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캐롤 페이트만,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상)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 ①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철학’ 분과에서 2023년 4월부터 11월까지 예정으로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를 기획·연재합니다. 지난 2018년 1월부터 2019년 3월까지 블로그분과진에 연재되었고 동명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던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에 이어 페미니즘 이론과 사상을 발전하고 확대하는 데에 기여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소개하는 코너를 연재합니다. 본격 연재 전 자세한 소개는 「연재의 변」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캐롤 페이트만의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을 읽고
상편. ‘더 이상 우애 정신은 없다 – 포스트 코로나 시기를 앞두고 우애적 가부장제에 대항하여’

 

유가연(여성과철학 분과)

 

캐롤 페이트만(Carole Pateman, 1940~)은 1940년 영국에서 출생한 정치학자이자 여성학자이다. 1963년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1972년 시드니대학 정치이론과에서 조교수로 재직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부터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캘리포니아대학 정치과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시기부터 현재까지 페이트만은 이 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해 있다. 그녀는 민주주의와 관련한 여성이론과 정치이론을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이자 교수이며, 자유주의보다 사회주의에 가까운 입장에 서 있다.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은 1988년에 출간한 그녀의 대표적인 저서로서, 페이트만이 시드니대학 정치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했을 때 나온 책이다. 이 책이 출간된 후인 1990년대 초중반에 그녀는 최초로 국제정치학회에서 여성 학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책의 영문 제목은 The sexual contract로, 한국어로 번역한 제목보다 더 간략하다. 이 책의 내용은 페이트만이 미국과 호주에서 열었던 여러 강연과 토론을 바탕으로 하고, 참고 자료들은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스탠포드대학 행동과학연구소에서 수집하였다. 1986년부터 1987년까지 프린스턴대학 사회과학연구소에서는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본격적인 집필 작업에 들어갔다.1

이 책은 홉스, 칸트, 로크, 루소 등의 근대철학 텍스트들에서 쉽게 간과하거나 가볍게 다룬 부분들을 골라 남성과 여성의 정치적 특성을 기반으로 하여 기존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페이트만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여러 가지 계약들에 관한 논의들이 정치이론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녀는 초기 페미니스트들이 고전적인 철학 텍스트에 나타난 여성에 관한 논의를 폄하하거나 과도하게 비난하는 입장을 피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전통적 정치이론과 현대적 정치이론의 역사적, 시대적, 상황적 차이를 전제하고 있다. 페이트만이 여성이론 분야에서, 고전적인 철학 텍스트를 정치이론 텍스트로 연구하고 논의하는 이유는 역사의 균열 속에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가진 지속성을 찾고자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성들이 역사의 굴곡에서조차 없앨 수 없었던 삶과 존재에 대한 열망은 아마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시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넓게 조망하고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내속적이고 존속적인 시간에 담긴 것이었다.

Carole Pateman(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Political Science, Distinguished Professor)  https://ucla.academia.edu/CarolePateman

페이트만에 따르면, 너무 잘 알려진 토머스 홉스, 존 로크나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는 정작 여성들이 배제되어 있다. 정치철학 및 정치이론 분야에서 페미니즘 논의들이 배제되었던 1970~80년대만 해도 여성의 정치적 의무를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바라본 입장은 급진적 성향을 띠는 것으로 보였다. 정치학이나 정치이론 분야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를 제기한 것도 낯설었지만,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근대 정치철학자들의 사회계약설에 대항하는 입장을 내세우는 시도는 더욱 낯설었기 때문이다. 홉스는 여성이 시민사회에서 혼인계약을 할 수 있는 동시에 해야 한다는 정치적 의무를 내세우지만, 여성이 시민의 자유를 획득하는 사회계약에 참여하지 않고 참여할 수 없는 신민(臣民)이라고 간주하는 실질적인 계약과 시대 및 사회적 한계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2 홉스의 시민 계약론도 남성중심주의를 이상적으로 규정한 점에서 볼 때, 기존의 근대 철학자들의 입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 루소의 사회계약설은 시민들이 스스로 국가와 시민법에 예속되고, 자신들의 보호를 위해 예속이 교환된다는 논리에 근거해 있다. 루소는 시민을 자발적으로 지배하고 예속하는 사회계약설을 제시하는데, 시민의 지배 및 예속권이 가지는 자발성은 결국 사회계약을 교의적으로 만들어버렸고, 실질적이고 자유로이 실천가능한 모델로 간주하도록 만들었다. 오늘날 시민의 권리 문제는 루소의 사회계약설로 인해 진부한 논의로 치부되거나 더 나아가 논의할 가치조차 없는 주제로 전락해 버렸다.3 로크는 가정 내 아버지의 권력과 사회적 권력을 구분하고, 계약을 통해 사회적 관계에서 권력을 가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페이트만은 로크의 사회계약설은 성적 계약이나 혼인계약을 배제하였다고 비판한다. 혼인계약은 매춘계약이나 고용계약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을 예속하는 수단이었고, 사회계약은 결국 인류사와 함께 지속되어온 성 계약을 토대로 하고 있다. 성적 계약은 가내 아버지의 정치적 권력이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라진 후에 새로이 등장한 형제계약에 속한 가부장제에 기반해 있다. 가부장제는 더 이상 아버지의 권력이 중심되는 가족구조가 아니라 시민사회와 시민의 자유에도 영향을 주는 형제계약이다. 따라서, 형제계약에 속하는 가부장제는 자본주의사회에 예속되는 개인의 신분과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다. 가부장제 계약은 항상 국가, 자본과 노동 간의 협상에서 수많은 논쟁과 갈등을 야기하였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숱하게 문제를 일으키는 임금에 의한 노예계약과 시장사회주의에서 수많은 페미니즘운동을 일으킨 신체상의 소유권 등이 그 예이다. 사회계약에 대한 노동자나 시민의 예속과 복종의 관계는 언제나 가부장제를 토대로 한다. 사회계약의 전반에 걸쳐 계약이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은 가부장제에 있다. 그렇지만, 푸코가 제시한 바와 같이 사회계약이 사법제도나 교육상의 훈육, 통제사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책의 제목과 같이 페이트만은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내,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다루고 다양한 법적 계약 관계를 주제로 삼지만, 특정한 계약법을 다루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계약과 성 계약은 각각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계약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상호대립관계에서 논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를 갖고 평등한 상태로 태어나고,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 모든 인간을 토대로 사회계약은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자연에 가까운 원초적 계약의 상태는 남성과 여성 간에 커다란 차이가 남겨져 있다. 은연중이든 의식적이든, 편협적이든 포용적이든, 상징적이든 실재적이든 간에, 사회계약에서 자유를 자연으로 간주하는 경우를 남성으로 상징하고, 예속을 자연으로 간주하는 경우를 여성으로 대표하는 질서라는 것을 해체하기란 쉽지 않다. 남성과 여성의 성차는 인간의 원초적 계약상태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적 관계 차이인 것이다.

17~18세기 국가와 시민, 정부 간의 사회계약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발전이 있었으나 성적 계약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괄시하거나 논의하지 않았다. 성인은 시민이 되고 결혼함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또한, 아버지의 지배에서 벗어나 시민사회로 접어들면서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성인이 획득하는 자유에 여성을 소유하는 것도 해당해 있다. 페이트만이 내세우는 여성과 관련한 핵심적인 논의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회계약도 성적 계약에 기초해 있고, 시민이 얻는 자유도 이러한 성적 계약으로 인한 가부장제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페미니즘은 사회에서 성과 관련한 여러 가지 계약 형태를 고려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논의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남성에게는 사회계약뿐만 아니라 성적 계약까지도 원시적 자연이자 자유라는 의견이 오래된 편견으로 남아 있고, 오늘날까지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민주주의를 만든 법에도 남성중심주의가 지닌 오래된 파행이 사라지지 않는다. 시민사회는 왜 가부장제를 문제시 여기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아버지의 권력과 정치적 권력을 구분하지 못한 데 있었다. 민주주의 사회는 가정 내 아버지의 권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정치 분야에서는 아버지의 권력을 형제애로 탈바꿈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이것은 남성의 성에 대한 권리가 근대적 사회계약을 이루는 것을 가리킨다. 프랑스어에는 애인이나 연인을 가리킬 때에 사랑(amour)에서 비롯되는 연인(amant)의 표현 외에 우정(amitie)에서 비롯되는 ‘한 명의 사랑스러운 친구’를 뜻하고, 엉(윈) 쁘띠(뜨) 아미로 발음하는 표현인 ‘un(e) petit(e) ami(e)’가 있다. 한 명의 친구를 프랑스어로 표현하면, un(e) ami(e)인데, 이 어휘에서 ‘petit(e)’와 같은 형용사가 들어가는 이유는 petit(e)가 ‘작다’는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사랑스럽고 귀여우며 정답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다’는 의미를 가진 어휘에 ‘친밀한 감정’의 의미가 함께 포함된 이유는 주니어(junior)와 같은 ‘막내 형제’가 함축되어있기 때문이다. 나의 애인을 가리키는 ‘쁘띠(뜨) 아미’는 마치 맏형이 막내동생을 대하는 태도나 시선 등에서 연유한다. 즉, 성적 계약에 기초한 애인을 표현하는 어휘는 가족애적인 가부장제가 우애적인 가부장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어휘임을 알 수 있다. 18~19세기 혁명기의 사회계약설에 기반한 새로운 가부장제에서 비롯한 ‘나의 연인’과 같은 어휘에는 혈연관계를 뜻하는 형제애의 맥락과 의미가 비어있는 채 잔여물로 남아 있다. 근대 형제애는 여성이 남성에 종속된다는 뜻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형제계약은 고용계약, 매춘계약을 포함한 성적 계약으로 간주되어서 사회계약에 속한 결혼 계약과 구분된다.

페미니즘에서 연구한 가부장제에 관한 모호하거나 불명확한 특성으로 인해, 페이트만은 사회적 결사를 위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개인이 신체를 자유로이 소유한다는 의미에서의 재산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사회적 결사란, “시민들끼리의 개인적 우애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대를 도모하는 집단으로서의 복수 형태인 우애‘들’을 의미한다.”4 이 용어는 남성 중심적인 비밀결사단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모든 계약은 재산이나 권리의 상호교환과 이에 따른 평등이 전제해 있다. 그러나 한쪽이 “잠재적인 재산이 되면 불평등하게 된다.”5 재산은 기본적으로 물질에 기반하므로, 잠재성을 전제로 한다면, 반드시 현실화되는 실재가 동반한다. 이것은 물질에 이미 담겨 있는 가치상에서의 평등이다. 만일 남편이 아내를 상상적인 신체로만 여기고, 실재적 신체를 가상화하는 관계에 제한한다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더 이상 합법적이거나 정상적인 상태에 있지 않다. 여기에서 잠재성은 어느 행위가 현실화되는 가능성(계기나 준원인 등)을 의미하는 한에서의 가상성을 의미한다. 현실에서 실재하는 신체를 가진 남편이 현실에서 실재적인 아내의 신체를 특정한 가상 세계의 도구로 삼거나 특정한 성적 행위를 포함한 행위를 일삼는 경우, 혹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을 만큼 아바타나 메타버스, 인터넷게임 등으로 가상화되어 있는 경우에 가상 남편이 가상 세계에서 연장된 현실의 실재적 아내에게 실질적 행위를 하는 경우 등, 전혀 현실화되지 않는 상태에서 전적인 가상 세계에 의해 선택되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언어와 행위의 실질적인 영향력 등의 경우에 남녀의 성적 차이는 가상과 실재 간의 관계에 기인하는 것이지 자연적 성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남녀 간의 성차가 순수한 자연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가상과 실재의 차이에서 비롯된 다양한 법적 지위와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소유하는 권리를 가상과 실재의 불평등한 관계로 인해 박탈당하는 경우는 여성의 인권뿐만 아니라 성적 정체성을 박탈당하는 경우 등을 가리키기도 한다. 시민의 자발적인 신체 소유권 문제는 남성과 여성 간에 형제애를 토대로 한 형제계약에서 비롯된다. 이 계약이 가능하게 된 것은 오래 전부터 이어온 자본경제의 역사와 관련된다. 자본경제는 남녀 간의 형제애를 이상적인 모델로 규정하여 현실과 신화 간의 간격을 모호하게 만들며, 그 틈에서 용암이 분출하듯이 남성에게는 오이디푸스의 신화가 끊임없이 솟구치고, 여성에게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뿜어져 나온다. 근대 정치사상으로부터 탄생한 민주주의와 공화국 이념은 언제나 신화적 특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혁명의 정신이자 보편적인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 중 박애는 프랑스어로 fraternite라고 하며, 우애 혹은 형제애라는 의미도 가진다. 프랑스 공화국의 기본이념인 박애 정신은 근대 시민사회 시민들끼리 강하게 유대하도록 이끌어 오늘날에는 관용 정신(똘레랑스)으로 불린다. 박애 이념은 사회를 전체적으로 통합하는 기능을 맡아왔다. 그러나, 현대 프랑스 사회에서 관용 정신은 본래의 기능을 벗어나 사회적인 문제와 갈등을 심각하게 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애나 형제애 정신으로 대변되는 다양한 사회계약, 특히 성적 계약이나 혼인계약, 매춘계약, 고용계약, 노예계약 등은 여러 유형의 가정폭력과 성범죄, 각종 중범죄, 빈부격차, 인종차별, 성차별, 난민수용의 문제 등을 초래하였다. 오늘날의 관용 정신이든 근대사회의 기반을 마련하고 공화국 및 민주주의를 형성한 주요 정치이념마저도 가부장제의 어두운 면을 피할 수 없었다. 프랑스를 민주주의 공화국을 향한 혁명의 길로 이끌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시민들이 민중이 되어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끈 정치이념은 더 이상 사회통합의 계기가 아니라 사회분열의 원인이 되었다.

