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2-상호작용과 개념[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2-상호작용과 개념
1)
헤겔은 개념론에 들어가기 전에 ‘개념 일반에 관해’라는 글을 붙인다. 아마 개념론의 서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서문은 약 19쪽에 달하니 1부 객관 논리학 앞에 붙인 부분(‘Vorrede’ 4쪽, ‘Einleitung’ 15쪽, ‘Anfang der Logik’ 8쪽)에 못지않게 길다. 여기서 헤겔이 다루는 핵심적인 주제는 곧 논리학과 관련하여 칸트 선험철학의 의미와 그 한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논의의 출발점은 논리학(헤겔적인 의미에서 주관 논리학을 의미한다)의 출발점인 ‘개념’(개념에 관한 헤겔의 독특한 의미를 표시하기 위해 앞으로 헤겔적인 개념에 관해서는 ‘개념’를 사용하고자 한다)의 출현이다. 다른 학문의 경우 그 출발점, 원리는 단순히 전제되며, 이 전제는 이웃하는 학문에서 빌어오거나 더 높은 차원의 학문에 의존한다. 그러나 논리학은 자기의 원리를 다른 어디에서도 끌어올 수 없고 오직 자기 자신에서 끌어내야 하니, 논리학은 자기 자신을 근거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논리학의 원리는 마치 유클리트 기하학에서 공리처럼 전적으로 직접 주어지는 것으로 전제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헤겔은 오히려 논리학의 원리는 모든 존재자 속에 자기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이 구체적 존재를 규정하고 정립하니, 논리학의 근거는 거꾸로 모든 존재자로부터 가장 일반적으로 끌어낸 것이라고 한다. 이 도출의 과정이 논리학의 근거가 생성하는 과정이며, 즉 근거로 복귀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자기를 정립하는 운동, 즉 추상에서 구체로 나가는 운동과 근거로 복귀하는 운동, 즉 개별적 존재에서 일반적 원리로 나가는 운동은 서로 대립적이면서 서로 순환한다. 이 순환은 이미 정신현상학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직접적인 것은 매개된 것으로 전환하며 거꾸로 매개된 것은 직접적인 것으로 전환한다.
“개념의 생성은 이런 직접적인 생성의 운동을 통해 서술된다. 그러나 개념의 생성이 지닌 의미는 모름지기 생성이 항상 그렇듯이 이행하는 것이 자기의 근거로 반성한다는 것이며 우선 앞선 것이 이행해 들어간 나중의 것이 처음에는 타자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 처음의 것이 지닌 진리를 이룬다는 것이다.”(논리학 2부, GW12, 11-12)
“추상적으로 직접적인 것은 사실 최초의 것이다. 그러나 이 직접적인 것은 추상적인 것인 한에서 오히려 매개된 것이며 그러므로 이 직접적인 것이 진정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면, 그 토대는 이 매개된 것에서 비로소 찾을 수 있다.”(논리학 2부, GW12, 11)
이런 관점에서 주관 논리학의 원리는 앞에서 객관 논리학에 존재에서 본질로, 본질에서 다시 절대적 관계로, 여기서 실체관계, 인과 관계, 상호작용을 거쳐 생성된다고 한다. 헤겔은 이 과정을 다시 한번 간략하게 서술한다.
2)
헤겔을 따라 이 과정을 간략하게 서술하자면, 이렇다. 즉 실체관계는 서로 무차별한 우발적 존재의 관계였다면, 인과 관계는 개체가 각자 자립적인 동시에 타자와 관계한다. 그 결과 인과 관계의 연쇄가 출현하고 마침내 상호 인과 관계 즉 상호작용이 출현한다.
이런 상호작용에서 원인(능동적 실체)과 결과(수동적 실체)는 상호 교체된다. 원인의 작용에 의해 결과는 자신의 전제된 직접성을 벗어나 정립된 존재가 되면서 원인이 된다. 이 결과를 원인으로 해서 원인도 전제된 직접성을 벗어나 정립된 존재 즉 원인이 된다.
