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 58-척도의 개념과 양질 전환의 법칙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58-척도의 개념과 양질 전환의 법칙
1) 특정 양
3편 척도는 1장에서 척도의 개념을 다루며 2장에서 자립적 척도 또는 실재하는 척도를 다룬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소위 화학적 친화성의 개념이다. 3장에 이르러 무-척도가 등장하면서 본질로 이행한다.
우선 1장에 다루어지는 척도의 개념을 살펴보자. 우선 헤겔은 ‘특정 양[spezifische Quantum]’의 개념에서 시작한다. 특정 양은 앞에서 말했듯이 서로 다른 정량들이 내적으로 관계하여 이루어진 정량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곧 비중이다. 이 비중[Gewicht]을 가리키는 말은 ‘특정화하는 무게[spezifische Gewicht]’로 규정되니, 헤겔이 여기서 특정 양[spezifische Quantum]이라는 말을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특정[spezifisch]는 ‘특수한[bosondere]’의 번역과 혼용될 수 있으나, 차이가 있다. 특수하다는 것은 여러 사물에 공통된 것을 의미하며, 특정하다는 것은 어떤 것이 지닌 고유성을 의미한다. 여기서 특정한 양이란 어떤 사물의 척도가 되는 양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원자론자는 처음에 물질은 형태나 크기와 같은 공간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그러나 곧이어 원자의 고유성을 규정하기 위해 무게가 도입되었다. 아르키메데스에 이르러 사물의 비중이 발견되면서 비중이 사물의 고유한 척도가 된다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한 양 즉 비중이라 규정되었다. 오늘날 비중은 사물의 고유한 척도의 자리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그러나 비중이라는 말은 그대로 사용된다.
헤겔의 경우 비중은 더는 사물의 고유한 척도가 아니다. 다만 주관적 척도가 될 수는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특정한 양을 다루며, 그런데 이 특정한 양은 주관적 척도라는 의미이니, 가장 적합한 예가 비중이 된 것이다.
특정 양의 예로서는 흔히 발견되는 비중 말고도 속도가 있다. 속도는 거리/시간의 관계다. 단, 여기서 시간을 거리의 또 하나의 차원으로 본다면, 이 속도는 제곱 양에 머물러 있다고 보겠다. 헤겔은 앞에서 속도가 미분될 수 있는 이유로 이것이 제곱 양의 범주에 속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특정 양의 주된 예로 비중을 들려 한다.
2) 특정 양의 개념
앞에서 외연량과 내포량에 이어서 제곱 양 또는 제곱 관계가 다루어졌다. 외연량은 예를 들어 사물의 ‘길이’를 ‘길이’를 지닌 자로 규정하는 것이니, 자기를 통해 자기가 규정되는 양이었다. 내포량은 타자와 관계하는 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통해 규정된 양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경도나 강도와 같이 동일한 정량을 다만 타자와 비교하여 규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곱 양은 이미 두 정량의 관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두 정량이 관계하여 새로운 정량이 출현한다. 다만, 여기서는 두 정량은 실질적으로 같은 것의 다른 차원으로서 정량이다. 예를 들어 면은 선의 제곱이다. 예를 들어 같은 것 즉 선이 제곱하여 즉 자기 관계하여 다른 것 즉 면에 이른다.
그러나 특정한 양에 이르면, 실질적으로 서로 다른 정량의 관계가 다루어진다. 여기서는 두 정량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정량이 출현한다. 비중에서 무게와 부피는 실질적으로 서로 다른 정량이다. 서로 다른 정량이 관계하여 새로운 정량이 출현하니 그것이 곧 비중이다.
부피와 무게는 서로 무관하다. 그런데도 사물에서 부피 없는 무게가 없으며 무게 없는 부피도 없다. 그 때문에 무게와 부피는 내적인 연관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고 양자의 내적 연관이 비중이라는 말로 규정된다.
3) 특정 양의 두 측면
어떤 사물이 비중을 가진다고 할 때, 그 비중은 이중적 측면을 지닌다. 한 측면은 자기 관계의 측면 즉 질적인 측면이며 다른 측면은 외면성의 측면 즉 양의 측면이다. 비중은 분수 즉 무게/부피인데, 그 분수 값이 일정한 정수 예를 들어 1.5라면 이 분수 값의 측면은 외면적 양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이 값은 단순히 직접 주어진 무게가 아니라 무게를 단위 부피에 따라 나눈 것이며, 이는 무게가 부피를 통해 규정된 것이다. 이 부피가 무게에 외면적이라면 이는 자기 관계가 아니겠지만, 이 부피가 무게에 내면적이라면 이는 자기 관계로 규정될 수 있다. 이 자기 관계는 감각적 질과 같은 직접적인 자기 관계가 아니라 타자를 통해 자기로 복귀한 것이므로 매개된 자기 관계다. 그러므로 비중은 자기 매개를 통해 출현한 질적인 측면이 된다.
여기서 비중의 양적인 측면은 증감 가능하며, 외적 규정에 열려 있고 이런 양적인 증감은 점진적 연속적이다. 그러나 어떤 비중의 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물체마다 고유한 비중을 지니므로, 이런 양적 관계(무게/부피) 값의 변화에 따라서 하나의 물체는 다른 물체로 변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온도가 내려가면 수증기는 물이 되고, 다시 더 내려가면 얼음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비중은 물체의 척도가 된다.
일반화하여 말하자면, 특정 양은 양적 측면에서 보면 다른 정량과 마찬가지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물체를 규정하는 고유한 척도가 된다. 고대인의 눈에는 비중이 물체마다 다르므로 물체의 본질을 규정하는 객관적 척도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런 척도는 물체의 본질이 아니라 어떤 상태를 규정하는 척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말하자면 주관적 척도다. 이런 주관적 척도이므로 이 비중은 ‘특정한 양’에 머무른다.
“현존에서 나타나는 양적 규정성은 이중적 규정성이어서 즉 한번은 질이 의존하는 규정성이며 다른 한 번은 이 질과 무관하게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 있으니, 하나의 척도를 지닌 어떤 것의 몰락은 그것의 정량이 변화되는 것 속에서 일어난다. 이런 몰락은 한편으로는 기대되지 않은 것으로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정량에서는 척도나 질을 변화함이 없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런 몰락은 개념적으로 파악되는 것으로 되니 즉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몰락이다.”(논리학 재판, GW 21, 331)
4) 표준의 개념
물체마다 고유한 비중을 지닌다. 물의 비중이 1이라면 철의 비중은 그보다 높을 것(예를 들어 10이라고 하자)이고 나무의 비중은 그보다 낮을 것이다(예를 들어 0.1이라 하자). 여기서 물체의 비중을 측정하는 표준은 물이다.
물은 고유한 척도 즉 1이라는 비중을 지니고 있다. 헤겔은 이것이 모든 물체의 비중을 재는 단위가 된다는 점에서 ‘본래적으로 규정된 존재[an sich Bestimmtsein]’이라 한다. 앞에서 정량을 규정할 때 그 단위가 되는 일자를 헤겔은 마찬가지로 ‘본래적으로 규정된 존재’로 언급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라.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 표준적 단위는 자의적인 것일 뿐이다. 비중의 기준이 되는 것을 보통 물로 보고, 물의 비중을 1로 규정한다. 왜 물이 비중의 표준 또는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는 관습적인 것일 뿐이다.
일상적 삶에서 긴요한 것이 항해이니 물에 뜨는가 아닌가이니, 아마 물의 비중을 1로 규정해서 기준으로 삼았을 것이다. 항해를 위해서는 물 대신에 바닷물을 표준으로 삼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척도는 일상적 의미에서 표준이니, 그것은 외면적 몫수[Anzhal]에 대립하여 그 자체에서 규정된 총수[Einheit]로서 자의적으로 받아들여진 정량이다. 그와 같은 단위는 사실상 그 자체에서 규정된 총수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피트나 그와 같은 근원적 척도다. 그러나 그런 총수가 표준[Massstab]으로서 다른 사물에 적용되는 한에서 그 사물에 다만 외면적이며 그것에 내재하는 척도는 아니다.”(논리학 재판, GW 21, 330)
이제 어떤 물체의 비중을 물이라는 표준을 통해서 보자. 물체의 비중 자체는 추상적인 양이다. 비중이 무게/부피라고 해서 무게를 재고, 부피를 측정하면 비중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물체의 비중을 재기 위해서는 먼저 단위가 되는 물의 부피를 정해야 한다. 물 1L의 부피에 해당하는 무게가 1kg이면, 철이나 나무 1L의 부피를 잰 다음 그것의 무게를 알아보아야 그 비중을 알 수 있다.
철이나 나무는 일정한 무게와 부피를 지닌다. 이런 무게나 부피의 관계는 직접적 정량이다. 그러나 이 비중을 물이라는 표준을 통해서 본다면 일정하게 규정된 비중을 지닌다. 이 비중은 타자를 통해 자기 관계하는 것 즉 특정화된 양이다.
물체의 특정화된 양은 곧 비례 지수가 된다. 예를 들어 이 물체의 비중은 물체의 무게와 부피 사이의 비례를 규정하는 비례 지수가 된다. 물체의 무게는 물체의 비중* 물체의 부피가 될 것이다. 물체의 부피를 알면 우리는 그 무게를 알 수 있다.
5) 자연 변증법
비중이 두 측면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을 지니므로 여기서 그 유명한 법칙 양질 전환의 법칙이 나온다. 양이 변화하면 질이 변한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엥겔스가 자연 변증법에서 이를 자연의 한 법칙으로 삼았고 구체적 예로서는 수증기가 물로 되고 물이 얼음으로 되는 것을 들고 있다. 이어서 엥겔스는 사회적 생산에서 생산력의 양적 변화가 생산 관계라는 질을 변화한다는 예를 통해 이를 설명했다. 그 이후로 이 법칙은 널리 알려진 법칙이다.
엥겔스가 자연 변증법의 법칙을 세 가지로 들었는데 그 각각이 헤겔 논리학에서 나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양질 전환의 법칙은 바로 지금 우리가 다루는 존재론의 영역에서 나온다. 상호 침투의 법칙은 본질론에서 끌어낸 것이다. 이중 부정의 법칙은 개념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엥겔스는 이런 법칙을 자연의 일반적 법칙이라고 규정했고 그것이 적용되는 구체적 영역 즉 헤겔 같으면 존재론, 본질론, 개념론이라는 영역을 표현해 주지 않았다. 그 결과 이런 법칙들이 무차별하게 아무 데나 적용되곤 했다. 헤겔의 존재론은 역학의 영역이다. 본질론은 굳이 찾자면 생물학의 영역이다. 개념론은 인간 사회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각 영역에 다른 법칙을 적용해야 마땅하다.
특히 양질 전환의 법칙은 앞서 말한 대로 헤겔이 특정 양의 영역에 적용한 것이다. 그것은 물체의 어떤 상태를 양적으로 표현할 때 나온다. 구체적 예는 비중과 같은 것이다. 이런 영역을 넘어서 다른 영역에 이런 법칙을 적용하는 것은 헤겔의 관점에서 본다면 범주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중이 바뀌어 수증기가 물이 되고 물이 얼음이 되는 것은 마땅히 양질 전환의 법칙이 적용될 만하다. 그러나 생산력과 생산 관계가 논의되는 사회적 영역에서 단순히 양질 전환의 법칙을 적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서양 철학을 대하는 관점들 [천 하룻밤 이야기]
서양 철학을 대하는 관점들
– 2026. 03. 20. 춘분(春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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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의 한계와 영토의 경계: 삶의 유한성
철학 또는 일반화하여 학문에는 국경이 없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학문들의 역사에 서 변역(變易)의 과정을 보면 철학자 또는 제반 학자들에게 국경이 있는 것 같다. 파스퇴르(1822-1895)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고 했다. 파스퇴르의 표현은 프랑스와 프러시아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 패전국의 학자로서 독일에 불려가 발표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는데, 그 과학자는 자신이 소속한 공동체에서 연구 방식이, 공동체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독일이 의학과 생리학에서 화학적 관심으로 기술적 생산에 관심이었다면, 프랑스는 자연에서 삶의 조화와 연관 있는 생명과 의학에 관심이었다. 생물학에 대한 관심의 방향과 자연에 대한 태도는 단지 의학에서만 있었던 것이라기보다, 철학적으로 칸트에서 과학의 관념론과 도덕의 이상론에 치중하였다면, 이에 반하여 콩트에서는 자연의 조직화, 인간사회의 조직화에서 실증적 사건들에 관심을 기우렸다.
