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노동이야기]- ⑤
인간의 대지[노동이야기]- ⑤
이 재 원(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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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0년도의 품삯으로 고정되다
아파트 주차장 공사 현장이다. 바닥 슬래브에 이미 기둥(하스라)을 심었다. 양 옆 지상에 노출되는 주차장 거푸집을 완성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공장에서 하스라를 완성한 형태로 가져와서는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제 자리에 심고 난 후 슬래브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남은 부분은 램프(지하 주차장 자동차 길)로, 앞으로의 공사 순서는 다음과 같다. 지상에서 보(하리)와 슬래브를 짜,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완성된 형틀에 이어 짜 맞춘다. 하리와 슬래브를 바닥에서 짜서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다는 발상은 아주 새로운 노동 방식으로, 크레인이 널리 보급되면서 시작되었다. 자재를 일일이 사람이 들어 올려 짜 맞추던 예전 방식에 비해 공기가 무척 단축된다.?
오늘 새벽, 목수 일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 용역에 갔다. 소장이 말했다.?
“십만 원 받고 목수 조공 갈래요? 내일은 팀(목수) 보내 줄 테니 …”
나는 두말 않고 고개를 끄떡였다. 서울 용역에서 철근공이라는 성정동 사람과 나, 둘이서 현장에 ‘팔려’ 나갔다. 철근공은 나이가 많았다. 그는 평생 철근 공을 했으나, 일당 10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그는 ‘늙어서 (누가 써주지 않는다)’라고 했다. 현장에 기존 팀원 7명이 있었다. 현장은 산세 좋고 주변은 탁 트인 남향이었다. 지세가 사람을 편하게 하는가보다. 마음도 쾌적했다. 광 씨가 지휘를 하고, 김 군, 성정동, 나를 포함한 네 명이 하리 통을 짰다. 현장에서 치수 표준은 mm단위이다. 7400길이에 높이 450의 하리 통이다.
ⅰ) 90 각재(오비끼)를 600 길이로 잘라, 900 간격으로 바닥에 배열한다.
ⅱ) 90×50 각재(투바이)를 올려 ⅰ)과 못으로 고정한 후, 이음새를 50×50 각재로 연결한다.
ⅲ) 각 파이프를 1 위에 올려, 움직이지 않도록 파이프 양 옆에 빗 못으로 박아준다.
ⅳ) 400으로 자른 합판을 ⅱ)의 위에 올려, 투바이에 30만 물리도록 작은 못으로 박은 후, 굵은 못(8cm)을 ⅰ)과 ⅱ) 부분에 겹쳐 박는다. 반대쪽도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 때 합판 양 끝 부분을 투바이에서 80이 남도록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 80 부분을 이미 완성된 슬래브 하리에 올려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ⅴ) 눕힌 양 모서리에 45cm×120cm 폼을 7장 올려붙인다.
ⅵ) 3cm 삼각형 멩끼를 ⅳ)의 안쪽 아래, 코너 부분에 박는다.
ⅶ) 패널 아래쪽에 구멍을 뚫은 다음 6번 반생이를 꽂아놓는다. 철근 작업 후 반생이를 조일 것이다.
못 박기 시작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팔목이 아팠다. 오래 일을 안 한 탓에 근육이 놀랬다. 굵은 못이 나뭇굉이에 걸려 잘 들어가지 않았다. 두 손으로 망치질하는데, 성정동이 말했다. “거 뭐야, 두 손으로, 츳…”
괘씸했다. 두 손으로 못 박는 기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손 망치질은 콘크리트 못 등 단단한 곳에 못 박을 때 요긴하다. 이 기술은 절 지으며, 한 자짜리 대못을 함마로 때려 박을 때 익혔다. 두 손으로 망치질 하는 목수는 드물다.
처음에는 김 군을 “애기야”라고 불렀다. 고등학교 막 졸업한 앳된 얼굴이었다. 그러나 곧 출산을 앞 둔 애기아빠였다. ‘애기가 애기를 낳는군.’ 그가 하리 통 밖에서 안으로 손을 넣어 멩끼를 박았다. 그것이 무척 불편한 자세이다. 내가 하리 통 속으로 들어가서 박았다.
