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11- 상징적 예술 형식[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11- 상징적 예술 형식

 

1) 고대 제국의 역사

헤겔은 예술의 형식을 세 가지 단계로 나누었다. 상징적 예술형식과 고전적 예술형식, 낭만적 예술형식이다. 각자에는 고유한 표현적 기호가 존재한다. 즉 상징과 현상 그리고 가상이다. 헤겔이 처음 미학을 강의했던 하이델베르그 시절 그는 예술의 역사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로 구분했을 뿐이다. 후일 베를린 시절에 이르러 그는 상징적 예술을 추가하여 예술의 역사를 세 가지 단계로 구분했다.  

 

헤겔이 상징적 예술형식의 시대로 잡은 시대는 페르시아, 인도, 이집트 등 초기 도시국가에 기초하여 발전한 제국이다. 이 시대 사회는 자연적인 혈연 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사회로 발전하고 있었다. 오늘날 보면 이런 발전 과정은 엥겔스가 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잘 그려지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엥겔스에 따르면 이 시대 사적 소유가 발전하면서 부족이 해체되고 도시국가가 출현했다. 도시국가 내에서 부족은 지역으로 새로이 편성되었는데, 사적 소유가 더욱 발전하면서 상당히 평등했던 성원들은 분화하면서 왕과 귀족, 평민의 위계 질서가 출현했다.

 

도시국가 사이의 전쟁을 통해 획득한 노예가 생산을 담당하며, 부유한 귀족의 잉여를 바탕으로 사치품을 위한 원격지 무역이 출현하면서 다른 도시 국가에서 이주민이 들어왔다. 이주민은 처음에 비록 노예는 아니지만 아무 정치적 권리가 없었으나 점차 정치적 권리를 획득했다.

 

도시국가 사이에는 쟁패가 일어나 한편으로 연합이 이루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예화가 발생한다. 도시국가 사이의 연합조차도 상당히 불평등한 종속관계에 있었다. 그것이 곧 고대 제국이었다.

 

물론 헤겔이 엥겔스가 설명한 도시국가의 역사적 발전을 알았을 리가 없다. <역사철학강의>에서 헤겔은 이 시대 역사를 서술하지만, 실제 역사는 거의 없고 오히려 종교에 관한 설명이 위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헤겔이 실제 역사를 탐구하여 쓴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시대 종교에 대한 해석을 통해 거꾸로 짐작한 역사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헤겔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인도의 베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앙 등을 해석하면서 이 시대고대 제국의 역사를 드러내는데, 심지어 그 가운데 페르시아와 인도, 이집트 사이에 일정한 발전 단계조차 설정한다. 그의 기준은 모호하지만 대체로 본다면 도시 내부에서 시민의 자유와 도시 사이의 평등이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기준으로 본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제국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도시 내부에서는 강제적 억압 관계가 지배적이며 도시 사이에는 불평등한 종속 관계가 있었다. 강제성과 불평등성이 이 시대 국가의 기본적 원리 즉 이념을 이룬다. 헤겔은 강제적이며 불평등한 이념을 ‘무규정적 추상적 통일성’으로 규정한다.[1]

 

이 시대 이념은 절대정신의 세 형태인 예술, 종교, 철학 가운데 우선적으로 종교적 형태로 출현하니, 이 시대 신은 그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거대하고 무한한 힘을 지닌 존재로만 인식되며, 개인은 그 앞에서 공포심을 느끼며 복종한다.  

 

2) 수수께끼적 상징

이 시대 예술은 종교에 비해서 보면 부차적이지만 나름대로 이념을 독자적으로 표현하니, 그 표현의 방식이 곧 상징[2]이다. 헤겔은 상징 속에 들어 있는 두 가지 계기를 구분한다. 상징에서 감각적 형상(기호)은 자기를 넘어선 어떤 이념(의미)을 지시하는데, 양자가 일치하는 것으로 간주될 때 양자의 관계는 상징[3]으로 규정된다.  

 

처음에 양자의 일치는 전적으로 우연적으로 일치한다. 이런 우연적 일치는 외면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치를 말하는데 주로 문화적, 관습과 같은 자의적인 힘이 여기에 작용하고 있다. 이런 우연적 외면적 일치인데도 불구하고 상징은 일정한 문화 관습 내에 있는 사람에게 마치 직접적으로 의미를 갖는 것처럼 간주된다. 그에게 그 의미는 너무나 당연하여 마치 자연적으로 그런 의미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누구나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것이라 하겠다. 이런 직접적 관계로부터 상징이 지닌 마술적, 신비적 성격이 출현한다.

 

그러나 양자가 지닌 자의적이며 우연적 관계는 그런 문화 관습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 바로 드러난다. 그는 그 상징이 지시하는 의미를 찾기 힘들다. 그에게 상징은 그 의미가 감추어진 채 있으며, 그것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기호이다. 헤겔은 수수께끼 같은 상징의 대표적 예를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신화에서 등장하는 상징으로 본다. 페르시아에서 신의 상징은 곧 빛이다. 이것은 직접적인 통일성 즉 어떤 물질 중의 하나가 보편성 통일성을 지닌 것에 머무르고 있다.

 

헤겔은 인도에서 등장한 상징은 환상적인 상징인데, 이는 페르시아의 상징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으로 본다. 여기서 페르시아에서 마치 직접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였던 상징의 내부에서 기호와 의미가 분리되면서, 환상을 통해 두 가지를 다시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여기서 결합은 아직 종잡을 수 없는 혼동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형상의 규정성은 갑자기 반대의 것으로 변하기도 하고 혹은 턱없이 커졌다가 가뭇없이 사라지기도 하는 마계에 사는 것과 진배없다.”[4]     

 

이런 환상의 유희를 <역사철학강의>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꿈꾸는 인도인은 우리가 유한한 개체라고 부르는 어떠한 것도 되고 동시에 무한하고 무제한적인 보편자로 승화하여 신이 되기도 한다. 인도의 세계관은 극히 일반적인 범신론이고 더욱이 사고에 바탕한 범신론이 아니라 상상력에 바탕한 범신론이다.”[5]

 

3) 신의 죽음

상징주의 예술 형식이 발전하면서 의미와 상징의 우연적이고 외면적인 일치는 점차 본질적이고 내적인 일치로 발전하게 된다. 예술가는 의미와 형상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을 찾으려 한다. 즉 자신이 지시하는 의미와 유사한 어떤 성질을 가진 형상을 상징으로 선택한다. 이렇게 되면서 감각적 형상과 그 의미 사이에는 어떤 친연성[Verwandtschaft]이 출현하게 된다. 이런 친연성의 발견을 통해 상징은 ‘본래적 의미에서 상징’으로 발전하게 된다.

 

수수께끼로서 상징에서 본격적 상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흥미롭게도 헤겔은 신의 죽음이라는 상징을 거론한다. 이집트 신화에서 등장하는 오시리스의 죽음이나, 시리아의 아도니스의 죽음이라는 신화, 프리기아에서 출현해 나중 그리스 및 로마로 건너가는 대지의 여신 키벨레의 죽음과 같은 신화가 여기서 다루어진다.

 

헤겔은 처음 공포의 신이 인간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신의 죽음이라는 신화가 등장했다고 한다. 여기서 죽음은 신이 지닌 자연적 요소의 죽음을 의미하는데 종교적으로는 신의 죽음과 더불어 마침내 수수께끼 같은 의미를 지닌 신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신으로 발전하고, 예술적으로는 수수께끼 같은 상징이 본격적인 상징으로 바뀐다고 한다.  

 

본래적 의미에서 상징은 이집트에서 본격적으로 출현한다. 왜냐하면, 이집트에서는 자연 속에서 정신이 출현하려는 충동이 솟구쳐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충동이 여전한 자연의 힘에 갇혀 있어 이를 뚫고 나오지 못한다.

 

 “우리가 이집트에서 발견하는 것은 자기 안에서 스스로를 객관화하려는 무한한 충동을 갖는 아프리카적인 과단성이다. 그러나 정신 주위에는 철로 된 고리가 휘감겨 있어, 정신은 사상 안에서 자기 본질을 자유로이 자각하지 못하고, 정신의 본질은 단지 과제 또는 수수께끼로 내세워져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6]

 

헤겔은 이집트에서 본래적 상징의 출발점으로서 피라미드를 들고 있다. 피라미드는 곧 사자의 거처인데, 그것은 영혼이 불멸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영혼이 자연과 구별되는 독자적 실재임을 자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지 못하니, 육체는 미이라가 되어 영원히 보존된다.

 

이집트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상징이 인간의 육체와 동물의 얼굴을 한 동물 신인데 헤겔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동물은 생기가 있고 합목적적으로 움직이지만 인간과 달리 자각을 결여한 채 자기 자신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바로 이런 동물을 숭배한다는 것은 곧 이집트의 정신 즉 육체로부터 정신이 솟아나오지만 아직 육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집트에서 대표적 상징 중의 하나인 스핑크스는 동물의 몸을 하지만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어 동물신의 단계보다 발전된 상징을 보여준다. 그만큼 인간의 자기 이해가 발전했으며 이를 통해 자유가 확산되고, 도시국가가 평등이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결론

이집트의 예술 형식을 상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후기 신왕국 시대 예술 작품은 상징적 요소가 거의 사라지고 인체의 리얼한 모습이 출현한다. 물론 양식화되어 있으며, 생동적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이며, 재현적이라기보다는 구성된 것에 머무르지만 이미 그리스 로마의 고전적 예술의 초기 형태와 닮아간다.

그렇다면 이집트 예술을 상징적 예술 형식 내에 가두어 놓는 헤겔의 관점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헤겔의 시대 구분을 엄격하게 볼 필요는 없다. 헤겔은 상징적 예술 형식의 예로서 이집트 초기 예술작품을 들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헤겔은 낭만주의 시대에 해당하는 기독교나 마호메트 교의 작품 가운데서도 상징적 예술을 발견한다. 다만 상징적 예술 형식은 고대 제국 시절 그 정신을 표현하니 그 시대 가장 많이 발견된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만일 이집트 후기에 등장하는 리얼한 작품을 본다면 헤겔 역시 이를 고전주의 초기 정도로 해석했을 것이다. 역사철학강의를 보면 헤겔은 이집트 역사에서 정신의 충동이 솟구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니, 이집트 후기 예술은 이런 정신의 충동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 <역사철학강의>에서 고대 역사는 중국, 인도, 페르시아, 이집트의 순서로 서술된다. 중국의 경우 황제가 출현했음에도 혈연적 가족 제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인도 역사에 대한 파악은 독특하다. 인도의 경우 자연적 부족은 해체되고 시민이 직업과 계급 즉 카스트제도로 재분배되었지만, 이런 카스트 제도가 자연 필연적인 것으로 고정되면서, 인도에서는

추상적인 통일, 정신적 통일이 결여되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다만 분화의 차이가 자연적이어서 유기적인 공동생활에서 하나의 영혼을 움직이거나 자유로이 만들어 내거나 하지 않고 영혼을 돌처럼 굳어지게 하고 그 경직성 덕분에..”(역사철학강의, 권기철 역, 동서문화사, 1978, 146쪽)

페르시아는 최초의 세계 제국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며, 이 점이 조로아스터의 신인 빛이라는 상징으로 출현한다고 한다. 헤겔은 페르시아는 추상적 통일에 머무른다고 규정한다.

이집트는 추상적인 통일(정신)과 구체적 구별(자연)이 모순을 이룬다고 할 정도로 구체적 구별의 발전이 일어났다고 한다. 헤겔이 이집트를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이집트에서 각 개인이 위계적 질서에 복종하면서도 상당한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구체적으로 법적인 권리를 들고 있다. 양자가 직접적인 통일을 이룰 때 고전주의 시대 즉 그리스 로마의 역사가 시작하니, 이집트는 그 직전의 사회이다.

“[스핑크스의 모습은] 정신이 자연 위로 나와, 자연으로부터 떨어져서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고, 그렇다고 해서 자연의 질곡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워진 것은 아님을 나타낸다.”(역사철학강의, 197쪽)

[2] 괴테는 상징이라는 개념을 알레고리와 구분하면서, 알레고리가 이념과 그 기호 즉 감각적 형상 사이에 관습적인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면, 상징은 이념과 기호 사이에 직접적인 일치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상징에 대한 괴테의 용법은 20세기초 상징주의에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상징은 오히려 괴테가 말한 알레고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이념과 기호는 관습적으로 일치하는데, 헤겔이 상징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도 이런 일반적 용법에 가깝다.

[3] 미학강의에서 헤겔은 상징의 발전을 역사철학강의에서 순서와 달리, 페르시아, 인도, 이집트의 순서로 서술한다. 헤겔은 각 제국에서 지배적인 상징의 유형을 구분한다.

[4] 미학강의 1, 456쪽

[5] 역사철학강의, 143쪽

[6] 역사철학강의, 204쪽

 

헤겔미학산책10-예술과 정치[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10-예술과 정치

 

1) 예술 형식

앞에서 이념과 예술적 작품 사이의 표현적 관계에 대해 일반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부분은 헤겔 미학강의 1권의 핵심적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한 것이다. 이제 미학강의 2권의 내용을 살펴볼 차례이다.

 

2권에서 헤겔은 예술의 시대적 발전을 다루고 있다. 헤겔은 이런 발전을 3 단계로 나누는데, 상징주의, 고전주의, 그리고 낭만주의이다. 상징주의는 페르시아, 인도, 이집트 등의 예술을 다루며, 고전주의는 그리스 로마 시대 예술을 다룬다. 낭만주의는 기독교가 출현한 중세 이후 근대까지 예술을 포괄한다.

 

헤겔은 상징주의, 고전주의, 낭만주의를 예술의 일반적 형식이라고 말하는데, 이 형식은 이념을 표현하는 기호의 구체적 방식을 규정한다. 상징주의의 기호는 상징이며, 고전주의의 기호는 현상이고, 낭만주의의 기호는 가상이다.

