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회 [철학적 인간극장]

하나.

오늘 이미 졸업하여 학교선생이 된 어떤 제자로부터 아주 귀중한 메일을 받았다. 여기엔 사연이 좀 담겨 있는데, 그 사정은 이렇다.

언제가 내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영화를 하나 이야기 해주었다. 나는 그 영화를 80년 여름 그 지독한 절망 속에서 뒹굴던 일요일 낮의 TV 영화관에서 보았다. 그때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그만 빠져들어서 보았다. 그동안 영화의 줄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영화 제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그해 8월을 잊어버리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제목도 그해 8월과 함께 잊어버렸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우연히 ‘행복한 사회’라는 주제로 강의하다가 이 영화가 떠올라서 얘기했었다. 학생들에게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모른다고 고백했다. 대개 학생들은 내가 지어낸 얘기로 기억했을 것이다.

오늘 메일을 보내준 제자는 그때 내가 얘기한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었는데, 최근 우연히 책을 보다가 내가 얘기한 영화 줄거리와 똑같은 소설의 줄거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로널드 B. 토비아스 저)]를 읽는 도중, 59 쪽에 그 이야기의 핵심 에피소드와 비슷한 줄거리가 실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이렇게 옮겨 적어 주었다.

“셜리 잭슨(Shirley Jackson, 1919-1965)의 짧은 이야기 [복권The Lottery]은 이를 보다 높은 차원에서 설명한다. 이야기의 제목부터 흥미롭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1년에 한 번씩 복권 잔치가 열리고 있다. 복권의 당첨 방식과 거기 연루된 사람들이 소개된다. 독자들은 마을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된 사람을 돌로 쳐 죽인다는 결말을 알게 되기까지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따라가며, 복권 당첨이 주제인 터라 전개과정에 큰 의심을 품지 않는다. 작가로서 잭슨은 교활하리만큼 재치가 있다. 독자로 하여금 꼭 봐야 할 곳을 보게 만드는 동시에 다른 쪽도 보게 한다. 소설을 읽어 나가다보면 복권 당첨자를 선택하는 방식에 흥미를 갖게 된다. 독자는 무방비 상태로 마지막 대목까지 읽게 되는데 비극적 결말을 발견하고는 놀라게 된다.”

이렇게 제자의 도움으로 제목을 찾게 되자 나는 너무나 기뻐 인터넷을 통해 이 제목의 소설이나 영화를 찾아보았다. 유감스럽게도 이 소설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는 않았다. 연세대 영어교육학과에서 어떤 학생이 석사학위논문을 이 소설을 가지고 쓴 게 국내에서 남아있는 유일한 흔적이다.

둘.

그런데 영어소설로는 교보문고에서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셜리 잭슨은 위키페디아 백과사전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임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나온 자료를 통해 그녀의 단편 소설 [복권]이 영화로 3번이나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알았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지금 세계 어디서도 구할 수는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혹, 누가 이 영화를 가지고 있지나 않을까 해서이다. 솔직히 내가 본 영화가 3번이나 만들어진 것 가운데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먼저 소설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소설은 어느 일요일 아침 마을 사람들이 축제의 자리에 모여들어, 마침내 제비를 뽑은 사람을 죽이는 과정을 아주 냉정하게 서술한다. 마치 이런 일이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일인 듯이,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저 마을 제사를 하나 지내는 듯이 별로 심각한 동요 없이 가볍고 상쾌하게 그려진다. 이렇게 그려졌기 때문에 이 사건은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아이들이 아무런 가책 없이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내가 본 영화는 소설의 줄거리에 앞뒤가 좀 더 부연되어 있다. 어떤 남자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죽자, 유골을 수습하여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자기 어머니가 묻혀있는 마을로 찾아갔다. 그 마을에 도착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이상하게도 싸늘한 적대감이 그를 둘러싼다. 다행히 여관집 주인의 딸이 이 남자에 단번에 반해서, 그 남자를 도와주기 시작한다. 남자는 마을 보안관을 찾아가 공동묘지에 묻게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보안관은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날 밤에는 마을 청년들이 그를 위협한다.

그는 마을 공동묘지에 들러 자기 어머니의 무덤을 살펴보던 중 기이한 것을 발견한다. 그 공동묘지의 무덤에 묻힌 사람들이 죽은 날자가 해만 달랐지 동일했던 것이다. 그는 이런 의문을 품고 도움을 얻기 위해 외할머니의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침묵하고, 외할아버지는 그를 적대시한다. 다행히 외할머니가 마음을 돌려 그는 어머니가 죽게 된 사정을 알게 된다.

그 마을에는 오래된 마을의 축제가 있었다. 그 축제날 마을에는 제비뽑기를 실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첨된 사람은 축제날 마을 광장에 묶어두고 돌로 쳐 죽인다. 이 신성한 의무에는 마을의 누구도 빠질 수 없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당첨된 사람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 만일 이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그 사람도 역시 죽어야 한다. 그런데 이 축제 덕분에 마을에는 더 이상 어떤 싸움도 없고, 서로 다정하며, 다 같이 행복하다.

이 남자의 아버지도 우연하게 그 마을에 들렀다가, 이 남자의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해서 이 남자도 낳았는데, 아직 이 남자가 어릴 때, 그해 축제날 그만 그의 어머니가 당첨되고 말았던 것이다. 축제날 사랑하는 아내를 돌로 쳐 죽이는 고통만은 피하려던 아버지에게도 마을 사람들은 억지로 돌을 쥐여 준다. 아버지는 자기의 돌을 던지기 직전 마음을 바꾼다. 돌멩이를 내팽개친 그의 아버지는 돌에 맞아 죽어가는 아내를 뒤로하고, 어린 남자를 안고서 마을로부터 도주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쫒지만 그는 천신만고 끝에 마을사람들이 모르는 아주 먼 도시로 가서 죽기까지 비밀을 감추고 살았던 것이다.

마을의 비밀을 알게 된 남자는 흥분하지만, 방법은 없다. 그런 남자에게 하숙집 딸이 다가와서, 자기도 이 마을을 떠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둘은 다음날 함께 마을로부터 도주하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 의해 사로잡혀 그는 갇히게 된다.
며칠 뒤 축제날이 다가온다. 그해 축제날도 제비뽑기가 시행되었다. 우선 몇몇 사람들이 선정되고, 그 중에 둘이 다시 선정되고, 그 둘 중에 최후로 하나가 가려진다.

그런데 그해 축제에는 하숙집 딸과 하숙집 어머니가 동시에 최후의 2인으로 선정되었다. 딸과 어머니는 사색이 된 채 마지막 추첨에 들어간다. 어머니가 먼저 패를 뽑았다. 그 어머니의 패는 사실은 떨어지는 패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자기의 패가 무언지를 알자마자, 그 패를 감추고 스스로 자기가 당첨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마을에서는 그녀의 말을 믿고 축제를 준비한다. 감옥에 갇힌 남자도, 하숙집 딸도 강제로 축제에 초대되어 돌이 쥐어진다. 그녀의 어머니가 광장에 묶여 서자, 마을 사람들은 드디어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남자도 딸도 돌을 던질 수는 없었다. 그 둘은 손에 든 돌을 던져 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마치 토끼몰이 하듯이 그 둘을 쫒는다. 다행히도 그 둘은 손을 잡고서 무사히 마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셋.

그런데 이 오싹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허구이므로, 실제로 일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는 상당히 현실감을 가진다.