그토록 식욕이 당기는 점심은 오랜만이었다. 평소에는 풋내 때문에 잘 먹지도 않던 봄채소 무침(김치)은 달디 달았다. 밥과 생선 두 토막, 국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식사 끝낸 후 현장 불 옆에 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팀원들이 왔다. 재료가 떨어져, 오전 작업이 끝이란다. 내일도 데마찌란다.
서울용역 소장이 4만 5천원을 주며 말했다.
“내일 꼭 나오세요, 그런데 목수 맞아요?”
“네.”
소장이 재차, “정말 목수 맞아요?” 라고 말했다. 나는, “옛날 목수, 오야지급, 다른 일 하다가 작년부터 목수일 하기 시작 했어요” 라고 덧붙였다. 소장이 다시, “내일 꼭 나와요, 나는 사람을 이리저리 돌리지 않아요, 한 현장만 보내요”, 라고 했다. “그거 좋네요.”
매일 이곳저곳 팔려 다니면 항상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주변 환경이 익숙해 질 때까지 스트레스를 받는다.
밤새 잠을 설쳤다. 소장의 ‘목수 맞느냐’는 말이 스트레스를 주었다. 오랫동안 일 안한 탓에 복잡하게 현대화된 공정을 따라잡기 힘들다. 시스템 동바리 등, 작업해 보지 않은 일을 만나면 눈치껏 해야 한다. 말이 눈치껏이지, 누가 핀잔이라도 준다면 참고 일하기 어렵다. 밤 새 꿈을 꾸었다. 새벽에 일어나 생각했다. 먹고 사는 것이 이토록 힘든가?
아침 일찍, 서울 용역에 갔다. 전에 함께 일했던 김 씨를 만났다. 그의 말은 나를 더욱 겁먹게 만들었다. ‘현장에서 일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장이나 기사가 득달같이 용역회사에 전화한다. 왜 이런 목수도 아닌 사람을 보냈느냐… 그러면 온 동네가 시끄럽다. 자기도 어떤 사람 소개했다가 우세만 당했다.’
온양 터미널 현장에 여덟 명이 갔다. 어제 함께 일했던 평 반장과 씨와 이 씨도 함께 갔다. 지하 3층을 올리는 중이었다. 땅 속 깊숙한 곳에 현장이 있었다. 목수 작업은 깔끔했다. 그러나 일 분량이 많지 않았다. 하리 통을 다 만들어 올리고 땜빵만 남아 있었다. 땜빵도 30여 군데 뿐이었다. 여덟 사람이 일 할 분량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 몇 명이 사무실로 커피 마시러 갔다. 사무실 기사가 말하더란다. ‘목수 네 사람만 보내라 했는데, 이처럼 많이 왔느냐. 데스라 네 명만 올리겠다. 알아서 하라.’
함께 간 목수들이 웅성웅성 말이 많은 와중에 평 반장이 자기는 돌아가겠다고 했다. 나도 그 뒤에 줄을 섰다. 이 씨를 포함해 셋이 돌아왔다. 평 반장의 진단인 즉, 서울 용역 소장이 터미널 현장을 ‘잡으려고’ 시위차 목수를 많이 보냈다고 했다.
이 씨가 버스표를 샀다.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는 차 한 잔 하라고, 내 거처로 그들을 이끌었다. 길을 가면서, “회사에서 일해도 돈을 잘 받을 수 있느냐, 예전에는 돈 받기가 어려웠다”라고 물었다. 이 씨가 어두운 얼굴로, “돈 받기 어려우니까 다들 용역회사에 나가는 건데…” 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뻔 히 일당에서 10프로를 떼이며 용역회사에 나가 일 한다. 이 씨의 표정은 이런 사정에 대해 말하는 셈이다. 평 반장은 매일 일당을 지급하는 식으로 목수들을 데려다 쓴다고 했다.
