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것, 적과 동지의 구별- 레닌, 베른슈타인, 카우츠키, 트로츠키[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②

정치적인 것, 적과 동지의 구별- 레닌, 베른슈타인, 카우츠키, 트로츠키[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②

 

강사?: 박영균(건국대학교 HK교수)
후기 : 이원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자본주의가 유일한 승자로 우뚝 선 21세기에 감히 마르크스를 떠올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레닌을 떠올리는 것에는 더욱 큰 용기가 필요하다. 여전히 탈자본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마르크스는 희망이다. 하지만 ‘혁명’의 붕괴에 대한 책임의 짐을 누군가는 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레닌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엄하다. 따라서 21세기에 마르크스를 찾는 사람들은 나쁜 엥겔스와 과격한 레닌을 제외한 ‘순결한 마르크스’를 떠올리거나, 트로츠키나 멘셰비키와 같은 실패한 혁명가를 들여다보며 ‘혹시 이들이 성공했다면’이라고 기대를 품는다.

그러나 문득 이것이 또 다른 레드컴플렉스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레닌과 소비에트를 묻어두고 마르크스주의를 불러내는 것은 일종의 자기검열을 통과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앤디워홀이 그리고 나서야 체게바라가 우리와 친해졌듯이 최근 지젝의 책들이 유행을 한 후 지젝의 명성을 빌어 레닌에 대한 금기가 조금씩 풀어지고 있는 듯 하다. 마르크스를 떠올리는 것이 19세기의 그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듯 레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허락하면서 사도바울에게는 아무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면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닐까?

2강에서는 박영균 교수(건국대 HK교수)가 그동안 가장 금기시되어 왔던 마르크스주의자 레닌을 중심으로 그와 시대적 흐름을 함께 한 세 인물 베른슈타인, 카우츠키, 트로츠키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다. 여기서 그는 크게 세부분으로 시대를 나누어 시대별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첫 번째는 제1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엥겔스에 이어 제2인터내셔널의 성장과 와해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를 설명했다. 그 뒤 두 번째로 제3인터내셔널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레닌과 트로츠키를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스탈린과 대립하는 제4인터내셔널의 트로츠키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강연을 전개하였다. 박 교수의 이번 강연은 18세기 말-19세기 초 시대적 흐름, 제국주의 전쟁을 둘러싼 분열 1914년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1차 세계대전→1917년 러시아혁명→제3인터내셔널과 바이마르공화국→1928년 세계대공황과 나찌즘→제2차 세계대전이란 역사적 격변 속에서 마르크스 ‘사도’들의 행적에 대해 안내하며 그들의 현재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되었다.

 

정치적인 것, 적과 동지의 구별

박 교수의 말대로 현대는 가히 빈곤의 시대이다. 상대적인 빈곤뿐만 아니라 현대인은 경제, 환경, 육체, 문화에 있어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극복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지만 그 노력의 비용은 항상 국민의 세금이거나 노동자의 생존권인 반면 결실은 자본의 소유가 되었다. 박 교수는 레닌의 문제의식이 이러한 비대칭적 관계인 자본과 노동의 본질적 대립에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자본은 자기 가치를 증식하기 위해 노동을 임노동으로 포획해야 하는 데 여기서 노동자는 노동과 임노동으로 분열되며 이것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투쟁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레닌은 여기서 ‘당파성’을 본다. 이미 적대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세계에 우리는 한편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이라크전쟁이 보여주듯 보편성을 내세우는 것은 가장 기만적인 정치행위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정치는 타협이나 윤리가 아니라 적과 동지의 구별일 수밖에 없다. 레닌이 말하는 ‘당파성’이란 여기서 비롯된다.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체하지 못한다.” 관념적인 힘이 아니라 실제적인 현실의 힘을 강조하는 것인데 레닌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레닌은 이러한 실제적 힘이 화해되지 않는 당파성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주요 담론을 쥐고 있던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는 정치에서 당파성을 은폐함으로써 실제적인 혁명의 힘을 상쇄시키는 것으로 보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진행했다. 이들을 가르는 선은 제국주의와 민주주의를 보는 관점의 차이이다. 하지만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와 카우츠키의 중앙파는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결국 경제주의와 진화론으로 빠져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한, 스탈린의 사회주의 생산양식론 또한 생산력주의-경제주의에 빠져들었다고 그는 비판하고 있다. 이에 박 교수는 이런 경제주의는 변증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 생산력이라는 양의 발전이 그것의 사회화라는 질적 발전으로 자연스레 전환된다는 것이 수정주의와 경제주의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친구사이가 연인으로 발전하려면 친구였던 그 관계가 아닌 연인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시작이 필요하듯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전혀 다른 형식이기 때문에 자연스런 전환이란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가 레닌에게 주요한 과제였다는 것이다.

 

당파적인 외부성의 유물론

변혁의 주체에 대한 문제는 레닌에게 혁명을 관념화하느냐 현실화하느냐라는 문제였다. 레닌은 부르주아만의 정부를 세운 뒤 이후에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말한 멘셰비키나 변혁의 주체에서 농민을 제외한 트로츠키의 주장이 마르크스의 지나친 도식화 또는 관념화라 비판했다. 이미 발생한 혁명에서 그 혁명을 유지할 의지나 여력이 없는 부르주아를 내세우는 것과 러시아 농민의 처한 계급적 모순을 외면하거나 접어두는 것은 레닌에게는 혁명의 관념화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닌은 주어진 정세의 구체적 상황에 근거한 구체적인 전술을 내세웠으며 주어진 상황에서 그것이 최대한 ‘해방’을 앞당기는 전술이 될 수 있는 정치적 개입을 전개하였다. 그 구체적인 전술이 1905년 두 가지 전술을 둘러싼 논쟁과 ‘제국주의전쟁을 내전으로의 전화’, 1917년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이었다.

박영균 건국대HK교수

박 교수에 따르면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를 일으킨 사건은 제국주의전쟁이다. 카우츠키나 베른슈타인의 애매한 입장은 ‘반전평화’와 달리 레닌은 ‘제국주의전쟁의 내전으로의 전화’라는 극단적인 슬로건을 제출했다.그러나 이것은 제국주의를 정책으로 보는 카우츠키와 독점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단계로서의 정치로 본 레닌의 차이에 비롯되며 제국주의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혁명’뿐이라는 레닌의 당파적이고 실천적인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1917년 2월혁명 이후 왕년의 볼셰비키들을 비롯하여 부인인 크룹스카이야조차 ‘혹시 레닌이 미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당혹스런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을 레닌은 제출했다. 이것은 레닌이 1905년의 노동자?농민의 혁명적 독재라는 슬로건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년의 볼셰비키는 레닌의 이런 실천적 유물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따라서 레닌의 정치학은 철저하게 당파적이고 극단적인 외부성의 유물론이라고 박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양의 축척이 질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양질전화’가 아니라 ‘질적 형식의 우위성’이라는 관점은 레닌에게서 혁명이 자본주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새로운 형식의 창출이라는 사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레닌에게 그토록 많은 악명을 부여했던 ‘외부로부터의 도입’이라는 테제에 근거한 전위정당론인데 박 교수는 이러한 생각이 나타나게 된 사회존재론적 근거에 주목하였다.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은 지금의 시대에서 찾을 수 없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한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기본 테제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한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라는 것 반대 테제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이렇게 될 때 사회적 존재와 의식이 동형적인 것은 오직 부르주아뿐이며 노동자는 의식과 존재가 불일치하는 모순적 존재가 된다. 그러나 더 나아가 그는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력이 매스미디어나 학교와 같은 ‘이데올로기 지배 장치’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인간’ 그 자체의 물질적 토대를 갖는 이데올로기가 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박 교수는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등가형식에 너무나 익숙하며 그것을 깨기란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무의식적이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가진 물질성은 자본주의적 삶이라는 관계 형식 그 자체이며 여기서 노동조합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레닌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으며 ‘외부로부터 도입’이라는 테제를 통해서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형식으로서 전위당 노선을 제출한 것이다. 여기서 당이라는 조직 형식은 노동자들의 내적 분열을 포획하는 자본주의에서의 토대-상부구조의 동형성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레닌의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정치적 질서와 사회변혁의 틀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있어야 할 것’을 창출하는 권력의 의지적 집합체이자 새로운 대중의 정신을, 대중 스스로 창출하게 하는 ‘창조자요 선도자’의 역할을 한다. 박 교수는 레닌이 전위정당을 설명하며 주목하고자 한 것은 일반적으로 그를 비판하는 소위 먹물들의 지도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적 정치의식으로 조직할 수 있는 ‘형식’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닌은 노동조합적 경제투쟁, 노동조합적 정치투쟁, 사회민주주의적 정치투쟁 등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즉, 임금노동 안에서 존재하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운동은 경제투쟁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노동법 개정과 같은 투쟁은 레닌이 말하는 본질적 의미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정치투쟁이 아니라 노동조합적 정치투쟁으로서 경제투쟁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레닌

박 교수는 지젝의 말을 빌어 ‘스탈린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자기통치라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레닌의 기획은 자유주의와 대의제 속에서 발생하는 이데올로기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로자와 그리고 후세에서 진행되는 비판에서 레닌의 가장 큰 죄목은 당의 관료화와 민주주의의 파괴였다. 그러나 우리가 대의제에 익숙해지면서 자기통치라는 민주주의 가장 기본 덕목을 잊은 건 아닐까? 박 교수는 국민의 집합적 의지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는 마키아벨리를 인용하면서 레닌과 그의 당이 추구하고자 한 것을 보다 깊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카우츠키나 베른슈타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강조는 본질적으로 서구적인 의회체계, 보통선거권과 정당체제에 기초한 대의제적 민주주의만을 민주주의로 사고하는 데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되새겨보면 투표일을 제외하고 우리가 스스로를 통치한 적이 있을까? 물론 직접민주주의로 가기에는 난관들이 많다. 그러나 레닌은 이 길을 가고자 했으며 소비에트는 그런 형식 중에 하나였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카우츠키-베른슈타인의 민주주의와 레닌의 민주주의는 서로 그 개념이 다르며 이 개념의 차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마치 레닌은 반민주주의자, 독재의 옹호자, 전체주의자로 읽게 된다고 하면서 본질적으로 레닌은 더 철저한 민주주의를 추구하고자 했으며 그것이 그의 실패를 낳은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박 교수가 보기에 소련의 붕괴의 원인은 역사적으로 그 연원을 올라가보면 레닌의 이런 기획에도 불구하고 인민의 ‘자기통치’를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주체형성과 ‘직접민주주의라는 통치형식’을 창출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즉, 코뮌이라는 직접민주주의의 통치형식이 소련에서는 당과 소비에트의 역전으로 집행기구로 전락한 데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소련 붕괴에 대한 책임의 주체로서 스탈린과 레닌을 완전히 나누는 데 반대한다. 물론 그 둘의 결정적 차이가 있으며 이는 레닌의 말년에 트로츠키와 레닌이 스탈린에 대한 반관료주의투쟁을 전개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박 교수는 스탈린이 왜 권력투쟁에서 승리했는지, 그리고 당관료들이 어떻게 스탈린을 중심으로 소련의 권력을 장악했는지를 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맑스주의 안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레닌이 실패한 곳에서 레닌을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레닌의 실패를 베른슈타인이나 카우츠키를 통해서 보완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베른슈타인이나 카우츠키의 민주주의는 대의제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으로서, 레닌보다 퇴행적이기 때문이다.

이날 강연은 긴 시간 지속되었다. 3시간이 넘게 지속된 강연을 마치고도 끝없는 질문과 토론이 오갔으며 강연은 결국 11시가 넘어서 끝났다. 이 시대에 ‘무장한 예언가’이자 혁명적 힘의 철학인 레닌의 부활에 관심이 주목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시대가 더 이상 그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실패하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옛날의 공식들을 붙잡고 공상적이고 낭만적인 열정을 쏟아내는 것일까?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가야 할 것이다. 다만 확실한 건 이 강의실에서 다루어진 레닌은 열정적으로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사유의 고리들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21세기에도 마르크스는 살아 있다, 21세기의 모습으로-마르크스, 엥겔스[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①

21세기에도 마르크스는 살아 있다, 21세기의 모습으로[마르크스주의 사상사] -①

 

강사 : 서유석(호원대 교수)
후기 : 이원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유령이 다시 돌아오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원래 상갓집에는 손님이 많이 온다지만, ‘죽은 개’ 그것도 동구권 붕괴 로 사망선고를 받은 지 20년이 된 ‘유령’의 제사치고는, 참석자들의 발걸음은 너무 가벼웠고 기대에 차있었다. 하나 둘 차던 좌석은 어느새 빼곡히 찼고, 심지어 창가에 둔 임시의자들에도 참석자들의 뭔지 모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한철연)가 공동주최하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사>는 상갓집이 아닌 잔칫집의 분위기로 3월 8일 16강 대장정의 첫 막을 올렸다. 추억과 기대를 품은 희망은 엄연히 다르다. 추억은 열정을 끌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2008년 서구 금융위기 이후 월가 점령 운동과 같이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열정은 130여 년 전에 죽은 마르크스에서 어떤 기대를 품고 다시금 그를 불러내고 있다.

이번 강연은 박제화된 마르크스를 박물관에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2012년의 살아있는 현실에서 마르크스와 그 사상사를 만나는 것이었고 그것이 강사와 참석자 모두의 바람이었다. 젊음의 에너지가 넘쳐 보이는 대학생부터 흰 머리의 노신사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참석자들이 모인 가운데 김성민 한철연 회장(건국대 교수)의 간단한 인사말로 16주간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첫 강연을 맡은 서유석 호원대 교수는 강연에서 마르크스사상의 세부적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키워드를 짚으면서 마르크스사상사의 주요 논점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21세기의 마르크스의 유효함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전체 강연의 서론 역할을 했다. 전체강연의 서론 격인 강연이기에 서유석 교수의 강연은 거시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어제와 오늘의 과제에 대해 안내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보적 사상들과 역사의 목마름

▲ 서유석 호원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서 교수는 현재 학계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지위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1989년 동구권 붕괴 이후 마르크스에 대한 회의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서구 학계에서도 일어났다. 서구의 주류 경제학에서는 마르크스는 이미 역사 속 연금술사였고 이는 사회과학이나 철학계에서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인기 상품이 사라졌다고 그 모든 수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듯 여전히 진보 사상에대한 수요는 대중 속에 남아있었고, 본디 자본주의는 수요에 대해서라면 충성스레 응답하는 의리가 있는 체제인지라 마르크스의 철학과 방법론이 아닌 다른 진보 사상으로 그 수요를 채우려 했다.