우선 ‘범죄의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 보자. [복권]에서 마을 사람들은 바로 이런 공동의 범죄 때문에 더 이상 다투지도 않고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사는 가장 행복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런 ‘범죄를 통한 공동체’는 현실적으로 자주 발견된다. 가장 가까운 예로서 ‘폭탄주 돌리기’가 있다. 폭탄주를 마시는 가장 큰 이유는 다 같이 함께 정신을 잃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 같이 광란의 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 잊어버리기로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그 광란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폭탄주 돌리기를 통해 내부의 친밀함이 강화된다. 그들은 마치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스러운 공동의 징표를 지닌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런데 ‘폭탄주 돌리기’와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있다. ‘폭탄주 돌리기’가 외부를 향한 공동의 범죄이지만, [복권]의 경우는 내부에서 한 사람을 처단한다.

그렇다면 [복권]에 나오는 이야기를 희생양 제도와 비교해서 이해하면 어떨까? 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공포가 엄습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책임질 어떤 희생양을 찾는다. 그 희생양은 대체로 그 사회의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이방인이다. 사실은 그 공동체 자체 내의 잘못 때문에 발생했는데, 그 책임은 항상 이 이방인에게 돌려진다.

희생양인 이방인에 대한 공동의 적대감을 통해 내부적 결속이 지켜진다. 그렇기에 역사상 자주 희생양이 만들어졌다. 추첨이란 신의 선택의 과정이다. 그것은 자신의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장치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외부로 책임을 돌리는 점에서 [복권]과 희생양은 동일하지만, 무언가 차이가 있다. 희생양은 내부에서 공포가 엄습한다는 조건이 전제된다. 그러나 [복권]의 경우는 그야말로 맑은 하늘에 즐거운 축제처럼 시작된다.

또는 이 이야기는 인간의 어떤 사악함이 관련되기에, 어릴 때 했던 ‘잠자리 시집보내기’와 같은 장난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끔찍한 장난이 그때는 아무런 자책감도 없이 행해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장난은 항상 여러 아이들이 함께 모였을 때 벌어졌던 것 같다. 이런 장난으로 아이들이 얻을 이익은 없었다. 그러므로 이 장난은 그야말로 악을 위한 악의 행위, 곧 사악한 행위였다. 이런 사악한 행위가 혼자서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벌였다는 점에서 이는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복권]의 이야기는 ‘잠자리 시집보내기’와 사악한 행위라는 점에서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역시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복권]의 경우 추첨이라는 과정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복권]에 나오는 이야기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차이점을 지닌다. 어쩌면 이런 세 가지 즉 ‘폭탄주 돌리기’와 희생양, ‘잠자리 시집보내기’가 결합되어 일어난 사건이 아닐까?

이병창(동아대,철학) /

 

청소와 인문학

먹빛 실루엣 아래 칠흑으로 잠긴 산으로 들어가면 낮과는 다른 세상이 있다. 어느 생의 그릇으로 영겁을 쌓아온 시간의 벽이 사라지고 스스로 살아나 바람의 결로 유유할 때, 세상은 크게 열리고 나는 태고의 원시포자를 느낀다.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환함 속에서 숲도 길도 더없이 아름답고 아늑해진다. 절망이나 포기란 사실 게으름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곧 놀라운 세상이 펼쳐진다고 해도 산 입구에 드리워지는 무겁고 짙은 어둠의 커텐은 친절하지 않다.

사춘기에 마주친 가난이라는 어둠의 입구에서 돌린 발길은 지천명의 목전에서 기초 생활수급자가 되는 데도 일조를 하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쌀이나 연탄 정도를 가끔 지원받으시던 동네 영세민 할머니는 단 하루도 쉴 날 없이 일하는 내 부모님보다도 더 불쌍해 보였는데, 그런 영세민이 된 것이다. 낯설고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안으로 싸우다 돌아보면 나름대로 약간의 체념상태에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학창시절, 친구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받던 모범생, 부모님의 끔찍한 애정은 세상을 만만하게 만들기도 했고, 그런 오만함은 또 댓가를 치르게 했다.

2007년 8월, 몹시 지친 마음으로 자활기관의 문을 두드렸을 때 청소 팀이 있었다. 면담을 하던 팀장이 비위는 좋은지.. 등등을 물었을 때, 약간은 부어 있는 마음으로 상관없다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어머니가 하는 일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겠냐고 하는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싫다 마다 할 수 없는 처지이니 한 달만 하고 말거라고,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면서 돌아왔다. 일은 가끔 진이 빠지도록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다른 일보다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옛 말에 길을 가다보면 소도 보고 뭐도 본다던가.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날 때부터 씨가 있는 것이 아니니 누가 한들 대수며 사람이 하는 일, 못 할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평소의 인식이라는 것이 문제다. 청소를 직업으로 가지게 되면서 한동안의 우울함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특히 먼 훗날 어른이 되어 이 시절의 엄마를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연민의 상처는 깊을 것이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몸 생각 좀 하라고 말릴 정도로 열심히 일 하면서, 무슨 일을 하는가 보다 어떻게 하느냐를 따진다면 부끄러울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운 이들에게도 내가 하는 일을 말할 수 없었고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변명해야 했다. 바닥의 먼지를 닦는 것이 아니라 전생이거나 현생에서 나도 모르게 쌓아 놓은 자잘한 업들을 쓸고 닦는 거라고… 엉뚱한 곳을 헤매며 태만하게 살아온 많은 시간들을 메워야 하지 않겠냐고… 남은 생의 지름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시간적으로 유리한 점이 있긴 했지만 온갖 변명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우울한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는데 그런 중에 기관 홈페이지에서 자활 인문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강의는 진행 중이었고 일 년을 참고 견딜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마음 속에 밝은 등대 하나가 켜지는 것이다. 일을 하는 내내도 강좌를 잊어버리지 않았고 혹시 놓칠세라 수시로 전화를 걸어 확인하곤 했다. 2008년 7월 드디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 이런 저런 핑계로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책을 가까이하는 편이고, 혼자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유치한 그림을 그리고 수다 떨듯이 글을 쓴다. 인문학 수업으로 오랜만에 다시 써보는 글과 읽게 되는 시로 특별한 감회를 느낀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인문학 수업 이후에 책을 덜 읽게 되었고 글도 잘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행복했다. 수업을 받게 되면서, 그렇게 무겁던 생은 날개를 단 듯 가벼워졌다. 인문학 수업을 마치고, 문학 교수님의 소개로에 “자활(自活)인문학”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돌아보면, 배우는 것이 좋고 인문학이라 더 좋았지만, 밥 한 그릇과 맞바꾸어지는 내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들과 달리 밥과 바꿀 수 없는 시간들…그래서 행복했고 소중했다. 모든 순간순간들이 소중한 만큼 스스로 정성스러워졌다. 수업이 있는 날은 게으른 얼굴에 분도 좀 바르고 변변치 않은 것들 중에서나마 조금 더 깨끗한 옷을 골라서 입으려 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타는 1호선 전철은 금정역을 출발하는 순간, 순간이동을 했다. 세상의 빛과 공기가 달라졌고, 현실은 까맣게 잊혀졌다. 길가 풍경들 위에선 축제를 알리는 무수한 마음의 깃발이 펄럭였고, 나는 늘 봉실봉실한 구름을 타고 다녔다. 행복했다. 좋아 하는 것들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은 분진 가득한 현장을 벗어나서 찾아 들어간 향기롭고 신선한 천국의 숲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때묻은 작업복을 벗고 깨끗하고 순한 옷을 입은 채, 새처럼 떠들고 꽃처럼 웃었다. 우리가 함께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마신 모든 시간들은 순결한 행복으로 채워졌다. 항아리 위로 넘치는 물처럼 마음 속을 채우고 넘쳐 오른 행복감은 감사함으로, 사랑으로 흘러 우리는 끝없이 서로 감사하면서 사랑한다고…이전엔 결코 쓰지 않던 말들을 하고 또 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비슷한 교육들을 받기도 할 것이지만, 어느 곳에서의 교육도 지금과 같은 의미는 두 번 다시 찾기 어려우리라. 스스로 아무런 가림막도 갖지 않았지만, 부모님 슬하에 있던 어린 시절처럼 안온한 시간들이었다. 다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아름다운 숲의 향기가 온몸과 마음을 적셔, 종내 나도 한그루 향기로운 나무가 되었던 느낌이다. 내 일상은 서늘하고 푸른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지루함이나 피로를 알지 못했다. 딛는 발자국마다 에너지가 넘쳐 흘렀고, 마음 속에선 꽃이 피고 또 피었다…