평 반장은 한껏 내 거처를 부러워했다. 그는 1천만 원에 20만원 월세를 산다. 그러나 그는 실질적으로 많은 돈을 굴린다. 적어도 목수 일당 서너 달을 줄 수 있는 돈이다.
평 반장이, 용역회사 거치지 말고 자기 팀으로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그날그날 10만 원씩 주마, 곧 다음 현장으로 옮긴다, 그 때 돈을 올려 주겠다.’ 나는 늙은 철근공의 말을 생각했으며, 지방에 가서 일 할 경우 생기는 경비를 생각했다. 나도 평 반장에게 제안했다. ‘계단을 시켜다오.’ 계단은 일이 많은 대신 무거운 것을 나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육체의 부담이 적다. 이어 말했다. ‘대신 자주 와서 치수 잘 맞추고 있는지 질문하고 감독만 해 주라.’ 이 씨가 웃으며 말했다.
“참 어렵네.”
2. 돈 떼어먹고 도망간 두목노동자
오전에는 하스라 통을 마저 끝낸 후, 오후에는 슬래브를 짰다. 슬래브 칫수 가로 7400, 세로 3600 넓이의 슬라 13개를 짜야 한다.
ⅰ) 바닥에 6m 강관 파이프 두 개를 깔고, 6번 반생이 네 개를 그 아래에 끼워놓는다.
ⅱ) 시다 오비끼를 3000으로 9개를 잘라, 강관 파이프에 적정 간격으로 배열한다.
ⅲ) 시다 오비끼 양 옆과 중간에 900×500 각재와 사각 파이프를 올린 후, 가네(직각)를 만든다. 이 과정이 중요하다. 직각이 틀어지면 슬래브 짜 맞춤이 어려워진다.
ⅳ) 이 위에 합판 을 300씩 밀어낸 다음, 각재 위에 못으로 고정한다.
ⅴ) 합판(세로 910, 가로 1820) 세 장을 세로로 늘어놓고, 870으로 잘라 붙이면 3600이 된다. 이어서 합판 아홉 장과 합판 땜빵 12를 끼워 넣으면 7400이 된다. 이 과정에서 반생이를 합판 위로 올려 빼 놔야 한다. 그래야만 반생이에 크레인 고리를 걸어, 들어 올릴 수 있다.
오늘 노동자들의 화제는 단연 돈 떼어먹고 도망간 ‘창수’라는 목수 오야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현 씨가 도망간 오야지를 변명했다. 창수 씨는 매일 하청회사(협력회사라 부른다)에 데스라(일일 공수)를 올렸다. 인원수만 올렸다. 그런데 하청회사가 돈 계산하면서 갑자기 일 한 노동자 명단을 내어놓으라 했다. 창수가 명단이 없다고 하자, 하청회사가 돈을 안 주었고, 창수 씨만 독박 쓰고 도망갔다는 것이 요지였다. 새빨간 거짓이지만, 참고 분석해 보면 이렇다.
ⅰ) 건축법 상 원청회사가 협력회사에 일감을 주면, 협력회사는 도급(재하청)을 주어서는 안된다. 원청회사는 관리자만 두고 있다.
ⅱ) 하청회사도 건축 담당 기사와 관리자만 고용하고 오야지들에게 재 하청을 준다.
ⅲ) 목수를 투입하는 큰 오야지가 따로 있다. 그가 재하청업자이다. 큰 오야지는 평 씨처럼, 여러 명의 두목노동자를 불러 일을 시킨다. 창수 씨는 작은 규모의 재 하청업자였다.
창수 씨의 경우,
ⅰ) 하청회사가 창수 씨로부터 데스라를 받을 때 노동자 명단이 아니라 인원수만 받았다면, 애저녁에 돈을 떼어먹으려 한 짓이다. 임금 못 받은 노동자가 노동부로 가서 하소연한다 해도 일 한 증거가 없으니, 노동부에서도 막막할 것이다.
ⅱ) 창수 씨가 회사 데스라에 노동자 명단을 올렸다면, 그는 돈 받아 도망갈 셈이었다.
