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1-개체와 심연으로서 본질[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1-개체와 심연으로서 본질
1)
반성 운동은 현존과 본질 사이의 관계다. 이런 관계의 축은 수직적이다. 반면 본질 규정에서 다루어지는 동일성과 구별, 상이성과 대립, 모순은 개체적 현존들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이 관계의 축은 수평적이다.
개체적 현존과 개체적 현존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것이 본질이다. 개체적 현존을 그 자체로 보면, 유기적인 통일체이고 자기 완결적이다. 그러므로 마치 모나드처럼 다른 개체적 현존으로부터 독립적이다. 그러므로 이 개체적 현존 사이는 서로 건너갈 수 없는 심연의 바다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개체적 현존은 사실 본질의 구체적 실현태이며 본질을 통해 다른 개체적 현존과 연관된다. 이 본질이 열어 놓는 공간에서 하나의 현존이 다른 현존과 관계한다. 이 본질을 통해 하나의 개체적 현존은 다른 개체적 현존으로 지속한다.
본질이 현존에 대해 어떤 관계에 있는가, 즉 그 운동이 외적 반성 운동인가 아니면 내적 또는 규정하는 반성 운동인가에 따라 개체적 현존의 관계도 변화한다. 그 관계는 외적 반성 운동에서 개체적 현존의 관계는 상이성이다. 반면 규정하는 반성에서 개체적 현존의 관계는 대립, 모순이다.
2)
반성 운동을 다룰 때 추상적인 차원에서 정립하는 반성과 전제하는 반성이 있어서 현존과 본질 사이의 운동하는 양 측면을 이루었다. 마찬가지로 개체적 현존을 개별적으로 보면, 그 내부에서 두 측면이 존재한다. 즉 동일성과 구별이다. 즉 동일성과 구별은 아직 개체적 현존 사이를 다루지 않고 이 서로 관계하는 개체적 현존 각각에 내재하는 두 측면이 된다.
그 가운데 본질의 운동은 자기 부정성을 통해 매개된 자기 관계이다. 이런 자기 부정성이 자기 관계하는 측면을 일컬어 동일성이라 한다. 이 동일성은 곧 자기 동일성이며 개체적 현존이 지속해서 현존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마치 모나드처럼 창이 없으며 타자와의 사이에 심연이 놓여 있다.
“본질[본질의 현존]*은 절대적 부정성 속에서 자기 자신과 동일하며 이런 절대적 부정성 속에서 타자 존재와 타자에 대한 관계가 단적으로 자기 자신에서 순수한 자기 동일성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본질은 자기와 단순한 동일성이다.”(헤겔 논리학, GW11, 260)
주*) 여기서 본질이란 현존과 구별되는 본질을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본질은 현존하는 것으로서 본질을 말한다.
그러나 이런 동일성은 부정성의 부정을 매개로 한 자기 관계이고 이 자기 부정성이 곧 구별이니, 이 동일성은 구별을 자신의 한 계기로 포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동일성은 추상적인 동일성과 다른 것이다.
추상적 동일성은 서로 다른 현존을 비교하여 공통된 것을 의미하므로 이 공통성은 현존들이 서로 구별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이 동일성은 타자 즉 구별을 부정함으로써 규정되는 동일성이다.
반면, 생물체의 개체가 끊임없는 신진대사를 통해 자기를 유지하는 것이듯, 이 개체적 현존에서 나타나는 동일성은 이미 내적으로 자기 부정성 즉 구별을 포함하고 있으니, 그 자신은 전체의 한 계기이면서 동시에 전체가 된다.
“동일성은 자기 내로의 반성[본질로의 반성]이어서 이는 내적인 반발인 한[현존의 정립]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반발은 자기 내로의 반성으로서 반발이며 직접 자기 내로 자기를 환수하는 반발이다. 따라서 동일성은 자기와 동일한 구별인 한에서 동일성이다. 그러나 구별은 동일성이 아니라 절대적인 비동일성이므로 자기 자신과 동일할 뿐이다.”(헤겔 논리학, GW11, 262)
3)
동일성의 이면인 구별의 측면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구별은 추상적인 구별과 다르다. 추상적 구별이 비교를 통해 나온 구별이며 그것은 공통성이라는 추상적 동일성에 대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체적 현존에서 나타나는 구별은 자기 자신과의 구별이니, 헤겔은 이를 ‘절대적 구별’이라 한다. 이런 자기 구별은 동시에 자기 관계하는 것이며 그런 가운데 자기 동일성을 획득하니, 절대적 구별은 이런 자기 동일성을 자신의 한 계기로 내포하고 있는 구별이다. 이 구별은 자기의 한 계기이자 동시에 전체이다.
“구별은 본래 자기 관계하는 구별이다. 그러므로 구별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며 타자로부터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별하는 것이다. 구별은 구별 자체가 아니며 자기의 타자이다. 그러나 구별로부터 구별된 것은 동일성이다. 그러므로 구별은 구별 자체인 동시에 동일성이다.”
