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회원들의 철학적 책읽기

핀란드식 희망 교실은 어떻게 가능한가? 1-① [4人4色 책읽기]

윤영돈 (인천대 윤리교육과 교수)
핀란드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차라 그런지 <핀란드 교실혁명>(비아북 펴냄)을 읽으면서 한국의 교육 현실을 반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읽는 과정에서 핀란드의 초?중학교 교실 현장에 대한 원저자(후쿠타 세이지)의 생생한 묘사가 돋보였으며,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매 항목마다 한국의 교육현장과 비교?해설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거리가 떠올랐다. 왜 우리는 핀란드의 교육에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핀란드식 교육이 무한 경쟁 시대에 세계 최고 학력을 낳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핀란드식 교육이 학생의 개별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그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일까? 핀란드의 교육적 성취가 과연 한국적 현실에서 제도적 개선 없이 교실로부터 가능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책 제목을 풀어 쓴 “세계 최고 학력을 낳은 핀란드 교육, 교실에서부터 시작된다!”라는 말이 왠지 “한국의 공교육은 붕괴되고 있으나 사교육에서 핀란드식 교실혁명이 가능하다!”라고 읽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무래도 책을 읽어간 순서대로 이야기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핀란드의 교실에 피어난 전인 교육의 가치

한국 사회는 숨 막히는 성적 경쟁을 촉발하는 시험사회이다. 그런데 핀란드의 교실에서는 학생들 간의 성적 경쟁이 없다고 한다. 경쟁이 없이 성적이 향상될 수 있을까. 경쟁이 없으면 성적이 향상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제고사와 같은 각종 시험을 적극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학생마다 서로 다른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타고난 능력과 소질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학교 간 그리고 학생 간 경쟁을 부추기는 표준화된 시험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시험과 같은 동일한 척도로 개별성과 다양성을 지닌 학생들을 상대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개인의 차이는 비교대상이 아니라 배려대상”으로 간주하는 핀란드에서는 의무교육 기간에 해당하는 중학교 3학년(16세)까지 상대적인 학력평가를 치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간의 학력 격차가 크기 않으면서, 전체적으로 높은 수준의 학력을 지닐 수 있다. 한마디로 교육의 평등성과 수월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에 의한 사회적?경제적 신분의 상승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교육에 의한 계급 재생산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경제적 배경이 좋은 가정의 자녀가 그렇지 못한 가정의 자녀보다 성적도 뛰어나고, 명문대 진학률도 높으며, 나아가 보다 우월한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핀란드에서는 학생의 사회적?경제적 배경이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핀란드의 핵심적인 교육과제가 공부를 못하는 학생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위권 학생들을 끌어 올리되, 상위권은 제한 없이 개방한다. 특히 문제가 있는 학생을 위해서는 사회복지사, 심리전문가, 상담전문가, 특수교사 등에 의한 다각적인 교육지원이 이루어진다. 개인별 맞춤형 수업이 공교육 교실현장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개인별 맞춤형 수업은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의 전유물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암담하게 보인다.

 

핀란드의 교실혁명은 어떻게 가능했나

핀란드의 교실혁명이 가능한 요인에는 다양한 수준의 여건이 성숙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육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전반 핀란드는 사회민주주의를 토대로 규제완화와 분권화의 흐름 속에서 교육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가이드라인 정도를 제시하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장학관제도나 교과서 검정 제도 폐지, 표준화된 평가 지양, 학급당 학생수 조정(20명 이하).

이와 함께 교육의 권한이 학교 현장과 교사의 손에 맡겨졌다. ‘경쟁’과 ‘효율성’을 키워드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흐름과는 사뭇 다른 독자노선이다. 더 놀라운 것은 핀란드는 학력사회가 아니라서 명문대학을 졸업해야 사회적으로 유리하다는 인식자체가 없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불고 있는 선행학습 열풍은 중학생은 물론이고 초등학생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소위 명문대 진학을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명문대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학문적 성취보다는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한 간판 따기라는 것이 솔직한 답이 아닐까.

복지와 평등이라는 핀란드의 사회적 분위기는 학교 문화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배려와 존중과 협동의 가치가 교실이라는 미시적 차원에도 꽃피고 있다. 학생의 개별성과 자발성의 가치가 개인별 맞춤형 수업에서 드러난다. 더 나아가 교사와 학생 간 그리고 학생 상호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식의 구성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사회 구성주의적 교육관이 실현되고 있다. 한국 교육계 역시 7차 교육과정 이래로 구성주의적 교육관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를 교수?학습과정에 구현하고자 하는 선생님들의 노력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명문대를 들어가기 위한 입시풍토와 표준화된 평가 시스템의 위력 앞에서는 그 힘을 발휘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핀란드의 교실혁명은 사회적?제도적 성숙과 함께 탁월한 교사의 수업전문성에서 그 성공 요인을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교사의 수업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학급당 학생 규모를 들 수 있다. 학급정원의 상한성은 초등학교는 25명, 중학교는 18명인데, 현장에서는 초등학교는 20명 미만, 중학교는 10명 남짓 되는 소규모 학급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여건과 함께 교과과정의 편성과 운영에 있어서 절대적인 재량권을 교사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점 역시 교사의 수업전문성 발휘를 위한 중요한 여건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교사들은 학생의 자율성과 개별성을 최대한 옹호하면서, 개인별 맞춤형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의 성장을 위한 개별 평가를 실시한다. 교사의 수업전문성은 슐만(L. S. Shulman)이 언급한 바 있듯이 교과를 구성하는 학문의 내용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수업전문성은 ‘내용지식과 교수법의 합성물’로서 ‘교수학적 내용지식(Pedagogical Content Knowledge)’을 의미한다.

핀란드 교사들이 석사학위 소지자로서 수업전문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한국의 교사들은 그 정도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다는 평가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한국의 교사들 중에 석사학위뿐 아니라 박사학위를 취득한 분도 적지 않고, 현장에서 열과 성을 다해 교사의 책무를 감당하는 분들도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입학 자체가 힘든 현실에서 치열한 임용고시 경쟁을 뚫고 합격한 교사들의 실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필자 또한 대학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3차에 걸쳐 진행되는 임용고시의 수준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 첫발을 내딛은 교사들의 교육적 사랑과 열정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한국 사회에서 전인 교육은 순전히 교실만의 문제일까? 필자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라도 아스팔트에서 꽃 피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본다.

 

한국 교육의 희망이 교실에서 꽃피기 위해

핀란드 못지않게 한국의 교육 역시 3년마다 시행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분야별로 2,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수준이 높다. 문제는 그러한 학력 수준이 순수하게 공교육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사교육의 비중이 매우 크다는 데 있다. 한국은 사교육비 규모가 연간 20조원이 넘는 사교육 1위 국가이다. 학업성취도는 단연 세계 최상위 국가에 속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에 대한 흥미도가 떨어지고, 과열된 경쟁과 입시 부담으로 인해 창의적 사고나 새로운 상황에 대한 문제해결 능력이나 리더십은 매우 떨어지는 편이다.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지식 채널e)을 보며 한 참을 운 적이 있다. 학교에 가기 싫다는 학생들이 10명 중 7명이었는데, 학교 수업내용을 학원에서 이미 배웠기 때문이란다. 설문에 참여한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가출 충동을 느껴보았고, 상당 부분 자살도 생각한 적이 있단다. 성적 때문에. 한 학생은 자신의 가장 큰 결점으로 ‘공부를 못 한다’고 말한다. 학습 부담으로 힘들어 하던 한 초등학생은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학교에서는 내가 원하는 음악을 무시해 (…) 음악을 하고 싶은 우리들은 어디에서 배워야 하나 (…) 왜 우리는 다 다른데 같은 것을 배우며 같은 길을 가게 하나, 왜 음악을 잘 하는데, 다른 것을 배우며 다른 길을 가게 하나요(…)” ?음악시간?(이승기) 가사의 일부이다. 표준화된 시험과 입시전형으로 인해 학생들 대다수는 자신의 강점 지능을 발휘할 기회를 상실한다. 대학수학능력 시험은 대체로 언어지능과 논리?수학지능에 강점을 보이는 학생에게 유리하다. 그와 다른 지능에 강점을 지닌 학생들에게는 공정하지 못한 시험일 수 있다. 음악 지능도 그 중의 하나이다.

하워드 가드너(H. Gardner) 하바드대 교수는 경험적으로 입증된 최소 8개의 지능을 다중지능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바 있다. 수업시간에 떠드는 학생은 신체운동 지능이 뛰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경우 수업과 관련된 내용을 몸으로 표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학교공부는 서툴지만 자기를 싫어하는 친구를 오히려 좋은 친구로 바꿀 수 있는 학생도 있다. 이러한 학생은 인간친화지능이 뛰어나다. 같은 수업 내용이라도 학생마다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양하고, 이해한 것을 표현하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핀란드의 교실혁명에서 보여주고 있는 수업 방식은 어떤 면에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에 근거한 수업 모형과도 유사하다.

한국 사회에도 핀란드식 교실혁명을 일구어 가는 교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적 현실에서 전인교육의 이상을 교실로부터 구현하고 있는 영웅적인 교사가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적?제도적 변화 없이 모든 교사에게 핀란드식 교실수업을 실시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교사 일반에게 요구되는 의무(duty)를 상회하는 초과의무(supererogation)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교실현장에서 초과의무를 수행하는 교사들에게 눈물 어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핀란드식 희망 수업이 우리 사회에서 꽃피기 위해서는 성과주의에 연연하지 않는 일관되고 지속적인 국가 수준의 교육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고, 학급정원도 OECD 평균수준(21.5명, 2006년 기준)까지 줄여야 하며, 불필요한 행정 업무로부터 교사를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삼류대학 출신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다면 기업체에서 기꺼이 고용하는 기업 문화와 소위 명문대라는 간판보다는 사람됨과 재능이 부각되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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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4인4색의 책읽기’의 첫번째 책은 후쿠다 세이지 지음, <핀란드 교실 혁명>(비아북)으로, 윤영돈(인천대 윤리교육과 교수), 김윤희(서울 상도중학교 교사), 김세연(인천 도림초등학교 교사), 박재원(기획 및 번역자)의 글을 게재합니다.

핀란드 교실, 왜 보여주기만 해요? 1-② [4人4色 책읽기]

김윤희 (서울상도중학교 교사)
학교의 모습을 바꿀 수는 없을까

사실 난 이 책을 이미 2년 전에 읽었다. 당시 난 몇몇 뜻이 맞는 동료교사와 더불어 한 달에 한두 번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가졌다. 당시 상황이 우리가 모여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학교가 척박해졌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식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바람이 우리나라에까지 불어왔던 것이다. 게다가 IMF 이후 경제적 안정이 중시되면서 교사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올라갔고 정년보장 62세, 철밥통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교사는 전 국민의 주적(主敵)이 되다시피 했다.

당시 교사에게 서열을 매겨 점수가 낮은 교사는 가차 없이 잘라내겠다는 협박처럼 느껴지는 분위기는 교사들을 위축시켰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학생들이 교사를 대하는 태도도 존경은 고사하고 신뢰조차 갖기 어려워지는 듯 했다. 학생들 대부분은 밤늦게까지 학원에 끌려다니며 學(학)은 했을지언정 習(습)은 할 시간 여유가 없었고,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분노가 쌓이는 듯했다. 학생이건 교사건 마치 건드리면 터질 듯한 그런 상태처럼 보이기만 했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돌볼 틈도 없는 학생들에게 남에 대한 배려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처럼 생각됐다. 한편으로는 버릇없고 이기적인 학생들에게 화가 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 안쓰럽기도 했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게 하나 없다는 자괴감과 모멸감, 저마다 혼자서 끙끙거리며 끝없는 자기 환멸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물결은 바꿀 수 없을지라도 단위학교에서나마 학교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바꿔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교육철학과 교육사에 대한 책에서 시작해 대안교육, 학급경영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실행방법 등을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옮겨갔는데, 그 때 읽은 책 중 하나가 <핀란드 교실혁명>(비아북 펴냄)이다. 이 책은 후쿠다 세이지 교수가 핀란드 교육에 관심을 갖고, 수십 여 차례 핀란드를 방문하고 연구한 결과를 정리한 책인데, 역자인 비상교육연구소장 박재원 씨가 한국교육의 실정에 맞게 전문가의 해설을 덧붙여 펴냈다. 각 장의 끝에서는 전문가 해설, 한국에서 적용가능성, 우리교육의 문제점과 희망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다.

