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 대 ‘난가’
2025년 5월 21일 소만(小滿):
비가 오고 모내기를 하는 절후 소만인데, 예전에는 논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생산도구의 발달로 논길에는 뛰엄뛰엄 모심기 기계들이 있다. 새참은 택배로 하는가? 잘 네모진 논들을 가로 세로 지르는 논길에는 오토바이가 지나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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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옛 이야기 속에는 신선(神仙)이 살았다고 하고, 그 하늘에서부터 세상을 환하게 밝힌다는 환인(桓因)에서부터 맑고 상쾌한 아침의 햇살을 받는 나무들이 잘 자라는 곳에 터전을 잡은 단군(檀君)도 있었다. 이런 선도(仙道) 또는 샤먼의 이야기는 오래 즐겁고 평온하게 살아가려는 욕망(탐욕이 아니다)을 표현하였으리라. 그러다가 마을 공동체가 모여서 도시를 형성하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체계화하면서, 제도를 전승하는 방식에서 입말의 소통을 넘어서 문자를 필요로 해서 중국의 문자를 받아들였고, 그러다가 불교라는 문화가 들어와 천년을 지내면서, 이 땅을 안양정토 또는 불국토를 만든다고 하면서, 불교는 백성들의 고통과 불안에 치유와 위로를 하는 방식으로 삼았다. 세계는 언제나 변전하였다. 토지 소유의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왔다고 여기는 변역(變易)은 삶의 태도를 바꾸었다. 차(茶)를 마시는 문화에서 누룽지의 숭늉을 마시는 문화로 이행으로는 불교에서 유교로 전향을 설명해 주지 못하지만, 학문의 변화와 삶의 양식의 변화가 의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맑스라면 생산도구의 변화와 이 도구를 전유(소유)하는 방식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것이다. 말하자면 토지를 절(사 寺)의 소유에서 왕조의 소유로 넘어가면서, 선후(先後)든 중경(重輕)이든 유학을 토대로 하는 지배층의 담론으로 넘어갔다고 할 것이다.
유교의 전래에서 주자학 또는 신유학은 불교에서 공과 색의 선문답(변증법적 논변)에 대항하여, 선진유학에다가 태극이 무극이라는 담론으로부터, 음양(陰陽)과는 다르지만 이기(理氣)를 중심 논의로 전개하였다. 이런 이원론은 서양의 근세에서 영혼과 신체(정신과 물질)와 유비적으로 닮은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담론을 생산하였다. 이런 담론의 대조 또는 유비는 하늘과 땅의 이원화를 대상화하여 다루는 방식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며, 둥글고 자전하는 지구 위에서 인간들이 산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그리고 인간은 지구상에서 자연에서 여러 종들 중의 하나의 종임을 알게 되었다. 점점 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물자의 소통이 늘어나고, 서양의 선교사들이나 동양의 군자들 사이에서 소통으로 세계가 하나임이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그런데 이런 소통의 초기, 17세기에 서양의 학자들이 놀란 것이 있다. 유일신 또는 신학이 없이도, 높은 도덕심과 국가체제를 형성할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중국은 유일신이 없음에도 백성들이 훌륭한 덕성을 지신 도덕적 삶을 살아가며, 지식인들이 체제 유지의 학문을 발전시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신학적 사유에서 타종교와 문화를 알지도 못하면서 비하시키는 경향은 오만과 치졸함이 섞여있었다. 동양에서는 자연에 대해 격물치지(格物致知)한다는 것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신 앞에서 평등과 달리, 동양에서 하늘아래 평천하를 이루기 위해 군자들과 학식 있는 선비들은 사적 탐욕을 벗어나 공화(화이부동)를 실행하려 한다는 점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서양은 기술발달과 도구의 무기화로, 타 지역의 지배를 통한 부의 축적을 신의 착한 부름을 받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들의 탐욕과 오만은 지구상에서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며 식민지를 확장하였다. 수탈과 약탈이 신의 부름일까? 지금도 그들이 행한 전쟁은 그들만의 신의 축복이겠는가? 동양의 도덕과 지식의 습득시기에 서양이 자연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탐욕(욕망이 아니다)의 서양인들은 식민지지배를 보다 확장하고 견고하게 하기 위해 교묘한 조합을 시도하였다. 이런 패거리의 내밀한 결탁(음모)은 19세기 말에 종교의 교리, 국가의 폭력, 지식의 독단, 이 셋을 결합하여 세 패거리(카르텔)의 야합을 이루었다. 이들이 행한 야합 또는 음모에는 벩송이 말하는 선전제미해결(악순환)의 오류를 감추고 있었다. 이 은폐에는 절대자 또는 완전성에 이르는 변증법이 있다고 선전했었다. 이 변증법에는 백성과 인민이 없다. 이런 전도된 사상을 뒤엎어서 프롤레타리아의 지배(독재)를 변증법으로 설명한 이는 맑스였다.
