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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상세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그냥 둔 것들이 있으니 많이 이상하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곧 프로그래머와 해결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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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의 閑談]
진보의 위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유미의 급진 민주주의론 ? 진보의 위기와 연관하여
글: 이규성(편집위원장, 이화여대 교수)
최근 참신한 석사학위 논문이 숭실대 철학과에서 나왔다. 논문 제목은 『무페와 라클라우의 급진민주주의론』(한유미, 2011, 지도교수 김선욱)이다. 이 논문은 계급의식이 희석되고 다양한 시민운동들이 출현한 상황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을 오늘의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신자유주의적 경제국가가 주는 고통)과 연관하여 논하고 있다. 이 급진 민주주의론은 계급분석에 의거한 근대적 계급동맹론으로는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조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반영한다.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는 물론, 문화적으로 일상세계를 장악하고 있으며, 초특급 부자는 뒤집어진 마르크스주의자처럼 계급의식이 분명한데 서민들의 계급의식은 희석되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국가나 소비문화에서 찾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만인의 평등한 자유를 부정하는 보수여당의 자유 민주주의가 인격의 평등과 자율지배라는 민주주의(급진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기본 조건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한유미의 급진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한유미는 특정 이론가의 학설을 소개하는 태도를 넘어 민주주의 정신을 오늘의 상황에 적용하여 현실을 극복하는 방향에서 무폐와 라클라우의 제안을 시험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뒤흔듦’, ‘전복’ 등과 같은 개념들을 자주 구사하는 것에서도 암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한유미의 급진 민주주의는 우리 진보정치의 위기와 연관하여 다시 음미해 볼 만한 개념들을 제시하고 있다. 급진 민주주의가 사라진다는 것은 보수당의 정치?문화적 패권(헤게모니)이 상대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한국에서 그 패권은 보수당의 저급한 교양에서 나오는 정치공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자기 이익을 민생으로 포장하고 반대파를 내몰기 위해 사상검증을 요구하는 광기의 종교재판, 불화와 궤변에 능한 정치인이 애국을 요청하는 것, 이에 동조하여 반종북을 고백하는 인사들의 형식적 민주주의론 등은 결국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석으로 내몰 것이다. 만일 민주주의 근본 공리(公理)를 부인하는 이 모든 행태들이 노회한 독재의 후예들의 패권 장악으로 귀결된다면, 해방 공간에서의 한국 진보정치의 실패를 다른 형태로 반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이러한 상황에서 급진 민주주의는 당연한 관심사가 되며, 이 관심이 어떻게 정치?문화적 헤게모니를 구성해나가는 실천으로 될 것인가라는 물음도 나오게 된다.
급진 민주주의론에 자극받은 한유미는 민주주의라는 기호(기표)가 정치적 편의에 따라 규정되어 왔듯 ‘텅 비어 있는 것’으로 보면서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임을 전제한다. 자유와 평등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즉 ‘인민의 자기통치’라는 이념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관철되어야 한다. 그것은 근대 마르크스-레닌주의 ‘계급동맹론’이 자유를 자유주의적 개념으로만 치부해오던 관습을 극복하는 동시에 평등을 제거하려는 자유주의의 폐습을 넘어서는 방향성을 갖는다. 자유와 평등을 함께 추구하는 급진 민주주의는 기존의 좌우 정치사상의 관행을 뒤흔들어 이른바 초심을 회복하게 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의 만행의 산물인 비정규화된 인생(비정규직 근로자, 유랑 이민자, 실업, 여성 노동자, 어린이 노동자 등)을 중심으로 반자본, 반국가적인 ‘헤게모니’를 ‘구성’하려 한다.
헤게모니는 그람시로부터 온 개념인데, 구식 계급동맹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에 의해 정당화되지 못하는 모든 피억압자, 예외자, 이른바 타자를 정치적으로 구성하여, 국가와 자본의 영역인 내부와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사회에 이러한 타자가 있기에 정치가 있는 것이며, 이정치는 헤게모니 구성의 활동이기에 타자는 ‘구성적 타자’가 된다. 이러한 헤게모니 구성 활동이 ‘정치의 사회화’이다. 이것은 국가 내부로부터 배제된 외부자를 정치화하는 장외 활동이므로 여러 형태의 차이들을 갖는 시민운동과 그 밖의 반체제적 정치활동을 포괄한다. 정치의 사회화는 외부를 정치화하여 내부를 뒤흔들고 그에 침투하여 보편적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효력을 갖는다. 그것은 내부의 특권을 전복하려 한다. 이러한 활동으로서의 민주주의는《정치의 사회화》 이외에도 부차적으로 ‘정치의 국가화’도 필요로 한다. 《정치의 국가화》는 의회와 같은 기구에 들어가 제도내적 활동을 통해 민주화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정치의 국가화는 정치의 사회화가 지역성에 갇히는 위험성이 있는 것처럼, 진보인사들이 국가권력에 사로잡히거나 지나치게 우경화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갖는다. 그러나 정치의 국가화가 급진 민주주의 정신을 상실하지 않는 한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가를 변형하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
한유미가 주장하는 급진 민주주의 전략은 ‘두 개의 공간’ 즉 ‘국민국가 안과 밖에서’ 쟁투하여, 근대적 확실성이 사라진 사회의 ‘불확실성(결정불가능성)’ 속에서, 배제된 외부자와 내부자의 경계를 타파하는 부단한 과정적 민주화의 쟁투에 진입하는 것이다. 역사의 미래를 단시일에 결정하는 결정적 계급과 이 계급이 권력을 장악한다는 확실성은 사라졌다. 사실 레닌도 언급했듯 자본주의와 의회제가 정착된 사회는 혁명을 말하기 어려운 또 다른 상황을 보여 준다. 성질 급한 사람은 결정적 미래가 도래하지 않는 과정적 급진론에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봉건제의 붕괴와 세계대전이 혁명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시대와는 달리 ‘극소전자혁명’과 ‘생명공학 산업’이 자본증식의 논리에 잡혀 있고, 계급문제로만 환원되지 않는 여러 사회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급진 민주주의론은 주목할 만한 대안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의 투쟁이 진보적이지만 않고’, 각종 차이들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시민 단체들이 있는 한, 노동과 차이의 정치학을 연결하여 반민주세력에 적대하는 헤게모니를 구성하려는 급진 정치학은 중요한 대안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도 정치의 사회화와 정치의 국가화에 이미 접근하고 있다. 한유미의 급진 민주주의론처럼 ‘경계의 무력화’는 이미 진보진영의 전략이 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제도권에 진입한다는 정치의 국가화는 한유미의 지적처럼 국가권력에 오염되어 방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권세가들의 비리는 법을 멋대로 휘두르는 망나니들에 맡겨지고, 동강난 전함에 대한 엄밀한 화학적 조사 요구를 종북으로 위협하며, 비정규 노동자의 절규는 그 원인 제공자나 판사에게 맡겨지고, 대학생들의 생존 위기와 교육의 파탄은 교육 산업가들에 맡겨지며, 여성노동자들의 비참이 국가 여성주의에 맡겨져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는 민주적 가치에 입각한 헤게모니 구성에 민주주의가 실패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정치의 사회화가 불평등한 억압에 대한 저항이라면, 민주진영이 이 핵심을 버리고 정치의 국가화에 몰입하여 내부 분란으로 치닫는 것은 국가화가 갖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그 함정에 빠진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급진 민주주의론은 오늘의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하는 계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 보건대 진보적 활동은 온갖 어려움에 봉착하고 허약한 인간성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현실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되어 양쪽이 모두 민주적 가치와 덕을 훼손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은 자유와 평등을 모순관계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양자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유 없는 평등이 평등을 부정하게 되어 인간의 평등이 아니게 되며, 평등 없는 자유가 자유를 부정하는 부자유로 귀결된다는 역설을 직시한다면 한유미의 급진 민주주의론은 오늘의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치의 사회화와 평등한 연대를 통한 헤게모니 구성이 근본적으로 폐쇄성을 극복하는 개방성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이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인성론적이고 윤리적인 토대가 무엇인지가 더 분명해지면 급진 민주주의론은 그 철학적 기초를 획득하여 오늘의 난국을 헤어날 수 있는 가치관을 수립하는 것이 될 것이다. 계급사회가 있고, 이를 극복하고 자신을 실현하려는 인간성이 있는 한 정치는 존속할 것이다.
미 공화당을 모방하여 빨간 옷을 뒤집어 쓴 보수당은 타도의 대상이었던 독재의 망령을 불러와 다시 응용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민생이라는 반민주적 구호로 그들이 통합하려는 세상은 둘로 분열될 것이다. 특권과 민주로 갈라서게 되는 것은 인간위에 인간 없고 인간아래 인간 없다는 초등학생도 아는 평등 원리 때문이다. 급진 민주주의는 이 인간 선언위에서 다양한 운동들이 연대했던 3 ? 1 운동의 원리를 새로이 계승하여 시민적 헤게모니를 확장해 나아갈 것이다.
*‘주제?1:?고대 그리스인의 사랑’에 이어 예고한 대로?19세기 저명한 문화사가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의 대작?[그리스 문화사](Griechische Kulturgeschichte)를 토대로 그리스 문화 전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부르크하르트의?[그리스 문화사]는 고대 그리스 문화 전반에 대한 독보적인 수준이라 할 정도의 풍부하고도 세세한 정보와 탁월한 해석을 담고 있는 책으로서 오늘날까지도 그리스 문화 연구자라면 반드시 딛고 넘어가야할 걸출한 연구 성과이자 토론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그러나 그 내용이 매우 방대하고 난삽하여 이곳에서는 중요 주제를 골라 웹진 연재물로서 적합한 분량만큼 발췌 축약해가면서 그 내용을 토론하고 음미하는 방식으로 소개하고자 한다.?우리가 다룰 첫째 주제는 ‘아테네 민주정과 그 형성’이다.?텍스트는 ‘Die Demokratie und ihre Ausgestaltung in Athen’,?Griechische Kulturgeschichte, Erste Band. Seite 202-239)?Jacob Burckhardt Gesammelte Werke, Band V. Darmstadt 1956
1. 정치적 반성의 귀결로서 민주정
폴리스 체제 내부에서 반성이 지배하게 되면 머지않아 아주 넓은 범위에 걸쳐 시민들은 평등에 대한 욕구에 강하게 이끌린다. 이러한 평등 욕구가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어떤 연관을 가지고 얼마나 퍼져 나갈 지는 주변 사정에 달려 있다. 비교적 초기의 폴리스 정체들 중에서 고대 왕정과 귀족정은 원천적으로 정복과 자명한 권위를 기반으로 구축되고 참주정은 사실상의 찬탈에 의해 성립되었지만, 이러한 정체들 속에는 이미 소수계층에 대항하여 만인의 이익을 옹호해야한다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의 폴리스로서 그 출발부터 이미 위와 같은 반성이 작용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반성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례가 있다.
그것이 곧 그리스인들이 세운 식민지였다. 식민지에서 비로소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천성에 따른 여러 가지 요소와 힘을 고려하고 의식적으로 폴리스를 새롭게 건설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조직적인 능력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것은 자연적인 힘이나 단순한 폭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식민지 건설에 필요한 아주 다양한 형태의 구성요소는 법률상의 배려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곳이 곧 “입법자(Gesetzgeber)”의 직무가 새로운 의미를 갖는 지점이다. 테세우스나?뤼쿠르고스(Lykourgos)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 신화적인 인물이었지만, 기원전 5세기에 이르면 이를테면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 마그나 그라에키아의 주민들(Groβgriechen) 사이에서 카론다스(Charondas)와 잘레우코스(Zaleukos)가 나타난 것처럼 자신들의 폴리스로부터 그 일을 위탁받은 국제와 법률의 편찬자가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한다. 입법(nomothesia)은 그때마다 하나의 자유로운 행위이며 – 물론 외국에서 올바르다고 인정되고 있는 것을 자발적으로 채용하는 것도 있었을 것이지만 – 어딘가 다른 곳의 양식을 단지 그대로 베껴 놓은 것은 아니다. 고대 아테네인들의 입법을 위한 그와 같은 시도들은 모두 매우 주목할 만한, 강력한 의지의 발현이었다. 그리고 그 때 아테네인들이 식민지 건설의 기초로서 내건 기치가 곧 “정의(to dikaion)” 내지 “정의의 지배(dikaiarchia)”였다.
