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운동41-필연에서 자유로(2) 개연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운동41-필연에서 자유로(2) 개연성
1)
형식적인 우연성은 무차별한 실존에서 발견되는 양상 개념이다. 자연계의 어떤 사물도 이런 무차별적 실존은 아니다. 이런 실존은 형식논리학(추상적 사유)에서 파악하는 사태이다. 형식논리학에서 모든 사태는 형식적 동일성 또는 공허한 형식을 제외하고는 내용상 서로 무차별하다. 이런 공허한 동일성(유적 본질)을 지닌 실존이 형식적 가능성이고, 무차별한 집단을 이루는 실존이 곧 형식적 실제성이다.
자연 세계에서 존재하는 대부분 사물은 실존에 속한다기보다 현상에 속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상 편에서 설명했듯이 현상으로서 개체들은 한편으로는 자립적이어서 서로 무차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법칙 관계를 맺는다. 이 법칙 관계 속에서 각자는 부정성을 지니고 타자와 통일된다.
마찬가지로 가능성을 실제성으로 매개하는 개체는 무차별한 실존에서 자립적인 동시에 법칙 관계 속에 있는 현상으로 발전하면서, 양상도 형식적인 필연성 즉 우연성에서 실재적인(구체적인) 필연성 즉 개연성으로 발전한다. 헤겔은 이를 상대적인 필연성이라고도 한다.
또, 앞에서 우연성이 정량의 세계에 상응했다면, 개연성은 정량이 지양된 것 즉 척도에 상응한다. 단칭 판단에서 정량은 서로 양적으로 동일하면서도, 질적으로 무차별하니 그 관계의 장은 텅 빈 공간이었다.
정량이 지양된 척도는 두 정량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수적으로는 분수로 표현되는데 이런 척도는 특칭 판단을 통해 표현된다. 이 척도는 두 정량의 관계인데, 이 관계 때문에 한편으로 한 요소는 자립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다른 요소에 의해 제약된다. 이런 자립성과 제약된 관계라는 이중성 때문에 척도는 곧 현상에 속하는 것이며, 양상에서는 개연성에 상응한다.
현상에서 실체는 현상의 총체인데 이는 곧 다양한 법칙 관계가 서로 교차하는 세계가 될 것이다. 이 세계가 흔히 우리가 자연계라고 알고 있는 세계이다. 이 자연 세계는 법칙의 필연적 관계와 그 법칙 상호의 우연적 교차가 결합한 세계다. 생물계에서는 생태적 관계가 전형적으로 여기에 속한다. 그것은 진화의 법칙을 따르면서도 그 진화는 맹목적이다.
앞에서 실존에 적용하는 양상 개념이 의제적이라고 했듯이 여기서 현상에서 적용되는 양상 개념도 마찬가지로 의제적이다. 현상의 법칙 관계는 그 자체로는 가능성이 실현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의제적으로는 하나의 현상에 내재하는 가능성이 이 관계를 통해 실제적인 것으로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개연성에서 출발점은 하나의 구체적[real: 실재적] 실제성이다. 이 실제성은 하나의 현상을 말한다. 이런 현상은 한편으로 구체적 내용을 지닌 자립적인 실존이다.
다른 한편, 하나의 현상으로서 실제성은 다른 현상과 법칙 관계 속에 있다. 그런 관계 속에 있으므로 하나의 현상은 다른 현상으로부터 이미 반성된, 정립된 실존이다. 이 실제적 현상은 다른 현상으로부터 반성된 것이므로 구체적[real: 실재적] 내용을 지닌 가능적 존재[An sich Sein]다.
또한, 하나의 실제성은 이런 법칙 관계 속에서 다른 구체적 실제성에 대해 그것의 가능성이 된다. 이 가능성이 실현된 구체적[real: 실재적] 실제 역시 특정한 내용을 지닌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실제성은 가능적인 것이 지닌 구체적 내용을 근거로 해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새로 실현된 실제성 역시 독자적인 자립적 실존을 갖는다.
“이 구체적[rea] 실제성 자체는 처음에는 다양한 성질을 지닌 사물, 실존하는 세계이다. 그러나 이 실제성은 현상 속에서 해소되어 버리는 실존이 아니라 실제성인 한에서 동시에 잠재적 존재이며 자기 내로 반성한 존재다. 이 실제성은 단순한 실존의 무차별한 다양성 속에서도 자기를 유지하니, 그것의 외면성은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인 관계이다.”(논리학, GW11, 385)
3)
구체적 가능성에서 구체적 실제성으로 전환은 존재론에서 일어나는 타자로의 이행[Uebergehen] 운동(예를 들어 빨간색이 그 부정인 파란색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런 전환은 현상에서 일어나는 법칙 관계(“존재하는 어떤 것이 타자에 관계하는 것”)도 아니다.
양상의 운동은 근거 관계를 통해 내적 유적 본질이 외적인 실체로 드러나는 운동이다. 여기서 가능성에서 현실성으로 동일한 근거, 본질, 형식이 전이된다. 그러므로 헤겔은 이 관계를 절대자가 자기를 계시하는 것[Menifestat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것이 미치는 영향, 실제화[wirken]를 “그것이 산출하는 타자를 통해 알려주며”, “하나의 자립적인 것이 다른 자립적인 것 속에서 자신의 특정한 본질규정을 갖는 것”이다.(논리학, GW11, 385-386)
형식적 가능성은 무엇이든 가능하며 형식적 어떤 것도 형식적으로는 실제적이다. 그러나 구체적 가능성과 구체적 실제성에서 존재하는 근거 관계를 통해서 보면, 가능성과 실제성은 한계를 지닌다.
