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 ⑭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4-1(336b~338b) : 트라쉬마코스의 저돌적 등장과 소크라테스의 당부(전 시간에 이어 계속)

 

* 전 시간 언급했듯이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는 주장은 트라쉬마코스 개인의 주장만은 아니다. 투퀴디데스가 남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몇 장면은 그러한 정의관이 당대 아테네 권력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넓게 펴져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표적인 두 가지 장면만 간략히 살펴보자. 우선 기원전 418년 레스보스의 뮈틸레네인들이 아테네에 반기를 들었다가 진압된 후 뮈틸레네의 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장면이다.(3권 35-50) 아테네인들은 반란이 진압된 후 민회를 열어 뮈틸레네가 속국도 아님에도 아테네에 반기를 든 것에 격분하여 뮈틸레네의 성인 남자를 모두 죽이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삼기로 결의한다. 그러나 이튿날 상당수의 아테네인들이 어제의 결의가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재심을 요구하자, 즉시 민회가 다시 열려 찬반을 둘러싸고 클레온과 디오도토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이때 클레온은 재심이 요구된 것에 대해 ‘민주주의가 남들(속국들)에 대한 지배를 불능상태로 빠트린다’δημοκρατίαν ὅτι ἀδύνατόν ἐστιν ἑτέρων ἄρχειν는 평소의 소신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토로하고, 재심은 시간 낭비이며 아테네인들이 아테네가 속국들을 지배하는 참주정체τυραννίς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린다.(37) 그런 연후 그는 아테네가 제국일 수 있는 근거는 아테네가 가지고 있는 속국들에 대한 힘ἰσχύς의 우위임περιγίγνομαι을 역설하고(37,38) 만약 아테네인들이 뮈틸레네를 지배하기를 바라다면 설사 부당하다하더라도οὐ προσῆκον 아테네인들의 이익σύμφορόν을 위해 그들을 응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야 말로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당성 여부는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클레온은 아테네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국을 포기하는 것ἢ παύεσθαι τῆς ἀρχῆς이고 그저 위험이 없는 곳에서 착한 사람 노릇이나 하는 것ἐκ τοῦ ἀκινδύνου ἀνδραγαθίζεσθα이라고 말한다.(40-4) 그리고 클레온에 반론을 펴고 있는 디오도토스 조차 반대의 근본 이유가 정의 여부가 아닌 아테네의 이익ὠφελίαν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역시 ‘근거 없는 추측에 분개하는 것은 명백히 이익이 되는 조언을 도시가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고 언급하면서(43)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불의한 짓을 했는지가 아니라οὐ περὶ τῆς ἐκείνων ἀδικίας 우리가 어떻게 맞서야 좋은지를 따져야 하며’(44-1) 그러므로 이 자리는 ‘무엇이 정의인지를 따지려 그들에게 소송을 거는 자리가 아니라οὐ δικαζόμεθα πρὸς αὐτούς, ὥστε τῶν δικαίων δεῖν 어떻게 해야 그들이 우리에게 유익해질 수 있는지를περὶ αὐτῶν, ὅπως χρησίμως ἕξουσιν 심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44-4) 게다가 그는 적국 뮈틸레네 역시 ‘정의보다는 힘을 더 중시하기로 작정한’ἰσχὺν ἀξιώσαντες τοῦ δικαίου προθεῖναι 나라라고 진단하고 있다.(39-3) 즉 클레온이나 디오도토스 모두 정의 여부에 상관없이 어떤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보다 부합한 것인지를 두고 논쟁하고 있고, 반란 당사국인 뮈틸레네 역시 이익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특히 클레온과 디오도토스는 공히 그 힘과 이익의 실체가 다름 아닌 속국들이 바치는 공물πρόσοδος 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공물이야 말로 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39-8, 46-3 ) 다행히 민회에서 디오도토스의 주장이 약간의 차이로 받아 들여져 뮈틸레네인들은 학살을 모면하지만 이 장면은 이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관심사가 정의가 아닌 이익과 그 이익을 위한 힘ἰσχύς에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두 번째 장면은 기원전 416년 아테네군이 멜로스를 포위한 후 진압에 앞서 아테네 사절단οἱ Ἀθηναῖοι과 멜로스 의원들οἱ τῶν Μηλίων ξύνεδροι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5권 84-116) 두 번 째 장면은 같은 아테네인들끼리의 논쟁이 아니라 그야말로 생사의 문제를 두고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벌어진 대화라는 점에서 우리의 주제와 관련하여 더욱 주목을 끈다. 멜로스인들은 라케다이몬 사람들이었지만 아테네의 위세가 두려워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가입을 하지 않고 중립을 지켜왔다. 그러나 아테네가 약탈을 반복하는 데다 스파르타의 기항(寄港)까지 막을 수 없어 아테네와 반목하게 되었고 급기야 아테네의 공격을 받아 섬이 전면 포위 상태에 이르자 아테네 사절단과 협상을 위해 마주한 것이다. 아테네 사절단은 멜로스 의원들에게 협상이 아닌 통첩을 하는 자리인 만큼 이후의 처분과 관련해서만 대화를 나눌 것을 제안하고 멜로스 의원들은 마지못해 그에 동의한다. 그러자 아테네 사절단은 대놓고 ‘정의δίκαια란 사람들 사이에서 힘이 대등할ἴσος 때나 통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강자οἱ προύχοντες는 할 수 있는 것을 관철하고, 약자οἱ ἀσθενεῖς는 그것에 순응해야한다’고 주장한다.(89) 이에 멜로스 의원들은 ‘당신들이 정의τὸ δίκαιον를 도외시하고 이익τὸ ξυμφέρον에 관해서 말을 한다 해도’ 보편적인 선의 원칙τὸ κοινὸν ἀγαθόν을 지키는 것이 아테네인들에게도 이득이 될 것ὠφεληθῆναι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고 정의로운 처우τὰ εἰκότα καὶ δίκαια를 받아야 하며 다소 타당성이 결여된 소명에 의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원칙이 아테네에게도 이익이 될 것임을 재차 천명한다.(90) 게다가 아테네도 이런 상황을 맞이할 수 있고 그 때는 지금 아테네의 처분이 본보기παράδειγμα 가 될 수 있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테네 사절단은 제국이 종말을 고한다고 해도 나중에 일어날 일 때문에 의기소침하지 않으며, 설사 지배당한다고 하더라도 정말 두려운 것은 스파르타처럼 같은 지배자들에 의해 정복당하는 것νικηθεῖσιν이 아니라 오히려 속국들의 반란에 의해 지배자들이 제압당하는 것이라고 말한 후, 멜로스가 강대국으로부터 무서운 재앙을 면하려면 항복할 것을 요구한다.(91-93) 그러자 멜로스 의원들은 아테네에 호의적인 중립국가로 남게 해달라고 청하면서 정의는 말하지 말고 아테네의 이익을 위해서만 말을 하라는 것은 결국 아테네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음을 재차 하소연한다.(98) 이에 아테네 사절단은 ‘여러분은 대등한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므로 체면ἀνδραγαθία이나 치욕αἰσχύνη 따위는 상관 말고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것σωτηρία인가만 신경을 쓰라’고 충고한다.(101) 그러나 멜로스 의원들은 ‘우리가 항복하면 우리의 희망ἐλπὶς은 사라지지만 우리가 행동하는 동안에는 우리가 바로 설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다’, ‘우리가 불의에 대항해 정의의 편에 서 있는 만큼’, ‘신들께서 우리에게도 아테네 못지않은 행운을 내려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에 덧붙여 스파르타도 자신들을 도와 줄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친다.(102-104) 그러자 아테네 사절단은 ‘지배할 수 있는 곳에서는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φύσεως ἀναγκαίη’이라고 응수하고(105) 스파르타가 전혀 희망이 되지 않을 것임을 일러 준다. 그런 연 후 멜로스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협상하자고 해 놓고 이렇게 길게 논의하면서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에 놀라움을 표하면서 멜로스의 존망이 단 한 번의 결정에 달려 있음을 명심하라고 최후 통첩한다.(111) 그럼에도 멜로스인들은 처음의 입장을 다시 밝히고, 아테네 사절단은 멜로스인들의 스파르타에 대한 기대와 신들의 호의, 희망 모두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들 자신들은 더욱 깊은 추락에 내몰릴 것임을 마지막으로 경고하고 회의장을 떠난다. 이후 멜로스는 총력을 다 해 아테네에 맞서 저항을 하지만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아테네는 멜로스를 점령한 후 시민 남자들 모두를 학살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아 버린다. 아테네의 이러한 잔학한 행위는 곧바로 속국들과 주변국들에게 알려지면서 충격과 공포를 넘어 아테네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기원전 404년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패배하자 테베가 앞장서서 아테네 시민 전체를 죽일 것을 요구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아테네는 멜로스인들이 말했듯이 자기들이 행한 본보기대로 이제 자신들 모두가 죽음에 처해질 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기아 속에서 기나긴 전쟁의 끝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투퀴디데스가 전하고 있는 위와 같은 장면은 정의보다는 이익이 늘 앞서고 트라쉬마코스의 말 그대로 정의 자체가 강자의 이익임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뮈틸레네는 학살을 면했고 멜로스는 대학살을 피해가지 못했지만 이렇게까지 패전 상대국 주민들을 모두 학살하겠다는 결정이나 처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전에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서로 전쟁하는 일도 많았지만 같은 그리스인으로서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전쟁 중일지라도 그 정도로 동족을 학살하는 일까지는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점차 주변 이웃 나라들을 속국으로 삼으려는 패권적 경향이 심화되면서 나타난 일들이다. 특히 스파르타가 그에 크게 반발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 이후에는 그러한 크고 작은 처사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에 따라 복수가 악순환 되면서 권력자들의 선동은 물론 그것을 부추기는 지식인들도 늘어나고 민중들 역시 그에 휩쓸려 들어갔다. 5세기 말에 이르면 이제 그리스 사회는 더 이상 전통적인 민족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보전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플라톤은 <국가>를 통해 아테네는 물론 그리스 사회 전체가 위기에 처한 원인과 배경을 다시 짚어 보면서 그 극복의 길을 탐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예상하고 이미 알고 있듯이 플라톤은 그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테네가 제국화 되면서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패권주의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은 당대의 그러한 패권주의적 가치관을 대변하는 것으로서 이제 이곳에서 플라톤이 넘어서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 간의 무도한 패권주의적 질서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당대 소피스트들이 그러했듯이 사상적으로 그것을 뒷받침하는 마키아벨리스트들 또한 오늘날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338d]

* 소크라테스의 추궁에 트라쉬마코스는 곧바로 여러 정치체제의 경우를 끌어들여 그곳에서 정치권력을 가진 자ἀρχὴ 즉 ‘통치자’οἱ ἄρχοντες가 자기가 말하는 강자임을 밝힌다.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려는 ‘더 강한 자’의 의미가 정치적 지배관계에서 더 큰 권력을 가진 정치적 강자임이 드러난 셈이다. 이후 ‘더 강한 자’에 대비되는 ‘더 약한 자’ἧττων가 언급되고 있고(339e) 그러한 사람이 곧 ‘다스림을 받는 자(피지배자)’οἱ ἀρχομένοι로 언급되고 있는 것(339d) 또한 그것을 재확인해 준다.

* 정치체제가 이곳에서는 참주정τυραννὶς, 귀족정ἀριστοκρατια 민주정δημοκρατία 단 3형태만 언급되고 그에 따라 참주와 귀족과 민중이 강자로 예시되고 있다. 이 세 가지 구분은 핀다로스가 내세우는 분류법이라고는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정치체제는 그 세 가지 이외에 최선자정, 명예정, 과두정, 금권정 등 다양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더 강한 자’를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지배 형태보다는 권력의 담지주체에 따른 정치체제들을 예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더 강한’은 권력투쟁 과정에서 이들 강자들 사이의 비교 우위도 포함하고 있다할 것이다. ‘철학자 왕정’은 아직 트라쉬마코스가 모르고 있을 뿐더러 설사 알고 있다 해도 플라톤이 주장하는 철학자 왕정의 통치자는 그들과 비교될 수 없다. 철학자왕은 이미 원천적으로 자기의 이익이 아니라 오직 통치 대상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338e]

* 이 부분에서 정치적 강자는 법률νόμοι의 제정을 통해 자기 이익συμφέρον을 실현한다. 이 점은 일단 트라쉬마코스 역시 법치주의(legalism)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교묘하게도 일단 그 강자의 범위가 참주뿐만 아니라 과두정 치하의 소수 권력자 그리고 민주정 치하의 민중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민주정은 말 그대로 시민의 이익을 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정치 또한 주권자인 민중의 이익을 관철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한 민주정의 예시는 정부의 권력은 주권자의 권력이라는 일반적인 상식과도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 주권(sovereignty)은 국가의 의사 결정에 있어 최종적인 결정권을 말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경우 주권은 국민 모두에게 있고 그 주권자들에 의해 선출된 권력은 그들을 지지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반대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해 행사된다. 그러나 트라쉬마코스에게 주권은 특정인 또는 특정 계급에 국한되어 있다. 권력이 봉사하는 것은 지배자가 참주건 귀족이건 민중이건 기본적으로 그들 자신의 이익일 뿐이다. 게다가 트라쉬마코스가 말하고 있는 민주정은 오늘날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한 국민의 지배로서 민주정이 아니라 귀족과 구분되는 계급 개념으로서 기층 민중demos의 지배로서의 민주정demokratia이다. 그리고 실제로 트라쉬마코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420년 전후의 아테네 민주정은 이른바 포퓰리즘의 극치로서 민중 독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비교할 수도 없다. 아테네 민중의 배후에는 기층 민중에 대한 사랑이 아닌 사리사욕과 정권욕에 눈이 먼 선동정치가들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 정부가 행하는 일체의 행위는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원칙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들 모두에게 법률 준수의 의무를 부과한다. 그러나 트라쉬마코스가 내세우는 법치주의와 법의 준수 의무는 설사 그것이 강자에게까지 적용된다 할지라도 어떤 경우든 강자들의 이익을 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준수가 요구되는 법률 자체를 강자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률 제정권까지 그 들 임의대로 법률로 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트라쉬마코스가 제시한 정체 가운데 그 어떤 것이든 그곳에서 제정된 법률은 하나같이 강자인 지배자의 이익에만 봉사하고 피지배자 내지 나머지 계층의 이익과는 무관하다.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은 시민 공동의 이익이 아닌 정치권력과 법 제정권을 가진 강한 지배자들만의 파당적 이익만을 관철하기 위한 파괴적이고 반정의적인 반도덕주의적 입장에 불과한 것이다.

* 트라쉬마코스가 내세우는 법치주의는 이러한 점에서 형식적 법치주의에 불과하다. 물론 형식적 법치주의는 합법성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통해 얼마나 많은 독재자들이 형식적 법치주의가 표방하는 형식적 합법성만을 내세워 이른바 법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불의와 악행을 저질러왔고 또 그것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했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형식적 법치주의는 반드시 실질적 법치주의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질적 법치주의는 모든 법은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국민들 모두의 자유와 권리, 평등과 정의를 보장할 수 있어야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므로 만약 정해진 법률이 시행과정에서 그런 원칙을 저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그것은 법률로서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므로 그 즉시 개정되어야 하고 개정되기 전이라도 그 법률에 대한 저항은 존중되어야 하며 처벌은 억제되어야 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이러한 실질적 법치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이 곧 기본법(lex fundamentalis)의 정신 즉 헌법 정신이다. 모든 법률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와 권리, 평등과 정의 원칙에 과연 일치하는지에 대한 비판과 검증에 늘 열려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트라쉬마코스의 법치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법치주의와 거리가 멀다. 법치주의와 법 앞의 평등은 가치의 공평한 배분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법치는 정치체제와 상관없이 강자의 편파적 가치 독점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그 자체로 법적 안정성을 가질 수조차 없다. 오늘날 법치주의는 법을 제정 절차의 민주적 평등성과 공정성을 토대로 시민 각자의 욕망을 반영한다는 위에서 그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이고 그 정당성을 바탕으로 법적 안정성이 확보되고 나아가 그에 기초하여 시민 모두에게 법률의 준수가 의무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요컨대 트라쉬마코스의 법치주의는 겉으로만 법의 지배를 내세울 뿐 실제로는 사람 즉 강자의 지배인 것이다.

* 그런데 어차피 정치가 모두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는 없는 것인 한, 트라쉬마코스가 예시한 정치체제 중 민주정체는 다수의 이익을 정의로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신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 여겨질 수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대원칙이 다수결의 원칙이고 공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과도 상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분명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민주정은 국민 모두의 이익을 목표로 하되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다수의 이익을 택하는 정치체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원천적으로 특정 계급에 의한 특정 계급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정치체제이다.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민중은 다만 강자의 예들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게다가 그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력에 의한 가장 최대의 특권적 이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익을 누리는 자가 소수이면 소수일수록 그들에게 더욱 유리한 정의관이다. 이것은 트라쉬마코스의 정의관이 궁극적으로 참주의 정의관임을 보여준다. 결국 민주정의 예시는 겉으로는 당대 아테네의 민중 독재를 지지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참주 지향적인 자신의 속내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일종의 기만인 것이다.

* 아무려나 플라톤에게 시민 모두가 아닌 일부의 이익이나 행복을 목표로 하는 정치체제는 이미 그 자체로 정의로운 정치체제가 아니다. 정의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담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테네 당대의 민주정은 물론이고 현실적으로 최대 다수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현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의로운 정치체제가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플라톤의 정의로운 국가는 현실의 부정의를 완벽하게 제어하고 정의의 이념을 완전하게 관철하는 말 그대로 이상적인 국가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국가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갖는 중대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이상 자체가 현실의 곤고함을 돌파해내는 원천이듯이 플라톤의 이상 국가 또한 부정의를 타파하고 정의로운 현실 국가를 견인해내는 동력이자 희망의 원천이다. 부정의가 마치 부정의의 이념이라도 존재하듯 가히 끝을 모를 정도로 그 극을 달리고 있는 모멸의 현실에서 정의의 이상마저 회의의 눈으로 지레 유보되거나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폄하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부정의를 압도하고도 남을 만한 정의와 선에 대한 확신과 열정으로 빛나는 정의의 푯대와 이념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구축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그 자신 말하고 있듯 하늘에 바쳐진 본(paradeigma)으로서 현실에서 정의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지표인 동시에 끊임없이 현실을 성찰하고 실천과 투쟁을 독려하기 위한 바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플라톤이 시종일관 이상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플라톤은 말년에 <국가>의 이념을 바탕으로 <법률>에서 방대하고도 주도면밀하게 최선의 현실국가를 제시하고 있다. <법률>의 완성은 <국가>가 갖는 흔들리지 않는 지향과 이념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당대의 무도하고 비참하기 그지없었던 아테네 현실의 한 가운데에서 정의로운 삶과 모두의 행복을 치열하게 열망했던 플라톤의 모습은 ‘지옥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성불(成佛)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연상케 한다. 플라톤은 오늘도 이상을 향한 불굴의 정신과 현실에 대한 냉철하고도 치열한 성찰을 그 간절함에 실어 우리에게 ‘불의에 결코 타협하지 말 것’,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을 호소하고 응원하고 이끌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이 던져질 수 있다. 앞에서 살폈듯이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강자는 법률에 구속되지 않는 법률을 넘어서있는 무소불위의 강자들인데 왜 굳이 법률을 표방하여 자신들이 이익을 실현하려는 것일까? <고르기아스>의 칼리클레스는 피지배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오로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 즉 약육강식이 자연의 법칙이자 정의이며 행복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힘을 추구할 것을 가르친다. 그에 비해 이곳에서의 트라쉬마코스의 강자는 법치주의도 표방하면서 최소한 피지배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즉 평판에 대해서도 신경을 쓴다. 이런 점만 보면 칼리클레스가 훨씬 노골적으로 부정의하고 아주 뻔뻔할 정도로 사악하고 강경하다. 그러나 플라톤에 의하면 최상급의 부정의한 자는 칼리클레스가 말하는 강자가 아니라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강자이다. 점차 밝혀지겠지만 최상급의 부정의한 자는 최대의 부정을 저질러 자신들의 최대의 이익을 최대로 관철함과 동시에, 피지배자들로부터도 가장 정의로운 자라는 평판까지도 얻는 자이기 때문이다. 칼리클레스가 말하는 강자는 최대한의 이익은 얻어도 평판까지 얻을 수는 없다. 먹히는 약자가 강자를 선망은 할지라도 존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리클레스의 강자는 권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위태롭고 불안하다. 권력을 최소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법치의 형식을 빌려 겉으로나마 통치가 정당화되어야 한다. 모든 독재자가 실제로는 폭압을 저지르면서도 늘 법률을 앞에 내세우는 까닭도 그곳에 있다. 피지배자들로부터 정의롭다는 평판을 얻으려면 어떻게든 법률에 의거하여 통치를 해야 하고 자신도 그 법을 잘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철저히 자기의 이익을 위해 법률을 제정하되 그 법률이 마치 피지배자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처럼 비쳐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시행 과정이나 결과도 정말 그렇게 보이게끔 해야 한다. 이 어려운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통치자야 말로 최상급의 부정의한 자 즉 최고의 강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컨대 최상급의 강자는 피지배자들을 완전하게 기만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능력이 크면 클수록 이러한 법치를 통해 관철할 수 있는 이익 또한 크고 그 평판 또한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과 권력의 극단에 서 있는 자가 바로 참주이다. 그래서 뛰어난 참주일수록 권력을 이용하여 뛰어난 지식인들을 밑에 거느린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자에 빌붙어 명성과 부를 원하는 지식인일수록 그 자신 철저히 자기의 가치관을 참주의 가치관에 일치 시키려고 발버둥을 친다. 소피스트 트라쉬마코스가 왜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지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강자가 궁극적으로 왜 참주일 수밖에 없는지도 이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 아직도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 말은 법치주의를 뒷받침하는 고전적인 금언으로 떠받들어져 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플라톤의 대화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 말은 한 일본학자가 <크리톤>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태도를 자기 식으로 곡해하여 만들어 낸 말이다. 그리스 말에서는 이미 법nomoi이란 용어에 ‘악한kakos’이란 수식어 자체가 붙여질 수 없다. 당대의 법이 필요에 따라 자주 개폐될 수 있는 실정법이 아니라 오랜 세월 형성된 관습법적인 경향이 강한 만큼 일단 법으로 확립되고 오랜 기간 수용된 것인 한, 그것은 그 자체로 악한 것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그 말을 소크라테스가 했다하더라도 그 법의 피해자인 소크라테스가 법치를 강조하는 것과 그 법을 집행하는 지배자가 법치를 강조하는 것은 그 취지와 내용 모두의 측면에서 전혀 차원도 성격도 다르다. 플라톤에게 법치는 기본이지만 법치를 가장하여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권력자들에게 법치는 이미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 만큼 법치는 실질적 법치에 의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법치 못지않게 그러한 법을 만들고 운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촛불혁명 이전의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은 촛불 혁명 이후의 헌법과 법률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사회 정의와 그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크게 신장되었다. 촛불 혁명 이후의 시민들은 이미 그 이전의 시민들이 아닌 것이다. 그 힘으로 이제 법률도 개선하고 정치하는 사람들도 바꾸어야 한다.