서 교수는 이러한 맥락에서 동구권 붕괴 이후 서구의 진보적 학계는 남은 대안으로서 미국의 존 롤스와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 그리고 프랑스의 에드가 모랭 등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미국의 진보적 정치철학자 N. 프레이저는 롤스로 대표되는 (재)분배 정의와 하버마스/호네트로 대표되는 담론과 인정의 정치를 20세기말 진보의 최대 과제라고까지 치켜세웠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런 대안들은 과거 수정주의 논쟁에서 마르크스(주의)가 거부한 대표적인 반대입장들이다.

서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사상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다만 파생되는 문제들만을 개선하려는 시도들이요, 무엇보다도 분배과정을 포함한 제 사회과정의 바닥에 있는 생산관계의 근원적 착취구조에 대한 고민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마르크스가 아나키즘이나 수정주의와 그토록 격렬한 논쟁을 벌인 맥락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의 이러한 지적은 지난 20년 동안 마르크스주의를 대체하려 시도한 여러 진보적 사상과 이념이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또 사민주의, 복지국가, 신사회운동, 생태주의, 소수자 운동 등의 신조류 속에서도 왜 역사가 채워지지 않는 허기 속에서 계속 목마름에 시달렸는지 잘 알려준다.

물론 서교수의 비판 어린 해석이 죽은 마르크스의 뇌를 복원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탈마르크스적 관점이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지점을 마르크스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기위해서는 잠시 죽은 마르크스를 다시 불러내 다시금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인간해방을 향한 끝없는 도전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만큼 다양한 해석과 오해를 낳은 학자가 있을까? 대표적 예로, 그의 정치학, 특히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을 들 수 있다. 20세기 독일 철학자 포퍼는 이런 모습의 마르크스를 히틀러와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전체주의의 선구로까지 묘사한다.

하지만 서 교수는 마르크스가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언급했는지, 그리고 1864년 이후 제1인터내셔널에서 이 문제를 두고 아나키스트들과 왜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혁명은 프루동이나 바쿠닌이 주장하듯 대중이 권력을 쟁취한다고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생산관계, 소유관계의 변혁이 곧 혁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혁명의 과도기 단계에 노동자 계급이 소유관계 재편의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 주장의 핵심이다. 당시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일정 단계에 이르면 인구의 대부분이 노동자 계급이 될 것이라고 믿었었다. 서 교수는 마르크스가 바쿠닌파와 논쟁할 당시 테러와 폭력이 아니라 오히려 의회전술을 중요시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 교수는 국가주의와도 분명한 경계를 그은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마르크스는 독일 사민당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라살(F. Lassale)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라살은 일종의 국가주의자로 국가를 계급 중립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이용하여 자본가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리라 믿었다. 마르크스는 그가 자본주의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에 변질될 것이라 비판했다. 결국 라살은 자본가에 대한 공격을 위해 당시 지주그룹(융커)를 대표하는 비스마르크와 타협을 하고 비스마르크식의 국가를 통한 개혁노선에 동의함으로써 수정주의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면 마르크스의 핵심 주장은 무엇일까? 서교수는 마르크스주의 키워드를 5가지로 뽑는다.

1) 역사적 유물론

2) 자본주의 비판

3) 혁명과 계급투쟁

4) 공산주의의 전망

5) 인간 해방에 대한 열망

 

경제구조인 토대가 정치, 문화구조인 상부구조를 떠받치는 것으로 보고, 그러한 문제의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서 교수가 주목한 마르크스사상의 첫 번째 키워드인 역사적 유물론이다. 한 사회를 설명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변혁하는 데 있어 경제적 토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문제의 근원인 경제관계는 그대로 두고 진행되는 재분배론, 복지론의 한계가 여기서 지적된다. 철학자 마르크스가 경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비판은 자본주의의 부정이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한다. 역사발전과정에서 자본주의 성숙한 생산력은 공산주의라는 인간해방 단계의 주요한 밑거름이 된다. 다만 그 역할을 다한 자본주의는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모순은 마르크스는 자본을 생산하는 과정에 대한 변혁을 통해서만 그 극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세 번째는 혁명과 계급투쟁인데 서 교수는 강연에서 혁명을 병의 근원을 찾아 바꾸는 것이라 비유했다. 마르크스 이전에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존재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기독교의 신부들과 수도승들 사이에서 나타난 것으로 신비주의적이거나 종교적인 색채가 강했다. 반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에 대한 분석과 계급의 관점에서 혁명을 다룸으로써 혁명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혁명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인간해방에 대한 현실성을 제시함으로써 이상사회를 천상이 아닌 지상에 구현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마지막인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대한 전망과 이어진다. 공산주의란 자본의 질곡과 국가의 억압이 없는 사회에 대한 전망이요 그리로 가는 운동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마르크스의 인간해방에 대한 열망으로 볼 수있다.

서 교수는 마르크스의 이러한 열망을 제1번으로 놓고 의도적으로 제일 마지막에 설명했다. 알튀세나 일군의 사회과학자들은 청년마르크스와 후기마르크스를 구분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에서 휴머니즘을 도려낸다. 그러나 서 교수는 창조적 노동을 하는 주체이자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결코 마르크스가 버린 것은 아니라 역설한다. 천지개벽이나 홍길동만을 기다리던 민중들에게 마르크스는 인간 자신의 힘으로 인간이 해방될 수 있는 현실성을 제시했다.

따라서 서 교수는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적 현실성에 대해 다시금 주목해한다고 설명한다. 마르크스는 때에 따라 의회전술도 긍정했으며 과도기적 전략에 대해서 유연하게 대처했다. 서 교수의 이런 지적은 그 동안 마르크스를 도식화시키고 박제화 시켜온 행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21세기에도 마르크스는 살아있다. 다만 21세기의 모습으로

서 교수는 이번 강좌의 흐름에 따라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을 간략히 요약하고 앞으로 마르크스주의가 나아갈 점에 대해 설명하면서 강연을 정리하였다. 자본주의의 붕괴 조짐이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의 전략에 대해 역설하지만 개량주의로 기우는 베른슈타인, 자본주의 안에서 분노뿐만 아니라 설득과 도덕적 동의가 발생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해 도덕적, 지적 동의로서 헤게모니의 확보를 역설한 그람시, 사회주의로의 전환에 있어 인간의 실천과 상부구조의 역할을 설명한 루카치, 자본주의에서 인간이 전체주의에 빠지는 이유와 마르크스적 문제의식에 무의식 개념을 접목시키는 프랑크푸르트학파등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사는 마르크스의 인간해방에 대한 고민을 21세기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19세기의 마르크스는 성인이 아니다. 그의 시각 모두가 시공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며 그가 보지 못한 것도 있다. 서 교수는 복지국가와 파시즘의 탄생을 마르크스가 미처 보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복지국가는 국가주의자들의 회유이자 서구의 식민지배 착취의 전리품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시민운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또 복지국가 덕에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예상과 달리 분노로 가득차지 않고 도덕적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달하면 보편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이 각성하고 허위의식을 가진 부르주아에 대해 일관적 비판의식을 가질 것으로 여겼으나 오히려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권위주의에 복종하는 파시즘이 나타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는 그가 제시하지 못한 문제에 이미 어느 정도 정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예상 밖으로 자본주의는 건재함을 과시하는 이 시대, 그가 다시 요청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복지국가의 헤게모니는 항상 자본에 대한 분노를 잠시 가라앉히는 임시방편의 역할만 자임한다. 따라서 자신의 유지를 위해 민중의 피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 근원적 성찰은 여전히 마르크스를 이 시대에 부활시킨다. 사회의 경제적 토대에 주목함으로써 문제의 뿌리에 접근하려는 마르크스의 과학적 분석은 여전히 그 유효성을 지닌다.

또 혁명의 시대에도 의회전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그의 유연성은 마르크스주의가 외골수임을 거부한다. 마르크스는 “시대 속에 문제가 있고, 시대 속에 답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구체적 현실 분석과 시대의 문제에 주목할 것을 요구했다. 파시즘이 대두할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에 유연히 대처하지 못하고 또 일부는 오히려 거기에 편승한 것은 도식화된 마르크스주의 안에 갇혀 시대의 문제를 읽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서교수는 마르크스가 오늘날 살아있다면 한국사회 진보의 의제들인 경제개혁, 정치개혁, 생태, 여성, 노령화, 교육, 부동산, 미디어, 균형발전, 인권 등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을까 하는 물음을 던졌다. 강연은 우리 앞에 살아 움직이는 현실 속에서 인간의 문제를 끝없이 고민하고 제시한 마르크스의 문제의식 자체가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라는 배움을 남기고 다음 주의 주제로 넘어갔다.

강연을 마친 후 약 20여명의 참석자가 남아 첫 강의에 대한 평가 겸 자신을 소개하는 뒷풀이자리를 가졌다. 다양한 삶의 과정만큼 다양한 참가사연들의 만남이었다. 사업가, 학생, 문화평론가, 뮤지컬배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참석자들이 자신을 소개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친목을 다졌다. 중년들은 젊은 날의 열정 또는 삶을 되새기며, 청년들은 오늘의 삶을 고민하며 강연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맥주 캔의 작은 용량과 늦은 시간 때문에 아쉬운 자리는 길게 가지 못했지만 남은 15주간의 여정에 기대를 품으며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의 첫 밤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세상의 근원’과 여성의 몸 [청춘의 고전 시즌2]-②

?[청춘의 고전 시즌2 /그림으로 읽는 철학] – ②

??? 일시: 2012. 4. 14.?(홍대입구 상상마당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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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근원’과 여성의 몸

– 구스타브 쿠르베의〈세상의 근원〉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자의 시선 –

 

강연:? 이현재 (서울시립대 HK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법적 담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명 영화감독이 이 작품을 소재로 영화를 제작한 바 있으며, 방송통신심의위원인 법학자가 표현의 자유와 음란물 판단 기준에 관한 법적 토론을 목적으로 이 작품을 블로그에 게재한 후,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을 여성주의 철학자의 시선으로 보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

청춘의 고전(2) ‘그림에 say’의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이현재 서울시립대 HK교수(이하 이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여성주의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여성 철학자이다. 이교수는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후 지금까지 줄곧 논문과 책들을 통해서 여성주의에 관한 일관된 철학적 담론을 제기하고 확산시키고 있다. 이교수가 이번 강연에서 주제로 제시한 것은 ‘쿠르베의과 여성의 몸’이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은 곧 ‘세상의 근원이 여성의 성기임’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의 성기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여러 가지 서사를 통하여 ‘여성의 성기는 세상의 근원이다’라고 답하는 것은 결국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으로, 이 답으로부터는 아무런 추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 이 물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답하는 것은 그 ‘무엇’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이교수의 답은 이것이었다. “여성의 성기는 ‘없음’이다.” 이 답은 단순한 추론을 넘어선 차원의 해석이다. 이 해석은 쿠르베의 작품에서부터 “여성의 성기는 ‘없음’이다.”라는 명제가 직접적으로 도출될 수 없다는 점에서 추론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 앞에선 감상자의 단순한 느낌도 아니다. 이 해석은 그러한 차원을 넘어선 철학적 해석이다.

▲ 이현재 서울시립대 HK 교수 ⓒ프레시안(민정훈)

1. 쿠르베의 시선

이교수가 여러 수강생들에게 쿠르베의 작품을 보여주고 그림이 어떻게 보이는 지를 물었을 때, 수강생들이 답한 느낌은 다양했다. 강의실에는 지난 첫 번째 강의에서처럼 남녀노소의 다양한 수강생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만큼 답도 다양했다. 이교수는 수강생들의 반응을 살핀 후, 크리스틴 오르방이 쓴 소설 『세상의 근원』(함유선 역, 열린책들, 2001)을 소개하면서 쿠르베가 그림을 그릴 때 그림의 모델이 되었던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쿠르베의 시선을 이야기하며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하였다. 이 소설을 통해서 이교수가 찾아낸 시선은 여성의 몸을 마치 법의학자와 같이 보는 시선이다. 즉, 치밀하게 계산하고 분석하고 철저하게 따져보는 시선이다. 그러면서 대상을 완전히 주관에 따라서 만들어 내는 시선이다. 이 시선은 단지 화가 쿠르베의 시선이라기보다는, 남성적인 시선이다. 그리고 이 남성적인 시선이 대상을 규정하는 서양 철학의 근본 원리이다. 이 남성적인 시선을 통해서 대상을 보아왔기 때문에 서양 철학은 본질적으로 남성중심주의에 빠져있다는 것이 이교수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 시선이 서양 철학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에 철학은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를 도식화 해왔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는 사실 서양 철학이 은폐하고 있었던 소위 불편한 진실이었다. 이교수에 따르면, 서양 철학은 남성과 여성을 둘로 나누면서 이 둘을 수평적인 둘이 아니라, 위계적인 둘로 구분하였다. 그래서 서양 철학에 의해서 남성과 여성은 남성이 여성의 위에 있는 위계적인 이분법으로 구분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계적인 이분법의 의미가 은폐되어 있는 철학의 근본 개념들이 바로, 이성과 감성, 마음과 몸, 문화와 자연의 구분이다. 이 구분에서 앞에 있는 것이, 플라톤 이래로, 줄곧 뒤에 있는 것에 대한 우위를 점유하고 있었다고 이교수는 언급하였다. 여기에서 이교수는 “앞에 있는 것은 스스로가 자기를 정립하는 능동적인 힘이 있는 것이었으며, 그에 반해서, 후자의 것은 전자에 의해 정립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고 말하면서, “서양 철학사에서 이성적인 것은 항상 남성적인 것이었고, 감성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이었다”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남성적인 것을 여성적인 것에 앞서는 위계적인 이분법을 고수하기 위해서 서양 철학이 끊임없이 정립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남성적인 것의 근원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성의 근원, 마음의 근원, 문화의 근원이었다. 그런데 이 근원을 정립하고자 할 때 철학이 목표로 삼았던 것은 사실 ‘남성적인 것의 근원은 다름 아니라 남성적인 것에 있다’라는 결론이다. 그 남성적인 것이 우월함을 확인하기 위해서 서양 철학이 탐구하였던 것이 바로 남성적인 것의 근원을 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 고귀한 것, 다시 말하자면 현실을 초월해 있는 것, 이상적인 것에 두는 것이었다. 그 근원은, 간단하게 말해서, ‘있음’과 ‘없음’ 중에서 ‘있음’이며, ‘있음’ 중에서도 ‘꽉 차 있음’이다. 그래서 이교수에 따르면, 서양의 철학은 바로 이 ‘꽉 차 있음’에서 출발해서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온다는 것을 정립한 것이다. 그 근원으로부터 위계질서를 세우면, 사유와 세계는 보편성, 완전성, 절대성에 따라 법칙화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의 철학은 남성 우위의 철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의 이데아에서부터 헤겔의 절대정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학이 바로 남성 우위의 철학이었다”고 이교수는 말하였다.