서양사에 국가관의 성립은 베스트팔렌 조약(1648)이후, 국제법과 주권국의 지위를 규정하며, 각 나라에서 국가체제를 형성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왕정국가에서, 인민 또는 주민을 토대로 한 자주국가의 성립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유럽을 통합하려는 전쟁의 영향에서 나왔다 한다. 이 전쟁이 국민의 자주의식을 일깨웠고(피히테), 소위 말하는 근대국가가 성립한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학문의 유럽화 이외에 각국에서 개별학문의 발달도 이루어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알려진, 프랑스철학, 영국철학, 독일철학 등이 자리를 잡는다. 특히 철학에서 이 세 나라의 학문의 독자성과 영토성이 자리 잡으면서, 스페인,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더불어 라틴계로, 프러시아 이후에 동유럽은 독일계에 속하며, 미국의 독립으로 영국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 국가이지만 학문과 문화에서 영미 철학이라 불리는 계열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브레이어 철학사(1934)이후, 즉 서양의 양차대전 이후에는, 학문들의 경향성과 더불어, 거의 자기 나라의 방법과 방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성은 서양이 동양 삼국에 미친 영향에서도 드러난다. 이 나라들과 연관들이 역사적 깊이와 상대적 교환에 따라서, 일본은 앵글로색슨에 깊은 영향을 입고, 중국은 유럽과의 교류에서 긴 역사만큼이나 유럽 대륙 전체와 깊은 연관이 있었으며, 이차대전 이후에 사회주의의 영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어쩌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이중적 관점이 있으며, 풍토상 추가령지구대를 가르는 문화적 창안의 차이만큼이나, 이중적 관점으로 경향과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삶의 터전에서 경계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각하는 또는 상상하는 의식은 경계를 넘어서 거의 무한하게 확장한다. 이런 점에서 경계는 임시적이고 한정적이다. 이런 경계를 넘어서 사유하는 방식은 인간이 처한 여러 어려움들에, 고통이든 비참이든, 처한 상황들을 벗어나기 위하여, 그리고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에서 생겨나는 어려움이다.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학문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철학의 시작은 고대 지중해의 그리스인들의 삶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 어려움들의 해소를 위해, 철학이 시작하기 이전에는 그리스 연극을 통해서 상황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방식을 보여주려 했다. 신화를 빌어서 신들이 개입하듯이, 한 방식으로 외적인 신(deus ex machina)을 불러들여 해결하려 하였다. 이런 해결방식에 꼭 개인에 속하지 않더라도, 민중들은 신들에 의해 또는 누군가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갔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힘 또는 신에 의한 해결이 인간 자신의 숙명이라면, 신이 명령한 숙명을 따라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해결이 생각을 깊이 하는 이들에게는 해결이 아니라, 어쩌면 해결의 회피이며, 숙명에 맞대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나약한 존재로 여길 수 있었다. 이런 고뇌에서 몇몇 현자들은 숙명 또는 필연에 대해 진솔하게 대면하고 해결하려고 했다. 그들은 이런 필연이 당연히 인간의 유한성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기간 동안에 스스로 풀 수 있는 문제들과 풀 수 없는 문제들 사이에 구별해야 한다는 것도 사유할 줄 알았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치면서, 도구뿐만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가 도구를 돌의 사용으로부터 시작하여 구리를 발견하고 주석을 섞어서 돌보다 더 단단한 도구인 청동을 사용하고, 이로서 농업과 삶의 양식이 조금씩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철기의 도래는 인류의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청동과 철의 사용을 통하여 동일한 도구의 제작에서, 추정하기로 동일성 또는 동일반복의 방식에서, 단위(통일성)를 설정하는 생각을 할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철학자의 사유의 발전적 과정이 지중해가 중심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고, 게다가 청동기와 철기의 문화가 사유의 일반화 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물론 중국과 동북아시아도 비슷한 시기에 청동과 철기를 통한 동일성의 단위를 설정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시기가 기원 6세기 전후라고 한다. 이런 시기에 지리적 경계와 사유의 한계가 영토에서 삶의 경계를 갖는 것은, 일정 영토에서 비슷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운반 도구의 미비함에서 온 것이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치 동일반복과 같이 여기는 동일한 도구의 거푸집을 통한 생산이 사물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여긴다.
물론 천문학에서 하늘의 별자리들이 매년 동일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 먼저이다. 그럼에도 하늘의 별자리는 운행하고 또한 무한 반복하기에 대상화가 인간의 삶의 범위를 벗어나서 단위설정이 어려웠으리라. 이에 비해 하여, 도구의 제작에서 한계와 반복이 인간의 사고 정립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어쩌면 거꾸로 하늘에 영원성을 두고, 지상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열망과 욕망이 진지하게 자연(하늘과 땅)에 대해 규칙 또는 법칙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이런 한계(limite)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인간의 유한한(fini)의 자각(또는 한탄) 속에서 경계를 넘으려는 의지와 생명의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욕망에서, 일반적으로 삶에서 고통과 비참을 해소하려는 노력과 함께 사유의 방법과 기술을 제시하려 할 것이다. 학문은 이런 의미에서 근대적 표현으로 경계가 없으나, 유한한 삶의 개인은 어느 터전 위에서 산다는 점에서 경계 속에 있었다. (58N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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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은 하나(통일성)에서 출발하는가?
학문에서는 항상 문제제기가 있다고 하며, 화두가 있다고들 한다. 서양철학에서 한편 기원 또는 원인, 다른 한편 원리 또는 법칙을 탐구한다고 한다. 이런 문제제기에는 상상(사유)하는 의식과 사고(추리)하는 지성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이 양자 사이에 참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원이든 원리든 사유하는 또는 추리하는 인간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치 천지인에서처럼 사람이 관여한다.
우선 기원을 생각한다는 측면에서, 기원이 있기나 한가? 인간은 자신의 깊이를 모르기에 사물들 대하면서 자연에서부터라고 생각할 것이다. 인간은 그 자연에서 어떤 순환과 변화에서 일정한 규칙이 있을 것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그 자연을 움직이는 어떤 힘 또는 신들이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서양의 사유에서는 한편으로 신들의 이야기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자연의 변화에서 질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신들의 이야기와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서 신들처럼 또는 정령들처럼 자연에 첨가하는 어떤 힘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태들 때문에 인간이 생각하기로는, 신들과 정령들이라는 대상을 사유의 대상으로 만들었듯이, 자연에서도 자연의 변화의 질서, 질서의 기원 또는 원인에 대한 대상(또는 단위)을 상상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초기 발상에서 보아, 자연, 신들, 인간이라는 삼원성이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 표현으로 천지인으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신들의 대상화에서 최고신을 만들거나 신들의 위계를 또는 대부분의 종교에서 해석하듯이 신들의 위상들과 역량들을 구별하는 여러 신적 지위를 부여하여 대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자연에 대해서는 신들처럼 대상화하기보다 자연의 운행에서 기원과 원인에서 찾으려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생각하면서 기원과 원리를 구별하고서, 기원에 대해서 의식하는 차원을, 원리에 대해서 추리하는 차원을 부여하고서, 두 대상 사이에 있을 법한 차이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삶의 양식이 점점 다양화되어 감에 따라, 탐색의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원리의 탐구를 추론의 전개에서 극한에서 한정 지으려 할 것인데, 이에 비해 기원의 탐색에서 알 수 없는 기나긴 과정의 시초를 한정 짓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생각하는 추리는 무한히 전개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자연은 우리의 경험상으로 제한된 세계에 머문다고 여겼다. 이점에서 하늘이 닫혀 있다고 하지만 무한한(infini) 운동의 귀결을 찾으려할 것이고, 자연은 한정된 영역에 있지만 무한정한(illimite) 움직임으로 여긴다. 이로서 인간은 사유의 무한성과 삶의 한정성 사이에 대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한한 우주와 유한한 자연이라는 생각이 우선 자리 잡으리라. 그럼에도 인간은 우주의 무한과 삶의 터전에서 한정성이라는 이원성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무한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하늘의 뚜껑 안에서 영속적인 운행에서 영원이란 원리를 생각하였고, 지상에서 무수한 변화들에서도 그 기원에는 원리와 맞먹는 원인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이를 찾고자 하였다. 무한에서 영원이라는 통일성(l’unité)을 탐색하듯이, 변화들 속에서도 불변하는 단위(l’unité)를 찾으려 한다. 이 두 통일성 또는 단위는 용어상 같이 보이지만, 같을 수도 없고 또한 같이 나아갈 수도 없음에도, 사유 속에서 같이 또는 연대하여 관련이 있거나 상응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인간은 화두로서 제기된 문제에서, 하나의 전체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그 전체에서 부분들이 나왔을 것이라고 여겼으나, 사유하는 또는 의식하는 인식은 둘 사이의 심연 같은 깊은 간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심연을 들여다보기보다, 하나의 원인 또는 원리로부터 나온 두 방향, 두 성질, 두 형식, 둘이상의 계열들 사이에서 차이를 봉합하여 하나의 전체로서 통일성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늘과 땅은 모두 합하여 하나이지 둘이 아닐 것이고, 인간이 사유하고 의식하는 두 갈래의 길에서도 인간(사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주하나와 인간하나가 같은 기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주와 자연을 생각하던 현자는 인간의 사유의 두 갈래인 지성과 감성이 하늘과 땅의 대비적 사유, 또는 투영적 사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탐구에서 하늘과 땅, 기원과 원리 등을 구별하고 싶지 않았던 현자는 세계가 하나이듯이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도 하나라고 여기는 것이 편했을 것이다. 이 하나 또는 전체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어 들어가는 현자는 두 갈래의 방향과 경향에서 길을 잃을까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 같다. 지자는 추리하여 통일성을 부여할 수 있는 원리를 구하고 싶었고, 어쩌면 현자는 자연의 변화 과정 속에서 기원을 찾으면 통일성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이쯤에서 원리와 기원을 구별하는 방식에 대해, 대조하고 비교하며 이리저리 이야기를 옮겨 다녀서 혼돈을 가져온다고 하는데 대해, 변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하늘과 땅, 원리와 기원에 대한 확연한 구별로부터 학문이 출발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이해와 지적 수준이 낮았을 때, 구별이 쉽지도 않았고, 구별을 하는 방법도 몰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인류의 역사에서 지역마다 다를지라도, 그리고 자연을 대하는 기술적 방식에 따라, 신화들의 시대가 시기적으로 다르고, 또한 생각하는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 그리고 20세기에는 여러 가지 다양체로 – 방식의 단초를 갖는 사유방식도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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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에서 대상(또는 상태)에 대한 탐색으로 체계를 갖출 수 있을까?
인간이 삶의 터전에서 자기의 영토가 주어져있다는 것을 자각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구라는 영토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과 세상을 떠난다는 것 사이에 차이는, 사유방식의 차이보다 엄청났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코스모스는 하늘아래 땅위에 삶의 세상이다. 즉 코스모스가 곧 이 세계이다. 이 세계는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를 생각하는 관점에서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 이전에는 세계가 신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상상했을 것이고, 그것을 믿는 것이 삶의 고통과 고뇌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겼을 것이다.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들에 관한 이야기는 전승되고, 그 만큼 세계의 사물에 대한 일반화와 용어들이 정초되어 갔을 것이다.
한편 세계 속에서 삶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삶의 영역에서 도구의 제작과 생산 그리고 소비에 관한한 교환이 있듯이, 다른 한편 인간들 사이에 제도 안에서 소통의 덕목으로서 도덕과 신앙도 갖추어 갈 것이다. 자연과 제도에서 자연은 필연적임에도 제도는 필연적이라기보다 필요조건에 가깝다. 사유하는 대상으로서 하늘과 땅, 다음으로 자연과 제도에는 각각이 내속하는 체계가 다른 것이 아닐까? 인간이 하늘과 땅의 연대 이래로, 종교의 시대를 지나,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대상으로 여길 때, 원인과 원리는 하나에서 출발한 것이라기보다, 인간이 대상 또는 체계를 다루는 방식에서 인간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늘이라는 뚜껑아래 우주(코스모스)가 하나라는 것에서, 뚜껑이 열리고 머나먼 성좌들을 포함하는 우주가 하나라고 여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 후자의 하나라는 것은 생각하는 오성(지성)이 무한히 넓혀간다는 것이다. 이 만큼이나 자연에서 길이도 길게 갈 수 있고, 이런 두 가지의 상대성이 같은 사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기도 한다. 원인과 원리는 같은가?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르케라고 할 때 자연의 원인(시작)을 탐색했을까? 자연의 원리(사유의 공리)를 탐색했을까? – 이런 구별은 우주발생론과 우주론, 시간론과 공간론의 차히로 여길 것이다. – 이런 차이의 구별은 근대에서 데카르트가 “방법”이라고 설명하면서 탐구의 길을 열었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적 정신이 있고, 대상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적용과 응용의 방식에 차이일 뿐이라고 담론을 전개하고 싶었으리라. 하나라는 일반화를 넘어서 추상화 속에 개념(또는 관념)을 설정한다는 것이 인간의 오만과 탐욕(욕망이 아니다)이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나가 먼저 있을까라는 탐색은 화두에서보다 선문답의 여러 논쟁거리에 있었듯이, 서양 철학사에 어떤 갈래의 논쟁들이든 어떤 방향들의 합의들이든 하나로 합일된다고 하는 것 속에는 종교적 신앙이 들어있다. 이를 변증법의 하나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어왔다. 왜 이 신앙을 플라톤은 추측(피스티스)라 부르고 싶어했을까, 그리고 이런 추리를 원인론(인과론이 아니다)에서 보면, 한 원인이 동일한 결과를 내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회의주의가 이미 고대로부터 있어왔다. 훔이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론은 자연의 발생이 아니라 인간의 사변적 추리 방식의 일부라고 본 것은 방법적 탐색이었다.
데카르트와 흄을 거치면서 방법적 논의는, 즉 인간의 사유가 대상으로 삼는 자연이든, 사유의 이미지든, 그 대상화와 일반화에 규칙이 무엇이었는지, 또는 그 규칙이 합당한 또는 공리에 맞는 체계인지를 다시 물어보게 될 것이다. 탐색도 인간의 지성이 하고, 탐구도 인간의 지성이 한다. 이 지성은 무엇을 하는가? 지성이라는 이 인식의 역량이 하나 또는 우주의 통일성을 알고나 담론을 전개하는가? 소크라테스처럼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할 때, 이데 대해 극작가들은 유일신앙자들의 공리처럼 받드는 것은 ‘신만이 안다’였다. 유명론을 지나면서, 신이 이름뿐이고 상징 또는 기호, 기표일뿐이라고 해도 신은 존재한다고 하고 실재한다고 착각한다. 이것이 인간의 만든 일반화의 오류이다. 벩송 표현으로 선전제 미해결의 오류, 악순환의 오류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인식 역량의 한계를 빌미삼아, 인간의 사유의 추론에는 부분들의 정합성이 있을 뿐이고, 하나의 통일성이 따로 있다면서, 관념 또는 이념을 이상으로 받들었다. 선문답에서 한쪽이 한 갈래에서 답을 찾거나 문제제기를 하면, 다른 쪽이 다른 갈래를 제시하는 사유확장의 길을 열었다면, 이에 비해 화두란 시원와 원인을 물어 들어가기에 의식의 시간성(인연연기) 속에 빠지기도 한다. 즉, 선문답의 이중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한쪽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신이 없으니깐) 원리, 공리, 정리로부터 체계에서 찾으려 한다. 다른 한쪽은 지구의 지층과 더불어 시간여행을 하기도 하면 기원과 원인에 대해 탐색하려고 하는 시도가 늦게서야 나올 것이다. 탐색에서 방향과 방법, 자연에서 계열과 경향, 여러 갈래의 발산을 탐구하려는 노력, 탐구의 길은 찾는 노력은 세기를 기다려야 했다. (58L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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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사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를 대하는 관점 : 탐구 방식과 방향
인간에게서 의식의 확장과 활동이 이중성이라고 할 때, 근세 철학에서처럼 추리하는 사유(사유실체)와 길이의 인식(연장실체)라고 한다. 이런 사유에는 인간의 의식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 온 것이리라. 그럼에도 근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탐색은 그리 넓게 전개되지 못하고, 이해하는 능력으로서 오성이든 지성이든, 그 당대 지식을 토대로 한 역량에 한정되어 있었다. 자의식의 발현은 신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지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탐구 방식으로 잘 이루지기에 이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인식의 역량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자연의 자치와 자율성을 이해하려든 것은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기도 하였지만, 자연을 인간의 도구로 삼는데 치중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 자연은 인간이 생각해온 것과 달리, 자연 스스로 발생과 생장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빛이 자연의 발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도 자연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종교적 지배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자연의 도구로서 빛은 여러 가지 중에서 두 가지 방향에서 인간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한편 우주의 광활함을 빛을 통해서, 말하자면 망원경을 통해서 탐구할 수 있고, 다른 한편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물의 미세함을 현미경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두 계열의 체계가 사유실체와 연장실체처럼 이해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탐구의 방법에서 대상의 ‘만들어진’측면의 차이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의 차히를 달리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표면위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지식의 체계는 기원과 원인에서 계열의 과정들을 보기보다 원리와 공리에 정합한 체계를 더 중요시 했다. – 후자의 관점은 AI에까지 이른다.