 

각 기호의 구체적 규정은 앞으로 제시되겠지만, 여기서 간략하게 말하자면, 상징은 기호와 의미 사이에 수수께끼적인 관계가 지배적인 것을 말하며, 현상은 기호와 의미 사이에 유사성이 지배적인 경우를 말한다. 현상은 기호가 의미를 이중화하는 것으로서 표현에 가까운 개념이 된다. 마지막 가상은 자체 내에 자기를 부정하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스스로 자기를 넘어가는 기호이다.

 

2) 정신의 발전

헤겔의 예술론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이 이념을 어떤 형식으로 표현하는가는 작가의 주관적 선택에 달려 있지 않으며 곧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헤겔의 예술론은 아놀드 하우저와 같은 예술사론과 비교될 수 있다.

 

하우저는 예술의 역사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파악한다. 그는 예술을 다각도에서 살펴보는데, 예술은 그 시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심, 특히 예술의 주요 수요층의 관심, 그 시대 예술적 노동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기술적인 발전, 그 시대 출현한 종교 철학 등 이데올로기 등의 영향을 받는다.

 

그에 반해서 헤겔은 특히 예술의 표현 형식에 주목하며, 이런 예술 형식의 발전은 이념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규정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여기서 헤겔은 예술이 표현하려는 이념이 역사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미 앞에서 말했지만 다시 말하자면 이념은 곧 절대정신이다. 각 시대 사회에는 그 시대의 사회적 상호 관계를 규정하는 정의가 있다. 헤겔은 이를 ‘실체’라고 말한다. 이런 실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의지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 공동체적 의지가 곧 국가이다. 이 국가가 곧 헤겔에서 ‘정신’이다.

 

각 시대 정신은 최종적으로는 절대 정신으로 발전한다. 최종적 절대정신은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인 삼위 일체의 체계이다. 이것은 헤겔이 법철학에서 묘사한 이상 국가이다. 정신은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세 단계를 거쳐간다.

 

첫 번째 단계가 전체가 추상적으로 통일을 이룬 국가이니, 페르시아, 인도, 이집트에서 출현한 전제 국가가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 단계가 그리스, 로마에서 출현한 국가이다. 이 국가는 인륜성과 시민이 균형을 이룬 민족국가이다. 세 번째 단계는 로마 황제 시대에서부터 시작되어 근대에 이르러 완성된 국가 즉 시장에서 보듯이 인격의 자유로운 상호 관계 위에서 출현한 소외된 국가이다.

 

3) 국가의 원리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국가의 단계적 발전을 매개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헤겔에서 그 원리는 관념론적으로 규정되는데, 곧 의지의 자유가 발전하는 단계이다. 자유의지의 자각이란 곧 개인이 자연적 의지 즉 욕망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적 정의를 자신의 의지의 목표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실천적 의지의 내적 자각에 해당한다.

 

이런 자유의지가 사회적으로 펼쳐지면 국가의 원리가 된다. 즉 욕망 상태에서 사회는 거꾸로 억압적인 질서가 출현하며,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회는 그만큼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이런 자유의지의 자각은 세 단계에 걸쳐 일어난다.

 

아직 개인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대한 자각이 출현하지 않던 시대, 국가는 전제적으로 지배되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 개인은 출현하지만 관습적으로 국가에 복종한다. 이런 습속에 기초한 국가가 고대 그리스 로마의 도시국가 또는 민족국가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 즉 개인의 자유의지가 출현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지배되고 있을 때, 이 보이지 않는 손이 곧 소외된 국가이다. 

 

위의 설명에서 보듯이 개인의 자유의지가 발전하는 단계가 곧 각 시대 정신을 규정하는 것이니, 각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는 예술의 형식 역시 이런 자유의지의 발전 단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겠다.[1] 이상의 이야기를 알기 싶게 다음과 같이 표로 만들어 보았다.

 

예술형식 기호 정신 국가의 원리
상징주의 상징 전제국가 강제적 지배-개인의 자각 결여
고전주의 현상 민족국가 개인의 출현, 그러나 관습적 복종
낭만주의 가상 소외국가 자유의지, 인격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의 지배

 

4) 자유의지와 표현 기호

그런데 헤겔이 그 시대 국가의 원리 즉 자유의지의 자각 정도가 예술의 표현 형식인 기호의 방식을 결정한다고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얼핏 생각하면 자유의지의 자각은 예술의 표현적 기호와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양자 사이에 연관이 가능할까?

 

그런 연관은 실제 예술사에서 나오는 구체적 예를 가지고 설명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에 앞서서 헤겔에게서 양자의 연관성을 개념적인 차원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유의지에 대한 내적 자각이란 곧 실천적 의지에서 개인과 전체(사회적 정의)의 관계이다. 예술적 기호 즉 작품과 이념 즉 국가 사이의 관계는 실천적 의지에서 개인과 전체 사이의 관계가 상동적이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실천적 의지의 양상은 표현 즉 타인에게 전달하는 양상과 상동적이다. 실천적 의지의 차원과 표현적 전달의 차원은 서로 다른 차원이지만 마치 자극과 전기 사이의 동조관계와 같이 서로 동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각 상태는 수수께끼적인 상징의 관계와, 개인의 관습적 복종은 곧 유사성에 의한 현상적 관계와 마지막으로 자유로운 개인의 상호 관계 뒤에 보이지 않는 지배는 곧 가상의 관계와 상동적이다.

 

국가의 원리와 예술의 원리 사이의 상동성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예술은 그 시대 일반화되어 있는 자유의지의 내적 자각 상태에 의존한다. 예술가와 대중은 이런 일반적인 자유의지의 자각 상태를 통해 서로 관계한다. 동일한 자유의지의 상태가 예술가와 대중의 내면 속에 잠재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예술가의 표현은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예술가가 시대에 뒤지거나 시대를 뒤지거나 또는 초월한 표현방식을 선택할 경우, 대중은 자신의 시대 표현방식에 따라 해석할 뿐이니,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다. 예를 들어 우리 시대 어떤 예술가가 종교화를 그렸을 때, 누구도 감동받지 못할 것이다. 또 그리스 시대 대중에게 14세기 고딕 시대 성화를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어떤 끔찍함을 느낄 뿐이다.

 

5)

이 점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술과 정치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의지의 자각 정도가 한편으로 국가의 원리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 예술의 형식과 상동적이니, 예술은 직접 간접적으로 국가의 원리 즉 정치적 관계와 연관된다.

 

그 관계는 일단 간접적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원리와 예술의 형식은 자유의지의 자각 정도를 매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지어 표면적으로는 정치와 전혀 무관한 예술조차도 내면적으로는 국가의 원리와 동일한 원리를 표현한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비록 정치적 관계로부터 무관하지만, 그러나 이 시대 예술 역시 자본주의적 정치적 관계를 예술을 통해 웅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관계는 더 직접적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시대 이전의 사회에서 예술은 곧 국가적 원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상징주의 예술이나 고대 그리스 고전적 예술이 아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예술은 국가와 동일한 원리에서 있으니, 정치와 얽혀 있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양자가 서로 다른 독립적 차원이지만, 그럼에도 서로 동조한다는 것은 부정할 길이 없다. 예술은 구시대 국가에 얽혀 있기 때문에 욕을 먹지만 또는 발전된 자유의지를 전파함으로써 새로운 국가를 배태시기기도 한다.

[1] 물론 예술형식은 국가의 역사적 발전과 단순하게 대응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술의 특정한 형식은 특정한 이념이 지배하는 시대에 가장 번성하며 전형적으로 출현한다. 그렇다고 그 이전 시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이전 시대에는 다만 미숙한 형식으로 출현했을 뿐이다. 또한 다른 시대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다만 그때는 새로운 시대를 지배하는 일반 원리에 의해 지배당하면서 종속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상징주의 시대에서 이미 고전적 형식과 낭만적 형식이 주변에 출현하여 장차 핵심으로 부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상징주의는 이집트 인도에서 가장 번성했지만, 고전주의 시대나 낭만주의 시대에서도 출현했다. 고전주의 시대에서는 의식적 상징 표현으로, 낭만주의 시대에는 문학적 비유로서 등장했다.

호퍼와 정신분석 11-원초적 장면[흐림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호퍼와 정신분석 11-원초적 장면

 

1)

앞에서도 말했듯이 호퍼는 1930년대 이르러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 시기가 결혼 전반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특이하다 할 수 있는데, 여러 해석자는 그의 정신적 고통을 그 시대 상황과 관련한다. 그 시대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일대 혼란에 빠진 세계경제공황의 시기였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시기, 호퍼의 정신적 고통은 그런 시대적 상황보다는 오히려 호퍼의 심적 욕망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이상하게도 1940년대로 들어가면서 호퍼의 정신적 고통은 치유되고 회복되기 시작한다. 그 시기 미국에서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으로 경제적 상황이 상당히 나아진 것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호퍼의 예술적 소재가 사회적 상황과는 별 관련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게 해석하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호퍼의 정신적 고통과 마찬가지로 그의 치유와 회복 역시 그의 심적 욕망 구조에서 원인을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시기 호퍼가 그린 그림들을 살펴보자. 가장 눈에 뜨이는 그림은 원초적 상황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대표적으로는 1939년 그려진 뉴욕 극장과 1942년 그려진 밤을 지새우는 사람[Nighthawks] 1943년 그려진 호텔 로비라는 그림이다.

 

필자가 이 세 가지 그림을 주목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세 인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두 인물은 남녀인데, 젊기도 하고 늙기도 하다. 그들은 서로 무심관심하게 보이지만 서로 가까이 있어 심지어 약간의 신체적 접촉조차 존재한다. 특징적인 것은 또 하나의 인물이다. 이 인물은 여성이기도 하며 남성이기도 한데, 그는 자기 속에 몰두하고 있어서 자기 앞에 보이는 두 사람에 대해 애써 무관심하게 보이지만, 어쩌면 마치 곁 눈짓으로 감시하는 듯하다.

 

2)

우선 1939년 그려진 뉴욕 극장이라는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왼편은 관객석이고, 화면의 절반이 함께 보인다. 관객석에서 나이든 남녀의 뒷 모습이 보인다. 남자는 머리가 희끗하며 여자는 모자와 외투를 보아서 젊은 여성은 아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열에 앉아 남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객석에 다른 사람은 없으니 왠지 두 사람이 가까운, 심지어 부부인 것처럼 보인다.(호퍼가 그린 스케치에서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으니 부부라 하기에 무리가 없다.) 두 사람은 서로 떨어진 채로 산과 하늘이 보이는 영화 화면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어두우며, 화면에서 나오는 빛이 명멸하고 있을 뿐이다. 왼쪽 화면의 지배적 색조는 녹색이다.

 

반면 오른쪽에는 금발의 젊은 여자가 있다. 아마도 객석 안내원으로 보인다. 입고 있는 푸른 제복이 이를 암시하다. 그녀는 턱을 팔에 괸 채로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벽에 기댄 그녀를 향해 머리 위에서 밝은 조명이 비치고 있다. 복도에서 금발의 여자 이상으로 시선을 끄는 것은 계단을 가리는 붉은 휘장이다. 

 

이 장면은 객석의 장면과 대조적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영화관에서 관객석과 안내원이 있는 복도는 같이 붙어 있는 장면은 시각적으로 왜곡되어 있어 두 장면이 서로 통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보면 자기 속에 침잠해 있는 안내원은 어쩌면 관객석의 나이든 두 남녀를 보고 있는 듯하다. 객석은 화면에서 나오는 빛이 명멸하고, 복도는 실내등으로 환하다. 후자가 현실과 의식 속의 장면이라면 전자는 기억 속의 무의식의 장면으로 보인다.  

 

이렇게 이 그림을 기억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을 함께 그려낸 장면이라 본다면, 이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흔히 정신분석학에서 원초적 장면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원초적 장면은 아이가 목격한 또는 목격했다고 믿는 부모의 성관계 장면이다.

 

3)

이번에는 1942년 그려진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라는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은 호퍼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 길 모퉁이 주변의 어둠에 대조되어 더욱 환하게 빛나는 카페에 네 사람이 있다. 정면에 검은 양복의 입고 모자를 쓴 남자와 붉은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여인은 입은 옷 매무새로 보아 호퍼가 자주 그린 도시 오피스 사무원으로 보인다. 그들은 서로 나란히 앉아 있고 심지어 남자의 왼쪽 손과 여자의 오른쪽 팔꿈치가 서로 부딪힐 정도로 가깝지만 서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남자는 무슨 상념에 빠져 있고 여자는 무료한 여성이 자주 그렇듯이 자신의 손톱을 바라보고 있다.

 

흰 옷을 입고 수병 모자를 쓴 남자는 그들을 쳐다보는데, 무슨 말인가를 하는 듯하지만, 두 남녀는 그 말에 전혀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 반면 카페의 왼쪽에 그려진, 오피스 사무원의 복장인 검은 양복과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는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있어 우리로서는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또는 생각하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의 자세는 한편으로는 자기 앞의 두 남녀를 바라보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스스로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

 

 

주변의 어둠과 녹색의 색조 속에서 네 명의 인물은 모두 고립되어 있는 듯하지만 또한 조명 등의 빛을 받아 붉은 색으로 빛나는 카페의 탁자는 이들을 서로 연결해 주고 있는 듯하다.

 

네 명의 인물이 모두 비슷한 나이의 장년이어서 이 그림을 원초적 장면에 등장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비추어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관계 자체는 서로 가깝지만 서로 떨어져 있는 두 남녀와 이를 흠모하듯 또는 질시하듯 훔쳐보는 사람이라는 관계의 성격은 원초적 장면과 동일하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 역시 원초적 장면의 변형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4)

원초적 장면에 대한 유사한 변형은 1943년 그려진 호텔 로비라는 그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는 두 남녀가 나이든 부부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그림에서 붉은 옷을 입은 여자는(위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여자는 붉은 옷을 입고 있다) 늙은 자신의 남편을 쳐다보고 있다. 반면 단정한 차림으로 코트를 손에 걸친 나이든 남자는 상의 주머니에 왼손을 넣은 채 무언가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듯하다. 가방이 없는 것을 보아 그들은 이미 호텔에 투숙한 것 같다. 아마도 밖으로 나가기 위해 부른 택시를 기다리는 듯한 자세이다.

