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10-예술과 정치[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10-예술과 정치

 

1) 예술 형식

앞에서 이념과 예술적 작품 사이의 표현적 관계에 대해 일반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부분은 헤겔 미학강의 1권의 핵심적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한 것이다. 이제 미학강의 2권의 내용을 살펴볼 차례이다.

 

2권에서 헤겔은 예술의 시대적 발전을 다루고 있다. 헤겔은 이런 발전을 3 단계로 나누는데, 상징주의, 고전주의, 그리고 낭만주의이다. 상징주의는 페르시아, 인도, 이집트 등의 예술을 다루며, 고전주의는 그리스 로마 시대 예술을 다룬다. 낭만주의는 기독교가 출현한 중세 이후 근대까지 예술을 포괄한다.

 

헤겔은 상징주의, 고전주의, 낭만주의를 예술의 일반적 형식이라고 말하는데, 이 형식은 이념을 표현하는 기호의 구체적 방식을 규정한다. 상징주의의 기호는 상징이며, 고전주의의 기호는 현상이고, 낭만주의의 기호는 가상이다.

 

각 기호의 구체적 규정은 앞으로 제시되겠지만, 여기서 간략하게 말하자면, 상징은 기호와 의미 사이에 수수께끼적인 관계가 지배적인 것을 말하며, 현상은 기호와 의미 사이에 유사성이 지배적인 경우를 말한다. 현상은 기호가 의미를 이중화하는 것으로서 표현에 가까운 개념이 된다. 마지막 가상은 자체 내에 자기를 부정하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스스로 자기를 넘어가는 기호이다.

 

2) 정신의 발전

헤겔의 예술론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이 이념을 어떤 형식으로 표현하는가는 작가의 주관적 선택에 달려 있지 않으며 곧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헤겔의 예술론은 아놀드 하우저와 같은 예술사론과 비교될 수 있다.

 

하우저는 예술의 역사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파악한다. 그는 예술을 다각도에서 살펴보는데, 예술은 그 시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심, 특히 예술의 주요 수요층의 관심, 그 시대 예술적 노동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기술적인 발전, 그 시대 출현한 종교 철학 등 이데올로기 등의 영향을 받는다.

 

그에 반해서 헤겔은 특히 예술의 표현 형식에 주목하며, 이런 예술 형식의 발전은 이념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규정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여기서 헤겔은 예술이 표현하려는 이념이 역사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미 앞에서 말했지만 다시 말하자면 이념은 곧 절대정신이다. 각 시대 사회에는 그 시대의 사회적 상호 관계를 규정하는 정의가 있다. 헤겔은 이를 ‘실체’라고 말한다. 이런 실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의지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 공동체적 의지가 곧 국가이다. 이 국가가 곧 헤겔에서 ‘정신’이다.

 

각 시대 정신은 최종적으로는 절대 정신으로 발전한다. 최종적 절대정신은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인 삼위 일체의 체계이다. 이것은 헤겔이 법철학에서 묘사한 이상 국가이다. 정신은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세 단계를 거쳐간다.

 

첫 번째 단계가 전체가 추상적으로 통일을 이룬 국가이니, 페르시아, 인도, 이집트에서 출현한 전제 국가가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 단계가 그리스, 로마에서 출현한 국가이다. 이 국가는 인륜성과 시민이 균형을 이룬 민족국가이다. 세 번째 단계는 로마 황제 시대에서부터 시작되어 근대에 이르러 완성된 국가 즉 시장에서 보듯이 인격의 자유로운 상호 관계 위에서 출현한 소외된 국가이다.

 

3) 국가의 원리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국가의 단계적 발전을 매개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헤겔에서 그 원리는 관념론적으로 규정되는데, 곧 의지의 자유가 발전하는 단계이다. 자유의지의 자각이란 곧 개인이 자연적 의지 즉 욕망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적 정의를 자신의 의지의 목표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실천적 의지의 내적 자각에 해당한다.

 

이런 자유의지가 사회적으로 펼쳐지면 국가의 원리가 된다. 즉 욕망 상태에서 사회는 거꾸로 억압적인 질서가 출현하며,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회는 그만큼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이런 자유의지의 자각은 세 단계에 걸쳐 일어난다.

 

아직 개인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대한 자각이 출현하지 않던 시대, 국가는 전제적으로 지배되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 개인은 출현하지만 관습적으로 국가에 복종한다. 이런 습속에 기초한 국가가 고대 그리스 로마의 도시국가 또는 민족국가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 즉 개인의 자유의지가 출현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지배되고 있을 때, 이 보이지 않는 손이 곧 소외된 국가이다. 

 

위의 설명에서 보듯이 개인의 자유의지가 발전하는 단계가 곧 각 시대 정신을 규정하는 것이니, 각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는 예술의 형식 역시 이런 자유의지의 발전 단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겠다.[1] 이상의 이야기를 알기 싶게 다음과 같이 표로 만들어 보았다.

 

예술형식 기호 정신 국가의 원리
상징주의 상징 전제국가 강제적 지배-개인의 자각 결여
고전주의 현상 민족국가 개인의 출현, 그러나 관습적 복종
낭만주의 가상 소외국가 자유의지, 인격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의 지배

 

4) 자유의지와 표현 기호

그런데 헤겔이 그 시대 국가의 원리 즉 자유의지의 자각 정도가 예술의 표현 형식인 기호의 방식을 결정한다고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얼핏 생각하면 자유의지의 자각은 예술의 표현적 기호와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양자 사이에 연관이 가능할까?

 

그런 연관은 실제 예술사에서 나오는 구체적 예를 가지고 설명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에 앞서서 헤겔에게서 양자의 연관성을 개념적인 차원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유의지에 대한 내적 자각이란 곧 실천적 의지에서 개인과 전체(사회적 정의)의 관계이다. 예술적 기호 즉 작품과 이념 즉 국가 사이의 관계는 실천적 의지에서 개인과 전체 사이의 관계가 상동적이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실천적 의지의 양상은 표현 즉 타인에게 전달하는 양상과 상동적이다. 실천적 의지의 차원과 표현적 전달의 차원은 서로 다른 차원이지만 마치 자극과 전기 사이의 동조관계와 같이 서로 동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각 상태는 수수께끼적인 상징의 관계와, 개인의 관습적 복종은 곧 유사성에 의한 현상적 관계와 마지막으로 자유로운 개인의 상호 관계 뒤에 보이지 않는 지배는 곧 가상의 관계와 상동적이다.

 

국가의 원리와 예술의 원리 사이의 상동성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예술은 그 시대 일반화되어 있는 자유의지의 내적 자각 상태에 의존한다. 예술가와 대중은 이런 일반적인 자유의지의 자각 상태를 통해 서로 관계한다. 동일한 자유의지의 상태가 예술가와 대중의 내면 속에 잠재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예술가의 표현은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예술가가 시대에 뒤지거나 시대를 뒤지거나 또는 초월한 표현방식을 선택할 경우, 대중은 자신의 시대 표현방식에 따라 해석할 뿐이니,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다. 예를 들어 우리 시대 어떤 예술가가 종교화를 그렸을 때, 누구도 감동받지 못할 것이다. 또 그리스 시대 대중에게 14세기 고딕 시대 성화를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어떤 끔찍함을 느낄 뿐이다.

 

5)

이 점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술과 정치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의지의 자각 정도가 한편으로 국가의 원리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 예술의 형식과 상동적이니, 예술은 직접 간접적으로 국가의 원리 즉 정치적 관계와 연관된다.

 

그 관계는 일단 간접적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원리와 예술의 형식은 자유의지의 자각 정도를 매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지어 표면적으로는 정치와 전혀 무관한 예술조차도 내면적으로는 국가의 원리와 동일한 원리를 표현한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비록 정치적 관계로부터 무관하지만, 그러나 이 시대 예술 역시 자본주의적 정치적 관계를 예술을 통해 웅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관계는 더 직접적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시대 이전의 사회에서 예술은 곧 국가적 원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상징주의 예술이나 고대 그리스 고전적 예술이 아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예술은 국가와 동일한 원리에서 있으니, 정치와 얽혀 있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양자가 서로 다른 독립적 차원이지만, 그럼에도 서로 동조한다는 것은 부정할 길이 없다. 예술은 구시대 국가에 얽혀 있기 때문에 욕을 먹지만 또는 발전된 자유의지를 전파함으로써 새로운 국가를 배태시기기도 한다.

[1] 물론 예술형식은 국가의 역사적 발전과 단순하게 대응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술의 특정한 형식은 특정한 이념이 지배하는 시대에 가장 번성하며 전형적으로 출현한다. 그렇다고 그 이전 시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이전 시대에는 다만 미숙한 형식으로 출현했을 뿐이다. 또한 다른 시대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다만 그때는 새로운 시대를 지배하는 일반 원리에 의해 지배당하면서 종속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상징주의 시대에서 이미 고전적 형식과 낭만적 형식이 주변에 출현하여 장차 핵심으로 부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상징주의는 이집트 인도에서 가장 번성했지만, 고전주의 시대나 낭만주의 시대에서도 출현했다. 고전주의 시대에서는 의식적 상징 표현으로, 낭만주의 시대에는 문학적 비유로서 등장했다.

헤겔미학산책9-예술과 시대[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9-예술과 시대

 

1)

예술과 관련해 흥미로운 문제는 예술과 시대 사이의 관계이다. 필자는 역사를 좋아해 TV 사극은 대체로 빼놓지 않고 보는데, 요즈음 사극은 시간과 장소는 과거이지만 인물의 생각과 행위는 현대인의 모습이라서, 가끔 웃음을 자아낸다. 주인공이 조선 시대 옷을 입고 말을 쓰면서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사랑을 전개하는 것 같아서이다. 이런 팩션[faction] 사극이 발전해서 요즈음엔 인물이 옛날과 현대를 타임머신을 타고 오가는 표전[fusion] 사극이 등장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사극은 그 시대 인물의 정신적 고투와 삶의 결단을 그 시대로 돌아가 보여주는 말하자면 정통 사극이다. 그런 정통 사극으로서 필자가 아직도 기억하는 사극으로는 지금 이름도 잊었지만 한명회가 나와서 ‘내 손안에 있소이다’하고 호방하게 웃던 사극이다. 거기서 주인공 수양대군은 조카에 대한 의리와 권력에 대한 야심 사이에 오랫동안 흔들리는 데, 필자는 그것이 수양대군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가족적 의리와 권력에 대한 야심 사이의 충돌이 조선 시대 한 영웅의 정신적 고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인가 의심스럽다. 그런 충돌은 그리스 시대 비극 예를 들어 안티고네 등에서 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안티고네에서는 가족의 의리를 지키려는 안티고네와 국가의 법을 지키려는 클레온이 충돌한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그리스 시대와 같이 볼 수 있을까? 조선 시대는 이미 고대 민족국가가 아니라 점차 왕권이 강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던 중세 국가가 아닌가? 왕은 예를 들어 형제의 난에서 승리한 태종에게서 보듯이 더 이상 가족적 의리 같은 것에 매달리지 않는다. 수양대군의 진짜 모습은 어쩌면 가족적 의리는 그저 입에 발린 말이고 권력에 대한 야심만이 온통 지배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 필자가 정통 사극이라고 본 것도 엄밀하게는 현대화된 팩션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대체 정통 사극이란 게 가능한가 자체가 의심스럽다. 설혹 그런 정통 사극이 있어 과거의 인물이 과거의 정신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 모습 또한 우리 현대인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울 수 있을 것이 아닐까?

 

2)

이 점과 관련하여 헤겔은 세계 상태를 논하면서 시대와 예술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여기서 헤겔은 먼저 작품의 구체적 구조(즉 이상의 규정성)를 이루는 요소를 탐구하는데 그는 그 구조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 요소는 세 가지 즉 세계 상태, 상황, 행위이다.

세계 상태란 예술 작품이 그 속에서 작성되고 전달되는 세계 즉 그 시대를 의미한다. 헤겔에서 모든 작품은 자기가 속한 세계 상태 속에 내재하는 고유한 정신(이념)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어서 헤겔은 상황을 다루는데, 세계 상태가 전체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상황은 작품의 소재가 전개되는 특수한 장소를 말한다. 세계 상태 속에는 이념의 내적 통일성의 측면이 부각된다면 상황에 이르면, 이념의 분열이 출현한다. 여기서 특수한 상황과 보편적 세계 상황의 대립은 그 상황 속에 처한 인물과 인물 사이의 대립으로 발전하면서 마침내 충돌[1]로 나가게 된다. 마지막은 곧 행동이다. 인물의 행동은 상황에서 출현한 분열과 대립을 촉발하여 충돌로 나가게 하는 계기를 말한다..[2]

 

3)

이 가운데 헤겔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세계 상태와 작품의 관계이다. 많은 경우 예술은 그 시대에서 소재를 끌어내지만 자주 예술은 역사 속에서 소재를 끌어낸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헤겔은 그것이 예술의 필연적 속성 때문이라고 본다.