이들은 식민지 약탈과 강압은 기술 문명(문화가 아니다)을 전유하면서 도구를 무기화하였다. 패거리들이 무기를 가지고 식민지에 협박과 공포를 심으며, 패거리들의 재화의 획득을 혈안이 되어 욕망의 충족이라 가르치지만, 욕망이 아니나 탐욕과 도적질의 미화였다. 19세기말 제국주의와 20세기 후반의 제국은 국제질서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위협으로 여전히 도적질을 실행했었다. 물론 이런 약탈에 대해 저항과 항쟁을 통한 세계사적 혁명은 20세기 전반에 소련과 중국을 낳았다.
그럼에도 패거리들은 지배의 논리를 버리지 않았고, 더욱 견고한 제국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자신들의 삿된(메샹, mechant) 생각을 은폐하고, – 미군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주둔하면서 신식민지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수법은 여전하다 – 기술문명의 이식에 서투른(mauvais) 민중들에게 죄를 덮어씌우려는 방식으로, 식민지에 독재자를 심으며, 잉여 착취와 자원 수탈을 자행했다. 마치 중세의 마남 사냥을 하듯이, 그들은 식민지 민중을 억압하면서 이에 대해 저항과 항거를, 거꾸로 마치 항쟁자를 음모자처럼 말하는 것도 이 패거리들이었다. 이들은 반역이니 역적이니 하면서, 악순환의 잘못을 민중에게 넘겼다. 루소의 말대로 인민은 선량하게 태어났으나 사회와 제도의 감옥에서 살게 만들었다고 하듯이, 태어나면서 제국의 수탈을 당해야만 했다. 제국주의의 지배와 제국의 세계화는 두 가지 점에서 그들의 방식대로 이루어지 않았다. 하나는 생명계에서 유전자와 그 변이들은 과학의 발달로 질병 없고 고통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았지만 지구상에 질병과 비참은 여전하다. 다른 하나는 기술의 무기화를 통해 제국이 주도권을 가질 것만 같았지만 규소의 시대에 누리소통은 지배와 피지배의 방식을 바꾸어 문화의 다양성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과거가 현재를 살리거나, 죽은 자가 산자를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서, 기나긴 자기 터전에서 생명과 영혼의 생성 과정을 잊는 자 또는 무시하는 자는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를 잃고서 세계와 합일하는 것이 유일신앙자들의 망상이다. 자기를 잃지 않고서 세계영혼 속에서 자아의 영혼을 ‘존버’하면서 함양하는 것이 루소가 말하는 자기의 권리를 양도하지 않고 계약을 맺어 합의를 통한 일반의지로 실행하는 것이다. 일반의지 속에 개별의지는 자기를 잊지 않으면서 일반의지를 실행할 줄 알아야 한다. 규소의 시대가 다양체의 흐름으로 이를 증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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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에 독립운동가들의 집안은 피폐하고, 일제에 호의호식하던 일제 부역자(부일자)들이 미군이 들어오면서, 미국의 식민지를 자처하는 숭미자로 변하였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자치와 자주를 실행하려는 개혁가들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약칭 반민특위)를 만들었으나, 매국적이고 매판적으로 사적이익만을 챙기는 자들이 반민특위를 무산시켰다. 