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자죽이 어린 길 [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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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산 속에 내던져지다

 

아, 내 인생길이

왜 이다지도 가시밭길인가.

찌를 때마다 피 흘러

걸을 때마다 핏자죽이었네.

걸을 때마다 잡초에 휘말려서

엎어지며 넘어지며

또 한 자국 걸을 때마다 자갈밭

또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진흙이 떡반죽 된 길

하나도 평탄한 길이 없더라

이것이 내 인생길인가.

– <내 인생길> 중에서-

 

할머니는 한스러운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가시밭길이자 자갈밭, 그리고 핏자죽이 어린 길이라고 노래했다. 태풍을 피해 을숙도에서 나왔지만, 한센인들은 마을로 들어가지 못했다. 잠시 머무르던 긴급대피 장소인 학교에서도 더 이상 지낼 수 없었던 그들은 캄캄함 밤에 쓰레기를 싣고 다니는 차에 실려 지금의 땅에 내던져졌다. “비가 억수로 왔다. 그냥 말없이 타라 하데. 우리도 이대로 있다가는 죽겄다 싶어서 그냥 탔제. 한참을 가더니 내리라 하는 기라.”

그냥 내린 곳이 지금의 마을이었다. 아니, 그때는 산이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두운 밤에 그들은 산 속에 버려진 것이다. “벌레가 따로 없제. 그냥 발 잘못 디뎌 굴러떨어지면 죽는 기라. 안 죽을 거라고 꿈틀꿈틀 기어 다녔제. 그래도 살아볼 기라고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면서도 비를 피할 데를 찾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옷 보따리 뿐인데. 그리 울던 아도 안 울더라. 지도 무서운 기라. 본능적으로 무서웠던 거라.”

사람들은 조그마한 바위틈만 있어도 기어 들어갔다. 달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비를 맞으며 그들은 온몸으로 기어 다니며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혹시나 굴러 떨어져 산 어딘가에 머리를 박고 죽는 줄도 모르고 죽을까봐 손을 잡고 기어 다녔다. 큰 돌에 부딪치는 줄도 몰랐고, 나뭇가지에 얼굴을 긁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는 사이 다시는 올 것 같지 않던 아침이 왔다. 비로소 서로의 얼굴을 보고, 그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흙을 뒤집어쓰고 비에 젖어 산발이 된 모습은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참혹했다. “모두 흙투성이라. 아침이 되고 사방을 살펴보니 산이라. 산 위에 길이 있는데, 간간이 트럭 소리만 나더라. 차 소리만 나면 모두 숨었다. 나무 뒤로 흙더미 뒤로…”

“왜 숨으셨어요? 임자가 있는 산이었나요?” “아이다.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잡혀가면 이제 죽는 것 밖에 더 있겄나.” 그들은 사람들을 피해 산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산이 있었는데, 그 중 아래쪽에 있는 산에 그들은 버려졌던 것이다. 흙투성이의 몸으로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뿌리와 나물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산에 버려졌거나 빗물에 쓸려 내려온 비료 자루나 거적을 찾으면 그것으로 움막을 만들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오목한 곳이나 바위틈, 그리고 흙이 쓸려 내려가 드러난 큰 나무의 밑둥이 있으면, 그 곳을 손으로 파서 사람이 들어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앞을 비료 자루로 막아 거처할 곳을 만들었다. 어쩌다 자연적으로 움푹 패인 언덕바지라도 발견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비가 와서 미끄러지고 온 몸이 흙투성이는 되었지만, 나뭇잎이 쌓여 흙이 된 곳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드러운 흙이라도 파낼 수 있는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병든 그들의 손은 흙 반 진물 반으로 반죽이 되었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낮 동안은 햇빛이 있어 견딜만 했지만, 해가 지면 산속의 기온은 사정없이 내려갔다.

“더 무서운 거는 산짐승이라. 괭이가 있나 호미가 있나. 짐승이 덮치모 방도가 없는 기라. 어린 아를 가운데 두고 어른들이 삥 둘러 잤다. 잠도 깊이 못 잔다. 춥고 배고프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고…” 삶이라고 할 수 없는 정경이었다. “지금하고 마이 다른 기라. 그때는 그래도 산에서 굶어 죽지는 않겄더라. 그런데 봐라, 김선생. 겨울이 되면 뭐 먹고 살기고? 겨울이 오기도 전에 얼어 죽고 굶어 죽을 판이라.”