둘 다 동일한 원인이 있다. 하청과 재하청의 고리가 그것이다. 그런데 다시 의문점이 더 생긴다. 창수 씨는 어떻게 하청회사에서 노임을 한꺼번에 받아, 개별 노동자에게 나눠주는 역할을 했을까? 그리고 원청회사는 왜 이것을 묵인했을까?
도급노동을 주지 말라는 법도 애매하기 그지없다. 이를테면 특허 노동의 경우는 도급노동을 허용한다. 또한 누군가 내부 고발해서 도급노동을 하청 준 것으로 법정에 섰다 하자. 재하청 준 협력회사는 벌금을 내는 것으로 끝이다. 임금을 못 주었다 치자. 하청 업자는 ‘돈이 없어서 못 주었다, 돈 벌어서 임금 주겠다, 지금까지 받은 돈은 자재비 등등에 썼다’, 라고 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하청회사는 유한 책임만 지고 있다. 공사에서 손해 보았다면 자기 돈을 털어 보상할 이유가 없다. 하청회사에 중요한 것은 공사에 대한 책임뿐이지 임금이 아니다. 또, 하청회사가 재 도급 업자에게 임금을 준 것도 애매하다.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진다면, ‘관례상 오야지에게 노동자들 임금을 주어왔다, 오야지가 노동자에게 다시 돈을 주는 것이 관례다’, 라고 하면 그 또한 처벌 방법도 기준도 없다. 도둑놈들이 행세하는 세상이니, 기회만 있다면 도둑들이 생길 것이다.
3. 기계와 함께 하는 노동
오전에는 하리 통을, 오후에는 슬래브를 제 자리에 위치시켰다. 크레인이 하리 통을 매달아, 이미 작업해 놓은 슬래브 양 옆에 이어 붙이는 작업이다. 지상에서 하리와 슬래브를 짜서 들어 올린다니, 사람들 참 똑똑하다.
평 반장이 슬래브를 크레인에 매달아 현장으로 유도하면 양 옆에 한 사람씩 서서 하리 통을 잡아 제 자리에 위치시킨다. 크레인이 잡시 멈춰 선 사이, 슬래브 아래에서 하리 통 아래에 삿보도(철제 지주대)를 받친다. 슬래브를 짜면서 베갯목에 대못을 박아 놓았다. 우선은 하리 양 끝을 받친 후, 중간을 받치고, 나머지를 받친다. 네 명이 삿보도 작업을 했다. 광 씨가 진두지휘를 하고, 김씨, 김 씨 친구 조공, 그리고 나 넷이서 작업했다. 크레인은 계속 하리를 날라왔고, 우리는 바삐 작업을 서둘렀다.
요령들이 없어 힘들게 삿보도 작업들을 한다. 삿보도 아랫부분을 직선으로 제 자리에 위치시킨 후, 속 강관을 끄집어 올려 베개목 못에 끼운 후, 겉 강관과 핀으로 연결한 후, 나사를 돌려 적절한 높이로 올리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작업하면 무척 힘들다. 요령을 부리면 작업이 조금 쉽다. 삿보도 아랫부분을 제 자리에 위치시킨 후, 삿보도를 비스듬히 하여 속 강관을 뽑아내,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 수직으로 세운 후 못에 걸리도록 들어 올리면 조금 힘이 덜 든다. 중력 법칙에 적응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어렵기는 여전하다. 고개를 위로 향하고 작업하는 통에, 팔과 다리, 허리는 물론 목까지 아프다. 광 씨가 잠시 쉬는 시간에, 삿보도 받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일 듯 하다고 말했다.
점심 먹으러 가면서 목을 아래로 숙이고 걸어갔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정 벽화를 그리면서 항상 고개를 쳐들고 일했다. 그는 고개(목)가 아파, 쉴 때나 평상시에는 고개를 숙이고 다녔더란라.
