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데란다·그레이엄 하먼 대담, 김효진 옮김, 『실재론의 부상』(갈무리, 2025) 서평|글: 김진환(단국대학교 외국어대학 조교수)
『실재론의 부상』 서평
김진환 (단국대학교 외국어대학 조교수)
실재론이 부상했다. 2007년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열린 한 워크숍의 제목으로 사용된 일을 기점으로 ‘사변적 실재론’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관련 서적과 연구의 숫자뿐만 아니라, ‘After Speculative Realism’이라는 상징적인 제목의 저서를 통해 논의의 활발함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 ‘최초의 시작’ 이후, 딱 10년 만인 2017년에 해당 저서의 영어판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다시 8년 뒤, 비상 중인 실재론에 관한 이야기가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된다.
이 책의 대담자 중 한 명이자 한국어판 서평을 쓴 ‘객체’인 그레이엄 하먼은 자신이 ‘새로운 철학’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이후, 매우 부지런히 그리고 꾸준히 책을 출간하고 있다. 하먼의 이런 모습은 일견 슬라보예 지젝을 닮아 있기도 하다. 학문의 활동 기반은 상이하겠으나, 어디에선가 하먼 스스로가 밝힌 것처럼, 지젝의 학문적 생산력은 그의 이론에 대한 왈가왈부와는 별도로 일정 정도의 존중을 받을 만하다. 그래서인지 하먼도 지젝의 ‘뒤를 따라’ 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상에 앉으면 책 한 권 정도는 뚝딱인 지젝에게 ‘동어반복’이라는 비판이 있듯, 하먼도 유사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아마도 그래서, 이 책은 그토록 하먼이 ‘많은 말’을 함으로써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명료히 정리하기에 알맞은 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책이 되어준다.
『실재론의 부상』은 ‘그레이엄 하먼’이라는 객체와 ‘마누엘 데란다’라는 객체의 만남에 관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의 일차적 이점은 하먼과 데란다 각각의 이론 체계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제공해 준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이 책은 하먼이든 데란다든 둘 중 한 명에게만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분명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며, 하먼과 데란다 각자가 말하려는 바를 보다 명료히 정리할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목차를 보면 쉬이 다가가기 어려워지는 측면도 있다. ‘실재론’, ‘유물론’, ‘반실재론’, ‘존재론’, ‘인지’, ‘시간’, ‘공간’, ‘과학’, ‘경험’ 등 그 자체로 책 한 권은 충분히 나올 주제들이 병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책 한 권에서 다룬다는 것이, 그것도 그다지 길지 않은 책에서 다룬다는 것이 가능한가?
이에 대한 답이 굳이 회의적일 필요는 없다.
이 지점에 이 책이 갖는 보다 근본적인 이점이 있다.
하먼이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는 것처럼 “지금까지 지성사에서는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서로의 노력을 알지 못한 채로 어떤 유사한 관념을 동시에 품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본문 5쪽). 이는 당연히 자신과 데란다를 말한다. 하먼은 『사변적 실재론 입문』(갈무리, 2023)이라는 저서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뛰어난 동료들’로 레비 브라이언트, 이언 보고스트, 티머시 모턴을 언급한 바 있기도 하다(15쪽). 이 이야기는, 하먼이든 데란다든 결국 다른 여러 철학자/이론가들과 학문적 결을 공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재론의 부상』은 하먼과 데란다의 대담이지만, 결국은 현재와 과거의 대담이다. 현재의 대표는 하먼-데란다-브라이언트-보고스트-모턴(이 연쇄는 계속될 수 있다)으로 이어지는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객체이고, 과거의 대표는 이곳에서 세세히 다룰 수는 없는 (왜냐하면 위에 언급된 인물들이 모두 동일한 과거의 철학자를 참조점 삼아 자신의 학문을 전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철학자-객체들이다.
과거가 우리에게 반드시 의미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럴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꼭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와 역사를 떠나 존재할 수는 없다. 시간을 초월한 인간은 없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하나, 과거와 유의미한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 대화의 주제는 이제 주체중심적 세계관, 즉 인간중심적 세계관에 대한 거부로 구성된다.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고 책에 접근한다면, 독자는 하먼에 더 동의하거나 데란다에 더 동의하거나 할 필요성을 잠시 내려둘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바가 무엇인지, 하먼이 이야기한 것처럼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들이 공유하고 있을 수 있는 오늘날의 사유는 무엇인지에 집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론을 대상화해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그것을 ‘잘’ 이해하면 또한 그것을 ‘잘’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독법이 읽지 못하는 것은 대상화할 수 없는 것을 (왜냐하면 모든 이론은 또한 언제나 ‘역사적’ 이론체계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대상화해 읽는 자신이 처한 위치다. 하먼도 데란다도 (사변적) 실재론도 역사의 특정 시점에 등장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수용될 유한한 객체일 뿐이다. 그것을 읽는 독자는,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가.
토마스 렘케(독일의 사회학자)는 사변적 실재론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그들[사변적 실재론자들]은 인간의 접근과 독립적으로 현존하는 어떤 세계가 있다는 실재론적 확신을 공유하지만, 현존하는 것에 관한 사변을, 존재를 (인간의) 사유와 지식의 범주들에 한정하지 않은 채로 실행할 것을 권함으로써 전통적인 실재론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한다.”(『사물의 통치』, 갈무리, 2024, 44쪽)
사변적 실재론은 실천적 개입이지 체계적 설명이 아니다. 여기에서 ‘체계적’이지 않다는 것은 그들이 체계를 구성하지 못한다는 뜻이 당연히 아니다. 단지, 세상에 대한 하나의 정답을 제공하는 데 (사변적) 실재론의 의의가 있지 않다는 뜻이다. 『실재론의 부상』은 실재론이 ‘실제로’ 부상했음을 이야기하려는 자기 변론이 아니다. 실재론이 부상했다고 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유일하게 우리가 처한 21세기의 문제의식의 지평 위에 이 책이 위치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서로의 의견에 반대하면서도, 각자 자신의 이론을 방어하면서도 그들이 공통으로 경계하는 것은 과거로의 ‘단순한’ 회귀다. 오늘날은 문제의식의 지평 자체가 달라졌기에 문제에 대한 담론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실재론은 ‘실재론’을 밀어내고 스스로 ‘새로운’ 실재론으로 부상 중이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71)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1)
- 철인 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 동굴의 비유(514a-521b) – (III)
* 이제 동굴의 비유에서 우리가 논의의 편의상 구분한 단계들 중 마지막 단계 <C5>가 남았다. <C5> 단계는 동굴 바깥 세계와 태양을 본 사람이 처음 있던 거처 동료 수감자를 불쌍히 여기고 다시 그곳으로 내려가는 상태를 그리고 있다.(516c-517a) 그런데 정작 소크라테스가 그리고 있는 비유의 마지막 부분은 당혹스럽게도 동굴 바깥 세계에 이르기까지 온갖 역경을 이겨낸 보람이나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동굴 속으로 내려가면서 맞이하는 고난의 과정을 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 목숨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다. 동굴의 비유는 이렇게 일단 마무리된다. 그러나 비유 자체로는 그렇게 끝나지만 철학자가 맞이하는 난관과 관련한 플라톤 나름의 추가적인 해명이 제법 짧지 않은 분량(517a-521b)으로 덧붙여 있다. 그 해명을 위해 플라톤은 우선 앞서 살핀 난관의 내용(516e-517a)을 다시 끌어들이고 있다.(517d-518b) 그런 연후 그러한 난관들을 극복하는데 좋음의 형상이 갖는 중대성을 언급하고 그런 만큼 그것에 이르기 위한 획기적인 교육 방식에 대한 논의를 수행한 후 마지막으로 그것을 토대로 철학자가 왜 동굴로 다시 내려가야 하는지에 관한 논거를 제시한다. 이 추가적인 논의 내용을 단락으로 소구분하면 아래와 같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루어지는 영혼의 전환을 위한 교육의 기본 방향은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 즉 철학자를 기르기 위한 구체적인 교과들에 관한 논의의 마중물이자 바탕이 된다.
1) 우선 플라톤은 철학자가 동굴 바깥에서 종국적으로 맞이하는 것이 좋음의 형상임을 재차 확인한 후 왜 그것이 그를 동굴로 이끄는 근거가 되고 또 왜 그것이 장차 그가 동굴 속에서 겪게 될 난관들을 이겨내고 그 소임을 완수케 하는 힘의 원천이 되는지를 해명한다.(517a-518b)
2) 그리고 좋음의 형상이 갖는 그러한 중대성 그만큼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얼마나 중대한지 그리고 그것에 상응할 만큼의 태도의 전환을 위해 어떠한 교육적 방책이 필요한지를 논구한다(518c-519c)
3) 끝으로 철학에 대한 그 자신의 내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왜 온갖 난관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시 동굴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또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논구한다.(519c-521c)
이에 따라 동굴의 비유에 관한 세 번째 강해는 <C4>를 다룰 때 그랬듯이 <C5> 단계의 비유 내용을 작게 잘라 차례로 살핀 다음 추가적인 해명으로서 위의 1), 2), 3)의 내용을 요약하고 그 내용을 음미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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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 태양을 본 후 처음 있던 거처 동료 수감자를 불쌍히 여기고 다시 그곳으로 내려가는 상태
* 소크라테스는 태양이야말로 바깥 세계 모든 것들의 원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사람은 아래와 같이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n) 그는 처음에 있던 거처οἴκησις와 그곳에서의 지혜σοφία, 그리고 그때의 동료수감자συνδεσμώτης들을 상기하고서, 자신은 자신의 변화μεταβολή 때문에 행복한데εὐδαιμονίζειν 그들은 불쌍하다ἐλεεῖν고 여길 것이다.(516c)
o) 그런데 거기에서는 벽면 위 그림자들의 움직임을 가장 예리하게 보고 가장 잘 기억하며 그것을 그다음에 다가올 것을 가장 잘 예견할 수 있는 사람에게 칭찬ἔπαινος과 명예τιμή의 선물γέρας 등이 주어진다.(516c-d)
p) 그러나 그는 그런 명예와 칭찬, 존경과 권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느니 그는 호메로스 말대로 ‘제 땅도 없는 다른 사람 밑에서 머슴으로 밭일을 하는’ 처지가 되거나 또 다른 어떤 일을 겪더라도πεπονθέναι 차라리 그걸 받아들일 것이다.(516d-e)
q) 그리하여 그는 동료 수감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다시 동굴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다시 동굴로 내려가 예전의 그 자리에 다시 앉는 경우 그는 태양으로부터 갑자기ἐξαίφνης 왔기 때문에 눈ὀφθαλμός이 어둠σκότος으로 가득 차게 되어 눈이 익숙συνήθεια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516e)
r) 만약 그의 눈이 적응되기 전에 계속 수감 돼 있던 자들과 그 그림자들을 분간하는γνωματεύοντα 시합을 벌인다면διαμιλλᾶσθαι 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가 위에 올라가더니 눈을 망쳐가지고 돌아왔으며, 올라가는 일은 시도해볼 가치조차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을 풀어주고λύειν 위로 데려가려는ἀνάγειν 사람은 어떻게든 손으로 붙잡아 죽일 수 있다면 죽일 것이다.ἀποκτεινύναι(51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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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가 동료 수감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동굴 속으로 다시 내려가는 동기가 이곳에서는 그들에 대한 ‘불쌍함’eleein으로 기술되고 있다. 이것은 철학자의 현실 참여의 동기가 일단 그 본성적 자발성에 기초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철학자가 현실 참여를 원하지 않을 경우 벌로 그것을 강제해야 한다(347c)는 제1권의 주장과 일단 어긋나 보인다. 철학자가 동굴 속으로 돌아가는 이유 내지 철학자의 현실 참여, 정치 참여와 관련한 논의는 동굴의 비유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로서 앞서 제시한 동굴의 비유의 추가적인 논의 부분 3)에서(519c-521c) 다시 자세하게 다루어진다.