탐구의 방법이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마치 빛들이 무한한 방향으로 발산하듯이, “빛들 세기(18세기)”를 지나면서 여러 갈래로 등장한다. 그 갈래들이 각각의 체계 안에서 한정된 방식으로 정합성을 지니기 위한 노력을 할 때, 통일성과 완전성이 먼저라는 정합적 체계를 지닌 이들은 한계안의 가설들 사이의 불일치를 비판하면서, 체계정합성이 먼저이고 전체이며, 그 전체의 부분으로서 개별학문들이 성립하고 또는 통일성에 속하는 종속체계를 갖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철학사에서는 아테네에서 융성할 때이래로, 이오이나학파와 엘레아학파 사이의 불협화음은 죽 이어져왔다. 이런 사유과정 안에서 우주론 또는 우주발생론, 공간 중심과 지속 중심, 정지에서 또는 운동에서 등에 대한 담론들이 전개되었지만, 사유의 대상으로서 개념과 관념을 우선시하는 경우에 속하는 우주론과 공간론이 철학적 사고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통일성과 완전성 아래 체계의 정합성이 탐구 방법으로써 자연의 안으로 그리고 생명의 안으로 들어갔을 때, 생명과 삶에 대한 문제들은 전혀 다른 양상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였고, 이런 의미에서 자연의 조직학으로서 자연조직학(physis + logos, 생리학), 삶의 터전에서 사회조직학(socio + logos, 사회학)이라는 다른 탐구방식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영혼조직학으로 영혼학/심리학(psyche + logos)에서 인간의 의식은 우주론으로 다루기보다 우주 발생론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기억과 유전을 벩송이 제기하였다.
인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자율성과 자발성에서 또는 지구와 우주의 움직임에서 생겨나온 것이라 한다. 그럼에도 인간의 오만과 독단은 이 자연에서 기원과 원인을 탐구하기보다, 생활의 편리와 제도의 습관 속에서 원리와 공리가 있고 법칙에 맞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는 이들이 더 많다. 탐구의 방향을 달리하는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사적인 탐욕만이 아니라, 체제 속에서 패거리들의 세뇌교육에도 있다. 그래서 탐구의 역량을 세우는 철학 교육은, AI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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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사에서 시대적 구별
인간이 살아가면서 고통과 비참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구석기 수십만년 동안에 돌에 의한 도구의 제작을 서서히 발전시켰고, 그리고 구리와 청동을 거쳐서 철기로 도구를 제작하면서 자연에 대한 어떤 자신감을 가졌을 것이다. 이 자신감에서 자연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하는 제도(나중에는 체제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만들었을 것이다.
도구 제작에서 동일한 물건들 동일하게 반복하여 만들 수 있는 방법, 게다가 주물에서 거푸집을 만들었다는 것은 인간의 삶의 양식을 바꾸어 놓았다. 삶의 양식의 전승만큼이나 입말소통(소리 교환이든 상업이든)과 문자화는 과거의 전승을 슬기롭게 이어갔다. 이로서 인간이 세계에 대한 탐색에서 탐구하는 길로서 부분적이지만 의식 체계라는 것을 만들고 문자로 이어갔을 것이다.
탐구에서 대표적으로 우주론과 우주발생론이 구별을 느끼기 시작하기 이전에, 인류는 자연과 투쟁 또는 다른 동물과 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먼저였을 것이다. 이런 시대를 자연의 시대라고 해서 행복했던 공동체라고 말하는 역사가들은 이제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인간이 해결하지 못한 어려움들을 안고 사는 시기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한 과제를 풀어온 것은 인간의 노력 덕분이다.
알려진 대로 원시 공동체, 고대 노예제, 중세 장원제, 근대 산업화, 현대 국가체제라는 일반적 개념화 도식은 체제의 성립을 중심으로 나열한 것이리라. 맑스주의자가 말하는 농노제에서 산업화 자본가시대,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을 제시한 것도 역사의 변천을 생산도구와 그 소유에 방식 맞게 설명하려는 한 도식일 것이다.
철학사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신화에서 벗어나 자연의 이법을 탐구하는 시대, 신의 교리 아래 통일성의 시대, 그리고 인간의 자의식의 발현으로 이법의 탐구시대, 그리고 “빛들 세기”를 거쳐서, 19세기 개별학문들의 발달과 체제로서 사회와 국가에 담론이 있었고, 생산력을 소유한 자본가들의 국가가 되면서 식민지 개척에서 전쟁을 일으킨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서, 금융이 지배하는 제국의 시대였다. 그 제국이 전지구를 지배하려고 새로운 도구 인 정보기술과 인공지능을 발달을 추구하고 있다. – 도구/무기의 양면성만큼이나 인간의 욕망/탐욕이 내속해 있다.
그럼에도 자연이 실체로서 인정되었고, 자연에 자치성과 자율성을 인정하였던 18세기에 인간의 의식의 다양한 발현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 시대의 한계로서 겨우 물리학이 개별학문의 지위를 얻고, 사회의 조직화에서 인간의 역할이 이미 전제된 원리와 체제가 먼저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자치적이고 자율적인 조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빛들세기”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발성을 가지고 계몽되었다는 것 이상의 것이었다. – 자연에 대해 책임을 통감할 때이다.
시대의 구별로서 연대순의 세기의 구분이 발전과정의 변역의 단계를 표시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과정을 인식하는 데 쉬운 한 방편이었다. 그런데 철학사를 보는 입장들은 거의 정해져 있지만 약간의 차이들을 갖는다. 서양에서 철학사적 관점을 갖는 것은 12세기에 평결론자들이 등장하면서, 과거를 비추어보는 통감(通鑑)의 관점, 거울에 ‘비추어 보다’는 사변(la spéculation)이 등장하였다. 꽁트는 사변의 역사를 간단하게 중세까지의 종교의 시대, 근대 사유의 발전을 형이상학의 시대, 그리고 대혁명 이후에 삶의 터전에 대한 실증의 시대라고 한다. 어쩌면 꽁트는 인간이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시대를 거쳐서, 학문의 대상으로서 사물을 다루는 방식으로 전향했다가, 새로운 조직화의 사회에서 사건들의 연관들을 다루는 시대를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진리와 거짓을 다루는 앵글로색슨의 진리론을 우선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치 러셀의 철학사처럼, 그들은 진위 구별을 잘 다루려는 것이 철학사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은 원리와 공리가 지식의 과제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일 것이다. 기원과 원인에 대한 탐구와 교육이 필요하다. 벩송이 말하듯이 삶이 먼저이고 사색하는 것은 다음이다. 그럼에도 의식의 변화는 인류의 변역(變易)과정에서 죽 이어져 왔다. 벩송은 그리스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유를 시작한 이래 하늘(즉 상층)이 먼저였다는 것이다. 이 상층이 신이든, 영혼이든, 또는 하늘의 운행이든, 움직이면서도 동일성을 유지하고, 인간 삶에 비해 영원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탐색하고 탐구하는 길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상층의 이해에서 또는 해석에서부터 지구의 표면을 이해하는 방식이 고대인들의 사유방식이라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해와 달, 그리고 수많은 별들에서 12성좌의 동일한 자리로 되돌아옴의 운동이 먼저였다. 그 상층의 운동이 지구상에도 동시성으로 이루어지고, 각각의 운동은 상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갈릴레이에 의해서, 벩송이 보기에, 상층에서 표면으로 내려왔다고 하다. 그리고 자연학 또는 물리학의 발전이 자연조직학으로 발전하면서, 19세기에 자연의 내부로 그리고 사물의 내부로 지식체계를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상층(외부)에서 표면으로, 표면에서 심층(내부)으로 이행이라는 것이다
시대구분의 방법들과 달리 의식 활동의 변화를 세 부분으로 나눈 것은 흥미롭다. 그리고 벩송이 이런 관점을 제시하고(1907) 난 뒤, 1920년대에 정신분석학은 초자아, 자아, 이드라는 3원성을 구별하였다. 그런데 들뢰즈가 좀더 심도 있게 구별하면서, 상층에서 표면으로 사고가 있고, 심층에서 표면으로 사유가 있으며, 양편이 만나는 표면에서 이중적 시뮬라크르들(모방체들)이 있다고 한다. 이런 상층, 표면의 이중성, 심층의 구도는 우선 보기에 존재론적이지 자연론적이 아니다. 그런데 자연론 또는 우주발생론에서 보면, 의식은 여전히 심층에서 소용돌이치면서 생성과 발현을 실행하고 있고 표면에서 여러 갈래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모방체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발생에서 표면의 모방체들은 과거의 기억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만들 것인가? 기억의 공감과 자연과 공명을 신의 외적 영향으로 착각하는 쪽이 있다. 이들이 상징계라는 힘을 지닌 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변하고 있는, 자연과 인간, 시대의 변화인 변역(變易)이 행진하면서 미래를 잠식하고 있다. 이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나온 과정의 자연과 인간의 지층과 기억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상참여할 수 있다. 이 예상참여에서 지구와 인간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방식을 찾는 것이 인류의 과제일 것이다. 이 방법의 탐구의 도구의 발달에서 주어지기보다, 영혼과 인성의 정립에서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철학은 여전히 소중하다. 자연 속에 인간, 그 인간이라는 도구가 무엇인지를 성찰해야 한다. (59N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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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누리 소통의 시대 인민은 자연의 산물임을 안다. 자연은 스스로 분출하고 발산하는 자발성을 지니고 있고, 인간은 그 자발성의 일부에 참여하고(또는 플라톤의 용어로 나누어가지고) 살아간다. 자연의 발현에, 요즘 언어로 생태계의 변역(變易)에 책임을 지는 것도 인간이다. 이오니아학파 이래로 자연의 기원과 원인에 대한 탐구에서 아테네에서 퀴니코스-스토아가 세계(코스모스)의 영혼에 합일하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화두를 제시했다.
인간의 영혼에 대한 탐구가 자의식의 발현을 거쳐서 자연을 책임지는 자세에 대해 자각하는 것이 19세기 후반의 영혼(심리)학이었고, 그 영혼학을 삼원성 또는 3원의 중첩조합으로서 8가지 사실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를 프로이트-라깡주의자들이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로 해석하였지만, 러셀은 이원성의 벤다이아그램으로부터 배경[비존재]이 따로 있음을 알았고, 확장하여 숙고해보면 3원성, 4원성, 5원성으로 행렬로서 설명해보아도 무(여집합)와 같은 비존재가 파라독사의 원인처럼 생긴다. 항상 순열에서는 표면 위로 드러나는 경우의 수 이외에 보이지 않지(invisible)만 없다고 할 수 없는 여백(공집합 φ)이 있다. 이 공집합도 수(경우)들 중의 하나다 라고 해야 파라독사에 대한 해명이 된다. 없는 것은 없다. 빈자리는 있는 것이다.
