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운동35-내부와 외부의 관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운동35-내부와 외부의 관계
1)
본질적 관계는 세 단계로 전개된다. 전체와 부분, 힘과 드러냄, 내부와 외부의 관계다. 이 관계는 모두 개체 사이의 관계를 매개로 두 세계 즉 본질(요소의 관계)의 세계와 현상(관계를 이루는 요소)의 세계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여기서 본질이 현상의 자립성을 어느 정도 파고드는가(현상의 반성 또는 본질의 정립)에 따라서 세 단계가 구분된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서 전체는 부분에 대해 외면적이며 다만 형식적인 관계에 머무를 뿐이다. 힘과 드러냄의 관계에서 힘은 물체와 외면적으로 관계하지만, 독립적으로 실존한다. 힘이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이르면, 상호작용의 양면으로서 내부와 외부가 출현한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나 힘과 외화의 관계는 역학적 자연에 존재하는 관계다. 내부와 외부의 관계가 유기체적 조직이 다시 출현한다. 실존에서 현상을 거쳐 관계에 이르기까지 존재론에서 이미 전개되었던 생성의 운동이 다시 반복되었다. 마침내 힘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본질론의 출발점이라고 할 유기체적 조직이 다시 출현한 것이다.
2)
현상 편은 실존 장, 현상 장, 관계 장으로 전개된다. 이는 판단 형식에 상응하는데, 실존이 정언판단 형식에 해당한다면, 현상에서 출현하는 법칙은 가언판단 형식에 해당한다. 그리고 관계 장에서 마침내 출현한 내부와 외부의 관계가 곧 선언판단 형식에 해당한다.
법칙이 가언판단 형식이란 것은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내부와 외부의 관계가 선언판단 형식이라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여기서 헤겔이 선언판단 형식이라 한 것은 배타적인 선언판단 형식을 말한다. 즉 두 선택지 p와 q가 서로 모순 관계에 있을 때 판단이 A= p or q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 (배타적) 선언판단이 된다.
이런 배타적 선언판단에서 p, q는 종적 본질이 실현되어 나타나는 개체의 집합을 이룬다. 이 배타적 선언판단에서 주어인 A는 p, q라는 개체를 통해 자기를 실현하는 종적 본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배타적 선언판단은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말한다.
개체의 집합은 이런 배타적 관계에 있을 때 전체 집합이 된다. 만일 개체를 다른 방식으로 나누면 전체 집합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생물체를 암수로 구분하면, 배타적 관계가 되고 여기서 암수의 개체는 종의 완결된 전체 집합을 이룬다. 그러나 생물체를 영양 기능에 따라서 분류하게 되면, 영양을 얻는 방식에 식물과 동물로 대체로 구분되더라도 그 사이에 다양한 중간 집단이 있고 그 중간 집단은 무한히 세분되므로 완결된 전체 집합을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 헤겔은 배타적 전체 집합을 이루는 것과 종적 본질과 필연적으로 상관한다고 본다. 즉 배타적인 전체 집합이 그 집합을 구성하는 원리가 종적 본질인가를 결정해 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꾸로 종적 본질은 자기를 배타적인 집합으로 출현하게 한다.
그러므로 생물체를 암수로 나누면 배타적 집합이 되는데, 그러니 암수로 나누는 기준 즉 재생산 기능이 생물체의 종적 본질이 된다. 반면 그것은 영양 기능을 기준으로 나누었을 때 배타적 집합이 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종적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게 된다. 배타적 집합과 본질 사이의 이런 연관을 표현하는 원리가 곧 내부와 외부의 합일이라는 원리이다.
3)
힘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자립적인 실존이 동시에 가상이 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지양하면서 자기에 대립하는 타자로 되며, 타자로 반성하는 것을 통해 자기 내로 복귀하며, 타자를 정립하는 것을 통해 자기가 존립한다.
여기서 자기 관계한다는 점에서 자립적인 실존이지만, 이것이 자기 부정을 통해 또는 대립하는 타자를 매개로 해서 나온다는 점에서는 가상이다.
“이제[힘의 상호작용 속에서] 공허하고 투명한 구별만이 즉 가상만이 현전한다. 그러나 이 가상은 매개이어서 이것은 자립적인 존립 자체이다. 대립된 규정은 자기 자신에서 자기를 지양하며 그들의 운동은 이행일 뿐만은 아니다. 부분적으로 그 출발점이 되어 타자로 이행되었던 직접적인 것은 다만 정립된 것으로서만 존재하며 부분적으로 이를 통해 규정의 각각은 그 직접성 속에서 이미 자기의 타자와 통일을 이루며 이를 통해 이행은 전적으로 그에 못지 않게 자기를 정립하면서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이다.”(논리학, GW11, 364-365)
이런 힘의 상호작용은 이미 이 힘들의 내적인 통일을 전제로 한다. 상호작용은 이런 내적인 통일이 자기를 드러낸 것이다. 이 내적 통일을 헤겔은 내부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생물체의 종적 본질인 재생산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힘이 상호작용하므로 여기서 자립적인 개체는 대립하면서도 상호작용하는 개체적 실존으로 분화된다. 이런 개체가 이루는 집합이 곧 외부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결합을 통해서 재생산하는 암수 두 개체의 집합이다. 이 집합은 종적 본질이 실현된 실존의 집합이다.
여기서 내부 즉 내적 본질과 외부 즉 개체의 집합은 상호작용하는 유기체적 조직을 토대로 한다. 그것의 양면이 곧 내부와 외부이다. 그러므로 내용으로 보면, 내부와 외부는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다만 형식상으로 보면, 양자는 내부와 외부로 구분된다.