* 동굴의 비유는 철학자들이 이러한 위험을 이겨내고 수감자들을 동굴 바깥으로 끌어내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동굴 속 상황에 대한 이러한 기술은 철학자의 수감자 구출 과정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것인지 플라톤 또한 이미 절감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갑작스런 빛과 어둠이 주는 혼란과 그것이 갖는 의미 또한 동굴의 비유의 추가적인 논의 부분 1)에서(517a-518b) 재론되므로 그곳에서 자세하게 살피기로 한다.
* 사람에게 인정 욕구는 본능이라 할 정도로 가장 강력한 욕구 중 하나이다. 특히 동굴 속 사람들 즉 세속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칭찬과 명예, 존경과 권세에 대한 욕구는 그 인정 욕구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그들에게는 동굴 속 그림자의 세계가 유일한 세계인 한, 인정 욕구의 대상과 기준 또한 그림자들로부터 주어진다. 그림자들에 대한 경험이 크고 예리할수록 그곳 세계의 일에 밝고 그만큼 더 큰 명예와 칭찬을 누린다. 이들에게 바깥 세계에 대한 진실은 오히려 인정 욕구를 방해하는 거짓으로 여겨질 뿐이다. 플라톤이 동굴 속 사람들로 그리고 있는 대상이 당대 아테네 지식인들과 정치가들 그리고 아테네 대중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아주 예민하여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경험이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러한 경험에서 그들의 영악함을 능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을 이기는 길은 그들보다 많은 경험을 쌓는 것에 있지 않고 그 경험들이 갖는 한계와 무지를 드러내는 데에 있다. 무엇보다도 철학자는 이미 그들이 갖고 있는 경험이 그들의 확신과 달리 거짓임을 이미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방식으로 그들의 무지를 폭로하고 시민들은 물론 플라톤과 같은 젊은이들을 일깨우는데 평생을 보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그에게 주어진 것은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일이었다. 플라톤이 비유의 마지막 문장을 쓰면서 스승 소크라테스를 떠올렸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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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의 비유에 덧붙여진 추가적인 해명>(517a-521b)
1) 철학자가 동굴 바깥에서 종국적으로 맞이하는 것이 좋음의 형상임을 재차 확인한 후 왜 그것이 그를 동굴로 이끄는 근거가 되고 또 왜 그것이 장차 그가 동굴 속에서 겪게 될 난관들을 이겨내고 그 소임을 완수케 하는 힘의 원천이 되는지를 해명한다.(517a-518b)
[517a-518b]
*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이 동굴의 비유를 마친 후에 이제 이 비유εἰκών 전체를 앞에서 이야기된 것들에 적용해야προσαπτέον 한다고 말한다. 즉 ‘시각을 통해 보이는 곳’을’δι᾽ ὄψεως φαινομένην ἕδραν ‘감옥의 거처에’τῇ τοῦ δεσμωτηρίου οἰκήσει 대응시키고ἀφομοιοῦντα, ‘감옥에 있는 불빛을’τὸ δὲ τοῦ πυρὸς ἐν αὐτῇ φῶς ‘태양의 힘에’τῇ τοῦ ἡλίου δυνάμει 대응시켜야 한다. 그리고 ‘위로ἄνω 올라가는 것’ἀνάβασις과 ‘위에 있는 것들을 구경하는 것’θέαν τῶν ἄνω을 영혼이 ‘가지적인 영역’νοητὸν τόπον으로 등정ἄνοδος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τίθημι(517b)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하는 경우 내가 추측(기대)하는 바ἐλπίς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추측하는 것이 다름 아닌 ‘알 수 있는 것의 영역에서 가장 마지막에 겨우 볼 수 있는 것’ἐν τῷ γνωστῷ τελευταία ἡ τοῦ ἀγαθοῦ ἰδέα καὶ μόγις ὁρᾶσθαι으로서 ‘좋음의 형상‘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517b)
* 좋음의 형상을 보고 나면, ‘모든 경우에 그것이 올바르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의 원인’πᾶσι πάντων αὕτη ὀρθῶν τε καὶ καλῶν αἰτία이며, 가시적 영역에서 빛과 빛의 주인κύριος을 낳고τεκοῦσα 가지적 영역에서는 자신이 주인으로서 ‘진리와 지성을’ἀλήθειαν καὶ νοῦν 제공하며, 또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ἢ ἰδίᾳ ἢ δημοσίᾳ. ‘지각 있게 행동할’ἐμφρόνως πράξειν 사람은 그것을 보아야만 한다.ἰδεῖν’(517c)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517b-c)
* 그리고 좋음의 형상에 이른 자들은 인간사τὰ τῶν ἀνθρώπων에 관여하기를 원치 않고 그들의 영혼이 그 위에서 지내기διατρίβειν를 항상 열망한다.ἐπείγονται(517c) 그런데 누군가 신적인 것들을 관조θεωρία하다가 인간적인 나쁜 것들 옆으로 와서 주위의 어둠에 충분히 익숙해지기 전 눈이 아직 침침한ἀμβλυώττων 동안에, 정의의 그림자τοῦ δικαίου σκιά들이나 그 그림자들을 생기게 한 조각상ἄγαλμα들과 관련해 법정δικαστήριον이나 다른 어떤 곳에서 경합을 벌이도록ἀγωνίζεσθαι 강제되는 경우, 즉 정의 자체를 αὐ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본ἰδόντων 적이 없는 자들이 이것들을 어떻게 이해하고ὑπολαμβάνεται 있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도록διαμιλλᾶσθαι 강제되는 경우, 그는 볼품없고 아주 우스워 보인다.(518d,e)
* 그런데 지각νόος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 가지 경우에서 비롯되는 두 가지의 눈의 혼란ἐπιτάραξις이 있다. 그것은 빛φάος에서부터 어둠σκότος으로 옮겨온 경우와 어둠에서부터 빛으로 옮겨온 경우인데 그런 사람은 영혼과 관련해서도 그런 동일한 일들이 발생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영혼이 혼란에 빠져 뭔가를 볼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을 보면, 무턱대고 웃지 않고 그 영혼이 더 밝은φανός 삶βίος으로부터 와서 익숙하지 않아 어두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큰 무지ἀηθεία로부터 더 밝은 곳으로 와서 더 밝은 빛 때문에 눈부셔하는μαρμαρυγῆς 것인지를 살필 것이다.(518a) 그렇게 해서 앞의 경우는 그 영혼의 상태πάθος와 삶을 행복하다고εὐδαιμονίσειεν 여길 것이며, 뒤의 경우는 불쌍하다ἐλεήσειεν고 여길 것이다. 설사 뒤의 경우를 두고 웃으려 한다고 하더라도, 이때의 웃음은 위에 있는 빛으로부터 내려온 경우에 대한 웃음보다는 비웃음καταγέλαστος을 덜 살 만한 웃음일 것이다.(51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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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7b ‘시각을 통해 보이는 곳’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논란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동굴의 비유를 앞서의 비유들에 적용해서 언급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동굴의 비유에 나오는 ‘감옥의 거처’에 대응하는 것은 선분의 비유에서 말하는 ‘가시적 영역’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감옥의 불빛’과 ‘태양의 힘’의 경우 동굴의 비유와 태양의 비유간의 대응이면서 가시계와 가지계의 대조적 대응인데 비해 ‘감옥의 거처’와 ‘가시적 영역’의 경우는 둘 다 가시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상응적 대응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앞의 경우도 대조적 대응으로 해석하여 ‘시각을 통해 보이는 곳’을 ‘태양이 비추는 동굴 바깥 세계’ 즉 가지적 영역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둘 다 동굴의 비유에만 국한된 해석이라는 점에서 동굴의 비유를 다른 비유에 적용해서 언급하겠다는 소크라테스의 전제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각을 통해 보이는 곳’에서 ‘곳’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hedra가 일반적인 ‘곳’의 의미도 있지만 ‘앉는 자리’의 의미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시각을 통해 보이는 곳’을 결박된 채 앉아 있던 ‘감옥의 거처’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둘 다 같은 동굴의 비유이면서 동일 장소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apomoionta 즉 ‘대응이나 비교 또는 닮은’ 것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어떤 해석이건 동굴의 비유와 다른 비유들이 갖는 상호 대응적 연관성을 크게 해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비유를 이해하는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517b ‘알 수 있는 것의 영역에서 가장 마지막에 겨우 볼 수 있는 것’이 ‘좋음의 형상’이다. : 좋음의 형상은 <C4> 단계에서 태양이라는 표현으로만 언급되고 있지만 태양의 비유에서 보듯이 그 태양이 ‘좋음의 형상’을 가리키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508e-509b) 이 점을 고려하면 ‘동굴 바깥에 나온 사람이 태양을 그 자체로 본다.’(516b)는 표현은 이미 <C4> 단계에서도 ‘좋음의 형상’이 언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좋음의 형상을 ‘모든 경우에 그것이 올바르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의 원인’이자 ‘진리와 지성을 제공하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 또한 태양의 비유에서 그것을 ‘앎과 진리의 원인’(508e)이자 ‘지성의 원천’(508d)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과 거의 그대로 일치한다. 그 점에서 보면 좋음의 형상에 관한 이곳의 언급은 추가적인 정보 없이 앞서의 언급을 반복하고 재확인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 이곳에서 ‘좋음의 형상’을 다시 끌어들인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좋음의 형상이 기본적으로 철학자가 동굴로 다시 내려가야 하는 원천적 근거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그것은 그가 동굴로 내려갈 때 직면하는 온갖 역경에 맞서 싸우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의 근원이자 푯대가 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이곳에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지각 있게 행동할 사람은 좋음의 형상을 보아야한다’(517c)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 사실 좋음의 형상에 이른 자들은 인간사에 관여하기를 원치 않고 신적인 것을 관조하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동굴에 다시 내려갈 경우 그 만큼 더 앞이 캄캄해 보여 어둠에 익숙한 자들이 보는 것을 보지도 못할뿐더러 동굴 속 벽면 그림자들에 대한 경험 또한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동굴 바깥 정의 자체를 본적도 없이 오로지 동굴 속 정의의 그림자만을 경험하고 그것만을 정의의 기준으로 여기는 자들과 다툴 경우 그들을 이길 재간이 없고 설사 정의 자체를 그들에게 들려준다고 해도 애초부터 그것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거짓말로 들려 오히려 철학자들이 거짓을 일삼는 자로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웃음거리와 조롱에 분노한 나머지 그림자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쌓아 그들과 경쟁에 뛰어든다한들 평생을 그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럼에도 잠간의 침침한 상태를 이겨내고 그들을 압도할 수 있음은 형상에 대한 앎을 통해 그들의 경험이 단지 허망하기 그지없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임을 이미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속의 앎과 전혀 차원이 다른 지고의 형상적 앎으로서 좋음의 형상을 깨우쳤을 때에 비로소 그 앎의 진실성이 가져다주는 자부심의 크기 만큼 세속적 권세와 탐욕이 판을 치는 세상에 찰나의 눈길조차 주지 않는 무심함과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굳건함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관적 진실에 대한 불퇴전의 확신이 온 영혼을 휘감고 있을 때에만 그림자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일상의 분노를 넘어서 비로소 불쌍함과 연민의 마음이 잦아들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한 의지 또한 샘솟듯 터져 나온다. 실로 좋음의 형상은 지각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유일한 토대인 것이다.