 

[339a]

* ‘그러므로 바르게 추론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디에서나 정의는 동일한 것으로 즉 강자의 이익으로 귀결합니다’ὥστε συμβαίνει τῷ ὀρθῶς λογιζομένῳ πανταχοῦ εἶναι τὸ αὐτὸ δίκαιον, τὸ τοῦ κρείττονος συμφέρον. 이 부분은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말의 뜻을 분명히 해달라는 소크라테스의 요구에 대한 트라쉬마코스의 결론적 답변이다. 이 말에 비추어 보면 앞서 살폈듯이 우리가 제기했던 물음 즉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강자가 곧 정치적 지배자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어느 정도 해소된다.

*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강자가 정치적 강자라면 트라쉬마코스 같은 소피스트들은 정치적 강자가 아니므로 그의 주장은 자신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가 말하는 강자를 그냥 일반적인 의미에서 ‘힘이 더 강한 자’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더 강한 자’를 정치적 지배관계로 국한하지 않고 약육강식 일반의 차원으로 넓게 이해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일단 여기에서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강자의 직접적인 의미는 정치 권력자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소피스트들 자신 비록 정치적 강자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이익이 모두 정치적 강자에게서 나오는 것인 한, 실제적으로 그러한 정의관은 그들의 이익을 위한 정의관이기도 하다. 우선 권력자들이 가장 많은 이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들의 목표는 권력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에 기생하여 그들로부터 이익을 얻는 권력의 부역자였던 것이다.

*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의 설명을 듣고서 이제야 말뜻을 알았다고 답을 하고 이제부터 ‘당신이 한 말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 알아보도록 하겠다’고 말을 한다.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에 대해 논박을 시작하겠다는 선언이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 또한 ‘이익이 정의’라는데 동의하고 있음을 확인한 후, 트라쉬마코스가 덧붙인 ‘강자의’라는 말에 관심을 표명한다.

 

4-3(339b~340b) ; 소크라테스 통치자가 실수를 할 경우를 들어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을 비판하자 폴레마르코스와 클레이토폰이 잠깐 끼어든다.

 

[339b]

* 그러자 트라쉬마코스는 그 ‘강자의’라는 말이 ‘어쩌면 사소한 덧붙임이겠습니다만’σμικρά γε ἴσως, ἔφη, προσθήκη이라고 답을 한다. 그런 트라쉬마코스의 이 대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박종현 역본은 위의 역문이 나타내듯이 트라쉬마코스 자신이 그것을 사소한 덧붙임이라고 말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불변화사 γε(ge)를 앞서 의 소크라테스 언급에 대한 모종의 첨언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또 추정의 의미를 갖는 ἴσως(isōs)가 함께 쓰여 졌음을 고려한다면 그 말은 ’당신의 말인즉슨 아마 사소한 덧붙임이라는 것이겠지만‘으로 옮기는 것이 맞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내용적으로 보더라도 덧붙이는 말 ’강자의‘라는 말은 트라쉬마코스 자신의 답이 갖는 차별성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말로서 그 자신에게 결코 사소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수의 역자(Grube, Shorey)는 그 ’사소함‘을 트라쉬마코스가 지레 짐작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으로 보고 ’아마도 내 생각에 당신(소크라테스)은 그것을 사소하다고 생각하겠지만‘으로 번역하고 있다. 즉 그것이 사소하다고 여기는 주체가 트라쉬마코스가 아니라 소크라테스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해야 그 말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도 자연스럽게 풀린다.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의 말을 듣고 ’아직 그게 중대한μεγάλη 첨가인지 분명하지 않다‘라고 대답하고 있는데 이는 ’당신이 내가 그 말을 사소하다고 여긴다고 생각하고, 당신 자신은 반대로 중대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소한 것인지 중대한 것인지의 여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정의가 이익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정의가 누구만의 이익 특히 정치권력을 가진 강자나 지배자 그들만의 이익이라는 데는 동의할 수 없으며 검토가 필요한 내용이라고 말한다. 이미 앞서도 살폈듯이 폴레마르코스가 말하는 친소관계이건 트라쉬마코스가 주장하는 권력관계이건 간에 자신을 기준으로 정의와 이익의 관계를 논하는 방식은 결코 정의에 대한 바른 접근이 될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처음 말한 대로 정의는 그 자체로 공동체와 시민 모두에게 최선의 이익을 제공하는 기술이자 방편이기 때문이다.

*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것πείθεσθαι τοῖς ἄρχουσινι 역시 정의이다’ 소크라테스의 이 말에서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단순히 사람에 대한 복종이라면 그것이 과연 정의인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이어서 ‘통치자들이 제정하는 것ἃ ἂν θῶνται을 이행하는 것이 정의’(339c), ‘통치자들이 지시하는 것ἃ ἂν προστάττωσιν을 이행하는 것이 정의’(339d)라는 표현이 이미 합의된 것으로 나오는 것을 고려하면 여기서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와 동일한 의미일 것이다.

 

[339c]

*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의 그 공동체 파괴적이고 반도덕주의적인 주장을 논박하기 위해 일단 트라쉬마코스가 단적인 사례로 든 통치자로서의 강자의 이익, 즉 ‘정의는 통치자의 이익이다’라는 주장을 하나하나 검토하기 시작한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인 검토에 앞서 피통치자가 통치자ἄρχων에게 복종하는 것이 정의이므로 통치자가 정한 법률은 피통치자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을 상호 확인한 후 느닷없이 트라쉬마코스에게 통치자는 어떤 점에서 실수ἁμαρτεῖν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묻는다. 소크라테스는 폴레마르코스 때도 그랬듯이 예외적인 경우를 염두에 둔 사전 검토의 성격을 갖는 질문이다. 이에 트라쉬마코스는 ‘통치자가 어떤 점에서 실수를 할 수도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πάντως που οἷοί τι καὶ ἁμαρτεῖν고 답을 한다. 그러자 곧바로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들이 법률을 제정할 때 실수로 잘못하여 자기 이익이 못되는 것을 제정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피통치자로선 그것을 반드시 이행해야 정의이므로 결국 그 경우에는 정의는 통치자의 이익이라는 트라쉬마코스의 애초 주장과 반대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말을 한다.

 

[339d]

* 그 말을 듣고 트라쉬마코스는 무슨 말을 하느냐고 소크라테스에게 따지듯 묻는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지적이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앞서 트라쉬마코스와 합의된 내용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일러 준다.

 

[339e]

* 트라쉬마코스가 합의 사실을 인정하자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이 갖는 모순점을 일목요연하게 펼쳐 보인다.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을 모두 인정할 경우 정의는 통치자의 이익과 정반대되는 결과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되므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는 그의 주장은 결국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는 ‘더 없이 지혜로운 트라쉬마코스여!’ὦ σοφώτατε Θρασύμαχε라고 불러가며 이러한 지적을 펼쳐 보이는데 이 또한 트라쉬마코스의 심기를 건드려 대화를 지속하게끔 만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340a]

* 소크라테스의 지적이 끝나자 그 동안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폴레마르코스가 대화에 끼어들어 ‘아주 명명백백하다σαφέστατά’고 소크라테스의 생각에 전적으로 수긍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자 못마땅하듯 클레이토폰이 폴레마르코스에게 소크라테스를 위해 증언을 하려는 것이라면 몰라도 가만히 있으라는 투로 핀잔을 주고 이후 이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설전이 오간다.

* 그런데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박은 폴레마르코스와의 문답과정에서 ‘친구가 아닌 사람을 실수하여 친구로 잘못 판단하는 경우’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폴레마르코스의 주장을 논박했던 방식과 거의 동일하다. 소크라테스와 폴레마르코스의 대화를 곁에서 줄곧 지켜보고 있었던 트라쉬마코스가 과연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흥분을 잘 하는 트라쉬마코스가 소크라테스의 논박을 듣고 바로 대꾸도 하지 않고, 대화에 끼어든 폴레마르코스와 클레이토폰에 대해서도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는 것을 보면 자기도 역시 폴레마르코스와 같은 상황에 처했음을 알아차리고 잠시 어떻게 대응을 할지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폴레마르코스가 불쑥 대화에 끼어든 것도 그 역시 이미 동일한 방식으로 소크라테스로부터 논박을 당한 적이 있었기에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340b]

* 폴레마르코스가 트라쉬마코스의 주장 자체가 증거인데 왜 증인까지 필요하냐고 되묻자 클레이토폰은 트라쉬마코스가 ‘통치자들한테서 받은 것들은 이행하는 것이 정의’라고만 했지 ‘다스림을 받는 자들에게 나쁜 것을 지시하더라도 따라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폴레마르코스에게 핀잔을 준다. 클레이토폰의 말대로 트라쉬마코스가 그러한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겉으로 표현된 말만을 가지고 트집을 잡거나 논박을 피해가려는 소피스트들의 전형적인 술법이다. 이에 대해 폴레마르코스는 앞서 트라쉬마코스가 말한 내용들을 종합하여 그러한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추론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340b]

* 그러자 클레이토폰은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을 두둔하려는 의도에서 ‘트라쉬마코스가 ‘강자의 이익’이라고 말한 것은 ‘강자가 자기에게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ὃ ἡγοῖτο’을 두고 말한 것이라고 말을 하고, 그에 대해 폴레마르코스는 앞서 클레이토폰의 핀잔을 되돌려 주기라도 하듯 ‘트라쉬마코스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대꾸한다.

* 사실 클레이토폰의 이 말 즉 ‘자기에게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ὃ ἡγοῖτο’이란 말은 트라쉬마코스 주장의 근본 취지를 되살릴 수 있고 나아가 소크라테스의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출구도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는 주장을 클레이토폰이 말한 대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지 꼭 이익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경우,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비판을 피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라쉬마코스도 이미 통치자 또한 실수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 누구는 트라쉬마코스가 이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해져 자기주장의 근본취지를 지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여겨 바로 호응하고 나설 것이라 예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후의 소크라테스와 트라쉬마코스 간의 대화는 클레이토폰과 우리가 혹시 그러리라고 예상하고 있는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마사 누스바움(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6. <혐오와 수치심>, 마사 누스바움(下)

 

유민석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 숨기고만 싶은 치부

 

인간은 누구나 취약하고 부족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걸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이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은 불완전한 사람이라는걸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봐 꼭꼭 숨기고 덕지덕지 봉합한다. 잡힐까 두려워 머리만 풀숲에 쳐박는 꿩처럼 그렇게 위장하고 은폐한다.

혹시라도 남들 앞에 자신의 이런 치부가 발각되거나 드러나기라도 하게 된다면, 많은 경우엔 강렬한 수치심이 동반되게 마련이다. 이런 수치심은 자존감을 무너뜨리리게 되고 온전한 인격을 형성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개인의 정체성과 인간 관계를 비롯한 삶의 전반에 위협을 초래하게 된다.

이처럼 수치심은 우리를 압도하면서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1947.5.6~)은 저서 『인간성으로부터 숨기: 혐오, 수치심, 그리고 법Hiding from Humanity: Disgust, Shame and the Law』(국역: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 조계원 옮김, 민음사, 1995)에서 이러한 파괴적인 감정인 수치심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본 글에서는 먼저 수치심에 대한 누스바움의 설명을 살펴보고, 그리고는 수치심이 법과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수치심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 편안한 자궁, 비극적인 출생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었을 때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인 수치심은 개별 인간의 삶의 발달과정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형성된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수치심은 전지전능함과 완전함, 그리고 편안함을 바라는 유년기의 욕구 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다. 유아는 점차 성장하면서 자신의 유한성, 부분성, 거듭된 무력감을 깨닫게 되는데, 이 때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과 동시에 과도한 욕심과 기대가 두드러지는 존재라는 깨달음 안에 있는 일정한 긴장을 해소하는 일시적인 방법이 수치심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유아기에서부터 형성되는 수치심을 ‘원초적 수치심’이라고 일컫는다. 이 원초적 수치심은 불가피하면서도 다소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그만큼 위험하며 삶의 어느 단계에서는 극복되어야 할 감정이다. 그런데 어떤 외적인 계기로 인해 원초적 수치심을 제어하거나 극복하지 못하고 강화된 채로 존속된다면, 자신과 타인에게 매우 위험한 감정이 된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유아는 태아 상태에서 자궁 속에 있을 때는 불필요한 자극이 없고 자동적으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편안함과 완벽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출생의 순간부터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엄마의 편안한 자궁과 달리, 세상은 유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온갖 고통스러운 자극과 매정함으로 가득차 있고, 돌봄 제공자는 항상 원할 때 자동으로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이런 풍경은 다양한 고전들 속에 그려지고 있다. 이를테면 출생을 거센 파도에 난파되어 낯선 땅위에 표류한 선원에 비유하는 루크레티우스의 시라던지, 노동할 필요도 없고 강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며 날씨는 따뜻하고 대지는 풍요로운 곡식들로 넘쳐나는 황금시대를 이야기하는 헤시오도스의 신화라던지, 인간이 둥근 모습을 하고 있고 힘이 엄청났으며 신과 겉이 강했다가 제우스의 저주를 받아서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 이야기는, 완벽한 세상인 자궁 안에 있다가 출생과 동시에 비극적인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유아의 모습을 은유한다.

유아는 예전처럼 세상이 완벽하게 자기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따라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전지전능하지 않고 결핍되고 부족한 인간이라는 깨닫게 되면서 원초적 수치심을 갖게 된다. 따라서 원초적 수치심은 완전한 자아 이상을 바라는 나르시시즘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들키기 않고 감추기 위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어버리고자 하는 방어적인 감정이다. 이런 원초적 수치심은 유아기 이후에도 잠복되어 있게 되며, 이제 부끄럽다고 여겨지는 특성들, 즉 부족하거나 결핍되거나 완벽하지 못하거나 의존적이라는 특성들은 수치스러운 것들이 되어 억압의 대상이 되고 파괴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 수치심을 옹호하는 사람들

 

그런데 수치심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짓을 저질러 놓고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가 무질서해지소 타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수치심은 좋은 감정이며, 심지어 사회가 법을 통해서 수치심을 주는 형벌을 권장할 필요마저도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공동체주의 사상가 아미타이 에치오니(Amitai Etzioni, 1929. 1. 4 ~)나 법학자 댄 케이헌(Dan Kahan)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케이헌은 노상방뇨를 한 사람에게 직접 길바닥을 솔로 북북 문지르게 한 처벌을 옹호하며, 성매매를 한 사람의 신상을 신문에 공개해야 하고 심지어 음주운전자거나 범죄자임을 알리는 표시를 자동차에 부착해야 하며 얼굴에 낙인찍는 형벌을 복원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이러한 수치심을 주는 처벌들은 범죄에 대한 강력한 억제 효과와 처벌 효과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미혼모, 약물중독자, 범죄자 같은 일탈적인 사람들에 대한 이런식의 수치심 주기는 사회 질서와 도덕적 가치 구현에 매우 유용하기 때문에 권장되어야 할 좋은 수치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누스바움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이유를 근거로 수치심 처벌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첫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모욕을 주기 때문에 인간 존엄성을 해친다. 둘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국가의 사법적인 절차가 아니라 인민재판이 된다. 셋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잘못된 대상을 처벌하거나 처벌의 정도를 명확히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 넷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억제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대상을 소외시킴으로써 더 범죄로 몰아넣는 역효과를 지닌다. 다섯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시민들을 사회적 통제 아래에 둔다.

 

  • 낙인찍히는 존재들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회적 수치심 처벌은 주로 역사적으로 억압당해온 집단에 부과되어왔다. 예컨대 옆에 있기만 해도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낙인찍히거나 수치심을 부여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특성들을 상기시키는 사람들은 낙인과 배제의 대상이 되곤 한다. 주로 사회적으로 비정상적이라고 간주되는 존재들, 예컨대 여성이나 동성애자, 범죄자 등이 그런 낙인과 수치심주기의 대상이 되어온 것이다.

누스바움은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과 같은 스티그마나 여성의 치마에 대한 역사등의 고찰을 통해서, 불완전하고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집단들에게 수치심을 주어왔다고 들려준다. 예컨대 여성의 신체는 남성에게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에 성차별적인 사회는 여성들의 패션과 치마 길이를 통제해 왔으며, 범죄나 동성애자는 그 자체로 수치스러운 존재들이지만 겉으로는 그들의 그런 특성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표지를 얼굴에 문신으로 새겨넣음으로써 누구나 인식하게끔 자행되어왔다.

앞에서 원초적 수치심을 다룰 때 이야기됐던 것처럼, 주로 장애인이나 여성, 동성애자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비정상적이거나 약하고 불완전하다고, 즉 수치스러운 특성을 지녔다고 간주됨으로써, 원초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대상이 되어 투사되는 것이다. 그런 낙인을 부여함으로써 그들과 다른 나는 정상적이며 완벽하다고 위안을 삼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야한 옷을 입다니 천해보인다”, “니가 짧게 입고 돌아다니니 그런 일을 당하지”같은 ‘피해자 비난하기’victim blaming나 ‘창녀 수치심주기’slut shaming를 생각해보자. 여성의 몸을 드러내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경박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나이든 여성이 예쁘게 꾸미는 것도 수치스럽고 주책맞은 일로 취급하기도 한다. 반면 남성들의 경우엔 감정을 드러내거나 눈물을 보이거나 약해보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것, 여성스러운 것이므로 수치스러운 것이기에 억누르라는 문화 속에서 성장한다.

누스바움은 이렇게 감정이나 친밀성을 억누르면서 수치스럽게 여기는 이런 사회에서는 남성들이 솔직한 감정의 표현과 타인과의 감정 교류나 공감과 연민의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당연히 여성적인 것에 대한 비하의 맥락 안에 놓여 있기에 ‘여성혐오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여성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욕망, 여성이 자신의 통제 밖에 놓여 있는 독립적인 개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통제되지 않는 여성을 향해 분노와 적대를 표출하는 것이다.

 

  • 좋은 수치심도 있을까?

 

이처럼 수치심은 신뢰할 수 없고 매우 위험한 감정이며, 특히 그것이 사회적으로 억압당해온 집단에게 부여될 경우엔 더더욱 위험한 낙인이나 예속으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 그런데 좋은 수치심도 있을까? 누스바움에 따르면 도덕적인 분개나 도덕적 반성에서 기인하는 수치심이나, 아니면 성취한 목표에 대한 열망의 독려 차원에서의 수치심의 경우엔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차별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수치심에 비해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이러한 수치심을 ‘건설적 수치심’ 또는 ‘생산적 수치심’으로 일컫는다. 예컨대 작가이자 활동가인 바버라 에렌라이히(Barbara Ehrenreich, 1941. 8. 26~)가 자신의 저서에서 이야기한, 노동자들이 극심한 빈곤과 주거 및 고용 불안, 열악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에 무관심한 탐욕스러운 미국 사회를 향해 수치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변한 것과 같은 수치심이 그런 종류의 건설적인 수치심일 수 있다.

누스바움은 이러한 수치심은 누군가를 낙인찍지 않기 때문에 괜찮은 수치심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런 도덕적 반성을 일깨우는 건설적 수치심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첫째,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규범에 호소해야 하며, 둘째, 나르시시즘(완벽한 자아 이상에 대한 사랑)적인 요소가 없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수치심은 자칫하면 비정상에 대한 낙인과 배제로 기능하기가 쉽기 때문에, 이런 수치심의 경우에도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 수치심과 혐오가 없는 사회

 

수치심을 주지 않는 사회를 만드려면 어찌해야 할까? 누스바움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취약한 비정상성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 1922. 6. 11~1982. 11. 19)의 사회학적인 논의를 끌어들여 인종, 장애, 계급, 지역, 학벌, 외모, 성별, 성적지향 등에서 모두 완벽한 ‘정상적인’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또한 타인의 보살핌을 필요로하고 서로 상호의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무엇보다도 나이가 들면 누구나 노인이 되고 장애인이 되며,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물론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며, 자신의 이런 취약성과 불완전성을 숨기려하고, 이를 환기시키는 사람이나 집단에게는 수치심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낙인을 찍고 모욕을 준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인간의 취약함과 인간다움을 인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호해주는 사회다. 이 점에서 그녀는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과 상호의존성, 그리고 다양한 다원성을 인정하는 존 롤즈(John Rawls, 1921. 2. 21~2002. 11. 24)식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옹호한다. 롤즈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는 공공복리 같은 목적을 이유로 수단화 되어서는 안되며, 우리는 서로 타인의 종교, 세계관, 생활방식과 같은 ‘포괄적 교설’(comprehensive doctrin)을 존중해줘야 한다.

누군가는 동성결혼이 도덕적이나 종교적으로 옳지 않으며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거나, 여성의 자유로운 옷차림이나 성적인 표현이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수치스럽고 정숙하지 못한 일이라고 통제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 그런 포괄적 교설은 개인이 가질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회의 법과 제도의 기초가 되어서는 안된다. 특정한 누군가의 세계관이나 종교가 정치나 법의 영역에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롤즈는 그런 모욕과 수치심은 자유주의가 보장하고자 하는 시민의 존엄성과 배치된다고 보았으며, 이를 중요한 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자존감의 사회적 기반’(social base of self-respect)가 정의로운 사회가 신경써야할 가장 중요한 기본적 사회재(primary social goods)라고 이야기했다.

롤즈의 이런 자유주의는 누스바움의 수치심에 대한 주장과 공명한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타인을 그렇게 통제하고 싶어하는 그런 도덕관이나 세계관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열등함을 참지 못하는 원초적 수치심이 잘못된 사회적 편견에서 강화된 경우일 수 있다. 누스바움은 이처럼 법이나 제도에 수치심이 들어와서는 안되며, 그럴 경우 낙인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스바움의 말처럼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존재이며, 타인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차이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상호존중과 존엄성을 구축하는 자유주의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다시 말해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 1939. 3. 22~)의 주장처럼 모욕을 주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수치심과 혐오로부터 보호받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지 않을까.

자유의 길을 찾아 혁명의 길을 간 행동가, 이회영 [길 위의 우리 철학] – 20

 

진보성

 

노블리스 오블리주와 이회영의 삶

우리 근현대사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가장 잘 실천한 인물을 찾아본다면 아마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이 아닐까 생각한다. TV프로그램이나 언론에서 ‘육형제의 독립운동’이라는 주제로 자주 다루어졌는데, 바로 이회영 집안 형제들 얘기이다.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불리며 대대로 귀족의 삶을 살았던 경주이씨 상위 1%의 사람들이 600억 넘는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쾌척하고, 온 가족이 압록강을 넘어 망명하면서 고난의 삶에 스스로 앞장 선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를 두고 임진왜란 때 국난극복에 크게 공헌했던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불변의 진리 덕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고귀한 귀족의식이라던가 진짜 보수라는 칭사(稱辭)로 이회영과 그 형제들의 삶을 단평(短評)한다면 그 진정성이 외려 애처로워질 것 같다. 이회영의 삶은 가문의 명예나 유림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후대의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고 귀족적 영웅으로 박제된 자신을 원한 것도 아니었을 테니, 한 사람의 진정성을 몰라주면 그 사람의 지난 삶은 애처로워지고 만다.

