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12> 들뢰즈

Spread the love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들뢰즈

 

강사 :김범수(숭실대 외래교수)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80년대 마르크스 수용에서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의 변화와 현대 철학

마르크스의 『자본』은 혁명의 시대였던 80년대 중반에 한국에 들어온다. 당시 대학생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었고 그 실천을 모색했었다. 그런데 동구권의 몰락이 시작된 89년 이후 90년대 초반에 이런 분위기는 깨진다. 동구권의 몰락은 당시 사회주의적 기조의 지식인은 물론 지성사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르크스를 대체할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그 대안이 처음에 하버마스와 푸코, 알튀세르 등이었다. 이어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일어났고 현재는 프랑스 철학이 현대철학을 대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90년대 알튀세르와 푸코가 등장하면서부터 사람들은 혼란스러워졌다. 이른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데, 과거 이데올로기와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모습을 보여준다. 학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불지만 한국 사회현상은 이걸 못 쫓아갔다. 그래서 한국의 학자들은 첨단 현대철학의 본령이라 부르는 프랑스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포스토모더니즘이라는 말은 프랑스에서는 1930~40년대에 사용된 말이었다. 당시 한국은 서양의 첨단 학문을 미국을 통해서 들여오다 보니 미국에서 쓰는 말 그대로를 들여왔던 거다.

▲ gilles deleuze

그럼 우리의 이상적인 모습을 담은 이른바 미래학자는 누가 있을까? 찾아봐도 없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는 지금도 헤어 나오지 못한다.

2000년대 들어와서 라캉 이후에 학계 전반에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유행하게 된다. 우리의 지성사에서 우리는 프랑스 철학자들을 보면서 도대체 주체가 누군가라는 것을 따지곤 한다. 이 주체는 독일적 관점에서는 선험적 자아로서의 주체로 볼 수도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사회변혁의 주체이다. 프랑스에서도 따지는 부분이 이거다. 그런데 들뢰즈는 주체가 없다. 그럼 우리는 들뢰즈를 어떻게 봐야할까?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의 마지막 강좌 열두 번째 시간에는 들뢰즈의 철학을 만났다. 특히 이번 강의에서는 니체와 관련된 들뢰즈를 보기로 했다.
 
들뢰즈의 철학사

들뢰즈는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했다. 당시는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기였는데 어린 들뢰즈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던 그의 형이 포로수용소로 가는 길에 불행하게도 총살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그의 삶의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총살 사건이 있던 곳에서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수리철학자들이 있었는데, 카바이예스와 로트망과 같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의 와중에 그는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나중에 소르본느에서 철학을 공부한다. 이 역시 매우 특이한 이력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거의 유일하게 고등사범학교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1948년에는 철학 교수자격시험 아그레가시옹을 통과하게 된다. 이후 들뢰즈는 1956년도에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에 관한 논문을 쓴다. 그리고 60년대 중반까지 철학사를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한다.

들뢰즈의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던 철학자는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스피노자(Spinoza, 1632~1677),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을 들 수 있다. 들뢰즈가 보기에는 이 세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고 이 공통점이 들뢰즈 사상의 핵심이 된다. 여기서 김범수 교수는 들뢰즈의 철학에 기반한 철학사의 구분은 1930년대와 그 대척점에서 1960년대 이후의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고 한다.

김범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1930년대는 문화적인 충격과 과도기의 상황을 가진 시대였다. 이 시대에 프랑스 철학계에서는 어떤 일이 생겼는가? 프랑스 철학계는 1930년대부터 60년까지 ‘3H’의 시대로 요약된다. ‘3H’란 헤겔(Hegel), 후설(Husserl), 하이데거(Heidegger)를 말한다. 이 시기는 나치가 집권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왜 헤겔인가? 프랑스 내에서 이때까지 헤겔 번역이 안 되었다. 20년대와 30년대는 헤겔 번역본이 없었다. 프랑스는 1930년대까지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번역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존철학과 함께 헤겔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행사되었던 시기이다. 이때 코제브(Alexandre Kojeve, 1902~1968)의 강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제브는 헤겔을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중심으로 소개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게 했다.”

