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월드컵에 열광하는가? [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사람들은 왜 월드컵에 열광하는가??[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요즈음은 월드컵 시즌이다.?월드컵은 전 세계인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경기다.?지난 두 달 동안 짓눌렀던 세월호의 슬픔도 이 열광을 감출 수는 없다.?사람이 어찌 슬퍼만 할 수 있겠는가??월드컵의 열기가 전 세계를 덮고 있고,?지구 반대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밤과 낮을 거꾸로 살고 있다.?특정 사건을 가지고 이념이나 인종,?빈부의 격차를 넘어서 열광하는 경우는 드물다.?올림픽 경기를 제외한다면,?단일 구기 종목으로 전 세계의 국가가 고루 예선과 본선에 대표 팀을 파견하는 경우는 축구가 유일하다.?야구는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그리고 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한다면 지구를 대표하는 종목은 아니다.?배구나 하키,?골프 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축구에 열광을 할까??축구에는 인종적?·문화적 차이와 상관없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있을까??공을 차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행위와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우리나라의 경우도 격구(擊毬)라고 해서 사람들이 모여 공을 차는 경기가 있었다.?멕시코의 마야 인들도 공을 가지고 노는 오랜 경기 전통이 있다.?이런 전통은 다른 많은 민족이나 문화권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공을 발을 가지고 노는 이런 행동의 어떤 면이 인간의 보편적 본능에 충실한가??축구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오직 발로만 하는 운동이다.?골을 막는 골키퍼만이 손을 사용할 수 있으며,?공이 장외로 나가 경기장 안으로 공을 집어넣을 때만 예외적으로 손의 사용이 허락된다.?경기장에서 손을 사용하면 바로 프리킥 벌칙을 받고,?패널티 애리어 안에서 골 키퍼가 아닌 다른 선수들이 손을 사용하면 패널티 킥이라는 최고의 벌칙을 받는다.?혹시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발과 머리만 사용하게 하는 것이 이런 본능적 행위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손은 인간 문명의 발전과 깊은 연관이 있다.?인류가 직립 원인으로 서면서 비로소 손이 해방된다.?손이 대지로부터 해방된 사건은 문명사의 발전에서 획기적 사건일 수도 있다.?이 손은 나무의 과일을 따고,?도구를 제작할 때 사용된다.?도구의 사용은 인간이 직접 몸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대상을 조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도구를 사용하면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회 진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또 손은 손가락을 활용하여 셈을 세는 데도 사용된다.?하나 둘로 시작하는 셈은 추상 활동의 시작이다.?이 셈으로부터 숫자의 발견이 이루어진다.?숫자는 자연 대상을 단순하게 계산하는 추상 도구이다.?이 수자로부터 수들의 관계와 비율이 발견되고,?이를 통해 음들의 관계,?물리적 사건들의 관계,?천체의 운동의 법칙 등이 숫자를 통해 확인되는 것이다.?도구를 제작하고 추상 활동이 발전하는데 있어 그 출발은 손이 대지로부터 해방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축구에서는 이 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적인 규칙이다.?오직 발과 머리만을 사용하고,?그 발의 재간과 헤딩 기술만을 이용해서 공을 골대로 집어넣는 것이다.?이 발은 대지와 연결되어 있다.?가장 원초적인 대지를 딛고서 이 대지로부터 에너지를 받는 수단이다.?때문에 발은 이런 원초적인 본능과 에너지에 가장 깊게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축구가 동서고금의 인종과 문화,?노소와 경제적 빈부 차와 상관없이 고루 환영을 받는 것은 아마도 이런 원시적 본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야구의 경우 홈런을 치면 관중들의 환호를 받고 누상을 한 바퀴 돈 홈런 타자는 다른 선수들과 손을 마주치는 세리모니를 한다.?그 장면은 상당히 절제된 문화 의식과 같다.?하지만 축구에서 골을 넣는 순간 그 선수의 포효를 보라.그는 막장으로부터 올라오는 괴성을 지르면서 온갖 몸동작이 복합된 세리모니를 하면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는다.?다른 어떤 경기보다도 축구의 경우 이런 괴성과 몸동작이 심한 편이다.그것은 원시적 에너지의 발산과 연관이 있지 않은가?