즉 예술은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 감각적 형상을 순화해야 한다. 현실 속에서 소재를 택하는 경우 작가나 독자의 마음에 실제의 구체적 모습이 사라지지 않아, 오히려 그 속에 표현된 이념을 방해한다. 반면 역사 속의 주제에서는 오랜 시간의 망각작용으로 구체적인 실제 모습이 이미 사라지고 중요한 특징적인 모습만이 남아서 이념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다.[3]

과거 속에서 소재를 끌어내면, 여기서 과거와 현재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게 된다. 헤겔은 이런 충돌을 덕에 관한 두 가지 개념 ‘탁월성[arête]’과 ‘도덕[virtue]’의 구별이나, 고대인의 책임과 근대인의 책임 개념을 비교하면서 잘 보여준다.

고대 영웅 시대의 덕 탁월성[arête]은 경향성과 도덕의 직접적인 통일성이다. 여기서 개인의 욕망은 직접적으로 인륜적 법칙과 결합되어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아직 개인은 자기를 자각하여 인륜적 법칙을 의심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고대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에게 나타나는 덕이 바로 이런 덕이다.

반면 인격이 출현한 중세 사법 시대 도덕[virtue]은 경향성을 억압하면서 추상적인 도덕법칙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추상적 도덕법칙은 황제에 의해 결정되어 개인에게 강요된 것이니, 개인의 인격적 존재는 자신의 자의를 전적으로 희생하고 이 도덕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는 자신이 모시는 군주로부터 이탈하여 다른 군주의 지배 아래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엘 시드라는 중세 서사시에서 등장하는 영웅의 모습이 그와 같다.

헤겔은 덕의 개념 외에 죄의식과 책임의 개념도 거론한다. 근대인의 경우 그의 책임은 자신이 직접 행위 한 결과에 제한된다. 그러므로 무지로 인해 일어난 행위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지만 고대인의 경우, 예를 들어 비극 오이디푸스에서 나오듯이 자신이 모르고 행위 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죄의식을 느끼고 책임을 지게 된다. 왜냐하면 근대인은 개인으로 자각하면서 자신을 사회와 구분하는 반면 고대인의 경우, 아직 개인적 자각이 없어 개인은 사회 즉 인륜적 실체와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그가 직접 행위 한 것이 아니더라도 인륜적 실체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4)

이렇게 세계 상태, 시대에 따라 작품 속 인물의 행위를 규정하는 정신적 태도가 달라지니,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예술가가 과거 속에서 소재를 구하려는 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곤란에 부딪힌다. 한편으로는 과거의 인물을 현재적으로 해석하거나 다른 편에는 과거의 인물을 과거적으로 해석할 결과 현재의 독자에게 이해되지 않게 된다.

헤겔은 관객, 독자의 역할을 논의하면서, 과거 속의 소재를 현재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주관적 작가와 이를 오히려 과거의 관점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객관적 작가 사이의 논쟁을 소개한다.

전자의 대표적 예는 라신느이다. 헤겔은 예를 들어 <타울리스의 이피게니아>에서 보듯이 라신느가 역사적 인물을 당대 프랑스의 인물로 그려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슐레겔은 과거에 가능한 한 충실하게 묘사하기를 요구했다.

그렇다고 과거에서 소재를 구하는 것이 주는 장점도 있으니 쉽게 포기할 것도 아니다. 이런 어려움에 부딪혀 헤겔은 그 시대를 주객관적으로 고찰해야 한다고 본다. 헤겔의 말 자체는 약간 얼버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술에 대한 그의 기본 개념을 이해한다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시대 즉 세계 상태는 이념이 드러난 것이다. 각 시대에는 고유한 이념이 있지만, 이미 그 이전 시대에도 다가오는 시대의 이념이 내재하며, 또 그 이후의 시대에도 과거 시대 이념이 한 계기로 보존되어 있다. 예를 들어 헤겔 <법철학>에 나오는 가족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보자. 가족 속에 출현한 자식 세대는 가족적 공동체를 벗어나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으로 발전한다. 또한 오늘날 국가 속에는 국가를 구성하는 하나의 계기로 포함되어 있다.

이전 시기에 내재하면서 동시에 이후 시기에 포함되는 독특한 발전 과정은 이념의 역사에서도 적용된다. 그런 한 현재의 예술이 과거 시대에서 소재를 구하더라도 그 소재가 현재의 이념을 적어도 가능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없다. 또는 현재의 소재 속에서 과거 시대의 이념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현재 속에 과거는 한 계기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든 과거든 자신이 표현하는 이념에 적합한 소재를 찾아내는 것에 있다. 여기서 소재에서 표현되는 이념의 측면 말고 나머지 외면적인 측면에서는 그 시대의 외면적 특징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외면적 측면은 헤겔 말대로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측면이며, 중요한 것은 선택된 과거의 소재 속에 현재의 이념이 표현될 가능성이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4]

 

5)

헤겔은 이와 같은 의미에서 성공적인 작품으로서 괴테의 이피게니아를 들고 있다. 여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타우리스의 바닷가 신전에서 어쩔 수 없이 머물고 있는 누이를 그리스로 데려오너라. 그러면 저주가 풀리리라”(헤겔, 미학강의 1, 311에서 재인용)

헤겔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한다. 원래 에우리피데스의 희극에서 이피게니아는 자신이 봉사하던 신전의 아르테미스 신상을 자신의 조국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저주에 걸린 조국을 구원한다. 그러나 괴테는 조국에서 희생된 이피게니아가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저주를 푸는 것으로 해석했는데, 괴테는 이피게니아를 통해 자기 희생이라는 순수한 사랑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적 이념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1] 헤겔은 충돌의 구체적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그 자체로서 부정적인 것 예를 들어 역병이나 액운과 같은 것이다. 둘째는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인 것이 대립과 분열을 이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형제나 인종의 차이가 일으키는 대립, 갈등이다.

셋째는 인륜적 실체, 즉 사회 내에 내재하는 대립과 갈등이 표현되는 경우이다. 비극 안티고네에서 혈연의 법칙과 국가의 법칙의 대립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2] 헤겔은 여기서 특히 파토스와 성격을 구분한다. 파토스는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실체적 힘을 말한다. 반면 성격은 그런 인물이 가지고 있는 개별성이다. 한 인물은 다양한 개별성을 지니며, 실체적 힘은 그 가운데 하나의 지배적 개별성에서 출현한다. 파토스는 동시에 다른 모든 개별성을 침투하면서 전체적인 통일성을 형성하여 하나의 성격을 이룬다. 따라서 성격은 다면성을 지니며, 그 내부에 서로 알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의 성격은 파토스를 통해 전체적인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헤겔은 성격은 “내적으로 완결된 주체”라고 하며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성격의 특수성에서는 하나의 주요 측면이 지배적 측면으로 나타나야 하지만, 그 규성성 내부에는 가득한 생명성과 내실이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헤겔, 미학강의 1, 323쪽)

이런 점에서 헤겔은 “모든 힘들을 내면에 고요히 숨기는 강인한 중립성을 표현하는’”조각의 적막과 침묵”이 성격의 다면성과 통일성을 잘 보여준다고 한다. 

예를 들어 호머의 아킬레스는 여러 성격적 요인을 지닌다. 청년으로서 열정과 활기,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애정, 적에 대한 복수심, 명예를 지키려는 분노, 노인을 존경하는 마음 등이 복합되어 있다. 아킬레스의 파토스는 폴리스에 대한 충실성인데, 이는 주로 청년으로서의 열정과 활기에서 나타난다. 이 파토스는 아킬레스의 다른 성격적 요인을 침투하면서 아킬레스라는 성격을 이룬다.   

[3] 헤겔은 이점을 아래와 같이 말한다. “과거는 오로지 기억에 속하며 기억은 그 스스로가 이미 성격, 사건, 그리고 행위들을 보편성이라는 예복으로 즉 특수하고 외적이며 우연적인 특칭성들을 내비치지 않는 예복으로 감싼다.”(헤겔, 미학강의 1, 258쪽)

[4] 헤겔의 다음과 같은 표현에 주목하다. “역사적 외면은 인간적 보편적 요소에 견주어 대수롭지 않은 부수물로 치부되어 묘사에서 한 구석에 있어야만 한다. 이미 중세가 그런 식의 실례이니 중세는 소재를 고대에서 취하되 자신의 시대의 내용을 주입했다.”(헤겔, 미학강의 1, 371족)

또한 다음의 구절도 참조하라. ”동시에 예술가는 이러한 모습들[먼 지방, 지나간 시대 낯선 민족들로부터 얻거나 신화 관습 제도의 역사적 모습]을 다만 그의 그림의 틀로서만 이용해야 하며 반면 그 속은 그의 현재의 본질적이며 한층 깊은 의식에 맞추어야만 하니, 괴테의 이피게니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를 위한 매우 놀랄 만한 실례가 되고 있다.”(헤겔, 미학강의 1, 373쪽)

헤겔미학산책8-예술과 노동[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8-예술과 노동

 

1)

예술은 유사성을 매개로 하여 이념을 표현하므로, 예술은 물질적 자연의 모습을 이념을 통해 순화시킨다. 이념과 유사한 모습을 물질 속에 표현하는 가운데 물질이 지닌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측면이 사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헤겔은 호머가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다만 높은 이마, 잘 생긴 코, 길고 강한 정강이만 언급하고 나머지는 일체 생략했다고 말한다. 또한 이 점과 관련해 헤겔은 흥미롭게도 고대 의상의 장점을 논한다.

 

현대 배우들이 입고 있는 신사복은 미리 재단되어 있어서 오히려 정신이 그것을 통해 이념을 표현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반면 통으로 이루어진 고대 의상은 정신에 따른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주름이 이루어지니, 오히려 이념을 표현할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

 

2)

예술은 이념의 이중화인데, 이 점에서 노동의 산물과 유사성을 갖는다. 노동 역시 대상 속에 자기의 형식을 부여하는 형성화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기술[kunst: art]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예술과 노동 사이의 유사성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예술과 노동의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노동은 대상에 인간적인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연적 물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적합한 산물로 변화된다. 이런 형식부여는 물질 자체를 구조적으로 개조하는 운동이다.

 

반면 예술은 비록 노동이지만 그것은 다만 이념의 어떤 성격을 대상에 외면적 형식으로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물질 자체는 이런 형식이 부여되는 지반으로서 역할만 담당한다. 이런 이중화는 마치 얼굴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얼굴의 찡그림이 고통을 표현한다고 할 때 신체 자체의 물질성이 개조될 필요는 없다. 다만 얼굴에 찡그림의 표정만을 외면적 형식으로 부가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신상을 나무에 표현할 때, 나무 자체를 신적인 것으로 개조할 필요는 없으며, 나무의 물질적 성격에 대해 외면적인 형식으로 신의 모습을 부가하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관념화하는 노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관념화하는 노동은 이념의 형식이 물질에 외면적으로 부여되므로, 여기서 예술은 물질 자체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관념화된 물질을 수단으로 이용하게 된다. 특히 낭만주의 예술 장르에 속하는 미술이나 음악은 순수 색이나 절대 음과 같은 자연적 물질로부터 추상된 관념화된 물질을 사용하며, 이는 문학에 이르러 관념 자체가 예술적 수단이 되는 데서 정점에 이른다. 

 

3)

더구나 예술은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독자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그것은 현실 자체의 모방이 아니라 다만 현실과 동일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이다. 그것은 실제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환상을 창조하는 방식이다. 백남준의 말대로 예술은 본질적으로 사기(환상)이다.

 

그런 환상을 창조하는 방식은 색채와 음과 같은 예술적 수단을 축조하는 방식이다. 그림이 포도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만들어낼 때, 헤겔은 이미 미술가가 색채의 대비를 통해 그런 반짝이는 모습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음악이 슬픔을 불러 일으킬 때 어느 작곡가도 인간이 우는 울음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는다. 음악은 슬픔을 음조를 통해 표현할 뿐이다.

  

예술적 노동은 관념화된 노동이므로 예술이 유사성에 의해 매개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유사성은 본질적인 유사성은 아니고 외면적 유사성에 머무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이 아무리 이념에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근본적으로 기호적 성격을 벗어날 수는 없다. 즉 예술은 이념의 이중화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예술은 완전히 합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예술은 자립적인 물체로서 이념과 구분되는 독자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4)

예술의 노동이 관념화하는 노동이라는 점에서 장점과 한계를 가진다. 한계라면 예술은 역시 이념을 표현하는 데서 관념적으로만 표현하므로 그것은 결국 환상에 머무른다. 미술이 아무리 맛있는 사과를 그리더라도, 그 사과를 우리가 먹을 수는 없다.

