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6-본질에서 근거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16-본질에서 근거로
1)
앞에서 본질의 운동을 두 가지 축에 따라 살펴보았다. 하나의 축은 본질과 개체적 현존 사이 반성운동의 측면이다. 이 측면에서 반성은 외적 반성에서 내재적 반성 또는 규정하는 반성으로 나갔다. 이 축을 본질과 관계하는 수직축이라 하자.
또 하나의 축은 개체적 현존들 사이의 축이다. 여기서 개체들은 상이성의 관계로부터 대립 관계를 거쳐 모순의 관계로 발전했다. 이를 수평축이라 하자.
반성운동은 이제 이 수평축의 운동과 수직축의 운동 사이의 관계를 통해 전개된다. 그 출발점은 외적 반성운동에서 주관적 본질과 상이한 현존의 관계이고 그 도착점은 내적 반성운동이며 현존의 모순적인 관계이다. 이 관계는 상호작용 속에서 전진하는데, 수직축에서 한 단계 높아가면 수평축에서도 한 단계 발전한다.
이런 반성운동의 전개 과정은 판단에 비추어 본다면(나중에 헤겔이 2부 주관 논리학 개념론에서 판단을 다루면서 설명하는 것에 따르자면), 관계 범주와 양상 범주(헤겔에서는 개념 판단형식이다)의 발전을 매개한다. 즉 본질론 1편 3장이 정언판단을 다루고, 2편 현상 편이 가언판단과 선언판단을 다루고 3편 현실 편이 양상 범주를 다룬다. 본질론에서 범주의 전개 과정과 판단형식 사이의 이런 관계는 존재론에서 질의 운동이 판단의 질적 범주에 상응하고, 양의 운동이 판단의 양적 범주에 상응했던 것과 같다.
2)
반성운동에서 개체적 현존을 매개하는 것이 곧 본질이다. 본질은 개체적 현존을 부정하고 다시 자기를 개체적 현존으로 정립한다. 본질은 자기를 반발하여 개체적 현존을 정립하고, 다시 이 개체적 현존을 부정하여 자기 내로 복귀한다.
여기서 본질은 이데아와 같이 초월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본질은 개체적 현존의 지속적인 재생산 가운데서 존재하는 것 즉 개체적 현존에 내재하는 운동으로서만 존재한다. 이런 개체적 현존은 본질의 내재하는 운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개체적 현존은 단순히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매개로 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지속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운동 속에서 개체적 현존은 자기를 부정하는 가운데서만 존재한다. 반면 본질은 자기를 재생산하는 가운데서만 존재하니, 이 동일한 운동이 지닌 두 대립하는 측면에서 자기를 부정하는 절대적 부정성의 측면이 곧 개체적 현존이며 이를 통해 자기를 지속하는 동일성의 측면이 본질이다.
개체적 현존과 본질 사이의 이런 관계는 마치 존재론 처음에 존재와 무 사이의 관계와도 같다. 생성은 존재가 무로, 무가 다시 존재로 이행하는 가운데서만 있으니, 양자는 직접 결합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개체적 현존과 본질이라는 두 가지 측면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한다. 개체적 현존의 절대적 부정성의 이면이 곧 본질이며 본질의 자기 동일성의 이면이 절대적 부정성이다. 헤겔은 이처럼 동전의 양면으로 결합한 전체를 본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이 전체를 개체적 현존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처음 무는 존재와 단순한 직접적인 통일 속에 있었듯이 또한 여기서 우선 본질의 단순한 동일성은 절대적 부정성과 직접적인 통일 속에 있다.”(논리학, GW11, 291)
본질 전체가 전개하는 이런 운동이 지닌 대립하는 측면을 분리해서 보게 되면, 하나는 절대적 부정성의 운동이 다른 하나는 지속하는 존재의 운동이다. 전자가 곧 개체적 현존으로서 본질의 측면이며 후자가 곧 근거로서 본질의 측면이다.
3)
그러나 반성이 일어나기 전, 처음에 본질과 개체적 현존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때 본질은 개체적 현존의 성질 가운데 주관이 선택한 것이며 개체적 현존에 대해 외면적인 것이다.
개체적 현존은 우리 눈앞에 직접 현존하는 것이며, 그것은 본질이 스스로 정립한 것이 아니다. 본질 역시 주관적인 선택에 따른 것이니 직접적인 것이며, 개체적 현존의 자기 부정을 통해 출현한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양자는 서로 외면적이다. 이 관계는 아직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의 관계가 아닌 서로 무차별한 관계이다.
