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유출 사고 이후 3년, 다시 쓰는 태안 리포트 3-② [4人4色 책읽기]
정한 (인천대 윤리교육과 졸업생)
2010년 12월 말부터 발생한 구제역 파동 11년 2월 말이 되어서야 잠잠해져 갔다. 그러나, 구제역이 퍼져나가는 건 멎어들었다 해도 구제역을 처리하는 과정에 대한 문제, 재산피해, 피해보상, 앞으로 국민들이 겪어야 할 문제들이 과제로 남았다. 국내에 네발달린 동물들은 죄다 살처분 당했고 남아난 가축들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으며 그로인해 치솟는 물가와 철철 흘러내리는 세금, 울부짖는 농가, 썩은 내 진동하는 피맺힌 매립지, 현장은 지옥과 같은 살풍경이 펼쳐졌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상황을 과거에도 본 적이 있다. 재난의 발생, 정부의 미적지근한 대응, 대규모의 재난으로 확산, 군까지 동원하여 대응하였으나 대응방침에 대한 문제, 보상에 대한 문제, 언론의 편중된 보도.
과거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유사한 사고들 중 가장 큰 충격으로 남았던 것은 07년도에 발생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그것이다. 규모의 문제도 있었으나 20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몰려간 그 사고는 우리 국민들 속에 잊을 수 없는 사고 중 하나로 기억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태안의 사고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사고 자체는 잊지 못할 지라도 그것이 아직도 진행형이며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사건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한다.
그러한 의도에 걸맞게 출판된 저서가 있다. ‘태안은 살아있다.’가 바로 그것이다. 희망제작소가 기획하여 출판된 저서는 노진철, 박진섭, 위평량 등 총 11명의 저자들이 쓴 글을 묶어 낸 것으로 태안의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보고 있으며, 다양한 사진과 인터뷰 내용으로 현장의 모습을 전달한다. 총 400쪽이 넘어가는 분량으로 책은 다소 두껍지만 그 만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바라본 태안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며 책의 구성 역시 하나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글을 앞에 두고 환경, 경제, 행정, 언론의 문제 및 태안 군민의 갈등, 삶의 질에 대한 분석까지 세세하게 살펴 태안의 모습을 빠짐없이 전달해 주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저서에도 밝혔듯이 태안 사고와 관련된 언론의 편중된 취향은 많은 국민들이 알고 싶었던 부분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러한 부분들에 대한 의혹과 알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점이 사실이다. 삼성과 현대, 태안 주민들의 실질적인 보상과, 그 규모, 태안은 복구가 된 건지 등 상당히 많은 부분을 언론에서 놓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무관심으로 외면하기 쉽고 안타까운 오해까지 생긴다. 그리고 지금처럼 사람들의 뇌리에는 하나의 해결된 사고로만 기억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3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의 출판은 특별한 의미와 목적을 담는다. 그렇다면 ‘태안은 살아있다.’ 저서는 사람들 기억 속에 침전된 사건을 다시 수면위로 부상시킬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 ‘태안은 살아있다’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글을 엮어 만든 책이다. 이렇게 각자의 글을 모아 만든다는 것은 혼자서 다 집필하는 것 보다 기간을 줄일 수 있고 또 깊고 확실한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점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문제없이 한 책으로 잘 묶여 나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무리 뜻 깊고 유익한 책이라도 자신이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면 억지로 책을 읽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면 약간이라도 흥미를 느끼게 하거나, 적어도 지루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저서는 유사한 내용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독자를 지치게 한다. 물론 각자 글을 쓰는데 있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고자 하는 전개부분은 사실 유사할 수밖에 없다. 즉, 태안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집어넣을 수밖에 없으며 본론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면 들어가야 한다. 뜬금없는 내용이 튀어나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하나 놓고 봤을 때는 흥미와 집중력을 끌 수 있을지 몰라도 뭉쳐놓고 보니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각자의 글을 온전히 싣는 것에 중점을 둔 모양인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두지 않아 아쉽다.
