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5-가상과 진리[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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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5-가상과 진리

1)

서론에서 헤겔은 본질 개념이 출현하는 과정을 다룬 다음, 본질론 1편에 들어가 1장에서 가상을 다룬다. 이 가상 장에서 헤겔은 본질의 운동인 반성 운동을 다룬다.

가상은 독일어 ‘Schein’의 번역어인데 정말 다른 번역어가 없을까 고민스럽다. ‘Schein’은 ‘scheinen’에서 나온 말이다. ‘scheinen’은 ‘빛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빛으로 사물을 비추어 드러낸다는 의미지만, 가상이란 번역어는 거짓이라는 뜻이 들어가 원어 ‘Schein’의 의미와 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헤겔이 가상[Schein]이라고 할 때는, 현상[Erscheinung]이라는 말과 대조해서 사용한다. 현상이란 어떤 것이 드러나는데 이때 매체의 힘을 통해 왜곡된다. 그러므로 현상은 사실 진리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우리가 현실 세계를 이데아의 모상이라 할 때는 이런 의미에서 현상이다.

그런데 이처럼 진리로부터 멀어진 현상은 자신이 진리로부터 멀어진 거짓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를 진리로 생각하니, 스스로 기만에 빠진다. 반면, 어떤 것이 자신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 자기가 거짓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오히려 진리를 말한 것이다. 이처럼 부정적인 것이 자기를 부정하는 것일 때 헤겔은 이를 가상이라 한다. 그런 점에서 가상은 오히려 진리이다.

2)

가상과 현상 그리고 상징이라는 개념은 헤겔이 미학 강의에서 미적 정신의 시대 구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헤겔에서 예술은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기호이다. 이 절대정신은 그 시대 공동체적 의지인 국가를 의미한다. 이 국가는 종교적으로는 신으로, 예술적으로는 기호로, 철학적으로는 자기인식으로 나타난다. 그 가운데 예술에서 이 기호는 시대에 따라서 상징, 현상, 가상으로 발전한다.

상징은 관습적이거나 문화적으로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알레고리라는 개념에 가까운데, 헤겔은 고대 인도, 페르시아, 이집트 등 아직 개인이 출현하지 않고 혈연 체제(이는 동시에 노예 체제다) 속에 살아갈 때, 출현하는 예술적 형식을 상징이라 한다. 이 시대 예술은 낯선 신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가득하다. 이런 암시는 그 시대 살아가는 그 민족에게는 익숙한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신비한 것이다.

반면, 그리스 시대에 이르면 개인이 출현하여 도시 국가를 형성한다. 이런 시대에 신은 곧 인간의 육체적 모습 그것도 영웅적인 인간의 운동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개인의 자각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시대 예술로서 국가를 건설한 영웅의 생동적인 삶과 운명을 표현하는 조각이나 시문학은 곧 절대정신의 직접적인 현상이다.

중세를 지나 근대에 이르면, 상업적 교환이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출현한다. 이런 인간의 상호 교류를 통해 절대정신이 개인의 내면에 소외된 방식으로 출현한다. 개인은 이런 절대정신으로 건너가는 하나의 매개인데, 이런 매개가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것이 종교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이다. 예술적으로는 이런 매개 즉 부정적인 존재 즉 개인의 자기 부정을 통한 절대정신으로의 복귀는 가상의 방식으로 표현된다. 음악이나 미술, 그리고 근대 시문학은 결정적으로 이런 가상적 이미지로 충만하다. 대표적인 것이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악한의 자멸이다.

3)

헤겔이 논리학 본질론에서 다루는 본질과 가상의 관계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구체적으로는 생물체에서 종과 개체의 관계를 의미한다. 개체란 종의 산물이면서 종을 재생산하는 매개이니, 종은 개체를 통해 재생산된다. 반면 개체는 자기 부정을 통해 종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종과 개체의 이런 관계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제2실체 즉 종과 제1실체 즉 개체 사이의 관계를 이해했는데, 마찬가지로 헤겔 역시 이런 종과 개체의 관계를 통해 본질과 가상의 관계를 이해한다. 이제 종과 개체라는 관계를 모델로 헤겔의 본질과 가상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이해해 보자.