반면 60년대에는 실존주의 현상학과 대립되는 방향으로 니체와 노골적으로 변형된 마르크스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60년대 이후는 프랑스에서는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을 새롭게 해석하는 견해가 형성되면서 구조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대표적인 학자는 라캉과 알튀세르 등이 있다. 그리고 ‘3H’의 대척점에 있는 철학자로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를 들 수 있다.

들뢰즈에 영향을 준 철학자들 :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30~60년대 : 헤겔, 후설, 하이데거 ↔ 60년대 이후 : 미를로-퐁티, 사르트르

들뢰즈에 영향을 준 철학자 :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들뢰즈는 스스로 베르그송주의자임을 밝힌다.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초월성 비판이다. 아울러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이 세 사람은 초월성에 대해 비판하는데, 초월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고 ‘이념(이데아)’을 넘어선 것이다. 이들은 도덕적 ‘선(善)’의 개념을 넘어서고 비판했다.

서양철학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확실한 무엇인가를 찾다 보니까 결국 신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의 자기전개’를 얘기했는데 절대정신은 결국 신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선한 개념을 더 붙여서 ‘세계정신’, ‘신의 정신’이 발현된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바로 헤겔 철학의 일면이다. 여기에 대해 비판한 사람이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이다.

니체는 대놓고 ‘비극의 가치’에 대해서 얘기한다. 기존의 가치의 기원을 따져서 ‘가치를 전복’시킨다. 그리고 신을 죽여 버린다.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실체개념’이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실체’는 바탕과 기저에 깔려있는 것으로 이것이 근대에 와서는 ‘자존적인 존재’로 바뀐다. 다른 것에 원인 받지 않고 존재한다는 개념을 두고 보면 인간은 자존적 존재는 아니다. 그럼 자존적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자체일 것이고 실체는 곧 ‘자연자체’이다. 이 실체는 중세 철학에서는 신이었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신적 자연’이라는 말을 한다. 스피노자가 말한 자연에는 초월적인 신이 개입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스피노자는 네덜란드 유태인 공동체에서 퇴출된다.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를 얘기한다. 생명 자체는 가지고 있는 어떤 목적도 없다는 것인데, 이 얘기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을 붕괴시킬 수 있는 요소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에서 헤겔, 후설, 하이데거는 ‘이성’으로 문제의 해결을 도모한다.

그 해결의 종착점은 ‘초월성’이고, 곧 ‘신’이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광인들을 격리시켰고. 제도권으로 폭력을 통해 감금시켰음을 폭로했다. 이것이 이성의 폭력이었고 광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의 시각이다. 이것은 바깥으로부터의 사유이다. 이 바깥으로부터의 사유를 하는 사람들을 포스트구조주의자라고 얘기한다.

김범수 교수는 이렇게 보면 프랑스 철학의 계보는 엄밀히 얘기하면 30년대부터의 이성적 전통의 부류와 반대편에 있는 부류가 섞여있는 셈이라고 한다. 실제로 프랑스 철학은 강단철학과 대중철학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대중철학에는 들뢰즈와 푸코가 자리하고 존재론과 이성적 탐구를 하는 강단철학은 헤겔, 후설, 하이데거가 포함된다고 한다. 이어서 김범수 교수는 “하버마스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하이데거, 아도르노, 푸코, 데리다와 같은 학자들을 니체를 계승한 탈근대 철학자들로 규정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규정은 프랑스 철학의 진영에서 보자면 반가운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헤겔과 반(反)헤겔의 규정으로 나누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김범수 교수

베르그송주의와 들뢰즈

데꽁브((Vincent Descombes, 1943년 출생)의 경우 현대철학의 과제를 헤겔 비판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는 하이데거노선에 따르면서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 등으로 연결되는 노선과 후기구조주의 노선으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분류에 따르면 들뢰즈는 후자의 노선에 서 있는 학자이다. 이 시기 들뢰즈는 「구조주의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통해 구조주의를 특징을 밝히면서 자신과의 차이를 정리했다.