그런데 본토에서도 이 같은 힘과 의욕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개혁의 의미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고, 이러한 힘과 의욕은 불가피하게도 귀족정(aristokratia)과 참주정(tyrannis)에 대한 거역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의 경계선 위에 아테네가 솔론(Solon)과 함께 서있다. 솔론은 전체 민중(Volk, Demos)을 위해서 평의원을 위한 선거권을 확보하였고, 대부분 귀족들인 토지 소유자에게는 독점적 피선거권을 부여하였다.(기원전 594년 이래). 그 대신 동산의 소유에 대해서는 당분간 평등의 권리로부터 제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안에 대한 최고의 결정권을 어디까지나 민회에 부여하였다. 과도기의 아테네의 명예는 이와 같은 솔론의 등장과 그에 대한 신뢰와 복종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는 어떤 것을 전제로 했을 경우에만 설명할 수 있다. 즉 그와 같은 일들이 고대 아테네의 세습 귀족의 틈바구니 속에서 새로 등장한 문벌 계층(Eupatriden)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점은 분명 고대 아테네인들의 내면적 성숙(die innerliche Ausreifung)을 보여준다. 물론 솔론에 이어서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와 그의 아들(히피아스와 히파르코스)들에 의해 참주정이 등장하긴 했지만(기원전 561년 이후) 그 후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 이래 일련의 급속한 개혁이 진행되면서 마침내 아테네는 완전한 민주정에 이르게 된다.
무엇보다도 아테네의 민주정에서 최초로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시민 대중(die Masse der B?rger)을 폴리스의 지배자로 선언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시민 대중이 실제로 개입할 생각이 있든 없든 국사를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점에 대한 명확한 통찰이다. 시민 사이에서의 당파 싸움이 있을 때 어느 당파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은 시민권 박탈의 제재를 각오해야 한다고 하는 솔론의 법률은 쓸데없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어쨌건 간에 후기위정자들은 시민 대중들로 하여금 최대한 정치활동을 강화하도록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그리하여 시민들은 매년 500명의 평의원(그 때의 10의 부족으로부터 각 50명씩을)과 5000명(아리스토텔레스 24장에서는 6000명으로 나타나 있다)으로 이루어진 민중 법정의 심판원을 선출해야 했다. 그리고 시민들 모두는 어떤 일이든 이 법정에 소를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500명의 평의원들은 50명씩 돌아가며 35일간 집무했다. 이와 동시에 거류외인(metoikos)을 포함하여 시민의 수도 증가하고 또 에우보이아(Euboia)섬 정복으로 새로운 영토가 획득되어 토지 전체를 4000개의 구획으로 나누어 시민에게 분배할 수 있었다. 클레이스테네스와 그 후계자들이 이런 일을 수행하면서 어느 정도까지 적극적이었는지 혹은 한 번 자각된 아테네의 정신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일을 수행했던 것인지는 일단 논외로 하기로 하자. 어쨌거나 아테네 사람이 명실공히 실제로 아테네 시민인 한, 그 시민은 누구라도 어떠한 관공서의 업무에도 적합한 자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견해에 입각해서 특히 500명의 평의원을 선출할 때 선거가 아닌 추첨(Los, kl?ros)의 방법이 도입되었다. 이에 따라 인력의 안전성이나 실무상의 특수한 전통의 형성은 완전히 단절되었고 그로부터 생길 수 있는 모든 장점과 단점도 함께 제거되었다. 그러나 벌써 외국인이나 거류외인들이 현저하게 시민으로 유입되어 있었던 터라 결국 필요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식이 아마 작동했는지, 추첨된 사람들은 물론 선거에 의해 임명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절충적인 조정책으로서 자격 심사(dokimasia)가 실시되었다. 추첨 혹은 선거에 의해서 직무에 종사하게 된 사람들 모두는 이미 자격 심사에 합격한 평의원들 앞에서 한 사람 한 사람 품행이나 성격, 가족이나 타인들에 대한 태도, 전투 경험의 유무, 재판상 소송을 당했는지 여부 등등에 대해 질문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지식이나 특수 능력은 전혀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만약 만족스런 대답을 얻지 못했거나 혹은 누군가 불평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평의회는 바로 재판소에 판정을 회부하였고 그러한 경우를 빼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을 내렸다.
투퀴디데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피난처를 위해서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을 제어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이 민주정이라고 말한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시민적 평등은 결코 정치적 불평등과 결부될 수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불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투표에 참가하였고 또 재판관이자 시 당국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폴리스는 모든 사람들의 생존과 관련한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극히 비천한 사람이라도 모두 이러한 일에 관여하는 것을 그 만큼 더 절실하게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이전에는 왕이나 귀족 혹은 참주들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권력이 시민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민들은 훨씬 넓은 범위에서 특정 개인의 심신을 훨씬 강하게 압박하는 일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시민 대중은 지배권을 잡았을 경우 불안과 질투의 감정을 한층 더 강하게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아테네 민주정에서 시민대중은 무엇보다도 우선 재능이 풍부한 특정 개인의 영향력을 압박하기 위한 대책을 찾아냈다. 그것이 곧 최고 지휘관을 선택할 때의 절차와 도편 추방(陶片追放 ostrakismos)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도 특정 개인의 힘이 우세해지지 않도록 아테네인들은 매년 열 명의 장군을 뽑아 그들 각각이 자신의 부족의 부대를 지휘하게 하였고, 그 모두를 지휘하는 최고의 지휘권 또한 장군들끼리 돌아가며 맡게 하였다. 운 좋게도 마라톤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아리스티데스(Aristides)는 밀티아데스(Miltiades) 한 명에게만 최고 지휘권을 부여하여 승리를 얻었지만 그 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기원전 405년 아에고스 포타모이(Aegos Potamoi) 전투에서는 “스파르타는 한 명의 지휘 하에 있는데”라는 알키비아데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테네는 패배하고 말았다. 게다가 아테네 민주정은 참주정을 영원히 저지하기 위해서라는 구실 아래 도편 추방제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매년 겨울 평의회가 민중에게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그를 추방해야 할 이유가 있는 지 없는지를 묻는 제도였다. 6000표 이상이 추방에 찬성할 경우 그 사람은 10년간, 적어도 5년간, 국외 추방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출신 도시 이외의 지역에 체재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므로 추방은 당시 사형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기원전 5세기 남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개인들은 모두 한 번은 이러한 도편추방의 위협에 휩싸였다. 개중에는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가까이에서 압박해오고 있는 이러한 형벌을 생각하면 보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실로 저 페리클레스마저도 아주 오랜 시간 겁쟁이로 만들 정도로 당대 실력자들에게는 걱정거리로 여겨졌다. 여기에는 영원한 미움이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층민(P?bel)의 미움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야심가(Groβstreber)의 경우 대중(die Volksmasse)은 인위적으로 선동되지 않는 한, 오히려 그를 자기편으로 생각하거나 그에게 공감 내지 호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탁월하고 능력 있는 소수의 야심가들에 대한 무능하면서 그저 허세를 좇는 자들(Eitelkeiten)의 미움인 것이다. 즉 도편 추방은 군소 야심가들이 고안해낸 것이다. 당시 아테네 대중들은 아주 어리석게도(t?richt) 이런 군소 무리들의 선동이 낳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 뒤 짚어 쓰게 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이 제도를 추켜세워 이것은 실력 있는 야심가들에 대한 질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실로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그것은 이 제도에 너무 지나치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세계가 존재하고 나서 평범한 무리(die Mediokrit?t)들이 그와 같이 빼어난 착상을 가진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이 무리들은 문자 그대로 민중의 감정(Volksgef?hl)을 요새로 삼아 그 배후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인물에게 공공연하게 신뢰가 집중되기 시작하면 곧바로 도편 추방이 행해졌다. 특정 인물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신뢰는 아테네에서 조직적으로 배제되고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시민들은 선동 정치가들의 손에 이 방법을 맹목적으로 맡기는 뼈아픈 경험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민중들은 (마라톤 전투의) 승리에 우쭐대 자기들이 그 누구보다도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 대중의 수준을 넘어선 명예와 명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화를 냈다. 도편 추방은 악행을 범했던 것에 대한 징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단지 기고만장함과 중요한 영향력을 지나치게 가진 것에 대한 처벌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그것은 다분히 아전인수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았다.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kles)에 의해 선동된 ‘아리스티데스에 대한 도편 추방은 사실상 배려를 구실로 대중의 질투심을 가라앉히는 것이었다.’는 플루타르코스의 말은 매우 지당한 말이다. 이처럼 도편추방제는 미움을 받은 사람들의 시민권을 박탈하거나, 특정 개인들에 대한 폴리스의 실제적 보복의 수단으로 또는 신속하게 어느 시민을 쫓아버리기 위한 수단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에서 이 제도가 정쟁의 도구화로 전락하고 있다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기원전 487년에 시작된 이 권력의 도구는 마침내 그 세기 이후 역사의 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2-448)은 아테네 민주정의 측면에서 보면 그 등장과 발전을 위한 아주 절묘한 배경을 제공해주었다. 마라톤에서 중장보병이, 살라미스에서 해군이 페르시아군에 승리를 거둠에 따라, 게다가 이 승리 이후 다른 폴리스들에 대한 패권이 확보되기에 이르렀을 때, 아테네 민주정은 그 위력을 드러내면서 영원불멸의 존엄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특히 해상 세력은 민주정과 실질적으로 자매와 같이 밀접하게 결부된 것처럼 보였다. 특히 항구 페이라이에우스 사람들은 도시지역에서보다 한층 더 시민 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헤로도토스 역시 (historiai)에서 “시민의 평등이라고 하는 것은 실로 위력이 있는 것이다”라고 전하면서 “아테네 사람들이 참주의 지배하에 있었을 때는 근처 어느 나라보다도 전력상 뛰어날 게 없었지만, 참주들로부터 벗어나자마자, 그들은 단연 다른 나라들을 눌러 제일인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5권 78)
그렇지만 스스로의 힘을 자랑하는 훌륭한 감정을 손에 넣은 것은 시민만이 아니었다. 아테네인의 풍부한 천성과 이 비정상인 시대는 중상모략을 가능케 하는 모든 제도에도 불구하고 세력 있는 개인을 대두 하게 했다.
“민주제 공화국은 과두제 공화국에 못지않게 우두머리(Oberhaupt)를 필요로 하지만, 마찬가지로 또 우두머리를 감내하지도 못한다.”(Ranke, Weltgeschichte I. s.251) 테미스토클레스의 정적이었던 밀티아데스는 옥사 했다. 테미스토클레스 역시 오늘날 그의 역사를 읽는 사람들에게 현기증을 일으킬 것 같은 연극을 아테네인을 상대로 상연한 후, 마침내 도편추방되어 페르시아 대왕의 손님으로서 생애를 마감했다. 하지만 패권의 확장과 강화, 페르시아에 반항한 이집트에까지 향한 대담무쌍한, 수차에 걸친 함대 원정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게다가 이러한 모든 사업은 2만명 내지 기껏해야 3만명 정도의 시민들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지만, 그들은 더욱 더 공공 생활에 헌신할 수 있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노동은 (30만 내지는 40만명의) 거류외인과 노예들의 의무로 여겨졌다. 전시 수당제도는 이 때문에 생겼다. 왜냐하면 어쨌든 육군과 해군은 단지 패권하의 폴리스들(이들은 자신의 할당액수를 금으로 지불하고 있었다)를 원조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강국으로서의 아테네를 어느 곳에서든 어떤 경우에든 대표해야 했기 때문이다. 법정 수당제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즉 대중들은 부유한 자들이 재판관으로 나서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또 아테네는 동맹 폴리스들의 법률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법정도 겸하고 있었으므로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시민들은 며칠에 걸쳐 법정에 출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회 수당도 마찬가지였다. 즉 이 강대 폴리스의 모든 내정 활동 및 대외 정책은 공적 심의에 종사하는 민중이 완수해야 할 책무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철면피에 가까운 수당은 관람 수당이었다.