 

오른 편에는 금발의 젊은 여성이 다리를 꼬아 쇼파에 앉은 채 책을 읽고 있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 햇빛이 비추어지고 있으며 햇빛은 펼쳐진 책 위에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반면 그녀의 얼굴은 그늘에 가려 우울해 보인다. 그녀는 책에 몰두해 있지만 뉴욕 극장의 안내원에 마찬가지로 자기 앞에 있는 노 부부에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이 일어나는 이유는 호퍼가 이 그림에서 두 장면을 몽타주 했기 때문이다. 그림의 왼 편과 오른 편은 시각적으로 상이하다. 왼 편의 경우의 시각은 정면에 가깝다면 오른 편 시각은 상당히 위쪽에 있다. 사실은 서로 부딪힐 일이 없는 두 장면이 몽타주 됨으로써 서로 부딪히게 되고 그 결과 마치 두 장면의 인물들이 서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그림 역시 앞의 두 그림과 마찬가지로 원초적 장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5)

프로이트에 따르면 원초적 장면은 아이에게 깊은 정신적 외상을 주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거세라고 했다. 이를 통해 아이는 남근기에서 성기기로 결정적으로 이행하게 된다. 라캉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신을 대타자의 욕망 대상이라고 보는 실재계로부터 벗어나 대타자가 욕망하는 대상을 자신도 욕망하는 상징계로 들어가게 된다.  

 

호퍼의 경우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상상적 동일화를 거쳐 실재계로 발전했다. 그 밑바닥에는 실재 즉 어머니와의 단절을 두려워하는 거세 공포가 있었다. 이제 뒤늦게 이르러 마침내 호퍼에게서 거세 즉 단절이 일어나게 된다. 호퍼는 원초적 장면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진실을 깨달은 것이다. 호퍼는 이제 독립된 자아로서 이 험난한 세상에 던져져서 스스로의 힘으로 견뎌나갈 수밖에 없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57)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57)

 

  1. 전쟁에 관한 일(466e-471c) 그리고 세 번째 파도 : 철학자와 권력 – 이상적 정치체제의 가능성(471c-474c)

 

제5권 [466e – 471c]

* 소크라테스는 세 번째 파도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기를 주저하며 뜬금없이 아래와 같이 전쟁에 관한 일들을 길게 늘어놓는다.

1) 아이들과 동반 출정의 이유와 안전을 위한 방책

* 전쟁πόλεμος과 관련한 경험ἐμπειρίᾳ과 구경θέα을 통해 장차 아이들이 훌륭한 수호자가 될 수 있도록 전쟁에 함께 출정해야 한다. (466e)

* 이때 이들의 안전ἀσφάλεια을 도모하기 위해서 경험과 연배에서 지도자ἡγεμονεύς이자 아이들의 인솔자παιδαγωγός이기에 충분한 사람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말 타는 법ἱππεύειν을 가르쳐 필요할 경우 가장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게 하는 방도도 강구해야 한다.(467d)

2) 전사들 자신이 가져야 할 태도와 전사자에 대한 대우

* 전사στρατιώτης들 가운데 비겁κάκη하게 대오τάξις를 이탈하거나 무기ὅπλον를 버린다거나 혹은 그런 비슷한 일을 하는 자는 장인이나 농부로 보내야 한다.(468a) 산 채로 적들에게 잡힌 자는 적들οἱ πολεμία이 마음대로 하도록 선물로 줘 버려야 한다.(468b-c)

* 반대로 무훈을 세우고ἀριστεύσαντά 명성을 떨친εὐδοκιμήσαντα 자는 화관στέφανος을 수여하고 환영해야 하고 짝짓기 기회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무훈을 세우는 데 더 열심을 낼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서 우수한 자식들도 태어난다.(468c)

* 호메로스를 따라 젊은이 중에서 뛰어난 이들에게 명예τιμή를 높여주는 것이 정당하다. 제사나 모든 행사에서 찬가ὕμνος와 함께 명예로운 자리와 고기, 그리고 가득 찬 술잔으로 명예를 높인다. 그것은 한창때 용감한 자들의 명예를 드높임과 동시에 체력을 증진시킨다.(468d-e)

* 출정 중 전사한 이들 가운데서 명성을 떨친 이들은 황금족γένος τοῦ χρυσοῦ으로 이야기하고 잘 장사 지낸 후 무덤을 돌보고 엎드려 절해야 한다. 또한, 특별히 훌륭하게 살다 죽었을 경우 똑같이 그렇게 하는 것을 관례νόμος로 삼아야 한다.(468e-469b)

3) 적들에 대한 태도

* 가능한 한 그리스인들이 이민족βάρβαρος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고 그들이 적일 경우에도 그들을 관대하게 대하고 그들을 노예로 삼지 말아야 한다.(469b-c)

* 승리를 거두고서 죽은 자에게서 무기 외에 약탈해서는 안 된다. 시체를 약탈하거나 시신 수습을 방해하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 땅을 유린하고 집을 불사르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그 해의 농작물καρπός만을 취한다.(469c-470b)

* 친족에 대한 적대행위는 ‘내분’στάσις이고 남에 대한 적대행위는 ‘전쟁’πόλεμός이다. 그리스가 병이 들어 내분을 벌이더라도 상대편의 농토를 유린하고 집을 불사르지 말아야 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한, 보모τροφό이자 어머니인 나라를 유린해서는 안 된다.(470b-d)

* 패배한 친족들은 싸울 상대가 아니라 화해διαλλάσσειν하게 될 상대라고 생각하고 그들로부터 농작물 정도나 취하는 게 적정하다. 그리스인들은 훌륭하고 양식 있는ἀγαθοί τε καὶ ἥμεροι 사람들로서 그리스를 자신들의 조국으로 간주하고 사랑하며 공통의 종교의례를 갖는다.(470d-e)

* 친족과 내분이 있을 때도 그리스인들은 상대방을 노예로 삼거나 파멸시키는 식으로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서로 좋은 뜻에서 상대방의 분별을 일깨워 주는 사람들σωφρονισταί이지 적이 아니다.(471a)

*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 가릴 것 없이 해당 나라의 모든 이가 그들에게 적대자인 것이 아니라 매번 갈등의 원인이 되는 소수만이 적대자이다. 따라서 대다수가 친구인 상대방의 땅을 황무지로 만들거나 집을 무너뜨리지 말아야 한다.(471b)

* ‘아무 잘못 없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의해’ὑπὸ τῶν ἀναιτίων ἀλγούντων 책임자들οἱ αἴτιοι이 대가를 치르도록 강제되는 상황에 도달할 때까지만 갈등을 지속해야 한다.(471b)

* 땅을 유린하거나 집을 불사르지 말라는 것도 수호자들에게 법으로 제정해줘야 한다.(47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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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7d 아이들의 인솔자 : 아테네에서 이 역할은 노예가 맡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경험과 연배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춘 우수한 시민에게 그 역할이 맡겨져 있다. 플라톤은 아이들의 교육 과정에서부터 이미 혁신을 기하고 있다.

* 467d 말 타는 법 : 아테네 전투편제에서 기마병은 자신이 소유한 말을 타고 전투에 참여할 능력을 갖춘 소위 귀족 내지 지휘자급의 병과였다. 그에 따라 귀족들의 경우 승마교육이 중시되었다. 이곳에서도 수호자 계층에게 승마교육이 요구되고 있다.

* 468c 이 문맥에서 글라우콘은 무공을 세웠을 경우 ‘출정 중 입맞춤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면 누구도 거절할 수 없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까지 한다. : 이것은 무공을 세운 자들에게 소년애를 마음껏 누리게 해야 한다는 글라우콘의 바람을 드러낸 말이지만 소크라테스는 기본적으로 남녀 간 짝짓기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 이상을 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설사 동성 간 입맞춤이 허용되더라도 그것은 자식을 대하듯이 선의의 입맞춤이어야 함을 이미 강조한 바 있다.(403b) 플라톤은 남성과 남성 또는 여성과 여성의 결합은 자연에 어긋난 것으로 뻔뻔함(tolmēma)과 무절제(akrateia)의 소산으로 여긴다.(<법률> 63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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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부분은 처자 공유의 가능성과 관련한 답변을 최대한 늦춰 보려는 의도에서 제시된 일종의 여담에 가까운 내용이지만 내용상 전쟁 관련해서 이상국가가 택하고 있는 바람직한 정책들을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정 부분 주제와 연관되면서 동시에 부분적으로나마 플라톤의 전쟁관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플라톤은 적대행위를 크게 동족끼리 싸우는 내분과 이민족과 싸우는 전쟁으로 나눈다. 그런데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플라톤에게서 전쟁은 오직 침입에 맞서는 방어 전쟁뿐이라는 사실이다. 플라톤은 당대 아테네인 모두가 칭송하고 옹호하던 아테네의 패권적 침략 전쟁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메넥세노스> 해설 참고) 실제로 동족이건 이민족에 대해서건 침략 전쟁을 옹호하고 있는 부분은 대화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내분과 전쟁 모두 나라의 존망을 위협하는 가장 나쁜 것이지만 플라톤은 앞서도 살폈듯이 내분을 특히 더 나쁜 것으로 간주한다. 이민족과의 전쟁도 나라의 내분이 없는 한 두려워할 게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리스인들은 단합하여 이민족인 페르시아 대군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은 장기간에 걸친 내분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내분을 대처하는 방안이다. 우선 내분은 친족과 싸우는 것이므로 언젠가 화해할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삶의 터전인 농토나 가옥을 파괴하거나 재물을 약탈하거나 시신을 훼손하는 행위는 금지되어야 하고 그들을 노예로 삼아서도 안 된다. 그리고 내분은 질병 상태인 만큼 질병의 원인이 되는 소수만이 적일 뿐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 해당 나라의 모든 이가 적대자는 아니다. 친족들은 서로 좋은 뜻에서 상대방의 분별을 일깨워 주는 사람들이지 예속이나 파멸을 의도하여 서로에게 벌을 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갈등 내지 적대행위 또한 다만 그 불화의 장본인들이 벌을 받는 시점까지여야만 한다.

*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언급하고 있는 전쟁에서 동족을 적으로 대할 때 태도는 두말할 나위 없이 플라톤 자신이 펠로폰네소스 전쟁 과정에서 뼈저리게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제국주의 아테네가 기원전 416년 동족 멜로스인들에 대해 저지른 참혹한 학살 사건은 플라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멜로스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참가하지는 않았으나 주민들이 대부분 도리스인이어서 종종 스파르타 함대의 출입을 허용하였다. 이에 아테네는 이전 공격의 실패를 교훈 삼아 재차 멜로스를 공격하여 점령한 후 시민들 대부분을 무차별 학살하고 여성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아버렸다. 알키비아데스는 이때 멜로스 여성을 자신의 정부로 삼기도 했다. 점령 과정에서 멜로스인들과 아테네인들과의 대화는 정의와 힘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유명하다. 멜로스인들은 정의에 의거 항복할 수 없고 시민들에 대한 처리 또한 정의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아테네인들은 ‘정의는 힘 있는 자가 정하는 것’이며, ‘약자는 힘 있는 자가 만든 정의에 순응할 때 행복과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또한 제1권의 내용을 구상하는데 기본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5권 84-116 참고)

* 그리스 시대 동족끼리 그래왔듯이 오늘날 모든 나라는 민족과 종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인류애를 바탕으로 동등한 세계시민으로서 상호 존중 하에 국제간 평화를 도모하면서 올림픽과 국제적인 예술제 등 문화적 인적 교류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그리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나라 간 민족 간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그에 따라 오늘날에도 대규모 살상 무기의 제한 및 전쟁 포로의 인권적 처우 등 전쟁 관련 기본 규범 등 국가 간 전쟁 또는 분쟁 시 서로가 준수하고 노력해야 할 최소한의 규범과 그 해결책이 다각적으로 강구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규범들은 물론 여성과 아이들을 비롯한 민간인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방침들을 들여다보면 이미 2500년 전 플라톤이 내놓은 위와 같은 제안들이 근본 원칙으로 관철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플라톤 자신 평생 전란의 시기를 살아가면서 국가 근간을 마치 전시 체제 정부인 양 그리고 있지만, 그가 말하는 통치의 이념을 들여다보면 그 자신 나라 간 사람들 간 평화와 안전 그리고 화해와 공존에 얼마나 목을 매고 있었는지를 절절하게 보여준다.