지금까지 근대 사회계약의 토대를 이루는 성적 계약에 대해 살펴보았다. 페이트만은 이 책에서 사회계약론을 살펴보려면 우선 성적 계약을 논해야 한다는 페미니즘적 이념을 내세웠다. 그녀는 다양한 근대 정치철학자들의 이념을 연구하면서, 가부장제에 대한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여성운동이 일어난 지 약 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가부장제에 대한 개념과 범위 규정,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살펴보는 역사적 고찰, 사회적 권력의 구조화 문제, 사회의 보편성인지 특수성인지의 여부, 자본주의와의 관련성, 여성성과 관련한 식민제국주의의 역사적 고찰 등과 같은 연구 과제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긴 시간 동안 지속되고 있는 페미니즘 연구는 현대 여성들의 사법 판결권을 개혁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자 작업이다. 4년 전 현 인류에게 느닷없이 닥친 코로나19 팬데믹은 또 다른 현대적 우애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다. 전 세계 통계상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한 자가 약 670만 명이 넘고,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노동자들은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었으며, 시민들의 경제 및 사회활동이 줄어들자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크게 감소하여, 많은 점포들이 문을 닫아 길거리 문화가 사라질 위기가 처해 있다. 또한, 20~30대 청년들은 사회의 양극화 구조가 심각해지고, 기존의 산업 패러다임이 해체된 가운데 일자리를 얻거나 정식적인 학교 교육을 받는 데 어려움이 늘고 있다. 2023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17세기 근대정치사상으로부터 탄생한 민주주의 공화국의 이념과 시민의식, 인권사상, 자본주의 경제사회 등이 300년 넘게 이어온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계약의 지배와 예속관계를 새로이 깨닫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시민사회는 또 다른 정치적 의무이자 권리, 자유를 실천하고, 논의를 확장 및 발전시키는 과제를 미래에 남겨두고 있다. 오늘날까지 은연중에 교의적으로 수용되었던 시민의 자유와 권리의 문제는 이제 허물을 벗었다. 우리는 신종바이러스의 발견과 감염경로, 방역 대책, 예방진료,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통계 및 이와 관련한 신기술들을 경험하면서, 진부하고 하찮게만 여겨졌던 근대 사회계약설을 재고찰하게 되었다. 끝내 사회계약은 시민들에게 진실을 은폐하고 기만한 성적 계약의 진면모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성적 계약은 시민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제3의 성이든 간에 어떠한 성(性)이라도 띠며 살고 있음을 폭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페이트만이 이 책에서 강조한 형제애적 가부장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꼭 고려해야 할 논의이다.

— 하편에서 계속


☞ 연재 바로가기

‘두 번째 연재의 변’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

1. 캐롤 페이트만,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하)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 ②

‘두 번째 연재의 변’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

‘두 번째 연재의 변’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 

 

여성과철학 분과

 

지난 2019년에 발행된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의 작업을 잇는 연속 작업으로, 이번 기획은 페미니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명할 수 있는 확장된 작업을 진행하고자 한다. 우리의 이전 기획 이후 지난 3년간 출판된 여러 편의 페미니즘의 고전을 비롯해, 페미니즘을 혁신하거나 다양화시키는 여러 텍스트들이 번역‧출판되었으며, 우리는 페미니즘 사상의 발전을 위해서 이들의 추상적 개념, 전개되는 논리,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기존의 질서 및 이데올로기와의 전투, 마르크스주의-생태주의-아나키즘-자유주의-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정신분석학 등과의 우호적이거나 적대적 마주침, 철학-법학-사회학-생물학-인류학-문학-언어학-공학-자연과학의 분과학문적 틀 안에서 혹은 그것과 투쟁하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모험 등을 쉽고 익숙한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페미니즘은 오늘날 여성학이라는 분과학문의 형태로 정규화되고 규범화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사유의 궤적과 흐름을 추적 및 구성하면서 현재의 사회지형 안에서 페미니즘의 다양한 철학적 면모를 드러내고자 한다. 따라서 이 기획은 한편으로는 이론의 관점에서는 이론적‧분석적‧논리적‧비판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실천의 형태에서는 실천적‧대중(지향)적‧구성적‧상상적인 성격을 띤다. 즉 자유롭게 상상함으로써 페미니즘의 외연과 의미를 더 넓게 확장시킬 수 있는 연구를 하면서도, 그것의 서술과 전개과정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며, 실천적 활동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자 한다.

이것은 지난 2016-2018년을 경과하며 미투 운동으로 상승했던 페미니즘 운동이 최근 하강/침체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운동에서의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이론적 계기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이 기획은 이전의 운동이 가진 단조로움이나 협소함을 넘어서 다양성과 깊이, 그리고 더 넓은 연대의 가능성을 마련하기 위한 이론적 포용성을 넓히는 것에 초점이 두어진다. 또한 이 기획은 “한철연” 내에서 ‘여성과철학’ 분과의 지난 활동들의 결과물을 모으는 것이기도 하며, 그래서 활동을 강화하고 신규회원을 모집하는 계기도 지니고 있다.

이 기획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철학> 분과”가 진행하는 것으로, 먼저 웹진 <e-시대와 철학> ‘블로그 분과진’에 글을 업로드하고, 모든 글이 최종 마무리 제출된 이후에는 글들을 정리하여 단행본으로 펴낼 생각이다.

 

집필자 : 김세서리아, 김은주, 연효숙, 유가연, 이승준, 이지영, 정유진, 주현


  • 연재 글의 저자와 주제

[1] 전반기

  • 유가연 : 남과 여, 은폐된 성적계약(캐롤 페이트먼)
  • 이승준 :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샌드라 하딩)
  • 연효숙 : 『2의 성』(시몬 드 보부아르),
  • 주현 : 『스트레이트 마인드』(모니크 위티그)
  • 이지영 : 『몸 페미니즘을 향해』(엘리자베스 그로스)
  • 정유진 : 『캘리번과 마녀』 / 『혁명의 영점』(실비아 페데리치)
  • 주현 : 『섹스할 권리』(아미아 스리니바산)
  • 김은주 : 『변신』 / 『포스트휴먼』(로지 브라이도티)

[2] 후반기

  • 연효숙 : 『시적언어의 혁명』(줄리아 크리스테바),
  • 이승준 : 『여성 인종 계급』(앤절라 데이비스)
  • 김은주 :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캐서린 헤일스)
  • 김세서리아 :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프리드리히 엥겔스)
  • 유가연 : 『반사경』(뤼스 이리가레)
  • 김세서리아 : 『권력의 정신적 삶』(주디스 버틀러)
  • 이지영 :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트러블과 함께하기』(도나 해러웨이)
  • 정유진 : 『대항성 선언』(폴 프레시아도)

☞ 연재 바로가기

1. 캐롤 페이트만,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상)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 ①

1. 캐롤 페이트만,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하)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 ②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유재민 지음,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행복한 사람이 욕망에 대처하는 자세』(2022)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 행복한 사람이 욕망에 대처하는 자세』

 

박종성(한철연 회원, 건국대 초빙교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는 소크라테스(Socrates, 기원전 469-399), 플라톤(Platon, 기원전 429?-347)과 함께 고전기 그리스 철학, 나아가 서양 사상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그리스 북동부 칼키디케 반도의 스파케이로스로 그리스 변방 출신이다. 기원전 367년, 17세에 그는 당대 문화의 중심이었던 아테네로 유학을 가서, 플라톤이 교장으로 있었던 아카데미아에서 20년 동안 공부한다. 학생 시절 그를 가리키는 몇 가지 별명은 “학원의 지성”, “부지런한 독서가”였다. 그는 20년 후 아카데미아를 떠나 자신의 독자적 학파를 세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사상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저술 활동을 한 철학자이다. 그는 ‘만학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서양 사상사 거의 전 분야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서양 최초로 학문을 분류한 사람이다. 그의 저술은 크게 ‘이론학’, ‘실천학’, ‘제작학’적 저술로 분류된다. 그리고 ‘실천적 학문’에 윤리학과 정치학적 저술들이 포함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정치학과 함께 실천적 학문에 속한다. 그중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대표하는 저술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윤리학적 저술에 『에우데모스 윤리』와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포함되는데, 이 책의 제목은 에우데모스[아폴론 뤼케이오스(아폴론 신의 별칭) 신전 근체에 세운 학교인 뤼케이온 학원 구성원 중 한 명]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인 니코마코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록을 편집해서 붙인 것이다.

유재민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부제를 “행복한 사람이 욕망에 대처하는 자세”로 붙였다.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은 제1장의 첫 소제목인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이다. 그리고 유재민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다음 소제목을 “행복에서 시작하여 덕으로 나아가다”, “행복, 윤리의 사다리”, “객관적 행복론: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으로 정했다.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유재민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어를 ‘행복’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전공자인 그는 제2장에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행복이란 무엇인가”, “덕과 중용”, “정의와 우정”, “공동체의 행복”이라는 주제어를 중심으로 읽기 시작한다. 마지막 제3장에서는 “철학의 이정표”라는 제목으로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테오프라스토의 『성격의 유형들』,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 에피쿠로스의 『세 통의 편지』, 윌리엄 프라이어의 『덕과 지식, 그리고 행복』을 소개하고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와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좋은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들기 위한 책이지,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책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돌진하는 군인은 ‘착한’ 군인이 아니라, ‘훌륭한’ 군인이다. ‘윤리’는 그리스어 ‘에티코스’(êthikos)를 번역한 말이다. ‘에티코스’의 어원은 ‘습관’을 의미하는 ‘에토스’(ethos)이다. 사람이 습관을 들여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은 ‘윤리’가 아니라 ‘성격’ 혹은 ‘성품’이다. 따라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성격에 관한 책’ 혹은 ‘성품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 행위자의 본성적이고 본질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어떤 원리를 따라 사는 것이 도덕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삶인지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인간의 행복에 관한 설명을 통해 제시된다. 또한 이 원리는 좋은 사람을 만들어주고 행복한 사람을 살게 해주는 여러 덕목들에 관한 설명을 통해 제시된다. 그리고 이러한 행복, 덕과 중용, 정의와 우정, 공동체의 행복이라는 덕목들을 개인 안에 구체화하는 것이 바로 국가이다.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과연 우리는 어떤 국가에 살고 있는가?


서평자 박종성: 건국대학교 철학과에서 막스 슈티르너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건국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고, 칼 맑스와 슈티르너 사상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 최근(2023)  슈티르너의 저작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국내에서 처음 번역하여 출간했다.

‘나와 한철연’ – 한길석 편 [나와 한철연] ②

나와 한철연

 

한길석(중부대)

 

내가 한철연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나는 인문대 앞 공중전화 부스에서 선배가 일러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송종서 선배였다. 당시 종서형은 한철연 교육부장이었다. 내 전화를 받고 다소 의아했다고 한다. 대뜸 전화해서 입회(?)를 신청한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던가? 어쨌든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내게 세상은 종말적 분위기로 가득했다. 구제금융 시대에 접어든 터라 오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캐쥬얼하게 전화해서 쿨하게 받아들여 준 유일한 곳이 한철연이었다(라고 말하면 한철연이 너무 쉽게 보일까?).

쉽게 들어왔지만, 정식 회원이 되려면 거쳐야 할 과정이 있었다. 근 한 학기 동안 매주 토요일 교육부 강좌를 이수하고 회비를 납부해야 정식 회원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 홍대역 산울림 소극장 부근의 사무실에 들락날락하면서 강의도 듣고, 소금구이도 먹으며 한철연과 조금씩 가까워졌다.

현재(2022년) 산울림 소극장 일대 모습, 출처: 네이버지도

교육부 과정을 마친 후 한철연 쪽으로의 발길은 뜸해졌다. 석사 논문 때문에 이래저래 바쁘기도 했다. 논문을 마무리하고 나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여전히 오라는 곳은 없었다. 9.11 테러로 무역센터가 무너졌다. 내 맘도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데 가을쯤 조은평 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힘든 자 내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라며 간사를 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21세기가 되도록 여전히 갈 곳 없는 자의 신세를 면치 못했던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한철연의 품속에 안겼다.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는 비밀이다.

간사 생활은 어렵지 않았다. 지금에 비하면 업무 부담 값은 ‘0’에 수렴했다. 오히려 어려웠던 것은 무료함 뒤의 불안감이었다고 할까? 2002년 월드컵이 끝나자 나의 한철연 간사 생활도 끝났다.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기여서 그때 무엇을 하고 돌아다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학 준비를 하다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포기하니 또 갈 곳이 막막했다. 그리고 또 전화벨이 울렸다. 벌써 세 번째다. 이쯤 되면 ‘갈 곳 없는 자에게는 늘 한철연 전화벨이 울린다’라는 귀납원칙이 성립한다. 이번에는 이정호 선생님이셨다. 방송대에서 튜터로 일해보라는 제안이었다(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홈페이지 공고를 보고 지원한 것인지 이정호 선생님의 귀띔 전화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귀띔 전화 쪽이 더 흐뭇하니 그렇게 기억하기로 하자).