이로서 서양은 다시 동양의 미학에서 그림 속에 붓이 닿지 않는 여백의 미라고 하기도 하고, 불교의 색즉시공의 공이라고도 한다. 이 공집합과 같은 없는 것 같으면서 있었고 있어왔고 현재도 있는 것이 백성, 대중, 인민이다. 이 인민이 21세기 누리소통의 시대에 표면위로 올라온 것이다. 그 인민의 함성, 인민의 이미지(광장이든 영상이든), 인민의 응원봉이 표출과 발산을 드러냈다. 바디우가 존재의 함성이라고 하였지만, 존재가 아니라 현존, 들뢰즈에서는 심층의 함성, 기억의 함성, 인민의 함성이다. – 이번에 검찰개혁에 대해, 유시민과 김어준이 행한 것은 민주당 안에서 당원의 함성의 발현인 셈이다. –
자연과 함께 공명하며 인간이 서로 공감하는 시대를 여는 것은, 트럼프의 명령이 아니라 인민 열망일 것이다. 자연의 발현과 더불어 자연을 책임질 사유가 도래하였다. 이런 국면 또는 광경 중의 하나로서, 들뢰즈가 표현하는 얼굴의 등장이 어쩌면 춘분 다음날 광화문 광장에서, 방탄소년단(BTS)과 공감하며, 입말의 목소리, 얼굴과 몸짓을 드러내는 이미지가 빛처럼 널리 퍼져 홍익인간을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59NKJ) (59NLG) (59NKJ) (8:10, 59NLA) (8:41 59NLA)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81)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81)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3. 민주정과 민주정적인 인간, 필요한 욕구와 불필요한 욕구(555b-562b)-(1)
[555b-558c]
* 소크라테스는 이제 과두정ὀλιγαρχία에서 민주정δημοκρατία으로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언급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과두정이 좋음ἀγαθός이라고 내세우는 부에 대한 끝없는 추구ἀπληστία, 즉 최대한으로 부자πλούσιος가 되어야 한다는 끝없는 추구 때문에 일어난다.(555b) 게다가 많은 재산을 소유κεκτῆσθαι해야 통치자들οἱ ἄρχοντες이 될 수 있어서 젊은이νέος들이 자기 재산을 낭비ἀναλίσκειν해서 탕진ἀπολλύναι해버려도 법으로 막기는커녕 그들의 재산을 사들이고 돈놀이도 하여εἰσδανείζοντες 더 부유해지려고 한다. 그래야 더 존중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시민πολίτης들이 절제σωφροσύνην를 충분히 갖추기란 불가능하다,(555c) 그래서 방탕함을 방관하고 부추기는 과두정에서는 비천하지ἀγεννής 않은 사람들이 가난뱅이πένης가 되는 일이 때때로 일어난다. 그리고 그 중 빚χρέος을 지고 시민권을 박탈당한ἄτιμοι 자들의 경우 침도 달고κεκεντρωμένοι 무장도 다 갖추고서ἐξωπλισμένοι(555d) 자신의 재산을 차지한 사람들을 미워하고μισοῦντες 음모를 꾸미며ἐπιβουλεύοντες 변혁νεωτερισμός을 열망한다ἐρῶντες. 하지만 저 돈벌이꾼들οἱ χρηματισταὶ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돈벌이에만 매달려 나라에는 수벌κηφήν과 거지πτωχός들이 넘쳐난다.(555e)
* 이런 해악κακός이 불타올라도ἐκκαόμενον 통치자들은 그것을 막을 법적 방도 즉 시민들이 덕ἀρετῆ에 마음 쓸 수ἐπιμελεῖσθαι밖에 없게끔 하는 법, 이를테면 자발적인 계약συμβόλαιον을 할 때(556a) 본인이 그 위험을 감수하고 계약하게 만드는 법조차 마련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정작 통치자들 자신과 그 가족들은 호사스럽게 지내며 육체적인 것τὰ τοῦ σώματος이든 정신적인 것τὰ τῆς ψυχῆς이든 수고πονος를 감당하지 못하고(556b) 쾌락ἡδονή과 고통λύπη에 맞서 버텨내기καρτερεῖν에도 유약하고μαλακός 게으르다ἀργός. 그런데 그러한 상태에서 통치자들과 통치받는 자들이 전장에서든 여러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맞닥뜨린παραβάλλωσιν 경우 그들 자신 결코 부자들에게 얕보이지καταφρονῶνται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556c) 이를테면 부자들과 전장에 나란히 배치되었을 때 부자들이 숨을 헐떡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종종 보게 되면서 가난한 자는 자신들이 못나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마침내 ‘저자들은 우리 밥이야!ἡμέτερος 별것도 아니다’εἰσὶ οὐδέν라고 여기게 되면서 서로 그 말을 퍼트린다.(556d) 그 결과 과두정의 나라들은 서로의 동맹군συμμαχία을 불러들여 내란을 벌이게 되고 결국 나라가 병들게 된다.(556e)
* 민주정은 이러한 싸움에서 가난한 자들οἱ πένητες이 승리하여νικήσαντες 상대편 가운데 일부는 죽이고ἀποκτείνωσι 일부는 추방하고서ἐκβάλωσι 남은 자들에게 이 정치체제의 시민권과 관직을 추첨κλῆρος의 방식으로 균등하게ἐξ ἴσου 나누어 줄μεταδῶσι 때 출현한다. 무력ὅπλον에 의해 세워지든, 상대편이 겁을 먹고 도망가서 세워지든, 민주정은 그와 같이 수립κατάστασις된다.(557a)
*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수립된 민주정 체제에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즉 민주정의 기본 성격에 대해 언급한다. 이 역시 한마디로 이 나라는 자유ἐλευθερία 즉 거침없는 발언의 자유παρρησίας와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제멋대로의 자유ἐξουσία가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각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갈κατασκευάζοιτο 것이기에(557b) 이 정치체제πολιτεία는 마치 온갖 꽃ἄνθος이 수놓인 다채로운ποικίλος 겉옷ἱμάτιον처럼 모든 정치체제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καλλίστη 체제로 여겨진다.(557c) 그래서 이곳은 제멋대로의 자유 덕분에 정치체제들의 만물전παντοπώλιον에 간 사람처럼 정치체제를 탐색하기에도 맞춤한 곳이기도 하다.(557d).
* 이 나라 안에는, 설령 자네가 다스릴 능력이 있어도 다스려야 하는 강제ἀνάγκη도 없고 다스림ἄρχειν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강제도 없다.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싸워야 한다는 강제가 없고 평화εἰρήνη를 원하지 않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지낸다고 해서 그렇게 지내야 한다는 강제도 없다. 또 관직을 맡거나 재판관 일을 하는 것δικάζειν을 금지하는 법령이 있다고 하더라도(557e) 원하면 그것을 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이 정체는 환상적θεσπέσιος이고 또 즐겁다. 하물며 이 정치체제에서는 사형θανάτου이나 추방φυγή형의 평결을 받은 자들조차 여전히 사람들 속에 머물러 살면서, 아무도 신경 쓰지도 눈여겨보지도 않는 가운데, 마치 영웅의 혼백처럼ὥσπερ ἥρως 돌아다닌다.(558a) 이 만큼 이 정치체제는 너그럽고συγγνώμη 전혀 좀스럽지μικρολογία 않지만, 나라를 세울 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은 무시καταφρόνησις한다. 이 체제는 월등한ὑπερβεβλημένην 자질을 지니고 어려서부터 내내 아름다운καλός 것들 속에서 놀며 나랏일을 수행해내는 뛰어난ἀγαθός 사람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대중πλῆθος에게 호의εὔνους를 갖고 있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 사람을 높이 평가할 정도로 그 중요한 모든 것들을 대범하게μεγαλοπρεπῶς 짓밟는다.(558b) 이런 것들이 그리고 이와 자매ἀδελφή관계에 있는 것들이 민주정의 특징이다. 이 정치체제는 다스림이 없고ἄναρχος 다채로우며ποικίλος 즐거운ἡδύς 체제이고 동등한ἴσος 자에게나 동등하지 않은 자에게나 일종의 동등함ἰσότης을 똑같이 나누어 준다.(55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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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5c ‘시민들이 절제sōprosynē를 충분히 갖추기란 불가능하며’ : 절제는 이상국가에서 생산자 즉 시민이 갖는 덕목으로 ‘물질적 욕구에 대한 절제’의 의미도 지니고 있지만 ‘다른 계층들과의 조화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한마음 한뜻homonoia이 되는 능력’으로서 생산자 계층뿐만이 아니라 통치 계층, 전사 계층 모두에게 요구되는 공통의 덕이기도 하다.(431e-432a) 절제가 좁은 의미의 정의로 여겨지는 까닭도 그것에 있다. 그러나 앞서 살폈듯이 과두정 치하에서는 계층 간 조화와 공존의 덕으로서 이와 같은 절제가 무너져 계층들 간 상이했던 욕망들이 서로 뒤섞이면서 결국 계층 간 욕망구조가 하나로 등질화되기에 이른다. 수호자 계층은 물질적 욕구로 확장 변질된 만큼 권력으로 생산자 계층의 부를 침탈하여 더 큰 부자가 되기도 하고 처음부터 사유재산이 허용되었던 생산자 계급 또한 권력에도 관심을 갖게 된 만큼 자신들의 부로 관직을 사서 통치에 참여하고 그 힘으로 다시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다.
* 555d-e : 그리고 이러한 부를 위한 경쟁 과정에서 비천하지 않았던 수호자들이 가난뱅이가 되는 일도 일어나고 비천한 평민들이 자신이 모은 돈으로 관직을 사들여 마치 고귀한 자라도 된 것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일도 일어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욕망구조의 등질화가 달성된 과두정 치하에서 평민도 정치적 욕구를 갖고 관직에 참여할 수 있음은 이미 그 자체로 민주정체의 씨앗이 뿌려지고 자라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최대한 부자가 되려는 세태에서 가산을 탕진하고 빚을 지거나 시민권을 박탈당하는 방식으로 소수 사회기득권층에서 밀려나거나 소외된 사람들이 침이 달린 수벌이 되어 과두정을 무너뜨리고 민주정을 세우는 주체들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과두정이 무너지는 첫 번째 원인으로 과두주의자들이 대중을 부정의하게 대우할 때를 꼽으면서 과두정이 무너지는 여러 역사적 사례들을 들고 있다. 그러나 그 사례들에 따르면 과두정이 무너진 다음의 정치체계가 다 민주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정치학> 제5권 제6장 참고)
*556b ‘자발적인 계약을 할 때 본인이 그 위험을 감수하고 계약하게 만드는 법’ : 이를테면 법으로 정한 기준 이상의 폭리를 조건으로 계약할 경우 또는 가난한 자의 생존까지 위협할 정도로 채무 계약을 맺는 경우 그 계약을 무효화하는 법 등.
* 557b ‘제멋대로의 자유’exousia : 사전 상 exousia는 ‘it is allowed’, ‘is possible’의 뜻을 갖는 동사 exesti에서 나온 명사로 ‘power, authority to do a thing’, ‘permission to do’, ‘power over, licence’, ‘abuse of authority, licence, arrogance’, ‘abundance of means, resources’ 등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플라톤은 이곳에서 exousia를 ‘자유’(freedom)의 뜻을 갖고 있는 eleutheria의 하나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말 역본은 모두 exousia에 ‘자유’라는 말을 붙여, 정암학당 역본은 ‘제멋대로의 자유’로, 박종현은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 천병희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 옮기고 있다. 참고로 영역본은 보통 ‘지나친 자유’ 또는 ‘방종’의 뜻을 갖는 ‘licence’로 옮기고 있다. exousia는 기본적으로 ‘정도 이상의 지나침’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플라톤이 강조하는 ‘적도(適度)’to metrion와 동떨어진 것이고 동시에 부정의의 근본 특징 중 하나인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것’ 즉 ‘탐욕’으로서 pleonexia(343d, 359c)와 상통하는 것이다.
* 557b ‘거침없는 발언의 자유’parrēsia : 사전 상 parrēsia는 ‘outspokenness, frankness, freedom of speech’의 뜻을 갖는 말로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테네 전성기 민주정은 물론 오늘날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의 하나로서 ‘언론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사전 상 이 말은 나쁜 의미에서 ‘licence of tongue’ 즉 ‘아무 말이나 거리낌 없이 내뱉는 자유’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아마도 플라톤은 아테네 민주정이 멸망할 즈음, 진실과 무관하게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사술까지 동원하여 거리낌 없이 온갖 거짓말과 음해를 저질렀던 무고꾼sykophanēs들의 행태를 떠올리며 이 말을 썼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이 말은 ‘함께 진리를 찾아 대화를 나누는 소크라테스적 문답법’ 즉 dialegesthai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 557c ‘이 정치체제politeia 안에는 온갖 종류의 아주 다양한pantodapos 사람들이 생겨날 것 같네’ : 정치체제의 원어 politeia는 <국가>의 원제이기도 하지만 강해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나라의 정치체제’라는 뜻과 더불어 ‘개인이 영혼을 다스리는 방식’, ‘시민의 일상적 삶의 방식’의 뜻도 갖고 있다. <국가>라는 제목 아래에서 나라와 개인의 영혼이 지속적으로 평행을 유지하며 갖은 원리로 설명되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민주정체에는 이처럼 ‘제멋대로의 자유’를 구가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염두에 둘 것은 이들의 욕망구조는 과두정 이후 이미 물질적 욕구, 부에 대한 욕구로 획일화되어 있다. 민주정에서 다양함이란 그 부를 획득하기 위한 방편적 다양성 또는 부를 토대로 펼칠 수 있는 물질적 쾌락적 삶의 다양성을 의미할 뿐이다. 삶의 방식의 진정한 다양성은 본성에 기초한 서로 다른 적성과 소질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상이한 욕망들을 서로에 대한 침범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데서 나온다. 플라톤의 철인왕정과 민주정이 갖는 근본적인 차이도 여기에 있다. 철인왕정에서는 욕망구조 상 철학자가 통치에 적성이 있고 다른 계층은 생산이나 제작에 소질이 있어 통치는 철학자들이 서로 돌아가며 맡고 있고, 민주정에서는 욕망구조상 물질적 욕구로 등질화되어 있으나 재화는 한계가 있어 그것의 배분을 위한 권력 내지 관직을 모두가 돌아가며 수행하고 결정 또한 모종의 질적 원리가 아니라 머릿수를 기준으로 한 단순 양적인 원리 즉 다수결에 의해 결정한다. 플라톤 말대로 정치체제의 타락이 욕망구조의 변화에 따라 생긴 것이라면 민주정의 다수결 원리와 관직의 평등한 배분은 분명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욕망이 획일화된 타락한 민주정 단계에서는 플라톤이 보더라도 달리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대안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과두정이 민주정으로 바뀌게 된 것은 욕망구조는 동일함에도 정치적 결정권을 소수 부자들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58a ‘마치 영웅의 혼백처럼’hōsper hērōs : 원문대로 번역하면 ‘마치 영웅처럼’이다. 그런데 통상 아테네에서 영웅이 거리에 나오면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그러나 이곳에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은 영웅이 아닌 범죄자일 뿐이다. 사람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범법 자체가 일상화되어 있어 범죄자에 무감각해서 일수도 있고 사형 또는 추방되었을 범죄자가 나돌아다닐 일이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범죄자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자기가 버젓이 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쭐해서 자신을 영웅처럼 느낄 수 있다. 그만큼 민주정은 타락해있다. 어쨌거나 이러한 이유로 범죄자가 영웅처럼 나돌아다니는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런데 원문대로 그냥 ‘영웅처럼’으로 번역할 경우 사실과 다르게 ‘사람들이 영웅에 신경 안 쓰는’ 이상한 경우가 되어 앞뒤에 맞게 ‘영웅의 혼백’으로 보통 번역한다. 참고로 헤시오도스 신화에서는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어 축복의 섬에 간 네 번째 시대 사람들 즉 죽은 전사들을 hērōs로 일컫고 있다.