‘우당 이회영 길’ 입구 안내 표지판, 사진출처 : 필자

그의 삶을 온전히 보기 위해 일단 그 삶의 자취를 찾아보는 길을 나섰다. 서울 종로에 자하문 터널 가는 길에는 우당기념관이 있어 그가 살아온 자취를 전방위로 확인할 기회를 제공한다. 여러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었지만 한 인물을 느끼기 위해서는 유적지로 발걸음이 옮겨지기 마련이다. 이회영은 서울 저동(苧洞), 지금의 중구 명동1가에서 태어났다. 이회영이 태어난 곳은 인터넷 지도검색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다. 명동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국 YWCA연합회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왼편으로 난 골목이 이회영의 옛 집터로 들어가는 입구다. 이 골목 입구에는 ‘우당 이회영의 길’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있다. 중구청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주년을 맞아, 2017년 9월 20일에 명예 도로로 ‘우당 이회영 길’을 지정하였다.”고 쓰여 있다. 건물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건물 바로 옆 작은 쉼터로 조성된 화단에 그와 여섯 형제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표석과 이회영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회영 가문은 이 자리를 중심으로 명동 일대 대부분의 땅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육형제 중 둘째인 이석영은 아버지 이유승의 사촌형이자 영의정을 지냈던 이유원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는데, 당시 이유원은 양주에서 서울에 이르는 방대한 대토지의 소유자였다. 이 때 물려받은 재산이 이회영 형제의 막대한 재력이 되었고 결국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등 독립운동의 초석을 세우는데 쓰이게 되었으니 쓰임만큼은 타인을 위해, 핍박받는 이웃의 생명과 자유를 위한 공유물로 쓰인 셈이다.

좌 : 이회영 집터 표석과 흉상 – 서울시 중구 명동1가, 우 : 쌍회정 터 – 서울시 중구 퇴계로6길 36(일신교회) *쌍회정은 아래 글 참조. 사진출처 : 필자

이런 의식이 나오려면 이른바 혁명적 성향과 맹렬한 과감성이 필요하다. 육형제 중 넷째였던 이회영은 어린 시절 이런 성향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회영의 제자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이관직은 이회영이 소년 시절부터 혁명적 소질이 풍부해서 일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자기 집안의 종들을 자유민으로 풀어주는가 하면, 밖에서는 남의 집 종들에게도 말을 높였다는 일화가 그렇다. 이런 당돌함의 배경에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의 자유만큼 타인의 자유도 존중하고 공감하는 인간적 정감의 매력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이후 보이는 신분제도에 대한 반대는 여기서 출발했다. 익숙한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그래서인지 그의 학문 성향도 옛 경전을 공부하기 보다는 새로운 서구 지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이런 성향은 청년 시절 양명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던 배경으로 보인다. 성리학이 계급적 질서의 옹호차원에서 이해되며 현실을 타개할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는 학문으로 인식될 때 양명학의 지행합일적 주체의식은 자기 안의 양지(良知)를 현실을 자각하고 개혁할 수 있는 중심핵으로 삼는다. 학술을 통한 능동적이고 자신감 있는 자기의 탄생이다. 이회영에게 양명학은 곧 자기 행동의 준거였다. 박은식 같은 인물이 참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양명학을 자기 학문의 중심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파격적 삶의 행보 : ‘시대의 모순에 반역하다’

이회영은 일찌감치 과거에 급제한 아우 이시영과 달리 관직에 나가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엄중한 시기에 관직은 중요하지 않았다. 부패한 관계(官界)에 대해서는 혐오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나중에는 아예 출사를 거부했다. 그의 이런 출처관(出處觀)은 『논어』에 ‘천하에 도(道)가 있으면 나타나 벼슬하고, 도(道)가 없으면 숨어야 한다’,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는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道)가 없을 때는 부귀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의식과 일치한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옛 것을 거울삼아 현실을 인식하고 자기 행위를 통제하는 실천의 폭을 확장한다. 위정척사론자들이 봉건적 사회문화의 자장 위에서 익숙한 것을 ‘지키거나’, 아니면 ‘숨거나’·‘부끄러워’하는데 그쳤지만 이회영은 시대의 변화에 맞게 처신하여 그의 다섯 사촌 형제들을 삭발하여 신식 학교에 보내거나 그가 20세 전후 되던 시기에는 과부가 된 여동생을 전격적으로 재가시켰다. 봉건적 사회 잔재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었다.

이회영의 행보에서 상동교회(감리회)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재 상동교회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 30(남창동 1-1)에 있지만 당시 상동교회는 지금 자리 건너편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자리에 있었다. 상동교회는 상·천민이 중심이었던 교회였는데 이회영은 1904년 서울 상동청년학원 학감이 되어 청년교육에 힘쓴다. 그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유나 계기에 대한 단서는 명확히 보이지 않고, 몇몇 설이 있으나 소개할 만한 사료적 근거는 희박하다. 추측컨대 신채호의 1910년 논설이지만 「이십세기 신국민」(『대한매일신보』)에서 “20세기 신국민적 종교의 가치” 운운하며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인 견해를 밝힌 사례도 있는 만큼 국민의 정신을 일깨울 종교적 구심점으로 그 기능성을 인정받기도 했고 마침 신학문에 관심이 많던 이회영이 반일운동에 앞장섰던 많은 우국지사들과 회합이 가능한 장소로 여겼기에 자연스레 귀의한 것으로 사료된다.

좌 : 예전 상동교회 자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 서울 중구 남대문로 39(남대문로3가 110) 한국은행, 우 : 현재 상동교회.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0(남창동 1-1), 사진출처 : 필자

이회영이 양명학을 공부하며 관심을 두었던 지행합일의 실천적 주체의식은 성경에서 말하는 만인 평등이나 자유에 대해 강조한 내용들과도 충분히 잘 어울리게 해석되는 시대 배경 또한 존재한다. 이 역시 그를 공명시켰을 수 있다. 여기서 이회영은 상민출신 전덕기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친교를 맺는다. 이 둘은 함께 헤이그 특사 파견에 관여하거나 1907년 4월 상동교회 지하실에서 이동녕·양기탁 등과 함께 비밀리에 신민회를 조직하는 비밀 결사 활동을 이어간다. 이런 활동의 장소가 교회였다는 점,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명망 있는 사대부 집안에서 기독교에 귀의했다는 것 자체가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일이었다.

좌 : 현재 상동교회 입구 벽면 부조, 우 : 현재 상동교회 역사 전시관. 정면 좌측 큰 초화상화가 전덕기 목사, 우측 옆에 스크랜턴 선교사, 맨 우측 아래 이회영 선생 초상이 보인다. 사진출처 : 필자

 

한국 아나키즘의 선구

이회영은 유자명처럼 사회주의 이론을 미리 학습하거나, 신채호처럼 언론계에 투신하여 신사조를 받아들인 후 지속적인 집필 과정에서 학문을 연마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회영은 당시 독립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에 주도면밀했고 무엇보다 실천과 행동을 중시한 인물로서 스스로 학술문헌을 남기거나 자기 철학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지 않았다. 전면에 나서거나 어떠한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던 성향도 저술에 신경 쓰지 않은데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점은 그래서 이회영의 철학사상을 확언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철학사상의 중심이 양명학에서 기독교 사상으로, 망명 후에는 아나키즘이 그에게 영향을 주었고 실천의 동력으로 삼았던 학문이라는 사실이다.

이회영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아나키즘의 선구로 불린다. 물론 당시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은 서구에 바탕을 둔 아나키즘의 전개와는 다르게 아나키즘을 이해했다. 이는 당시 억압적 국가로서 강도의 위치에 있던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의 한국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은 아나키즘의 무정부주의적 정신과는 다르게 모두 민족과 민중, 그리고 국가의 독립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목표를 아울러 공유하고 있었다. 아나키스트라는 이름에 민족주의자의 성격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회영 역시 그랬다. 이러한 특징은 이을규의 『시야 김종진전』에서 단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의식적으로 무정부주의자가 되었거나, 무정부주의로 전환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한국의 독립에 대한 자신의 사고와 방책이 사상적 견지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장과 상통할 뿐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이러한 면은 신채호가 1929년 공판에서 자신이 무정부주의에 기운 것은 책에서 얻은 이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 요구”에 의했다는 주장과 유사하다.

이와 관련하여 이회영은 1918년 고종의 망명을 계획했던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일부 사람들이 보황파(保皇派)나 복벽주의자라고 비판하자 신분제도 등 봉건적 제도에 반대했던 자신의 과거 사례를 거론하면서도 동시에 운동의 목적이 독립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어서, 사심 없는 공정한 민족적 양심을 지닌 이 독립운동이 무정부주의라고 한다면 “한국의 독립운동은 무정부주의 운동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스스로가 이념에 포섭되었다고 평가하기 보다는 자발적 이해의 장에서 아나키즘과 만났음을 강조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 아나키즘의 기원은 앞서 말한 민족과 연계된 바탕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민족적 상실의 탈환과 인간의 궁극적 자유를 향한 민중적 의지가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한편 이회영은 김종진과의 대담에서 조소앙과 만남 시 공산주의의 민중에 대한 정치적 지배성을 우려했던 것처럼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독립된 한국에서도 무정부주의적 자유평등의 원칙은 그대로 지켜져야 할 것을 강조한다. 또 상호부조론을 인정하면서 국가를 초월하는 자유협동체의 인류적 이상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이러한 이회영의 아나키즘에 대한 생각은 북경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910년 망명 이후 북경 시절 이회영의 거처는 상해와 만주에서 온 독립운동가들이 한번 씩 거쳐 가지 않았다면 이상할 정도로 망명가들이 자주 들렸던 곳이었다.

좌 : 우당 이회영 초상, 우 : 우당기념관 –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10길 17(신교동 6-22) 유니온빌, 사진출처 : 필자

 

종속적 삶이 아닌 자유로운 삶을 위해

1914년 5월 30일 하와이 교포신문 『국민보』에 이회영은 자신의 공화주의적 이상을 피력하는 내용으로 「한국은 어떠한 인물을 요구하는」라는 논설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는 “대영웅이 대국민 같지 못함”은 역사적 격언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영웅이 건설한 나라는 길이 가지 못하지만 국민이 합동하여 세운 국가는 운명이 장구하다”고 힘주어 얘기한다. 현실의 모순을 타개하는 힘은 몇몇 거대한 영웅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민이 평등함을 인식하는 각각의 개인들이 곧 영웅이며 자각된 그들이야 말로 자유로운 민중으로서 연합을 이루어 독립과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회영 자신이 치열하게 사상적 고민을 전개했던 아나키즘은 사실 그 이전부터 자기 안에서 배태되는 일정한 낌새가 있었다. 그는 민중의 자유와 평등한 세상을 바라던 이상을 파괴하는 강도들에게는 무력투쟁으로 대응했다. 정치적 조직의 구성에 반대하여 임시정부와 인연을 맺지 않았던 이회영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의열단형성에 실질적인 산파 역할을 했으며 항일구국연맹과 비밀 결사체 흑색공포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내가 남에게 지배 받고 싶지 않으니, 나도 남을 지배하지 않음’이라는 이회영의 원칙은 이성적으로 당연히 사람다운 사람의 길을 간 것이었고 아나키스트가 실천하며 살아가는 길이었다. 일상세계에서 자기 원칙을 지키며 살아간 인물이 통속적 세상에서 희귀한 영웅의 면모로 비춰지는 것은 그리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자취 중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쌍회정을 찾아봤다. 쌍회정은 이회영의 10대조인 이항복의 집 앞에 있던 정자다. 현재 남산자락 서울 중구 퇴계로6길 36에 있는 일신교회 자리에 정자가 있었음을 알리는 작은 명판만이 남아있는데, 이마저 도로 시설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맨 위 사진 참조) 후에 이석영 소유가 된 이 곳에서 이회영은 동생 이시영은 물론 이상설·여준·이동녕 등 동지들과 신·구 학문을 공부하고 의기 넘치는 토론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회영의 사상적 계보는 성리학에 대한 비판을 이어 자기 공부의 중심을 양명학적 지행합일에 두었고, 반일운동의 기점에서 기독교적 만민평등과 이상적 자유의 추구, 그리고 민족운동의 연장선에서 민중의 자유연합체를 구상하는 아나키즘으로 그 실천적 면모를 발전시키고 있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지행합일의 정신을 가장 중시 했던 이회영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민족을 위해, 민중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했다. 여기에는 반드시 그의 관념적 사고가 바탕 되었겠지만 그것을 알 수 있는 이회영의 직접적인 문장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와 족적에는 반드시 그 철학과 사상의 흔적이 남고 그 지점을 이으면 하나의 철학사상의 지도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실천적 행동가의 삶을 학술의 영역에서 정리한다는 발상이 온전치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지도를 통해 종속적인 삶이 아닌 주체적 인간으로서 온몸을 던져 살다간 한 인물의 궤적을 파악해서 시대정신의 전범으로 삼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다.

한편 지금도 이회영의 삶은 우리에게 온전히 다가와 있는 것 같지 않다. 수많은 수식어와 찬사가 따르지만 독립운동가와 우국지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삶의 정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목도한다. 지금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세상의 문제를 돌아보는데 도움이 되는 그의 선각적 교훈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까. 그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미래지향적 발상은 지금도 그 가치와 의미가 충분히 통한다. 그러나 그의 길을 따라가 본다는 것은 무리수이며 낭만적 상상에 그친다는 자조가 있다. 이 자조는 이 땅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이 시대의 자화상일 뿐이다. 우리 스스로가 그린 자화상을 두고 옛 이회영과는 형편이 다르니 그것은 지금 갈 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회영의 진정성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생생한 출처(出處)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 삶을 우리가 온전하게 안을 수 있다. 그의 지난 삶이 지금 시대에 외롭고 애처롭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급선무다.

 

기고자: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동양철학을 전공했고 남명 조식으로 박사논문을 썼다. 한철연 분과모임에서 한국의 근현대철학을 함께 공부한 이후 전통철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다.


블로그진 ‘길 위의 우리철학’은 한국현대철학을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한국현대철학분과’에서 만든다. ‘길’은 과거로부터의 역사이기도 하고, 오늘의 삶이기도 하고, 미래로 열린 희망이기도 하다. 그 위에 서서 우리는 언제나 어느 길이 더 나은 길인지, 바른 길인지 생각하고 선택한다. 그렇게 ‘길’은 지향志向이기도 하고, 그래서 철학이기도 하다. 한국현대철학분과는 앞으로 월 2회 블로그진을 통해 우리철학이 서 있었던 길, 우리철학이 만들었던 길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1. 광장에 서다 – 촛불의 승리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종언 [길 위의 우리 철학] -1 : 박영미
  2. 대통령 탄핵, 그 후 – 박은식(朴殷植)의 개혁론, 독립운동, 임시정부 [길 위의 우리 철학] -2 : 이지
  3. 송곡의 길가에서 최시형을 만나다 [길 위의 우리 철학] -3 : 구태환
  4. 붉은 얼굴의 경계인(境界人), 신남철 [길 위의 우리 철학] – 4 : 이병태
  5. 어린이를 노래하는 방정환을 만나다[길 위의 우리 철학] – 5 : 김세리
  6. 국가의 철학, 철학의 부재(不在), 안호상 [길 위의 우리 철학] – 6 : 박민철
  7. 정치의 중심에서 주변을 배회한 타고난 근대인 몽양(夢陽) 여운형 [길 위의 우리 철학] – 7 : 유현상
  8. 우리, 나라, 사랑 – 윤치호와 관련한 애국에 대한 단상 [길 위의 우리 철학] – 8 : 배기호
  9. 서일- 잊혀진 어느 무장투쟁 사상가의 초상 [길 위의 우리 철학] – 9 : 김정철
  10. 현상윤, 최초의 근대적 체제의 조선사상사를 짓다 [길 위의 우리 철학] – 10 : 윤태양
  11. 구도와 구세의 길, 운명적 불화 – 한용운 [길 위의 우리 철학] – 11 : 송인재
  12. 태백산에서 최후를 맞은 서양철학 1세대, 박치우 [길 위의 우리 철학] – 12 : 조배준
  13. 시대정신을 찾는 여정의 첫 발걸음: 신채호와 서울 [길 위의 우리 철학] – 13 : 진보성
  14. 큰 이룸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간 삶의 철학자, 도산 안창호 [길 위의 우리 철학] – 14 : 배기호
  15. 밑바닥에서 진리를 찾은 이- 장일순 [길 위의 우리 철학] – 15 : 구태환
  16. 서재필과 개화운동, 계몽을 통해 근대를 꿈꾸다 [길 위의 우리 철학] – 16 : 박영미
  17. 이항로의 위정척사, 당신들만의 진리 [길 위의 우리 철학] – 17 : 구태환
  18. 한국 현대 철학의 주목받지 못한 변방, 함석헌 [길 위의 우리 철학] – 18 : 유현상
  19. 유림의 정신으로 독립의 길을 걷다, 심산 김창숙 [길 위의 우리 철학] – 19 : 김세리

모든 자유는 근본적으로-자기해방(Selbstbefreiung)이다.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모든 자유는 근본적으로자기해방(Selbstbefreiung)이다.

 

박종성(한철연 회원)

 

  1. 자기해방과 해방(Emanzipation)을 구별하라

 

우리는 앞서 슈티르너가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변주하여 “네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어라”라는 주장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그가 내세우는 ‘유일자’, 곧 ‘나다움’의 철학을 의미하고 다시 ‘자유’의 문제와 연결되면서 자유가 ‘자기해방’임을 드러낸다. 못다 들은 그의 말을 들어보자. “모든 자유는 근본적으로-자기해방(Selbstbefreiung)”이다.(184) 이 말은 우선, “내가 나다움(Eigenheit)을 나에게 마련해 주는 만큼 내가 그만큼만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184) 좀 더 ‘자기해방’에 대해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는 슈티르너가 자기해방을 해방(Emanzipation)과 구별하는 지점을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기해방과 구별되는 것은 해방, 자유롭게 방면함(Freisprechung), 자유롭게 놓아줌(Freilassung)이다. 슈티르너는 이러한 구별 속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놓아줌’을 갈망하고 외친다.”고 비판한다.(184) 이렇듯 그에게 자기해방과는 다른 의미인 해방은 ‘자유롭게 방면함’, ‘자유롭게 놓아줌’과 같은 의미이다. 그는 ‘성년임을 선고하다’(für »mündig erklären)는 것을 ‘해방하다’(emanzipieren)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185) 그런데 동사 ‘에만치파레’(emancipare)는 라틴어에서 우선 타동사로 사용되었고, 또한 체들러가 번역하듯이 ‘팔다’(verkaufen), ‘양도하다’(veräußern)의 뜻이었는데, 특히 경작지를 팔거나 양도하는 것을 일컬었다. 이 동사와 명사형이 서유럽 민족 언어로, 14세기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17세기에는 영국 그리고 그 후 독일로 유입된 이후에 재귀적인 사용이 대두됐는데, 이는 성년이 됨/성숙하게 됨(Mündigwerdung)이 지니는 관습적인 의미에서 출발하여 궁극적으로는 이전의 법률 용어에서 배제되었던 자기 전권위임(Selbster-mächtigung)을 지시하게 되었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해방 9, 22쪽.) 우리는 아래의 글을 읽고 난 후에 슈티르너가 ‘자기해방’을 ‘자기 전권위임’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아래의 글을 음미해 보자.

 

자유롭게 놓아준 사람(Freigegebene)은 바로 어떤 해방된 자, 어떤 (노예에서 해방된: 옮긴이) 자유인(libertinus), 사슬의 조각을 질질 끌고 다니는 어떤 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그는 사자의 탈을 쓴 당나귀(der Esel in der Löwenhaut)처럼 자유의 겉모습 속에 있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185)

 

  1. 자기해방은 자기 전권위임’(Selbster-mächtigung)이다.

 

이제 슈티르너에게 자유롭게 놓아준 사람은 해방된 자이고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이렇듯 자유롭게 놓아준 사람은 사자의 탈을 쓴 당나귀처럼 약자의 허세, 꾸민 기세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해방보다는 자기해방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만약 내가 힘이 있는(mächtig) 존재일 뿐이라면, 나는 이미 자연히 무엇을 할 권력을 주는(ermächtigt) 존재이고 결코 다른 전권위임(Ermächtigung) 혹은 자격 부여도 필요치 않다.”(230)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ermächtigen’< (무엇의[무엇을 할]) 권력[자격·전권]을 주다>라는 단어를 소유와 연결시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의 소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나의 안에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네! 나는 어떤 소유에 대한 정당한 권리가 있는가? 내가 나에게 –무엇을 할 권력을 주는(ermächtige) 모든 것에 있다. 내가 나에 소유를 취함으로써, 혹은 나에게 소유자의 힘(Macht)을 주고, 전권(Vollmacht)을 주며, 전권위임(Ermächtigung)을 줌으로써 나는 소유의-권리를 나에게 준다.(284)

이렇게 보면, 그에게 자기해방이라는 것은 ‘자기 전권위임’(Selbster-mächtigung: 물론 슈티르너가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진 않는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자기해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 이유는 “대상성(Gegenständlichkeit)의 힘으로부터 해방시키지(befreite) 않기 때문”이다.(94) 그리고 표상의 신성함에 대한 존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현대적인 시대는 단지 실존하는 객체, 현실적인 권력자(Gewalthaber) 등등을 표상된 것(vorgestellte)으로 변화시켰는데(verwandelte), 다시 말해 그 이전에 관념(Begriffe) 속에서 오래된 존경을 상실하지 않았을 뿐만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된 존경이 강하게 증가했다.(94)

 

그는 표상을 도덕성과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덕(Sitte)과의 결별을 선언하지만, ‘도덕성’(Sittlichkeit)이라는 표상(Vorstellung)과 결별을 선언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96) 예를 들어 ‘가족’이 어떤 신성한(heilig) 관념이기 때문에, 개인들은 신성한 관념을 결코 모욕해서는(beleidigen) 안 된다는 것이다.(95) 나아가 “이러한 가족은 어떤 생각, 관념으로 내면화되고 지각할 수 없게 된 가족은 이제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는데, 바로 그 신성한 것의 전제정치(Despotie)은 열 배나 더 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신성한 것의 전제정치는 내 양심 안에서 떠들기 때문이다.”(96)

 

 

  1. 신성한 관념이라는 전제정치를 깨부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Nichts)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정치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은 다시금 유일자의 존재론인 ‘창조적 무’이다. “가령 표상된 가족이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Nichts)으로 될 때, 이러한 폭정은 부서진다.(96) 이러한 폭정을 부수는 것이 다름 아닌 유일자의 나다움을 찾는 것이고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며 자기해방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자유라는 말의 의미이다. 그가 말하는 ‘자아’가 다음과 같음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는 공허함(Leerheit)의 의미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das Nichts)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적인 아무것도 아님(das schöpferiche Nichts), 곧 아무것도 아님에서 나 자신은 창조자로써 모든 것을 창조한다.(5)

 

‘Nichts’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non ens)이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무(Nichts)의 지위는 슈티르너 철학의 존재론의 핵심을 잘 드러내고 있는 “창조적인 아무것도 아님”을 정립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매순간마다 자신을 그때그때 최초로 정립하거나 창조하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 것이다.”(167) 이는 활동적인 자아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자아의 활동성은 유적 본질의 부정으로 나아가고 창조적 무를 긍정하게 만드는 계기(monent)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존재론은 부정의 활동을 통하여 끊임없이 창조적인 자아로 회귀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고정된 자아는 존재할 수 없고, 오히려 끊임없는 부정의 활동으로 자아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Göttliche’, 곧 신적(神的)인 것이라는 말, 다시 말해 ‘거룩한 것’이라는 말은 크고도 성스러워 함부로 했다가는 큰일이 나는 어떤 대상을 수식할 때 쓰는 말이다.(빌헬름 바이셰델, 안인희 옮김, 『철학의 에스프레소』, 프라하, 2012, 30쪽.) 이것에 대해 슈티르너는 비판을 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일자, 나다움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그보다 더 높은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슈티르너는 모든 거룩한 것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그에게 권리, 국가, 사회, 인간, 인간적인 것, 하물며 가족, 이념, 소명 등을 거룩하게 하는 모든 것은 비판의 대상일 뿐이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거룩한 것에 대한 비판이고 거룩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대한 경멸이다.

