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속 이상적 인간상의 비교 (2) [건국대학교 논어 강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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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속 이상적 인간상의 비교

—인자(仁者)와 지자(知者) 그리고 군자(君子)를 중심으로—

 

건국대학교 동양철학전공 석사과정 오서진

 

 

(이어서)

 

 

2.2. 인자(仁者)와 지자(知者)

일반적으로 인자는 어진 사람, 지자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풀이되며 덕목의 종류만 다를 뿐 ‘어떠한 덕목을 갖춘 자’라는 점에서 인자와 지자는 동일하다. 그리고 한국어로 ‘어질다’와 ‘지혜롭다’는 엄밀하게는 다르겠으나 의미상 상당 부분 겹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인자와 지자에 대한 궁금증은 앞선 「옹야」(雍也) 편의 인자와 우물의 예시 구절과 연결된다. 앞선 구절에서 인자는 단순히 맹목적으로 인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즉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는 상황 파악 능력과 외부에 휘둘리지 않는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파악 능력과 판단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속임에 쉽게 넘어가고, 재아의 말대로 인을 찾기 위해 우물 안으로 들어가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자가 답하길 군자(인자)는 ‘남에게 속을 수는 있어도 그로 인해 부덕한 행위를 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인자는 덕을 추구하면서도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자는 곧 지자인가? 인자와 지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옹야」(雍也) 편에서는 인자와 지자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는 활발하고 인자는 고요하다. 지자는 즐겁게 살고 인자는 오래 산다.”

 

공자에게 지자는 물을 좋아하는 이미지인 듯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논어 내에서 물에 대해 언급한 구절은 거의 없으며 물의 특성에 대한 언급 역시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지자에 대해서는 몇몇 구절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지(知)에 대한 언급은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덕목으로서 지(知)는 단순히 정보나 지식의 보유를 넘어서 그것을 실생활에 적절히 적용하고 활용할 줄 아는 단계까지도 포섭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지자는 단순히 박식한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축적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위 구절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인지와 지자를 묘사하는 내용은 「리인」(里仁) 편에도 등장한다.

 

공자 초상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인(不仁)한 사람은 곤궁한 데 오래도록 살지 못하며, 안락한 데 오래도록 살지 못할 것이다. 인자(仁者)는 인을 편하게 여기고, 지자(知者)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

 

앞선 「옹야」(雍也) 편의 구절에서 인자는 오래 산다고 언급한다. ‘수(壽)’에 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인자는 안정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이미지인 듯하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누구보다 인을 잘 실천하기로 알려진 안회(顔回)의 경우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즐거움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안회가 곤궁한 상황을 잘 견딜 수 있던 이유가 인에 있다면 인은 수용 혹은 포용에 관한 덕목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지자라면 똑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까? 아마도 인자와 마찬가지로 지자 또한 곤궁에 처했어도 근심하지 않고 삶을 유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결과는 비슷해도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인자가 상황에 녹아드는 방식이라면 지자는 상황에 따른 합리적인 대응법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인자가 인을 편하게 여기는 까닭은 인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삶의 방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의식하지 않아도 호흡하고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인자에게 인은 말 그대로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다. 반면 지자에게 인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이다. 위 구절에서 지자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고 하지만, 인보다도 더 합리적인 대안이 있다면 지자는 인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자와 지자의 차이는 다름 아닌 삶의 모습 그 자체에 있을 것이다. 인자가 좋아하는 산은 작은 요소들이 수없이 모여 거대한 하나를 이루며 그 모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인자의 삶은 짧은 시간과 작은 사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꾸준한 실천을 통해 가꾸어지며, 그렇게 해서 쌓인 경험들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쉽게 모습을 바꾸거나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고 해서 산이 되지 않으며, 한 그루의 나무가 없다고 해서 산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지자가 좋아하는 물은 고정되지 않고 붙잡히지 않으며 변화무쌍하다. 그러나 물은 일정한 길을 터주면 그 길을 따라 흐르고, 결국에는 한곳으로 모인다. 지자의 삶은 얽매임이 적고 변하기 쉽지만, 그만큼 적응에 능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다. 인자, 지자에 대한 공자의 비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으나 공자가 두 인간상을 구분한 것은 두 개가 완벽히 겹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3. 결론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자와 군자의 관계이다. 인자와 군자는 모두 유가의 바람직한 인간상이자 추구해야 할 인간상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인자가 인(仁)의 덕목을 갖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군자는 여러 덕목을 갖추어야 할 사람으로, 자신을 단속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단속할 책임과 역할을 진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군자는 인자에 비해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다. 비록 인자와 군자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점은 군자에게 인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자라면 응당 인을 품고 그와 함께 살아야 한다. 인자가 곧 군자는 아니지만, 군자는 인자의 면모 또한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인자는 잠재적인 군자일 수도 있겠다. 이에 관해서는 다른 기회에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둘째, 인자와 지자의 관계이다. 인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인자와 지자는 구분된다. 인자는 인을 삶의 방식(태도)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인자에게 인을 실천하는 것은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며 더 큰 이익을 위해서 또는 강요를 받아서도 아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고 상대의 마음에 다가가려고 애쓰는 태도가 체화된 사람이 인자이다. 반면 지자에게 인은 유용한 수단이다. 기본적으로 지자는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그것을 채우는 데 능하다. 또한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 잘 적용하며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다. 인을 삶의 구심점으로 살아가는 인자와 달리 지자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며 인은 그 가능성 중 하나이다. 섣부른 결론을 내리자면, 지혜로운 인자와 어진 지자는 있을 수 있지만, 인자이면서 동시에 지자인 사람은 있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인자와 지자는 삶의 방식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인자는 넓은 외길을, 지자는 좁지만 여러 갈래의 길을 걷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자와 지자가 대립하거나 대척하는 관계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논어에서 논의된 맥락에 따르면 두 인간상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상으로 인자, 지자, 군자에 대한 나름의 소견을 정리해 보았다. 글을 매듭지을 때가 되어서야 논의의 엉성한 부분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인지와 군자의 관계 그리고 인자와 지자의 관계를 분석해 보았는데, 군자에 대응하는 인자와, 지자에 대응하는 인자는 서로 다른 맥락 속에서 의미를 구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같은 개념이라도 맥락과 의도에 따라 함축하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배운다. 또한 큰 개념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섬세하게 논의되지 못한 내용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유가의 핵심 개념인 인(仁)을 한정된 맥락 속에서 좁은 의미로 해석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의 활동을 통해 보완해 나가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인과 의에 관한 맹자의 구절을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인(仁)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요, 의(義)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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