어떤 표현을 쓴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마음 둘 데 없는 이들과 마음으로 만났고 우리의 외로움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시는 교수님들을 만났다. 수업이 끝날 일을 생각하면 서운함은 매운 칼바람처럼 미리부터 가슴을 에이었고 불 꺼진 무대처럼 그 황량함을 어찌 견딜까 싶어지곤 했었다. 아쉬움 속에서 졸업을 하고 동문들끼리 한 번씩 만나 추억을 되새기며 마음을 이어가고 있을 때 심화과정이 개설되었다. 졸업 후, 확실히 우리는 더욱 돈독하고 따뜻해졌다. 많은 것들이 기능적 일회성 또는 일회용 소모품으로 전락하게 되는 세상이지만, 학교에선 이런 저런 행사와 함께 졸업생들을 각별하게 챙겼다. 심부름 센터에서 잠시 빌린 친척처럼 어색하기만 하던 학교가 이제는 낯설지 않게 되었다.

(전략) 여전한 무기력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서 생각 한다 맑은 물이 가득 찬 항아리가 필요해… 쉬고 싶어… 그 물속 깊숙이 웅크리고 있으면 눈을 뜨지 않아도 돼 숨을 쉬지 않아도 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후략) …

인문학 수업을 듣기 직전에 지친 마음으로 썼던 짧은 글이다. 제목을 「양수」라고 붙였는데, 반전 같은 걸 꿈꾸고 싶지 않을 만큼의 피곤이 느껴지던 그 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입학식 날의 기대와 설레임 속에서, 쓸 때와는 전혀 달리 출발선의 푸르고 힘찬 느낌으로 이 글이 새삼 떠올랐다. 지금도 인문학 수업은 그런 느낌과 함께 한다. 심화 과정을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좀더 다양하고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할까 고민하시는 교수님들의 마음과 이전보다 훨씬 여유 있고 한층 성숙해진 동료들을 느낀다. 정리해 보면 인문학 수업은 내 안에 있던 외로움이라는 두터운 스모그를 걷어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건 없이 마음 써 주는 분들이 있다는 커다란 믿음과 위안의 언덕을 가지게 하였다. 발등만 보면서 급하게 걷던 생활에서 고개 들어 이웃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깝고 진지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가난은 여전하지만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남춘자(경기광역자활지원센터) /

너의 도시

비탈진 계단을 내려오며
오늘의 소망도
함께 길을 나섭니다.

수박 향기 같은
비온 뒤의 아침이
살짝 코 끝을 시큰하게 합니다.

하늘 한 번 볼 일 없이
살았던 날들이
언제부터 인지
먼 하늘을 바라 보게 합니다.

버스를 오르며
창 밖의 먼 하늘 끝에
어제처럼
간절한 소망 하나 걸어 놉니다.

*이 글은 시민 인문학 강좌 수강생이 쓴 것입니다

출근길

비탈진 계단을 내려오며
오늘의 소망도
함께 길을 나섭니다.

수박 향기 같은
비온 뒤의 아침이
살짝 코 끝을 시큰하게 합니다.

하늘 한 번 볼 일 없이
살았던 날들이
언제부터 인지
먼 하늘을 바라 보게 합니다.

버스를 오르며
창 밖의 먼 하늘 끝에
어제처럼
간절한 소망 하나 걸어 놉니다.

*이 글은 시민 인문학 강좌 수강생이 쓴 것입니다

나의 사치

어제 이사 일을 거들고 돈이 좀 생겼다. 구멍 난 신발을 신고 다닌 지 좀 된 터라 동네 시장을 찾았다. 북적거리는 틈을 돌아다니며 가죽신발과 티셔츠를 샀는데, 티셔츠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레이온, 실크, 스판덱스가 소재였다.

대중화장실에서 티셔츠를 입고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가방 맨 어깨 쪽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혹시나 가방끈 때문에 보풀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이렇게 어떤 것 때문에 신경 쓰인 때도 없었다. 나는 요즘 전화도 없고, 그냥 속옷과 잡다한 물건이 든 가방 하나가 지금 가진 전재산이랄까. 가방을 잃어버린다고 해서 많이 속상할 일도 없다. 걱정이라면 오늘 산 실크가 조금 들어간 티셔츠가 당분간 내 걱정거리가 될 것 같다. 없어서 불편한 것보다 있어서 신경 쓰이는 게 좋은 걸까 하는 우스운 생각에 잠시 글을 남긴다.
– 서울역 근처 희망무지개 어린이놀이터에서

*이 글은 시민 인문학 강좌 수강생이 쓴 것입니다.

윤준오(인정복지관 만나샘) /

여기 ‘어둠 속의 희망’이 있었네

교도소의 담장은 야트막했다. 오월의 햇살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정문을 지나 발걸음을 옮기자 교도소의 뜰에 핀 봄꽃들이 제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윽고 육중한 철문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 철문 안이 감옥이다. 절로 심호흡이 나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마음을 다잡으며, 오월 햇살이 내리쬐는 철문 안으로 발길을 천천히 옮겼다.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진행된 재소자 인문학 과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활(自活) 인문학

하나.

2007년 8월부터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던 일로 많이 지쳐 있을 때였고 자활 사업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몸으로 하는 일이니, ‘마음은 좀 쉬자’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들어갔다. 그런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2008년이 되었다. 봄이 되자 경기광역자활지원센터 홈페이지를 뻔질나게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소식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해보았다. 언제 시작할지는 모르지만, 교육이 예정되어 있음은 확실하다고 했다. 마음 조이며 기다리던 어느 날, 드디어 모집공고가 났고 참가 신청서를 냈다.

시민 인문학 강좌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경희대학교 실천인문학센터에서 주관하는 소외계층을 위한 강좌이다. 철학, 글쓰기, 예술사, 문학, 역사의 5과목이 12강으로 짜여 있다. 2학기로 나누어 매주 목요일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두 과목 수업을 하고, 격주로 토요일에 예술사 수업과 현장체험학습이 있다.
둘.

6월 24일 오리엔테이션과 26일 입학식을 거쳐 우리는 경기광역 4기로 입학하였다. 지난 기수의 졸업생들과 기관에서 함께 축하해 주러 왔고, 몇 분의 교수님들 그리고 6개월간 함께 공부할 경기 남부 권역의 자활사업 참여자들 20여명이 자리를 하였다.

서로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였다. 오고 싶어서 왔다는 사람도 있고, 권유로, 때로는 마지못해 왔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이전 수료생에게 들은 글쓰기 숙제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는 사람도 몇 있었다.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문득 얼마 전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전략) 여전한 무기력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서
생각한다
맑은 물이 가득 찬 항아리가 필요해…
쉬고 싶어…
그 물속 깊숙이 웅크리고 있으면
눈을 뜨지 않아도 돼
숨을 쉬지 않아도 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후략)

[양수]라는 제목을 붙였던 짧은 글이다.

시작 전부터 이번 교육에 대한 느낌은 매우 특별했다. 기대로 설레던 입학식 날, 문득 양수 속 태아의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충분히 즐기겠다는 각오를 인사말과 함께 이야기했다. 나는 수업은 물론 뒤풀이 자리까지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단거리 주자의 출발 선상 같은 내 진지함이 조금은 과해 보였는지, 교수님은 더러더러 놓치기도 하면서 여유있게 즐기라고 말씀하셨다.
셋.