 

* 세 번째 파도 : 철학자와 권력 : 이상 국가의 가능성(471c-474c)

 

[471c-474c]

* 소크라테스가 기대와 다르게 전쟁 관련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자 글라우콘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이러다간 미뤄두었던 문제를 아예 잊어버리실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한 후 그런 정치체제πολιτεία가 생겨난다면 당연히 그런 온갖 좋은 것들이 있을 거라는 것은 충분히 알겠으니 이제 다른 것들은 제쳐두고, 그러한 정치체제가 어떻게 가능한지 설득해 주기를 요구한다.(471c-e)

* 이에 소크라테스는 가까스로 두 개의 파도를 피했는데 삼중 파도 중 가장 크고 거친 파도로 내몰고 있다고 말한 후 그 주제가 통념에도 어긋나고 말을 꺼내기도 힘든 것임을 재차 강조한다. 그러나 재촉이 거듭되자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부정의가 어떠한 것인지를 탐구하다가 논의가 지금에 이르렀음을 환기케 한 후 정의 자체αὐτόε δικαιοσύνη와 완전하게 τελέως 정의로운 사람, 부정의와 가장 부정의한 사람에 대해 우리가 탐구해온ἐζητοῦμεν 것은 그것들을 본παράδειγμα으로 삼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즉 “그것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행복εὐδαιμονία과 그 반대와 관련해 우리에게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며 우리들 자신과 관련해서도 가능한 한 그것들과 가장 닮은 사람이 그러한 운명과 가장 닮은 운명을 갖게 될 것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밖에 없도록 하려는 것이었지, 그것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ἀποδείκνυμι 위해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472a-d)

* 이를테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본을 그림에다 충분히 표현한 화가가 그런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것까지 보여줄 수 없다 해서 그 화가를 폄하할 수 없듯이 설사 우리가 말로 만들어 온 훌륭한 나라의 본 그대로 나라를 수립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의 논의가 목적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472d-e)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행위πρᾶξις가 본래 말한 것λέξις 그대로 진리ἀληθεία에 다다를 수는ἐφάπτεσθαι 없는 만큼, 우리가 말로 설명한 나라가 실제로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주기를 강요하기보다는 그 나라와 가장 비슷하게 경영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정도의 성과로 만족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오늘날의 나라들에서 잘못 행해지고 있다면 ‘수와 규모에 있어 가능한 한 제일 작게 해서’ὅτι ὀλιγίστων τὸν ἀριθμὸν καὶ σμικροτάτων τὴν δύναμιν 어떤 것을 바꾸어야 이런 방식의 정치체제를 만들 수 있는 것인지를 찾아서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473a-b)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이제 뭔가 준비가 다 되었다는 듯이 그 변화의 방법과 관련하여 “내가 보기에는 하나εἷς가 바뀌면 – 비록 그 하나가 작은 것은 아니고 쉬운 것도 아니지만 – 나라가 변화될 수 있다.”고 운을 뗀 후, 당대 아테네인들의 비웃음과 경멸에 휩쓸릴 정도로 가장 큰 파도에 비유했던 지금의 주제 즉 이상적인 정치체제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자신이 그동안 말하고 싶었지만, 가슴 속에 품고 눌러만 두었던 속내를 마침내 선언하듯 아래와 같이 털어놓는다. “철학자들이 나라의 왕이 되거나 오늘날 왕이라고 불리는 자들과 권력자들이 진정으로 그리고 충분하게 철학을 하게 되지 않는 한, 그래서 정치 권력과 철학이 하나로 합쳐지고, 오늘날 둘 중 어느 한쪽으로만 향하고 있는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강제되지 않는 한, 나라에 나쁜 일들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으로는 인류 전체에도 나쁜 일들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말로 설명해온 바로 그 정치체제가 가능한 한도까지 자라나서 햇빛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ἐὰν μή, ἦν δ᾽ ἐγώ, ἢ οἱ φιλόσοφοι βασιλεύσωσιν ἐν ταῖς πόλεσιν ἢ οἱ βασιλῆς τε νῦν λεγόμενοι καὶ δυνάσται φιλοσοφήσωσι γνησίως τε καὶ ἱκανῶς, καὶ τοῦτο εἰς ταὐτὸν συμπέσῃ, δύναμίς τε πολιτικὴ καὶ φιλοσοφία, τῶν δὲ νῦν πορευομένων χωρὶς ἐφ᾽ ἑκάτερον αἱ πολλαὶ φύσεις ἐξ ἀνάγκης ἀποκλεισθῶσιν, οὐκ ἔστι κακῶν παῦλα, ταῖς πόλεσι, δοκῶ δ᾽ οὐδὲ τῷ ἀνθρωπίνῳ γένει, οὐδὲ αὕτη ἡ πολιτεία μή ποτε πρότερον φυῇ τε εἰς τὸ δυνατὸν καὶ φῶς ἡλίου ἴδῃ, ἣν νῦν λόγῳ διεληλύθαμεν. 요컨대 이것 이외에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행복해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οὐκ ἂν ἄλλη τις εὐδαιμονήσειεν οὔτε ἰδίᾳ οὔτε δημοσίᾳ.(473c-d)

* 소크라테스가 이처럼 비장하게 속내를 털어놓자 글라우콘은 크게 놀라워하며 그 소리가 불어올 충격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그 소리를 듣고 아주 많은πολύς 사람들이, 그것도 만만치φαῦλος않은 많은 사람들이 지금 당장, 이를테면, 겉옷을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각자 손에 잡히는 대로 무기ὅπλον를 집어 들고서는, 끔찍한 일이라도 벌일 것처럼 선생님께 있는 힘껏 달려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동시에 글라우콘은 만약 소크라테스가 이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피해내지 못할 경우 그야말로 조롱거리가 될 수τωθαζόμενος 있음을 함께 우려하면서 소크라테스가 그러한 주장을 온전히 다 펼쳐내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도록 그 자신 호의εὔνοια와 격려παρακελεύεσθαι로써 할 수 있는 수단을 다해 논의에 잘 부응하겠다고ἐμμελέστερον 다짐한다.(473e-474a)

*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토록 큰 동맹군을 제공해준다고 하니 그렇게 해보겠다고 언급한 후 철학자들이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할 경우 무엇보다도 먼저 그 철학자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를 규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게 분명해지면 왜 철학자들이 나라를 인도하는 것이 자연적 성향에 적합한 일인지가 드러나 그 사람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474b-c)

* 이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이상적인 정치체제의 가능성을 최대한 담보해낼 수 있는 관건으로 이른바 철학자 통치론을 내세운 후 본격적으로 철학자가 통치자로서 왜 자연적 적합성을 갖는지를 논의하기 시작한다.(47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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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살폈듯이 글라우콘 등 대화 참여자들이 재촉해왔던 주제는 처자 공유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였다. 그런데 글라우콘은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말한 여러 가지 처자 공유의 이로움을 공동체적 처자공유 일반이 가져온 이로움으로 일반화한 뒤 처자 공유의 가능성의 문제를 그러한 공동체적 공유 일반을 구현하고 있는 이상적 정치체제의 가능성의 문제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다. 내용상 처자 공유의 가능성이 공동체적 공유 일반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글라우콘의 이러한 태도 전환이 크게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닐지라도 세 번째 파도를 헤쳐 가는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처자 공유라는 말조차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명 주제가 처음과 다르게 보다 일반화된 주제로 슬그머니 전환 내지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이에 따라 세 번째 파도의 주제는 이상적 정치체제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 즉 플라톤이 지금까지 말로 수립한 이상 국가가 과연 현실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로 재정립된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에 대한 답을 내놓기 전에 그 가능성과 관련한 논의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기본 전제들을 먼저 언급한다. 즉 1) 말로 세운 이상 국가는 하나의 본(paradeigma)이다. 2) 행위는 말한 것 그대로 진리에 다다를 수 없다. 3) 그러므로 이상 국가가 행위를 통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증명할 수 없다. 요컨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러한 기본 전제를 언급한 후에 그것을 토대로 가능성과 관련한 논의의 성격 전환을 시도한다. 본 그대로 현실화는 불가능하지만, 본에 최대한 다가갈 수는 있다. 즉 본을 최대한 닮은 것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다. 이로써 이상국가의 가능성 문제는 마지막 단계에서 이상 국가와 최대한 닮은 나라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뀐다. 그리고 그것의 구현은 이상국가의 가능성과 관련한 논의에서 우리가 만족하기에 충분한 성과이자 실제 목적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그 목적을 현실에서 달성하는 방법의 최선으로 철학 통치론 내지 철학자 왕이 제시된다. 정치 권력과 철학이 하나로 합쳐지기 전에는 지금까지 말로 세운 그 정치체제가 ‘가능한 한도까지’εἰς τὸ δυνατὸν 자라나 햇빛을 보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최대한 미룰 대로 미루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상 국가의 가능성과 관련한 논의는 이렇게 논의의 최종 단계에서 최대한 닮은 나라의 구현 가능성으로 규정되고 그 가능성을 담보하는 조건으로서 철학자 왕의 극적인 등장으로 마무리된다. 이로써 제5권을 통해 철학과 철학자의 문제를 다루려는 플라톤의 기본 의도가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 그러나 이상 국가의 가능성과 관련한 내용으로서 이곳과 다소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여러 곳 발견된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상 국가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본 것이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그와 관련하여 <국가> 다른 부분에서 나타나는 내용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오늘날 권좌에 앉아 있거나 왕좌에 앉아 있는 자들 또는 그 자식들이 어떤 신적인 영감에 의해서 진정한 철학에 대한 진정한 애욕(eros)에 사로잡히는 것 그 두 가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가 일어날 경우, 우리가 이야기해온 나라가 가능하다.(제6권 499c-e)

– 누군가가 왕들과 권력을 잡은 자들의 자손들이 자연적 성향상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든 시대를 통틀어 단 한 사람만 생겨나고 나라가 그에게 복종한다면, 그것으로 오늘날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들을 완전히 실행하기에 충분하다.(제7권 520e-521a)

– 진정한 철학자들이 여럿이든 한 명이든 나라의 권력자가 되어 … 자신들의 나라를 바로잡을 경우, 나라와 정치체제와 관련한 우리의 기원이 전적으로 기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렵긴 하지만 가능하다.(제7권 540d)

* 위에서 인용한 경우들은 언뜻 보기에 하나같이 철학자 왕이 나타날 경우, 우리가 이야기해온 나라와 정치체제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이곳에 인용된 경우들은 지금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한 내용 즉 본 그대로는 불가능하고 다만 최대한 그것과 닮은 나라만 가능하다는 언급과 일치하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 위에서 새로 인용한 경우들을 자세히 잘 들여다보면 그 답이 나온다. 우선 그 경우들은 누가 보아도 말의 내용과 정황에 있어 지금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한 것과 다르지 않다. 모두가 하나같이 권력과 철학의 결합을 가능성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논의 내용과 정황이 다르다면 몰라도 모두 같다면 인용된 경우들에서 언급되고 있는 ‘권력과 철학이 결합할 때 가능한 나라와 정치체제’의 의미 또한 다르게 볼 이유가 없다. 그런데 여기 제5권에서 언급되고 있는 ‘철학과 권력이 결합할 때 가능한 나라와 정치체제’는 본(本)으로서 정치체제가 아니라 분명코 ‘가능한 한도까지eis ton dynaton’ 본에 다가가 최대한 그 본과 닮은 나라와 정치체제이다. 요컨대 인용된 위의 경우에서 언급되고 있는 나라와 정치체제도 내용상 그와 다를 게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상 국가의 가능성과 관련한 소크라테스의 언급은 <국가> 전체에서 상호 모순 없이 하나로 일관되어 있다.

* 이상의 논의를 기초로 이상 국가의 가능성과 관련한 플라톤의 답변을 요약하면 1) 이상 국가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2) 그러나 말로 세운 이상 국가의 의미가 결코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3) 그것을 본으로 삼아 그것과 최대한 닮은 나라를 행위를 통해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그러므로 최대한 본에 가깝게 나라와 정치체제를 구현할 수 있는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만족해야 한다. 5) 따라서 중요한 것은 최대한 본에 가까운 나라와 정치체제를 구현할 수 있는 방도를 찾는 일이다. 6) 그런데 그 방법을 찾는 최선의 길은 가능만 하다면 ‘수와 규모에 있어 가능한 한 제일 작은 것’ 즉 가장 단순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가장 완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찾는 일이다. 7) 철학자가 왕이 되면 그러한 능력을 지니게 된다. 결국, 이상 국가의 가능성과 관련한 문제는 위와 같은 논의 과정을 거쳐 철학과 권력의 결합을 확보하는 문제로 전환되고 마침내 철학자 왕이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 이상적 정치체제의 가능성과 관련한 이상의 논의들을 플라톤의 우주론적 틀을 빌려와 분석하면 논의 구도가 좀 더 명확하게 해명된다. 무엇보다 먼저 여기에서 플라톤 우주론과 연관된 몇 가지 개념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플라톤은 말로 세운 이상 국가를 본(paradeigma)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본(本)을 바라보고 현실로 구현해내려는 제작자 내지 실행자가 나온다. 그리고 그 제작자 내지 실행자에 의해 최대한 본에 가깝게 만들어진 실물 내지 모상이 나온다. 그런데 본과 제작자와 모상 등 3가지는 플라톤 우주론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이다. 앞서 소크라테스가 예를 든 것들에 적용해보면 ‘정의 자체’, ‘완전하게 정의로운 사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본’에 해당하고 ‘통치자’, ‘화가’는 ‘제작자’ 그리고 ‘정의 자체에 가장 닮은 사람’, ‘그림 속에 잘 그려진 아름다운 사람’은 각각 ‘모상’에 해당한다. 그런데 플라톤은 제작자의 행위(praxis)는 본래 말한 것(lexis) 그대로 진리에 다다를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제작자는 본을 바라볼 수는 있되 행위로써 그것을 있는 그대로 모상으로 구현할 수 없고 다만 본과 최대한 가까운 모상을 구현해낼 수 있을 뿐이다. 요컨대 제작자의 실제 목표는 본이 아니라 본과 최대한 가까운 모상이다. 실제로 여기서 화가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본으로 삼아 그것을 최대한 그림으로 잘 표현해내는 과정은 <티마이오스>에서 우주 제작자가 우주를 만드는 과정과 그대로 일치하고 본 또한 두 곳 모두 ‘paradeigma’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플라톤 연구자라면 모두가 동의하고 있듯이 <티마이오스>에서 그 paradeigma, 즉 본은 우주의 원상으로서 플라톤 존재론의 최상위 실재, 즉 이데아적인 일자성을 갖는 그 자체로 진상인 ‘자체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우주 제작자 데미우르고스는 그것을 본으로 삼아 그것을 바라보면서 물질적 질료에 영혼을 결합하여 최대한 본과 닮은 것으로 우주를 만들어 낸다. 데미우르고스가 만든 우주는 항성과 행성 등 여럿으로 이루어진 운동하는 다(多)의 세계이되 그 여럿은 각각 본의 일자적 ‘자체성’(kath’ auto on)을 닮은 ‘자기 동일성’(tauton)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주는 다의 세계로서 우주 영혼으로 자기 운동하되 자기 동일성을 온전히 보전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영원히 실재한다. 즉 우주는 절대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체이다.