* 518a ‘지각이 있는 사람에게 생기는 두 가지 눈의 혼란’ : 아무리 지각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어둠에서 빛을 혹은 빛에서 어둠을 맞이했을 경우 필연적으로 혼란을 겪게 마련이다. 어둠에서 빛을 맞이할 때의 혼란은 동굴 속 불빛으로 눈길을 돌렸을 때와 그리고 동굴을 빠져 나올 때 생기고 또 빛에서 어둠을 맞이할 때의 혼란은 바깥 세계에 살던 사람이 동굴 속으로 들어갔을 때 생겨난다. 이러한 혼란에 당황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그런데 어둠에서 빛을 맞이할 때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 안쓰럽고 불쌍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빛에서 어둠을 맞이할 때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그렇게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될 사람이 굳이 관조를 좋아하는 자신의 성향까지 거슬러 고난의 여정을 스스로 감수한다는 측면에서 사람들 보기에 앞서의 사람들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일이자 더 많은 비웃음을 살 일이다. 앞서의 사람들은 동굴 바깥으로 나가며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동굴로 내려가는 사람은 그러한 혼란을 이미 겪은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우스꽝스럽게 여기고 비웃어도 이미 진리를 깨달은 상태에서 게다가 누군가를 구제하기 위해 그 혼란을 감수한다는 점에서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은 전혀 철학자들을 동요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그 혼란은 잠간일 뿐 금방 사라질 것임도 이미 알고 있고 무엇보다 자신을 이끌고 동시에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원천이 좋음의 형상임을 너무나도 익히 잘 알고 있다. 동굴 바깥에서 태양을 본 사람은 자신의 변화 때문에 ‘행복하고’eudaimonizein 동굴에 있거나 아직 바깥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불쌍하다’eleeinν는 표현은(516c) 그들의 영혼의 상태와 삶과 관련하여 다시 반복해서 언급된다.(518b) 다만 진실을 모르는 자들에게 그것은 여전히 반대로 여겨져 동굴을 빠져 나오려 하는 사람이나 바깥에 이른 사람들 모두가 불쌍하게 보인다. 그리고 지각 있는 사람들조차도 동굴로 내려가는 이유를 채 모를 경우 다시 동굴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다. 지각 있는 사람이건 아니건 사람들에게 철학자들은 이렇게 늘 고립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좋음의 형상에서 나오는 자부심 즉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늘 행복하다.
* 517d ‘정의의 그림자들이나 그 그림자들을 생기게 한 조각상’ : 정의의 그림자들을 생기게 하는 조각상들(agalmata)이 정의의 위상과 관련하여 어떤 지위를 갖고 있는지가 논란거리이다. 다만 이것들은 결박된 사람들이 눈과 몸을 돌린 후 그리고 바깥에 나가기 전에 즉 정의 자체에 대한 앎을 향한 중간 단계에서 보게 되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정의 자체의 모상으로서 ’법률‘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피스트> 234c, <정치가> 303c 참고(J. Adam. 해당 부분 노트 참고)
* 517e ‘논쟁을 벌이도록 강제되는 경우’ : 이 부분 역시 소크라테스가 법률의 해석을 둘러싸고 재판관들과 논쟁을 벌이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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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고 좋음의 형상이 갖는 그러한 중대성 그 만큼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얼마나 중대한지 그리고 그것에 상응할 만큼의 태도의 전환을 위해 어떠한 교육적 방책이 필요한지를 논구한다(518c-519c)
[518c-519c]
* 이것이 진실이라면 교육παιδεία이란 어떤 이들이 공언하는 것처럼 ‘앎ἐπιστήμη이 없는 경우에 마치 보지 못하는 눈에 시각ὄψις을 넣어주듯이 자신들이 앎을 넣어주는 것ἐντιθέντες’이 아니라 ‘몸 전체를 함께 돌리지’σὺν ὅλῳ τῷ σώματι στρέφειν 않고서는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 쪽으로 눈을 돌릴 수 없듯이, 각자의 영혼 안에 있는 앎을 위한 능력δύναμις과 각자가 앎을 얻는 데 사용하는 기관ὄργανον 역시 ‘영혼 전체와 함께’σὺν ὅλῃ τῇ ψυχῇ 전환περιακτέον시키는 것이다. 즉 ‘있는 것’τὸ ὂν과 ‘있는 것에서 가장 밝은 것’τοῦ ὄντος τὸ φανότατον을 구경하고서도θεωμένη 견딜 수 있게 될 때까지(518c) 그 능력과 기관을 영혼 전체와 함께 생성되는 것으로부터ἐκ τοῦ γιγνομένου 전환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가장 밝은 것은 ‘좋음’이다.(518b-d)
* 이것은 전환περιαγωγή을 위한 기술τέχνη 즉 ‘어떤 방식τρόπος으로 하면 가장 쉽고 가장 효율적ἀνύσιμος으로 그 기관의 방향을 바꾸는 방식과 연관된 기술’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 기술은 그 기관에 시각을 넣어주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관에게 바라보아야βλέποντι 할 쪽을 바라보도록 만들어주는 기술이다.(518d)
* 그런데 영혼의 덕ἀρετή 중 다른 것들은 신체의 탁월함ἀρετή처럼 습관ἔθος과 훈련ἄσκησις을 통해 형성되지만 똑똑함το φρονῆσαι의 덕은 ‘더 신적인’θειοτέρου 것에 속하는 것으로 그 힘을 결코 잃는 법이 없고, 전환이 이루어지는 방향에 따라 쓸모 있고χρήσιμος 이롭게ὠφέλιμος 되기도 하고 또한 쓸모없고 해롭게βλαβερός 되기도 한다.(518e) 못됐지만πονηρός 지혜롭다σοφός고 하는 사람들의 허접한 영혼조차 자신이 향해 있는 쪽의 것들을 예리하게ὀξέως 분간하는데διορᾷ 매우 뛰어나다. 그들의 영혼이 악덕κακία에 봉사하도록 강제될 경우 더 예리하게 보며 그럴수록 그만큼 더 많은 나쁜 것들을 만들어낸다.(519a)
* 하지만 그들에게서 그러한 본성을 가진 이 부분을 아주 어려서부터 다듬어 생성γένεσις과 동족인συγγενής 것들을 쳐냈더라면, 그러니까 음식물이나 그러한 것들에 대한 즐거움ἡδονή과 식탐λιχνεία에 꽉 들러붙어서 납추처럼 영혼의 시선ὄψις을 아래로 돌려버리는 것들로부터 이 부분을 해방시켜 참된 것들τὰ ἀληθῆ을 향해 방향을 돌리게 했더라면, 동일한 사람들의 동일한 이 부분이 저 참된 것들을 또 가장 예리하게 보았을 것이다.(519b)
* 그렇게 보면 교육받지 못하고 진리를 경험하지 못한ἄπειρος 자들도, 또 죽을 때까지 교육 속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허용된 자들도, 나라를 다스리기에 충분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그럴 법하고 필연적이다. 앞사람들은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그들이 행할 모든 일을 할 때 반드시 가늠해보아야 할 하나의 표적을 삶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뒷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있을 때 이미 복 받은 자들의 섬들μακάρων νήσος로 이주했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을 자발적으로 행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519c)
* 그렇다면 나라수립자οἰκιστής로서 우리가 할 일은 앞에서 가장 큰 배울 거리라고 이야기한 것에 도달하도록 ‘가장 훌륭한 자연적 성향들을’ τάς τε βελτίστας φύσεις 강제하는 것, 즉 저 오르막길을 오르고 ‘좋음을 보도록’ἰδεῖν τὸ ἀγαθὸν 강제하는ἀναγκάσαι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올라가서 충분히 보고 나면 지금 그들에게 허용되어 있는 그런 것은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즉 “거기에 머물며, 저 수감자들 곁으로 다시 내려가기καταβαίνειν를 원하지도 않고 변변치 않은 것이든 대단한 것이든 그들과 수고πόνος와 명예τιμή를 ‘나누어 가지려 하지 않는 것’μηδὲ μετέχειν은 허용되어선 안 된다.(519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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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b ‘각자의 영혼 안에 있는 앎을 위한 능력과 각자가 앎을 얻는 데 사용하는 기관’ : 이 기관은 몸에 눈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에 상응하여 영혼에 자리하고 있는 ‘지성’nous을 가리킨다.
