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드로네 주카우스카이테 지음, 『유기체지향 존재론』(갈무리, 2026.10) 서평
『유기체지향 존재론』 : 생명정치를 거역하는 생명
정현주, 전남대학교 학술연구교수
1. 생명정치에 대한 문제의식
류성실의 작품 <Ten Thousand Dreams>(2026)은 여학생 교복을 입은 12개의 마네킹이 합창을 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성공에 대한 국가의 강박적 야망을 드러내는 합창은 거대한 집단적 규율을 이룬다. 서사는 국가의 ‘꿈’을 개인에게 심는 교육의 참모습과 이를 거역하려는 반체제적 불협화음을 동시적으로 표출한다. 피날레에서 한 마네킹의 치마가 위로 들쳐지면서 그 자궁으로부터 강렬한 빛이 관객에게 뿜어져 나오는 순간, 이 압도적 장면이 드러내는 것은 교육과정에 침투해 생명의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조작하는 생명정치다. 이 암울한 전망 속에서 생명정치적 통제에 대항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무엇에 근거해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유기체지향 존재론』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렘케에 따르면 생명정치를 규정하고 그 의미를 밝히는 작업은 가치중립적 활동이 아니라, 도리어 그 탐구가 불가피하게 변화와 갈등을 야기하는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의 작업이다. 주카우스카이테(A. Žukauskaitė)는 유기체와 유기적인 것(the organic)의 내재적인 ‘저항의 존재론’을 정립하기 위한 시도로 나아간다. 이는 생명 자체의 저항 역량을 규명하는 일이다. 저자가 인용하는 푸코와 들뢰즈, 말라부의 관점에서 그 잠재력은 생명체의 구조 자체에 새겨져 있다. 그녀는 이러한 유기적인 것의 특성이 생명정치적 패러다임에 대립하는 실체적 거점이 될 수 있는지를 묻고 입증하고자 한다.
저자는 서론에서 칸트의 ‘자연목적’ 및 내재적 인과성 개념에서 출발하여, 폰 베르탈란피의 일반체계이론,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그리고 마뚜라나와 바렐라의 자기생성(autopoiesis) 이론을 차례로 엮어낸다. 칸트 이후 유기적인 것에 대한 사유는 고전적 기계론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했다. 유기체는 외부의 원인이나 선형적 인과성으로 환원되는 기계적 모델과는 달리, 재귀적이고 내재적인 인과성을 따라 스스로를 준거하고 변형하며 우연성을 내부 질서로 통합한다. 특히 사이버네틱스적 관점에서 살아있는 유기체는 포도당 등을 이산화탄소, 물, 요소로 연소시키는 열기관이며, 살아있는 유기체와 기계/기관은 분리되지 않는다. 또한 기계가 유기체 작동을 모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기체와 기계는 아무 차이도 없다. 실제로 사이버네틱스의 자기조직화 개념은 기계론과 생기론 사이의 논쟁을 그 근원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결과적으로 유기적 사고는 마뚜라나와 바렐라의 자기생성이론과 연결됨으로써, “스스로 조직하고 스스로 산출하며 변화할 수 있는 자체의 역량”이라는 생명 자체의 자기조직화·자기생성·가소성이라는 내재적 역량을 도출하는 이론적 기초를 구성한다. 『유기체지향 존재론』은 일반체계이론, 사이버네틱스, 자기생성체계, 일반 기관론으로 이어지는 유기적 사고의 흐름을 짚어냄으로써 생명체 고유의 자기 주도적인 자기조직화 역량을 입증하고자 한다.
