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씨, 안철수의 크기를 생각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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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 안철수의 크기를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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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성 원(부산대 교수)

 

며칠 전 TV에서 안철수가 출연한라는 프로를 보다가 구보씨는 문득, 머리 크고 키 작은 것으로야 안철수가 구보씨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키 크고 머리 작은 걸 좋아하는 세상이라지만, 세간의 기준도 사람 나름으로 통하는 것인가 보다.

하긴, 보이지 않는 키도 있으니까… 구보씨는 인천 출신의 옛 친구 한 명을 떠올렸다. 키가 꽤 작은 편이었던 그 친구는 그런 단점(短點)에 전혀 굴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정신적인 키’를 내세웠다. “오해하지 마라. 이래 뵈도 마음만은 꺽다리다.” 요새의버전으로 하면 이런 식이었다고 할까. 실제로 마음의 길이를 재어보지 못했으나, 언제나 여유 있고 푸근한 친구였다.

그렇다면 안철수의 정신적인 키는 얼마나 될까. 구보씨는 그 프로 내내 앉은 모습만 보여주는 안철수의 정신적 키를 가늠하려고 애썼다. 그간의 고심이 처음의 긴장한 표정에서 언뜻 드러나기도 했다. 미간에 세로 주름이 잡히고 흰 머리도 늘었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안철수 원장의 SBS출연 모습, 출처: SBS이제 안철수가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만이 아니라 최근에 펴낸 책을 보면, 그 준비를 상당 기간 해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직접적인 경험은 부족할지라도, 과외 수업을 통해서건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건, 우리 사회의 주요한 사안들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피력할 수 있는 준비를 꽤 갖추었다. 이것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아직 나쁠 건 없다는 게 구보씨의 생각이다. 안철수 효과는 일단 긍정적이다. 기성의 정치에 대한 변화 요구를 대변하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그 효과를 좀 더 이어나가는 것이 좋지 않은가.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는 이미 더 보태기 어려울 정도로 말들이 많다. 그런데 구보씨로서는 논의의 중심을 약간 빗겨나 특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안철수의 경우가 이제는 거의 잊힌 옛 지도자상의 이상적(理想的) 전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무릇 지도자나 통치자는 자신이 잘났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과 인품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추천하고 밀어 올리는 것이라는 전통 말이다.

그런 전통이 정말 있느냐구? 물론이다. 따지자면 요순(堯舜) 시대부터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그 덕성으로 임금이 되었고 하(夏)나라를 연 우(禹)임금은 치수(治水)의 능력을 인정받아 왕위에 올랐다. 당시에는 스스로 왕이 되고자 악다구니를 쓰지 않았다. 오히려 훌륭한 인물을 찾아 임금으로 세우는 것이 과제였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세속의 권력을 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기피하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자신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는 말을 듣고 강물에 귀를 씻었다는 허유(許由)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도 추대로 임금이 되었고 이후 석탈해나 김알지 등 다른 성씨들이 돌아가며 왕 노릇을 했다. 구보씨가 어릴 때만 해도 그런 전통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남 앞에 함부로 나서거나 스스로 우두머리가 되려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었다. 이러저런 자리에 추천이 되더라도 더 적합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이 도리라고 배웠다. 학급의 반장 선거에서 자기 이름을 적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낯 뜨거운 일이었다.

물론 이런 방식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그 자리가 크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닐 경우다. 부족 모임에 가까운 옛 국가에서는 왕이라고 해 봐야 큰 권한을 누린다기보다는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많았다. 오늘날도 위세는 없고 책임만 많은 자리는 서로 미루지 않은가. 왕위에 대한 욕심이 강해지고 세습이 일반화한 것은 챙겨 가질 것이 많아진 이후였다. 중국에서는 하나라 우왕의 아들인 계(啓)로부터 세습이 행해졌고 우리의 경우도 2~4세기 경에 이르면 세습이 확립된다. 그렇더라도 덕 있는 자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선양(禪讓)의 정신은 오랫동안 유교 정치의 이상으로 남아 있었다.

민주주의 시대에 선양이니 덕치니 하는 것은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민주(民主)의 민이 단일한 것이 아닌 한, 오늘날의 정치는 이해관계의 반영이고 조절임이 명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조절이 온갖 밀쳐내기와 나눠먹기로 행해지고 강자에 빌붙기와 약자를 억누르기로 이뤄질 때, 도덕적인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해관계로 엮인 정치의 장에서 단련이 된 인물들보다 정치에 대한 야심이 원래 없거나 약했던 인물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오늘의 사태는, 누구나 인정하듯 기존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의 증거다.
, 김영사, 2012.안철수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주변에서 부추기고 유혹하는 일이야 벌써 오래 전부터 있었다. 만일 정치적인 야심이 본래 있었다면 일찌감치 등장했을 것이다. 이명박과 다른 부류의 또 하나의 성공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설명만으로는 안철수 현상을 해명하기에 많이 부족하다고 구보씨는 생각한다. 안철수를 ‘IT시대의 이명박’이라고 하는 것으로는 그가 내보이는 도덕성과 상식적 합리성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기대를 가늠하기 어렵다.

