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사적 소유? 사적 소유의 마법에서 깨어나기[한철연 교육강좌]- ⑨
[한철연 교육강좌]- ⑨
신성한 사적 소유? 사적 소유의 마법에서 깨어나기
강사 : 박종성(호원대 외래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박종성 회원(호원대 외래교수)이 강의한 이번 강의에서는 마르크스의 사적 소유론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해명하는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강의 제목에서와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적 소유에 대한 맹목적 신뢰 의식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사적 소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회 구조의 변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강의로 ‘사적 소유의 퇴마’가 성공할 수는 없다는 말일까?
분명히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를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소유 자체를 없애자거나 조야한 수준의 공유제를 만들자는 말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의 사적 소유철폐론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근대 이성에 대한 성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근대 이성은 모든 것을 계량화시키는 이성으로서의 특성을 지녔다. 근대의 계량적 이성은 모든 것을 양적 기준으로만 평가하고 이를 통해 그것을 제어하고자 했다. 아도르노의 도구적 이성 비판은 바로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만물의 계량화는 각 개별 존재자의 질적 특성을 무시하고 양적 기준 하나로 추상화(균일화, 동일화)시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동일화 원리가 화폐라는 양적 기준을 통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화폐를 얼마나 소유했고, 소유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따라 인격을 평가하고 서로를 견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화폐를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는 서로를 수단으로 대우하면서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다. 사적 소유 관계는 이러한 소외 관계를 일반화시킨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 관계의 앙상블을 만드려면 사적 소유 관계의 철폐가 가장 좋은 길이 된다.
사실 사적 소유 철폐론은 마르크스만 주장한 것은 아니다. 플라톤, 토마스 모어 등도 공유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공유제는 조야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플라톤의 공유제는 모든 것(아내와 자식마저도)을 말 그대로 함께 소유하면서 사회를 유지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이 체제는 만인에 의해 사적소유로서 소유될 수 없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한다. 가령 재능과 같은 것을 폭력적 방식으로 도외시하려고 한다. 물리적, 현시적 소유만이 생과 생활의 유일한 목적으로 간주되는 것이다.”(MEW, 1, 534) “이 여성공유사상이 이 완전히 조야하고 반이성적인 공산주의의 노골적인 비밀…..이 공산주의는 인간의 개성(Pers?nlichkeit)을 도처에서 부정”(같은 책, 같은 쪽)한다. 사실 마르크스가 바라보는 공산주의는 개인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본질력을 표현하는 표현주의적 경향이 짙게 베어있다. 그의 사적 소유 철폐론도 모든 개인적 소유의 철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개인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적극적으로 소유하도록 장려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개인은 (타인과의) 공동 관계에서 비로소 그의 자질을 다방면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공동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격적 자유가 가능해진다.”(『독일이데올로기』 74쪽 / 128-9쪽)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적 소유는 소외된 노동의 결과물이다. 자본가가 소유하고 있는 기계나 공장과 같은 생산 수단 및 그 밖의 소유물들은 원래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생산물들이 착취되어 자본가의 소유가 된다. 따라서 자본가의 사적 소유물은 노동자의 소외된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는 이러한 관계가 심화되어 사적 소유 관계가 노동 소외를 더욱 심화시킨다. 생산 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노동자를 고용한다. 노동자는 임금을 통해 화폐 및 생산물의 사적 소유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이내 좌절된다. 임금 노동 관계에서 노동자가 만든 것은 노동한 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임노동 계약 관계에서는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은 자기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임노동 관계 밖의 노동자는 자기가 만든 노동 생산물에서 자아실현의 기쁨을 맛본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임노동 계약 관계에 묶인 노동자는 자아 실현의 기쁨은 커녕 노동 생산물의 상실로 인해 좌절감을 느낀다. 오히려 자신의 생산물에 의해 제어되는 이율배반을 경험한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노동 소외라고 규정했다. 노동자의 좌절과 예속 상태는 결과적으로 생산물의 제어력을 자본가에게만 인정하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제에서 비롯한다. 이렇게 맺어진 사적 소유 관계는 결국 인간 관계 전체를 왜곡시킨다. 그런면에서 볼 때 “사적 소유의 지양은 모든 인간적 감각들과 속성들의 완전한 해방이다. […] 이러한 감각과 속성들은 인간적으로 되고 […] 대상은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대상 즉 인간으로부터 기인하여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전화된다. […] 대상적 현실이 인간의 본질적 능력(die menschlichen Wesenskr?te)의 현실이 됨으로써 따라서 자신의 고유한 본질적 능력의 현실이 됨으로써 […] 모든 대상들은 자기 자신의 대상화 즉 인간의 개성(Individualit?)을 확인하고 실현하는 대상이 된다.”(?M 540-1쪽) 여기서 우리는 지양(Aufhebung)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제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존의 생산적인 성과를 받아 안으면서 새로운 창조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사적 소유 폐지론은 사적 소유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적 소유와 분업이 철폐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전면적으로 발휘할 수 있으므로 총체적인 개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 “개인은 (타인과의) 공동 관계에서 비로소 그의 자질을 전면적으로 도야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공동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격적[개인적] 자유(pers?liche Freiheit)가 가능해진다. […] 현실적 공동체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의 연합 속에서 그리고 그러한 연합을 통해서 자신들의 자유를 획득한다.”(『독일이데올로기』74쪽 / 129쪽)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으로서 공동체 속에서 개인들은 ‘인격적[개인적] 자유’도 획득하게 된다. 계급 사회에서 물질적 조건들은 개인들에게 외적인 것, 우연적인 것으로 주어져 왔는데, 인격적[개인적] 자유란 “일정한 조건들 내에서 방해받지 않고 우연성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독일이데올로기』 75쪽 / 130쪽)를 가리킨다. 지금까지 계급 사회에서 인격적 자유는 물질적 조건을 마음대로 향유할 수 있었던 지배 계급의 성원들에게만 주어졌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이 폐지되므로 개인들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물질적 수단이나 조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이러한 인격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처럼 공산주의 사회에서 개인들이 누리는 인격적 자유는, 물질적인 강제력에 포섭된 계급 사회에서 개인들이 누리던 자유보다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9강 후기
제가 알고 있던 마르크스보다 좀 더 말랑말랑한 마르크스를 만난 강의였습니다. 얼마나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나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자존주의 체제 하에서 착취가 공공연히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서 사적 소유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강사님의 거침없는 날 것으로서의 표현 방식이 신선하고 매우 공감적이었다. 강사님 짱!!
자본주의를 있게 하고, 심화시키는 사적 소유에 대해 철학적인 면과 함께 구체적인 현실을 살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맑스에 대해 우리의 언어, 현실의 언어로 이해하기 쉽도록 강의한 박종성 선생께 감사합니다.
‘16-14-12-10-8’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 단축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숫자의 나열이다. ‘사회적 관계의 총화’로서의 인간의 본질을 실현 해나가는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 것. 나 또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맑스가 추구한 인간은 전인적 인간, 미학적 인간
힘든 몸 이끌고 강의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강의 내용 재밌고 유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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