2. 유기체지향 존재론의 세 원리
따라서 생명정치가 위계질서를 창출하고 분할과 배제를 통해 생명을 수량화·착취할 때, 유기체지향 존재론은 다음의 세 가지 개념을 핵심 원리로 삼아 이에 저항한다. (1) 유기체가 지닌 가소성을 통해 입증되는 과정성(Processuality)은 존재를 지속적인 개체발생으로 보는 가장 상위의 원리다. 생명의 가소성은 권력체계가 생명을 통제·조절·착취하게 만드는 조건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고정된 도식을 지속적으로 벗어나 맞설 수 있는 생명 고유의 역량이기도 하다. (2) 저자는 유기체를 총체적 실체가 아닌, 다양한 이질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뒤얽힌 들뢰즈적 회집체(assemblage)로 이해하고 이를 공동생성(sympoiesis) 개념과 연결하면서 철학적 출구를 마련하고자 한다. 저자에게 회집체란 환경·미생물·공생체·테크닉적 확장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수평적으로 결합하는 다중성(Multiplicity)을 특징으로 하는 통생명체(holobiont)다. 이는 유기체를 단일하게 경계 지어진 개체나 총체로 보는 생명정치의 위계와 구획에 저항할 수 있는 존재론적 역량을 드러낸다. (3) 유기체가 단순한 외적 자극에 선형적으로 반응하는 기계가 아니라, 우연성과 자극을 내재적으로 흡수하여 완전히 새로운 구조와 행동 양식을 창조하고, 쇠퇴, 질병, 트라우마, 사멸로 나아가는 존재라는 점은 예측 불가능한 질적 변화를 함축한다. 이러한 잠재성(Potentiality)과 비-잠재성(impotentiality)은 생명정치적 공학을 맞서 약한 신체들에도 동등한 존재론적 가치와 존엄을 부여할 수 있는 자율적 역량이 된다. 나아가 유기체 고유의 자기조직화·자기결정모델은 인류세 등의 행성적 위기와 생물학적·테크놀로지적 얽힘을 새로이 사유할 수 있는 철학적 조건을 제공한다.
이 서론에서 구축된 프레임은 본문의 제1장부터 제7장에 이르기까지 전후 프랑스철학, 일반기관론, 행성적 가이아 이론, 공동생성 담론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3. 시몽동에서 일반 기관론까지의 사상사적 계보
주카우스카이테가 유기체지향 존재론을 통해 본론에서 그려내는 것은 대륙철학 전통의 사상사적 지형도다. 게다가 이 존재론의 시작과 끝을 이루는 개념의 토대가 대륙철학의 것이라고 해도 저자가 최종적으로 시선을 두는 곳은 전후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미친 사이버네틱스의 영향이다. 즉 이들의 존재론에 이식된 재귀적 자기조직화와 내재적 인과성이다. 이것은 외부의 선형적 인과나 초월적 목적론을 거부하고, 체계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준거하며 우연성을 내부 질서로 통합하는 작동 원리이다. 시몽동은 실체 형이상학과 전통적 질료형상론과 씨름하기 위해 존재론의 중심에 과정과 변화의 잠재성을 설명하는 개체화(individuation) 이론을 위치시킨다. 뤼예 또한 형태발생 과정을 분자형태학으로부터 아무 공백 없이 자체 내부의 질적 변화를 주도하는 자기조직화 활동의 하나로 봄으로써 형태가 미리 결정되어 수량적으로만 확대된다는 전성설 및 유전자 중심주의와 결별하고,10) 유기체를 동등잠재성과 자기살핌의 역량을 갖춘 ‘일차 의식’으로 정의한다. 이때 뤼예의 의식개념은 어떤 외적 관찰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기준거적 회로로서 내적 시각에 해당한다. 두 사상가 모두 미리 형성되거나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는 고정된 ‘개체’ 개념을 배격하고 변화와 생성의 주체를 생명으로 보며, 따라서 유기체가 스스로 질적 형상을 만들어내는 내재적 주체라는 점에서 자율적 자기조직화를 고려한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주카우스카이테는 들뢰즈의 독해에 있어서 시몽동 수용을 통해서는 사이버네틱스의 자기조직화 원리를 연결시킨다면, 뤼예의 수용을 통해서는 제2차사이버네틱스의 자기관찰 체계 및 재귀적 인지 모델을 연결시킨다. 들뢰즈는 시몽동의 ‘전-개체적 상태와 개체발생의 구도를 잠재적인 것(virtual)과 현실적인 것 사이의 차이를 생성하는 상호연출로 변형한다. 그런데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되는 개체발생 과정에서 역동성의 수용자로서 애벌레/배아적 주체성은 뤼예의 일차 의식, 곧 유기적 의식과 공명하며 이는 나아가 바렐라의 자기 없는 자기라는 신체화된 재귀적 인지 개념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뤼예의 일차 의식은 말라부의 내재적 가소성과, 스티글러와 육 후이의 일반 기관론의 기술적(technical) 객체의 내재적 발전으로 확장되는데, 이는 유기체의 내재적 자기조직화 역량이 신경망의 유기적 가소성을 거쳐 외부 테크놀로지 및 사회적 기관으로까지 집단적으로 확장되는지에 대한 단계적 답변을 구성한다. 