각자의 글을 엮어낸다는 것은 사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저서의 분위기와도 맞지 않은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주제를 각자 전문가의 분야에 맞게 잘 분배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서로 달라서 많은 시간동안 조율되지 않으면 전체적인 흐름을 해칠 수 있다. 특히 같은 분
야를 연구한 이들이 모여서 쓴 글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문제점이 저서 곳곳에서 눈에 띄며 그것이 책을 읽는데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서의 매력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바라본 태안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경제학자는 태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행정학을 연구한 이는 태안 사고에서 무엇을 중점으로 보는지 각 분야의 보고서는 말 그대로 태안의 현 실태를 상세하게 알려줌과 동시에 태안이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방향을 그려낸다. 저서를 다 읽은 독자는 마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앞에 두고 보고를 들으면서 회의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글들 간의 소통은 정말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며 그렇게까지 자세하고 세부적인 내용까지도 독자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도 걸려 마치 각자 자신들이 생각하는 독자들을 따로 상정해 둔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런 자잘한 것들은 제쳐두고 크게 보자면 그러한 구조를 띄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저서 나름의 개성이며 장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고 본다.
구조가 독특하여 장점과 단점을 끌어안고 출판된 저서는 노진철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태안, 6천억 원짜리 환경 쓰나미에 흽쓸리다’라는 제목의 글로 시작한다. 글은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 내용을 실어가며 현장감 있는 접근으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방식은 단지 첫 글에서만 들어난 것이 아니라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들이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를 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마을 주민들의 고통과 분노, 고민과 절망의 감정을 손쉽게 전해 받을 수 있으며 글의 흥미를 끄는 요소로 작용된다. 또한 글은 전에 행복하고 평안했던 태안 주민의 모습과 사고 이후 절망에 휩싸인 마을의 모습을 비교해 보여주면서 태안의 고통을 독자에게 각인시켜 나간다. 그러한 과정은 단순히 근거 없는 추측에서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치를 보여주어 좀 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여 객관성을 높힌다.
글은 전반적인 태안의 모습들을 객관성 있는 자료를 통해 여과 없이 보여주는데 중점을 두어 섬마을 사람들의 고통이나, 태안주민의 자살문제, 피해보상과 관련된 문제 등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내용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데 독자가 알고자 했던, 혹은 알고 있었어야 하는 문제들을 다뤄 독자를 태
안의 문제로 인도한다. 글의 끝부분에 가서는 태안 곳곳에 달린 현수막을 통해 태안 마을 주민들의 심경변화를 대변하는데 그 현수막의 글귀들이 독자들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태안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이렇게 독특한 방법으로 접근한 시도는 그들의 분노와 억울함,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고마운 감정들까지 직접적으로 보여주어 독자들의 관심과 감정을 이끌어낸다.
글은 흠잡을 데 없는 짜임새로 태안의 전반적인 내용을 거의 빠뜨리지 않고 소개한다. 태안의 사고과정부터 피해보상, 태안주민들의 심정까지, 이 글은 태안 문제에 대한 큰 밑그림을 그려 저서의 기둥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그러나 손댈 곳이 없는 듯한 완전함은 오히려 저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분명 처음에 강렬한 인상으로 독자의 관심을 붙들고 소개하는데 무리가 없으나 덕분에 뒤에 실린 글들이 퇴색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 글 이후 다음에 이어지는 글들을 읽어나가면서 ‘읽었던 부분인 것 같은데…’, ‘이 내용 앞에서 본 것 같은데…’란 생각을 계속 들게 만든다는 점이다. 첫 글은 태안의 전반적인 밑그림을 그려내는 동시에 그 자체로 이미 책의 내용을 다 읽어버린 듯한 느낌을 들게 만든다. 차라리 이 글을 뒤에다 배치시켜 놨으면 그러한 감각이 덜 느끼게 만들 수는 있겠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글들은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라 글 자체만으로 질리게 하는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에 첫 글에 나오는 것이 또 무리이니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그러한 문제 외에도 독자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할 만한 부분 중 하나인 사고에 대한 법원판결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지나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사고일지에서처럼 이해할 수 없는 선박들의 움직임이나 글에서도 밝혔듯이 왜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판결이 나온 건지, 또 그러한 부분에 대해 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못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다뤄주지 않고 간략하게 소개만 한 체 넘어간다. 그러나 적어도 다른 나라의 사례를 소개해 이 판결이 불합리한 판결이라는 사실을 들어내는 측면은 불만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준다.