이정호 선생님 덕에 안정을 찾은 나는 박사 과정에 진학하면서 한참이나 미뤄뒀던 공부를 헤겔 분과원들과 함께 시작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헤겔 분과는 일관되게 헤겔을 읽지 않는다.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헤겔 분과원의 공부를 도와주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공공성과 정치적 공영역에 관한 논의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제안한 텍스트가 아렌트의 저작들이었다. 헤겔 분과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꽤 오랫동안 참을성 있게 아렌트를 읽어 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헤겔 분과원들과 보낸 시간은 내 삶에서 가장 따뜻한 한때 중 하나였다.

끔찍하게도 나는 오십 줄에 들어섰다. 한철연에는 이십 대에 들어왔으니 나와 한철연의 인연은 이십 년을 훌쩍 넘었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고 이러저러한 일을 맡아 이런저런 일을 해보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한철연은 내게 늘 곁을 내주던 곳이었다. 응달진 곳에서 떨고 있으면, 한 조각 양달이라도 내준 곳이 아니었나 싶다. 그 속에서 몸과 맘을 덥히며 못되고 못난 학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한철연이 많이 어려워 보인다. 예전만 못하게 찾는 이도 적고 점점 기성 학회와 다를 바 없어지는 구석도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패기 있고 젊은 학자들이 한철연을 찾지 않는 데 있다. 학교나 기관에 몸을 담지 못하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독립 연구자들의 발길이 끊어진 데 있다. 갈 곳 없어 헤매던 나를 한철연이 보듬어 주었듯이 앞으로도 계속 고군분투하며 학문의 길을 가고 있는 청년 연구자들이 쉬기도 하고 공부도 하는 둥지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 건승을 빈다.

한철연이 입주하고 있는 태복빌딩의 현재 모습(2022년), 출처: 네이버지도

플라톤의 <국가> 강해 ㊺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1-3 통치자와 수호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412b-427c)

   1-3-1 통치자들과 수호자들의 선발과 자격(412b-414b) – (2), 건국신화(414c-415d)

 

[412d-414b]

* 통치자들은 연장자이며 수호자들 중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어야 하고 그에 따라 슬기롭고 유능하며 나라에 유익한 것에 평생 열성을 다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을 통치자들로 선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들이 ‘전 연령대에 걸쳐’ἐν ἁπάσαις ταῖς ἡλικίαις 그러한 신념δόγμα을 수호하는지φυλακικοί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홀려서든 강요를 받아서든 나라에 가장 좋은 것을 행해야 한다는 소신δόξα을 잊거나ἐπιλανθάνομα 내팽개치는ἐκβάλλουσιν 일이 없는지도 지켜보아야 한다.(412e) 소신이 염두διανοία에서 사라지는 경우는 자발적인ἑκούσιος 경우와 마지못한ἀεκούσιος 경우로 나뉜다. 그런데 잘못된 소신은 나쁜 것이어서 자발적으로 버리겠지만ἐξίημι, 진실한 소신은 좋은ἀγαθός 것이고 좋은 것은 누구나 빼앗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뭔가에 홀리거나 마지못해ἀκουσίως 버리게 된다.(413a)

*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진실한 소신을 앗기는 경우를 크게 도둑맞는κλαπέντες 경우, 홀리는γοητευθέντες 경우, 강제에 의한βιασθέντες 경우로 나누어 설명한다. 도둑을 맞는 경우는 말λόγος로 설득되어 소신이 바뀌는 경우와 시간이 흘러 자신도 모르게 잊어버리는 경우이다. 그리고 강제에 의한 경우는 고통ὀδύνη이나 슬픔ἀλγηδών 때문에 소신을 고쳐 갖게 되는 경우이다. 그리고 홀리는 경우는 쾌락ἡδονή으로 넋을 잃거나κηληθέντες 공포φόβος로 뭔가에 두려움을 느껴δείσαντες 소신을 고쳐 갖게 되는 경우이다.(413b-c)

* 그러므로 어릴 적부터 이런 경우에 수호자들이 빠져드는지 아닌지를 여러 가지 시험ἅμιλλα을 통해 잘 살펴본 후 나라에 가장 좋은 것을 행하려는 신념δόγμα을 늘 명심하여 좀처럼 속지 않고 어떤 공포나 고통에도 휘둘리지 않는 사람을 가장 훌륭한 수호자로 뽑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내놓은 시험은 이러하다. 우선 수호자가 가져야 할 신념을 가장 잘 잊어버리게 되거나 가장 잘 속게 될 그런 일들 하도록 지정하여 시험한다. 또한, 갖가지 힘든 일과 고통 그리고 경합ἀγών을 그들에게 부과하여 시험한다. 그리고 세 번째로 홀리는 경우에 대한 시험으로 공포의 대상들 속에 몰아넣거나 환락 속에 옮겨 놓아 지켜본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들을 황금을 불 속에서 시험하는 것보다 더 많이 치르게 한다. 그리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며 모든 상황에서 자기가 배운 시가μουσικῆ의 훌륭한 수호자이자 장단εὔρυθμος과 화음εὐάρμοστον이 잘 맞는 사람이야말로 자기 자신과 나라에 가장 유용한χρησιμώτατος 사람이다.(413e)

* 이처럼 ‘어려서나 젊어서나 어른이 되어서나 그때마다 시험을 받아 입증된 사람을’τὸν ἀεὶ ἔν τε παισὶ καὶ νεανίσκοις καὶ ἐν ἀνδράσι βασανιζόμενον나라의 통치자요 수호자로 임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영예τιμή는 물론 가장 큰 특전μέγιστα γέρα을 누려야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배제해야 한다.(413e-414a)

* 소크라테스는 이상과 같이 통치자들과 수호자들의 선발ἐκλογή과 임명κατάστασις에 관한 사항을 마무리하면서 그것을 ‘자세하지는 않은 대략의 설명’ὡς ἐν τύπῳ, μὴ δι᾽ ἀκριβείας, εἰρῆσθαι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임명된 통치자를 수호자 가운데 진정으로 ‘완벽한 수호자’φύλακας παντελεῖς로 따로 구분하고 지금까지 수호자로 불렀던 그 나머지 수호자들을 그 통치자들의 신념을 지지하는 보조자ἐπίκουροι요 조력자βοηθοι로 부른다. (413e-414a)

————————–

* 여기서 신념δόγμα은 뭔가 분석하거나 따지기 이전에 태도를 결정할 정도로 이미 확고하게 원칙으로 자리 잡은 생각들이고 소신δόξα은 그러한 신념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 또는 그 신념에 부합하는 좀 더 구체적인 생각들이다.

—————————

* 소크라테스는 논의 계획에 따라 정의로운 나라의 기본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여기서 처음으로 최상위 계층으로서 통치자 계층의 등장을 알림과 동시에 그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과 자격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 정도로 훌륭한 통치자들을 선발하고 임명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혹독한 시험 과정이 언급된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주목해야 할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들을 선발하기 위한 과정이 ‘전 연령대에 걸쳐’(413a), ‘어려서나 젊어서나 어른이 되어서나 그때마다’(413e)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어려서부터 시가와 체육 교육을 통해 수호자들의 양성을 위한 기초 교육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통치자들을 선발하기까지 젊은 시절은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아주 오랜 기간 수호자들 사이에서 단계 단계마다 선발 과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통치자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통치자들의 선발과 임명 과정은 그 중대성만큼이나 자세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정작 여기서 그에 관한 내용은 의외로 간략하다. 게다가 소크라테스 스스로도 통치자의 선발과 임명에 관한 자신의 언급들을 ‘자세하지는 않은 대략의 설명’(414a)이라고 토까지 달고 있다. 이것은 이 부분이 일단 논의 계획상 통치자들을 최상층으로 하는 정의로운 나라의 기본구조를 드러내는데 우선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통치자들의 선발과 임명 과정에 대한 설명이 장차 자세하게 다루어질 것임을 암시 또는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제7권에 가서 통치자가 되기 위한 수호자들의 철학 교육과정을 논하면서 그 선발 단계를 구체적인 연령까지 언급하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 그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해당 부분에서 살피겠지만 참고로 그 개요만 미리 간단히 언급해두면 다음과 같다. 일단 수호자들의 양성을 위한 청소년기의 시가 및 체육 교육이 18세까지 필수적으로 이루어진 다음에 20세가 되면 그들 가운데 시험을 거쳐 수호자들이 선발된다.(537b-c) 이들은 향후 10년 동안 변증술을 위한 예비 교육을 받고 30세가 되면 다시 선발 과정을 거쳐 보다 훌륭한 수호자들이 임명된다.(537d) 그리고 그들은 35세까지 5년 동안 집중적으로 철학 교육을 받고 그 후 15년 동안 철학 연구는 물론 전쟁의 지휘 및 관직도 맡아가며 통치자가 되기 위한 실무를 수행한다.(540a) 그리고 마침내 연장자로서 50세가 되었을 때 두루 모든 면에서 가장 훌륭한 자들이 통치자들로 선발된다.(540b) 누가 통치자들을 선발하는지는 여전히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최소한 ‘최선자들의 정체’를 구성하는 ‘최선자들’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선발되는지 잘 드러나 있다.

*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통치자들과 수호자들의 선발과 임명에 관해 간략히 언급한 후에 통치자들을 ‘완벽한 수호자들’이라고 언급하는 방식으로 통치자 계층의 등장을 알린다. 그리고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통해 통치자의 선발과 임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수호자들로 불리었던 젊은이들은 이제부터 그 통치자들의 신념을 위한 보조자들이자 조력자들로 불러 마땅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수호자 계층은 비로소 통치자 계층과 조력자 계층 즉 군인 계층으로 분화되고 나라 전체의 기본구조가 통치자 계층, 군인 계층, 생산자 계층으로 이루어졌음이 선언된다.

* 요컨대 이 부분은 정의로운 나라를 세부적으로 다루기 이전에 그 나라의 기본구조가 통치자 계층을 비롯해 세 계층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그러한 계층들에 상응하는 덕목들과 특징들을 예비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총론적 서론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쓰이는 말들과 표현들 그리고 예시된 상황들은 앞으로 개념적으로 드러나게 될 4개의 덕목과 각기 내용상 서로 조응을 이룬다. 소크라테스가 설명하고 있는 그러한 위험들과 그것의 극복을 위한 시험들은 아래와 같다. 우선 소신을 앗기는 위험한 경우들로 크게 1. 도둑맞는 경우, 2. 강제에 의한 경우, 3. 홀리는 경우로 나누고, 내용상 그 경우들은 순서에 따라 각기 1) 말로 설득되어 소신이 바뀌거나 시간이 흘러 잊어버리는 경우, 2) 고통이나 슬픔 때문에 소신을 바꾸는 경우 3) 쾌락이나 공포 때문에 소신을 고쳐 갖게 되는 경우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시험도 이에 상응하여 아래와 같이 제시된다. 1의 경우는 신념을 가장 잘 잊게 하거나 속게 만드는 시험을 부과하고 2의 경우는 갖가지 힘든 일과 고통 그리고 경합을 부과한다. 3의 경우는 공포나 환락의 상황을 부과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한 부여된 상황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이겨낸 사람들을 나라에 가장 유용한 통치자와 수호자로 임명하고 살아서나 죽어서나 영예와 특전을 부여한다.

*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예시하고 있는 이와 같은 설명들 가운데 1과 1)은 나중에 명시적으로 드러날 영혼의 각 부분 중 주로 이성 부분과 관련된 상황들이고 2와 2)는 기개 부분, 3과 3)은 욕구 부분과 관련된 상황들임을 어렵지 않게 직감할 수 있다. 그리고 나중 밝혀지겠지만 이러한 영혼의 각 부분은 그 역할과 기능이 고유하기는 하지만 다른 부분들과 상호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최종적인 결과로서 그 개인 전체 영혼의 상태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 유기적인 상호작용 전체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주체는 영혼의 각 부분 가운데 이성 부분이다.