 

칸트는 심미적인 쾌감을 욕망의 쾌감으로부터 구분했다. 대상의 물질성이 아니라 대상의 형식에 관한 관심에서 즉 심미적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볼 때 생겨나는 쾌감이 곧 미적인 쾌감이다. 헤겔 역시 예술작품에서 얻어지는 쾌감은 욕망의 쾌감과 구분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예술적 노동이 곧 관념적 노동에 머무르기 때문에 예술작품으로서는 욕망의 쾌감을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점이라면 예술은 물질을 이용해 힘들이지 않고 쉽고 유순하게 정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도의 반짝이는 모습을 실제로 만들자고 한다면 아무도 자연을 따라갈 수는 없다. 하지만 미술가는 색채의 대비를 통해 아주 쉽게 그런 모습을 만들어낸다.

 

더구나 예술은 자연적으로는 곧 사라지고 마는 것조차 이런 관념적인 노동을 통해 영원히 보존한다. 헤겔에 따르면 “살짝 비치다만 미소, 입가에 스치는 비웃음, 시선, 언뜻 어리는 빛”[1]조차 예술은 영원히 보존한다.

[1] 헤겔, 미학강의 1, 225쪽

헤겔미학 산책7- 기호와 표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 산책7- 기호와 표현

 

1) 예술과 미적인 것

헤겔은 미학이라는 용어 대신 예술학이라는 용어를 더 적합한 것으로 본다고 말한 데서 이미 언급한 적이 있지만 헤겔은 예술 작품과 미적인 것을 구분한다. 헤겔에서 예술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념을 표현하는 기호라 한다면, 미적인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헤겔은 미학강의에서 미적인 것의 개념을 독자적으로 분석하지는 않으나, 헤겔의 용법을 보면 대체로 미적인 것의 개념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헤겔에서 미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대상이 가지고 있는 어떤 성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성질은 대상의 유적 통일성과 구분되는 종별적 통일성과 관련된 성질이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상의 규칙성, 균형, 생동성과 합목적성과 같은 성질이다. 이런 성질은 이미 자연미의 개념에서 소개한 바 있는데, 헤겔에서 미적인 것의 개념 자체는 고전주의 미학에서 미의 개념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예술이 이념을 표현하는 기호는 반드시 미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 미적이지 않은 것도 이념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1]. 많은 상징 예술은 무섭고 심지어 추악한 것이면서도 그 시대 이념을 표현하는 기호이니 탁월한 예술이 된다. 미적 형식이 신을 표현하는 그리스 시대에서도 비극은 운명의 힘 앞에서 느끼는 공포의 감정을 묘사한다. 근대에 네덜란드 풍속화는 잔칫날 술 취한 모습. 남녀가 시시덕거리는 광경이 그려졌는데, 그것은 그 시대 생동적인 삶의 모습을 표현하지만 결코 아름답다고 보기는 어렵다.

 

2) 기호와 표현

예술이 기호라고 하더라도 다른 기호와 차별성을 지닌다. 기호의 대표격이라면 언어가 되겠는데, 소쉬르 이래 구조주의에서 언어의 기표 체계는 변별성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되었다. 구조주의는 어떤 기표가 특정한 기의를 지시하게 되는 것 자체는 관습(또는 자의)에 기초한다고 본다.

언어적 기호가 이처럼 관습(자의)에 의해 그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라 한다면, 예술적 기호도 마찬가지일까? 헤겔이 예술은 이념을 표현한다고 하면서 ‘표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서 보듯이 예술적 기호는 이런 관습적 기호와는 구분된다.

헤겔이 상징적 예술형식을 논의하는 끝에 비유를 분석하는 데서 밝혀지듯, 헤겔에서 예술적 기호는 처음 관습적인 것에서 나와서 점차 유사성을 매개로 하여 기의와 기표, 즉 이념과 그 기호 사이의 합일을 향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헤겔에서 예술적 기호는 소쉬르보다는 오히려 퍼스의 기호론에 더 가깝다. 퍼스는 기호와 지시체 사이에 해석을 개입시킨다. 기호는 해석이 주어지는 방식에 따라서 아이콘과 심볼, 인덱스가 구별된다.

이처럼 헤겔에서 예술이 이념의 기호라 할 때 그 사이에는 유사성이 매개되어 있으니 그런 점에서 헤겔은 이 관계를 기호라고 말하지 않고 표현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예술은 이념과 매개로서 이념의 어떤 성격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념은 예술 속에 자기를 이중화[du-plicate]한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헤겔은 이념과 예술의 관계를 표현[Ausdruck] 또는 펼침[explicate]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중성을 스피노자가 사용하듯이 주름[plico: 라틴어, 접다]이라고 말한다면 예술은 곧 이념의 주름이다.

 

3) 자유와 무한성

예술이 이처럼 유사성을 매개로 한 기호 즉 표현이므로 여기서 헤겔은 예술이 지닌 기본적인 성격 즉 자유와 무한성이라는 성격을 끌어낸다. 이 자유와 무한성은 사실 같은 의미인데, 이것은 이념과 그것의 표현 사이의 이중성의 관계를 보여준다.

예술은 이념의 이중화이므로 한편으로 예술은 이념의 이중화로서 이념으로 복귀하고 있으며 이 측면에서 예술은 무한성을 지닌다. 다른 한편으로 이념은 자기를 벗어나 타자가 되면서도 여전히 자기 자신에 머무르면서도 자유롭다.

 

“오직 이[예술작품]를 통해 이상은 외적인 것 속에서 그 자신과 합치하며, 자유로이 자기관계하는 것이며, 내면에서 감각적 지복을 누리며, 스스로에게 기뻐하고 스스로를 향유하는 것으로 있다.”[2]

 

예술이 무한하고 자유롭다는 데서 헤겔은 예술의 근본 특성이 고요함[Ruhe]과 쾌활함[Heiterlich keit]을 끌어낸다. 헤겔이 대표적으로 들고 있는 예는 역시 호머의 서사시이다. 헤겔은 호머의 서사시에서 “신들의 가시지 않는 웃음은 신들의 행복한 고요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헤겔은 쉴러의 시 <이상과 삶>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의 고요한 그림자 나라’에 대해 언급하는데, 쉴러는 그 나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런 그림자 나라에서 나타나는 영혼은 직접적인 현존을 벗어 던지고 자연적 실존의 궁핍에서 분리되고 …외적 영향과 모든 풍진과 세파에 대한 종속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어 있다.”[3]

 

여기서 쉴러가 언급한 고요한 나라는 곧 예술의 나라이다. 예술은 이념의 표현이므로, 이미 이념 속으로 복귀되어 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풍진과 세파에 시달리더라도 그 내면에는 이념의 고요함이 머물러 있다. 그러기에 예술은 어떤 풍파에서도 자신의 쾌활함을 잃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헤겔이 언급한 ‘눈물 속의 웃음[Lachen durch Traenen]’이라는 형상이다. 헤겔은 무리요의 그림 거지소년을 예로 들고 있다.

작품 속의 거지 소년은 헐벗고 더러운 모습이지만 따뜻한 햇빛이 그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 이를 잡고 있다.


[1] 헤겔에서 예술이 미의 개념을 넘어서 추의 개념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헤겔 연구자가 제시해 왔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안네마리 게트만 지페르트[Annemarie Gethmann-Siefert]가 <헤겔 예술 규정-미에서 추에 이르기까지>(헤겔과 근대예술, 한국 헤겔학회 편, 철학과 현실사, 2002)에서 이 점을 강조한다.[1] 흔히 헤겔에서 추는 미에 이르는 계기로서만 파악되었지만 지페르트는 헤겔 미학에서 추는 독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념이 소여되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고전주의 시대 이념은 미적인 것을 통해 주어지지만, 낭만주의 시대 이념은 오히려 부정적인 것을 통해 드러나며 그런 부정적인 것 가운데 특성적인 것(범죄적인 것) 또는 추 즉 부조화도 포함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절 그리스도의 모습을 고전주의 시대 아폴로 신상의 모습을 표현한 것에 대해 헤겔은 비판적으로 보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지페르트는 헤겔의 예술 개념이 왜 미뿐만 아니라 추까지도 포함하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2] 헤겔, 미학강의 1, 216쪽

[3] 헤겔, 미학강의 1, 216쪽

헤겔 미학산책6-기호로서 예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미학산책6-기호로서 예술

 

1)

예술론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축은 모방이냐, 창조이냐 하는 축이다. 리얼리즘은 예술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을 통해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모더니즘은 예술은 환상을 창조한다고 본다.

이와 교차하는 또 하나의 축은 객관적 미학과 주관적 미학이다. 객관적 미학은 미적인 것이 자연적 성질이나 관계처럼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주관적 미학은 미적인 것은 욕망의 만족에서 얻어지는 쾌감과 구분되는 일종의 쾌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을 긋는다면, 그것은 인식이냐 표현이냐 하는 구분이 될 것이다. 예술은 진리를 감각적으로 발견하는 것을 통해 성립한다고 보는 인지론자가 있다면, 미는 정신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한 표현 수단이라고 보는 표현주의자가 있을 것이다.

예술론을 세 가지 축으로 구획할 때, 예를 들어 칸트의 미학은 미적인 것을 주관적 감정에서 끌어내려 했다.[1] 반면 고전주의자 쉴러는 실재하는 조화와 균형이 미적인 것이라고 보는 객관적 미학자이다. 19세기 리얼리즘은 예술이 현실을 모방하는 것으로 보지만, 20세기 초 표현주의는 미란 진리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볼 것이다. 하이데거의 경우 미는 존재의 진리를 직관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니, 전형적인 인지론자가 된다.

 

2)

헤겔의 미학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는 평면의 어디에 속할까? 많은 해석자는 헤겔이 실재론자나 인지론자에 속한다고 본다. 즉 이념은 감각적 작품에 실재하면서 미적 이념이 되며 우리는 직관을 통해 미적 이념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미적인 직관능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 직관능력은 이념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되어야 하는데, 헤겔의 철학 어디에서도 감각적 경험과 다른 어떤 본질적 직관 능력을 가정하는 것을 볼 수 없다.

더구나 작품 속에 미적 이념이 실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작품의 질료는 물질의 법칙에 지배 받는 것이니, 미적 이념이 실재한다면, 작품의 형식 속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념의 실재, 즉 그 속에 이념이 내재하는 형식이란 어떤 것인가? 결국 쉴러와 같이 조화와 같은 고전적 형식을 들 수밖에 없는데, 고전주의 시대 특히 조각 작품을 제외하고 다른 시대, 다른 예술작품은 전혀 그런 형식을 가지지 않으니, 그 모두를 예술작품에서 배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헤겔은 그 모두를 포괄하는 예술론을 전개하려 하니 이념이 실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3)

이상 보듯이 헤겔을 실재론이나 인지론의 미학 평면에 집어넣기는 어렵다. 헤겔은 예술작품은 이념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예술은 이념을 표현함에 있어 사유와 순수한 정신성 일반의 형식으로가 아니라 직접 볼 수 있도록 감각적 형상으로 표현해야 하는 과제를 가진다.”[2]

위의 구절에서 헤겔이 표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주목하라. 또한 그 표현의 방식은 구체적으로 상징이나 현상, 가상 등 기호학적인 방식이다. 예술작품 속에 이념을 파악하는 방식 역시 기호에 대한 독해적 방식이니, 이점과 관련해 헤겔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오히려 그것은 본질적으로 물음이며 반향하는 가슴에 건네는 말이며, 심정과 정신에 던지는 외침이다.”[3]

여기서 ‘물음’이나 ‘말’, 또는 ‘외침’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자. 말이라는 단어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이런 단어들은 모두 기호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술작품은 문학뿐만 아니라 건축이나 조각, 음악, 미술조차도 하나의 기호이다. 예술작품은 그 속에 심정을 그 의미로 담지 하고 있는 기호이며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정신은 예술작품이라는 기호를 언어적으로 독해하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로서 심정을 파악한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심정에서 심정으로 전달된다.