* 518d ‘어떤 방식trpos으로 하면 가장 쉽고 가장 효율적anysimos으로 그 기관의 방향을 바꾸는 방식과 연관된 기술’ : 좋음의 형상에 대한 앎에 이르는 것은 참으로 어렵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것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어려운 그 만큼 학생들이 그것을 최대한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효율적인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최고의 교육 방식은 어려운 것을 쉽게 가르치는 일이다.
* 좋음의 형상은 지고의 참된 존재로서 앎과 지성의 근거이자 철학자를 동굴로 이끌고 또 그곳에서 온전히 소임을 완수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다. 좋음의 형상에 대한 앎이 철학자로 하여금 세속적 삶에 대한 환멸을 넘어서 비로소 불쌍함과 연민의 마음을 갖게 하고 오로지 그것만이 그들을 구출하기 위한 실행을 담보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음의 형상에 이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몸 전체를 함께 돌리지’ 않고서는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 쪽으로 눈을 돌릴 수 없듯이, 각자의 영혼 안에 있는 앎을 위한 능력과 각자가 앎을 얻는 데 사용하는 기관, 즉 지성을 ‘영혼 전체와 함께’ 전환periagōgē시키는 것이다. 온갖 쾌락과 생성하는 것들에 꽉 들러붙어서 납추처럼 영혼의 시선을 아래로 돌려버리는 것들로부터 지성을 해방시켜 오로지 참된 것들을 향하도록 방향을 반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것은 ‘앎을 넣어주는’ 기존의 교육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어떻게든 형상에 대한 앎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방책은 ‘가장 쉽고 가장 효율적으로 그 기관의 방향을 바꾸는 방식과 연관된 기술technē’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술이 무엇인가는 여기서 구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좋음의 형상에 이르기 위한 구체적인 교과들이 다음 주제로 다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전환을 위한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책이자 기술이란 다름 아닌 그 교과들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것이다. 실제로 영혼 전체의 전환을 위한 그러한 기술들은 장차 살피게 되겠지만 수학과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을 거쳐 종국적으로 변증술로 완성된다. 요컨대 철학 교육의 요체는 영혼의 전환에 있는 것이다.(521c) 이 점에서 이 부분은 다음 주제에 대한 예고와 더불어 그 중요성과 관련한 서론의 성격을 갖고 있다.
* 518b ‘어떤 이들이 공언하는 것처럼’, 518c ‘앎을 넣어주는 것’: 여기서 어떤 이들이란 소피스트들과 이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프로타고라스> 319a, <고르기아스> 447c 참고) 플라톤이 여기서 공격하는 교육에 대한 지극히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견해는 좁게는 유모들의 교육방식 즉 ‘암기 위주의 주입식’을 포함하여 넓게는 일방향적 연설 기술에 매달리는 당대 소피스트들과 이소크라테스의 교육 방식을 암시한다.(345b 참고). <향연> 175d에서도 이러한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교육 방식을 비판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그곳에서 아가톤은 ‘소크라테스와 접촉함으로 해서 지혜를 누릴 수 있다.’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그것은 마치 ‘잔속의 물이 털실을 타고 더 가득한 잔에서부터 더 빈 잔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J. Adam. 해당 노트 참고) 소피스트들 역시 ‘앎을 영혼에 넣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플라톤에 따르면 앎의 힘 또는 능력으로서 지성nous은 우리 안에 있는 모종의 신적인 것으로서 이미 영혼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른바 상기설과 산파술은 그러한 바탕위에 서 있다.(<메논> 81a, <파이돈> 72e-76d). 플라톤은 교육이 눈먼 눈에 시각을 넣는 것이라는 소피스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영혼 안에는 몸에 이미 눈이 있듯이 지성을 갖추고 있고 그것을 토대로 스스로 앎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성은 영혼 속에 존재하지만 생성되는 것에서 비롯되는 힘에 가려지고 약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 늘 직면해 있다. 이를테면 ‘똑똑함’to phronēsai의 덕이 그러하듯이 인간의 모든 덕들이 영혼 속 그 지성을 굳건하게 하는데 하나같이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교육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오히려 지성을 약화시키고 방해하는 힘이 된다.
* 518e ‘똑똑함’to phronēsai의 덕 : 이 말은 ‘지혜 또는 현명함’phronēsis와 어원을 공유하고 있다. 플라톤은 phronēsis를 4권 428b, 433b 이후 6권, 7권에서 ‘지성적 현명함’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최소한 이곳에서만은 이 말을 to phronēsai(phroneō 동사의 아오리스트 부정형에 관사를 붙인 것)로 바꿔 표현하는 방식으로 phronēsis, sophia와 다소 의미가 다른, 즉 ‘현실적인 영리함’ 내지 ‘영악함’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 지성을 생성되는 것으로부터 지켜 내고 흐트러진 방향을 전환하기 위한 영혼의 덕들 가운데 대부분은 신체의 덕처럼 습관과 훈련을 통해 형성되지만 앞서 말한 ‘똑똑함’의 덕은 아무나 갖추고 있지 않고 또 훈련을 통해 가질 수도 없는 이른바 타고난 자질로서 갖고 있는 선천적인 덕이다. 그것은 뛰어난 영악함으로 자신을 향해 있는 것들을 예리하게 분간할 줄 하는 능력이자 결코 그 힘을 잃는 법도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본성적 탁월함은 태어나면서부터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아 그들의 영혼이 악덕에 봉사하도록 강제될 경우 그 만큼 더 많은 나쁜 것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이 똑똑함의 덕을 갖춘 자들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영혼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지 않고 참된 것들 향하도록 보다 각별한 수준의 교육이 필요하다.
* 소크라테스가 여기서 똑똑함을 거론하면서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이 다름 아닌 알키비아데스(Alkibiades) 같은 자들일 것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알키비아데스만큼 본성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드물지만 또 알키비아데스만큼 그 명민함과 똑똑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귀영화는 물론 온갖 악덕을 저지른 경우도 드물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에도 수많은 알키비아데스들이 그것도 제도 교육을 통해 공공연하게 선망의 대상으로 길러진다.
* 518d 신체의 덕 : 영혼의 덕에 관한 이곳의 언급이 신체의 덕들을 폄하하려는 의도에서 제시된 것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은 다만 영혼의 덕 가운데 똑똑함의 덕이 갖는 이중적 성격을 드러내 그것에 대한 각별한 교육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선천적이고 본성적인 성향일지라도 후천적으로 주어지는 교육이 어떠한 가에 따라 그 성향이 초래하는 결과가 얼마나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떤 자연적 성향이든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의 좋음은커녕 악덕이 발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설사 영혼의 좋은 자연적 성향일지라도 그것의 탁월함 특히 윤리적 덕과 관련한 탁월함은 종국적으로는 형상적 앎을 통해 완성되지만 기본적으로는 끊임없는 교육과 훈련을 통한 습관 형성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1103a 14-17 비교 참고) 그러므로 특히 장차 나라를 다스려갈 사람들을 길러 내기 위해서는 앞에서 가장 큰 배울 거리라고 이야기한 것, 즉 좋음의 형상에 도달하도록 ‘가장 훌륭한 자연적 성향들을’ 방치하지 말고 강제하는 것, 즉 저 오르막길을 오르고 ‘좋음을 보도록’ 끊임없이 교육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 신적 요소라는 말 자체가 불멸성과 보편성을 함축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지성을 정점으로 하는 플라톤의 교육론은 이미 어느 한 시대가 아니라 영원을 지향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생에서 뿐만 아니라 다시 태어나서 그것을 접할 때조차도 그들의 삶에 도움을 줄 정도의 것이어야 하고(498d)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것은 ‘누가 자신으로 하여금 유익한 삶과 무익한 삶을 구별하며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것들 중에서 최선의 것을 선택할 수 있고 또한 그럴 줄 알도록 해 줄 것인지를 어떻게든 배우고 찾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학문’이어야 한다.(618c) 미켈란젤로는 모든 대리석 덩어리에 상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조각가는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장애가 되는 것들을 하나하나 잘라낸다. 플라톤 또한 같은 방식으로 앎의 능력으로서 영혼 본래의 훌륭함과 순수함이 온전하게 드러날 때까지 영혼을 부자연스럽게 가리고 있는 것들을 잘라내고 거둬내는 것이 교육의 본령이자 선생이 해야 할 일로 여겼다. 사실 플라톤이 우리에게 물려준 것 중 그의 교육이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아마도 고대든 현대든 모든 교육 문헌에서 <국가>의 이 부분만큼 교육의 목적과 범위에 대한 광범위하고 심오한 견해를 취하거나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불굴의 용기와 꺼지지 않는 희망을 불어넣기에 잘 어울리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J. Adam 해당 부분 노트, 부록 II 참조) -끝-
다음 강해 : C. 철인 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 동굴의 비유(514a-521b) (IV) – 마지막
3) 철학에 대한 그 자신의 내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왜 온갖 난관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시 동굴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또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논의(519c-521c)
[신간안내]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이종철 지음|대양미디어|(2025년 4월 8일) [한철연 소식]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이종철 지음)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코너에 올해 1월 2일부터 3월 20일까지 총 23회 연재한 이종철 회원의 연재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현재 웹진에서는 단행본 출간으로 연재는 멈춘 상태입니다. 격동의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쓴 자전적 소설로 이번에 출간된 1부는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학원과 교육계에 투신했던 한 철학자의 삶의 일부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현재 집필 중인 2부는 1990년대 후반부부터 2020년대 전반부를 다룹니다. 특히 한국헤겔학회,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태동과 관련한 경험적 정보들이 실려 있어 한철연 회원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아래는 책 소개 기사입니다.