 

핀란드 교실혁명의 비밀, ‘차별 없는 교육’

기초교육에 해당하는 16세까지 상대적인 학력평가도 없고, 공부는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며, 교사는 학생을 돕고 정부는 지원하고 부모는 협력하는 나라, 핀란드! 개인의 능력발달이 가정이나 지역의 환경조건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아 학교 내의 격차는 있지만 학교간의 격차는 작은 나라. 잘 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이 투자하고 똑같은 교육여건을 제공하면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고 믿는 나라. 게다가 모든 권한을 단위학교에 위임하고 기회균등이야말로 능력을 키우는 최고의 방법임을 강조하는 나라. 이런 환상의 나라가 있다니, 책을 읽으면서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나라가 다양한 차이를 제도화하여 경쟁을 통해 탈락자 또는 패배자를 가급적 일찍 걸러내는 시스템이라면, 핀란드는 차이를 최소화 해 개개인의 불리함을 만회할 수 있도록 돕는 맞춤식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간의 격차를 없애고, 언제 어디서든 차별 없이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학급 안에서는 학력의 차이에 따라 개별지도가 가능한 핀란드의 교육제도는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평균학력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내 눈에 인상적인 것은, 한 학급 안에서 두 학년에 걸친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아이의 능력에 맞는 수업이 가능하도록 복식학급을 일반화한 커리큘럼이었다. 긴 안목으로 보면 모든 아이가 성장하게 되어있다는 전제 아래, 같은 학생이라도 과목이나 분야에 따라 적성과 능력이 다르므로, 모두 똑같은 과제를 부여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여유! 이 여유가 우리에겐 전혀 없음이 안타까웠다.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창원이’(가명)가 떠오른다! 수업시간에 늘 멍 때리고 손가락이 망가질 정도로 손톱을 물어뜯는 창원이도 핀란드에서라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의지가 없는지 능력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체육시간을 제외하곤 창원이가관심 갖는 수업시간은 없다. 도무지 따라잡을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다. 사고의 과정이나 지식의 활용이 중요한 것이지 양이나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우리교육은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의 자율성보다 제도적 개선이 먼저

핀란드 교육은 학교와 교사의 자율권을 보장하여 학교가 모든 것을 결정할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 교사가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지원하는 환경이야말로 학생들의 학습을 향상시키는 밑바탕임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다. 역자도 ‘단위학교로의 권한과 책임의 이양’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의 실현을 위한 제도적 개선을 주장하지 않고, 교사 개개인이 교실에서 자율적으로 우리교육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아쉬웠다. 역자가 공교육종사자가 아니다보니 아무리 현장교사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자문을 구했다고는 해도 학교 현장과의 괴리감이 있을 수밖에!

모두에게 묻고 싶다! 교사 개개인의 노력이 학생의 의욕증진과 동기부여를 불러오고, 그것이 공교육의 신뢰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교사 개개인의 노력으로 극심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도 않은 이 무한경쟁을 바꾸고 피폐해진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살릴 수 있다고 보는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답답했다.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공교육과 교사에 대한 불신을 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오히려 우리 교육의 현주소가 선명해져 절망감이 들었다. 우리와는 너무 다른 교육여건과 환경을 가진 핀란드식 교육이 우리에게 과연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을까 라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특히 한국식 경쟁교육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이 핀란드식 교육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핀란드 교육에서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모든 학생들에게 차별 없이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공교육에 대한 관점과 철학이다. 이러한 철학은 세계 어느 나라이든 모두가 실현시키고 싶은 희망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진실로 중요한 것은, 다른 나라는 단지 희망하기에만 머물렀다는 것이고, 핀란드는 그것을 실천하고 실현하고자 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 아닌가 싶다.

 

핀란드 교육, 왜 따라하지 않고 보여주기만 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며 중학교 2학년 아들 녀석이 한마디 한다.

“핀란드 교육에 대해 텔레비전에서도 학교에서도 여러 번 봤는데, 왜 따라할 생각을 안 하는 거야? 좋으니까 보여주었을 거 아냐? 한 학급에 학생은 15명, 보조교사 선생님도 두 명이나 되던데! 왜 보여주기만 하는 거지?”

참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웃음만 나올 뿐. 결국 문제는 공교육에 대한 관점과 철학의 부재가 아닐까? 교육을 위한 기본 인프라는 구축해 놓지도 않고 불합리한 승진제도에 목매는 교사가 우대받는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교사와 학생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모든 아이는 성장한다는 바탕 아래 개인차를 인정하고, 그래도 뒤처지는 학생에게는 특별 팀을 만들어 도움을 주고 끝까지 한 명의 낙오자도 생기지 않도록 지원하는 핀란드 교육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 교육의 현실은 30명이 넘는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하는 식의 수업을 하고 정착된 지식의 양으로 ‘잘 한다, 못 한다’를 판단한 뒤, 뒤떨어지는 학생들은 하루라도 빨리 낙오자를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하는 체제와 다름없다. 핀란드처럼 교사에게 많은 재량권을 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거니와 보조교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는다. 다만 학급당 학생 수를 25명 이하로 감축시킨다면 제대로 된 공교육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2010년 이후 변화가 있기는 했다. 먼저 교육청이 교육지원청으로 바뀌고, 교원평가라는 서슬퍼런 칼날도 누그러졌다. 게다가 ‘학업성취도 검사’가 ‘문화예술 체험학습의 날’로 바뀌고, 경기도에서 시작한 혁신학교운동이 서울에도 불기 시작했다. 입시제도 한 쪽으로만 쏠려 있던 우리 교육이 다각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봐도 될까? 무한경쟁 교육의 문제점이 극대화되면서 혁신학교가 하나의 대안으로 나왔고, 그 혁신학교 이론과 성공 가능성을 <핀란드 교실혁명>이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이 책을 다시 들춰보게 되었다.

 

학생 하나 하나와 눈 마주치며 수업할 수만 있다면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는 ‘예비교원 해외진출’과 교원자격증 소지자 가운데 ‘학습보조 인턴교사’ 1만 명을 채용해 새 학기부터 전국 초·중·고교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덜고, 학생들의 학력신장 효과도 얻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학교에는 비정규직 교사가 너무 많고,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은 교육에 전념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또 언어적 문화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예비교사 수출 역시 제고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아직 우리 교육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교육 인프라의 확충이라고 본다. 즉 교육여건과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정규교사를 대폭 늘려서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 아닐까 싶다.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들면 학습 부진아를 줄이는데도 가장 효과적이리라 생각한다. 수업시간에 30명이 넘는 아이들 눈 한 번 마주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그 학생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핀란드 교육이 가진 강점 중 다른 것은 놓아두더라도 학급당 학생 수 축소, 이것 하나만이라도 시행한다면 공교육의 문제점 중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핀란드 교실혁명>의 역자는 핀란드 교육의 성공 사례와 견줄만한 일을 우리나라 방과 후 학교로 들었는데, 그 성공 이유 또한 학생 수가 적었기에 다양한 시도와 개인별 맞춤지도가 가능하고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2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 지금의 교육현장에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른바 혁신학교들이 선두에서 우리 공교육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바람직한 새 교육모델을 만들어 적용시키고자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으며, 교사들도 그 움직임에 동참하려는 기운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움직임의 중심에 후쿠다 세이지의 <핀란드 교실혁명>과 사토 마나부의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라는 책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교육에서 평등성과 효율성은 결코 모순되지 않음을 깨닫고, 우리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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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4인4색의 책읽기’의 첫번째 책은 후쿠다 세이지 지음, <핀란드 교실 혁명>(비아북)으로, 윤영돈(인천대 윤리교육과 교수), 김윤희(서울 상도중학교 교사), 김세연(인천 도림초등학교 교사), 박재원(기획 및 번역자)의 글을 게재합니다.

교사의 변화, 일파만파의 교육혁명이 된다 1-③ [4人4色 책읽기]

김세연 (인천도림초등학교 교사)
왜 세계 사람들은 핀란드에 주목하는가?

대한민국의 교육에 만족하는 학생, 학부모, 교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 계속 쏟아지는 교육관련 책들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학교가 가고 싶은 곳, 즐거운 곳, 행복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교사인 나도 점점 힘들어지니 학생들은 어떤 마음일지 상상이 된다. 한동안 교육계에는 핀란드 바람이 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생성취도평가(PISA)에서 핀란드 학생들이 2000년, 2003년, 2006년 모두 다른 나라의 학생들보다 우수한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나도 교육복지의 나라, 교육개혁이 성공한 나라로 불리는 핀란드가 궁금했다. 물론 한국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세계 사람들이 핀란드에 주목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 결과에만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핀란드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북유럽 교육탐방의 기회가 있어 2010년 1월에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학교를 직접 방문했다. 먼저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교육현실을 볼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아이들을 생각하고, 교육철학을 녹여 토론을 하며 교사들이 설계안을 낸다. 국가에서는 교육과정의 큰 틀만 제시하고 모든 권한은 학교와 교사에게 준다. 단 한명의 학생도 소중히 여기고 대학입학 시험 전에는 특별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 복지국가이다 보니 교육비 걱정도 없다. 누구라도 배울 수 있는 평등한 기회가 보장이 된다. 정권은 바뀌어도 국가교육청장이 20년간 바뀌지 않은 나라가 핀란드다.

 

Commentary – 핀란드 vs. 대한민국

우리의 교육현실을 돌아보면 절로 한숨이 나고 걱정이 된다. 사회적 합의도 없이 교육정책이나 제도를 만들고, 몇 십 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모양의 교실에서 똑같은 교과서로 아직도 일제식 수업을 하고 있다. 핀란드를 부러워만 할 수도 없고 핀란드 제도를 갖고 온다고 해도 사회적, 문화적 차이가 있는 이 나라에 잘 정착할 수도 없다. 우리식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핀란드 교실 혁명>은 저자 후쿠타 세이지가 수십여 차례 핀란드를 방문하고 쓴 책이다. 핀란드 교육제도와 여러 가지 특징들이 설명되어 있고 학교 3곳을 탐방한 내용이 실려 있다. 학교탐방은 하루 종일 수업을 세심히 관찰하고 기록하여 핀란드 교육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이 단순히 번역만 해서 출판했다면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우리식’으로 교육을 펴기 위해서는 ‘우리 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꼭지마다 한국과 핀란드를 비교한 번역자의 해설이 달려 있어 좋았다. 난 이 해설부분에 크게 공감했다. 국가 정책이나 예산 문제처럼 거창한 문제는 일단 제쳐두자. 핀란드 교육의 좋은 점 중에서 반드시 우리가 교실에서 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내용이다.

 

교육혁명의 시작 – 교실

그 내용을 곱씹으며 <핀란드 교실 혁명>(비아북 펴냄)이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관점을 살펴보자.

첫째, 지식관과 학력관의 변화이다. 지금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암기하고 있는가를 두고 평가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두뇌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가 진짜 필요한 지식일지는 의문이다. 사회구성주의적인 학습관은 지식이 고착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스스로 편성해가는 것이라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을 구성하는 주체의 목적, 가치관, 알고 싶다는 욕구 등이 중요하고 교사는 학습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PISA2009에서는 디지털을 이용한 읽기, 쓰기 능력이 처음으로 측정되었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여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교육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학생들에게 동기부여하기이다. 핀란드는 학생 뿐 아니라 학부모, 교사 모두가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공부는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만 강요한다. 교사들은 학생의 관심과 흥미보다 내가 잘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과 흥미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배움이 즐겁다고 느끼게 해줘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은 다른 게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아이들이 일주일간의 학습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평가하는 시간이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는데 교과학습과 그 외 하고 싶은 내용을 스스로 계획한다.

셋째, 협동학습을 통한 교육활동이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속에서 더욱 큰 배움이 일어난다. 경쟁은 사고력을 약화시키고 깊이 생각할 시간과 협동의 기회도 빼앗고 심각한 스트레스와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낳는다. 반대로 협동학습은 학생들의 사회성도 키우고 학습의 효과도 높다. 교실의 분위기와 학생들의 공부 태도에도 영향을 미쳐 서로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방송에서 많이 나왔던 아키타 현의 기적과 사토 마나부 교수의 배움의 공동체를 실천하고 있는 학교들을 보면 협동학습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다. 어느 학년을 가르치더라도 수업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넷째, 학생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수업 모형을 개발하는 것이다. 특히 교수법 보다는 학습법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진보적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에서 추진하는 혁신학교에서는 주제통합 학습, 블록제 수업, 테마 학습 등의 다양한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수업은 집중력도 높고 학생들이 즐거워한다. 단순한 암기, 지식 전달만을 하는 수업을 벗어나 보자. 기존의 수업 모형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다수 학생들은 낙오자가 되고 만다. 그 아이들을 수업에 참여시켜야 한다.

다섯째, 여유를 두자. 우리는 수업을 시작하고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으면 바로 통제가 들어간다. “여기를 봐라”, “책을 펴라”, “떠들지 마라” 등의 말을 하거나 심지어는 체벌을 하는 교사도 있다. 하지만 핀란드 교사들은 다르다. 학생들의 개인차를 인정하고 여유 있게 기다릴 줄 안다. 신기하게 그런 말들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천천히 수업에 참여한다. 15분~20분 정도가 되면 모두 함께하는 수업이 된다. 우리의 조급함이 더 산만한 수업을 만드는 게 아닐까 한다.