* 그러나 그에 비하면 인간은 데미우르고스가 만든 신들에 의해 만들어져 우주처럼 완전하지 못하고 가사적(可死的) 존재로서 해체와 소멸을 면치 못한다. 요컨대 우주는 그 자체로 본의 모습 그대로 관철된 영원한 실재이지만, 인간의 영혼은 본에 대한 앎은 가질 수 있어도 우주 영혼처럼 그것을 지속적이고도 항구적으로 보존하지 못한 채 신체가 갖는 무규정성으로 인해 평생 무지와 탐욕에 시달리는 가사적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행히 우주 영혼을 닮은 영혼의 이성 부분이 있어 그 자신 영혼의 자기 고양을 통해 비록 본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최대한 우주와 닮도록 자신을 도야할 수 있고 그것을 기초로 우주적 조화 원리에 따라 정의로운 나라도 만들 수 있다. 앞서 살폈듯이 이상 국가의 가능성과 관련한 이곳 논의에서도 말로 세운 이상적 정치체제는 본이 되고 현실 통치자는 그것을 본으로 삼아 최대한 그것을 닮은 나라를 만드는 제작자가 되며 최대한 본과 닮은 나라는 본의 모상으로서 현실의 조건에서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현실 국가가 된다.

*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우리가 지금 문제 삼는 주제인 이상국가가 현실국가로 가능한지 아닌지, 본이 그대로 실물이 될 수 있냐 없냐의 문제는 애초부터 물음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따질 것도 없이 불가능하다. 플라톤에게서 본은 모상에 관여될 뿐 본 그대로 실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기서도 플라톤은 이상 국가의 가능성 문제를 아예 본을 최대한 닮을 수도 있는 가능성의 문제로 제한한 뒤 그 가능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그 최선의 방도로서 결국 철학과 권력의 결합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이상 국가가 본(本) 그대로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가 말년에 가서 그러한 가능성이 결국 무망함을 깨닫고 <국가>의 주장을 포기하고 <법률>에서 최선의 현실 국가론을 새로 구상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상 국가가 본 그대로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주장은 <국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상 국가는 현실 통치자가 최대한 가까이 가기 위해 주어진 본일 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상이다. 그래서 <국가>는 이상 국가론이라고도 불린다. <국가>의 이상은 처음부터 현실화가 될 수 없음을 플라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법률>에 가서 그 현실화 가능성을 포기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플라톤은 <국가>에서 가장 최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장차 만들어질 실물의 본이 될 수 있는 이상적 목표와 조건에 대한 탐구가 필요했고 그에 따라 현실에서 그 본을 말로 세운 후 최대한 그것을 닮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그 본을 닮은 최선의 나라를 만드는 최선의 방도로서 플라톤이 도달한 것이 철학과 권력의 결합이고 철학자 왕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이상적 논의를 기초로 그 연장선 위에서 본으로서 <국가>의 원리를 최대한 현실적 조건에 부합하게 적용하여 관철한 것이 <법률>인 것이다. 비록 <법률>에서는 철학자 왕이라는 개념은 나타나지 않지만 <국가>와 <법률>의 나라 모두 하나같이 철학과의 결합, 철학자들의 통치라는 기본 원리 위에 서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다만 <법률>에서는 말년에 이르기까지 체득한 현실적인 조건에 대한 탐문을 토대로 <국가>의 입법 취지에 기초해 구체적인 법률들이 발전적인 보완책으로 함께 다루어지는 것이다. <국가>와 <법률>은 이렇게 이상과 현실을 함께 고려하면서 그것의 연관을 순차적이고도 총체적으로 다루고자 한 플라톤의 평생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하나의 연속극이다.

* 이제 처자 공유와 관련한 모든 논의는 다각적인 관점에서 이상적인 정치체제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확대되고 고양되면서 마침내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본으로 삼아 최선의 현실적인 나라를 구현해낼 수 있는 가장 완전한 능력 내지 능력자를 찾는 일로 수렴되고 최종적으로 그 정점에서 드디어 철학과 철학자가 그 방법의 가히 유일하고도 핵심적인 요체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이상적인 정치체제의 현실적 가능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조건으로서 철학과 권력의 결합 즉 철학자 왕의 등장을 제시하자 대화 참여자들 모두는 큰 충격을 받는다. 급기야 대화 참가자들 모두는 지금 아테네 현실 상황에서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가히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거라고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물론 소크라테스도 이것을 모를 리 없다. 사실 바로 이러한 반응이 나올 것을 이미 예상했기에 최대한 그 충격을 다소간 완화하기 위해서 세 가지 파도 등 다각적인 수준의 예비적 논의를 문학적 복선까지 끌어들여 주도면밀하게 전개한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이 애초에 예상하고 준비한 논의 구도대로 대화 참여자들은 충격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막아서기보다는 그의 동맹군이 되어 사람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도록 호의와 격려로써 할 수 있는 수단을 다해 앞으로 전개될 논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노라 다짐한다. 이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이상적인 정치체제에 최대한 가깝게 갈 수 있는 관건으로 이른바 철학자 왕의 배출을 내세운 후 본격적으로 철학자가 어떤 사람이며 왜 그런 사람이 왕의 역할에 부합하는 자연적 적합성을 갖는지 그리고 그러한 철학자 왕을 배출하려면 어떤 조건과 어떤 교육적 환경에 주어져야 하는지를 논의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드디어 <국가>가 포함하고 있는 철학적 논의 영역의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

* 결국, 현실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는 철학자 왕의 등장을 통해 가능하고 철학자 왕의 등장은 철학자 교육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가능성의 영역인 한에서 각각의 단계는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성공적인 철학자 양성 교육이야말로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현실화를 담보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전제이자 조건이 된다. 그래서 플라톤 <국가> 논의의 정점으로 불리는 제5권에서 제7권까지 논의의 초점은 종국적으로 철학자의 교육 과정에 모여져 있다. 그런데 교육은 본질적으로 능력의 영역이고 능력의 영역은 그야말로 양상론적으로 가능성의 영역이다. 본에 대한 온전한 앎을 토대로 영원한 우주 실재를 제작한 데미우르고스와 달리 현실 통치자는 아무리 최상의 교육을 받았어도 절대 실수하지 않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통치자가 될 수는 없다. 그가 도모하는 일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으며, 잘 되었다가도 흐트러질 수 있고 흐트러져 있다가도 다시 잘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철학자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지 본 또는 선의 이데아를 알아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그 본에 가까운 것을 행위를 통해 실제로 구현해내려는 의지와 능력을 하나같이 보전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일례로 불가에서 어느 누가 성불을 했다고 해도 현실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난관 앞에서 어느 순간 판단을 그르쳐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가 성불했다고 함은 궁극적인 깨달음을 푯대 삼아 다시 자신을 곧추세워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함이 없이 굳건히 그것에로 다가갈 수 있는 하나같은 의지와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교육 과정이 추구하는 가능적 능력 또한 바로 그처럼 끊임없는 분투와 지적 긴장을 통해 최선에 다가가는 영혼의 자기 고양 능력이다. 요컨대 현실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의 구현 가능성은 철학자들의 자연적 본성 그대로 앎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그에 부응하는 철학 통치자의 한결같은 실천을 통해 담보되는 것이다. 요컨대 플라톤에게 있어 철학이란 그 자체로 진정한 앎을 향한 분투 어린 수련과 실천 그 자체인 것이다.

* 이상적인 정치체제가 현실에서 최대한 그에 가깝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철학자 왕 을 통해서 담보될 수 있다는 플라톤의 주장은 정치의 지성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담보하는 근본 바탕으로 일정한 수준에서 객관적인 표준과 안정성을 담보하는 법률이나 제도가 아닌 어떤 특정 사람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주장은 법치와 인치의 특징을 비교해서 살필 때 그랬듯이 적지 않은 한계와 논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20세기 나치즘이나 파시즘 그리고 스탈린주의적 전체주의가 초래한 비극상을 뼈저리게 경험한 현대인들에게 ‘정치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어떤 사람’에 대한 기대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독단과 무지를 교묘하게 지혜로 포장하여 대놓고 참혹한 폭정을 일삼는 자’에 대한 불안에 압도되어 가히 무망하기 그지없는 몽상에 불과할 뿐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누구에게 최고 권력을 맡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최고 권력을 기능적으로 분산하고 상호 잘 감시할 것인가가 핵심 관심 사항이 되었다. 그리고 통치자와 관련해서도 누가 훌륭한 정치가인가를 찾아 통치자로 내세우는 것보다 누가 위험한 정치가인가를 찾아 통치에서 배제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게다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정치적 현실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헤아려 가며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해도 문제해결이 쉽지 않을 판에 ‘수와 규모에 있어 가능한 한 제일 작은’ 한 가지 방식을 택해 일거에 해결하려 드는 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권력과 지성의 결합을 통한 정치의 지성화를 주장하는 플라톤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동의하는 사람들조차 그 취지는 사람이 아니라 제도나 법률에 한정하여 관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굳이 사람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 어차피 그는 의심스럽기 때문에 – 그 권력자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정치의식 관련 덕목으로 요구되고 강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그러나 앞서 살핀 대로 플라톤에게서 본과 모상, 이상과 현실은 서로가 각기 독립적인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공존하는 것인 만큼 플라톤 정치철학 전체를 균형 있게 이해하려면 본으로서 <국가>의 이상 국가론만이 아니라 최대한 그에 닮은 모상으로서 <법률>의 현실 국가론을 동시에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위의 비판은 <국가>에 대한 비판으로서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비판은 일정 부분 <법률>에서 고려되고 해소되고 있다.  – 끝 –

 

* 다음 주제 : B. 정의의 실현조건 : 철학과 철학자 왕(474c-502a) 1. 철학자에 대한 정의 : 이데아론에 의거한 규정(474c-480a)

헤겔미학산책9-예술과 시대[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9-예술과 시대

 

1)

예술과 관련해 흥미로운 문제는 예술과 시대 사이의 관계이다. 필자는 역사를 좋아해 TV 사극은 대체로 빼놓지 않고 보는데, 요즈음 사극은 시간과 장소는 과거이지만 인물의 생각과 행위는 현대인의 모습이라서, 가끔 웃음을 자아낸다. 주인공이 조선 시대 옷을 입고 말을 쓰면서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사랑을 전개하는 것 같아서이다. 이런 팩션[faction] 사극이 발전해서 요즈음엔 인물이 옛날과 현대를 타임머신을 타고 오가는 표전[fusion] 사극이 등장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사극은 그 시대 인물의 정신적 고투와 삶의 결단을 그 시대로 돌아가 보여주는 말하자면 정통 사극이다. 그런 정통 사극으로서 필자가 아직도 기억하는 사극으로는 지금 이름도 잊었지만 한명회가 나와서 ‘내 손안에 있소이다’하고 호방하게 웃던 사극이다. 거기서 주인공 수양대군은 조카에 대한 의리와 권력에 대한 야심 사이에 오랫동안 흔들리는 데, 필자는 그것이 수양대군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가족적 의리와 권력에 대한 야심 사이의 충돌이 조선 시대 한 영웅의 정신적 고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인가 의심스럽다. 그런 충돌은 그리스 시대 비극 예를 들어 안티고네 등에서 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안티고네에서는 가족의 의리를 지키려는 안티고네와 국가의 법을 지키려는 클레온이 충돌한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그리스 시대와 같이 볼 수 있을까? 조선 시대는 이미 고대 민족국가가 아니라 점차 왕권이 강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던 중세 국가가 아닌가? 왕은 예를 들어 형제의 난에서 승리한 태종에게서 보듯이 더 이상 가족적 의리 같은 것에 매달리지 않는다. 수양대군의 진짜 모습은 어쩌면 가족적 의리는 그저 입에 발린 말이고 권력에 대한 야심만이 온통 지배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 필자가 정통 사극이라고 본 것도 엄밀하게는 현대화된 팩션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대체 정통 사극이란 게 가능한가 자체가 의심스럽다. 설혹 그런 정통 사극이 있어 과거의 인물이 과거의 정신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 모습 또한 우리 현대인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울 수 있을 것이 아닐까?

 

2)

이 점과 관련하여 헤겔은 세계 상태를 논하면서 시대와 예술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여기서 헤겔은 먼저 작품의 구체적 구조(즉 이상의 규정성)를 이루는 요소를 탐구하는데 그는 그 구조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 요소는 세 가지 즉 세계 상태, 상황, 행위이다.

세계 상태란 예술 작품이 그 속에서 작성되고 전달되는 세계 즉 그 시대를 의미한다. 헤겔에서 모든 작품은 자기가 속한 세계 상태 속에 내재하는 고유한 정신(이념)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어서 헤겔은 상황을 다루는데, 세계 상태가 전체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상황은 작품의 소재가 전개되는 특수한 장소를 말한다. 세계 상태 속에는 이념의 내적 통일성의 측면이 부각된다면 상황에 이르면, 이념의 분열이 출현한다. 여기서 특수한 상황과 보편적 세계 상황의 대립은 그 상황 속에 처한 인물과 인물 사이의 대립으로 발전하면서 마침내 충돌[1]로 나가게 된다. 마지막은 곧 행동이다. 인물의 행동은 상황에서 출현한 분열과 대립을 촉발하여 충돌로 나가게 하는 계기를 말한다..[2]

 

3)

이 가운데 헤겔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세계 상태와 작품의 관계이다. 많은 경우 예술은 그 시대에서 소재를 끌어내지만 자주 예술은 역사 속에서 소재를 끌어낸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헤겔은 그것이 예술의 필연적 속성 때문이라고 본다.

즉 예술은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 감각적 형상을 순화해야 한다. 현실 속에서 소재를 택하는 경우 작가나 독자의 마음에 실제의 구체적 모습이 사라지지 않아, 오히려 그 속에 표현된 이념을 방해한다. 반면 역사 속의 주제에서는 오랜 시간의 망각작용으로 구체적인 실제 모습이 이미 사라지고 중요한 특징적인 모습만이 남아서 이념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다.[3]

과거 속에서 소재를 끌어내면, 여기서 과거와 현재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게 된다. 헤겔은 이런 충돌을 덕에 관한 두 가지 개념 ‘탁월성[arête]’과 ‘도덕[virtue]’의 구별이나, 고대인의 책임과 근대인의 책임 개념을 비교하면서 잘 보여준다.

고대 영웅 시대의 덕 탁월성[arête]은 경향성과 도덕의 직접적인 통일성이다. 여기서 개인의 욕망은 직접적으로 인륜적 법칙과 결합되어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아직 개인은 자기를 자각하여 인륜적 법칙을 의심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고대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에게 나타나는 덕이 바로 이런 덕이다.

