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운동29-물질 개념의 자기모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운동29-물질 개념의 자기모순
1)
앞에서 물 자체의 외면적 규정이 일반적 규정 즉 성질로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성질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물 자체의 내재적인 것의 표현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타자[주관]에 반사하여 자기를 표현한 것이다.
즉 그것은 “외면성 속으로 이행해 들어가서 이를 통해 진정으로 자기 내로 반성된 근거”이며, “근거가 자신의 반발과 규정 속에서, 그 자신의 외적인 직접성 속에서 자기 관계하는 것”이며 “외적인 직접성인 동시에 본래적인 존재”이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성질은 주관적인지 객관적인지 모호하다.
이제 경험의 발전은 이런 성질을 하나의 독립적인 물질로 규정하게 한다. 그 과정은 주어 술어 관계의 전도를 통해 일어난다.
한편으로 사물은 이제 여러 성질을 지니면서 다른 여러 성질을 지닌 사물과 구별된다. (헤겔은 물 자체가 성질을 지니면서 표현을 바꾸어 ‘사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성질은 규정성을 지니고 서로 대립하지만, 타자를 통해 반사된 것이므로 서로 무차별하게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 성질은 이런 여러 사물에 공통된 것이다. 그 때문에 이제 성질은 그 자체가 자립적인 존재로 된다. 그 자체로 독립적인 것이면서 여러 사물을 자신에 귀속하는 성질을 헤겔은 물질이라 한다.
이제 성질은 사물에 속해 있는 속성이나 술어가 아니라 사물이 성질의 외연에 속하는 것이 된다. 여러 사물은 주어인 일반적 성질의 한 예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성질은 이제부터 사물의 일자를 이루는 무규정적이고 힘이 없는 결합에서 해방된다. 성질은 사물을 존립하게 하는 것인 자립적 물질이다. 성질은 단순하게 자기와 연속하는 것이므로 우선 그 자신에서 상이성이라는 형식을 갖는다. 따라서 그와 같은 자립적인 물질이 다양하게 성립하며, 사물은 이런 물질로 이루어진다.”(논리학, GW11, 334)
2)
헤겔은 성질로부터 물질로 이행하는 이 과정에 관한 예로 화학의 발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화학은 색깔이나 냄새, 맛 등의 성질을 물질적 원소로 규정해 색깔은 색소로, 냄새는 후각소로, 맛은 미소로 규정한다. 그 외 이런 물질로 열소나 전자기 물질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온도나 전자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성질을 자립적 물질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성질이 물질로 되면서 자립적인 것으로 된다.
물질은 한편으로 성질처럼 다른 것과 구별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물질은 사물처럼 자립적으로 존재하니, 때로 물질을 사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 물질은 양극을 이루는 성질과 사물을 결합하며 양자를 자기 속에 포함하는 것이다.
“성질이 물질로 이행하는 필연성 또는 성질이 진정으로 물질이라는 사실을 밝혀주는 것은 곧 이 성질이 본질적인 것이고 따라서 진정으로 자립적인 사물이라는 사실이다.”(논리학, GW11, 334)
성질이 물질로 되면서 이제 물 자체의 규정도 변화한다. 성질은 서로 대립하지만, 사실 이는 타자를 통해 반사된 것이라는 점에서 모순을 회피하게 된다. 그것들은 서로 무차별하게 존재하면서 그 밑바닥에 사물은 자기 관계하는 통일성으로서 개별자로 다만 그 자체로는 아무 규정이 없는 것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성질이 물질로 되면 물질이 자립적인 것으로 되면서, 하나의 사물을 벗어나 다른 사물 속에 연속되는 것이니, 이제 사물이 여러 성질을 동시에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하나의 사물은 하나의 물질이 존립하는 텅 빈 그릇과 같은 우연적인 존재이고, 그것의 물질로서의 규정 외 다른 규정들은 그 물질에 외면적이며 그것과는 무관한 개별적인 우연성으로 된다.