ⓒ프레시안(민정훈)

2. 쿠르베의 혁명성과 한계

이교수는 쿠르베를 양가적으로 해석하였다. 하나는 혁명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계였다. 우선, 쿠르베는 남성적인 것의 시선이 감추고 있던 진실을 들추어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쿠르베가 들추어낸 진실은 남성적인 것의 시선을 아무런 미화나 신비화 없이 추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즉, 높은 곳, 천상적인 곳, 이상적인 곳으로 향하던 남성적인 것의 시선을 낮은 곳, 지상적인 곳, 구체적인 곳으로 되돌리면서 남성적인 것의 시선이 지닌 문제를 사실적으로 들추어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쿠르베가 여성의 성기가 세상의 근원임을 보여줌으로써, 이전까지 믿어왔던 남성적인 것의 근원이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여성적인 것이었다는 진실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성들이을 보고 느끼는 불편함은 곧 세상의 근원이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적인 것임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남성 우위의 도식이 위협 받는 불안감에 기인한다고 이교수는 설명하였다. 여기서 쿠르베는 동시에 한계를 드러내게 되는데, 그 한계는 사물을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 대상이 되게끔 하는 남성적인 시선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작품에서 그려진 여성의 몸은 마치 해부학 실험실에 놓여 있는 죽은 몸 혹은 덩어리로 보이게 하며, 그러하기에 여성의 몸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앞에 고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림에서 그려진 여성의 몸은 가슴에서부터 성기까지 잘라졌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있는 입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쿠르베의 시선은 여전히 대상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과거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이교수는 지적하였다.

그래서 이교수는 “쿠르베가 여성의 성기를 세상의 근원으로 발견했지만, 그 여성의 성기는 결핍, 없음으로 규정된다”고 말하였다. 여기에는 남성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철학적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데, 그 논리는 바로 ‘있음’으로부터 ‘없음’을 규정하는 이분법적 규정이다. 이교수는 ‘있음’과 ‘없음’을 기호로 표현하면, A와 ~A가 된다고 언급하면서, ‘없음’은 다름 아니라 ‘있지 않음’을 뜻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자가 곧 남성이고 후자가 곧 여성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교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끌어들이면서 프로이트가 주목한 것은 바로 “남성의 성기는 ‘있음’이고, 그 ‘있음’이 ‘있지 않음’으로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남성에게 있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형성한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곧 ‘없음에 대한 두려움’인데, 그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는 그 ‘없음’이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음’은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탐구하고자 하는 신비감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끝까지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게 되면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없음’ 대해서 이교수는 라캉의 말을 인용하면서 깜깜한 동굴, 구멍, 비어 있음을 통해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이교수는 “무엇을 안다는 것은 곧 알지 못하는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그 대상을 정복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인식은 곧 정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곧 서양의 주류 철학사이자 서양 중심의 문명 형성사였다. 다시 말하면, ‘있음’을 통해서 ‘없음’을 정복하여 대상화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곧 철학을 통한 계몽의 과제이자 문명의 발달 과정이었다. 이 과정의 근저에 깊게 흐르고 있는 것이 남성 우월주의였다. 이런 의미에서 이교수는 “‘있음’으로서의 남성은 구멍, 비어 있음, 무지의 세계를 참지 못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없음’이 주는 공포감과 불안을 남성은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없음’으로서의 여성의 몸은 정복의 대상이 된다.

ⓒ프레시안(민정훈)

3. 남성/여성의 위계적인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플라톤 이래로, 육체는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것과 동일시되는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고, 인간은 가지적인 세계인 이데아에 도달하기 위해 육체를 영혼에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이 서양 철학의 주류를 형성하였다고 이교수는 말하였다. 그러면서 이교수는 “여성을 비본질적이고 종속적이기만 한 육체로 보았다는 통념에 문제가 있음을”지적하면서, 여성주의 철학자들이 여성에 대한 이러한 종속적 규정을 벗어날 수 있는 다른 개념을 철학사에서 찾고자 노력해왔고 그 성과를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그 세 가지 가능성을 찾는 핵심은 여성의 몸이 위계적으로 구분되어 오직 남성만 자기규정성을 가지고 있는 ‘있음’에 의해 수동적으로 규정되는 ‘없음’이 아니라, 여성의 몸이 자체적인 힘을 가지며 스스로 자기 규정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개념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서 위의 노력을 통해서 여성의 몸에 대한 기존의 철학적, 남성적 담론을 넘어선 새로운 담론의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성과가 마련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교수는 “위계적인 이분법을 넘어서서 ‘여성의 몸’이라는 개념의 능동적인 자기 규정성을 찾는 것이 여성주의 철학자의 과제”였다고 언급하면서, 이 개념을 찾기 위해 전 세계의 여성주의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노력해 왔음을 이교수는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를 플라톤의 ‘코라(chora)’, 이리가레의 ‘두 입술’, 그로츠의 ‘뫼비우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즉, 위의 세 개념을 통해서 남성/여성의 위계적인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규정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이 가능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강의 자료를 통해 준비해 왔으나 아쉽게도 약속한 강의 시간이 다 되어, 이 교수는 개략적인 설명을 통해 언급한 이후에 강의를 마무리했다.

강의가 끝난 후 곧바로 이어진 질문 시간에는 다양한 수강생들의 열띤 질문이 이어졌고 이교수는 하나하나 충실히 답하였다. 질문은 계속 이어져 8개의 질문과 답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진지하고 열의 있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열의는 다음 강연까지도 이어질 것이다. 다음 세 번째 강연은 4월 28일 6시에 상상마당 4층 강의실에서 열리며, ‘살바도르 달리의 과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이라는 주제로 김성우 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이 강연자로 나선다.

후기: 김민수 (한철연 회원)

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 [청춘의 고전 시즌2]-①

? [청춘의 고전 시즌2 / 그림으로 읽는 철학] – ①

??? 일시: 2012. 3. 24.?(홍대입구 상상마당 강의실)

??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

– 추사의 <세한도>와 사마천 ‘사기’ 속의 공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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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전호근 (경희대 교수)

 

“우리의 삶 속으로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인데, 시련이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날씨가 추워졌을 때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전호근 교수)

봄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토요일이라 젊은 청춘들로 북적대는 홍대 앞에도 여지없이 바람은 세차게 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휘감고 돌아 나갔다. 오전에 인왕산 자락에 갔었다가 휘몰아치는 돌풍을 만났던 필자는 ‘저 바람도 인왕산의 소나무를 한 바퀴 돌아 나왔겠지’라며 잠시 상념에 젖었다.

처음 찾아간 상상마당의 복합적인 건물 구조가 익숙하지 않아 간신히 계단을 찾아 4층 강의 공간으로 올라갔을 때가 5시 35분이었다. 한 눈에 들어온 넓은 강의 공간에는 5명이 앉을 수 있는 긴 책상이 14개나 두 줄로 줄지어 있었고, 그 뒤로 간이 의자가 30여개 넘게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유리창 밖의 세찬 바람과 가지런히 놓인 책상들이 하나의 풍경으로 보이는 뒤쪽의 간의 의자에 앉아 미리 준비되어 있던 두 쪽이 강의 원고를 천천히 읽으며 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 우산을 접듯, 바람을 접고 들어온 수강생들이 앞의 책상에서부터 하나 둘 씩 자리를 채웠고, 필자가 앉은 자리 앞에도, 옆에도 그리고 뒤의 맨 마지막에도 수강생들이 가득 찼다. 시간이 임박하여서는 급히 온 수강생들이 바람을 닫는 소리로 분주하였지만, 이내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오늘부터 시작하게 될 <청춘의 고전2-‘그림으로 읽는 철학>의 첫 강좌 – 추사의 <세한도>와 사마천 ‘사기’ 속의 공자 – 를 기다렸다.

6시가 되자 상상마당의 프로그램 기획 담당자가 인사말을 건넸다. 수강생들 중에는 지난해 <청춘의 고전1-영화로 읽는 철학>을 듣고 또 온 사람이 꽤 많았다. 잠시 후 기획 담당자가 예고한 6시 10분이 되자 드디어 오늘의 강사 전호근(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강의실로 들어왔다. 이렇게 하여 <청춘의 고전2-‘그림으로 읽는 철학>의 첫 강좌가 시작되었다.

‘인문학의 위기’ ‘철학의 위기’라는 세간의 표현이 무색하게 홍안의 청년에서부터 백발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수강생들이 자리를 꽉 메운 강의실의 풍경에 전호근 교수도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이렇게 많이 올지 몰랐습니다.” 다산, 연암, 추사의 원전 강독 강좌에 정평이 난 전호근 교수가 대중 강연에 나와 처음 던진 인사말이었다.

“인문학은 어려운 학문입니다. 그리고 제 강의도 그렇습니다.”라고 운을 떼며 전 교수는 곧바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인문학이 기성복을 사듯 몸에 맞는 적당한 것을 쉽게 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옷을 지어서 입는 것이라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 가며 직접 옷을 지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전교수의 설명이었다. 물론 그 옷을 만드는 과정에는 애써 짠 옷을 풀었다가 다시 짜는 실패의 경험도, 서툰 바느질에 손끝이 찔리게 되는 아픔의 경험도 함께 들어 있다.

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 겪는 어려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일상생활에 쫓기면서 기성복을 골라 입듯이 편안한 것만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고전은 불편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멀리 있으면서도 낮선 ‘어떤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전은 진리만을 말할 뿐인데, 진리와 멀어지게 된 거리가 고전을 어렵게 만든다. 고전 읽기의 어려움 정도는 현존 상황에 대한 익숙함 정도와 비례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 교수는, 『논어(論語)』를 예로 들어, 역사적으로 분서갱유를 당한 과거의 금기가 오늘날에도 ‘공자가 죽어야한다’ 혹은 ‘공자는 멍청이의 원조이다’라는 터무니없는 말로서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 시각에서 언급하면서, “우리가 고전을 어떻게 읽느냐가 바로 ‘고전’의 수준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좋은 책이란 현실이 진리를 외면할 때 금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역사적으로 우리의 선대 지식인들이 어떻게 고전을 읽어왔는지 안다면, 그 앎 속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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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한도에 담긴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

전 교수가 세한도에서 읽은 것은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이었다. 그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은 다름 아니라 성리학의 ‘리(理)’이며 이것이 사대부의 정신이었는데, 그 마지막 정신이 세한도에 있다”는 것이다. 창 밖의 세찬 바람도 저 멀리 달아나게 할 정신. 그 정신이 이 세한도에 있다는 것이다. 추사는 단지 ‘그림’만을 잘 그리는 제자보다는 먹이 스며들듯 정신이 깃든 ‘문자향’을 잘 드러낸 제자를 사랑하였다는데, 그 이유를 전 교수는 추사가 그 어느 것보다 더 높게 추구한 불멸의 정신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 교수는 ‘추사의 세한도가 왜 명작인가?’라는 물음에 대에 대해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단지 ‘그림’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자의 ‘향(香)’이라 할 수 있는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 교수가 강의 자료로 가져와 보여준 추사의 세한도 그림에는 우선 흰 여백이 있었다. 그리고 여백 한 가운데에 갈필로 그려진 소나무 두 그루와 문이 정면으로 나 있으면서 비스듬히 놓인 집이 있었고, 왼쪽에는 잣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오른쪽 상단에는 그림의 제목인 세한도(歲寒圖) 글씨가 있었고, 그 옆으로 제자인 이상적(李尙迪)에게 준다는 우선시상(藕船是賞)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이어서 추사(秋史)의 또 다른 대표적 호(號)인 완당(阮堂)이라는 글씨와 함께 본명인 정희(正喜)라 씌여진 낙관이 찍혀 있었다. 오른쪽 하단에는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이 낙관처럼 찍혀 있었다. 그 이외에 어떤 세찬 바람은 없었다. 4층 강의실 너머로 가로수들을 심하게 흔드는 바람보다 훨씬 더 거센 제주도의 바람이 불었을 법한데, 세한도에 바람은 없었다. 추사의 정신 속에는 바람이 이미 지나간 이후였다.

전 교수는 세한도가 그려진 때가 세밑 겨울이 아니라 의외로 여름이었다고 한다. 나무도 실제 소나무의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조선 문인화의 정수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언급하면서, ‘진경(眞景)’은 “눈에 보이는 단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둘러본 이후에 생긴 ‘참눈’으로 일체를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참눈’은 바로 문인(文人)의 정신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수는 겸재(謙齋)가 진경으로 산수를 보았듯, 추사가 세한을 보듯, 우리도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경(眞景)으로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전 교수는 하나의 예를 들었다. 예는 봉은사 판전현판(殿板, 1856) 글씨로 낙관부의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 암시하듯 추사의 마지막 글씨이다. 전 교수에 따르면, 이 글씨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보면 그저 초등학생 친구가 쓴 글씨로 “똥 싸질러 놓은 듯한 글씨”일 뿐이다. 이 말은 예전에 초등학생이었던 전교수의 딸이 추사의 글씨를 보고 했던 말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무거운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붓의 무게마저 내려놓은 노인의 마음으로 보면 “해탈하고 나서야 알 듯한 글씨”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말은 전 교수의 어느 벗이 일전에 대화를 나누다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이 예를 들면서, 전 교수는 “그림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삶을 통한 체험의 무게와 작품의 내면에 깊이 닿는 ‘순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체험의 무게가 무겁지 않으면 작품 내면의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학이나 예술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작품을 뚫고 나가는 ‘해탈’인데, 추사의 마지막 작품에는 그 ‘해탈’의 경지 즉,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도달한 경지가 있다는 것이 전 교수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전 교수는 이런 설명은 아무리 애써 말해도 작품을 보는 감상자에게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작품 앞에 마주선 감상자가 직접 자신의 경험 속에서 느끼는 그 ‘순간’을 반드시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면 말이란 쓸모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추사의 세한도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그림에 대해서 ‘이렇고 저렇고 어쩌고 저쩌고’ 말(say)하는 것은 어쩌면 아무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전교수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서 혹은 렘브란트의 말년의 자화상 앞에 설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언급하였다. 흔히들 모나리자에 대해서 색체의 원근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혹은 눈썹이 없어 미완성 때문이라는 등등의 말, 램브란트가 빛을 만들기 위해서 계란 흰자를 사용했다는 등의 말로서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경험의 ‘순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 교수는 고흐가 친구화 함께 미술전시관에 갔다가 램브란트의 작품 「유대인 신부」(1665년 작) 앞에 서서 몇 시간을 꼼짝 안하고 서 있다가 친구에게 “내가 이 그림을 2주 동안 계속 감상할 수 있다면 나의 수명 중에 10년을 줄여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작품을 볼 때에는 그러한 ‘순간’의 체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덧붙여, 전 교수 “나의 경우에는 10분쯤 줄여도 좋을 것”이라고 말하며, “어쨌든 10년이든 10분이든 수명을 줄여도 좋다고 인정한다는 대단한 것 아니냐”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유발하면서 청중과 호흡하는 강의를 진행해 나갔다.