이러한 거룩한 것, 신성한 것은 일반적인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에게 ‘일반적인 것’(allgemeine) 또한 비판의 대상이고 무관심의 대상이다. 일반적이란 말은 하나의 집합에 속하는 모든 대상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특수, 단일과 대조적인 말이다. 일반적(general)은 유, 기원을 뜻하는 geus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그가 유적존재를 비판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일자는 이러한 일반적인 것에 무관심하며, 오로지 다음과 같은 점을 고수한다.

 

  1. 염려하라, “나에게 있어서 나 이상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에게 있어서 이상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Mir geht nichts über Mich!)(5)

 

위 구절과 유사한 말이 그의 저작에서 몇 번 더 언급된다. 그는 출판물을 예로 들어 소유 문제와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출판물은 나에게 있어서 이미 나 이상의 것은 아무 것도 없는(Mir nichts mehr über Mich geht) 순간부터 나의 소유이다.”(316) 이와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인류, 이념: 옮긴이)은 나에게 있어서 내 위에 있는 것이다.”(es geht Mir über Mich.”(341) “내 아래에 있는 모든 참들은 내게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내 위에 있는 어떤 참, 곧 내가 나를 참에 맞추었어야만 하는 참을 나는 알지 못한다. 나에게 어떤 참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 이상인 것은 아무것도 없기(über Mich geht nichts) 때문이다! 나의 본질(Wesen)조차, 내 위에(über Mich)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본질조차 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정확히 말해서 이 ‘양동이에 있는 물방울’, 이 ‘중요하지 않은 인간’이 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399)

그런데 “참, 인류 등등과 같은, 모든 더 높은 본질은 우리보다 상위에(über) 있는 어떤 본질(Wesen)이다.”(40)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일자가 염려해야 할 것은 나의 자아, 유일성, 나다움이다. “너의 고유한 자아(Dein eigentliches Ich)를 위해 염려하는(sorgest) 것이 필요하다.”(31) 염려한다(sorgen), 염려(Sorge) 단어는 슈티르너가 자주 쓰는 단어인데, 특히 유일자를 개념화 하는 중요한 단어라고 본다. 유일자는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염려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나다움’,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신성한 것에 대한 탈신성화의 선포가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자기해방, 곧 자유를 염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일자를 주장했던 슈티르너가 죽은 뒤 한참 뒤에 하이데거는 ‘염려’를 자신의 존재론적 명칭으로 사용한다.

심려(Sorge, 염려, 마음씀)는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말이다. 하이데거에게 현존재의 존재를 특히 심려(Sorge)라고 이름 짓는다. 이는 순전히 존재론적-실존론적 명칭이다. 심려는 그야말로 세계-내-존재를 전체로서 특징짓는 존재론적-실존론적 명칭이다.(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그렇다면 ‘창조적 아무것도 아님’이라는 존재론에서 유일자가 ‘염려’하는 것은 바로 ‘고유한 자아’이다. 결국 슈티르너의 존재론은 고유한 자아, 나다움, 자기해방, 나아가 자기 전권위임을 염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미 확인했듯이 이것이 자유이다. 그런데 “자기를 벗어난 노력과 염려(Sorgen)는 자기폐지(Selbstauflösung)”이다.(39) 다음호의 글의 주제가 정해졌다. 자신을 염려하지 않는 자는 자기폐지이다. 그의 책에서 끝으로 말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나의 힘(Gewalt)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유일자(Einzigen)로 이해할 때, 나는 나의 힘의 소유자이다. 소유자 자신은 유일자 속에서 자신의 창조적인 무(Nichts)로 되돌아간다. 그는 자신의 창조적인 아무것도 아님(Nichts)에서 다시 태어난다. 신이든, 인간이든지 간에 나보다 더 위에 있는 모든 더 높은 존재(Wesen)는 나의 유일성(Einzigkeit)에 대한 느낌을 약화시키고 내가 나의 유일성을 의식할 때(der Sonne dieses Bewusstseins)에만 빛이 바랜다. 만약 내가 나 자신 위에 나의 관심사인 유일자를 세운다면, 그때에 나의 관심사는 무상함(Vergänglichen) 위에, 곧 자기 자신을 소비하는, 그 자신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창조자 위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도 좋다.

나는 나의 관심사를 무(Nichts) 위에 세웠다.

스페인 내전과 자유에의 욕망(下) [톡,톡,씨네톡]

이 글은 2018년 5월 9일 이대 철학과 영화제에서 상영한 <토지와 자유>를 보고, 20분 정도 스페인 혁명의 사상적 의의에 대해 발표하고, ‘예스터데이’ 뒤풀이 자리에서 간략하게 토론한 글을 수정한 것이다.

 

스페인 내전과 자유에의 욕망()

 

이규성(한철연 회원,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2. 무정부주의와 가장 현실적인 욕망

 

무정부주의는 원래 민중의 협동심과 공감능력을 믿는 성선설을 선호한다. 특히 개체의 자발성과 활력을 강조하며, 생명에 대한 외경심도 존중한다. 자발성을 누르는 모든 권력을 비난한다는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초월적 지배자나 권력 혹은 제일 원리를 의미하는 아르케(arche)를 부정한다는 反권력주의(Anarchism)를 의미했다. 이에 비해 레닌주의는 민중의 혁명성을 찬양하면서도, 자발성의 한계를 강조하고, 합리적 조직능력과 지도력을 갖춘 주체적 의식성을 강조한다. 무정부주의자는 이를 퇴행적 부패의 원인으로 규정했다. 《토지와 자유》에 나오는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자와의 갈등에는 두 이념 간의 사상적 차이가 연관되어 있다. 한국의 독립운동사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무정부주의자들과도 교류한 한국 민족 해방군 일 천명{지도자는 대한독립군 총재인 大倧敎 宗師 서일(徐一, 1881~1921)}이 이르쿠츠크에서 공산주의 군대에 포위되어 무장해제를 강요받아 교전 끝에 반절이상 사상자가 발생하고, 후퇴하는 중 만주 군벌 친일 마적 떼의 습격으로 거의 괴멸되자 자결한다.(자유시 사변).

 

스페인 내전은 1934년 선거에 의해 민주 세력이 집권하자 프랑코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군부 가 독일과 이태리의 군사 지원에 힘입어 일으킨 쿠데타로 시작한 내란이다. 우익 세력은 군부와 왕당파 및 스페인 가톨릭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모두 독일의 국가 사회주의(나치즘), 이태리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에 친화적. 이에 비해 민주 공화파(스페인 인민전선)는 개혁 자유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코민테른 산하의 공산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등으로 구성. 타국의 급진주의 행동가들도 혁명 운동에 참여하여 국제여단을 구성. 사회주의자인 헤밍웨이도 기자이자 전투원으로 참전. 스페인 내전은 거의 모든 현대적 이념들이 각축하는 가운데,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혁명운동. 그것은 국제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으며, 2차세계대전의 전초전이 되었다.

 

“스페인 사회혁명의 중심에는 세계의 다른 어느 곳보다도 스페인에서 꽃피었던 신념의 추종자들, 곧 무정부주의자들이 있었다. 자유주의적 공산주의, 혹은 국가 없는 공산주의를 믿는 무정부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경찰, 왕실, 돈, 세금, 정당, 가톨릭교회, 사유재산을 사라져야 할 것으로 보았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상호부조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간본능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고 믿었고, 이러한 본능을 자유롭게 펼침으로써 공동체와 작업장을 민중이 직접 운영하면 된다고 믿었다.”1)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궁극적으로는 근대국가 폐지라는 무정부주의 이상을 채택하지만, 과도기로 설정된 당 중심의 국가체제를 인정한다. 혁명 초기에 레닌은 국유화를 통해 토지를 재분배하고, 시장경제를 용인하며, 주요 산업을 국유화했다.(이를 자본주의적 길이라고 명명). 모든 평의회(소비에트)는 당 정치 위원회에 종속되어야 했다. 후에 국가 주도로 집단농장화를 강제 시행하여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사회주의 목표를 이탈한다. 이에 따라 스탈린 체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의 당이 지배하고, 과도하게 정치화된 국가체제는 ‘전체주의적 관료주의’(트로츠키)를 닮게 되어, 급진주의 사상가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무정부적 혁명 이념이 물물교환을 인정할 정도로 순진하여, 복잡한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현실화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왜곡된 관료주의적 사회주의 이념을 수정할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스페인을 달군 뜨거운 혁명의 시대가 이처럼 큰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알기란 어렵지 않다. 부를 공유하고, 공장도 노동자들이 소유하며, 토지의 주인 또한 농민이고, 비록 아직은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방식일지라도 예전에 비해서는 한층 직접적이 된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요컨대 이상주의자들이 1세기 넘게 꿈꿔온 세계가 펼쳐진 시대였기 때문이다.”2) 소규모 연합체들의 연합체를 국가로 생각하는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는 1910년대 이회영, 신채호, 유자명, 백정기 등 한국 독립 운동가들이 광복 이후 건국 방략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것은 억압과 착취가 현존하고, 정치적 공포가 남아있는 한, 현실에서 완전히 주어질 수 없는 것일지라도 백일몽처럼 나타나 실천적 사상을 이끌어 갈 것이다. 헤밍웨이의 ‘노인’은 ‘바다’의 푸른 정신을 가지고 반동세력(상어)이 뜯어 먹어 가시만 남은 청새치(이념)를 잡아 가지고 돌아와 강건한 실천을 상징하는 사자의 꿈을 꾼다. 현실적 실패는 있어도 이상을 향한 의지는 패배를 모른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노인과 바다》의 메시지는 《토지와 자유》의 메시지와 유사하다. 《전쟁과 평화》에서의 톨스토이가 민중을 지나치게 이상화하여 역사의 주체라고 주장한 것도 초월적 지배 권력이 민중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진실에 대한 욕망을 자극한다. 진실에 충실하고자 하는 욕망은 조직 권력에 대한 충실과 분리된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https://t1.daumcdn.net/cfile/151C254B4DB580F433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악의 세력에 저항하는 산하대지[山川]의 생명을 바탕 삼은 심성은 자유주의도 레닌의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민중적 생명 공생주의를 지향한다. 친일파에게 빼앗긴 토지를 되찾아 무상으로 재분배하는 서희를 통해 땅은 재물이 아니라 상생을 위한 일시적 공유물이라는 동학사상이 재천명된다. 생명의 사회적 실현[氣化]은 평등한 자유를 실현하는 생명주의 윤리이자 불교적 연민을 현세에서 구현하는 심미적 진실이었다. 恨의 정서는 악행으로 왜곡될 수도 있지만, 부정당한 인생을 다시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진실을 품은 긍정의 정서이다. 이 또한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의 생명 사상과도 상통한다. 유토피아를 향해 진격하는 세르반테스의 행동주의 정신인 돈키호테도 대지 품에서 공생하던 황금시대를 꿈꾸고, 그것을 부분적이나마 실현하는 제자 산초 판사를 남기고 죽는다. 스페인의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산초 판사들이라 할 수 있다.

 

장발장의 고난과 사업을 통해 자본주의의 윤리적 책무를 강조하는 빅톨 유고는 레미제라블의 1장에서 라이프니츠와 같은 카발라적 생명철학으로 ‘지렁이와 소크라테스의 동일성’을 설파하고, 민주 공화파의 정치해방과 사회적 연대성을 옹호한다. 초인의 초월성[차이성]만을 본 니체와 하이데거는 다수성과 평등한 동일성의 진리를 대중적 가축 떼의 사상으로 폄하한다. 이에 비해 동학의 초인은 민중의 고통과 같아지는 내재적 동일성을 실현한다. 즉 생명에 대한 내적 자각과 세속성의 분별을 극복한 내외(자아와 세계)의 통일성에서 진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데카르트와 같은 인위적으로 고립시킨 자아의 자명성에 근거한 철학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한다>는 민중적 지성을 발전시킬 필요성이 나온다. 스페인 내전기의 공화파의 자유를 향한 욕망은 부조리한 현실에 사는 모든 사람의 ‘희망’(스페인 내전을 다룬 앙드레 말로 소설의 제목)이다.

 

1905년 러시아 2월 혁명 전의 짜르 체제에서 사회모순에 대한 저항을 유대인에 전가하는 상황에서 무고하게 살인자로 몰린 야콥 복(Yakov Bog)의 재판과 저항을 그린 소설 《수리공The Fixer》(국내 번역: 김재현 옮김, 〈키에프의 신화〉, 한신문화사, 1987. 광주항쟁 직전에 영화가 방영된 적이 있음)은 스피노자 철학을 밤 세워 읽고 자신의 수난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적 변화를 경험한다. 정치적인 것을 자신과 관계없는 특정 인간에 한정하던 이전의 비정치적 관점이 아무도 정치적인 것과 분리될 수 없다는 인간 조건을 인식하게 된다. “모두가 유대인이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존재로 변화하여, 저항의 길을 가는 자유의 꿈을 꾸게 된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인간관의 전신인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는 신체적 욕망이 공포와 슬픔이라는 수동성에서 기쁨이라는 능동적 구조로 변화되고, 아울러 이성을 통해 타인과의 유익한 관계를 확산해 가는 관계의 사상을 인식함으로써 자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을 설파한다. 공포와 슬픔은 폭정과 이를 축복하는 종교의 산물이라는 것이 그리스 유물론을 시로 표현한 루크레티우스(Lucretius, BC, 96~55)의 《De rerum natura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우주는 생명의 여신 비너스의 령으로 충만한 생명계임을 주장, 원자들은 그 안에서 존립)의 기본 주장이며, 이 명랑성의 회복은 스피노자와 마르크스의 인성론의 목표였다. 야곱 복은 감옥 속에서 자신의 내적 변화의 귀결을 간수장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의 목적은 타인을 위해 자유를 창조하는 것이다(The purpose of freedom is to create it for others).”(《The Fixer》, Penquins Book, p. 286. / 〈키에프의 신화〉, 304쪽). 이제 철학은 자유에의 욕망을 도덕적 양심의 근원적 실재로 보는 관점을 우리의 역사적 교훈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맹자는 거지도 발로 차면서 발을 주면 받지 않는다 했다. 이 부정의 의지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인간 현실일 것이다.

 

【참고】 로베스피에르는 개인들의 정치적 자유의 이념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적 사회관계에서 농민과 노동자는 엄연히 노예상태로 존속했다. 사회주의는 이 상황을 극복하려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로베스피에르는 당시의 경제적 사회관계가 민주주의의 대의에 심각한 장애가 되며, 평민이 상공업자의 지배에 만족하거나 그것을 요구하는 한, 프랑스 혁명은 군사독재의 희생물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가 부르주아 세력에 의해 단두대로 사라진 다음, 귀족과 대 부르주아가 지배력을 회복하게 되면서, 로베스피에르의 예언은 들어맞게 된다. 그의 사후 이를 깨달은 사람들이 생기는데 바쿠닌과 같은 무정부주의자, 푸리에와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의 노동영역에서의 사회적 관계가 갖는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자들의 사회 이상(사회주의)을 <경제해방> 혹은 <사회해방>으로, 진보적 자유주의자가 말하는 개인의 정치적 권리를 <정치해방>으로 하는 두 해방의 이념을 제시했다. 민주주의는 이 두 가지 민주화를 목표로 갖는다. 전자는 기존 사회주의의 장점을 발전시키고, 후자는 기존의 부르주아 자유주의가 성취한 민주주의 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자신들의 이념을 사회적 민주주의, 인민 민주주의, 구체적 민주주의로 불렀다. 레닌도 그것을 사회 민주주의로 불렀다. 러시아 혁명 이후 민주주의를 진부한 부르주아 사상으로 몰고, 사회주의와 대립시키는 왜곡이 일어나 양자는 분리되게 되었고, 사회 민주주의는 유럽의 점진적 사회당의 이념을 의미하는 것으로 좁혀지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 퍼진 레닌주의는 경제해방과 정치해방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론과 당 조직론을 더 한다. 그러나 이 레닌주의 체제는 파리코뮌의 자유정신을 계승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근대국가인 억압적 기계 장치로 보일 수 있었다. 스탈린 체제에 대한 트로츠키의 비판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마르크스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빌미가 되었다. 중국혁명사에서도 공산당의 창시자인 진독수(陳獨秀)의 민주주의 요구는 우경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혀 오늘의 시진핑 체제에 이르기까지도 복권되지 않고 있다.

 

스페인 내전에서는 무정부주의 전통이 강한 카탈로니아 지역과 그 수도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무정부주의와 러시아와 연결되어 조직화되어 있는 공산주의자와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말은 무정부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공통된 것이지만, 레닌주의는 당 권력의 군사적인 수직적 합리성에 대한 신앙 때문에 물리적 혁명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지만, 국가 권력형 범죄를 양산했다. 레닌의 사상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강고한 관료주의 국가 범죄 때문에 정신적으로 패배한 이념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코뮌은 인민공사(人民公社)로 불렸는데, 위로부터의 조직화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나 실패로 끝나고, 진정한 민주적 사회주의를 요구하는 민간 급진주의가 문화혁명 기간에도 나타났다. 모택동과 보수적 당권파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민간 급진주의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자본주의적 요소를 시회주의에 이르는 과도적 단계로 활용한다는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을 따르는 현 중국 체제는 유교부흥 운동과 결합되어 관료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심각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역시 정치민주화를 넘어서는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의지는 자유에의 욕망을 가진 개인들의 연합을 통해 자유를 실현하고자 한다.

 

1) Adam Hochschild, 이순호 옮김,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갈라파고스, 2016, 80쪽.

2) 위의 책, 312쪽.

플라톤의 『국가』 강해 ⑬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4-1(336b~338b) : 트라쉬마코스의 저돌적 등장과 소크라테스의 당부(전 시간에 이어 계속)

 

[337b]

* 시치미 떼지 말고 대답하라는 트라쉬마코스의 윽박성 요구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요구는 숫자 12에 대해 물으면서 ‘12=6×2, 12=4×3, 12=3×4’라는 정답을 미리 다 알려준 후 답을 할 때 그런 답은 제외하고 답을 하라는 것과 똑같다고 말한다.

* 소크라테스의 이 말은 336d에서 트라쉬마코스가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마땅한 것, 유익한 것, 이득이 되는 것, 이로운 것, 이익을 주는 것 등으로 대답하지 말고 분명하게 정확하게 답해 달라’고 윽박지르듯 말한 것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이러한 트라쉬마코스의 요구는 소크라테스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앞서 트라쉬마코스가 열거한 답들은 앞에서 소크라테스와 폴레마르코스가 서로 맞는 것으로 동의한 답들인데 그런 답 말고 다른 답을 하라고 하는 것은 그로서는 진실ἀληθής이 아닌 거짓을 말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흥미로운 것은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자신이 아닌 어느 누군가가 묻는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트라쉬마코스가 요구하는 것이 당사자 소크라테스가 아닌 제3자가 보더라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일단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대꾸하는 형식을 빌려 최대한 트라쉬마코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의 말이 ‘기가 막힐’ὦ θαυμάσιε 정도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 ‘이런 식으로 묻는 사람에겐’τῷ οὕτως πυνθανομένῳ. 이 말은 ‘이런 식으로 미리 프레임을 짜놓고 묻는 사람에겐’의 뜻이다.

* ‘당신이 미리 아니 된다고 한 대답들 중의 어떤 대답도 해서는 아니 된다는 건가요?’. 이 말은 일제 강점기 또는 군사독재시절, 기관에 끌려가 폭력과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기관원들이 쓰라는 대로 조서를 쓰고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거나 죽기 까지 한 수많은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337c]

*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가 왜 그런 이해하기 힘든 요구를 하는지 그 이유를 아직은 모르고 있다. 그리고 트라쉬마코스 역시 소크라테스가 자기 말을 12에 대한 답의 경우와 똑같은 경우로 보고 있는 것에 의아해한다. 자기는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과는 다른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두 경우가 같건 같지 않건 그런 질문을 받은 사람에게 그렇게 보인다면, 그 사람은 우리가 대답하기를 금하든 말든 자기한테 그렇게 보이는 것을 답으로 말할 것이라고 말한다. 트라쉬마코스는 그제에서야 소크라테스가 제3자의 입을 빌어 말을 한 것이 다름 아닌 소크라테스의 생각임을 확인하고, 곧바로 ‘자기가 금지한 대답 가운데 어떤 것을 답으로 말하겠다는 것인가?’라고 윽박을 지른다. 이에 소소크라테스는 ‘그렇게 되더라도 놀라진 않을 것이오. 자신이 숙고해서 그렇게 생각된다면’οὐκ ἂν θαυμάσαιμι, εἴ μοι σκεψαμένῳ οὕτω δόξειεν 그대로 답을 하겠다고 말한다.