이 수당 중 일부는 축전이나 경기를 축하하기 위해서, 일부는 극장 입장료로, 일부는 제사용 제물이나 공적 회식을 위해서 시민들에게 지급되었다. 이러한 낭비는 호사가 극에 달한 궁정의 그것과 비교해서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자금 경색 때문에 이길 수 있는 전쟁도 패배한 경우 또한 부지기수였다. 왜냐하면 이(모든 수당이라고 하는) 성역은 절대 침범해서는 안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테네 민중은 일종의 참주이며, 관람 수당 금고는 민중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항상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안 되는 민중의 사적 재산이었다. 그 밖에 수천의 아테네 시민을 위해서(혹은 패권 하에 있는 다른 폴리스의 시민을 위해서) 새로운 토지 배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에우보이아섬에서, 지금은 그 외의 다수의 클레루키아(Klerukia), 즉 아테네에 지배 권력을 위탁한 외곽 전진기지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게다가 아테네는 대규모 업무의 중심지로서 극히 화려한 건축물과 예술 작품으로 치장되고 있었다.
이상과 같은 일의 대부분의 책임을 걸머지고 있는 페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최초의 희생자들에게 바친 그 세계적으로 유명한 추도연설에서 아테네의 현재의 모습을 서술하고, 아테네의 권력과 삶의 아름다움을 꽃과 같이 스스로 자란 것인 양, 그리고 그것을 위해 가사적 인간들에게 고난을 지우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인 양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낙천주의는 특히 200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 보면 페리클레스가 현명하고 분별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 이상의 훨씬 더 정도가 심한 기만(T?uschung)이다. 수십년에 걸친 아테네의 충실한 영광의 시간들은 그 이후의 세상의 모든 시대를 위해서 아무래도 한 번은 체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지 가장 고귀한 것이 이 시기에 창조될 필요가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이것에 가세하여, 그리스적인 정신을 가지고 완수할 수 있는 것의 대략의 기준을 얻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태가 더 훨씬 긴 동안 존속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뒤늦은 소원은 완전히 허무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일반적 상황은 어쩔 도리가 없는 곳까지 이르렀고 어떻게 바뀌어도 귀착점은 여전히 멸망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테네의 사람들은 극히 현실적인 성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못된 정열(b?sen Leidenschaften)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페리클레스는 그 나름의 교육을 하는 한편 그들의 끝없는 탐욕을 – 가라앉히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향락을 제공함으로써 어떻게든 억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가 키몬(Kimon)과 같은 부자였다면, 자신의 재산을 사용했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공적 자금을 유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에 가세해 아테네 사람들의 무서울 만큼 높아진 명예심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교사들 자신에게도 반항하게 만들어 교사들을 앞지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페리클레스 자신 그 말년에는 사방팔방으로부터 공격받았고, 급기야 그리스 전체에 걸쳐 전쟁이 터지는 편이 차라리 바람직할 정도로 여겨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우쭐해하던 기분을 끌어내리고 그들의 겸양을 고양시키는 것이 가능한”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민들은 밑도 끝도 없이 열리는 민회나 법정 집회(ekkl?siazein kai diakazein)때문에 분명히 신경질적이 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일상의 노동에서 얻을 수 있었던 ‘마음을 완화시키는 힘’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부족 해 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케르퀴라(Kerkyra)와 코린토스의 사절들이 아테네 시민 앞에 나타났을 때) 케르퀴라 사람의 이익을 앞세워 코린토스 사람들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려 결국 전쟁을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든 민회의 결의는 조정이 훨씬 용이하고 그것이야말로 영광일 수 있었던 순간에 그 초조함이 빚어낸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아테네가 민주정을 표방하면서 다른 폴리스들을 패권적으로 지배하려고 한 것은 일종의 모순이었으나, 자칫 거역했다가는 항상 보복을 당하기 일쑤였다. 폴리스들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스스로가 예속되고 착취 받는다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아테네가 자기들의 돈으로 강대해지는 것을 감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테네가 화려한 모습으로 가장하여 질릴 정도로 소란을 피우고 있어도 다른 폴리스들은 그저 가만히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페리클레스 자신의 다음과 같은 연설에 잘 드러나 있다. “실로 우리들은 일찍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기획한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로부터 기피당하고 있다. 그러나 위대한 목표를 위해서는 사람들로부터 시기당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의 지배체제는 사실상 참주정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지배체제를 취하는 것이 부정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해도 이제 와서 절대로 이것을 마음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경우 여러분들은 반드시 보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어떻게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는지를 아테네에 관한 저작들은 몸서리칠 정도로 분명하게 보고하고 있다. 그의 연설은 패권의 문제에 대해서도 아테네의 활동 전체에서 드러나는 것과 완전히 궤를 같이 하면서 일체의 것을 허락하고 있다. 게다가 아테네 대중들은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도록 교육되었다. 그리하여 아테네인들은 마침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지에 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아테네의 패권적 지배하에 있는 폴리스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를 생각하면 페리클레스의 범그리스적 구상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평화와 협력을 목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그리스 폴리스들이 아테네에서 회의를 개최한다는 것은 듣기에도 좋고, 그러한 사태를 그려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었을 테지만 이 회의가 헛된 바람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초의 예상대로 스파르타가 이것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계속)
웹진에 동영상을 추가하였습니다. 새로운 느낌의 웹진으로 한 발 더 여러분께 다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농촌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은 균형이 깨지기 마련이다 [썩은 뿌리 자르기]
장 민 수(목부)
시골에 살다보면 과일을 잘 사먹지 않게 된다. 제철과일이나 하우스 작물을 서로서로 나누는 경우가 많아서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작물 같은 경우 너무 많아서 가끔 감당이 안 될 때도 있다. 이런 곳에 살다보면 과일을 사먹을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간 학생들을 보면 그리 품질이 좋지 않은 과일을 돈 주고 사서 먹어야할 때 특히나 아깝게 느낄 수밖에 없다. 비단 과일뿐만이 아니라 시골에 살다보면 서로서로 먹는 것이나 쓰는 것을 참 편하게 나누는 경우가 많다.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이웃이 큰일이 있을 때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당연히 도우러 오는 아름다운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게 흔히 말하는 시골인심일 것이다.
오랜 시간을 얼굴을 마주하고 살고, 같은 일을 하게 되고,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시골에서는 이런 나눔의 삶이 결국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퍼져있는 것 같다. 철저한 계산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 나눔을 이어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즉 이 나눔 속에는 어디까지나 삶의 과정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드는 집단의 선택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친절을 받기 위해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방식이 반복되고, 내가 도움을 얻기 위해 당장 아무이익이 없더라도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게 이곳의 방식이다. 농사는 대부분 사람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삶의 자세가 언제나 최선의 삶의 형태가 된다. 도시에서는 많이 약화되어 있는 이웃 간의 협동과 나눔이 아직 시골에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중심이 도시가 되고나니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않아도 되지만 지켜졌으면 하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중 하나가 이 “시골인심”이다. 즉 도시민들은 자신들은 나눔이나 배려를 가지는 삶의 자세를 매우 약화시켜 놓고는 시골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농사보다는 신산업이 경제적 이익이 더 큰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비도시에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적 상황을 만들고 인간의 삶조차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현실에 살아간다.
시골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나무에 열린 열매를 마음대로 꺾는 사람들에게 이곳의 주민으로서 항의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심운운하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티비 프로그램에서는 언제나 시골사람들은 무지하고, 순박하며 뭐든 퍼주는 사람으로 그려내고 있다. 심지어 시골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는 여전히 현대화된 시골보다는 과거의 모습을 이어가는 것만 그려내려 조작하기도 한다.
여전히 시골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미디어
한우농장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 소고기를 먹는 모습, 뜬금없이 초가집에 가마솥을 걸어놓거나,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 도시에서 온 사람들을 신기해하는 모습까지 우리는 심심치 않게 티비에서 만들어내는 시대에 뒤떨어진 시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모두 현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전혀 공감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언제까지나 시골이 그런 모습을 지키기를 원하는 것인지 시골사람임에도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을 보며 과연 이 사회가 시골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시골의 모습은 잘 나누어주면서도 더럽고 무지하다. 이러한 방식의 표현은 이들을 희생시켜도 되는, 혹은 도태되어야만 하는 이미지로 그리는 것이 아닐까. 이 사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나 매체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가진 편견 속에서 시골이 희생되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인정과 나눔의 삶을 가진 사람들이 왜 희생과 도태의 삶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어째서 사회가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로 몰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이것이 인심의 문제라면 문제가 크지 않겠지만, 사회는 지금 더 이상 산업의 주체 혹은 경제의 주체가 되지 않는 모든 것에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도시에 관련된 정책의 중심에는 도시민이 있어야하고, 농어촌에 관련된 정책에는 농민이 있어야한다. 하지만 수입제품이 싸거나, 토지의 개발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농어촌정책은 농어민을 위한 정책이 아닌 토건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투기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될 때가 많다. 예를 들자면 말 많던 한미 FTA를 하고 나서 축산민을 위해 정부가 우선 시행하며 생색을 냈던 정책이 바로 폐업 장려금이다. 경쟁력이 약한 산업이니 다른 일을 찾아보기 위해 현재 사업을 중단하면 장려금을 주겠다는 이야기인데, 바꿔 말하면 농업이 망해도 다른 산업에서 돈을 벌 수 있으니 그냥 접으라는 이야기다. 농민의 입장에서 이게 지금 우리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미국정부에서 하는 일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미국 농업의 이익을 위해 발벗는 대한민국
전농등 농민단체는 15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쌀협상국회비준저지 농민대회‘를 열었다. ⓒ프레시안구제역이 일어났을 때도 발 빠른 조치보다는 정치인들의 환심 사기를 위해 피해지 방문이 줄을 이었다. 무조건적인 살처분이 이어졌고, 그로인해 한국의 축산업은 큰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적 가축의 감소와 더불어, 그 이후의 후폭풍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책은 급하게 만들어졌고, 후속조치는 조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좋아하는 “선진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은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물만 축산업종사자들에게 통보되어졌다. 한국의 축산품의 이미지는 바닥을 쳤고, 덕분에 수입농산물을 엄청나게 들여올 수 있는 명분이 섰다. 이번 정부가 차라리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였으면 축산민들이 덜 억울했을 텐데 최근 광우병 발생 후 국가가 취한 태도는 축산민들의 분노를 사지 않을 수 없는 태도였다. 구제역이나 광우병은 세계가 인정하는 위험질병이다. 그럼에도 광우병 걸린 미국산소고기는 아무문제 없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수입을 막지도 못했고, 흐지부지 지나고만 있다.
한국정부가 한국의 축산물보다 미국산 축산물에 대한 안전성 홍보에 열을 올리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미국의 값싸고 질 좋은 소고기를 홍보하고 나서니 축산인 으로써 기가 찰 노릇이다. 내 나라의 정부가 자기 국민보다 타국의 집단을 위해준다면 과연 어떤 국민이 그 정부를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정부가 취하는 농어민에 대한 태도는 과연 이 정부가 우리나라의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농어민이 겪어야하는 불합리함은 정부정책에 휘둘리는 것뿐 만아니라 시장에서도 드러난다. 농어민 같은 생산자들은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임에도 위치만큼 시장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한다. 언제나 소비자보다도 중간상인이나 정부에 휘둘려야한다. 이는 매우 불합리하지만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해 매년 부채가 늘어나는 농민이 허다하다. 소를 예로 들어보면 누구나 소고기는 비싸다 생각한다. 이는 식당이든 정육점이든 어디를 가든 소고기 값이 항상 비싸기만 하고, 내리는 건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소고기 가격이 산지에서는 조그만 일만 있어도 탄력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한다. 심지어 구제역파동 이후에 산지에서 곤두박질친 소의 가격이 소고기에는 전혀 적용이 안 되거나 겨우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내린 게 전부였다.
이로 인해 일반 소비자들은 한우의 가격에 대해 언제나 비싸다는 인식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상 값싼 외국산 고기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언제나 생산자들에게는 무항생제, 깨끗한 환경, 동물복지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중간마진이 엄청난 유통과정은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결국 소비자와 생산자만 손해를 보고 중간에서 이익을 취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은 결국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산업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고, 결국 시골경제의 몰락을 가져오고 있다.
정책과 시장에서 자리를 잃은 시골사람이 어디에 가서 하소연 할 수 있을까. 시위를 나가더라도 농민의 시위는 제대로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의사의 시위에 경찰이 곤봉을 들고 진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농민의 시위에는 어김없이 강경진압이 이루어지거나 시위자체를 봉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농민은 사회적 약자이자 국민이다. 국민간의 차별을 정부나 매체가 스스로 만들어 낸다면 이야말로 불합리한 사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시와 농촌의 공생 절실
부농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시골사람이 사실 다 부자인데 앓는 소리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맥이 풀린다. 시골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시골사람이 가난하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국가 내에서 시골과 도시가 차별이 존재하며, 정책이 시골 위주의 산업보다는 도시 위주의 산업에 집중된다. 국가 간 무역협정에서도 언제나 농어업, 축산업은 포기하더라도 다른 산업에 이익을 늘릴 수 있다면 너무 쉽게 시골의 주요산업들을 포기시킨다. 많은 FTA가 이루어질 때마다 농민들이 자살하며 소리 지르고 시위를 벌이지만 정부는 지원책을 펴줄테니 조용히 하라고 한다. 그리고 불법시위라 규정하고, 제목소리 내는 것조차 눌러버린다.