 

▲ 전호근(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KT&G 상상마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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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추사, 태사공, 공자의 세한(歲寒)

“우리가 세한도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단지 그림의 이렇고 저러한 면이 아니라 그 그림 속에 담긴 추사의 생각을 보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전 교수는 세한도의 발문(跋文)을 읽기 시작하였다. 세한도의 발문은 단지 천만리 밖 먼 곳에서 여러 해에 걸쳐 책을 구해다가 추사의 유배지인 제주도에 가져온 제자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을 기록한 단순한 발문이 아니다. 발문에는 추사가 느낀 세한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 발문이 소나무와 잣나무 두 그루와 집 한 채가 있는 그림과 함께 세한도라는 작품이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추사의 발문에는 옛 성인인 태사공(太史公)과 공자(孔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낀 세한의 의미가 함께 들어 있다.

“태사공은 이르길, ‘권세와 이익으로 만난 관계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고 나면 사귐 또한 끝난다.(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流)’고 했다. 그대 또한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상의 한 사람인데 초연히 스스로 도도히 흐르는 권세와 이익의 밖에 있으니 그렇다면 그대는 권세와 이익으로 나를 보지 않는 것인가? 태사공의 말이 틀렸단 말인가?” 이 말은 곧, 태사공의 시대에도 그렇고 추사 당대에도 그러하듯, 세상의 도도한 흐름은 오직 권세와 이익을 좇아 그것을 얻기 위해 마음과 힘을 그토록 허비하는데, 그러한 권세와 이익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바다 멀리 초췌하고 바싹 마른 늙은 추사에게 오기를 마치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이익을 좇아가는 듯 하는 제자 이상적을 고맙게 여겨 추사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우리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전교수는 태사공의 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감내해야 했던 세한의 계절은 곤궁함이고 누추함이고 고독함이었다. 전 교수는 “우리는 누구를 볼 때, 그 사람이 이룬 훌륭한 성취만을 보고 그 사람의 삶을 모른다.”고 언급하면서 추사의 실질적인 삶은 비참했다고 언급한다. 전 교수는 비참했던 추사의 제주도 유배 생활은 당시 그가 남긴 수많은 서간들에 잘 드러나 있다고 언급하면서, 가족들과 친지들에 보낸 서간들에는 기가 막히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숱한 풍토병과 눈병에 시달려 약을 구해달라고 하는 등등의 구구절절한 내용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추사는 겨울에는 한풍으로, 여름에는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고난과 역경의 삶을 연명해야 했었다.

추사의 세한도에 담긴 단아하고 굳건한 정신은 단지 도도하고 강건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배로 올 수밖에 없었던 세상의 풍파, 즉 세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세한의 계절에서부터 비롯해서 세한의 계절을 이기고 난 이후에 생겨난 것이 흔들림 없는 ‘불멸의 정신’이다. 그 정신이 흔들림 없이 표현된 것이 다름 아니라 세한의 이후에도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 두 그루, 그리고 고즈넉한 집이다. 이렇게 보면, 추사의 세한도에는 세한의 계절을 모두 거치면서도 그 시간을 이겨내고 극복한 숭고미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 정신에는 세한의 계절에 놓인 세계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태사공에 이어서 전 교수는 발문에 적힌 공자의 말을 읽어나갔다. “공자께서 이르시길,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고 하셨다. 이 말은 『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을 태사공이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온 세상이 어지러워진 뒤에야 비로소 깨끗한 선비가 드러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언급하면서 인용한 것이며, 이 말을 다시 추사가 발문에서 인용하여 적은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해 추사는 발문에서,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계절을 통틀어 시들지 않으니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歲寒之前) 그대로 똑같은 소나무와 잣나무일 뿐이고,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歲寒然後) 똑같은 소나무와 잣나무일 뿐인데, 성인께서는 단지 날씨가 추워진 뒤의 소나무와 잣나무만을 칭찬하셨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이어서 제자인 이상적이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 그리고 추워진 후에도 변함없는 것을 언급하면서, 추사는 “그렇다면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것이 없겠거니와 이후의 그대는 또한 성인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적고 있다.

전 교수는 세한지전(歲寒之前)과 세한연후(歲寒然後)를 구분하면서, 소나무와 잣나무가 날씨가 추워진 이후에도 여전히 굳게 푸르른 것은 변함없는 ‘인(仁)’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전교수는 직접 강의 자료로서 준비해온 사마천의 「백이열전」 중의 한 글을 읽으면서 탐욕스러운 재물에 목숨을 걸기보다는 인덕을 쌓고 개끗하게 행동했던 백이, 숙제(伯夷, 叔齊)의 ‘인(仁)’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공자의 70명 제자 중 유독 배우기를 좋아하고 성품이 훌륭했다는 ‘안연(顔淵)’의 이야기를 했다. 비록 백이, 숙제는 굶어 죽고, 안연도 쌀겨조차 배불리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여 끝내 일찍 죽고 말았지만, 깨끗한 선비는 세상의 권세가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부귀를 가볍게 여겼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전교수는 온 세상이 어지러워진 이후에야 그 속에서 깨끗한 선비가 드러남을 백이, 숙제, 안연을 통해서 이야기 한 것이다. 이렇듯, 추사가 태사공과 공자와 함께 느낀 세한의 의미는 곧, 세한의 계절을 겪은 이후에야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문인(文人)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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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날씨가 추워진 이후(歲寒然後)에 먼 곳에서 찾아온 벗

공자는 『논어』 「학이(學而)」편에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냐(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사람이 알아주지 못해도 노엽게 생각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냐(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라고 말했다. 사람이 알아주지 못해도 노엽지 아니한데, 날씨가 추워진 이후(歲寒然後)에도 먼 곳에서부터 벗이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아마도 추사는 멀리서부터 찾아온 제자 이상적과 그가 스승의 오래된 벗으로부터 구해 온 책들을 보며, 젊은 시절에 청나라 연경에서 함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기쁜 시간을 함께 보낸 스승과 벗들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전 교수는 강의 마무리 즈음에 이르러, ‘먼 데서 찾아 온 벗’이라는 화두를 꺼내며 ‘1984년 5월 어느 날… 버디 있어 먼 데서 찾아오니…’라고 적힌 강의 프리젠테이션 화면을 띄웠다. 1984년 5월 어느 날은 전 교수가 눈물을 흘렸던 직접적인 체험이 담겨 있는 날이었다. 그날은 종로 어느 골목에서 젊은 날의 전 교수가 눈물을 흘렸던 날이었는데, 그 이유는, 코를 따갑게 만들며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자욱한 최루 가스 때문이었다. 아울러 전 교수가 눈물을 흘렸던 그 날은 또한 때마침 방문하여 종로 인근에 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그 가스로 인해 눈물을 흘렸던 날이었다. 그 때, 요한 바오로 2세가 어느 연설장에서 한 첫 말이 “버디 있어 먼 데서 찾아오니….”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전교수의 추측에 따르면, ‘버디 있어’라고 잘못 발음한 것을 보니 누가 원고를 대신 써준 것이 아니라, 교황이 직접 썼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오면서 “2,500년이라는 시공간을 관통해서 왔었다”고 말하였다. 전교수에 따르면, 요한 바오로 2세는 논어를 읽고 감명이 들어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를 첫 인사말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 벗을 너무 즐겁게 반겨서 최루 가스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전 교수가 개인적 체험을 거론한 것은 단지 주관적일 뿐인 한 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었다. 전교수는 사마천의 어느 한 문장을 기억하여 말하면서, 역사가는 “지나간 일을 기록함으로써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다.(述往事思來者)”라고 말하였다. 즉, 역사가의 서술 작업은 과거를 정확하고 진실하게 기술함으로써 과거 속에 올바른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역사 서술은 문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적 존재이자 역사적 존재인 인간이 역사에 대한 책임이 없다면, 우리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아울러 미래 또한 아무런 전망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교수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4.19세대들은 후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알리는 데 성공했다면, 5.18세대들은 후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 속에 담긴 성과와 과오를 알려주는 실패했다고 언급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당대의 뛰어난 사람을 벗으로 사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교수는 이런 의미에서 “당대의 뛰어난 벗이 있어 직접 찾아갈 수 있다면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러나 만약 당대의 뛰어난 벗이 없다면, 옛 사람을 벗으로 사귈 수 있다”고 말한다. 옛 사람을 벗으로 사귀는 것이 곧 역사를 읽는 것이자 역사 속에 오래도록 남은 고전을 읽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이덕무(李德懋)가 “책을 읽다가 그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쉬운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늦은 시간까지도 강의실을 가득 메운 수강생들에게 “우리는 책을 읽다가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이 물음에 대해서 “만약 이 기준에서 볼 때, 우리가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면, 우리는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먼 곳’이란, 단지 지리적으로 이동 거리가 먼 곳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벗이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권세와 이익을 쫓아 자신의 온 정열을 쏟으면서도 벗을 보지 못한다면, 그는 ‘먼 곳’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먼 곳’이란, 시공간적 의미에서, 단지 지금으로부터 오래 전의 사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래 전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그의 생각을 문헌을 통해서 읽고 헤아리고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 벗은 아주 가깝게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교수는 고전이란 바로 우리가 벗으로 여긴다면 아주 가까울 수 있으면서, 그 반대로는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언급한다.

날씨가 추워진 이후에 추사에게 찾아온 벗은, 먼 곳에서부터 어렵게 책을 구해서 제주도로 찾아온 제자 이상적뿐만 아니라, 그 책을 전해준 당대의 벗들, 그리고 그 책 속에 담긴 아주 오래된 벗들이었다. 이 벗들을 만나 즐거운 마음에, 세한연후(歲寒然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가는 것을 알게(知) 된다는 공자의 말을 빌어, 추사는 비록 거리는 멀리 있지만 가까이 온 벗을 반긴 것이다. 그러면서 그 반가운 마음을 추사는 새한도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이 새한도를 받은 이상적이 그해 연경에 찾아가 추사의 벗들에게 그 마음을 보였을 때, 그 벗들 또한 즐겁고 반가운 마음에 서로들 찬시(讚詩)를 덧붙여 썼던 것이다. 우리도 세상살이의 풍파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지만, 벗들은 세한연후에야 비로소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더라도 바람이 지나간 연후에는 벗이 찾아온다.

전 교수는 강의 중반부에서 “예술가가 외롭고 고독한 존재인 줄 알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살아간다.”고 말을 하였는데, 어쩌면 우리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임을 정녕 몰라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진지한 ‘순간’을 삶에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혹은 불편한 진실로 여기고 살아간다. 전 교수의 말 속에는 전 교수가 추사의 ‘세한도’를 통해서 전해주고 싶은 결론이 암시되어 있었다. 즉, 우리가 외롭고도 고독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세상의 추운 한파를 견뎌 낼 때, 세한연후(歲寒然後)에는 먼 곳에서 벗이 오는 기쁜(樂)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의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강의실 밖에는 여전히 봄꽃을 시샘하는 세찬 바람이 불어 가로수는 흔들렸다. 하지만, 새한도 안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강의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안 전교수는, ‘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라는 시대적 화두를 던지며, “우리의 삶 속으로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인데, 시련이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날씨가 추워졌을 때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라는 말로 강의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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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찬 바람을 뚫고 가까운 곳에서 찾아온 벗

이윽고 강의의 여운이 남겨진 가운데, 청중의 질문 순서가 이어졌다. 첫 번째 질문은 “못된 사람이 잘 사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였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못된 것은 못된 것이라고 서술하는 것이 역사이고 사마천은 그렇게 했다. 사마천은 역사 속에 미래를 담은 것인데, 지금의 우리 상황은 사마천의 시대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역사를 서술하는 것 이외에도,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좀 더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하였다. 두 번째 질문은 “이상적이 가져온 책은 추사가 원했는가? 아니면 이상적이 알아서 가져온 것인가?”였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둘 다 맞다고 할 수 있다. 추사는 연경에 있던 벗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최신의 책들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는데, 제자 이상적이 그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가져온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답하였다. 그 외에 세 가지 질문이 더 이어졌고, 전교수는 차례대로 답하였다. 질문자 중에서는 일산에서 고등학생과 함께 온 어머니도 있었다.

‘너는 홍대 앞 클럽 가니? 나는 홍대 앞에서 철학한다.’라는 다소 시대상을 반영한 도발적인 문구로 상상마당+한국철학사상연구회+프레시안이 공동 기획한 <청춘의 고전>이 지난해 ‘영화+철학’으로 시즌1을 마친데 이어 올해 ‘그림+철학’으로 시즌2를 시작하였다. 시즌2의 제목은 ‘그림에 say’이다. 필자는 ‘그림’에 대해서 어떻게 ‘말(say)’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미학자이자 철학자이다. 그림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전호근 교수가 강의 중에 말했던 바와 같이,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이 없다면 부차적인 것이거나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인데, 어떻게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우선 감상자의 미적 체험이 없이는 보일 수 없는 그림을 누군가가 말로서 대신 체험하게 해 준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밖에 부는 바람 때문일지 아니면 시대적 요청일지, 여하튼 아직은 모를 어떤 힘에 의해 ‘그림에 say’라는 실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실험에 필자 또한 타의 반, 자의 반 쓰기로 약속한 ‘글쓰기(write)’를 시작하였다. 글쓰기에서 좋은 문장을 얻기 위해서는 손의 힘을 빼는 것이 필요할 터인데, 아마도 이것이 필자가 ‘그림에 say’를 쓰는 것에 더욱 더 필요할 것 같다.

