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운동36-관계 범주에서 양상 범주로의 이행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운동36-관계 범주에서 양상 범주로의 이행
1)
논리학 본질론 2편 ‘현상’ 편의 핵심은 법칙 개념이다. 법칙 속에 관계 맺는 두 요소가 곧 현상이다. 이 ‘현상’ 편은 ‘실존’(1장)에서 ‘현상(2장)’ 그리고 ‘관계(3장)’로 나가는데 이는 범주 또는 판단 형식에서 본다면 관계 판단 형식에 속한다.
‘현상’ 편은 전체적으로 물체(실존)에서 성질의 관계(법칙)가 발견되고 나가서 유기체적 상호 관계(내외 관계)가 발견되는 경험적 인식 과정과 상응한다. 그래서 ‘실존’은 정언 판단 형식에 해당하고, ‘현상’은 가언 판단 형식에 해당하며 그리고 ‘관계’ 그 가운데 특히 내부와 외부의 관계가 곧 선언 판단 형식에 해당한다. 이런 경험적 인식 과정의 발전 때문에 현상 편은 존재론에서 질의 생성을 다루는 2편 ‘현존’ 편과 3편 ‘대자 존재’ 편과 상응한다.
‘현상’ 편 끝에 등장하는 내부와 외부의 관계는 곧 내부가 외부로 실현되는 과정이며, 이런 실현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현상’ 편은 끝나고 본질론의 마지막 편인 ‘실제성[Wirklichkeit]’ 편이 시작된다.
2)
이 실제성 편에서 다루는 핵심은 양상[Modus] 개념이다. 즉 가능성, 실제성, 우연성, 필연성의 개념인데 3편 2장에서 다루어지는 이런 양상 개념은 한편으로는(3편 1장에서는) 절대자 즉 실체 개념과 연관해서 다루어지며, 다른 한편으로는(3편 3장) 실체 관계, 인과 관계, 상호 작용 관계와 관련된다. 이 3편 실제성 편 전체가 전개되는 구조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위의 구조를 보면, 마치 정신현상학에서 의식의 형태가 개념의 계기가 되는 과정과 같다. 논리학에서도 이런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다만, 정신현상학에서는 사선에 해당하는 것이 역사적 형태이었고 반면 수직선에 해당하는 것이 논리적 계기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선에 해당하는 것이 논리적 계기이고, 수직선에 해당하는 것이 역사적 형태이다. 즉 논리적 과정이 역사 속에 투영되어 있다.
이런 전개 방식은 논리학 존재론의 영역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인데, 본질론에 이르면 앞에서 현상 편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논리의 전개는 표면적으로는 논리적으로 전개되지만, 배후에 경험을 매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런 구조는 이런 경험이 매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존재론에서는 그런 경험이 배후에 감춰있었으나, 본질론은 본질과 개체라는 상호 반성 관계를 통해 전개되므로 비로소 여기서 그런 감춰진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성 편에서 논리적 범주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심축은 우연성(추상적 필연성)에서 실재적 필연성(실재적 우연성)을 거쳐 절대적 필연성으로 나가는 길이다. 그 이유는 곧 내부가 외부로 실현되는 방식 때문이다. 이 과정은 내부가 외부로 우연하게 실현되는 생물체에서 주체가 매개하면서 내부를 필연적으로 실현하는 인간으로 이행하는데, 내부가 외부로 실현되는 과정은 자기를 실현하는 주체의 탄생을 예고한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되는 우연성, 필연성 등이 곧 양상 범주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실제성 편은 양상 판단 형식에 따라서 발전한다. 헤겔은 이런 양상 개념을 존재론에서 나오는 양의 개념으로 재해석한다. 우연성은 양적으로는 단칭 판단이다. 실재적 필연성은 특칭 판단에 해당한다. 마지막 절대적 필연성은 전칭 판단에 해당한다. 본질론 2편 현상 편은 존재론에서 양 개념의 발전을 다루는 존재론 2부에서 나오는 논리적 범주(정량, 척도, 척도 관계)가 반복된다.