* 이 부분에서 고통과 슬픔, 공포와 쾌락 등 인간의 희로애락과 관련한 감정 내지는 심리 상태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들 역시 모두 영혼 각 부분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영혼의 상태이다. 즉 신체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주어진 상황 및 사태에 대한 영혼 각 부분의 대응과 그 대응들의 상호 유기적인 작용의 결과들이다. 요컨대 인간의 제반 심리 상태는 몸에서 생긴 감각적 사태들에 대한 영혼 각 부분의 유기적인 대응 및 관계 양상에 따라 다양하게 드러나는 영혼 전체의 상태들이다. 이를테면 신체적 고통을 겪거나 쾌락에 빠지는 것은 일차로 몸에서 생긴 감각적 자극에 대해 영혼의 욕구 부분이 기피 또는 애착 욕구를 증대시킴으로써 영혼 전체의 부조화가 야기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 부조화는 이성 부분에 의해 즉시 통제되고 조화의 회복은 영혼 전체의 조화를 관장하는 이성 부분의 힘으로 결정된다. 이성 부분의 통제력이 약해 조화를 회복하지 못하면 상태는 악화되고 통제력을 발휘하면 그 발휘하는 힘의 크기만큼 최선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몸의 건강 상태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영혼의 이성 부분이 아무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도 몸을 다치거나 쇠약하면 그만큼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

* 우리는 흔히 육체적으로 쾌락에 빠지거나 도덕적으로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을 영혼의 세 부분 가운데 욕구 부분 탓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욕구 부분의 과잉이나 결핍 또는, 좋거나 나쁜 상태는 조화를 구현하는데 일정 부분 영향은 줄 수 있을 테지만 궁극적으로 행위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영혼 전체의 조화를 관장하는 영혼의 이성 부분이다. 영혼의 이성 부분이 병들어 있으면 욕구 부분의 과잉이나 결핍을 조정할 수 없거나 아예 반대로 영악한 도구적 이성이 되어 악화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성 부분이 건강하면 기개 부분의 힘도 빌어 욕구 부분이 과잉 또는 결핍 상태에 있을지라도 그것을 조정하여 부조화 상태를 극복할 수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은 오감의 기능과 식욕과 성욕 등 본능적 욕구를 가진다. 그러한 기능과 욕구 자체는 도덕과 무관하다. 문제는 감각과 본능에 조응하여 발생하는 그 다양한 욕구들을 이성 부분이 얼마나 상황과 적도에 맞게 조정 하느냐 못 하느냐이다. 당연히 조정의 목표는 다른 영혼의 부분들과의 조화이고 그 조화의 방식과 수준은 천성과 교육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조화의 수준에 따라 도덕적인 차이도 드러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사고나 행동 양태는 영혼의 상태 특히 이성 부분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방식과 어떤 수준으로 조화를 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렇게 보면 “욕망하는 대로 살아라!”라는 요즈음 욕망론자들의 권고조차 플라톤에 따르면 영혼의 욕구 부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 부분이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성은 오히려 오로지 욕구 부분의 크기만을 증대시키는 고도화된 도구적 계산 능력, 즉 병든 영혼의 다른 이름이다. 어떠한 입장이건 그만큼 이성이 중요한 것이다. 다만 플라톤에게 ‘가장 훌륭한 삶’이란 시가 교육과 체육 교육 간의 조화를 통해 몸과 영혼 모두 특히 영혼의 이성 부분의 건강을 꾀하고 철학 교육을 통해 그 이성 부분의 힘을 극대화하여 최상의 가치로서 ‘좋음 자체’를 인식하고 그 상태를 흔들림 없이 보전하는 것이다.

* 우리는 종종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는 말의 의미를 곡해하여 철학자들이란 영혼만을 위해 아예 차라리 자살할 것을 권하는 자들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물론 영혼은 몸과 떨어져도 살아 있고 그만큼 순수하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그러나 철학이 현실에서 추구하는 ‘좋은 삶’이란 영혼은 물론 몸의 건강까지 포함하는 것이므로 살아 있는 몸의 존재를 필수적 상수로 이미 전제하고 있다. 플라톤 철학은 현실 도피론이 아니라, 말 그대로 현실 구제론이자 생존의 존재론이다. 이 점에서도 플라톤이 몸의 보전 즉 생존을 경시한다고 것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신체적 감각을 비판하는 경우도 신체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감각이 이성과 비교하여 진리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이다.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 현실에서 참된 삶은 말 그대로 몸이 없으면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다. 소소하게는 일상에서 먹는 즐거움은 물론 영혼의 조화와 관련된 좋은 음악을 듣거나 좋은 가르침이 담긴 말을 듣는 것도 일단 몸의 감각을 통해서이다. 그만큼 몸은 영혼과 더불어 삶을 담보하는 하나의 축으로 매우 소중한 것이다. 게다가 나라의 수호자들이 시가 교육에만 치우쳐 체육 교육을 게을리하면 몸의 상태가 나빠지고 몸이 나빠지면 결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없다. 몸을 다치거나 상하면 그것을 회복하려는 영혼도 힘들고 그만큼 생존도 힘들다. 가장 나쁜 것은 영혼의 이성 부분이 병들어서 영혼 내부의 관계는 물론 몸의 건강도 악화시켜 개인은 물론 나라까지 불행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다.

* 재판에서 선고 형량으로 주어지는 몸에 대한 고통은 일반적인 기준에 따라 정해지겠지만 그 고통의 크기는 당사자가 영혼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전하고 있냐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다. 정의로운 사람이 핍박으로 겪는 고통은 이성이 잘 감내하여 영혼의 조화를 이루어 고통을 이겨낼 수도 있지만, 그 핍박을 못 견디는 사람은 그만큼 영혼의 관계가 부조화를 이루어 고통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의 크기도 마찬가지이다. 요컨대 이 땅에서 철학 함의 목표는 영혼들의 조화를 통해 영혼과 몸의 건강을 함께 보전하는 것이지 몸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이미 영혼이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물론 불가피하게 스스로 몸의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는 고통을 이겨내기 힘들어 차라리 몸의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이거나 또는 몸과 영혼 하나만의 선택이 강요되었을 때 불가피하게 몸의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경우일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몸을 경시하는 사람으로 보기는 힘들다. 전자는 살고 싶지만 더는 살기가 힘들어 죽는 것이고 후자는 그야말로 영혼의 저질화 내지 훼손(영혼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몸의 죽음 중 선택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몸의 죽음을 선택한 경우이다. 이른바 철학의 연습으로 인식될 만한 죽음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 불가피한 선택 상황에서 지성의 힘으로 아테네인들의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 스스로 감행한 죽음의 경우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삶의 마지막에 감행된 좋은 삶의 한 방식이 되는 것이다.

* 아무려나 몸과 영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일들에 대한 우리의 위와 같은 해석들은 기본적으로 몸 내지 신체 기관들을 영혼이 사용하는 도구로 파악하고 있는 <국가>와 <알키비아데스 I> 등에 토대를 둔 것이지만 <파이돈>, <파이드로스> 등을 끌어들여 함께 비교하면 일정 부분 이견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최소한 <국가>가 플라톤의 영혼론의 핵심이자 가장 발전적인 내용을 구성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이견이 없다. 이와 관련한 내용들은 나중 영혼의 세 부분을 본격적으로 다룰 때 플라톤의 심신이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좀 더 자세하게 살피기로 한다.

 

<414b-415d>

* 통치자들과 수호자들의 선발과 임명에 관한 언급에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이상 국가 구성원들을 설득하여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고상한γενναῖος 거짓말 즉 건국 신화에 관한 언급을 아주 조심스럽게 주저하며 꺼내어 든다. 건국 신화는 앞선 시대에 여러 사례가 있었긴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그런 일들이 있지도 않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아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414b-c)

* 그러자 글라우콘은 두려워 말고 말해주기를 청하고 소크라테스는 내가 무슨 배짱으로 어떤 표현을 써서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래와 같이 이른바 건국 신화로 일컬어지는 고상한 거짓말을 옛날 설화μῦθος를 빌어 풀어낸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하다.(414d – 415d) “당신들이 수호자들이 되기 위해 실제 겪은 앞에서의 양육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 땅γῆ속에서 형성되고 양육되었던 일들에 비하면 꿈과 같은 것에 불과한 것이고 이미 땅인 어머니가 땅속에서 그들 자신은 물론 무기와 장비까지 다 만들어 당신들을 땅 위로 올려보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어머니와 유모에 대하듯이 국토χώρα를 수호하고 다른 시민들 역시 땅에서 태어난 형제들로 생각해야 한다. 신ὁ θεὸς은 당신들 중에서 다스리기 충분한 사람들의 경우 황금χρυσός을 섞어 빚어냈고 반면에 보조자들은 은ἄργυρος을 그리고 농부와 다른 장인들은 철σίδηρος과 청동χαλκός을 섞어 빚어냈다. 그런데 당신들은 대개 자신과 닮은 자손들을 낳지만 때로는 황금으로 된 사람에게서 은으로 된 자손이 태어나고 은으로 된 사람으로부터 황금으로 된 자손이 태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신은 통치자들에게 가장 뛰어난 수호자가 될 자손을 염두에 두고 자손들의 영혼에 그중 무엇이 섞였는지를 열성적으로 지켜보라 명령했고 그에 따라 자손 중 청동이나 철이 섞여서 태어나면 그들의 자연적 성향에 적합한 만큼의 존중τιμή을 해줘서 장인들이나 농부들로 살게 하고 또한 장인이나 농부들에게서 금이나 은이 섞인 아이가 출생하면 그 역시 존중하여 수호자나 보조자로 상승시키라ἀνάξουσι 했다. 그리고 끝으로 철로 되거나 청동으로 된 수호자가 나라를 수호하게 되는 때에는 나라가 망하리라는 신탁이 있었다.”

* 이에 글라우콘은 후대 사람들은 몰라도 이런 이야기를 당대 사람들에게 설득하기란 어려울 것이라 말하고 소크라테스는 그의 말에 동의를 표한다. 소크라테스는 다만 이 이야기는 최소한 나라와 서로에게 관심을 쏟게κήδεσθαι 하는 데 좋을 것 같아 한 말이며 어쨌든 설득 여부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에 맡기겠다고 말한 후 다시 통치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

*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나라의 기본구조와 수호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관한 사항을 개략적으로 언급한 후에 고상한 거짓말이라는 명분으로 일종의 건국 신화를 꺼내어 든다. 지금의 논의가 정의로운 나라를 수립하는 시작 단계에서 일종의 총론적 서론으로 펼쳐지는 것임을 고려하면 당대 그리스 나라들이 그래 왔듯이 나라를 수립하면서 건국 신화를 내건다는 것은 그리 어색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고상한 거짓말 역시 이미 앞에서(382c-d, 389b-c) 그 필요성이 제시된 만큼 새롭게 다시 문제 삼을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플라톤이 여기서 건국 신화를 꺼내어 든 것은 아래와 같은 배경 때문일 것이다. 즉, 새롭게 수립될 나라에서도 앞서 시가 교육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나라 구성원들의 공동체에 대한 믿음과 유대를 위해 일종의 종교 교육이 필요하고 그러한 종교 교육의 출발점으로서 새로운 건국 신화가 요구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건국 신화는 아래와 같이 앞으로 전개될 분업적 공동체로서 정의로운 국가의 기본구조를 설화적인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우선 신화는 나라의 모든 계층이 같은 어머니 즉 땅의 자손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앞으로 펼쳐질 정의로운 나라에서 모두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사람들인 만큼 서로 하나같은 유대감과 충성심으로 하나의 나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신화는 신들이 사람들 각각에 황금, 은, 철이나 동을 섞어서 이 땅에 태어나게 했다고 언급한다. 이것 역시 앞으로 수립될 정의로운 나라가 천성에 따라 세 계층으로 구성되고 그들의 역할 또한 기본적으로 천성적인 차이들을 갖고 있음을 미리 강조해두려는 것이다. 동시에 신화는 때로는 황금으로 된 사람에게서 은으로 된 자손이, 은으로 된 사람으로부터 황금으로 된 자손이 태어나기도 한다고 언급한다. 게다가 그러한 경우 그들의 자연적 성향에 적합한 만큼의 존중을 해줘서 장인들이나 농부들로 살게 하거나 수호자나 보조자로 상승시켜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리고 끝으로 신탁의 이름으로 철로 되거나 청동으로 된 수호자가 나라를 수호하게 되는 때에는 나라가 망하리라는 실로 엄중한 경고가 제시된다.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건국 신화가 그토록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앞에서 유익한 거짓말을 정당화할 때와 다르게 아주 주저하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하물며 무슨 배짱으로 어떤 표현을 써서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한다.(414d)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왜 이토록 주저하고 조심스러워하는 것일까? 필자가 짐작하는 그 배경과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앞에서 살핀 고상한 거짓말들의 사례들(382c)은 다 나름의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었고 옛날의 설화 경우에도 진실을 알지 못하는 탓에 허구를 가능한 진실과 같게 만드는 방식으로 그 유익함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382d) 2) 그러나 지금 말하려는 고상한 거짓말로서 건국 신화는 있지도 않고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내용을 담고 있는 데다 당장은 그 유익성도 증명할 수 없어 옛날 설화처럼 설득력이 있기 힘들다. 3) 그러나 옛날부터 페니키아를 비롯해(414c) 많은 나라에 건국 신화가 있는 데다가 아테네도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설화를 바탕으로 시가 교육을 해 왔듯이(377d) 정의로운 나라에도 시가 교육의 기초가 될 만한 건국 설화가 필요하다. 4) 신화는 여전히 시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정보 전달 방식인 데다 건국 신화 또한 옛날 설화처럼 언젠가 후손들에게 유익한 허구로 받아들여 지는 날이 올 것이다.(415d) 5) 그리고 지금도 최소한 나라와 서로에게 더 많이 관심을 쏟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415d) 요컨대 건국 신화는 정의로운 나라의 수립 단계에서 나라의 구조와 정신의 요체를 밝힌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고 장차 시가 교육의 토대로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으나 당장은 옛날 설화들과 달리 사실 기술에 있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을 담고 있어 소크라테스는 건국 신화를 내놓는 것에 그토록 주저하고 조심스러워하는 것이다.