소위 인문학의 위기, 철학의 위기를 겪는 동안 학자들은 현실과 대중에 다가가지 못했던 자기반성을 시도하였고, 이제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멀리 있는 것으로만 여겼던 ‘벗들’을 찾아 나섰다. 춘삼월이라 하지만 아직 봄꽃을 시셈하는 세찬 바람이 불어옴에도 불구하고, 그 바람을 뚫고서 상상마당 4층 강의실로 우산을 접듯 바람을 접고 ‘벗들’이 들어왔다. 벗이 있어서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만약 그렇다면 마치 제자 이상적이 먼 곳에서 찾아왔을 때 추사가 세한도를 건네며 고마움을 표현했듯이, 이제 우리의 선학자들도 ‘벗들’에게 어떤 울림의 말을 해서 고마움을 표현할지 기대해 볼 일이다. 울림이 클 때 벗들도,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學而時習之說也).

 

후기: 김민수 (한철연 회원)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1) [무세이온의 올빼미]

무세이온의 올빼미 – (1)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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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미(동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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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올빼미 /사진 : http://blog.aladin.co.kr/bootoyou

‘무세이온의 올빼미’는 음악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장으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올빼미를 ‘음악을 듣는 귀’의 아이콘으로 삼고자 한다. 우리가 귀로 여기는 귓바퀴는 바깥에서 감지되는 진동을 증폭하는 장치이다. 흔히 튀어나온 귓바퀴가 없는 올빼미를 귀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림 속 ‘가면 올빼미’의 귓바퀴는 바로 얼굴 전체이다. 우리는 밤낮 없이 일하는 비효율적인 일꾼인 반면, 가면 올빼미는 얼굴을 돌아 증폭된 소리를 감지한 덕에 천부적인 사냥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잠깐 사냥하고 종일 노는 부러운 존재이다. 우리에게도 귓바퀴가 없었다면 인류는 종일 놀면서 얼굴로 음악을 듣는 예술가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지복(至福) 속에서 과연 노래가 만들어질까? 인간은 다행히 귓바퀴가 있었기 때문에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연주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건 올빼미이겠지만 자연이 주지 않은 음악을 구성하는 건 고통 속을 더듬거리고 있는 우리와 같은 존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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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은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내게 말했다.
“언니, 난 왜 눈을 보면 화가 날까? 내 마음속엔 음악이 없어서인가 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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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메일에 답을 쓰지 않았다. 지은의 말은 ‘눈’에 대한 것도 아니고, ‘화남’에 대한 것도 아니고 ‘음악’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내 지은의 말은 내 귓가를 맴도는 화두가 되었다. 이 짧은 두 문장을 진지하게 생각해서 답하기 시작하면 불어나고 불어나고 불어나서 우주가 꽉 차버릴 것 같았다. 그 메일에 답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순간순간 그 말이 떠올랐고, 그의 말은 어떤 시의 한 구절처럼 내게 각인되었다. 그리곤 이렇게 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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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그 말이 곧 노래야. 너는 이미 노래하고 있어. 우린 항상 이렇게 노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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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은의 글에 대한 뒤늦은 답장이다. 그리고 노래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이 글에는 지은과 키비와 나의 아들과 그리고 나와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얽혀 있다. 음악은 이렇게 사람들의 영혼에 다리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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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과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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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감지하는 지름길은 그가 듣고 있는 음악을 함께 듣는 일인 듯하다. 젊은 시절 녹음 테입에 일일이 좋아하는 곡을 담아 선물로 건네는 행위는 정성들인 고백에 다름 아니었다. 좋아하는 친구가 즐겨듣는 곡은 이내 내가 즐겨듣는 곡이 된다. 친구가 좋아서 그의 노래를 좋아한 것도 같고,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닮았기에 친구가 되었던 것도 같다. 친구는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아이들의 경우는 좀 다르다. 아이들은 어느 나이까지는 음악 향유에서 부모가 끼치는 영향이 크다. 나의 아이들은 내가 즐겨듣던 ‘자우림’ 김윤아의 솔로 앨범 ?유리가면?에 수록된 전곡을 외고 있다. 비틀즈의 ‘오브라디 오브라다(Ob-la-di ob-la-da)’가 나오면 두들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두들기며 따라 부른다. ‘렛잇비(Let it be)’, 그리고 생각난 김에 ‘케세라세라(Que sera sera)’도 함께 부른다. 그리곤 뜻을 전해준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라는 ‘오브라디 오브라다’의 뜻, ‘그것인 채 두어라’라는 ‘렛잇비’의 뜻, 그리고 ‘무엇이 될 것이든지 될 그것대로 될 것이다’라는 ‘케세라세라’의 뜻을 아이들의 귀에 못이 박히게 전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사춘기를 겪는 아들의 MP3를 듣다가 그의 영혼(아들에 대해 이런 말은 좀 간지럽기는 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의 울림을 느꼈다. 다이나믹 듀오, 드렁큰 타이거, 화나, 가리온, 키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힙합 뮤직들이 아들의 가슴에 가득 차 있었다. 아들의 MP3에 담겨 있는 모든 노래를 즐기게 된 것은 아니다. 화나의 ‘엄마 지갑’ 같이 괴로운 주제를 다뤄 즐겨 듣게 되지는 않는 노래도 있다. ‘엄마 지갑’이 다루는 내용은 이렇다. 오락실 가고 싶은 국민학교 1학년생 병환이가 엄마 지갑에서 돈을 슬쩍한 뒤 엄마에게 고백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검은 옷의 낯선 형아의 말을 듣고 손을 댈까말까 망설이다 300원을 훔치려는 찰나, 엄마에게 들켰다는 내용의 가사이다. 여기서 병환이가 초등학생이 아니라 ‘국민학생’인 것으로 미루어, ‘어른, 너희도 엄마 지갑에 손 대며 크지 않았니?’라고 웅변하는 내용인 것이다. 내게도, 아들에게도 괴로운 주제이므로 패스.

화나의 음색은 정말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화나가 피처링한 드렁큰 타이거의 ‘주파수’는 즐겨 듣는 곡 중 하나이다. 화나의 가늘고 떨리는 색다른 음색은 그 음색 자체가 자기 주장으로 들렸다. 드렁큰 타이거의 ‘난 창작의 노예, 창작의 고뇌’를 외치는 ‘몬스터’에서 반복되는 ‘발라버려’는 지난 몇 년간 즐겨 부른 크라잉넛의 ‘말달리자’의 ‘닥쳐’만큼이나 신나서 부르는 대목 중 하나가 되었다. 키비의 ‘소년을 위로해줘’는 은희경의 [소년을 위로해줘]를 읽을 때 듣고 또 들었다. 가리온의 ‘소문의 거리’는 두 아들이 메타 파트와 나찰 파트를 번갈아 하며 부르는 틈에 나도 슬쩍 끼어 읊조린다. 이렇게 아들의 음악을 함께 즐기면서, 우리는 엄마와 아들에서 ‘친구’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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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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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heykorean.com

어떤 것을 즐기는 차원이 깊어지면, 대개 ‘이게 왜 좋게 느껴지지?’라는 질문이 슬슬 발동된다. 힙합의 묘미는 비트와 랩, 그리고 ‘힙합 정신’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묘미의 핵은 비트와 랩이라는 기술적인 요소보다 ‘힙합 정신’으로 수렴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팝에도 비트와 가사가 있다. 상대적으로 힙합에서 멜로디나 다양한 악기가 어우러진 화음 등의 여러 다른 음악 요소는 ‘뺄 수 있으나’, 비트와 랩은 힙합 음악에서 ‘뺄 수 없는 것’을 이룬다. 그런데 동시에 힙합은 비트와 랩만 있어도 ‘갖출 것을 다 갖춘’ 힙합 곡이 된다. 내면의 심장 박동을 표현할 수 있는 두들길 수 있는 무언가(심지어 아무것도 없을 때는 비트박스로)와, 하고 싶은 말을 들려줄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면 힙합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점, 그것이 힙합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음악 창작의 세계를 거대한 벽이라고 느끼지 않고 언제든 출입할 수 있는 세계로서 음악 창작을 향한 ‘오솔길’이 되어 주는 음악, 그것이 힙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트로트 정신’이라든가 ‘발라드 정신’이라는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록 정신’, ‘힙합 정신’이라는 말은 록 뮤지션이나 힙합 뮤지션, 혹은 향유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추구되고 의미화된다. 록 정신이 기성 세대의 권위와 그 폐해에 도전하려는 청년 세대의 저항 의식과 결부되어 있다면, 힙합 정신은 주류 (백인) 사회의 사회적·문화적 질서에 도전하려는 비주류 (흑인) 사회의 저항 의식과 결부되어 있다.

힙합 정신의 첫 번째 면모가 바로 이처럼 악기나 전문성에 호소하지 않고 최소한의 음악적 요소만 갖추어도 음악의 창작을 통해 억눌린 것을 표출하는 자유로움일 것이다.

힙합의 탄생은 1970년대 초 DJ들에 의한 것이었다. 디스코가 유행할 때 클럽에서 DJ가 간주 부분, 즉 가사 없이 비트만 나오는 브레이크(break)를 반복하여 틀어주면, 춤을 추는 사람들은 중앙으로 나와서 춤을 추었는데, 이들의 춤을 ‘브레이크 댄스’라고 하고, 이 춤을 사람들을 ‘브레이크 보이’, 즉 비보이(B-Boy)라고 불렀다. 이것이 거리 문화로 번져갔고, 거리 문화 중 낙서 그림, 즉 그래피티까지 결합되면서, 힙합 문화의 네 요소로 랩, 디제잉, 비보잉, 그래피티가 꼽히게 된다. 1970년대 말에 미국의 동부에서 시작되어 서부로 퍼져나간 힙합은 어느덧 청년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한국에서 힙합 문화는 이들 넷 모두를 갖춘 조합보다는 선택적 조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힙합에서 랩을 작사해 구사하고 이끌어가는 것을 엠시잉(MCing), 혹은 래핑(rapping)이라고 한다. 음반에 스크래칭을 하는 등의 조작을 통해 비트를 생산해내는 디제잉(DJing)과 함께 힙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요소이다. 랩에서 시의 운율에 해당하는 라임(rhyme)을 갖추면 기술적으로 더 매혹적인 랩이 만들어진다. [한국 힙합-열정의 발자취]에서는 미국에서 힙합을 직수입해 영어로 된 랩을 하던 시대를 거쳐 이제 한국어 라임이 3차원 라임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여러 가사를 통해 보여준다. 그 중 소개된 화나의 ‘웬 아이 플로우(When I Flow)’의 라임 구사를 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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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I flow 펜과 종이를 양손에 잡고 생각속 에 담겨내 각본에 맞춰 배짱 좋게 라임을 통해 마음껏 소리의 광폭한 파동을 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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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가사에서 밑줄 친 부분은 ‘ㅐ/ㅔ, ㅏ, ㅗ’가 반복되는 라임이 흐르고 있다. 마이스터징거(Meistersinger)의 경지를 우리의 힙합퍼들이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라임은 랩의 기술적 측면으로서 계속 고민되어야 할 요소일 것이다. 힙합 내부에서 ‘영어 가사로 랩을 해야 하는가, 한국어로 랩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없는가?’ 하는 오랜 고민과 논쟁이 이런 경지를 만들어내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표현 형식을 고민하는 정신이 힙합 음악에도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힙합에만 고유하지 않은, 더 폭넓은 예술의 정신, 즉 이전의 표현 형식을 모방하면서도 뛰어넘으려고 하는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힙합 정신의 구성 요소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랩 가사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가리온도, 키비도, 화나도 고민하고 있는 ‘삶’ 밀착적인 주제가 힙합이라는 문화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의 ‘정신’으로 공유되고 있다. 사실 얼핏 들으면 ‘삶’이라는 것은 너무 뭉뚱한 주제로 들릴 수 있다. 힙합퍼들은 자신의 주제 의식을 때론 별다른 수식어 없이 그저 ‘삶’이라고 표현하지만, 무수히 많은 삶의 양식을 고려할 때,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삶은 그저 도처에 널려 있는 ‘자연의 삶’은 아니다. 래퍼의 혀를 자르고 래퍼의 자유롭고자 하는 영혼을 도려내는 거대 상업주의 문화와 얽혀있는 삶도 삶이다. 힙합퍼는 거대한 주류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 그러나 한낱 세인(世人, das Mann)일 뿐인 군상(群像)의 삶과 다른 삶 속에 있다. 세인의 삶의 논리는 ‘돈 벌어 먹고 살아남기’의 논리이다. 여기에 질식되지 않고자 자본의 논리와 상업주의 문화에서 뛰쳐나온 삶, 저 실로 다양한 삶의 흐름에 주목하고, 허락되어 있지 않았던 길을 개척해낸 삶이 바로 힙합퍼들이 말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주류 사회가 살라고 하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그야말로 ‘스스로 기획한 삶을 살아 가는 삶’. 여기에서 느껴지는 고뇌, 고독, 고통, 낙담, 바람, 희망, 상상, 그리고 위로. 이것이 힙합 정신일 테다.

끝으로 또 하나의 힙합 정신은 ‘크루(crew)’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음악 장르에 비해 힙합퍼들은 마음이 맞는 이들끼리 음악적 교류와 유대 관계를 맺는다. 이를 ‘패밀리’라고도 하고 ‘크루’라고도 한다. 힙합의 구성 요소의 하나인 비보잉을 하는 비보이들은 같은 연습장을 써야 하는 이유에서, 래퍼들은 컴필레이션 음반이나 피처링 작업 등의 교류 이유에서 크루를 맺는다. 그리고 크루에 기반해서 음반 회사인 레이블을 설립하곤 한다. 크루의 정신은 ‘연대(solidarity)’의 정신이다. 가진 자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하는 ‘카르텔’이 아니라, 다양한 처지에서 느끼는 질곡을 함께 헤쳐 나아가기 위한 공감의 정신이 힙합퍼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공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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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힙합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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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가 ‘문화 산업’이라는 말을 통해 ‘문화마저 산업화하는 데 대한 비판’을 수행할 때, 아도르노에게는 문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현실 속에서 모든 것이 수단으로 전락하여, 인간의 영혼마저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 이 기능연관적인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최소한 문화만은 기능연관에서 벗어나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달라지고자 하는 시도, 그것이 아도르노에게는 문화의 핵심이었다.

