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미학 산책 1-미에 관한 철학이 가능한 것일까?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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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미학 산책 1-미에 관한 철학이 가능한 것일까?

 

1)

헤겔은 미학강의 서문에서 들어가자 마자, 미학이라는 학1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지금 대학에 미학과가 있으니 굳이 그 가능성을 문제 삼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미와 유사한 멋이나 맛의 학문이 가능할까? 물론 맛의 기술과 멋의 디자인이 전공[discipline]으로서 가르쳐지고 있으니, 학문이 아니라 할 수는 없지만, 헤겔에게 물어보았다면 아마 맛과 멋의 학문은 없다고 했을 것이다. 왜 헤겔은 멋이나 맛에는 학문이 성립하지 않지만 미에는 학문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2)

헤겔은 미학이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두 가지를 거론한다. 우선 예술은 생존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 맛과 멋처럼 일종의 잉여라는 주장이다. 예술은 진지함이 결여된 유희, 오락에 가까우니, 이를 위해 학문적 연구의 노고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우선 예술이 쓴 약에 감초를 넣듯이 예술이 감성과 경향성을 통해 이성과 의무의 부담을 덜어주니 그런 봉사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대표적으로 쉴러 같은 철학자는 예술은 진리를 감성적인 것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했다. 헤겔은 그런 주장이 못마땅하다. 헤겔이 보기에 이는 이성과 의무가 지닌 순수성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헤겔은 예술이 유희나 오락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예술의 신성함을 옹호한다. 즉 종교나 철학과 마찬가지로 절대정신에 속하는 등근원적인 것이라 한다. 예술은 절대정신의 감각적 현존으로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만 종교와 철학과 차이를 가질 뿐이다.

절대정신의 표현 방식에서 시대에 따라 예술, 종교, 철학 가운데 어느 하나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그리스 시대 절대정신은 주로 예술을 통해 표현되었으니, 그리스 신화는 헤시오도스와 호머의 예술작품을 통해 창조됐으며 철학은 아직 예술의 생동성과 풍요로움을 따라갈 수 없었다.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게 되면 예술은 기꺼이 장식이 되고, 오락과 유희가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헤겔은 예술에 너무 과도한 가치를 부여했을지 모르겠다. 반면 모더니즘 예술가들은 예술이 그 자체로 사회의 혁명이며 인류의 구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을 신성시했다. 반 고흐의 예에서 보듯이 그들은 예술을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내던지기도 했으니 헤겔의 주장에 눈물지을지 모르겠다.

헤겔은 왜 예술에 절대정신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을까? 절대정신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점은 문제로만 제기하고, 미학이 불가능하다는 두 번째 주장을 살펴보자.

 

4)

두 번째 주장은 미학이 필요하더라도 다루어지는 대상의 성격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미적 작품은 공통적으로 감각적 질료적 성격을 가진다는 데서 나온다.

예술작품에는 이런 성격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건축이나 조각 회화 음악은 물질적 수단을 이용하니 말할 것도 없다. 비물질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문학도 추상적인 것을 지칭하는 개념적 언어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지칭하는 감각적 언어가 사용된다.

예술작품의 질료가 되는 감각적 자연은 개별적이며 우연적으로 움직이다. 더구나 예술 작품은 자연적 산물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롭게 산출되는 판타지로 가득 차 있다. 판타지는 자의적이니, 어떤 법칙적 규제도 이성적 목적에서도 벗어난다. 이런 예술작품에서 학문의 기초가 되는 규칙적인 것이나 합목적적인 것을 찾으려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까? 그러니 예술작품은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서 자격 자체를 갖지 못하지 않을까?

사실 예술에 관한 많은 담론은 그저 주변적인 사실에 대한 소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언제 누가 어떤 동기로 이 작품을 만들었고, 누구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고, 뒤에 어떤 영향을 남겼다고 얼마에 팔린다는 둥, 자질구레한 사실을 많이 알수록 훌륭한 비평가로 행세하는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약간의 주관적 감상이 덧붙여지는데, 좋았다는 감탄을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하는가가 훌륭한 비평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헤겔은 예술작품이 감각적 질료를 가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미학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예술 작품의 감각적 질료는 예술의 내용인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형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경험적 실재인 자연산물과 같이 직접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우연과 혼돈의 지배 아래 있겠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자기 스스로를 통해서 자기를 부정하면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가상2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예술작품의 가상성은 하나의 암시에 지나지 않으며 표면적으로 작품의 감각적 질료적 성격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예술작품은 항상 수수께끼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그럼에도 예술작품은 어떤 경우라도 이런 암시가 감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가상이다.