* 그런데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주저와 조심스러움은 역설적으로 앞으로 보다 더 자세하고 많은 논변을 통해 고상한 거짓말로서 건국 신화의 진실성과 유익성을 보다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겠다는 소크라테스의 의지와 계획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암시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가 지금은 세상 사람들 생각에 맡기겠다고 말하면서도(415d) 행간 곳곳에서 설득의 방도와 의지를 반복해서 묻거나 피력하고 있는 것도(414c, 414e, 415c) 그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나중 5권 이후 7권에 가서 이른바 격랑 속 파도κῦμα들로 불릴 정도의 수많은 난관을 마주하며 건국 신화의 내용은 물론 정의로운 나라의 정당성에 관한 보다 구체적이고도 자세한 논변들을 전개한다.

* 아무려나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건국 신화는 장차 자세한 설명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표피적으로만 보면 왕권신수설과 세습군주정을 뒷받침할 수도 있고 사회 신분이 공고화된 봉건사회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히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태생적 또는 생물학적 차이를 그대로 사회적 차별로 연결하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의 고전적 발상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러한 플라톤의 의도를 허구적 슬로건을 내세워 나치의 이념을 주입하려 했던 괴벨스의 프로퍼갠더와 연결해 플라톤을 혹세무민의 고대적 뿌리라고 극렬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 부분은 플라톤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가장 즐겨 인용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 그러나 앞으로 보다 자세하게 밝혀지겠지만 정작 건국 신화에서 태어날 때 섞여 있다는 황금, 은, 철이나 동은 단순히 천성적으로 정해진 세습적 신분상의 차별과 위계를 의미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분업공동체에서 나라의 구성원들이 나누어 가져야 할 역할들의 차이와 위계를 의미한다. 이들 역할의 종류와 차이는 천성에 크게 영향을 받지만,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건국 신화는 태어날 때부터 선대의 천성과 다르게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후 후천적인 교육에 따라 그 소질과 능력이 다시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은 사회 구성원들 모두 태생에 의해서건 그 후 후천적인 교육에 의해서건 소질과 능력이 다르게 판정될 수 있고 그에 따라 다른 계층으로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구성원들 모두는 자질과 능력에 따라 단계마다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 게다가 그 위계의 변동이 상승이건 하강이건 자신이 소질에 따라 그 계층에 귀속되는 한, 모든 계층의 구성원들은 행복감의 크기에서 차이가 없다. 군대에서 사령관 한 사람의 역할이 병사 한 사람의 역할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역할 상의 위계는 중요도에서 분명 차이가 있지만, 개인들 각각의 차원에서 서로를 선망하거나 폄훼할 어떠한 근거도 없다. 정의로운 나라에서 각자는 각자의 소질에 합당한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가장 자기답고 행복하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이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이러한 건국 신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앞으로 설득력 있는 보다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414c) 끝.

(1-3-2 수호자들의 생활 방식, 사유재산의 금지(415d-421c) 다음에 계속)


 

나의 철학일지(7)[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나의 철학일지(7)

1)

앞에서 박사학위 논문에 관해 이야기했다. 내가 재직했던 학교에서 승진의 조건으로 요구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했던 짓이기는 하지만, 철학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한번 정리해보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 생각이란 곧 당시 유행하던 구조주의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내가 박사 논문의 주제로 헤겔 책 가운데 정신현상학을 택했던 것은 정신현상학의 서론(Einleitung]에 나오는 회의의 길이라는 개념 때문이었다. 나는 이 개념이야 말로 구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믿었다.

헤겔은 회의의 길을 설명하면서, 물 자체란 의식 자체를 넘어서 있기에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물 자체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의식에 대해서 나타나는 물 자체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만일 그런 특정한 의식을 넘어선다면, 그 의식에 대해 물 자체로 나타난 것조차, 넘어서게 되며, 이제 새로운 의식에서는 과거 물 자체로 여겨진 것조차 하나의 계기로 포괄될 수 있다고 하였다.

어떤 의식이 물 자체에 부딪혔을 때, 그것이 모순적인 경험이다. 왜냐하면, 그때 부딪히는 물 자체는 그런 특정 의식에서는 이렇게 규정할 수도 없고 그 반대로 규정할 수 없는 것 즉 이율배반이나 딜레마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의식에 나타나는 모순 경험은 실재 즉 물 자체에 대해 의식이 부딪히는 원초적인 경험이다.

헤겔은 이런 원초적인 모순 경험을 통해 의식은 새로운 형태의 의식으로 역사적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모순을 통해 나가는 길을 헤겔은 서론에서 ‘회의의 길’이라고 불렀으며, 이런 회의를 두려워하는 것은 오히려 진리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만일 정신현상학이 이렇게 모순을 통해 나가는 회의의 길이라고 한다면, 이 길은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나가는 길이며, 영원히 최종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열린 길이 아닐 수 없다.

2)

내가 논문에서 추구했던 것은 모순을 통해 나가는 회의의 길이 실제로 정신현상학에서 발견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나는 헤겔 정신현상학을 처음부터 샅샅이 읽어 나가면서, 과연 모순의 경험이 어떻게 의식의 발전에 기여하는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기쁘게도 나는 정신현상학에서 의식이 발전하는 변곡점마다 다양한 형태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모순은 다양한 모습으로 감추어져 있었는데, 이율배반이나 딜레마는 물론이며, 계몽주의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절대적 자유의 공포’나, 칸트 비판에서 나오는 ‘전치’, 또 낭만주의 비판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영혼’조차 모순 개념의 변장된 구체적인 형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박사학위 논문 자체에서 구조주의 한계를 거론한 것은 아니었다. 박사학위 논문은 그저 정신현상학에서 회의의 길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회의의 길이 확립된다면, 이것을 통해 구조주의가 극복될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나는 내가 발견한 바로 이 길이 마르크스가 주장한 유물론적 변증법의 길을 말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받는 과정 중에 나의 이런 기대는 심사위원들이 가지고 있는 헤겔에 대한 선입견과 정면으로 충돌되었다. 일반적으로 헤겔의 변증법적 발전은 개념이 자기를 대상화하며 다시 자기 내로 복귀하면서 전개하는 길이었다. 이 때문에 헤겔의 변증법은 일반적인 것에서 개별적인 것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이며, 당연히 이런 길은 마침내 자기 자신에 도달하면서 끝나게 되는 폐쇄된 길이었다.

사실 정신현상학 서문에 나오는 여러 가지 표현들은 이런 관념론적 해석의 길을 확인해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심사위원들에게 이런 서문에 나오는 길 즉 관념 변증법의 길은 논리학과 같은 학문에서 전개되는 길이며 이 길은 학문에 이르는 도정에 있는 정신현상학의 길과는 구분된다고 역설하였으나, 심사위원들은 나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 서문에서 설명한 관념 변증법의 길과 서론에서 설명한 회의의 길을 매개할 가능성을 찾아보았다. 나는 곧 정신현상학에서 ‘형태’와 ‘계기’라는 개념이나 ‘내면화’와 ‘시간화’라는 개념을 발견하면서, 이 개념이 두 가지 대립하는 길을 매개해 준다고 생각하면서 논문을 보완하였다.

이런 보완의 덕분인지, 다행히 심사위원들은 나의 주장을, 비록 자신들은 인정하기 어렵지만, 하나의 실험적인 해석으로 받아들여 주면서 논문은 통과될 수 있었다. 나는 마치 헤겔이 아니라 나 자신이 진리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발견한 것처럼 기뻐했다.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내가 마치 학문적으로는 새로이 태어나는 것처럼 느꼈다.

4)

간신히 90년대 이후 전개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을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상의 흐름은 또다시 변화했다. 21세기로 들어가면서, 1990년대 서구 사상을 지배했던 후기구조주의의 흐름도 퇴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상의 물결이 밀어닥쳤는데 내가 보기에 두 가지 흐름이었다. 하나는 들뢰즈와 같은 미분적 차이의 철학이었고 다른 하나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이었다.

흔히 들뢰즈나 라캉은 푸코와 데리다와 같이 프랑스 출신 사상가이었으므로, 그냥 프랑스 철학을 통칭되었으나, 내가 보기에는 전혀 다른 흐름의 사상이었다. 왜냐하면, 푸코와 데리다가 후기구조주의에 기초해서, 상대주의적 결론에 이르면서 어떤 객관적 가치나 진리의 존재를 부정햇지만, 들뢰즈나 라캉의 경우는 이와 달리 진리의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들뢰즈는 가장 원초적인 미분적인 감각적 경험이 모든 진리의 기초이었다. 그의 이런 입장은 욕망 개념을 서술한 ‘앙티 외디푸스’라는 책에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났다. 거기서 그는 욕망이란 원초적인 미분적인 욕망이 무한히 적분되면서 출현하는 것이라고 보면서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곧 생산이라고 하였다. 그의 이런 논리는 전반적으로 진리 개념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라캉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라캉 역시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을 진리의 기초로 보았다. 라캉은 이때 무의식이라는 개념보다는 ‘대타자의 말’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한 라캉적인 해석이었다.

들뢰즈나 라캉은 진리를 인식가능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구조주의가 부딪힌 상대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사실 들뢰즈나 라캉이 푸코나 데리다보다 먼저 나타난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또는 세계적으로) 오히려 푸코나 데리다 뒤에 유행하게 된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닌가 생각했다. 즉 사람들이 이 시대에 이르러 객관적 가치와 진리를 부정하는 구조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런 상대주의를 극복하려는 갈망이 사람들이 들뢰즈나 라캉으로 향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5)

나는 들뢰즈나 라캉이 등장한 것은 곧 신자유주의 붕괴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2008년 미국에서 경제위기는 30년간 세계를 제패한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일거에 폭로했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 쏟아졌고 ‘나는 분노한다는’ 함성이나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월가를 점령하라’는 운동이 전 세계에 펼쳐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자유주의는 김대중 선생의 IMF 극복 노선을 타고 들어왔으며, 노무현 정권의 경제 개혁을 통해 번성하게 되었다. 특히 노무현 정권은 삼성에게 나라의 경제에 대한 진단을 맡겼으며,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을 세계 금융 허브로 만들고,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압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노무현 정권이 정권을 다시 보수 진영으로 넘기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부동산 투기 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금융 허브를 만든다고 하면서 금융개방을 가속화했는데, 그 때문에 당시 신자유주의 시대 낮은 금리로 떠돌던 과잉 화폐(특히 일본 자본)가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왔으니, 기술적 발전이 정체되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과잉 화폐는 부동산 투기에 몰려들었다. 그러니 노무현 정권이 실패하게 된 진짜 원인은 다름 아닌 그가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 아니었을까?

노무현 정권이 말기 전개된 세계적 금융위기는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파산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민주정권 즉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와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또한 한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도 쇠퇴했으며, 이에 대체하여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는 철학적 흐름도 등장했다. 바로 그것이 곧 들뢰즈의 철학과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관심의 폭발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나의 철학일지(6)[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나의 철학일지(6)[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1)

푸코에 이어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데리다의 해체주의였다. 푸코는 실천적 관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켰고 실제 나중에 정치권에서 친노파를 만들어내는 데 일부분 기여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들어온 것이 데리다의 해체철학인데, 실천 쪽보다는 오히려 예술과 문학 비평 쪽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

데리다의 사상 중에 흥미를 끌었던 개념은 무슨 ‘중심주의’이다. 그의 사상으로부터 ‘이성 중심주의’, ‘유럽 중심주의’, ‘남성 중심주의’ 등 각종 중심주의 개념이 나왔다. 그의 철학은 ‘중심’ 중심주의였다. 이런 개념은 기존의 보수적 지배 사상의 비판일 수도 있으나 당시에는 주로 운동권 사상에 대한 비판으로 해독되었다. 운동권 사상 역시 보수적 사상에 못지않게 이런 각종 중심주의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리다의 해체적 비판에서 방법론적 핵심 개념은 ‘차연’이라는 개념이었다. 이 개념은 차이와 지연이라는 두 의미를 지닌 합성어인데, 거슬러 올라가면 후기구조주의라는 방법론에서 필연적으로 이끌려 나오는 개념이었다. 후기구조주의에서 모든 구조는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다. 그 때문에 어떤 것은 하나의 구조로 파악되는 동시 다른 구조로도 파악된다. 순수한 객관적 대상이 없으니, 두 구조는 하나의 지점에서 중첩될 뿐이며, 바로 이렇게 두 구조가 중첩되는 지점을 지칭하는 개념이 곧 차연이었다.

데리다는 머지않아 이런 차연 개념을 포기하고 레비나스 등과 같이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현상학적 본질직관 개념으로 돌아가는데, 데리다의 후기 사상은 내가 알기로 한국에서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운동권이 자기를 반성하는데 방법론적인 관점을 주었다. 데리다의 주장은 당시까지도 남아서 투쟁했던 운동권의 진영 안에 수류탄을 깐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진리이고 가치 있다고 믿지 않고서 어떻게 행동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하나의 구조를 지배하는 것은 하나의 욕망일 뿐이니, 세상은 욕망 사이에 벌어지는 이전투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전투구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투쟁에 나설 수는 없었다.