들뢰즈는 68혁명 목도 후 국가박사가 되는데 이후 가타리(Felix Guattari, 1930~1992)를 만난다. 들뢰즈는 가타리와 조우하여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공저로 『반-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이 있다. 이후 들뢰즈는 혼자서 몇 권의 책을 출간한다. 문학과 예술에 관한 책이 주류를 이루는데, 마지막 글은 「내재성 : 하나의 생명」이라는 짧은 논문인데, 이 논문은 자신의 존재론을 정리하는 아주 중요한 글이다. 여기서 들뢰즈는 자신의 지적 스승은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임을 밝히고 그 중에서도 베르그송주의를 드러낸다. 들뢰즈는 이 글을 끝으로 1995년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투신한다.

베르그송은 수학에 천재성이 있었지만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과학사에서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실증주의는 ‘양화(量化, 이성)’를 통해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물리적 양화로 설명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베르그송은 시간이라는 것도 양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자연과학에 대한 비판에는 생물학을 이용했다.

그런데 들뢰즈는 구조주의자이기는 하지만 라캉의 노선과 다른 구조주의자로서, 들뢰즈는 변화율을 다루는 미분방정식을 통해 베르그송과는 다른 수학에서 나온 개념을 도입한다. 이를테면 ‘특이점’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특이점’은 다른 것과 교환될 수 없는 독특한 점이다. 김범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예를 들면 야구를 소재로 한 3D 애니메이션 영화의 모션 캡쳐 촬영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타자의 운동을 모션 캡쳐 한다고 할 때 이 때 센서들은 타자의 방망이나 팔과 다리 등 운동성이 보이는 곳에 부착될 것이다. 이곳에 부착된 센서들은 배우의 머리에 붙여져 있는 센서와 서로 교환될 수 없는 특이한 성격을 가진다. ‘특이점’은 이런 비유와 같다. 들뢰즈는 이것을 가지고 ‘역동적인 생성의 체계’를 설명하려 했다.”

베르그송의 원뿔 도식과 들뢰즈 경우에의 변용

베르그송은 유명한 ‘원뿔 도식’을 통해 ‘지속’을 눈덩이에 비유했다. 우리의 기억은 몸속에 계속 복합적으로 쌓여간다는 것이다. 기억의 만들어짐과 이것이 어떻게 현재화 되었는지를 말한 것이 『물질과 기억』이다. 그런데 김범수 교수는 베르그송의 그림은 반만 그린 그림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들뢰즈의 철학에서 본다면 마치 거울에 비추어져 있는 원뿔의 모습과 같이 변형시킬 수 있다고 한다.

위 그림을 보면, 과거의 시간대 부분이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가 될 것이다. 들뢰즈는 ‘이념(Id?e)’을 무의식의 세계에 가져다 놓는다. 들뢰즈가 여기서 말하는 이념은 무의식 세계에서 말하는 ‘욕구’들을 말하고 이것은 끊임없이 문제를 발생시키는 존재이다.

들뢰즈는 후기에 가면 이념이라는 말 대신에 ‘욕망’이라는 말을 직접 쓴다. 이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인간은 ‘욕망하는 기계’가 된다. 이 욕망하는 기계가 제도를 깨부수는 것이 ‘탈영토화’이다. 탈영토화는 정해져 있는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 탈영토화는 한 번의 ‘역량’으로 만들어진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구조적으로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나누었다. 이 때 충동대로 움직이려는 것은 이드이고 초자아는 나를 억압하는 기제이다. 초자아의 억압이 사회적으로 나타나면 법_제도가 된다. 사회문화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반영하지만 법과 시회적인 제도는 초자아가 양심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

이런 제도적인 가치가 있으면 사회적인 금기가 강해진다. 그런데 이 금기는 깨부수어야 할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는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이것을 관통해서 나오는 인간형이 ‘스키조(Schizo)’라는 인간형이다. 일종의 정신 분열자라고 할까. 여기서 말하는 정신 분열자는 임상에서 말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bermensch)’이 이것이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같은 인간이다.

김범수 교수는 니체의 초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기존의 인식이 너무 잘못되어 있다고 한다. “니체의 초인이 단순히 인간을 넘어서는 뭔가가 아니다. 초인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평범한 인간과 같다. 변화를 통해 늘 ‘생성’하려고 했던 존재가 바로 초인이다. 슈퍼맨이 아니다. 스키조도 방향 없이 제도적인 억압을 뚫고 지나려는 사람들이다.”