이번 계엄세력에게는 특별조사법을 만들어 꼭 신상필벌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런 자들이 80여년동안 상층을 구성하여 대중을 지배하였으나, 대중은 스스로 자치와 자주를 이루기에는 교육과 학습, 의식화의 과정이 거쳐왔다. 그 중에서도 우리 입말로 소통하고 우리 문자로 전승하는데 엄청난 노력과 내공을 쌓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저항과 항거, 항쟁과 광장시위를 하면서. 지금도 부일자와 숭미자들이 그런 짓을 하고 있으리라.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로, “범이 없는 골에 여우들이 설친다”고 하는 할배들은 일제 잔재가 나라를 말아먹는다고 걱정했다. 할배들은 일제의 부역자들이 이 나라를 일본에게 넘겨주듯이 숭미자들이 미국으로 넘겨주는 것을 걱정했다. 그 과정에서 범들의 후예는 몰락하여 개장수와 각설이가 되고, 제국주의 좀비가 제국의 주구(走狗)가 되어, 범 없는 골이 여우가 왕질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왕’자를 들고 나온 것은 그 패거리(음모자)들의 일부가 표면으로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공화국을 만들려는 대중과 인민의 저항은 수면 아래로 잠시 감춰져 있다가도 이어지면서, 적들의 심장을 향한 항쟁은 불쑥불쑥 솟아나왔다. 이 요상한 세력들은, 인민의 저항을 반체제, 반민주로라고 지 멋대로 규정하고, 마남사냥과 반국가주의로 몰아붙이면서, 자신들의 상층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였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은 전승의 이야기에서 “곰과 범”의 이야기에서, 왜 우리의 민담과 설화 속에서 범이 남아있는데 비해, 곰을 이야기는 사라졌는가. 문화의 전승은 백성의 입말에서 이어져 왔을 것이고, 우리 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범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1894 동학혁명으로, 그리고 1895년부터 공공연하게 우리 입말이 문자로 등장하였다. 마치 범이 독립운동을 하려 만주로 떠나고 난 자리에 여우와 원숭이가 설치듯이, 일제에서 조선어조차 말할 수 없는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광복후 입말과 문자화는 그 당시에는 지식인의 것이었으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대중화를 이어지면서, 공화국의 헌법에서 지적하듯이 국민 주권자이며, 인민주권 사상은 점점 대중화를 되어갔다. 1987년 이래 입말의 문자화와 가로쓰기가 전개되었고, 인민은 스스로 자치와 자주의 길을 찾아가면서, 인민이 존나 버티면서 기본심급이면서 최종심금이라고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법원도 최종판단의 결재를 인민에게 받아야 한다. 인민의 권리로 이명박과 박근혜를 감옥에 보내었고, 탈옥 중인 윤석열도 곧 감옥으로 보낼 것이다.
“지구는 둥글다”에서, 원주를 구성하는 모든 점들은 그 점이 하나하나가 중심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21세기에는 그 점이 트래픽(접합)의 다양체이다. 한반도가 다른 어느 터전들과 마찬가지로 고유성이 있고, 자치와 자주를 넘어서 자율성과 자발성이 분출되었다. 입말과 그 문자의 독특성은 새로운 문화의 전승과 확산으로 이어졌다. 사회의 도덕성은 인민의 것이며, 사회의 제도화가 인민의 것이라는 것라고 문자화하면서 제헌 헌법이래로 공화정을 추구해 왔었다. 그럼에도 매국적이고 제국의 주구의 지배에서는 공화가 아니었다.