“능동적 실체는 작용을 통해 즉 자기가 자기를 자기 자신의 반대물로 정립하는 가운데 즉 그와 동시에 이런 전제된 타자 존재 즉 수동적 실체를 지양하는 것을 통해서 원인이나 근원적 실체로서 자기를 계시한다. 거꾸로 이렇게 작용이 가해짐으로써 정립된 것은 정립된 것으로, 부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으로 되며 따라서 수동적 실체는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으로 계시되고 원인은 자기 자신의 타자 속에서 전적으로 다만 자기와 합일할 뿐이다.”(논리학 2부, GW12, 13)
이 두 가지 상호적 인과는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니, 이 관계를 상호작용이라 한다. 이 과정에서 원인은 역시 자기를 결과 속에 정립하면서 자기 동일적인 것으로 되니, ‘자기 관계하는 존재자’(일반성)가 된다. 반면 결과는 근원적인 원인에 대립하는 것이니 이미 부정적인 존재인데, 원인에 의해 부정되면서 자기 부정적인 것 즉 가상으로 되니,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개별성)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측면 즉 타자가 자기에 동일하게 관계하는 것이거나 부정적으로 관계하는 것은 각자 자기 자신의 반대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즉 동일성의 관계와 부정성의 관계는 동일한 것이다. 실체는 이제 자기의 대립물 속에서 자기 자신과 동일하며 이것이 두 가지로 정립된 실체의 절대적 동일성을 이룬다.”(논리학 2부, GW12, 13)
이런 상호작용을 매개로 해서 가능성으로서 절대자가 실제성으로 실체가 되며, 이런 매개는 자기를 근거로 하는 것이기에 항상적으로 일어나니 절대자의 실현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처럼 필연적으로 실현된 절대자가 곧 실체다.
이렇게 절대자가 실현된 실체는 필연적 실현인 한에서 무조건적인 것이니 곧 자동적인 것[automatische]으로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것인 동시에 절대적으로 우연한 것이다. 이런 실체가 곧 ‘개념’으로 규정된다. 이 ‘개념’이 곧 앞으로 전개될 개념론의 출발점 곧 원리가 된다.
3)
앞에서 말했듯이 개념은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매개로 한다. 이 관계를 목적론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면, 양자의 통일성으로서 가정된 절대자가 양자로 분화되며, 이런 분화가 다시 통일되어서 양자의 통일적인 관계 즉 ‘실체’가 출현한다.
이런 통일성으로 가정된 절대자 즉 목적으로서 절대자가 곧 개념이니, 개념은 이미 이런 관계 속에 그리고 이 관계를 통해 전개되는 운동 속에 있는 것으로 가정되고 있다. 여기서 목적으로서 개념은 서로 대립하는 개체로 분화되고(개념이 부정된 것, 정립된 것) 이 분화된 개체의 상호 관계를 통해(부정된 것의 부정, 정립된 것의 정립됨) 실현되니 이는 과정은 하나의 이중 부정 운동으로 서술할 수 있다.
우선 출발점에 있는 개념은 장차 분화될 가능성을 지니지만, 아직은 단순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이루어지는 개념의 실현은 이중적인 부정성(부정의 부정)을 통해 회복되는 자기 관계(일반자)이다. 거꾸로 매개가 되는 개체는 개념이 부정된 것이지만, 타자와 관계하면서 다시 이것이 부정되는 것이니, 자기 부정성 또는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개별자)이다.
그러므로 일반자나 개별자는 각자 속에 이미 타자가 들어 있다. 즉 일반자의 자기 관계 속에는 자기 부정성으로서 개별자가 들어 있으며, 개별자의 자기 부정성 속에는 이미 일반자의 자기 관계가 들어 있다
“개념 규정성의 각각은 총체적인 것이며, 각자는 타자의 규정을 자기 내에 포함하며 그러므로 이 총체적인 것은 전적으로 다만 하나이지만, 동시에 이와 같은 통일성은 자기 자신을 이러한 이원적인 것이라는 자유로운 가상으로 분화한다. 이런 이원화는 개별자와 일반자로 구별되는 가운데 완전한 대립으로 나타나지만, 이 대립은 그에 못지않게 가상이기에 하나가 파악되고 언표되면 그런 가운데 다른 것도 직접 파악되고 언표된다.”(논리학 2부, GW12, 16)
4)
헤겔에서 이 ‘개념’으로 지칭되는 것은 아주 특정한 것이니 그 출발점은 실체이다. 즉 생명체의 집단(암수 결합체)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개념의 단초, 출발점에 지나지 않으며 본래 개념은 주관이 출현하면서 나타난다.
여기서 헤겔은 주관을 흔히 영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단순히 자기 동일성에 머무르는 것, 데카르트적 에고로 파악하지 않는다. 이 주관은 순수한 자기의식 즉 칸트가 말한 통각에 해당하는 것이니, 이 자기의식은 처음에 순수하게 자기 관계하는 것이며, 이것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자기를 의식과 대상으로 분화하여 대립하는 가운데 다시 양자를 통일하여 자기 관계하는 통일에 이른다. 이런 전개 방식은 개념의 전개와 동일한 방식으로 전개되니, 이 주관이야말로 개념의 구체적인 예가 된다.
