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찾다[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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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마쓰시타를 만나다

요시코가 17세 때 마쓰시타를 만났다. 주말이면 학교가 있는 부산에서 집이 있는 울산으로 갔다. 일제 강점기임에도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은 사각모를 쓴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 전신) 남학생들이 많았다. 명랑하고 활발한 요시코였지만,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많지 않던 때이기도 하고 남학생들의 모습이 눈이 부시게 보여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오바상, 일본어로 아주머니를 오바상이라고 불렀거든. 오바상이 나를 툭툭 치대.”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눈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다가 한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드니까 나를 보고 있는 기라. 그래 좀 있다 내가 보나 안 보나 한 번 더 보니까 아직까지 보고 있는 기라.” 마쓰시타는 읽고 있던 책을 아예 무릎 위에 내려놓고 요시코만 보고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64년이라는 시간은 멈추었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을 친구에게서 듣는 것 같은 가벼운 흥분마저 느껴졌다. 마쓰시타는 할머니의 작은 방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것처럼 시간의 강을 건너 할머니 앞에 앉아 있었다. 뭉툭한 손으로 뒤틀린 얼굴을 살짝 가리며 웃는 모습은 17살 소녀, 요시코였다.

부산이 가까워 오자 마쓰시타는 요시코가 앉아 있는 자리를 스쳐 지나가며 메모지를 교복 치마 위로 툭 던졌다. 그녀는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메모지를 치마 위에 그대로 두었다. 부산에 도착할 때쯤 치마 위에는 메모지가 수북했다. 차마 그것을 버릴 수가 없어서 반찬을 싼 보자기 안으로 밀어 넣고 기차에서 내렸다.

마쓰시타는 요시코를 쫓아와서 반찬 보따리를 뺏다시피 가져가서 들었다. 요시코는 마지막 전차를 타야만 하숙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빠르게 걷는 그녀 옆에서 마쓰시타도 함께 걸었다. “대신동 갈라면 어떻게 가느냐 이라데” 할머니의 말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마쓰시타는 대신동이 아닌 기라. 그 학교는 대신동하고 반대편에 있는 학교라.”

많은 경험들 중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경험은 시간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시간은 우리들의 과거를 뒤죽박죽 섞어 놓기도 하고, 낯익은 얼굴들을 기억 속에서 지우기도 하고, 어느 날 낯익은 얼굴이 낯설어 보이게도 한다. 생기를 띠며 소녀 같은 미소를 짓는 할머니의 얼굴은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었다.

 

사랑을 맹세하다

마쓰시타는 말이 없는 요시코를 따라 전차를 타고 대신동까지 가서 그녀가 내리자 따라서 내렸다. “자꾸 묻더라. 이름이 뭐꼬? 주소가 어찌 되노? 어디서 사노? 주말마다 울산 가나? 울산 집은 어데고?” 처음 듣는 할머니의 웃음 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지만, 이른 새벽 풀잎 끝을 또르르 구르며 떨어지는 이슬방울 소리를 냈다.

마쓰시타는 자기가 사는 집 주소를 요시코의 손에 쥐어 주면서, 역 앞이니 울산에 오면 꼭 들려주기를 당부하며 돌아갔다. 마쓰시타가 사는 집은 경찰서와 거의 붙어 있었고, 그녀의 집은 경찰서 뒤로 조금만 가면 되는 거리에 있었지만, 애써 피해 다녔다. 마쓰시타가 순사 부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방학 때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우체국에 가는 길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쓰시타는 자전거를 타고 쫓아오며 어떻게 알았는지 “요시코 요시코”라며 그녀를 불렀다. 우체국 안에까지 막무가내로 따라 들어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뛰다시피 집으로 오는 내내 요시코의 가슴은 콩당콩당 뛰고 있었고, 마쓰시타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이름을 부르(<첫사랑 1>부분>)”며 그녀를 따라왔다.

그날 저녁에 잡지 책 안에

편지 한 통이

담으로 던져 마당에 있더라.

주워보니 그 얄미운

마쓰시타더라.

그리고 이것이

일 년 동안 지속되었다.

옛날 속담과 같이

열 번 찍어서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더니

이것이 나를 두고 하는 소리더라.

결코 만나자기에

일 년 후에 둘이가 만났더라.

<첫사랑 1>의 부분

둘의 사랑 앞에서 그가 일본인 순사 부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장애가 될 수 없었다. 17세의 요시코와 마쓰시타는 “둘은 손을 꼭 잡고/동백섬에 들어가서 동백꽃을 꺾어/내 머리에 꽂아주고/내 역시 동백꽃을 꺾어서/그대의 윗 포켓에 꼽아 주며” “변치 말자고/손을 굳게 잡고 다짐하며/(< 첫사랑 1>의 부분) 맹세”했다.

그리고 이후 요시코의 삶은 두 손을 꼭 맞잡고 한 맹세에 갇혀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결혼을 한 다른 남자가 곁에 있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64년 전의 맹세에 묶여 있었다. 할머니는 시 <눈 내리는 날>에서 마쓰시타와 함께 한 시간들을 “팔십 평생을 살아도/눈 나리는 이 날이/잊혀 지지 않고/옛 추억이 그립더라.(<눈 내리는 날>부분)”고 말한다.