할머니의 얼굴은 열기를 띠고 붉어졌다. 숨소리도 가빠지고 있었다. 불편한 두 손으로 옷자락을 꽉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겨우 일군 삶의 터전을 떠나서 산짐승 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는 산속에 내던져졌을 때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깊은 한숨 소리가 나의 심장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고통을 느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나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당신의 삶을 치유하겠으니 지나온 이야기를 해보라는 나의 요구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 고통에 가득 찬 저 삶을 누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당혹감과 함께 낭패감을 느꼈다. 내가 과연 저 ‘핏자죽만’ 남아 있는 삶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몸도 뜨거워지고 있었다. 부끄러움으로.

 

집이 생기다

 

어느 날, 여러 대의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황급히 숨기에 바빴다. 트럭이 지나갔다 싶던 순간에 다시 차 소리가 들렸다. 몇 대의 트럭이 후진하여 돌아오고 있었다. 모두들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하야리아 부대 미군들이더라. 지나가다 누가 우연히 우리를 본 모양이라.” 미군은 잔뜩 긴장하여 총을 손에 들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영어로 큰 소리로 뭐라 하는 기라. 몇 명이 내려왔는데 저거끼리 부르는 소리에 마이도 내려오더라. 또 두 명은 계속 큰 소리로 떠들면서 다시 올라가데.” 미군들은 한센인들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군들과 한센인들은 마주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의 형상에 놀라기도 하고 긴장도 했다. “대장인갑더라. 옆에 있는 미군한테 뭐라 하더라.” 그 미군은 차에 가서 건빵 박스를 들고 왔다.

미군들은 한센인들에게 건빵을 몇 박스 주었다. 한센인들은 미친 듯이 건빵을 먹었다. 젖배를 곯던 아이에게는 씹어서 입에 넣어주었다. 그들이 건빵을 먹는 동안 미군들은 산을 살피고 다녔다. 비료 포대나 거적을 걷어보는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귀신같은 몰골의 한센인들을 말없이 지켜보다 미군들은 떠나갔다.

“야~~~, 도깨비한테 홀린 것 같더라. 키는 멀대 같이 크제. 코는 왜 그리 뾰족하노. 얼굴은 꼭 밀가루 덮어 쓴 것 모양으로 허옇제.” 건빵으로 허기를 채운 그들은 미군들의 정체에 대하여 설전을 벌였다. 그날은 그렇게 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들을 한밤에 산속으로 내던지면서 식량을 가져다주겠다던 공무원은 그날도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해가 채 안 떴제. 그냥 날이 밝아오는 시간이라.” 트럭 소리가 길 위에서 멈추더니,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움막에서 나온 한센인들의 눈 앞에는 전날의 미군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수십 명이었다. 미군들은 나무를 옮겨오고, 약상자를 들고 오고, 밀가루 포대를 어깨에 메고 산으로 내려왔다. 아무 말도 없이 미군들은 삽을 들고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들을 땅에 고정시켰다.

나무틀 위에 천막을 덮었다. 훌륭했다. 그랬다. 너무나 좋은 집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군들이 간이 천막을 짓고 있는 동안 한센인들은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를 받고 붕대를 몇 개씩 받았다. 어제와 달리 같이 온 한국군이 치료를 받는 동안 통역을 해줬다. 처음으로 치료하고 광목이 아닌 붕대를 감은 손이 남의 손처럼 보였다. 상처를 싸매고 있던 광목은 빨아서 계속 썼기 때문에 넝마가 되어 있었다. 미군들은 구덩이를 파고 그 넝마 조각들을 모아 태웠다.

미군들은 오기 전에 역할을 분담한 듯이 각자 다른 일들을 했다. 천막집을 만드는 팀, 치료를 하는 팀, 주변 나무의 잔가지를 치는 팀, 주변을 소독하고 다니는 팀 등. 한 팀이 땅을 고르면 다른 팀이 그곳에 나무를 이용해 집틀을 만들고 다른 팀은 천막을 씌우고, 그러면 또 다른 팀은 천막집 주변의 나뭇가지를 정리했다. “척척 하더라. 그 통역관 말이 전날 우리 꼴을 보고 가서 충격을 받았단다. 미군들이 도와야 한다고 부대장한테 말해서 몇 시간 동안 회의를 했단다. 그리고 팀으로 나누어서 일을 맡았다더라.”