☞ 김동연 경기도지사, 이종철 박사 자전소설 구입 ‘인증사진 올려’ 화제
● 책소개
“철학자가 소설을 썼다! 생소한 일은 아니지만 한국처럼 영역과 경계를 많이 따지는 곳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 이 종철은 서양 근대 철학, 특히 근대 독일철학을 전공한 철학자로 오랫동안 활동을 해왔다. 지난 몇 년 전부터 그는 에세이철학에 심취해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다양한 형태의 글을 써왔다. 이 소설은 이런 실험적 글쓰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전공과 장르를 불문한 글쓰기가 드디어 소설 쓰기까지 발전한 셈이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흔하지 않다. 사르트르의 경우는 철학자로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는 소설도 꽤 썼다. 덕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철학자의 신념을 지키고자 그 상을 거부했다. 10여 년 전 영화로도 나온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인 파스칼 메르시어의 본명은 피터 비에리(Peter Bieri)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부 출신으로 독일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한 철학교수이다.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은 총 2부작이다. 1부작은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에 걸쳐 있고, 2부작은 2010년대에서 2020년대 중반에 걸친 격동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개인의 자전적 경험을 쓴 소설이다. 이번에 나온 책은 2부작 중 그 1부이다. 잘 알려져 있듯 이 시기에 한국인들은 유신 독재와 광주 항쟁, 민주화 투쟁과 1987년의 민주주의의 쟁취 등으로 점철된 고통스럽고 의미 있는 역사적 경험을 겪었다. 동시에 이 시기는 사회과학의 전성기이자 온갖 이론과 사상이 난무하던 지적 르네상스의 시기이기도 했다. 물론 특정한 세계관과 사상이 지배적 이기는 했지만, 이 시대는 그것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상으로 한국 사회의 변혁운동과 맞물려 상호 피드백 하면서 백가쟁명을 이루기도 했다. 저자는 이 시기를 프랑스의 6.8 혁명 못지않은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6.8 혁명을 겪으면서 자신들의 이론과 사상을 정립해서 세계인들에게 내 보였던 반면, 한국인들은 그런 귀중한 역사적 체험을 그저 그런 과거의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 저자는 우리가 겪은 이 시대의 체험을 철학적으로 반성하고 의미화하고 싶은 욕구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표현했다.
저자는 이 소설의 형식을 통해 본업인 철학에 대해 반성하는 경험을 많이 했다. 철학자가 소설가들에게 배워야 것이 하나 있다. 철학자들은 허구한 날 남의 철학이나 사상을 끌어들여 해석하고 해설하는 일로 평생을 보내는 데 비해, 소설가들은 비록 3류라 해도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한다. 철학자들이 개념화된 사유를 하기 때문에 주관적 언어를 쓰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한국의 철학자들은 그 정도가 심해서 남의 언어와 남의 철학을 가져오지 못하면 사유를 하지 못할 정도다. 그들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는 자신들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구성하기보다는 여전히 바깥의 수입 철학에 의존하고 2천 년도 넘은 공맹과 노장사상을 주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있다. 이런 지적 식민성과 사대주의가 한국의 지성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겪은 위대한 경험을 과거로 묻어 버린 채 그저 바깥에서 들어온 새로운 이론과 사상 혹은 오래된 사상에 목을 매달고 있을 뿐이다.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은 그저 과거를 기록한 한 권의 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 인문학이 처한 ‘문송의 시대’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문학은 끊임없이 주어지는 위기의 잿더미 속에서 부활하는 피닉스와 같다. 인문학의 현실이 당장은 꺼져갈 듯 어려워 보이지만, 인문학은 새로운 환경의 변화를 숙지하면서 부활의 날갯짓을 할 것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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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종철 프로필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교원대, 숙명여대, 서울여대 등에서 강의했고, 몽골 후레 정보통신대학 한국어과 교수와 한국학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한남대 초빙교수를 마지막으로 대학에서 은퇴를 했고,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전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브레이크뉴스>와 <저널인뉴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에세이철학’ 분야를 새로 개척하고 있고, NGO 환경단체인 <푸른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철학과 비판 – 에세이철학의 부활을 위하여》와 《일상이 철학이다》가 있고, 공저로 《철학자의 서재》, 《삐뚤빼뚤 철학하기》, 《우리와 헤겔철학》, 《문명의 위기를 넘어》, 《사북항쟁 44주년》등이 있으며, J. 이폴리뜨의 《헤겔의 정신현상학》(1/공역, 2), A. 아인슈타인의 《나의 노년의 기록들》, S. 홀게이트의 《정신현상학 입문》, G. 루카치의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Ⅰ,Ⅱ》(2, 3, 4/공역), 《무엇이 법을 만드는가》(공역) 등 다수의 책들을 옮겼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31-무한 판단에 대해[흐린 창가에서- 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31-무한 판단에 대해
1)
존재론 2장 현존 2절 C 항의 제목은 ‘무한성’이다. 실제로 헤겔의 진정한 무한 개념 즉 ‘대자 존재’는 2장 3절에서 다루어지니, 그 앞의 2절 C 항은 사실 진정한 무한 개념에 이르는 과정에서 등장한 무한 개념을 다룬다. 여기서 다루어지는 것은 ‘악 무한’과 ‘무한 진행’이라는 개념이다.
무한성 개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양적 범주에 속하는 무한성 개념이며, 다른 하나는 질적 범주에 속하는 무한성 개념이다. 전자는 구체적 예를 들자면, ‘무한대’ ‘무한소’와 같은 개념을 다루며, 후자는 ‘규정할 수 없는 것’ 등을 말한다.¹
주1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수학적 무한성과 역학적 무한성을 구별했는데, 그 가운데 역학적 무한은 우리가 저항할 수 없도록 엄청난 위력을 지닌 자연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솟아오른 절벽이나 엄청난 화산의 폭발과 같은 것이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것도 양적인 무한성에 속한다. 칸트에서는 질적 무한성은 선험적 분석론에서 제시한 것과 같이 감각의 정도에서 제한적인 것을 말한다.
칸트는 양적 무한성 개념 다음에 질적 무한성을 다루었으나,² 헤겔은 질적 무한성 개념을 양적 무한성 개념보다 먼저 다루었다는 차이가 있다. 헤겔 논리학 존재론 2장은 질적 범주를 다루므로, 여기서 무한성 개념은 질적 무한성 개념이라 하겠다. ‘악 무한’이니, ‘무한 진행’ 또는 ‘진 무한’ 등의 개념은 모두 질적 무한성 개념과 관련된다.
주2 칸트에서 12 범주, 판단 형식은 먼저 양 범주가 나오고 다음에 질 범주가 나온다. 그러나 헤겔에서 12 판단 형식은 먼저 질 범주가 나오고 양 범주가 나온다. 칸트와 달리 헤겔에서 각 범주는 내적으로 다른 범주로 이행하므로 이런 이행 연관에서 볼 때 양 범주는 질 범주 끝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2)
헤겔 논리학의 전개 과정이 칸트의 12개 판단 형식 또는 12 범주를 바탕에 깔고 있다고 했는데, 그것에 비추어본다면, 여기서 무한성 개념을 통해 다루어지는 것은 소위 질적 범주의 무한 판단 형식이다. 이제 헤겔의 무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이 무한 판단 형식을 사유의 실마리로 삼아서 시작해 보자.
알다시피 형식논리학에서는 무한 판단 형식이란 독자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무한 판단은 부정의 부정이니, 긍정 판단과 같다. 형식논리학의 가장 기본적 법칙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중 부정의 법칙 즉 ‘-(-p)=p’이다. 형식논리학에서 무한 판단 형식을 굳이 따로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칸트는 선험 논리학의 차원에서 무한 판단 형식에 고유한 의미가 있다고 보면서 이를 독자적 판단 형식으로 격상했다. 칸트는 질적 범주는 그 의미가 시간의 내용과 관련된다고 보면서, 질적 무한성의 판단 형식 또는 무한성 범주는 ‘제한성’을 의미한다고 본다. 참고로 질적 범주에서 긍정 판단 형식은 실재성을, 부정 판단 형식은 부정성을 의미한다.
칸트가 무한 판단 형식을 독자적인 것으로 승인했을 때, 여기에는 무한 판단 형식에 관한 칸트 나름의 고유한 생각이 들어 있다. 보통 무한 판단 형식은 긍정적 무한 판단 형식과 부정적 무한 판단 형식으로 구분된다. 부정적 무한 판단은 계사는 부정이고 여기서 그 유에 속하는 모든 술어가 부정된다. 예를 들자면 “이것은 빨갛지 않고, 파랗지도 않으며, 노랗지도 않다 등”이다. 긍정적 무한 판단은 계사가 긍정이며, 여기서 술어는 그 유에 속하는 모든 술어 전체를 부정하는 술어다. 구체적 예를 들자면 “이것은 불멸적 존재다”와 같다.³
주3 부정적 무한 판단은 다음과 같이 변형할 수 있다. ‘이것은 P가 아니며, -P인 것도 아니다.’ 예를 들자면 “이것은 빨갛지 않고 빨갛지 않은 것도 아니다”와 같은 판단이다. 이 식은 긍정 판단과 부정 판단이라는 모순적인 것이 결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식은 부정적 무한 판단과 긍정적 무한 판단의 중간적 형태다. 사실 긍정적 무한 판단과 부정적 무한 판단 그리고 모순 판단은 차이가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만 다르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의 판단 형식으로 집어넣은 것은 긍정적 무한 판단의 형식이다. 그런데 긍정적 무한 판단에 관한 위의 예에서 술어 ‘불멸적 존재’란 ‘어떤 가사적 존재도 아닌 것’인데, 형식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런 ‘불멸적 존재’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지시하는지를 알 수 없다. 그것에 도달하려면 모든 가사적 존재를 부정해야 하므로 그런 불멸적 존재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불멸적 존재가 어떤 구체적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한자를 지시하는 술어가 되는데, 무한자는 경험적으로 주어지지 않으므로 시간적 내용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칸트가 무한 판단 형식을 12 범주에 집어넣은 것은 무한자에 대한 어떤 경험적 단서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서 칸트는 그 무한적 술어가 적용되는 경험적 단서 즉 시간적 내용을 ‘제한성’이라고 했는데, 긍정 판단 형식의 의미인 ‘실재성’도 아니고 부정 판단 형식의 의미인 ‘부정성’도 아닌 제한성이란 대체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칸트는 선험적 분석론에서 지성 개념의 도식성을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각은 각기 도나 양을 자기며 이것에 의해서 감각은 동일한 시간을 즉 한 대상의 동일한 표상에 관한 내감을, 감각이 없음-영 또는 부정-에 이르러 끝날 때까지 다소간에 메꿀 수 있다.”(칸트, 순수이성 비판, 최재희 역, 박영사, 1972, 170쪽)
이어서 칸트는 지성 개념의 원칙을 다루는 가운데 ‘지각의 예료’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험적 직관에서 감각에 대응하는 것이 실재성이요, 실재성의 결여에 대응하는 것이 부정성 즉 영이다. 모든 감각은 줄어들 수 있고 따라서 감각을 없애서 점차로 소멸할 수 있다. 그래서 현상에서는 실재성과 부정성 사이에 많은 가능적인 중간적 감각들의 연속적 연관이 있다.”(칸트, 순수이성 비판, 최재희 역, 박영사, 1972, 185쪽)
여기서 말하는 ‘중간적 감각들’이 말하자면 감각의 내포량에서 제한적인 것과 관련된다. 무한 판단 형식은 이런 시간적으로 주어지는 중간적 감각 내용에 상응하는 판단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 무한 판단 형식에 관한 칸트의 설명은 감각의 정도 즉 내포량과 관련되는데, 내포량의 제한성이 왜 무한성의 범주와 관련되는지에 대한 분명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짐작하건대 제한성은 긍정성과 부정성의 가운데 있으며, 그런 한 긍정과 부정의 결합이다. 앞에서 주3에서 설명했듯이 무한 판단은 긍정적 무한 판단이든 부정적 무한 판단이든 모순 판단으로 환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칸트가 제한성을 무한 판단의 의미로 본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제한성은 내포량의 측면을 말한다. 그런데 질적 판단 범주에서 내포량을 끌어들이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나중에 보듯 헤겔은 외연량과 내포량이라는 개념을 양적 범주와 관련해서 다룬다.
