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운동39-헤겔 양상 개념과 가능 세계 의미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운동39-헤겔 양상 개념과 가능 세계 의미론
1)
‘현존’(또는 존재), ‘실존’, ‘현상’, ‘실제성’(또는 현실) 등 개념은 일상적으로는 섞어서 사용하지만, 헤겔 논리학에서는 명백하게 구분되어 사용된다. ‘현존’은 타자와 관계하고 있으므로 타자로 이행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자연 물체에 해당한다.
‘실존’은 본질이 자기를 정립하여 직접적인 존재로 된 것이다. 실존은 본질론에서 출발점이 된다. 그것은 자립적이어서 아무 근거 없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본질의 반성운동을 매개로 해서 나온 것이다.
이런 실존이 한편으로 자립적이면서도 다른 실존과 법칙 관계 속에 한 계기가 되면서 부정성을 띠게 된 것이 ‘현상’이다. 실존이 현상으로 이행하는 것은 실존 속에 감추어진 본질이 그만큼 드러나게 된 것이다.
법칙 관계가 상호 작용으로 나가면서 내부와 외부의 관계가 출현한다. 구체적으로 생물체의 암수 관계이다. 여기서 대립하는 개체가 결합하면서, 개체의 종이 재생산된다. 여기서 개체는 서로 결합하여 집단을 이루며, 개체가 지닌 속성은 서로 결합하여 유기체의 본질을 이룬다.
이 관계를 거꾸로 서술하면 유기체를 이루는 통일된 본질이 대립된 속성으로 분화되어 서로 결합하는 개체의 집단이 출현한다. 여기서 유기체가 지닌 대립하는 속성의 통일성 즉 본질이 내부이며 유기체적 개체가 서로 관계하여 이루는 집단이 외부이다. 속성의 통일성이 곧 개체가 이루는 관계로 된다.
이런 내부와 외부의 합일이 곧 실제성이다. 이 실제성에 이르러 본질을 넘어 실체라는 논리적 범주가 등장한다. 본질론에서 처음 반성운동을 통해 설명할 때 (즉 단순한 유기체에서) 종적 본질은 개별 개체의 자기 부정을 통해 지속한다. 그런데 이제 내부와 외부의 관계에 이르게 되면(즉 복잡한 유기체에 이르면) 유적 본질은 서로 대립한 개체로 분화하여 이들의 상호 결합을 통해 자신을 재생산한다.
이 유적 본질은 아직 내적 형식이기에 헤겔은 이를 절대자라 한다. 이 내적인 유적 본질이 개체들의 집단으로 실현되면 그것이 곧 실체다. 이 실체가 우연적인 집단에서 필연적 집단으로 발전하면서, 다시 말하자면 추상적 필연성의 집단에서 자유로운 집단으로 발전하는 것이 3편 실제성 편에서 지금부터 다룰 문제가 된다.
2)
논리학 본질론 마지막 3편의 제목은 실제성이다. 그 1장은 실체를 다루는데, 이것은 실체의 세 가지 개념을 다룬다. 즉 절대자, 속성, 양상이다. 처음 추상적[또는 잠재적] 동일성으로서 절대자는 마지막에 자기를 계시하여, 구체적 실체[절대적 절대자]가 된다.
이 운동 과정에서 잠재적 동일성으로서 절대자[유적 본질]가 곧 가능성으로 규정되고, 구체적으로 실현된 동일성[즉 실체]이 곧 실제성으로 규정된다. 즉 가능성과 실제성은 실체가 전개하는 운동의 출발점과 종착점이라는 단계이다. 가능성은 유적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며 실제성은 그것이 실현된 개체의 집단을 의미한다.
내부가 외부로 실현 운동을 헤겔은 존재론에서의 ‘이행’ 운동이나 본질론에서 ‘반성’ 또는 ‘비춤’[Scheinen]의 운동, 또는 제작이나 외화[Ausserung]과 구별하여 이를 ‘계시’[Menifestation], ‘펼침’[Auslegung]으로 규정했다.
이 계시는 곧 자기를 이중화하는 것이다. 내적인 것, 가능적인 것을 외적인 것, 실제적인 것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마치 예술가가 실재를 묘사하는 것과 같은데, 이런 묘사는 하나의 물질(실재)에서 다른 물질(색채나 소리 등)로 옮겨놓는 것이라면 다만 여기서는 가능성에서 실제성으로 옮겨놓는 것이다.