물론 평가와 입시가 있는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그게 가능하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다면 교육의 새로운 변화는 오지 않는다. 바꾸려는 작은 노력과 실천이 있어야 큰 변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들의 변화이다. 협동학습을 이야기했지만 실제 교사들은 협동, 협력하고 있지 못하다. 교사들의 교육철학, 실천 노력, 배움에 대한 가치가 변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교육주체끼리 서로 상대의 변화만 요구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일파만파라 했다. 교사의 변화라는 물결이 교육혁명이라는 파도를 몰고 오리라. <핀란드 교실 혁명>은 큰 변화를 향한 첫 걸음에 용기와 격려를 보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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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4인4색의 책읽기’의 첫번째 책은 후쿠다 세이지 지음, <핀란드 교실 혁명>(비아북)으로, 윤영돈(인천대 윤리교육과 교수), 김윤희(서울 상도중학교 교사), 김세연(인천 도림초등학교 교사), 박재원(기획 및 번역자)의 글을 게재합니다.

핀란드 교육이 아닌 ‘교실’을 이야기 1-④ [4人4色 책읽기]

박재원 (기획 및 번역자 / 비상교육연구소 소장)

우리나라에서 교육 이야기만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최근 복지 논쟁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교육 문제만큼 꼬여 있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이 책은 이미 많이 읽혔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의미 있는 서평은 새로운 서평이 아니라 이전 서평에 대한 정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특히 일반 독자가 아니라 번역과 해설을 맡은 사람으로서 그간의 서평을 평가해보고 싶었다. 전반적으로 낮은 평점을 준 독자들에게 서운함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소모적인 논쟁의 역사로 점철된 교육 분야의 책이어서 일까? ‘혹평(별 2개)’과 ‘호평(별 5개)’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혹평과 호평 사이에서

우선 해설자에 대한 평가에서 크게 엇갈린다. ‘학교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주변부에’, ‘구체적인 현실경험이 없는 이론학자’, ‘등수와 만점에 집착하는 인간’ 등의 혹평을 볼 수 있다. 반면 ‘진보적 교육운동가가 아니라 사교육의 첨병에 서 있는 사람’의 문제제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서평도 있다. 다음으로 이 책의 특징인 원작 뒤에 붙인 해설 자체에 대한 혹평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척하는 논평에 짜증이’, ‘이건 완전 이 책에 대한 테러다.’, ‘저 해설 때문에 완전 망쳤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새롭고 신선한 시도다.’ ‘우리에게 뼈아픈 반성의 시간을 제공한다.’는 호평도 보인다. 마지막으로 해설 내용에 대한 평가에서도 분명하게 갈린다.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교실에 대한 비판’, ‘공론적인 담론하는 변이 참으로 역겹다고 느낀다.’ 가볍게 볼 수 없는 혹평이지만 아래와 같은 극찬의 호평도 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우리나라 교육과 비교하여 대안을 생각해보는 내용’, ‘우리나라도 교육현장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변명과 옹호

핀란드를 선택한 것은 다분히 선정적인 동기였음을 인정한다. 핀란드가, 특히 핀란드 교육이 워낙 잘 팔리는 인기 주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이 순수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부를 매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작은 속물이었지만 나중은 교육적 열정으로 채워졌다고 생각한다. 핀란드 교육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활용하여 우리 교육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말 진지하게 했다고 생각한다.(물론 심각한 혹평들을 보면서 반성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핀란드 교육 읽기는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따라야 할 모범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따라할 수 없는 이상으로 보기도 한다. 추구해야 할 가치로 보기도 하지만 참고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생각도 보인다. 하지만 어렵게 구한 이 책의 원작을 보면서 우리에게 절실한 ‘핀란드 교육 새롭게 읽기 방식’이 떠올랐다. 바로 핀란드 교육이 아니라 교실을 진지하고 자세하게 관찰하는 방식이다.(이 책에는 실제로 핀란드 교실을 촬영한 사진이 많다.)

핀란드 교육과 우리 교육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정치와 경제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결코 안 된다는 사회적인 합의가 정말 다르다. 1972년부터 91년까지 국가교육청장을 지낸 에르키 아호의 사례가 상징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은 계속 되었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에 소개된 내용만으로도 핀란드 교육의 다른 점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잡무에 시달리는 우리 교사들에 비해 핀란드 교사들은 ‘학부모나 행정기관도 교사를 지원’(60쪽)하고 있다. 온갖 규제에 시달리는 우리 현실과는 달리 핀란드는 ‘거의 모든 권한은 일선 학교로 위임, 관리나 감시에 소요되던 불필요한 인력이 없어졌고 결과적으로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지식(교육과정)은 국가 관리에서 해방되어 학습 주체가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 되었다.’(23쪽) 또한 ‘아이의 능력에 맞는 수업이 가능하도록 커리큘럼과 교재가 짜여 있다.’(95쪽) 공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편견이 난무하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핀란드는 ‘뒤떨어졌다든지 특수하다든지 하는 구별은 하지 않아요.’(159쪽)

하지만 핀란드 교실과 우리나라 교실을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기도, 의미 있기도 하다.(물론 학급당, 교사당 학생 수의 차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있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를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육이 핀란드 교실 관찰하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참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고 국민들의 불만과 원성이 터져 나올 때마다 시도되었던 교육 개혁이 계속 좌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바로 총론만 있고 각론은 없는, 방향과 원칙만 제시하고 교실 현장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외면한 결과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결국 교실을 개혁하지 않으면, 수업을 혁신하지 못하면 그 어떤 제도적 개혁도 공염불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핀란드 교실이다. 먼발치에서나마 핀란드 교실을 관찰할 수 있기에 막연하기만 한 수업 혁신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상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실제로 핀란드 교실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적용하여 개발한 교재 시스템을 활용하여 수업 혁신에 성공한 국내 사례가 있기도 하다.)

또한 왜 학부모들은 학교를 불신하는가, 왜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열심이지 않은가, 굳이 자기 돈을 내고 사교육을 받으려는 이유는 정말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충분히 고민하고 나름대로 진단한 문제들에 대한 인식에도 편향과 왜곡이 있었음을 깨닫게 만든다. 바로 학교 교실의 낮은 생산성으로 인한 악순환 구조의 재생산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만든다. 공교육으로 얻은 세계 최고 학력과 사교육으로 얻은 비슷한 학력에 대해 깊은 우리 교육이 천착하여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도 다른 교실의 분위기를 통해 우리나라 학교에서 여전한 권위주의적인 모습들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교권이 붕괴되었다고들 하는데 정말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야 하는지, 그 이상향을 핀란드 교실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흐르는 학부모와 학생 중심의 관점에 대해서도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이 공교육에 완승하는 근본적인 요인 중 하나는 바로 학부모와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공교육이 학부모와 학생을 위에서 바라본다면, 사교육은 옆에서 아니면 밑에서 바라본다. 일본에서 시작된 배움의 공동체 운동이 우리나라에도 착근에 성공하면 정말 많이 달라지겠지만 핀란드 교실에서 볼 수 있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비록 사교육이기는 하지만 정말 많은 학부모, 학생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만난 경험을 통해 우리 교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학부모들의 이기심을 비난하고 입시준비에만 매달리는 학생들을 탓하지만 과연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만큼 당당할 수 있는지 늘 묻고 싶었다.

학교 교실에서 얻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학교 밖에서라도, 개인적으로 비용을 지불하면서라도 필요한 것을 얻으려고 애를 쓰고 있으며, 학교에 가면 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옆에서, 밑에서 바라봐주는 사교육 현장을 찾게 되는 사정을 보듬어줄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접한 핀란드 교실을 통해 정말 우리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학교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교육학자나 관료 또는 교사들의 시선이 아니라 정말 너무도 간절한 학부모와 학생의 입장에서 핀란드 교실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 학부모가 진정으로 원하고 학생들이 환호할 수 있는 교실의 모습을 통해 더 이상 복잡하게 따지지 말고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핀란드 교실을 따라하면서 우리 교실도 조금씩 바꿔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긴 해설을 달게 된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정말 핀란드와 한국 교육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육 생산성 측면에서도 더욱 그렇다. ‘시험을 위해 한 공부는 대개 낭비된다.’는 말을 떠올리면 평가제도와 경쟁풍토의 개선 없이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핀란드 교육이 아니라 교실 관찰하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거시적인 관점이 아니라 미세한 관찰을 통해 배울 것이 있다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냥 한 번 해보자. 이것저것 사정을 너무 많이 알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단순해야 용감해질 수 있고 그래야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런 맹목성에라도 희망을 걸어야 할 만큼 우리 교육에서 신음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문제는 심각하다. 교실마다 자살 대기자들이 한 두명씩 있다는 말을 실감하지 못하는가?

 

엄연한 경쟁현실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거의 유일한 대안은 바로 교실부터 바꿔서 사교육으로 쭉 이어지는 초장시간 공부노동으로부터 조금은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핀란드 교실혁명’이 우리 교실 바꾸기의 교본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소박한 문제제기에 대한 반응

본격적인 핀란드 교육 평론서를 기대했던 독자들은 주로 별 2개를 준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해설자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문제제기에 반응한 독자들은 별 5개를 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혹평을 보면서 예비 독자들에 대한 의무감을 느낀다. 더 이상 실망하는 독자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혹시라도 이 책을 보고 싶다고 느끼는 독자들 중에 아래와 같은 사람은 책을 구입하지 말고 도서관에서 빌려 해설을 빼고 원작자 부분만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현직 교사가 아님에도 학교 교실을 이야기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

-핀란드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핀란드 교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원작보다 많은 해설로 인해 원작의 의도가 훼손되었을 것이라고 염려하는 사람

원작자 후쿠다 세이지의 핀란드 교실 지면중계는 정말 가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육이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는 수월성과 평등성의 갈등을 해소시킨, 두 마리 토끼를 멋지게 잡아낸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교육이 그동안 놓쳤던 교육 개혁의 또 다른 핵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족 같은 해설자의 개입으로 인해 원작자의 기여가 축소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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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4인4색의 책읽기’의 첫번째 책은 후쿠다 세이지 지음, <핀란드 교실 혁명>(비아북)으로, 윤영돈(인천대 윤리교육과 교수), 김윤희(서울 상도중학교 교사), 김세연(인천 도림초등학교 교사), 박재원(기획 및 번역자)의 글을 게재합니다.

 

[월례발표회 참관기] 박지용 선생의『칸트의 숭고와 아방가르드 예술』에 관하여

?[2011년 4월 월례발표회]

 

논문 제목:『칸트의 숭고와 아방가르드 예술』
발표자: 신승철 (동국대)

 

박지용 선생의『칸트의 숭고와 아방가르드 예술』에 관하여

후기: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1.

철학자들에게는 야릇한 흥분을 주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철학토론이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런 결론도 없이 끝나고, 생산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철학적 토론에 저렇게 흥분하는 사람들을 정말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철학자들에게 결론이 없다거나, 생산성이 없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철학자들에게 철학적인 토론은 그 자체로서 말할 수 없는 쾌감을 준다. 그것은 마치 투우장에 나간 투우사의 야릇한 흥분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야 그런 투우를 직접 본 적은 없고 그저 영화에서나 보고 짐작하는 것이지만, 뒷다리로 버티고서 커다란 눈으로 노려보는 소 앞에서 칼을 빼들고 미동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투우사의 긴장된 몸에는 리비도가 파릇파릇하게 돋아난다. 그런 리비도가 철학토론에 나선 철학자들의 몸에서 느껴진다 해서 결코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철학자라는 인종은 독특한 유전자를 타고 난 것이 아닐까 한다. 무슨 철학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크로포트킨은 우애 협력의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하고 더구나 요즈음은 별별 유전자가 다 신문지상을 장식한다. 일본인에게는 가미가제 유전자가 있음에 틀림없다. 이번 원전 사건을 보면 그들은 모든 대안들을 굳이 다 물리치고 가미가제식 특공대를 조직해서 스파르타 300인 전사의 흉내를 낸다. 그건 가미가제 식의 행동이 그들의 유전적 본성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철학자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해서 뭐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을까? 나 역시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수많은 다른 길이 있었는데, 실제로 상당히 오래 그쪽으로 걸어가 본 적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그저 철학토론회나 심포지엄에 참여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하니, 철학 유전자의 힘이 아니라 할 수 없다.

 

2.

그런데 자칭 한국 최대의 철학자 조직인 한철연의 월례 발표회에 참가했는데 도무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발표자와 사회자 그리고 회장, 딸랑 세 명이 나와서 이젠 아예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참여하니 이 사람들이 오히려 당황해 하니, 내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이다. 혹이나 이 사람들이 내가 정말로 할 일이 없어서 여기에 참가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사실은 바쁜 일이 있지만 오늘 발표 주제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억지로 시간 내서 참가할 것이라는 분위기를 그것도 은근하게 풍기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들 철학자들은 서로 말은 안 해도 아니 서로의 변명을 짐짓 이해하는 철하면서도 다 알고 있다. 즉 우리들은 유전적 본성에 이끌리거나 아니면 강박증에 끌려서 철학토론회에 참가한 것을 말이다. 그러니 이미 세 명이라면 충분히 많은 수인데, 나까지 참가했으니, 철학토론은 봄을 맞아 푸른 리비도처럼 생기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소문이 금방 퍼진다. 철학토론의 장이 섰다는 소문 때문인지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정말 창피하게도 당구를 치러갔던 일단의 철학자들이 부끄러운 듯 당구대를 던지고 몰려들어 갑자기 좁은 월례발표회 장은 꽉 찬 느낌을 주었다.

