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운동40-필연에서 자유에로(1) 우연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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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변증법 반성운동40-필연에서 자유에로(1) 우연성

1)

헤겔에서 양상 개념의 출발점은 우연성이다. 이 우연성을 헤겔은 추상적인 필연성으로 본다. 여기서 가능성과 실제성의 관계는 실존하는 개체들의 자연적 만남에 의해 일어난다. 자립적인 개체는 서로 무차별하니, 그 만남은 우연적일 뿐이다.

여기서 실존은 개체들의 집단인 실체를 바탕으로 한다. 사실 실존은 서로 무차별하니 그 관계는 공허하다. 하지만 마치 물체가 공허한 공간 속에서 통일되어 있듯이 이런 실존들도 외적인 반성에서 본다면 차라리 이 공허를 유적 본질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공허한 본질 위에 존재하는 실존에서 양상 개념은 사실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실존은 본래로서는 지속적인 본질을 지닌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실존을 외적 반성을 통해서 보면, 운동을 부여할 수 있으며 여기에서도 양상 개념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실존을 이런 공허를 본질로 지닌 것으로 보면, 가능성이고 이것이 실현된 집단 속에서 개체를 보면 이것이 실제성이다.

자연에는 이런 무차별한 실존은 없다. 이런 무차별한 실존과 그 관계로서 공허한 공간은 형식논리학(추상적 사유)에서 다루어지는 사태의 관계에서 발견된다. 형식논리학에서 동일률이나 모순율은 형식일 뿐이며 이 형식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공허한 것이다. 형식논리학에서 사태는 각자 고립된 것이며 서로 무차별한 것이니, 공허한 형식이 이 사태의 본질이며 서로 무차별한 사태는 이 공허한 형식을 통해 서로 관계할 뿐이다.

자연계에서 이런 실존에 해당하는 것을 찾자면, 정량의 세계일 것이다. 정량은 하나의 일자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서로 양적인 차이면 갖는다. 그러므로 이 정량은 일자의 양적 공간 속에 들어 있으며 여기서 각자는 양적인 차이는 질적으로 서로 무차별하다.

2)

이제 반성에서 사용되는 양상 개념을 보자. 반성 속에서 어떤 것의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적 본질이 찾아진다. 그것은 어떤 가능한 것[An sich Sein]이다. 이 어떤 것을 단순히 현존 또는 실재한다고 하지 않고 이미 이것을 이미 반성 속에 집어넣고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성 속에 실제적인 것은 이미 그 근거인 본질을 통해 규정된다.

이제 처음 다루어지는 양상 개념은 실존과 관계한다. 실존은 각자 자립적인 것이며 서로 무차별하다. 그러므로 실존에 어떤 구체적인 유적 본질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추상적 사유 또는 순수한 외적 반성을 통해서 이 실존들은 하나의 집단 속에 집어 넣어지는데 이 집단은 사실 공허를 그 관계로 하는 집단이다.

여기에 양상 개념을 의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실존하는 것의 유적 본질은 공허이며, 이 공허가 실현되면서 무차별한 집단이 실체다. 공허를 본질로 가진 실존이 형식적 가능성이며 공허가 실현되어 공허 혹에 있는 실존이 곧 형식적 실제성이다.

여기서 형식적 가능성과 형식적 실제성이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추상적 사유 속에서 공허한 본질을 지닌 것으로 보면, 그게 형식적 가능성이고 이 어떤 것을 서로 공허를 통해 관계한 집단 속에서 보면, 그게 실제적 가능성이다.

실존의 본질인 공허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한편으로 그것은 모든 실존의 본질이므로 순수한 동일성이며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동일성이다. 그것은 마치 텅 빈 공간(유클리트 기하학적 공간)처럼 모든 것들을 수용하지만, 그 자신은 어떤 내용도 없는 것이다.

3)

외적 반성은 공허를 본질로 하므로 어떤 것도 사유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 공허가 실현된 것으로 즉 실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심지어 가장 부조리한 것조차 공허를 본질로 하면 실제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사물이 하늘로 떨어지는 것도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도 여기서는 실제적인 것이다. 다만 외적 반성(형식적 사유)은 모순율을 따르므로 실제적이 되려면, 이 어떤 것은 형식적으로 모순적인 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처럼 공허를 근거로 삼는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니, 어떤 실제성은 이 공허를 근거로 하는 무한히 많은 것 중의 하나이니 그 자체가 실제적이기는 하더라도 ‘다만 하나의 가능한 것[Nur Moegliches]’(논리학, GW11, 383)이다. 그러므로 실제성의 본래 가치는 오히려 그것이 가능한 것 중의 하나이라는 데 있다.

거꾸로 공허라는 유적 본질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니, 공허라는 가능성은 “모든 것을 향해 열린, 관련성이 없으며, 무규정적인 용기”(논리학, GW11, 382)라고 한다. 이런 공허라는 가능성은 실제성에 비추어 본다면 가치가 없는 그 자체로 공허한 것일 뿐이다.