안철수의 긍정적인 이미지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사심 없음이고 공익 지향성이며 약자에 대한 관심이다. 백신 개발과 무료 배포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래, 그는 20여 년간 그런 이미지를 지키고 키워 왔다. 박원순에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이유도 박원순이 그 자리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안철수의 판단 방식은 이상적인 지도자의 선정에 대한 전통적인 상과 들어맞는다. 또 그렇게 양보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심 없는 인물이라면 더 큰 자리에 적합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대중들의 판단 또한 지도자 선정의 전통적인 상과 어울린다.

“철학자로서야 그런 면에 주목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듣기에는 굉장히 나이브한 생각이야.”

C는 언제나 그렇듯 약간 비관적이다. 한 명뿐인 직원마저 휴가 간 출판사의 사무실에는 이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아 가만히 앉아 있기에도 텁텁하고 후덥지근하다. C는 에어컨을 켜면 금방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불과 5년 전을 생각해 봐. 그 때 이명박의 지지율은 지금 안철수의 지지율을 훨씬 뛰어넘었다구. 이명박이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지도자 상에 걸맞아서 그랬을까? 천만에. 오히려 거꾸로였지. 이명박의 비도덕성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 점에 대해 눈을 감았어. 반면에 문국현은 또 어땠어? 문국현은 서투르게나마 이명박과 다른 윤리적 사회 경영을 내세웠지만 결과는 허망했지. 대중은 도덕성을 이유로 대통령을 뽑지 않아.”

“나도 물론 도덕성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건 아니야.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확실히 정치에서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거지. 심지어 박근혜조차 신뢰성과 약속 지키기를 자신의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잖아. 이게 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요구의 뿌리를 전통에서 찾는 것이 무의미하진 않을 거야. 어떤 요구든 잠재된 바탕 위에서라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래서 민중의 요구는 때로 변덕스러워 보이지만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결국은 제 갈 길을 잡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도덕성은 정치에선 양념 같은 거야. 고춧가루를 마구 뿌리거나 소금을 함부로 쳐서 못 먹을 것 같은 음식으로 망가뜨려 내치기는 좋지만, 양념만으론 괜찮은 요리를 만들 수 없다구. 안철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이전 음식을 먹어 보니 상한 거라서 신선한 음식을 찾는 건데, 원재료가 부실한 채 몇 가지 양념만으로는 요리가 만들어지지 않거든. 금방 그 한계가 드러나기 마련이라구.”

“원재료? 그게 뭐야?”

“정치에서의 재료야 힘이지. 가장 중요한 힘은 이해관계에서 나오는 거고. 그게 곧 쌀과 고기 같은 거야. 물론 도덕성도 힘이 아닌 건 아니고 재료가 아닌 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재료에 지나지 않아. 쌀이나 고기 같은 기본 재료가 부실하면 그 위에 채소나 양념을 아무리 잘 깔아놔 봐야 겉으로만 맛있어 보일 뿐이야. 안철수는 턱없이 부족한 기본 재료로 음식을 만들려는 서툰 요리사와 같다구.”

“그럼, 안철수가 안 된다는 거야?”

“대통령 말이야? 글쎄,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결과가 좋진 않을 거야. 안철수는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모델로 삼겠다고 하던데, 루즈벨트는 빵빵한 배경에 서른도 안 되어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들어선 인물이야. 1932년에 대통령이 되기 전에 관료로 1차 대전도 치루고 부통령 출마도 하고 주지사도 하고 산전수전 다 겪었다구. 뉴딜을 추진할 힘이 그냥 생기는 건 아니야. 안철수는 루즈벨트는커녕 오바마하고도 비교가 안 되지만, 지금 오바마를 봐. 운신의 폭이라는 게 한 뼘밖에 안 되잖아.”

“정치인이라면 자신을 지지해 준 사람들이 배경이지 않을까? 그들의 요구가 힘이고 말이야.”

“하하…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하지만 노무현의 경우를 생각해 봐. 지지자를 계속 잡아두려면 그들의 요구에 맞는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구. 그런데 무엇을 통해서 그럴 수 있지? 도덕성을 통해서? 그런 양념을 걷어내는 데에는 긴 시간이 들지 않아.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나 룰라의 브라질처럼 자원이나 풍부한 나라 같으면, 그간 해먹던 놈들을 쫓아내고 경제를 정상화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계속 끌어낼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처지가 그렇지도 못한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앞으로 세계의 경제 상황은, 그러니까 이제 다시 골이 파이기 시작한 공황은 점점 더 심해질 거라구. 우리 같은 경제 구조로는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가 다가올 공산이 커. 파시즘으로 안 가면 다행이야.”

“파시즘? 안철수가 말이야?”

“안철수가 직접 그런 길로 가지는 않겠지. 그러나 정치가 여러 갈등을 해결하는 데 무력함을 보이고 경제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래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면 무력과 선동으로 정권을 잡으려는 전체주의 세력이 득세하지 말라는 법은 없어.”

“하하… C야, 그렇게까지야, 민주화 이후 20년이 넘었는데…”

“그래, 나도 안 그러면 좋겠는데, 역사는 전진만 하는 게 아니거든. 지금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봐. 불안불안하잖아.”

“흠… 그러나저러나은 읽어 봤지?”

“봤어. 대충… 그런데 정치가 학습한다고 금방 되진 않으니까…”

“많이 팔렸다지?”

“글쎄, 20만부는 넘었겠지…”

“하…나온 지 1주일 만에… C야, 근데 너네 출판사에서는 일 년에 책이 몇 부나 나가냐?”

“뭐? 지금 그딴 건 왜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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