위의 그림에서 생성되는 원리는 ‘반복’이다. 그런데 우측 원뿔(상에 비친 부분)에서도 반복이 일어난다. 이 경우는 ‘동일성에 의한 반복’이고 좌측 원뿔인 과거는 영역은 ‘차이나는 것들에 의한 반복’이다. 그리고 ‘강도’라는 것은 터지려고 꿈틀거리는 것을 말한다. ‘강도’라는 말은 그 자체로 힘이 들어가 있다. 이 힘들이 응축되어 늘 터져 나오려고 한다. 그리고 현재를 상징하는 가운데의 꼭지점과 비대칭으로 이루어져 늘 ‘생성’되려고 한다. 강도의 차이는 고도차로 인한 기압의 차로 인해 공기가 순환되는 구조에 있을 때 강도의 차이다. 이것은 빅뱅이라는 비유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이념’과 ‘차이’가 밖으로 터져나오려하면 ‘생성’이 되고, 분명 사회적으로 억압하는 기제들이 있는데 그것은 ‘초월성’이 된다. 사회적인 것은 또한 인간의 무의식적인 것을 반영하는 것이 된다.

위의 그림은 들뢰즈가 설명하려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김범수 교수는 리처드 도킨스가 유전자는 생존기계라고 말했다는 것을 거론하면서 들뢰즈의 철학에 의거한다면 유전자를 생존기계라고 표현한 것은 탁월한 용어 선택이었다고 한다. 들뢰즈는 ‘초월성의 체계’, ‘재현체계’, ‘표상체계’를 싫어한다. 특히 들뢰즈는 인간에 대해 ‘유기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기계’라는 말을 쓴다. 이는 가타리도 마찬가지다. 가타리는 인간을 ‘욕망하는 기계’라고 표현했다.

들뢰즈가 말하는 이념(Id?e)의 의미와 몇 가지 용어들

프랑스어 ‘Id?e’에서 대문자 ‘I’를 쓰는 것은 서양철학의 이데아를 의미한다.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을 칸트의 철학체계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그대로 대문자를 쓴다. 대신 그 내용과 용어는 완전히 뒤집어서 쓴다.

‘이념(Id?e)’의 구성요소는 ‘강도’와 ‘미분’이다. 강도는 고도차, 위도차, 압력차처럼 힘으로 가득한 것들이고 이것을 설명해주는 역동적인 수학체계로서 미분이 있다. 미분에는 ‘차이를 담고 있는 요소’란 의미가 있다. 또 ‘생물학적 분화의 요소’가 포함되고, ‘나의 창조적 행위’도 포함된다.

이 강도와 미분은 힘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가만있지 못하고 터져 나오려는 상태에 있다. 개체인 인간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것은 ‘억압’ 때문이다. 그 행동은 일종의 ‘반복 강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거의 무의식 영역이 현재로 터져 나오려고 하는 것을 존재론적으로 말하면 ‘반복’이라고 한다. 반복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과거의 ‘경험과 습관에 의한 반복’이 있고(옷 입은 반복), ‘새로 생겨난 반복’의 경우가 있다.(헐벗은 반복) ‘옷 입은 반복’이란 풍성하다는 의미이고 ‘헐벗은 반복’은 빈약하다는 의미인데 이 때 한 개체가 가지는 ‘욕망’은 ‘자발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비자발적인 면’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를 만들어가는 또 다른 형태로서의 ‘개체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들뢰즈의 후기저작으로 가면 ‘강도는 잔존’하지만 ‘미분과 이념’에 대한 얘기는 빠진다. 빠진 그 자리를 들뢰즈는 ‘욕망하는 기계’라는 말로 대신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가타리의 개념이다. 이것을 뚫고 나가는 힘을 ‘스키조’라고 하고 들뢰즈는 지구 전체를 ‘알’로 표현한다. ‘생명이 분화’되기 때문이다. 생명은 ‘분화’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는 지구를 ‘기관 없는 신체’에 비유하기도 한다. 들뢰즈는 이런 새로운 개념들이 만들어지면서, 이를 일컬어 ‘새로운 사유의 인지’라고 했다. 또 그것이 구성되는 속성에 대해서는 ‘내재성의 평면’이라고 했다. 우리 ‘경험세계의 응축성’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반대의 지점에는 ‘표상체계’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재현’과 같고 이것은 ‘억압하는 것’이다. 정해져 있는 ‘체계’가 있고 그 체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표상’이다. 어떤 목적이 정해져 있고 그 ‘합목적성’에 의해 맞춰서 형성되는 것, 즉 ‘주체’에 대해서 들뢰즈는 비판하는데 여기서 ‘주체’는 ‘초월’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것은 ‘이념(Id?e)’의 정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점선의 영역 미래는 ‘영원회귀’라고 할 수 있다. 영원회귀는 예전에는 자연의 주기에 맞추는 ‘동일성의 반복’이라고 보았지만 들뢰즈는 세계에는 같은 것이 없고 생성만이 이루어지고 ‘생성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개념으로 썼다. 영원히 돌아오는 것은 ‘생성’이다. 동일한 내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영원회귀’를 ‘원형의 반복’이라고 보는 관점은 들뢰즈가 보던 관점 이전의 것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사태에 의해 80년에 죽은 누군가와 90년대 죽은 누군가는 원형의 반복이다. 이것은 종교적 제례의 의식이나 역사적 사건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반복하는 대상이 ‘동일’하다.