반면 인격이 출현한 중세 사법 시대 도덕[virtue]은 경향성을 억압하면서 추상적인 도덕법칙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추상적 도덕법칙은 황제에 의해 결정되어 개인에게 강요된 것이니, 개인의 인격적 존재는 자신의 자의를 전적으로 희생하고 이 도덕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는 자신이 모시는 군주로부터 이탈하여 다른 군주의 지배 아래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엘 시드라는 중세 서사시에서 등장하는 영웅의 모습이 그와 같다.

헤겔은 덕의 개념 외에 죄의식과 책임의 개념도 거론한다. 근대인의 경우 그의 책임은 자신이 직접 행위 한 결과에 제한된다. 그러므로 무지로 인해 일어난 행위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지만 고대인의 경우, 예를 들어 비극 오이디푸스에서 나오듯이 자신이 모르고 행위 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죄의식을 느끼고 책임을 지게 된다. 왜냐하면 근대인은 개인으로 자각하면서 자신을 사회와 구분하는 반면 고대인의 경우, 아직 개인적 자각이 없어 개인은 사회 즉 인륜적 실체와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그가 직접 행위 한 것이 아니더라도 인륜적 실체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4)

이렇게 세계 상태, 시대에 따라 작품 속 인물의 행위를 규정하는 정신적 태도가 달라지니,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예술가가 과거 속에서 소재를 구하려는 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곤란에 부딪힌다. 한편으로는 과거의 인물을 현재적으로 해석하거나 다른 편에는 과거의 인물을 과거적으로 해석할 결과 현재의 독자에게 이해되지 않게 된다.

헤겔은 관객, 독자의 역할을 논의하면서, 과거 속의 소재를 현재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주관적 작가와 이를 오히려 과거의 관점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객관적 작가 사이의 논쟁을 소개한다.

전자의 대표적 예는 라신느이다. 헤겔은 예를 들어 <타울리스의 이피게니아>에서 보듯이 라신느가 역사적 인물을 당대 프랑스의 인물로 그려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슐레겔은 과거에 가능한 한 충실하게 묘사하기를 요구했다.

그렇다고 과거에서 소재를 구하는 것이 주는 장점도 있으니 쉽게 포기할 것도 아니다. 이런 어려움에 부딪혀 헤겔은 그 시대를 주객관적으로 고찰해야 한다고 본다. 헤겔의 말 자체는 약간 얼버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술에 대한 그의 기본 개념을 이해한다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시대 즉 세계 상태는 이념이 드러난 것이다. 각 시대에는 고유한 이념이 있지만, 이미 그 이전 시대에도 다가오는 시대의 이념이 내재하며, 또 그 이후의 시대에도 과거 시대 이념이 한 계기로 보존되어 있다. 예를 들어 헤겔 <법철학>에 나오는 가족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보자. 가족 속에 출현한 자식 세대는 가족적 공동체를 벗어나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으로 발전한다. 또한 오늘날 국가 속에는 국가를 구성하는 하나의 계기로 포함되어 있다.

이전 시기에 내재하면서 동시에 이후 시기에 포함되는 독특한 발전 과정은 이념의 역사에서도 적용된다. 그런 한 현재의 예술이 과거 시대에서 소재를 구하더라도 그 소재가 현재의 이념을 적어도 가능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없다. 또는 현재의 소재 속에서 과거 시대의 이념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현재 속에 과거는 한 계기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든 과거든 자신이 표현하는 이념에 적합한 소재를 찾아내는 것에 있다. 여기서 소재에서 표현되는 이념의 측면 말고 나머지 외면적인 측면에서는 그 시대의 외면적 특징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외면적 측면은 헤겔 말대로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측면이며, 중요한 것은 선택된 과거의 소재 속에 현재의 이념이 표현될 가능성이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4]

 

5)

헤겔은 이와 같은 의미에서 성공적인 작품으로서 괴테의 이피게니아를 들고 있다. 여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타우리스의 바닷가 신전에서 어쩔 수 없이 머물고 있는 누이를 그리스로 데려오너라. 그러면 저주가 풀리리라”(헤겔, 미학강의 1, 311에서 재인용)

헤겔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한다. 원래 에우리피데스의 희극에서 이피게니아는 자신이 봉사하던 신전의 아르테미스 신상을 자신의 조국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저주에 걸린 조국을 구원한다. 그러나 괴테는 조국에서 희생된 이피게니아가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저주를 푸는 것으로 해석했는데, 괴테는 이피게니아를 통해 자기 희생이라는 순수한 사랑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적 이념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1] 헤겔은 충돌의 구체적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그 자체로서 부정적인 것 예를 들어 역병이나 액운과 같은 것이다. 둘째는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인 것이 대립과 분열을 이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형제나 인종의 차이가 일으키는 대립, 갈등이다.

셋째는 인륜적 실체, 즉 사회 내에 내재하는 대립과 갈등이 표현되는 경우이다. 비극 안티고네에서 혈연의 법칙과 국가의 법칙의 대립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2] 헤겔은 여기서 특히 파토스와 성격을 구분한다. 파토스는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실체적 힘을 말한다. 반면 성격은 그런 인물이 가지고 있는 개별성이다. 한 인물은 다양한 개별성을 지니며, 실체적 힘은 그 가운데 하나의 지배적 개별성에서 출현한다. 파토스는 동시에 다른 모든 개별성을 침투하면서 전체적인 통일성을 형성하여 하나의 성격을 이룬다. 따라서 성격은 다면성을 지니며, 그 내부에 서로 알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의 성격은 파토스를 통해 전체적인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헤겔은 성격은 “내적으로 완결된 주체”라고 하며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성격의 특수성에서는 하나의 주요 측면이 지배적 측면으로 나타나야 하지만, 그 규성성 내부에는 가득한 생명성과 내실이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헤겔, 미학강의 1, 323쪽)

이런 점에서 헤겔은 “모든 힘들을 내면에 고요히 숨기는 강인한 중립성을 표현하는’”조각의 적막과 침묵”이 성격의 다면성과 통일성을 잘 보여준다고 한다. 

예를 들어 호머의 아킬레스는 여러 성격적 요인을 지닌다. 청년으로서 열정과 활기,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애정, 적에 대한 복수심, 명예를 지키려는 분노, 노인을 존경하는 마음 등이 복합되어 있다. 아킬레스의 파토스는 폴리스에 대한 충실성인데, 이는 주로 청년으로서의 열정과 활기에서 나타난다. 이 파토스는 아킬레스의 다른 성격적 요인을 침투하면서 아킬레스라는 성격을 이룬다.   

[3] 헤겔은 이점을 아래와 같이 말한다. “과거는 오로지 기억에 속하며 기억은 그 스스로가 이미 성격, 사건, 그리고 행위들을 보편성이라는 예복으로 즉 특수하고 외적이며 우연적인 특칭성들을 내비치지 않는 예복으로 감싼다.”(헤겔, 미학강의 1, 258쪽)

[4] 헤겔의 다음과 같은 표현에 주목하다. “역사적 외면은 인간적 보편적 요소에 견주어 대수롭지 않은 부수물로 치부되어 묘사에서 한 구석에 있어야만 한다. 이미 중세가 그런 식의 실례이니 중세는 소재를 고대에서 취하되 자신의 시대의 내용을 주입했다.”(헤겔, 미학강의 1, 371족)

또한 다음의 구절도 참조하라. ”동시에 예술가는 이러한 모습들[먼 지방, 지나간 시대 낯선 민족들로부터 얻거나 신화 관습 제도의 역사적 모습]을 다만 그의 그림의 틀로서만 이용해야 하며 반면 그 속은 그의 현재의 본질적이며 한층 깊은 의식에 맞추어야만 하니, 괴테의 이피게니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를 위한 매우 놀랄 만한 실례가 되고 있다.”(헤겔, 미학강의 1, 373쪽)

형이상학 산책 2- 구성 개념과 반성 개념[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형이상학 산책 2-  구성 개념과 반성 개념

 

1)

개념에는 다양한 차원의 개념이 있다. 우선 추상적 개념이 있다. 예를 들어 꽃이나 사람 등의 개념은 개별자에서 일반성을 추상하여 생겨난 개념이다. 이에 대해 너무 상식적이라 더 설명할 게 없다.

수적 개념에 관해 헤겔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헤겔에서 모든 추상적 개념은 양적인 것이다. 개별자는 이런 추상적 개념의 특정한 양에 속한다. 예를 들어 덥고 추운 것은 일정한 온도를 갖는다.

어떤 양을 다른 양으로 규정할 때, 이 다른 양이 곧 척도이다. 가장 일반적인 척도 즉 척도의 척도가 되는 것이 곧 수이다. 상품의 교환가치를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화폐인데, 수는 바로 이런 화폐와 같다.[1] 

 

2)

판단론에서 말하는 논리적 범주는 어떨까? 칸트는 12개의 판단표를 만들어 각각에 하나의 범주를 부여했다. 형식논리학에서 판단은 4개뿐인데, 칸트는 이를 12개로 확장했다. 그것은 칸트에게서 판단은 동시에 인식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2]

이렇게 확장한 이유야 어떻든, 범주도 꽃이나 사람과 마찬가지로 추상적 개념일까? 개별 긍정 판단의 범주니 특칭 부정 판단의 범주니 하는 것은 판단의 일반적 형식이라는 점에서는 추상적 개념일 수 있겠지만, 범주가 의미하는 것 자체는 추상 개념이 아니다.

범주는 칸트에서 경험을 구성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서 구성되는 경험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경험이다. 범주가 여러 경험을 구성할 때 그것은 단순히 어떤 추상적인 개념을 끌어내는 구성은 아니다. 범주가 구성한다는 것은 다양한 경험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경험의 관계는 범주적 관계 외에도 많다. 우선 시공간적 관계를 들 수 있겠다. 칸트는 시공간적 관계 역시 경험을 구성한다고 보지만, 이는 범주와 달리 감각에 속하는 것이다. 반면 범주는 사유에 속한다. 칸트는 사유에 속하는 경험의 관계는 모두 주어와 술어의 관계 즉 판단의 형식을 취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판단의 형식 속에 집어넣을 수 없는 경험의 관계도 있을까? 그런 것이라면 물 자체 즉 인식 밖에 속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으로 보인다.

 

3)

칸트에 따라 헤겔 역시 범주를 판단 즉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헤겔은 범주에는 고유한 내용(Gehalt)이 있다고 했다. 헤겔이 설명한 범주의 내용을 살펴 보면, 그것은 칸트가 각 범주에 부여한 도식과 동일한 것을 다르게 설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칸트는 인과 판단의 도식은 두 개의 관념이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헤겔에서 가언 판단은 칸트의 인과 판단에 해당하는데 주어와 술어인 두 관념이 법칙적인(반복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주어와 술어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계사(‘이다’ 즉 존재)로 표현된다. 헤겔에서 범주는 판단의 계사 ‘존재(이다)’가 각 판단 형식에서 가지는 구체적 의미에 해당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범주는 존재[계사]의 개별적 의미가 된다. 존재는 주어 술어의 관계인 범주를 추상적으로 지칭하는 범주의 일반 개념에 해당한다.

 

4)

그런데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흔히 반성 개념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칸트는 반성 개념의 모호성이라는 장에서 라이프니츠의 반성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때 칸트는 라이프니츠로부터 네 가지 반성 개념을 끌어내는데, 구체적으로는 ‘동일성과 차이’, ‘일치와 모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형식과 질료’를 들고 있다.

과연 이런 반성 개념도 추상적 개념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면 논리적 범주와 같은 경험을 구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까? 다른 추상적 개념은 독자적으로 성립한다. 그러나 반성 개념은 항상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동일성은 차이에 대해 규정되며 거꾸로 차이는 동일성에 대해 규정된다.

또한 이런 반성 개념은 칸트가 말한 12개 판단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경험을 구성하는 구성적 개념 또는 존재의 의미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대체 이런 반성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5)

반성 개념의 특징은 상대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런 반성 개념은 좌우, 상하, 고저 등과 같은 상대적 개념에 속한다.

이런 상대적 개념과 칸트, 라이프니츠, 헤겔 등이 논의한 반성 개념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상대적 개념은 두 개념의 비교에서 나온다. 비교가 이루어지는 어떤 수준이 존재하며, 이를 우리는 개별 개념이 속하는 공간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좌우 상하 고저는 어떤 양(공간, 차원 등)에서 이루어지는 비교에서 나온다. 이때 비교의 대상은 개별 대상이다.

반면 앞에서 언급한 반성 개념은 어떨까? 위의 네 가지 반성 개념 가운데 우선 동일성과 차이를 보자. 여기서는 주로 판단에 사이의 관계가 논의된다. 예를 들어 ‘이것은 빨강색이다’와 ‘이것은 노랑색이다’라는 두 판단을 보자.

여기에는 어떤 전제가 있다. 예를 들어 노랑색은 어떤 특정한 색깔의 체계 내에서 성립한다. 그것은 삼원색 속의 노랑색일 수도 있고 무지개 색 속의 노랑색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삼원색의 체계에서 노랑색은 빨강색의 부정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이것은 노랑색이라’는 판단은 ‘이것은 빨강색이라’는 판단을 부정하면서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삼원색의 체계에서 주황과 노랑은 동일한 색이며, 따라서 ‘이것은 노랗다’와 이것은 주황색이다라는 판단은 동일한 판단이 된다.

 

서로 부정적인 관계에 있는 두 술어로 이루어진 판단 사이에는 차이가 출현한다. 서로 동일성의 관계에 있는 두 술어 사이에 이루어진 판단 사이에 동일성이 성립한다. 동일성은 차이에 대해 성립하며 차이 역시 동일성에 대해 성립한다. 그러므로 동일성과 차이는 반성 개념이 된다.  

 

6)

동일성과 차이라는 반성 개념은 질적 판단에서 긍정판단에서 부정판단으로 이행하는 사유의 기능 즉 부정의 기능에서 나온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부정의 관계가 곧 대당(對當) 관계라고 한다. 이런 대당 관계는 직접적인 추론에 속하는 것이니, 부정적 기능은 곧 추론의 기능이라고 하겠다.