* 558c ‘이와 자매 관계에 있는 것들’ ; 이를테면 법보다 시민 다수의 결의psēsimata가 최고의 권위를 갖는 것.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29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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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살폈듯이 과두정에서는 계층과 영혼 전체에 걸쳐 물질적 욕구의 등질화와 획일화가 전면적으로 관철되어 있다. 권력 또한 다만 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여 관직은 소수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된 상태이다. 게다가 과두정은 부에 대한 경쟁에서 뒤진 자들의 파산이나 방탕한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낭비마저 소수 부자들의 부의 축적에 득이 된다고 여겨 그것을 막기 위한 어떠한 법적 장치도 따로 마련하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과두정은 나날이 빈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소수 부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거지가 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과두정은 부에 대한 끝없는 추구를 멈추기는커녕 더욱 가속화함에 따라 결국 사회적 빈곤층과 소외계층들로 하여금 변혁에 대한 열망을 갖게 만든다. 게다가 이들은 소수 통치자들과 만나거나 부딪치는 여러 경험들을 통해 결코 자신들이 그들보다 못나거나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변혁의 열망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하기에 이르고 마침내 동맹군을 결성하거나 다른 민주정체의 나라에서 동맹군을 불러들여 내분을 일으켜 과두정을 무너뜨린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정치체제가 곧 과두정 다음에 민주정dēmokratia이다.
*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정치체제의 타락과정에는 아테네 정치현실에 대한 그 자신의 역사적 경험이 분명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 국면 특히 아테네 멸망 직전 상황에 대한 일부의 서술을 제외하면 타락과정의 순서나 계기, 전체적인 흐름에서 기본적으로 실제 아테네 정치사 전체와 대부분 일치하지 않는다. 실제 아테네 정치사에서 굳이 소수의 지배로서 과두정을 찾아보자면 기원전 8세기 귀족정을 예로 들 수 있지만 그 정체는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금권정으로서 과두정으로 보기 힘들고, 설사 과두정으로 본다할지라도 그 이후 정치체제로서 민주정이 들어선 것도 아니다. 그리고 기원전 7세기 솔론이 개혁의 일환으로 채택한 제도가 이곳의 과두정처럼 토지와 재산에 따라 관직을 부여한 일종의 금권정이라고 해도, 그 체제에서는 이곳처럼 부의 소유가 무제한 허용되기는커녕 채무의 탕감과 채무 노예의 방지책 등 평민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배려가 중요한 정책적 요소로 반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타난 정치체제 역시 민주정이 아니라 페이시스트라토스(기원전 600-527)의 참주정이었다. 그리고 아테네에서 민주정의 등장과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는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또한 금권정이 아닌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을 타파한 데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을 주도한 클레이스테네스 자신 또한 가난한 평민이 아니라 귀족 출신이었다. 물론 아테네 정치사에서 과두주의자들은 늘 존재했지만 과두정체라는 현실 정체로서 집권했다가 민주정체로 바뀐 사례를 굳이 꼽자면 오랜 전쟁 이 가져다 준 만성적인 긴장감 때문에 기원전 411년 400인에 의해 잠시 일어났다가 패퇴된 과두정 혁명과 기원전 404년 30인 과두정이 수개월 집권했다가 민주정파에 의해 타도된 경우가 전부일 정도이다. 게다가 그 30인들 모두 비록 과두주의자들이었지만 이미 당시부터 참주들로 불리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을 타도한 사람들이 처음으로 민주정을 수립한 사람들이 아니라 페리클레스 이래 오랜 기간 민주정파를 이끌어 온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도 이곳의 경우와 일치하지 않는다.
*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적인 차이는 아테네에서 민주정이 등장하고 발전한 과정 자체가 이곳에서처럼 모종의 혁명적인 과정을 통해 일시에 이룩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테네 민주정의 발전은 멀리는 귀족과 평민의 갈등을 조정하려 했던 솔론에서부터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을 거쳐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이후 평민 계급의 정치적 신장을 발판으로 확립된 페리클레스 시대의 전성기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 동안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룩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처형과 추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체제 변혁 관련해서 이루어진 것들은 민주정이 안정적으로 확립되기 이전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나 클레이스테네스의 치하 권력 투쟁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이고, 그 이후에는 기원전 404년 30인들에 의한 무차별 처형 사건 정도를 꼽을 수 있지만 그것을 저지를 자들은 민주정파가 아닌 과두정파들이었다. 물론 체제 변혁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아니지만 처형 관련 일들을 들자면 기원전 427년 뮈틸레네 사람들의 처형, 416년 멜로스인들에 대한 학살, 406년 아르기누사이 해전 당시 장군들의 처형과 추방을 포함해서 404년 스승 소크라테스의 처형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스승의 처형은 플라톤 자신에게 민주정에 대한 부정적 상념을 안겨다 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곳에서 플라톤은 민주정 치하에서 일어난 위와 같은 일련의 부정적 사건들을 묶어 그것들이 마치 일거에 일어난 것처럼 압축하여 기술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이곳에서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정치체제의 타락과정은 실제 체제 변혁 과정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분석과 그 변화 과정에 기초하여 이른바 플라톤의 퇴보사적 역사관을 염두에 두고 기술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펴온 주제들 즉 이상적인 정의로운 국가와 개인 그리고 부정의한 국가와 개인 중 어느 나라와 개인이 더 행복한가를 보다 극명하게 판정하기 위해 플라톤 나름 인위적으로 기획된 이른바 방편으로서 정치체제의 타락과 변화과정에 대한 기술이라 할 것이다.
* 한편 <국가> 제8권에서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민주정의 특징들과 민주정 치하 민중들의 행태들은 플라톤을 반민주주의자로 규정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전거로 평가되어 왔다. 왜냐하면 플라톤 스스로 자신이 생각하는 여러 제도상 행태 상 특징들을 일단 민주정의 특징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토대로 민주정을 타락한 정치제제의 하나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곳에서 플라톤이 압축해서 인용하고 있는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특징들 가운데 제도 차원에서 제시한 것을 꼽자면 그것은 곧 ‘평민들 모두에게 재산과 신분에 상관없이 시민권과 관직을 균등하게 배분하고 그 배분 방식 또한 추첨에 따른다는 것’(557a) 그리고 그에 덧붙여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는 것’이다.(557b) 플라톤이 제시한 이러한 민주정의 특징들이 일단 당대 받아들여지고 있는 민주정의 일반적인 특징이라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정치학> 제6권 제2장 ‘민주정의 원리와 제도’ 부분에서 민주정의 근본 원리를 자유 즉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재산의 크기와 무관하게 추첨을 통해 관직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을 주요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1317b) 그리고 이러한 점들은 실제 아테네 민주정에서도 그대로 시행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최소한 이곳에서의 민주정의 제도와 관련한 플라톤의 언급은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 반면 민주정의 이러한 특징들은 플라톤이 앞서 이상국가론에서 언급해온 주장들과는 크게 배치된다는 점에서 타락한 정치체제의 하나로 민주정을 기술하고 있는 플라톤의 기본 의도와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 따르면 사회적 역할의 배분은 철저히 자연적 소질과 적성에 따른 특정의 조건 하에서 이루어져야 함에도 민주정은 어떠한 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모두를 대상으로 그것도 추첨이라는 우연적 방식으로 관직을 배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눈여겨 볼 것은 민주정에 대한 플라톤의 기술이 당대 민주정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가 전부라는 점이다. 이곳에서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민주정에 대한 제도 관련 이외의 언급들을 들여다보면 그 가운데 굳이 역사적 사실 또는 당대 민주정의 일반적인 특징과 일치하는 부분은 다만 아테네가 멸망하기 직전의 모습 즉 민주정이 최악의 상태에 빠져 내전과 분란과 각자도생에 시달리며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을 때의 모습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것을 제외한 민주정에 대한 플라톤의 나머지 기술들은 아테네 민주정이 걸어온 역사적 사실과도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플라톤은 민주정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든 사항들까지 민주정의 이름으로 끌어들여 마치 민주정의 본질적인 타락상인 양 열거하고 있다. 그 결과 어느 지점에 이르면 과연 플라톤이 현실 정치체제로서 민주정을 비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임의로 세운 가공의 민주정 내지 피폐한 민주정의 일단만을 부각시켜 과장해서 비판하고 있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이다. 이러한 사안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민주정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플라톤이 제시하고 있는 ‘제멋대로의 자유’exousia이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유’는 민주정이 근본으로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자유는 일반적인 민주정이 지향하는 근본 원리로서 자유와 크게 다르다. 이곳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제멋대로의 자유’에 따르면 다스림을 받아야 할 강제도 전쟁에 참여해야 할 강제도 없고 무엇보다 추첨을 통해 누구라도 관직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나라가 정한 법령에 따라야 할 강제도 없다. 설사 형벌의 평결을 받았어도 민주정 체제에서는 전혀 눈치도 신경도 쓸 필요 없이 형벌의 평결을 받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이 지낼 수 있다.
*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고 있는 민주정의 특징들과 실제 전성기 아테네 민주정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앞서도 살폈듯이 민주정에 대해 플라톤이 이곳에서 기술하고 있는 내용들은 제도의 측면을 제외하면 당대 현실 정치체제로서 일반적인 민주정의 양태와 거리가 멀다. 우선 민주정은 재산과 신분에 상관없이 추첨을 통해 관직에 참여할 수 있고 하고 민회나 재판정에서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술하고 있는 민주정의 일반적인 원리나 제도 또는 아테네 민주정이 취한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분명 자유가 근본 원리이기는 하지만 그곳에는 이곳에서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내용과 달리 엄연히 시민으로서 각 개인이 따르고 지켜야 할 법적 강제성이 존재하고 누구라도 추첨을 통해 관직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는 사전에 군역과 납세 의무, 하물며 부모에 대한 공경의 의무 등 엄격한 자격 심사dokimasia는 물론 임명 후 관리들에 대한 계속적인 통제 방책epicheirotonia도 구축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어길 경우 고발은 물론 처벌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관직 또한 전횡을 막기 위해 가능한 한, 한 종류의 관직이 아니라 여러 관직을 돌아가면서 맡되 기간도 짧은 기간만 맡겼다. 그리고 장군직이나 재정직 같은 전문적인 식견이 요구되는 관직은 추첨이 아니라 선출의 방식으로 임명되었고 그 또한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도록 여러 가지 견제 방책이 강구되어 있었다. 결코 제멋대로의 자유가 아닌 것이다.(e시대와 철학, 시철북 & 아카데미에 필자가 올린 ‘기획연재-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주제 2 : 아테네 민주정과 그 형성’ 참고)
*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이곳에서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민주정은 현실 정치체제로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두말할 나위가 없고 당대 일반적인 민주정과도 거리가 멀다. 설사 정치적 최고 결정권자로서 시민들이 그러한 정치체제를 민주정의 이름으로 수립하고 제멋대로의 자유를 선언했다하더라도 그 자체가 일체의 법적 강제성을 배제하는 것인 한, 그것은 권력에 의한 법적 강제성이라는 정치체제의 기본 특징을 결여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체제 중 하나로 분류조차 되기 힘든 것이다. 플라톤도 언급하고 있듯이 그 민주정이 실제로는 지배하는 사람 즉 통치자가 없는 무정부 상태anarchos를 말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민주정은 결코 무정부 상태의 정치체제가 아니다. 설령 시민이 무정부이외에 다른 통치를 배제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자가 없다는 것은 실질적인 시민의 지배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민주정이 아니다. 철인왕은 물론 명예주의자나 과두주의자, 참주를 배제한다고 해서 바로 민주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법적인 강제성을 갖고 지배하는 권위 있는 주체와 관료체계가 있어야 하나의 정치체제가 될 수 있다. 오늘날 무정부주의anarchism자들이 내세우는 체제는 시민 구성원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민 모두가 자율로서 서로에 대한 자발적 강제성을 갖고 성립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하나의 정치체제로 불릴 수 있지만, 이곳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민주정의 시민들은 자율로서 서로에 대한 자발적 강제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 제멋대로 자유만을 가진 자들이다. 물론 모종의 비슷한 정치체제로서 자유방임주의 체제로 볼 수 있지 않느냐라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방임주의국가가 야경국가로 불렸음이 보여주듯이 그것은 시장에 국한된 것이었고 최소한 국방과 시민 질서 등 국가 안전과 관련한 영역에서는 엄연히 정부의 역할이 존재했다. 요컨대 플라톤이 말하는 민주정은 이른바 정치체제로서 민중이 지배하는 민주정도 아니고 오늘날 말하는 자유방임주의체제도 아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것은 정치체제가 아닌 플라톤도 내용적으로 인정했듯이 그냥 ‘다스림이 없는’ 상태이다. 이에 비해 아테네 현실 민주정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일반적인 민주정은 정치적 주요 결정이 옳건 그르건, 바람직하건 바람직하지 않건,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간에 다수 대중에 의해 결정되었고 그 법적인 강제성이 담보되었다는 점에서 이곳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민주정과는 근본에서부터 다른 것이다.