그림의 꼭지점 부분 현재는 습관적인 체계에서 과거를 끄집어낸다. 그런데 ‘비자발적으로 나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 되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성’이다. 미래를 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젊었을 때 여행을 간다고 가정해보자. 자유롭다. 자유로운 이유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게 된다. 미래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재성의 존재론

김범수 교수는 들뢰즈의 서양철학의 탄생과 그 처음의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토스(mythos)에서 로고스(logos)로. 이 말은 서양철학의 탄생과 발전을 압축적으로 담은 문구이다. 다시 말해 서양철학은 ‘확실성’을 추구했고, 이것은 철학의 출발이다. 존재를 연구하는 기본 전제는 변화나 생성이 아니라 ‘정지’였다. 이것임과 저것임이 동시에 주장되는 것은 존재의 규정으로 말할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추방을 선택하지 않고 독배를 선택했던 이유는 결국 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이것과 저것이 공존하는 세계가 아닌 확실성으로, 존재로 충만한 저 세계에 대한 동경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죽음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통에서 ‘불변’은 ‘선한 가치’를 담고 있다. 서구 지식인들의 의식에는 불변과 선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봤고, 이를 추구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세상은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로 가득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이것이 들뢰즈 철학의 문제의식이다. 기존 철학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는 가장 확실한 것이었다. 가장 잘 규정 할 수 있는 것. 불변의 것, 정지해 있는 것이 가장 선한 것이고 확실한 것이라고 믿었다. 서양철학은 가장 실체적이라는 정지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도덕적 의미에서 선(善)이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이 ‘선의 기원’을 따져보자는 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내재성의 원리’이다. 이것은 니체의 계보학에서 왔다. ‘가치의 기원’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들뢰즈는 내재성의 철학에서 첫 번째로 얘기하는 것이 ‘사유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이다. 어떤 장소에 몇 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식’의 영역이다. 이것은 사유가 아니다. ‘사유’는 충격이 오고, 하나의 사건이 만들어지고, 무언가 생성이 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변화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대해 생각해 내는 창조적 과정이 사유’이다. 기존의 관습체계가 아니란 말이다. 만약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지를 기반으로 말한다면 실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할 수 없다. 그 사유체계는 들뢰즈에게 있어서 일종의 나쁜 것이다. 이것을 니체는 ‘독단적 사유의 이미지’라고 했다. 사유는 사건의 조건과 환경을 따져서 해야 한다. 이것이 푸코가 말한 ‘바깥으로의 사유’이고 들뢰즈는 바깥으로 나가 사유의 전제조건을 봤던 것이다. 들뢰즈는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 또는 확실성의 확보를 모두 제거하고 이것 없이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우리의 경험으로 응축된 새로운 사유를 하고 적극적 생성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들뢰즈의 ‘내재성’이다.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