 

3.

드디어 박지용 선생이 논문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속으로 옛날에는 굳이 논문을 다 읽지 않아도 누가 논평을 통해 정리해 주었는데, 토론을 하기에 정말 모자라는 이 아까운 시간을 논문 낭독으로 다 보내다니 하고 속으로 불평하면서도 눈으로 따라 읽기 시작한다. 그런데 『칸트의 숭고와 아방가르드 예술』이라는 논문 제목이 알려 주듯이 아무리 당대의 뛰어난 철학자라도 이런 철학논문을 한 번 읽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칸트라면 나도 약간 공부했고 더구나 숭고라는 개념은 여간 흥미로운 개념이 아니어서 여러 번 그 개념에 부딪힌 적이 있었기에 간신히 따라가기는 했지만 솔직히 중간에 맥을 놓치고 갑자기 졸음이 닥쳐와 꼬박 졸기도 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칸트나 숭고의 개념에 무관심했다면 읽는 도중 내내 졸았을 게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내 앞에 앉아있던 서유석 선생도 졸았다고 고백한다. 여하튼 읽기를 마친 다음 드디어 토론의 시간이 다가왔다.

 

4.

논문의 요지는 칸트의 숭고의 개념과 관련된다. 철학자들에게는 상식이지만, 칸트는 숭고의 개념을 미감 판단과 구분했다. 그런데 칸트는 미감 판단은 예술을 대상으로 하지만, 숭고의 개념은 주로 자연에서 발견된다. 논자의 주장은 칸트의 숭고 개념을 예술적인 대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자는 여기서 칸트의 숭고 개념이 두 가지 전제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 하나는 이것이 자연의 몰형식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런 자연의 ‘몰형식’은 우리의 판단을 마비시키는데, 이런 마비가 숭고라는 감정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단순한 판단 마비가 아니라 판단 마비가 주관에게 일으킨 심정이 곧 숭고이다. 논자는 이런 측면에서 칸트에서 숭고의 대상이 객관적인 어떤 성질이라는 해석도 비판하면서 또한 숭고가 객관적인 전제 없이 일어나는 주관의 어떤 감정이라는 해석도 비판한다.

이어서 논자는 이 두 가지 전제가 어떤 관련을 가지는가에 대해 주목한다. 논자는 칸트가 사용한 치환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 두 전제 즉 자연의 몰형식과 주관의 감정 사이의 관련을 찾아보려 한다.

논자는 이 지점에서 료타르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특히 바넷 뉴먼의 색면추상)을 이런 숭고한 예술로 규정했다는 데 도움을 얻는다. 논자는 여기서 바넷 뉴먼의 색면추상 속에 시간의 발생이 표현되며, 이것이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이런 시간의 발생은 칸트의 몰형식 개념과 연결되므로, 그렇다면 이를 통해 숭고가 예술적 대상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미 칸트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5.

논자가 발표를 마친 이후 다들 한숨을 쉰다. 그 한숨은 승리자의 한숨이다. 그것은 졸린 것을 간신히 참고 견디었다는 것에 대한 안도의 한숨이 아닐까? 드디어 투우의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졸린 것을 참고 견딘 보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토론에 임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는 것은 웬 일인가? 아차, 투우장에 들어가기 위해 칼과 망토와 소를 홀리는 베일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필자도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칸트의 숭고라는 개념이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말하자면 선무당이 칼바람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그 뒤 끔찍한 학살극에 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말자. 필자를 포함하여 참여했던 철학자들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니 양해를 바란다.

토론을 통해 논자의 논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려고 애썼으나 다들 숭고라는 개념 앞에서 판단 마비가 생겨난 듯 했다. 토론 도중 송석현 선생이 숭고 예술의 예가 된다고 하는 바넷 뉴먼의 그림과 제리코의 그림 메두사의 뗏목을 프린트 해 와서 토론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토론이 어떤 결실을 얻기에는 다들 숭고 개념에 대한 가방끈이 짧은 것 같아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제 집에서 초연하게 앉아서 정리해본 의문을 이 자리에서 박지용 선생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논평을 대신하고자 한다.

 

6.

우선 논자의 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얼까? 아무래도 숭고의 전제가 되는 자연의 몰형식이라는 개념이 아닐까? 그런데 자연에 몰형식이 존재하는가?

여기서 자연의 몰형식이란 무엇인가? 칸트에 따르면 우리의 인식은 선험적 인식형식에 기초한다. 이런 선험적 인식 형식을 넘어선 세계가 곧 물자체의 세계이다. 이 세계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도 불가능하며 만일 판단한다면 이율배반이 생긴다. 이런 물자체의 세계가 곧 자연의 몰형식이다.

우리가 자연세계 속에 이런 물자체의 세계는 직접 출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만일 자연 속에 몰형식이 출현한다면 이것은 논리적인 차원이 아니고 현실적인 차원이다. 예를 들어 우리 소시민은 돈을 셀 때 일억까지는 계산이 가능하지만 일조가 되면 계산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이런 일조의 세계는 논리적으로 사유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사유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사유불가능이 논리적 사유불가능성을 대신하는 경우가 칸트에게서 숭고의 전제가 되는 몰형식의 의미이다.

논자는 이런 대신의 관계를 치환(subreption)이라고 이름 붙였다. 논자는 이 관계를 설명하면서 ‘부정적인 현시’라고 규정한다. 즉 물자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으나 부정적으로 표시해 줄 수는 있다는 것이다. 논자는 칸트가 이런 치환의 구체적인 예로서 우상숭배 금지의 규칙과 이시스 신전의 비명에서 발견한다고 본다.

 

7.

몰형식에 관한 논자의 주장의 핵심이 제대로 정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것을 전제하고 박지용 선생에게 몇 가지 물어보자. 기회가 되면 한철연 웹진을 이용해서 답변해 주기를 기대한다.

우선 바넷 뉴먼의 색면추상이 왜 숭고하다는 것인지? 토론자 중에 이 그림을 보고 숭고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사람은 나뿐일까? 다행히 송석현 선생이 프린트 해온 데에는 박영욱 선생의 설명이 붙어 있었다. 즉 이 그림에는 어떤 형식이 없는 그래서 자기 지시적인 질료만이 존재하므로 숭고하다는 것이다. 몰형식이라는 측면이 숭고와 연관된다는 것은 짐작가능하다. 하지만 그런데 왜 바넷 뉴먼의 그림에 있는 붉음이나, 사각형, 그리고 중간의 노란 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떤 형식이 아닌가? 의문이다. 뭐 이런 의문에 대해서 내가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논자는 이왕 료타르를 끌어 들였으니,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둘째로 이런 의문이 든다. 칸트의 숭고 개념이 바넷 뉴먼의 숭고 개념과 연결시키는 수단은 소위 시간의 발생이라는 개념이다. 그것이 논자에 따르면 료타르가 그 그림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개념이 칸트의 역학적 숭고 개념과 연결되기는 하지만 바넷 뉴먼의 그림에서 시간의 발생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의문의 초점을 이제 논자의 핵심 주장으로 옮겨가 보자. 사유불가능하다는 것은 대상과 개념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이 마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칸트에게서 미감 판단은 상상력을 강화하면서 생겨나는 쾌감이다. 그것은 인식의 쾌감이나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쾌감과 구분되는 미적인 쾌감이다. 그런데 만일 상상력이 마비된다면, 거기서는 오히려 불쾌감이 발생한다. 그것은 현기증, 구토, 역겨움, 고통에 가까운 심정이다.

그런데 숭고의 감정은 단순한 구토나 고통과는 구분된다. 거기에는 어떤 쾌감이 흐른다. 그런 쾌감은 어떤 속성을 지니는 것인가? 이 쾌감은 단순한 구토나 역겨움과 어떻게 구분되는가?

 

8.

숭고의 개념은 자주 자유의지의 실현을 통해 얻는 쾌감과 연결된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욕망의 만족이 만족감(pleasure)을 야기한다면 자유의지의 실현은 리비도적인 쾌감을 준다. (칸트에게서 자유의지의 이런 리비도적 성격 때문에 칸트와 사드의 비교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숭고의 경우가 물자체가 출현하는 부정적인 현상이라면 자유의지는 물자체(이 경우는 이념이라 한다)가 실현되는 긍정적인 경우이다.

물자체의 직접적인 출현은 칸트에게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칸트에게서 자유의지는 요청에 불과하다. 그렇게 본다면 숭고는 칸트에서 부정적인 현상으로 그친다. 그것은 역겨움과 고통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숭고의 감정에 들어있는 어떤 쾌감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헤겔이나 그 이후 프로이트 라캉 등에 이르면 물자체(또는 실재계)의 부정적인 출현은 곧 긍정적인 출현인 이념(이드)의 실현과 동전의 이면이다. 그러므로 숭고에서의 역겨움은 이념의 리비도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숭고의 심정이 더 적절하게 규정되는 것이 아닐까? 숭고 개념과 관련하여 헤겔이나 프로이트와의 연관성을 논자가 좀 더 설명해 줄 수는 없을까?

 

9.

필자가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닐까? 굳이 박지용 선생이 아니더라도 필자의 이런 의문에 대하여 누군가 한 수 가르쳐 주기를 바란다.

토론이 끝난 후 오랜 만에 중국집에서 군만두와 배갈을 먹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물 밀려오듯 다가온다. 오래 전에 사라진 세계여, 이제 늙은이가 되어 밤이면 기억나지 않는 꿈에 사로 잡혀 아침이 되면 눈에 눈물이 고여 있다. 소년은 이미 늙었고, 되돌아보면 부끄러운 기억밖에 없다. 그러나 부끄러움의 감정 속에서 마시는 배갈은 정말 달다.

 

내 마음 속의 ‘아Q’를 보내며 [책 익는 마을 책 읽는 소리]

<보령 책익는 마을> ‘책 읽는 소리’ 연재를 시작하며

박종택 (보령 책익는 마을 촌장)

아큐(阿Q)형!

오늘 날짜로 형에게 이별을 고하고자 편지를 씁니다.

형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던가는 기억이 또렷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중국 루쉰(魯迅) 선생님의 소개로 정식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은 명확합니다. 그 후로 형과의 우정 어린 만남은 친밀성을 넘어 동반자적 관계를 가지며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다 형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된 것은 ‘책익는 마을’에 이주하게 된 때부터였습니다.

아Q형,

오랜 동반자적 우정을 나누던 내가 갑자기 이별을 고하니, 분하고 괴이함을 넘어서 나의 속내와 ‘보령 책익는 마을’이 어떤 곳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저도 우리 지역에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발적인 독서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들이 모여서 책을 읽다니 별일이다’ 놀랍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책익는 마을’에 가입하기 전부터 매달 ‘독서토론회’에서 선정된 책을 한 권 더 사서 내미는 보령소방서 강윤규 계장의 권유가 부담스러울 즈음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의 저자 이권우님을 모시고 열린 ‘저자초청토론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회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원진호 내과원장이 시민 누구나 참석가능하다기에 저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독서량이 많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올바른 책읽기가 아니었음을 알고 깜짝 놀랐으며 독서토론이 편견을 타파할 수 있는 시선형성에 좋다는 말씀을 듣고서, 가끔씩 욱하는 성격과 보수적 성향, 술에 취하면 극우로 돌변하는 특이 체질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저자초청토론회’를 참관 했었지만 ‘책익는마을’에 가입을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대학 시절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수업을 빼먹는 장기를 갖고, 단 한 번도 세미나에 참석한 사례가 없었던 역사적 사유로 토론에 대하여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영업을 하다 보니 사업설명회나 브리핑, 워크숍, 심포지엄, 포럼 등은 나와는 아무런 연관성을 찾지 못하며 살아온 관계로 독서토론에 대하여 막연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자초청토론회’로 잘못 인지하고 참석했던 ‘독서토론회’에서 큰 재미를 찾았습니다. 현실적으로 성인들의 책읽기는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만 집중하게 되고 기존에 형성된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책 내용을 재단하는 경향이 강하지 않습니까? 형님의 ‘정신승리법’도 그렇지 않습니까?

‘책익는 마을’에서는 특정 분야에 치우친 개별적 독서를 넘어 서기 위하여 각 모둠 별로 정회원의 순서를 정하고 다음 달 발제자가 자신이 선정한 책을 정회원 모두에게 선물하고 한 달 후에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이 설정한 의제로 독서토론회를 진행하는 방식이 무척이나 신선했습니다.

즈음하여 제 심신상에도 변화가 왔습니다. 신문구독을 끊고 TV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 어언 15년에, 책을 구매 해 본 것이 10년을 넘어선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 달라는 아이가 생긴 것입니다. 혼자 사는 阿Q형님 생각에 결혼을 미루었는지 나의 처지나 능력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이었는지 마흔세 살의 늦은 나이로 2006년 초에 결혼하여 그해 12월에 얻은 아들입니다.