* ‘질문 받은 사람에게 그렇게 보인다면’φαίνεται τῷ ἐρωτηθέντι τοιοῦτον. 이 부분은 ‘그렇게’에 해당하는 τοιοῦτον이 무엇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질문 받은 사람에게 두 경우가 같은 경우로 보인다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질문 받은 사람에게 정답으로 보인다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자기한테 그렇게 보이는 것’τὸ φαινόμενον ἑαυτῷ은 ‘자기에게 정답으로 보인 것’을 뜻한다.

* ‘그렇게 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오. 자신이 숙고해서 그렇게 생각된다면 말이오.’οὐκ ἂν θαυμάσαιμι, εἴ μοι σκεψαμένῳ οὕτω δόξειεν. 이 말은 ‘내가 잘 살피고 숙고해서 답으로 생각한 것이라면 그것이 당신이 금지한 답이라 할지라도 그 이유 때문에 당혹스러워하거나 놀라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 트라쉬마코스의 윽박지름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기가 생각한 대로 대답을 할 것임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어떤 강압과 금지가 있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할 말은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의지가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앞에서 트라쉬마코스의 폭력적 모습에 두려워하며 겁을 내던 모습과 다시 대조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사람이 용기를 내는 것은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렵지만 그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용기 또한 앎에서 나오는 것이다.

 

[337d]

* 소크라테스가 어떤 강압적인 금지가 있더라도 진실 아닌 것을 답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결연한 자세를 취하자 트라쉬마코스는 자기의 대답이 정의에 관해 나온 앞서의 모든πᾶς 대답들과 다른ἑτέραν, 아니 그 보다 더 나은βελτίω τούτων 답을 제시할 경우 어쩌겠냐고 묻는다. 자기가 정의에 대한 답으로 내심 생각하고 있는 것을 소크라테스가 아직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고취되어 빨리 자기가 먼저 대답하고 싶어 하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게다가 트라쉬마코스는 벌칙을 감수하라고까지 제안한다.

 

[337d]

* 트라쉬마코스가 ‘무슨 벌을 받아 싸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소크라테스는 ‘그야 알지 못하는 자τῷ μὴ εἰδότι로서 받아 마땅한 벌τί ὅπερ προσήκει πάσχειν 이외에 무엇이겠소? 그로서는 지자한테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마도 합당할 것이오. 따라서 나는 이 벌을 받아 싸다 τοῦτο ἀξιῶ παθεῖν고 생각하오.’라고 대답한다.

* 여기서 트라쉬마코스는 마치 재판정에서 고소인이 말하듯 말하고 있다. 아테네 재판 절차에 따르면 죄가 확정되면 고소인이 피고소인에게 어떤 벌을 받았으면 좋은지를 물은 후 자기가 생각하는 벌을 제안하고 그것을 재판관들이 판단하여 결정한다. ‘무슨 벌을 받아 싼가?’ τί ἀξιοῖς παθεῖν;라는 물음은 이때 고소인이 법정에서 묻는 일종의 법정 용어이다. 이것은 이미 트라쉬마코스가 소크라테스를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이미 응징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자기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알지 못하는 자로서’τῷ μὴ εἰδότι ‘받아 마땅한 벌’로서는 ‘지자한테서 가르침을 받는 것’μαθεῖν παρὰ τοῦ εἰδότος이 합당하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가 재판정에서 말하듯 말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의 의도에 맞추어 벌칙인 양 제안하지만, 실은 벌이 아니라 논쟁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할 바람직한 태도로서 트라쉬마코스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러나 트라쉬마코스는 그 벌이 결국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은 모른 채 ‘가르침을 받는 것’, ‘배우는 것’은 벌이 아니라 오히려 소크라테스가 좋아하는 것으로 여기고(338b) 있다. 그래서 트라쉬마코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듣자마자 ‘정말 재미있는 분이셔’ἡδὺς라고 조롱한다. 자기는 늘 그렇듯 많은 것을 알고 가르치는 선생이고 소크라테스는 늘 그렇듯 배우는 학생처럼 질문만 하는 학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트라쉬마코스는 평소 가르침의 댓가로 돈을 받듯이 소크라테스에게 배우는 벌에 더해 벌금ἀργύριον까지 낼 것을 요구한다. 소크라테스가 가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은 트라쉬마코스의 금전욕만이 아니라 그의 비열함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벌금의 원어 ἀργύριον이 그냥 ‘돈’을 의미하고 소피스트들의 경우 가르침의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 말을 ‘수업료’로 옮기기도 하지만 트라쉬마코스가 마치 자기가 재판하듯 말하고 있고 그 말 앞에 쓰인 ‘대가를 물린다’ἀποτίνω라는 말 역시 법정 용어임을 고려하면 ‘벌금’으로 옮기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 아무리 벌칙이라 할지라도 트라쉬마코스가 벌금을 제시하고, 게다가 그가 말하는 벌금이 가르침에 대한 대가라는 뜻으로도 들리자, 글라우콘이 참다 못 해 바로 끼어들어 돈 때문이라면 자신들이 갹출할 테니 말이나 계속하라고 다그친다. 트라쉬마코스의 말은 자신들의 스승 소크라테스에게는 물론 그들 자신에게도 모욕적인 것이다.

 

[337e]

* 트라쉬마코스는 글라우콘의 말에 ‘물론 그러리라 생각하오.πάνυ γε οἶμαι 그렇게 해서 소크라테스 선생께서 늘 하시는 식대로 하시게 하자는 거겠죠. 스스로는 대답을 하지 않으시면서 남이 대답을 하면 그 주장을 붙들고서는 반박하시는 식이죠.’αὐτὸς μὲν μὴ ἀποκρίνηται, ἄλλου δ᾽ ἀποκρινομένου λαμβάνῃ λόγον καὶ ἐλέγχῃ라고 말한다.

* ‘물론 그러하리라 생각하오’라는 트라쉬마코스의 말은 소크라테스의 지지자들이 소크라테스를 경제적으로 돕는 일이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 여기서 ‘남이 대답을 하면 그 주장을 붙들고서는 반박하는 것’은 사실 소피스트들도 늘 하는 일로서 그들이 가르치는 주된 과목 중 하나인 반론법(logistikē)이기도 하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들의 눈에는 소크라테스도 그러한 일을 한다고 보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로 불리어 지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피스트들의 반론법은 어떻게든 논쟁에서 이기기거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상대 주장의 꼬투리를 잡는 기술이고,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상대 주장의 한계를 드러내 그로 하여금 앎에 대한 동기를 자극하고 그것을 토대로 함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기술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 이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도 못하는 사람’τὶς ἀποκρίναιτο μὲν μὴ εἰδὼς μηδὲ φάσκων εἰδέναι일뿐만 아니라 ‘설사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말하지 않도록 금지당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그와 달리 트라쉬마코스에 대해서는 ‘함부로 쉽게 볼 수 없는οὐ φαύλου 사람’, ‘알고 있고 말할 수도 있는’εἰδέναι καὶ ἔχειν εἰπεῖν 사람으로 말을 한다. 이 역시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들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소크라테스가 알고 있는 앎은 ‘무지의 지’이지만 소피스트들은 웬만한 것은 다 알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 사실 많은 사람들이 소크라테스가 ‘과연 무지의 지 이외에 다른 것은 몰랐을까’ 의문을 표시하곤 한다. 소피스트들 역시 그런 의심을 갖고 소크라테스가 알면서도 시치미를 뗀다고 비난을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추구하는 앎과 소피스트들이 자랑하는 앎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면 소크라테스 스스로 ‘모른다’고 말하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고민하고 알고자 하는 앎이 우리의 삶은 물론 자연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가 추구하는 철학적인 앎은 소피스트들이나 학원 선생님들 같이 자신들이 전문적으로 알고 있고 그런 것들에 관해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언제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앎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소크라테스가 고민하는 수준의 철학적 문제들은 쉽사리 ‘안다’고 대답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수가 있다. 이를테면 수 십 년을 참선하며 정진하는 수도승의 경우 정말 진리를 깨달았다고 스스로 확신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안다’고 말하기 힘들고 설사 확신하고 있다고 해도 선뜻 말로 풀어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수도승도 자기보다 앎이 적은 사람들을 상대로 뭔가를 가르칠 수도 있고 질문에 대해 답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궁극적인 답에 대해서만은 함부로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모른다’고 말했다고 해서 아무런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는 비록 일상적인 생각이 갖는 한계들을 드러내는 방식이긴 했지만 평생 쉬지 않고 ‘무지의 지’를 통해 자기 성찰과 진리 탐구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또 그러한 가르침에 감복하여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비판 정신의 극치로서 그의 ‘무지의 지’ 자체가 갖는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 ‘무지의 지’를 깨닫기까지 그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을 심오한 앎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수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스승이 평생 걸어갔던 사색의 길을 뒤 쫓아가며 스승이 남긴 앎의 화두를 붙잡고 되물어보고 또 되물어보면서 전기 대화편들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 중년이 넘어가며 스승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자기 방식으로 조금씩 깨달아가면서 그 내용들을 스승의 입으로 중후기 대화편들에서 담아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물론 플라톤이 담아낸 내용이 과연 소크라테스가 생각했던 것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분명 플라톤의 교설 속에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정신과 숨결이 살아 맥동치고 있음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할 것이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를 비판과 부정의 정신을 표상하는 영원한 스승이자 화신으로 살아 숨 쉬게 하면서 동시에 그의 정신을 자신의 사상 속에서 육화시켜 인류사에 길이 남을 지성의 성과로 드러냈던 것이다.

 

[338a]

*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자신은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설령 알고 있다고 생각할 지라도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에게 도대체 누가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한 후에, ‘그러니 차라리 알고 있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트라쉬마코스 당신이 먼저 대답해서 나를 기쁘게 해주고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도 가르침을 주라’고 말을 한다.

* 앞서도 언급했듯이 소크라테스는 이미 트라쉬마코스가 어떻게든 빨리 뽐내듯 자기주장을 펼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 점을 노려, 먼저 대답하지 않는다는 그의 타박을 변명과 정중한 요청의 형식으로 받아친다. 역시나 트라쉬마코스는 그에 우쭐하여 먼저 주장을 펼치려는 속내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트라쉬마코스 자신 자기당착에 빠졌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꼴이 되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그는 다시 열을 올려 소크라테스를 지혜로운 자로 힐난한 후 가르침은 주지 않고 남들에게 배우기만 바라면서 그들에게 감사할 줄도 모르는 사람으로 몰아간다. 이 말에도 어디까지나 자기가 가르치는 사람이고 소크라테스는 잔꾀나 부리며 배우는 사람이라는 교만이 녹아있다.

 

[338b]

*소크라테스의 되받음은 상대의 주장을 바로 부정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해 그것을 발판으로 거꾸로 상대 의도를 무산시키거나 스스로 덫에 걸리게 만든다. 이 또한 아이러니이다. 여기서도 소크라테스는 남들한테 배우기만 하는 사람이라는 그의 폄하를 오히려 자신이 좋아 하는 것이라고 응수한 후 트라쉬마코스가 감사χάρις 표시로 생각하는 돈χρήματα 대신 열렬한 칭찬ἐπαινεῖν을 사례로 주겠다는 형식으로 그의 대답을 이끌어 내고 있다.

*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돈이 없다’χρήματα οὐκ ἔχω고 말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는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돈이 없다고 해서 소크라테스가 가족들의 생계마저 등한시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여러 전승들은 그가 석공이던 부친의 대를 이어 석공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고 전하고 있다. 일치된 전승은 아니지만 아크로폴리스의 여신상들의 일부는 그의 작품이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일부 전승은 그가 석공으로 번 돈을 아껴 저축도 했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도 시사되고 있듯이 소크라테스를 흠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간간히 그를 후원했던 것도 사실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특히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철학에 매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매달려 석공 일을 그만 두지도 않았고 게다가 당대 시인들이나 소피스트들처럼 권력자들과 부자들에게서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그에게는 아예 생각조차 할 수없는 일이었다. 그를 흠모하여 스승 소크라테스에게 넓은 땅을 주려던 알키비아데스도, 그에게 노예를 제공하려던 카르미데스도 단번에 거절당하고 만다. 아무튼 소크라테스는 그 자신이 말한 대로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했지만 그 이상의 돈은 결코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던 것이다.

 

4-2(338c~339a) : 트라쉬마코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고 주장하다.

 

[338c]

* 소크라테스가 자신은 누가 만약 훌륭한 말을 한다고 판단될 경우ἐάν τίς μοι δοκῇ εὖ λέγειν 열렬하게 칭찬ἐπαινεῖν한다고 하자 트라쉬마코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뇌관에 불이 붙고 곧바로 폭탄이 터지듯 대자고자 정의에 관한 자기 생각의 본심을 토해낸 후, 빨리 칭찬부터 해달라고 소리친다. 이른바 트라쉬마코스 주장의 기본 테제 즉 ‘정의는 더 강한 자의 이익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εἶναι τὸ δίκαιον οὐκ ἄλλο τι ἢ τὸ τοῦ κρείττονος συμφέρον라는 주장이 처음 제기되는 부분이 이곳이다.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정의는 강자의 이익’τὸ τοῦ κρείττονος συμφέρον δίκαιον εἶναι.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소크라테스가 그의 말을 받아 다시 표현한 말이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는 말과 그 자신이 말한 ‘정의는 강자의 이익 이외의 다른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내용상 같은 말이지만 이미 그 말 속에 트라쉬마코스의 강고한 아집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참고로 원문은 ‘강한’을 의미하는κρατύς 의 비교급κρείσσων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τὸ τοῦ κρείττονος은 우리말로 ‘더 강한 자’로 번역함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강함’ 자체가 비교 우위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용 상 큰 차이는 없다고 할 것이다.

*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칭찬하려면 그 말뜻을 알아야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하며 그의 말을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τὸ τοῦ κρείττονος συμφέρον δίκαιον εἶναι라는 주장으로 다시 표현한 후 트라쉬마코스에게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한 것인지를 팡크라티온 선수 즉 운동선수의 경우에 빗대 다시 묻는다.

* 소크라테스가 꺼내든 판크라티온 선수 이야기에는 소크라테스가 그의 주장을 의아해하는 이유와 그가 계속 대화에 나서도록 자극하려는 의도가 함께 들어있다. 우선 그 예 속에는 최소한 정의라고 한다면 강자와 약자 강함과 약함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이득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과 상식이 환기되어 있고 그럼에도 트라쉬마코스는 그 중 한 쪽만 그것도 강한 쪽만 이득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고기는 판크라티온 선수와 같은 특수한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고 일반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소크라테스의 이야기 속에는 트라쉬마코스가 말하는 강자의 이득이란 것이 일반 사람과 상관없는 그런 특이한 종류의 이득에 불과하다는 비아냥 혹은 ‘네 말은 강자에게 좋다고 약자에게도 좋다는 걸 말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야유가 들어있다고 볼 수도 있다.

 

[338d]

* 실제로 트라쉬마코스는 이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를 향해 자기주장을 최대로 곱새기는κακουργέω 진절머리나는‘βδελυρὸς’ 사람이라고 내뱉는데 그러한 표현들은 통상 연설가들에게 모욕을 퍼부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Cf. Aristophanes <개구리> 465. κακουργέω라는 동사 역시 수사학이나 변증적 추리에서 악의적인 트릭이나 오류를 사용했을 때 쓰는 말이다. Cf. <고르기아스> 483A. 그가 얼마나 무례하고 안하무인의 인물인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 트라쉬마코스는 칭찬 대신 비아냥이 주어지자 발끈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거꾸로 트라쉬마코스에게 ‘정의는 강자의 이다’라는 말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를 좀더 분명히 말하라고 단호하게 요구한다. 이 장면 또한 아이러니이다. 왜냐하면 ‘분명하고 정확하게 해달라’는 요구는 앞서 트라쉬마코스가 대화에 처음 끼어들며 소크라테에게 한 말인데(336c) 여기서는 반대로 소크라테스가 트라쉬마코스에게 그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장면은 트라쉬마코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아집을 토해내게 만드는 방식으로 소크라테스가 원하는 문답법의 장을 관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소크라테스적 논박ἔλεγχος이 시작된 것이다.

* 사실 트라쉬마코스가 “정의는 더 강한 자의 이익”이라고 했을 때 ‘더 강한 자’라는 것이 어떠한 이해관계에서 비교 우위를 갖는 ‘더 강한 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 오늘날 우리들도 흔히 말하듯 일상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서 ‘보다 힘이나 위력이 센 놈이 결국 이익을 차지한다.’라는 생물학적 약육강식의 논리가 표명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추궁에 트라쉬마코스가 내놓은 대답에는 그러한 이해관계가 개인차원의 것이 아님이 드러나 있다. 즉 트라쉬마코스는 여러 정치체제의 경우를 끌어들여 자신이 말하는 ‘더 강한 자’란 다름 아닌 ‘통치 권력을 가진 자’ἀρχὴ 즉 정치적 지배자임을 밝힌다. 물론 여기서 트라쉬마코스가 밝힌 ‘통치 권력을 가진 자’가 곧 그가 말하려는 ‘더 강한 자’의 유일한 의미인지, 아니면 정의가 강자의 이익임을 설명하기 위한 단적인 경우로서 통치 권력자를 제시한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트라쉬마코스에 와서 정의의 문제가 앞서와 다르게 개인적인 삶의 태도나 이해관계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인 문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트라쉬마코스와의 대화 부분에 와서 드디어 정의의 정치적 측면이 처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를 이제 개인의 이해관계나 행위 차원을 넘어서서 폴리스의 현실 정치 영역으로 확대시키려는 플라톤의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제의 전환과 확대는 제2권에서 소문자 대문자 비유를 통해 정의의 문제가 개인에서 나라로 확대되는 것과도 비교된다.

*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처럼 정의 문제가 정치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1) 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는 테제가 핵심 테제로서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2) 왜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의 그 주장에 온 힘을 기울여 완벽할 정도로 논파했음에도 왜 그것에 만족스러워하지 않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플라톤이 <국가>에서 펼치게 될 논의의 목표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 전 시간 언급했듯이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는 주장은 결코 트라쉬마코스의 개인적 주장이 아니다. 투퀴디데스가 남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몇 장면은 그러한 정의관이 당대 아테네 기득권 세력들 사이에서 얼마나 넓게 펴져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 시간에 그 장면들 몇 가지를 살펴본 후, 제1권의 핵심을 이루는 트라쉬마코스와의 대화 부분에 대한 본격적인 강해를 시작하기로 한다.

이 사람아, 자네 머릿속에서 유령이 출몰하고 있네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이 사람아, 자네 머릿속에서 유령이 출몰하고 있네

박종성(한철연 회원)

 

  1. 고정관념은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유령이다.

 

우리는 앞서 신성모독자가 수행하는 신성모독(Entheiligung)과 과소평가(Herabsetzung)는 탈마법화라는 점을 이해하였다. 나아가 신성한 것에 대한 탈마법화는 지금까지의 ‘희생’과 ‘체념’의 역사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슈티르너는 새로운 역사의 문 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너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어라!” 나의 번영하기 위해서(um emporzukommen) 반드시 저항해야(empören) 한다.(282)

이 글에서는 고정관념에 대한 슈티르너의 이야기를 음미해보고자 한다.

 

 

이 사람아, 자네 머릿속에서 유령이 출몰하고 있네(Mensch, es spukt in Deinem Kopfe). 자네는 미쳤네!(Du hast einen Sparren zu viel) 너는 위대한 존재물(Dinge)을 상상한다. 그리고 너는 너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신들의 모든 세계, 네가 어떤 것에 천직인 정신의 왕국, 너에게 손짓하는 이상(Ideal)을 마음에 그린다. 그러므로 당신은 일종의 고정관념(fixe Idee)을 가지고 있다네!(46)

 

그가 ‘고정관념’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을 복종시켰던 하나의 관념(Idee)이다.”이고 “어떠한 비난도 허용되지 않는 미덕(Tugend)이다.”(46) 나아가 “어떤 생각을 불어넣었던(sich in den Kopf gesetzt) 것”을 고정 관념(fixe Idee)이라고 부르고 있다.(80) 그것은 “어떤 경우이든 그들의 머릿속에서 유령으로 출몰한다(spukt). 가장 괴롭히는 유령(Spuk)은 인간(der Mensch)이다.”(80) ‘그 인간’이라는 ‘유령’은 고정관념이고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이다. 그리고 슈티르너는 이러한 유령을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헤겔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념(Begriffe)은 도처에서 결정해야만 하고, 삶을 규정하고, 지배한다.”(104) “언어 혹은 ‘말’은 우리를 가장 과격하게 전제적으로 다스린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에 반대하여 고정 관념이라는 어떤 완전한 군대를 세우기 때문이다.”(389) 또한 “고정 관념은 ‘근본명제, 원리, 입장’ 등과 같은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낯선(fremd) 입장이 바로 정신, 이념, 생각, 개념, 본질 등의 세계이다.”(67)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개념규정(Begriffssatzungen)에 따라 살아가도록 강제되었다.”(105)는 것이다. 슈티르너는 이러한 개념규정을 비판하면서, 개념이 ‘유일자’, ‘에고이스트’를 초라하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유일자의 소유가 약화되는 곳에서, 그것이 중지하는 곳에서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음’이 시작되고 어떤 목적은 고정관념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음(Uneigennützigkeit)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66]바로 어떤 목적이 우리가 소유자(Eigentümer)로서 뜻대로 행동할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는 우리의 목적과 우리의 소유(Eigentum)를 중지하는 그 곳에서 시작한다. 그 경우에 어떤 목적은 하나의 고정된 목적이거나 하나의 고정 관념이 된다.

