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논리43-실체 관계와 공연한 존재
1)
마침내 본질론 마지막 3편 3장인 ‘절대적 관계’의 장에 이르렀다. 이 장을 통해 1부 객관 논리학은 끝나고 2부 주관 논리학으로 이행한다. 이 장은 본질론 3편 ‘실제성’ 편의 마지막 장인데, 많은 내용이 3편 2장인 ‘양상’ 장의 내용과 중첩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앞에서도(2편 현상 편) 설명했듯이 본질론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본질론에서는 항상 먼저 개념이 논리적으로 전개된다. 여기서는 추상적인 것이 점차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그 끝에 이르러 개별적 형태가 다시 일반적 형태로 전개된다. 이는 곧 역사적 발전의 길이다.
이 과정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정신현상학의 전개 과정과 거꾸로다. 정신현상학은 의식의 형태가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논리의 평면에 투영된다. 헤겔은 이것을 내면화[Erinnerung: 기억]의 과정이라 했다. 논리학에서 본질론은 거꾸로 논리적 계기의 발전이 시간의 축에 투영되니 이를 헤겔은 ‘형태화’라고 한다.

그러므로 3편에서도 2장에서 양상 개념이 추상적 필연성에서 구체적 필연성을 거쳐 절대적 필연성으로 전개되었다. 이제 3장에 이르면 개체들의 우연적 관계(실체 관계)에서 개체들의 구체적 관계(인과 관계)를 거쳐 개체들의 절대적 관계(상호작용 관계)로 나간다. 여기서 논리적 계기와 역사적 형태가 상응하는데, 추상적 필연성이 실체 관계와, 구체적 필연성이,, 인과 관계와, 절대적 필연성이 상호작용적 관계와 상응한다.
시야를 좀 더 넓혀서 보면, 2편 ‘현상’ 편도 마찬가지다. 거기서는 먼저 현상이 논리적으로 전개되었는데, 2편 3장에서 이것이 시간에 투영되어 전체와 부분의 관계, 힘과 드러남의 관계, 외부와 내부의 관계가 전개되었다.
정신현상학에서 논리적 계기가 새로운 의식 형태를 토대로 새롭게 재구성되면서 그 이전의 계기와 평행하듯, 여기서는 논리적 차원이 발전하는 가운데 시간적 형태의 흐름도 재구성된다. 이는 마치 우리가 새로운 이념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재구성하지만, 이전의 이념에서 구성된 역사와 새로운 이념에서 구성된 역사가 평행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시간의 축에서 2편 3장의 축은 3편 3장의 축과 상응한다. 즉 논리적 차원이 현상에서 실제성으로 이행하면서 시간의 차원도 재구성된 것이다. 그 때문에 2편 3장의 현상의 관계는 3편 절대적[실체의] 관계와 평행한다. 즉 전체와 부분의 관계는 실체 관계에, 힘과 드러남은 인과 관계에, 내부와 외부의 관계는 상호작용적 관계에 상응한다.
2)
앞의 장에서 양상은 가능성과 실제성 사이의 관계가 다루어졌다. 가능성이란 곧 유적 본질을 말하며 실제성이란 이것이 실현된 실체를 말한다. 이 관계가 개별적이면 우연성(추상적 필연성)이었고, 특수적이면 개연성(상대적 필연성)이었고 일반적이면 필연적(절대적 필연성)이었다.