2)

그 외에도 나는 알튀쎄와 같은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자 책을 읽었다. 그의 중층적 결정론이나 구조적 총체성 개념은 명확하다는 느낌을 주기는 했으나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느껴졌다. 당시 한국에는 윤소영 교수와 같은 알튀쎄 주의자가 있었고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나, 나로서는 알튀쎄의 철학이 무언가 가슴에 와닿는 느낌이 없었다.

그 밖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가인 보드리야르의 책을 읽기도 했다. 그의 소비사회라는 개념이나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은 흥미로웠으나, 그는 사회학자에 가깝고 재치 있다고 생각했으나, 깊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보드리야르는 나중에 내가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데 기여했다는 점만은 밝히고 싶다.

이렇게 나는 한 십 년 동안을 당시 유행을 좇아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다행히 학교에서 교과목 개편을 하면서 나는 내 마음대로 나의 강의 커리큘럼을 짤 수 있는 권리를 얻었기에 나는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교과목으로 설정해서, 내가 공부하면서 동시에 강의하기도 했으니, 나의 실험적 강의를 참고 들어준 학생들에게 지금 미안하기도 하며 동시에 고맙게도 생각한다.

97년 나는 지쳤다. 마침 학교에서 안식년을 받아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 유럽에서라면 무슨 새로운 전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독일로 떠났다. 유럽에서 나는 97년 겨울 한국이 IMF에 빠지게 되었고 그해 년 말 선거에서 김대중 선생이 당선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3)

IMF로 망하는 것은 어차피 예견되었던 사실이니 당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서 곧 김대중 선생의 당선을 알았을 때, 나는 최초로 무거운 중압감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대중 선생이 87년 여름 노동자 대투쟁 시절, 노동운동을 배신했을 때도, 배신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게 그의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정권을 잡기만 하면 그는 운동권과 그가 묵시적으로 합의한 경제적 개혁을 달성하리라 믿었다.

이 노선은 박현채 선생이 기초를 잡고 김대중 선생이 널리 알린 대중경제 노선이었다. 그것은 산업의 재편성을 통해 민족경제로 나가는 노선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김대중 선생에 기대했다. 이제 정권을 잡았으니 그는 자신의 대중경제 노선을 실천하리라. 희망이 솟았다.

멀리 독일에서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나가면서 나는 이참에 어설픈 현실참여를 끝내고 학자로서의 나의 길을 다잡아 가리라고 생각했다. 독일 튀빙엔은 참 작은 대학 도시였다. 만물은 고요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5월의 들판이었다. 마치 어릴 때 어머니가 덮어주던 포프린 이불보에 수 놓인 꽃잎들처럼 들판에는 이름 모를 야생 꽃들이 피었다.

나는 튀빙엔 유학생들과 자주 함께 산책하면서, 철학을 공부하는 학자로서 나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나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단순히 어떤 철학이 좋아서 하는 것은 철학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철학도 자의식을 가지고 해야 하며, 나의 철학적 자의식이 가리키는 바에 따르자면 철학은 시대의 현실을 극복하는 철학, 실천적 철학이어야 했다.

나는 산책하면서, 내가 10년간 허겁지겁 따라갔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들을 생각해 보았다. 십 년간 그들의 철학이 내게 가르쳐준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려 했으나 손에 잡히는 것 없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었고, 어떤 진리도 가치도 없었다. 과연 우리는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과거 운동권은 이제 소확행이라는 개념에 빠져들었다. 그게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삶이었다. 소확행이란 곧 와인과 여행, 그리고 약간의 흐트러진 매무새를 의미했다. 하지만 이런 소확행을 즐기려면 어느 정도 중산층적인 물질적 자원이 필요했다. 대학교수로서 나도 이런 소확행의 분위기가 나의 온몸을 휘감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럴수록 의식적으로 나는 이 분위기에서 빠져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허무주의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을 극복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푸코나 데리다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곧 구조주의라는 무기였다. 이 구조주의는 거슬러 올라가면 칸트에 이르고, 언어학이라는 확실한 토대를 갖추고 구조주의 외에도 과학철학(예를 들어 토마스 쿤) 등에서 지지와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더구나 마르크스주의조차 이미 알튀쎄를 통해 구조주의로 전향했다.

구조주의는 후기구조주의에서 보듯이 불가피하게 상대주의와 소확행이라는 삶으로 빠지게 마련인데,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고민을 하면서 나는 내가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던 튀빙엔 대학교에서 이루어지던 헤겔 논리학 심포지움에 참석하였다. 나는 독일어도 잘 모르면서도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그는 마침 헤겔 논리학 3권 개념론 부분을 읽어나갔다. 독일 교수와 대학원생의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내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헤겔에 관해서라면 그가 모르기는 나와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었다.

헤겔 강의를 들으면서 다른 한편 도대체 헤겔 철학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고민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곧 헤겔 철학이 어쩌면 구조주의적 방법론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은 단순한 생각이었다.

구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조 자체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해야 했다. 구조주의는 어떤 것을 구조적 좌표 위에 점 찍는 것은 가능했지만 구조가 변동하는 가능성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하나의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의 변화는 우연일 뿐이었다.

그런데 헤겔 정신현상학에서 의식의 발전은 하나의 인식 구조에서 다른 인식 구조로 변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하고 나는 생각했다. 헤겔 정신현상학에서 이행 구조를 밝히게 된다면, 구조가 필연적으로 변동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무릎을 쳤다. 이제 구조주의를 극복하는 길이 보였다. 이렇게 해서 나는 80년대 헤겔 연구에 이어서 10년 만에 다시 헤겔연구로 돌아서게 되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박사 논문을 통해 정신현상학의 이행과정을 밝혀 보고자 했다. 나는 튀빙엔 대학교 도서관에서 다시 정신현상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으며 그 가운데 모순이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정신현상학의 이행과정에는 항상 모순이라는 개념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 모순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딜레마로, 어떤 경우에는 자가당착으로 어떤 경우에는 전치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나는 정신의 이행은 모순을 통해 일어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감을 바탕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이 논문으로 나중에 귀국한 지 2년 뒤 2000년 겨울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제목은 ‘정신현상학에서 정신 개념에 대한 연구’였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 ㊹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2023년 3월 19일 정암학당 강의록

1-3 통치자가 갖추어야할 조건들(412b-427c)

   1-3-1 통치자들의 선발과 자격(412b-414b) – (1)

 

*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제부터 <국가>의 중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의 이상 국가 즉 정의로운 국가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이곳 정의로운 국가와 관련한 논의는 일단 주제 구분으로만 보면 3권 말미 412b에서부터 4권 434c까지만 다루어질 정도로 분량이 생각보다 짧다.(<국가> 전체 분량의 15분의 1정도) 내용도 우선 이상 국가의 기본 구조를 수립하는 차원에서 계층들의 분화 및 그에 따라 등장하는 통치자들의 자격과 생활방식, 근본 임무 등이 언급된 후,(412b-427c) 그런 나라에 어떤 덕들이 깃들어 있기에 정의로운 나라이자 행복한 나라가 되는지가(427c-434c) 매우 압축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은 짧기는 하지만 “분업적 공동체로서 각기 천성과 소질이 다른 세 계층들이 자신의 고유한 직분을 온전하게 수행할 때 비로소 지혜, 용기, 절제, 정의라는 덕목을 갖춘 정의로운 나라가 되고 동시에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된다.”는 플라톤 이상 국가의 기본 요체를 담고 있다. 그러나 <국가>를 이상국가론으로 알고 있는 독자들로선 학자들이 분류한 소주제별 목차 구성에 있어 이상 국가 즉 정의로운 국가를 주제로 내세운 부분이 여기 이 정도 분량으로만 설정되어 있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 이해를 위해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플라톤의 <국가> 논의의 전체 구도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 <국가>는 먼저 제1권에서 부정의한 자가 행복하다는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잘못되었음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논리적 부당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정의로운 사람이 부정의한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적극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살피려면 소문자보다 대문자가 더 잘 보이듯이 개인이 아닌 국가로 확대하여 살피는 것이 한결 쉽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국가를 살핀 다음 그것을 통해 정의로운 개인을 살피고 또 부정의한 국가를 통해 부정의한 개인을 살핀 후 그 양자를 서로 비교하려 한다. 이에 우선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나라의 기본 구조부터 우선 수립한다.(427c까지) 그리고 그 나라에 깃든 덕목들을 살펴 그 나라가 왜 정의롭고 행복한 나라인지를 언급한다.(434c까지) 여기가 현재 우리 논의가 서 있는 지점이다. 이렇듯 주제 구분상 정의로운 국가의 수립과 특징들을 담고 있는 이 부분은 비록 정의로운 국가의 요체를 담은 것일지라도 소크라테스가 애초에 설정한 전체 논의 구도와 순서에 따른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그래서 생각보다 내용이 짧은 것이다.

* 이참에 <국가> 전체의 논의 구도의 이해를 위해 이후의 논의 구도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논의 구도상 다음 단계로 소크라테스는 앞서 다룬 대문자로서 정의로운 나라를 토대로 소문자로서 정의로운 개인을 살피고 나라와 마찬가지로 개인 역시 영혼이 세 부분으로 구분되고 그곳에도 네 가지 덕목들이 깃들어 있음을 확인한다.(434d-445e) 그리고 논의 계획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비교 대상인 부정의한 나라와 부정의한 개인을 다루려 한다. 그러나 글라우콘 등 대화 참여자들은 논의 진행을 저지하고 소크라테스가 앞서(423e-424a) 제시한 이상국가론에서 그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남녀평등, 처자공유 등을 비롯한 몇 가지 난제들을 끌고 들어와 대답을 요구한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직면한 이른바 세 가지 파도들(449a-474c)이다. 그 바람에 소크라테스는 애초의 논의 계획을 바꾸어 그들의 문제제기에 답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국가> 5권에서 7권까지의 내용을 구성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 형식상으로만 보면 일종의 애초 논의 구도에서 일탈된 논의 영역이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보면 그 문제점들에 대한 극복의 기초로서 철학과 권력의 결합이 거론되고 그것을 논하는 과정에서 철학자 왕의 위상과 역할, 태양의 비유와 선분의 비유, 철학의 교과 및 변증술, 좋음의 이데아 등 플라톤 철학의 핵심 주제들이 논의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앞서 짧게 기술된 이상 국가 관련 주제들과 내용들을 더욱 구체적이고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연후 8-9권에 가서 계획된 논의 순서로 돌아가 부정의한 국가와 개인이 살펴지고 그후 비교를 통해 논의 목적대로 정의로운 개인이 부정의한 개인보다 행복하다는 것이 최종적으로 증명된다. 요컨대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제4권에서 비록 짧은 분량으로 간단하게 제시되었지만 이후 부분에서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심도 있는 추가적인 논의들을 통해 그 내용들이 더욱 풍성해짐에 따라 결과적으로 <국가> 자체가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우여곡절 또한 플라톤 자신이 <국가>를 통해 처음부터 자신의 생각을 주도면밀하게 보다 더 잘 드러내려고 했던 본래의 기획이자 드라마틱한 플롯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아무려나 이제부터 우리는 다룰 정의로운 나라의 수립에 관한 논의는 내용적으로 통치자들의 선발 자격과 조건들 그리고 나라의 기본 구조를 이루는 세 계층들에 깃든 덕목들 즉 정의로운 나라의 기본 특징과 규범적 원칙들이 논의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통상 우리가 국가론 내지 정치체제론 하면 떠올리는 주제들 즉 정부의 형태, 입법 및 사법과 관련한 조직과 제도, 법률의 체계와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은 여기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플라톤의 정치체제론이 통치자들을 비롯한 각 계층들의 덕목과 규범 즉 사람의 문제에만 집중되어 있다고 보는 것도 섣부르다. 앞서도 살폈고 이곳에서도 그렇듯이(417b) <국가> 중간 중간 주요 단계마다 언급 내용들에 대한 법제화가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는데다 특히 말기의 대작 <법률>에 가면 시종일관 구체적인 제도와 법률들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도 누차 강조하였듯이 플라톤의 정치철학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정치가> 등 여타의 대화편들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는 물론 무엇보다도 <국가>와 <법률>에 대한 균형 있는 이해가 필수 불가결하다.

* 이에 따라 이곳에서 우리들의 논의는 이곳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플라톤의 이상적 정치체제즉 정의로운 나라의 기본 구조 및 특징 그리고 그것의 구현을 위해 통치자들을 비롯한 각 계층들이 지녀야 할 덕과 규범에 관한 논의에 집중하되, 필요에 따라 <법률>에 관한 논의를 보충적으로 포함하게 될 것이다. <국가>와 <법률>의 관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는 권력과 철학의 결합, 이상국가의 실현가능성을 논하는 5권(471c-474c)에 가서 독립적인 주제로 심도 있게 다시 다루게 될 것이다.

—————————

<412b-c>

*정의로운 국가 수립을 위한 수호자 교육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한 후 소크라테스는 이제 수호자들 중 ‘누가 다스리고 누가 다스림을 받는지’οἵτινες ἄρξουσί τε καὶ ἄρξονται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바로 통치자들οἱ ἄρχοντες의 선발과 자격이 논의된다. 우선 통치자들은 연장자πρέσβυς이자 가장 훌륭한ἄριστος 사람들이어야 한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농부가 농사일에 그러하듯 자기 일에 가장 능숙한 사람을 말한다. 즉 통치자들은 수호자들 중에서 나라를 가장 잘 지키는 사람들 즉 나라 수호에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다.