아들에게 나도 하기 싫었던 것을 시키는 아버지가 되지 말고, 독서를 통하여 나 스스로 자아존중감을 갖고 아들을 존중하며 아들과 함께 걷는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궁벽한 지방 소도시에 살면서 대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공부를 계속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을 볼 때 덮어 둘 수 없는 위기감과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내가 지향해야 할 진실한 삶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하여, 또 내가 칠팔십의 나이에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책익는마을’에 전입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익는마을’에 전입해서도 3개월간의 준회원 기간은 물론 정회원이 되고나서도 ‘책익는마을’ 카페에 글 한 번 못 올렸던 것이 나의 타고난 성격이었겠지만 阿Q형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형님과 저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을 겪게 되었고 저에게 첫 발제의 기회가 주어진 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 형님과의 전투에 나서기 위하여 10년 만에 책을 주문하였습니다. 토론의 그 날을 기다리며 저는 제가 지니고 있던 무기를 갈고 다듬고 신식 무기 구입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날의 전장에서 멀리 서구에서 저를 도우러 달려온 마키아벨리의 도움으로 소규모의 승전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 전투 이후 저는 희망에 들뜬 마음으로 미숙하기 그지없지만 카페에 글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두 번째 발제의 기회가 주어진 달, 최후 결전을 위하여 형님의 일대기를 다룬 『아Q정전』과 『삼성을 생각한다』 두 권의 책을 연관 지어 각자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저마다의 아Q와 맹렬한 전투를 벌였습니다만 형님을 내 마음의 영지 밖으로 몰아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형님 측의 세력이 확연히 약화 된 것은 형님도 인정할 것입니다. 지난 8월 대천한화콘도에서 펼쳐진 ‘보령인문학페스티벌’에서 강사로 모신 12분의 교수님과 방명록에 성함 남겨 주신 180명의 우군 덕택에 1박 2일의 전투에서 아Q형님의 힘은 더욱 약화되었습니다. 물론 형님의 힘이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힘이 강성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힘에 강력히 저항하고 형님을 극복하기 위하여 작년 12월 ‘보령 책익는 마을’ 촌장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카페에 글을 남기기 시작한지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았고 운영위원도 아닌 저에게 촌장의 자리를 마련해준 속사정이야 지금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내 마음속에 웅크린 악마들과 비루한 노예들, 패배감에 물든 전사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취임을 하였습니다. 지난 7년 동안 ‘보령 책익는 마을’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열성을 다해 온 황선만 전 촌장, 운영위원을 비롯한 마을 선배님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열심히 마을 일을 살필까 합니다.

무능한 저의 능력을 향상시켜 주기 위하여 각 모둠별로 도움장이 신설되었습니다. 토론문화를 성숙시키기 위하여 운영위원회에서 계획한 사업을 실무적으로 진행할 분들이 모인 것입니다. 식상해 질 수도 있는 독서토론회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하여 다양한 방식을 도입하고, 초청 저자분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내일을 함께 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제부터 마을 분들은 <e시대와 철학>이라는 웹진에, 선별된 한 편의 글을 송고해야 하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전해 받은 후 서평을 쓰는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유월이 오면 2박3일의 일정으로 대천해수욕장에서 이진남 교수님이 이끄는 ‘철학온’과의 연합MT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연합MT는 ‘철학온’ 회원들과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들이 섞여서 저자초청토론회와 독서토론회를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철학온’에 철학을 전공하신분이 많다는 이야기에 긴장하는 회원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논리의 철학은 부족할지라도 부딪히며 살아온 삶의 철학이 있다”, “좋은 문학작품은 변화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의 고통을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믿음을 준다.”고 하셨던 이권우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작년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올해도 변함없이 8월이 오면 1박2일간 대천해수욕장에서 한여름의 ‘인문학페스티벌’을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도움장들의 행사진행과 운영위원들의 후원과 열기가 넘치는 마을 분들의 열정으로 보령시의 열린 시민들과 함께 또 멀리서 찾아주시는 분들을 모시고 책, 정, 술을 함께 하겠지요.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서평/특별기고]

강신익(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이 책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현대 정신의학이 다양한 문화의 자생적 문제해결능력을 무시하고 미국문화의 잣대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재단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태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저자는 거식증, 외상후장애증후군(PTSD), 정신분열병, 우울증 등 서구에서 발견되고 분류되고 관리되어 온 대표적 정신질환이 홍콩,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잔지바르, 일본에서 퍼져나가는 양상을 세심히 관찰해 보여준다. 그리고 서양의학은 토착문화의 자생력을 파괴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중 홍콩과 일본은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이어서 특히 관심이 간다.

아마 현대의학이 인류를 참혹한 질병의 고통에서 구해준 은인이라고 믿는 독자라면 무척 당혹스러울 것이다. <질병 판매학>, <더러운 손의 의사들>,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의 주머니를 털었나> 등 현대의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많은 책들이 출판되기는 했어도 의학이 인류구원의 보루라는 믿음은 우리 사회에 아직 굳건하다. 이 책들은 제약회사가 처방권을 가진 의사를 합법적으로 또는 탈법적으로 매수해 불요불급한 처방을 남발하도록 조장한다고 폭로한다. 실제로 약을 처방하는 대가로 제약회사가 의사나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리베이트의 문제가 여러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0년에 있었던 의사들의 파업은 의약분업을 통해 약품의 유통마진을 줄이려는 정부와 의사집단의 이해가 충돌한 사건이었다. 문제를 이렇게만 보면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조정과 합의가 해결책이다. 실제로 의사파업은 힘에 따라 이해관계를 재분배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문제를 좀 더 근원적인 곳에서 찾아낸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축적해 가는 삶의 지혜, 즉 공동체마다의 문화다. 그런데 미국의 의사들이 중심이 돼서 만들어낸 정신질환분류(DSM)에는 서양과 다른 세계관과 삶을 담을 공간이 없다. 따라서 서양의 정신의학은 서양인의 삶에서 형성된 정서와 문제를 기준으로 다른 문화권의 삶을 재단할 수밖에 없다. 홍콩의 거식증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날씬한 외모에 대한 무의식적 동경이 이 병의 원인이라는 서양식 설명은 실제 사례와 거의 들어맞지 않는데도 말이다. DSM은 특정 문화권에서만 발견되는 증상을 포함하기도 한다. 한국인에게만 있는 ‘화병’이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서양의 교향악에 국악 가락 한 소절을 집어넣는다고 그 음악이 국악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그런 문화적 불협화음에 관한 것이다.

문제를 이해관계보다 더 큰 문화의 틀 속에서 찾아낸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이로써 우리는 의료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 이것은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의학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대두된 여러 학문 중 하나인 의료인류학의 접근법이기도 하다.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아서 클라인만은 대만에서의 정신병 연구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문화적 연구의 길을 열었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서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문화적 폭력일 뿐 아니라 현지민을 새로운 의료상품의 소비자로 만들어 사회경제적으로 수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식증과 정신분열병의 사례가 주로 문화적 폭력에 대한 것이라면 외상후증후군과 우울증의 사례는 주로 문화적 폭력이 경제적 수탈의 수단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외상후증후군과 우울증은 각각 서구식 훈련을 받은 심리상담사와 거대 다국적 제약기업의 큰 시장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현지인들을 서양인처럼 앓게(미쳐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계가 미국처럼 미쳐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현지 문화에 대한 무지와 무시라면 다른 하나는 미국인들의 몸과 마음이 되어버린 그들 자신의 문화에 대한 반성의 부재다. 이 책의 초점은 전자에 있지만 후자에 대해서도 마땅히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것은 의료인류학이 갔던 경로이기도 하다. 최초의 의료인류학자들은 과학에 바탕을 둔 서양의학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식민지와 후진국에서는 건강에 관한 각종 미신과 토착신앙 때문에 서양의학이 잘 수용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위해서는 그들의 신앙과 문화를 연구해야만 했다. 그런데 후진국의 신앙과 거기에 바탕을 둔 토착의학을 연구하다보니 비교분석을 위해 같은 방법으로 서양의학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문화적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서양의학의 전제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서양의학의 보급을 위해 시작된 연구가 이제는 오히려 서양의학의 문제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된 것이다. “다른 문화의 믿음들을 깊이 탐구하면 우리 자신의 문화적 편향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 책은 서양의 정신의학이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내는 문제들에 관한 것이지만, 거꾸로 다른 문화의 시선으로 서양의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일상에 대한 과도한 의료화가 다양한 맥락 속에서 자동적으로 습득된 문제해결 능력을 무력화하여 오히려 병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이반 일리히의 <병원이 병을 만든다>, 그리고 프랑스의 정신의학이 식민지 알제리인의 정신을 파괴하고 지배하는 양상을 비판한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진단명을 쓰지 않지만 50대 이상 세대라면 히스테리와 신경쇠약이라는 서양에서 발명되고 수입된 증세에 익숙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증상을 앓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명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은 우울증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고 아마 그 발병을 더 촉진시켰을지도 모른다. 천안함 사건에서 생존한 승조원에 대해 실시했다는 외상후장애증후군 치료는 과연 어떤 문화적 전제에서 출발한 것인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혹시 치료를 빌미로 틀에 박힌 가치를 주입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적 반성 외에 우리들 자신의 본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물학적 존재인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문화에 길들여진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이 책은 이 점을 상기시켜 준다. 대중은 문화적 권위의 지지를 받는 틀 속에서 질병을 이해하고 경험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그 문화적 권위가 교회였지만 근대 이후 급속히 과학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20세기 이후에는 자본과 소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히스테리 환자들은 이 분야의 문화적 권위였던 의사 샤르코가 진단하고 분류하고 기술한 그대로의 증상을 겪었다. 오늘날의 소년소녀들은 TV에 등장하는 연예인의 외모와 행동과 소비패턴을 규범으로 삼고 닮으려 한다. 그래서 성형과 미용과 다이어트의 열풍이 분다. 이것은 “무의식이 감정의 고통을 당대에 이해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시도”의 결과다. 이렇게 문화적 기대와 개인적 경험이 상호 작용하고 우리의 생물학적 몸은 문화적 경험과 기대를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다. 몸과 문화는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생물-문화적(Bio-Cultural) 현실이다.

21세기의 문화적 권위인 자본은 바로 그 생물-문화적 현실을 파고들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새로운 생물-문화적 현실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자율적 문제해결 노력이 아닌 약품의 소비가 규범인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확대되면 모든 사람이 그 새로운 생물-문화적 현실의 구성요소가 된다. 책 속에 인용된 애플바움의 말처럼 “완벽한 건강이라는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부지중에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우리가 가진 자유의 도구들을 마음대로 통제할 고삐를 넘겨주고 말았다. 과학의 객관성, 의료의 윤리와 공정성, 환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맹세를 스스로 지키는 한에서 의학에 자율성을 부여할 특권은 이제 그들 손에 있다.”

의료인의 전문가로서의 자율성과 대중의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되찾고 환자가 의약품의 소비자가 아닌 자기 건강의 주체로 바로 설 수 있을지의 여부는 바로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 메커니즘을 바꿀 수 있을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 책이 의료와 관련된 모든 논쟁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삼우반, 2003[청춘의 서재]

윤지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오웰이 이 책을 쓰기까지

영국인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6.25~1950.1.21)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한겨레, 2010. 이하 『위건 부두』)에서 자신이 ‘상류 중산층 가운데 하급’, ‘특권 계급 출신이지만 돈은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론상으로는 상류층의 에티켓과 관습, 문화를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런 삶을 영위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부류로서 ‘두 가지 차원을 동시에 살아야 하는’ ‘피곤한 신분’이었다. 또 자신을 ‘부르주아의 완충재 같은 계급’이라고도 표현했다.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입학했다.

에릭이 이튼스쿨을 다니던 때는 1917년부터 1921년까지이다.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에릭에 따르면 영국에서도 유례없이 혁명적인 분위기가 만연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위험한 진보 작가의 책이라 분류되었던 것들을 모두 읽고 자신을 막연히 사회주의자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정말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했고 노동계급이 인간이라는 개념도 없었으며 책을 통해서나 그들의 고통을 안타까워할 뿐이었지 실제로 그들 가까이 갈 때는 여전히 그들을 혐오하고 경멸했다고 고백한다. “돌이켜보건대 그 시절 나는 시간의 절반은 자본주의 체제를 비난하는 데 쓰고 그 나머지는 버스 차장의 무례함에 분을 터뜨리느라 허비한 것 같다”(『위건 부두』, 191쪽)

이튼을 졸업했지만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할 성적이 되지 않았던 그는 1922년 미얀마(구(舊) 버마)로 건너가 5년 동안 ‘인도 제국 경찰의 일원’으로 일했다. 스무 살이 채 안 된 나이였다. 이튼 시절, 젊은이들에게 1차 대전 참여를 부추기기만 한 기성세대의 비겁함과 또 전쟁을 무능하게 지휘했던 노년층에 코웃음을 치며 기성세대가 내세우는 정통성과 권위에 반항을 했다지만 이튼에서 전수받은 대영제국의 국민이라는 교육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진 못했나 보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도 식민지의 관료였다. 그러나 에릭은 – 수입이 많고 안정된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권층 노릇하기 쉬운 – 식민지의 경찰직을 선택하고 나서야 제국주의의 실상과 마주친다.