이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푸른 바다, 검은 재앙 안에 갇히다’ 박진섭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의 글이다. 생태지평연구소에 계신 분이신 만큼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태안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기름 유출에 의한 오염과 관련해서 단순히 우리는 ‘몸에 나쁘다’라는 인식만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한 설명을 전문적인 지식과 과거 사례들을 이용해 소개한다. 그러나 이 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염되지 않았던 태안의 해양생태계를 소개하는데 이것이 단지 거대한 생태계의 보고가 황폐해졌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면 다소 글의 주제를 퇴색시킬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저자는 글을 더 확대시켜 해양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언급한다. 결국 저자는 단순히 태안 생태계 환경오염의 심각성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무너져가는 해안생태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글이 의미하고 있는 바는 뜻 깊고 유익하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태안과 관련된 문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야지 느닷없는 확장은 독자를 당혹하게 만든다. 이러한 전개를 보이는 글은 이 글뿐만 아니라 저서에 담긴 몇몇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은 ‘금빛바다를 잃어버린 사람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의 글이다. 저자는 경제학자답게 재산피해규모와 같은 여러 수치들을 다양한 표를 통해 보여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태안의 모습이다. 상당히 독특하게 관점에서 전개하는데 이러한 글들은 보기 드물다. 보통 태안과 같은 문제들은
사회학자나 환경단체에서 주로 글을 써냈기 때문인데 그렇게 때문에 특별한 이 글이 독자에게 참신하게 다가온다. 과연 태안의 경제발전은 가능한가? 앞으로 그들의 지역개발은? 무너져 버린 생계를 위해 해줄 수 있는 효율적인 피해보상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러한 내용 중 몇몇은 이미 첫 번째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라 겹친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의 글은 넘쳐나는 수치와 분석을 통해 풀어나가는 방식이 신선하다. 단지, 숫자에 질리지 않을 사람들 내에서 말이다. 너무나 많은 숫자와 표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또한 그렇게 세부적으로까지 알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대략적인 규모로 이야기 해도 저서의 의도를 해치지 않았을 것이라 보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각자가 생각한 독자층이 따로 있는 듯 하여 들어난 문제이기도 한 것 같다.
2장으로 넘어와서 재난관리에 관련된 문제를 다룬다. 여기서는 주로 행정학을 연구한 이들이 쓴 글이 모여 있는데 2장의 시작은 ‘초기재난관리의 실패’ 이재은 충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의 글이다. 경제학을 연구한 저자와 마찬가지로 행정학을 연구한 이의 글 또한 독특한 관점이다. 물론 행정을 중심으로 바라
봤으니 대부분은 재난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했는지가 주로 이룬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는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행정학을 연구하는 저자라 그런지 글 자체도 매뉴얼 형식이다. 소제목들이 일종의 체크리스트처럼 되어있는데 그것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초기대응은 적절한가?’, ‘방제물자, 비축과 관리는 적절했나?’, ‘현장 지휘, 혼란스럽지는 않았나?’, ‘2차 오염가능성은 예상했나?’, ‘자원봉사자 관리는 철저했나?’ 등 이렇게 하나하나 체크해 나가는 방식은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려는지 직접적으로 알려줘서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빠짐없이 전달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독특한 이점이 있다. 글 자체도 무척이나 깔끔하고 간결하다.
그러나 행정학자가 쓴 글이라면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은 ‘매뉴얼, 과연 현실상황에 적합했는가?’하는 점이겠다. 저자 역시 그러한 매뉴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매뉴얼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소개하는 것 보다 그렇게 매뉴얼이 있는데 왜 대응에서는 그렇게 많은 문제가 발생했는지의 내용이 더 중요하고 핵심이기 때문에 구지 매뉴얼 소개에 그렇게 많은 지면을 소모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잊혀진 씨프린스호’ 이야기가 나오는데 씨프린스호의 사례를 이용하는 것은 좋지만, 단순한 소개로 끝난다. 씨프린스호 사고는 국내에 영향을 준 사고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사례 소개로 마무리 된다면 해외에서 일어난 여러 기름유출 사고를 소개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씨프린스호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우리는 한번 겪은 사고에도 학습하지 못하고 또 큰 사고를 경험했다는 것이 초기 재난관리의 측면에서 구멍을 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곁들여 졌거나 좀 더 명확한 비교분석이 들어갔다면 사례소개가 이처럼 무의미해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뒤에 이어지는 글에서도 씨프린스호를 언급하는데 혹시 내용이 겹치기 때문에 편집자가 의도해서 그 부분만 빼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뜬금없다.