수 만 명의 사라들이 운집해 있는 거대한 경기장을 보라.?과거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시키지 않는가??아니 그 이상이다.?로마인들은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끼리 피를 흘리는 대결을 보면서 환호했다.?어떤 경우는 사자와 같은 야수와 싸우는 것을 보고 열광하고,?네로 황제 시절에는 기독교인들이 야수들의 밥이 되는 모습에 광분하기도 했다.?그들은 콜로세움에서 이런 원시적이고 야수적인 결투 장면의 피를 보면서 야수적 본능을 대리 충족한다.?아마도 현대의 축구경기는 그런 원시적 본능과 욕구를 대리 경험할 수 있는 데 가장 가깝지 않을까??그런데 이런 원시적 본능과 욕구를 발산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어떨까??사회학적으로는 이런 에너지나 정념의 발산 장치를?‘안전도관’이라고 말한다.?이런 도관은 내부의 에너지를 외부로 배출하는 도관의 역할을 한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이런 안전도관으로 디오니소스 축제를 활용했다.?니체는?『비극의 탄생』이란 작품에서 그리스 사회를 본적으로 두 가지 판이한 정신이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이 작품은 니체가?28살에 써서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동시에 문헌학의 일반적 전통을 벗어나 비판을 받기도 했다.유명한 미학자 빈켈만은 그리스 정신을?‘아름다움의 정신’으로 간주한다.?아름다움은 무엇보다 수적 황금 비례에 기초한 통일성과 단순성의 미이다.?그에 따르면 그리스 사회는 이 아름답고 밝은?“아폴론적 정신”으로 대변된다.?그런데 니체는 빈켈만의 이런 일반화된 분류를 거부한 것이다.?그리스 사회는 밝은“아폴론적 정신”뿐만 아니라 어두운?“디오니소스적 정신”도 있다는 것이다.?빈켈만이 밝은 아름다움의 정신을 조형예술의 아름다움 속에서 보았다면,?니체는 어두운?“디오니소스적 정신”을 주로 비극의 축제에서 확인한다.?비극은 그리스 사회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민주주의가 정착하고 경제가 발전하는 등 최전성기에 유행한 드라마이다.?그리스의 시민들은 이 비극 공연에 열광하면서 공동체의 유대를 확인하고 정서적인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기도 한다.?이런 비극축제는 중세의 카니발로 이어진다.?니체에 따르면 밝은?“아폴론적 정신”은“개체화의 원리”이고,?어두운?“디오니소스적 정신”은?“전체와 집단의 원리”이다.?전자는 조형예술의 아름다움 속에 구현되고,?후자는 비극이 공연되는 집단 축제(디오니소스 축제/중세의 카니발)에서 드러난다.?축구와 같은 운동경기나 혹은 대규모 집단 응원 행위도 이런 축제와 연관이 깊다.?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정신이 세 가지 장벽을 무너뜨린다고 한다.?즉 인간과 자연의 벽,?개체와 공동체의 벽,?의식과 무의식의 벽이 그것이다.?말하자면 디오니소스적 정신은 인간을 자연(무기물)으로 되돌리고,?개체를 공동체와 연결하고,?의식을 무의식의 세계로 환원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원시적 본능의 발산과 집단 에너지를 하나로 묶는 월드컵 축구를 현대판 디오니소스적 축제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2002년 월드컵 당시 수만의 인파가 거리에서?‘대~한민국,?따단 따 딴단’을 외칠 때 보여주었던 집단 에너지의 일체감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나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를 능가할 정도이다.?이런 원시적 에너지의 발산은 신화의 세계와 연결될 터인데,?그 당시 동아시아의 오랜 전쟁의 신?‘치우 황제’가 마스코트로 등장한 것도 우연은 아닐 터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축구를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운동으로 보거나 축구를 몸만으로 하는 경기라고 단순화하기에는 힘들다.?외형적으로 보기에는 발과 머리를 사용하고 있어 머리와는 상관이 없는 몸의 운동으로 보인다.?하지만 개인들의 기량을 쌓는 과정에서 발재간과 헤딩 기술은 몸에 기억된다.?몸은 의식이나 정신활동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 역시 두뇌의 활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현대 뇌 과학에 따르면 몸이 두뇌의 활동이고,?두뇌는 몸을 기억한다.?뇌의 발달은 다른 육체기관과 별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손이 기억을 하고 몸이 기억을 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복잡하고 현란한 기교를 요하기 때문에 전문 피아니스트라도 연주가 쉽지가 않다.?그는 훌륭한 연주를 위해 반복적인 훈련을 하지만,?그렇다고 악보 전체가 그대로 머릿속에 암기되는 것은 아니다.?