의 수연의 마음을 확인하고, 격한 키스를 나눈 후(키스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제주도 외딴 집에 둘만 남아있던 밤 시간에 벌어진 상황이니 뭐 대략 짐작 가능하다.) 미국으로 ‘깨끗이’ 떠난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지어준 집에 병든 아버지를 모시며 정착했다. 게다가 그 곳은 제주도. 조선시대의 유배지였던 그곳은 살기에는 좋은 자연 환경이지만, 정말 거기에만 산다면 죽을 때까지 외롭게 혼자 살아야 할 가능성이 99%로 보인다. 게다가 수연은 제주도에 사는 걸 싫어했었고, 서울로 탈출하기 위해 무지하게 노력했던 소녀였는데 말이다. 와….정말 처절한 응징이다!!! 후덜덜. 이혼녀로도 모자라 사회적 무능력자로 패배자를 만들고, 심지어 외딴 섬에 유배까지 시켜 버렸다. 아무리 새로 지은 집이 예쁘면 무엇 하나. 거기서 평생 혼자 아버지 병간호나 하고 살면. 첫사랑 그를 못 잊는 수연의 집을 우리의 주인공 그는 주소와 위치를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 있다. 언제든 사실 맘만 먹으면 올 수도 있다. 이거 뭔가. 지금 조선 시대인가? 마음 내키면 한 번씩 찾을 수도 있는 첩실(?) 같은 분위기마저 난 느껴졌다. 너무 처절한 복수의 판타지 아닌가. 이 정도만으로도 복수는 처절하다.
그러나 복수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자신의 주소조차 없이 보낸 택배 상자에는 첫눈 오는 날 그를 기다리던 수연이 약속장소에 놓고 갔던 전람회 씨디가 들어있다. 그나마 간직하고 있던 자신의 기억조차 깔끔하게 털고 가는 듯 보였다. (뭐 좋게 해석해 주자면 자신도 그곳에 갔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그 정도 오해의 해소를 위해서라면 굳이 그 씨디를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키스하던 그날 밤 말했어도 충분한 일이다. 그러니 씨디를 보내는 그의 행동은 과거와 수연을 모두 털어내는 일종의 이별식으로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승민이 보낸 ‘기억의 습작’ 씨디를 듣는 수연의 얼굴은 어떠한가. 허전함? 아쉬움? 아니, 수연의 얼굴은 아련한 추억에 잠겨드는 모습으로 엔딩! 와우! 이거 쿨한거라고 할 수 있어? 첫사랑에서 상처 좀 받았다고, 첫사랑 수연에게 이렇게까지 복수와 응징을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이 들어서인지, 감성이 풍부하기론 남부럽지 않고, 평소 멜로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조차 이 영화는 그닥 멜로스럽게 감성에 다가오질 않았다.나를 잇는 감성멜로? 아니, 아니! 그보단 오히려 잔혹하고 처절한 복수극 판타지였다. 복수를 대놓고 하게 되면, 복수하는 자의 품격을 손상시키기 쉽고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복수를 하려면 감쪽같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복수를 당하는지조차 모르게 처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경제적이다. 이 영화의 복수극은 바로 이렇게 교묘하고 깔끔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영화의 광고 카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 대한 ‘썅년/놈’이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말은 말이 안 되는 말이다. 사실 첫사랑의 대상은 예쁘고 잘생긴 소수에게 몰려 있었던 것이 현실 아니던가. 사실 누구의 첫사랑도 아니었던 사람들도 허다하다고 본다. 뭐 여하튼 우리를 첫사랑을 하던 시절로 불러내는 데에는 성공적으로 작동했던 카피임은 인정한다. 그 카피를 보고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던 시절과 그 시절에 대한 기억 속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얼굴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평소 낭만적이고 감성이 매우 풍부한 인물로 평가받는 필자로 하여금 감동이 아닌 재미만을 느끼게 했던 이 영화에 대해 매우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과 영화 잡지를 뒤져 보아도 필자처럼 이 영화를 읽고 투덜거리는 영화평을 단 하나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요즈음은 첫사랑 떠올리기 열풍이라도 불고 있는 듯하다. 다들 정릉의 골목길, 710번 버스 노선 등 당시의 추억에 빠져 이 잔혹한 복수극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관심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 그래서 필자만 뭔가 삐딱하고 곱지 않은 심성의 소유자가 되어 버린 듯한 이 분위기. 그래서 이런 의견을 말하는 것이 뭔가 눈치가 보이는 듯한 상황임을 느끼고 있는 나의 이 동요하고 있는 마음상태가 이 영화가 불러일으킨 문제적 지점인 듯도 싶다. 나의, 즉 개인적인 추억과 관련되는 것이면, 특히나 첫사랑처럼 아련하고 가슴시린 기억들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객관적인 반성적 사고나 비판적 시선조차 용납되지 않을 것 같은 이 분위기 말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아련했다 하여도, 찌질한 것은 찌질한 것이고, 비겁한 것은 비겁한 것이고, 제대로 자신의 못남을 맞닥뜨리지 못했었다면 시간이 지나도 찌질하고 비겁한 태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아련한 추억으로 포장만 하지 말고 생각도 좀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과 관련하여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영화 보기 전 전람회 CD를 꺼내어 ‘기억의 습작’을 오랜만에 다시 들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김동률의 마성의 저음이 울려 퍼지던 2012년 어느 봄날 오전,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 있었고 오랜만에 다시 들었던 그 노래의 감동은 쉬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PS. 사실 영화에 대해 이런 식의 영화평을 쓰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방식도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도 아니다. 그저 줄거리, 캐릭터 설정에 대한 분석만 가지고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비영화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도, 나의 글에 대한 아쉬움과에 대한 미안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밝히고 싶다. 이 영화에는 장점도 상당히 있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펼쳐지는 것 같은 구성방식도 아주 깔끔하고 효과적이었으며, 첫사랑의 판타지가 과도한 낭만주의나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촌스럽게 가지 않고, 상당히 세련되고 깨끗하게 처리되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힘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이 영화의 처절한 복수극이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만일 촌스럽고 후진 멜로 영화였다면 비판도 할 필요 없었을 것 같다. 그만큼 잘 만들어진 장르 영화였기 때문에 비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