힘이 없는 국민이 자신의 직업을 잃게 만드는 정부를 향해 소리 지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정부를 바른 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농민의 산업을 알아서 폐기시키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지는 의심해 보아야 한다. 국가의 총이익이 늘어날지 몰라도, 정책으로 인해 산업이 망해서 피해를 보는 사람과 이익을 얻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이는 분명 불합리한 일이다. 이대로 시골과 도시의 격차가 벌어지고, 계속해서 시골에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가 지속된다면 결국 우리 사회는 불균형을 견디다 못해 한쪽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사회란 유기체인데 한쪽이 무너지고 다른 쪽이 선다고해서 그 사회가 얼마나 오래 제대로 서 있을 수 있겠는가.
나눔과 공생의 시골이 누군가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한쪽에만 희생을 강요하는지, 이게 상식적 사회인지 의심해야한다. 시골사람에게 계속 시골인심이 있길 바란다면 사회가 이대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모습을 버리고, 시골에서조차 무분별한 이익만을 쫓아가게 만든다면 우리사회는 돌아 갈 곳을 잃고 말 것이다.
아, 내 인생길이
왜 이다지도 가시밭길인가.
찌를 때마다 피 흘러
걸을 때마다 핏자죽이었네.
걸을 때마다 잡초에 휘말려서
엎어지며 넘어지며
또 한 자국 걸을 때마다 자갈밭
또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진흙이 떡반죽 된 길
하나도 평탄한 길이 없더라
이것이 내 인생길인가.
– <내 인생길> 중에서-
할머니는 한스러운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가시밭길이자 자갈밭, 그리고 핏자죽이 어린 길이라고 노래했다. 태풍을 피해 을숙도에서 나왔지만, 한센인들은 마을로 들어가지 못했다. 잠시 머무르던 긴급대피 장소인 학교에서도 더 이상 지낼 수 없었던 그들은 캄캄함 밤에 쓰레기를 싣고 다니는 차에 실려 지금의 땅에 내던져졌다. “비가 억수로 왔다. 그냥 말없이 타라 하데. 우리도 이대로 있다가는 죽겄다 싶어서 그냥 탔제. 한참을 가더니 내리라 하는 기라.”
그냥 내린 곳이 지금의 마을이었다. 아니, 그때는 산이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두운 밤에 그들은 산 속에 버려진 것이다. “벌레가 따로 없제. 그냥 발 잘못 디뎌 굴러떨어지면 죽는 기라. 안 죽을 거라고 꿈틀꿈틀 기어 다녔제. 그래도 살아볼 기라고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면서도 비를 피할 데를 찾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옷 보따리 뿐인데. 그리 울던 아도 안 울더라. 지도 무서운 기라. 본능적으로 무서웠던 거라.”
사람들은 조그마한 바위틈만 있어도 기어 들어갔다. 달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비를 맞으며 그들은 온몸으로 기어 다니며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혹시나 굴러 떨어져 산 어딘가에 머리를 박고 죽는 줄도 모르고 죽을까봐 손을 잡고 기어 다녔다. 큰 돌에 부딪치는 줄도 몰랐고, 나뭇가지에 얼굴을 긁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는 사이 다시는 올 것 같지 않던 아침이 왔다. 비로소 서로의 얼굴을 보고, 그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흙을 뒤집어쓰고 비에 젖어 산발이 된 모습은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참혹했다. “모두 흙투성이라. 아침이 되고 사방을 살펴보니 산이라. 산 위에 길이 있는데, 간간이 트럭 소리만 나더라. 차 소리만 나면 모두 숨었다. 나무 뒤로 흙더미 뒤로…”
“왜 숨으셨어요? 임자가 있는 산이었나요?” “아이다.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잡혀가면 이제 죽는 것 밖에 더 있겄나.” 그들은 사람들을 피해 산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산이 있었는데, 그 중 아래쪽에 있는 산에 그들은 버려졌던 것이다. 흙투성이의 몸으로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뿌리와 나물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산에 버려졌거나 빗물에 쓸려 내려온 비료 자루나 거적을 찾으면 그것으로 움막을 만들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오목한 곳이나 바위틈, 그리고 흙이 쓸려 내려가 드러난 큰 나무의 밑둥이 있으면, 그 곳을 손으로 파서 사람이 들어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앞을 비료 자루로 막아 거처할 곳을 만들었다. 어쩌다 자연적으로 움푹 패인 언덕바지라도 발견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비가 와서 미끄러지고 온 몸이 흙투성이는 되었지만, 나뭇잎이 쌓여 흙이 된 곳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드러운 흙이라도 파낼 수 있는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병든 그들의 손은 흙 반 진물 반으로 반죽이 되었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낮 동안은 햇빛이 있어 견딜만 했지만, 해가 지면 산속의 기온은 사정없이 내려갔다.
“더 무서운 거는 산짐승이라. 괭이가 있나 호미가 있나. 짐승이 덮치모 방도가 없는 기라. 어린 아를 가운데 두고 어른들이 삥 둘러 잤다. 잠도 깊이 못 잔다. 춥고 배고프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고…” 삶이라고 할 수 없는 정경이었다. “지금하고 마이 다른 기라. 그때는 그래도 산에서 굶어 죽지는 않겄더라. 그런데 봐라, 김선생. 겨울이 되면 뭐 먹고 살기고? 겨울이 오기도 전에 얼어 죽고 굶어 죽을 판이라.”
할머니의 얼굴은 열기를 띠고 붉어졌다. 숨소리도 가빠지고 있었다. 불편한 두 손으로 옷자락을 꽉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겨우 일군 삶의 터전을 떠나서 산짐승 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는 산속에 내던져졌을 때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깊은 한숨 소리가 나의 심장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고통을 느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나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당신의 삶을 치유하겠으니 지나온 이야기를 해보라는 나의 요구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 고통에 가득 찬 저 삶을 누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당혹감과 함께 낭패감을 느꼈다. 내가 과연 저 ‘핏자죽만’ 남아 있는 삶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몸도 뜨거워지고 있었다. 부끄러움으로.
집이 생기다
어느 날, 여러 대의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황급히 숨기에 바빴다. 트럭이 지나갔다 싶던 순간에 다시 차 소리가 들렸다. 몇 대의 트럭이 후진하여 돌아오고 있었다. 모두들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하야리아 부대 미군들이더라. 지나가다 누가 우연히 우리를 본 모양이라.” 미군은 잔뜩 긴장하여 총을 손에 들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영어로 큰 소리로 뭐라 하는 기라. 몇 명이 내려왔는데 저거끼리 부르는 소리에 마이도 내려오더라. 또 두 명은 계속 큰 소리로 떠들면서 다시 올라가데.” 미군들은 한센인들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군들과 한센인들은 마주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의 형상에 놀라기도 하고 긴장도 했다. “대장인갑더라. 옆에 있는 미군한테 뭐라 하더라.” 그 미군은 차에 가서 건빵 박스를 들고 왔다.
미군들은 한센인들에게 건빵을 몇 박스 주었다. 한센인들은 미친 듯이 건빵을 먹었다. 젖배를 곯던 아이에게는 씹어서 입에 넣어주었다. 그들이 건빵을 먹는 동안 미군들은 산을 살피고 다녔다. 비료 포대나 거적을 걷어보는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귀신같은 몰골의 한센인들을 말없이 지켜보다 미군들은 떠나갔다.
“야~~~, 도깨비한테 홀린 것 같더라. 키는 멀대 같이 크제. 코는 왜 그리 뾰족하노. 얼굴은 꼭 밀가루 덮어 쓴 것 모양으로 허옇제.” 건빵으로 허기를 채운 그들은 미군들의 정체에 대하여 설전을 벌였다. 그날은 그렇게 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들을 한밤에 산속으로 내던지면서 식량을 가져다주겠다던 공무원은 그날도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해가 채 안 떴제. 그냥 날이 밝아오는 시간이라.” 트럭 소리가 길 위에서 멈추더니,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움막에서 나온 한센인들의 눈 앞에는 전날의 미군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수십 명이었다. 미군들은 나무를 옮겨오고, 약상자를 들고 오고, 밀가루 포대를 어깨에 메고 산으로 내려왔다. 아무 말도 없이 미군들은 삽을 들고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들을 땅에 고정시켰다.
나무틀 위에 천막을 덮었다. 훌륭했다. 그랬다. 너무나 좋은 집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군들이 간이 천막을 짓고 있는 동안 한센인들은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를 받고 붕대를 몇 개씩 받았다. 어제와 달리 같이 온 한국군이 치료를 받는 동안 통역을 해줬다. 처음으로 치료하고 광목이 아닌 붕대를 감은 손이 남의 손처럼 보였다. 상처를 싸매고 있던 광목은 빨아서 계속 썼기 때문에 넝마가 되어 있었다. 미군들은 구덩이를 파고 그 넝마 조각들을 모아 태웠다.
미군들은 오기 전에 역할을 분담한 듯이 각자 다른 일들을 했다. 천막집을 만드는 팀, 치료를 하는 팀, 주변 나무의 잔가지를 치는 팀, 주변을 소독하고 다니는 팀 등. 한 팀이 땅을 고르면 다른 팀이 그곳에 나무를 이용해 집틀을 만들고 다른 팀은 천막을 씌우고, 그러면 또 다른 팀은 천막집 주변의 나뭇가지를 정리했다. “척척 하더라. 그 통역관 말이 전날 우리 꼴을 보고 가서 충격을 받았단다. 미군들이 도와야 한다고 부대장한테 말해서 몇 시간 동안 회의를 했단다. 그리고 팀으로 나누어서 일을 맡았다더라.”
산에 흐르던 물줄기를 어떻게 막았는지 공동의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호스가 연결되고 커다란 고무 물통에 그 호스 끝을 연결하여 식수통을 완성했다.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공동 공간도 만들어졌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쯤 일은 마무리 되었다. 천막 안에는 땅의 한기가 올라오지 못하게 베니어판이 깔려 있고, 그 밑에는 방수 깔개가 깔려 있었다.
일을 마친 미군들은 한센인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들의 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한센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대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기만 했다. 하루 동안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저의가 있는 건 아닌지 내심 불안했다.
미군들은 한센인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그 손을 잡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미군들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들이 손을 흔들며 트럭을 타고 떠나가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때는 누가 우리를 돕는다는 거는 상상도 못했다. 저것들이 이렇게 천막 쳐 놓고 내일 와서 우리를 쫓아내면 우짤기고.” 아무도 믿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미군들이 가져다 준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 배부르게 먹고 잠을 청했던 그날 밤, 한센인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그들에게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사이에 물이 질척거리는 맨땅이 아니라 보송보송한 베니어 판 위에 몸을 누인 것이 꿈만 같았다. 딱딱한 베니어판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금침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다음날에도 미군들은 다시 왔다. 그들은 건빵과 설탕과 밀가루를 또 들고 왔다. 모포도 들고 와 집집마다 넉넉하게 나누어 주었다. 전날 보지 못했던 미군이 두 명 새로 왔다. 통역군인은 그들이 의사라고 했다. 두 명의 미군은 한센인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약이 주어졌다. 그 약은 예전 집단촌에서 먹던 약보다 양이 적었다. “나병약이라 하더라. 그 약은 속이 안 아프더라. 다른 영양제도 주더라.” 을숙도에서 나온 이후 약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병세는 악화되어 있었다.
미군들이 준 약은 위의 통증이 없었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어지럽던 증세도 없었다. 그날 이후 미군들은 정기적으로 찾아와 주변을 소독하고 밀가루와 통조림을 공급해 주었다. 때때로 건빵도 가져다주었다. 미군들의 도움은 장기적으로 지속되었다. “좋은 약 먹고 소독하니까 금방 좋아지대.” 미군들이 지어 주었던 천막집도 시간이 지나면서 집의 형상을 갖추어 나갔다. 그 집들은 이후 정부에서 특별조치법이 시행되었을 때 그들의 집으로 허가가 났다.