*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많은 연구자들이 그래왔듯이 이곳에서 플라톤이 제시한 민주정에 대한 비판들만을 토대로 플라톤을 반민주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이론적 온전성과 타당성을 갖추지 못한 일종의 범주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물론 기타 여러 가지 관점에서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비판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자유방임체제로서 이곳의 민주정을 비판한다는 것을 근거로 그를 반민주주의자라고 한다면 아마도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지지자들도 반민주주의자로 불려 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조차 ‘제멋대로의 자유’까지 내세우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민주정이 자유를 근본 원리로 하더라도 ‘누구나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까지 유익한 일로 여길 경우 그것은 인간들 각자에게 있기 마련인 나쁜 것을 감시하고 방호할 수 있는phylattein 힘을 갖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 단언하고 있다.(1318b, 40)
* 그런데 이쯤에서 우리는 플라톤 자신 민주정과 관련한 이곳의 언급이 당대 일반적인 민주정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음에도 왜 민주정의 타락상을 논하는데 많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는 ‘제멋대로의 자유’를 그 핵심으로 내걸었는지 그 배경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곳에서 제멋대로의 자유와 관련하여 플라톤이 설명하고 있는 민주정의 여러 모습들은 욕망구조의 측면에서 이상국가의 특징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구성하는 각 계층과 개인들은 각자의 자연적 소질에 따라 각자가 속한 사회 계층과 자신의 내적 영혼에서 각각 자신의 고유 역할과 능력을 최선으로 발휘할 때 가장 행복한 나라와 개인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욕망구조에서 서로 상이하고 다양한 본성들을 온전하게 보전하되 절제의 덕을 통해 그것의 조화를 구현할 때 가장 행복한 개인이 되고 가장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기술된 민주정과 민주정적 인간은 이미 욕망구조에서 물질적 욕구로 등질화 내지 획일화된 상태에서 실제 가능성 여부와 무관하게 일단 온갖 형태의 욕구를 아무런 장애 없이 제멋대로 충족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욕구가 어떻든 종국적 목표는 오로지 물질적 욕구 돈에 대한 욕구로 귀착해 있다. 한마디로 민주정에서는 전 계층이 돈에 대한 욕구에 예속되어 있고 그 욕구를 제한하는 어떠한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한 민주정의 삶의 양태는 분명 자연적 소질의 다양성을 토대로 서로 상이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끼리 나라에서건 영혼에서건 최선의 조화와 공존을 구현하려는 플라톤 이상 국가의 목표와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진 모습들이다. 그런데 지금 플라톤은 행복과 정의와 관련한 최종적인 판정을 위한 준비 차원에서 타락한 정체들과 그것의 특징들을 욕망구조의 변질 차원에서 차례대로 논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플라톤은 ‘제멋대로의 자유’가 노정한 그와 같은 민주정의 삶의 양태들을 최악의 정치제제로서 참주정을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참주정 직전의 타락상을 구성하는 근거로서 그러한 양태들만큼 적합한 것도 없어 보인다. 플라톤이 타락한 정치체제로서 민주정을 다루면서 여러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민주정에서 중시하는 자유와 다르게 유독 무제한의 자유 즉 제멋대로의 자유를 민주정의 핵심 특징으로 내세운 까닭도 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플라톤은 민주정을 다루면서 민주정 그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민주정이 왜 수립과 동시에 머지않아 와해될 수밖에 없는 매우 불안정한 정치체제인지를 밝힘과 동시에 민주정의 무제한의 자유가 어떻게 무제한의 예속을 초래하며 판정의 최종단계인 참주정으로 이행하는지를 드러내려 했던 것이 아닐까.
*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사족 하나 첨언하려 한다. 플라톤은 여기서 이 정치체제의 타락과정을 다루면서 실제 아테네 민주정이라기보다는 욕망구조의 변질차원에서 ‘제멋대로의 자유’를 내세워 민주정 일반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이 실제 아테네 민주정에 대해 생각만큼 부정적이진 않았다고 여기는 것은 크나큰 오산이다. 무엇보다 플라톤은 민주정의 제도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아테네 민주정이 페리클레스 이래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내세워 자신들의 패권적 욕망을 내세워 그리스 사회 전체를 패권적으로 지배했던 시절을 평생 동안 개탄해 마지 않았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테네 전성기 민주정은 제국주의에 기반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당대의 현실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핀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관점에서 보면 아테네 민주정은 역사적으로 그들만의 자유와 이익을 위해 이성이 아닌 물리적 군사력으로 제멋대로 다른 폴리스들을 무너뜨리고 제국주의적 패권을 관철함으로써 서로 다른 폴리스들끼리의 조화와 공존 원리로서 그리스 공동체의 보전 원리 즉 이상국가의 기본원리를 완전히 저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테네 민주정의 힘을 내세운 이러한 무차별적 침탈은 이곳에서 플라톤이 말한 ‘제멋대로의 자유’와 아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 지금까지 우리는 기본적으로 욕망구조의 변질 차원에서 플라톤의 정치체제의 타락 과정을 논의해왔지만 사실 순전히 형식적인 구도에서만 보면 흥미롭게도 플라톤은 그 타락한 정치체제들을 논하면서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집착하는 가장 속물적인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가치들을 주제어로 내세워 마치 미리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각 정치체제에 순서대로 배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명예정의 경우에는 ‘명예’라는 가치가 과두정에서는 ‘돈’이라는 가치가 민주정에서는 ‘자유’라는 가치가 각각 중점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다루게 될 최종적인 판정 대상으로서 참주정은 철인왕의 이성과 대립되는 반이성적 ‘권력’이 배정되어 있다. 그리고 플라톤은 그러한 논의 순서에 맞추어 과두정에서 비롯된 부에 대한 끝없는 욕망에 이어 민주정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제멋대로의 자유’exousia를 제시한 후, 그것에 민주정적인 인간이 갖는 ‘불필요한ouk anagkaia 욕구’를 더해 종국적으로 판정과 비교의 최종 대상인 참주정의 특징으로서 폭압적 예속과 불법적 욕구를 제시한다. 플라톤은 정치체제의 타락과정을 그린 애초 목적대로 행복과 관련한 판정에서 철인왕정의 최종적이고도 궁극적인 비교 대상이자 최악의 정치체제로서 참주정에 그렇게 다가선다.
* 그러나 제8권을 다루는 서두에서부터 줄곧 밝혔듯이 이 모든 내용의 기저에는 역사적 정치체제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인간의 욕망구조와 정치체제 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의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제8권을 겉으로 드러난 타락한 정치체제와 그것이 추구하는 현실 가치에만 착안하여 논구할 경우 우리는 욕망구조의 변화와 정치체제라는 플라톤 정치체제 변동론이 갖는 철학적 함축을 간과할 수 있다. 인간 욕망의 본질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현실 가치들에 대한 비판적 분석도 매우 중요한 철학적 과제이지만, 인간 본성과 정치체제의 유기적 관계에 관한 플라톤의 근원적 성찰에까지 치열하게 탐문해 들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제8권에 담긴 정치체제 타락과정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약육강식이 일상이 된 이 짐승의 시대, 모멸의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참주정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앞서 논의 구도가 그렇듯이 민주정체에 이어 민주정적인 인간에 대한 논의가 아직 남아있다. -끝-
다음 강해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3. 민주정과 민주정적인 인간, 필요한 욕구와 불필요한 욕구(555b-562b)-(2)
[회원동정] 동심론 : 어린이 철학 -이탁오에서 동학과 방정환으로- 최종덕 회원 강의 영상 [한철연 소식]
동심론 : 어린이 철학
-이탁오에서 동학과 방정환으로-
이탁오의 동심설을 바탕으로 노자, 맹자 등 동양 철학과 방정환의 어린이 운동, 심지어 찰스 다윈의 공동체 정신까지 연결하며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동심)이 인간 본성이자 평등한 공동체의 기초임을 강조한다. 특히 어린이를 훈육의 대상이 아닌 인격적 동등함과 호기심을 가진 주체로 보아야 하며, 이러한 ‘동심’을 회복하는 것이 과도한 경쟁과 차별을 극복하는 길임을 제시한다.
♦ 2026년 2월 10일│소소마을 주관│이야기 : 최종덕(philonatu.com)
영상 출처: 강신익 교수 유튜브 계정 https://youtu.be/pr9Jyg0UA1w?si=XJiqDNvEryGamh1b
이원론 사고 대 다양체 사유: 비례중항 대 조화중항 [천 하룻밤 이야기]
이원론 사고 대 다양체 사유: 비례중항 대 조화중항
2026 02 19 우수(雨水): 겨울이 지나가는 기호(sign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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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언론지평 또는 공론장이라 하는 소통의 방식이 왜 이분법에 매여 있을까? 음양, 천지, 건곤, 용호 등의 용어에 습관적으로 익숙하기 때문일까? 통시적 습관과 현 사회의 공시적 습관은 다를 것이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이런 사유방식에 어떤 문제가 들어 있다고 여겼다. 고대철학을 연구하는 철학도들도 이 문제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지금도.
언어라기보다 입말의 분석에서 나온 공시태라 할 수 있는 현상에서도 사건들에 대한 설명과 설득을 위한 인용을 보면 더욱 흥미롭다. 언론이든 학자이든 인용하는 학자들의 소속 또는 계열을 보면 그러하다. 현 상황에서도 맑스도 공산주의도 주제로 올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맑스를 입에 올리는 자들이 맑스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한다. 이 문제만이 아니다. 민주정을 말하면서도 아테네 민주정이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이 민주제를 말한다. 공화정을 이야기하면서 로마 황제제 이전의 공화정을 말하지 않고, 나아가 프랑스 대혁명의 공화정을 말하지 않고, 민주제 앞에다 자유와 민주라는 용어를 붙여서 자유민주공화국이라 한다. 이런 담론들이 유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서양사 또는 세계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조선말 또는 대한 제국시대부터일 것이니, 동학이후로 치면 140여 년 쯤 될 것이다. 세계사 속에 편입의 시기에서, 코로나 이후에 눈떠보니 우리가 전지구적 삶을 살고 있다고들 한다. 우리가 세계의 일부를 넘어서 세계사 속에 가로지르며 흐르는 것은, 누리소통 이래로 AI시대에 세계 속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세계사 속에서 파편들만 우리의 누리소통에서 전개될 뿐이지만, 소통의 연결방식은 무한정하게 열려있다. 이제 배치와 배열을 유기적으로 조직화하는 방식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일 수 있다.
공시태 속에서 주류(상층)가 지도적 역할을 한다고 한다. 내류(심층)는 이 부류에 끌려가고 있다고 한다. 통시적으로 오랜 과정에서 주류의 학문(사서삼경)은 인민에게 명령 또는 지배의 논리였지, 내류의 삶과 심정과는 따로 놀았다. 그럼에도 주류 중의 일부는 항상 백성이 하늘이라고 한다. 백성이 하늘이 되기에는, 세계사에서 보아 백성의 소통(입말)이 문자화되어야 하는 데, 우리에게는 한자문화 속에서 상층과 심층이 따로 가고 있었다. 내류가 표면으로 오른 것은 겨우 80여 년이라 할 수 있다. 표면에서 심층이 내공을 가지고 표면의 각질을 균열내고 솟아나는데 시간이 필요했고, 아직도 필요하다. 내류의 강도가 축적된 내공은, 상층이 심층을 가르치는 정보의 획일화와 위계질서에 따른 명령과 지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층의 자각으로 자치성과 자율성, 공시태 속에서도 연대와 소통에 있다.
백성이, 인민이, 민중이 입말의 소통을 배치와 배열을 바꾸는 것은 두 가지 습관(역사적 습관, 현실 제도적 도덕)에 젖은 사고방식에서는 쉽지 않았다. 지금도. 바꾸고자 하는 과정에 걸림돌이 세계사를 재단하고 선전하는 상층의 방식이 공시태의 습관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 중에서 하나는 유럽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서양이 또는 이방인이 우리나라, 중국, 일본을 합하여 동양이라고 하고, 우리나라의 특성을 무시하고 중국과 일본의 역사 또는 근대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복속되어 있다고 하는데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화를 낸다. 우리나라는 중국도 일본도 아닌 우리의 고유성이 있다고 한다. 그 고유성이 상대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국뽕처럼 답한다. 그게 답이 아니다. 언어와 문자가 아니라, 입말과 문자화 방식이, 유기적 조직화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고, 이런 차이는 어느 차이보다 크다. 여기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지평에서 인용하는 것을 보면, 유럽에서 영국, 독일이 거의 8할에서 9할이며, 프랑스는 언급일 뿐이다. 그리고 영국과 대륙이라고 이원화하면서 독일과 프랑스가 같은 대륙 사상이라고 독일이야기로 덮는다. 우리나라 사람이 화를 내듯이 프랑스인도 화를 낼 것이다. 프랑스의 고유성이 먼저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통시태로 보아, 단군과 고조선 이래로 중국과 다르다고 한들, 훈민정음(1446년)에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라는 것보다 더 차아가 나는 것이 없을 것이다. 대략 보아 유럽 3국의 차이가 르네상스 시기(1500년대)라 보면 비슷한 시기이다. 철학사에서는 이시기에 인류가 자의식의 발현의 시기라 한다. 중국은 금나라의 송나라 침입으로 자의식의 발현으로 신유학(주자학)이 생겼다고 하나,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원나라를 몰아낸 명나라(1368-1664)에서 통일된 중국을 갖는 점에서 중국의 자의식의 성립으로 본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오랜 관습상으로 중국 사상의 일부로, 현시대의 공시태로서 서양학문의 수입의 습관에서 일본 사상의 일부로, 서양인들이 알고 있다. 냉전의 산물로서 남북전쟁이래로 피폐해진 나라에서 코로나의 방역으로 세계사의 표면에 오르면서, 세계가 우리나라를 중국과 일본과 다른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유럽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사상을 같은 대륙사상이라고 하면, 그 이방인이 우리나라를 모르듯이, 우리가 프랑스를 모르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사상적 차이와 통시적 차히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이와 차히보다 더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현시점에서 언론 지평에서, 사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갈등과 대립에서는 독일과 일본의 흐름과 영국과 미국의 사고방식을 따라 가고, 프랑스 사유를 밀어낸다. 내가 알기로 공산당과 사회당으로 집회 결사 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는 프랑스가 유일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상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말하면, 이분법 사고에 젖어서, 마치 중국의 유학의 공화과 불교의 평등을 밀어내는 것처럼, 이것들을 이상하게도 사교(邪敎) 또는 빨갱이 취급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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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민주당에서 합당 문제에서도 그러하다. 합당의 주제로서, 또는 우리나라가 나갈 중요한 화두로서,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는 사회권과 자연권을 표면위로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사회권이란 상층의 공론장이 아니라 민중의 의식화의 표현, 심층의 표면화이다. 