이 사물은 그 속에서 일반적 물질이 실현된 하나의 예로서 개별적인 사물로 된다. 예를 들어 열소라는 물질은 이런저런 사물 속에 있는 온도로 실현한다. 이때 온도를 지닌 개별적 사물이 지닌 다른 성질들은 모두 무의미한 우연적인 성질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런 단일한 물질로 이루어진 사물은 있을 수 없다. 물질이 자립적이면서 동시에 규정성을 지니는 한, 혼자서 고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규정성을 지닌 것은 다른 규정성과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물질은 항상 다른 물질에 대립하게 된다. 이런 대립은 부정성을 낳으니 서로 배척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관계 속에 있게 된다. 이런 물질의 대립적 관계가 모순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성질은 한편으로 동일적으로 자기에 관계하는 단순한 자립성으로서 규정이니, 그 속에서 부정적 통일, 사물의 일자는 지양된다. 또한, 이런 성질은 다른 한편으로 타자에 대립하는 규정이지만, 마찬가지로 자기 내로 반성된, 본래 규정된 일자인 한에서 그러하다.”(논리학, GW11, 335)
3)
물질은 자립적이면서 다른 물질에 대립하는 규정적인 것이다. 물질들은 서로 밀쳐 내면서 자립적이니, 하나의 사물 속에는 여러 물질이 서로 물질들이 있다고 할 때, 그것들은 서로 무차별하게 공존한다고 설명된다. 이 경우 사물은 하나의 텅 빈 그릇에 불과하게 된다. 사물은 이런 물질들을 외적으로 결합하는 것이어서,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것은 그 속에 담겨 있는 물질들이 어떤 것이고 어느 만큼 들어있는지에 의해 구별될 뿐이다.
하지만 사물은 지속하는 개별자이므로 이 속에서 물질들은 단순하게 공존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부정적으로 통일되어 하나의 개별자를 이루어야 한다. 어떻게 여러 물질이 하나의 통일체를 형성할 수 있을까?
이런 통일 가능성을 위해 우선[주로 고대철학에서] 제시되는 이론이 곧 구멍 나 있음[poros]이라는 개념이다. 하나의 물질은 자기 속에 구멍을 지니고 있어서 그 속에 다른 물질이 끼어들어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물질은 다른 물질의 구멍 속에 들어있다. 이와 같은 것을 상호 침투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들은 서로 자립적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로 통일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멍 나 있음의 개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왜냐하면, 어떤 물질이 구멍 나 있다는 것은 자기 속에 자기의 비존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물질은 자신의 절대적 타자 속에 자기의 존립을 가지며 자신의 비존재를 자신의 토대로 삼는다는 것이다.
“사물은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자신의 반대를 통해 즉 자신의 부정을 통해 자신과 자기 모순적으로 매개하는 것이 되며 또는 자립적인 물질이 다른 물질의 존립과 비존립을 통해 자기 모순적으로 자기와 매개하는 것이다.”(논리학, GW11, 337)
이런 자기 모순적인 물질은 자기를 유지할 수 없으니 물질은 이제 자립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렇게 물질이 자립성을 상실하면서 현상으로 된다.
“실존은 이제 사물 속에서 자신의 완전성에 도달한다. 즉 본래 존재하는 존재 또는 자립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비본질 실존이 하나의 존재 속에 있다. 따라서 실존의 진리는 그 비본질성 속에 그 본래적 존재를 가지거나 타자의 존립 그것도 절대적인 타자의 존립 속에 자신의 존립을 가지거나 자신의 무실함을 자신의 토대로 삼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존은 현상이다.”(논리학, GW11, 337)
4)
헤겔은 주에서 표상이 이런 모순을 피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그 방법은 무한소라는 개념이다. 존재와 비존재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모순은 여기서 존재를 무한소로 나누면서 이 무한소에서 존재와 비존재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무한소는 존재하는 것이며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무한소가 있다면, 모순은 회피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표상 작용은 이 안개 같은 대상 즉 구멍이나 작은 부분을 더 구체적으로 고찰할 때 그런 것들 속에 어떤 물질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물질의 부정을 인식하니, 여기 물질이 있고 그 옆에 그 부정 즉 구멍이 존재하며 그 옆에 다시 물질이 발견될 것이라는 말이다.”(논리학, GW11, 339)
“뿐만 아니라 그런 표상 작용은 이런 사물 속에 첫째 자립적인 물질과 둘째 그 부정 즉 구멍 나 있음을 지니면서 동일한 지점에서 다른 물질을 지니니, 이 구멍 나 있음과 물질의 자립적 존립은 서로 넘어 들어가 있어서 서로 부정하면서 침투를 침투한다.”(논리학, GW11, 339)
이런 주장은 수증기가 일정한 가스 속에 확산하더라도, 그 부피가 변함이 없다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 입증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헤겔은 이런 임시방편은 모순을 모순으로 보지 않는 방식인데, 이는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뒤로 미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헤겔은 오히려 모순을 모순으로 인정하고 여기서 운동을 찾아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