수업의 문을 여는 7월 첫째 주 목요일 첫 시간은 철학수업이다. 현재를 거스르지 않고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삶은 나름대로 편했지만, 철학 수업은 그 편함을 건드린다. ‘그게 참된 편안함이냐고…’ 고요한 수면에 던져진 돌이 만든 파문처럼 마음이 복잡해졌다. ‘불의와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 뒷골목 좁은 길을 디디며 겨우 의탁하는 내 한 몸도 벅찬 일인데…’ 그러나 며칠 만에 고민을 접고 평상으로 돌아올 때쯤 다시 듣게 되는 철학 강의는 또 다시 마음을 긁는다. 외유내강의 강의는 자꾸만 외면하고 싶던 것들 쪽으로 고개를 돌려놓았다. 철학 수업의 기본 전제는 각자 개개인의 삶 자체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며 우리 스스로가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면서 평등하게 존귀한 존재라는 자각을 하게 한다. 시대의 화두, 품격 있는 삶(well-being)은 품위 있는 죽음(well-dying)을 준비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각인시키면서…

진지하고 충만한 두 시간이 지나면 저녁식사 시간이다. 밥 먹는 시간은 언제나 떠들썩하고 즐거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문학과 글쓰기 수업이다. 교수님은 글쓰기를 일상화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제시하신다. 제출한 글은 본인의 동의를 얻어 함께 읽었다. 아픔이 느껴지는 학우들의 글을 보면서 저렇게 힘든 삶도 있음을, 내 아픔은 오히려 어리광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사실, 처음엔 학우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사람 만나는 일을 그다지 좋아 하지 않는 외톨이 성격 탓이다.

글쓰기를 통해 보이는 상처들은 이전의 것들과 같지 않았다. 귀 기울여 듣는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시간들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없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가식 없는 마음의 손들이 돌아와 따뜻하게 맞잡았다. 글쓰기 외에도 이덕무, 길재를 비롯한 옛 선비들의 글을 읽었고, 손택수, 안도현 등의 서정적인 시를 읽었으며, 나카지마 아츠시와 강희맹의 단편들을 함께 읽고 즐거워했다.

토요일에 진행된 예술사 시간에, 우리는 라스코 동굴 벽화를 보았고, 황소의 의미를 들었다. 독특한 발상의 현대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엿보기도 하였으며, 茶 매니아 교수님의 차 강의도 재미있게 들었다. 먹고 사는 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예술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여유가 되어 돌아왔다. 또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즐거움은 배가됐다.

10월 첫 주에 시작된 2학기는 문학과 역사 수업이다. 문학 수업 첫 시간엔 1학기를 마친 소감을 돌아가며 얘기하게 되었다. 각자의 소감들이 나왔고, 그때마다 교수님은 문학작품들 속에서 발췌한 비슷한 이야기들을 곁들여 위로하거나 공감을 표하신다. 그런 방식의 수업이 2학기 내내 이어졌는데, 수많은 시와 산문을 읽고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문학으로 문학을 이야기하는 문학의 숲이었다. 시를 읽다 보면 마음속에선 어느새 시의 불이 붙곤 했다. 마음속에서 이는 맹렬한 겨울 들불이었지만, 써놓고 보면 번번이 졸렬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문학에 이어지는 입담 좋은 교수님의 역사 수업은 단군조선의 건국을 시작으로 조선의 건국, 세종의 문화정치, 그리고 또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고 한탄하곤 하시던 근현대사 이야기들을 줄줄 풀어내시면 우리는 옛날 얘기를 듣듯이 재미나게 들었다. 재미에 빠져 있다 보면 역사와 시대에 대한 차가운 의식이 서늘하게 스쳐가곤 했다.

강의실 수업 이외에 우리는 간간히 현장학습을 했다. 처음 나간 곳은 [어둠속의 대화] 체험이었다. 우리 일상의 주변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에 빛을 배제한 것이다. 시각과 인식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볼 수 있는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예술사 교수님의 친절한 해설을 곁들인 관람을 했다. 예술이란 푯말은 때로는 껄끄러웠고 때로는 향기로웠다.

늘 챙기고 배려해야 하는 주부입장에서 누군가로부터 챙김 받고 배려 받는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아무래도 1박2일 코스로 다녀온 문학기행이다. 우리는 운길산의 유서 깊은 사찰 수종사를 거쳐 오래 전부터 소망하던 곳인 가평 아침 고요 수목원을 둘러보았다. 그 중 가장 인상에 남은 시간들은 한옥 체험장인 취옹예술관에서의 밤이었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깔린 이불속에 발을 묻고 둘러 앉아 초청 시인의 특강과 함께 11월의 시들을 읽었고, 배깔고 엎드려 우리는 시를 지었다.

오는 동안 모두들 조금씩 들떠서, 하도 웃고 떠들어 대니 그 웃음소리들이 온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통에 글은 제대로 써지지 않았지만, 써지지 않는 대로도 좋은 것이었다. 그래도 글을 제출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1학기 초기 글쓰기 시간을 생각해 보면 큰 변화인 것이다. 각자 쓴 글에 대한 시인의 조언을 듣고 나서 우리는 자유롭게 먹고 마시기로 했다. 사무실에선 술과 음료, 안주와 간식들을 푸짐하고 살뜰하게 챙겨 왔지만, 그것들은 그 날 그 자리에서 엑스트라 역할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와 대화들 때문이었다. 매 순간순간을 가만 두지 않던 에피소드들… 오고 가는 길 내내 어린 소년 소녀들이 되어 웃음 떠들썩하던 행복한 여행이었다.

그 후, 다시 한 번 역사 기행을 다녀온 후 우리는 곧 졸업식을 했다. 졸업을 앞두고 모두가 서운한 마음을 달랠 길 없었지만, 마음을 합쳐 함께 졸업 작품으로 택한 어설픈 춤을 연습하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공동작품을 만들어 내면서 유대는 더욱 끈끈하게 다져졌다.
넷.

돌아보면, 밥 한 그릇과 맞바꾸어지는 내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들과는 달리, ‘밥과 바꿀 수 없는 시간들’이라서 행복했고 소중했다. 모든 순간순간에 스스로 정성스러워졌다. 수업이 있는 날은 게으른 얼굴에 분도 좀 바르고, 변변치 않은 것들 중에서나마 조금 더 깨끗한 옷을 골라서 입으려 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타는 1호선 전철은 금정역을 출발하는 순간, 순간이동을 했다. 세상의 빛과 공기가 달라졌고, 현실은 까맣게 잊혀졌다. 길가 풍경들 위에선 축제를 알리는 무수한 마음의 깃발이 펄럭였고, 나는 늘 봉실봉실한 구름을 타고 다녔다.

행복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은 향기롭고 신선한 천국의 숲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때 묻은 작업복을 벗고 깨끗하고 순한 옷을 입은 채, 새처럼 떠들고 꽃처럼 웃었다. 항아리 위로 넘치는 물처럼 마음속을 채우고 넘쳐 오른 행복감은 감사함으로, 사랑으로 흘러, 우리는 끝없이 서로 ‘감사하면서 사랑한다고…’ 이전엔 결코 쓰지 않던 말들을 하고 또 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비슷한 교육들을 받기도 할 것이지만, 어느 곳에서의 교육에서도 지금과 같은 의미는 두 번 다시 찾기 어려우리라. 부모님 슬하에 있던 어린 시절처럼 안온한 시간들이었다. 다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아름다운 숲의 향기가 온몸과 마음을 적셔, 종내 나도 한그루 향기로운 나무가 되었던 느낌이다. 내 일상은 서늘하고 푸른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지루함이나 피로를 알지 못했다. 딛는 발자국마다 에너지가 넘쳐흘렀고, 마음속에선 꽃이 피고 또 피었다.