헤겔은 가능성이 실현되는 운동은 자기 자신을 펼치는 운동[auslegen]] 또는 자기를 이중화하여 계시하는[Menifestation] 운동이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서 가능성과 실제성, 유적 본질과 실체, 즉 근거와 그 토대 사이를 매개하는 것은 개체들의 상호 관계이었는데, 이제 3장 관계 장에서는 이 개체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다루어진다. 헤겔은 이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절대자의 펼침은 빛을 비추는 운동이며 이 빛남[Scheinen]은 곧 가상[Schein]으로서 정립되는 것이니, 관계를 이루는 양 측면은 총체성이다. 왜냐하면, 이 측면들은 가상이기 때문이다. 가상이 총체성인 까닭은 가상으로서 구별된 것들은 그 자신이며 동시에 대립하는 것 또는 전체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이 구별된 것은 총체성이므로 가상이다. 그러므로 이 구별된 것 또는 빛을 비추는 절대자{scheinendes Aboslute: 즉 가상]는 자기 자신을 동일하게 정립하는 것일 뿐이다.”(논리학, GW11, 393)
이 구절에서 논의의 핵심은 곧 ‘가상’이 곧 ‘총체성’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절대자와 가상(또는 양상)’, ‘가능성과 실제성’, ‘개체와 실체[개체의 관계]’의 개념을 서로 연결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상은 무차별적인 실존이 아니라, 그 속에 절대자 즉 유적 본질이 자기를 비춘 것을 의미한다. 절대자의 비춤을 통해 실존은 자기 부정적인 것으로 된다. 이런 자기 부정성 때문에 가상은 곧 양상이라 규정된다.
실존적 개체에 본질의 빛이 비친다는 것은 곧 하나의 개체가 자기와 대립하는 타자와 배타적 통일의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질론 1편에서 설명했듯이 헤겔에서 본질로의 반성{수직적 운동)과 타자와의 관계(수평적 운동)는 상호 얽혀 있는 운동이다. 개체가 타자와 배타적 통일의 관계를 맺을 때 이 개체는 자기 자신인 동시에 자기의 대립물이니, 곧 총체성이라 한다.
개체가 타자와 맺는 배타적 통일의 관계가 실체이다. 이 실체는 유적 본질로서 절대자가 자기를 실현한 것이다. 가상을 매개로 해서 절대자가 자기를 실현하여 실체가 된다. 이런 가상을 통해 절대자가 실현되는 과정이 곧 가능성(유적 본질: 절대자)이 실현되어 실제성(실체)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상에서 가상과 총체성의 관계에 관해 설명했다. 이제 실제성 편 3장 절대적 관계 장에서는 논의는 개체들이 타자와 맺는 관계가 어떻게 발전하는가로 옮겨진다. 이 관계가 발전하는 단계에 따라서 다양한 실체가 출현한다. 개체들이 서로 무차별하면 우발성의 관계이며, 개체들이 구체적으로 관계하면 그것이 곧 인과 관계이다. 마지막으로 개체가 상호작용하게 되면 그 관계가 곧 목적론적 관계이고 여기서 필연성은 자유로 발전한다.
3)
이런 실체적 관계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 우발성[Akzidenz]의 관계로서 실체이다. 헤겔은 이를 단순히 실체 관계라고 하는데, 그 관계를 이루는 요소가 곧 우발적 존재*이다.
*주) 이 ‘우발성’은 앞에서 가능성을 실제성으로 실현할 때 등장한 추상적 필연성으로서 ‘우연성’과 관련된 개념이다. 그래서 ‘우발적 존재’는 흔히 ‘우연성’으로 번역된다. 여기서는 그때 나온 ‘우연성’과 구별하여 우연하게 등장한 개체적 존재라는 의미에서 ‘우발적 존재’라고 번역하고자 한다. 이는 실체적 집단을 이루는 한 원소로서 개체적 존재이다.
즉 어떤 것이 우연히 실제적으로 될 때, 그것이 곧 우발적 존재다. 이 우발적 존재는 자립적인 실존이며, 타자에 대해 무차별한 것이다. 그 때문에 우발적 존재가 서로 맺는 관계 즉 실체는 공허, 무일 뿐이다. 우발적 존재는 각자 특정한 내용을 지닌 것이지만, 형식상 서로 동일한 것이다. 동일한 것이 무차별한 내용의 측면에서 우발적이며 형식적 동일성의 측면에서는 곧 실체적이다.