‘인디 문화’는 아도르노의 문제의식대로 문화조차 더 많은 이윤의 수단으로 삼는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여 창작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대안적 몸부림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인디 문화를 고수할 수 있는 사회 상황과 우리의 사회 상황은 많이 다르다. 서구 사회에서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라 하더라도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을 정도의 복지가 이루어져 있다. 국가 차원에서 마련되어 있는 복지 외에도, 기업의 활발한 메세나 활동도 문화적 창의성을 키우는 모판을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인디 문화를 지향하는 예술인들은 실로 살얼음판 위에서 문화적 자유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젊은 날을 소위 돈벌이와 상관없는 ‘딴따라’로 대책없이 보내고 나면 노후의 삶이 암담하게 기다리고 있다.

2006년에서 2008년까지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공연을 이끈 힙합 춤꾼 이우재는[힙합, 새로운 예술의 탄생]에서 힙합의 정신은 자유를 원하는 정신이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퍼부을 수 있는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힙합인은 돈, 지식, 학벌, 권력,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당당하게 자신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선언한다. ‘약한 사람에게는 무한히 따뜻한 자들이지만, 강요된 틀에는 타협하지 않고, 개인의 개성과 생각을 가로막는 틀에 저항하고, 어떤 도그마로써 자유를 억압하는 데 저항하는 자들이 힙합인’이라고 말한다. 힙합 정신은 ‘야생마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강하고,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도전 정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힙합퍼를 ‘새로운 예술인’이라고 규정하며 예술이 어떤 불가해한 피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서 성립한다는 명쾌한 예술관을 펼친다. 그의 논의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춤꾼으로서 연습은 현재를 위해서 하는 것이며 춤을 추는 순간은 항상 현재이다’라는 대목이었다. 더 나이가 들거나 무슨 사고가 나면 더 이상 춤을 표현할 수 없는 제약 아래 운명적으로 놓인 춤꾼에게는 다른 누구보다도 ‘현재와 현재 하고 있는 실천이 소중하다’는 의식이 웅변되고 있었다.

불교에서는 현재의 시간을 ‘찰나’로, 그리고 영원의 시간을 ‘억겁’으로 표현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란 1초의 1/75에 해당하는 순간이다. 수학으로 표현하면? 수학에서 가장 짧은 순간은 1초를 무한수로 나눈 값이다. 현재란 0, 즉 없는 것(無)에 근사한다. 현재를 ‘수학’으로 사고하면, 다시 말해 ‘이성’으로 사고하면 현재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러나 춤을 추는 사람의 현재는 춤추는 행위가 분출되는 순간으로 인해 참답게 현존하는 작품이 된다. 이 대목에서 하이데거의 [예술 작품의 근원]이 떠오른다. 이 저서에서 하이데거는 라임을 구사하며 예술에 대한 철학을 펼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작품이 존재하는 것은 ‘충격(Stoß)이 열린 장에 들어서는 것으로, 어떤 섬뜩함이 우리에게 밀어닥침(aufstoßen)으로써, 지금까지 평온해 보이던 것이 무너진다(umstoßen). 작품 자체가 존재자의 열려 있음 안으로 순수하게 밀려들(entr?cken)수록 작품은 이러한 열려 있음 안으로 우리를 밀어넣으면서(einr?cken), 우리를 습관적으로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우리를 떠밀어내는(herausr?cken) 변화(Verr?ckung)를 일으킨다.’

하이데거는 이 대목에서 ‘부딪치다(stoßen)’와 ‘움직이다(r?cken)’의 두 표현의 여러 변형을 사용하여 예술 작품의 본질을 규명하고 있다. 예술 작품은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을 흔들어서, 가려져 있던 것을 떨쳐내고 우리를 열린 장으로 데리고 가 진리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시(詩)이든 회화이든 건축이든 힙합이든, 어떤 예술 작품은 팔리거나 사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도구적 사용으로부터 떠나, 우리의 습관적인 사고, 습관적인 행위를 흔들어 깨워, 그것 너머에 숨어 있던 진리를 솟아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순간순간을 아파하며 민감하게 느끼고 고민하고 있는 힙합 정신에서 미래를 본다. 모든 사람들이 물질을 추구하고 물질에 안주하고 물질을 위해서 오늘을 달리고 있을 때, 지하철 어느 모퉁이를 연습장 삼아 춤추었던 사람들, 비 새는 공동 작업실에서 물을 퍼내가면서 음악 작업을 하는 사람들, 이들의 젊음과 열정이 ‘돈 벌어 먹고 살기의 쇠 창살’에 갇힌 인간에게 희망이라는 진실을 느낄 수 있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여기, 키비라는 한 힙합 음악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 시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함께하기 바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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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조화될 때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 -쇼펜하우어①

의지와 조화될 때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 -쇼펜하우어①

 

강사 : 박은미(건국대 교수)
후기 : 진보성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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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조화될 때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서양 철학사에서 데카르트부터 헤겔까지가 근대철학의 영역이라면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는 현대철학을 시작한 세 줄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강좌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는 서양 현대철학 분기점 중 하나인 니체를 중심으로 니체 계열의 철학줄기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귀가 없다고 탄식했지만 후에 자신의 말을 귀담아 준 수 많은 사상가들이 출현했다. 이번 강의는 그들을 읽는 여정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 출발은 니체 바로 이전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부터 시작한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박은미 건국대 교양학부 강의교수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매우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대학 강단은 물론 일반적으로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접할 기회가 그만큼 적다는 얘기일 것이다. 인문학에 관심 좀 있다는 사람들도 대부분 쇼펜하우어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그만큼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쇼펜하우어는 니체 계열의 철학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그는 자신의 철학을 전개할 때 비합리주의로서 ‘의지’를 말하지만 선배 철학자에 있어서는 플라톤(Plato)과 칸트(Kant, 1724~1804)의 주지주의(主知主義) 계열에 영향을 받았다. 일면 파악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어찌 보면 반대로 충분히 흥미로운 철학자이기도 하다.

▶ Arthur Schopenhauer

궁핍하거나 권태롭거나! 어쨌든 삶=’苦’

쇼펜하우어를 두고 염세주의자 혹은 허무주의자라고 말하는데 이런 평가는 아마도 쇼펜하우어 자신이 이래도 저래도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긍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욕망이 있으면 채우지 못하는 괴로움에 시달리고 욕망이 없으면 욕망이 없음으로 인해 삶의 무의미에 시달리는 것을 기본적인 인간의 속성으로 파악했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불행’하다. 인간에게 불행은 행복보다 항상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박은미 교수는 인간이 다른 인간의 장점에 익숙해지는 속도는 빠르지만 단점에 익숙해지는 속도는 느리다고 한다. 이 둘의 시간차가 항상 부부간, 형제간, 고부간 또 직장 동료간에 서로가 서로에 대한 괴로움의 대상이 되고 아픔을 주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쇼펜하우어는 열일곱 살 때 “이 세상은 선한 존재자의 작품일 수 없다”고 생각했고 20대 초반에는 “삶은 불쾌한 것”이며 “나는 이러한 인생에 대해 사색하며 보내기로 마음먹었다”고 고백한다.

칸트의 ‘물(物) 자체’와 쇼펜하우어의 표상과 존재

쇼펜하우어는 “세상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대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하기 위해서는 칸트 철학에서 말하는 ‘물 자체(Ding an sich)’란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 자체’는 ‘사물 그 자체(thing-in-itself)’를 지칭한다. 칸트는 내가 보고 있는 이 세계가 진짜 세계인가? 라는 질문을 상정하고 존재하지만 인간세계에서는 알 수 없는 ‘진짜 그 세계’를 ‘물 자체’라고 표현했다. 이 물 자체의 영역을 ‘예지계’라 하고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는 ‘현상계’라고 한다. 현상계를 다시 말하면 ‘드러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드러난 세계’라는 것은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볼 때 빛을 통해 사물에서 반사되는 색을 보고 대상 사물의 색깔을 그대로 인식할 때 형성되는 그 세계이다. 인식하는 대상 사물에서 반사되는 색을 나의 주관적 인식으로 오염시키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여 인식하는 것. 이것은 일반 물리학으로 설명 가능한 세계이고 칸트 이전에 사물을 인식하던 방식이었다. 그러나 칸트 이후에는 바뀐다. 인간이 대상 사물의 고유한 색을 인식하는 것은 원래 사물의 색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대상 사물이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 없지만 인식주체인 ‘내’가 그 사물의 색이 그렇다고 인식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적용된다.

현대 물리학에서 가청주파수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 영역을 말한다. 보통 16~20Hz의 영역이다. 이를 기준으로 사람은 돌고래나 박쥐의 초음파를 들을 수 없고 반대로 이들 생물이나 곤충, 파충류 등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영역의 주파수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들리지 않으면 없는 것인가? 칸트의 용어로 다시 돌아오면 물 자체에는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분명 있다. 그러나 인간의 현상계에는 그 소리가 없다.

그래서 칸트는 물 자체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고 이 세계에서 시간과 공간의 형식으로 포착될 수 있는 것만 알 수 있다고 했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 밖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고 어떤 영역이 존재함을 알게 되더라도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신은 물자체에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현상계에 없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에 인간은 신에 대해 유의미한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칸트 사유에서 보이는 일련의 이 과정은 대상중심에서 주관중심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칸트가 현상계와 예지계를 나누어 인간 인식의 한계를 증명한 것처럼 쇼펜하우어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세계는 칸트가 말한 현상계 내에 한정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우리가 인식하는 표상의 세계의 특징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관심에 따라 세상을 본다고 말했다. 이것이 인식 대상을 이미지로 떠올려 표상하는 인간 인식의 ‘선택적 경향성’이다. 이런 표상방식은 결국 존재방식을 규정하게 된다.

충분근거율과 표상으로 드러나는 세계

쇼펜하우어는 표상을 말하면서 ‘의지’의 작용을 말하는데 이성이 단순한 두뇌현상이라면 ‘의지’는 이성이 파악할 수 없는 그 무엇이고 이성은 의지에 기여하는 2차적인 것이라고 한다.(박은미 교수는 이 대목에서 쇼펜하우어가 헤겔과 반대되는 입장에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부연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의식이 있어 스스로를 인식대상으로 삼을 수가 있다. 이 자의식은 ‘표상’의 능력이다. 표상의 세계에서 인간은 이성으로 스스로를 인식 대상으로 삼고 그 능력 때문에 인간 스스로의 한계를 목도하면서 고통스러워한다. 한마디로 고통 자체 보다는 고통의 표상 때문에 고통 받게 되는 셈이다. 세계의 고통이 모두 나의 표상에서 기인하게 되는 것이다.

박은미 교수는 “아무 생각 없이 수영 열심히 하던 박태환 선수에게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가 ‘달리기운동하면서 볼 풍경이라도 있지만 매일 수영장 바닥만 보면서 운동하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는 농담조의 얘기를 했는데 그 날부터 박태환 선수는 수영이 괴로워졌다고 한다. 바로 이 순간이 고통이 표상에 기인하여 발생하는 순간”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세상과 관계하여 표상해내고 ‘의지의 세계’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인간의 인식과 관련하여 칸트는 12범주를 드는데 이 범주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인과범주’이다. 즉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원인과 결과 관계로 포착하여 인식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쇼펜하우어의 경우 이것을 ‘충분근거율(충족이유율)’이라고 한다. 인간은 사유방식의 특성상 근거를 찾아서 인식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현실의 세계에서 ‘충분근거율’로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표상’해 내는 것이 된다. 칸트가 “현상계는 ‘물자체’가 현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면 비슷한 맥락에서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표상’으로 드러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와 쇼펜하우어의 개념을 비교해보면 <‘물자체’-‘의지의 세계’>, <‘현상계’-‘표상의 세계’>, <‘현상’-‘표상’>정도로 도식할 수 있겠다.

쇼펜하우어 ‘충분근거율’을 정리해보면 인간이 ‘충분근거율’에 의지해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지 원래 세상 사물의 존재하는 방식이 ‘충분근거율’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충분근거율’에 따라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충분근거율’의 생성-인식-존재-행위의 네 가지 특성에 입각해 세상과 관계한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세계 자체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근거율을 통해서 파악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표상의 세계를 경험할 뿐 세계 자체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다. 박은미 교수는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를 압축해서 한 문장으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고 한다. “세계는 ‘의지’의 세계인데 인간에게는 이 의지의 세계가 ‘표상’으로 드러난다” 이 말을 쇼펜하우어의 말로 이어보면 “세계는 나의 표상”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세계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지만 직접 인간에게 인식되지 않고 인간은 의지에 따라 행동하지만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의지의 작용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우리가 인식하는 표상의 세계는 맹목적인 의지가 충분근거율에 입각해서 드러나는 세계일뿐이다.

의지의 작용과 삶의 맹목성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모든 사물의 내적 원리’이며 ‘생명의 원리, 생명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우주 전체를 관통한다. 이 의지는 시간과 공간을 통해 객관화되고 다양한 표상들의 형태로 나타난다. 모든 생명체와 무생명체에 작용하여 그 존재를 다양성 속에 드러나게 한다.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의지가 나의 마음에 드러난 것은 또 ‘의욕’이라고 한다. 의욕을 통해 인간은 행위 한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몸[육체]’은 의지가 발현된 것이다. 인간은 높은 정도의 의지가 객관화 된 것이고 동물은 그 반대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먼저 있고 그 의지의 객관화 정도에 따라 그 모양새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유물론적 입장과는 반대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맹목적인 삶의 충동임을 간파함으로써 그 의지가 표상으로 드러난 상태로 인해 지나치게 고통 받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삶의 맹목적인 충동으로서의 의지이다. 그리고 나를 지배하는 맹목성에 대한 극복의 주체가 나 자신일 때 비로소 그 극복의 고유한 가능성과 가치가 드러날 수 있다. 자기 인식이 되어야 의지는 실현되는 것이다. 세계의 본질은 의지이지만 인간에게는 세계가 표상으로만 드러나기 때문에 본질인 의지의 움직임이 표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관찰하지 않으면 인간은 결국 인생이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필연에 빠지게 된다.