3)
여기서 까다로운 번역 문제가 있다. 일상적 용법과 헤겔의 용법이 구별되기 때문이다. 독일어 ‘Wirklichkeit’ 는 일상적으로는 현재 이루어져 있는 것[영어: actual]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니 흔히 ‘현실’로 번역한다.
그러나 헤겔에서 ‘Wirklichkeit’는 본질이 실현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니,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능태’와 구별되는 ‘실현태’라 할 때의 의미를 지닌다. 그 때문에 ‘Wirklichkeit’는 ‘참된 것’이라는 의미로도 새겨진다. 헤겔이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라” 할 때 이 ‘현실적인 것’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참된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때 올바로 이해될 것이다.
필자는 독일어 ‘Wirklichkeit’는 우리 말로 ‘실제성’에 더 가깝다고 본다. 우리가 “실제로 그래”라고 말할 때 ‘실제성’에는 진실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앞으로 이를 ‘실제성’으로 번역하고자 한다. 실제에서 제[際]는 세계라는 의미이며, 따라서 환상이나 가능한 세계 구별된 세계, 진짜의 세계를 의미한다.
헤겔에서 ‘현존’[Dasein], ‘실존’[Exsitenz]과 ‘실제성’[Wirklichkeit]는 본질이 어느 만큼 실현된 것인가에 따라서 구별된다. 혼동되지 말아야 할 것은 헤겔이 사용하는 실재성[Realitaet] 개념이다. 이는 아마도 영어 ‘reality’에서 독일어로 받아들여진 말로 보이는데, 헤겔에서는 관념성[Idealitaet]에 상대적으로 규정된 말이다.
이 두 가지 개념 쌍 즉 현존과 실제성, 실재와 관념은 구별 기준이나 맥락이 다르다. 흔히 ‘실재성’과 ‘관념성’은 의식 밖의 것[대상]과 의식 내의 것[의식]으로 구별하지만, 헤겔은 이런 구별을 위해서는 ‘표상’[Vorstellung]과 ‘대상’[Gegestand]이라는 말을 따로 사용한다. 반면, ‘실재성’은 ‘타자에 관계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반면 ‘자기 관계하는 것’ 즉 대자 존재는 ‘관념성’으로 규정된다.
헤겔에서 단순한 ‘실재성’은 자주 ‘대상’과 뒤섞여 사용되지만, 모든 실재하는 것이 의식 밖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실제성은 본질이 실현된 것이고 타자 속에서 자기 관계하는 것이니, 실재성과 관념성의 통일로 규정된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영어 때문이다. 영어로 ‘reality’이라는 말은 의식 밖의 ‘실재’와 ‘진실’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포함한다. (실재성을 헤겔처럼 타자 관계로 규정하는 사람은 없다.)
헤겔의 영어본은 ‘Realitaet’과 ‘Wirklichkeit’를 전부 ‘reality’로 번역한다. 그 때문에 헤겔 영어본은 헤겔에 관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영어에서 관념적인 것[idea]에 대응하는 것은 객관적인 것[object]이 있으니 구별해서 번역하면 좋았을 것이다.
유사한 언어로 영어 ‘actual’이란 말이 있다. 이는 아마 라틴어 ‘actu’에서 나온 말인데, 이는 ‘이미 생겨난 것’, ‘정해진 것’이라는 의미이며, ‘사실’이라는 말과 같다. 독일어에서는 ‘Tatsachlich’로 번역된다. 우리 말로는 ‘현실적’ ‘사실적인 것’으로 번역된다. 필자가 ‘Wirklichkeit’를 굳이 통요된 번역인 현실적이라고 번역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번역하면 헤겔의 ‘Wirklichkeit’가 이런 ‘actuality’란 의미로 오해되기 때문이다.