정당정치는 상층은 자기들의 잘못(mal) 또는 삿된(méchant) 것을 감추고자하였고, 이를 드러내고 저항하는 세력에게 반국가, 반체제 또는 빨갱이로 몰았다. 제 눈에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끌을 보며 나무라는 방식은, 세 패거리들으 좀비들이 실행했던 방식을 그대로 이 터전의 인민들에게 강제하고 위협하였다. 군비, 검비, 법비, 재비 등이 이참에 드러났다. 국민은 굴복하지 않았고 20세기 후반 내내 저항과 항쟁이 있었듯이, 21세기에 촛불시위와 응원봉 빛축제와 키세스 시위는 새로운 문화의 창달이었다. 이런 운동과 분출은 한류라는 문화의 세계화에서, 스포츠에서도, 대중음악에서도, 영화에서도, 게다가 문학에서도 전 세계 대중들에게 감응과 공감을 불러왔다. 범이 내려왔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의 터전에서 누리소통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순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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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첫 사반세기에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의 터전에서 삶의 양식과 문화가 갑자기 세계 속에 있은 것이 아니라, 별종, 덕후, 존버들이 스토아 표현으로 노력(포노스) 내공(토노스)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출이 된 것은 단지 5년 사이이다.
하나는 코로나로 전 세계가 우왕좌왕하던 시기에 우리 문제인 정부는 새로운 방식으로 역병에 대처하여 우리나라가 자연스럽게 세계사에서 주목을 받았다. 역병은 공간의 구별이 아니라, 지구가 공전하고 자전 하듯이, 공간자체가 운동하고 흐른다는 것을 알게 했다. 지구가 움직인다고 해도, 살아가는 보통사람은 이 터전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여기며 습관적으로 산다. 그 습관의 방식에 젖어서, 어쩌면 세 패거리들이 대중 의식을 포획하고 포로로 삼고서, 노예 상태로 만드는 세뇌의 방식으로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를 대중들도 깨닫기 시작했다. 혼밥, 혼술, 혼일, 혼발신과 혼소통 등은 산다는 것이, 한 리좀이 다른 리좀들과 여러 방식으로 접속하는 가운데, 덩어리(트래픽)를 만들고 살아간다는 것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 리좀의 덩어리가 운동하고 있고, 기나긴 과거의 노력을 통한 ‘존버’의 특성이다. .
다른 하나는 여러 번 말했지만 철의 시대를 지나 규소의 시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것도 코로나 2년에 혼밥 혼술, 혼일, 혼소통(일인 유투버) 들로 누리소통 공간은 각각이 지구상의 한 점이 되었다. 이 점들 각각은 다방향으로 확장되고, 또한 접속의 덩어리는 리좀 덩어리처럼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이 도구로서 소통 방식에서, 방송과 신문과 다른 방식으로 쌍방이 정보와 문화를 생산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와 제국은 정보 또는 명령의 전달이라는 일방통행을 넘어서, 선전제의 해결 없이 담론과 판단을 강제하면서 지배하려 하였다. 그 20세기가 지나가고 21세기에 다양체의 활동은 제국의 통제가 바랐던 대로 일방통행이 될 수 없었다. 일방통행인 양식이 광기라는 것을 알아챈 것도 한 몫을 하였다. 제국이 광기라는 것이다.