산에 흐르던 물줄기를 어떻게 막았는지 공동의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호스가 연결되고 커다란 고무 물통에 그 호스 끝을 연결하여 식수통을 완성했다.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공동 공간도 만들어졌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쯤 일은 마무리 되었다. 천막 안에는 땅의 한기가 올라오지 못하게 베니어판이 깔려 있고, 그 밑에는 방수 깔개가 깔려 있었다.

일을 마친 미군들은 한센인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들의 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한센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대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기만 했다. 하루 동안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저의가 있는 건 아닌지 내심 불안했다.

미군들은 한센인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그 손을 잡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미군들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들이 손을 흔들며 트럭을 타고 떠나가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때는 누가 우리를 돕는다는 거는 상상도 못했다. 저것들이 이렇게 천막 쳐 놓고 내일 와서 우리를 쫓아내면 우짤기고.” 아무도 믿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미군들이 가져다 준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 배부르게 먹고 잠을 청했던 그날 밤, 한센인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그들에게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사이에 물이 질척거리는 맨땅이 아니라 보송보송한 베니어 판 위에 몸을 누인 것이 꿈만 같았다. 딱딱한 베니어판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금침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다음날에도 미군들은 다시 왔다. 그들은 건빵과 설탕과 밀가루를 또 들고 왔다. 모포도 들고 와 집집마다 넉넉하게 나누어 주었다. 전날 보지 못했던 미군이 두 명 새로 왔다. 통역군인은 그들이 의사라고 했다. 두 명의 미군은 한센인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약이 주어졌다. 그 약은 예전 집단촌에서 먹던 약보다 양이 적었다. “나병약이라 하더라. 그 약은 속이 안 아프더라. 다른 영양제도 주더라.” 을숙도에서 나온 이후 약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병세는 악화되어 있었다.

미군들이 준 약은 위의 통증이 없었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어지럽던 증세도 없었다. 그날 이후 미군들은 정기적으로 찾아와 주변을 소독하고 밀가루와 통조림을 공급해 주었다. 때때로 건빵도 가져다주었다. 미군들의 도움은 장기적으로 지속되었다. “좋은 약 먹고 소독하니까 금방 좋아지대.” 미군들이 지어 주었던 천막집도 시간이 지나면서 집의 형상을 갖추어 나갔다. 그 집들은 이후 정부에서 특별조치법이 시행되었을 때 그들의 집으로 허가가 났다.

 

기억 속의 하야리아

 

할머니는 도움을 주지 않았던 대한민국을 원망하거나 비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군에 대해서 말을 할 때에는 얼굴에 화기가 돌며 엷은 미소까지 지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 사라질 만도 하건만 할머니는 마치 어제의 일을 말하는 것 마냥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는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반미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나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50여 년 전의 미군들만 기억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한미 FTA는 무조건 좋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미국과 하는 계약이니까. “갸들이 우리한테 손해나게는 안 한다. 우리끼리 싸우는 거제.”

할머니에게 기억 속의 미국은 지금의 미국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미군들이 지나쳐도 될 것을 다시 돌아와 한센인들을 발견하고 오랫동안 도움을 주었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 것만큼 알고 아는 것만큼 믿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잡았던 도움의 손길은 따뜻하고 믿음직하다. 나는 할머니에게 50여 년 전의 하야리아 부대의 미군들 외의 미군들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군에 대한 그 기억 한 자락은 ‘진흙이 떡 반죽 된 가시밭길’ 같은 삶의 여정에서 따뜻한 등불이 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미군을 이야기하며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잠시라도 행복해하는 할머니를 욕할 수 없으리라. 지금의 우리는 그 당시 미군들과 달리 한센인들을 거부했던 사람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지나 간 일이라고, 그때는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들었다고,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실제로 사라호 태풍 당시의 신문을 찾아보면 산속에 고립된 한센인들에게 식량을 보급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 동네 사람들이 한센인들에게 가는 산의 입구를 가로막고 식량보급을 차단하여 한센인들이 아사 지경에 이르고 있지만, 대책이 없다는 내용이다. 동네 사람들은 한센인들이 그들의 주거지 부근에 삶의 터전을 마련할까봐 비상식량마저 보급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신문에 기사화된 곳과 할머니가 강제 이주된 곳이 다르지만, 행정 소속이 같은 부산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할머니와 그 동료들에게 식량을 보급하지 못하여 애를 태운 공무원이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미군들이 한센인들을 도와줄 수 있었다면 대한민국 정부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모두가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애써 변명해보지만, 안타까움은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