“이 구별은 그 자체이며 대자적인 구별이니, 절대적 구별이며 본질의 구별이다. 그 자체이며 대자적인 구별로서 이 구별은 외적인 것을 통해 일어나는 구별이 아니며 구별이 자기에 관계하므로 단순한 것으로 되는 구별이다.”(헤겔 논리학, GW11, 266)
존재론의 영역에서 개별 현존[즉 어떤 것의 술어적 규정]은 타자로 직접 그 자신에서 이행한다. 빨간색은 어떤 것에 우연적이므로 이 어떤 것[주어]은 언제라도 파란색이라는 타자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본질론에서 개체적 현존이 지닌 구별은 생물적 개체에서 보듯이 구별된 것이면서 동시에 구별되지 않은 것이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분명 다른 나이지만, 동시에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같은 나이다. 그런 점에서 이 구별은 필연적이니, 헤겔은 여기서 타자는 그 자체로 대자적인 타자라고 한다.
“이 구별은 반성의 구별이며 현존[존재론 영역에서]의 타자가 아니다. 현존과 그 타자 존재는 서로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정립된다. 서로 대립적으로 규정된 현존 가운데 각각은 독자적으로 직접적인 현존을 갖는다. 그에 반해서 본질의 타자는 그 자체로 대자적인 타자이지 타자 밖에서 발견되는 타자로서 타자가 아니며 또한 단순한 규정성 그 자체로서 타자가 아니다.”(헤겔 논리학, GW11, 266)
4)
개체적 동일성은 자신의 타자인 구별을 지양하면서 자기 동일성에 이르지만, 이 자기 동일성은 이미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니, 곧 자신의 타자인 구별로 넘어가는 것이다.
개체는 자기의 타자인 구별로 넘어가는 측면을 헤겔은 자기 반발이라 하는데, 이렇게 자기 반발은 다시 구별에 이르지만, 이 구별은 다시 지양되니, 개체는 다시 자기 내로 반성하여 자기 관계 즉 동일성에 이른다.
개체적 현존은 동일성으로서 다른 개체적 현존과 심연을 통해 떨어져 있으나 이미 자기 부정성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의 다른 개체적 현존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개체적 현존과 다른 개체적 현존은 심연을 통해 연결된 본질적인 동일성이다.
심연을 통해 단절되고 동시에 연결되는 이유는 개체적 현존을 매개하는 것이 심층 속에 존재하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체적 현존이 내부에서 겪은 운동은 곧 현존과 본질 사이의 운동이며 이 운동이 표면에 비추어지면, 동일성과 구별의 운동으로 나타난다.
개체적 현존이 본질로 자기 내 반성하는 것은 개체가 자기를 구별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본질이 다시 자기를 개체적 현존으로 정립하는 것은 자기 관계하는 동일성으로 나타난다. 수직적 운동이 매개되어서 수평적 운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5)
동일성과 구별의 통일은 생물체의 종적 개체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헤겔은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상의 사실[구별의 절대성]이 반성의 본질적 본성이며 그리고 모든 활동[Taetigkeit]과 자기 운동[Selbstbewegug]의 특정한 원초적 근거[bestimmte Urgrund]로서 고찰될 수 있다.”(헤겔 논리학, GW11, 266)
윗글에서 ‘자기 운동’이라는 말이 주목된다. 헤겔에서 스스로 운동하는 것은 바로 생물체의 종적 본질밖에 없다. 이 스스로 운동하는 본질이 곧 개체적 현존과 개체적 현존의 심연 속에 잠복하면서 개체적 현존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상적인 동일성과 추상적 구별과 달리 공허한 동어반복으로서 사유 법칙은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종적 개체에서는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필연적 법칙이니, 그것은 존재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이행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자연적 법칙이고 구체적인 법칙이다.
개체적 현존이 이처럼 두 측면 즉 동일성과 구별이라는 두 측면을 가지며 양자의 통일이라는 점에서 이제 이런 개체적 현존과 다른 개체적 현존 사이의 관계가 출현한다. 처음 나타나는 관계가 곧 상이성이다.
6)
자주 헤겔은 동일성의 철학자로 간주한다. 특히 현대에 와서 아도르노나 들뢰즈 등이 헤겔을 그렇게 해석한다. 그런데 헤겔 자신은 정신현상학에서 셸링의 철학을 동일성의 철학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셸링이 모든 소는 밤에 까맣게 보인다고 주장한다면서 비난했다.
이런 비판은 셸링의 직접적인 일반성 또는 무차별적 존재를 비판하는 것인데, 이런 무차별적 존재가 아도르노나 들뢰즈 철학의 기초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서로서로 동일성의 철학으로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에서 설명했듯이 헤겔에서 동일성은 자기 부정성의 자기 관계이며 그런 점에서 이미 구별을 내포하는 동일성이다. 이 동일성은 생물체의 개체적 현존이 지닌 동일성이며 이 개체적 현존은 본질을 매개로 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동일성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을 동일성의 철학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자기 부정성의 철학으로 규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자기 부정성이 곧 절대적 부정성이며, 이것이 곧 차이이니, 헤겔은 차이의 철학자이며 이 절대적 부정성이 곧 본질이 자기를 재생산하는 생성의 운동이니 헤겔은 또한 생성의 철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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