함께 수업 듣던 언니가 졸업식을 한다는 말에 누군가 그걸 배우면 어디에 취직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 보더라고 했다. 우리는 웃었지만 생각해 보니 남은 것은 사람과 추억이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다들 얼마만큼씩은 외로운 구석도 없지 않지만, 선뜻 마음 열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일상이다. 인문학 수업으로 맺어진 우리는 있는 대로 마음을 열고, 서로 제 일처럼 걱정하고 좋아 한다. 때때로 문자로 계절이 오고 가는 일을 전하며 낭만을 일깨우기도 하고,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도 한다. 공부를 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이유는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일 것이다. 지난 몇 개월의 행복은 참으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이었다. 얼마 전 우리는 첫 동문 모임을 가졌다. 한 달이 조금 덜된 시점이었지만, 우리는 쏟아질 듯 반가움들을 토해 내었고 계속 글을 써서 일 년에 한권씩 우리들의 문집을 만들자고 약속을 하였다.

어느 책 속에 있던,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행복은 하늘의 별을 따는 일이나 한겨울에 봄날의 햇볕을 당겨오는 것처럼 거창한 것들이 필요한 일이 아님을 다시 생각하며, 긴 겨울 끝자락에 만나는 향기로운 후리지아 꽃처럼 내 앞에 펼쳐질 따뜻한 봄날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한 2008년 인문학 수업은 정녕 행운의 열쇠였다. 내게 인문학은 삶의 자활(自活)이기에…

**이 글은 2009년 『녹색평론』 3-4월호에 실렸던 것을 발췌,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편집자)
남자연(경희대 시민인문학강좌 졸업생) /

실천인문학 ? 삶을 고민하고 가꾸는 인문학

삶을 고민하는 인문학.

인간은 누구나 풍족하게 살고 싶고, 편리하게 생활하고 싶어 한다. 풍족함과 편리함에 대한 욕망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런 욕망을 얼마만큼 합리적으로 조율하면서 충족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존재론적으로’ 욕망을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잉여욕망, 즉 거품욕망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말해야 한다.
‘사람은 진실로 무엇으로 살까? – 나는 진실로 무엇으로 살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참으로 오래된 물음들이다. 각박한 세상에서 정신없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진부한 이야기들이고, 어쩌면 사치스럽고 한가한 허영이고 망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물음들은 일생 동안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거나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괴롭힌다. 예외는 없다. 우리 ‘영혼의 물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부분 사회적 통념의 가치를 추구하며 그냥 관성적으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통속적인 물질의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관계에 들어서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영혼의 물음을 내팽개친다. 오히려 통속적인 사회적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고 더 노심초사하고 더 발버둥친다. 우리는 이 ‘영혼의 물음’에 정면으로 답해야 한다. 이 영혼의 물음은 양심의 소리이기도 하고, 철학적으로 ‘존재의 소리’이기도 하다. 이 소리를 듣고 물음에 답하는 것을 우리는 ‘삶의 근원적 성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너도 나도 웰빙을 말한다. 어느덧 웰빙은 질 높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질 높은 상품의 대명사가 되었다. 웰빙 설렁탕까지 있으니 오죽하랴. 웰빙은 삶의 질을 오로지 상품의 가치로 환원하여, 한 달에 몇 번의 외식을 하며, 상품화된 문화 공연을 몇 차례 관람하며, 유기농 채소와 과일 혹은 등 푸른 생선을 먹느냐 그렇지 않느냐, 운동을 하느냐 런닝 머신을 어떻게 활용하는냐 등등을 이용해 객관적 지표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웰빙 상표가 아니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없다는 인식이 암암리에 우리들 의식에 스며들었다.

웰빙인 삶의 질은 곧 행복일 텐테, 행복이 오로지 객관적 지표로 치환되어, 주관적 심리 상태 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가치를 완전히 찬탈해 버렸다. 웰빙은 문자 그대로 ‘존재의 최적 상태’, 즉 인간 존재가 가장 인간 존재다움을 뜻한다. 그리고 존재다움은 존재(인간)가 자리하고 있는 세계(사회) 속에서 최적의 가치를 실현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다움은 존재와 세계, 인간과 사회의 합리적인 관계에서 빛과 향기를 발하는 인간 존재의 아름다운 ‘사회적 가치’인 것이다. 여기서 웰빙, ‘품격 있는 삶의 방식’을 말할 수 있다.

존재(있음)는 무(없음)에 대한 존재요, 삶은 죽음에 대한 삶이다. 웰빙(well-being)은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웰빙이다. 품격 있는 삶은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데에서 온다. 몇 백년 몇 천년의 삶은 우리 인간에게 없다. 그래서 반성과 성찰의 삶을 철학적으로 고민하는 것이다.

이제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말할 수 있다.

삶의 현장과 인문정신

인문학은 다음의 세 가지 역할(혹은 영역)의 연관성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첫째, 인문학의 순수 연구활동이다. 인문학 각 분야의 이론 연구와 작품 활동을 의미한다. 둘째, 인문학의 응용 연구활동이다. 문화(모든 문화 혹은 문화적 표현은 인간 삶의 가치와 그 고민을 다루기 때문), 민주주의의 실질화, 시민사회의 윤리 등에 관한 연구를 의미한다. 셋째, 인문학과 현실 사회의 합리적ㆍ실천적 결합에 관한 일이다. 인문학의 인문정신이 현실 사회에서 꽃피울 수 있는 실천적인 활동을 전면화해야 한다.

우리의 논의는 이 세 번째의 것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개개인의 삶이 지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가장 값진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우리의 삶의 과정은 그 자체로 소중한 사상이며 이념이고, 따라서 우리의 삶에서 우리 스스로가 가장 위대한 철학자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삶도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나인 우리, 우리인 나’라는 공동체적 의식을 갖는다. 이것이 인문학의 핵심인 인문정신이다.

이런 인문정신에는 뚜렷이 자각된 주체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주거의 불안정, 생활의 유목성과 의존성, 심리적 불안, 삶의 박탈감과 체념 등등은 한마디로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의 공통된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각된 주체의식이 엄청나게 약화되어 있다.

인문정신을 매개로 한 만남은 교육자든 피교육자든 주체의식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이런 인문정신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이 더불어 어우러지는 삶의 모둠판 속에서 빛과 향기를 발한다. 이 삶의 모둠판에는 좌초하고 분노하며 환멸을 느끼면서 욕망과 꿈과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개인들의 열정에 가득찬 행위들이 있다. 그래서 갈등과 대립이 있다. 갈등과 대립이 있다는 것은 서로의 생각과 의견에 다름이 있음이요, 생각과 의견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삶의 가치를 똑같이 인정하고 평가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대화와 소통과 만남을 통해 하나의 삶의 모둠판에서 어우러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삶의 현장은 개인들의 다양성의 가치가 인정되고 단절 없는 소통이 이루어지며 공동체 의식을 나누는 만남의 광장이다. 인문학을 통한 만남도 이런 것이다.