박은미 교수는 만일 쇼펜하우어의 ‘의지’가 잘 이해가지 않는다면 동양에서 말하는 ‘기(氣)’개념을 대입시켜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기라는 것의 변화성, 우연성이라는 속성이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의 본질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쇼펜하우어는 개별적인 인간의 죽음에 대해 “의지가 객관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마치 장자(莊子)가 삶과 죽음을 기의 ‘이산취합(離散聚合)’이라고 설명한 것과 유사한 면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이해해 본다면 ‘의지’가 맹목적으로 작용한다는 말의 의미를 좀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이 벌어지게 되어 있는 삶의 맹목성을 인정하고 자기 인식의 선택적 경향으로 내게 좋고 나쁨을 따지는 ‘자기중심성’을 탈피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남들도 나와 같이 의지의 맹목성 때문에 힘들어 하는 동지이자 동료임을 깨닫게 된다. 피아(彼我)의 세계가 모두 고통임을 알게 되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생겨난다.

자기중심성과 개별화의 원리 탈피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경향성이 있고 현실에 대한 인간의 기대치는 타인의 장점과 단점을 인식하는 시간차와 마찬가지로 차츰 높아져 간다. 세계의 경향성과 다양한 인간의 취향은 어차피 서로 다 접합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구조적으로 언제나 불가능한 삶을 바라는 존재로써 미래의 모순적인 상황에 희망을 걸고 거기에 행복을 유보시킨다.

인간은 ‘자기중심성’에 기인하여 곧잘 나의 의지로 다른 사람의 의지를 침탈한다. 그러나 ‘의지’는 하나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서 침탈된 의지는 곧 나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다. 고통이란 것이 그렇다. 이 개별자와 저 개별자에게 체현된 의지는 본래 하나이지만 서로 다른 개별자들에게 체현되면서 충돌하고 이 때 고통이 생긴다.

박은미 교수는 인간 개개인은 모두 하나의 ‘의지’에서 표상으로 드러난 구현체이므로 서로가 서로의 의지를 이해하고 그 각각의 존재방식이 분명하게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개별화의 원리에 갇혀서 근거율에 구속되고 그 인식에 갇힌 시선을 통해 세상의 표상만이 관조될 뿐이다.

이념을 보는 힘과 정관(靜觀) : 순수한 인식 주관과 의지의 부정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가장 고차원적으로 객관화된 것”을 ‘이념’이라고 했다. 이념의 다음 단계가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념을 직관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런데 이념은 의지의 작용에 의해 드러나는 결과물이 아니라 의지의 직접적인 작용이기 때문에 이념을 파악한다는 것은 의지를 본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성과 개별화의 원리를 벗어나지 못해 충분근거율에 입각해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절대 ‘의지’를 볼 수 없다.

이념은 이성에 의한 주객의 분리와 시공제약에서 벗어나야만 직관 할 수 있고 ‘더 이상 근거율에 따르지 않고 다른 사물과의 연관성으로부터 벗어나 주어진 대상을 응시하는 정관(靜觀) 속에 침잠되어 동화됨으로써만’ 가능하다. 이것을 쇼펜하우어는 “순수하고 의지가 없으며 고통이 없고 시간에 매이지 않는 인식주관”이라고 설명했고 다시 표현하자면 ‘순수한 인식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이 ‘정관’을 통해 욕망의 세계가 수반하는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욕망에 집착하지 않는 태연함의 세계에 도달 할 수 있다.

아마 ‘예술‘의 경지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예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자기 자신에 속박되지 않아 육체의 구속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 경험을 준다. 예술은 의지의 다양하면서도 통일된 모습을 직관한다. 그러기에 의지에 대한 관조적 인식을 한다. 자신이 직관한 이념을 예술작품에 구현해놓는 사람이 ‘천재’이고 천재는 표상들의 원형이 되는 이념을 직시하는 성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쇼펜하우어는 ‘습득된 성격‘이라는 표현으로 자기의 성격과 경향성을 벗어나 계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얘기한다. 습득된 성격은 스스로 일궈낸 성격이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경향성을 조절해 나감을 의미한다. 연장선에서 ‘덕(德)’이란 “피아가 의지의 구현체일 뿐이므로 나의 고통을 미루어 타인도 고통스럽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때 얻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긍정하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긍정하기 위해 타인의 의지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 또는 타인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구분되지 않음을 알아 타인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덕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나의 개별화의 원리에 갇히지 않고 의지의 큰 흐름을 느끼면 ‘동정심’이 생긴다. 쇼펜하우어는 실제로 이것을 ‘조용하고 자신 있는 명랑함’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의지의 맹목성에 의해 의지가 나에게 의욕을 너무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조절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의지가 나에게 다가와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유혹을 견뎌내야 함을 역설했다. 이른바 ‘덕에서 금욕으로의 이행’이며 ‘의지의 부정’이라고 하겠다.

문제는 이 ‘의지를 부정’을 내가 부정하려는 의지작용과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면 일체의 생각을 없애기 위해 참선하는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번뇌가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리하자면 의지의 부정은 개별화의 원리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신과 타인들을 통해 나타나는 의지작용의 흐름에 대해 치열하게 사색해서 얻게 되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만약 이 전환이 성공한다면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처럼 “의지가 맹목적인 삶의 충동임을 간파함으로써 그 의지가 표상으로 드러난 상태로 인해 지나치게 고통 받지 않아야”하는 이상적 경지가 현실화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이상의 성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복잡하게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 이유가 아닐까. 쇼펜하우어를 염세주의자라고만 볼 수는 없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11월 6일 개강[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11월 6일 개강

니체, 푸코, 들뢰즈 등 12명의 현대철학자

프레시안 기사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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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일찍 왔다.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 우리가 신을 죽인 이 엄청난 사건은 아직도 방황 중이다. 이것은 아직 인간의 귀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니체는 탄식했다.
19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그는 1900년, 20세기의 문이 열리기 직전에 세상을 떴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일찍 온 21세기의 철학자였다.20세기 초반, 과학기술생철학, 실존철학, 현상학, 윤리학, 해체론, 후기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팍팍한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자유와 삶의 근거를 갈망하며 새로운 소리를 손으로 더듬거리고만 있다.?그런 사람들의 손을 잡고자 니체 계열의 사상가 열두 명의 향연을 마련하고자 한다.

니체를 비롯해서 쇼펜하우어, 베르그송,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화이트헤드,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데리다, 레비나스, 푸코, 들뢰즈까지
열두 명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삶의 노래에 여러분을 초대하니
이 노래를 가슴으로 듣기를 희망한다.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진행하는 <우리 눈으로 본 서양철학사>의 3번째 강좌가 오는 11월 6일 시작됩니다.
지난해 시작된 이 강좌 시리즈는 지금까지 2차례의 서양근대철학사 강좌(10강 및 8강)와 마르크스주의사상사 강좌(16강)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니체를 비롯한 현대 철학자 12명의 사상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관심 있는 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강좌 : 우리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일시 : 2012년 11월 6일 ~ 12월 18일 까지(11월 27일 휴강),
2013년 1월 8일 ~ 2월 12일 까지 (매주 화요일, 12강)

-시간 : 오후 7시30분-10시

-장소 :
서울마포구 서교동 민족의학연구원 2층 강당(약도 참조)

-수강료 : 24만원(
커플 수강료: 36만원, 두 분이 함께 신청하실 경우) 개별 강의 수강료는 3만원

-수강 신청: 수강료를 계좌로 입금 하신후
이메일 혹은 전화연락을 주시면 등록이 가능 합니다. (계좌 : 국민은행, 292501-01-121940, 예금주 프레시안)

-강의 문의 및 수강신청 연락 :
admin@pressian.com(문의02-722-8546 민정훈)으로 부탁드립니다.
?-강의실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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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 찾아오는 방법 : 지하철 2호선 합정역 2번출구로 나와 뒤돌아보면 빵집과 옆으로 샛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10분정도 걸어오면 왕복 4차선 도로가 나옵니다. 거기서 편의점이 있는 오른 쪽으로 30M 지점에 태복빌딩(민족의학연구원)이 있습니다. 그 건물 2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강의 일정
1강 : 11월 6일 쇼펜하우어: 의지와
조화될 때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 (박은미, 건국대 교양학부 강의교수)

2강 : 11월 13일 니체: 중심 가치의 전복과 새로운 가치 창조의 철학자 (연효숙, 연세대 외래교수)

3강 : 11월 20일 베르그송: 직관, 즉 내재적이고 심층적 의식의 생성과 변전으로서 권능 – 신비주의자, 권능의 구현자 (류종렬, 창원대 외래교수)

4강 : 12월 4일 하이데거: 서구 형이상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 니힐리즘의 극복시도, 그리고 나치즘 (서영화,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5강 : 12월 11일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 언어와 삶 (김성우, 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6강 : 12월 18일 화이트헤드: 존재의 계보 – 화이트헤드의 발생학적 생성 (최종덕, 상지대 교수)

7강 : 2013년 1월 8일 사르트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 (이순웅, 숭실대 외래교수)

8강 : 1월 15일 메를로퐁티: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화가의 시선과 몸 (조광제, (사)철학아카데미운영위원)

9강 : 1월 22일 데리다: 해체란 무엇인가 – 글쓰기와 차이 (이정은, 연세대 외래교수)

10강 : 1월 29일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과 환대의 윤리 (문성원, 부산대 교수)

11강 : 2월 5일 푸코: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 광기, 권력, 폭력 (박민미, 대진대 외래교수)

12강 : 2월 12일 들뢰즈 :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김범수,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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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강사 선생님들이 미리 밝히는 강의 요지입니다

1. 쇼펜하우어: 의지와 조화될 때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자로 분류되지만 정작 자신은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았던 철학자이다. 니체는 허무주의자로 이해되기는 하지만 운명애를 말하는 철학자이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닮은 듯 다른 두 철학자는
모두 삶을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삶을 긍정해낼 방법으로 각각 동고(同苦, 고통을 함께 함)와 운명애를 주장한다. 두 사람 모두 이성이 아닌 의지에 주목했는데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부정을. 니체는 의지의 긍정을 주장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관조하는 자’가 될 것을, 니체는 끊임없이 자신을 초극해가는 ‘초인’이 될 것을 주장한다. 현대철학의 중요한 개념인 ‘의지’에 대한 두 철학자의 다른 접근은 현대철학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꼭 넘어야 할 산이다. 자신의 이성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지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감지해내는 현대인들에게 의지의 관조, 동고나 초극은 궁금한 그 무엇일 것이다.

2. 니체: 중심 가치의 전복과 새로운 가치 창조의 철학자

흔히
망치를 든 철학자로 불리는 니체. 니체의 망치에 의해 소크라테스 이래 전통 서구 철학의 중심 가치는 해체되고 뒤집혔다. 니체는 이성 우위의 철학적 전통에 감성을, 로고스 중심주의에 미학적 가치를 내세웠다. 또한 니체는 도덕의 계보를 진단하여 새로운 도덕적 가치를 제시하였다. 그의 철학을 통해 서양 근대까지의 시대가 마감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 셈이다. 흔히 현대를 ‘포스트의 시대’라고 한다면, 이러한 포스트 시대의 새로운 가치의 지평을 열어 준 장본인 역시 니체이다. 하이데거,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도 각기 니체 철학이 보여준 영감을 통해 철학의 독특한 색깔을 지니게 되었다. ‘신은 죽었다’의 외침과 초인의 등장이 현대인의 삶에 어떤 울림과 의미를 줄지 생각해 보면 흥미진진할 것이다.

3. 베르그송: 직관, 즉 내재적이고 심층적 의식의 생성과 변전으로서 권능 – 신비주의자, 권능의 구현자

일반적으로 니체와 베르그송은 생철학자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니체의 생은 도덕을 기준으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는 인격을 중심으로 한다면, 베르그송의 생명은 자연 내재의 깊이 있는 근원적인 의식을 토대로 삼고서, 이 내재적 본성으로서 의식의 표출이자 생성의 인격을 중심으로 한다. 니체가 인간의 의지의 권능에 의해 현재의 고착된 삶을 전복하고 새로운 인격인 초인을 추구하였다면, 베르그송에서는 내재적 권능의 발현이 어떤 사람에서도 발현될 수 있으나, 이는 권능을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과 노력에 달려있으며, 이를 실현하는 자를 신비주의자라 한다. 니체에서 초인이 출현이 지난하듯이 베르그송에서 신비주의자는 드물고 어렵다. 그런데도 두 철학자는 새로운 인격상을 구축하려 했다.

4. 하이데거: 서구 형이상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 니힐리즘의 극복시도, 그리고 나치즘

하이데거는 그동안 문학가로 알려져 왔던 니체를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 내에서 본질적인 사상가의 지위로 격상시킨다. 그런가하면 니체는 서구 형이상학과 기독교를 ‘힘에의 의지’라는 사상으로 해체한 망치의 철학자로 알려져 왔지만, 하이데거는 니체를 서구 형이상학의 완성자이자 니힐리즘의 완성자라고 평가한다. 한편 하이데거가 1933년 프라이부르크대학 총장을 10개월 남짓 역임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나치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1936년부터 4년간 니체에 대한 강의를 통해서, 하이데거는 나치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다고 한다. 본 강의에서는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에서부터 나치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적 입장을 니체 철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을 통해 생각해 보려 한다.

5.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 언어와 삶

이번
강연은 언어분석철학자로만 알려진 비트겐슈타인을 쇼펜하우어 계열의 삶의 철학자로 소개하려고 한다. 참혹한 1차 대전의 참호 아래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를 썼다. 수학과 언어의 한계는 삶의 문제와 분리할 수 없다. 언어의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유아론과 본질주의와 같은 문법적 환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비트겐슈타인은 진정한 서양의 선사이다. 기이한 그의 삶과 철학을 그의 번득이는 통찰과 단호한 침묵과 연결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6. 화이트헤드: 존재의 계보 – 화이트헤드의 발생학적 생성

니체 도덕의 계보는 실체론적 도덕 기원에 대한 반거였다. 화이트헤드의 존재론 역시 전통의 플라톤 실체 존재론을 부정하고 과정 존재론을 제시하는 반거이다. 실체 기원론에 대한 부정은 그 두 철학자 사이에서 공통되는 존재-인식론적 계보학의 출발이다. 본 강의는 니체로부터 현대
생물학까지를 관통하는 통합적 시선을 통해 ‘과정(process) 사유’를 잉태하게 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을 바라본다.