서양 사상사에서 인간 류(인류)와 인간 종(인종)에 의한 구별은 논리학의 류와 종의 방식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 개인 또는 개체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뭔가 이탈하고 저항하고 반항하는 것으로 여겼고, 심지어는 이탈을 도착자로, 저항을 분열자(별종들)로, 항쟁을 악마 또는 빨갱이로 몰아가면, 세 패거리는 절대성과 완전성이라는 요상한 용어를 들먹이며 민중 또는 인민을 배제하거나, 포로를 만들지 못하면 제거하려 하고, 포섭되지 않은 자들을 개돼지 취급하기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패거리의 습관적 사고에는 탐만치가 가득 차 있으면서, 습관의 조건반사처럼 민중을 세뇌시켜 요상한 사건들을 만들었다. ‘국민의 힘’에서 서울의 강남구에 태영호를 내세우든 김정은을 내세우든 극우 꼴꽁들은 묻지마 투표를 하며 지지하였다. 이런 패거리 사고의 세뇌가 영남에서는 부지깽이를 내세우든 똥작대기를 꽂든 지지한다고 한다. 모든 사물이 ‘부타야!’라는 선승에게 부지깽이와 똥작대기도 부처이지라고 하듯이, 선거에서 우리 편에 투표하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또는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이다. 같은 단어 부지깽이라는 용어가 선승에게는 노력과 각성의 지표가 되는가 하면, 강남과 영남에서 하나님과 같은 신주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개선하고 개혁하여 통일로 나가는 운동은 여전히 있다. 요즘은 영세중립국으로 나가자고 하기도 한다. 생명체의 소통 방식은 아직도 해결해야할 부분이, 코로나 해결보다 무한정하게 많이 남아있다. 그런데 디지털의 세계는 누리소통의 확장이 기하급수적을 넘어서 불교의 숫자처럼 4제곱승으로 비약하고 있다. – 3제곱은 공간인데 4제곱승으로 확장은 무엇일까? 어쩌면 누리소통의 공간이 4제곱승일 것이다. – 이 비약의 미래를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신선만이, 붓타만이, 신만이 안다고 하면, 그것은 부정형(4승의 형상은 아무도 모른다)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누리 소통의 확장과 다양체의 흐름을 아무도 모르는 차원의 무한의 다양체가 펼쳐지고 있다. 이런 세계와 문화의 창달에서 입말과 문자(이미지 포함)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살아가는 방식은 젊은이의 사유와 놀이(게임)에 달려있다. 이 젊은이는 “난가”라고 하며 기다는 것이 아니라, 노력(포노스)와 내공(토노스)의 과정을 겪으면서 잘못(mal)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서투름(mauvais)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학습하면서 벗과 즐거이 유쾌하게 사는 방법을 찾는 존버(덕후, 별종)를 만날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 언제나 삶이 먼저이고 그 다음 사유하는 것이다.
코로나와 같은 생명체의 변이와 확장 속에서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제국이 없는 세계 속에서 또는 세 패거리가 없는 터전에서 사유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젊은이는 오래 깊이 사유할 수 밖에 없다. 열여덟에서 서른여덞 정도까지. 우리의 기나긴 과정에서 서투르고 착오와 오류도 있었지만, 우리가 창안해낸 입말과 문자화가 있으며, 누리소통을 통하여 문화의 창달로 널리 인류뿐만이 아니라 생명계도 전지구도 사유할 수 있는 길을 넓혀간다는 것은 얼마나 흥미로운 일까. 이런 임무에서 또한 우리 터전으로부터 지작할 수 있는 우리 입말과 우리 문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상쾌하고 통쾌한 일을 이룰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시라, 불평등 해소와 통일은 여러분의 덕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별종들이 제국주의와 제국에 저항하고 항쟁하였듯이, 존버와 덕후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통일은 도구의 무기화에서가 아니라, 도구를 널리 이롭게 사용하는 누리 소통에서 다양체의 발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 도구가 인민들 각각의 손바닥에 놓여있다, 쳇지피티의 문자화나 인공지능(AI)의 지식화와 달리 덕후들과 존버들의 창안과 생성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 생명학과 디지털의 발전은 철의 시대의 2천5백년의 과정을 거의 한 세기만에 이룰 것이라 한다. 생명과학의 정보축적 만큼이나 디지털 사용의 확장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우리의 자발성에 의한 입말과 문자화, 남북의 소통은 곧 이어질 것이다.
(4:11, 58PMA) (5:24, 58PMB)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