이 점은 예술이 가상이라고 할 때 그 의미에서도 충분하게 드러난다. 가상[Schein]이란 자신을 통해 다른 것이 빛남으로써 그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 말은 곧 그것이 이 다른 것의 기호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름다움은 개별적 형태가 고요 속에서나 운동 속에서 전개하는 빛남[가상성: Scheinen]을 다룬다. 반면 아름다움은 욕구의 만족을 위해 합목적적이라는 사실이나, 자발적으로 운동하는 것[Sichbewegen]에서 등장하는 전적으로 개별적인 우연성과는 무관하다.”[4]

 

4)

헤겔을 이처럼 표현주의자의 미학적 평면 속에 위치시킬 때 헤겔이 왜 자연미에 대립하여 예술미를 옹호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새의 다채로운 깃털은 보지 않아도 빛나며, 그 노래는 듣지 않아도 울려 퍼진다. 또한 단 하룻밤 꽃을 피우는 선인장은 그 누구의 찬미도 듣지 못하고 남쪽 지방 숲의 야생에서 시들며, 이 수풀 매우 달콤하고 황홀한 향기를 지닌 극히 아름답고도 울창한 식물군으로 이루어진 정글 자체도 역시 즐기는 사람 하나 없이 썩고 시들어 간다.”[5]

사실 자연(심지어 여기에는 인간의 현실까지 포함된다) 속에서 자주 규칙적인 것, 균형적인 것, 조화로운 것, 생동적인 것, 합목적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고전주의 미학자는 이런 것들을 미적인 것의 실재로 간주한다.

헤겔이 이를 자연미라고 하는 것으로 보면, 이것이 미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헤겔은 이런 자연미가 예술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이제 그 이유를 들어보자.

우선, 자연 속에 내재하는 미적인 것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 즉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 한 그것은 어떤 다른 것의 기호가 아니며, 예술을 이념의 기호로 간주하는 헤겔에게서는 예술이 되지 못한다. 물론 예를 들어 시인이 자연 속에 들어가 그 생동적인 아름다움을 신의 상징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예술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이 경우 자연 자체가 예술이 아니라 시인의 눈에 그런 자연이 예술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6]

또한 헤겔에서 예술은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자연 속에는 조화로운 것, 생동적인 것을 넘어 심지어 합목적적인 것조차 출현하지만, 자연에서는 동물적 삶에서 보듯이 아직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이 출현하지 않는다.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은 즉 자기 관계하는 것[대자적인 것: fuer sich] 다시 말해 자기를 타자화하고 이 타자 속에서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은 인간 정신에 이르러 비로소 출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신만이 자기를 자립적인 대상으로 실현하기 때문이다.[7]

인간의 정신이 이처럼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을 산출할 수 있으므로 오직 인간에게서만 예술이 출현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것이 다른 것의 기호가 된다는 것 즉 다른 것의 가상이라는 관계는 이와 같은 무한하고 자유로운 정신의 활동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5)

예술에 관한 헤겔의 기호적 독해는 유명한 비유를 낳았다. 헤겔은 플라톤의 아래와 같은 시구를 인용한다.

“그대가 별을 볼 때, 오 나의 별이여, 나는 하늘이 되어 수천 개의 눈으로 그대를 내려다 볼 수 있었으면”[8]

여기서 플라톤은 자신의 애인을 수천 개의 눈이 되어 바라보고 싶다고 하는데, 헤겔은 예술을 이런 수천 개의 눈에 비유했다. 왜냐하면 눈이 곧 영혼이 드러나는 기관이고 눈을 통해 그의 영혼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거기서 이념이 드러나며 그것을 통해 이념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미적인 것이 실재한다는 입장에서는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보다는 자연 자체 속에 진정한 의미에서 미적인 실재가 출현한다고 보며, 따라서 예술가는 가능한 한 자연 속에 들어가 자연에 내재하는 미적 실재를 포착해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실재론적 입장은 대체로 예술은 자연의 모방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헤겔은 예술은 모방이 아니라고 단언한다.[9] 왜냐하면 예술은 이념의 가상 즉 기호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호는 정신의 내부에서 산출되는 것 즉 창조된 것이다. 예술이 하나의 기호이라면, 미적인 것이 굳이 자연을 모방할 필요가 없으며, 모방과는 무관한 예술 형식도 존재한다. 예술 가운데 특히 건축과 음악이 그렇다. 건축은 재료를 축조하며 음악은 음을 구성할 뿐이다.


 

[1] 칸트는 이런 미적인 감정은 욕구의 충족을 통해 얻어지는 만족과 구분한다. 후자는 대상의 감각적 질료로부터 얻어지는 것이지만 미적인 감정은 대상의 형식 자체로부터 얻어진다. 그는 대상의 일정한 형식 자체가 미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형식으로부터 반성적 판단 과정을 통해 미적 감정이 발생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반성적 판단은 일정한 대상의 형식으로부터 자유롭게 어떤 종별적인 통일성 즉 조화와 균형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헤겔, 미학강의 1, 107쪽

[3] 헤겔, 미학강의 1, 106쪽

[4] 헤겔, 미학강의 1, 174-175쪽

[5] 헤겔, 미학강의 1, 107쪽

[6] “하지만 이러한 다만 감각적일 뿐인 직접성으로 인해 생동적인 자연미는 그 자체를 위해 혹은 그 자신으로부터 아름다운 것으로 생산된 것도 또한 미적 현상을 위해 생산된 것도 아니다. 자연미는 오로지 타자에 대해 즉 우리에 대해 미를 이해하는 의식에 대해 아름다운 것이다.”(헤겔, 미학강의 1, 173쪽)

[7] “동물적 삶은 삶으로서는 비록 이념이지만 그것은 무한성과 자유를 자체에서 표현하지 않으니, 이것이 나타나려면 개념은 자신에 합당한 실재를 완전히 관류하여 그 속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대상화하고 또한 거기서 자신 이외의 어떤 것도 등장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서 개념은 진정 자유롭고 무한한 개별성으로서 존재한다.”(헤겔, 미학강의 1, 208쪽)

[8] 헤겔, 미학강의 1, 212쪽

[9] “예술의 진리는 소위 자연의 모방이라는 것이 제한적으로 지향하는 단순한 정확성이 아니며, 외면은 내면과 조화해야 하니, 이 내면은 내면 그 자체로서 조화를 이룰 수 있고 또한 바로 이를 통해 외면 속에 자신을 자신으로서 현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헤겔, 미학강의 1, 214쪽)

헤겔 미학산책5-예술과 종교, 철학의 등근원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미학산책5-예술과 종교, 철학의 등근원성

 

1)

앞에서 절대정신을 공동체 정신 즉 공동체의 단결된 의지로 규정했다. 그런데 이런 절대정신이 예술, 종교, 철학으로 전개되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헤겔의 정신 개념으로 돌아가보자. 헤겔에서 정신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차원이 곧 이론적 인식의 차원이다. 정신현상학에서 의식 장과 이성 장은 이론적 인식을 다룬다. 전자는 개인적 인식을, 후자는 상호주관적인(일반적인) 인식을 다룬다. 두 번째 차원은 실천적 의지의 차원이다. 정신현상학에서 자기의식 장과 정신 장은 실천적 의지를 다룬다. 자기의식 장은 개인적 의지를 다루며, 정신 장은 사회의 일반 의지를 다룬다. 여기서는 개인적 의지의 일반적 의지로의 형성, 도야가 문제된다.

정신은 또 하나의 차원을 가지니, 그것은 곧 자기를 표현하는 차원이다. 인식이나 의지가 출현한다는 것과 그것이 표현된다는 것은 상이한 차원이다. 예를 들어 진리를 인식하더라도 그 인식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이런 구분은 명제와 문장의 차이를 규정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언급된다. 명제는 의미와 관련된다면 문장은 표현과 연관된다. 동일한 의미를 지닌 명제가 다양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실천적 의지에서도 의지의 형성과 그것의 표현은 구분된다. 내가 어떤 욕망을 지닐 경우 나는 그것을 위해 행동한다. 행동은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나는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무관하게 내 마음 속의 욕망을 표현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욕망을 얼굴의 표정 예를 들어 선망의 눈초리나 또는 다리의 비틀린 자세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 이런 표정과 자세도 하나의 행동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런 행동은 욕망을 충족하는 행동과는 구별된 행동이다.

헤겔은 인식의 차원과 의지의 차원과 구분되는 또 하나의 차원 즉 표현의 차원을 가정하면서 절대정신에 이르러 마침내 이런 표현의 차원 자체를 문제 삼는다. 정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기 자신이 세계를 인식하고, 의지를 발휘하면 되지 그것을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대부분 고립적으로 살아가는 동물의 경우 제약된 의미에서 인식하고 의지(본능)를 발휘하지만, 자신의 인식과 의지를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인간의 경우 동물과 달리 매우 복잡한 공동 행동을 취한다. 그런 만큼 자신의 인식과 의지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필연적인 요구일 것이며 그 때문에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표현방식을 발달시킨 것으로 보인다.

타인에게 자기를 알리는 표현이 공동 행동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공동체의 정신인 절대정신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 때문에 헤겔은 절대정신에 이르러 표현의 방식을 문제 삼게 된 것으로 보인다.

 

2)

절대정신은 실천적 의지의 발전 끝에 나온 공동체 정신이며, 국가의 제도적 형식 즉 삼권분립의 체제 속에서 외적으로 실현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예술과 종교, 철학이다.

정신현상학에서는 종교와 철학이라는 두 가지 방식만 제시된다. 종교를 다룰 때 예술종교라는 개념이 나오기는 하지만, 예술을 독자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1818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미학강의가 이루어진 다음부터, 예술이 절대정신의 한 방식으로 포함되는데, 그것을 반영하여 철학전서에 이르러서는 절대정신은 예술, 종교, 철학으로 체계화된다.

이런 표현의 차원은 그 이전 이론적 인식에서나 실천적 의지를 다루는 곳에서는 제기되지 않았다. 헤겔은 마지막 절대정신에 이르러 비로소 정신의 표현이라는 차원을 다루면서 예술과 종교 철학에 대해 논의한다.

예술, 철학, 종교가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하면, 마치 절대정신이 출현하는 이상국가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예술, 종교, 철학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때의 절대정신은 최종적인 실현 결과, 즉 주관적 자유가 인정된 위에서 공동체의 단결된 의지가 출현하는 것이다.

헤겔은 자신의 저서를 항상 목적론적으로 서술하니, 최종적 절대정신은 이미 그 이전의 국가적 형태에서도 부분적으로는 실현된다. 그 이전 정신의 단계서 일정한 사회적 실체를 바탕으로 일정한 실천적 의지가 전개되니, 그런 실천적 의지는 이미 절대정신의 실현이다. 즉 절대정신은 즉자적인 상태에서 즉자 대자적인 상태로 발전한다. 따라서 이미 그 이전 정신의 단계에서도 예술, 철학, 종교가 출현한다고 볼 수 있다.

헤겔이 절대정신의 세 가지 표현방식을 다루는 것은 정신현상학이나 철학전서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이다. 여기서 절대정신은 즉자 대자적인 절대정신을 의미하는데 이는 정신의 발전 끝에 이르러 출현하기 때문이다. 반면 미학강의나 종교철학 강의에서는 예술이나 종교가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다룬다. 여기서는 절대정신을 즉자적인 상태에서 출발하여 발전과정 속에서 서술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헤겔이 체계적으로 서술하는가 아니면 역사적으로 서술하는가 하는 서술 방식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라고 할 수 있다.

 

3)

그렇다면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예술의 방식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절대정신을 감각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여기서는 자신의 정신을 전달하기 위한 외적인 형상화가 필요하다. 절대정신을 감각적 방식으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예술작품이다.

철학은 절대정신을 개념을 통해 표현한다. 이런 개념은 추상적 관념을 토대로 하는 것이지만, 단순히 추상적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자체 내에서 체계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헤겔은 개념이 자기를 전개하는 운동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개념이 자기를 타자화하며 이 타자로부터 다시 자기 내로 복귀하는 과정으로 본다. 헤겔은 개념의 자기 운동으로 규정하였다.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방식 가운데 가장 문제되는 것은 곧 종교이다. 종교는 기도에서 주어지는 것과 같은 순수한 심정의 상태이다. 예술이 차안의 감각적 실재를 통해 절대정신을 표현한다면, 순수한 심정 속에서 절대정신은 심정에 대하여 마치 외부 초월 세계에서 주어지는 것처럼 출현한다. 헤겔은 종교는 절대정신을 표상[Vorstellung][1]을 통해 표현한다고 말한다.[2]

중요한 것은 마치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실재하며 그것이 내적인 심정을 통해 인식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절대정신이 순수한 심정의 상태에 있기에 초월적인 실재로 전도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전도는 이미 포이어바흐가 소외 개념을 통해 잘 설명했지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편집증 환자를 괴롭히는 외부의 박해자가 사실은 자기 내부에서 무의식적으로 출현하는 욕망의 대타자가 전도되어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다.