삶을 나누고 가꾸는 인문학

주체의식의 자각은 개인적 깨침으로도 가능하고 종교적 귀의를 통해서도 가능하며, 어떤 경우에는 개인의 특수한 경험 혹은 옹골찬 노력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인문정신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인류의 다양한 역사적 축적물이 학적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문정신이 가치 있는 세상살이의 내용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그 학적 체계의 형식을 인문학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의 인문정신은 세상사람들이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한,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항상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정신은 자각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다시 회복되어 나타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인문학 교육과정은 함께 진지하게 논의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이런 인문정신을 서로 일깨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각된 주체의식도 영롱한 삶의 사상도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거의 폭력적 수준에 가까운 경제적 물질적 욕망과 이해관계 속에서 일관되게 정신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기란 예사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통상 말하는 소외계층의 사람들은 자의든 아니든 사회 시스템에서의 일탈 혹은 주변화로 인해 체념에 가까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 주체의식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보통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통념의 가치에 내몰리면서 모르는 사이에 주체의식을 상실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통념의 가치에 따르게 되면 돈과 지위만을 추구하고 남에게 자기를 과시하면서 쾌락을 즐기는 삶을 살게 되고, 그래서 통념의 가치를 추구하고 획득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면 여지없이 명분을 내세워 저항한다.

여기에는 정신적 가치가 자리할 곳이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인문정신이 오염되고 말살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가치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이런 인문정신의 상실은 자연스레 사회적 윤리의식의 부재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물질적 가치와 이기주의적 의식이 지배하는 사회는 교육의 측면에서나 가치의 측면에서나 다양하고 창조적인 개인의 능력과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사회와는 분명히 거리가 멀다. 국가 윤리나 국민 윤리가 아닌 시민사회의 윤리가 부재하고 실종된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결국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강하게 지켜 왔던 인문정신의 와해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문학의 교육과정은 유행도 아니요, 특정 계층에 국한된 것도 아니요, 특별한 사건도 아니다. 인문학의 인문정신은 물, 공기와 동일한 값어치를 지니고 있는 정신적 사회적 가치다. 물과 공기가 오염되면 정수기와 여과기를 거치듯이, 인문정신이 오염되면 인문학적 교육과정을 거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아닐까.

물론 여기서 인문학적 교육과정이란 교육자와 피교육자 간의 교육행위나 활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이 구성원들 상호간에 교육적 방식으로 이루어짐을 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오염된 물과 공기를 들이켜고 있으면서 오염된 사실을 잘 모르거나 아니면 오염되어 있지 않다고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인문학 교육을 통한 인문정신 공유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이때 그 교육과정은 제도교육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삶을 함께 다듬고 가꾸어가는 과정임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우기동(경희대 철학과) / admin@admin.com

가라타니 고진 – 마르크스의 가능성과 세계공화국[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⑭

가라타니 고진 – 마르크스의 가능성과 세계공화국[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⑭

 

강사 : 이정은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후기 : 조배준(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자본주의? 국가(State)=네이션(Nation)=자본(Capital)의 트라이앵글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의 공동기획으로 진행되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사 강좌 열 네 번째 시간에는 일본의 문예비평가이자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을 이정은 연세대 외래교수의 소개로 만나보았다. 고진은 이른바 일본의 ‘안보투쟁 세대’로서 1960년대 초에 ‘일미안전보장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면서 ‘국가(state)’와 ‘네이션(nation)’의 결합과 괴리를 고민했었다. 그는 그렇게 젊은 시절에 관심을 가졌던 국가 권력과 국가-자본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는 자본=네이션=국가라는 결합체”로 존재한다고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을 견지해 왔다. 또한 고진은 특히 마르크스를 윤리적으로, 그리고 칸트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그가 생각하는 참다운 문학비평은 소설이나 시에 대해 논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마르크스를 읽는 것, 그것도 <자본론>을 읽는 것 … 그것이 문학비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정은 연세대 외래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그 출발점은 바로 그의 생각에 보편타당한 텍스트인 마르크스의을 일본의 안보투쟁 세대로서 견지했던 문제의식을 갖고 읽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진은을 윤리(학)적으로 독해하려는 구상이 ‘새로운 보편적 인식’이라고 생각했으며, 이 구상의 돌파구를 서로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는 “마르크스와 칸트를 연결하는 방향에서” 찾으려했다. 고진의 말처럼 “칸트도 코스모폴리턴으로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보편적 인식 또는 보편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르크스를 칸트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일견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와 더불어 고진이 ‘보편적 인식’의 다른 측면으로 제시하는 것은 ‘역사의 반복’이다. 역사가 주기적으로 반복하고 세계사적으로도 그러하다는 시각은 앞서 말한 ‘보편적 인식’과 ‘보편타당성’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반복되는 것은 사건이나 ‘내용’이 아니라, 그 반복되는 구조나 ‘형식’이다. 이러한 고진에게 있어서 ‘보편적 인식’과 ‘역사의 반복’이 “하나로 녹아 있음을 보여주는 텍스트가 마르크스의 책들”이다. 고진은 두 책, 《자본론》과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통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의 강박을 설명한다. 즉, 앞의 책은 “‘경제’를 ‘표상(representation) 문제’로 삼아서 근대 경제학을 ‘비판’한 것이고, 뒤의 책은 ‘정치’를 ‘표상 문제’로 삼아서 근대 정치학을 ‘비판’”했다는 것이다.

즉, 고진이 《자본론》을 읽고 얻은 통찰은 경제의 호황과 불황이라는 경기순환(불황-호황-공황-불황), 그 역사의 강박을 통해 “자본의 축적운동과 자기증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읽고서는 정치의 영역에서 대의제가 지닌 불완전함 때문에 의회제도가 침체되고, 절대권력이 붕괴되고 다시 절대권력이 회귀하는 반복적 강박이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고진은 여기서 경제적인 면에서 반복강박을 일으키는 ‘구멍’으로 ‘화폐’를 들면서, “《자본론》에서 마르크스가 해명한 것은 ‘경제적 하부구조’라기 보다는 화폐에 의해 조직되어 있는 환상 시스템 혹은 경제적 하부구조를 조직하고 은폐하는 상부구조, 바꿔 말해 표상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이정은 교수는 “물론 그 시스템을 발견하는 과정이 자본주의 비판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이것과 유사하게 정치에서 “표상=대표 시스템이 가진 ‘구멍’은 대표 시스템이 죽이고 추방했던 ‘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의회제를 표방하면서 동시에 죽이고 추방했던 ‘왕’을 의회제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다시 ‘황제’로 되살려낸다”는 것이다.

결국 그 ‘화폐’와 ‘왕’이라는 구멍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면서도 아주 강력하게 실재하면서,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반복”되며, 자본주의와 대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의 무(無)”로 기능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고진이 말하려는 것은 마르크스의 생각을 이어 받은 그의 말처럼 “‘대표하는 것’과 ‘대표되는 것’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있을 수 없다”는 통찰이다. 또한 마르크스가 강조했던 것도 “정당이나 그들의 담론은 실제 (그들이 대변한다고 말하는) 계급들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표하는 자’와 ‘대표된 자’의 관계가 본래적으로 자의적이라고 새삼스럽게 강조하면, 화폐와 대의제에 숨어 있는 그 물신성(物神性)의 실체를 인식하게 되면, 자본으로 인해 숨이 조여 오는 오늘날의 정치와 공동체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생산자협동조합’과 그것들의 네트워크

자본주의 사회와 함께 시작된 근대의 국민국가는 국가와 민족의 조합을 통해 실현되었는데, 고진은 “자본, 국가, 네이션은 독자적 영역이며 동시에 상생하는 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즉, 일반적 인식과 달리 자본을 추동하는 것은 늘 국가였으며, 국가가 자본보다 더 선행적이고 더 독자적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고진은 자본주의 체제가 인간의 부자유와 불평등을 가속화시키는 문제를 ‘자본=네이션=국가’의 ‘바깥’을 보는 상상력을 가진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구상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제안하는 것은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라는 리버테리언 사회주의적 모델이다.