근거 관계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형식과 내용 그리고 조건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대립하는 형식의 통일이 내용이며, 내용이 현존하는 조건에 따라서 실존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의 실제성은 그것이 지닌 내용이 포함하는 다양한 형식에 따라서 여러 근거, 여러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거꾸로 하나의 가능성은 다양한 현존이라는 조건을 통해 여러 실제성으로 실현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가능성과 실제성 사이에는 근거 관계가 존재하므로 여기서 양자 사이에 구체적 본질이 동일하게 존재하는 한, 실제성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도 제한되며, 가능성을 현존하게 하는 조건도 제한되니, 어느 편에서나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형식적 가능성은 앞에서 말했듯이 다만 형식적이므로 내용의 구별에 무차별하다. 그러므로 p가 가능하다면, -p 역시 가능하다. 그러므로 사태의 형식에서는 무모순적이지만, 사태의 내용상 모순이 될 수 있다.
구체적 가능성 역시 이와 무모순성과 모순성을 동시에 가진다. 하나의 구체적 실제성의 조건으로 여러 구체적 가능성이 있다. 이 여러 구체적 가능성은 서로 통일되어 하나의 실제성을 이룬다. 그러므로 이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가능한 것은 그것이 지닌 그 자체 존재 때문에 그것이 지닌 단순한 내용 규정에 따라서 보더라도 모순되지 않는 것 즉 형식적으로 동일한 것이지만, 그런 가능한 것이 전개되고 구별된 상황이나 그것이 관련된 모든 것들을 따라서 보더라도 자기 동일적인 것으로서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논리학, GW11, 387)
동시에 이 구체적 가능성은 조건에 따라 여러 실제성을 실현하니, 이 구체적 실제성은 서로 상이하며, 심지어 서로 모순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구체적 가능성은 형식적 가능성처럼 그 자신이 모순적인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로 이 가능한 것은 자기 내에서 다양하며 다른 것과 더불어 다양한 관계 속에 있으므로 이런 상이한 것은 본래 대립으로 이행하니, 이는 모순적인 것이다.”(논리학, GW11, 387)
4)
헤겔은 이 운동에서 매개가 되는 구체적 가능성은 구체적인 실제성이 부정된, 정립된 것이면서 다시 자기를 부정하여 다른 구체적 실제성으로 나가니, ① 가능성은 기존의 실제성이 반성된 또는 정립된 것이며 이 가능성이 다른 실제성으로 실현되는 것은 “정립된 존재 자체가 정립되는 것”(논리학, GW11, 388)이고 실제성이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이니 이런 점에서는 필연성이다.
“구체적 가능성의 부정은 그 가능성이 자기와 동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가능성이 자기를 지양하는 것은 이런 지양이 자기 내에서 반발하는 것이므로 이 구체적 가능성은 구체적 필연성으로 된다.”(논리학, GW11, 388)
다시 말하자면 가능성은 실제성의 가능 조건이며 그런 점에서 가능성은 자기가 실현하는 실제성과 내용상 동일하니 “실제성을 그 자신에서 지니며” “달리 될 수는 없는 것” 즉 필연적인 것이다. 즉 “그런 조건이나 상황 아래서 어떤 것은 다른 결과를 이룰 수 없다.”(논리학, GW11, 388)
그러나 이 필연성은 제한된 상대적인 필연성 즉 개연적인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법칙 관계를 이루는 ② 두 현상은 동일성과 동시에 무차별성을 가지고, 아직 외적 반성을 완전하게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칙 관계가 출발점으로 삼는 구체적 가능성은 다만 “규정된 실제성”이고, “직접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규정성을 다양성을 지닌 실존하는 상황에서 가지니” (논리학, GW11, 388)즉 이 법칙 관계는 일정한 상황 안에서만 작동한다.
“그러나 이 필연성은 동시에 상대적이다. 즉 필연성은 그 출발점이 되는 전제를 갖는다. 필연성은 우연적인 것에서 자신의 출발점을 갖는다.” (논리학, GW11, 385)
양자에서 동일한 내용이 이처럼 각자의 자립성에 외면적이므로 이 내용 자체가 특정한 것, 실재하는 것으로 된다. 따라서 가능성의 실제성으로의 전환은 내용의 동일성 때문에 필연적이지만, 동시에 “이 내용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우연성을 갖는다.”(논리학, GW11, 388)
그러므로 이런 필연성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즉 그것은 필연적인 동시에 우연한 것일 뿐이다. 헤겔은 이런 필연성을 구체적 또는 상대적인 필연성이라 하며 동시에 곧 구체적 우연성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상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필연적인 것인 동시에 우연적인 것이다.
5)
구체적 가능성과 구체적 실제성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내용의 동일성은 형식의 차이와 결합되어 있으며, 서로에 대해 외면적으로 관계한다.
“실재하는 필연성이 지닌 상대성은 내용에서 드러나는데 그 방식을 보면 그 내용은 다만 처음에는 형식에 무차별한 동일성이고 따라서 그 형식으로부터 구별된, 일반적으로 말해 특정한 내용이다.”(논리학, GW11, 389)
여기서 가능성과 실제성은 한편으로 전제된 자립적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타자와 관계 속에 있고 타자를 매개로 자기 내로 복귀한다.
“이 필연성은 그렇게 되는 것을 통해 가능성과 실제성의 아직 자기 내로 반성되지 않은 통일에서 출발한다. 이런 전제와 자기 내로 복귀하는 운동은 아직 분리되지 않는다.”(논리학, GW11, 388-389)
또는 이런 매개 운동은 자립적인 각자에 외면적이어서, 자립적인 것 자체가 자기로부터 전개하는 운동은 아니니, “필연성은 아직 자기 자신으로부터 우연성[자유]으로 규정된 것”(논리학, GW11, 385) 즉 절대적 필연성, 자발적인 필연성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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