4)

공허는 가능성이고 근거이니, 자기를 실현해야 한다. 단순히 가능적일 뿐이라면 가치가 없다. 그것이 실현되어야 가치를 지닌다. 그러므로 가능성은 당위이다.

그러나 공허는 근거이지만, 비어 있는 것일 뿐이니, 자기를 실현하지 않을 수 있다. 자기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와 반대되는 것이 실현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A=A라면, -A= -A이다.(A가 가능한 것이라면, -A도 가능한 것이다)

이는 형식논리학에서와 같다. 형식논리학에서 형식 속에는 어떤 내용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모든 실제적인 것이 그런 형식논리에서 가능하니 p가 실제라면, -p도 실제다. 형식논리는 한편으로 모든 세계에 적용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떤 세계에도 적용될 수 없다. 어떤 세계도 모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형식논리는 순수 사유 공간 속에서의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므로 형식논리학은 모순율을 원리로 하지만, 그 자신 가장 모순적인 것이다.

“가능한 것은 두 가지 규정을 갖는다. 다만 가능한 것이며 마땅히[Sollen] 형식의 총체성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당위가 없는 가능한 것은 본질 규정 자체이다…. 이런 가능성은 다만 계기이고 절대적 형식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정립된다. 이 가능성은 잠재적 존재이며 ..그에 못지 않게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가능성은 자기 자신에서 모순이기조차 하며 불가능한 것이다.”(논리학, GW11, 382)

외적 반성 속에서 실제성은 공허의 실제성이고, 공허는 실제의 가능성이니 양자는 상호 자기의 타자로 이행하는 가운데 통일된다.

“따라서 이 실제성은 단순한 존재이거나 실존이지만, 그 진리는 정립된 존재 또는 가능성이라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정립된다. 거꾸로 가능성은 자기 내 반성이거나 잠재적인 존재인 한에서 정립된 존재로 정립된다. 가능한 것은 실제성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실제적인 것이다.”(논리학, GW11, 384)

그러나 공허는 실제적으로 되지 않는 것이기에 가능성이며 어떤 것이 실제적이려면 그것에는 공허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형식적 가능성과 형식적 실제성은 서로 대립한다.

5)

여기서 가능성과 실제성을 매개하는 것이 곧 개체들의 관계이다. 실존하는 개체들이 서로 무차별한 것이고 우연한 만남을 통해 어떤 가능한 것이 실현되니, 이런 실현은 개별적인 것인 것에 그치므로 우연적인 것이다. 헤겔은 여기서 등장하는 우연성을 형식적 우연성이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연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연한 만남[Tyche]’이라고 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 우연한 실현에서, 그 근거는 공허이니, 그것은 심연[Ab-Grund: 근거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연한 실제성은 심연에 걸쳐 있는 것이고 이 심연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근거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생각해 보면, 공허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니, 그런 점에서 이 공허를 통해 실제적인 것은 필연적이다. 이런 공허라는 필연성은 알지 못하는 필연성(운명)이며, 헤겔은 추상적(형식적) 필연성이라 한다.

이미 앞에서 우리는 모든 실존이 그 자체 심연을 토대로 한 것이면서 동시에 근거가 정립된 것이라 했다. 마찬가지로 우연하게 실현된 것은 근거가 없으며 동시에 충분한 근거를 지닌다. 다만 우리가 그 근거를 알수 없는 근거일 뿐이다.

“우연적인 것은 우연적이므로 근거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연적인 것은 우연적이므로 근거를 지닌다.”(논리학, GW11, 384)

여기서 형식적 실제성은 곧 형식적 가능성이며, 양자는 서로 직접 전도한다. 하나의 실제성은 곧 모든 가능한 한 것 가운데 하나인 가능한 것이며, 가능한 것은 무엇으로라도 실현되는 것이니, 이미 하나의 실제성이다. 이런 전도, 끊임없이 요동하는 전도가 곧 우연성이다.

이런 우연성은 다시 필연성과 서로 부단히 전도한다. 우연적인 것은 공허를 근거로 지닌 것이니 필연적인 것이고 필연적인 것의 근거가 공허이므로 그것은 우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형식적 우연성은 자기 모순적인 것이다.

“두 가지 규정[실제성과 가능성]의 생성이 벌이는 이 절대적 동요가 곧 우연성이다. 그러나 각자는 직접 대립물로 전도하므로 이 우연성은 이런 동요 가운데서도 전적으로 자기 자신과 합일하며 이와 같은 양자의 동일성 즉 하나가 다른 것 속에 갖는 동일성이 필연성이다.”(논리학, GW11, 384)

앞에서 형식적 실제성은 모순율을 따른다고 했으나, 그 자신이 가장 모순적이다. 이런 모순을 통해 형식적 가능성은 상대적 가능성으로, 우연성은 개연성으로 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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