고진이 말하는 어소시에이션이즘(associationism)은 “상품교환 원리가 존재하는 도시적 공간에서 국가나 공동체의 구속을 거부함과 동시에 공동체에 있던 ‘호수성’을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려는 운동”이다. 여기서 호수성(互酬性)이란 호혜성(互惠性)으로 번역될 수도 있는데,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서 증여를 받은 쪽이 준 쪽에 뭔가를 갚음[酬]으로써, 상호관계가 갱신,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는 가족관계에서의 부모와 자식, 형제 사이에 나타나는 ‘절대적이고 강제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청중들이 이 어소시에이션에 대해 어리둥절할 때쯤, 이정은 교수는 이것의 그 구체적 형태로 아나키즘적 공동체, 평의회 코뮤니즘, ‘파리꼬뮌’에서의 꼬뮌, 봉건제 말기에 형성된 상업 중심의 자유도시, 한나 아렌트가 강조했던 정치적 행위자들의 연대체인 평의회 등에서도 비슷한 맥락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진이 말했던 어소시에이션은 “그 어느 것들보다도 칸트의 생산자협동조합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결국 고진은 이 어소시에이션에 대한 구상을 통해 정체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는 소규모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으며, 경제적 결사체에서 출발하여 탈자본주의적 협동조합, 나아가 코뮌(commune)의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던 것이다.

고진은 ‘어소시에이션’의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 자본, 네이션, 국가라는 세 항의 역할과 이들의 관계를 부각시킨다. 여기에서 그가 독창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교환양식’을 통한 새로운 사회의 구성인데, 이것은 “호수(증여와 답례), 재분배(약탈과 분배), 상품교환(화폐와 상품)으로 나눌 수 있다.” 고진이 보기에 마르크스는 청년기에는 ‘교통’이라는 개념을 통해 ‘교환양식’의 밑그림을 드러냈지만, 차후에 그는 새로운 사회구성체의 원동력을 교환양식이 아닌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결합한 생산양식’으로 축소했다는 것이다. 이정은 교수는 이 교환양식이 인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지만 자본주의 시기에 전면화된 것은 그것의 한 형태인 상품교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것을 원활하게 작동시키기 위해 도입된 것이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의 독특한 산물인 자본=네이션=국가의 매듭이라는 것이다. 물론 국가도 고대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민족과 국가, 네이션과 스테이트가 하나로 합쳐진 차원의 근대의 국민국가와, 자본 활동과 연동하는 국가는 자본주의 시기에야 가능해진 것이다.

 

세계공화국 – ‘국가 바깥에서’ ‘국가를 지양하는 방법’을 생각하기

이정은 교수는 이러한 “어소시에이션을 실현하는 ‘부단한 과정’과 그것들의 네트워크 자체가 우리의 미래가 된다”고 말하며, 고진이 강조한 것은 자본이 국가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네이션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 있고, 자본주의는 소멸할 수 있지만 국가는 소멸하지 않는다는 관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오늘날 “국가 간 경계를 해체하면서까지 확장되는 자본의 위력에도 불구하고” 국가 사이의 대립은 여전히 잔존하며, 국가문제는 국내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고진은 새로운 공동체를 실험하고 안정되게 실현하려는 노력도 국내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국가 대 국가의 대립으로 진행되는 국가 외적 방법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국가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으며, 자본과 국가가 그동안 형성해온 교환양식을 활용하여 국가적 차원의 대안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제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세계공화국’이라는 이념이다.

이 개념은 고진이 칸트의 ‘세계시민사회’ 개념을 빌려와서 ‘세계공화국’이라는 용어로 변형하고, 그곳에서 “국가에 의한 통제나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며 자본주의 문제를 해소해 나갈 수 있다고 보았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고진이 ‘세계공화국’의 개념으로 나아간 것은 국가 권력이 인민을 제대로 대표하고 대변하지 못하는 문제를, 자본과 지구화의 문제와 연결하여 해결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마르크스와 칸트의 조합’은 이론의 원리적인 면에서 이루어진다. ‘세계공화국’은 완성된 기획 형태의 ‘구성적 이념’이 아니라 실천적 지향으로서의 ‘규제적 이념’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정은 교수는 말했다.

한편 칸트가 《실천이성 비판》에서 궁극적인 준거점으로 제시했던 “타자를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 대우하라”라는 언명도 “자본주의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경제적 기반이 없는 빈곤 상태에 처하면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목적성과 인격성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를 통과한 칸트는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계급 격차’를 해소하자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앞서 설명했듯이 경제적인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어렵고 정치적 차원인 국가의 개입과 통제를 문제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정은 교수는 “칸트가 구상했던 세계시민사회, 세계국가가 ‘정치적 차원과 경제적 차원’의 동시 작용이라고 해석할만한 여지를 남긴” 것이라면, 고진이 칸트에게서 특화시킨 것은 “경제와 맞물려 있는 정치”라고 말했다.

고진에 따르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어소시에이션 모델을 구상했지만 경제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국가’의 자립성을 무시하고 국가를 독립된 개념으로 다루지 않게 되었다. 국가의 소멸을 위해 과도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쟁취하여 국가의 작동방식을 바꾸자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면, “고진이 보기에 마르크스의 결함은 국가사회주의나 소련식 전체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자립성을 보지 않은 아나키즘”적 성향에 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권력을 잡고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했던 좌파들이 “항상 민족 문제에 걸려 넘어지고 파시즘에 굴복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몸소 내셔널리즘을 칭송하게” 된 것도 이 ‘경제 중심적 아나키즘’적 요소가 작동한 결과라는 것이다. 과연 지난 세월 좌파들은 보다 철저하게 국가를 검토하지 못했던 것일까? 혁명가들은 혁명 이후에 국가가 자본을 어떻게 추동하고 통제하고 비호해야지 혁명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일까? 정말 그런 것일까? 필자는 강의를 들으면서도 계속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칸트적 착상으로 마르크스를 읽고 헤겔적 대안을 제시하다

이정은 교수의 평가를 요약하자면, 고진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정식화된 ‘헤겔의 관념론을 거꾸로 뒤집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보편타당성’을 사유하는 칸트적인 착상으로 마르크스를 새롭게 독해하여 반자본 운동의 세계사적인 전망을 새롭고 보편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고진이 “칸트에 빗대어서 제시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상당히 헤겔적”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고진은 일본의 현대사라는 ‘특수성’ 위에서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갖게 된 학자이면서도, 독일관념론의 변주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 국가와 자본이 어떻게 결탁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사유한, ‘보편성’을 지향했던 마르크스주의 사상가이다.

필자 또한 고진을 통해서, 마르크스를 통해 볼 수 있는 현실변혁의 ‘가능성’과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제한된 ‘한계’를 동시에 추적하여 비판과 저항의 알레고리를 부단하게 사유하는 것도 마르크스주의자가 나아가야 할 길임을 볼 수 있었다. 이정은 교수가 말했듯이, “고진은 어소시에이션을 실제로 실현가능한 것이라기보다는 칸트의 ‘규제적 이념’과” 같은 것으로 보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 그 바깥을 보는 이념 또는 상상력”이 쇠퇴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그런데 고진이 더 우려스러워 하는 것은 그 쇠퇴의 경향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추종으로 나아갔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승리로 간주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2012년, 이제는 더 암울하지 않을까. “머지않아 경제위기나 공황이 찾아 올 수 있고 자본주의가 쇠락을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라고 경고하더라도,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기보다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무감각하고 무기력하게 반응할 뿐이다. 자본이 요구한 욕망이 아니라 내면에서 억압된 자연스러운 생명의 욕망을 긍정해보는 것, 국가와 민족이 부여한 역사적 사명을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들의 민주적인 공동체’를 발칙하게 상상해보는 것, 참 어렵지만 ‘인류’의 역사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정은 교수가 소개하는 가라타니 고진 사상의 마지막 부분은 그 ‘인류가 긴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세 가지였다. ‘전쟁’, ‘환경 파괴’, ‘경제적 격차’가 그것인데, 고진은 선정 이유를 이 문제들에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집약되어 있는데, 결국 이것들은 현실적으로 국가와 자본의 문제로 귀착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국가와 자본을 통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대로 파국의 길을 걷고 말 것입니다. 이것들은 일국 단위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 글로벌한 비국가조직이나 네트워크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효하게 기능하지 않는 것은 결국 제 국가의 방해와 만나기 때문입니다. … 각국에서 일어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은 ‘위로부터’ 봉합함으로써만 단절을 면합니다. ‘아래로부터’와 ‘위로부터’의 운동의 연계에 의해 새로운 교환양식에 기초한 글로벌 커뮤니티(어소시에이션)가 서서히 실현됩니다.”