역설적이지만 헤겔은 예술작품의 가상성 때문에 미학의 가능성이 펼쳐진다고 본다. 예술작품의 자기 부정성을 통해 진리인 절대정신이 드러나니, 이를 통해 예술작품은 우연성을 벗어나 필연성으로, 경험적 실재를 넘어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예술작품이 단순한 감각적 자연이나 판타지가 아니라 자기 부정적인 가상이므로 오히려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5)

이런 점에서 헤겔은 예술작품을 역사와 비교한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 속에는 역사의 의미 즉 시대정신이 드러나 있다. 마찬가지로 감각적 예술작품에는 작품의 의미 즉 절대정신이 드러난다.

동시에 헤겔은 두 가지를 엄밀하게 구별한다. 역사의 경우 예를 들어 나폴레옹에게서 보듯이 구체적 사건을 일으키는 행위자는 자기 행위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는 권력욕에 사로잡혀 행위 했을 뿐이다. 그 행위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적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에서 작가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자각적으로 노력한다. 그는 자기 작품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의 의미를 새겨놓는다. 그 때문에 작품은 가상성을 띠게 되는데, 관객이나 독자는 작품의 감각적인 측면을 따라가더라도 그 작품 속에 놓여 있는 작가의 암시에 따라서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작가가 작품 속에 어떻게 그런 암시를 새겨놓는가 하는 방식이 곧 장차 미학이 다루어야 할 대상이다. 이런 방식이 곧 예술작품의 역사적 형식과 장르의 개념을 이룬다. 헤겔의 미학 강의는 곧 이런 역사적 형식과 장르의 개념을 전개하는 데 있다.

 

6)

절대정신과 가상성이라는 두 개념은 헤겔 미학의 핵심 개념인데, 미학의 가능성을 설명하다 어느덧, 헤겔 미학의 기본 개념을 언급하게 되었다. 그 의미는 앞으로 상세하게 다루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오늘날 미학의 불가능성이라는 테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간략하게 언급하기로 하자.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은 미학의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를 헤겔 당시보다 더 심각하게 제시한다. 헤겔 당시에는 진리나 가치의 인식 자체가 부정된 적은 없다. 하지만 오늘날 후기구조주의의 등장 이후 진리나 가치의 인식 자체가 회의되고 있다. 미의 영역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진리나 가치가 사라졌으며, 예술은 기꺼이 오락이 되고 여흥이 되었다. 예술은 삶의 풍요한 잉여가 되기를 지향한다. 예술은 상품화되었다. 이런 사태 앞에서 미의 가치를 논하고 미와 진리의 관계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해진 것이 아닐까?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 전성기를 누린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늘날 후퇴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자체가 위기에 부딪히면서 다시 진리와 가치에 대한 열망이 되살아나고 예술을 신성시했던 모더니즘이 부활한다. 이런 흐름에서 본다면 헤겔의 미학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다음 글: 헤겔 미학 산책 2-예술의 과거성 테제

  1. 헤겔은 미학이란 용어를 싫어하는 편이다. 미학이란 독일어 ‘Aesthetik’을 번역한 것인데, 이 말은 원래 그리스어 ‘감각’에서 유래한 말이니, 감각학 정도로 번역해야 될 말로 미학을 뜻하기에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헤겔 당시에 그리스어로 아름답다는 καλός이니, 여기서 나온 독일어 Kallistik이란 말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 말은 ‘흠이 없다’는 의미가 강하다는 점에서 헤겔은 반대한다. 헤겔이 원하는 말은 독일어 ‘Philosophie der (schoene) Kunst’이다. 독일어 Kunst는 ‘할 수 있다(Koennen)’에서 나와서 라틴어 ars 즉 기술의 번역어가 되었다. 미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모든 만들어진 것이 미적인 것은 아니므로, 앞에 미라는 말을 덧붙여 미적 기술 즉 예술 schoene Kunst(영어 fine art)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헤겔은 이미 미학이란 말이 굳어졌으니 그냥 그 말을 쓰겠다고 한다. 현재 독일에서는 예술과 관련해 Kunst라는 표현이 광범위하게 쓰인다. 헤겔에서 미적인 것은 정신의 가상(Schein)이니, 헤겔에서 미학은 차라리 가상의 학문(Phiosophie der Scheinen)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2. 가상이라는 개념은 헤겔 미학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가상Scheinen은 빛나다scheinen에서 나온 말이므로 어원상 현상Erscheinen과 유사하다. 둘다 본질이 자신을 드러낸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두 개념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현상은 본질이 드러난 것이지만 그 스스로 직접적인 것으로 존재해서, 본질은 자기 속에 감추어져 있다. 반면 가상은 이런 직접적인 것이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감추어진 본질을 드러내면서 본질로 복귀한다. 상징은 그 자신이 어떤 다른 것을 지시하는 것이다. 만일 비밀스럽게 어떤 것을 상징한다면, 그것은 현상이 될 것이지만 그 상징이 기호가 되어 자신이 상징하는 것이 그 자신 속에서 드러나게 되면, 그것이 곧 가상이다. 미적 작품은 현상이 아니라 가상으로 헤겔이 규정한다는 것, 즉 미적 작품은 본질을 드러내는 기호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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