기억 속의 하야리아
할머니는 도움을 주지 않았던 대한민국을 원망하거나 비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군에 대해서 말을 할 때에는 얼굴에 화기가 돌며 엷은 미소까지 지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 사라질 만도 하건만 할머니는 마치 어제의 일을 말하는 것 마냥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는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반미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나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50여 년 전의 미군들만 기억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한미 FTA는 무조건 좋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미국과 하는 계약이니까. “갸들이 우리한테 손해나게는 안 한다. 우리끼리 싸우는 거제.”
할머니에게 기억 속의 미국은 지금의 미국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미군들이 지나쳐도 될 것을 다시 돌아와 한센인들을 발견하고 오랫동안 도움을 주었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 것만큼 알고 아는 것만큼 믿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잡았던 도움의 손길은 따뜻하고 믿음직하다. 나는 할머니에게 50여 년 전의 하야리아 부대의 미군들 외의 미군들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군에 대한 그 기억 한 자락은 ‘진흙이 떡 반죽 된 가시밭길’ 같은 삶의 여정에서 따뜻한 등불이 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미군을 이야기하며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잠시라도 행복해하는 할머니를 욕할 수 없으리라. 지금의 우리는 그 당시 미군들과 달리 한센인들을 거부했던 사람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지나 간 일이라고, 그때는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들었다고,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실제로 사라호 태풍 당시의 신문을 찾아보면 산속에 고립된 한센인들에게 식량을 보급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 동네 사람들이 한센인들에게 가는 산의 입구를 가로막고 식량보급을 차단하여 한센인들이 아사 지경에 이르고 있지만, 대책이 없다는 내용이다. 동네 사람들은 한센인들이 그들의 주거지 부근에 삶의 터전을 마련할까봐 비상식량마저 보급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신문에 기사화된 곳과 할머니가 강제 이주된 곳이 다르지만, 행정 소속이 같은 부산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할머니와 그 동료들에게 식량을 보급하지 못하여 애를 태운 공무원이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미군들이 한센인들을 도와줄 수 있었다면 대한민국 정부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모두가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애써 변명해보지만, 안타까움은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보고 듣고 생각하기]
우리 재산 우리 손으로 지키자
지주형의『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글: 나태영(교육강좌 수료, 한철연 회원)
“아님 밤중에 홍두깨”
“아이엠에프(국제통화기금) 사태 때문에 교통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왜요?”
“사람들이 너무 긴장해서 교통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 발생 후 직장 동료와 내가 차를 타고 가면서 나눈 대화내용이다. 아이엠에프 사태는 너무도 어이없이 당하게 된 사건이었다. 우리가 죄 지은 것도 없었는데 가혹한 벌을 받은 것이었다. 달러에 비해서 우리 돈 가치가 약 두 배 떨어졌으니 애써 모은 우리 재산이 하루아침에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사건이었다. 경제학자들도 미리 알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동남아에 주식을 투자했던 주식분석가들 소수는 알고 있었다. 간혹 아이엠에프 사태를 미리 말하는 사람이 소수 있었으나 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우리 경제 튼튼하다고 기사 내보내서 그 목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왜 아이엠에프 사태가 발생했을까요? 왜 막지 못했을까요? 그 많은 경제학자들은 그 사태를 왜 예측하지 못했을까요?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아이엠에프 사태가 발생한 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드디어 갑갑했던 내 속을 확 풀어주는 책이 나왔다. 지주형이 지은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이 바로 그 책이다. 미국은 작정하고 아이엠에프 사태를 최대한 미국에 이익이 되도록 했다. 미국한테 피로 맺은 나라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외환 위기 당시 박영철 금융연구원장은 “미 재무부는 위기를 아시아로 확대하지 않고 타이에서 문제를 끝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미국이 동아시아의 금융 위기를 방조함으로써 이 지역에 구조 개혁과 시장 개방을 관철하고 미국 자본의 투자 기회를 확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세계무역기구(W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약속했던 자본 시장 개방이 더디게 진행되자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외환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거나 동남아의 위기가 한국에 확산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을 이유가 없었다. 1980년대의 라틴 아메리카에서처럼 위기를 한국의 시장 개방을 가속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일설에 따르면 1997년 7월 CIA는 한국에 50여 명의 요원을 급파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샅샅이 조사하고 돌아갔고 같은 시기에 한국에 상주하는 15명의 CIA 요원들도 매우 바쁘게 움직였다고 한다. (…) CIA는 8월에 이미 한국의 외환 위기 가능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에 외환 위기와 관련해 어떠한 경고도 하지 않았고 외환 위기의 확산을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았다.’ (171~173쪽)
지주형은 원래 이 책 제목을 『신자유주의의 지구 정치경제와 한국 자본주의의 전환』 으로 하려고 했다. 이제는 우리나라 일만 잘 해결한다고 해서 우리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지구 전체의 정치경제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든 또 아이엠에프 사태를 당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노동력이나 복지를 삭감하는 것을 ‘군살빼기’라고 했습니다. 사회의 군살들을 빼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이것이 저항에 부딪치니까 바깥으로 눈을 돌립니다. 그래서 1990년대 넘어가면서부터 지구화가 일어나죠. 민족 국가 단위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확장됩니다. 국내에서 싼 임금으로 쥐어짜는 게 안 되니까 더 싼 임금이 있는 다른 나라로 자본이 이동하는 것이죠.’(남구현, 작은책www.sbook.co.kr, 2012년 6월호, 95쪽)
이 세상에서 거래되는 돈 액수가 물건 거래 액수보다 약 7천배 많다는 이 초현실적인 현상을 어찌 이해해야 될 지 난감할 뿐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세월은 흘러간다.
‘먼저 새로운 지구 정치경제의 ‘카지노 자본주의’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금융의 지구화는 실물 산업부분에 대한 투자보다는 자유로운 금융투자에서 단기수익을 추구하는 거대한 도박판을 만들어냈다(Strange 1997). 외환투기와 파생금융상품거래같이 불확실한 미래의 가격 변동에 대한 예측과 베팅에 기초한 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예를 들면 국제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량 대비 연간 전 세계 교역량이 5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외환거래가 가격변동성에 기인한 실수요와 무관한 단기차익의 원천으로 이용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하루 외환거래량은 연간 국제무역량의 20배가 넘는다.’(70쪽)
‘금융투자를 통한 축적과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부분에 대한 투자 사이에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예를 들면 금융자본은 산업과 고용창출이 아니라 이윤에 일차적인 관심이 있기 때문에 주당이익배당dividend을 늘리고 투자 자원을 감소시켜 오히려 산업투자를 제약하기가지 한다.(71쪽)
이 세상 정치경제를 잘 알면 우리는 좋은 결과를 이룰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무상 급식만 해도 빨갱이 얘기가 나오고 그러는데 제가 있었던 독일은 무상 급식 정도가 아니라 박사 학위까지 다 무상 교육입니다. 의료도 다 무상이고요.’
‘각종 제도들이 만들어져 있어 콜이나 대처 이런 사람들이 등장해 그것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에 대해서 복지의 불가역성이라고 말합니다. 복지는 한 번 도입하면 거꾸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복지 자체에 불가역성이라는 괴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지금 유럽에서 연금 삭감하고 거꾸로 가려고 그러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다 들고 나옵니다.’
‘실제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유럽에서 노동자 총파업이 엄청나게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노동자들과 학생, 대중들의 투쟁이 격렬하게 터져 나왔기 때문에 거꾸로 돌리지 못한 겁입니다.’(남구현, 작은책www.sbook.co.kr, 2012년 6월호, 94, 95쪽)
지주형이 글 쓰는 방식
이 책은 경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읽기에는 좀 어려운 책이다. 다만 아이엠에프 사태 글은 쉽게 읽힌다. 무협지 읽히듯이 쉽게 읽힌다. 이 지구에 신자유주의가 생겨난 배경 내용이 어렵다. 그래서 지은이는 쉬운 부분부터 읽으라고 권한다. 어려운 책이라서 지은이는 독자들을 많이 배려해준다. 가끔씩 내용을 요약해준다. 지주형은 원인-결과 틀로 문장을 이어간다. 촘촘하게 차근차근 문장을 이어간다. 단락과 단락 연결도 매끄럽다. 끈기만 있으면 경제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는 이 세상 정치경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아이엠에프 사태 당했다. 우리가 잘 몰랐기 때문에 한미매국협정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우리는 앞으로 한미매국협정 그만둘거야.”라고 팩스 한 장만 보내면 한미매국협정은 없던 일로 된다. 6개월 뒤에 그리 된다. 미국 대통령이 반대할 수도 없다. 한미매국협정 협정문에 똑똑히 적혀있다고 이해영은 말한다. 하지만 이 땅에 이러한 사실마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아는 사람들도 과연 그리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는 미국과 소수 재벌에게만 이익이 되는, 다수 서민에게 재앙이 되는 한미매국협정을 지속시키려고 한다. 지지도가 높은 안철수는 한미매국협정에 대해서 자신 의견을 아직도 밝히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은 한미매국협정 폐기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협정문 조금 고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답답하다. 미국은 아이엠에프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길을 알면서도 우리에게 그 길을 알려주지 않은 나라이다. 대한민국 혈맹이라는 미국이 말이다.
아이엠에프 사태 때문에 하루아침에 우리 재산이 절반이 되었다. 그 이후 이 땅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절반이 넘게 되었다. 이 땅 사람 가운데 절반 넘는 사람들이 항상 불안하게 산다. 자살률이 오이시디(OECD, 경제협력 개발기구) 국가중 1위가 되었다. 애낳지 않으려는 비율이 또한 오이시디 국가중 1위가 되었다. 오죽 세상 살기 힘들면 사람들이 종족 보존을 피하려 하겠는가? 한매매국협정이 시작되었기에 우리는 서서히 더 무서운 피해를 볼 것이다. ‘IMF사태 후 10년 간의 결과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한미FTA입니다.(『한미FTA 핸드북』, 11쪽, 송기호, 녹색평론l사, 2007년) 이 책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이 어렵지만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 누구도 우리 재산을 지켜주지 않는다. 이명박대통령각하가 우리 재산 지켜주신다. 꿈 깨시라. 대다수 국회의원들도 우리 재산 지켜주지 않는다. 국회위원 딱 한 번만 해도 그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한 달에 120만원씩 연금 받는다. 굳이 우리 재산 지켜주려고 목숨 바칠 이유가 없다. 물론 진보당 국회의원과 민주당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가운데 35프로 빼고 말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 재산 지켜야 한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더불어 한미매국협정 관련 책도 읽어야 한다. 네이버에 이해영, 우석훈, 송기호, 홍기빈 치면 한미매국협정 책 제목 나온다. 우리 재산 우리 손으로 지키자.
칸트의 ‘숭고론’으로부터 칸트를 벗어나다
서양의 근대를 대표하는 칸트에서 근대의 균열 또는 근대를 벗어날 새로운 모색이 보여진다고 발표자는 말한다. <숭고의 존재론-칸트 숭고론의 탈(반)칸트적 해석>에서 칸트의 숭고론에 숨어 있는 진리에 대한 재고찰 가능성을 논의한다. 칸트적 입장에 대한 반칸트적 또는 탈칸트적 해석을 통해 인식능력들의 조화와 균형을 통한 진리 규정에서 벗어나 인식능력들의 균열과 그 균열의 틈새에서 삐져나오는 존재 진리의 다른 국면들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발표는 칸트 숭고론에 국한되지 않고 칸트의 판단 전반과 그 속에서의 상상력의 역할과 가능성을 토론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그는 우리가 칸트를 이해하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의미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칸트 속에서 칸트로 대표되는 근대의 진리를 반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인간론과 사회론의 새로운 길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이는 그에게도 아직 큰 숙제인 것 같았다. 아쉽지만 그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이렇게 오고가는 대화에서 글에서는 다 읽어낼 수 없었던 한 연구자의 고민과 열정이 전해졌다.
2.