1927년, 휴가를 받고 영국에 도착한 에릭은 제국의 경찰 노릇을 그만하겠다고 결정한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찰직을 떨쳐낸 에릭은 희망했던 작가가 되기 위해 1928년 친척이 살고 있는 파리로 옮겨와 습작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미얀마에서 보냈던 시간들로 인해 괴로웠다.

“나는 5년 동안 압제의 일원으로 복무했고 그만큼 양심의 가책이 컸다. 잊히지 않는 숱한 얼굴들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른다. 법정에 선 피고들, 사형수 감방에서 최후를 기다리는 죄수들, 나에게 윽박질당하던 부하와 냉대당하던 늙은 농부들……내가 느낀 죄책감은 너무 엄청나서 속죄를 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을 5년 동안이나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번민 끝에 결국 얻은 결론은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단순한 이론이었다.”(『위건 부두』, 200쪽)

“나는 내 자신이 단순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스스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졌다.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 편에서 압제에 맞서고 싶어졌다……당시에는 실패만이 유일한 미덕처럼 보였다.”(『위건 부두』, 201쪽)

“그렇지만 나는 노동 계급의 처지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실업에 관한 통계를 본 적은 있었으나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부끄러울 것 없는’ 빈곤도 최악의 수모를 당한다는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위건 부두』, 202쪽)

“그들은 ‘하류 중에서도 최하류’였으며 그런 그들이야말로 내가 접촉하고 싶었던 부류였다. 그때 내가 진심으로 원한 것은 번듯한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길을 찾는 것이었다…… 일단 그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나는 밑바닥까지 내려간 것일 테고 그러면 죄책감을 얼마간 떨쳐버릴 수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것이 불합리한 생각인 줄은 당시에도 알았다.”(『위건 부두』, 203쪽)

파리의 접시닦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하 『밑바닥 생활』)은 바로 그 속죄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는 파리와 런던에서 경험했던 밑바닥 생활을 가족과 친지들이 알고 당황할까봐 필명을 만들어 1933년 1월 9일 책으로 엮어낸다. 전체주의를 철저히 거부했던 ‘조지 오웰’이란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유럽의 두 도시의 하층민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구성된 르포르타주 작품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작품의 전반부는 1929년 늦가을의 파리 생활을 주로 반영했고 후반부 영국생활은 1928년 겨울에서 1931년 여름 사이에 그가 직접 체험하거나 간접적으로 취재한 내용을 재구성했다.”(『밑바닥 생활』, 286쪽)고 한다. 오웰도 이렇게 말한다. “거기 적은 일들은 재구성되긴 했어도 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위건 부두』, 205쪽)

1929년 10월 뉴욕 증권 시장의 폭락 여파가 유럽에도 번져나갔다. 1931년, 영국에서도 대공황이 시작되었고 4명 중 1명이 실직자로 전락한다. 약 300만 명 정도가 실직했으며 실업수당으로 겨우 기아와 노숙을 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더불어 기아와 노숙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빈곤은 이웃의 일로 번져갔다. 암울하고 불안정한 시기였다.

오웰은 ‘하류 중에서도 최하류’의 생활을 파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아침부터 욕설이 들리는 여관에 거처하면서 밑바닥 사람들의 언어와 일상들을 빠짐없이 체험한다. 겨우 연명할 일거리인 영어 교습이 끊기고 난 뒤부터는 그야말로 진짜 밑바닥이 되었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사귄 친구(보리스)의 도움으로 호텔의 접시닦이가 된다. ‘노예의 노예’라는 접시닦이 일은 부르주아의 완충재 역할을 하는 ‘하급 상류중산층’ 오웰의 계급적 이중성을 무너뜨렸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끊임없이 서두르고, 장시간 노동과 탁한 공기를 견디는 것이다. 그들은 이 생활을 탈출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급료로는 한 푼도 모을 수 없고, 일주일에 60시간에서 100시간의 노동이 다른 일에 훈련할 시간을 남겨주지 않기 때문이다.”(『밑바닥 생활』, 102쪽) “그들의 생활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놓는다.”(『밑바닥 생활』, 152쪽)

오웰은 밑바닥 현실과 밀착되어 있는 살아있는 글들로 20세기 초반의 빈민층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하급 상류층으로 살았던 그가 최하류층을 겪으며 쏟아내는 빈민층의 생활과 노동 강도에 대한 비유들도 당시 노동 현장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오웰의 글은 무겁게 흐르다가도 번뜩이는 재치를 보인다. 오웰의 묘사에 흠뻑 빠져들어 마치 내가 호텔 지하 일터에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껄껄 웃게 하는 풍자와 해학들을 만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들이 과장스럽거나 요란하지 않다는 것이다.

해학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다가도 어느새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이것이 오웰 글의 묘미인 것 같다. 노동자들의 고단한 생활과 환경이 곧 나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그 진실들을 외면하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소‘썰’>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때와 같은 수준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내 이웃에 있기 때문이다. 생계를 꾸려가야 할 노동자이든,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대학생이든 아직도 궂은일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건너기 힘든 계급의 강’을 넘어서기 위해 첫차를 타고 막차를 기다린다. ‘언젠가는 나도 돈을 모으면……’

런던의 부랑인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런던에 있는 친구에게 직장을 부탁했던 오웰은 선천성 정신박약자를 돌보는 일이 생겼다는 친구의 편지를 받고 프랑스를 떠나지만 런던에 도착해서야 그 일이 어그러진 것을 알게 된다. 만일 지금처럼 그때도 휴대폰이 있었다면 부랑인 생활을 하지 않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위건 부두』에 따르면 오웰은 이미 부랑인 생활에 뛰어들기 위한 준비 기간을 거쳤다.

오웰은 부랑인들과 일상을 함께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방치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앞서 부랑인들과 섞이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묘사한다. 오웰은 자신의 상류층 언어 습관에 신경을 쓰면서 첫눈에 신분이 들통이 나 염탐자로 오해 받고 부랑인들에게 거부당할까봐 긴장했지만 그저 그들과 같은 차림새 하나만으로도 부랑인의 무리에 낄 수 있었다고 한다. “옷은 즉시 나를 새로운 세상에 들여놓았다.”(『밑바닥 생활』, 168쪽)

그렇게 즉시 부랑인이 된 오웰은 그들을 따라 구세군 구호소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최악의 구호소는 있지만 완전한 구호소는 어느 곳에도 없을 뿐더러 최소한을 갖춘 구호소도 없다는 사실을 영국민에게 알린다. 외부와 단절된 구호소 안의 참담한 환경들이, 일다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 부랑인들의 허기진 현실이, 그에 따른 무기력함이 오웰의 ‘기록’을 통해 밝혀진다.

부랑인들은 부랑하도록 법률로 강제되어 있다. 구호소에는 하루밖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부랑인은 당시의 법률 상황에서는 부랑하든지 굶어죽든지 해야 하므로 부랑인이 된다. 오웰은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악폐들뿐만 아니라 해결책도 제시한다. 런던에서 사용하는 속어와 욕설들을 따로 정리한 장도 있다. 또한 당시 파리와 런던의 물가까지도 잘 기록해 놓았다.

영국 사회의 한 면을 기록한 오웰의 이 책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구호소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도 일조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오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웰의 선택

지금 우리 사회는 창의성을 강조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창의성을 발휘해야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물과 현실의 상황을 직시하지 않은 채 떠올린 상상력과 창의력은 허술할 뿐이다. 편견과 획일성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만일 오웰이 밑바닥 생활에 관해 글을 쓸 때 귀동냥에만 의지했다면 그렇게 생동감 있는 표현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현장 체험은 상상력과 글재주를 더욱 빛나게 했다. 호텔 작업장과 구호소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 이유도 오웰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리스’를 친구로 사귀지 못했다면 속죄 행위의 하나로 여긴 접시닦이 일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오웰이 속죄만 하고 그 상황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허울뿐인 공리주의(최대다수의 최대행복)를 낳은 나라의 극빈자 상황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 혹은 보고 문학이라고 하는 ‘르포르타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과 진실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통로이다. 오웰은 ‘하류 중에서도 최하류’란 주제를 선택하였고 노동환경과 노동자 의식의 관계, 상류층과 하류층의 의식 등을 관찰하고 비교하면서 당시의 사건과 사실들을 충실히 묘사한다. 오웰의 밑바닥 생활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은 자신의 빈곤한 상황에만 집중하지 않고 최하류층의 열악한 상황과 그들의 환경에서 비롯되는 비열함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를 견디게 하는 최소한의 경비들도 꼼꼼히 적고 있다.

르포계에서는 ‘취재력이 곧 표현력’이란 말을 한다. 이것은 현실의 모습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심층적으로 포착해야 한다는 것으로, 상상력만으로는 창의성을 키울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열정이다. 언제나 그릇된 압제자에 저항하고, 언제나 옳은 피압제자와 연대하려는 열정. 그 열정은 르포를 완성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작가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마치 그것은 열정이 준비한 선물과도 같다.

오웰은‘실패만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성공과는 거리가 먼 밑바닥으로 간다. 그러나 끼니를 며칠씩 거르고, 접시를 닦고, 부랑인과 함께 떠돌면서도 상류층의 징표인 ‘h’발음을 없애지는 못한다. 하지만 노동계급과 최하층민에 대한 편견은 오웰에게서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하류층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열심히 일하지만 늘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삶의 질곡을 이해하게 된다.

진정한 르포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를 변화하게 하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구세군에는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밑바닥 생활』, 284쪽)

나는 오웰이 이후의 다른 작품 속에서도 파리와 런던에서 있었던 최하류의 생활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읽게 되면 속죄로 시작했던 그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런데 혹시 “왜 최하류층인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 사회, 한 국가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의 의식주 상태를 보면 그 사회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사람 보라고 건네는, 개 이야기들[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한참 전부터 박기범의 그림책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특히 그가 쓴 개 이야기들 – <새끼개>, <어미개>, <미친개>는 읽는 동안은 물론이고 읽은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아서, 말이 되든 안 되든 그 느낌을 나누고 싶었다. 박기범은 <새끼개>, <어미개>를 같이 냈고 몇 년 뒤 <미친개>를 썼다. 아이들과 이 책들을 볼 때는 꽤 시간을 들여 찬찬히 내가 읽어 주었다.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좋았다. 아이들에게도 나와 비슷한 여운이 남는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같이 볼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보따리를 풀려고 하니 쉬 나오질 않는다. 요즘 자꾸 떠오르는 건 <미친개>다. 하지만 박기범이 책을 내놓은 순서대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네 마음을 알 수 있을까?

– 새끼개(박기범 글, 유동훈 그림, 낮은 산 펴냄, 2003년) ·어미개(박기범 글, 신민재 그림, 낮은 산 펴냄, 2003년)

 

[새끼개, 어미개 표지]

나는 형제가 다섯이다. 우리 어릴 때야 형제가 여럿인 집이 드물지 않기도 했지만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모두 형제가 없이 자란 터라 “딸, 아들 상관없다. 많이만 낳아라.”하시는 시어머니 말씀을 기분 좋게 따르다 보니 다섯까지 낳게 됐다고 어머니는 곧잘 이야기하신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신 자식들만으론 성이 차지 않았나 보다. 어릴 적, 개를 자주 키웠던 걸로 기억한다. 게다가 작지 않은 어항에는 물고기들이 늘 뻐끔거리고 있었고 마당에 걸린 새장에선 새들이 종알댔다. 집 안팎으로 화초도 넘쳐났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언제나 꽤 많은 사람들과 동식물이 오글거리는 배경이 함께 있다.

한데 참 이상한 일이다. 지금 나는 어떤 동물도 기를 엄두를 못 낸다. 어쩌다 선물로 받은 작은 화초도 무럭무럭 크도록 길러보질 못했다. 다른 형제들은 어린 시절의 배경을 지금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와서는,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화초에 재미를 붙이거나 개를 기르기도 하는데 나는 같이 사는 사람도 동물도 화초도 없다.

일곱 살 때던가, 집에서 기르던 개가 없어졌다. 동네를 헤매며 개를 찾다가 자전거 뒷자리에 우리 개를 싣고 가는 아저씨를 봤다. “어, 아저씨! 그 개······” 어린 내가 웅얼웅얼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아저씨는 뒤를 힐끗 돌아보더니만 무심히도 휘리릭 내달아 가버렸다. 사람들이 개를 품에 안고 가는 걸 보면 이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새끼개> 책표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읽기도 전에 이미 슬펐다. 책을 읽다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자전거 뒷자리에 실려 끌려가던 어릴 적 우리 개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 같다.

새끼개는 엄마 젖을 뗄 무렵, 개 파는 가게로 팔려갔다가 아이가 둘 있는 집으로 가게 됐다. 아이들은 새끼개를 무척 좋아했다. 서로 개를 안겠다고 달려들었고, 비행기를 태운다고 높이 들고 윙윙거리며 맴돌거나, 여름날이면 시원한 물을 욕조 가득 채워서는 목욕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런데 새끼개는 아이들이 건네는 손길을 좋아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태워주면 어지러웠고 목욕물은 몸서리나도록 차갑기만 했다. 새끼개는 ‘순돌이’라는 자기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점점 사납게 짖어댔다. 하지만 아이들은 겁먹은 개의 눈망울을 착한 눈빛으로 받아들였고 새끼개가 힘들어 그르릉거리면 장난을 거는 줄로만 알았다.

