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Super Women)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썩은 뿌리 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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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한신대학교 대학원 노동정책및사회정책(협) 대학원생)

올해도 어김없이 참아온 ‘그 날’

개나리가 먼저 꽃을 피우기 전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날이 찾아왔다. 그 날은 바로 올 해 3월 8일에 103주년을 맞이하는 ‘3.8 세계여성의 날’이다.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등의 요구로 시작된 세계여성의 날은 지금으로부터 103년 전 1908년 3월 8일, 미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1만 5천 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싸운 투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여성들의 봉기는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유럽대륙까지 번졌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물가가 오르자 ’주부들의 봉기‘는 점점 빈번해졌고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로 퍼져나갔다. 여성노동자들은 시장의 상품 진열대를 부수거나 사악한 상인들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계비용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키는 정치적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여성의 참정권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와 같이 여성노동자들의 저항을 기억하고, 나아가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는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정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세계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집단적인 저항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으며 이 날 이후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주의당과 노동조합에 가입을 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날은 노동자들의 국제연대를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즉 여성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싸움에 있어서 여성의 날은 필수적인 날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성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1908년에 시작된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여성 선거권 부여 등의 요구는 현재 전부 보장되고 있는가? 103번째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현실을 둘러봐야 한다. 목숨을 건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이 진정한 여성해방을 맞이하였는지, 아니면 더 어두운 오늘을 맞이하였는지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슈퍼우먼일 수밖에 없다?

2009년에 방영된 모 기업의 주유소 광고는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성 정책의 목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광고의 내용은 간단하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는 가정 일도 잘하고, 아이들 교육도 잘 시키고, 나이가 들수록 늘어지는 살과 늘어나는 주름을 열심히 가꾸고, 남편 내조도 잘하고, 직장에서 일도 열심히 하는 슈퍼 우먼(Super Women)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한 명의 여성이 책임져야하는 역할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그리고 문제는 그냥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슈퍼 우먼(Super Women)의 칭호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드라마나 영화, 소설과 같은 매체에서도 남편과 자식들밖에 모르는 어머니의 모습이 구태의연해보이고 한물 간 등장인물 캐릭터 같지만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과 독자를 감동하게 하는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여성의 상은 비단 이 광고에만 국한 되는 내용일까? 그렇지 않다. 얼마 전 모 방송국의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에 페미니즘 여성작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공지영 작가가 출연을 했다. 어떻게 작가가 되었고 그동안 숱하게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보다 세 번의 이혼경력과 성이 다른 세 명의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에 밝혀지며 본인이 원하던, 원치 않던 여성들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여성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에서 공지영 작가는 이야기한다. 자신이 긴 공백 기간을 접고 다시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하는 세 명의 아이를 둔 어머니였기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경제적인 문제에서 그녀 역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작품보다 이혼경력으로 더 유명해졌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다시 펜을 잡아야했던 그녀 역시도 이 시대에서 슈퍼 우먼(Super Women)임을 스스로 자처해야했던 여성인 것이다.

이처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교묘하게 결합한 한국 사회는 한없이 희생적인 어머니의 상과 노동자로서도 충실하게 기능하는 유능한 노동자의 상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결국 국가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교육 문제와 보육의 문제, 여성의 노동권 등에 대한 부분을 가족에게, 특히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이명박 정부는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스스로 슈퍼우먼(Super Women)임을 자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의 투쟁은 10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현장에서의 여성들은 어떤 상황일까? 한국에서 노동시간이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되었고, 민주노조가 창설되었고,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된 오늘날이지만 노동현장에서의 여성들은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조건, 성희롱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09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금양물류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은 1908년 여성 노동자들이 외쳤던 요구가 정책적인 변화만을 가져왔을 뿐 여전히 노동현장에서는 그 형식적인 정책들 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회사명만 수차례 바뀐 회사에서 14년동안 일을 했던 여성피해자는 금양물류의 남성 조장과 소장에게 수차례에 이르는 문자, 전화통화 성희롱부터 피해자의 엉덩이를 무릎으로 치고, 어깨와 팔을 주물럭거리는 등의 육체적 성희롱을 당해왔다. 결국 성희롱 사실을 알린 피해자는 사측으로부터 징계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이혼 후 세 명의 아이를 양육해야했던 피해자는 그동안 회사에서 당했던 성희롱 사실을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하여 제보하였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내는 등 자신이 당한 부당한 처사를 알리고 징계해고를 철회하기 위해 싸움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원청회사인 현대자동차에서는 이 사건을 외면하고 있다.

이 외에도 2007년부터 시작해 투쟁 1,000일을 훌쩍 넘긴 재능투쟁부터 진보교육감인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되었다고 숱한 화제를 뿌렸지만 실제론 임시강사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는 경기도임시강사투쟁, 하루 10시간 동안 열심히 일해도 한 달 75만원이라는 저임금과 임시직 또는 간접고용 형태로 불안정한 조건에 시달리며 일을 해야 했던 홍대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은 103주년을 맞이한 3.8 세계여성의 날에도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성장과 고용, 복지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2020 국가고용전략

작년 10월 이명박 정부는 ‘성장·고용·복지의 선순환을 위한 2020 국가고용전략’을 내놓았다. 경제위기와 함께 저출산, 고령화 등에 따른 인구구조 위기에서 벗어나 성장과 고용이 동행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추진배경 아래 일자리 희망 5대 과제에 따른 고용 정책이 제시되었다. 그 가운데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 정책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일자리를 확대한다는 목표로 다양한 추진방안이 계획되어 있다. 주된 내용은 공공부문 영역을 시작으로 민간부문까지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과 육아휴직과 연계한 시간제 일자리 창출 확대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이러한 정책은 여성들의 해방을 앞당겨 주는 정책들인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국가고용전략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동안 수없이 문제가 되었던 저임금, 비정규직, 간접고용 형태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없이 여성들의 가정에 대한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져야하는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그리고 국가고용전략에서 핵심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저임금과 단시간, 불안정한 노동정책은 여성 노동자들 뿐만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또 다른 피해자인 남성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되어 모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물가와 자녀들에게 들어가는 막대한 교육비 등을 부담하기 위해 집안 일만 잘하면 된다라는 과거의 여성과 어머니들에 대한 상은 이제 구태의연한 이미지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가정에 도움이 된다면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은 물론이고 성희롱을 참아가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진정한 대안이 아닌 자본의 배를 더욱 불려줄 자본의 대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노동과 삶의 권리를 위해 여성, 이제는 행동이다!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요구, 여성 참정권 요구 등을 내세우며 시작된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은 소름끼치도록 한국 사회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그것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돈과 권력이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1914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여성노동자의 날에는 여성노동자들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짜르의 독재 권력을 몰아내자는 요구로 확대되었다. 이처럼 103주년 3.8 세계의 날을 맞이하는 우리들 역시 이명박 정부의 반여성적 노동 정책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자본주의 사회에 전면적으로 투쟁을 벌일 수 있는 가치와 철학을 담은 요구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3.8 세계여성의 날을 150년째 맞이하더라도, 200년째 맞이하더라도 여전히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 폭력에 노출 될 것이다.

103주년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외친다! “노동과 삶의 권리를 위해 여성, 이제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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