—————————-

* ‘통치자들’의 원어 οἱ ἄρχοντες는 ‘통치자’ 또는 공식 지위로서 ‘집정관’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ἄρχων(archōn)의 복수형이다. 그런데 이 말은 389a, c에도 나오긴 하지만 이른바 수호자들과 차별하여 이상 국가의 한 계층으로 따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드디어 통치자들, 수호자들, 생산자들로 구분되는 플라톤 정치체제의 기본 구조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크게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흔히들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철인왕정’이라 부르고 그 철학자 왕이 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여기서도 시종일관 ‘통치자들’로 표현하고 있듯이 <국가>에서는 통치 행위나 통치 역할의 주체를 표현할 경우, 군왕(473c, 543a 등)으로 부르든 철학자로 부르든,  기본적으로 복수 즉 집단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통치자들 가운데 특출한  한 사람이 생길 경우도 상정하고 있다.(445d) 그러나 지위명이나 일반명사 용례(491a, 591a 등)를 포함하여 ‘최선자들의 나라’에 상응하는 개인으로서 ‘왕도 정체적 인간’을 가리키거나 그와 참주의 차이를 비교할 때(580c, 587b 등)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통치자는 복수로 쓰이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흔히들 오로지 1인 군주정 또는 1인 독재정의 국가로만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이다. 요컨대 <국가>에서 통치 행위를 수행하는 주체는 기본적으로 집단으로서 복수의 통치자들, 군왕들, 철학자들이다.

*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1인 군주정 내지 전제정으로 여기게 된 데는 순전히 텍스트로만 보면 제7권에 나오는 몇 가지 문구들에 대한 표피적 해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는 통치자들이 ‘서로들 각기 번갈아가며 나라에서 함께 고생한다. συμπονεῖν ἐν τῇ πόλει ἕκαστοι ἐν μέρει’(520d)는 말이 나오고 또 비슷한 내용으로 ‘차례가 오면 서로들 각기 나랏일로 고생하면서 나라를 위한 통치를 한다.πρὸς πολιτικοῖς ἐπιταλαιπωροῦντας καὶ ἄρχοντας ἑκάστους τῆς πόλεως ἕνεκα’(540b)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사람들은 ‘each other’를 뜻하는 ἕκαστοι(hekastoi)나 ἑκάστους(hekastous)라는 말을 각기 한 사람의 군왕이나 통치자로만 해석하여 최고 통치자의 자리를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맡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말들 모두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한사람만이 아니라 각각의 여러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즉 그 말은 통치와 관련한 복수의 역할들을 복수의 사람들이 서로를 돕기 위해 각기 돌아가며 맡는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같은 부분(520d)에서 ‘함께 고생한다.’συμπονεῖν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것을 뒷받침한다. 유수의 역자들(P. Shorey, G. Grube, C. Reeve)도 모두 그 부분을 ‘각기 돌아가며 나랏일들을 나눠 맡는다.’(to share in the labors of state, each in turn)로 번역하고 있고, <국가>의 고전적인 주석가로 알려진 아담(J. Adam) 역시 그 복수형의 의미를 ‘때때로 고생을 서로 덜어주고 있는 (복수의) 통치자들의 (복수의) 교대들(relays of governors relieving one another from time to time)’로 풀이하고 있다. 요컨대 돌아가며 늘 혼자가 다 떠맡는 것이 아니다. 만약 통치를 돌아가며 혼자가 다 떠맡는다면 임기를 1년씩만 잡아도 50세부터 길게 잡아 70세까지 20년 동안 전체 통치자의 숫자는 20명 정도면 되고 2년씩 잡으면 10명, 4년씩 잡으면 고작 다섯 명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플라톤은 통치자들을 나라를 구성하는 세 계층을 각 집단ἔθνος(ethnos)으로 표현하고 있는데(420b) 통상 부족이나 종족 수준의 규모를 나타내는 그 말을 5명에서 20명 정도에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 이러한 논거들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이상 국가의 정치체제들 1인의 철학자왕정으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는 않다. 참고로 그 논거들은 대략 이러하다. 마치 거울에서 실상과 허상이 모든 게 동일하지만 동시에 반대이듯이, 플라톤의 이상적 정치체제는 허상인 1인 참주정의 정반대 실상으로서 완벽한 철학자 1의 통치체제로 설정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통치자들을 집단으로 둔 것 역시 철학자가 철학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통치를 수고로 여기기 때문에 그것을 분담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여럿을 두었을 뿐이다. 일종의 고통 분담 차원인 것이다. 철학자들은 위계나 능력 차이 없이 모두가 동일하고 완벽한 수준이므로 임기에 구애 없이 누가 돌아가며 통치업무를 맡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통치와 관련하여 분담하지 않으면 안 될 여러 가지 일들도 1인 통치자의 완벽한 능력으로 적합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임명하여 처리할 수 있다. 등 등

* 그러나 <국가>에는 이 문제를 불식시킬 정도로 결정적인 플라톤의 언급이 있다. 소크라테스 스스로 ‘왕도정체’βασιλεία(basileia)를 ‘특출한 한 사람이 통치하는 체제’로, ‘최선자들의 정체’ἀριστοκρατίᾳ(aristokratia)를 ‘특출한 여럿이 통치하는 체제’로 직접 규정한 후에(445d) 이후의 언급에서 정의로운 국가, 최상위 정치체제는 일관되게 ‘최선자들의 정체’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544e,545c,547c) 물론 왕도정체와 최선자 정체를 구분 짓지 않는 언급들도 나온다.(576e, 580b) 그러나 그 경우는 통치자들 수(數)의 관점이 아니라 두 정체의 통치자들 모두 공히 철학자라는 관점에서 언급될 때이다. 그리고 <국가>의 이상 국가를 본으로 삼아 현실화한 실물로서의 현실 국가를 다루는 <법률>을 보면 그곳의 통치자들 역시 복수의 통치자들이고 역할도 각기 나뉘어져 그들 모두가 통치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 이를테면 <국가>의 군왕들이나 통치자들에 해당하는 역할로서 법수호자를 비롯해 사정관, 교육감독관 등이 나오고 야간위원회라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도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 수 또한 법수호자는 37명이고 사정관들은 최초 12명에서 시작해 매년 3명씩 추가되며(946c) 최고 의사 결정 협의체인 ‘야간위원회’도 법수호자 10명과 수십 명의 사정관들로 구성되어 있다.(<법률> 752e-753a, 946c, 961a) 그리고 이곳에서 플라톤은 설사 최고 통치자를 1인으로 두는 왕도정체라 해도 반드시 입법자와 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법률> 710d) 도리아 3국 중 스파르타만이 멸망하지 않은 까닭 역시 스파르타가 다른 나라들과 달리 복수의 왕들이 통치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법률> 691d-e) 이렇게 보면 <국가>의 철인왕정이라는 군주정이 <법률>에 가서 완화되어 최고 권력이 한 사람에 치우치지 않고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최고 권력자를 복수로 하는 체제로 바뀌게 되었다는 견해 또한 텍스트상으로 맞는 말이 아니다. <국가>도 <법률>도 다 최고 권력자들이 복수이고 그들이 받는 교육 내용 또한 거의 동일하다는 점에서 최소한 권력 구조상 ‘철학자 집단의 통치체제’라는 기본 원칙에는 플라톤 중기나 말기나 변화가 없다. 이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플라톤의 정치체제론을 1인의 철인왕정체로 단정하고 내용적으로 그것을 반민주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1인 군주정과 독재정으로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결정적인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것은 20세기 초 나치스가 등장하면서 당시 권력가 게오르그(S. Georg) 주변의 명망 있는 독일 철학자들이 이른바 게오르그 학파를 결성하여 나치즘과 히틀러의 통치를 합리화하는 이론으로 플라톤의 철인왕정을 적극 내세웠기 때문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앞서 살핀 7권 문구들에 대한 그릇된 해석도 기본적으로 그들로부터 시작되고 강화된 것이다. 이들이 펴낸 관련 책들은 지금 이름조차 거론되고 있지는 않지만 파시즘은 물론 러시아 혁명 이후 스탈린 체제의 등장과도 맞물려 당대 급진 우파는 물론 스탈린주의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후 플라톤의 정치 철학은 20세기 서구 지성인들에게 독재정과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이론으로 각인되었고 특히 종전 후 한나 아렌트와 칼 포퍼 등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된 이래 가히 전체주의와 반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철학으로 고착화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이에 대한 반론도 고전학자들은 물론 현대 정치철학자들에 의해 심도 있게 전개되면서 최근에는 플라톤 정치철학에 대한 재해석은 물론 현대 자본주의 정치이론을 극복하는 기초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졸고 “플라톤과 정치철학”, 『아주 오래된 질문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정암학당 지음, 동녘, 2017 참고)

* 통치자들이 연장자이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단순히 생물학적인 나이가 많아야 한다가 아니라 통치자가 되기까지 아주 오랜 기간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오랜 기간 그 교육과 훈련을 훌륭하게 마친 그 만큼 가장 훌륭한ἄριστος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연장자라고 하면 많은 경험들에 기초한 연륜의 깊이를 먼저 떠올리는데 앞서도 살폈듯이 연장자의 훌륭함은 경험의 많고 적음 보다는 그 경험의 종류 즉 경험들이 영혼에 어떤 영향들 주는가에 달려 있다. <법률>에서도 이 원칙은 이어져 통치자들에 해당하는 법수호자들과 사정관들 모두 연장자들이어야 한다. 특히 그들 중 법수호자들의 경우에는 나랏일과 관련한 최고의 권력기구인 야간위원회에 참석할 때 각자 본성과 양육에 있어 자격이 있다고 여겨지는 30세 이상의 젊은이들을 반드시 데리고 들어가야 한다.(961d-e) 이른바 최고의 지성도 가장 뛰어난 감각과 섞여 하나가 될 때 가장 안전한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이상적 최선의 본으로서의 <국가>와 차선의 실물로서의 <법률>의 관계를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들 가운데 하나이다. 플라톤 철학에서 원칙과 현실, 철학과 권력, 인치와 법치 등 삶과 현실의 주요한 갈등 국면에서 균형과 조화는 그 자체로 최고의 가치를 담보하는 요체이다.

 

[412d]

* 또 통치자들은 나라 수호에 슬기롭고φρόνιμος 유능해야δυνατός 하며 나라에 마음을 쓰는κηδόμενος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φίλος 것에 제일 마음을 쓰는 법이고 그것은 유익함συμφέρον 또는 잘되고εὖ πράττειν 잘못됨에 있어 자기와 같이 하는 경우의 것이므로 수호자들 가운데에서 그처럼 나라에 유익한 것이면 누구보다도 열의προθυμία를 다해 온 생애를 통해 그것을 행하려는 사람을 통치자로 선발해야만 한다.(412d)

——————————

* “가장 훌륭한 사람은 농부가 농사일에 그러하듯 자기 일에 가장 능숙한 사람을 말한다.”는 말 그대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통치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정의로운 국가를 성립시키는 사람들은 어떤 계층에 속하건 어떤 직능을 갖고 있건 모두가 훌륭한 사람들인 것이다.

* 통치자들의 기본 자격으로서 ‘슬기로움’과 ‘유능함’ 그리고 ‘나라에 마음을 씀’은 나중에 언급될 영혼의 이성 부분이 갖는 기본적인 특징을 예비적으로 풀어서 쓴 말들이다. 그리고 나라에 마음을 쓴다는 것은 나라에 대한 헌신을 말하는 것으로 영혼의 기개 부분이 갖는 기본적인 특징을 포함하는 말이다.

* 그런데 나라와 통치자들 내지 수호자들의 이해가 동일하다는 생각은 그것만으로는 개인이나 국가들 모두에게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를테면 어떤 이기적인 통치자가 자기 이익을 국가 이익과 동일하다는 명분하에 국가 권력을 사유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통치자의 자격에서 나라에 대한 사랑과 헌신에 앞서 슬기(지혜)와 유능함을 먼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슬기로움은 장차 이성 부분의 본질적 속성으로서 통치에 있어 대상의 이익 즉 시민과 나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앎의 덕목이고 유능함은 그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실제 현실로 구현하는 구체적인 힘으로서 실천의 덕목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앎은 이미 실천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슬기가 유능함에 앞서 먼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덕목을 전제로 한 후에 그것에 희생과 헌신 열의가 더해졌을 때 진정한 이상국가의 통치자로서의 자격이 부여된다. 다시 말해 통치자들의 슬기와 유능함은 플라톤의 정체가 철학자들의 정체가 되느냐 피폐한 1인 참주정이 되느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금의 정치현실도 그렇듯이 어리석고 무도한 정치 지도자가 자기 나름으로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는 확신 아래 열의를 갖고 정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지도자가 열의를 가지면 가질수록 나라는 파국으로 몰린다. 성서의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말하고 있는 수많은 사랑의 권고들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평생을 그리하겠노라 마음 새기는 잘 알려진 성구이다. 그러나 덕목들 가운데 ‘의를 위하여 기뻐하며’라는 말에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구에 감동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처신이 얼마나 그 말에 모순되는지는 모른 채 거리낌 없이 공정과 의리도 함께 외쳐댄다. 우리들의 무지는 자신들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눈물이 될 수 있다.

