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미학산책5-예술과 종교, 철학의 등근원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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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미학산책5-예술과 종교, 철학의 등근원성

 

1)

앞에서 절대정신을 공동체 정신 즉 공동체의 단결된 의지로 규정했다. 그런데 이런 절대정신이 예술, 종교, 철학으로 전개되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헤겔의 정신 개념으로 돌아가보자. 헤겔에서 정신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차원이 곧 이론적 인식의 차원이다. 정신현상학에서 의식 장과 이성 장은 이론적 인식을 다룬다. 전자는 개인적 인식을, 후자는 상호주관적인(일반적인) 인식을 다룬다. 두 번째 차원은 실천적 의지의 차원이다. 정신현상학에서 자기의식 장과 정신 장은 실천적 의지를 다룬다. 자기의식 장은 개인적 의지를 다루며, 정신 장은 사회의 일반 의지를 다룬다. 여기서는 개인적 의지의 일반적 의지로의 형성, 도야가 문제된다.

정신은 또 하나의 차원을 가지니, 그것은 곧 자기를 표현하는 차원이다. 인식이나 의지가 출현한다는 것과 그것이 표현된다는 것은 상이한 차원이다. 예를 들어 진리를 인식하더라도 그 인식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이런 구분은 명제와 문장의 차이를 규정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언급된다. 명제는 의미와 관련된다면 문장은 표현과 연관된다. 동일한 의미를 지닌 명제가 다양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실천적 의지에서도 의지의 형성과 그것의 표현은 구분된다. 내가 어떤 욕망을 지닐 경우 나는 그것을 위해 행동한다. 행동은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나는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무관하게 내 마음 속의 욕망을 표현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욕망을 얼굴의 표정 예를 들어 선망의 눈초리나 또는 다리의 비틀린 자세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 이런 표정과 자세도 하나의 행동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런 행동은 욕망을 충족하는 행동과는 구별된 행동이다.

헤겔은 인식의 차원과 의지의 차원과 구분되는 또 하나의 차원 즉 표현의 차원을 가정하면서 절대정신에 이르러 마침내 이런 표현의 차원 자체를 문제 삼는다. 정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기 자신이 세계를 인식하고, 의지를 발휘하면 되지 그것을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대부분 고립적으로 살아가는 동물의 경우 제약된 의미에서 인식하고 의지(본능)를 발휘하지만, 자신의 인식과 의지를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인간의 경우 동물과 달리 매우 복잡한 공동 행동을 취한다. 그런 만큼 자신의 인식과 의지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필연적인 요구일 것이며 그 때문에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표현방식을 발달시킨 것으로 보인다.

타인에게 자기를 알리는 표현이 공동 행동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공동체의 정신인 절대정신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 때문에 헤겔은 절대정신에 이르러 표현의 방식을 문제 삼게 된 것으로 보인다.

 

2)

절대정신은 실천적 의지의 발전 끝에 나온 공동체 정신이며, 국가의 제도적 형식 즉 삼권분립의 체제 속에서 외적으로 실현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예술과 종교, 철학이다.

정신현상학에서는 종교와 철학이라는 두 가지 방식만 제시된다. 종교를 다룰 때 예술종교라는 개념이 나오기는 하지만, 예술을 독자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1818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미학강의가 이루어진 다음부터, 예술이 절대정신의 한 방식으로 포함되는데, 그것을 반영하여 철학전서에 이르러서는 절대정신은 예술, 종교, 철학으로 체계화된다.

이런 표현의 차원은 그 이전 이론적 인식에서나 실천적 의지를 다루는 곳에서는 제기되지 않았다. 헤겔은 마지막 절대정신에 이르러 비로소 정신의 표현이라는 차원을 다루면서 예술과 종교 철학에 대해 논의한다.

예술, 철학, 종교가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하면, 마치 절대정신이 출현하는 이상국가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예술, 종교, 철학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때의 절대정신은 최종적인 실현 결과, 즉 주관적 자유가 인정된 위에서 공동체의 단결된 의지가 출현하는 것이다.