헤겔은 구체적인 역사적[historisch] 사건을 예로 들고 있다. 그 사건은 곧 예수의 탄생과 죽음이다. 이 단순한 역사적 실재는 기독교적 순수한 심정 속에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감각적 표상으로 된다. 그 결과 이 사건은 종교적으로 신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즉 대속의 역사[Geschichte: 伇事]를 의미하게 된다.

 

4)

정신의 발전과정에서 절대 정신 이전 정신의 다양한 형식 사이에는 발전적 연관이 성립했다. 즉 하나의 정신의 형태는 그 이전 정신의 형태에서 출현한다. 이전 형태는 자기 모순에 부딪히며, 이로부터 자기 내로 반성하여 더 높은 형태의 정신이 출현한다. 이 정신은 이전의 모순을 해결하는 가운데 더 포괄적이며 사태 자체에 더 다가간 객관적 정신으로 된다. 예를 들어 인식에서 지각보다 지성이 더 높은 형태이며, 실천에서 인륜적 정신보다 법적 정신이 더 높은 형태가 된다.

반면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식 즉 예술, 종교, 철학에서도 발전적 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이 세 가지 방식은 동일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니, 그 중 어느 것도 다른 표현 방식에서 모순이 출현하여 그로부터 반성하면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방식은 표현 방식에서 차이는 있더라도 거기에 높고 낮다거나, 좁고 넓다는 식의 우열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술, 종교, 철학은 절대정신과 관계하여 등근원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세 가지 방식이 동일한 내용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니, 어떻게 보면 이 세 가지는 서로 뒤엉켜 있다. 예를 들어 신상은 한편으로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제의나 기도의 대상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근대 세속적 유물론(프랑스 유물론)이라는 철학의 배후에 근대의 개신교적 신앙, 소외된 신이 존재한다.

예술과 종교, 철학은 동일한 절대정신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하는 가운데 동일한 기본 형식 즉 구조를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그 시대 예술을 보면서 종교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고, 거꾸로 그 시대 철학을 통해 그 시대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 헤겔의 이런 생각은 푸코가 동일한 시대의 다양한 학문 속에서 동일한 에피스테메를 찾았던 것과 같다.

각 시대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예술, 종교, 철학은 서로 등근원적인 것이지만, 또한 헤겔은 각 시대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하며 따라서 가장 지배적인 방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집트 시대 절대정신은 종교를 중심으로 한다.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지배적인 절대정신은 감각적인 예술이다. 근대 국가를 극복해서 이상 국가에 이르게 되면 개념적인 철학이 마침내 최고의 절대정신에 등극하게 된다.

물론 어느 시대나 예술과 종교, 철학이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각 시대에 적합한 지배적인 절대정신이 있다. 그 때문에 다른 절대정신은 이런 지배적인 절대정신에 종속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시대 절대정신의 지배적 형식은 예술이며, 종교나 철학은 이런 예술적 표현 속에 함께 녹아 들어 있다. 그 결과 예술적인 조각상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며 그리스 신화 속에서 그 시대의 철학이 함축되어 있다.

한편으로 절대정신의 표현방식이 등근원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적 표현방식이 존재한다는 두 주장은 서로 모순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헤겔에서 절대정신의 세 가지 표현방식은 마치 삼위일체와 같은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각자는 전체이며 동시에 전체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보면 절대정신의 표현방식에 대한 헤겔의 두 주장은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1] 이때 헤겔이 사용하는 표상이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일단은 관념적인 것[심상]과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그 가운데 추상적인 것은 자주 개념으로 표현되고, 구체적인 관념 즉 감각적 관념을 헤겔은 주로 표상으로 지칭한다. 그런데 표상이라는 말에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환상을 의미하는데 헤겔의 종교론에서만 유독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헤겔도 다른 경우에는 일반적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한다.

[2] 종교와 관련된 다음 구절에서 사용된 표상의 개념을 살펴보자.

“이렇듯 정신은 종교의 단계에서는 그 자신을 자기 앞에 표상으로 나타내니[sich ihm selbst vorstellt] 이 단계에서 정신은 사실 하나의 의식의 수준에 머무르다. 따라서 그러한 종교의 틀 안에 포함된 현실이란 그 자신에 대한 표상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며 일종의 옷에 불과하다.”(정신현상학, S. 365)

“절대정신은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형태나 지식을 지양하면서 내용상 자연이나 정신에 있어서 즉자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이다. 형식상으로 보면 절대정신은 일단 표상이라는 주관적 인식에 대해 나타난다. 표상은 그 내용이라는 계기에 한편으로는 자립성을 부여하며, 서로 대립하는 있는 내용적 계기를 전제로 삼아 서로 계기하는 방식으로 현상하게 만들며 유한한 반성적 규정에 따라서 볼 때 역사적 사건이 지닌 연관으로 만든다. 다른 한편 그런 유한한 표상방식이라는 형식을 일정한 정신에 대한 신앙이나 제의에서의 기도 속에서 지양한다.”(철학전서 §565)

“종교가 그 의식의 형식으로서 갖는 것은 표상이니 절대자가 예술의 대상성에서 벗어나 주관의 내면성으로 전이하고 그리하여 가슴과 심정 요컨대 내면적 주관성이 주된 계기가 되게끔 절대자가 주관적 방식으로 표상에 대해 주어져 있는 까닭이다.”

“종교는 절대적 대상과 관계하는 내면의 경건함을 추가한다. “(미학강의 1, 146쪽)

 

헤겔 미학 산책4- 절대정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미학 산책4- 절대정신

 

1)

헤겔의 철학 어디에도 절대정신의 개념에 부딪히지 않는 곳이 없다. 헤겔 미학에서 이 개념은 자주 이념이라는 논리적 범주로 표현되거나, 간단하게 정신이라는 말로 언급되기도 한다. 절대정신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헤겔의 철학에 한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하니, 헤겔의 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부득이 절대정신이라는 개념 벽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다.  

헤겔 해석자 대부분은 절대정신을 신을 지칭하는 말로 간주한다. 이런 해석에서 신의 개념은 이미 전제되고 있다. 그 개념이란 흔히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세계의 창조주이며 전능한 유일자라는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헤겔 철학전서에서 보듯이 신 개념은 절대 정신의 종교적 형태에 속하는데, 절대정신을 유일자라는 신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절대정신의 최종적 형태가 왜 종교가 아니라, 절대지 즉 철학 또는 학문인지가 밝혀지지 않는다. 아무리 헤겔이라도 유일자 신을 인간의 학문으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못하지 않을까?[1]

절대정신이 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절대정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헤겔에서 하나의 정신은 자기 모순에 부딪히면서 자기 내로 반성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정신으로 이행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신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이행의 계기 즉 그것이 어떤 모순으로부터 출현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정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헤겔 정신현상학에서는 절대 정신은 양심의 모순에서 나온다[2]. 이 양심 개념은 5장 정신 장의 마지막 C절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도덕성)에 속하는 마지막의 형태이다. 여기서 최초로 등장하는 절대정신은 종교이다.

 

2)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헤겔의 철학적 전개 과정을 전반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설명을 간단하게 만들기 위해 하나의 도해를 만들어 보았다.

 

이 도해는 왼쪽에서 만나는 두 가지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의 선은 국가의 외적인 측면 즉 객관정신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래 선은 국가의 내적인 측면 즉 주관적 정신의 발전과정이다.

두 개의 선이 결합하여 국가의 세계사적인 발전과정이 전개된다. 구체적으로 동방(인도 및 이집트) 부족국가, 그리스 로마의 민족 국가,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오성적 국가, 마지막으로 헤겔이 이상으로 삼는 이성적 국가이다.

(이집트, 동방의 국가는 본래적an sich 정신이며, 이성국가는 곧 실현된 an und fuer sich 정신이다. 논리적 범주로는 전자가 개념이며 후자가 개념의 실현으로서 이념이다.)

 

객관적 정신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 과정에서 발전하는 것은 소유관계인데, 이 소유관계는 근대에 교환을 통한 소유로 발전한다. 이게 오성 국가의 기초가 되는 근대의 사회적 실체이다. 주관적 정신의 측면에서 본다면, 근대에 이르러 개인의 법적인 인격이 출현한다. 교환을 통한 소유와 법적 인격이 결합하여 국가가 출현한다. 이것이 곧 오성 국가 즉 근대 자본주의 국가이다.

여기서 개인의 주관성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이 발전과정은 정신현상학에서 서술되는데, 마침내 양심을 넘어서 절대정신이 출현하며, 사회적으로는 시장 교환을 통해 생겨나는 불평등이 국가의 개입으로 해소되면서 오성 국가는 이성 국가로 발전한다.

 

3)

절대정신은 정신현상학에서 보듯이 양심을 넘어서 출현하게 된다. 절대정신의 구체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이 과정을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자.

우선 양심의 개념을 생각해 보자. 칸트에서 순수의지는 추상적 도덕법칙을 추구하면서, 자연적 욕망과 대립한다. 양심은 칸트 순수의지에서 모순을 극복하면서 나온다. 양심은 그 개념에 따르면 구체적 법칙을 직각적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어떤 주저도 없이 단호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양심의 실제 모습에서 분열이 일어난다. 행동하는 의지는 행동을 우선하는 가운데, 도덕법칙보다 개인적 야심을 따른다. 반면 순수한 양심은 도덕법칙의 순수성을 고민하는 가운데 행동을 유보하게 된다. 행동하는 의지와 순수한 양심은 대립하는 가운데 마침내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서로 화해에 이르게 된다. 즉 서로가 자기와 다른 사람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3]

순수의지나 양심에서 정신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서로 대립하는 두 정신, 행동하는 의지와 순수한 양심이 서로를 인정하면서 마치 성령과 같이 “불의 혀처럼 갈라져.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는” 정신이 출현한다. 이것이 바로 절대정신이다. 이 정신은 “같은 한 성령이…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다른 역할로 나타난다.[4] 성령의 본질이 곧 사랑이듯이, 절대정신은 공동체적인 정신이다. 

헤겔에게서 절대정신은 마치 성령이 교회공동체의 바탕이 되듯이 새로운 공동체의 바탕이 되는 정신을 말한다. 여러 자아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서로 필요로 하면서 구성하는 공동체가 곧 국가이니, 이 국가의 바탕이 되는 정신이 곧 절대정신이다. 이 점을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에서 성령 개념은 곧 삼위 일체라는 제도적 형태로 발전한다. 마찬가지로 헤겔의 절대정신은 이상적 국가의 삼위일체적인 제도로 발전한다. 이상적 국가는 보편성(성신)과 개별성(성자), 특수성(성령)으로 구성된다. 그것이 각각 의회, 군주, 관료를 의미한다. 마치 삼위일체에서 각각이 전체이며 동시에 전체의 한 부분이듯, 헤겔은 이상국가에서 의회와 군주, 관료는 각각이 전체이며 또 전체의 한 부분이니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보완하여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말한다.

 

4)

절대정신을 공동체적 정신이라 할 때, 여기서 공동체적 정신이라는 것은 결코 공동적인 목적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공동적 목적으로 공동체의 단결된 힘을 통해 실행하려 할 때 출현하는 것이 절대정신이니, 이 절대정신은 공동체의 단결된 의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민족적 영웅은 그 민족의 의지를 대변한다고 할 때 그런 영웅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응집하는 정신이 곧 절대정신이다.

공동체가 단결된 의지라고 해서 개인의 주관적 자유의지가 제거된 기계적인 통합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주관적 정신의 발전과정에서 근대에 이르러 개인의 자유의지가 자각되고 그런 자각 위에서 양심이 출현했다. 따라서 절대정신에서 공동체의 단결된 의지는 개인의 자유의지 위에서 성립하며, 그렇기에 이런 단결된 의지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의지가 된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것은 서로의 고유한 역할을 인정하고, 각자의 역할이 지니는 과잉은 비판하고 결핍은 보완하는 것이니, 이미 그 속에 서로 대립하는 것을 포함하니, 여기서 하나가 곧 전체이며 전체가 곧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적 정신 즉 절대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정신은 사랑의 정신이라 하겠다. 사랑은 하나 즉 전체(hen kai pan)라는 공동체의 정신의 표현이다.

헤겔은 이런 점에서 예수의 복음에 주목한다. 예수는 새로운 복음 즉 신약인 사랑을 선포했다[5]. 그러면서도 그는 구약인 심판 즉 정의를 부정하지 않았으니, 절대정신의 두 측면 통일과 대립의 두 측면을 잘 보여준다. 이런 사랑의 정신은 한평생 교회 공동체(Gemeinde)의 수립에 전력을 기울였던 바울의 설교에서도 잘 드러난다.