 

[<새끼개> 중에서]

새끼개는 답답하고 무섭고 힘들었다. 그는 자기를 가만 놔두라고 간절히 호소하느라 짖는데 사람들은 개가 왜 이리 거칠어지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어머니는 자꾸 병이 나고 사나워지는 새끼개를 결국 개 파는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가게는 온갖 개들이 각자의 이유로 울어대는 소리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쿠워어엉, 커어헝. 커헝” 낯설고 불안한 새끼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른 개들과 마찬가지로 목청을 돋우어 짖는 것뿐이었다.

하늘이 파랗게 좋은 어느 날, 가게 주인이 개장을 청소하는 틈을 타, 새끼개는 주인의 팔뚝을 물고는 급기야 탈출을 했다. 앞으로 내달리며 새끼개는 자유의 기쁨을 맛보지만 그것도 잠시, 떠돌이 생활은 쉽지 않았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몇 날 밤을 보내다가 새끼개는 저도 모르게 옛 주인이 살던 아파트 쪽을 향한다. 마침 먼발치서 두 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두 아이는 새끼개 대신 새로 사온 개와 즐거이 노는 중이었다. 그리움과 반가움이 솟구친 새끼개는 두 아이를 향해 달려가다가 그만 차에 치이고 만다. 온 몸이 길바닥 위로 납작 뭉개진 새끼개. 파노라마처럼 지난 시간들이 스쳐간다.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새끼 개의 꼬리가 살랑 움직였지만 그뿐이다.

박기범은 <새끼개>를 쓰고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자꾸 자기 자신인 것만 같았다고 작가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그는 아름다운 세상과 평화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거리가 멀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는 인간방패 반전평화단이 되어 이라크로 달려갔다. 전쟁에 반대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편지와 이라크 아이들의 답장을 직접 전해주는,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우편배달부 일을 기꺼이 했다.

박기범은 그가 겪고 느끼는 현실을 빼거나 보태는 것 없이 담담하게 풀어가는 편인데 놀랍게도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늘 마음에 물이 가득 고이는 느낌이다. <새끼개>는 박기범이 개의 눈을 빌어서 쓴 아주 섬세한 현실 고발이다. 아니, ‘고발’이란 말은 너무 세고 거칠다. 그의 문장은 결이 더없이 섬세하니까. ‘안타깝고 슬픈 현실 보고서’ 정도가 낫겠다. 어쨌거나 박기범은 현실 보고에 그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연이어 쓴 개 이야기, 박기범이 꿈꾸는 화해의 이야기가 <어미개>다.

 

[<어미개> 중에서]

신문지나 종이 상자를 거두어 근근이 생활하는 할머니는 동물 병원 앞에 묶여 있던 떠돌이 개 ‘감자’를 데려와 같이 살고 있다. 언젠가 ‘어른의 흔적’을 보인 뒤로 감자는 수시로 새끼를 배고 낳는다. 그때마다 새끼들이 젖을 뗄 무렵이면 할머니는 새끼개들을 개장수에게 넘긴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전쟁으로 어머니도 잃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 남편과도 헤어진 할머니. 이젠 자식들마저 멀리 떨어져 산다. 이런 할머니가 이별의 아픔을 왜 모를까마는 어려운 형편에다 좁은 집에서 감자가 낳는 새끼들까지 다 거둘 수는 없다. “감자야, 괜찮다. 언제 떼도 새끼는 떼는 게야. 때가 되면 다 어미 품을 떠나는 게지.”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되고 새끼를 낳고 또 얼결에 이별의 인생을 배우면서 감자가 새끼를 배고, 낳고, 떼어내기를 일고여덟 차례. 그러면서 감자와 할머니는 같이 늙어간다. 사람보다 빨리 나이 들어가는 감자는 할머니와 친구가 될 만큼 늙은 ‘할망구 개’가 됐다. “할머니랑 살아서 좋아요.” “그래, 나도 너하고 사니까 이렇게 좋네.” 이제 둘은 눈빛만 보아도 마음을 안다. 감자는 나중에 죽으면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도 좋으니 할머니와 헤어지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몇 해를 더 살다가 어느 날 할머니는 잠든 채 깨어나질 않는다. 그리고 죽은 할머니 곁을 이틀 꼬박 지키던 감자도 숨을 놓는다. 지금 할머니와 감자는 나무로 다시 태어나, 같이 살자던 소원대로 서로를 향해 가지를 마주 뻗으며 살고 있다.

<어미개>가 나중에 쓴 작품이라지만 사건의 시점은 <어미개>가 <새끼개>에 앞서 있는 듯 보인다. 두 책을 읽다 보면 순돌이는 감자가 낳아 팔려간 새끼들 가운데 하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박기범은 <새끼개>에 담을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현실을 <어미개>를 쓰며 조금이나마 뛰어넘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나를 오래도록 뒤흔든 책은 아무래도 <새끼개>다. 뭐랄까, ‘비뚠 사랑’이나 ‘엇나간 소통’ 같은 말들이 떠오른다.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이해하기 힘든 슬픈 관계 같은.

어릴 적 잃어버린 개는 내 첫 ‘상실의 기억’이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 중에도 개나 다른 동물, 곤충을 기르는 아이가 제법 된다. 생명의 소중함이라든가 보살핌과 배려 같은, 긍정적 가치관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말도 맞다. 그런데 내 경우를 보면 개와 같이 뛰놀던 즐거운 추억이나 그들을 보살피던 아름다운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웅크린 채 끌려가던 개, 어느 날 아침에 어항을 들여다보니 아프다는 언질도 없이 물 위에 둥둥 뜬 채 죽어버린 물고기 – 이런 기억만 깊고 흉한 상처로 마음 깊은 곳에 각인돼 있다.

요즘은 ‘애완동물’을 넘어서서 ‘반려동물’이란 말을 쓴다. 인간의 세상으로 그들을 데려와서는 먹이를 가공하고, 인간 생활에 맞춰 그들의 생리와 모양새까지 가공하면서 도대체 진정한 반려가 가능한 건지 나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녀석들이 행복할까. 녀석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물고기, 새, 개와 함께 ‘반려’를 기대하며 자라던 내 경험에서는 좋은 과정이 사라진 채, 녀석들 속을 몰라 답답하다가 결국은 하나같이 떠나버리는 마침표만 살아 있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많이 무겁고 당황스런 결말이다. 생각보다도 더 나는 겁이 많고 약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새끼개>를 읽고 쓴 글]

그러면서도 나는 사람들과 지내는 어떤 동물에게든 무척 친근하게 굴었다. 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마음을 들킨 적이 있는데 ‘똘똘이’때문이다. 똘똘이는 내가 시골에서 지낼 때 만났던 개다. 똘똘이네 집은 내가 오가던 길목에 있어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쳤다. 만날 때마다 나는 늘 인사를 건넸다. “똘똘아, 잘 잤어? 나는 아침에 된장국 먹었는데 너는?” “나 밭에 갔다 올게. 넌 이제 뭐할 거야?” “나 막걸리 한 잔 했다~. 밤이 깊은데 왜 여태 안 자?” “똘똘아, 곧 비가 올 것 같다. 난 비오는 날 좋아해.” 이런 식으로. 내가 주책없는 수다쟁이라면 똘똘이는 무척 담백한 녀석이었다. 내가 뭐라고 주절대든 녀석은 거의 짖지도 않고 눈만 껌뻑이며 가만 앞을 응시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서너 달이 지났을까, 그날도 나는 똘똘이에게 말을 걸었다. “똘똘아, 오늘 꽤 덥네. 점심 먹었어?” 녀석 앞에 쭈그려 앉으며 인사를 하는 참인데 똘똘이가 갑자기 내 얼굴로 바짝 다가서며 고개를 쑥 내미는 게 아닌가. 언제나 똘똘이의 다정한 응답을 기다리긴 했지만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악!! 아니아니, 난 아직 너랑 뽀뽀할 생각은 없어!” 뒷걸음치며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질렀다.

만날 때마다 간이랑 쓸개랑 다 빼줄 것처럼 살살 녹는 목소리로 온갖 애교를 떤 건 나였다. 이제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서려는 똘똘이를 나는 순식간에 치한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내 고함소리에 우뚝 멈춰선 똘똘이는 천천히, 정말이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다. 다시는 나를 보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몸짓이었다. 그 장면은 마치 운동 경기 중계나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을 천천히 돌리는 것하고 똑같았다. 똘똘이만큼 나도 나한테 놀랐다. 내 겉과 속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뭔가 사태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아니 똘똘아, 그러니까 내 말은······” 똘똘이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외면한 얼굴을 절대 되돌리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날마다 똘똘이에게 빌었다. “똘똘아, 제발 화 풀어. 이리로 고개 좀 돌려 봐, 응?” “똘똘아, 나를 조금만 이해해 주면 안 될까? 사실, 뽀뽀는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똘똘아, 제발 용서해 다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별별 사과를 다 해도 똘똘이는 내가 곁을 지날 때마다 꼭 외면했다. 빌고 또 빌기를 보름은 족히 된 걸로 기억한다.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똘똘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봐 주었다. 어찌나 좋던지, 고맙다고 인사하는 내 목소리마저 떨렸다. 그 뒤로는 똘똘이 앞에서 절대로 촐싹대지 않게 됐다.

사실 나는 ‘소통의 참맛’을 누구보다 많이 누리는 사람이다 생각한다. 아이들과 만나면서 나는 말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마음을 나누는 기쁨을 맛본다. 아이들이 무척 예민한 존재라는 것도 새록새록 배운다. 기분이 좋아서 내 눈과 입이 동그래지기 시작하기만 해도 아이는 금방 기쁜 표정으로 빛난다. 어떨 땐 아무 말 않고 곁에 앉은 아이 손에 내 손을 얹는데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다는 걸 느낀다. 내 슬픔이, 기쁨이, 때로 안타까움이 아이 손에서 팔로 스르륵 달려가서는 순식간에 아이 마음으로 들어앉는 게 ‘보인다’.

하지만 아이 행동이나 표정에서 뜻을 찾지 못할 때도 많다. 좋은 선생님이 되려면 아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잘 아는 게 먼저일 텐데 도무지 모르겠다 싶을 때가 있다. 뭐든 그렇지만 특히 아이에 관한 한, 성급히 단정하기보다는 모른다고 유보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한편 있다. 아이는 모든 가능성을 품은 존재니까.

지금은 중학생인 동우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처음 동우와 만났을 땐 자기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애기 같은 목소리를 내서 조금 놀랐다. 같이 시를 짓는 시간, 동우 시에는 별과 언덕과 고통이란 단어가 곳곳에 등장하며 무척 성숙한 느낌을 주는 시를 써서 나는 또 놀랐다. 동우는 말투를 쉬 고칠 수 없어서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제법 받았을 게다. 그래서 우리와 만나며 위로를 많이 받은 것도 같다. 글을 같이 쓴 뒤로 친구들은 동우를 달리 보는 듯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문도 자자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잘 부르려고 하질 않았다. 아주 나중에야 어렵사리 한번 듣게 됐는데 동우는 글로만 노래를 잘 하는 게 아니었다. 어디서 그렇게 놀라운 고음과 미성이 나오는지, 친구들 노래에 허밍을 넣는데 정말 일품이었다. 동우는 글노래, 입노래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동우네 모둠 이름은 ‘웃음바다’였는데 우리는 이래저래 웃을 일이 참 많았다.

‘웃음바다’ 친구들과 같이 음악을 듣겠다고 삐걱거리는 CD재생기를 들고 간 적이 있다. 기계가 고물이라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미리 걱정까지 털어놓고는 음악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에 기계가 헛돌기 시작했다. 어쩌지, 난감해 하는 순간 동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달려가더니만 발로 거세게 CD재생기를 걷어찼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동우야! 기계는 때린다고 말을 듣진 않아!!” 평소 내 목소리에 비하면 강도가 제법 세서 심하게 나무라는 모양새가 됐다. 갑자기 뚝 멈춰 선 동우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 그때 나는 동우 행동이, 눈빛이 무얼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리로 돌아가 앉은 동우는 그 전과는 달리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아무래도 잘못은 동우가 아니라 내가 한 것만 같은 불안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날 수업을 되짚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드러난 동우 행동은 거칠었을지 몰라도 사실은 그게 동우의 사랑 아니었을까? ‘너 왜 우리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거야? 우리 친구들이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 하는 게 안 보여?’ 이런 마음으로 기계를 걷어찬 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까 상황은 완전히 다른 빛깔을 띤다. 그리도 소심하던 동우가 하면 안 될 거친 행동을 한 건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느낌이 맞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내 기분도 덩달아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나무라듯 말했을 때 동우가 짓던 표정은 자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실망과 항변을 같이 담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그 다음 수업 때 “동우야, 내가 네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선생님 좀 도와줄래?” 조심스레 물었지만 동우는 끝내 아무 대답도 안 해줬다.

