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ries by admin

보이지 않아도 있다 – 박지원, 「不移堂記」 [연암읽기 02]

전호근(경희대) 사함은 연암 박지원의 벗이다. 본디 대나무를 좋아했던 사함은 자신의 호를 죽원옹(竹園翁), 곧 ‘대나무집 늙은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연암이 막상 가서 보니 사함의 집에는 대나무가 한 그루도 없었다. 연암은 잠시 생각에 잠겼을 터. 그러고는 느닷없이 자기 스승이었던 이양천의 이야기를 꺼낸다. 연암의 스승 이양천은 일찍이 시·서·화에 뛰어나 삼절로 불렸던 이인상과 막역한 사이였다. 본래 제갈공명을 흠모했던 이양천은 이인상에게 […]

나는 누구일까? 내 인생길 (2)[치유시학]

? 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산속 움막으로 쫓겨 가다. 몸이 아프거나 외로울 때는 어머니가 끓여주던 미역국이 먹고 싶다. 싱싱한 생선과 생미역을 넣고 끓인 뜨거운 국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힘이 솟았다. 어머니는 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면서 안쓰러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미역국에서는 언제나 어머니의 냄새가 났다. 행복한 일상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에게 먼저 […]

세일러문의 국가[썩은 뿌리 자르기]

양정진(한국철학사상연구회) 1.‘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에 이어 복지국가 열풍이 찾아왔다. (행성X와 혜성 엘레닌을 사랑하는 음흉한 나에게는, 정의론 중에서도 왜 하필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인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뇌내망상의 세계를 만들어낼 신나는 구실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이 정의를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하기가 힘든 것 같다. 그리고 무지개의 끝에 숨겨져 있는 줄만 알았던 그 […]

자본에 친절한 국가와 벌거벗은 존재[썩은 뿌리 자르기]

박종성(건국대학교 강사) 우리는 자본의 운동을 원활히 진행시키고자 여러 장치들을 고안하는 국가가 벌거벗은 자들로 배제시키고 있는 존재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생존은 자본의 운동에서 야생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고용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실업자의 증대, 사회보장의 축소, 생존권의 와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경쟁의 원리로 방치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에서 드러나는 혼란을 제압하기 위해서 국가는 강권적인 태도로 […]

구보씨 여전히 소통을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 생각 12]

문성원(부산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구보씨가 이런 말을 처음 들은 건 대학교 때였다. 항상 재기가 넘치던 한 선배로부터였다.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어느 쪽에 속할까를 짚어보기 마련이다. 모든 걸 둘로 나누어본다는 건, 얼핏 생각하기에도 단순하고 마땅찮은 특성이다. 양분법이나 흑백논리처럼 좋지 못한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5)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5) 글: 이정호 (방송통신대 교수)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3. 고대 그리스인의 동성애 ? 소년사랑(1)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랑을 이야기하면 보통 동성애를 많이 떠올린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의 동성애는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동성애와 거리가 멀다. 오늘날의 동성애는 성인 남자들끼리 혹은 여자들끼리의 사랑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는 주로 어른 […]

자거라투스투라 소설가 김숨을 만나다[자거라투스트라 시장에 가다]

이병창(MEGA 사업단 공동대표, e 시대와 철학 자문위원) 자거라투스투라야, 왜 눈이 벌겋지? 요새 불면증이라도 생긴 거냐? 아니에요. 니체 아부지, 소설책 읽느라고요. 그 나이에, 아직도 소설을 읽느냐? 한심하다고 생각되지 않니? 니 친구들은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데…넌 권력의지란 없느냐? 니체 아부지, 아부지가 말한 ‘권력의지’라는 것 때문에 철학자들이 죽을 지경이에요. 아부지를 위해 변명하느라고 말이에요. 저는 그걸 […]

사랑,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이현재(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사랑, 배신 그리고 자살 송지선 아나운서의 투신자살이 5월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죽음을 두고 언론이 문제네, 악성댓글이 문제네, 우울증이 문제네, 야구선수 임태훈이 문제네 등등 말들이 많았다.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였을까? 자살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결과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일기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는 사실은 송지선에게 임태훈은 […]

나는 누구일까? 내 인생길 (1)[치유시학]

? 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거울 인간에게는 부끄러움이 있고, 이 부끄러움 때문에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영원히 감추어 두어야 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라면 삶은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 자신의 실상이 자신에 의해 가려져 스스로 소외될 때 우리는 기억 속에서 위안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그 기억이 쓰라린 경험과 함께 떠오를 때 위안은 문을 닫거나 눈을 감는다. 이러한 […]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4)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4) 이정호(방송통신대 교수)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2. 아프로디테(2) 아프로디테의 힘이 erga gamoio 즉 성적인 결합과 관련한 일에서 분명하고도 위력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호메로스 찬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는 아프로디테를 찬양하는 노래가 2편 실려 있는데, 그 중 긴 쪽은 가장 오래된 작품군에 속하는 것으로서 일찍이 기원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