헤겔은 예수의 복음이 우연히 나온 것은 아니라 본다. 절대정신 자체가 곧 공동체의 정신이고 이 공동체 정신을 잘 드러내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즉 정신의 개념 자체가 본래 사랑이므로 예수는 이를 복음의 내용으로 삼았다는 것이다.[6]

사랑의 절대정신의 종교적 표현이다. 종교적 사랑은 구체적으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을 의미한다. 헤겔의 절대정신은 교회 공동체를 벗어나 사회적 상호 관계 즉 정신적 실체 속에서 실현되는 시민적 사랑을 의미한다. 전자는 제도적으로 삼위일체라는 제도으로 실현되며 후자는 헤겔이 법철학에서 구상한 이상 국가에서 삼권분립의 제도로 실현된다.

포이어바흐는 신을 인간 본성의 소외라 보았다. 인간의 본성은 사랑인데 신이란 내면적 사랑이 초월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된 것에 불과하다. 헤겔에서 신 역시 절대 정신의 환상적 표현이고, ‘환상적 표현’이라는 말과 ‘소외’라는 개념이 서로 유사하며, ‘공동체 정신’과 ‘사랑’의 본성이 유사하니, 포이어바흐의 신 개념은 사실 헤겔의 신 개념에서 이미 내재하고 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1] 이점과 관련하여 헤겔은 철학 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 진정한 구체적 소재는 존재(우주론적 신학에서처럼)도 아니고, 합목적 활동(자연신학적 증명에서처럼)도 아니고 정신이다. 이 정신의 절대적 규정은 실효적인 이성 즉 자기를 규정하고 실현하는 개념 자체 즉 자유이다.”(§ 552 주석) 헤겔은 이런 점에서 칸트가 실천이성으로부터 신을 도출하려 했던 시도를 찬성한다. 

[2] 정신현상학에서 종교 장과 절대지 장을 묶어서 절대정신으로 해석한다. 정신현상학에서는 절대정신에 속하는 예술을 다루는 부분이 없다.

[3] 정신현상학 양심의 마지막 부분에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두 개의 나[Ich]는 화해하면서 상대방을 긍정하는 가운데, 서로 대립하는 현존이기를 그친다. 이런 화해하는 긍정은 이원화된 두 개의 나[Ich]가 그런 가운데서도 서로 동일하게 머무르는 현존이며 또한 이런 현존 속에서 두 개의 나[Ich]는 완전히 소외되고 대립하는 가운데에서도 오직 자기자신을 확신한다. – 상호 화해하는 긍정을 통해 신은 자신이 곧 순수한 인식임을 깨우치고 있는 두 개의 나 한복판에 그 모습을 나타낸다.

[4]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2-4]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2:8-13]

[5] 요한복음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로마서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6] 이런 점에서 독일어 Geist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한편으로 정신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령을 의미한다. 헤겔이 절대정신이라는 말은 곧 성령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겔 미학 산책 3-고대예술과 근대예술 논쟁[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미학산책 3-고대예술과 근대예술 논쟁

 

1)

헤겔의 미학은 빙켈만 이래로 내려오는 고전주의 미학과 낭만주의 미학의 대결을 마무리하는 결정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의 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 이전에 이루어진 격렬한 논쟁의 전말을 살펴보아야 한다.

논쟁의 출발점에 빙켈만이 있었다. 그는 1755년 로마에서 고대예술작품을 직접 관찰하면서 연구한 끝에 1764년 <고대 예술의 역사>라는 저서를 완성했다. 여기서 그는 고대예술의 근본특징을 ‘고귀한 단순성과 고요한 위대함’을 갖는다고 평가했다. 

빙켈만 이후 서구에서는 고대의 아름다움을 되살리려는 (신)고전주의가 출현했다. 고전주의의 중심에 괴테가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고전주의를 옹호하는 예술사가, 미학자가 모여들었다. 대표적으로 쉴러, 히르트, 마이어 등이다.

고대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면서도 근대 예술의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등장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중세 낭만주의 예술의 전통을 잇는 근대예술이 고대 예술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고대의 예술을 부활하려 했던 르네상스 예술을 제쳐 놓는다면, 14세기 고딕 예술이나 낭만주의 문학, 17세기 바로크 예술은 고대의 미학적 기준으로 보면 예술로 인정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여기서 근대 예술작품의 미학적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등장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이런 논쟁에서 고대예술에 관한 한 빙켈만의 규정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논쟁의 초점은 고대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근대에 있었다.

 

2)

이런 논쟁에서 효시가 된 것이 바로 쉴러다. 쉴러는 괴테와 함께 발간하던 잡지 호렌에 1795년 11월에서 1796년 사이 세 논문[1]을 연재한다. 그는 여기서 고대 문학과 근대 문학을 구별하면서 전자를 소박 문학이라 규정하고 후자를 감상(또는 성찰) 문학이라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소박문학이란 현실적 대상 속에 이미 아름다움이 내재하고 있어서 단순한 경험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 반면 근대에 이르러 문명의 진보에 따라 현실은 분열에 처했으며, 아름다움은 사라졌다. 이런 아름다움을 이상의 세계 속에 창조하려는 시도가 성찰 문학을 낳는다.

쉴러의 주장에서 고대 문학이나 근대 문학의 목표는 같다. 그것은 자유롭고 조화로운 질서이다. 이 속에서 감성과 이성, 우연과 필연이 통일되어 있다. 다만 이런 질서에 다가가는 방식만 다를 뿐이다. 고대 문학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서술할 뿐이며 근대 문학은 이미 사라진 것을 환상 속에서 만들어내려 한다.

쉴러에 따르면 사라진 아름다움을 다시 찾으려는 시도는 루소 등에서 보듯이 문명을 버리고 원초적인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택할 수 없다. 감상 문학은 문명의 진보를 인정한 위에서 사라진 아름다움을 다시 창조해야 한다. 감상 문학의 시도는 여러 가지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그는 특히 세 가지를 거론한다.

첫 번째가 곧 풍자적인 문학이다. 풍자 문학은 현실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풍자 문학은 단순한 부정에 머무른다는 한계가 있다. 두 번째가 곧 비가적[elegiac]인 문학이다. 비가적 문학은 상실한 아름다움을 한탄하지만 그것을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 속으로 밀어 넣는 한계를 지닌다. 세 번째가 목가적인 문학인데 이는 이상의 세계가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근대 성찰 문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가 여기서 출현한다.

그러나 쉴러의 이런 시도는 고대 문학의 아름다움으로 근대 문학을 재단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런 기준으로 재단되지 않는 다양한 근대 문학을 설명할 가능성을 결여한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고대 미학의 품 안에 머무르는 쉴러에 반발하면서 근대 문학의 미학적 기준을 고대 미학의 기준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시도를 전개했다.

 

3)

슐레겔은 고대 문학과 비교되는 근대 문학을 정립하기 위해, <그리스 문학 연구>[2]라는 책을 서술했다. 슐레겔이 이 책 초판을 작성할 당시 쉴러의 논문 <소박 문학과 성찰 문학>이라는 논문을 읽지 못했다. 그는 발간하기 전 쉴러의 논문을 읽고 책의 서문에서 쉴러의 논문을 평가한다.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유사한 부분을 발견하면서도 쉴러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슐레겔의 사유는 순환론적인 관점을 취한다. 그에게서 역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교차되어 있어서, 고대의 끝에 근대가 시작하며, 근대의 끝에 다시 고대의 출발점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인식론적으로는 서로 대립하는 감성과 이성은 서로 교차한다. 감성은 이성을 향하고 이성은 다시 감성을 향해 간다. 미학적으로도 고대 문학과 근대 문학, 발견(모방)의 본능과 구성의 충동이 대립하면서 서로를 향해 나간다.

고대 문학은 무질서하고 자연의 맹목적인 운명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현실 속에서 조화의 질서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이를 통해 아름다운 그리스 고전예술작품이 출현했다. 그 정점에 있는 아테네 비극이 있다.

이 과정은 자연 스스로의 자발적인 운동을 통해 전개되므로 슐레겔은 이를 자연문학이라 한다. 그리스 문학은 비극을 넘어서 나갔으며 그 결과 고전시대 말기 즉 헬레니즘 시대에는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 문학 즉 희극이 출현했다.

슐레겔에 따르면 근대 문학은 인위적인 문학이다. 이 문학은 세계를 구성하려는 충동에서 나온다. 근대의 구성적 충동은 처음 감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흥미로운 문학으로 출현했다. 흥미로운 문학은 고대 문학의 말기에 등장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문학과 외형적으로는 유사하지만 미학적으로는 새로운 전환이 일어났다. 흥미를 추구하는 문학은 중세 말기 셰익스피어의 특징성(성격)의 문학에서 정점에 이른다.

구성의 충동은 흥미로운 것을 넘어 나간다. 구성 충동은 사회적인 자유가 현실적으로 실현되는 이상을 향해 나가며, 이를 통해 괴테의 작품에서 보는 것과 같은 객관적(도덕적) 미학이 성립한다.

슐레겔 자신은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객관적 미학은 다시 해체되면서 그 끝에 맹목적 운명을 인정하는 문학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는 다시 고대 문학의 출발점이 된다.

슐레겔은 고대 문학과 근대 문학을 대립하면서도 교차 시킴으로써 고전주의 미학의 탁월성을 인정하면서도 근대 낭만주의 문학의 가능성을 살리려 하였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고대 문학의 도달점에 개인의 자유를 설정하면서, 고대 문학을 근대적 관점에서 파악한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고대적 개인은 어디까지나 민족적 실체를 대변하는 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4)

쉴러가 근대 문학작품을 고대 미학의 기준으로 파악한다면, 슐레겔은 근대 미학을 가지고 고대 문학작품을 해석한다. 이런 착잡한 논쟁 가운데 괴테는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한편으로 쉴러와 교제하면서, 고전주의를 옹호하였지만 다른 한편 마이어와 교제하면서 역사적 관점을 미학의 영역에 끌어들인다.

헤겔 <미학강의> 서문에서 헤겔은 예술사가인 마이어[Johann Heinrich Meyer]를 거론하는 가운데, 히르트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듯이 히르트를 소개한 후, 마이어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히르트[Aloy Hirt][3]는 헤겔이 존경을 바치는 베를린 대학 동료 교수이다.

헤겔에 따르면 히르트는 이렇게 주장한다. “[예술작품에서] 표현양식 상의 모든 특수자는 내용의 특정한 묘사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극시에서] 본격적 내용으로서 특정한 행위와 직접적으로 관계 맺지 않는 것은 배제되어야 한다.”

헤겔은 이렇게 히르트를 소개한 다음, 다시 마이어[4]의 주장을 소개한다. 헤겔은 괴테가 마이어와 같은 주장을 한다고 하면서 그 주장의 핵심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예술작품의 경우 우리는 우리에게 직접 현시된 것에서 출발하며 그런 다음 비로소 그 의미나 내용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전자의 외면성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가치를 가지지 못하며, 오히려 우리는 외적 현상에 영혼을 부여하는 하나의 내면성, 하나의 의미를 여전히 그 배후에 상정한다.”

여기서 마이어의 주장은 헤겔에 의해서 예술은 상징의 예에서나 우화의 예에서 보듯이 예술작품은 현상으로서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으로 파악된다.

 

5)

히르트의 특징성을 지닌다는 주장과 마이어의 의미성을 지닌다는 주장은 헤겔에 따르면 서로 다르지 않은 주장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사실 상당히 다르게 보인다.

원래 히르트의 주장은 원래 미의 범위를 이상적인 것에 제한하려는 의도에서 제시된 것이다. 이상화에 철저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이고 우연적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빙켈만 이래로 고대 예술의 가장 기본적 원칙으로서, 빙켈만이 히르트에게 준 영향을 보여준다.

그런데 특징적이란 곧 ‘가장 적합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이 주장은 ‘의미한다’는 주장으로 전환된다. 왜냐하면 어떤 것에 적합한 것은 자기를 넘어서 다른 것을 지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예술작품은 매우 포괄적이 된다. 즉 예술작품은 그리스 예술처럼 이상화된 것 즉 아름다운 것만 것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추한 것도 포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추한 것 역시 하나의 의미를 가장 적합하게 지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그 밖에도 희화적 요소는 나아가 왜곡된 것으로서 추한 것의 특징으로서 나타난다. 추한 것은 나름대로는 내용에 비교적 밀접하게 관계하므로 특징성의 원리에서 추한 것과 추한 것의 표현도 역시 근본 규정으로서 수용된다고 이야기될 수 있다.”