다음은 ‘재난은 있어도 재난보도는 없었다’ 박동균 대구한의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쓴 글이다. 경찰행정학을 연구하는 사람의 시각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중점이다. 분명 가해자가 존재하는 사고인데도 불구하고 조용히 묻혀져 의아했던 부분을 풀어준다. 글은 간략한 사고일지의 소개 이후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제일 먼저 ‘가해자’로 분류된 삼성과 현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얌체적인 행동들을 고발하고, 사법당국의 엉뚱했던 수사발표 역시 푹 찌른다. 또한 해경과 검찰의 침묵을 지탄하고 그들을 감시해야 할 언론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전반부의 중립적인 태도와는 조금 달라서 시원스러운 전개가 독특하다. 왜 언론은 미담만을 전했는가. 왜 언론은 그들의 제목에서 가해자를 숨겨버렸나. 왜 분신자살과 같은 사건들의 심층적인 보도는 없었나. 필자가 덧붙여 이야기 하자면, 11년 1월 7일자 기사에서 태안주민들은 인지세 730만원을 내지못해 자살어민 유족들의 소송이 재판에 오르지도 못한 채 끝났고 인지세를 지원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으나 이 요청 역시 기각되었다는 사실이 기사는 있어도 제대로 표면위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 태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침전해 들어가고 있다.
다음은 ‘재난관리 매뉴얼’ 양기근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의 글이다.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매뉴얼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들어간 글로, 2장 첫 글의 미비한 부분을 해소시켜 준다. 2장에서는 간단한 소개만 하고 넘어갔던 씨프린스호에 대해서도 제대로 짚고 넘어간다. 저자는 특히 기름유출사고와 관련된 모의훈련을 08년 8월 24일날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훈련이 아무런 소득이 없었는지, 매뉴얼에는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파고들어 가는데, 매뉴얼에 어떤 문제가 있었으며 왜 그러한 문제가 있는 매뉴얼이 유지되고 있었는지, 앞으로 매뉴얼을 수정하고 그에 맞는 훈련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언급한다. 누가 알았겠는가. 기름유출 사고 매뉴얼에 평온한 바다만을 상정하고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생존, 그 이상의 삶에서는 이제 태안주민들에 초점을 맞춘 글들이 이어진다. 그 첫 번째 글은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의 ‘갈등관리 해법을 찾아서’인데 서로 불신의 담을 쌓아가고 있는 태안주민들에게 유익한 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 번째로, 글을 쓰는 목적을 밝힌다 하면서 ‘외부집단과 태안주민의 갈등을 중심으로 서술하지는 않겠다’거나, ‘태안의 상태를 알리는 것에만 있지는 않다’라고만 했지, 정작 무엇을 중점으로 쓰겠다는 지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하다. 희망을 발견 할 수 있기 위해 쓴다는 것만 밝혀서는 무슨 내용이 이어질지 짐작할 수 없다. ‘갈등관리 해법을 통해 희망을 발견 할 수 있기 위해..’라고 썼다면 아주 명확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제목 하나만 써두고 언급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기도 했다.
이렇게 애매한 흐름을 보이는 것은 곳곳에서 들어나는데 특히 ‘갈등이 보다 합리적 문제해결의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라던가, ‘태안은 위기상황에서 공정성과 공평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갈등이 스승 역할을 한 것이다.’ 라는 문장은 마치 ‘갈등이 필요했다’라는 의미 같다. 물론 우리가
좀 더 앞으로 내걷는 과정에 있어 갈등은 분명 큰 스승이 되어줄 수 있다. 이러한 것과 유사한 것으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이 말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단, 태안사고는 단순한 갈등이 아니다. 손가락 절단이나 분신시도와 같은 것을 갈등이라 보면서 위와 같은 문장을 사용
하는 것은 그 의미가 순수하다 할지라도 오해할 소지가 있다.