먼저 헤겔은 ‘본질적인 것’이란 개념을 끌어낸다. 이것은 본질이지만, 개별적 현존에 대립하는 독자적으로 현존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존재로부터 나와 존재에 대립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가 지양되면서 “자기 자신과 단순하게 동일한 것”이지만, 그렇기에 개별적으로 현존하는 것이다. 여기서 “본질 자체는 존재하는 직접적 본질”이다.

그러기에 헤겔은 이를 ‘본질적인 것[Wesentliche]’이라고 하면서 본질과 구분한다. 그 구별의 핵심은 이 본질이 직접 현존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본질은 추상적인 일반자인데 직접 현존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마치 초월적 세계에 존재하는 이데아를 말하는 것일까? 헤겔은 그런 경우라면, 본질이 피안에 존재한다고 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직접 현존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나중에 실체를 말할 때 일반적 존재가 독립적으로 실재한다고 하는데, 본질적인 것은 이런 실체적인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헤겔이 말하는 이런 본질적인 것은 어떤 것인가? 헤겔은 이런 본질적인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존재와 본질은 이런 방식으로 서로 타자로서 상호 관계한다. 왜냐하면, 각자는 상호 무차별한 직접적인 것 즉 존재를 가지며 양자는 이 존재에 따라서 본다면, 동일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다만 일반적으로 말해 존재가 본질에 대해서 타자로서 관계하는 한 이런 본질은 고유한 본질이 아니며 오히려 다만 다르게 특정화된 현존 즉 비본질적인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45)

“이런 현존 속에 존재가 지닌 모습이 그 자체적이며 동시에 대자적이라는 사실은 그것의 현존 자체에 외면적인 또 하나의 규정이니 거꾸로 보자면 이는 본질이 그 자체로 대자적인 존재이지만 다만 타자에 대립해서 특정한 관점에서 그러할 뿐인 것과 같다.”(헤겔 논리학, GW11, 245)

여기서 헤겔의 본질 개념이 종에 비추어 볼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종이 하나의 개별적 현존으로 존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종은 새로운 개체를 생산하는 조상으로서 종이다. 또는 과학자는 종을 분류할 때 그 종을 대표하는 개체를 표본으로 삼는다.

조상으로서 종이나 표본으로서 개체를 단순한 개별적 개체와 구별할 때 헤겔은 전자를 본질적인 현존이라고 하고 후자를 비본질적인 현존이라 한다. 여기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차이는 상대적이다. 과학자는 주관적으로 어떤 것을 표본으로 삼을 수 있으며, 한 조상에서 나온 개체는 또 다른 개체의 조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헤겔은 이런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구별은 “외적으로 정립된 것”이며, 이런 분리는 “제삼자에 속하는 분리”라 한다.

4)

이제 헤겔은 본질을 이런 비본질적인 것과 구분한다. 그 본질을 규정하면서 헤겔은 가상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본질은 곧 “본래 그리고 대자적으로 무실한 직접적인 것” 즉 ‘비실재[Unwesen]’ 또는 ‘가상’이다.

“본질은 존재의 절대적 부정성이다. 이 본질은 존재 자체지만, 타자로서 규정된 것이 아니라 존재가 직접적인 존재로서뿐만 아니라 또한 직접적인 부정으로서 즉 타자 존재를 동반하는 부정으로서도 자기를 지양한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45)

본질은 현존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현존이 자기를 부정하는 운동, 부정된 것이 다시 부정되는 운동 자체를 말한다. 본질은 현존 내에 존재하는 이런 운동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 가상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우선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부정되는 그 자신이 이미 부정된 것 또는 정립된 것이다. 이를 정립하는 존재는 곧 본질이다. 이 부정된 것이 자기를 부정하니, 그 결과 자기 내로 복귀하니 본질로 된다.

이런 부정을 통한 자기 복귀는 이중적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이를 부정의 부정 즉 부정성의 자기 복귀라는 운동의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본질이다. 이런 자기 복귀는 자기 관계하는 직접적인 것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가상이다.

이렇게 구별해 보면, 가상과 본질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본질은 자기 복귀를 통해 직접적인 것으로 되니 가상이고 가상은 부정적인 것으로서 자기를 부정하는 것을 통해 자기로 복귀하니 본질이다.

“가상은 존재의 규정성 속에 있으면서도 이런 직접적인 비 현존이니 다만 타자 즉 자신의 비 현존과 관계하는 가운데 현존하며 다만 자기가 부정되는 가운데서만 존재하는 비자립적인 것이다.” (헤겔 논리학, GW11,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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