4)
헤겔 역시 논리학에서 무한 판단 형식을 끌어들여 독자적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 이유는 앞에서 칸트가 그러했듯이 무한 판단 형식이 독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헤겔 역시 무한성 개념을 ‘제한성’에서 끌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헤겔은 제한성을 감각의 정도 즉 내포량의 정도로 파악하지 않는다. 제한성 개념은 앞에서 설명했는데, 기억을 위해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이미 앞에서 유한성의 범주를 다룰 때, 규정성[Bestimmtheit]과 규정[Bestimmung]을 구분하였다. 규정성이 감각적 성질과 상응하는 것이었다면, 규정은 일반적인 속성과 상응하는 것이었다. 인식적 경험이 일반적 속성을 발견하기에 이름에 따라서 논리적 범주도 규정성에서 규정으로 발전했다.
어떤 것은 일반적 규정을 지니지만, 동시에 외적이 여러 규정성을 지닌다. 이 규정성은 어떤 것에 대해 무차별한 외적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소금에서 짠맛이 규정이라면, 흰색은 무차별한 규정성이며, 이런 규정성은 외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소금은 흰색이기도 하며, 보라색이기도 한데, 여하튼 짠맛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것에서 우리의 경험이 더 발전하면 어떤 것에서 여러 속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다양한 속성들은 한편으로 독립적인 성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사물의 속성인 한에서 동일한 어떤 사물에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즉 시공간적으로 공존한다는 말이 아니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동시에 있어야 한다. 이를 비유적으로 교차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5)
어떤 사물에 대해 이렇게 교차하는 속성들이 발견될 때 이런 인식적 경험을 기초로 해서 어떤 속성은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어떤 속성은 다른 속성이 있으므로 해서 더는 어떤 사물의 고유한 규정 즉 그 자체 존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규정 즉 속성이 다른 규정에 대립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하는데, 이 규정이 부정된다는 점에서는 제한성이다. 그 자신에서 자기를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당위다. 그 사물의 당위는 제한을 넘어선다. 예를 들어 소금의 속성인 짠맛은 소금의 다른 속성인 입방체와 대립한다. 그런 점에서 짠맛은 제한성을 지닌다. 그런데 이런 제한성을 스스로 넘어선다는 점에서 짠맛은 동시에 당위다.
여기서 보듯 헤겔은 제한성을 칸트에게서처럼 감각의 정도와 관련시키지 않고 어떤 속성이 지닌 제한성과 관련시킨다. 즉 어떤 속성이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한다는 측면 때문에 그것은 제한적인 것이다.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하면, 외적인 부정에서처럼 그것 외 다른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소금의 ‘짠맛’을 그 자체에서 부정하면, ‘수3’이 되거나 ‘코끼리’가 되거나 ‘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짠맛’과 다른 속성 즉 ‘입방체’가 된다. 즉 그 부정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 일어나는 부정이며, 그러므로 그 부정은 ‘특정한 부정[bestimmte Negation]’이다.
이러한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부정된다는 것과 구분된다. 소금이 ‘흰색’이었다고 ‘보라색’으로 바뀌면, 즉 규정성이 변화하면(양상 변화) 이는 외적인 양태에서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는 소금의 ‘흰색’이 그 자체에서 일어나는 부정은 아니며, 외적인 방식으로 일어나게 된 부정이다.
6)
어떤 속성 즉 규정이 제한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당위와의 관계는 앞에서 설명했다. 어떤 것이 제한적이므로 그 자체에서 부정이 일어나면서 부정 판단 형식이 출현한다. 그런데 이런 하나의 속성은 다른 많은 속성과 교차하고 있으므로 이런 자기 부정성은 끝없이 계속될 수 있다. 헤겔은 이런 계속되는 부정성을 통해 무한 판단 형식이 출현한다고 본다.
칸트에서 무한 판단 형식이 긍정적 무한 판단이었다면 헤겔에서 무한 판단 형식은 일단 부정적 형식을 취한다. 구체적 예를 들면 “소금은 짠맛도 아니고, 입방체도 아니며, 또 …도 아니다 등.
“그러나 무한한 것은 단적으로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무한한 것은 유한한 것의 부정으로서 규정되며, 따라서 무한한 것 속에서는 명백하게 제한성과의 관계는 제거되고 그런 제한성은 무한한 것에서는 부정되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124쪽)
그러나 이런 무한 판단 형식은 사실 부정 판단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반복되는 것일 뿐 제한성의 수준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헤겔은 이런 무한성을 악무한이라고 하며, 이런 악무한의 단계를 다시 벗어나게 될 때 진정한 무한 개념이 출현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제한성의 부정을 통해서 무한한 것은 사실상 이미 제한성과 유한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요한 것은 무한성의 진정한 개념은 악무한으로부터 구별되며, 이성의 무한한 것은 지성의 무한한 것과 구별하는 것이다. 후자는 유한화된 무한한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124쪽)
리좀은 흐른다 [천 하룻밤 이야기]
리좀은 흐른다.
2025 03 20 춘분(春分): 책력의 기준이 춘분이라 한다. 동지가 기준일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명은 공간의 표면 상에서 흐름과 시간의 심층 에서 흐름이 있고, 이로써 생명의 흐름을 이해할 수 없고, 볼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어서 온갖 말과 문장으로, 그리고 학술적 체계로 서술해 보려고 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하나는 자연의 흐름을 탐구해야 한다는 그리스의 자연주의자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의식의 인연연기를 깨달으려 했던 불교가 있다. 이 둘은 소위 말하는 불가지 또는 화두로서 다루었다. 이에 비해 유가에서는 제도 속의 삶에서 안빈낙도 할 수 있는 평천하를 생각하였고, 이들과 달리 로마의 압제 속에서 인민의 비천한(miserable) 삶을 공동체의 삶에서 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 인도주의)의 평화를 찾으려 했던 예수 공동체도 있었다.
어느 사회에서나 인민의 삶에는 신 또는 신들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서로 서로 암묵적 합의와 계약을 통하여 인민의 삶 속에서 일반화된 덕목 또는 도덕이 있었다. 왜 상층은 인민의 덕목 위에다 신의 완전성, 황제의 절대성을 놓으려 했던가? 싯달다가 보기에는 그들에게는 그들의 탐욕이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는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민중의 무지에 분노하는 오만함이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서 이를 일깨운 이들은 철학자들이 아니라 비극시인들과 희극작가들이었다.
유가에서든 도가에서든 평천하에서 사적 이익을 탐내는 자들과 이 재산으로 백성을 부리는 자들이 평천하보다 개인의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소인배 같은 사고라 하였고, 이를 정화하고자 인의(仁義)든 무위자연(無爲自然)이든 인간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서로 다를 지라도 공동화할 수 있는 공화(共和)를 내세웠다. 현자들은 논리적 사고가 허구이자 이름뿐이라 하였고, 최상위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아도 사람 사는 세상은 물 흐르듯이 흐른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탐만치에 빠진 자들이 끊임없이 민중, 백성, 인민을 노예처럼 대하면서 맑스 표현대로 잉여생산을 사유화하였고, 요즘 표현으로 임자 없는 돈(백성의 생산)을 먼저 먹는 놈이 주인이라고 하면서 탐욕과 오만의 극치를 이룬다. 이 탐욕을 욕망이라 부르는 지자들이 권력에 포획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중생을 권력과 권세에게 받치고, 지자는 자신들의 권위를 누리려는 시대를 만들고자 하였다.
권세, 권력, 권위에 젖은 자들이 계엄령이든 개몽령이든 자신들의 부귀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하여 눈 내리는 가운데 눈보숭이처럼 밤을 새워 지낸 젊은이들이 다른 행동으로 실천한다. 이런 삶의 노력을 들뢰즈가 리좀의 흐름이라 했다. 생명의 흐름이, 즉 리좀의 연결망은 공간에서 그리고 시간에서 흐른다. 입말의 흐름인, 누리소통도 흐른다.
*
고대 서양 철학사에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있을 것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 이오니아학파 이래로 퀴니코스-스토아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이런 종류들이 네 가지라 한다. 시간, 공간, 이데아(관념), 아톰(원자). 앞의 두 가지는 서양학문에서 두고두고 토대로서 다룸으로서 과학이든 철학이든, 그리고 종교이든 첫째 화두로서 남아있다. 그리고 뒤의 두 가지는 개별학문의 발달로서 인간들의 사회와 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두 용어를 정교화하고 개념화하면서 인간이 무엇을 지향(욕망)하는지에 연관이 있다.
서구와 동양에서 각각은 천년이 넘게 종교의 시대, 그리고 오백여년을 넘게 인간의 지위에 대해 현자들이 논의하던 가운데,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현자들의 삶의 태도가 인민과 프롤레타리아의 삶에 지침이 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삶의 터전에서 도구의 공유화(공산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현자든 지자든, 공동체주의자든 사적이익 추구자든 하늘과 땅, 공기와 물이 사적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시대의 변역과정에서 기계 생산물의 사적소유를 이론화하는 자들에게, 공유를 주장하는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당하였다. 그럴까? 그 사적 소유를 주장하고, 체제를 만들고,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체계를 정립한 것에는 유일신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세상이 자연 속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모든 소유가 신의 것이라는 착각과 환상, 심하게는 망상에 빠졌다.