발표의 전반부 내용은 칸트의 숭고론에 대한 이해이다. 칸트에게 숭고의 감정은 불쾌가 쾌로 전환되는 데서 오는 일종의 환희이다. 숭고는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로 구분된다. 수학적 숭고는 대상의 공간적 크기에 대한 감정으로, 대상의 공간적 크기는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마주치는 감정상의 크기가 무한하다고 여기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숭고이다. 역학적 숭고는 대상이 가진 힘의 크기에 대한 감정으로, 매우 강력한 위력을 가진 대상과 만나게 되었을 때 감성적?신체적 능력은 이 대상 앞에서는 완전히 무력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이 공포(불쾌)의 원천이 되며 이 불쾌감은 곧 존경(경외)로 전환된다. 역학적 숭고의 예로 칸트는 절벽에 서 있을 때, 거대한 폭풍우와 마주하게 됐을 때를 제시한다.
이러한 숭고판단은 ‘상상력과 이성의 조화’에 의해 성립된다. 숭고판단은 인식판단에서 상상력이 지성의 개념에 적합하도록 직관의 다양을 종합할 뿐 그 활동이 자유로울 수 없고, 취미판단이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와 조화’에 의해 성립되는 것과 다르다. 숭고에 있어서 상상력은 무능력하다. 그러나 상상력의 무능력은 인식능력들 간에 적절한 위계를 확인하는 일이 된다. 상상력의 무능력은 그 자체로 이성능력에게는 합목적적이며 이로써 위계의 조화라는 역설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상상력과 이성의 조화는 수직관계의 조화이다. 이러한 숭고에 대한 분석을 통해 칸트가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이성의 탁월성이자 상상력의 무능함 또는 이성과 상상력의 위계에 따른 질서이다.
발표의 후반부에서 발표자는 칸트 숭고론에 내재하는 역설의 탈근대적 가능성을 언급한다. 먼저 J. F.리오타르가 칸트의 숭고론을 인식능력들의 조화보다는 분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칸트에게서 이성이란 이념능력을 말하며, 이념이란 ‘직관으로 현시할 수 없는 개념’을 말한다. 그리고 상상력이란 ‘현시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상상력이 이성의 이념과 일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칸트의 숭고론은 칸트 자신이 의도하고자 한 대로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을 많이 포함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진리와 가상의 문제이다. 발표자는 이로부터 리오타르가 지적했던 칸트의 인식론적 역설과 유사하게, 존재론적 역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칸트에게서 판단이 성립하는 과정의 핵심은 상상력과 지성(또는 이성)의 관계이다. 사물 자체로부터 촉발된 직관을 감성이 수용하지만, 감성이 수용한 직관을 개념과 관련하여 종합하는 것은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념(이념) 능력인 지성(이성)은 상상력이 종합한 그 표상에 대해 규정을 내려 판단(인식)을 종결짓는다. 칸트는『판단력 비판』에서 판단력을 ‘특수를 보편에 포섭시키는 능력’으로 규정하고, ‘보편이 주어져 있는 경우’인 규정적 판단력과 ‘보편이 주어져 있지 않은 경우’인 반성적 판단력으로 구분한다.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의 언급은 상상력이 지성이나 이성의 입법으로부터 벗어나 활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이로부터 “이 세계에 있어서 인간 경험의 모든 국면이 범주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경험의 도덕적 차원과 미감적(감성적) 차원은 이론적 지성에 의해 영원히 은폐된 존재의 어떤 국면을 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발표자는 초험적 진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숭고판단의 상상력이 가장 그 진리에 가까울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리에 대해 다시 묻는다. 우리는 진리가 항상 개념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개념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은 항상 이것과 저것의 다름 그리고 그 다름들 중에서 옳은 것과 틀린 것을 명확히 할 수 있음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만약 진리의 참모습이 개념으로도 규정할 수 없고 이성으로도 확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우리 지산의 판단이나 인식들을 평가하고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상상력이 지성이나 이성으로부터 벗어날 때 일순간이나마 초험적 진리가 드러날 수 있듯이, 일체의 법칙이나 이념으로부터 벗어날 때 우리는 그 자체로서의 우리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3.
월례발표회는 새로운 글만을 발표하는 곳이 아니라 이미 발표된 글도 다시 토론할 수 있다. 이번처럼. 김상현 선생님의 논문은『시대와 철학』제22권 1호(2011년 봄호)에 실려 있다. 발표형식은 4월부터 시도하기 시작한 새로운 방식이었다. 지루할 수 있는 논문 발제를 과감히 없애고 사회자가 준비한 질문을 통해 발표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번처럼 이미 발표된 논문인 경우 미리 논문을 읽고 온 후 사회자의 꼼꼼한 정리와 질문 그리고 발표자의 답변을 듣고, 중간 중간 참석자의 질문이 더해지면서 딱딱한 발표형식에서 벗어나 마치 세미나를 하고 있는 듯 편안하게 발표하고 참여할 수 있었다. 기존의 발표형식과 새로운 발표형식 서로 장단점이 있지만 앞으로 월례발표회는 새로운 발표형식을 토대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희랍철학 고전읽기] 플라톤 『국가』 2012.06.02
발제: 8권 543a~555b (명예지상정체, 과두정체) 추 은 혜
* 네 가지 정체(政體) _ 성격들이 개인들보다는 정체들에서 한결 더 뚜렷하게 드러남
[크레테 및 라코니케식 정체(명예지상정체/명예지배정체)/ 과두정체/ 민주정체/ 참주정체]
“그 하나는 많은 사람한테서 칭찬을 받고 있는 것으로서, 크레테 및 라코니케식 정체가 이것일세. 그리고 둘째 것이며, 역시 버금가는 것으로서 칭찬을 받고 있는 것은 과두 정체라 불리는 것으로, 많은 나쁜 것으로 가득 찬 정체일세. 이것과는 화합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그 다음에 생기는 것은 민주 정체이네. 그리고 그야말로 특출한 참주 정체는 이 모든 것과도 판이한 것으로서, 나라의 넷째 것이며 말기적인 질병일세.” (544b)
“그렇다면 정체의 종류가 여럿 있듯, 인간들의 기질(tropos)의 종류도 그만큼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자네는 알고 있는가? … 즉 라코니케(스파르타) 식 정체에 따라 생기게 된 사람으로서 ‘승리(이기기)를 좋아하고’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을, 그리고선 과두 정체적인(과두 정체를 닮은) 사람과 민주정체적인(민주정체를 닮은) 사람 그리고 참주 정체적인(참주정체를 닮은) 사람을 언급하는 순으로 말일세. 그렇게 해서 가장 올바르지 못한 자를 본 다음에, 이 사람을 우리가 가장 올바른 사람과 맞서게 하자는 것이지. 따라서, 순수하게 ‘올바른 상태’와 순수하게 ‘올바르지 못한 상태’가 그걸 지닌 사람의 행복 및 불행과 관련해서 도대체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고찰도 완벽해졌으면 해서지.” (545a-545b)
? (1) 크레테 및 라코니케식 정체 (명예지상정체/명예지배정체)
– 발생배경: (최선자들의 정체 ? 명예지상정체)
“일단 내분이 생기게 되면, 통치자들 중에서 철과 청동의 성분을 갖는 두 부류는 [정체를] 각기 돈벌이와 토지, 가옥, 금은의 소유 쪽으로 끌어당기나, 이와는 달리 황금 및 은의 성분을 갖는 두 부류는 본성상 가난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부유해서, [사람의] ‘훌륭함’(덕)과 옛날의 체제 쪽으로 이끄네. 그러나 이들은 서로 격렬하게 다투며 항거하다가는, 중간선에서 합의를 보게 되네. 그래서 그들은 땅과 집을 분배하여 사유화하는 한편으로, 이전에는 자유로운 친구들로서 그리고 그들의 생계를 돌보아주던 사람들로서 그들의 수호를 받아오던 사람들을 노예들로 만들어, 예속인들로 그리고 가노(家奴)들로 갖고서는, 그들 자신이 이들을 상대로 한 전쟁과 이들에 대한 수호에 골몰하게 되네.” (547b-547c)
– 경영방식: (최선자 정체와 과두 정체의 중간)
? 최선자 정체와 유사점: “그렇다면 이 정체는 통치자들을 존중하고 또한 이 나라의 전사 집단으로 하여금 농사와 수공예 및 그 밖의 돈벌이를 멀리하게 하는 한편으로, 공동식사가 마련되고 체육과 전쟁훈련에 마음을 쓰는 등” (547d)
? 과두 정체와 유사점: “그렇지만 이 정체는 지혜로운 사람들(hoi sophoi)을 관직에 앉히길 두려워하는데, 이는 이 정체가 보유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더 이상 단순하지도 열심이지도 않고 혼합되어 있어서일세. 그리고 격정적이며 한결 더 단순한 사람들 쪽으로, 성향상 평화보다는 전쟁 취향인 사람들 쪽으로 기울며, 전쟁과 관련되는 계략과 전술들을 존중하고, 전쟁을 하는 가운데 온 세월을 보내는 등, 이런 유의 많은 것을 이 정체는 그 자체의 특유한 것들로 또한 갖게 되겠지?”