설령 암기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지휘자의 손동작과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정확히 어떤 순간에 어떤 건반을 터치하는 것은 암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거의 무의식적인 동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터치는 기억하는 뇌의 독립적인 명령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말하자면 뛰어난 피아니스트는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기억하며,?정교한 손동작이 이루어지는 만큼 뇌의 발달도 이루어지는 것이다.?기억은 손과 뇌,?그리고 환경이라는 특수한 맥락의 합작품인 것이다.?이런 사정은 축구에서 주로 사용하는 발재간과 헤딩 기술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축구 선수는 오랜 반복 훈련에 따라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능력을 몸과 뇌에 각인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축구를 본능적 활동과 에너지의 발산으로만 보는 것은 지나친 왜곡이 될 수 있을 것이다.?축구에서는 다른 모든 경기와 마찬가지로 전술을 이해하고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이 과정은 두뇌 플레이가 많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반복적으로 훈련하면서 몸으로 익히는 것이기 때문이다.?토탈 사커를 지향하는 현대 축구에서는 고정된 포지션 속에서 주어진 역할만 수행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다른 어떤 경기보다 상황에 따른 임기웅변의 역할이 필요한 복잡한 경기라고 할 수 있다.?게다가 축구는 심판의 엄격한 규칙과 지도하에 진행되는 경기이다.?전술을 훈련하는 과정에서는 무엇보다 다른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이런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인지과정만이 아니고,?규칙을 내면화하고 적응하고,?더 나아가서 그것을 응용하는 과정이다.?그것은 끊임없이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 타자와 소통하면서 몸으로 체득하는 고도의 훈련이라 할 수 있다.?더욱이 상업화된 프로 축구에서는 선수들은 다른 문화권과 언어권 출신의 다른 선수들과 소통하는 어려움도 필수적으로 겪게 된다.?이런 복잡한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은 몸으로 익힌 고도의 두뇌 활동을 요구한다.?때문에 이런 경험을 거친 뛰어난 선수들이 은퇴 후 해설 경기를 별다른 어려움 없이 맡는 것을 보면 그들의 지능이 일반인들을 상회한다고 말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이렇게 본다면 축구가 단순히 발재간과 헤딩기술을 활용한 원시적 운동이라는 말은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하겠다.
오늘 날 현대 축구는 다른 어떤 경기들보다 대표적으로 상업화된 경기이다.?선수들의 몸값으로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고,?축구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웬만큼 재정이 뒷받침되기 전까지는 엄두도 내기 힘들다.?스타 선수의 몸값은 웬만한 중견기업의 수익을 넘어설 정도이다.?지역 간 격차도 심해 리그별 수준 차는 무엇보다 경제력을 반영하고 있다.?세계축구협회(FIFA)가 유엔 못지않게 권력기관이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고, FIFA의 수장은 세계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월드컵을 유치하는 과정은 올림픽 유치 못지않게 국가 간에 사활을 건 경쟁을 통해 이루어진다.?이렇게 보면 축구는 가장 자본의 영향을 받는 현대적인 운동 산업의 하나라 할 ??? 있다.?동시에 축구는 가장 원시적인 본능에 기초한 경기,?몸과 뇌 그리고 상황이 집적된 고도의 기억 메카니즘에 기초해 있고,?적과 아군으로 나누어진 변화무쌍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고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게임이다.?그렇다면 축구는 원시와 현대,?본능과 이성,?몸과 정신,?자기와 타자,?선수와 관중 등이 종합적으로 집적된 경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가장 상업화되고 현대화된 경기 속에 여전히 감추어져 있는 가장 원시적 본능과 에너지로 인해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축구를 보기 위해 일상의 스캐쥴을 무시하고,?축구를 보면서 열광을 하고,?이 축구의 승패에 실의와 환희를 표현하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