7. 사르트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 변증법적 이성 비판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말하는 ‘무’는 인간의 자유의 근거이다. ‘무’란 무엇인가를 부정하는 힘이다. 인간은 저마다 누가 뭐래도 ‘아니야’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주체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가 관습적으로, 혹은 신이라는 이름으로 선포된 인간에 대한 본질적 규정을 거부한다면, 이런 주체가 곧 실존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한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포하며 ‘초인’에 대해 말한 데 대해 사르트르는 ‘무화하는 힘을 가진 실존’으로 응답한 것이다.

8. 메를로퐁티: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화가의 시선과 몸

서양 근대 철학에서 데카르트 이래 그어진 주체-대상의 이분법은 나와 타자가, 나와 세계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야기했다. 주체-대상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문제에 대해 니체가 육체의 중요성을 선언했다면, 메를로퐁티는 현상학을 통해 육체와
감각 및 인식의 관계를 정교하게 논증했다. 메를로퐁티가 현대회화의 역사는 형이상학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그는 화가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깊이, 색, 선, 운동을 단순하게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탐구 속에서 우리는 ‘세계의 살’로서의 몸으로 연결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9. 데리다: 해체란 무엇인가 – 글쓰기와 차이

데리다는 단지 서양 근대 철학만이 아니라, 서양 철학 대부분이 그리고
지식 체계 대부분이 이성 중심적으로 그래서 로고스 중심적으로 구성되었다고 비판한다. 그 비판의 근거로 ‘차이를 만드는 차이’로서 ‘차연’을 제시한다. 이것은 흔적, 유보, 원문자와 같은 다양한 용어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데리다는 이를 철학자들의 논의 속에서 ‘소문자 a’에 대한 언급 내지 역할을 추적하면서 나아간다. 이성 중심주의적, 로고스 중심주의적 체계 안에 ‘흔적’처럼 남아있는 그리고 작용하는 ‘차연’의 가능성을 소문자 a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이성 중심주의적 체계를 해체하려고 한다. 이런 발상은 데리다 고유의 것이기는 하지만, 과거 철학사를 거슬러 가면, 하이데거도 니체도 그런 발상의 근간이 되는 것을 이미 제시한다. 그러나 데리다는 하이데거보다는 니체가 차연의 가능성을 먼저, 제대로 파악하여 철학자의 ‘웃음’, ‘유희’, 등을 사용하여 주장했음을 인정한다.

10.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과 환대의 윤리

레비나스의 철학은 이성 중심의 전체성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니체 철학의 정신과 함께 한다. 특히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비롯하여 존재론 중심의 서구 철학을 극복하고자 한다. 존재론은 세계에 대한 명료한 파악을 지향하며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동일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우리 삶의 근본적인 면모는 그런 테두리 밖의 타자와 맺는 관계에서부터 성립한다. 타자는 우리에게 이미 다가와 있지만 우리가 장악하지 못하는 낯선 자이고, 우리 삶은 이 낯섦을 궁극적으로 떨쳐버릴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삶의 가장 우선적인 국면은 이런 타자의 부름과 거기에 대한 우리의 응답으로 꾸려진다. 이것이 존재론에 앞서는 윤리적 관계다. 서구적 계몽이나 이성의 횡포는 이와 같은 타자적 측면을 무시하는 뻔뻔함에서 비롯한다고 레비나스는 생각한다.

11. 푸코: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 광기, 권력, 폭력

푸코는 니체의 ‘계보학’을 이어받고, 니체의 계보학을 더 철저하게 구현한다. 니체의 계보학은 사건이나 제도, 이념이나 가치 발생의 의미, 목적, 유용성이 우연적으로 교체되고 재배열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기호에 대한
해석학이다. 푸코는 니체의 생각을 이어받아 계보학적 방법론을 구축한다. 푸코는 서구 근대인의 사유의 역사 속에 끊임없이 작동하는 권력망에 주목한다. 그는 광기, 범죄, 성욕에 대한 역사를 서술하면서 전통적인 역사학이 지향해 온 거창하고 거시적인 총체적 담론 체계를 확립하려고 하지 않고, 미시적 비판 형식과 방법을 취한다. 그리고 광기, 범죄, 성욕에 대한 서구 근대인의 사고 방식에 대해 보여주는 과정에서 푸코는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권력의 촘촘한 그물망을 폭로한다.

12. 들뢰즈 :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20세기는 들뢰즈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푸코의 말이다. 이 말을 하게 된
배경은 질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이라는 저서를 남겼기 때문이다. 질 들뢰즈는 남들이 이미 자신의 철학을 구축했을 시기에 앞선 시대의 철학자들을 연구하는 재미없는 학자였다. 그 시기동안 그는 베르그송, 흄, 니체,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중 니체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은 들뢰즈가 그 당시까지 다져왔던 여러 철학자들의 존재론을 ‘차이’와 ‘반복’이라는 개념으로 엮으면서 하나의 철학으로 확장시킨다. 들뢰즈의 차이는 일반적으로 무엇과 무엇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를 담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다른 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이다. 그런데 이 차이는 궁극적으로 반복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들뢰즈는 반복을 말하면서 영원회귀의 반복을 제시한다. 니체의 영원회귀, 긍정과 기쁨의 철학을 들뢰즈가 사용하면서 미래의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로 발전시킨 것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영원회귀의 반복은 이름 없는 평민들, 익명으로 불려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에 해당한다. 이 과정은 신이나 영웅에 의해 형성되었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시도일 것이다. 들뢰즈의 영원회귀의 반복, 그것은 지금 도래하고 있는 세계의 이정표일 수 있지 않겠는가. 문명의 발달로 이성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했던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파시즘을 쓰라리게 겪었다. 이 잔혹한 경험으로 인해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확신이 흔들렸다. 이 믿음은 이제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 믿음에는 본래부터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 니체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그의 때가 온 것일까?구조주의 등으로 불린 이질적인 사조들이 니체라는 샘에서 물을 길어 올렸다. 니체가 ‘내 말은 귀를 갖지 못했구나!’라고 탄식했지만 20세기에 그가 한 말의 ‘귀’들이 수도 없이 출현했다. 우리는 니체의 말과 그 ‘귀’들을 새로이 읽으며 서양 현대 철학사를 다시 쓰고자 한다.

거리의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적 성찰[시대와 철학]

거리의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적 성찰[시대와 철학]

홍영두( 경희대 외래교수)

 

‘거리의 정치’는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전면 개방을 저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권력에 맞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반대를 위한 촛불 집회는 그 당시 정치학자들에 따르면 6월 민중항쟁에 비견할 만한 사건이라고 평가되었다. 87년 6월 항쟁은 거리의 정치를 보여주는 대명사였다. 하지만 87년 6월항쟁과 비교해 볼 때 2008년 촛불 집회는 새로운 양상의 거리 정치였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 인원이 참가한 가운데 평화적 방식으로 집회와 시위가 진행되었던 특징이 있다.

그 당시 정치학자들은 거리의 정치가 ‘일탈’이 아니라 ‘정상’이라고 보았다. 이런 시각을 가진 정치학자들은 거리의 정치가 한국 정치 변화 과정에서 파국을 초래하기보다는 정치 발전의 커다란 원동력이 된다고 평가했다. 이와 반대되는 시각도 있다. 지난 5월 18일 이명박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사를 통해 “권위주의 정치가 종식되고 자유가 넘치는 나라가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 민주사회의 자유에 걸맞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법을 무시한 거리의 정치와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기대는 일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에 대한 이 대통령의 불편한 심경을 직접 드러낸 것이라고 프레시안 인터넷 뉴스기사가 보도한 바가 있다. 거리의 정치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 차이는 정치와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정반대의 견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요구하는 촛불 시위가 방방곡곡에서 벌어졌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2년에도 미국에서 네 번째 광우병 소가 발견되면서 다시 촛불 시위가 벌어졌다. 사진은 2012년 5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촉구 시위. ⓒ프레시안(최형락)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협상에 시민이 거리의 정치를 통해 직접 나섰다. 촛불집회·시위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당정치의 한계를 표출시키고 이를 넘어선 사건이었다. 촛불시위로 인해 이명박 정부는 재협상을 거치면서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아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하는 민간 수출업자의 자율규제를 도입하였다. 이는 국회 안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일을 거리의 정치를 통해 달성한 시민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촛불집회는 보수정당이 지배하는 ‘정치권’이 갈등의 중재·조정에 실패하면서 시작된 ‘거리의 정치’ 현상이며, 그 점에서 현 정치권에 대한 ‘불신임’이자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드러낸 사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당 정치와 거리의 정치 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또 양자는 민주주의와 어떤 관련을 맺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거리의 정치가 성숙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법을 무시하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했다. 거리의 정치는 민주주의와 하등의 관련을 맺고 있지 않는 포퓰리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존재한 이래 합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가 상이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립된 의미를 갖는다는 관념을 합의했다는 정도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란 인민의 지배를 뜻했다. 반면에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정부 형태가 아니라 그저 제멋대로 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전제(專制)일 뿐이라고 말했다. 근대에 들어와서 앞에서 말한 합의가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근대 자유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통치형태 또는 통치 기술을 가리키며, 권력을 정당화하는 형태를 가리키기도 하고 권력행사의 양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 기반한 정당 정치란 제도권 안의 권력 정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유민주주의의 대의제에 기반한 정당 정치는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적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정치를 공동체의 삶을 지도하는 기술, 민주주의적 다자의 법을 공동체적 삶의 원리로 전환하는 기술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당 정치의 본질은 하나임, 공통되게 있음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근대 자유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에서 발원한 인민의 지배라는 어원적 의미와 거리가 멀다.

반면에 거리의 정치는 제도권 밖의 정치이다. 제도화된 공간, 관습적 사고에서는 나타나기 힘든 창조의 공간이 거리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 거리의 정치에서는 과거의 조직적 위계적 운동에서 자발적이고 다양한 운동으로, 거대담론의 정치에서 생활정치로 전환하는 추세를 보이며 인터넷의 정치적 역할이 부각되고 엄숙함보다는 발랄함이 지배하는 분위기 등이 주목받고 있다. ‘거리’의 의미가 과거 가두투쟁보다는 훨씬 확장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 거리의 정치야말로 인민의 자기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거리의 정치란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리면 공동체를 지도하는 기술이 아니라 이견(異見)을 제시하는 인간 행동 행태이며, 인간 집단의 결집과 명령을 작동시키는 규칙들에 대한 예외를 뜻하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는 통치 형태도 사회적 삶의 방식도 아니며 정치적 주체들이 존재하기 위해서 거치는 주체화의 양식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법을 무시한 거리의 정치’라는 발언은 치안의 논리에 따라 행해진 것이다. 치안의 논리는 정치가 아니다. 치안의 논리는 일반 국민을 통치의 수동적 대상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간주한다. 국가는 인민주권을 구현한다거나 인민의 의지를 실행한다고 자처하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이는 민중 없이 통치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민중의 분열도 없다는 뜻이므로 정치 없이 통치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에서 이런 사례를 수없이 목격해 왔다.

87년 이후 선출된 민주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상화를 목표로 삼았을 뿐이지 사회경제적 영역에까지 민주주의를 확장시키지 못했다. 이런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는 민주 정부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수용과 최근 FTA 협상 과정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IMF 위기 이후 민주 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시장지상주의 이념과 가치를 수용한 것은 외부적 압력의 강제에 의해 선택의 여지가 완전히 닫혀 있었던 상황의 산물이라기보다 민주 정부 스스로 적극적으로 그것을 선택한 결과였다. 민주 정부의 선택이 성장주의, 시장 효율성, 시장합리성, 시장주권의 이념과 가치를 강력한 헤게모니로 자리잡게 만든 가장 큰 요인중의 하나이다. 그런 선택의 결과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 전체에 대해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다. 민주 정부들이 시장원리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탈정치화와 정치의 축소에 앞장섬으로써 스스로 권력과 사회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퇴행했던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커다란 역설이다. 그런 점에서 87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배반당한 민주주의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은 현 정권에 들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던 것이 촛불을 통해 거리의 정치로 한국 민주주의가 회복되어 가고 있다. 거리의 정치는 일탈과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이다. 여기서 정치란 곧 민주주의, 즉 인민의 자기 통치다. 따라서 거리의 정치를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선동 정치형태로서의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거리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그 주체에게 돌려주며, 이는 정치 주체에게 정당 정치가 행하지 못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거리의 정치는 가시적인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개입이며, 이러한 개입을 위해서 요구되는 정치의 중대한 작업은 정치 주체들의 세계, 그리고 정치가 작동하는 세계를 보이게 만드는 데 있다. 이처럼 거리의 정치는 두 세계가 하나의 유일한 세계 안에서 현존하는 불일치와 불화를 현시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거리의 정치는 단순히 정당 정치의 한계라는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거리의 정치의 정당성을 묻는 물음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2008년~2009년 들어 정부 기관이 촛불시민들에 대한 민형사상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소송은 촛불시민을 상당히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의 성격을 갖고 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란 그 소송이 수반하는 비용, 시간 및 정신적 부담 등을 그러한 발언을 하고 참여한 시민들에게 부과하여 결과적으로 한 시민에게 제기된 소송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발언과 참여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는 소송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서 집회나 시위 과정에서 생긴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가 민법 해석에는 충실할지는 모르지만 헌법의 원리에는 위배되며 민법질서라는 것도 헌법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며 손해배상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다. 결사, 집회, 시위의 권리는 민주적 삶의 방식을 조직화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 것, 즉 국가의 지배권역으로부터 독립된 정치적 삶의 방식을 보장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촛불집회 및 그 참여는 공익적 성격을 갖는 시민의 권리로서 보장받아야 하며, 손해배상 소송 자체가 위헌적 성격을 갖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란 기이하고 불안정하게 작동하는 방식을 통해서 지금 이곳에 평등지향적 관계들의 총체를 그려낸다. 앞으로 거리의 정치를 민주적 공간으로 지켜가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거리의 정치가 새로운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통해 거리의 정치는, 시민 사회의 의사를 조직해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정당 정치의 역할을 계속 변화시킬 것이며 탈권위주의를 향한 중요한 매개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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