“또한 그런 사람들은, 과두 정체의 사람들이 그러듯, 재물에 대해 욕심을 내는 사람들로 될 것이며, 비밀히 금과 은을 끔찍이 우러러 모시는데, 그들이 금고와 사사로운 창고를 갖고 있어서, 이곳에다 이것들을 보관하여 숨겨둘 수 있기 때문일세. 게다가 또 집들에 담을 둘러쌓고서, 영락없는 자기만의 보금자리로 갖고서는, 그 안에서 여인들한테 그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그 밖의 사람들한테 낭비를 하며 많은 지출을 할 수 있을 걸세.” (548a-548b)
* 나쁜 것과 좋은 것이 혼합된 정체
“ 그러나 격정적인 것이 우세한 탓에, 이 정체에서는 한 가지 것만이, 즉 승리에 대한 사랑과 명예에 대한 사랑만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네.” (548c)
– 명예지상정체에 일치하는 사람: 경쟁심(승리에 대한 사랑: philonokia)을 가진 이
(아데이만토스가 정체에 일치하는 사람으로서 글라우콘을 내세우자 소크라테스는 그가 성향상 일치하는 것 같지 않다고 대답한다. 글라우콘은 최선의 수호자가 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훌륭함과 관련해서 순수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반기게 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cf. 최선의 수호자: “시가(詩歌)와 혼화된 이성(이성적 사고: logos)을 갖춘 자일세. 이것이 생김으로써만이, 이를 지닌 자에게 일생을 통해서 훌륭함(덕)의 보존자가 깃들일 걸세.” (549b)]
: 잘 다스려지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는 훌륭한 아버지의 어린 아들
“그의 아버지는 그의 혼에 있어서 헤아리는(이성적인) 부분을 조장하며 키우나, 다른 사람들은 욕구적인 부분과 격정적인 부분을 조장하며 키우네. 그는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남들과 나쁜 교제를 가짐으로써, 이들 양쪽에 끌리어서 그 중간에 오게 되어, 자신에 있어서 주도권을(혼의) 중간부분, 즉 이기기를 좋아하며 격정적인 부분에 넘겨 주어서는, 도도하고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네.” (550b)
? (2) 과두정체 (평가재산에 근거한 정체, 부자들이 통치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통치에 관여 못함)
– 발생배경: (명예지상정체 ? 과두정체)
“황금으로 가득한 각자의 그 금고가 그런 정체를 무너뜨리지. 먼저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그걸 소비할 길을 찾는데, 이를 위해 법률을 왜곡하네. 그래서 자신들도 그들의 아내들도 법률을 따르지 않게 되네. … 다음으로 저마다 다른 사람이 그러는 것을 목격하고서, 서로들 경쟁을 하게 되어, 자기들끼리 그런 무리를 이루게 되네. … 그들은 돈벌이를 점점 더 진전시켜 가고, 그들이 이를 더 귀히 여길수록, 그만큼 (사람의) 훌륭함(덕)은 덜 귀히 여길 것이네. 혹시 훌륭함(덕)과 부는 아주 상반되는 것이어서, 마치 저울의 양쪽 저울대에 놓인 것들처럼, 늘 반대편으로 쏠리지 않는가?… 그리하여 그들은 승리를 사랑하고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마침내 돈벌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 부자에 대해서 찬양하며 찬탄하여, 그를 관직에 앉히지만, 가난한 사람은 멸시하네” (550e-551a)
“따라서 이들은 그때 자산액을 산정하여 과두적인 정체의 기준을 법으로 정하게 되는데, 과두 정체의 성격이 더한 곳에서는 그 액수가 더 많으나, 그 성격이 덜한 곳에서는 그 액수가 더 적네. 자산이 정한 평가액에 미달하는 사람에겐 관직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선언한 다음, 이를 무력에 의해 관철하거나, 또는 그러기에 앞서, 공포감을 조성하여 그런 정체를 수립하네.” (551b)
– 과두정체의 특성(결함) (551c-552a)
(1) 평가 재산을 근거로 삼음에 따라 능력 있는 가난한 사람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음 (ex.조타수)
(2) 필연적으로 하나가 아닌 두 나라;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와 부유한 사람들의 나라이므로 같은 곳에 거주하면서 언제나 서로에 대해서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의 나라
(3) 어떠한 전쟁도 할 수 없다는 것(무장한 대중을 이용함으로써 적보다 대중을 더 두려워하고, 결국 자신들이 소수자임이 드러나게 됨/ 재물을 좋아하므로 돈을 기부하지도 않음)
(4) 참견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동시에 농사짓는 사람들이며 돈벌이 하는 사람들이고 전쟁하는 사람들 “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팔고, 다른 사람은 이 사람 것을 사서 갖는 것이 허용되는 것, 그리고 이를 다 판 사람이, 이 나라의 어떤 구성원도 아니면서, 즉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나 장인으로도, 기병이나 중무장 보병으로도 불리지 못하고, 가난뱅이로 그리고 빈털터리로 불릴 뿐인 자이면서도, 이 나라에 거주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 말일세.” (552a)
“그러니까 자네가 거지들을 볼 수 있는 나라에서는 그곳 어딘가에 도둑들과 소매치기들 그리고 신전 절도범과 이런 유의 온갖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이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하이.” (552d)
“그렇다면 이런 나라들에는 침을 가진 못된 자들이 또한 많이 있어서, 이들을 통치자들이 조심스레 힘으로 제압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그와 같은 사람들이 거기에 생기게 되는 것은 교육부족과 나쁜 양육 그리고 나쁜 정치체제로 인하여서라고 우리는 말하지 않겠는가?” (552e)
– 과두정체에 일치하는 사람: (재물을 가장 귀히 여김, 인색하며 부지런히 일함, 무엇에나 이윤을 남겨 창고에 쌓아둠으로써 대중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 아버지가 무고를 당해 사형 또는 재산을 몰수 당하는 일 등을 보고 겪은 아들
“여보게나, 아들은 이런 일들을 보고 겪은 데다 재산마저 잃게 되자, 겁을 먹고서, 명예에 대한 사랑과 저 격정적(기개적)인 부분을 자신의 혼에 있는 그 옥좌에서 잽싸게 몰아내 버릴 것이라 나는 생각하네. 또한 그는 가난으로 비천해진 나머지, 탐욕스레 돈벌이로 전향하여, 조금씩 절약하며 일을 하여, 재물을 모으게 되네.” (553c)
“그는 헤아리는(이성적인) 부분과 격정적인 부분을 욕구적인 부분 아래 땅바닥 양쪽에 쪼그리고 앉게 하여, 노예 노릇을 하게 하면서, 앞엣 것에 대해서는 어떤 수로 더 적은 재물에서 더 많은 재물이 생기게 되겠는지를 셈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 나는 생각하네. 그런가 하면, 뒤엣것으로 하여금 부와 부자들 이외에는 아무것에 대해서도 감탄하며 존중하지 못하도록 하며, 또한 재물의 획득이나 그것에 도움이 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자랑거리로 여기지 못하도록 할 걸세.” (553d)
“즉 그런 사람은, 자신이 올바른 것으로 여겨져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그런 여느 계약 관계들에 있어서는 자신 안에 있는 여느 나쁜 욕망들을 자신의 어떤 적절한 부분에 의해서 힘으로 제압한다는 것을 말일세. 그러나 그가 이러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걸 설득해서도 아니며, 말로써 고분고분하도록 만든 것도 아니고, 강제와 공포감에 의해서요, 자신의 다른 재산에 대해 두려워해서라는 것을 말일세.” (554d)
“따라서 이런 사람은 내면적으로 분쟁 없는 상태에 있지도 못하며, 한 사람 아닌 이중적 인간일 것이네. 비록 대개는 더 좋은 욕망들이 더 나쁜 욕망들을 억제하겠지만 말일세.” (554e)
“더 나아가, 이 인색한 사람은 어떤 승리나 훌륭한 것들에 대한 그 나라에서의 여느 경쟁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보잘것없는 경쟁자이네. 그는 명성을 위해서나 그와 같은 경쟁을 위해서는 재물을 쓰려고 하지 않으며, 낭비적인 욕구들을 불러일으켜 이것들의 동맹과 승리욕을 위해 이것들을 불러 모으는 걸 두려워하여, 과두 정치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소수 병력을 갖고 싸움으로써 대개는 패배하면서도 부자로 지내네.” (555a)
2.1. 좋음의 이데아
[502d] 남아있는 논의 : 정체의 보존자들이 어떻게 생기게 되는지, ①방법 ②교과(학문) ③활동 ④어떤 연령의 사람들이 그 각각에 관여할 때 생기는지
[502d~503d] 이 부분에서는 소크라테스는 앞서 건드리기 어려워 주저하고 있었던 문제에 관해 논한다. 처음 논의는 통치자 아내들의 소유에 관한 문제이다. 소크라테스 자신도 아내들의 소유에 관한 문제가 반드시 추구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살 것이고 실현되기도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것은 처음부터 추구하듯, 추구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들의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서도 다시금 강조한다. 첫째로 통치자는 괴로운 일?즐거운 일을 겪더라도 나라를 사랑해야한다. 둘째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치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끝으로 이러한 원칙을 잘 지킨 통치자에 대해서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예와 상을 주어야하고 살아서는 위의 원칙을 따르는 사람을 통치자로 옹립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위의 기본적 자세를 가진 자들을 옹립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즉, 철학자들이 ‘엄밀한 의미의 수호자’로 임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선 철학자에 대한 성향(자질)들을 다시 한 번 언급하고 그 성향을 모두 가진 이(철학자)가 드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언급한다. 우선 철학자의 기본성향은 ①쉽게 배우고 ②기억력이 좋고 ③재치 있고 ④민첩하고 ⑤여타의 다른 성향들도 활기차고 당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의 민첩한 성향은 그것에 의해 다른 성향들이 활기차게 하고 당당하게 한다. 혹여 그와 반대되는 ①조용함 ②안정됨 ③절도 있게 살아감 같은 성향들은 철학자에게는 유지될 수 없다. 그것은 민첩함이라는 성향이 그들을 스스로 이끌어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철학자의 성향이 소수만 가지게 되는 이유는 그 성향(자질)이 천성으로 결합된 상태에서 자라기는 힘들고 그 각각의 성향들마저도 대부분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철학자들- ‘엄밀한 의미의 수호자들’이 소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503d] 앞서 설명한 철학자의 성향과 반대되는 ①조용함 ②안정됨 ③절도 있게 살아감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안정되고 변하지 않는 성격들이기에 그들은 믿음직한 진술들로 쉽게 이용되게 된다. 그들은 설령 전쟁에 대해서도 믿음직한 진술들에 의해 설득 당하게 되어 좀처럼 동요하지는 않지만, 배움에 임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인다. 즉, 그들은 배움에 대해서 철학자들이 느끼는 경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이라고 해서 ‘엄밀한 의미의 통치자’가 배제할 것이 아니라 양쪽 성향을 훌륭히 겸비해야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교육/명예/통치 그 어떤 것에도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말한다. 아마도, 교육/명예/통치 와 같은 부분은 통치자가 관여해야할 부분이기에 진정한 통치자는 양쪽 성향을 모두 가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503e]이어서 소크라테스는 통치자가 될 인물들이 가장 중요한(최고의) 학문들을 감당가능한지 시험하고 살펴보기 위해 그들에게 노고, 두려움, 쾌락 등을 시험해야하고 많은 교과 들을 통해서도 단련을 받아야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양쪽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기인하는 것이다.
[504a~505a] 이 부분부터 ‘중요한(최고의) 학문’들은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본격적인 선에 이데아에 관한개념이 등장한다. 우선 최고의 학문이란 것은 좋음의 이데아를 지칭한다. 구체적으로 이 부분은 [503e]에서 소개한 최고의 학문을 감당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서 왜 노고, 두려움, 쾌락을 시험받고 많은 교과들로 단련 받아야하는지 이유에 대해 말한다. 본질적으로 혼의 3요소인 절제, 용기, 지혜와 같은 것들을 훌륭하게 더 잘 알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더 멀고, 다르며, 피해 돌아가야 하는 즉, 더 어려운 길을 거쳐야한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길을 돌아옴으로써 척도(metron)가 실재에 미치게 하고자 함이다. 풀어 설명하자면 개인이 가진 여러 가지 기준들(척도)이 좋음의 이데아(실재)에 다가가게 하기 위하여 어려운 방법으로 훈련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국가와 법률의 수호자(통치자)는 다양한 교과를 공부하는 것처럼 어려운 방법으로 시험받지 않는 다면 그들이 가지는 척도(metron)는 좋음의 이데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신체단련 못지않게 공부하는 데 있어서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504e~505d] 우선 [504e~505a]에서는 좋음의 이데아가 ‘가장 큰(중요한) 배움’이자 이것 덕분에 올바른 것들과 그 밖의 다른 것들이 유용하고 유익한 것들도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좋음의 이데아는 모든 것의 궁극적 원리(arche)라는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혹시 자네는 소유가, 정작 좋은 것이 아닐지라도, 모두 이득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혹은 ‘좋음’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도, 정작 아름다운 것이나 좋은 것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다도 그렇겠는가?”(국가, 429)
라는 질문을 글라우콘에게 던진다. 아마도 이 질문은 ‘좋음’이라는 것이 반드시 철인에게만 가지고 있는 관념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지혜를 좋다고 생각하는 세련된 사람들이 그들도 지혜를 모르기 때문에 좋음에 대한 지혜라고 말하는 점이나, 쾌락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다중들이 쾌락에는 나쁜 쾌락도 있음을 동의하는 데에서 보건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매우 부분적이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구체적인 좋음에 대한 정의(쾌락이나 지혜와 같은 정의)를 논할 때 달리하게 되고 단순히 좋음에 대한 것이라고 정의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여겨지는(판단되는) 것들’(doxa의 것들)을 행하고, 소유하고, 택하겠지만 실제로 ‘좋은 것’들은 ‘doxa의 것들’에 만족하지 않고 ‘사실로 그런 것들’(ta onta)을 추구하기에 즉, ‘좋은 것’들은 실재의 세계(이데아계)의 것들을 추구하기에 의견(판단: doxa)를 경멸하게 된다.
[505e~506b]여기에서는 앞서 제시 미약한 정의들을 바탕으로 보았을 때, 공통된 ‘좋음’에 관한 속성을 종합하여 좋음의 이데아에 대해 정의를 도출한다. 좋음의 이데아라는 것은 모든 혼이 추구하는 바로 그것,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행하게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좋음의 이데아가 있는지 혼은 예감은 하면서도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당혹해한다. 또한 그것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확고한 믿음을 갖지 못한다. 이렇게 확고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원인 때문에 혼은 다른 것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중요한 좋음의 이데아를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즉, 지도자들이 그런 것들을 몰라서는 안 되며, 지도자들이 그것을 모를 경우 그를 따르는 이들은 그를 대단치 못하다고 생각하기에 따르지 않게 된다. 그러나 수호자가 이것을 제대로 아는 상태에서 정체(국가)를 다스린다면 그 정체(국가)는 완벽하게 다스려질 것이다.
[506b~506e]글라우콘은 이때까지의 논의를 진행해오면서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신념 즉, 다른 사람들의 의견(doxa)을 논의에서 다뤄 왔지만 정작 자신의 신념(dogma) 다르게 말하면 자신의 의견(doxa)를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인식(앎: episteme)가 결여된 의견(판단:doxa)는 설령 그것이 가장 인식에 가까웠을 지라도 창피스런 것이라 말한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눈은 멀었어도 길을 바로 가는 사람들의 비유를 통해 글라우콘의 생각을 한 번 더 지적한다. 또한 ‘밝고 아름다운 것들을 남들한테서 들을 수 있으면서도, 창피스럽고 맹목적이며 일그러진 것들을 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서 그는 인간의 참된 것을 아는 인식(episteme)의 능력의 가능성을 언급함과 동시에 의견(판단:doxa)의 것들로 빠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아마도 이러한 언급은 아마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무지의 언명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어지는 글라우콘의 좋음의 이데아에 관한 구체적인 물음에 소크라테스는 자신 또한 좋음 자체를 말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일이기에 불가능하다고 말하나 좋음의 소산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좋음의 이데아를 설명할 때 그것 자체를 설명해주기 보다 그와 가장 비슷하게 여겨지는 태양을 통해서 좋음의 이데아를 설명한다. 그리고 글라우콘은 진정한 ‘좋음’에 대해 설명 받지 못한 것을 아버지는 나중에 받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헬라어에서 소산이라는 말이 이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빗대어 원금을 아버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소크라테스가 가장 많이 알고 있음에도 좋음에 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그가 가진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무지의 언명에 따른 겸손에서 비롯된 것이라 파악해야한다.