우발적 존재는 마치 점이 들어 있는 공허한 공간과 같다. 이 공허한 공간은 긍정적으로 보면 모든 우발적 존재에 공통적인 동일한 것이지만, 동시에 모든 우발적 존재를 받아들이는 공허한 것이다. 이 공허한 공간과 같은 실체가 곧 우발적 존재의 토대가 되는 실체이다.
공허한 공간이 점과 구별되어 따로 존재할 수 없듯이 이 일반적 실체 역시 우발적 존재에서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 실체의 측면과 우발적 존재의 측면은 서로 대립하지만, 서로 동전의 이면과 같이 관계한다.
4)
이 관계의 구체적 예로서 앞에서는 형식 논리학에서 논리적 형식과 명제 내용 사이의 관계를 들었다. 논리적 형식은 명제 내용에 대해 전적으로 외면적인 동일성이고, 각 명제 내용은 서로 고립적이며 무차별적인 것이었다.
이제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면, 우발적 존재와 일반적 실체의 관계는 마치 개별 인격과 추상적 법의 관계와 같다고 하겠다. 인격은 법적 인격이며 인격의 내용은 개별적이지만, 인격의 형식은 법적으로 인정되며,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일한 것이다.
명제의 논리적 형식이나 법적 인격은 긍정적으로 보면, 추상적인 동일성이며 모두에게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형식이나 인격은 공허한 공간처럼 모든 명제 내용이나 인격의 모든 구체적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우발적 존재와 일반적 실체의 관계는 ‘현상’ 장에서 전체와 부분의 관계와 같다. 다만 전체와 부분에서 부분은 지속성이 없는 개별자(물체)에 지나지 않았지만, 여기 실체적 관계에서는 실체를 바탕으로 전개되기에 이 우발적 존재는 그 자신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하나의 실체 즉 종적 개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헤겔은 이 우발적 존재의 특징을 여러 가지로 규정하는데, 이 우발적 존재는 하나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 이면은 공허이니, 존재의 측면에서 보면, 실제성이고 실체이지만 공허의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가능성이고 절대자이다.
이 두 측면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결합하니, 여기서 가능성과 실제성, 공허와 개체, 본질과 존재는 직접 자기의 반대로 전도한다. 각자는 자기 자신에서 자기의 타자이며 이를 통해 서로 타자를 비춘다.
“이 빛남은 가능성과 실제성이라는 형식의 동일성으로서 동일성이다. 이 동일성은 최초에는 생성이며, 생성과 소멸의 영역으로서 우연성이다. 왜냐하면, 가능성과 실제성의 관계는 직접성의 규정에 따라서 존재하는 것인 한에서 양자가 서로 직접 전도하는 것이며 각자가 그에게 다만 타자인 것으로 직접 전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는 가상이므로, 가능성과 실제성의 관계는 또한 동일화하는 또는 타자에 자기를 비추는 반성이다. 따라서 우발성의 운동은 그 계기 모두에서 존재 범부과 본질의 반성 규정이 서로 비추는 것을 서술한다.”(논리학, GW11, 394)
5)
우발적 존재에서 가능성과 실제성은 끊임없이 교체한다.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이 창조인데, 이 창조의 근거인 가능성은 곧 공허 즉 심연이므로 아무 근거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직접 실제적인 것이다. 그것은 독자적인 실체로서 ‘존재하므로 존재할 뿐’이며 자기를 근거로 해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이유 없이 존재하는 공연[空然]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 우발적 존재는 공허를 그 근거로 하므로 자기 내에 부정성을 지니고,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다시 몰락하여 공허라는 가능성으로 되돌아간다. 그 존재는 헛되고 헛된 존재이다.
마치 존재론에서 다루었던 감각적 질이 하나의 질에서 다른 질로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명멸하는 것이었듯이, 우발적 존재 역시 창조되었다가 다시 몰락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이런 우발적 존재의 창조와 소멸은 우발적 존재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이 창조와 소멸은 실체가 되는 공허의 위력[Macht]으로 나타난다. 공허는 근거가 되어 창조하며 근거가 공허이므로 또 소멸한다. 공허가 근거이므로 갑작스럽게 출현하지만, 근거가 공허이므로 존재하는 즉시 사라질 운명이다.