오전에 하리 통 여섯 개를 걸었다. 오후에는 슬래브를 정치시키는 작업이다. 생 떽쥐베리의 아름다운 소설 『인간의 대지』에는 노동자로서 부럽기만 한 노동들이 나온다. “사막에 간다는 것은…하나의 샘을 우리의 종교로 만드는 것이다.” 정원을 가꾸듯 사막에 샘을 파는 행위이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물을 깃기 위해서는 며칠을 걸어야 하며, 우물이 있는 곳을 찾아낸다 해도 “낙타 오줌이 섞인 흙탕물이 나올 때까지” 모래를 파내야 한다. 그 샘을 찾기 위하여 “청춘이 스러지는 것을 겁내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사막에 사는 이가 유럽의 수풀 우거진 샘을 보고는 말했다. 인간의 노력 없이 모든 풍요로움을 허락하는 신이란 “속이는 신”이다(6,사막에서).
노동자로서 더욱 부러운 장면이 있다. “하룻밤 동안 인간을 얼음덩어리로 만드는 안데스 산” 속에 불시착했다가 일주일 만에 살아 돌아온 기요메가 말한다. “동료들은 내가 걷고 있는 줄로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나를 믿는다. 그러니 만약 내가 걷지 않는다면” 나는 동료의 기대를 저버리는 “못난이다”.
조립식 노동, 삿보도를 받치는 노동에는 동료가 없다. 잠시잠깐 쉬면서 함께 모여 담배를 피운다. 그 뿐이다. 다시 흩어져, 불연속적이고 분리된 존재로 노동한다. 노동의 영감도, 창조성도 없다. 끝없는 노역으로서의 노동만 존재한다. 고독한 인간이 삿보도 사이에 끼여 있다. 생 떽쥐베리는 대지에 선 인간 노동의 목표를 분명히 제시한다.
“우리가 이런 도구들을 통해서 찾아내야 하는 것은 자연, 정원사나 항해사, 혹은 시인의 자연”이다(3, 비행기). 시인의 노동, 정원사의 노동이라니, 얼마나 황홀한가. 그는 대지와 결혼할 것이다.
4. 진화의 과정과 의사의 노동
슬래브 작업을 마치자, 그 다음 날 부터는 일이 쉬웠다. 벽체 반생이를 조이거나 도리잡기, 즉 건물의 수직과 수평, 일직선이 되도록 형틀을 잡아주는 작업 등이었다. 평 반장 팀은 원래 옆 건물로 가서 작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곳 공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이곳 주차장 공사를 돕고 있다. 따라서 일감이 많지 않았다. 하루건너 하루 일 하는 식이라서 노동자들 불만이 많았다. 나는 몸을 만들 기회이므로 대체로 만족했다. 무릎이 아파, 쉬는 날 병원에 갔다. 의사가 말했다. “관절에 변형이 시작되었네요. 노동을 해야 하지만 관리의 차원에서 병원 자주 오세요.”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중력법칙을 이기고 두 발로 서도록 진화해 왔으니, 관절 변형이 오는 것도 진화의 과정이지.’
옛날 목수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젊었을 때 일 안하고 노는 것이 보약 한 첩과 같다.’ 물론 일을 많이 하면 관절이 빨리 달아 없어질 것이다. 덕수가 전화로, “힘든 일은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나는, “일하든 안하든 나이 들면 관절은 사그라지게 마련이야. 힘든 일이든 쉬운 일이든 크게 문제 안 돼. (다 진화의 과정에 있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 와중에,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의사를 만났다. 어금니를 뺏다. 마주대하는 이가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 편 어금니가 이가 솟아날 것이다. 여러 의사들에게, ‘솟아나지 않을 방법’을 문의하고 다녔다. 하나같이 임플란트를 하라고 했다. 아니면 빠진 옆 이를 삭감하여, 브릿지 형식으로 어금니를 하나 달아내라 했다. 이를 삭감한다고 생각하자 우울해졌다. 임플란트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 죽을 먹고 살거나, (이가 새로 솟기를 기다릴 참이다). 발품을 팔고 다닌 끝에,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의사를 만났다. 솟아날 이를, 맞물리는 치아가 있는 옆 이와 한데 묶어놓는 것이다. 그 분의 노하우인데 공개해서 어떨는지… 만약, ‘기술이 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공개한다 해도 기꺼워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