특징적인 것이 이처럼 하나의 기호로서 파악된다면, 여기서 고전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진다. 이제 각 시대에 고유한 특징적인 것이 출현할 수 있으며, 그리스 시대 아름다운 것이 특징적인 것이었듯이 근대에 이르게 되면 추한 것이 특징적인 것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이어는 히르트의 고전주의를 이어받으면서도 미학의 역사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마이어는 이런 역사적 관점에서 그의 선구자인 빙켈만이 그리스 예술작품을 시대적으로 잘못 분류했던 점을 지적한다. 그는 빙켈만 전집을 발간하는데, 주석을 통해 빙켈만의 오류를 수정한다.[5] 헤겔의 미학은 한마디로 말해 역사적 미학이니, 헤겔 미학의 출발점은 마이어의 미학적 사유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1] 그 제목은 다음과 같다. <소박한 것에 관하여>(1795. 11), <감상 시인에 관하여>(1795. 12), <소박 및 감상 시인에 관한 논문의 결론>(1796)

[2] 슐레겔은 이 책을 1795년 작성했으나 출판은 1797년 이루어졌다. 이 책은 본래 계획된 것의 서론에 해당하며, 그 본론은 작성되지 못했다. 1822년 슐레겔은 자신의 전집을 발간하려는 가운데 위의 책을 수정하여 재판으로 발간하였다. 재판은 표현의 변경과 부연 설명에 주력했다.

[3] 히르트는 원래 수도원 교육을 받았고 비엔나 대학에서 고전을 연구하다, 1782년 로마로 갔다. 거기서 그는 빙켈만의 저서를 읽은 후 고전 예술로 방향을 돌려 고전 예술을 연구했다. 그는 1796년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침략 이후 로마를 떠나 베를린으로 가서 프리드리히 2세의 예술 고문이 되었다. 그는 1809년 고대의 원리에 따른 건축술이라는 저설르 발표하여, 신고전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는 1810년 베를린대학 창립에 관여했으며 그 후 베를린 대학 예술사 및 고고학 교수로 있으면서 또 건축 아카데미를 창립했으며, 이를 통해 쉰켈 등과 같은 신고전주의 건축가를 길러냈다. 헤겔은 그를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도 진정한 예술감정가 중 하나이다”라고 평가한다.

[4] 마이어 취리히에서 예술가 도제수업을 받던 중, 화가였던 퓌슬리로부터 빙켈만의 저서를 소개받는다. 그는 미술사를 연구하기 위해 1784년 로마로 가며, 1786년 괴테가 로마에 도착하자 만나서 평생에 걸친 친구가 된다. 1791년 괴테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로 가서, 장식 연구가로서 활동한다. 그는 1798년 괴테와 더불어 잡지 <프로필레엔[prophylaen: 열주]>을 발간하면서, <조형 예술의 대상에 관해서>라는 글을 발표한다. 그는 여기서 예술사적인 관점 즉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던 당대의 취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1816년 새로운 잡지 <예술과 고대>라는 잡지에 그는 18세기 예술의 역사를 서술했다. 그는 1809-1811년 사이 바이마르 궁정에서 했던 강의를 토대로 1824년 <예술사> 1,2권을 발표했으며 그의 사후 1836년 3권이 발간되었다.

[5] 헤겔은 그리스 조각 작품을 논하면서 라오쿤을 설명한다. 라오쿤은 빙켈만이 그리스 예술의 전성기에 속하는 전형으로 파악했던 작품인데, 헤겔은 이는 명백히 후대 매너리즘 시대에 등장한 작품이라 본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정교하고 우아하기 때문이다. (이창환 역, 미학강의 2권, 470쪽) 반면 헤겔은 그리스 조각의 전형은 빙켈만의 표현대로 고요함과 단순함을 지닌 것으로 본다. 헤겔의 이런 평가는 분명 마이어의 주장으로부터 배운 것으로 보인다.   

헤겔 미학 산책2-예술의 과거성 테제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 산책2-예술의 과거성 테제

 

1)

헤겔 미학과 관련해 가장 뜨거운 논제는 예술의 과거성 테제일 것이다. 헤겔은 미학강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 예술의 아름다운 시절과 중세 후기의 황금시대는 사라졌다[sind voruber].” (미학강의1, 30쪽)[1]

“최상의 규정이라는 면에서의 예술은 우리에게 과거의 것[Vergangenes]으로 존재하며 또 그렇게 남아 있다. 이로써 예술은 우리에 대해 진정한 진리와 생명성도 역시 상실했으며[verloren], 예전의 필연성을 현실 속에서 주장하여 한층 높은 지위를 점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표상 속으로 그 자리를 옮겼다.”(미학강의1, 30쪽)

 

이런 구절에서 헤겔은 ‘사라졌다’ ‘과거의 것’ ‘상실했다’는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소위 예술의 과거성[vergangen] 테제가 출현하게 되었다. 예술의 과거성 테제는 고전주의 시대인 그리스 예술작품에서 미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고전주의의 미적 작품은 예를 들어 그리스 조각 작품에서 보듯이 예술의 내용인 이념을 이상화 된 감각적 현존을 통해 표현한다. 이렇게 이상화 하는 가운데 고전적인 아름다움 즉 조화와 비례가 갖추어진다. 이 조화나 비례는 아름다움의 정점이었다.

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작품은 예술의 퇴락이다. 낭만주의 예술작품 가운데 인정할 만한 게 있다면 고전주의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자면 르네상스 시절의 종교화나 괴테의 고전주의적 작품이 그렇다. 그 외에는 뭐 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성 테제는 예술의 시대는 그리스 고전주의 이후 지나갔다고 주장한다. 

 

2)

이 과거성 테제는 헤겔 미학 강의 텍스트 자체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했다.[2] 이 논쟁에서 핵심은 위에서 언급한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과거성 테제를 찬성하는 사람은 곧 헤겔이 그리스 예술을 이상화하는 고전주의자라고 보고 위의 말을 과거성 테제로 해석한다.[3]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헤겔의 위의 말은 헤겔 미학을 편집한 편집자 호토의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과거성 테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힘들다. 굳이 낭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중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의 탁월함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헤겔 역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네델란트 풍속화를 칭찬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으며, 더구나 회화나 음악, 시문학은 낭만주의적 예술 장르라고까지 주장한다. 중세 이후 낭만주의 예술을 부정한다면, 지금 남아있는 대부분의 고전과 핵심적 예술 장르를 버려야 할 지경이다.

 

3)

호토가 헤겔을 왜곡했는지는 제쳐두고 위에서 언급된 ‘지나갔다’는 헤겔의 발언조차도 엄밀하게 살펴보면, 과거성 테제로 해석하기 어렵지 않을까? 위의 구절에서 ‘최상의 규정이라는 의미에서의 예술’이 사라졌다고 할 때, ‘최상의 규정’이라는 말의 의미가 문제가 된다. ‘최상의 규정으로서 예술’은 고전주의 미학자들이 믿듯이 그리스 예술이 인류의 최고 예술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과거성 테제가 출현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말은 절대정신을 대변하던 예술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헤겔은 그리스 시대는 예술이 종교나 철학을 제치고 절대정신을 대변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판단의 구체적 근거로 그리스 신화조차도 호머의 서사시를 통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렇게 본다면 과거성 테제는 예술이 절대정신을 대변하던 그리스 시대가 지나갔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후 그리스 시대보다 더 탁월한 예술이 나오기도 했지만 절대정신을 대변하는 자격에서 예술은 이제 철학에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리스 시대, 예술이 절대정신을 대변하는 이유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헤겔은 이 시대 예술의 내용이 되는 신은 곧 민족신이라고 규정한다. 민족신은 그 이전 자연신의 단계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아직 각 민족에게 고유한 개별적 신이다. 개별적이라는 것은 곧 감각적인 것과 같은 말이니 헤겔은 그리스 신이 개별 신이기에 외적인 감각적 현상으로 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신 자신이 민족신으로서 감각적으로 현상하므로 감각성에 머무르는 예술이 이 시대에 종교를 제치고 지배적인 절대정신이 된다. 하지만 이런 민족신을 이해하는 데 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철학이 아니라 예술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한다는 주장이다. 비유하자면 산수 정도는 초등학생이 가장 잘한다는 뜻이다.

 

4)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낭만주의 시대에도 예술이 여전히 ‘진리와 생명성’을 주장하려면 이 시대 예술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 문제가 헤겔의 미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이 시대 예술은 근본적인 난관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헤겔의 역사관에서 중세 이후 근대까지 이어지는 주관성의 시대이다. 이 시대 예술이 곧 낭만주의 예술인데 낭만주의 예술의 내용이 되는 것은 유일하며 보편적인 기독교 신이다. 그 신은 감각적 현실을 초월하는 신이다. 이 신은 우상숭배금지의 원칙에서 보듯 자신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신이다.

초월적 유일 보편 신을 어떻게 감각적 예술을 통해 표현할 수 있을까? 헤겔이 낭만주의 예술의 특징을 특징성에 두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특징성란 곧 셰익스피어의 희극의 주인공이 지닌 것과 같은 권력욕(맥베스) 질투(오델로) 등 주관적 성격을 말하는데, 이런 특징성 자체가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특징성이 예술의 원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추가 예술의 원리가 된다는 주장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추가 예술의 한 요소는 몰라도 기본 원리로 인정되기는 어렵다.[4]

설혹 괴테나 실러의 고전주의적인 작품에서 보듯이 그리스적 예술작품의 흉내를 내더라도, 우선 우수꽝스럽다. 미켈란제로가 예수의 모습을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의 모습으로 표현했을 때 생각해 보라. 그리고 낭만주의적 인물이 기독교적 신을 표현하는 한에서는 여전히 우상숭배 금지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니, 아마도 후일 성상 파괴 운동에서 보듯이 교도의 도끼 아래 파괴되고 말지 않을까?

그렇다고 예술이 감각을 떠나 개념을 사용하거나 불립문자와 같은 방식으로 수수께끼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 않을까?

 

5)

헤겔은 낭만주의가 표현하는 신이 초월적 신일뿐만 아니라 인격신이라는 데서 모든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인격신이라는 말은 곧 신이 우리 눈앞에 자신을 직접 계시한다는 말인데, 계시된 신의 존재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신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무상의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은 그가 곧 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의 탄생과 죽음은 신의 인격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기서 감각적 예술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즉 낭만주의 시대 예술은 신의 인격성과 마찬가지로 감각적 현상이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헤겔은 이를 곧 가상이라 규정한다.[5] 낭만주의 예술의 근본적 원리는 바로 감각적 가상이다.

헤겔은 예술은 이념의 가상이라고 규정하는데, 이 가상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낭만주의 예술에 와서이다. 이집트 예술은 신을 수수께끼와 같은 상징으로 표현한다. 그리스 신은 이상화 된 현상으로 출현한다. 낭만주의 시대 신은 자기 부정이라는 가상을 통해 출현한다. 예술의 개념 즉 이념의 가상이라는 개념은 상징과 현상을 거쳐 가상에 이르러 자기를 실현한다. 그러니 헤겔에서 예술은 고전주의가 아니라 낭만주의에서 완성된다고 하겠다.

 

5)

예술이 낭만주의에 와서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예술이 낭만주의 시대 절대정신에 대한 유일한 표현이거나 최고의 표현은 아니다.

인격신은 가상을 통해 표현되더라도, 감각적으로 표현되는 한 한계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예수의 탄생과 죽음은 사실 신이 현현하는 모습인데, 인간의 눈에 그저 자연적인 탄생과 죽음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서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경우이다. 헤겔이 예술이 ‘진리와 생명성을 상실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감각성이 지닌 이런 한계를 뜻한다. 

그러므로 낭만주의 시대에 헤겔은 인격 신을 표현하는 절대정신의 대변자로서 자격을 철학에 넘겨준다. 철학은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자기반성적인 사변적인 개념을 통해 인격 신을 표현할 수 있다. 이제 심지어 예술은 진리를 알고 있는 철학의 반성 대상이 되어 그 자리를 앞에서 인용 귀절에서 말했듯이 ‘표상 속으로 옮기니’ 여기서 ‘예술에 대한 학문’으로서 미학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이 죽은 왕의 후궁처럼 구중 궁궐에 숨어 지내야 한다 말은 아닐 것이다. 우선 철학이 인격신을 사변적으로 표현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변적 개념에 기초한 철학은 헤겔 철학에 와서야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 추상적 사유에 기초한 철학 즉 근대철학보다는 차라리 예술이 낫다. 왜냐하면 예술은 비록 한계는 가지지만 가상을 통해 인격신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변철학이 등장하여 인격신을 표현하더라도, 이런 사변철학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다. 헤겔이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말했듯이 사변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중들에게 사변철학보다는 예술이 훨씬 쉽게 인격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그렇다면 낭만주의 시대 끝에 이르러 사변철학이 등장하고 마침내 인격신의 비밀이 대중적으로 폭로된다면 예술은 어떻게 되는가? 헤겔은 낭만주의 예술형식의 발전 끝에 예술 자체의 종언을 제시한다. 이것은 흔히 과거성 테제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른 논제이니 추후 살펴보기로 하자.