“개념은 그 자체 자유로운 현존에 이른 한에서는 주관이나 순수 자기의식과 다른 것이 아니다. 주관은 사실 개념이며 즉 특정한 개념이다. 그러나 주관은 순수한 개념 자체이며 개념으로서 현존하기에 이른 것이다.”(논리학 2부, GW12, 17)
앞에서 개념의 단초인 실체 즉 암수 관계에서는 아직 상호작용은 불완전하다. 암수 관계에서 개념적 실체는 아직 자동적인 우연성에 머무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암수 관계는 각자 개별적인 생명체이면서 성적 관계에서만 상호작용이 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실체는 아직 개체에 내면적으로 머무르는 잠재적인 개념이다.
반면, 주관에 이르게 되면, 개체의 사회적 상호작용적 관계가 출현하며 상호작용은 전면적으로 일어나며 그 관계는 완전히 자유로운 것으로 등장한다. 이런 상호작용으로 성립하는 실체는 개체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 즉 사회가 된다. 이런 주관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개념이며 동시에 실현된 개념이다.
“주관은 순수한 자기 관계하는 통일성이며 이것은 직접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며 오히려 주관이 모든 규정과 내용을 제거한 채 한계 없는 자기 동일성의 자유 속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관은 일반성이며 통일이어서 다만 추상작용으로 나타나는 그와 같은 부정적 태도를 통해 자기와 통일을 이루고 이를 통해 모든 규정된 것을 자기 내에 해소한 채로 포함하는 것이다”(논리학 2부, GW12, 17)
5)
이와 같은 ‘개념’은 논리적인 범주 가운데 하나이다. 12개 판단 형식은 각기 독자적인 논리적 범주를 이루는데, 헤겔에서 ‘개념’은 이런 논리적 범주가 마침내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과로 등장하는 것이다. 즉 ‘실체’ 범주에서 단초적으로 ‘개념’이 출현하며 본래적인 ‘개념’은 비로소 ‘주체’에 이르러 완성된다.
지금까지 논의한 ‘개념’은 이런 최종적 논리적 범주로서 ‘개념’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은 헤겔의 ‘개념’이 그 앞에서 다룬 논리적 범주 ‘질’이나 ‘양’ ‘본질’ 등과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논의이다. 즉 ‘개념’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논의다.
그런데 논리적 범주 중의 하나로서 ‘개념’은 헤겔의 다른 논리적 범주와 마찬가지로 형식적인 측면에서 공통 규정을 지닌다. 헤겔에서 모든 논리적 범주 즉 판단 형식은 형식상 내용을 자기로부터 규정한다.
그 때문에 헤겔은 앞에서 제기한 ‘개념’에 관한 논의에서 이제 방향을 돌려, 판단 형식으로서 논리적 범주가 지닌 근본적인 특징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다. 이것을 통해 그는 그 자신의 주관 논리학이 기존의 형식적 논리학과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보여주려 한다.
그를 따라 우리도 이제 논리적 범주의 형식적 의미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헤겔이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 곧 칸트이므로 칸트의 기여와 한계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이 지금 다루는 개념에 관한 일반론의 핵심 주제이다.
기존 논리학에서는 논리적 범주와 일반적 개념 사이의 구별에 주목하지 않는다. 소의 개념이나 꽃의 개념은 추상적인 일반성을 의미한다. 이 추상적 일반성이 구체적 내용과 무관하고 외면적인 형식이듯이, 마찬가지로 논리적 형식 즉 판단 형식이란 구체적인 다양한 판단 내용과 무관하다.
기존 논리학에서는 판단의 형식 즉 논리적 범주는 질과 양, 긍정과 부정을 교차한 네 가지 판단 형식밖에 없다. 판단 형식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공허한 형식(긍정과 부정, 개별과 일반이며, 판단에 대해 외면적으로 관계한다. 여기서 부정이니 양화니 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논리적 추론 형식즉 대당관계라는 직접적 추론 형식이다.
그러나 칸트는 이런 판단 형식 즉 논리적 범주를 확장해서 12개의 판단 형식이나 범주를 제시한다.
칸트가 이렇게 판단 형식을 확장한 것은 단순히 종류를 확장한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칸트는 이른바 선험철학의 원리를 통해 이런 판단 형식이 지닌 의미 자체를 형식 논리학과 근본적으로 구별해 새롭게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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