* 이곳에는 통치자들을 누가 어떻게 선발하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본과 원칙으로서 말로 세우는 이상국가인 만큼 통치자들의 자격 이외에 제도로 규정되는 구체적인 선발 절차까지 논의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통치 권력이 누구로부터 주어지는가의 문제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국가>의 원칙을 현실화한 것으로 평가되는 <법률>을 보면 <국가>의 통치자들에 버금가는 법수호자들의 선발 절차가 언급되어 있다. 놀랍게도 그곳에서 플라톤은 아테네 손님의 입을 빌어 “기병이나 보병에 복무하는 사람들, 그리고 감당할 힘이 있는 나이에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관리들의 선출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법률> 752e-754a) 관리로 번역된 말의 원어는 <국가>에서 통치자로 번역되는 ἄρχων(archōn)으로 당연히 법수호자도 포함한다. 또 그들의 임기 역시 70세로 제한이 있어 법수호자들은 순차로 교체된다. 물론 이 선발 절차가 <국가>의 통치자 선발과정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비록 통치자 집단의 피선거권은 ‘최선자들’이란 제한 조건이 붙어 있지만 플라톤 스스로 통치자들을 선발하는 사람들로서 장교는 물론 일반 병사 등 시민 계급 사람들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족적이 된 촛불 집회에서 가장 많이 외친 구호 가운데 하나도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였다. 최고 통치자들로서 법수호자들은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가 아니라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 정체처럼 시민들의 추천과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권력이 위임된 복수의 사람들인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바람직한 정치체제에 관한 플라톤의 생각이 과연 무엇인지에 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상념들을 불러일으킨다. 이 점에 대해서도 추후 별도의 독립적인 주제로 따로 다루게 될 것이다. (통치자의 선발과 자격(1) 끝. 다음 회에 통치자의 선발과 자격(2), 건국신화 계속)

[신간안내] 『유일자와 그의 소유』(막스 슈티르너 지음 · 박종성 번역, 부북스, 2023년 2월 28일) [한철연 소식]

『유일자와 그의 소유』(막스 슈티르너 지음 · 박종성 번역, 부북스, 2023년 2월 28일)

 

막스 슈티르너의 명작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슈티르너 철학 전공자인 한철연 박종성 회원이 번역하여 최근 출간하었습니다. 슈티르너 저서가 국내에 변역된 것은 처음입니다. 본 웹진의 블로그진에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코너를 연재하고 있는 박종성 회원은 박사학위 취득 이후 슈티르너의 철학을 규명하겠다는 일념 아래 오랜시간 동안 번역 작업에 몰두하였고 그 결실이 번역서 출간으로 맺어졌습니다. 슈티르너에 대한 국내 학계의 수요와 연구가 거의 전무한 현실에서 이 책이 번역되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 사상 연구자 및 독일 철학 전공자들은 한번 관심을 가지고 책장을 넘겨봐야할 것 같습니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모든 종교, 철학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직접적이고 근본적으로 도전했다. 그의 글은 자신을 많은 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슈티르너는 기존의 모든 종교, 철학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정중하게 도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당시의 모든 현존하는 동시대의 종교, 철학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뻔뻔스럽고 통렬하게 도전했다. 놀랍지 않게, 이 일은 자신들의 위대한 이념들과 이론들을 완성하거나 실행하기 위해 분주하게 일하는 모든 신학자, 철학자 그리고 이데올로기 연구자들이 슈티르너를 기피인물로 만들었다. 박종성의 번역이 그 기피인물과 마주할 기회를 주었다. -김성민(건국대 철학과 교수)

혁명이 아닌 반란을 꿈꾼 슈티르너가 세상에 내놓은 마치 침묵과도 같은 자기 자신에 대한 유일한 항변서. 그에게 ‘나’란, 대의나 이념에 종속된 자가 아닐뿐더러 인간이라는 일반성에 매몰될 수 없는 존재이며 심지어 언어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창조적 존재이다. 자신을 지우라고 요구하는 세상에 맞서기 위해 읽어야 할 책. -전호근(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현실적 대안을 고민했던 마르크스에게 몽상을 늘어놓는 급진주의자들이란 지극히 위험한 존재였다. 꿈이란 나아갈 길을 잊도록 할 만큼 너무도 매혹적이기에. 마르크스가 보기에 슈티르너의 꿈은 특히 위험했다. 일체의 속박도, 굴종도, 타협도 없는 ‘나’의 완전한 해방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티르너의 꿈은 특정한 통치체계의 구축이나 삶의 안정 따위로 ‘나’의 해방이 결코 완결될 수 없음을, 오히려 항상 되풀이하고 되돌아 봐야 할 꿈임을 웅변한다. 이는 안존과 타성이 유일한 삶의 양식인 우리에게 ‘나’를 일깨우는 각별한 외침이 아닐 수 없다. 박종성은 십수 년의 노력으로 슈티르너의 목소리,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고스란히 우리말로 옮겨주었다. 자, 이제 슈티르너의 일갈에 귀 기울여 속박을 안식으로 여기는 초라한 ‘나’를 돌아보자. -이병태(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옮긴이 박종성: 건국대학교에서 슈티르너의 유일자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철학자의 서재』1, 2(공저), 『B급 철학』(공저), 『코뮨의 미래』(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이데올로기와 문화정체성』(공역)이 있다. 논문으로는 「유일한 사람의 사랑」, 「슈티르너의 ‘변신’ 비판의 의미」, 「식민지 조선에서 슈티르너 철학의 변용과 그 의미 및 한계-염상섭의 「지상선을 위하여」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현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이고 현재 건국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화 ‘타르’ – 음악의 근원은 어디 있는가?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영화 ‘타르’-음악의 근원은 어디 있는가?

1) 타르의 몰락

영화 ‘타르’는 레즈비언이자, 베를린 필하모니 수석 지휘자인 타르의 몰락을 그리는 영화다. 그녀는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정상에 선 여성이다. 그녀는 줄리아드 교수이며, 자서전 ‘타르가 타르에 대해’를 출판했고, 아코디언이라는 여성 음악가를 육성하는 시민 단체를 맡고 있다.

그런 그녀를 몰락시킨, 그것도 한순간에 몰락시킨 것은 그녀의 성적 충동이다. 그녀는 이미 오케스트라의 제1 바이올리니스트인 여성과 함께 살고 있다. 그 외에도 그녀는 비서인 프란체스카나, 아코디언 소속 학생인 크리스타와도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암시된다, 그런 그녀에게 러시아에서 건너온, 아직 소녀 티를 벗어나지 않은, 발랄하고 육감적인 느낌을 주는 첼리스트 올가는 새로운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필하모니의 부지휘자의 자리를 기대했던 프란체스카는 그의 희망이 물거품이 되자 크리스타와 타르의 관계를 폭로한다. 크리스타의 부모가 그녀를 언론에 고발하자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게다가 타르가 프란체스카를 대신하여 비서로 삼아 데리고 뉴욕에 출장 간 올가가 언론에 노출되면서 그녀는 갑작스럽게 추락하고 만다.

성적 충동으로 한 인간이 몰락한다는 스토리만 놓고 본다면, 굳이 이 영화가 새로울 것은 없지만, 2시간 40분에 걸친 영화가 시종일관 관객이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몰락하는 타르 내면의 균열이다.

흥미로운 것은 타르 내면의 균열과 더불어 음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음악의 탄생은 타르의 몰락과 교차하고 있다. 처음 음악은 마치 딩동 하는 알림 소리처럼 마음에 떠오른다. 조금 지나면 음악은 어디선가 멀리서 들려오는 여자의 비명처럼 울린다. 그녀는 메트로놈 소리를 듣고 한밤중에 깨어나며, 살펴보니 메트로놈이 벽장에 감추어져 있다. 마음에 울리는 소리는 무언가 위기를 알리는 듯한데, 타르는 급히 오선지를 펼쳐 이를 음악으로 작곡해 나간다.

내면의 소리에서 음악이 탄생하는 모습은 키에슬로프의 영화 ‘세 가지 색깔-블루’에서와 마찬가지다. 거기서도 주인공 쥴리는 내면에서 점차 확대되며 들려오는 소리를 악곡으로 작곡해 나간다. 다만 ‘블루’에서는 죽음과 같은 절망에 빠진 쥴리의 내면에 조금씩 생명의 느낌이 되살아나면서 음악은 부풀어 오르는 생명감과 비례한다. 반면 영화 ‘타르’에서는 오히려 음악의 출현은 주인공의 몰락과 교차하고 있다.

2) 음악의 원천

음악과 몰락이 서로 교차하는 긴장의 정점에서 타르는 올가를 따라 어느 건물의 지하실로 내려간다. 마치 환상의 세계 속에 들어선 듯 지하실은 황폐하고 올가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타르가 지하실의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에 들어섰을 때, 거기엔 희미하게 호랑이 같은 물체가 으르렁거린다. 타르는 두려움에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올라가다 쓰러지면서 바닥에 얼굴을 크게 다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타르는 자신이 작곡하던 음악을 완성하게 된다.

영화 블루에서와 달리 생의 희망이 아니라 죽음에의 몰락이 오히려 음악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상기시킨다. 쇼펜하우어, 그리고 그의 제자인 니체는 음악의 근원을 디오니소스적인 몰락에의 의지에서 찾았으니까 말이다.

과연 음악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 ‘블루’에서처럼 생에의 희망이 음악의 원천인가 아니면, 영화 ‘타르’에서처럼 몰락에의 의지가 음악의 근원인가?

영화 ‘타르’에서 감독은 영화에 들어가면서부터 어떻게 보면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두 개의 에피소드를 전개한다. 영화는 시작하면서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이 보이는 타르와의 대담을 보여준다. 여기서 타르는 다음 번 작품으로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대부분은 이 작품(특히 4장)은 죽음을 그린 것으로 보지만, 그녀는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하겠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말러가 그녀의 연인인 알마에게 헌정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이 죽음과 사랑을 동시에 의미할 수 있는가? 영화 ‘타르’에서도 타르는 자신이 몰락을 경험하면서 작곡한 곡을 자신의 딸에게 헌정한다. 그 딸은(아마도 함께 살던 바이올리니스트의 딸인 듯한데) 타르가 유일하게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하는, 아버지처럼 보살피는 딸이다. 여기서도 몰락에서 나온 음악이 생명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죽음에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 동시에 사랑, 또는 생에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어쩌면 죽음에 의지가 곧 생에의 의지, 사랑에의 의지인 것이 아닐까?

3) 음악의 자율성

이 영화에서 음악에 대한 물음은 또 하나의 에피소드로 전개된다. 첫 번째 대담 장면에 이어서 다음 장면에서 타르는 줄리아드 대학교에서 지휘법을 강의한다. 여기서 타르는 음대 학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타르가 바흐를 언급하자, 학생은 바흐는 반여성적이기 때문에 싫어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음악이 음악가의 개인적 삶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음악은 고유한 의미를 보여주는 것인지 하는 논쟁이 벌어진다.

타르는 음악은 자율적인 것이며 음악과 개인적인 삶은 서로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논쟁 중에 타르는 자신은 레즈비언이지만 자신은 음악 속에서 항상 신을 느껴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듯이 타르의 음악이 그 자신의 몰락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면, 음악이 자율적이라는 그녀 자신의 주장과 충돌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에서 스토리 전개 대부분은 주로 클래식 음악에 기초한다. 영화 ‘타르’에서 흥미로운 것은 처음과 마지막에는 클래식과 대조되는 음악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처음 인트로 장면에서 오랫동안 어두운 화면을 보여주면서, 배경에 음악을 들려주는데, 아마도 아랍 쪽의 음악인 듯이 보인다. 음악은 비애적이지만 단조로운 여인의 한탄처럼 들린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부근에 나오는 음악은 타악기 위주의 사이키델릭한 전자 음악이다. 감독이 인트로와 마지막에 이런 음악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작가는 이런 음악을 통해 음악이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우리의 물음은 이렇게 종합될 수 있다. 음악은 자율적인가 아니면 삶을 배경으로 하는 것인가? 음악은 삶 가운데 몰락하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생에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인가?

음악이 지닌 이중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헤겔의 음악론은 이런 이중성을 설명하는 데 하나의 디딤돌을 제시할 지도 모른다. 헤겔은 음악은 삶에서 나온 자연적 소리를 테마로 삼아 고유한 음악적 방법으로 이를 전개한다고 본다. 이는 마치 베토벤의 교양곡 9번에서 문들 두들기는 소리가 음악적으로 전개된 것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헤겔은 음악이 근대의 파토스적 인간을 표현한다고 본다. 이런 파토스적 인간이란 즉 셰익스피어의 연극에서 오델로나 맥베스와 같은 인간을 말한다. 그런데 파토스는 셰익스피어의 연극에서 보듯이 개인의 삶을 파괴하지만, 헤겔은 이런 파괴는 오히려 개인이 실체적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해방의 길이라 한다. 몰락이 곧 해방이라는 헤겔의 주장은 곧 음악의 이중성을 설명할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