가능성과 실제성이 이렇게 운동의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우연성과 필연성은 이 운동을 매개하는 과정 즉 가능성과 현실성 사이의 관계다. 즉 가능성이 실현되어서 실제성으로 가는 운동 과정은 우연적(추상적 필연성)일 수도 있고 개연적(실재적real 필연성)일 수도 있으며 필연적(절대적 필연성)일 수도 있다.
이런 실현 과정을 매개하는 것은 개체들의 관계다. 이런 개체는 한편으로 자립적 개체이고 서로 무차별하지만, 다른 한편 상호 결합하면서 절대자로 복귀하게 된다. 이때, 결합하는 두 개체의 만남이 자연에 맡겨져 개별적인 것에 그치면 이 관계는 우연적인 것에 그친다. 물체에서처럼 법칙을 통해 매개되면 개연적으로 되고, 생물체의 욕망에서와같이 합목적적 결합이 일어나면 이 관계는 일반성적인 것 즉 필연적으로 된다.
3)
위에서 이미 간략하게 헤겔의 양상 개념의 특징을 설명했는데, 여기서 양상 개념에 관한 일상적 의미와 헤겔의 의미를 구분할 필요가 있겠다.
일상적으로 가능성과 실제성은 현존(실재)이나 양적인 것에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무한 다각형은 가능적 존재다”라거나 “이 보리수는 실제적 존재다”라고 말해진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은 “무한 다각형은 관념적 존재이다”라거나 “이 보리수는 인도에서 실재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실제성’과 ‘실재성’, ‘가능성’과 ‘관념’이라는 용어가 혼동되어 사용된다.
‘실재하는 것’이 ‘실제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많은 물체를 경험한다. 그런 물체는 실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본질이 실현된 것은 아니다. 물체는 자기를 실현하는 본질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념 속에서 귀신이나 유령과 같은 관념을 떠올리지만, 이것은 가능한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자기를 지속하는 독자적 개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관념을 떠올리는 존재가 없으면, 이런 관념은 사라지고 만다.
헤겔은 본래적으로 본다면, 양상 개념을 본질 개념과 연관하여 사용한다. 본질은 어떤 개체가 지속해서 재생산될 때 비로소 성립한다. 이 본질은 개체로부터 반성을 통해 규정되는데, 헤겔은 본질과 개체의 관계를 앞에서 근거 관계로 규정했다. 이 근거 관계는 형식에서 형식의 통일성으로서 내용으로, 그리고 내용이 조건으로서 현존과 결합하여 개체가 되는 삼 단계의 과정이다. 여기서 본질적 형식이 곧 가능성이고 그것이 실현된 개체가 곧 실제성이다. 예를 들어 씨앗은 나무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나무는 씨앗이 일정한 조건에서 실현된 것이라고 말한다.
4)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존재를 궁극적 실체(신)를 지반으로 하는 것으로 보면서 가능성이 실현된 것으로 본다. 헤겔 역시 외적 반성에서 ‘실재성[현존]’이나 ‘양적인 것’에도 가능성과 실제성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전개되는 우연성 개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성이 외적인 반성에 머무를 때, 외적 반성은 어떤 실재하는 것이나 관념적인 것을 지속하는 개체로 보고, 그것의 본질을 상정한다. 이는 주관적으로 상정된 본질이며, 여기서 유적 본질과 실체의 관계가 성립하므로 여기서도 가능성과 실제성이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가능성과 실제성은 어떤 주관적 세계를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주관적으로 다각형의 집합을 상정하고 무한 다각형의 유적 본질은 다각형이며 무한 다각형은 그런 다각형의 한 개체라고 한다면, 무한 다각형은 이런 가능한 다각형이 실현된 것이고 이런 다각형은 하나의 집단을 이루니, 실제적인 것이다. 다만 이 실제성은 주관적인 기하학적 공간에서 실제성이다.
그러나 이런 기하학적 공간은 외적 반성의 세계이다. 우리의 반성이 내적인 반성으로 발전하게 되면, 여기서 무한 다각형은 지속하는 개체를 이루지 못하므로, 본질을 지니지 못한다. 그것은 그저 관념적 존재일 뿐이다.
외적 반성을 통해 양상 개념이 적용되는 것은 여러 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외적 반성을 통해 보면 이런 본질의 실현 운동 속으로 들어온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오늘 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는 외적 반성에 속한다. 그러므로 오늘 비가 오면 가능성이 실현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비가 온 것은 자연의 이행 운동이었을 뿐이다.