김호경(어린이 철학선생님) /

정말이지 이럴 순 없어![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이럴 수 있는 거야??!」(페터 쉐소우 글·그림, 한미희 옮김, 비룡소, 2007년)

들지도 못할 커다란 가방을 질질 끌며, 그러느라 뒤에 한가득 먼지까지 거느리고 한 소녀가 공원에 나타난다. 표정이 심상치 않다. 소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긴장해서 침을 꼴깍 삼키지 않고는 첫 장을 넘길 수 없다는 듯, 제목도 “이럴 수 있는 거야??!”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기면 공원에서 소녀를 바라봤을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에 우리는 무슨 일인지 몰랐어요. 갑자기 그 여자 애가 나타났거든요.

할머니들이 잘 들고 다님 직한 새빨간 가죽 가방을 끌고 소녀는 그렇게 공원에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는 화가 잔뜩 나서 씩씩대며 소리친다. “이럴 수 있는 거야??!”

몇 걸음 걷다가는 또 도무지 참을 수 없다는 듯“이럴 수 있는 거야??!”를 되풀이한다. 풀밭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던 사람들, 간식을 나눠 먹던 사람들, 뱃놀이를 하던 사람들 – 공원에 있던 누구나 놀란 건 물론이고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마침내 한 사람이 용기를 내서 묻는다.

 

“너 왜 그러니?”

작은 여자 애는 악을 쓰듯 소리쳤어요. “엘비스가 죽었어!”

아, 사람들은 소녀가 보인 모든 태도가 이해간다. 그리고 다들 엘비스를 추억하며 소녀를 위로한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못하는 게 없었던 엘비스! 나도 엘비스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런데 소녀의 표정은 풀리질 않는다.

“가수 엘비스가 아니야. 내 엘비스라니까!”

소녀는 엉엉 울며 가방을 열어 보인다. 그 안에는 노란 새 한 마리가 죽어 누워 있다. ‘소녀의 엘비스’다.

 

소녀 곁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마음 아파하며 인사를 건넨다. “안됐다, 정말 안됐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심지어 개까지 “멍멍.” 그때 한 친구가 불쑥 말한다, “엘비스를 묻어 주자.”

이제 공원에선 경건한 장례식이 벌어진다. 촛불을 들고, 꽃을 들고, 향을 피운 장례 행렬. 엘비스를 묻은 무덤가에서 사람들은 소녀가 들려주는 추억을 듣는다. 가수 엘비스만큼이나 아름답게 노래했을 엘비스의 노랫소리도 소녀를 통해 듣는다. 모두들 조금 울고, 서로 꼭 끌어안는다.

아이들과 세상살이를 생각하며 만나다 보니 ‘삶과 죽음’이란 주제로도 가끔 이야기를 나눈다. 자연 재해나 전쟁으로 세계 어디선가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기사를 보기도 하고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런 이야깃거리가 아이들의 흥미를 잠시 돋우는 데 그치거나 심지어 지루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느낌이 들 때 무척 씁쓸하다. 아이들에겐 전쟁으로 죽어가는 또래 친구들 이야기보다 친구 집 강아지가 죽은 게 더 큰 사건이다.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이는 할아버지의 죽음보다 우리가 못 만나는 게 더 속상하다.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시려는데 아이는 전화해서 떼를 쓴다. “우리 수업 그냥 하면 안 돼요?” 하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느끼니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 추상적이거나 먼 데 있지 않다는 걸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아이들이 ‘나’에서 벗어나 ‘우리’와 ‘그들’을 보는 눈을 뜨는 게 ‘아름다운 성장’이라면 그 길이 만만치만은 않음을 곳곳에서 느낀다.

어쨌거나 출발은 ‘나’다. 그러나 조금씩 ‘우리’와 ‘그들’로 건너가는 일, 그리고 그 안에 나도 있음을 발견하는 일. 아이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그 길을 찾고 싶다. 틈나는 대로 아이들과 가까운 공원에라도 나가는 편이다. 나는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많이 생각하는 쪽보다는 많이 느끼는 쪽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생각은 한계가 뻔하지 않을까. 반면 자연이 주는 느낌은 내 생각보다는 더 크고 깊을 터. 내가 설명하고 보여주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보고 느낄 테니까. 아이들도 밖으로 나가면 굳이 많은 얘길 나누지 않아도 좋아한다. 표정과 온몸으로 뿌듯한 수업을 했다는 확인 도장을 늘 찍어 준다.

예쁜 꽃을 보면 일단 꺾으려는 아이, 곤충을 발견하면 죽이려 드는 아이들이 있다. 꽤 오래 전 일이다. 그날도 아이들과 공원엘 갔다. 막 공원에 들어서는데 이미 들떠 있던 두 아이가 개미를 발견하고는 마구 짓밟는다. 그 순간, 아이는 정말 신나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안 돼!” 숨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개미네 동네에 놀러 와서는 개미들을 그렇게 죽이니 우리가 밖으로 나온 게 잘못이구나!” 별 생각 없이 장난 좀 치려 했을 뿐일 아이들은 금방 풀이 죽는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다음 수업을 할 때다. 수업하는 방에 파리가 들어왔는데 아이들은 피하려고 호들갑이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나는 ‘어른답게’ 적당한 도구를 써서 파리를 잡았다. 파리를 탁 내려치는 순간 한 아이가 소리친다. “안 돼요, 그것도 생명이잖아요!!” 또 다른 아이, “파리가 뭘 어쨌다고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요?!” 어이쿠, 이를 어쩌나. 파리님은 이미 돌아가셨는데!

지난주의 교훈을 금방 삶으로 실천하는 아이들.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엄청난 죄인이 되어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면서 아이들이 제안한다. 파리 장례식을 해 주자! 아이들은 종이를 돌돌 말아 ‘파리관’을 만들고 파리에게 상황 보고서와 사과문을 썼다. 우리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 편지와 함께 파리를 묻어주고 숙연하게 묵념까지 드렸다. 그 뒤로 아이들은 수업하다가도 종종 파리를 생각하고 그의 안녕을 기원하곤 했다.

또 생각나는 일. 아이들과 미술관에 갔다. 숲에 둘러싸인 미술관이어서 그랬을까, 미술관 밖은 말할 것도 없고 전시실 안까지 남생이무당벌레가 무척 많이 들어와 있었다. 이미 관람객에게 밟혀 죽은 놈들도 꽤 됐다. “얘들아, 바닥에 무당벌레가 엄청 많다. 조심해야겠어.” 우리는 결국 미술관에서 ‘딴짓’만 했다. 벌레를 밟을 새라, 발끝으로 걸으며 무당벌레 구경에 정신이 팔렸으니까.

그러다가 한 아이가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선생님, 벌레가 넘어져서 일어나질 못해요!” 뒤로 나자빠져 바동거리는 무당벌레를 발견한 거다. 얼른 벌레를 바로 놓아주고 나는 아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기특한 녀석! 그 뒤로 아이들은 너도나도 넘어진 벌레찾기에 빠졌다. “여기도요, 선생님!” 아이들이 부르는 대로 이리저리 겅중거리며 무당벌레를 바로 놓아주느라 얼마나 바쁘고도 신났던지.

그런데 이건 웬 일, 한번은 아이가 부르는 데로 가보니 이번에 바동거리는 놈은 무당벌레가 아니라 바퀴벌레다. 흠!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바퀴벌레도 얼른 바로 눕혀 주었다. 휘리릭 달려가는 바퀴벌레를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말라비틀어진 도토리를 발견하고는 묻어주는 아이. 아스팔트 틈을 비집고 피어난 민들레를 들여다본다고 오래 쭈그려 앉아 있는 아이.

황당하고 유치한 동화 같기도 하다. 나와 만나면서 아이들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바보가 되는 건 아닐까? 감상주의자가 되는 건? 그런데 나는 아이들 그런 모습이 참 좋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다분히 조장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모기 한 마리도 죽이지 않는 ‘착한 선생님’이다. 아이들 믿음대로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실제로 파리, 모기도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꿈틀대는 벌레를 사랑하기는 나도 힘들다. 집에 나타나면 녀석들이 빨리 제 갈 길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짝 들어서 밖으로 내놓거나, 영 징그러우면 한동안 못 본 척하며 나가길 기다린다. 아주 커다랗고 시커먼 거미가 목욕탕에 나타났을 때는 차마 집어 내놓을 수가 없어서 녀석과 꽤 오래 동거하느라 불편을 겪기도 했다.

지난 여름, 이사를 했다.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길에서부터 집 담장까지, 담쟁이덩굴이 푸르게 덮여 있어서 무척 좋아했다. 베란다 앞으로 나뭇가지가 무성히 뻗어 있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이사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어느 날, 집 목욕탕에서 지네를 발견했다.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해도 여느 때처럼 녀석이 알아서 나가주길 바라며 그저 조심조심 지냈다. 혹시 방심할까 봐 목욕탕 문에 ‘벌레!’라고 써 놓는 정도의 조치는 취했지만.

며칠 뒤, 이번엔 내 잠자리에서 지네가 나타났다. 어렴풋이 잠이 들다가 어깨가 근질거려 툭 치고 보니 지네였다. 나는 순식간에 공포영화 속 여주인공이 되었다. 꽤 깊은 밤이었는데 마루로 뛰쳐나가며 소리를 지르고 지르고 또 질렀다. 그날 밤 나는 온몸을 최대한 오그리고 소파에서 잤다. 녀석은 녀석대로 놀랐을 터, 급하게 내 어깨를 한방 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는 숨바꼭질 하듯 며칠을 내리 이불과 옷에서 나타났다.

집은 더 이상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들어올 수도 안 들어올 수도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지네에 관한 정보를 속속 보내왔다. 지네는 높은 데를 잘 오르지 못한다기에 침대를 장만했다. 지네는 부드럽고 따뜻한 섬유를 좋아한단다. 밤마다 이부자락이 절대 밑으로 늘어지지 못하도록 돌돌 말고 자느라 잠을 깊이 자지 못했다. 지네는 밝은 데를 싫어한다 해서 한 달이 넘도록 밤에도 불을 못 껐다. 어두운 구석 어디선가 녀석이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고 그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지네가 축축한 담쟁이덩굴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아, 이놈의 아름다운 자연이 문제였던 거다. 그리도 좋아 보이던 담쟁이덩굴, 정원의 나무들, 자연이 어쩌고, 생명이 저쩌고, 존경하는 소로우와 니어링 부부 – 모두가 거추장스러웠다. 지네는 금슬이 좋아서 보통은 쌍으로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뒤로는 이 집에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우글거리고 있을 거란 공포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장마가 끝날 무렵(딱 내가 이사한 즈음이다!)부터 10월까지 지네는 무럭무럭 자란다나, 이런! 찬바람 부는 11월로 들어설 때까지 나는 사색이 돼서 지냈다.

지네와 맞닥뜨린 뒤 무척 많이 배우고 느꼈다.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관념적이었는지. 내 ‘생명 사랑’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두 달 넘게 내 생활과 마음은 터무니없이 헝클어져갔다. 한편으론 지네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죽음 앞에서 “이럴 수 있는 거야?!” 외치던 내가, 지네를 만난 뒤부터는 스스로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럴 순 없어!!”

나는 경험에서 지혜를 배우길 바란다. 그러나 경험주의자의 오류에 빠지고 싶진 않다. 「이럴 수 있는 거야??!」를 읽고 한 아이가 소녀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네가 사랑하는 새가 죽었으면 슬퍼해야지, 왜 화를 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 나 또한 어떤 사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거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법을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고백성사를 하듯 아이들에게 지금 내 상황을 들려줬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평소 선생님한테 배운 대로 해법을 말해 준다. 지네에게 친절하게 편지를 써서 주자고!

 

우리 아이들이 당나라 때 한유(韓愈)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한유가 지방 관리로 부임했을 때 그 지역에 악어가 나타났다고 한다. 악어가 가축을 잡아먹고 농산물에 해를 입히자 농민들 시름이 깊었다. 악어를 쫓아내기 위해 한유는 어떻게 했을까? 글쎄, ‘악어문’을 써서 악어에게 줬다나.

내 이제 악어에게 약속하노니, 사흘 후까지 무리를 거느리고 남쪽 바다로 옮겨가서 천자께서 임명한 나를 피하라. 사흘에 불가능하거든 닷새까지, 그것도 안 되면 이레까지 할 것이다. 그때까지 옮겨가지 못한다면 이는 끝내 옮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천자께서 임명한 관리를 무시하여 옮겨 피하지 않거나, 어둡고 완악하여 백성과 물건에게 폐해를 입히는 것은 모두 죽일 만하니, 나는 재주와 기예가 뛰어난 사람들을 뽑아 강한 활과 독화살을 잡고서 악어와 싸워 반드시 죽이고야 말 것이다. 악어는 후회하지 말라.

한유는 양, 돼지 한 마리와 함께 ‘악어문’을 물에 던졌는데 놀랍게도 그 뒤로 정말 악어가 사라졌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이 써 준 ‘지네문’을 책상 위에 고이 펼쳐 놓고 있다.

김호경(어린이철학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