논리적 범주가 주어 술어의 관계를 구성하는 판단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동일성과 차이라는 반성 개념은 판단과 판단의 관계 즉 추론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 수는 러셀이 ‘집합의 집합’ 개념으로 설명했다. 즉 2는 쌍으로 이루어진 것들 예를 들어 젓가락, 신발, 쌍둥이 등의 집합의 한 원소이며 그 집합의 대표이다. 3은 트리니티, 삼각형, 삼각대 등의 집합의 한 원소이며 그 집합의 대표이다. 수는 이런 대표자들의 집합이다. 러셀의 수 개념에서부터 수가 연속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다. 반면 수를 척도로부터 도출하는 헤겔적 개념에서 수의 연속성이 올바르게 표현되지 않을까?

[2] 예를 들어 질적인 무한 판단은 부정의 부정 판단이니, 형식 논리학에서는 긍정 판단과 동일하다. 하지만 칸트는 무한 판단에 고유한 인식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를 독자적인 판단으로 인정한다.  또 긍정 판단, 개별 판단, 정언 판단, 가능 판단은 모두 형식 상 동일하다. 하지만 칸트는 각각에게 다른 인식적 의미를 부여한다. 관계 판단에서 선언 판단, 가언 판단 등의 경우 인식적으로 단일 판단으로 보는 칸트와 달리 형식 논리학에서 두 개의 복합 판단으로 인정된다. 양상 술어는 판단에 대한 술어이다. 그러므로 형식 논리학은 인식적 고유 의미를 부여하는 칸트와 달리 이미 추론으로 간주한다.

헤겔미학산책8-예술과 노동[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8-예술과 노동

 

1)

예술은 유사성을 매개로 하여 이념을 표현하므로, 예술은 물질적 자연의 모습을 이념을 통해 순화시킨다. 이념과 유사한 모습을 물질 속에 표현하는 가운데 물질이 지닌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측면이 사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헤겔은 호머가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다만 높은 이마, 잘 생긴 코, 길고 강한 정강이만 언급하고 나머지는 일체 생략했다고 말한다. 또한 이 점과 관련해 헤겔은 흥미롭게도 고대 의상의 장점을 논한다.

 

현대 배우들이 입고 있는 신사복은 미리 재단되어 있어서 오히려 정신이 그것을 통해 이념을 표현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반면 통으로 이루어진 고대 의상은 정신에 따른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주름이 이루어지니, 오히려 이념을 표현할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

 

2)

예술은 이념의 이중화인데, 이 점에서 노동의 산물과 유사성을 갖는다. 노동 역시 대상 속에 자기의 형식을 부여하는 형성화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기술[kunst: art]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예술과 노동 사이의 유사성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예술과 노동의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노동은 대상에 인간적인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연적 물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적합한 산물로 변화된다. 이런 형식부여는 물질 자체를 구조적으로 개조하는 운동이다.

 

반면 예술은 비록 노동이지만 그것은 다만 이념의 어떤 성격을 대상에 외면적 형식으로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물질 자체는 이런 형식이 부여되는 지반으로서 역할만 담당한다. 이런 이중화는 마치 얼굴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얼굴의 찡그림이 고통을 표현한다고 할 때 신체 자체의 물질성이 개조될 필요는 없다. 다만 얼굴에 찡그림의 표정만을 외면적 형식으로 부가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신상을 나무에 표현할 때, 나무 자체를 신적인 것으로 개조할 필요는 없으며, 나무의 물질적 성격에 대해 외면적인 형식으로 신의 모습을 부가하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관념화하는 노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관념화하는 노동은 이념의 형식이 물질에 외면적으로 부여되므로, 여기서 예술은 물질 자체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관념화된 물질을 수단으로 이용하게 된다. 특히 낭만주의 예술 장르에 속하는 미술이나 음악은 순수 색이나 절대 음과 같은 자연적 물질로부터 추상된 관념화된 물질을 사용하며, 이는 문학에 이르러 관념 자체가 예술적 수단이 되는 데서 정점에 이른다. 

 

3)

더구나 예술은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독자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그것은 현실 자체의 모방이 아니라 다만 현실과 동일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이다. 그것은 실제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환상을 창조하는 방식이다. 백남준의 말대로 예술은 본질적으로 사기(환상)이다.

 

그런 환상을 창조하는 방식은 색채와 음과 같은 예술적 수단을 축조하는 방식이다. 그림이 포도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만들어낼 때, 헤겔은 이미 미술가가 색채의 대비를 통해 그런 반짝이는 모습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음악이 슬픔을 불러 일으킬 때 어느 작곡가도 인간이 우는 울음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는다. 음악은 슬픔을 음조를 통해 표현할 뿐이다.

  

예술적 노동은 관념화된 노동이므로 예술이 유사성에 의해 매개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유사성은 본질적인 유사성은 아니고 외면적 유사성에 머무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이 아무리 이념에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근본적으로 기호적 성격을 벗어날 수는 없다. 즉 예술은 이념의 이중화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예술은 완전히 합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예술은 자립적인 물체로서 이념과 구분되는 독자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4)

예술의 노동이 관념화하는 노동이라는 점에서 장점과 한계를 가진다. 한계라면 예술은 역시 이념을 표현하는 데서 관념적으로만 표현하므로 그것은 결국 환상에 머무른다. 미술이 아무리 맛있는 사과를 그리더라도, 그 사과를 우리가 먹을 수는 없다.

 

칸트는 심미적인 쾌감을 욕망의 쾌감으로부터 구분했다. 대상의 물질성이 아니라 대상의 형식에 관한 관심에서 즉 심미적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볼 때 생겨나는 쾌감이 곧 미적인 쾌감이다. 헤겔 역시 예술작품에서 얻어지는 쾌감은 욕망의 쾌감과 구분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예술적 노동이 곧 관념적 노동에 머무르기 때문에 예술작품으로서는 욕망의 쾌감을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점이라면 예술은 물질을 이용해 힘들이지 않고 쉽고 유순하게 정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도의 반짝이는 모습을 실제로 만들자고 한다면 아무도 자연을 따라갈 수는 없다. 하지만 미술가는 색채의 대비를 통해 아주 쉽게 그런 모습을 만들어낸다.

 

더구나 예술은 자연적으로는 곧 사라지고 마는 것조차 이런 관념적인 노동을 통해 영원히 보존한다. 헤겔에 따르면 “살짝 비치다만 미소, 입가에 스치는 비웃음, 시선, 언뜻 어리는 빛”[1]조차 예술은 영원히 보존한다.

[1] 헤겔, 미학강의 1, 225쪽

호퍼와 정신분석 10-문 닫힌 세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호퍼와 정신분석 10-문 닫힌 세계

 

1)

1930년대 호퍼의 욕망 구조에서 실재계적인 특징은 여러 그림에서 드러난다. 앞에서 소개한 것과 같이 고독한 여성의 모습이나 덮쳐오는 숲의 모습에서도 이런 실재계적인 특징이 드러나지만 문 닫힌 일요일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이 그림은 1926년 그려진 일요일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앞에서 자동기계(1927)라는 그림과 대조된다. 둘 다 검게 칠해진 닫힌 문을 배경으로 한다. 자동기계의 경우 닫힌 문 앞에 여성이 의자에 앉아 있다. 반면 이 그림에서는 남자가 쭈그려 앉아 있다. 하지만 자기의 내면 속에 잠긴 모습 고독한 모습은 동일하다.

 

이런 고도한 모습을 지닌 인간조차 곧 호퍼의 그림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제 문이 닫힌 상점들이 나란히 서 있는 텅 빈 거리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이전 남자나 여사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이제 이발소 표시등이 자리잡는다. 1930년 그려진 일요일 아침이라는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이나 앞의 그림이나 시간은 일요일이다. 일요일 그리고 아침이라면 한적하기는 하지만 고요하고 휴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야 할 것이다. 보통 일요일 아침은 밝고 따스하게 그려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두 그림에서 지배적인 정조는 이와 거리가 멀다. 여기서 지배적인 정조는 오히려 불안이다. 검게 칠해진 닫힌 문 때문일 것이다.

 

2)

이런 그림은 같은 시기 그려진 고독한 여성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나 으스스한 숲의 덮칠 듯한 모습을 그린 그림과 같이 실재계적인 특징을 가진다는 사실은 아래에 나오는 데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스파이더의 한 장면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크로넨버그가 호퍼의 그림을 보고 이런 세트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두 장면은 닮았다. 여기서 주인공은 어릴 때 자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살해당했다고 믿고 지금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시내 술집에서 만난 여급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든 사이에 가스관을 틀어 질식해 죽인다. 그 때문에 주인공은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이제 방금 병원에서 석방되어 작은 요양원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스파이더에 나오는 여러 장면은 주인공이 실재계적인 질환인 정신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주 느린 발걸음, 어눌한 말, 아무도 알아 보지 못하는 글자로 무언가를 가득 적어놓은 노트, 무엇보다도 바지 앞 섶에 감추어 놓은 양말 주머니가 그런 정신증을 잘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닫힌 문이란 곧 마음이 닫혀 있다는 것에 대한 은유가 될 것이다. 여기서 닫힘이란 곧 현실에 대해 닫혀 있다는 뜻이고 거꾸로 과거의 회상 속에 갇혀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 과거란 곧 자신이 어머니의 품 안에 있었던 시기로의 회귀이다. 그는 어머니 품 안에서 느꼈으나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쾌락 속에 빠져 있다.

 

그는 과거를 드믄드믄 회상하게 된다. 자신의 진짜 어머니는 죽고 지금 있는 실제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주 가던 술집의 여자로 생각한다. 소년은 자시가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주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려는 끈으로 거미줄처럼 자기의 방을 칭칭 동여맨다. 소년은 아버지가 다니던 술집의 여자가 자기를 노골적으로 유혹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와 술집 여자를 무의식 속에서 치환해 버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접근할 수 없는 어머니를 술집 여자로 바꿈으로써 접근 가능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어머니라는 의식이 남아 있어 그로서는 저항감을 느낀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술집 여자와 함께 자기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편집증적인 망상이다.

 

3)

아래는 호퍼의 그림 가운데 가장 이채를 띠는 그림이다. 1941년 ‘누드 쑈[girlie shaw]’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은 이 장면이 영화 스파이더의 주인공의 기억 속에 나오는 장면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한편으로 호퍼의 노골적 관음증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노골적인 벌거벗은 여인은 누구나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보기 어렵게 만드는 한 가지 요인이 있다. 그림 왼편 하단에 나오는 남자이다.

 

다른 관객은 무대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남자는 오히려 무대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의 옆에 악기가 보이는 것을 보아서 그는 반주를 맡은 악사 같은데, 무대에 등을 돌리고 반주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남자가 등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남자를 호퍼 자신으로 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은 무대 위에 나오는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해준다. 무대 위의 여자는 바로 호퍼 자신의 어머니이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쇼걸로 대체했다. 그것은 무의식적 환상이다. 이제 그의 욕망은 해방되지만 하지만 의식의 잔재는 그를 괴롭히니, 그 때문에 등을 돌린다. 아마 영화 스파이더에서처럼 이 남자의 마음 속에는 그를 박해하는 편집증적인 지배자가 출현할 것이다.

헤겔미학 산책7- 기호와 표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 산책7- 기호와 표현

 

1) 예술과 미적인 것

헤겔은 미학이라는 용어 대신 예술학이라는 용어를 더 적합한 것으로 본다고 말한 데서 이미 언급한 적이 있지만 헤겔은 예술 작품과 미적인 것을 구분한다. 헤겔에서 예술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념을 표현하는 기호라 한다면, 미적인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헤겔은 미학강의에서 미적인 것의 개념을 독자적으로 분석하지는 않으나, 헤겔의 용법을 보면 대체로 미적인 것의 개념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헤겔에서 미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대상이 가지고 있는 어떤 성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성질은 대상의 유적 통일성과 구분되는 종별적 통일성과 관련된 성질이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상의 규칙성, 균형, 생동성과 합목적성과 같은 성질이다. 이런 성질은 이미 자연미의 개념에서 소개한 바 있는데, 헤겔에서 미적인 것의 개념 자체는 고전주의 미학에서 미의 개념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예술이 이념을 표현하는 기호는 반드시 미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 미적이지 않은 것도 이념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1]. 많은 상징 예술은 무섭고 심지어 추악한 것이면서도 그 시대 이념을 표현하는 기호이니 탁월한 예술이 된다. 미적 형식이 신을 표현하는 그리스 시대에서도 비극은 운명의 힘 앞에서 느끼는 공포의 감정을 묘사한다. 근대에 네덜란드 풍속화는 잔칫날 술 취한 모습. 남녀가 시시덕거리는 광경이 그려졌는데, 그것은 그 시대 생동적인 삶의 모습을 표현하지만 결코 아름답다고 보기는 어렵다.

 

2) 기호와 표현

예술이 기호라고 하더라도 다른 기호와 차별성을 지닌다. 기호의 대표격이라면 언어가 되겠는데, 소쉬르 이래 구조주의에서 언어의 기표 체계는 변별성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되었다. 구조주의는 어떤 기표가 특정한 기의를 지시하게 되는 것 자체는 관습(또는 자의)에 기초한다고 본다.

언어적 기호가 이처럼 관습(자의)에 의해 그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라 한다면, 예술적 기호도 마찬가지일까? 헤겔이 예술은 이념을 표현한다고 하면서 ‘표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서 보듯이 예술적 기호는 이런 관습적 기호와는 구분된다.

헤겔이 상징적 예술형식을 논의하는 끝에 비유를 분석하는 데서 밝혀지듯, 헤겔에서 예술적 기호는 처음 관습적인 것에서 나와서 점차 유사성을 매개로 하여 기의와 기표, 즉 이념과 그 기호 사이의 합일을 향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헤겔에서 예술적 기호는 소쉬르보다는 오히려 퍼스의 기호론에 더 가깝다. 퍼스는 기호와 지시체 사이에 해석을 개입시킨다. 기호는 해석이 주어지는 방식에 따라서 아이콘과 심볼, 인덱스가 구별된다.