 

슈티르너가 고정관념에 대해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이유는 우리들의 삶의 ‘고통’에 주목하고 있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들 대부분 신문들의 모든 바보 같은 쓸데없는 말은 도덕, 적법성, 기독교 정신 등등의 고정관념으로부터 고통 받는(leiden) 바보들의 끊임없는 수다가 아닌가?”(47) 슈티르너는 분명히 이러한 고정관념이 우리에게 끼치는 억압성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다. 앞서 슈티르너가 탈신성화를 통해 ‘희생’과 ‘체념’의 역사를 넘어서서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어라”라고 주장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데리다가 현대의 영혼 상태로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고통에 대한 부정적인 방식이다. 곧 우리가 고통받게 만들고(Leiden-machen), 고통스럽게 놓아두고(Leiden-lassen), 스스로 고통스럽게 만들고(Sich-leiden-machen), 스스로 고통받게 놓아두는(Sich-leiden-lassen) 고통에 대한 부정적인 해결방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Seelenstnde Psychoanalyse) 슈티르너에게 ‘고정관념’은 고통의 원인이다. “어떤 참된 것을 얻으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들은 지배자를 찾으려고 애쓰고 찬양한다.”(397)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 지배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고정관념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므로 우리가 스스로 고통받게 만든 것이고, 이 고정관념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고통받게 놓아두는 것이며, 스스로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하늘을 자신들에게 안전하게 하기 위하여, 천국의 입장을 확고하게 그리고 영원히 받아들이기 위하여, 인류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칠 줄 모르게 필사적으로 싸웠다.”(67)

 

 

  1. 고정관념에 대해 의심하라

 

이러한 고정관념에 의한 고통으로부터 저항하고 빠져나올 수 있는 태도는 의심하는 것이다. 곧 고정관념이라는 신성한 것에 대해 의심하는 태도가 유일자의 태도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유일자고 선언하는 것은 다른 그 무엇을 자신보다 더 높은 본질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아님’이라고 신성모독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문마다 정치기사로 가득한 것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한 언젠가 비판의 날카로운 칼을 자신들의 고정관념에 놓으려 하지 않고, 노복(奴僕)은 노복 근성(Untertanentum)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덕으로, 자유주의자는 ‘인류’ 등등으로 어렵게 살아간다. 미친 사람의 그릇된 생각처럼 확고한 그들의 생각들은 단단한 토대에 서 있다, 그리고 저 생각들을 의심하는 사람은 –신성한 것을 공격한다! 그렇다, ‘고정관념’, 그것은 참으로 신성한 것이니까!(47)

 

위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슈티르너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의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 곧 도시(polis)를 자연적 사실로 보고 도시 안에서의 삶을 정치적 동물로 파악하면서 공동체의 목적성을 함께 존재함의 행복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슈티르너는 기존의 공동체의 삶에 대해 의심한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적으로 이해하고 ‘에고이스트의 연합’을 구성하길 원한다. 그리하여 연합은 교류, 상호성(Gegenseitigkeit)이고 자유의 확대이며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기존의 ‘생각들 의심하는 사람’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해 의심하면서 살고 있는가? 과연 이 사회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너무나 뻔한 질문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당연한 것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것에 대해 의심하며 살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슈티르너는 고정관념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여 그 신성함에 대해 모독을 하길 원했고, 맑스는 자본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했기에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한 비판과 분석이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편협 고루한 종교적 견해를 종교적 입장의 또 다른 측면, 곧 도덕적 입장으로 교환한다(eintauschen). 예를 들어 우리는 더 이상 “신은 사랑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은 거룩한(göttlich) 것이다”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거룩한 것이다”라는 술어의 자리에 동일한 의미인 “신성한 것이다”(heilig)라는 말을 대신한다면, 상황은 모든 낡은 것으로 다시 귀환한다. 그것에 따라서 사랑은 인간에게 선한 것, 선한 것의 거룩함(Göttlichkeit), 인간에게 명예를 만드는 것, 인간의 참된 인간다움(이것은 “그를 비로소 인간(Menschen)으로 만들고”, 비로소 그의 밖에 어떤 인간을 만든다.)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선한 것은 더 정확하게 다음과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인간적인 것이다. 그리고 비인간적 인간(Unmenschliche)은 애정이 없는 에고이스트이다.”(51)

 

슈티르너가 비판하는 도덕적 입장으로 교환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신은 사랑이다”에서 “사랑은 거룩한(göttlich) 것이다”로, 그리고 다시 “사랑은 신성한(heilig)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인간에게 인간적인 것이다”로 교환된다. 이렇게 되면 슈티르너가 보편적 추상성을 나타내는 ‘인간’과 구분하여 개별성을 강조하고자 사용하는 ‘자아’, ‘유일자’, ‘에고이스트’는 비인간적 인간인 것이다. 그런데 맑스와 아도르노에게서도 교환Tausch, 교환가치Tauschwert는 자본주의 사회나 상품의 비밀로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열쇠이다. 이것에 반대 측에는 사용가치, ‘즉자적인 사물이 갖는 질’(質), ‘불가공약적인 것’이다.(계몽의 변증법, 32쪽) 이런 맥락에서 슈티르너가 비판하는 ‘도덕적 입장’으로 교환한 것은 ‘인간다움’이다. 모든 개별자는 ‘인간’ 혹은 ‘인간다움’으로 교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다움 그 반대 측에 있는 사용가치는 ‘나다움’, ‘비인간적 인간’, ‘에고이스트’로 볼 수 있다. 나다움의 주장은 모든 나다움이 ‘인간다움’이라는 교환가치로 교환된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과 교환되는 모든 ‘유일자들’의 비교될 수 없는 질적인 측면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다움’이 ‘인간다움’을 가능하게 하는가? 슈티르너는 ‘나다움’이 ‘인간다움’의 실존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또는 ‘인간다움’이 ‘나다움’을 가능하게 하는가? 헤겔은 후자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은 좋은 국가의 시민이 되는 데서 비로소 자기의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법철학, 153절 보)

또한 위 글에서 논의되는 ‘인간다움’은 계몽과 연관하여 살펴볼 단어이다. 왜냐하면 계몽은 인간다움과 이성성의 원리들을 통해 규정되어 있으며 순수하고 고상하고 인륜적이고 완전하게 만드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몽가들의 진보 이데올로기에 있어 계몽은 잠재적으로 역사적인 범주, 기획과 목표 개념으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6 계몽』, 31-32쪽 참조). 계몽이 인간다움을 지향하고 있다면, 슈티르너는 인간다움을 지양하여 나다움(Eigenheit)을 지향하고 있다.

 

 

  1. 창백한 덕(Tugend)을 경멸하라

 

고정관념은 신성한 것이고 이것을 의심하는 것이 나다움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성한 정신은 절대적 관념으로 변신하고 다시 절대적 관념은 인류애, 이성적인 것, 시민의 덕 등등으로 변신한다.

 

가지각색의 변신들(Wandlungen) 가운데 신성한 정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절대적 관념’(absolute Idee)이 되었다. ‘절대적 관념’은 다시 다양한 굴절을 통해 서로 나누어져(auseinander) 인류애, 이성적인 것, 시민의 덕(Bürgertugend) 등등의 다른 종류의 관념을 만든다.(104)

 

슈티르너는 절대적 관념이 변신한 것들 가운데 ‘덕’(Tugend)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남성다움, 여성다움을 자신의 특성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다움’으로 인하여 고통 받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많은 고정관념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기 때문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아니라 ‘나다움’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남자다움(Männlichkeit) 혹은 여자다움(Weiblichkeit)과 같은 어떤 나의 특성((Eigenschaft) 고유성(Eigentum))일 뿐이다. 고대인은 사람들이 완전한 의미에서 남자(Mann)라는 그 점에서 이상(das Ideal)을 생각했다. 다시 말해 남자의 덕(Tugend)은 남성적인 힘(virtus)과 훌륭함(arete), 다시 말해 남성다움(Männlichkeit)이다.…여자는 ‘진정한 여성다움’(echten Weiblichkeit)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199)

독일어 Tugend는 virtus(남성적인 힘), vir(인간)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사물의 고유한 힘을 의미한다. 그런데 “ 인간(Der Mensch)은 단지 어떤 이상이고, 유는 오로지 어떤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Ein Mensch)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인간(Menschen)이란 이상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별자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200) 슈티르너에게 ‘이상’은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존재의 의미이다. 그런데 “종교는 어떤 이상(Ideal)의 고정(Fixierung), 어떤 절대적인 것의 확정으로 존재한다. 완전성은 ‘최고의 선’이고, 선의 끝(finis bonorum)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이상은 완전한 인간, 참된 인간, 자유로운 인간 등등이다.”(269) 우리는 이미 고정관념이 “어떠한 비난도 허용되지 않는 미덕”(46)이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슈티르너는 우리를 지배하는 고정관념, 곧 “창백한 덕(Tugend)을 경멸하기(verschmähen) 위해” 노력했던 ‘니농’(Ninon)에 대해 언급한다. 먼저 ‘욕하다’, ‘비방하다’(schmähen)와 연관된 단어는 조롱(spott), 무례함, 자만이라는 단어와 함께 모두 탈신성화를 위한 마음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잠시 니농 드 랑클로(1616∼1705)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는 17세기 프랑스 사교계를 주름잡던 여성인데, 직업은 ‘코르티잔(Courtesan, 고급 창부)’으로 알려져 있다. 15세에 아버지를 잃고 가난한 하급귀족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고급 창부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현명하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이태리어, 스페인어, 수학과 철학 등에도 매우 뛰어났으며, 유머와 센스를 겸비한데다 우아한 외모도 갖췄다고 한다. 루이14세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의 조언을 들었고, 볼테르도 그의 살롱에 출입하는 단골 문인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프랑스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불공평함을 극복하기 위해 남성 우월주의가 만든 모범적 삶과 탕녀의 고정관념을 바꿨다. 슈티르너도 이러한 그의 모습을 자유로운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말을 빌리자면,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며,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여성으로서는 유례없는 지적 자유를 누렸다.” 니농 드 랑클로는 “군대를 지휘하는 것보다 사랑을 할 때 훨씬 더 많은 재능이 필요하다” “사랑은 굶주림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화불량으로 죽는 경우는 많다.”(코르티잔, 매혹의 여인들, 수잔 그리핀 지음, 노혜숙 번역/해냄출판사)

 

 

  1. 비아(Nicht-Ich)라는 실체에 비굴하게 굴지 말고 조롱하고, 경멸하고, 의심하라, 그래서 나다움의 가치를 끌어올려라

 

“비아(Nicht-Ich)라는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엄청난 가격을 지니고 있는 한, 나의(Meiner) 가치는 높게 평가되지 않을 것이다. 비아는 나에 의해 소비하고 흡수되기에는 여전히 너무 거칠고 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체를 완전히 먹어 없애지 않으므로, 기생생물이 신체에서 바로 그 신체의 체액으로부터 양분을 배양하듯이, 사람들은 이러한 움직일 수 없는 것(Unbeweglichen)에, 다시 말해 이러한 실체(Substanz) 주변에서 대단히 부지런히 비굴하게 굴뿐이다.”(72)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비아는 신과 같이 파괴되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비아는 국가, 사회로 볼 수 있다. 슈티르너는 또한 사회를 실체로 간주하는 것을 비판한다. “사람들은 사회의 실체(Substanz)를 다치지 않게 해야만 하고 신성하게 유지해야만 한다.”(343) 실체에 대한 잠시 살펴보자. 최초의 존재자를 ‘자기 원인’, 곧 신(theos)이라고 보고, 이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유래하는 존재자’이므로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족체(自足體, autarkeia)’이며, ‘그것은 자신의 본질 상 자기 안에 존재를 포함’하기 때문에 ‘자기의 존재를 위하여 어떤 다른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데카르트, Principia Phil, 1, 57)이라는 의미에서 ‘실체’(substantia)라고 불리고 모든 존재자를 포괄한다는 뜻에서 ‘최고 완전 존재자’(ens perfectissium), 혹은 모든 존재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질들을 다 갖추고 있다는 의미에서 ‘최고 실질(재) 존재자’(ens realissimun)라고 불리 운다.

그런데 슈티르너는 실체의 개념을 ‘자족체’로 이해하기보다는 실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실체라는 것은 마치 기생생물이 바로 그 신체의 체액으로부터 양분을 배양하듯이, 사람들이 그러한 실체에 대해 비굴하게 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비아’는 소비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러한 비아를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실체로 보이는 것이다. 신성한 것은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 아니다. 신성한 것은 신성한 것이라고 ‘선포’되어야 신성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질적인 것’(Wesentliches) 혹은 ‘실체적인 것’(Substantielles)은 아무것도 변화(Veränderung)와 관련되어 있지 않다.”(72) 독일어 Wesen은 ‘본질’을 뜻하는 라틴어 essentia가 어원이다. 이 말은 ‘존재하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 ousia의 번역어인 라틴어 esse에서 유래한 것이다. 철학에서는 1)부수적인 성질의 반대말로 어떤 존재의 항구적인 본성을 구성하는 것인데, 이 점에서 ‘실체’와 가깝다. 나의 것이 비아의 것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국가가 자아(das Ich)로 존재하는 한, 개별적인 자아는 일종의 가난한 악마, 어떤 비-자아(Nicht-Ich)로 남아야만”(280) 한다.

그는 욕망(Begierden)이 ‘고정되어(fix)’서는 안 된다.(67)고 말한다. 그리고 오히려 “나의 소유 스스로가 고착되어 하나의 ‘고정된 이념’ 혹은 하나의 ‘병적 욕망’(Sucht)이 될 수 있기 이전에 그것을”(157) 삼켜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고정관념은 병적 욕망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폐욕망(Geldgier)으로부터 화폐욕망의 노예만을 자유롭게 한다.”(374) 그리고 그는 이러한 고정관념에 의해 ‘노예화된 본성의 한탄(Jammer)을 경청’하라고 한다.(68) 화폐욕망은 맑스가 자본에서 언급하는 것으로, 맑스는 이러한 화폐의 욕망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으로 만들어 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그는 독단론자과 비판가를 구분하는데, “비판가는 항상 사상에서 출발하지만, 그러나 그는 원리적인 생각을 사유과정(Denkprozess)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그 생각을 고정된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단론자와는 차이가 있다.”(162)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면 유일자는 비판가인 것이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이 의심하는 자이다. 나아가 “’경건하지 않음’(»Unehrerbietigkeit)«과 ‘뻔뻔스러움’(Frechheit)”(311)은 유일자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단어는 함께 쓰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곧 신성한 것에 맞서는 유일자의 태도인 것이다. 그리고 조롱(Spott), 욕설(Schmähung), 경멸(Verachtung), 의심(Bezweifelung) 등도 유일자의 덕목임을 드러내고 있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 그래서 그는 “나의 가치, 곧 나다움이라는 가치를”(279) 끌어 올려라! 그런데 “내가 나다움(Eigenheit)을 나에게 마련해 주는 만큼 내가 그만큼만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충분히 인정하지 못한다.”(184)는 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자기 해방’(Selbstbefreiung)이기 때문이다.

자기해방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글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 ⑫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1. 트라쉬마코스와 대화(336b~354c)

 

* <국가> 제1권이 제2권 이후에서 플라톤이 마주해야할 도전들을 담고 있다면 트라쉬마코스가 던지는 문제는 그 도전의 핵심에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트라쉬마코스가 제기하고 있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는 주장은 그의 주장이기 이전에 이미 당대 소피스트들과 기득권 세력 사이에서 널리 팽만해있었던 정의관이었다. 이 점을 고려하면 플라톤이 타파하려는 근본 표적은 트라쉬마코스가 아니라 소피스트들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트라쉬마코스가 등장인물로 설정된 것은 <국가>의 대화상정시기인 기원전 420년 전후해서 그가 아테네에서 활동한 가장 저명한 소피스트들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문제는 소피스트들인 것이다. 플라톤이 얼마나 소피스트를 의식하고 있었는가는 그의 대화편들 중 상당수가 소피스트 혹은 소피스트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소피스트들의 생각과 문제의식은 플라톤이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세우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할 과제이자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소피스트들의 사상 전체를 살피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다만 소피스트들의 등장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이곳에서의 논의를 이해하는데도 매우 중요하므로 여기서는 그 점에 대해서만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 우선 ‘소피스트’라는 명칭은 어떤 동일한 사상을 공통으로 내걸고 나선 어떤 특정 학파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도 아니고 일찍이 아테네에 존재했던 일군의 지식인 계층을 가리키는 말도 아니다. 그 말은 의미상 ‘지혜로운 사람(sophistēs)’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가리킬 때 쓰이는 일상적인 용어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는 일찍이 현인(sophos)이란 말이 있었지만 통상 그 말이 소피스트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졌지만 아테네에서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직업군 즉, 돈을 받고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최초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만큼 소피스트들은 특정 시대, 특정 부류의 성격을 갖고 있다. 기존의 지식인 세력이 시인(poiētēs)들이었다면 소피스트들은 신흥 지식인 세력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소피스트들은 시기적으로도 기원전 5세기 내내 아테네가 민주정 체제로 거의 굳어지면서 그 시대의 수요에 따라 나타났다가 4세기 말 아테네가 쇠망기에 접어들자 점차 사라져 버린 직업적인 교사들이었던 것이다.

* 그런데 당대 아테네의 어떤 정황들이 그들에 대한 수요를 불러 일으켰을까? 주지하다시피 아테네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중 유일하게 5세기에 접어들면서 한 세기를 지속할 정도로 민주정이 거의 확고할 정도로 자리 잡은 나라였다. 특히 페리클레스가 집권한 이래 급격하게 진행된 상업화와 국제화는 오랜 동안 농업 중심적인 사회를 지탱해오던 전통적인 관습과 규범들을 뿌리 채 흔들어 놓았다. 그 때까지 귀족 중심으로 그들의 자의에 따라 운영되던 정치체제 또한 민중의 정치 참여 비중이 커짐에 따라 민중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요구되었고 귀족들 사이에서도 그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었다. 그리고 민중들 또한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부상한데다가 사회경제적으로도 상업화에 따른 개인 간의 이해관계가 전에 없이 다양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개인 간 갈등과 소송도 급격하게 증대되었고 그 만큼 그들에게도 민회에서건 법정에서건 자기 의견을 표출하거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능력이 크게 요구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 전통적인 관습과 규범들을 보다 세분화시킴과 동시에 그것들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적용시키기 위한 다양하고도 새로운 방법과 관점들을 양산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곧바로 아테네인들에게 논쟁과 연설 능력이라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시켰다. 소피스트들은 이러한 배경 하에서 아테네인들의 수요에 부응하여 서서히 그러나 확고하게 아테네의 담론 시장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 물론 논변과 연설 능력의 향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민주정의 발전을 위한 토대이자 인간의 이성 능력의 바람직한 진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아테네의 영화(榮華)를 발판으로 창출된 그러한 수요가 불행하게도 아테네가 곧이어 쇠망기를 맞게 되면서 오히려 아테네의 분열과 멸망을 가속화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는 점이다. 아테네가 쇠망기에 들어선 5세기 후반에 이르면 아테네인들이 추구한 논쟁술의 향상은 공동체의 보전과 공동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논쟁과 설득에 기여하기 보다는 각자도생과 자기의 이익을 실현하는 도구로 활용되었고, 특히 권력이야말로 그러한 이익을 실현하는 최고의 방편임을 알고 있는 엘리트 집단일수록 탁월한 논변과 연설의 기술은 더욱 필수적인 것으로 요구되었다. 그야말로 아테네는 소피스트들에게 자신들의 입지와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되었던 것이다. 페리클레스를 비롯한 웬만한 권력가들 집에는 늘 소피스트들로 북적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따라 소피스트들은 증대된 수요에 발맞추어 더욱 정교한 반론술(antilogikē)과 쟁론술(eristikē)을 발전시켜갔고 어떻게든 소송의뢰인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기존의 관습과 규범들을 다르게 해석하는 관점과 방법을 찾아내는데 힘을 쏟았다. 소피스트들의 생각과 활동이 개별적이고도 다양한 양태로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상을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통상 그들의 사상적 특징을 ‘인간에 대한 관심’, ‘논리와 언어에 대한 관심’, ‘상대주의적 관점’, ‘퓌시스(physis)와 노모스(nomos)의 분리’ 등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수행한 일 자체가 기본적으로 인간사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관련된 일들인데다가, 논쟁이나 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상대방의 입장을 상대화하여 깎아 내리고 자신의 입장은 정당화하여 부각시키는 방법과 논리와 관점을 찾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치 오늘날 고액의 변호사일수록 보다 정교하고 교묘한 논리로 자기 소송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법률에 대한 기상천외한 해석을 창출해내는 양태와도 흡사하다고 할 것이다. 다만, 그들의 상당수가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외지인들(프로타고라스는 압데라 출신이고, 고르기아스와 트라쉬마코스는 각각 시칠리아와 칼케돈에서 외교 사절로 왔다가 시대 조류를 간파하고 아테네에 눌러 앉은 사람들이고, 프로디코스는 케오스, 힙피아스는 엘리스, 안티폰은 람누스 출신이다)인데다가 모두가 고액의 수입을 올리는 자들도 아니었음을 고려하면, 일단 그들로서도 그런 일을 적극적인 생계 수단으로 삼고자 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일로서 그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크게 비난 받을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 그러나 아테네의 급격한 상업화와 제국화가 전체 그리스 사회를 해체하는 근본원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일찍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플라톤으로서는 그러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주도하는 정치 세력은 물론 그것에 영합하여 무책임하게 자기 이익을 좇는 소피스트와 같은 군상들이야말로 반드시 비판 극복되고 타파되지 않으면 안 될 대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활동이 실제로는 철저히 이기적이고 반공동체적인 일이었음에도 교묘한 논리를 내세워 지혜와 지식의 이름으로 수행되고 있는데다가, 가르침마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 또한 고의건 아니건 간에 당대 기득권 세력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한 선동의 기술과 논리로 활용되면서 민중의 눈과 마음을 어지럽히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급기야 아테네의 진정한 친구이자 ‘지혜로운 사람’인 소크라테스를 처형하는 데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 여기서도 트라쉬마코스는 정의와 관련하여 그러한 피폐한 기득권 세력을 지지하고 합리화하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앞으로 제기될 트라쉬마코스의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는 주장은 오늘날까지도 그 위력을 발휘하면서 현실을 압도하고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미 그러한 주장이 그 자체로 ‘온 몸과 영혼이 썩고 병들어 있음에도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외치는 어리석은 주장’임을 간파하고 있고 그에 따라 세상의 진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동의할 수도 지지될 수도 없는 무지로 가득한 거짓된 주장임을 역설하고 있다. 제1권에서의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박은 그러한 역설(力說)의 서론이자 발판이 된다.

* 아무려나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소피스트를 바라보는 플라톤의 시선은 일부 사안의 경우를 제외하면 아주 확고하고 매서울 정도로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소피스트하면 ‘궤변가’로 떠올리는 것도 기본적으로 소피스트에 대한 플라톤의 시선이 갖는 영향력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역사적 사실의 측면에서도 분명 소피스트들은 당대 아테네 사회의 붕괴를 가속화시킨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 점을 고려하면 플라톤처럼 그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할만한 근거는 분명하고도 설득력 있게 존재한다. 그러나 그리스 당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사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소피스트의 사상이라고 모두 부정적인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모든 사상을 시대의 아들로 보고 역사를 ‘자유에의 진보’로 해석하고 있는 헤겔(G. W. F. Hegel)은 그러한 관점에 입각하여 오히려 소크라테스를 철학사의 필연적 진보와 변화를 거부하는 반동적인 사상으로 비판하고, 소피스트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준비한 선구적 사상가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 영국의 고전 철학자 케퍼드(G. Kerford)가 소피스트들의 사상을 철학사적 운동의 관점에서 재평가하면서부터는 소피스트 사상을 다시 들여다보고 재해석하려는 경향들이 생겨났고 오늘날 그에 대한 연구 성과도 크게 진전되었다. 참고로 계기가 된 케퍼드의 저서 <소피스트 운동(The sophistic movement)>(김남두 역, 아카넷)은 우리말로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경향들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는 일단 여기서는 접어두기로 한다.