4)
여기서 내부와 외부는 동일한 상호작용하는 유기체적 조직을 토대로 한다. 헤겔은 이 유기체적 조직을 ‘절대적 사태’[실체]라고 하는데, 내부와 외부는 이 유기체적 조직의 동전의 양면이며 다만 형식적인 구별이므로 내부와 외부는 상호 직접 이행한다.
“내부는 반성된 직접성 또는 본질의 형식이니 외부 즉 존재의 형식에 대립하여 규정된다. 그러나 양자는 다만 동일한 것이다. 이 동일성은 우선 양자가 충만한 내용을 지닌 토대로서 또는 절대적 사태로서 갖는 순전한 통일이며 그런 통일에서 두 가지 규정은 서로 무차별하고 외적인 계기이다.”(논리학, GW11, 365)
내부와 외부는 이처럼 동일한 사태가 지닌 양 측면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양자는 직접 자기의 타자로 이행한다. 즉 그것이 외부이므로 바로 그 때문에 그것은 내부이며 거꾸로 그것이 내부이므로 바로 그 때문에 그것은 외부이다. 예를 들어, 유기체 재생산의 기능은 오직 암수 개체로 분화되는 것을 통해서만 수행되며, 암수 개체의 분화는 곧 유기체의 본질이 재생산 기능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왜 유기체의 재생산 기능은 암수라는 서로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개체로 분화되는가? 이는 암수 중간적인 또는 암수 양면적인 개체의 출현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거꾸로 예를 들어 영양을 획득하는 기능으로 분류하면 식물과 동물로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그 중간에 다양한 집단이 있는데, 기생 식물이라든가 이동하는 식물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개체가 배타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그 기능은 생물체의 본질적 기능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헤겔은 이에 대해 대답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부가 본질로, 외부가 존재로 규정된다면, 하나의 사태는 다만 그 본질 속에 있는 한에서 바로 그 때문에 다만 직접적 존재이며 하나의 사태는 다만 존재하므로 다만 비로소 여전히 그 본질 속에 있다.”(논리학, GW11, 366)
즉 내부와 외부는 개념적으로 “각각이 다른 규정을 전제로 하며, 그 자신의 진리인 이 다른 규정으로 이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내부는 “그의 타자 즉 외부에 관계하는 것으로서만 존재하며”, 외부는 “본질 즉 내부에 관계하는 것으로서만 존재한다.”(논리학, GW11, 366)
일반적으로는 유기체가 대립된 개체로 분화되는 경우,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어서 그 종적인 재생산을 더 강화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된다. 헤겔은 이런 설명보다도 개념적으로 내부와 외부는 유기체적 조직의 동전의 양면이라는 설명으로 대체한다.
이를 고려해 볼 때, 헤겔은 유기체적 조직은 그 본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대립하는 개체로 분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반적인 개념적 진리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5)
헤겔은 예를 들어 생물체의 종이 암수로 구분되는 것과 같은 것을 내부와 외부가 직접적으로 통일되는 것으로 규정한다. 양자는 상호작용하는 유기체적 조직이라는 절대적 사태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 사태가 내용이 되고, 내부와 외부란 다만 사태가 지닌 동전의 양면이며 형식적 차이에 불과하다.
여기서 외부와 내부의 통일은 유기체적 상호작용을 매개로 한다. 그러나 이 유기체적 상호작용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일 뿐이므로, 이를 매개로 한 외부와 내부의 통일 역시 우연하다. 예를 들어 종의 재생산은 암수의 결합을 통해 일어나는데, 암수의 만남 자체가 우연적이므로 이런 재생산은 우연적인 것으로 머무른다. 그 때문에 종의 재생산은 지속성을 지니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제 외부와 내부의 필연적인 통일이 요구된다. 이런 필연적 통일은 상호작용하는 개체의 필연적인 만남을 전제로 한다. 이를 통해 내부는 외부를 통해 자기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를 보자. 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타자와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 자연에 대해 노동하기 위해서는 상호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회는 개체의 작용을 통해 자기를 지속하게 한다. 헤겔은 내부와 외부의 이런 필연적 관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내부는 단순한 자기 내로 반성된 동일성인 한 직접적인 것이며 따라서 본질인 동시에 존재이며 외부적인 것이다. 외부는 다양한 규정된 존재인 한에서 다만 외부이니 즉 비본질적인 것으로서 정립되면서 근거로 복귀하니 곧 내부로 존재한다.”(논리학, GW11, 365)
내부와 외부의 직접적인 통일에서 내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작용하는 개체 내에 머무른다. 반면, 내부와 외부의 필연적인 통일에서 내부는 이제 외부와 구분되는 독립적인 실존을 가지게 된다. 거꾸로 외부는 자체 내에서 내부를 지니게 된다. 그 결과 외부와 내부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유적 본질은 사회로서 개체들의 집합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실존을 가지게 된다. 또한, 상호작용하는 개체는 각자의 자기의식이라는 고유한 내면을 지닌다.
그 결과 인간은 본질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사회를 구성한다. 여기서 유적 본질을 사회로 실존하게 하는 것은 개인이 내적 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매개한다. 내부와 외부는 매개적으로 통일하게 된다.
“즉 각자는 바로 그것이 본래 그러한 것인 자신의 타자를 통해 관계의 총체성이 된다. 또는 거꾸로 말하자면 각각의 측면이 지닌 규정성은 이 규정성이 그 자체에서 총체성이라는 사실을 통해 다른 규정성과 매개된다. 그러므로 총체성은 형식이나 규정성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매개하고 규정성은 단순한 자기 동일성을 통해 매개된다.”(논리학, GW11, 365)
내부와 외부의 직접적인 통일은 이제 막 완성되었다. 앞으로 3편 실제성에 들어가면 직접적이고 우연적인 통일이 필연적이고 매개되는 통일로 발전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