2.2. 태양의 비유
[506e~509c]부분에서 본격적으로 좋음의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한 태양의 비유가 언급된다. ‘감각에 의해 지각될 수 있는 것들’(ta aistheta)은 각각 다른 감각(aisthesis)들로써 지각한다. 만일 보는 것의 경우에는 눈에 보이게 될 물체들과 눈이 가지는 능력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시각과 물체 사이에는 제 3의 것이 필요하게 된다. 즉, 우리가 눈으로 물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인 시각과 물체가 보이게끔 하는 힘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시각과 물체(보이는 것) 사이에는 왜 빛이란 것이 필요할까? 그것은 빛이 없을 때의 가정을 들어보면 적당하다. 예를 들어 빛이 없는 상황에서는 눈은 시각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어둠이 가득하기 때문에 볼 수 없으며, 사물은 색을 가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도 어둠에 의해 즉, 빛이 없기 때문에 색을 가질 수 없다. 이와 같이 빛은 능동적인 인지자로 하여금 최대한 잘 보게끔 해주며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즉 사물에 대해서는 최대한 잘 보이게끔 만들어준다. 그리고 빛 중에서도 가장 그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태양이다. 이에 따라 이 비유를 태양의 비유라 일컫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각각의 기관은 그 고유의 능력만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눈은 시각을 귀는 청각을 코는 후각을 담당하는 것을 들어볼 수 있다. 그래서 각각의 기관들 중에서도 태양과 가장 닮아 있는 기관은 시각을 담당하는 기관인 눈일 것이다. 하지만 눈도 그것의 능력인 시각도 태양 그 자체는 아니다. 다만 다른 감각기관들에 비해서 가장 많이 닮아 있기에 눈은 그 힘인 시각을 태양으로부터 받게 된다. 따라서 태양은 시각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각의 원인이다. 그렇기에 태양 또한 시각에 의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양과 눈, 시각 그리고 각기 다른 물체들의 관계는 좋음의 이데아와 혼, 지성(정신:nous) 그리고 지성에 알려지는 것들(ta nooumena)과 그 관계가 대응될 수 있다. 단, ‘좋음’이란 것은 ‘지성에 의해서[라야]알 수 있는 영역’에 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고 각각의 것들은 이데아를 상정한다. 이에 반해 앞의 것들은 ‘눈에 보이기는 하나 지성에 의해 알려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전자의 것들과 후자의 것들은 각각의 영역을 달리하는 것이다.
위의 비유를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면 혼은 진리와 실재가 비추는 곳에 갈 때에는 지성에 의해 그것을 알고 인식하게 되며 결국은 지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하지만 만일 ‘어둠과 섞인 것’에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에 다르게 말하면 현상계에 혼이 가게 될 경우 ‘의견’(판단:doxa)를 갖게 되고 의견을 바꾸어 가지면서 혼은 더욱 침침한 상태로 빠지게 된다. 이렇게 침침한 상태의 혼은 지성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좋음의 이데아는 태양과 마찬가지로 “인식되는 것들에는 진리를 제공하고 인식하는 자에게 그 ‘힘’,”을 제공한다. 하지만 태양과는 다르게 좋음의 이데아는 ‘인식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착오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식과 진리 그리고 좋음의 이데아는 같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인식과 진리는 ‘좋음’과 닮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만 어느 것 하나가 곧 ‘옳음’이라고 해서도 안 되며 그 훌륭함에 있어서도 더 월등하기에 ‘좋음’ 그 자체의 상태에 관해서 온전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 말고도 좋음의 이데아는 그 자체는 생성되는 것(genesis)은 아니지만 생성과 성장에 영향을 준다. 즉, 좋음의 이데아는 물체가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체가 존재하게 되고 그 ‘본질’(실재성:ousia)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즉 그 것은 지위와 힘이 ‘존재’를 초월하여 있는 것이다.
2.3. 선분의 비유
[509b-511e]
508a 인식과 진리가 이데아를 구분, 이데아는 그것들 보다 훌륭한 것이다. 이데아를 태양으로 비유하지만 태양으로 믿는 것이 옳지 않듯, 좋음이라 말하는 것을 그 자체로 간주하는 것은 바르지 않음. 이데아는 그것보다 더 귀중한 것임. 이데아 그 자체는 인식과 진리를 제공하지만 그것 자체는 아름다움을 뛰어 넘어선다.
509b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태양이 생성과 성장 그리고 영양을 제공해준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태양 그 자체는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한다. 이데아도 마찬가지이다. 인식대상물들이 인식가능하게 되는 것은 좋음으로 인해서일 뿐아니라 그것들이 존재하게 되고 그 본질(실재성 : ousia)을 갖는 것도 그것에 의해서이다. 따러서 좋음이란 것은 그 지위와 힘이 존재를 초월해서 있는 것이다.
509c~e 여기서 플라톤은 가시적인 것과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것을 구분했다는 앞선 논의의 결론을 재조명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두 부류를 같은 비율로 나누고 각각이 상대적인 명확성과 불명확성이 드러난다. 즉 명확성의 부류에 의해서 그림자나 매끄러운 표면에 비춰진 상들과 같은 불명확한 것들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510a 그리고 나서 우리주변의 동식물 및 인공적인 물건들을 그림자와 같은 부류(영상 : eikon)로 간주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의견의 대상인 것(to doxaston)과 ‘인식 가능한 것(인식 대상 : to gnoston)’의 관계처럼 닮은 것과 닮음의 대상으로 된 것이 같은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510b소크라테스는 이제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것(to noeton)의 부분을 어떻게 분할 할 것인지 고찰한다. 그는 그 구분을 위해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혼이 영상들을 이용하여 결론으로 나아가는 방식의 탐구이고 즉, 연역적인 탐구와 다른 하나는 무가정 원리 즉, 영상들이 없이 형상들 자체를 이용하여 나아가는 탐구이다. -선분의 비유는 인식의 분할에 관해 논하는 것이다.
510c~e 이 부분에서는 위에 제시된 두 가지 탐구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있다. 그것들은 수학이나 기하학의 탐구원리와 같다. 홀수와 짝수 도형, 세 종류의 각과 같은 것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서 가정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들이 명백한 것으로 설명이 필요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것들을 고찰하여 나오게 된 결론은 일관성이 있다.(즉, 모순이 없다.) 그리고 그것들은 추론적 사고에 의하지 않고서는 얻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511a 소크라테스는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noeton) 것이라 말한 종류의 탐구들은 어쩔 수 없이 가정을 이용하게되고 원리(근원)으로는 나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가정을 벗어나서 탐구되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정들은 아래의 것들 즉, 가시적이거나 감각적인 것들에 비해서 명백한 것으로 판단되고 존중되기 때문에 그것을 모상으로 이용한다.
511b 다음으로 소크라테스는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종류의 또 다른 한 부분으로 ‘이성 자체가 변증술적 논변의 힘(능력)에 의해서 파악되는 것’을 제시한다. 이 때의 가정들은 앞서와 같이 원리로서가 아니라 무가정의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근원(좋음의 이데아)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 발판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탐구도 형상들 자체만을 이용하여 형상들을 통해서 탐구에 들어가며 또한 끝을 맺는다.
511c~e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가 암시하는 변증술적 논변의 학문과 기하학이나 그와 비슷한 학문이 가지는 한계를 지적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것에 긍정하며 다음과 같이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정리한다.
-다음의 표는 509d~511e에 걸친 인식론적 업급을 도표로 만든 주석(책 441페이지)을 인용한 것이다.
가시적인 것들(ta horata)
감각 대상들(ta aistheta)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들
(ta noeta)
대상들
상(영상, 모상), 그림자
실물들(동식물들 및 일체의 인공물들)
수학적인 것들(도형들 홀수, 짝수 등)
이데아 또는 형상들
주관의 상태들
상상,짐작
(eikasia)
믿음, 확신
(pistis)
추론적 사고
(dianoia)
지성에 의한 앎, 인식
(noesis, episteme)
의견, 판단(doxa)
지성에 의한 앎 (이해) (noesis)
2.4. 동굴의 비유
[514a~521b]동굴의 비유는 교육(paideia) 및 교육 부족(apaideusia)과 연관되는 성향을 나타낸 것이다. 동굴의 비유에 등장하는 동굴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강한 빛에 노출된 입구를 지닌 지하 동굴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있다. 이들은 사지가 결박당하고 목과 얼굴은 동굴의 안쪽 벽면에만 고정되어 그곳만을 응시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그 죄수들의 행렬 뒤로는 담장이 세워져 있고 그 위로는 인형들을 올려 죄수들에게 그림자 인형극을 보여준다. 그리고 죄수들은 그 그림자로 비춰진 상들만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를 보지도, 혹은 뒤를 돌아보지도 못한다. 이렇게 그림자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죄수들은 벽면에 있는 그림자들만이 실재들(ta onta)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듣는 목소리는 오로지 벽면에서 울리는 메아리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죄수들은 그림자와 메아리에 익숙해져 감정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것만을 진실 된 것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러한 죄수들 중 어느 하나가 결박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되어, 불빛을 쳐다보는 것을 강요받고 바깥에 있는 빛의 세계로 끌려나온다면 어떠할까? 설령 그 과정이 눈에 광휘로 가득차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그 길이 험하고 가파른 오르막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동굴 밖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 그는 그 이전의 과정은 고통스럽고 짜증이 났겠지만 차차 빛의 세계에 익숙하게 되면서 그는 그 태양에 관해 자신들이 보았던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것’(aitios)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동굴 안에 있었던 동료들에 대한 연민으로 인해 그들을 구해내기 위하여 어두컴컴한 동굴 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광휘의 세계에 있었던 탓에 그는 어둠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아 앞을 분간할 수 없는데 더군다나 그가 이끌어 가려고 했던 동료 죄수들은 그의 능력에 관해 경합을 요구한다면, 조롱과 야유를 받기도 하고 자칫하면 죽임까지도 당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에 등장하는 ‘오름’(anabasis) 즉, 동굴 밖으로 나옴이,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세계를 넘어서서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영역’으로 향하는 혼의 등정과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운 등정 끝에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좋음의 이데아’가 되는 것이다. 앞서 태양의 비유의 결론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이 이데아는 가시적 영역에서의 것들이 원인이 되는 것이다. 비유에서는 그림자의 원인이 되는 것이 동굴 밖의 광원인 것과 같이 이 이데아는 현실세계의 원인되는 그 무엇에 해당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동굴의 비유는 교육에 관한 것들을 암시하고 있다. 즉,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교육이란 동굴 속에서 어둠으로만 향해있던 몸의 방향을 빛의 세계로 돌리듯, 혼 전체를 생성계(현상계)에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보는 능력자체는 지니고 있지만 그 방향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진정한 앎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그 혼의 능력중 하나인, 똑똑함의 ‘훌륭함’(덕:arete)들 유용하고 유익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무용하고 해로운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못된 사람들이 그것을 ‘나쁨’에 이용하여서 그렇게 된 것이며 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쾌락들이 그 눈길을 아래로 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성향(자질)을 지닌 자들에게 좋음의 이데아가 무엇인지 아는 배움에 이르도록 강제해야한다. 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성향을 지닌 자들이 그 좋음의 이데아를 보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그들이 그것만을 보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즉, 동굴의 비유에서 한 죄수가 연민을 느끼고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다른 죄수동료들을 구출해내려 하듯 그러한 능력을 지닌 자들도 올바르지 못한 방향을 보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도와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법(nomos)에 의해서 강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법은 나라에 있어서 한 부류만이 잘 살게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 안에 좋음의 이데아가 실현되도록 관심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즉, 소크라테스는 아는 자들이 단지 앎 그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자들에 대한 앎의 재분배를 강제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국가는 안정되고 단합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