우리 말로 ‘실재’, ‘실제’, ‘사실’은 좀 혼란스럽게 석여서 사용되지만, 헤겔의 번역을 위해서는 아래처럼 구별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실재’는 ‘Realitaet’에 대해 ‘실제’는 ‘Wirklichkeit’에 대해 ‘사실’은 ‘Tatsache’, ‘Fact’등에 대한 번역어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런데 헤겔이 자주 ‘Wirklichkeit’가 일상적인 의미로 사용하니, 그럴 때는 ‘현실’로 번역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4)
실제성 편의 출발점은 절대자라는 개념이다. 갑자기 절대자라는 개념이 튀어나와 당황스럽다. 절대자란 곧 일상적으로는 신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읽어 보면 여기서 절대자는 실체라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헤겔은 이 1장 절대자 장에서 절대자, 속성, 양상이라는 개념 쌍을 다룬다. 이런 개념들은 철학 전통에서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가 실체 개념을 다룰 때 등장했던 개념이고 이 장의 주석에서 헤겔도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의 실체 개념을 분석하니, 그가 이들의 실체 개념을 염두에 두고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내부와 외부의 관계가 실체, 속성, 양상 개념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무엇인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내부와 외부 관계에서 유기체 조직을 매개로 종적 본질이 내부이었고 종적 개체들의 분화된 집단이 곧 외부이었다.
내부와 외부가 합일에 도달하는 경우란 곧 종적 본질이 개체가 배타적(부정적) 통일 관계로 분화될 경우이다. 구체적으로는 생물체의 종이 암, 수 집단으로 구별될 때를 말한다. 개체가 배타적 통일을 이루지 않는 집단에서는 그 분류 기준은 종적 본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다. 예를 들어 영양 획득 기능에 따른 분류는 상이성의 집단을 이룰 뿐이니, 그 기능은 종적 본질에 해당하지 못한다.
이렇게 내부와 외부가 합일에 도달할 때 마침내 헤겔은 이제 실체 즉 절대자가 등장한다고 한다. 이 절대자는 곧 자기를 실현한 본질이다. 즉 내부의 본질은 자기를 배타적으로 분화하여 완전히 서로 통일된 외부 집단이 된 것이다.
“내부와 외부의 이런 통일이 절대적으로 실현된 실제성[Wirklichkeit]이다. 그러나 이 실제성은 처음에는 절대자 자체이다. 왜냐하면, 이 실제성은 그 속에서 형식[내부와 외부의 차이로서 형식]이 지양되고 외부와 내부라는 구별이 공허한 그러나 아직은 외적인 구별이 되는 통일로 정립되기 때문이다.”
5)
실제성 편 1장에서 거론되는 ‘절대자’는 종적 본질이 우연하게 실현된 집단, 즉 내부와 외부가 우연하게 통일된 것이니, 이는 양상 판단 형식(헤겔은 이를 개념 판단 형식이라 부른다)으로는 현실성의 판단이다. 헤겔은 이를 ‘추상적인 필연성’으로서 ‘우연성’이라 부른다.
앞으로 이런 우연성이 지양되고 본질이 필연적으로 실현되기에 이르는 과정이 이제 이 실제성 편에서 전개될 것이다. 2장에서 ‘실제성’이 다루어지는 데 여기서 핵심은 ‘실재적인 필연성’이고 이는 판단 형식으로는 가능성의 판단 형식이다. 마지막 장인 ‘절대적 관계’ 장의 핵심은 상호 작용이며 이는 판단 형식으로는 ‘필연성’(헤겔에서는 절대적 필연성) 판단이다.
헤겔은 우연성에서 필연성으로의 이행 과정을 절대자의 ‘외적 반성’이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 자기 내 복귀는 절대자를 우연히 실현되는 것에서 필연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니, 전자는 실현 자체가 외적인 것이고 후자는 실현 자체가 절대자에 내적인 것이다.
“[외적] 반성은 이 절대자에 대해 외적인 것으로서 관계하는데도 절대자는 이 외적 반성을 마치 그것이 자기의 고유한 운동인 것처럼 고찰한다. 그러나 이 반성은 본질적으로 이런 것[고유한 운동]이므로, 이 반성은 부정적으로 자기 내로 복귀한다.”(논리학, GW11,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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