헤겔은 자신의 저서를 항상 목적론적으로 서술하니, 최종적 절대정신은 이미 그 이전의 국가적 형태에서도 부분적으로는 실현된다. 그 이전 정신의 단계서 일정한 사회적 실체를 바탕으로 일정한 실천적 의지가 전개되니, 그런 실천적 의지는 이미 절대정신의 실현이다. 즉 절대정신은 즉자적인 상태에서 즉자 대자적인 상태로 발전한다. 따라서 이미 그 이전 정신의 단계에서도 예술, 철학, 종교가 출현한다고 볼 수 있다.

헤겔이 절대정신의 세 가지 표현방식을 다루는 것은 정신현상학이나 철학전서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이다. 여기서 절대정신은 즉자 대자적인 절대정신을 의미하는데 이는 정신의 발전 끝에 이르러 출현하기 때문이다. 반면 미학강의나 종교철학 강의에서는 예술이나 종교가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다룬다. 여기서는 절대정신을 즉자적인 상태에서 출발하여 발전과정 속에서 서술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헤겔이 체계적으로 서술하는가 아니면 역사적으로 서술하는가 하는 서술 방식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라고 할 수 있다.

 

3)

그렇다면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예술의 방식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절대정신을 감각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여기서는 자신의 정신을 전달하기 위한 외적인 형상화가 필요하다. 절대정신을 감각적 방식으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예술작품이다.

철학은 절대정신을 개념을 통해 표현한다. 이런 개념은 추상적 관념을 토대로 하는 것이지만, 단순히 추상적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자체 내에서 체계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헤겔은 개념이 자기를 전개하는 운동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개념이 자기를 타자화하며 이 타자로부터 다시 자기 내로 복귀하는 과정으로 본다. 헤겔은 개념의 자기 운동으로 규정하였다.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방식 가운데 가장 문제되는 것은 곧 종교이다. 종교는 기도에서 주어지는 것과 같은 순수한 심정의 상태이다. 예술이 차안의 감각적 실재를 통해 절대정신을 표현한다면, 순수한 심정 속에서 절대정신은 심정에 대하여 마치 외부 초월 세계에서 주어지는 것처럼 출현한다. 헤겔은 종교는 절대정신을 표상[Vorstellung][1]을 통해 표현한다고 말한다.[2]

중요한 것은 마치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실재하며 그것이 내적인 심정을 통해 인식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절대정신이 순수한 심정의 상태에 있기에 초월적인 실재로 전도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전도는 이미 포이어바흐가 소외 개념을 통해 잘 설명했지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편집증 환자를 괴롭히는 외부의 박해자가 사실은 자기 내부에서 무의식적으로 출현하는 욕망의 대타자가 전도되어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다.

헤겔은 구체적인 역사적[historisch] 사건을 예로 들고 있다. 그 사건은 곧 예수의 탄생과 죽음이다. 이 단순한 역사적 실재는 기독교적 순수한 심정 속에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감각적 표상으로 된다. 그 결과 이 사건은 종교적으로 신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즉 대속의 역사[Geschichte: 伇事]를 의미하게 된다.

 

4)

정신의 발전과정에서 절대 정신 이전 정신의 다양한 형식 사이에는 발전적 연관이 성립했다. 즉 하나의 정신의 형태는 그 이전 정신의 형태에서 출현한다. 이전 형태는 자기 모순에 부딪히며, 이로부터 자기 내로 반성하여 더 높은 형태의 정신이 출현한다. 이 정신은 이전의 모순을 해결하는 가운데 더 포괄적이며 사태 자체에 더 다가간 객관적 정신으로 된다. 예를 들어 인식에서 지각보다 지성이 더 높은 형태이며, 실천에서 인륜적 정신보다 법적 정신이 더 높은 형태가 된다.