또, 예를 들어 기계의 운동을 보자. 하나의 물체가 다른 물체를 운동량을 전달하면서 전개된다. 최종 결과를 예상한다면, 우리는 이 결과를 목적으로 삼아서 목적이 실현되었다고 말한다. 이때 목적은 가능성이 되고 그 결과는 실제성이 된다. 하지만 이는 외적 반성에서 부여된 인 양상 개념에 속한다.
의제적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양상 개념도 일종의 의제적인 것이다. 사실 형식적 양상 논리는 양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시제와 당위, 인식 등을 끌어들이지만, 이런 모두는 일종의 외적 반성을 통해 의제적으로 부여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5)
헤겔의 양상 개념의 출발점은 본질 개념에 있지만, 헤겔은 이 양상 개념을 실체 개념에 이르러서 비로소 서술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런 유적 본질과 실체 사이의 관계에서 가능성에서 실제성으로 이행하는 것은 필연성을 지니고 이때 비로소 완전한 의미에서 양상 개념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에서 양상 개념은 세 단계로 발전한다. 첫 번째는 유적 본질이 서로 무차별한 실존에 대해 여전히 외적인 반성에 머무르는 경우이다. 이때 유적 본질은 공허하므로, 실체는 근거 없이 존재한다. 이를 추상적 필연성 즉 우연성이라 한다.
두 번째는 가능성이 개연적으로 또는 상대적 필연성을 지니고 실현되는 경우다. 여기서 유적 본질과 실체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개체는 한편으로 자립적이고 다른 한편으로 관계 속에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적 본질도 자립적인 개체에 외면적이다.
세 번째는 내적 반성을 통해 유적 본질이 출현하면서 이는 개체에 내재한다. 따라서 가능성이 자기 스스로 실현되면서 절대적 필연성을 지닐 때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헤겔이 우연성, 개연성, 필연성을 내부와 외부, 가능성과 실제성 사이의 관계에서 관계의 양적 크기를 통해 규정한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양상 판단 형식을 양적 판단 형식과 비교한다. 우연성은 단칭 판단 형식에 그리고 개연성은 특칭 판단 형식과 필연성은 전칭 판단 형식에 상응한다. 이것은 앞에서 현상 편이 존재론에서 질적 판단 형식과 상응하는 것과 닮았다.
이런 점은 양상 논리에서 ‘가능 세계 의미론’에서 주장하는 것과 닮았다. 크립키 등이 주장한 가능 세계 의미론에서 적어도 하나의 가능 세계에서 진리인 것이 가능성이고, 모든 가능 세계에서 진리인 것은 필연성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진리가 되는 가능 세계의 양적 크기가 양상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차이가 있는 것은 가능 세계 의미론에서 말하는 ‘가능성’은 헤겔에서는 상대적 필연성 또는 개연성(또는 우연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개연적인 것과 가능적인 것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며 사실 개연적이라는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연적인 것과 가능적인 것은 구분된다. 가능적인 것은 우연적으로 실현될 수도 있고 필연적으로 실현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오딧세이가 돌아올 개연성이 있다” 대신에 우리는 “오딧세이가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능하기는 하지만 실현될 리는 없는 것도 있다. 초월적인 이데아는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실현되지는 않는다.
6)
더군다나 가능 세계 의미론에서는 가능성이나 필연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능 세계’라는 아직 규정되지 않은 ‘가능성’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가능 세계는 가능성과 필연성 개념을 규정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 세계로 나누어진다. 기본 공리계[K]가 있다면 그 외 B, D, T, S4, S5의 세계가 나온다. 그렇다면 순환논증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공리 체계 이전에 소박한 의미에서 가능 세계가 있을까? 그러면 이런 ‘가능 세계’란 어떤 세계인가? 형식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면, 즉 자기모순이 아니라면 하나의 가능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있다. 가능성이 이런 자기모순이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된다면, 가능 세계는 너무나 확장되어서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무모순성을 약화해서 우리 세계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것(형식적으로는 무모순적이지만, 실제로는 부조리한)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가능 세계에서도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면, 가능 세계는 상당히 줄어들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간은 거꾸로 가고, 물체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로 나는 등이다. 가능 세계에서도 이런 가능성은 배제된다. 그러면 이번에는 가능 세계가 너무 축소될 것이다. 우리 삶에서 실현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가능 세계를 우리가 사는 세계와 관계해서 이 세계를 부정하는 것을 통해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우리 세계에서 사태와 다른 사태가, 적어도 하나의 사태만이라도 다른 사태가 있다면 가능 세계인가? 그러나 아직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알지 못하니, 그것과 달리 관계하는 세계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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