이들 유일자 신앙자들은 권력의 체제와 싸움에서 상위를 차지하려고 천년을 싸웠다. 이들이 전쟁에 동조하기도 하였고, 심하게는 예루살렘을 회복한다는 이름을 전쟁을 조직하고 독려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직적 지배가 잘 안 될 때는 길고 긴 시대를 마남사냥도 서슴치 않았다. 이 마남사냥을 지휘하는 신학체계를 신앙이란 이름으로 자연과 지식에 대해 상위의 우월권을 설득하기도 하고, 공포와 위협으로 지배와 명령권을 꾸며내어 거꾸로 민중의 어리석음에 분노하고 화낸다. 윤석열이 격노하고, 이어서 김건희가 한동훈을 죽이겠다고 하거나, 그리고 이재명을 총으로 쏘고 죽겠다고 분노하는 것도 이런 유일자 신앙에 세뇌된 탐만치의 산물이다. 탐욕, 오만, 그리고 치졸함에 빠진 자들을 싯달다가 마구미라고 하지 않았던가.
서구 19세기에 탐욕의 권력으로 세워진 근대 산업국가의 통치자로서 국가의 통치권자가 어느 세기보다 더 큰 권력을 가졌으며, 게다가 선거를 통하여 체제를 통한 합법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위험에 처했다. 서구에서, 특히 빅토리아왕조(1901년)와 오스트로헝거리 제국(1918)의 무너짐은 이십세기 초이다. 수구파들은 또다시, 국가주의가 아닌 제국주의 또는 자본의 제국을 건설하려했다. 인민을 공포에 밀어 넣는 전쟁을 서슴치 않았다. 유일자 신앙은 이 전쟁에 은연중에 동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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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민주화의 과정은 인민의 삶의 흐름 속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입말이 공공화 되면서부터 4.19를 거치면서 조봉암과 인혁당의 건설에서, 그리고 유신독재에 반대하던 인혁당 재건에서 남민전을 거쳐왔다. 그리고 1980년 광주항쟁과 1987년 민주항쟁에서도 흐름은 지속되었지만, 인민들이 서로 소통이 되기에는 규소시대의 발전을 기다려야 했다. 누리 소통이 전지구적으로 소통되는 시대는 코로나19의 전지구화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아마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시절이라 한다. 하나는 대중과 소통하는 연극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아고라 광장의 민회가 있었다. 전자에서 비극들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을 경계하였고, 희극은 사회의 고착화에 각성하게 하였다. 후자에서 아테네 철학은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에 의해 인민의 자각을 일깨웠으나, 데모스의 정치(데모크라시)라는 장치를 겨우 마련했던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전쟁으로 멸망하였다. 그 민주의 흐름은 잠수하였다가, 이를 모방하려는 시도들이 로마에서 솟아나며, 민회와 원로원이란 제도로서 공화제라는 이름을 달았으나, 시저 이후에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황제제로 바뀐다. 이 황제제와 더불어 이 제도를 본뜬 교회의 교황제는 서로 권력 다툼으로 중세를 이어갔다. 러셀이 철학사에서 말하듯이 그래도 중세의 민주화 방식은 밀라노 교구에서 있었으며, 성직자를 교인들이 선출해야 한다고 했단다. 그러나 교황청은 왕권에 대한 우월성을 끊임없이 추구하였다.
교권과 왕권의 다툼은 영국에서 교황청을 벗어나 성공회를 만들면서, 유럽사는 다른 국면을 만들었다. 왕권이 따로 존속하는 가운데, 영국 권력들 간의 싸움에서 크롬웰이 등장하는 의회파와 왕권파의 투쟁에서, 의회파의 승리하면서, 인민의 이름을 빌어 권리장전(1688)을 만든다. 그럼에도 인민이 아니라 상부의 두 권력 사이, 세습귀족들과 신흥시민들 사이에서 권력의 쟁탈인데, 백성은 여전히 권력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인민의 입말과 문자의 전파되기 200여년 만에, 인민의 의사 반영이 솟아난다. 여기에서 카톨릭 신부였던 시에이에스(Sieyès, 1748-1836)는 혁명전야에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1789)을 쓰면서, 귀족과 성직자가 아닌 새로운 신분으로서 인민(부르주아)의 등장을 알렸다.
이 인민이 자치와 자주, 그리고 세기를 거치면서 자율성을 행사하기 위해, 19세기에 여러 번 혁명들을 일으키며, 공동체 사회를 만들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맑스는 프롤레타리아의 공산사회를 주장하기도 한다. 인민의 성장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종교 없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였다(프랑스에서 1882년 교육선언). 서구에서 평등사회 구현의 교육이 무상, 보통, 무종교라는 것을 실행하기에는 그래도 길이 멀었다. 그런데 우리의 동학의 성립이 1860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도 세계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세기를 지나면서 우리에게서 인민의 성장은 독립운동을 통해 계속되었다. 그 다음으로 계엄에 저항했던 열사들이 있었고, 그리고 광주에서 인민항쟁이 있었다. 그러나 1945년 이래로 입말과 문자화가 우리방식이라 하더라도, 인민의 소통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수구권력들은 마구미의 손을 여전히 펼치면서 마남사냥과 같은 빨갱이 사냥으로 그들의 지위를 유지하려 했다. 뒷편에는 마남사냥에 동조하는 유일신앙의 세력들과 앵글로색슨 철학이 있었다. 하나는 우리의 오랜 전통과 단절하게 하여, 제국을 형성하려는 자들에게 세뇌당하여 돈을 숭배하는 유일신앙에 빠져있는 자들이다. 다른 하나는 학문에서 일차대전의 승전국 일본과 이차대전의 승전국 미국으로부터 과학의 진리를 수용해야 한다는 외세 의존적 지식인들이 지배하였다.
이들에 저항하여 인민은 촛불을 들었고 노무현 대통령을 지켰다. 한번은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을 실세로 하는 박근혜를 탄핵하였다. 한번은 비극 다른 한번은 희극일까? 실권자로서 김건희의 농단 속에서 눈먼 장님의 윤석열을 탄핵하려는 중이다. 이 기득 세력의 저항은 거세다. 벩송이 인민이 수행하는 ‘저항의 저항’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수구의 저항에 대항하는 항쟁과 혁명의 저항은 간헐적이었다. 인민의 등장은 느리고 가늘어 보이지만 지속하고 있다. 우화적이고 허구적인 수구 저항을 이겨내는 인민의 저항은 자연(본성)의 자발성에서 나온다. 박근혜의 탄핵은 쉬웠다. 윤석열의 탄핵은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끝난 지 한 달지났는 데도 기득권의 저항, 즉 반동은 거세다. 인민의 노력과 내공이 필요하다.
이번에 기득권 패거리의 거센 저항(반동)을 맞이했지만, 이들 셋 다 인민의 최종심급으로 이겨낼 것이라는 점에서 희극으로 끝날 것이라 낙관 하지만, 그 대가는 여러 가지로 치루어, 값비싼 수업료로를 지불해야 할 것 같다. 혁명이라면 짧은 시간에 정리할 수 있지만, 기득권의 법률 하에서 절차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이 필요하지만 낙관적이라는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희극이 사회의 고착성을 벗어나기 위한 추억들의 방편이듯이, 우리에게서는 과거의 매국을 일삼은 극우파와 탐만치에 빠진 수구파의 고착성을 뿌리 뽑는 과정일 것이다.
인민은 누리소통을 통해서, 마치 리좀이 퍼져나가듯이, 인민의 의지가 펼쳐나간다. 루소가 말하듯이, 인민의 의지를 권력자에서 양도하지 않고, 계약을 통해 위임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인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인민권은 기본심급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내란 수괴의 탄핵을 인용하게 되는 것은 인민이 최종심급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주권자가 최종심급을 일시 헌법재판소에 위임한 것이지, 그들이 마음대로 결정하라고 양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익히며, 내공을 쌓고 있는 중이다.
여기 현실에서는, 수구파들과 민주파들의 대립 속에서, 프랑스 혁명보다 더 잘 소통하는 연결망을 갖는 인민권이 등장하는 과정일 것이다. 21세기 규소의 시대, 누리소통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여러 리좀들이 아무도 해보지 못한 새로운 연결망을 짜고 있다. 새로운 공화국은 인민에 의한 계약의 사회가 등장할 것이다. 그럼에도 극우의 저항과 반동도 넓이를 더하고 있다. 김건희-윤석열과 극우 집단의 계엄이 얼마나 큰 공포와 위협을 하려했는지는 수거자 명단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전 모의들이 드러났고, 또한 그들의 조직망이 점점 밝혀지는 가운데, 그저께 뉴스에서 등장한 종이관 1천개와 영현백 3천개를 준비하려고 또는 사들였다는 이야기는 윤석열 계엄집단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가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며, 인민에게 공포를 자아내게 한다..
유일신앙자들이 종교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마남사냥을 하였듯이, 김건희와 윤석열은 폭력과 계엄령으로 인민을 말살(Genocide)하려고 하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을 획책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영국의 시민전쟁, 프랑스의 대혁명과 같이, 우리터전의 21세기 새로운 제3신분의 혁명이 일어날 것 같다. 이 규소시대 혁명은 앞의 혁명들과 달리 입말과 문자로 인격의 층위에 리좀의 연결망이 새로이 각인하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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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 시대의 도래는 21세에 엉뚱하게도 코로나19에서부터 전지구적 소통으로 열려 있었다. 이런 난제들 극복했던 경험을 가지고, 게다가 오랜 우리 문화와 새로운 누리소통을 결합할 줄 아는 우리가 세계사에 새로운 희극을 쓰고 있는 중이리라. 고착된 사회는 변화하고, 착각과 착오에 세뇌당한 기득권의 밀정과 수구파의 탐만치는 젊은 세대에 의해, 혁명이 아니더라도, 생물학적으로 밀려나고 있는 중이다. 공포를 심고 협박하는 이들에게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밀어낼 리좀망을 연결하고 자발적 생성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세 의존의 지식인에게서 벗어나는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탐욕(탐만치)의 마군들을 퇴치하는 데는, 잉여생산을 제3신분화 또는 인민화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서로 상부상조하며 자치와 자주, 우리들 스스로 교육과 의료를 무상화하는 제도를 만들 자율성과 자발성을 실현할 노력과 내공을, 80여년을 쌓아온 지층 속에 그리고 그 위에 리좀의 그물망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자신들이 만들어가야 할 리좀의 그물망을 움직이지 않으면서 연결하는 노마드처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소통의 흐름에서 트래픽으로 매듭들의 각각에서 만들어지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혁명이 이루어지는 중일 것이다. 그 혁명은 언제나 하늘에서 일어나는 번개와 같다. 그 번개는 동일한 적이 없어도 계속하여 일어난다.