“실체는 자기가 가능적인 것을 그 안에 옮겨 놓은 실제성이 지닌 내용을 통해 자기를 창조하는위력으로 계시하며 자기가 실제성을 그 안으로 옮겨 놓는 가능성을 통해서 자기를 파괴하는 위력으로 계시한다.”(논리학, GW11, 395)
가능성(몰락)과 실제성(창조)이라는 형식은 공허라는 실체를 내용으로 하며, 이 형식은 갑자기 출현했으나 이미 몰락하는 것이며, 몰락하는 가운데 갑자기 출현하는 것이다. 실체는 매번 임의로 특정한 내용을 산출하고 다시 회수하는 가운데 내용상 끝없이 변천하며 또한 형식상 가능성에서 실제성으로, 실제성에서 가능성으로 전복하기를 영원히 계속한다.
“그러므로 실체의 위력은 영원히 자기를 형식과 내용의 구별로 분화하며, 영원히 이런 일면성에서 자기를 순화하지만, 이런 순화 자체 속에서 규정과 분화로 도로 떨어진다.”(논리학, GW11, 395)
6)
실제적인 우발적 존재는 그 자체 우연한 것이기에 다른 우발적 존재도 가능하며, 그러기에 여러 우발적 존재가 출현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내용상 변천하며 형식상 전도한다. 이런 내용적으로나 형식상으로 일어나는 변화의 원천은 우발적 존재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의 본질인 공허한 실체에 있다.
이 일반적 실체는 그 자체 내용상 공허한 것이고 다만 형식상 일반적이지만, 모든 개별적 내용을 창조하고 다시 몰락시키는 가운데, 이는 겉보기에 마치 하나의 우발적 존재가 다른 우발적 존재를 추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는 우발적 존재가 아니라 실체 자체의 위력이다.
이는 마치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한 생산자가 다른 생산자를 패배시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겉보기의 모습에 지나지 않고 사실은 시장 자체가 자기를 전개하는 위력에 지나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또는 옛날 첩들의 싸움과 같다. 그들은 서로 죽어라 싸우지만, 사실 그들을 싸우게 하는 것은 바로 가부장적인 남자다.
“그런 우발적인 것은 다른 우발적인 것에 대해 위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실은 실체의 위력이 양자[우발적인 것]를 자기 내에서 포괄하면서 부정성을 지닌 것으로서 양자에 부등한 가치를 정립하면서 하나는 소멸하는 것으로서 다른 하나는 다른 내용을 지니고 발생하는 것으로서 규정한다.”(논리학, GW11, 395)
“하나의 우발적 존재가 다른 우발적 존재를 쫓아내는 이유는 다만 하나의 우발적 존재를 고유하게 존속하게 하는 것이 형식과 내용의 총체성[일반적 실체]이며 이 우발적 존재는 다른 우발적 존재와 마찬가지로 그런 총체성 속에서 존속하는 것에 못지않게 몰락하기 때문이다.”(논리학, GW11, 395)
이런 실체의 위력을 통해 우발적 존재는 명멸하는 모순에 처하게 되며 이런 모순을 극복하면서 인과적 관계로 이행한다. 우발적 존재가 서로 무차별한 실체이었다면, 인과적 관계에서 개체는 한편으로 자립적이며 ‘단순한 자기 동일성’이며 다른 한편으로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이어서’ 서로 관계한다.
“이 우발성은 자기에 대립하여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으로서 규정되며 동시에 자기 관계하는 단순한 자기 동일성으로 규정되니 독자적[fuer sich]으로 존재하는 위력적 실체이다. 그러므로 실체 관계는 인과 관계로 이행한다.”(논리학, GW11, 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