 

라클라우&무페 –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선언[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⑬

라클라우& 무페 –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선언[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⑬

 

강사 : 박영욱(숙명여대 교수)
후기 : 조배준(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마르크스주의에서 정치적 기획의 부재와 헤게모니 전략

마르크스주의 사상사 열 세 번째 시간은 숙명여대 박영욱 교수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대표작인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의 내용을 주로 소개하는 형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이 책은 국내에서 1990년에 《사회변혁과 헤게모니》라는 제목으로 초역된 이후 20여년만에 최근 다시 번역되어 출간된 현대의 고전이자 문제작이다.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는 교조화되고 경직된 마르크스주의의 주류 흐름을 비판하고 좌파의 새로운 정치이론과 사회이론을 모색한 1980년대 이후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경향을 일컫는다. 이 책에서 라클라우와 무페는 ‘계급성’과 ‘경제결정론’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환원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재해석하여 다원화된 정치적 실천의 중요성을 제시했다.

그런데 알튀세르의 사상을 다루었던 강좌에서처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논의를 이해할 때도 우리는 과연 무엇이 맑스주의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가 정통성을 강조하며 본질주의적 환원주의적 결정주의적 경향으로 흐르던 것을 해체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토대와 상부’라는 사회구조에 관한 고정된 인식과 노동자 정체성을 중심으로 변혁적 주체를 설정하려는 관점을 비판한다. 이러한 시도는 이론적 정합성을 높이려는 의도일 뿐만 아니라 소위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 체제 혹은 진영 내부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세력의 권위와 독점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래서 라클라우와 무페의 이 책은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사라진 후에도 좌파 진영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새로운 실천이론을 모색하던 당시에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라클라우와 무페/ 출처: www.nomadist.org

그람시의《옥중수고》를 연구했던 무페는 이데올로기 담론 분석연구를 진행했던 라클라우와의 협동 연구로, 우선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쟁점화된 정치적 기획의 실패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그람시를 분기점으로 삼아 마르크스주의적 해방에서 결여되어 있는 정치적 전략을 만들어가려 했다. 그들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마르크스주의 자체에 이미 내장되어 있었던 것으로, 본질주의 담론에서 비롯된 헤게모니 지형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룩셈부르크, 카우츠기, 베른슈타인, 혁명적 생디칼리즘 등은 이 위기에 대한 대응 전략을 세웠지만 그들의 노력은 역부족이었다. 특히 파시즘의 승리로 끝나 버린 1930년대 서유럽에서의 가장 결정적인 실패는 참혹한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람시는 “레닌주의의 계급동맹 개념을 극복하는 헤게모니적 결합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 라클라우와 무페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재해석하여 부르주아가 만들어 놓은 기존의 지배 질서에 적대적인 새로운 대항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혁명적 주체가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혁명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며, 자본주의의 역사적 운명이 다한 다음에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적 단계가 도래한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면,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 과연 지배와 부자유가 사라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면, “언제나 중요한 것은 중심부 권력을 탈취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다양한 세력들을 ‘헤게모니적 접합’을 통해 아우를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라는 것이다.

 

급진 민주주의 전략과 오늘날의 세계

라클라우와 무페가 개진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두 번째 문제제기는 ‘급진 민주주의’의 실천을 통해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에 결핍된 전략적인 방안들을 구상하려 했다는 점에 있다. 좌파들이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제도를 거부하기보다는 이것을 더욱 급진적이고 실천적인 기획으로 재생산하여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심화시키고 확장하는 전략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박영욱 교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에서 구상한 “민주주의적 관계는 차별이 아닌, 차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 정체성 이외에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관념적인 태도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이다.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이 단일한 연대체를 이루어 혁명적인 상황까지 전진한다는 생각 또한 이제 환상일 뿐이다. 또한 “‘노동자’라는 단일한 카테고리가 선험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그것만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의 부분에서만 등가적인 일시적 연대만을 이룰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에서 중요한 물음은 대항 헤게모니 확보를 위한 정치적 실천의 주체가 누구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급진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과 실천은 무엇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디를 지향해야 하느냐는 물음이 된다. 라클라우와 무페가 말한 ‘총체성’은 대중들의 서로 다른 ‘차이’를 제거하지 않는 연대 전선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며, 늘 유동적이고 현실에 밀착한 형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헤게모니 전략과 급진 민주주의의 정치실천에서 좌파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근본적인 갈등 조건으로 전제되어 있는 적대적 관점의 실천성이다. ‘적대’ 개념에 근거한 갈등과 차별의 요소가 다원적 민주주의와 헤게모니 정치전략을 추동시키는 원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던 지난 시기 동안 좌파는 다원주의와 민주주의적 절차의 중요성을 수용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현존 헤게모니 질서를 전환하려는 시도를 포기함을 의미한다는 잘못된 신념을 동반했다”는 것이 라클라우와 무페의 지적이다.

1970년대말 이후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놓은 양극화로 황폐해져가는 이 세계에서 약삭빠른 기득권층은 이해관계에 따라 여전히 이합집산을 반복하고 금융자본은 먹잇감을 찾아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닌다. 그리고 ‘적(敵)’이 사라진 시대, ‘전선(戰線)’이 애매해진 시대에서 구태의연한 진보 진영의 한 쪽은 무능하게 자멸하고 있다. 라클라우와 무페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논의가 우리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는 이러한 우리 시대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토론하고 대응전략을 실천할 수 있는 우리의 역량에 달려 있다.

한편 이번 강의가 수강생들에게 마르크스주의의 쇄신 혹은 해체를 주창하며 내놓은 좌파의 새로운 이론적 경향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 적절한 소개 시간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사변적이고 난해하기로 소문난 이 책(특히 3장)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여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논의가 진보담론에 주었던 충격과 신선함이 어떤 것이었으며, 세상에 나온지 27년이 지난 이 책의 자극이 오늘날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지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총 16강으로 기획되었던 마르크스주의 사상사 강좌에는 이제 가라타니 고진, 안토니오 네그리,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세 번의 ‘만남’이 남아 있다. 그들이 품고 있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간략하게나마 곱씹어보며, 우리는 역사의 향배에 대한 회의를 떨쳐내고 진보의 미래에 대해 어떠한 전망과 대결의지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런데 과연 그 숱한 이론적 경향과 철학적 담론들이 세상을 바꾸는 데 얼마나 기여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때 쯤,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에 의해 전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 또한 대중을 사로잡자마자 물질적 힘으로 된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강좌를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추동해 온 이 근대세계를 분석하고 비판해온 거대한 이론적?실천적 투쟁의 물결들을 살펴보며 마지막까지 기억해야 될 지점이 있다. 제1강에서 서유석 교수가 강조했듯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어떤 ‘이론’으로의 편향이나, 단순한 논리로 고난의 상황을 돌파하려는 맹목적 ‘실천’ 자체가 아니라, 적대와 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여 이론적 실천, 지속가능한 이론을 모색해나가는 과학적인 태도가 아닐까? 일련의 사태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의미를 도출하여 섣부른 기대나 실망을 품지 않고 우리의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것, 늘 출발점은 거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