반면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식 즉 예술, 종교, 철학에서도 발전적 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이 세 가지 방식은 동일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니, 그 중 어느 것도 다른 표현 방식에서 모순이 출현하여 그로부터 반성하면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방식은 표현 방식에서 차이는 있더라도 거기에 높고 낮다거나, 좁고 넓다는 식의 우열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술, 종교, 철학은 절대정신과 관계하여 등근원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세 가지 방식이 동일한 내용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니, 어떻게 보면 이 세 가지는 서로 뒤엉켜 있다. 예를 들어 신상은 한편으로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제의나 기도의 대상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근대 세속적 유물론(프랑스 유물론)이라는 철학의 배후에 근대의 개신교적 신앙, 소외된 신이 존재한다.

예술과 종교, 철학은 동일한 절대정신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하는 가운데 동일한 기본 형식 즉 구조를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그 시대 예술을 보면서 종교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고, 거꾸로 그 시대 철학을 통해 그 시대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 헤겔의 이런 생각은 푸코가 동일한 시대의 다양한 학문 속에서 동일한 에피스테메를 찾았던 것과 같다.

각 시대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예술, 종교, 철학은 서로 등근원적인 것이지만, 또한 헤겔은 각 시대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하며 따라서 가장 지배적인 방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집트 시대 절대정신은 종교를 중심으로 한다.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지배적인 절대정신은 감각적인 예술이다. 근대 국가를 극복해서 이상 국가에 이르게 되면 개념적인 철학이 마침내 최고의 절대정신에 등극하게 된다.

물론 어느 시대나 예술과 종교, 철학이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각 시대에 적합한 지배적인 절대정신이 있다. 그 때문에 다른 절대정신은 이런 지배적인 절대정신에 종속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시대 절대정신의 지배적 형식은 예술이며, 종교나 철학은 이런 예술적 표현 속에 함께 녹아 들어 있다. 그 결과 예술적인 조각상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며 그리스 신화 속에서 그 시대의 철학이 함축되어 있다.

한편으로 절대정신의 표현방식이 등근원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적 표현방식이 존재한다는 두 주장은 서로 모순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헤겔에서 절대정신의 세 가지 표현방식은 마치 삼위일체와 같은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각자는 전체이며 동시에 전체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보면 절대정신의 표현방식에 대한 헤겔의 두 주장은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1] 이때 헤겔이 사용하는 표상이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일단은 관념적인 것[심상]과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그 가운데 추상적인 것은 자주 개념으로 표현되고, 구체적인 관념 즉 감각적 관념을 헤겔은 주로 표상으로 지칭한다. 그런데 표상이라는 말에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환상을 의미하는데 헤겔의 종교론에서만 유독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헤겔도 다른 경우에는 일반적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한다.

[2] 종교와 관련된 다음 구절에서 사용된 표상의 개념을 살펴보자.

“이렇듯 정신은 종교의 단계에서는 그 자신을 자기 앞에 표상으로 나타내니[sich ihm selbst vorstellt] 이 단계에서 정신은 사실 하나의 의식의 수준에 머무르다. 따라서 그러한 종교의 틀 안에 포함된 현실이란 그 자신에 대한 표상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며 일종의 옷에 불과하다.”(정신현상학, S. 365)

“절대정신은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형태나 지식을 지양하면서 내용상 자연이나 정신에 있어서 즉자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이다. 형식상으로 보면 절대정신은 일단 표상이라는 주관적 인식에 대해 나타난다. 표상은 그 내용이라는 계기에 한편으로는 자립성을 부여하며, 서로 대립하는 있는 내용적 계기를 전제로 삼아 서로 계기하는 방식으로 현상하게 만들며 유한한 반성적 규정에 따라서 볼 때 역사적 사건이 지닌 연관으로 만든다. 다른 한편 그런 유한한 표상방식이라는 형식을 일정한 정신에 대한 신앙이나 제의에서의 기도 속에서 지양한다.”(철학전서 §565)

“종교가 그 의식의 형식으로서 갖는 것은 표상이니 절대자가 예술의 대상성에서 벗어나 주관의 내면성으로 전이하고 그리하여 가슴과 심정 요컨대 내면적 주관성이 주된 계기가 되게끔 절대자가 주관적 방식으로 표상에 대해 주어져 있는 까닭이다.”

“종교는 절대적 대상과 관계하는 내면의 경건함을 추가한다. “(미학강의 1,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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