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내 인생길 (1)[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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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거울

인간에게는 부끄러움이 있고, 이 부끄러움 때문에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영원히 감추어 두어야 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라면 삶은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 자신의 실상이 자신에 의해 가려져 스스로 소외될 때 우리는 기억 속에서 위안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그 기억이 쓰라린 경험과 함께 떠오를 때 위안은 문을 닫거나 눈을 감는다. 이러한 의지와 관계없이 고통스러운 기억은 모습을 달리하여 우리의 삶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며, 마음 속 옹이를 단단하고 크게 키운다. 비록 그 옹이가 나의 고통이고 나의 삶을 잠식하는 것일지라도 그 상처를 잡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을 잡고 있어야 나의 삶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옹이는 작은 방 곳곳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초여름인데도 두꺼운 커튼이 작은 창문을 반쯤 가리고 있었고, 방안 그 어디에도 사진이 없었다. 사진이 없는 작은 방, 과거와 단절된 채 현재의 시간만 있는 그 방이 할머니의 옹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화장품과 약병이 놓인 화장대의 거울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 큰 거울 앞에서 할머니는 아마도 비켜가는 시선으로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거울 앞에서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스스로를 비켜갔던 것일까. 그런 사이 옹이는 죽음처럼 단단하게 여물었을 것이다.

한하운 시인은 시 <자화상(自畵像)>에서 “한 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한 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얼굴은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모습이다. “지나는 거리마다 쇼윈도 유리창마다/얼른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이기에 그의 자화상은 옹이처럼 굳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일상에 언뜻 언뜻 비치는 모습은 한센병 이전의 처녀 적 고운 모습 그대로였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할머니의 손은 머리카락을 뒤로 단정하게 쓸어 넘기고 있었다. 방안에 앉아 있으면서 치맛자락을 가지런하게 펼치기를 반복하고, 81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리를 펴고 있었다.

“피부가 참 고우셔요.”라는 나의 말에 할머니는 턱짓으로 화장대를 가리켰다. “저거 좀 비싸게 주고 샀다. 저번에 화장품 아지메가 와서 새로 나온 건데 좋다 카더라.” 화장대 위에는 요즘 드라마 전?후의 광고에 나오는 화장품 병이 세 개 놓여 있었다. 수줍게 웃을 때나 나의 이야기에 크게 웃을 때도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 고와서 슬펐다.

 

눈물

할머니가 19살 때 한센병은 찾아왔다. 할머니는 명랑하고 친구와 노는 걸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학교수업 중에서도 체육시간이 가장 좋았다. 여름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문득 다리의 피부가 부옇게 보였다. 처음에는 때가 끼었나 싶어 문질러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날이 갈수록 다른 사람의 눈에도 띌 만큼 부옇게 변하며 건조해져 갔다.

“땀이 안 나더라. 다른 사람들은 덥다고 땀을 닦는데 나는 땀이 안 나. 그때는 몰랐지. 한참 지나서 땀이 안 난다는 걸 알았제.” 혹시나 했지만 단순한 피부병일 거라고, 곧 괜찮아질 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초여름인데도 계속 다리가 건조해서 어머니의 동백기름을 살짝 바르기도 해 보았지만, 나아지지 않고 얼굴까지 부옇게 느껴졌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체육 시간에 할머니는 혼자 그늘을 찾아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학교 가기가 싫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 날을 즐거워하며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짧은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을 뛰며

즐거워하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고통이 많고

내 앞에는 여러 가지 시련이 닥치나

절망에 싸였다.

<내 인생길> 부분.

할머니는 자작시 <내 인생길>을 천천히 읊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중간 중간 쉬어가며, 한숨을 크게 쉬며 나지막하게 들려주었다. 한센 병 이전의 할머니는 유일하게 종아리를 드러내고 마음껏 뛸 수 있는 체육시간을 매우 좋아하고 기다렸다. 종아리를 스치는 바람의 느낌도 좋았다. 하지만 남의 눈에 쉽게 띄는 종아리는 이제 감추어야 했다.

다리의 피부색이 변하기 전부터 얼굴과 몸이 붓고 손발에 힘이 없었다. 사랑에 빠졌던 할머니는 임신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머니는 한의원에 가기를 권했지만 임신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갈 수 없었다. 할머니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감추는 것뿐이었다.

고녀 시절에 할머니는 남자를 만났고, 그리고 고녀 졸업반일 때 임신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일본 순사 부장의 아들이었기에 드러내놓고 말할 처지도 못되었지만, 처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은 너무 부끄러워 감추어야 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지내는 위태로운 시간들이었지만 학교에 가는 것은 즐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발의 감각이 무뎌지고 눈썹이 눈에 띠게 빠졌다. 세수를 하고 얼굴의 물기를 닦은 후 수건에 묻어있는 눈썹을 떼어내면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졸업이 다가오자 모두 사진을 찍는다고 들떠 있었지만, 할머니는 불러오는 배로 인하여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방안에만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심한 백내장과 오랜 기간의 한센병 투병으로 동공의 색깔은 검은 색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눈물은 맑고 투명했다.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쓸어내리던 손, 오랜 시간을 홀로 눈물 닦았을 그 손은 뭉툭했다.