결과적으로 칸트로부터 스티글러·육후이까지 저자가 쌓아올린 대륙철학의 사상사적 계보는 뇌/신경계, 유기적 신체, 기술, 사회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서로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재귀적 자기조직화와 가소성 개념을 핵심 축으로 공유하는 하나의 연속적인 생명-기술적(life-technical/technological) 회집체임을 입증한다. 이는 다시금 해러웨이의 통생명체/공동생성 담론을 연결하는 강력한 사상적 다리가 된다. 그리고 생명정치에 대항하려는 저자의 확고한 입장은 행성과 생물학적 혼종의 관점으로 나아간다. 생명 자체가 비유기적·기술적 확장 및 타자들과의 공생을 통해 스스로를 조직하는 포괄적 회집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4. 행성, 생물학적 혼종으로의 확장
해러웨이는 생물학적 세계에서 그 어떤 것도 스스로를 혼자 만들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녀의 통생명체/공동생성의 논리에는 신경계와 살아있음의 조직 자체는 작동적으로 폐쇄되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외부의 타자를 직접 만날 수 없다는 자기생성이론에 대한 문제의식이 놓여있다. 다시 말해서 자기생성이론만으로는 환경에 적응하여 스스로의 체계를 유지하는 ‘항상성’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새로운 구조가 출현하고 생명정치적 통제를 벗어나는 ‘질적 변화와 저항’이 가능한지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이 지점의 어려움은 신경계 내부의 관점과 환경 내에 거주하는 유기체를 관찰자가 외부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충돌하는 논리적 공백으로부터 온다.
저자는 해러웨이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공유하기보다는 다른 경로를 모색한다. 이 경우 주어진 과제는 자기생성체계의 구조결정론적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 왜 생명이 비 유기적 테크닉적 객체(일반 기관론)나 생태-면역학적 관용이라는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환경으로 외부화된 회집체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지 그 당위성 설명하고 자기생성과 타자생성/공동생성을 아우를 수 있는 지점으로 나아가는 경로를 확보하는 데 있다. 저자는 울프의 논의를 빌려 해러웨이의 통생명체 또한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처럼 회집에 대한 다양한 정도의 개방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경계를 전복해야하는 사태에 마주하게 되는 모순을 경고한다. 그리고 유기체지향 존재론은 자기준거체계와 가이아 이론을 연계시킨 바렐라 및 클라크의 견해를 따라, 체계(system)는 전체성을 함축하지 않는다는 사이버네틱스적 정식화의 수용으로 나아간다. 자기생성체계의 폐쇄성은 오히려 체계 내부의 재귀적 연산을 통해 우연성을 수용하고 환경과의 연결성과 복잡성을 증대시키는 근원이다. 그리고 폐쇄성의 함축으로서 공동생성은 자기생성을 내부로 포섭하여 더 높은 차원의 복잡성으로 확장하는 공생적 연동(symbiotic couplings)으로 나타난다. 결국 유기체지향 존재론이 입증하는 것은 자기생성 체계를 축으로 한 가소적이고 공생적인 생명-기술적 회집체이다. 이는 생명을 규제하고 수량화하려는 국가적·생명정치적 통제에 남김없이 포섭되지 않는 가장 급진적인 내재적 저항 거점이 된다.
북리뷰를 마무리하며,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생명정치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타당하다. 그렇다해도 우리는 어떤 유기체가 지닌 생태적 적소의 본질이나, 어디까지 그 범위가 미치는지는 오직 그 적소를 통합하는 유기체의 ‘살아있음’의 방식을 관찰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 지구 위의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유기체가 생태학적 유기체-적소 단위체들로 된 다양한 연결망을 통합하면서 존재할 때, 가이아를 단순히 자기생성체계이자 공동생성체계로 암시하는 방식은 그 행성적 본질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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