 

4-1(336b~338b) : 트라쉬마코스의 저돌적 등장과 소크라테스의 당부

 

[336b]

* 드디어 <국가> 1권의 핵심인물의 하나인 트라쉬마코스가 등장한다. 소크라테스와 폴레마르코스의 대화를 지켜보며 수차례 끼어들려다 주위 사람들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던 트라쉬마코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화에 끼어든다. 우리도 살폈듯이 소크라테스의 논박이 일정부분 논란의 소지가 있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폴레마르코스가 트라쉬마코스로서는 크게 못마땅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목매고 있는 강자들의 입장을 소크라테스가 정면에서 부정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치 야수처럼, 혼신의 힘을 가다듬어 찢어 발기라도 하듯이 우리한테 넘벼들더군.’ 여기에서 ‘혼신의 힘을 가다듬어’라고 번역된 συστρέφω(systrephō, twist up, roll up)라는 동사는 사전적으로 ‘야수’(野獸)θηρίον(wolf 336d)에게 쓰일 경우, 야수가 다른 동물을 잡아먹으려 온 몸을 움 추려 들었다가 확 달려들기 직전의 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서의 야수는 아마도 늑대일 것이다.(336d 참고)

* ‘찢어발기기라도 하듯’ὡς διαρπασόμενος이란 표현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당대 주류 세력들과 소피스트들 그리고 아테네인들의 광기어린 폭력적 야수성을 묘사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 소크라테스와 폴레마르코스는 ‘무서운 나머지 겁에 질려 있는’δείσαντες διεπτοήθημεν 반면에 트라쉬마코스는 큰 소리를 질러대며φθέγγομαι 저돌적이고도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를 대하는 트라쉬마코스의 태도는 논쟁에 임하는 사람으로서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과격하고 무례하기 그지없다. 그에 반해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무서운 나머지 놀라 질겁하며 크게 겁을 더럭 내고 있다. 이러한 대조적인 모습은 이 짧은 문맥에서 아주 눈에 띨 정도로 반복해서 묘사되고 있다. 어떤 독자들은 플라톤이 당대 소피스트들의 폭력적이고도 무례한 모습을 보다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이러한 대조의 방식을 취했을 것이라고 보면서도, 다른 한편 플라톤이 왜 소크라테스를 의연하게 그려내지 않고 트라쉬마코스 앞에서 ‘무서운 나머지 겁에 질려하고’(336b) ‘들으며 질겁하고 바라보며 겁을 더럭 내고’(336d) 게다가 ‘약간 떨면서’(336e)까지 말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는지 의아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용기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음미하게 해준다. 사실 어느 누구도 폭력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다. 죽음을 앞둔 순교자는 물론 소크라테스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여기서 인간으로서의 있는 그대로의 소크라테스를 보여줌과 동시에, 질겁하여 겁이 더럭 날 정도로 정말 무섭고 두려운 처지에 있을지라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비록 두렵고 무섭지만 소크라테스는 결코 굴복해서도 포기해서도 안 될 진리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다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 즉 앎의 문제인 것이다. 아기를 구하려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세상 어머니들 모두는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목숨보다도 소중한 것이 있음을 이미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조폭들의 용기는 용기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보다 큰 힘에 굴복하는 비굴함의 다른 표현이다. 진정한 용기는 참된 앎이고 그것이 참된 앎인 한 반드시 실천을 수반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도덕은 앎’이다.

 

[336c]

* 소크라테스와 폴레마르코스의 대화에 대한 트라쉬마코스의 아래와 같은 묘사 또한 과격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다. 허튼 소리φλυαρία(336b), 어리석은 짓εὐηθίζομαι(336c), 실없는 주장ὕθλους λέγειν(336d)

* 트라쉬마코스는 소리를 지르며 소크라테스에게 허튼 소리에 매달려 서로 양보하면서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런 연후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신다βούλει εἰδέναι면 ‘묻기만 하지도 논박하고서 뽐내려고만 하지도 말고’μὴ μόνον ἐρώτα μηδὲ φιλοτιμοῦ ἐλέγχων 대답 보다 질문이 쉬우니 질문 대신 정의에 대해 답을 하라’고 요구한다. 소피스트들의 논박은 명예욕(φιλοτιμη)때문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 여기서 ‘양보하다’로 옮긴 동사 ὑποκατακλίνομαι(hypokataklynomai)는 ‘양보하다’의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트라쉬마코스가 힐난의 의미로 그 말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 말이 갖는 일차적인 의미를 살려 ‘서로에게 굽신거리며’로 옮기는 것이 보다 좋을 듯싶다. 336c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338a에도 ‘양보를 하고서는’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곳의 원어는 앞의 말과는 다른 ‘받아 들인다’의 의미를 갖는 συγχωρέω(synchōreō) 동사이다.

*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하는 게 더 쉽다’ὅτι ῥᾷον ἐρωτᾶν ἢ ἀποκρίνεσθαι. 이처럼 트라쉬마코스는 자신은 대답을 잘 하는 사람이지만 소크라테스는 그저 질문만 하는 학생 수준으로 폄하하고 있다. 트라쉬마코스의 말처럼 일반적인 학습 수준에서는 선생은 대답을 잘 하는 것이 덕이고 학생은 질문을 잘 하는 것이 덕이다. 그러나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수록 질문은 치열하고 끝이 없으며 질문과 대답 모두 결코 쉽지 않다. 수십년을 홀로 질문을 던지며 진리를 깨닫기 위해 수행을 하는 선사들에게 답을 못하고 질문만 한다고 힐난할 수는 없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질문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우선은 자신의 무지를 숨기지 않고 고백하려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그 무지를 벗어나려는 열망이 있어야 한다. 진리는 그러한 열망과 용기에 대한 보답이자 그의 삶을 인도하는 빛이다. 철학의 정신은 섣부른 확신과 비약을 거부하고 불확실한 독단과 아집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자 의심이다. 물론 결단해야할 순간마저 끝없이 질문만 던지는 것도 철학의 정신은 아니다. 그 결단의 순간을 알고 미련 없이 결단을 감행하는 것 역시 철학의 정신이다. 소크라테스는 평생 ‘무지의 지’를 설파했지만 그는 죽음을 무릅써야할 순간을 알고 있었고 미련 없이 그 죽음을 받아 들였다.

 

[336d]

* 트라쉬마코스는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마땅한δέον 것, 유익한것, 이득이 되는 것, 이로운 것, 이익을 주는 것 등으로 대답하지 말고 ‘분명하게 정확하게’σαφῶς καὶ ἀκριβῶς 답해 달라고 윽박지르듯 말한다.

* 트라쉬마코스가 나열한 ‘마땅한δέον 것’은 앞서 나온 ‘마땅히 갚을 것’τὰ ὀφειλόμενα의 다른 표현이고, ‘이득이 되는 것’τὸ λυσιτελοῦν, ‘이로운 것’κερδαλέος, ‘이익을 주는 것’συμφέρον 또한 앞서 나온 ‘유익한ὠφέλιμος 것’의 다른 표현이다. 그 말은 모두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진 다른 표현들이다. 트라쉬마코스가 보기에 소크라테스가 폴레마르코스와의 대화과정에서 정의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것들은 단계마다 표현만 다를 뿐 ‘모두 그게 그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338c) 정의에 대해 대답해달라는 소크라테스의 요구에 대해 트라쉬마코스도 ‘이익’τὸ συμφέρον이라는 말을 써서 답을 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문맥을 잘 들여다보면 트라쉬마코스가 불분명하고 부정확하다고 불평을 터트리는 까닭은 ‘정의가 이익’이라는 말이 잘못된 것이어서가 아니라, ‘정의가 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말을 하면서 결정적으로 소크라테스 자신 그 이익이 ‘누구의’ 이익인지를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트라쉬마코스 의 마음속에는 이미 정의는 이익이되, 강자의 이익이라는 것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336e]

* 소크라테스는 그 말을 듣고 질겁ἐκπλήσσω하여 겁이 더럭 났다ἐφοβούμην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자기를 보기 전에 자기가 먼저 그를 보지 않았더라면 자기는 말문이 막혔을 것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그 말은 ’사람이 늑대를 보기 전에 늑대가 사람을 먼저 보게 되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당시의 미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 말은 아테네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말이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트라쉬마코스를 늑대 같은 자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 플라톤은 <소피스트>(231a)에서 늑대 이야기를 꺼내어 개와 비교하면서 소피스트와 철학자의 유사성을 거론하고 있다. 늑대와 개는 비슷하지만 늑대는 분별없이 가장 사납기만 한 동물이고 개는 사납지만 길들여져 분별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사람에게 가장 위해를 끼치는 것은 무지한 자인지 여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자들로부터 오기 보다는 언뜻 분별이 어려운 아류들 즉 내 곁에서 비슷한 짓을 하는 자들로부터 온다. 소피스트들은 진짜 무지하고 야만적이지만 겉으로는 철학자인 양 가장하여 대중들 곁에서 그들의 생각을 좀먹고 있다. 마치 거울의 상이 실물과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물과 모든 면에서 정반대이듯이 소피스트는 철학자와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자들인 것이다. 참고로 플라톤은 앞으로 우리가 살필 제2권 375c에서 수호자의 자실을 개의 본성에 비유하여 이야기하고 있다.(<소피스트>. 이창우 역주, 59쪽 참고)

* 소크라테스는 황금을 찾을 때도 서로 양보하지 않고 찾는데 그 보다도 더 귀한 정의를 찾는데 서로 지각없이 양보하며 일을 망치려했겠냐 그리 생각하지 말고 다만 능력δύναμισ 이 미치지 못해 그런 것이니 유능한δεινὸν 당신이 가혹하게 대접하는 것χαλεπαίνεσθαι 보다 동정을 베푸는 것ἐλεεῖσθαι이 더 합당할 것이라 말한다. 이 말은 황금만을 쫓는 소피스트들의 태도는 진리를 쫓는 철학자들의 열성에 아에 근본적으로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나중에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를 논파한 후 그를 가혹하게 대하지 않고 동정어린 눈길을 보낸다.

* ‘유능한’δεινὸν은 ‘능력 있는’ ‘똑똑한’의 의미도 있지만 ‘두려움을 안길 정도로 힘센’의 의미도 있다.

 

[337a]

*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자신의 무지에 대한 깨달음(무지의 지)에서 출발하는 질문(ἐρωτᾶ)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문답dialogos을 통해 상대의 무지를 짚어내 그 무지를 깨우쳐주기 위한 질문이기도 하여 논박ἔλεγχος으로 불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만 보면 논박을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자신의 무지가 들통 나 부끄럽기도 하고 상대가 답을 빤히 알면서도 시험 삼아 질문하는 것처럼 여겨져 시치미 떼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특히나 웬만한 것은 다 안다고 교만을 떠는 소피스트들로서는 자기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여기고 있는 소크라테스가 그저 질문만 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소피스트 트라쉬마코스가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그러한 화법을 상투적인εἰωθυῖα 시치미 떼기εἰρωνεία(eirōneia, irony))라고 비난하는 이유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는 무지의 자각을 통해 상대로 하여금 앎에 대한 보다 강렬한 열망을 갖게 하고 함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소크라테스 특유의 토론 방식에서 나온 말이다. ‘무지의 지(知)’가 상대의 무지를 드러내고 그것을 계기로 참된 앎을 향한 탐구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그 후 역설(逆說)을 함축하는 아이러니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보면 εἰρωνεία(eirōneia)를 시치미로 볼 것인가 진리탐구의 한 양태로 볼 것이냐는 문답과정에 참여하는 마음가짐과 목적이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냐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냐에 달려 있다할 것이다. 복종이란 이름을 가지고 명예로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진리에 대한 복종’뿐이다. 철학자는 오직 진리에 복무하고 진리에만 복종할 의무를 갖는다. 에이로네이아로 표상되는 소크라테스의 겸손은 위장된 겸손이 아니라 위와 같은 진리 앞에서의 겸손인 것이다.

*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소크라테스가 혹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라는 물음은 여전히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평생 동안 무지의 지를 내세워 상대방의 주장의 허술함을 폭로하는데 힘을 썼을 뿐 자신의 생각은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적극적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그 전모를 너무도 알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승이 세상을 떠난 후 스승 소크라테스의 논구를 있는 그대로 되살려 내어 소크라테스의 마음을 읽어내려 했고 그러한 일을 거듭하면서 차츰 소크라테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하나 둘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전기 대화편에서 중후기 대화편으로 이행되면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조금씩 펼쳐지는 적극적인 주장 내용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드러내려는 플라톤의 치열하고도 열정어린 탐구의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것들이 소크라테스의 원래 생각을 담아낸 것인지 아니면 플라톤 자신의 생각에 불과한 것인지는 정확히 분간해낼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플라톤은 이제 더 이상 스승 소크라테스처럼 ‘무지의 지’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고, 그것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뭔가를 이야기하려 한다는 점이다. 마침내 플라톤은 서서히 고뇌어린 탐색의 시간을 보낸 후 스승 소크라테스를 넘어서서 시대 현실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그 자신의 적극적이고도 새로운 지적 여정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 살피고 있는 <국가> 제1권은 그 자신의 그러한 지적 도전과 이행을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전기 대화편의 모든 특징들은 물론, 점차 그곳에서 벗어나는 모습들을 함께 보여주면서, 제2권 이후의 논의가 <고르기아스>, <파이돈>, <에우튀프론>, <프로타고라스>, <향연>, <라케스> 등에서 살피고 모색한 내용들을 종합하고 거기에 새로운 주장을 더해가는 형식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 내전과 자유에의 욕망(上) [톡,톡,씨네톡]

 

이 글은 2018년 5월 9일 이대 철학과 영화제에서 상영한 <토지와 자유>를 보고, 20분 정도 스페인 혁명의 사상적 의의에 대해 발표하고, ‘예스터데이’ 뒤풀이 자리에서 간략하게 토론한 글을 수정한 것이다.

 

스페인 내전과 자유에의 욕망(上)

이규성(한철연 회원,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어느 누구도 하나의 섬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가 대지의 한 조각, 이 땅의 한 부분.

어떤 사람의 죽음 이건 나의 생명을 줄이는 것,

나 스스로 인류의 하나이기에.

그러므로 묻지를 말라.

누구를 위해 조종을 울리느냐고.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John Donne의 기도문(For whom the Bell tolls). / 헤밍웨이,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題詞]

 

  1. 파리코뮌과 스페인 혁명전쟁

 

스페인 내전(1936~1939) 기간에 있었던 무정부주의 혁명은 파리코뮌(1871)에 이어 두 번째로 일어난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적 사건이었다. 그것은 민중이 자신의 해방을 쟁취하여 자유와 평등을 실현해본 사건 중의 사건이다. 양자 모두 전쟁과 혁명이 결합되어 있었다. “전쟁은 혁명의 원동력(locomotive)”(마르크스)을 제공해 왔다.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스페인 혁명은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 주둔 군부가 선거에서 이긴 민주 정권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켜 도처에서 학살극을 벌이면서 스페인에 진군하자 이에 민중이 봉기하여 일으킨 혁명전쟁이었다. 혁명전쟁은 인류 사상사에서 <우리는 생각한다>는 집단 지성의 필요성과 의의를 환기시킨다. 그 전쟁을 통해 우리의 양심의 승패가 시험받기 때문이다. 혁명전쟁과 유사한 상황은 민주제가 안착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광주항쟁을 유발한 한국의 군사 쿠데타와 같이 정황이 되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숭상하는 박근혜 정권도 많은 사람의 우려와 같이 촛불시위를 타도하기 위한 은밀한 쿠데타 시도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파리코뮌을 보자.

 

파리코뮌은 독일(프로이센)과의 전쟁에 패하여 독일군에 포위를 당한 상황에서 파리 시민이 봉건 귀족세력과 지배적 부르주아 계급에 봉기하여 만든 직접민주 공동체이다. 이 체제는 두 달간의 짧은 시기이지만 최초로 주요 생산 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라는 민주주의 이상을 실현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는 민주주의 혁명파와 기존 지배세력(토지 귀족과 상공업 부르주아) 간의 근 100년간의 피 튀기는 투쟁 이후 제3공화국(1870~1940) 하에서의 1875년 헌법이 제정되면서,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라는 기묘한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헌정체제로 안착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부르주아의 자유주의(귀족도 자유주의 흉내를 내야 했음)와 혁명적 민주주의 사이의 타협을 의미했다. 한국에서는 원래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헌법에 없었으나, 독재를 옹호하는 유신헌법에 처음 등장하여, 반공 이데올로기로 남용되었다.1)  혁명파의 공화주의 정신이 반영된 프랑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철학적으로는 다수성과 통일성 간의 타협을 의미한다. 프랑스 제3공화국 헌정체제에서 다수성이라는 수와 통일적 일자 간의 대결이 의회 내의 논쟁으로 변화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진정한 자유는 다수성이 초월적 통일성을 민중의 힘 안으로 내재화하여 그 억압성을 제거하는 실천을 통해 민중의 진리로 실현된다는 것이 자각되었다. 쇼펜하우어의 언급처럼 루소는 원래 지배자의 권리를 의미했던 주권이라는 말을 민중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전시켰다. 점차 <다수성>이 정치적 진리로 부상한다. 이 진리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파리코뮌과 스페인 내란기의 혁명에서 섬광처럼 드러났다. 이 빛을 마르크스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로 표현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말은 원래 무정부주의자로 분류되는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 1806~1856)가 ‘인간’, ‘국가’ 등과 같은 추상적 보편자를 거부하고, ‘특수한 개체들(singularity)’의 사회 이상으로 제시한 것이었는데, 마르크스가 파리코뮌의 특징을 묘사하는 데에 사용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Popup.nhn?movieCode=17874

파리코뮌은 파리시민이 농촌과 괴리된 상태에서 주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연대를 실현했다. 스페인 내전에서의 인민전선가운데 혁명의 최대 세력이었던 자생적 무정부주의자들은 도시에서는 산업체의 노동자 경영, 농촌에서는 토지의 공유를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이상을 갖고 있었다. 무정부주의 ‘전국노동연합(CNT)’이외에도 ‘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 당(POUM)’이 있었는데, 이 조직에 헤밍웨이, 오웰과 같은 문인들, 켄 로치(Ken Loach) 감독 《토지와 자유》에 나오는 데이빗도 가담한다. 그의 여자 친구는 담대한 자발성을 보여줌으로써 무정부주의적 인간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들이 가담한 ‘포움’ 조직도 반스탈린주의적이고 무정부적인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된다. 이에 반해 스페인 공산당은 소련의 코민테른 조직의 일부가 되어야 했으며, 외국에서 참여한 ‘국제여단’도 소련의 코민테른 산하의 공산주의 조직과 연계되어 있었다 한다. 이들은 무정부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숙청 토벌 대상으로 규정하게 된다. 러시아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중앙 집중적 권력 조직인 당이 국가와 인민을 대표한다는 대표성(representation)을 숭상했다. 무정부주의는 민중의 직접적 참여성과 자발성(spontaneity)을 숭상하기 때문에 이를 용인하지 않는 스탈린주의와 대립했다.

 

파리코뮌을 엥겔스는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로도 묘사했다. 이는 대다수 인민이 극소수의 지배세력을 억제하고 주권을 실현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에도 인민, 시민, 프롤레타리아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파리코뮌의 무정부성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른바 중앙 지도체제를 갖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제기한다. 훗날 레닌주의는 그 인민독재론을 엘리트 당 조직의 영도아래 공산사회로 가는 역사의 객관적인 과도 단계로 설정한다. 레닌주의는 당 조직의 민중 대표성과 초월적 지위를 강조함으로써 민중의 자발적 자각성을 의문시하여 억압하고, 민중과의 변증법적 소통능력을 상실하는 단점을 갖는다. 스페인 내전 기에 무기 원조를 통해 개입한 모스크바 중심의 국제공산주의(코민테른)는 중앙 집중제에 의거한 조직을 통해 무정부주의와 같은 자생적 급진주의 운동을 억압하거나 흡수하는 정책을 썼다. 《토지와 자유》라는 영화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무정부주의 혁명 노선의 관점에서 당시 스탈린주의 조직과의 대립을 그렸다.

 

스탈린 지배하의 코민테른은 1920년에서 1930년대 중국혁명 과정에서도 공산당과 파시스트 국민당과의 합작을 통해, 약세의 공산당을 유지하고 혁명을 성공시킨다는 정책을 썼다. 중국 공산당의 창시자인 진독수(陳獨秀, 1879~1942)가 민주주의를 주장하다가 우경 기회주의로 몰려 축출되어, 지금까지 복권되지 않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스페인 공산당도 대외적으로는 자유주의 국가와의 대립을 원치 않고 대내적으로는 민족주의를 표방한 우파 정당과의 노골적 대립을 원치 않았다. 사회개혁에서도 코민테른은 급진적 사회화를 반대하고, 부재지주 이외의 토지 몰수와 재분배를 반대했다.

 

스페인 내란기의 혁명 운동에서 좌파 세력의 분열은 혁명 실패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적 저항세력의 민중적 순수성은 그 후 모든 저항자들과 문학 및 예술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민중성을 결여한 니체주의적 탈근대주의 철학은 이러한 지적 원천을 경시함으로써 체제내적 이데올로기로 편입되고 말았다. 자유를 향한 개체의 욕망 해방이 연대적 활동성과 분리될 때, 민중적 민주주의는 이기적 합리주의(신고전경제학의 기본 전제)의 세련된 문화적 쾌락주의에 흡수되고 만다는 것이 오늘의 교훈일 것이다. 자유를 향한 욕망의 실현에 충실할 것을 명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것, 즉 인간현실이라면 바로 이 현실이야 말로 우리에게 진정한 실재일 수 있다. 수많은 문학 작품이 보여주듯 자유에의 욕망이라는 이 실재성에 충실한 도덕은 언제나 사회 정치적 저항과 함께 일어났다. 이러한 도덕이 진정으로 신성한 내적인 양심의 소리일 것이다. 이 양심을 부인하도록 하는 모든 체제는 인성 모독이다. 종교가 이러한 인성을 모독한다면, 스페인 혁명기의 가톨릭처럼 총통의 편에서 민중을 살해하는 신성모독의 광기를 행하는 것에 접근하는 것이 될 것이다.

 

1)  1948년 대한민국헌법 전문(前文)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은 없다. 1972년 제7차 유신헌법으로의 개헌에서부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첨가된다. 이 말은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용어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제거되어야 한다. 다음은 1987년 대한민국헌법 전문(12월 29일 9차 개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 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 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 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스페인 내전과 자유에의 욕망(下)에서 계속됩니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 ⑪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3-3(334c~336a) : 정의와 훌륭함() – 정의는 사람을 나쁘게 할 수 없다.

 

* 폴레마르코스는 아직도 소크라테스의 논박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을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주관적 생각 수준에서 규정된 친구와 적 개념을 실제의 친구와 적으로 일정 부분 객관화한 후, ‘인간적 훌륭함’ἀνθρωπεία ἀρετὴ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검토한다. 이 부분이 이제 소크라테스와 폴레마르코스의 대화 두 번째 부분을 구성한다.