여기서 노벨 수상자 한강의 수상문을 상기하자. 그 수상자는 수상문의 제목이 “빛과 실”이었다. 세상은 빛의 세계이다. 그 속에서 이 땅과 인민들 속에 반만년을 면면(綿綿)히 이어온 실처럼 있다. 젊은이는 그 목화 꽃의 부플음이 면면히 이어지는 과정처럼, 리좀의 흐름처럼, 우리 이야기를 즐겁고 유쾌하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작은 선함과 작은 상부상조가 또 작은 노력이 긴 시간의 두께에서 내공으로 이루어진다. 돈과 권력, 권세, 권위 패거리 배에서 벗어나 진솔한 벗과 동지를 만들면서 상쾌하고 통쾌하게 극우파와 수구파를 넘어서길 바란다.
혁명은 번개와 같이 일어나고, 하늘은 여전히 비, 구름, 바람으로 변전하며 이어가듯이, 터전에서 인민들은 여전히 자신들 삶을 변역(變易) 속에서 이어가며 펼쳐간다. 리좀은 느리게 흐르는 것 같지만, 때에 맞게 제대로 연결망을 면면히 이어간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코로나19 이래로 다른 연결망으로써 리좀의 누리통신이 생겨났다. 그 누리소통은, 남태령의 밤샘의 그 눈 속에서 21세기에 새로운 조직화를 열었다. 공화는 인민들의 누리 소통에서 쌍방소통과 실시간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소통을 가능하게 하였다. 물론 전지구적으로는 전파이용이 가능한 지역이라는 점이 아직도 난점이지만 점점 더 확장되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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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들처럼, 망상의 파라노이아, 그리고 나만이라고 생각하는 “난가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자아의 각성이고, 나의 성립은 우리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불교가 소자아의 성립의 명상과 돈수에서도, 사대부중이 함께 보살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소아가 보살이 되었다고 한들, 그게 진솔한 자아의 성립이 아니라고 하며, 대승과 용화세계를 강조했던 우리의 선승들도 생각해보자. 유교가 구태라고 하기에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서 평천하(平天下)에까지를 이루고자 노력했던 성현들에게서도 리좀의 그물망을 더 잘 짤 수 있음을 생각해보자.
자아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터전에서 지금 수구들의 난동 같은 탄핵반대 속에도 있음을 명심하자. 이들의 탐만치를 극복하며, 벩송 표현처럼 저항의 저항을 이루고자 노력하며 내공을 쌓아가자.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 젊은이가 자율성과 자발성으로 새로이 나올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생 쥐스트는 스물셋에 대혁명에 참여했고, 스물다섯에 공안위원회를 맡았다. 규소의 시대 공자 말로 서른에, 천문학적으로 서른 여덞에, 플라톤이 말하는 마흔에 자발성의 사회를 만들 수 있게 실천의 노력과 과정의 내공을 쌓으면서 말이다.
리좀은 흐른다. 규소의 시대에 누리소통의 프래픽이 흐른다. 혁명도 흐른다.
(3:26, 58NLI) (4:04, 58NLJ) (5:20, 58NLJ)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웹진 연재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단행본 출간에 즈음하여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웹진 연재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단행본 출간에 즈음하여
이종철(소설가)
∗웹진 [연재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이 단행본 출간을 맞아(2025.04.08.) 연재를 잠정 멈추고 자전적 소설에 대한 작가의 변을 들어보려합니다. 격동의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대학에서 강사와 연구자로 살아간 한 인물이 소설이란 장르를 이용해 자신의 철학적 삶과 삶의 철학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는지 그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이란 책은 내가 처음 써 본 소설이다. 이 소설은 격동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은 2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이고, 2부는 1990년대 후반부부터 2020년대 전반부에 걸쳐 있다.
필자가 이 소설을 쓴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시대를 치열하게 겪은 한 개인의 사적인 삶을 정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철학적으로 반성해 보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필자는 나 자신의 삶을 주변부 인생(marginal man)으로 규정하곤 했다. 나는 상고를 나와 법대에 진학했지만, 그것은 내가 향학열이 높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몸이 불편해서 은행이나 기업체에 입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오기가 있었는지 나는 유신 독재 시절에 대학을 보낼 때 법대생으로서 사법고시 1차 시험 한 번 보지 않았다. 법대를 졸업하고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을 해서 박사 종합시험까지 통과했지만, 나는 대학을 떠나 거친 사회에서 10년을 보냈다. 남들은 유학을 가거나 학위 논문 쓰느라고 매진할 때 나는 일반적인 연구자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사회 경험을 많이 했다. 나중에 회사가 부도가 나서 실업자 생활을 할 때 유학을 다녀온 후배들과 다시 만나면서 대학으로 복귀할 기회를 가졌다. 뒤늦게 학위 논문을 썼지만 그 후 나의 삶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선생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힘든 시간 강사로 점철되었다. 그런 삶이 싫어서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한국인이 세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생각보다 너무나 열악한 환경 때문에 1년 만에 다시 한국의 대학으로 복귀했다. 모 대학의 초빙교수로 정년퇴직을 한 다음에는 비로소 프리랜서 작가로서 자유롭게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런 나의 삶을 ‘주변부 인생’이란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때문에 나는 중심을 해체시키려 하고, 기성에 대해 비판과 부정으로 대하는 것이 체질화되었다. 임제 선사의 “부처를 보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보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말은 나의 삶과 정신을 이끄는 길잡이와도 같다.
다들 알고 있듯, 한국의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인들은 유신 독재와 광주 항쟁, 민주화 투쟁과 1987년의 민주주의의 쟁취 등으로 점철된 고통스럽고 의미 있는 역사적 경험을 겪었다. 동시에 이 시기는 사회과학의 전성기이자 온갖 이론과 사상이 난무하던 지적 르네상스의 시기이기도 했다. 물론 특정한 세계관과 사상이 지배적이기는 했지만, 이 시대는 그것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상으로 한국 사회의 변혁운동과 맞물려 상호 피드백 하면서 백가쟁명의 절정을 이루었다. 필자는 이 시기를 프랑스의 6.8 혁명 못지않은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은 6.8 혁명을 겪으면서 자신들의 이론과 사상을 정립해서 세계인들에게 내 보였던 반면, 한국인들은 그런 귀중한 역사적 체험을 그저 그런 과거의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우리가 겪은 이 시대의 체험을 철학적으로 반성하고 의미화하고 싶은 욕구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표현해 본 것이다.
필자의 본업은 철학이고 그중에서도 서양철학이자 독일 근대철학이다. 이런 철학자가 소설을 쓴다는 것이 한국 사회에는 다소 생소해 보이지만, 프랑스 철학에서는 그다지 낯설지 않다. 사르트르의 경우는 철학자로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는 소설도 꽤 썼다. 나중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사르트르는 철학자의 신념을 지키고자 그 상을 거부했다. 포스트모던 사상이 주류가 됨에 따라 전문 영역을 넘어 새로운 글쓰기 실험도 이루어지고 영역들 간에 소통도 자연스럽다. 10여 년 전 영화로도 나온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인 파스칼 메르시어의 본명은 피터 비에리(Peter Bieri)인데,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부 출신으로 독일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한 철학교수이다. 한국에서도 찾아보면 없지는 않다. 경성대 철학과의 김재기 선생이 2002년에 장편 『알라 하임』을 쓴 적이 있다. 아무튼 지금의 시대는 전통적인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 시대적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일상을 소재로 쉬운 일상어를 가지고 자신만의 철학을 담을 수 있는 ‘에세이철학’에 심취해왔다. 거의 매일같이 쓰는 철학 평론을 페이스 북과 네이버의 프리미엄 서비스나 브런치 스토리 같은 곳에 올리다 보니 동서와 고금을 넘나들고 전문 영역을 넘어서는 글을 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문체도 자연스럽게 학자들의 논문 형식의 문체와 에세이 성격의 문체를 넘나드는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이 소설은 그런 실험적 글쓰기의 연장 속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필자는 이 소설의 형식을 통해 본업인 철학에 대해 반성하는 경험을 많이 했다. 철학자가 소설가들에게 배워야 것이 하나 있다. 철학자들은 허구한 날 남의 철학이나 사상을 끌어들여 해석하고 해설하는 일에 평생을 보내는 데 비해 3류 소설가라 해도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한다. 물론 철학자들은 개념화된 사유를 하기 때문에 주관적 언어를 쓰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한국의 철학자들은 그 정도가 심해서 남의 언어와 남의 철학을 가져오지 못하면 사유를 하지 못할 정도다. 때문에 그들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는 자신들의 시대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구성하기보다는 여전히 바깥의 수입 철학에 의존하고 2천 년도 넘은 공맹과 노장사상을 주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있다. 이런 지적 식민성과 사대주의가 한국의 지성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겪은 위대한 경험을 과거로 묻어 버린 채 그저 바깥에서 들어온 새로운 이론과 사상 혹은 오래된 사상에 목을 매달고 있을 뿐이다. 『조선 사상사』를 쓴 교토대 철학과 교수 오구라 기조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외래 사상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재구성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바꿔치기하는 전면적 개변(改變)에만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다. 한 사상이 물밀듯 들어와서 한 시대를 지배하다가 시효가 되어 사라지고 다른 사상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개변의 일반적 형태이다. 과거 불교와 유교가 그랬고, 근대에 들어서는 유교와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그랬다. 손바닥 뒤집듯 일어나는 개변의 가장 큰 단점은 사상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 있다. 외래 사상만을 끊임없이 찾다 보니까 그런 사상의 축적이 이루어지기 힘들고, 더욱이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는 오늘날 한국철학계가 부닥친 커다란 딜레마의 진실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이런 생각과 틀을 바꿔야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 필자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시대 체험과 생각, 자신들의 언어를 살려서 자신들의 철학을 정립해 보자는 것이다.
이 소설은 격동의 한국 사회를 한 개인의 지적 모험을 통해 재구성해 보자는 데 있지만, 사실 이런 시도는 잘못하면 죽도 밥도 되지 못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필자의 시도는 철학적 소설을 겨냥했지만 철학도 되지 못하고 소설이라는 면에서도 실패할 수 있다. 최대한 이러한 실패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 판단은 필자의 손을 떠나 읽는 독자들이 내릴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문제의식에 대한 공유를 통해 우리 철학을 정립하는데 하나의 초석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파주의 우거에서
2025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