또한, 글의 소제목을 ‘갈등개요-갈등전개-갈등해소-갈등특징’으로 나열했는데, 갈등해소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생계비 분배문제가 갈등해소가 되었거나 갈등해소 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나? 그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단순히 ‘불만이 없다’라는 문장만으로 주장하기에는 민감한 문제이며, 저서의 글들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의견이기도 하다. 그 뿐 아니라 생계비 분배문제 이전에 생계비 지연문제 역시 갈등을 제공하여 자살자가 3명이나 나왔는데도 언급이 없다는 부분은 아쉽다. 뿐만 아니라 ‘통합조직구성을 둘러싼 갈등’에서는 분열된 조직이 다시 통합했기 때문에 ‘훨씬 체계적, 수평적, 민주적, 투명하게. 운영될 것이다’는 주장을 하는데 근거 없이 낙관적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태안은 스스로 갈등을 해소해 나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느닷없이 갈등해소방법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갈등을 해소해 나간다고 보면서도 갈등해소방법이 필요한가? 필요할 수는 있겠으나 다소 설득력이 부족한 구조는 아닌가. 사실 갈등 해소방법은 태안주민과 큰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글의 핵심이 된 이유는 저자가 꼭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태안의 갈등을 이야기의 시작으로 꺼내 놓은 후 자신이 말하고 싶은 부분, 바로 갈등의 해법을 이야기 하고, 갈등의 긍정적인 측면을 이야기 하며 갈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이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의 의지를 보이면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는 교훈적인 의미를 담고자 하는 바를 엿볼 수 있는데 처음부터 태안 주민들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방법들을 이용해 갈등을 접근해 가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야 설득력이 있지 태안 자체로도 해결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다.
다음은 ‘파괴된 삶을 복원하라’, 유현정 충북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의 글이다. 이 글은 저서의 부록을 제외한 모든 글을 통틀어서 가장 친근하게 접근한다. 필자가 연구하는 과정을 경험담 형식으로 풀어나가는데 저서의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인터뷰 내용도 이용한다. 저자는 태안주민들의 삶의 질과 만족, 행복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데 문제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다른 저서의 글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이지, 역시나 다른 독자층을 대상으로 쓴 것인지, 주민들의 수입을 억대라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앞의 글들에서 알려준 정보와는 틀리며 마치 태안 주민의 평균적인 소득을 말하는 것 같아 모호하다. 또한 공공근로 수입이 6만이란 이야기도 앞의 내용과는 틀리다. 세부적으로 나눠 설명하지 않고 방제비로 6만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앞의 글에서는 분명 공공근로는 방제작업의 위험성 때문에 배제된 노인들에게 할당된 일이며 3만5천의 적은 수입으로 불만이 가득하다는 글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이러한 모호한 사실전달에는 문제가 있으나 6만의 일당 덕분에 5만에 구했던 주방 도우미를 구할 수 없다는 하소연 등 생활일상의 소개는 놓치고 가기 쉬운 부분이며 태안 주민들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렇게 비록 명확한 사실전달에는 다소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태안주민들의 바로 옆에서 듣는 것과 같은 글의 흐름과 구성은 태안주민들의 고통을 이해하는데 있어 큰 지표가 되어 준다.
저서의 글들은 각자 저자가 따로 있기 때문에 서로의 통일성을 해치며 글들 간의 소통이 없다는 점은 분명 문제가 있다. 편집자의 재량이 좀 넓어서 몇몇 군데만 수정을 가했더라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지만 그러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큰 줄기는 놓치지 않고 이어진다는 점, 저자의 개성이 잔뜩 살아나 마치 저자가 누군지 안보고도 저자의 분야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독특한 느낌은 이색적이다. 좀 더 아쉬운 부분은 의료적인 분야에도 글이 있어서 태안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부작용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가 들어갔으면 하는 면이 있으나 그것은 단지 필자의 개인적인 사소한 바램이다. 이미 저서가 지닌 방대한 정보는 태안주민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자각하여 우리가 분명히 신경 써야 할 사회적 문제라는 사실을, 태안문제를 다시 사회의 표면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저서는 태안의 문제들과 관련해서 비난할 대상을 지목하거나 공격적으로 작성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객관적인 사실의 전달을 그 중점으로 두는데, 이러한 점은 저서의 신뢰도를 높이며 사회의 단결된 힘을 끌어내는 소중한 디딤돌이 되어 줄 것 같다. 이 저서를 시발점으로 앞으로 많은 칼럼이나 기사가 나와 사회적인 이슈가 되어 구제역 파동과 함께 국민이 뭉쳐 해결해 나갈 사회적 문제로 토론의 장에 올라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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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4인4색의 책읽기’의 세번째 책은, 희망제작소에서 기획안 노진철 외 지음, <태안은 살아있다>(도서출판 동녘 펴냄)으로 김종옥(작가), 김한규(생태해설가), 정한(대학생), 이정미(동녘편집자)의 글을 실었습니다. 아울러 글 사이에 게재된 사진들은 출판사의 협조로 게재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