무너질 가슴이 남아 있었던가. 할머니는 안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손을 빼내어 치마 밑으로 감추었다. 할머니의 마음속 뜰은 텅 비어 있었다. 출입문 유리 너머로 보이는 마당에는 여름 햇살만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잡아주고자 하는 손마저 거부한 채 할머니의 눈물은 또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할머니의 감정이 살아있었음을 말한다. 60여 년 동안 누구에게도 열어서 보여주지 않았던 자기만의 뜰을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할머니의 외로움은 많은 사람들이 얽히고 설켜서 살아가는 곳이 세상인데, 그 곳에서 홀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불안에서 온 것이다.

우리는 ‘홀로 선 사람끼리 만나 둘(서정윤, <홀로서기>)’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가슴을 치며 울 수조차 없었던 할머니가 기대어 살아 갈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할머니는 임신을 하고, 또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한센병에 걸렸던 것이다.

 

슬픔

외롭다는 것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이 비어있음을 말한다. 김소월은 <산유화>에서 청산에 홀로 피어 있는 꽃의 외로움을 노래했다. 청산과 꽃 사이에는 저만치 거리가 있듯이 사람이 있는 세상과 할머니 사이에는 텅 빈 공간이 놓여 있어서 건너갈 수가 없었다.

몸의 이상과 불러오는 배를 누군가 알아볼까봐 방안에 숨어 지낼 때, 할머니에게 친구들은 가장 큰 위안이었다. 친구들은 거의 매일 찾아와 그날의 일들을 말해 주었고, 할머니와 마쓰시타 사이의 전령 역할을 해 주었다. 그때쯤 동네에는 할머니가 한센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친구들은 그 소문에 개의치 않았고, 할머니도 애써 부정했다.

소문은 점점 더 거세져서 언제나 학교를 마치면 할머니에게 와서 한 이불 밑에 같이 발을 넣고 어깨를 맞대며 웃고 장난치던 친구들이 하나 둘 찾아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온 친구는 방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밖에서 다시는 올 수 없다고 했다. 여기 온 걸 알면 부모님으로부터 크게 혼날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자기를 떠나갔던 친구들에 대하여 담담하게 말했다. “온 동네에 소문이 파다했제. 그래도 친구들은 살짝 나와서 나하고 이불 밑에서 다리를 포개기도 하고, 아들이가 딸이가 농담도 했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보고 니는 연애도 하고 좋겄다고 부러워했제. 갸들도 어쩔 수 없었는 기라.”

하지만 그 당시의 할머니는 친구나 동네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앞의 현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는 자신의 예감대로 한센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슬픔이 끝없이 밀려 왔다. 그 슬픔의 눈물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코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 이렇게 땅 위에는

모래알같이 많은 인간이 살고 있지만

내게는 나병이라는 걸 내립니까.

하나님도 원망하고 싶고

내 자신도 미워

차라리 이 땅 위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내 인생길> 부분.

할머니는 자신을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니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게 더 좋을 뻔’한 존재로 생각한다. 이러한 자기 존재의 부정은 자기의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게 한다. 뜻밖에 찾아 온 나병은 할머니의 삶을 죽음과 같은 어둠 속에 놓이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었기 때문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육체적인 질병에 의해 마음은 병들어도 삶은 지속된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절망에 빠지게도 하지만, 또 한편 자신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희망도 품게 한다. 이 때문에 눈물 속에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할머니는 나를 만났을 때, 자신이 살아 있음을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세상의 온갖 재앙과 슬픔이 쏟아져 나왔고,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희망이다. 인간은 불행 가운데서도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희망 때문에 더 절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희망이 있어서 고통을 견디기도 한다. 할머니에게 임신과 한센병은 더 할 수 없는 불행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자기만의 옹이를 진주로 키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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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게이아(Hygeia)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이는 흔히 의약과 치유의 신으로 알려진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us)와는 또 다른 치유의 신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이나 약으로 환자의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신이라면, 히게이아는 환자 자신의 자연치유력을 돌봐주고 길러주는 치유의 신입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치료의학의 수호신이라면, 히게이아는 간호학과 위생학의 수호천사로 불립니다. [히게이아의 시학]은, <e시대와 철학>과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서 바로 치유의 여신 히게이아의 정신을 계승하여, 문학 특히 시를 통해 환자의 삶과 소통하고 환자의 자기 치유를 유도하는 하나의 치유인문학이자 인문의학의 성격과 내용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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