“그러나 이런 근거로서의 규정성은 본질 자신을 통해 정립된 것이 아니다. 또는 이 본질은 이러한 본질의 규정을 그 자체로 정립하지 않은 한에서 아직 근거가 아니다.” (논리학, GW11, 291)
그러나 개체적 현존과 본질 사이에 반성을 통해 일정한 관계가 출현하면서 양자 사이에 근거 관계가 출현한다. 여기서 개체적 현존을 통해 지속하는 본질은 개체적 현존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근거가 된다. 반면 본질을 통해 재생산되는 개체적 현존은 이제 그런 본질을 통해 규정된 것, 정립된 것이 되니, 그것을 헤겔은 근거지워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질의 반성은 자신을 그 본래적 모습으로 즉 부정적인 것으로서 정립하고 자신을 규정하는 데 있다.”(논리학, GW11, 291)
이 근거 관계란 본질의 반성운동이 전개하는 관계 가운데 최초에 출현한 관계이다. 반성은 외적 반성은 내적 반성으로 이에 따라서 현존은 상이성에서 대립으로 나간다. 외적 반성 가운데 최초의 반성이 근거이며 상이한 것 가운데 최초의 상이한 현존이 곧 근거지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근거 관계는 반성운동이 밑바닥[zugrunde]에 놓여 있는 것일 뿐이다.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나가는 인식의 출현 과정에서 이것은 최초의 것이지만,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나가는 논리적 서술에서는 최종적인 것이다. 인식론적으로는 반성이 최초로 시작하기에 논리적 서술에서는 반성이 최종적으로 등장해서 반성 자신을 넘어서 직접적인 것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근거는 본질의 반성규정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 마지막의 것이며 그런 반성규정이 자기의 규정[즉 반성이라는 규정]을 지양한 것[직접적인 것]을 의미하는 규정일 뿐이다. 반성규정은 밑바닥에 이르면 진정한 의미를 즉 자기[반성]이 자기 내에서 절대적으로 반발된 것[반성이 아닌 것]이라는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므로 이제 본질에 속하는 정립된 것은 정립된 것이라는 사실이 지양된 것[직접적인 것]으로서만 존재한다.” (논리학, GW11, 291)
그러므로 여기서 근거로서 본질은 아직 개체적 현존에 내재하는 본질이 아니라 외적인 직접적인 본질이다. 이 외적 본질은 자기를 부정하면서 개체적 현존을 규정하는데, 그 결과 본질과 개체적 현존의 관계는 자기 동일성의 관계가 된다.
“본질은 근거로서 규정되는 가운데 규정되지 않은 것[직접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자기가 규정된다는 것을 지양하는 것만이 그 자신의 규정작용이다. 이렇게 본질이 자기 자신을 지양하는 것으로서 규정되는 가운데 본질은 타자[개체적 현존]로부터 나오는 본질이 아니라 자기를 부정하는 가운데서도[in seiner Negativitaet: 개체화 속에서도] 자기와 동일한 본질이 된다.”(논리학, GW11, 291)
하지만, 이런 처음 등장한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의 동일성은 사실 외면적이고 주관적이고 형식적인 동일성에 지나지 않으며 개체적 현존은 본질의 진정한 토대가 되지 못하고 본질은 개체적 현존을 진정으로 규정하지 못한다.
“최초로 존재하는 직접적인 것으로서 규정[개체적 현존]으로부터 나와서 근거로 나가는 한에서(자기 자신을 통해 몰락한 [반성] 규정이라는 성격을 통해) 이 근거는 처음에는 최초의 것을 통해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규정작용은 한편으로 본다면 규정작용을 지양하는 것이며 본질의 동일성을 다만 회복하고 순화하고 개시하는 것이다. 그런 본질의 동일성은 곧 잠재적인[an sich] 반성규정이다.”(논리학, GW11, 291)
“그러나 다른 한편 이 규정작용으로서 부정하는 운동은 직접적인 것으로 출현했던 앞서의 반성 규정성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런 직접적인 반성규정은 근거에서 나타나는 자기 자신을 배제하는 반성에 의해서만 정립된 것이며 여기서 정립된 것이거나 지양된 것으로서만 정립되는 것이다.”(논리학, GW11, 292)
4)
앞에서 말한 반성 즉 절대적 부정성의 자기 동일성은 순수한 매개였다. 이것은 “무가 무를 통해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운동”이며 “자신을 타자 속에 비추는 것”이다.
헤겔은 최초로 일어난 반성 관계인 근거 관계를 앞에서 말한 반성의 순수한 개념에 따른 매개와 달리 직접적인 것이 가지는 매개라는 점에서 ‘실재적인 매개’라 한다.
“근거는 실재하는 매개이다. 왜냐하면, 근거는 반성이 지양되는 한에서 반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근거를 자신의 비존재를 통해서 자기 내로 되돌아와서 자기를 정립하는 본질이다.”(논리학, GW11, 292)
여기서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은 직접적인 것들의 외면적 관계이다.
“지양된 반성이 지닌 이런 계기들에 따라서 보면 정립된 것은 직접성의 규정을 획득하며 관계 밖에 즉 자기를 비추는 것 바깥에 있는 자기와 동일한 것의 규정이다.”(논리학, GW11, 292)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Feel free to contribute!