이처럼 헤겔에서 예술이 이념의 기호라 할 때 그 사이에는 유사성이 매개되어 있으니 그런 점에서 헤겔은 이 관계를 기호라고 말하지 않고 표현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예술은 이념과 매개로서 이념의 어떤 성격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념은 예술 속에 자기를 이중화[du-plicate]한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헤겔은 이념과 예술의 관계를 표현[Ausdruck] 또는 펼침[explicate]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중성을 스피노자가 사용하듯이 주름[plico: 라틴어, 접다]이라고 말한다면 예술은 곧 이념의 주름이다.

 

3) 자유와 무한성

예술이 이처럼 유사성을 매개로 한 기호 즉 표현이므로 여기서 헤겔은 예술이 지닌 기본적인 성격 즉 자유와 무한성이라는 성격을 끌어낸다. 이 자유와 무한성은 사실 같은 의미인데, 이것은 이념과 그것의 표현 사이의 이중성의 관계를 보여준다.

예술은 이념의 이중화이므로 한편으로 예술은 이념의 이중화로서 이념으로 복귀하고 있으며 이 측면에서 예술은 무한성을 지닌다. 다른 한편으로 이념은 자기를 벗어나 타자가 되면서도 여전히 자기 자신에 머무르면서도 자유롭다.

 

“오직 이[예술작품]를 통해 이상은 외적인 것 속에서 그 자신과 합치하며, 자유로이 자기관계하는 것이며, 내면에서 감각적 지복을 누리며, 스스로에게 기뻐하고 스스로를 향유하는 것으로 있다.”[2]

 

예술이 무한하고 자유롭다는 데서 헤겔은 예술의 근본 특성이 고요함[Ruhe]과 쾌활함[Heiterlich keit]을 끌어낸다. 헤겔이 대표적으로 들고 있는 예는 역시 호머의 서사시이다. 헤겔은 호머의 서사시에서 “신들의 가시지 않는 웃음은 신들의 행복한 고요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헤겔은 쉴러의 시 <이상과 삶>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의 고요한 그림자 나라’에 대해 언급하는데, 쉴러는 그 나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런 그림자 나라에서 나타나는 영혼은 직접적인 현존을 벗어 던지고 자연적 실존의 궁핍에서 분리되고 …외적 영향과 모든 풍진과 세파에 대한 종속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어 있다.”[3]

 

여기서 쉴러가 언급한 고요한 나라는 곧 예술의 나라이다. 예술은 이념의 표현이므로, 이미 이념 속으로 복귀되어 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풍진과 세파에 시달리더라도 그 내면에는 이념의 고요함이 머물러 있다. 그러기에 예술은 어떤 풍파에서도 자신의 쾌활함을 잃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헤겔이 언급한 ‘눈물 속의 웃음[Lachen durch Traenen]’이라는 형상이다. 헤겔은 무리요의 그림 거지소년을 예로 들고 있다.

작품 속의 거지 소년은 헐벗고 더러운 모습이지만 따뜻한 햇빛이 그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 이를 잡고 있다.


[1] 헤겔에서 예술이 미의 개념을 넘어서 추의 개념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헤겔 연구자가 제시해 왔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안네마리 게트만 지페르트[Annemarie Gethmann-Siefert]가 <헤겔 예술 규정-미에서 추에 이르기까지>(헤겔과 근대예술, 한국 헤겔학회 편, 철학과 현실사, 2002)에서 이 점을 강조한다.[1] 흔히 헤겔에서 추는 미에 이르는 계기로서만 파악되었지만 지페르트는 헤겔 미학에서 추는 독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념이 소여되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고전주의 시대 이념은 미적인 것을 통해 주어지지만, 낭만주의 시대 이념은 오히려 부정적인 것을 통해 드러나며 그런 부정적인 것 가운데 특성적인 것(범죄적인 것) 또는 추 즉 부조화도 포함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절 그리스도의 모습을 고전주의 시대 아폴로 신상의 모습을 표현한 것에 대해 헤겔은 비판적으로 보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지페르트는 헤겔의 예술 개념이 왜 미뿐만 아니라 추까지도 포함하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2] 헤겔, 미학강의 1, 216쪽

[3] 헤겔, 미학강의 1, 216쪽

헤겔 미학산책6-기호로서 예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미학산책6-기호로서 예술

 

1)

예술론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축은 모방이냐, 창조이냐 하는 축이다. 리얼리즘은 예술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을 통해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모더니즘은 예술은 환상을 창조한다고 본다.

이와 교차하는 또 하나의 축은 객관적 미학과 주관적 미학이다. 객관적 미학은 미적인 것이 자연적 성질이나 관계처럼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주관적 미학은 미적인 것은 욕망의 만족에서 얻어지는 쾌감과 구분되는 일종의 쾌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을 긋는다면, 그것은 인식이냐 표현이냐 하는 구분이 될 것이다. 예술은 진리를 감각적으로 발견하는 것을 통해 성립한다고 보는 인지론자가 있다면, 미는 정신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한 표현 수단이라고 보는 표현주의자가 있을 것이다.

예술론을 세 가지 축으로 구획할 때, 예를 들어 칸트의 미학은 미적인 것을 주관적 감정에서 끌어내려 했다.[1] 반면 고전주의자 쉴러는 실재하는 조화와 균형이 미적인 것이라고 보는 객관적 미학자이다. 19세기 리얼리즘은 예술이 현실을 모방하는 것으로 보지만, 20세기 초 표현주의는 미란 진리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볼 것이다. 하이데거의 경우 미는 존재의 진리를 직관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니, 전형적인 인지론자가 된다.

 

2)

헤겔의 미학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는 평면의 어디에 속할까? 많은 해석자는 헤겔이 실재론자나 인지론자에 속한다고 본다. 즉 이념은 감각적 작품에 실재하면서 미적 이념이 되며 우리는 직관을 통해 미적 이념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미적인 직관능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 직관능력은 이념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되어야 하는데, 헤겔의 철학 어디에서도 감각적 경험과 다른 어떤 본질적 직관 능력을 가정하는 것을 볼 수 없다.

더구나 작품 속에 미적 이념이 실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작품의 질료는 물질의 법칙에 지배 받는 것이니, 미적 이념이 실재한다면, 작품의 형식 속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념의 실재, 즉 그 속에 이념이 내재하는 형식이란 어떤 것인가? 결국 쉴러와 같이 조화와 같은 고전적 형식을 들 수밖에 없는데, 고전주의 시대 특히 조각 작품을 제외하고 다른 시대, 다른 예술작품은 전혀 그런 형식을 가지지 않으니, 그 모두를 예술작품에서 배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헤겔은 그 모두를 포괄하는 예술론을 전개하려 하니 이념이 실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3)

이상 보듯이 헤겔을 실재론이나 인지론의 미학 평면에 집어넣기는 어렵다. 헤겔은 예술작품은 이념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예술은 이념을 표현함에 있어 사유와 순수한 정신성 일반의 형식으로가 아니라 직접 볼 수 있도록 감각적 형상으로 표현해야 하는 과제를 가진다.”[2]

위의 구절에서 헤겔이 표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주목하라. 또한 그 표현의 방식은 구체적으로 상징이나 현상, 가상 등 기호학적인 방식이다. 예술작품 속에 이념을 파악하는 방식 역시 기호에 대한 독해적 방식이니, 이점과 관련해 헤겔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오히려 그것은 본질적으로 물음이며 반향하는 가슴에 건네는 말이며, 심정과 정신에 던지는 외침이다.”[3]

여기서 ‘물음’이나 ‘말’, 또는 ‘외침’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자. 말이라는 단어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이런 단어들은 모두 기호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술작품은 문학뿐만 아니라 건축이나 조각, 음악, 미술조차도 하나의 기호이다. 예술작품은 그 속에 심정을 그 의미로 담지 하고 있는 기호이며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정신은 예술작품이라는 기호를 언어적으로 독해하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로서 심정을 파악한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심정에서 심정으로 전달된다.

이 점은 예술이 가상이라고 할 때 그 의미에서도 충분하게 드러난다. 가상[Schein]이란 자신을 통해 다른 것이 빛남으로써 그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 말은 곧 그것이 이 다른 것의 기호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름다움은 개별적 형태가 고요 속에서나 운동 속에서 전개하는 빛남[가상성: Scheinen]을 다룬다. 반면 아름다움은 욕구의 만족을 위해 합목적적이라는 사실이나, 자발적으로 운동하는 것[Sichbewegen]에서 등장하는 전적으로 개별적인 우연성과는 무관하다.”[4]

 

4)

헤겔을 이처럼 표현주의자의 미학적 평면 속에 위치시킬 때 헤겔이 왜 자연미에 대립하여 예술미를 옹호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새의 다채로운 깃털은 보지 않아도 빛나며, 그 노래는 듣지 않아도 울려 퍼진다. 또한 단 하룻밤 꽃을 피우는 선인장은 그 누구의 찬미도 듣지 못하고 남쪽 지방 숲의 야생에서 시들며, 이 수풀 매우 달콤하고 황홀한 향기를 지닌 극히 아름답고도 울창한 식물군으로 이루어진 정글 자체도 역시 즐기는 사람 하나 없이 썩고 시들어 간다.”[5]

사실 자연(심지어 여기에는 인간의 현실까지 포함된다) 속에서 자주 규칙적인 것, 균형적인 것, 조화로운 것, 생동적인 것, 합목적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고전주의 미학자는 이런 것들을 미적인 것의 실재로 간주한다.

헤겔이 이를 자연미라고 하는 것으로 보면, 이것이 미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헤겔은 이런 자연미가 예술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이제 그 이유를 들어보자.

우선, 자연 속에 내재하는 미적인 것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 즉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 한 그것은 어떤 다른 것의 기호가 아니며, 예술을 이념의 기호로 간주하는 헤겔에게서는 예술이 되지 못한다. 물론 예를 들어 시인이 자연 속에 들어가 그 생동적인 아름다움을 신의 상징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예술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이 경우 자연 자체가 예술이 아니라 시인의 눈에 그런 자연이 예술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6]

또한 헤겔에서 예술은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자연 속에는 조화로운 것, 생동적인 것을 넘어 심지어 합목적적인 것조차 출현하지만, 자연에서는 동물적 삶에서 보듯이 아직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이 출현하지 않는다.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은 즉 자기 관계하는 것[대자적인 것: fuer sich] 다시 말해 자기를 타자화하고 이 타자 속에서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은 인간 정신에 이르러 비로소 출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신만이 자기를 자립적인 대상으로 실현하기 때문이다.[7]

인간의 정신이 이처럼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을 산출할 수 있으므로 오직 인간에게서만 예술이 출현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것이 다른 것의 기호가 된다는 것 즉 다른 것의 가상이라는 관계는 이와 같은 무한하고 자유로운 정신의 활동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5)

예술에 관한 헤겔의 기호적 독해는 유명한 비유를 낳았다. 헤겔은 플라톤의 아래와 같은 시구를 인용한다.

“그대가 별을 볼 때, 오 나의 별이여, 나는 하늘이 되어 수천 개의 눈으로 그대를 내려다 볼 수 있었으면”[8]

여기서 플라톤은 자신의 애인을 수천 개의 눈이 되어 바라보고 싶다고 하는데, 헤겔은 예술을 이런 수천 개의 눈에 비유했다. 왜냐하면 눈이 곧 영혼이 드러나는 기관이고 눈을 통해 그의 영혼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거기서 이념이 드러나며 그것을 통해 이념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미적인 것이 실재한다는 입장에서는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보다는 자연 자체 속에 진정한 의미에서 미적인 실재가 출현한다고 보며, 따라서 예술가는 가능한 한 자연 속에 들어가 자연에 내재하는 미적 실재를 포착해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실재론적 입장은 대체로 예술은 자연의 모방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헤겔은 예술은 모방이 아니라고 단언한다.[9] 왜냐하면 예술은 이념의 가상 즉 기호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호는 정신의 내부에서 산출되는 것 즉 창조된 것이다. 예술이 하나의 기호이라면, 미적인 것이 굳이 자연을 모방할 필요가 없으며, 모방과는 무관한 예술 형식도 존재한다. 예술 가운데 특히 건축과 음악이 그렇다. 건축은 재료를 축조하며 음악은 음을 구성할 뿐이다.


 

[1] 칸트는 이런 미적인 감정은 욕구의 충족을 통해 얻어지는 만족과 구분한다. 후자는 대상의 감각적 질료로부터 얻어지는 것이지만 미적인 감정은 대상의 형식 자체로부터 얻어진다. 그는 대상의 일정한 형식 자체가 미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형식으로부터 반성적 판단 과정을 통해 미적 감정이 발생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반성적 판단은 일정한 대상의 형식으로부터 자유롭게 어떤 종별적인 통일성 즉 조화와 균형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헤겔, 미학강의 1, 107쪽

[3] 헤겔, 미학강의 1, 106쪽

[4] 헤겔, 미학강의 1, 174-175쪽

[5] 헤겔, 미학강의 1, 107쪽

[6] “하지만 이러한 다만 감각적일 뿐인 직접성으로 인해 생동적인 자연미는 그 자체를 위해 혹은 그 자신으로부터 아름다운 것으로 생산된 것도 또한 미적 현상을 위해 생산된 것도 아니다. 자연미는 오로지 타자에 대해 즉 우리에 대해 미를 이해하는 의식에 대해 아름다운 것이다.”(헤겔, 미학강의 1, 173쪽)

[7] “동물적 삶은 삶으로서는 비록 이념이지만 그것은 무한성과 자유를 자체에서 표현하지 않으니, 이것이 나타나려면 개념은 자신에 합당한 실재를 완전히 관류하여 그 속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대상화하고 또한 거기서 자신 이외의 어떤 것도 등장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서 개념은 진정 자유롭고 무한한 개별성으로서 존재한다.”(헤겔, 미학강의 1, 208쪽)

[8] 헤겔, 미학강의 1, 212쪽

[9] “예술의 진리는 소위 자연의 모방이라는 것이 제한적으로 지향하는 단순한 정확성이 아니며, 외면은 내면과 조화해야 하니, 이 내면은 내면 그 자체로서 조화를 이룰 수 있고 또한 바로 이를 통해 외면 속에 자신을 자신으로서 현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헤겔, 미학강의 1, 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