[1] 헤겔, 미학 강의 1, 이창환 역, 세창, 2020

[2] 헤겔은 1818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미학을 처음 강의한 이후, 베를린 대학에서 1821 겨울, 1823년 1826년 1828년 겨울 네 번에 걸쳐 강의했으나 자신의 강의를 출판하지 못하였다.

1831년 헤겔 사후, 헤겔 강의록 출판의 흐름 속에서 헤겔의 미학강의도 출판되었다. 미학강의는호토[H. G. Hotho]가 처음으로 1835년 편집하여 불멸자의 친우판 전집으로 발간했고 1842년 개정했다. 호토는 헤겔 자신의 베를린 시대 23년 강의 수고와 자신의 필기록을 대조하여 편집했다.

20세기 초 헤겔 부흥운동 중 1911년 이후 라슨 판 전집이 발간되는 가운데 라슨이 1931년 미학강의를 재편집하였다. 라슨은 1826년 강의의 필기록을 참조로 하여 호토의 판을 살펴본 결과, 호토가 생략하거나 표현을 왜곡한 부분이 다수 발견되어 재편집하였으나, 서문과 1부의 발간에 그쳤다.

그 이후 이어지는 헤겔 전집에서는 즉 70년대 수어캄프 판이나 펠릭스 마이너판까지 모두 호토판에 기초하였다. 1971년 부브너[R. Bubner]는 호토판을 불신하면서 라슨이 편집한 것을 재편집하여 미학강의를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안네마리 게트만 지페르트는 호토 판을 불신하면 강의 필기록에 기초하기를 주장했다. 니콜라스 헤빙[Nicholas Hebing]이 편집하여 2015년 발간된 헤겔 서고 판(펠릭스 마이너 출판사)은 제목조차 미학 강의가 아니라 예술철학 강의[Vorlesungen ueber die philosphie der Kunst]로 바꾸었고, 호토의 편집을 불신하고 강의 필기에 기초하여 편집조차 21년(미학), 23년(예술철학), 26년(예술철학). 28년(미학) 강의록이라는 방식으로 전개했다. 

현재 한국에서 번역된 두행숙 번역판(나남, 1996)이나 이창환 번역판(세창, 2022)은 모두 1970년 발간된 수어캄프 판 미학강의를 번역한 것이다. 헤겔의 강의 필기록은 개별적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서정혁은 미학강의-베를린 1820/21(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한동원은 헤겔 예술철학(미술문화, 2008), 권정임은 헤겔 예술철학 1826년 강의(세창, 2023)을 출판했다.

[3] 이 논쟁에서 최근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을 들라면 G. S 안네마리를 들 수 있겠다. 그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호토판 미학강의는 헤겔을 왜곡했다. ②여기서는 헤겔을 고전주의자로 간주하면서, 고전주의 예술작품에서 미의 이상은 완성되었다고 본다. ③중세 이후 고전적 이상의 잔재가 남아 있으니 르네상스 종교화와 고전 음악 정도이다. ④중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작품은 특징적인 것에 몰두하는데 이는 미적 이상으로부터의 후퇴이다.

안네마리는 호토판 헤겔미학을 혹독하게 평가하면서, 헤겔의 미학강의에 관해서는 학생들이 남긴 필기록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1826년 강의 필기록에 주목하는데, 이에 따르면 헤겔의 미학적 관점은 앞에서 제시된 것과 전혀 다르다.

①고전주의 시대 예술이 표현하려는 절대정신은 민족신이었으나, 낭만주의 시대 절대정신은 기독교적 신 즉 내재하는 신이다. ②헤겔 미학에서 상징주의, 고전주의, 낭만주의는 이념이 현존하는 방식의 차이를 주장한다. 각각에 고유한 미적 이상이 존재한다. ③고전주의는 미적 이념이 아름답게 현존하는 방식을 말한다. 낭만주의에서 미적 이념은 이념과 감각적 현존이 불합치하는 추의 방식으로 출현한다. ④구체적으로는 예를 들어 쉴러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윤리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좌절되면서 범죄자로 전락한다.

[4] 그러나 헤겔에서 낭만주의 예술 형식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호토의 헤겔 미학강의가 왜곡되었다고 비판하는 안네마리조차도 이 점에서 분명하지는 않다. 그는 고전주의가 아름다운 감각적 현존을 제시했다면 낭만주의 예술형식은 추의 형식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무엇이 예술에서 추일까? 안네마리는 미가 이념과 감각적 형식의 조화, 합치라고 한다면, 추는 이념과 감각적 형식 사이의 부조화라고 한다. 하지만 이념이 어떤 형식이라도 갖는다면, 미와 추를 논할 수 있겠지만, 기독교 신은 이념은 아예 감각적 형상화가 거부되니, 무엇이 미이고 추인지를 알 수 없다. 

중세 고딕 신상을 보면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은 왜곡되고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절 신의 모습은 그리스 조각상처럼 이상화되어 있다. 전자가 낭만주의 예술이라면 후자는 낭만주의 예술이 아니란 말인가?

[5] 가상[Schein]이나 현상[Erschein]이나 똑 같이 빛난다[scheinen]는 말에서 나온다. 하지만 현상은 직접적인 것에 머무르며, 가상은 자기부정적인 것이다.


» 다음 글: 헤겔 미학 산책 3-고대예술과 근대예술 논쟁

헤겔 미학 산책 1-미에 관한 철학이 가능한 것일까?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미학 산책 1-미에 관한 철학이 가능한 것일까?

 

1)

헤겔은 미학강의 서문에서 들어가자 마자, 미학이라는 학1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지금 대학에 미학과가 있으니 굳이 그 가능성을 문제 삼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미와 유사한 멋이나 맛의 학문이 가능할까? 물론 맛의 기술과 멋의 디자인이 전공[discipline]으로서 가르쳐지고 있으니, 학문이 아니라 할 수는 없지만, 헤겔에게 물어보았다면 아마 맛과 멋의 학문은 없다고 했을 것이다. 왜 헤겔은 멋이나 맛에는 학문이 성립하지 않지만 미에는 학문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2)

헤겔은 미학이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두 가지를 거론한다. 우선 예술은 생존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 맛과 멋처럼 일종의 잉여라는 주장이다. 예술은 진지함이 결여된 유희, 오락에 가까우니, 이를 위해 학문적 연구의 노고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우선 예술이 쓴 약에 감초를 넣듯이 예술이 감성과 경향성을 통해 이성과 의무의 부담을 덜어주니 그런 봉사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대표적으로 쉴러 같은 철학자는 예술은 진리를 감성적인 것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했다. 헤겔은 그런 주장이 못마땅하다. 헤겔이 보기에 이는 이성과 의무가 지닌 순수성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헤겔은 예술이 유희나 오락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예술의 신성함을 옹호한다. 즉 종교나 철학과 마찬가지로 절대정신에 속하는 등근원적인 것이라 한다. 예술은 절대정신의 감각적 현존으로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만 종교와 철학과 차이를 가질 뿐이다.

절대정신의 표현 방식에서 시대에 따라 예술, 종교, 철학 가운데 어느 하나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그리스 시대 절대정신은 주로 예술을 통해 표현되었으니, 그리스 신화는 헤시오도스와 호머의 예술작품을 통해 창조됐으며 철학은 아직 예술의 생동성과 풍요로움을 따라갈 수 없었다.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게 되면 예술은 기꺼이 장식이 되고, 오락과 유희가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헤겔은 예술에 너무 과도한 가치를 부여했을지 모르겠다. 반면 모더니즘 예술가들은 예술이 그 자체로 사회의 혁명이며 인류의 구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을 신성시했다. 반 고흐의 예에서 보듯이 그들은 예술을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내던지기도 했으니 헤겔의 주장에 눈물지을지 모르겠다.

헤겔은 왜 예술에 절대정신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을까? 절대정신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점은 문제로만 제기하고, 미학이 불가능하다는 두 번째 주장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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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주장은 미학이 필요하더라도 다루어지는 대상의 성격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미적 작품은 공통적으로 감각적 질료적 성격을 가진다는 데서 나온다.

예술작품에는 이런 성격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건축이나 조각 회화 음악은 물질적 수단을 이용하니 말할 것도 없다. 비물질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문학도 추상적인 것을 지칭하는 개념적 언어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지칭하는 감각적 언어가 사용된다.

예술작품의 질료가 되는 감각적 자연은 개별적이며 우연적으로 움직이다. 더구나 예술 작품은 자연적 산물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롭게 산출되는 판타지로 가득 차 있다. 판타지는 자의적이니, 어떤 법칙적 규제도 이성적 목적에서도 벗어난다. 이런 예술작품에서 학문의 기초가 되는 규칙적인 것이나 합목적적인 것을 찾으려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까? 그러니 예술작품은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서 자격 자체를 갖지 못하지 않을까?

사실 예술에 관한 많은 담론은 그저 주변적인 사실에 대한 소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언제 누가 어떤 동기로 이 작품을 만들었고, 누구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고, 뒤에 어떤 영향을 남겼다고 얼마에 팔린다는 둥, 자질구레한 사실을 많이 알수록 훌륭한 비평가로 행세하는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약간의 주관적 감상이 덧붙여지는데, 좋았다는 감탄을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하는가가 훌륭한 비평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헤겔은 예술작품이 감각적 질료를 가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미학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예술 작품의 감각적 질료는 예술의 내용인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형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경험적 실재인 자연산물과 같이 직접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우연과 혼돈의 지배 아래 있겠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자기 스스로를 통해서 자기를 부정하면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가상2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예술작품의 가상성은 하나의 암시에 지나지 않으며 표면적으로 작품의 감각적 질료적 성격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예술작품은 항상 수수께끼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그럼에도 예술작품은 어떤 경우라도 이런 암시가 감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가상이다.

역설적이지만 헤겔은 예술작품의 가상성 때문에 미학의 가능성이 펼쳐진다고 본다. 예술작품의 자기 부정성을 통해 진리인 절대정신이 드러나니, 이를 통해 예술작품은 우연성을 벗어나 필연성으로, 경험적 실재를 넘어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예술작품이 단순한 감각적 자연이나 판타지가 아니라 자기 부정적인 가상이므로 오히려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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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헤겔은 예술작품을 역사와 비교한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 속에는 역사의 의미 즉 시대정신이 드러나 있다. 마찬가지로 감각적 예술작품에는 작품의 의미 즉 절대정신이 드러난다.

동시에 헤겔은 두 가지를 엄밀하게 구별한다. 역사의 경우 예를 들어 나폴레옹에게서 보듯이 구체적 사건을 일으키는 행위자는 자기 행위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는 권력욕에 사로잡혀 행위 했을 뿐이다. 그 행위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적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에서 작가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자각적으로 노력한다. 그는 자기 작품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의 의미를 새겨놓는다. 그 때문에 작품은 가상성을 띠게 되는데, 관객이나 독자는 작품의 감각적인 측면을 따라가더라도 그 작품 속에 놓여 있는 작가의 암시에 따라서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작가가 작품 속에 어떻게 그런 암시를 새겨놓는가 하는 방식이 곧 장차 미학이 다루어야 할 대상이다. 이런 방식이 곧 예술작품의 역사적 형식과 장르의 개념을 이룬다. 헤겔의 미학 강의는 곧 이런 역사적 형식과 장르의 개념을 전개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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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정신과 가상성이라는 두 개념은 헤겔 미학의 핵심 개념인데, 미학의 가능성을 설명하다 어느덧, 헤겔 미학의 기본 개념을 언급하게 되었다. 그 의미는 앞으로 상세하게 다루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오늘날 미학의 불가능성이라는 테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간략하게 언급하기로 하자.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은 미학의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를 헤겔 당시보다 더 심각하게 제시한다. 헤겔 당시에는 진리나 가치의 인식 자체가 부정된 적은 없다. 하지만 오늘날 후기구조주의의 등장 이후 진리나 가치의 인식 자체가 회의되고 있다. 미의 영역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진리나 가치가 사라졌으며, 예술은 기꺼이 오락이 되고 여흥이 되었다. 예술은 삶의 풍요한 잉여가 되기를 지향한다. 예술은 상품화되었다. 이런 사태 앞에서 미의 가치를 논하고 미와 진리의 관계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해진 것이 아닐까?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 전성기를 누린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늘날 후퇴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자체가 위기에 부딪히면서 다시 진리와 가치에 대한 열망이 되살아나고 예술을 신성시했던 모더니즘이 부활한다. 이런 흐름에서 본다면 헤겔의 미학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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