이 용어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부제로서 인용하는 정치권(le droit politique)과 같다. 이 시기는 그리스 민주제처럼 인민의 의사에 의한 발의와 결정이 제도화하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가 르네상스 이래로 프랑스 입말을 쓰기 시작하여 200여년이 걸려서야, 상층이 문자화를 통해 지배하던 라틴어가 물러나는 시점이다. 이 귀결이 프랑스 대혁명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계약의 사회에서, 철학적으로 ‘자연배후학(형이상학)’은 자연이지, 신이나 지배층이 만든 법률이 아니다. 법치는 자연권의 토대위에 있다. 모든 사회적 계약과 규약이 인민의 의사에 의해서 이루어지듯이, 세계는 자연의 자치와 자기과정 또는 자율성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배후에는 자연의 자치성과 자율성이 있다. 인간도 스스로 자치와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유는 입말이 소통장에서, 표면에서 자유로울 때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여러 별종들이 성행했다는 것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서유럽의 세 나라, 프랑스, 독일, 영국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생각해야하듯이,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 대해 공시태에 머물지 말고, 오랜 과정의 삶의 방식에서 나온 통시태의 사유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특이성이 뛰어나다. 일본이 한자와 자국어의 병행이듯이 중국의 고문과 간자체의 병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입의 구강(신체의 유기적 조직화)과 함께 하는 입말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차이는 공시태의 차이가 아니라, 통시태의 오랜 과정에서 만들어진(창조된) 차히이다. 이로서 이원론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에서, 다양체가 아니라도 삼원적으로 또는 다원적으로 다루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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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을 대하는 태도에서 다른 하나는 서양사상사에 대한 이해가, 내가 보기에,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학자들이 또는 식자들이, 거의 9할이 일본과 미국에 젖어있다. 일제와 미제의 영향을 당연히 여기는 것은 꺼삐딴 리와 같은 사고방식이리라. 내가 서울에 와서 천재와 수재라고 불리는 이들을 많이도 보았다. 철학에서도 이들 중의 9할 이상이 앵글로색슨(영미, 독일철학)에 젖어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나도 잘은 몰랐었지만 박홍규(朴洪奎, 1919~1994 : 前 서울대 철학과 교수) 선생님에게는 열에 ‘하나’가 특이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를 이어가는 이는 드물다. 내가 가끔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로, 왜 프랑스 철학을 선택했는가 하면, 2천년의 중국의 너울에서 벗어나고, 100년의 일본의 학문적 영향에서 떠나고 싶고, 미국의 철학이 우리를 지배하려 드는 것이 싫어서라고 한다. 인도나 중동을 선택하지 않고 프랑스를 선택한 것도 서울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은 통시적으로 조선시대에 훈구파로서 상층을 유지하려는 사장파, 서인, 노론, 주자학으로 이어지는 외세 의존파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런 계보에서 학문적 편견으로 “사문난적”이라는 방식으로 편 가르기 하면서, 달리 사유하기를 배제를 넘어서 그런 사유를 은연 중에 악의 소굴처럼 만들었다. 이에 비해 내재적 발현을 이어가는 사림파, 동인, 남인, 실학 이후에도 문체반정에 대해 별종의 발언들이 있었으며, 이는 20세기에 만주에서 다른 계열로서 자주 독립파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원적 분화의 설명도 또한 이중성으로 한정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영토에서는 상층의 지배가 있었다. 심층이 표면으로 올라오지 못했던 시절에 이원화는 표면 위에서 이원화이지, 자연배후학의 자연과 정치권(사회권)의 주체로서 인민을 포함하는 이원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한계였다. 그럼에도 120여 년 동안에 자의식의 발현으로 80여 년 전부터 입말이 표면에 올라오면서 삼원성이 드러났다. 그리고 현재는 상층과 심층의 대립(모순이 아니다) 사이에 표면의 이중성이 드러났다. 이런 표면의 이중성을 주류 언론은 현실을 인정하자면서 공시태로서 사실(만들어진 것)들을 보자고 하고, 통시태 입장에서는 사건(연관들의 조화)들을 만들어가자고 할 것이다. 사건은 접속하는 연관의 사유에 덩어리로서, 이 사건이 굴러가는 방식에 따라 그 시대의 카이로스(또는 변곡점)를 드러내 보인다. 그 변곡점을 잘 들여다보면서, 사람들의 발언과 조화를 이룰 평결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대이다. 이번에 유시민의 발언은 변곡점을 찍었을 것이며, 이런 사유의 흐름을 잡고 있었던 이는 이해찬(1952-2026)이라고들 한다. 이런 과정에서도 빨갱이니 공산주의니 하는 용어들로 공론장에서는 이런 화두를 매장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인류가 통시적으로 주장해온 사상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이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사상의 자유에서 등장하는 자유가 자본주의와 우리나라 현실에서 모순이라고 여기는 이들이다. 모순은 유일신앙자의 논리이고 존재론의 비례의 논리이지, 자연배후학이든 실증철학사의 조화의 논리가 아니다. 전자에서는 사실에서 만들어진 것들의 비교와 수량적 비례로서 참과 거짓, 또는 아군과 적군을 구별한다. 이에 비해 후자에서는 사건에서 다양한 접속에서 대립과 차히가 있지만 사유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 사유 방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들(les faits)과 사건(les événements)의 차히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속에서 차이가 악마화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아류의 비례중항(比例中項)을 중요시하는 것이고 앵글로색슨의 사고방식이다. 이에 비해 사건 속에서 다양한 접속에 대립을 종합하는(진정한 의미에서 변증론) 과정에서 조화중항(調和中項)을 찾는데, 이는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사유에 있다. 이 후자들의 특징은 유일신이 없다는 것이다. 유일신으로 상승하는 사고에서 최고 류개념의 성립을 변증법이라고하는 것은 자연배후학이 아니고 유일종교의 신학이다. 철학은 신에 대한 경배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자기성찰이다. 신을 믿는 자들은 그 신이 자신들의 소유 또는 대변자라고 착각한다. 이에 비해 자연배후학에서 자연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누구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자치와 자율성과 자발성에 대한 성찰과 집중에 있다. 변증법이란 이름으로 대립을 모순으로 몰아 적대시하는 사고와, 공동체에서 소유 없는 공산의 사회의 조화와 공감, 누리소통에서 공명을 찾는 사유, 이 둘 사이에 차히는 어디서 왔을까? 나로서는 박홍규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무엇인가 다르긴 다른데 어떻게 다른지, 선생님의 설명이나, 뒷풀이에서 그 제자들 사이에서의 해석의 차히가 있다는 것은 느끼지만 무엇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 공시태와 통시태, 우주론과 우주발생론, 존재론과 자연론, 공간론과 시간론, 참주제와 민주제, 황제제와 공화제, 진위론과 실증론 등에서 사유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이 차히의 근원이 무엇일까?는 늘 고민이었다. 벩송은 두 가지가 근원에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정지와 운동, 공간과 시간이란 용어를 내비쳤지만, 나로서는 젊은 시절에 운동(정확하게는 지속)의 설명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는 사유의 단위(l’unité)에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왜 벩송은 수의 하나(un)라는 단위의 비판에서 출발했을까? 수학책을 열권이상 읽으면서도 잘 찾을 수 없었다. 수학사에서 한 가지 얻은 것은, 모든 수학들은 수로 환원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브룅슈비끄는 달리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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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하게 설명하기 위해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하나의 단위, 그 다음으로 둘째 단위, 두 단위의 설명과 둘 사이의 유사성과 상사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늘과 땅, 음과 양, 좌파와 우파, 0과 1은 편리를 위한 사고방식이다. 그 둘은 유사성보다 상사성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양자를 쌍으로 보는 경우, 대립으로 보는 경우, 조화와 순환으로 보는 경우, 그리고 극한에서 모순으로 추상하는 경우, 등은 각각이 다르다.
하나의 단위에서 둘로 구별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는 사고방식과 달리 하나에서 여럿이 발생한다는 사유는 다르다. 둘은 자르면서 생기는 것이고 이로부터 사고를 하는 이들이 간단명료해 보인다. 그럼에도 자연은 하나에서 여럿을 창조하고 생산하며, 여럿들 사이의 발생과 생장이 서로 다르다. 여럿을 모두 이야기하기 어려워서, 셋으로 줄여서 간략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넷 또는 다섯으로 다루기도 한다. 인간의 의식도 얼(혼)과 행(삶)의 이분법이 있는가 하면, 현실에서 상층과 표면과 심층(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로 구별하여 사유하는 이들도 있고, 나아가 사상처럼 넷으로 구별하는 경우도 있으나, 수학사에서 1차, 2차, 3차, 4차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공간상으로 4차를 구해내기 어렵다. 그러면 점을 1차로 선을 2차로 면을 3차로, 체적을 4차로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하는 이들이 있다. 점이란 것이 그렇지 않다. 이 점은 아톰과도 다르고, 산수학에서 수와도 다르고, 언어논리에서 항목 또는 용어들과도 다르다. 이런 차이들을 숙고하는 쪽은 (플라톤과 플라톤주의 이래로) 일자와 다자에 대한 구별에도 고심을 한다. 편리의 사고는 플라톤주의, 루소주의, 맑스주의 등으로 쉽게 구획정리로서 나름의 경계를 그은 것이다. 플라톤에서 페라스(한계)를 상충에 두는 이유이기도 한다. 그러면 반대편의 아페이론은 무엇인가? 페라스의 범위 밖인가? 페라스를 생산하는 토대 또는 재료일까? 그 자름의 경계는 무엇인가?
플라톤의 사유 깊이는 소크라테스로부터 이어지고, 대를 이어간 아카데미아 학당장(총장)들로 연결된다. 플라톤의 「폴리테이아」편에서 선분의 비유는 편리한 사고였다. 네 등분인데 이등분으로 보면 인식과 비인식(억측)이라는 이분법이다. 그러나 수학사는 흥미롭게도 인식(에피스테메)에 산술학과 기하학, 비인식 부분에 천문학(책력)과 음향(입말, 음악)을 포함시켰다. 이로서 중국의 주역이나 사상의학처럼 4가지로 분류된다. 그런데 플라톤이 후기에 가서 「티마이오스」편에서 이데아계, 데미우르고스, 아페이론계로 삼등분했다. 삶의 현실에서 로고서, 에토스, 파토스의 세 측면을 고민했다고 해석한다. 여기서 중간항처럼 보이는 에토스에는 서로 겹치는 듯하지만 다른 기하학과 천문학이 있다. 얼핏 보아 천문학이 상층에, 기하학이 심층에 가까울 것 같다. 이런 고민이 아카데미아 학당장들은 괴롭혀서 회의론으로 개연성으로 고민했다고 한다. 플라톤의 천문학은 이집트 책력에서 온 것이라 하며, 책력은 삶의 터전에서 생활양식의 필수요소이다. 그 당시에 12별자리든 24절기든 농사와 연관이며, 인간이 먹거리와 잠자리의 중요성이 표출된 것이다.
그러면 음향은 무엇일까? 비빌론과 이집트의 음악(율려)에 대한 전승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악기가 주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의 연극 극장을 생각해보면, 반원의 중심(촛점)에서 연기자가 이야기 한다. 관객에게 골고루 전달되는 방식이며, 그리스 민주정의 전성기에 시인 작가들이 또는 연설가, 변론가들이 시대 이끈 주인공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언설들이 난무하는 길거리에 이야기들을 종합(담론, 평결)을 하고자 한 인물로 보자. 그러면 플라톤의 고민은 아테네 시민의 의견들의 종합으로 실행방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페라스를 전달하는 지자의 역할일까, 아니면 아페이론의 다양한 입말의 발설들을 종합하는 현자의 길이었을까? 앵글로색슨 철학사가들은 전자에, 프랑스 실증주의는 후자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카데미아의 후대 학당장이든 플로티노스이후 플라톤의 계승자들은 책력과 음향에서 그리고 수학의 내용에서 운동과 변환은 산술학의 단위 1과 기하학의 단위 점과 다른 것으로 보았다. 이 단위는 산술학도 기하학도 아닌 조화중항이라는 단위가 있다는 것이다.
학문사에서 늦게서야 이분법의 단위가 아닌 다른 단위가 있음을 확증했다. 비례중항이 맞다 틀리다를 따진다면, 조화중항은 소크라테스와 공자처럼 훌륭타 장하다를 다루었을 것이다. 되돌아가서 플라톤은 이원적 비례중항이 아니라, 삶에서 다양한 발생(아페이론의 생성)을 고심했다고 보았다. 그 삶에서 발현, 발생의 다양한 방향과 다양한 계열의 종합이 플라톤이 사유했던 변증법일 것이다. 이로 후대의 학자들은 4가지 분류방식의 종합은 상층의 산술과 기하의 비례방식의 중간을 기본으로서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원(공)의 운행과 변화와 음향의 확장과 전파에 대한 것을 포함하여 종합으로서 변증법적 중앙, 즉 조화중앙을 찾으려했다고 보았다. 삶에서는 비례중항이 중하고 먼저라고 보았다. – 아마도 후대에서 플라톤의 다자의 조화에 대한 해석을, 상층의 이데아들의 조화가 아니라 아페이론에서 발생된 준이데아들의 조화로 보았을 것이다. – 브룅슈비끄 수학사는 이를 흥미롭게 전개한다. 양자 대결에서 진위, 선악의 구별은 비례중항이란 이름으로 유일신앙의 착각이지만, 이에 반해 삼자 또는 다자의 조화중항은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 상부상조, 약속, 계약, 평결, 협약 등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서 비례중항주의자들이 언론 공론장을 이야기하면서 중립적이라고 하는 말은 상층의 지배를 감추고 있는 사기에 가깝다. 비례중항에서 중립은 선과 악, 진과 위 사이에 서는 것으로, 전형적인 유일신앙의 이분법적 사고이다. 이 중립이라는 항은 현실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상층(극우)에 편드는 경계선을 긋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을 플라톤주의 또는 아리스토텔레스 정의에서 끌어내어 이야기 한다. 플라톤의 사상에서 초기부터 이분법이 있었지만, 그것은 영혼의 역량에 대한 마부의 비유에서,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 하나에서 둘만이 아니라 여럿이라는 점을 선분의 비유로서, 우주의 생성에서 새로이 다루고자 하였으나, 당대의 입말과 수학들의 전개방식의 한계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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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일제에서 벗어나 20세기 후반에 입말의 발생과 확장이 극대화 되었다. 이런 발생론적 과정이 서울이라는 틀에, 즉 스스로 페라스를 긋는 작업에 갇히어, 또는 조선 시대 관습이래로 상층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남북의 경계를 긋는 자들에 포획되어, 이런 사고가 이분법에 머문 것은, 앵글로색슨 철학을 심은 일제의 강압도 있었지만, 사문난적과 문체반정의 영향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서울은 사대주의의 연장에 서 있었고, 미국이라는 제국으로 갈아타면서 앵글로색슨의 분석철학을 심었고, 정의론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비례중항을 심었다. 그 속에 미국의 정의, 독일의 공론장을 말하고 있다. 그나마도 플라톤에 대한 깊은 탐구와 이해가 있었음에도, 서울이 사문난적이래로 3백여년 습관과, 현실에서 영어를 간판으로 만드는 공시적 습관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덧씌운 플라톤주의도, 그리고 맑스주의도, 비례중항이라는 이름으로 젖어서, 중립적이고 하며 중간자의 입장이라고 하며, 민주와 정의를 말한다. 이들의 사고에서는 플라톤이 고민했던 에토스에 이르는 발생의 책력과 음향은 제국의 체제에 맞게 짜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산술과 기학의 이중성에 대해 언어 추리로서 최고류로 종합이 현시대를 지배한다. 그 지배는 로마 황제제 이래로 전쟁을 통한 지배와 수탈이며, 이 그늘 속에서 서울은 인민의 최종심급의 평결장을 법치라는 이름으로 공론장을 만들고 있으며, 발생과 생성을 거짓과 악으로 몰아가려 한다. 이번에 극우파의 제국 추종주의와 달리, 달리 사유하기의 방식으로 사회권(루소의 정치권리)과 토지에 대한 자연권을 화두로 올렸으나, 제국의 주구들이 덤벼들어 다양체의 논의를 공론장의 논의로 바꾸었다. 아직도 앵글로색슨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누리소통을 4천5백만이 손안에 쥐고 있는 나라에서 다양체의 발현은 이미 도래했다. 상부상조, 공감, 공명의 종합으로서 변증법적 사유인 조화중항을 널리 사유할 때이다.