 

[334c]

* 소크라테스는 먼저 폴레마르코스가 언급하고 있는 친구와 적의 개념이 과연 정의 규정에 합당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그 과정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자기 생각’δόξα(doxa)이 갖는 주관적 성격 때문에 실제로는 선량하지 않음에도 사람들이 ‘잘못 판단하여’ἁμαρτάνουσιν 선량한 이로 생각할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즉 잘못 판단할 경우, 좋은 사람이 적이 되고 나쁜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 결국 ‘정의란 못된 사람들을τοὺς πονηροὺς 이롭게 하는 것ὠφελεῖν,이고 좋은 사람에게는τοὺς ἀγαθοὺς 해롭게 해주는 것βλάπτειν’δ이 된다는 것이다. ‘선량한χρηστός 사람’이 여기서는 ‘좋은ἀγαθος 사람’이란 표현으로 바뀌어 있다.

 

[334d]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그 ‘좋은 사람’을 또 ‘정의로운 사람’으로 등치시킨 다음, 그것을 토대로 만약 사람들이 친구와 적을 잘못 판단할 경우, 사람들은 결국 ‘정의로운 사람들을 나쁘게 되도록 하는 것이 정의’라는 자기 당착적인 결론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친구 개념을 ‘실제로 선량한χρηστός 사람’에서 ‘좋은ἀγαθος 사람’으로, ‘좋은 사람’에서 ‘정의로운δικαίος 사람’으로 점차 바꾸어 표현하고 있다. 사실 ‘선량한’으로 번역된 원어 χρηστός(chrēstos)는 앞서(332e) 정의의 쓸모를 다룰 때 ‘소용 있는’의 의미로도 쓰인 말이다. 즉 그 말은 가치와 관련된 말이되 그 자체로 온전히 도덕적인 개념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영역자(G.M.A. Grube) ‘good’이라고만 옮기지 않고 ‘good and useful’로 옮기고 있다. 즉 소크라테스의 표현 바꾸기는 단순히 부연 설명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도덕적 객관성이 점차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곳에는 폴레마르코스가 말하는 ‘선량한 친구’를 도덕적 가치와 객관성이 강화된 ‘정의로운 사람’으로 바꿔 말함으로써 친구 개념의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정의와 관련한 논의를 보다 객관화하려는 시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쓸모’, ‘좋음’, ‘정의로움’이 이미 하나라는 플라톤의 생각이 깔려 있다.

* 이에 따라 폴레마르코스는 친구와 적 개념과 관련한 자기 생각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그 제서야 확연하게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소크라테스가 도출한 결론이 잘못된πονηρὸς 주장 같다고 말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부정의한 사람들에게 해롭게 해주되, 정의로운 사람들에 이롭게 해주는 것이 정의’τοὺς ἀδίκους ἄρα δίκαιον βλάπτειν, τοὺς δικαίους ὠφελεῖν인지를 묻고, 폴레마르코스는 그것이 한결 나은καλλίων 주장인 것 같다고 답한다. 이로써 친구와 적 개념은 일단 소크라테스의 의도대로 각각 ‘정의로운 사람’과 ‘부정의한 사람’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폴레마르코스는 딱히 그것을 의식하고 있지 않다.

* 결국 폴레마르코스는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을 자기처럼 이해할 경우 위와 같은 자기 당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334e]

* 그런데 사람들 중엔 폴레마르코스처럼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을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친구와 적을 ‘아주 잘못 판단해온’διημαρτήκασιν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서, 그들의 경우 ‘그들에게는 친구들이 못된 자들이니까 해롭게 해주고, 적들은 좋은 자들이니까 이롭게 해주는 것이 정의롭다는 귀결이 따르게 될 것συμβήσεται’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결국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제적으로는 시모니데스가 말한 것과는 정반대τοὐναντίον로 말하는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 이 부분의 소크라테스의 언급에는 흥미롭게도 ‘아주 잘못 판단해온 사람들’ὅσοι διημαρτήκασιν 굉장히 많다’라는 사실판단이 마치 당연한 사실인 양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διημαρτήκασιν(diēmartēkasin)은 ‘아주 잘못 판단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 διαμαρτάνω(diēmartanō)의 현재완료형이다. 원문은 ‘아주 잘못 판단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경우’라는 일반 조건이 아니라 ‘이미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을 저질러 왔고 지금도 저지르고 있다’라는 사실을 담고 있다. 이 말은 ‘폴레마르코스의 주장이 실제 현실에서 정반대가 되었다’는 결론의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내용임에도 폴레마르코스조차 전혀 이의를 달고 있지 않다. 아마도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처형한 당대 아테네 대중들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썼을 것이다. 굉장히 많은 아테네 사람들πολλοι이 ‘아주 잘못 판단하여’ 진정 그들의 참된 친구이자 아테네를 위해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었던 시대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그것도 자칭 정의의 이름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기 때문이다.

* 폴레마르코스의 주장이 시모니데스가 말한 것과는 정반대로 귀결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소크라테스의 귀류법적 논박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마침내 폴레마르코스는 자신과 사람들 모두가 친구와 적을 옳게 규정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친구와 적에 대한 규정을 고치자μεταθώμεθα고 제안한다.

 

[335a]

* 즉 폴레마르코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친구를 ‘선량하다고 생각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선량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적에 대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적용하자고 요구한다. 그리고 친구는 ‘좋은 사람’ὁ ἀγαθὸς, 적은 ‘못된 자ὁ πονηρός’라는데도 동의를 표한다. 그리하여 정의는 폴레마르코스의 요구에 따라 ‘실제로 좋은 친구τὸν ὄντα φίλον는 잘 되게 해주되, 실제로 못되고 나쁜κακὸν 적은 해롭도록 해주는 것’으로 수정된다.

* 그러나 폴레마르코스는 여전히 앞에서(334d) 친구와 적이 각각 ‘정의로운 사람’과 ‘부정의한 사람’으로 대체된 것이 갖는 의미, 즉 친구와 적이라는 개념을 정의로운 사람과 부정의한 사람으로 객관화하여 정의 관련 논의에 합당한 개념으로 전환시키려는 소크라테스의 의도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에서 친구와 적 개념 정도만 수정하려는 폴레마르코스를 향해 정의의 의미규정에 그저 ‘덧붙이는 것’προσθεῖναι 정도를 요구한다κελεύειν고 다소 핀잔 섞인 말을 던진다.

 

[335b]

* 이에 따라 친구와 적의 개념은 ‘실제로 친구인 사람’과 ‘실제로 적인 자’로 수정된다. 물론 수정된 규정 역시 불완전한 정의 규정이기는 하지만, 일단 그것으로 논박이 또 한 단계 진전되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을 구성하는 중심 개념들 즉, ‘1)친구와 적, 2)이롭게 하는 것(좋게 하는 것), 3)해롭게 하는 것(나쁘게 하는 것)’ 이 세 가지 개념들 가운데 두 번째 것은 정의의 쓸모와 관련하여 이미 앞에서(332b~334b) 검토되었고, 첫 번째 것도 바로 앞에서(3334b~335a) 검토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세 번째 것이 남아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제 정의가 ‘누군가를 해롭게 하는 것’인지의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검토를 위해 ‘인간적 훌륭함ἀνθρωπεία ἀρετή’, 즉 덕(德 ἀρετή) 개념을 끌어 들인다. 점차 밝혀지겠지만 이 ‘인간적 훌륭함’(德 ἀρετή)이라는 개념은 플라톤의 정의관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의 하나이다. 물론 여기서도 아직은 그 개념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의 논의가 앞으로 전기 대화편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 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미 결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 세 번째 것을 검토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곧바로 ‘어떤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도 정의로운 사람이 하는 일인가’ἔστιν ἄρα, δικαίου ἀνδρὸς βλάπτειν καὶ ὁντινοῦν ἀνθρώπων;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에 폴레마르코스는 ‘적어도 못된πονηρος 자들과 적들의 경우 해롭게 하는 것βλάπτειν이 마땅하다’고 답한다.

*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뜬금없이 친구와 적 대신에 말ἵππος’과 개κύων를 끌어들여 말들과 개들이 해를 입으면βλαπτόμενοι 말과 개 각각의 ‘훌륭한 상태’ἀρετή가 나빠지는지 좋아지는지를 묻고 폴레마르코스로부터 나빠진다χείρους는 대답을 끌어낸다.

 

[335c]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사람의 경우도 그와 마찬가지로 “해를 입으면 ‘인간적 훌륭함’ἀνθρωπείαν ἀρετὴν과 관련해서 더 나빠지게 된다”고 말하고 바로 이어서 되묻는 방식으로 ‘정의는 곧 인간적 훌륭함’ἡ δικαιοσύνη ἀνθρωπεία ἀρετή이라는 그 자신의 핵심 주장을 꺼내든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정의는 원천적으로 그 ‘인간적 훌륭함’으로 누군가의 훌륭함을 해쳐 그를 정의롭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의로운 사람이 누군가를 정의롭지 못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은 시가(詩歌)에 밝은 사람이 시가술μουσικῇ로 사람을 비시가적ἄμουσος으로 만드는 것이나, 승마에 능한 사람이 승마술ἱππικῇ로 ‘승마에 서투르게 만드는’ἄφιππος 것과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폴레마르코스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δύνατον 일이라고 동의를 표한다.

 

[335d]

* 차게 하는 것이 열(熱)θερμότης의 기능ἔργον이 아니듯이 정의로운 사람은 정의로써 사람들을 정의롭지 못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훌륭한 사람οἱ ἀγαθοὶ은 자신의 훌륭함ἀρετῇ으로 사람들을 나쁘게κακώς 만드는 것은 불가능ἀδύνατον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해를 입히는 것βλάπτειν은 친구이든 다른 누구이든 간에 결코 훌륭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의 기능ἔργον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자 즉 부정의한ἄδικος 자의 기능”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335e] 그러므로 누가 ’정의란 각자에게 갚을 것τὰ ὀφειλόμενα을 갚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말의 의미를 ’정의로운 사람에 의해 적은 해를 입고 친구들은 이로움을 얻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결코 현명한 사람σοφὸς이 아니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진실을ἀληθῆ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그 어떤 경우에도 누구에게 해를 입힌다는 것은 정의가 아님이 우리에겐 명백해졌다.’ οὐδαμοῦ γὰρ δίκαιον οὐδένα ἡμῖν ἐφάνη ὂν βλάπτειν고 선언하고 폴레마르코스 또한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συγχωρῶ.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어떤 사람이 그와 같은 주장을 시모니데스나 비아스Βίας, 피타코스Πιττακὸς라든가 그 밖의 다른 어떤 사람들 중의 누군가가 했다고 하면 폴레마르코스와 함께 그 사람과 싸우겠노라고 말한다. 그러자 폴레마르코스도 ‘저로서도 그 싸움에 가담할 준비가 분명히 되어 있다’ἐγὼ γοῦν ἕτοιμός εἰμι κοινωνεῖν τῆς μάχης.고 대답한다.

* 비아스(Bias)는 밀레토스 북쪽에 위치한 프리에네(Priēnē)의 정치가이고 피타코스(Pittakos) 또한 레스보스 섬 뮈틸레네(Mytilēnē) 출신의 정치가이다. 이들은 모두 600년 대 활동한 유명한 정치가들로서 이른바 아테네인들 사이에서 7현인 중 한 사람으로 추앙을 받았다. 그러나 여기서 플라톤은 그들을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의 뿌리 역할을 한 사람들로 비판하고 있다.

* 소크라테스는 싸워야 할 대상이 시모니데스가 아니라 ‘시모니데스가 그런 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말함으로써 마치 싸워야 할 대상에서 시모니데스는 제외된 것처럼 말을 한다. 이는 시인의 대부 격인 시모니데스에 대한 예의를 냉소적으로 표시한 것이리라.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앞에서 폴레마르코스를 마치 시모니데스인양 대하고 있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시모니데스 역시 비판과 극복의 대상임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331e에서 시모니데스를 ‘지혜롭고도 신과도 같은 분들’σοφὸς καὶ θεῖος ἀνήρ이라고 비꼬듯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비슷한 뉘앙스로 시모니데스, 비아스, 피타코스 같은 사람들을 ‘지혜롭고 축복받은 사람들’ τῶν σοφῶν τε καὶ μακαρίων ἀνδρῶν로 묘사하고 있다.

 

[336a]

* 이로써 마침내 ‘정의는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 -> ‘정의는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주는 것’ -> ‘정의는 친구에게는 이로움을 적에게는 손해를 주는 것’으로 이어져온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은 철저하게 모두 논박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들을 펴온 사람들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가 맞서 싸울 사람들의 실체가 밝혀진다. 앞서 소개된 시인 ‘시모니데스’는 물론 코린토스 참주 ‘페리안드로스’ Περιάνδρου, 마케도니아왕 ‘페리디카스’ Περδίκκας,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킨 페르시아왕 ‘크세르크세스’Ξέρξες, 페르시아의 돈을 받고 스파르타를 공격한 테베의 정치가 ‘이스메니아스’σμηνίας 그리고 그 밖의 부자πλουσίου ἀνδρός로서 스스로 굉장한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당시 기득권 부유층들이 그들이다. 바로 이러한 세력들이 앞으로 플라톤이 철저히 넘어서야할 극복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 문답을 마무리하며 소크라테스가 내건 싸움에 폴레마르코스가 ‘기꺼이 가담하겠다’ἕτοιμός εἰμι κοινωνεῖν고 말하는 부분(335e)도 흥미를 끈다. 사실 폴레마르코스는 대화 과정 내내 난문(aporia)에 빠져 제자리만을 맴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끝까지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응했고 마침내 태도에서 그 정도의 변화에까지 이른 것이다. 최소한 태도에 있어서만은 분명 그는 그의 부친 케팔로스와도 다르고 이후에 등장할 트라쉬마코스와도 다르다. 폴레마르코스와의 대화는 그런 점에서 ‘배움에 대한 선한 의지는 늘 하나같은 행복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깨달음을 함께 보여준다. 그 또한 시대의 교사로서 소크라테스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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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대화 부분과 관련해서도 아래와 같이 몇 가지 함께 음미해볼 만한 문제들이 있다.

 

1) 소크라테스는 위의 논증에서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것’βλάπτειν과 ‘누군가의 훌륭함ρετή을 나쁘게 하는 것’κακῶς ποιεῖν’을 같은 차원에서 등치시키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만 보면 누군가의 훌륭함을 나쁘게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라는데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인간적인 훌륭함’ἀνθρωπεία ἀρετή의 의미를 이해하면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가 반드시 ‘누군가의 훌륭함을 나쁘게 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

폴레마르코스가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것’으로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듯이 이를테면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가두거나, 금전상 손해들 일종의 ‘외적인 행위’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인간적 훌륭함’은 인간의 내면적 ‘혼의 상태’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훌륭함을 나쁘게 하는 것’과 폴레마르코스가 생각하고 있는 ‘외적인 가해 행위’는 동일한 의미의 가해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등치시킬 수 있는 같은 차원의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훌륭함ἀρετή이므로 훌륭함으로 사람의 훌륭함ἀρετή에 해를 입힐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정의는 어떤 사람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만약 폴레마르코스가 ‘해를 입히는 것’과 관련하여 두 경우가 갖는 분명한 차이를 인식하고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적을 다치게 하고 손해를 보게 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내면적 혼의 상태의 훌륭함까지 다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전쟁 시 적장의 목숨을 빼앗는 경우 적장에게 엄청난 해를 입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적장의 ‘인간적 훌륭함’까지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정의는 적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이다’고 말했을 때 손해의 의미는 외적인 행위와 관련한 것이지 당신이 말하는 내면의 덕으로서 ‘인간적 훌륭함’을 나쁘게 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그와 같은 주장에 의해 내 생각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2) 이런 점에서 보면 소크라테스에 의해 폴레마르코스의 주장이 완벽하게 부정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렇다고 소크라테스가 내세운 주장이 퇴색되거나 가려지는 것도 물론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비록 논박과정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할지라도 그 과정을 통해 소크라테스가 정의와 관련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매우 특별하고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크라테스는 ‘정의는 훌륭함’이라는 그 자신의 확신을 그런 방식으로 분명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그러한 극명한 대비의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적 혼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의 한계를 함께 폭로하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앞서 기술 개념에 대해서도 그랬듯이 이 ‘인간적 훌륭함’에 대한 플라톤의 적극적인 설명은 나타나 있지 않다. 그것은 제2권 이후에서 다루어 질 것이다. 일종의 예고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부분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와서야 비로소 외적 행위 중심의 도덕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적 도덕의식 내지 혼의 상태에 대한 각성이 개시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3) 아무려나 ‘해를 입히는 것’이 갖는 위와 같은 추론 상의 복합성 때문에 ‘훌륭함’ 관련한 이 부분의 논의를 읽어 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서의 논의를 접한 후 우리 주변에서 해를 입히는 행위지만 정의로운 일로 간주되는 일들, 이를테면 적에 대한 전쟁 행위를 포함해서 범죄에 대한 고소 고발 행위, 죄를 지은 사람들에 대한 법적인 응징과 감금 행위 등과 같은 행위들에 대해서 플라톤은 어떤 식으로 해명을 할까 궁금해 하기도 한다. 사실 앞서 예를 든 전쟁 행위 같은 경우는 아무리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인간의 존재 자체에 위해를 가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특히 당혹감을 안겨 준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 일지라도 전쟁에서의 위해 행위 자체가 곧 적군이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덕이나 명예까지 손상하는 행위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소크라테스적 정의관은 아무리 불가피한 전쟁 상황에서 적군을 대할지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명예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목적이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비열한 짓은 삼가야 하며, 아무리 죄를 졌다고 해도 그의 인간됨까지 모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함께 일러 준다.

그리고 그것은 법적인 응징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처벌 이전에 그의 인간으로서의 내면 상태의 훌륭함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교정의식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정의는 어떤 특수한 시간과 공간에서 어떤 특수한 대상에 대해 어떤 특수한 이익과 손해를 가져다주는 특정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게 하고, 그렇게 해서 그의 내적인 혼의 상태가 행복한 상태로 보전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 또는 그러한 기술이 구현된 훌륭한 상태를 말한다. 플라톤은 이미 2500년 전부터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기저에 만연해있는 마키아벨리즘의 대척점에 굳건하게 서있다.

 

4) 앞으로 점차 자세하게 밝혀지겠지만 ‘인간적 훌륭함’과 관련한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철학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정치철학과 도덕철학적 문제 영역에서도 여전히 중차대한 의미를 안겨 주고 있다. 실제로 인간의 내면에 대한 플라톤의 각성이 고대 기독교 윤리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예를 들어 ‘원수를 사랑하라’(마태복음 5장 44절)는 예수의 가르침과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일상의 금언 등은 물론 오늘날 사형제 폐지의 정당성과 관련해서도 ‘인간적 훌륭함’에 대한 플라톤의 성찰이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 인격과 인권 개념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근원을 근대 자유주의 사상에서 찾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선구적 통찰 역시 ‘훌륭함’ 내지 ‘덕’에 관한 플라톤의 사상에서 충분할 정도로 확인할 수 있다.

 

5) 그 밖에 소크라테스와 대화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흥미를 끈다. 케팔로스는 대화를 즐기게 되었다는 자신의 말과 달리 결국 대화를 피해 도망가고 있고, 폴레마르코스는 소크라테스의 문답에 성실하게 응하다 결국 설득을 받아들여 부정의한 사람들에 대한 싸움에 자신도 가담하겠다고까지 말한다. 이에 비해 앞으로 등장할 트라쉬마코스는 공격적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가 논파를 당했음에도 끝까지 승복하지 않고 냉소하며 소크라테스에게 대든다.

 

6) 그리고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에 입각하여 사회적 관계를 친구와 적으로만 나누는 입장도 문제가 있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당시 전쟁이 거의 일상이었던 배경에서 나온 것이긴 할지라도 보통의 경우에는 친구도 아니지만 적도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공적 영역에서 정의와 부정의는 흑백의 문제일 수 있어도 사적 영역에서 친구와 적은 흑백의 문제는 아니다. 하물며 전쟁상태일지라도 상대국의 무고한 양민들까지 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적으로 삼는 것은 결코 정의로운 일이 아니다.

 

7) ‘정의는 각각에게 적합한 것을 주는 것’이라는 주장에서 폴레마르코스는 ‘적합한 것’의 의미를 시종일관 나를 기준으로 나와 각자의 관계 속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폴레마르코스에게 ‘적합한 것’이란 친소 관계에 따라 자의적이고 일면적일 수밖에 없다. 그의 주장대로 적합한 것을 주는 것이 정의라고 해도 제대로 각각에게 적합한 것을 주려면 그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내는 앎의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탐욕은 그러한 앎이 자신의 이익에 역행하는 것임을 이미 몸으로 알고 있다. 즉 그들은 지혜가 아닌 무지를 거꾸로 앎으로 여기는 자들인 것이다. 결국 폴레마르코스의 무지는 ‘각각에게 적합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 채 그저 시모니데스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른 데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귀결이다. 폴레마르코스의 무지가 당대 아테네인들의 일상의 상태였음을 고려하면 그러한 귀결은 당대 아테네인들에 대한 시인들의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자체가 이미 아테네를 병들게 하는 악폐임을 함께 보여준다.

 

8) 폴레마르코스가 매달리고 있는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은 당대 아테네 현실에서 거의 상식으로 받들어지던 정의관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의관은 기본적으로 친구와 적이라는 개념이 중심을 이루고 그 친구와 적이 자신을 기준으로 배타적으로 규정되는 한,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정의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적이 국가끼리의 전쟁 상황에서 마주하는 공적 차원의 적일 경우, 자기의 이익과 보전은 그대로 나라의 이익과 보전으로 이어지겠지만, 당대 아테네에서는 니키아스(이 자는 사유 노예가 1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등 권력가들이 그랬듯이 이른바 나라의 이익마저 강자에 의해 법의 이름으로 기획되고 규정되고 실행되었으며 그 대부분이 실제로는 강자에게 귀속되기 일 수였다.

특히 페리클레스 같은 권력자는 페르샤에 대한 방어를 명분으로 이웃 폴리스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저버리고 부당한 강탈과 착취는 물론 제국주의적 침략전쟁까지 불사하였다. 플라톤이 폴레마르코스와 대화를 마무리하며(336a) 인용하고 있는 자들은 모두 그러한 탐욕적 강자들이다. 요컨대 시모니데스적 정의관은 당대 현실에서 본질적으로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규모가 크건 작건 강자들의 이익을 뒷받침하는 정의관이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대화를 지켜보던 트라쉬마코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야수처럼 달려들어 대화에 끼어드는 것도 소크라테스가 바로 강자들의 그러한 기득권적 가치관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