사랑에 대한 맹세의 기억이 없었다면, 어쩌면 할머니의 삶은 좀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사람 목숨이 먼저이니 일단 살고 보자’고 그녀를 설득했던 청년 김철수와 결혼하여 59년을 함께 살았지만, 요시코의 영혼은 굳은 사랑을 맹세했던 마쓰시타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별한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런 마음을 이야기 내내 표현하면서도 마쓰시타라는 이름 앞에서 17세의 소녀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 <이 여자, 이숙의>의 주인공인 이숙의 역시 결혼 생활 6개월 만에 월북한 남편을 잊지 못하고 53년 동안 홀로 지낸다. 불같은 사랑을 했지만 남편은 임신한 아내를 남쪽에 두고 월북하였다. 6?25가 발발하자 남하하여 빨치산을 조직하고 남부군으로 활동하다 잡혀 사형되고, 이숙의는 홀로 딸을 낳아 기르며 남편을 그리워했다. 이숙의도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남기고자 글을 썼지만, 책이 출판되기 전에 생을 마쳤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로즈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잭과 함께 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몸을 바다에 담근 채 “넌 꼭 살아야 해. 네가 원하는 삶을 행복하게 살아야 해”하며 바다 밑으로 가라앉던 잭을 죽는 순간까지 마음에 간직한 채 삶을 이어갔다. 다른 남자를 만나 아내로 어머니로 살면서도 잭을 떠나보내지 못했던 것이다.

요시코, 이숙의 그리고 로즈는 우연히 만나 사랑했고, 그 사랑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죽음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회상이 아닐까. 살아가면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사랑의 기억은 그녀들의 삶을 때로는 기쁨으로도, 때로는 슬픔으로도 채우면서 출렁거렸던 것은 아닐까.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무르다

17세에 만나 채 3년이 되지 않는 시간의 기억들이 한 사람의 삶을 64년 동안 지배한다는 현실 앞에서 망각의 힘은 무력했다. 할머니가 마쓰시타의 생사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한 기억들이 의식의 흐름을 통해 지속되고 있었기에 현재까지 설레임과 그리움을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와 이숙의, 그리고 로즈에게 공통적인 것은 사랑의 기억이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요시코와 마쓰시타의 이별은 개인이 저항할 수 없는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때문이었다. 한 인간의 힘으로 역사의 흐름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할머니가 했던 저항은 부조리한 현실을 부정하고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며 사는 것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무사히 삶의 저편에 닿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한 가운데에서 추억을 되살림으로써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마쓰시타와의 재회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이루어질 것으로 믿으면서 할머니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었으리라.

17세의 그녀는 마쓰시타와의 우연한 만남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1년 동안 이어지는 마쓰시타의 구애를 받아들일 때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디로 굴러갈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사랑하고 사랑받았으며, 사랑만이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을 통해서 우리는 본다. 사랑은 한 사람의 삶의 축을 가로지르며 척박한 현실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교사였던 이숙의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회주의자를 사랑했지만, 남편이 남긴 딸과 함께 역사와 이념의 장벽을 넘었다. 로즈는 자기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잭의 마지막 부탁이었기 때문에 잭을 가슴에 품고 또 다른 삶을 찾았다.

그러나 할머니의 사랑은 그들과 달랐다. 마쓰시타를 다시 만난다 해도 한센 병 때문에 그 앞에 나설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자신의 손으로 남의 집에 양자로 보낸 아들의 얼굴은 한 살 젖먹이 얼굴 그대로 가슴 속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날마다 조금씩 변해 가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할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죽음마저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을 때 할머니는 스스로 자신을 가두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추억은 그러나 죽음과 같은 현실의 삶에 때때로 생기를 주었다. 마쓰시타와 함께 했던 해운대 모래사장과 동백섬은 척박한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회상의 공간이었으며, 눈 내리던 날에 함께 만들었던 눈사람은 잊혀지지 않는 순수의 지점이었다. 현실의 고통을 과거의 기억에 의해 버틸 수 있었던 것, 이것이 할머니의 삶에서 추억이 지닌 가치였다.

 

나를 찾아서 길을 떠나다

할머니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잃어버린 존재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부단히 흘러가는 속성을 지닌 자연적인 시간은 추억에 의해서 할머니만의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무르는 것은 단순한 현실부정이 아니라 과거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부정하는 그녀만의 심리적 시간은 할머니의 의식이 의지적이든 무의지적이든 한센 병이 발병하기 이전의 시간 속에 자신을 두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잘 나타난다. 이러한 욕구는 할머니의 사진이 한 장도 없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할머니가 보여 준 앨범 속에는 젊은 시절의 청년 김철수에서 영정 속에서 웃고 있는 모습 등 모두 사별한 할아버지의 모습만 있었다. 한센 병 발병 이전의 할머니는 그녀의 기억 속에 요시코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물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지만, 오히려 과거에 갇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아닐까? 할머니가 나를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이숙의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자 했던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짧았던 사랑의 기억만으로 살아왔지만, 그 기억 속에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삶의 실존성을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온전함을 회복하는 길, 이숙의에게는 자전적 소설이었지만, 할머니에게는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시를 쓰고 자신의 시를 읽으며 스스로 치유하고, 치유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찾는 데에 마쓰시타는 할머니가 건너야 할 또 다른 장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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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게이아(Hygeia)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이는 흔히 의약과 치유의 신으로 알려진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us)와는 또 다른 치유의 신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이나 약으로 환자의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신이라면, 히게이아는 환자 자신의 자연치유력을 돌봐주고 길러주는 치유의 신입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치료의학의 수호신이라면, 히게이아는 간호학과 위생학의 수호천사로 불립니다. [히게이아의 시학]은, <e시대와 철학>과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서 바로 치유의 여신 히게이아의 정신을 계승하여, 문학 특히 시를 통해 환자의 삶과 소통하고 환자의 자기 치유를 유도하는 하나의 치유인문학이자 인문의학의 성격과 내용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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