플라톤이 흥미있게도 정의를 조화라고 했다. 영혼, 가슴, 팔다리의 삼자가 조화로울 때정의롭고, 이를 실행하는 이가 훌륭타. 영혼의 발산은 용기와 절제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진다고 하는 것은 발생과 과정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이를 고정시키는 자들이 이분법주의이자이며, 플라톤이 아니라 플라톤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사고방식으로 보아, 그러면 용기는 선이고 절제는 악인가? 하나에서 여러 방향으로 전개되지만 설명 상 두 가지일 뿐이며, 발명과 창안은 여러 다른 방향의 길들이기도 하다. 유일신앙의 지배아래 아리스토텔레스를 두고 공론장이라는 비례중항의 정의는 편 가르기이다. 이에 비해, 마치 빛의 발산과 같은, 자연의 다양한 발현과 생성에서, 다양체들의 조화중항을 이루는 시대가 왔다. 5천만 중에서 4천5백만이 손바닥에 재료와 도서관 자료를 볼 수 있는 누리소통의 도구가 우리 입말과 더불어 빛처럼 퍼져나간다. 그 빛의 발산이 윤석열의 내란을 막지 않았는가? 이제 플라톤주의가 아니라, 소크라테스 제자인 플라톤의 진솔한 사유인 조화중항을 이루고자 노력하며, 내공을 쌓은 이들이 먼저 하나의 디딤돌을 놓을 것이다. (6:05, 59MLH) (6:39, 59M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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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19일 오후 4시경 내란 혐의 재판에서 선고 하였다. 윤석열 무기징역,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징역 30년, 민간인 노상원 18년․‥….
사람들은 걱정했다. 이병철 변호사의 말: 법원에서 90%가 보수이고 80%이상이 극우이라고 한다. 조희대, 박영재, 지귀연, 우인성이 극우라고들 하는데, 지귀연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간다. (59MLI)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57-척도와 양상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57-척도와 양상
1)
헤겔 논리학 1부 존재론 1편이 질[그 제목은 ‘존재’지만 실질적으로 질을 다룬다], 2편이 양, 그리고 3편은 척도를 다룬다. 감각적 성질은 각기 독립적이며 서로 무차별하다. 양은 동일한 일자들의 서로 무차별한 관계다.
양을 다루면서 양들의 연속성과 불연속성(분산성)이라는 이중적 관계를 살펴보고, 이어서 이런 양들의 관계가 외연량의 관계와 내포량의 관계로 나누어질 수 있음을 보았다. 외연량은 예를 들어 어떤 것의 길이를 다른 것의 길이를 통해 측정한 것이다. 이는 수학적으로 기수를 통해 표현된다. 내포량은 어떤 사물의 경도를 잴 때, 단순히 다른 사물과 비교하여 측정한 것이다. 이는 수학적으로 서수를 통해 표현된다.
“존재 그 자체는 규정성이 직접 자기와 동일하게 된 것[질적인 것]을 말한다. 이 직접적 규정성은 지양된다. 양은 존재가 자기 내로 복귀한 것이어서 규정성에 무차별한 것으로서 단순한 자기 동일성[대자 존재적 일자]이다. 그러나 이 무차별성은 외면성일 뿐이며, 자기 자신에서가 아니라 타자에서 규정성을 갖는 것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323)
외연량과 내포량은 한 사물이 지닌 하나의 정량이 다른 사물이 지닌 동일한 정량을 통해 규정된다는 점에서 아직 하나의 정량과 다른 정량의 관계가 출현한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정량의 관계는 수학적으로는 비례를 통해 또는 분수를 통해(왜냐하면, 비례는 다시 분수화 될 수 있으므로) 표현된다.
처음 직접 비례는 두 정량의 서로 무차별한 관계다. 이는 정수비의 관계다. 역 비례에 이르면 두 정량의 관계는 어떤 한계 내에 묶이지만(서로 곱하면 동일한 수이므로), 여전히 서로 외면적인 관계 아래 있다. 마침내 정량이 제곱 비례의 관계, 통약 불가능한 무리수적인 분수의 관계에 있게 되면 서로 다른 두 정량 사이에 내적인 관계가 출현한다. 예를 들어 거리는 시간의 제곱이다.
이런 제곱 관계조차 사실 여전히 외면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거리는 시간의 제곱이라 할 때, 사실 시간은 거리의 일종으로 다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마침내 서로 다른 두 정량이 내적인 관계를 지니는 단계에 이르면, 그것이 곧 특수 량이다. 예를 들면, 비중은 무게와 부피의 내적 관계다. 이때 무게 없는 부피가 없으며, 부피 없는 무게는 없지만, 무게와 부피는 서로 다른 것이다.
2)
이 특수 량이 곧 사물의 척도다. 여기서 척도라면 어떤 사물의 고유한 크기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사물의 무게나 부피 각자로는 사물의 고유성을 표현할 수 없다. 어떤 사물의 고유성은 그 사물의 비중을 통해 규정될 수 있다.
“제삼의 것[척도]은 이제 외면성이 자기 관계하게 된 것이다. 자기 관계하면서 동시에 외면성이 지양되니 자기 관계 자체에서 자기와의 구별[두 정량의 내적 관계]을 갖는다. 그래서 이 구별은 외면성으로서는 양적인 계기이며 자기 내로 복귀한 것으로서는 질적인 계기다.”(논리학 재판, GW 21, S. 323)
물론, 이 비중은 아직 진정한 사물의 본질을 규정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사물의 본성을 다만 주관적으로만 규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특수한 일반성이다. 이것은 마치 질을 다룰 때 감각적 질이 일반적인 질 즉 성질[Eigenschaft]로 발전한 것과 같다. 일반적 성질은 아직 객관적으로 일반적인 것 즉 이데아적인 성질(이것이 헤겔에서는 곧 대자 존재다)이 되지 못하며 다만 주관적으로 일반적인 것 즉 특수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주관적 일반성이 사물의 양적인 관계에서 출현할 때 척도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앞에서 질 범주의 논리적 발전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 척도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척도는 주관적 척도에서 객관적 척도로 이행할 것이다. 그것이 본질인데, 마치 주관적 일반성 즉 성질 가운데 진정으로 일반적인 성질 즉 이데아를 찾는 것이 지난 한 작업이듯이, 주관적 척도에서 마침내 본질에 이르는 길은 지난한 길이다.
앞의 길에서 우리는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참조로 했는데, 주관적 척도에서 객관적 척도 즉 본질로의 이행에도 유사한 철학적 논의가 전개될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3)
척도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서두에서 곧바로 헤겔은 양상 범주에 대한 논의를 던진다. 헤겔은 이 특수 량 즉 척도가 질 범주와 양 범주에 이어지는 양상 범주에 해당한다고 본다. 사실 양상 범주는 우연성, 현실성, 필연성 범주를 말하는데 논리학에서 1권 2부 본질로 마지막에 다루어진다. 그것은 본질론에 들어가 관계의 범주를 다룬 끝에 등장한다.
논리학이 1권에서 1부 존재론에서 질 범주와 양 범주를 다루고 2부 본질론에서 관계 범주와 양상 범주를 다룬 것은 칸트의 판단론의 12 범주의 체계에 따른 것이다. (다만, 칸트의 경우 양 범주가 먼저 나오고 질 범주가 나오는데, 헤겔은 질 범주를 먼저 다룬다) 칸트는 이런 범주들 사이에 어떤 발전이 존재한다고 보지는 않았으며, 각 범주는 마치 좌표 체계처럼 경험과 관계했다. 그러나 헤겔은 이런 범주들 사이에도 논리적 발전이 존재한다고 보면서, 그런 논리적 발전에 따라 논리학을 구성했다.
이런 논리적 발전의 배후에는 다시 정신현상학에서 보는 것과 같은 시간적 발전이 깔려있다는 사실은 앞에서 논리학 서문을 다룰 때 이미 언급했으니, 그 부분을 다시 참조하기 바란다. 그런데 여기서 헤겔은 1부 존재론에서 1편 질 범주와 2편 양 범주에 이어서 등장하는 3편 척도 범주 사이에도 어떤 범주적 연관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면서 그 범주들의 범주적 관계를 실체와 속성 그리고 양상이라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범주 체계(스피노자의 형이상학적 체계 구성을 생각해 보라)를 통해 이해하려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척도는 양상 범주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질 범주는 실체 범주에, 양 범주는 속성 범주에 해당하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밖에 없는데, 헤겔은 그 점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우리의 추측에 맡길 뿐이다. 우리도 굳이 여기서 그 점을 고민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헤겔이 여기서 양상 범주를 끌어들인 것은 이 3편 척도가 다루는 내용의 독특성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양상 범주는 문법적으로는 부사에 해당한다. 전통적 형이상학에서는 주어인 실체에 비해보면 중요하지 않은 우연적이고 개별적이고 유한한 것이다. 양상은[Modus] 사물의 양식[Art]과 방식[Weise]이다. 그러므로 양상에 해당하는 것은 제거되고 부정되고 만다. 헤겔은 이런 점을 지적하기 위해 범신론(구체적으로는 스피노자의 범신론과 인도의 범신론)에 양상이 다루어지는 방식을 소개한다.
“스피노자주의에서 바로 양상 자체가 비 진리이며 다만 실체가 진정한 것이듯이 모든 것은 이 실체로 환원되어야 하며 그래서 이 모든 것은 모든 내용을 다시 공허에 빠뜨려야 하며 다시 말해 다만 형식적이고 내용이 없는 통일성 속으로 빠뜨려야 하니, 시바[인도 형이상학 체계-브라만, 크리슈나, 시바-에서 시바] 역시 위대한 전체이며 브라만으로부터 구별되지 않은 것 즉 브라만 자체다. … 생성과 소멸 즉 양상 일반의 영역에 처해 있는 인간에게서 최고의 목표는 의식이 없는 것 속에 침잠하는 것이며 브라만과 통일하고 무화되는 것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325)
4)
헤겔은 이런 전통 형이상학 체계에서 양상 범주는 그 본래 진정한 의미에서 다루어지지 못했다고 본다. 헤겔은 양상은 개별적이고 우연적이며 유한한 것이지만, 그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즉 자기 내로 복귀하면서 오히려 진리인 실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기독교 신학에서 양상 범주의 중요성을 주목하는데 그리스도는 개별적이고 유한한 존재로 출현했다. 그런 점에서 양상 범주에 해당한다. 하지만, 자기를 부정하면서 마침내 신이 되니, 양상 범주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헤겔은 질과 양에 이어서 등장하는 척도는 이런 자기 부정적인 양상 범주에 해당한다고 말하면서, 이 척도에서 본질로의 이행이 이런 자기 부정성의 운동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말하려 한다. 척도에서 본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척도가 없는 것 즉 무-척도[Masslose]에서 본질이 나온다는 것이다.
물리학적 자연은 척도를 지닌다. 자연을 수학화 하는 것은 이런 척도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척도는 어디까지나 양적 관계다. 이 양적 관계는 아무리 수학적으로 복잡한 체계를 통해서도 그것은 척도에 머무르며 진정한 본질에는 이를 수 없다. 물리학적 자연 속에서는 본질은 찾을 수 없다. 본질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제2 실체가 그렇듯이 물리학적 자연을 넘어선 생물의 영역에서 찾아진다.
그 과정에서 헤겔은 우선 화학의 영역에서 등장하는 친화성 개념을 검토한 후 마침내 생물의 영역에 이른다. 이 생물의 영역에서는 모든 것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척도를 상실해 버린다. 생물은 척도나 수를 통해서 규정될 수 없다. 이 영역에서 마침내 본질이 출현한다.
척도가 본질로 이행하는 과정이 이제 앞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그 관계에 대해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척도 속에는 이미 본질의 이념이 들어 있으니 즉 규정되어 있음의 직접성 속에서 자기 동일적이라는 이념이 들어 있다. 그와 같은 직접적 본질[즉 척도]은 자기 동일성을 통해 매개된 것으로 격하되고 마찬가지로 이런 매개된 것은 다만 외면성을 통해서 매개된 것이지만, 자기 매개이다. 그것은 반성이로되 그 규정성들이 존재하며 그러나 반성은 이런 존재 속에서 단적으로 그 부정적 통일의 한 계기가 되는 것일 뿐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326)
이 구절에서 척도의 이중성을 설명한다. 척도는 자기 매개, 자기 동일성과 타자 즉 외면성을 통해 매개된 것이 합일하면서 생겨난 것의 통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의 정량이 다른 정량과 내적으로 관계 맺고 있다는 의미다. 내적인 관계이므로 자기 관계이며, 타자와 관계하므로 외면성을 통해 매개된 것이다. 이런 척도는 앞으로 본질로 발전하니, 척도 개념 내에 이미 본질이 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질은 자기 내 반성과 직접성의 합일이니, 생물의 종이 개체 속에서[직접성] 자기를 재생산하는[본질] 관계를 통해 본질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